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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의 문을 연 문수사상의 근원지 묘향암

반야 낙조

 

지리산에서.....

주능선을 걷다가 혹은 다른 봉우리나 조망처에서 아득히 노란 지붕의 묘향대를 보게 되면 누구나 다 "꼭 한번 가봐야지"하는 마음을 억누르기 어려울 겁니다.

그 언젠가 반야봉 정상에서 가을 풍경을 즐기다가 나도 모르게 철책을 넘어 미끄러지듯 그 묘향암에 내려섰을 때의 감흥!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군불로 인해 암자 전체에 내려앉은 연기, 노란 색깔의 양철지붕, 시리디 시린 맛난 석간수, 우측으로는 묘봉이, 정면 명선봉 뒤로는 천왕봉이 보이는 조망은.....

"아! 이곳이 별천지로구나!" 하는 감탄사를 연발했던 기억입니다.

이처럼 묘향암은 자신이 신봉하는 종교를 떠나서 지리산꾼이라면 누구에게나 로망 같은 곳 아닐까요?

 

지난 몇 주간 지리산을 비롯한 남부 지방 일원에 주말이면 여전히 빗 소식이 들렸습니다.

주중에는 내리지 않던 비가 주말에 소량이라도 내린다는 예보가 뜬다면 아무리 구라청이라 우기는 강심장이라도 미리 일정을 잡은 산꾼들이라면 속앓이를 하게 되기 마련이죠.

두 달 전 예정한 묘함암에서의 1 무 1박 3일의 여정은 그 빗 소식과 함께 자연스레 취소되어 버렸습니다.

 

그날 묘향암에 시주하기로 미리 주문해놓은 물건들을 언제든  보내긴 보내야 하는데....

그래서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도시가스도 들어올 리 만무한 묘향암에서 수행 생활을 하시는 호림 스님의 불편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려야 할 텐데...

 

그나저나 오늘은 묘향대妙香臺라고도 불리는 묘향암 족보나 캐볼까요?

 

옛날 인도에서는 수도승들이 땅굴을 파고 거기에 기거하면서 수행을 했다 합니다.

더운 지방이라서 그랬었나요?
어쨌든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나라에서는 땅굴 대신에 깊은 산중에 한 칸 암자를 지어 수행을 하게 되었고 이런 연유로 스님들은 자신이 거주하는 곳을 낮추어 일컫는 말로 '토굴土窟'이라 불렀답니다.

따라서 요즘 말하는 '토굴'의 의미는 혼자 수행할 공간만 있는 조그만 암자를 뜻한다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게 낮추어 일컫는 이 '토굴'을 불가에서는 암자와 구분하여 대臺라 칭한다 하니 지리산에 있는 10대臺니 12대臺니 하는 말의 의미를 이제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경험상 이 지리산의 臺를 방문해보면 커다란 바위에 석간수는 기본입니다.

바위는 기가 모이는 힘이 대단하여 바위 주변에서 수행하거나 기도를 그리면 그 효험이 대단하다고 하죠.
그렇다고 해서 큰 바위 주변에 수도처로서의 臺가 많다는 것이지 바위가 臺의 필수 조건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묘향대 즉 묘향암의 어원을 살펴보면,

 

불교에서는 '묘지妙智, 묘행妙行, 묘심妙心, 묘향妙香, 묘적妙寂. 묘각妙覺, 묘법妙法' 등 '묘妙'자가 자주 쓰입니다.

이때 妙는 단순히 묘하다는 뜻이 아니다. ‘가장 높고 뛰어나다. 완벽하다’에 가까운 뜻이죠.

즉 妙는 불교의 공空사상에 바탕을 둔 단어로, 이는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언어를 초월한 불가사의, 구족원만의 뜻으로 쓰인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묘지妙智는 그냥 지혜가 아니라 말로써 이렇다 저렇다 표현할 수도 없고 마음으로 이것이다 저것이다 생각할 수도 없는 지혜, 그러니까 부처의 깨달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없으니 그저 억지로 이름하여 묘지妙智라 할 뿐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묘지妙智는 불지佛智라 해도 되며, 다른 단어의 妙도 佛로 교체하여도 별 무리는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 묘향은 갑옷 같은 세상의 논리를 뚫고 전해지는 부처님의 바른 향기(말씀)를 뜻한다는 것입니다.

