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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금북정맥/한남금북2

한남금북정맥 1구간...... 출정식도 못하고......


훌륭하신 산꾼들의 집합소 해밀에서 한남금북정맥에 드는 날입니다.

며칠 전부터 장맛비 예보가 되어 있습니다.

산꾼이 비가 온다고 안 가고 눈이 온다고 안 가며 춥다고 혹은 덥다고 안 가면 되겠습니까?

완전무장을 하고 방수 카메라인 GO-PRO까지 챙겨서 집을 나섭니다.

반갑게 대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차에 오릅니다.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검은 구름이 버스를 따라오는군요.

질주하는 버스를 따라 궤적을 남기려는 듯 구름은 보은군 속리산면 대목리까지 쫓아옵니다.

하늘이 뚫렸다!

하늘이 구멍났다!

국민안전처, 보은군, 청주시에서 계속 재난안전문자가 날아듭니다.

안전 제일 주의에 따라 1구간 지역에서 철수.

아쉬움에 대타代打 구간인 금왕월드사우나로 이동하던 중 이부장님이 알바를 하는 통에 청주시내에서 물구경만 한 꼴이 되어버리는군요.

하늘의 계시로 받아들입니다.

일단 포기를 하면 마음은 편해지는 법.

그래도 일단 갔다는 왔으니 구간 정리나 해보죠.

 

한남금북정맥이라......

글씨에 녹아 있는 의미를 풀어보면 한강 남쪽과 금강 북쪽을 책임지고 있는 산줄기라는 뜻일 겁니다.

그 이야기는 곧 세 개의 물줄기가 나뉘는 삼파수의 산이 있는 곳이라는 얘기와 같습니다.

그 산은 어디고 물이 발원하는 곳은 어디일까요?

 

우리나라 산줄기의 족보책인 산경표를 봅니다.

백두산을 출발한 대간 줄기는 99번째 산인 속리산에 이르러 두 개의 가지를 내놓습니다.

그 하나는 함창 서쪽 37리 지점에 있는 황령으로 가고 다른 하나는 서쪽에 있는 회유치로 분기한다고 하는군요.

그리고 이 회유치는 한남호서정간으로 이어진다고 표기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육당 최남선의 조선광문회에서 발간한 최성우 소장본에는 이렇게 한남호서정간으로 이어진다고 표기를 하였습니다.

그러고는 막상 그 '란欄'에 가서는 한남금북정맥이라 표기되어 있습니다.

 

참고도 #1 산경표

 

한남호서정간이라...

좀 낯설죠?

호서는 보통 충청도를 이르는 지방 이름이니 충청도를 지나면서 한강 남쪽을 싸고 있는 줄기라는 말은 되겠군요.

한남이 들어가는 말은 한남정맥과 한남금북정맥만 들어봤는데 느닷없이 '한남호서정간'이라뇨?

그것도 산경표에서 말입니다.

 

어쨌든 정간正幹이라니요?

정간이라....

사실 백두대간이라는 용어는 이익의 성호사설 천지문 '백두정간'조에  처음 등장합니다.

하지만 실제 본문에 들어가면 백두대간이라는 용어가 눈에 띕니다.

즉 " ~ 그 왼쪽 줄기는 동해를 끼고서 뭉쳐 있는데, 하나의 큰 바다와 백두대간은 시종을 같이 하였다. 左旁東海 凝定一大湖 與白頭大幹 同其始終"는 대목이죠.

따라서 18세기 초반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대간과 정간이라는 용어를 혼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후에 나온 산경표를 들여다 볼까요?

주지하다시피 산경표는 신경준의 저술이라고 알려졌었지만 지금은 무명씨無名氏에 의해 집필된 것이고 그 시기는 1800년 이후라는 게 정설입니다.

 

그리고 이 산경표는 크게 해동도리보에 실린 산경표와 여지편람에 실린 산경표 등 두 가지 본이 주목 받고 있습니다.

해동도리보는 규장각에 그리고 여지편람은 정신문화연구원에 각 소장하고 있습니다.

 

이 중 산경표의 기본이라 일컬어지는 '해동도리보'의 산경표에는 장백정간을 넣어 1대간 1정간 13정맥의 산줄기 체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지편람'의 산경표는 낙남정맥을 낙남정간이라 표기하여 1대간 2정간 12정맥으로 구성되어 있죠.

