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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짜 삼신봉이지!

주초 3일은 너무 바빴습니다.

3일 동안의 업무를 성공적으로 처리하니 마음이 뿌듯해집니다.

그런 나에게 잘했다는 뜻의 선물을 하나 줘야 하는데.....

날씨를 보니 지리산은 다가오는 7일 중 유일하게 목요일만 비 소식이 없습니다. 

목요일은 예정된 일이 없으니 부랴부랴 짐을 꾸립니다.

동서울 터미널로 나갑니다.

버스에서 피곤한 몸을 뉘고 나니 벌써 백무동입니다.

03:24

오늘은 안전운전을 하느라 그랬나?

조금 늦게 종점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종점까지 온 산꾼은 5명.

03:50

꼼지락 거리다보니 모두들 떠났고...

저도 스틱을 맞추고는 그분들 뒤를 쫓아 백무동 터미널을 뜹니다.

오늘은 어디로 갈까......

화장실에서 생각해보니 삼신봉을 오랫동안 안 가봤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세석으로....

한신? 장터목?

그래도 지리 주릉에 들면서 연하봉을 봐야겠지!

초소를 지나,

좌틀하여 장터목 방향으로 오늘 산행길을 잡습니다.

백무동 ~ 장터목 ~ 세석 ~ 삼신봉 ~ 상불재 ~ 쌍계사로 진행할 요량입니다.

한 28km가 될까?

아 지루한 코스....

하동바위.....

이 시간에 보일 리도 없지만 좌측으로 눈을 돌려 하동바위를 느낍니다.

예전에는 곡암哭巖이라 불렸죠!

 

한 승려가 말하길 "옛날 하동 수령이 상봉에 오르다가 이곳에 이르러 힘이 다해 통곡을 하고서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곡암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라고 하였다.

비루하구나!

하동 수령의 나약한 의지여!

자기의 힘을 헤아려보지도 않고 경솔하게 험한 곳을 덤벼들어 무모하게 아름다운 경관을 구경하려 하다니....

 

- 양대박((1543~1592) 두류산기행록 중에서

참샘을 지납니다.

멋진 쉼터가 생겼습니다.

안전쉼터라니?

무인대피소라는 얘긴가?

그런데 문은 잠겨 있습니다.

05:29

창암능선에 붙었습니다.

백두대간의 제석봉에서 가지를 쳐 내려오는 능선이죠.

이제부터 능선을 따라 오르는 길이니 좀 수월해집니다.

좌측으로 날이 훤해지기 시작합니다.

소지봉1499.1m에서,

권수복 님이 바위에 심어놓은 소나무를 봅니다.

5년 정도 됐는데 많이 컸습니다.

하봉에서 영랑대와 소년대를 보고....

06:43

그러고는 조망 바위에 도착합니다.

주위를 둘러봐야겠죠.

바위 위로 오릅니다.

좌측 일출봉과 우측이 연하봉.....

화장봉과 영신봉.

그 우측으로 칠선봉과 덕평봉.

그 우측으로 뾰족한 게 길상봉(노고단) 그리고 그 우측의 반야봉.

서부능선과 북부 능선은 운해에 가렸습니다.

오늘 날씨가 무척 좋으리라는 예감.

이 시간 설악을 즐기고 있을 맹 선생에게 메시지를 넣습니다.

바로 답이 오는군요.

벌써 공룡으로 들어섰다고!

이 사람이 날아다니나.....

그래도 마음속으로 읽어봅니다.

세걸산...

바래봉과 덕두산....

제석당과 제석봉 오르는 길.

좌측으로 대피소 시설물이 살짝 보이고 일출봉의 암봉이 보이면서 연하봉이 이 정도 크기로 보이면 이제 장터목까지 거의 다 온 것이죠.

운해는 반야까지가 딱 경계이고.....

장터목 사거리.

우틀합니다.

중산리를 보고,

마천 쪽은 아까 그대로.....

백두대간의 백운산만....

그래...

이런 장관을 언제 또 보겠는가!

오늘은 운해만 즐길 팔자!

뭐 설마 하니 그러겠는가!

좌측 영신봉과 칠선봉도 보고 노고단에서 좌측 질등과 문바우등 지나 왕시루봉으로 흐르는 능선도 보이니 이 정도면 굿!

장터목 대피소를 떠나면서,

좌측을 주시합니다.

써레봉에서 흘러내리는 황금 능선이 구곡산으로 흐르고...

구름에 덮인 덕산시가지.

일출봉으로 진행하기 위하여 숲으로 듭니다.

일출봉은 오르자마자 뒤를 돌아봐야 하는 곳.

좌측 제석봉과 가운데 중봉 그리고 천왕봉을 보기 위함이죠.