그 묘향대가 자리한 반야봉般若峯.

지리산의 심장이기도 한 반야봉般若峰은 불교적 의미로 보면 지리산의 주봉인 셈입니다.

반야般若란 불교의 반야심경에 나오는 지혜를 뜻하는 말로, 분별이나 망상을 떠나 깨달음의 참모습을 환하게 알게 되는 지혜가 바로 이 반야般若의 참뜻인데, 이 지혜를 얻어야 성불成佛을 한다는 것이죠.

 

묘향대의 문수文殊 즉 원어인 범어의 만주슈리Manjushri를 한역을 하면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묘수妙首, 묘덕妙德, 묘길상妙吉祥 등이 되는데 이는 곧 향상 변함이 없는 자성自性 자리를 가리키는 것이니 이 묘유妙有를 묘향妙香이라 일컬은 것이죠.

그렇다면 진리를 통찰하는 지혜를 일컫는 말이 반야이니 그 반야봉 아래 묘향대가 있어 수행자는 묘향을 타고 깨달음의 지혜 즉 반야般若에 이른다는 말이 될 것이니 이곳에 딱 맞아떨어진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묘향대妙香臺 즉 묘향암은 지리산 반야봉 산록에 감춰둔 그야말로 한국불교의 마지막 전설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또한 이 묘향대는 해발 고도가 약1,480m에 위치하고 있으니 이는 설악산 봉정암1,224m이나 태백산 망경사1,363m보다 더 높습니다.

나아가 이 지리의 동쪽에 있는 법계사1450m 보다도 약 30m 더 높은 곳에 위치하였으니 결국 우리나라 최고最高의 절집이라는 얘기겠습니다.

 

그런데 묘향암은 언제부터 반야봉에 있었을까요?

이 얘기를 하자면 이에 앞서 연곡사가 나와야 하고 화엄사가 나와야 합니다.

이들 사찰을 이야기하려면 창건주인 연기조사가 나와야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내용과는 달리 연기조사는 세 분이 있었다고 합니다.

즉 鷰起祖師, 緣起祖師, 煙起祖師 등이 그분들입니다.

* 보통 연기조사緣起祖師 즉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보는데 화엄사가 갖고 있는 설화와는 사뭇 다릅니다.

 

그만큼 이 묘향암이 지리산에서 갖는 의의는 자못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원래 화엄사는 진라 진흥왕5년 그러니까 서기 544년에 인도에서 연鷰을 타고 도래하신 鷰起祖師가 창건했다고 합니다. 

 * 연鷰은 보통 燕으로 알려져 연곡사 역시 제비와 관련하여 설명되고 있으나 사실은 이 鷰이란 이 제비가 아니고 강희자전에 의할 때 '남방에 사는 동물로서 흡사 거북과 같고 이마에는 뫼뿔이 있으며 날개가 있어 능히 날 수가 있고 바다와 육지에 서식한다'라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이 연鷰을 보려면 연곡사로 가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연인데 임진왜란 당시 비몸돌이 없어진 체 땅에 묻혀 있던 것을 찾아 올린 것인데 현재는 이렇게 귀부龜趺만이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보시다시피 이는 거북과는 비슷하나 거북이 분명 아닌 것이 이마에 외뿔이 돋아나 있고 날개가 있는 것이 강희자전의 설명과 일치함을 알 수 있습니다.

어쨌든 이 연기조사는 인도에서 비구니가 된 어머니를 모시고 와서는 어머니는 연곡사에 계시게 하고 자신은 화엄 동천으로 가서 그곳에 크게 가람을 창건하니 그것이 화엄사라는 것입니다.