마치 정간과 정맥을 거의 동격으로 다루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성호사설에서는 대간과 동격으로 봤는데 말입니다.

 

참고도 #2  산경도

 

한편 백두대간이 우리나라를 동서로 양분하는 기본 산줄기라는 것에 이의를 달 사람은 그 누구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산줄기의 길이만 놓고 보자면 조금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즉 북쪽으로는 백두산이 아닌 두만강의 끝 서수라곶산으로 가는 줄기가 그렇고, 남쪽으로는 지리산 천왕봉이 아닌 낙동강 하류 분산으로 가는 산줄기가 그렇습니다.

그 두 줄기가 다 백두대간의 연장선 상에 있는 게 아니냐는 반론입니다.

그렇잖습니까?

우리는 백두대간의 '대大' 자를 믿고 그러고는 이게 제일 길고 또 기본이 되는 산줄기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였냐는 겁니다.

 

정간의 불만은 능히 이해가 가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 한 명을 만나봅니다.

조선 선조 때부터 현종때까지 살았던 유학자 권시(權,1604~1672)라는 사람입니다.

저에게는 11대조 할아버지 정도 되시는 분인데 이 어른께서는 '제왕帝王의 정통'을 나무(산줄기가 아님)비유합니다.

즉 '탄옹선생집'이라는 저술에서 "적장자가 천자가 되는 것을 정간正幹이라 하고, 장자가 아닌 다른 아들이나 서자가 대통을 이은 것을 대간大幹"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 말은 곧 정간이 끊어지거나 약해지면 방지旁支가 대간이 된다는 말 아니겠습니까?

즉 정간 〉대간입니다.

이러니  백두대간을 권좌에 옹립하려던 대간파들에게는 비상이 걸렸을 터, 적당한 타협안이 제시됩니다.

 

우리는 나무를 산줄기에 대입합니다.

이는 우리가 산줄기를 볼 때 나무에 비유하는 수체계이론樹體系理論과 그 맥을 같이 합니다.

"정간아, 니 역할을 다 이해한다. 하지만 백두산이 있지 않냐. 우리나라는 원래 '산악숭배사상'이 제일 아니겠냐. 밝달 즉 백산(

ᄇᆞᆰ 사상도 있고 더욱이 단군 왕검 체통도 세워줘야 할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정간도 완강하게 버팁니다.

"'正, 長也" 즉 正은 바르다는 말도 있지만 우두머리라는 말도 있지 않느냐! 나는 싫다!"

하지만 꾸준한 설득 작업에 결국 산경표에는 백두대간이 권좌에 오르게 되고 다만 편제에 있어서는 정간을 제일 앞에 둠으로써 정간의 체통을 세워주게 됩니다.

살아 있는 정치였죠.

협치協治의 산물이었습니다.

 

이를 현대적 관념에서 풀어보면 장백정간 산줄기가 제일 긴 그것이기 때문에 그것에 특히 '정간'이라는 계급을 부여한 것으로 보는 거 같습니다.

이런 뜻은 해동도리보의 산경표 편제가 장백 정간 - 백두대간 - 낙남정맥 - 청북정맥 순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면 그 믿음을 더욱 확실하게 합니다.

박용수님이나 '태백산맥은 없다'의 저자 조석필님도 같은 의견입니다. 

이렇게 대간에 밀린 정간은 지금에 와서는 정맥과 거의 동급으로 취급받고 있는 실정이긴 합니다.

결국 대간파에 속은 거죠.

위 조석필님의 경우는 "차라리 이참에 정간을 없애고 정맥으로 만들어 1대간 14정맥으로 하자!"고 까지 하시니....

팽烹을 당한 격입니다.

 

한편 이 한남금북정맥은 속리산에서 분기하여 일명 도종산이라고도 불리는 칠현산에서 끝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현대 지도에 엄밀하게 대입시켜 보면 칠현산이 아닌 칠장산 분기점에서 맥이 끝나고 정맥의 도상거리는 약 158.8km가 됩니다.

그러니 이는 산경표에 나오는 지명인 지금의 칠현산까지의 거리 161km와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냥 간단하게 예전에는 칠장산 분기점까지를 다 통 털어서 칠현산이라고 봤다고 보면 간단합니다.