그러고는 일출봉의 암봉과 그 우측으로 조금 이따 만날 삼신봉 등 낙남정맥의 흐름도 느끼고,

그 우측으로는 섬진강 건너 호남정맥의 백운산도 봐야죠.

구름 때문에 백운산은 가렸고 수어지맥의 억불봉만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합니다.

세석까지는 9.4km 정도 걷게 되는군요.

지리산은 어디로 올라 어디로 내려오든 20km는 잡아야죠.

아!

바로 이 모습.

그렇게도 보고 싶어 하던 연하봉.

그 좌측의 가짜삼신봉과 그 우측의 촛대봉을 한 세트로 봅니다.

중앙에는 왕시루봉.

겨울에 눈 덮인 연하봉을 너무 보고 싶군요.

연하봉 우측 멀리 반야.

묘향암은 구름에 가렸고.....

1955. 5. 5. 연하반 산악회가 저 봉우리를 연하봉이라 이름하고 자신들의 산악회 이름을 연하반산악회煙霞班山岳會라 한 이유를 여기와 보면 알 수 있죠.

삼신봉 일대는 여전하고....

야생화와 연하봉.

이름을 알아야지!

연하봉과 구름1.

구름2.

아름다움에 진도가 안 나갑니다.

연하봉에서 본 일출봉.

연하선경으로 들어섭니다.

연하봉이다. 점필재가 지날 때도 부를 이름이 없던 봉. 그저 조망이 좋았음에도 이름이 없어 불러주지 못한 봉이다. 이렇게 안타까워하는 점필재를 보고 오죽했으면 동행했던 유극기가 “선생께서 이름을 지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말을 했을까? 그날 점필재가 “고요한 이 산수 속에 그윽하게 운무가 피어오르고 연기가 노는 듯하며 저 바위에 걸린 노을이 함께 어우러지니 연하선경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하네.”라는 말을 해주었으면 어땠을까? 점필재는 이런 말없이 그저 “증거가 될 만한 것도 없는데 어찌 이름을 붙이겠는가!”라며 이곳을 지났다.

 

연하煙霞의 사전적 의미는 안개와 노을을 아울러 일컫는 말이다. 좀 싱겁다. 그 말보다는 ‘고요한 산수의 경치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는 뜻이 더 다가온다. 선경仙境 역시 신선이 사는 곳이라는 뜻보다는 ‘경치가 신비스럽고 그윽한 곳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는 뜻이 역시 더 다가온다. 그렇다면 연하선경이라는 말 역시 그저 ‘고요한 산수가 신비스럽고 그윽한 곳’이라는 뜻으로 읽으면 되겠다. 이곳이 과연 그럴까? 점필재는 그 아름다움을 차마 한 단어로 표현하기 어려웠을 것이라 이해하자. 한자의 단조로움 때문이었으리라.

 

이곳을 안개가 살짝 피어오르는 날 혹은 촛대봉 너머로 노을이 지는 저녁에 지난다면 연하라는 말을 실감할 수도 있겠으나 어느 때라도 일출봉과 제석봉 그리고 천왕봉을 한 셋트로 볼 수 있을 때가 그래도 으뜸이 아닐까? 남효온은 이 연하봉을 ‘소년대’라 부르기도 했다.

 

- 졸저 '현오와 걷는 지리산' 453쪽

연하선경의 끝은 화장봉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 우측으로 지리 주릉은 물론 북부 능선과 서부능선 모두 구름에 가렸습니다.

좌측 가짜삼신봉과 촛대봉은 갰는데.....

그 좌측 도장골에서 구름이 몰려 올라옵니다.

화장봉을 오르면서 뒤를 돌아보니 구름이....

지금 이 시간이 노을이 지는 저녁 타임이어야 하는데.....

화장봉에 오릅니다.

운무가 더 짙어지는군요.

촛대봉에서 이어지는 주릉은 덕평봉 정도만 구름을 이고 있을 뿐.....

여기서는 묘향암까지도 보입니다.

마천도 여전하고......

가짜삼신봉 가는 길에 장승모양의 돌.

가짜 삼신봉.

이러다 곰탕 되는 거 아니야?

꾸역꾸역 촛대봉으로 오릅니다.

올라가 봤자 아무것도 안 보일 거고....

사실 요 며칠 날씨만 괜찮았다면 촛대봉 넘어 청학 연못을 본 다음 거기서 바로 음양수 쪽으로 진행하려고 했었는데 오늘 새벽까지 내린 비로 나뭇가지만 털고 가게 될 게 뻔해 그냥 좋은 길로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스펀지 작용을 하는 습지.

잘 보존해야겠죠.

좌틀하여 세석대피소로 갑니다.

한신계곡 방향.

대피소에서 가지고 온 물도 실컷 마시고 떡 두 개로 요기에 갈음하고....

09:18

25분 정도 쉬었다 일어납니다.

언제나 풍부한 수량.

물 두 통을 채웁니다.