당시 연기조사는 문수사상을 중심으로 설법을 하였는바, 이 지리산은 자연스럽게 문수보살이 항상 설법을 하는 곳이라 하여 산 이름도 대지문수사리보살大智文殊師利菩薩에서 따와 智利山 華嚴寺가 되었다는 일화도 전해집니다.

그러니 연곡사는 물론 대원사와 법계사를 창건한 이가 바로 이 연기조사鷰起祖師라는 겁니다.

 

한편 연기조사緣起祖師는 바로 의상대사(625~702)로 원효대사와 쌍벽을 이룬다고 인구에 회자되는 분인데,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입당구법入唐求法의 길을 나섰다가 해골에 고인 물을 마시고 득도를 하여 다시 신라로 돌아온 원효와는 달리 홀로 당나라에 가서는 지엄 화상으로부터 인가印可를 받고 귀국하여 태백산에서 부석사를 창건하여 화엄종의 근본도량을 닦으신 분이죠.

그 뒤 지리산 화엄사에 머물면서 장육전을 짓고 화엄일승을 펼쳤다 하여 연기조사緣起祖師로 불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자장이나 의상, 원효 등의 신라승들이 백제땅의 화엄사에 들어온 이유는 화엄사상을 들여온 연기조사鷰起祖師의 화엄사상을 흠모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의 연기조사煙起祖師(827~898)가 바로 백두대간과 관련 있는 옥룡기玉龍記의 도선국사인데 스님은 지리산 깊은 곳에 토굴을 짓고 용맹 정진했는데 산에서 연기가 일어 煙起祖師라는 별호를 얻었다고 합니다.

 

鷰起祖師냐 緣起祖師냐의 논쟁은 여기서는 피합니다.

 

어쨌든 들리는 바에 의하면 鷰起祖師는 위와 같이 여러 개의 사찰을 짓고는 문수성지 반야봉에 올라 득도를 하고서도 계속 용맹 정진하게 되는데 그때 머물렀던 토굴이 바로 이 묘향대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때의 묘향대 자리가 지금의 이 묘향대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말입니다.

역사 기록을 보자면 그중 가장 유명한 게 개운당조사가 수도해 신선이 되었다는 이야기 정도밖에 없으니...

 

묘향암에 시주할 부탄가스는 범여 선배가 준비해 준 것으로 80리터 배낭에 각 한 박스씩 한검 선사와 나누어지고 집을 나섭니다.

2022. 08. 27. 

늘 타듯이 23:00 동서울터미널에서 성삼재행 버스입니다.

차를 기다리는데 아주머니 여섯 분이 버스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시는데 1무 3박 4일의 여정으로 지리산을 진행하신다는군요.

그러고는 연하천, 세석, 치밭목에서 각 하루 씩 유한다 하시고....

산행 잘 마치셨나 모르겠습니다.

하루가 멀다고 비가 오니.....

모두 다 산행을 시작하고 우리는 꼼지락거리다가  마지막으로 성삼재를 떠납니다.

성삼재에서 노고단은 그야말로 돌만 밟으며 걷는 느낌입니다.

노고단 초소는 아직 05:00가 안 되었으니 문이 열리지 않고.....

 

길상봉(노고단) 깊은 밤에 고요한 벌레 소리.

국공은 잠이 들고 한검 선사 홀로 듣는구나

한검 선사마저 잠들어 혼자 울게 할까?

 

여기서 나오는 성불사는 황해도 사리원에 있는 사찰로 기록에 의하면 조금 전 이야기한 도선국사 즉 연기조사가 창건한 절집이죠.

글을 쓴 이은상 선생님은 분명히 가보셨을 터, 선생님의 발걸음이 부럽기만 합니다.

선생님께서 1938년에 쓰신 지리산 탐험기 내용이 궁금도 하고요.

 

노고단 고개를 지나 이제 숲으로 듭니다.

왕시루봉 갈림길도 지나고 우측 바닷가로 남해 바다와 여수도 봅니다.

그러고는 돼지령.

심원마을로 한 번 갈까나?

우리가 피아골을 가 본지가 도대체 언제지?
"문순태의 소설 '피아골' 읽어 보셨나/

"아니요."