 

참고도 #3대동여지도 칠현산 부근

 

그런데 당시 세계 최고의 정밀도를 자랑하는 대동여지도를 보면 오히려 칠현산의 위치가 현재의 지도보다 더 죽산 쪽으로 치우쳐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예전의 산경표나 대동여지도를 지금의 지도나 표로 완전히 일치시키겠다는 작업은 처음부터 하지 않는 게 옳을 것 같습니다.

그저 당시의 지명이 지금은 어떤 지명으로 변천이 되었나를 알아보는 정도의 자료로 참고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 정맥이 대간으로부터 갈라지는 지점은 속리산입니다.

자세히는 속리산에서도 천왕봉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천황봉이었습니다.

 

참고도 #4 천황봉 정상석

 

이런 정상석이 정상을 지키고 있었죠.

그런데 환경연합의 이른바 '개명작업 사건'으로 천왕봉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에 관한 자세한 얘기는 지난 번 정맥을 할 때 계룡산에 들면서 적은 산행기를 참조하시면 됩니다.

 

백두대간이 통과하는 이 속리산에 대해서는 참 할 얘기가 많습니다.

충북알프스에서 시작하여 속리태극 이야기며 각 지맥 이름을 붙인 산줄기들도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참고도 #5 백두대간 개념도

 

얘기를 하다보면 끝이 없을 것 같으니 속리산의 이름에 대해서만 잠깐 살펴보기로 하죠.

곧 출간 될 졸저 '현오가 걸은 백두대간'에서 관련 내용을 인용하기로 합니다.

 

천왕봉과 비로봉

 

그런데 형. 보통 산에는 비로봉이든 천왕봉이든 둘 중의 하나만 있는데 어떻게 이 속리산에는 비로봉과 천왕봉 등 두 개의 이름이 병존하는 것이지?”

보통은 천왕봉이나 비로봉 중 천왕봉이 있으면 비로봉이 없고, 비로봉이 있으면 천왕봉이 없을 법한데 이 속리만큼은 두 이름의 봉우리를 다 가지고 있다. 어찌 보면 좀 욕심이 많은 산인 것 같다. 비로봉과 천왕봉 혹은 천황봉이 양립할 수 없는 이유? 뭐 꼭 양립할 수 없다는 것보다는 두 개의 최고가 한 곳에 있기에는 좀 벅차다는 것이다. 삼국지의 제갈량(諸葛亮)과 사마의(司馬懿)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이유를 좀 살펴보자.

 

우리 민족 최고(最古)의 신앙은 아무래도 산악숭배신앙이다. 그러니 환웅부터 시작하여 삼국시대의 천군(天君)을 거치는 동안 하늘에 계신 하느님을 천왕으로 불렀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산이든 명산에는 천왕()봉에 제단 즉 제천단을 두고 제사를 드렸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이 천황봉이나 천왕봉은 어느 산에서도 최고봉이라는 뜻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산악신앙설이다.

 

반면 비로봉은 불교 신앙의 한 단면이다. 불교신앙설로 불교에서 부처님 중 가장 으뜸인 부처님은 비로자나불이다. 그러니 불가의 기운이 가득 찬 산에서는 그 최고봉을 비로봉이라 불렀음은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라 하겠다. 금강산, 묘향산, 오대산, 치악산, 소백산 등 이른바 ‘5이라고 하는 산에 비로봉이 최고봉으로 자리 잡은 이유는 이와 무관치 않다.

 

이 속리산의 경우를 법주사의 창건과 관련하여 생각해 보자. 짐작건대 불교국가인 고려시대는 물론 특히 신라시대 말기부터 비로봉이라는 이름의 봉우리가 많이 등장했을 것이다. 그런데 속리산의 최고봉은 553(진흥왕 14) 의신이 창건하기 전에 이미 천왕봉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그러니 명찰인 법주사를 창건한 다음 비로봉이라는 이름을 붙여야 하는데 천왕봉이 버티고 있으니 다른 방법을 강구할 수밖에. 적당히 타협하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추측건대 결국 남의 봉우리 이름을 빼앗을 수는 없어 부득불 다음 고봉1031.9m에 비로봉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한편 보통 비로봉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원인은 위와 같이 불교와 무관치 않으나 종교적인 원인 이외에 국어학적인 측면에서 비로를 밝히려는 유력한 시도가 있다. 즉 이 비로는 단순히 한자를 차자(借字)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아까 얘기한 산악신앙과 결부하여 소원을 빌다에서 접미사 가 붙어 비로가 되었고 이것을 한자로 毘盧, 毗盧 혹은 飛蘆로 표기는 하였으니, 다 우리말 어간 ~’에서 온 것이라는 것이다.

