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만에 다시 태백이다.
비와 태풍 때문에 지리산을 다녀온 뒤 다시 구간을 잇기 위하여 금요일 하루 휴가를 내고 22:40 태백행 무궁화호 열차를 예매했다.
태백은 어느 정도 익숙해졌기 때문에 02:57 태백역을 나와 여관골목으로 들어가 해장국 집에 들어가 황태해장국을 시켰으나 밥이 밥 같지가 않아 반 정도 먹고는 숟갈을 놓고 도시락을 부탁한다.
그저 밥과 깍두기 그리고 나물이 전부다.
밖에 기다리고 있는 택시를 타고 피재로 간다.
그런데 정말 명장님이 지적한대로 이 곳 택시 체계는 참으로 이상하다.
분명 미터기에는 3660원이 찍힌 것 같은데 버튼을 하나 누르자 6000원으로 변하고 그리고는 9000원을 달라고 한다.
6000원은 할증요금 같은 느낌이 들고 3000원이 추가된 이유는 아마도 다시 되돌아가는 것에 대한 부가요금이라는 느낌만 갖지 새벽이라 그 이유를 묻지 못한 것은 명장님과 마찬가지다.
03:56
피재에 도착한다.
해발 935m의 피재에는 팔각정도 그대로 있고 삼수령 기념비도 그대로다.
04:00
육각정 뒤의 강원도산림연구원의 팻말을 보고 안개로 뿌연 길을 들어선다.
04:06
이내 400m 걸었다는 이제는 눈에 익숙한 표지판을 본다.
콘크리트 포장이 되어 있는 임도와 만나는 노루매기이다.
그 임도를 따라 계속 걷다보면 오른쪽으로 축대가 나타나고 왼쪽에는 조금 너른 공터 같은 곳이 나타난다.
04:12
그 공터 뒤로 건의령이 5.7km 남았다는 표지목이 서 있고 리본들이 휘날린다.
그 길은 약간의 오르막이고 나무계단으로 잘 정비되어 있다.
04:28
삼각점이 재설되어 있는 곳(944.9m)을 지난다.
04:41
벌써 2.8km를 왔다는 표지목이 서 있다.
어제 비가 왔는지 길은 온통 질퍽질퍽하고 간간이 물이 고여 있는 웅덩이도 지난다.
04:46
희한한 안내판도 다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는데 그 밑에 이곳이 새목이라는 글씨를 보고 이해를 한다.
왼쪽이 태백시공원묘지인데 어두워서 보이지가 않는다.
04:52
건의령이 3km 남았다는 표지목이 나오는 이 길은 정말로 편안한 길이다.
05:10
경위도 표지목이 서 있는 곳을 지난다.
05:28
헬기장이 나온다.
이제 건의령도 500m 밖에 남지 않았다.
05:39
약간 너른 공터가 나오고 우측에는 나무에 평상 같은 것을 만들어 흡사 원두막을 연상시키는 것이 난다.
그 곳을 빠져나오자 바로 오른쪽으로는 임도가 있고 정면으로 표지판 등이 보인다.
한의령이라고도 부른 건의령의 유래에 대한 안내판이 있다.
즉 이곳은 상사미 마을의 주민들이 백두대간을 넘어 도계에 서는 장을 보러갈 때 이용하던 지름길이었다.
그런데 '산경표'에는 분명히 건의령(建儀嶺)이라고 표시되어 있고 다만 '대동여지도'와 이 동네 주민들은 건의령(巾儀嶺)이라고 부르고 있으니 한자표기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한글 발음으로는 건의령으로 해야 할 것이다.
탁상에서 공론만 일삼는 공무원들의 무책임한 일변을 다시 읽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곳에는 퇴락한 당집이 있다고 하는데 안개로 식별이 되지 않아 그냥 지나친다.
06:05
푯대봉 삼거리에 도착한다.
그런데 마루금은 푯대봉을 오르지 않고 그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90° 꺾는다.
그 마루금은 내리막이고 길은 계속 편안하다.
이제 날은 밝아 랜턴도 필요없다.
06:32
961고지를 지난다.
06:39
그곳을 지나자마자 목장 터가 나오는데 이미 오래 전 폐쇄하였는지 그 잔재만 남아 있는데 오늘은 목장 터 뒤 골짜기에서 안개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왠지 상큼한 느낌을 갖게 한다.