이제는 내용도 거의 잊힌 소설이지만 연곡사와 피아골로 이어진 소설의 얼개만은 기억에 남아 있군요.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걷습니다.

이제는 약 10kg 넘는 배낭 무게가 잊힐 만하군요.

노고단을 떠난 후 처음 만나는 샘물.

존경하는 정영기 선생님께서 1969. 8. 14. 이곳을 지나면서 발견한 이 샘을 천호샘으로 명명하고 그 이름을 새긴 말뚝까지 박아놨는데 그 이후 내력도 제대로 모르는 임걸이 이 샘의 이름을 차지하고 있으니.....

사랑하는 아우 몽화님이 갖다 놓은 국자로 물 한 모금 마시고 나옵니다.

비가 그렇게 많이 왔는데도 수량은 좀 줄어든 느낌......

어니언스의 작은 새를 흥얼거립니다.

"세상은 밝아오고 달마저 기우는데...."

날이 밝아오고......

도계 능선인 화개단목이 보이고 멀리 촛대봉이 살짝 얼굴을 내밉니다.

그러고는 반야봉으로 오르는 입구인 노루목입니다.

여기 오면 바로 우측 조망터로 가는 건 당연한 수순!

이 시간에 여기서 지나온 길상봉(노고단)을 보는 것은 낯선 느낌.....

불무장등과 황장산도 마찬가지.....

저 뒷라인이 호남정맥의 백운산 ~ 도솔봉 라인.

그리고 그 라인 맨 좌측이 수어지맥의 억불봉.

왕시루봉과 우측 구례읍을 덮은 운해......

이 무거운 걸 지고 반야로 오를 수는 없는 노릇.

반야는 패스!

백두대간 동진을 할 경우 대간길은 노루목에서 반야봉으로 올라 이리로 내려와야 정상적으로 대간길을 걸었다 말할 수 있죠.

하긴 뭐 대충 모르고 걸었다는 데야 할 말이 있나요?

좌틀하여 묘향암 길로 접어듭니다.

묘봉 위로 태양이 떠오릅니다.

 

"태양은 묘봉 위로 붉게 타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 일지라......"

 

김민기가 그 가사를 쓰던 곳이 집에서 가까운 4·19묘지였다나요?

그래서 묘지라는 단어가 나오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저 봉.

묘봉妙峰이지 토끼봉이 아닙니다!!!!

와!

우측 묘봉.

중앙으로 천왕봉과 그 좌측 중봉을 당겨봅니다.

장터목 대피소와 제석봉 그리고 그 앞에 종기 같은 연하봉과 일출봉도 식별할 수 있습니다.

그 우측으로 가짜 삼신봉과 촛대봉.

좀 멀리 밀어보면......

묘봉과 그 좌측의 촛대봉.

영신봉은 촛대봉의 위세에 눌려 제대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묘향암 가는 길.

올해 마지막 휴일은 이곳에서 눈과 함께 지낼까?

아무래도 금년 마지막 날은 노란 지붕이 아닌 하얀 지붕을 가진 묘향암에서 지내야겠습니다.

반야 중봉과 main봉 사이의 계곡.

아직도 건재한 한검선사님의 표지띠.

등로 우측에 묘향암을 내려다볼 수 있는 바위로 올라갑니다.

스님은 오늘 우리가 방문하는 줄 전혀 모르시는데....

어라.

공양간 문이 열려 있네요.

아침 공양을 하시나?

그런데 어라!

스님이 막 공양간에서 나오시네요.

"스님!"

목소리를 크게 하여 스님을 불러봅니다.

소리맵시가 확실히 전달됐나요?

스님께서 손을 흔드십니다.

그나저나 난리 났습니다.

일광日光이 녀석이 벌써부터 꼬랑지 치고 짖어대며 난리 부르스로군요.

일단은 석간수를 한 잔 들이켜고.....

대웅전으로 들어가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고 스님과 이런저런 얘기로 그동안 미루어뒀던 얘기를 나눕니다.