점점 숲으로 변모해가는 세석평전.

30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출입을 통제한 건 너무나 잘한 공단의 결정입니다.

호젓한 세석길.

농사를 지을 정도로 물이 많았으니.....

거림 3거리를 지나,

여기서 영신봉에서 내려오는 낙남정맥 길을 만나고....

이제부터 정맥길을 걷습니다.

제단.

음양수.

호야와 연진의 얘기가 담겨 있습니다.

조망이 잠시 트이는데....

좌측 반야봉, 우측 칠선봉 오름....

좌측 촛대봉과 시루봉.

의신마을 갈림길.

그러고는 석문을 만납니다.

 

문제는 축조 시기와 선인들이 답사한 이 청학연못의 정확한 이름을 밝히는 데 있다. ‘지리 99팀’의 ‘가객’은 류성룡의 형 류운룡의 겸암일기의 돌문과 돌샘 즉 '하동의 화개현에 이르러 유숙하고 이른 아침에 떠나 점심 겨를에 등촌에 닿는다. 그곳에서 사흘간 먹을 양식을 마련한 후 노숙을 사흘 동안 하면 커다란 돌문(石門)에 이르고 그 돌문(石門)을 지나 40리가량 가면 1천 섬을 거둘 수 있는 논과 밭이 펼쳐지는데 넓이가 1천 호쯤은 살만하다 했다. 그 골짜기에 돌샘(石泉)이 하나 있는데 고려 때 ‘청련거사’가 20년 동안 속세와 단절하고 이곳에 살았는데 이곳에 살면 병화가 이르지 않아 보신하는데 길지라는 ‘도참’의 글이 새겨져 있다. 대대로 이곳에서만 자라는 청련(靑蓮)을 기르고 살았기에 그를 ‘청련거사’라 불렀다 한다.'는 내용을 들어 1570년 경이라고 본다.

 

반면 도솔산인 이영규는 위 류운룡은 화개동천에서 출발하여 횡천지맥을 거쳐 삼신봉에서 낙남정맥에 들은 다음 세석으로 올랐다고 진행 코스를 설정한다. 그러고는 위 루트 상의 ‘돌문’은 낙남정맥 상의 삼신봉 바로 아래에 있는 지금의 ‘석문’을 이르는 것이고 ‘돌샘’ 역시 지금의 ‘음양수샘’을 말하는 것이니, ‘돌샘’은 이 ‘작은 못’과 전혀 관계없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오히려 위 송병선에 앞서 이곳을 지났던 하달홍의 1851년 산행기에는 이 ‘작은 못’에 대한 기술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 못의 축조 시기는 1862년 진주 단성민란 때 피신을 온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이곳에 인공 못을 정교하게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니 이 못의 이름은 불일폭포에 있는 청학연과 구분하여 이곳 세석평전이 예전에는 적석평積石坪이라는 지명을 가졌음에 착안하여 세석연못 혹은 적석연못이라 부를 것을 제안한다.

 

생각건대 예전이나 지금이나 산길을 가장 편하게 다닐 수 있는 길은 여전히 능선이며 그 길이 가장 빠른 길이기도 하다. 또한 특별한 일이 아닌 다음에야 계곡을 건너 마주 보이는 능선을 갈 이유도 없었을 것이니 유운용의 돌문과 돌샘은 지금의 낙남정맥 상의 석문과 음양수샘으로 보는 이영규 의견에 동의한다. 다만 성낙건 선생은 “지리산에 청학동이 있다면 세석 이외에는 불가능하다.”는 평소의 소신을 갖고 있었고 그러다 보니 이 연못을 청학연못이라 부른 것은 불일폭포의 청학연과 혼동을 하여서 붙인 게 아니라는 점, 지금은 어느 정도 청학연못이라는 이름으로 세인들에게도 정착된 점 등을 고려해 본다면 그 이름만큼은 지금의 청학연못으로 놔두는 게 낫지 않을까?

 

-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451쪽

그러고 보니 징그러운 산죽길이긴 하지만 이렇게 잘 다듬어져 있습니다.

작업을 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았나......

1146.0봉으로 진행해 단천마을로 내려가는 길.

멀리 내삼신봉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많이 걸었습니다.

그나저나 가장 곤욕스러운 게 바로 거미줄입니다.

아주 미칠 지경입니다.

중간 라인이 황금 능선.

그 뒷 줄이 달뜨기 능선.

좌측이 웅석봉, 우측으로는 수양산까지 보입니다.

구름이 살짝 덮인 천왕봉.

좌측 촛대봉은 구름에 완전히 가렸습니다.

삼신봉 바로 아래에 있는 추모비.

진짜 삼신봉으로 오릅니다.

내가 진짜 삼신봉이지!

남부 지리의 맹주 삼신봉이 갖는 의의를 살펴봅니다.