07:11
1161.6고지(도상에는 약간 빗겨난 부분에 1162m 봉우리가 있음을 보여 준다.)를 지난다.
'둘산악회'의 '아미산'이라는 분이 붙여 놓은 표지지가 나 같은 산객들에게는 너무나 좋은 이정표 역할을 하는 것 같아 그 분의 노고에 다시금 고마움을 가진다.
홀대모 초은님의 표지띠를 본다.
격려의 메시지를 받는다.
07:26
997.4 고지에 오른다.
이제 구부시령까지 2.3km 남았다.
07:39
500m 더 진행하니 1017고지다.
산림청에서는 무명봉의 고지 고지마다 표지판을 설치하여 놓아 내가 진행하고 있는 지점을 확인 할 수 있게끔 배려를 하여 놓았다.
08:09
표지판을 두 개 지나니 1055고지이다.
벌써 4시간을 넘게 운행했다.
슬슬 배도 고파온다.
그런데 오늘은 물을 싸오지 않고 이온음료만 가지고 온 것을 후회한다.
찬밥은 어차피 물을 말아 김치와 김으로 해결하는 게 시간도 절약되고 맛도 좋아서 간단하게 배를 채울 수 있는데 음료수에다 밥을 말아먹을 수도 없지 않는가.
08:28
구부시령(1107m)에 도착한다.
그 고개의 유래에 대한 안내판이 서 있고 돌무덤이 하나 있다.
그런데 나보다 앞서 지나간 사람의 발자국을 발견한다.
누굴까?
나 하고 같은 기차에서 내린 사람인가?
08:38
그곳을 오르자 직진 길은 막아 놓고 왼쪽으로 90° 내려가는 길로 표지리본이 휘날린다.
그 갈림길에 '태백개인택시' 안내지가 나무에 붙어 있으니 그게 중요한 포인트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되겠다.
08:55
파손된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덕항산(1070.7m)에 도착한다.
이곳에는 덕항산의 유래에 대한 안내판이 있으며 정상석도 서 있다.
400m만 더 가면 쉼터가 있다고 하여 그곳에서 간식을 먹을 요량으로 운행을 계속한다.
09:00
잠시 동쪽으로 조망이 되는 곳을 내려다보니 대이리 방향의 환선굴 진입로가 보인다.
쉼터에 도착하니 한 산객이 식사를 하고 있어 인사만 나누고 쉼터를 지나친다.
동고서저의 전형을 보여주는 이곳에 로프를 설치하여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안전사고를 대비한 듯 한데 겨울에 요긴하게 쓰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지난다.
09:38
환선봉(1079m)에 도착한다.
지장산, 지각산 등 여러 이름을 불리는 이 주변에는 석회암 지형으로 동쪽 산중턱에는 석회암 동굴이 산재하여 있다고 한다.
그 뒤에서 광동댐 이주단지의 고랭지 배추밭이 보인다.
주저앉아 카스타드와 음료수를 먹고 있는데 아까 주먹밥을 드시던 분이 도착하여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며 잡담을 한다.
그 분은 나와 같은 기차를 타고 오신 분으로 06:10에 태백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점촌 정류장에 내려 예수원을 지나 이곳까지 올라왔다고 한다.
100대 명산을 찾아 나름대로 테마 있는 산행을 하고 계신분인데 지장산을 지나 자암재 쪽으로 하산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분에게 부탁을 하여 증명사진 한 장을 남겨 본다.
10:22
잡초로 덥혀 있는 헬기장에 도착한다.
10:37
자암재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환선굴로 빠지는 길과 태백시 조탄동으로 빠지는 사거리가 갈리는 길이다.
그 분은 그 환선굴 길로 향하여 하산한다.
나는 정면으로 난 좁은 길로 오르기 시작한다.
10:58
1000고지에 도착한다.
벌써 700m를 왔다.
여기서는 이주단지가 눈 아래로 내려다보인다.
여기서부터는 잡목과 가시덤불로 운행이 아주 어렵다.
11:33
그 숲을 헤치고 나와 콘크리트 포장도로로 나온다.
그 도로를 걸어 올라가는데 멀리서 한 산객이 내려오는 게 보인다.