한검 선사님께서 이 암자를 접수는 하고 싶어 하시는 거 같은데.....

아!

정말 명당 중의 명당입니다.

한눈에 천왕봉을 볼 수 있는 곳이니....

눈 덮인 겨울이 그립습니다.

일광이가 인기척을 느낍니다.

조금 전 노루목에서 만났던 남녀 한 쌍이 우측 반야봉에서 내려옵니다.

이끼폭포로 가시겠다고....

며칠 전(2022. 08. 13.) 이끼폭포에서  사진을 찍다가 실족하여 발생한 사망사고로 인해 그 부근의 국공 순찰이 강화됐다고 얘기해주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쪽으로 길을 잡는군요.

"나무아미타불...."

그들은 오던 곳으로 다시 진행하고.....

한 시간 정도 머물다가 아쉬워하는 스님을 뒤로하고 우리는 폭포숫골로 하산을 시작합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스님.

겨울 전에 가스통 매고 또 들르겠습니다.

해우소 옆에서 하산길을 잡습니다.

조심스레 내려가면 길 찾기는 무난합니다.

지리산에서 딱 10장만 볼 수 있는 몽화아우의 표지띠.

사진으로 찍어 카톡으로 날려줍니다.

"형님 지리산에 들었습니까?

어디신데요?"

바로 전화가 오는군요.

"응 폭포숫골이다. 잘 지내시는가?"

"형님. 이 해 가기 전에 함산 한 번 해요."

"그랴. 연말에 묘향암에서 볼까나?"

이끼 폭포.

길고도 긴 실 폭포.

톱으로 절단한 홈으로 흐르는 물줄기.

절묘할 따름!

삼층 폭포.

"이리 와서 폼 한 번 잡아보시게나...."

한검 선사 님을 부릅니다.

그 폭포를 배경으로.....

폭포의 향연.

그래서 폭포숫골입니다.

이 물든 와운마을에서 내려오는 물을 받아 만수천에 합류된 다음 마천에서 임천이 되어 덕유산 물인 남강에 합수되어 낙동강으로.....

맑디 맑은 물......

어쨌든 얼마 전의 나쁜 기억을 지우며 조심스레 하산을 합니다.

이제 뱀사골 정규 류트에는 거의 다 왔군요.

반선까지 6.8km이니까 와운마을 삼거리까지는 4.7km.

여유롭게 1시간 30분 정도 잡습니다.

1989. 12.에 완공한 유유교幽幽橋.

깊은 곳에 있는 다리라 이렇게 이름을 지었나?

간장소.

이게 간장소?

여름에는 이런 곳에 발을 담그고 멍 때려야 하는데.....

순찰 중인 국공직원들과도 가벼운 인사를 나눕니다.

그들의 증언에 의하면 이렇게 순찰 도는 게 가장 고역이라고 하더군요.

오늘은 남여 직원 2명이 한 조가 되었군요.

저같으면 지리산이라면 매일 순찰을 돌겠는데....

함박골 입구입니다.

엊그제 있었던 사망사고 날짜가 박혀 있습니다.

비탐구간 다니지 맙시다!

다니더라도 조심조심....

제승대 상부.

한검선사님.

오늘 수고 많았소.

그러게 무리한 산행을 하지 말라니까.....

먹다 남은 거 잘 챙겨가소!

오늘은 파리로부터 시달림을 받지 않았으니 그나마 다행이고....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그런가?

바로 물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만.....

와운마을로 들어가는 와운 삼거리.

천년송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관광지가 될 듯.

오늘은 유달리 관광객이 많습니다.

땀에 전 몸을 씻고....

금방 고남 형님이 도착하는군요.

지인이 운영하는 옻닭 집으로 가서 늦은 점심을 먹습니다.

한검선사 님은 뭐가 그렇게 기분이 좋다고 좀 과음을 하는군요.

가기 싫은 몸을 간신히 일으켜 인월에서 서울행 버스를 타고 귀경길에 오릅니다.

인월 터미널 아주머니는 이제는 알아서 자리를 빼주고....

감사합니다.

덕분에 잘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