다만 아까 자주 거론했던 '가짜 삼신봉' 이야기는 뒤로 미루겠습니다.

 

추모비를 지나 바위를 돌아 오르면 정상석 하나가 덩그러니 박혀 있는 삼신봉1288.7m이다. 이곳이 행정구역상으로는 하동군 화개면과 청암면 그리고 산청군 시천면이 만나는 이른바 삼면봉이다. 삼면봉인만큼 이 삼신봉이 지리산에서 갖는 비중은 그만큼 크다. 우선 이름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즉 신을 세 분이나 모시고 있어서 三神峰인가? 삼신봉은 이 아래에 있는 삼신동三神洞이라는 동네 이름에서 왔을 것이다. 영신사靈神寺, 의신사義神寺, 신흥사神興寺 등 세 개의 ‘神’자가 들어간 사찰이 있는 동네라고 해서 삼신동이라 이름했다고 유몽인(1559 ~ 1623)이 전하니 필시 이 봉우리도 이 동네 이름을 따서 붙였을 것이다. 대동여지도는 물론 산경표에도 등재되지 않았던 이름이었고 일제강점기만 해도 무명봉이었던 삼신봉이 지금의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은 나라가 어느 정도 기틀이 잡힌 60년대 이후가 아닌가 보인다. 일제 때 만들어진 지도만 보아도 사실 지금의 내삼신봉1355.1m에 2등급삼각점(하동 27)이 있는 등 이 1355.1봉이 이 부근에서는 대장 봉우리로 인식되었었지만 군계이자 면계 역할을 하는 1288.7봉의 역할이 새삼 드러나게 되니 1355.1봉에 비해 비록 66m 정도가 더 낮고 삼각점 또한 보유하고 있지 않더라도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 어엿하게 삼신봉1288.7m이라는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이다. 그러니 산꾼들은 한 걸음 더 들어간다. 1288.7봉이 이 지역의 맹주가 되자 기존 대장 역할을 하던 1355.1봉을 모른 척할 수 없어 금강산에 있는 외금강이나 내금강에 착안하여 낙남정맥 방향으로 흘러가는 1286.7봉을 특히 외삼신봉, 횡천지맥 방향의 2등급 삼각점이 있던 1355.1봉을 특히 내삼신봉이라 부르자고 한 것이다. 이렇게 남부지리에는 세 개의 삼신봉으로 정리가 된다.

 

- 졸저 '현오와 걷는 지리산' 505쪽

내삼신봉을 봅니다.

그 뒤로 왕시루봉이 흔적만 있고 가운데 줄의 도계(화개단맥)능선의 당재도 봅니다.

청학동 방향.

지리 주릉은 완전히 구름에 덮여 있고....

천왕봉도....

황금능선과 달뜨기 능선만 구름을 벗었군요.

멀리 남강지맥의 한우산도 보이니.....

외삼신봉1286.7m 우측 멀리 금오산이 보이니 그 우측이 남해도입니다.

조금 당겨볼까요......

내삼신봉1355.1m을 보고는 청학동으로 하산하기로 합니다.

석문 지나 좁은 길을 나뭇가지의 빗물을 털면서 왔더니 바지는 다 젖었고 신발은 질퍽거려 찝찝해서 더 진행하기가 좀 그렇습니다.

더욱이 화계에는 목욕탕도 없어 옷을 갈아입기도 뭐하고....

청학동까지 2.4km.

30분 정도면 될 거 같군요.

덕산 김 사장님께 전화를 넣습니다.

우틀하는데......

낙남정맥 방향으로는 들어가지 못하게 통제를 하는군요.

바위 한 구간과 산죽밭 때문이죠.

샘물을 하나 지나고....

돌다리도 건너면,

청학동 코스 날머리입니다.

세석까지 딱 10km.

덕산마을로 가서 목욕(4,000원)을 하고 때까지 벗기니 날아갈 거 같습니다.

나와서 버스시간을 기다리며(16:20) 삼선짬뽕에 소주 한 병을 반주로 곁들입니다.

원지에 16:40 도착합니다.

서울 남부터미널행 버스를 17:20에 예약해놨으니 조금 기다려야 할 것 같군요.

그런데 이게 웬일.

바로 뒤에서 웃음소리가 나며 사르리 님이 송주봉 형님과 같이 서 있군요.

산에서 만날 사람이 없으니 기어코 내려와서 만나는군요.

두 분은 열차로 구례구로 내려와 밤 12시 30분부터 성삼재에서 주릉 종주를 시작하여 중산리로 하산 군내 버스를 타고 왔으니 덕산에서 승차한 저와는 같은 버스로 왔지만 두 분은 뒤에 앉아 있었던 고로 서로 알아보지를 못했던 거로군요.

남부터미널에 내려 함께 하산주로 마무리를 하고 두 분과 헤어져 귀가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