 

속리산의 8, 8, 8석문

 

천왕봉에서 1등급 대삼각점(속리11)을 확인하고 자리를 뜬다. 장각동으로 빠지는 루트는 지금은 열려 있다. 법주사로 떨어지는 삼거리를 지나 이른바 석문을 지난다. 이 속리산이 불교의 냄새가 심하게 난다는 것은 이 석문만 봐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즉 속리산은 이른바 8, 8, 8석문이라 하여 불교에서 중시하는 숫자 ‘8’과 무관치 않다.

 

. 속리8봉은 천왕봉, 비로봉, 수정봉, 길상봉, 보현봉, 묘봉, 관음봉, 문수봉 등을 얘기하는 것이겠고, 8대는 문장대, 입석대, 경업대, 신선대, 배석대, 학소대, 봉황대, 산호대 등일 텐데 8석문이 어렵네.”

그래. 그런데 사실 길상봉은 현재 그 위치가 어딘지 불분명해. 그리고 8석문은 수정봉 옆의 추래석문을 시작으로 내석문 ~ 외석문 ~ 금강석문 ~ 비로석문 ~ 상고내석문(고릴라 바위) ~ 천왕석문(상고외석문) ~ 상환석문 등을 얘기하는데 8석문을 잇는 종주 코스도 있어. 보통은 이를 8대와 어울려 진행하는 것 같아.”

필자도 사실 이 8석문 코스는 말만 들어봤지 아직 미답인 코스다. 이들 대()는 지질학적으로는 수직방향의 절리(節理)와 수평 방향의 절리의 합작품이다.

! 그러면 이게 삼각산(북한산) 12성문진행하는 코스와 같은 방법이네.”

맞아. 그러니 우리가 대간을 하면서 만날 수 있는 석문은 지금 이 상고외석문이라고도 불리는 천왕석문과 상고내석문, 비로석문 등 3개의 석문(石門)과 입석대, 신선대와 문장대 등 3개의 대() 그리고 천왕봉, 비로봉, 문수봉 등 3개의 봉우리만 지날 수 있지.”

 

속리산이라는 이름의 유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고릴라 모습을 한 상고내석문이 나온다. 그러고는 신선대로 오른다. 신선대 매점은 산에 있는 그것으로는 우리나라 유일의 국립공원 내의 매점일 것이다. 기르던 황구는 하산시켰다 하고 아직도 도토리 막걸리는 예전의 맛을 잃지 않았다. 막걸리 맛 속에서 고운 최치원의 시 한 수를 읊조리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데 사람은 도를 멀리 하는구나. 道不遠人 人遠道

산은 사람을 떠나지 않는데 사람은 산을 떠나려 하는구나. 山非離俗 俗離山

이 시의 俗離山 때문에 이 산을 속리산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라며?”

그럴 거 같지? 그런데 이 시를 해석할 때 사람(속세)이 산을 떠난다.’고 했잖아. 그게 올바른 해석이기도 하고.”

그러네. 그럼 속리산은 어디서 온 이름이야?”

고운 최치원은 한국문학의 비조(鼻祖)로 평가받지만 사실 뼛속까지 중국인이었잖아. 12살에 당나라에 유학하여 거기서 17년이라는 긴 세월을 보냈으니 그럴 수밖에. 우리는 속리산을 얘기할 때 우리말 어법대로 속세를 떠난다.’의 의미로 이해하잖아. 그런데 한문 어법에 맞춰보면 그 말은 이속(離俗)이 되어야지 속리(俗離)는 아니잖아. 그러니 최치원 같은 대가가 한문을 몰라서 그렇게 썼겠어? 그러니 그게 아니고 지난 번 백수리산을 얘기할 때 수리에 대해서 얘기했잖아. 이 속리도 마찬가지로 수리의 변형에 불과해. 높은 산이라는 거지. 거기에 법주사와 같은 절집이 있으니 종교적 색채까지 덧붙여 누군가가 한자까지 동원하여 속리산(俗離山)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 거야. ‘시루, 수레, 우리, 싸리 등도 다 고구려말 수리의 변형에 불과한 거야.”

이전의 속리산 이름은 구봉산 혹은 이자산으로 불렸다. 물론 산경표에는 속리산과 구봉산을 전혀 다른 산으로 취급을 하고 있기는 하다.

칠형제봉 능선을 바라보면서 지나면 이내 문장대1031.7m이다. 그런데 속리산하면 천왕봉보다 이 문장대가 더 속리산 취급을 받고 있다. 높이만 봐도 27m나 차이가 남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생김새가 갖는 특이함 때문에 그런가?

 

원래 운장대였던 문장대에서의 조망도 거침이 없다. 일망무제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그런데 이 웅덩이들은 뭐야? 이런 거 관악산에서도 본 거 같은데.”

맞아. 아까 동국여지승람 얘기할 때 가마솥 같은 구덩이라는 표현 나왔지? 이런 지형을 나마gnamma라고 부르나 본데 이 지형의 생성과정과 관련이 있겠지. 유독 이 부분으로 침식과 풍화가 집중됐겠고.”


저는 사실 '천왕봉'보다는 '천황봉'을 지지하지만 국가가 새롭게 공인한 이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천왕봉을 따르기는 합니다.

한남금북정맥을 하기 위해서 이 천왕봉으로 오르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가장 정통적인 방법인 법주사 루트입니다.

매표소에서 문화재 관람료를 내고 일주문을 통과하여 석문 갈림길 ~ 천왕봉 코스죠?

2시간 정도 걸리는데 매표소 ~ 문장대 갈림길의 약 1시간이 지루하고 또 보지도 않으면서 지불해야만 하는 입장료 성격의 관람료가 아깝습니다.

두 번째 루트가 대목리 코스로 오늘 우리가 진행하려던 코스였습니다.

대목리 천황사에서 약 3.2km를 죽어라고 올라 2시간 조금 안 걸려 도착하는 코스로 제일 짧은 구간입니다.

그런데 대형버스를 이용할 경우 아랫대목리에서 윗대목리까지 걸어가야 하는 접속 구간이 불편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가 이른바 장각동 루트입니다.

전에는 이 루트가 막혀 있어서 정맥꾼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두 번째 대목리 루트를 선호했었는데 지금은 장각동 코스가 워낙 수려한 경과을 자랑하기에 이 루트도 점차 늘어나는 상황입니다.

이 코스도 3.3km를 약 두 시간 정도에 주파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조심스럽게 장각동 코스를 권유해 봅니다.

다음에 있을 출정식 때에는 바로 산행기로 들어갈 수 있겠군요.

참.

오늘 삼가터널 들어가기 전에 본 충북알프스 입구도 얘기했어야 했는데 이건 다음에 볼까요?

봉회장님께 한 번 권유할 루트이기에.....

지난 번 진행한 호남알프스 못지않은 곳이라....

그리고 오늘 이부장님께서 알바를 하실 때 잠깐 정2품송 앞에서 회차를 했었죠?

그 정2품송이 혼례식을 치렀던 거 기억들 하시나요?

신부는 바로 우리가 백두대간을 할 때 피재 ~ 댓재 구간을 할 때 하사미동 고랭지 채소 밭을 지나 큰재를 지났죠?

그때 바로 '준경묘 삼거리' 지나게 됩니다.

그 준경묘가 태조 이성계의 5대조 이양무 장군의 묘소죠.

그 준경묘에는 묘를 지키고 있는 멋진 소나무가 있다고 합니다.

 

제 책에서 그 부분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2001년 5월 8일 산림청장의 주례로 충북 보은군 내속리산면 상판리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103호인 정이품송(正二品松)을 신랑으로 맞아 준경묘역에서 세계 최초의 소나무 전통혼례식을 가졌다. 보은군수가 신랑(삼산초등학교 6학년 이상훈 대역)의 혼주가 되고, 삼척시장이 신부(삼척초등학교 6학년 노신영 대역)의 혼주가 되어 많은 하객이 참석한 가운데 결혼식이 거행되어 한국기네스북에까지 올랐다고 한다. 정2품송과 혼례를 치렀으니 이젠 이 소나무는 정부인송(貞夫人松)이라 불러야 옳을 것 같다.

 

오늘은 이 정도로 하죠.

읽느라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