그 분은 삼척에 사는 사람으로 산행에는 대단한 일가견이 있는 사람인데 자신들의 일행을 피재에 재려다 주고 자신은 댓재에 차를 세워 놓고 이들을 마중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그 일행들은 여자들인데 상당히 준족들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 분과 이 얘기 저 얘기 하다 보니 고향이 삼척인 작년에 유명을 달리한 내 선배에게는 둘도 없는 고향 후배라는 것을 알게 되고는 상당한 시간을 그와 잡담을 하게 된다.
이상하게 이번 구간에는 좋은 산객들을 자주 만나게 되는데 그 때문에 운행시간은 상당히 지연된다.
그와 헤어져 다시 산행을 진행하게 되는데 또 가시덤불과 잡목으로 운행이 아주 어렵다.
여기서는 물론 콘크리트도로를 따라 가는 방법도 있으나 마루금은 그 길이 아니다.
12:15
산척 산객과 헤어져 물탱크로 올라가는 도중에 뒤를 돌아본다.
콘크리트 도로와 배추 밭 뒤로 있는 숲길이 마루금이다.
그런데 이 길에는 이상스럽게 지렁이 같은 것들이 많이 나와 있어 약간을 흉측스럽다.
물탱크 옆 밭 가장자리로 난 길로 들어선다.
12:19
만연히 물탱크를 지나치면 안 되고 바로 전에 우측으로 빠지는 마루금이 있는데 표지띠가 적어 그냥 지나치기가 십상이다.
12:28
그 길로 계속가면 임도가 나오며 차단기도 보인다.
배가 고프고 목도 마르다.
12:35
임도를 계속 따라 걷기만 하면 된다.
그러다가 오른쪽으로 너른 공터가 나오는 곳.
큰재다.
그곳에서 우측으로 들어가면 된다.
13:10
1062고지에 도착한다.
갈증과 허기로 운행 속도가 더뎌진다.
길은 정말 최악이다.
아까보다는 덜하지만 만만치 않다.
13:20
준경묘 갈림길이 있는 삼거리에 도달한다.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에 위치한 준경묘는 이성계의 5대조 양무장군의 무덤이라 한다.
용비어천가 첫 장에 나오는 해동육룡 즉 목조, 도조, 익조, 환조, 태조, 태종의 바로 그 목조이다.
준경묘는 20~30m 되는 금강송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 중 수령 100년 정도가 된 높이 30m의 소나무가 산림청 임업연구원의 충북 보은의 정이품송 소나무의 혈통을 보존하기 위한 프로그램에 따라 정이품송의 신붓감으로 간택된 우리나라 최고의 미인송이라 한다.
13:28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는 1059고지에 올라 헉헉거리고 있는데 사람 목소리가 나더니 여성 산객 3명이 올라온다.
아까 삼척 분이 이야기한 그 일행들인가 보다.
그 여자분들로 부터 물을 얻어 마시면서 함께 산행을 시작한다.
그 삼척분은 그 고랭지 채소 밭에서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느라고 뒤에 따라 온다고 한다.
13:54
1015고지에 도착한다.
40대 말 50대 초의 이 세분의 여성은 정말 철녀(鐵女)이다.
비록 내가 두 사람을 만나 잡담을 하며 논 시간이 1시간 좀 넘었다손 치더라도 이 세 분의 스피드는 정말 대단한 것 같았다.
14:09
삼각점이 있는 황장산이다.
나는 이상하게 백두대간 상에 나타나는 황장, 황정하면 이상하게 북한에서 귀순한 황장엽이라는 사람이 생각난다.
참으로 이상한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여 본다.
14:20
댓재다.
한자로는 죽치(竹峙)라는 이곳은 결국 령(嶺)과 치(峙)의 차이점이 무엇이냐는 문제와도 직결된다.
우선 '령(領)'은 큰 대간을 가로지르는 고개를 말한다.
즉 대관령, 한계령, 미시령, 추풍령, 죽령, 조령, 이화령 등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대간을 넘는 큰 고개가 아니면 쓰지 않는다.
따라서 대체로 험하고 높은 곳이 많을 수밖에 없다.
다만 예외적으로 관습상 '령'을 붙인 것도 있다.
가령 서울에 있는 남태령이나 우이령은 대간을 가로지르는 고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령'자가 붙어 있다.
이는 이름이 붙을 당시 많은 사람들(서울 사람들)에게 크고 중요한 고개로 인식되었다는 것을 뜻하여 그렇게 붙였다는 설이 설득력이 있다.
'치(峙)'는 본디 높은 언덕을 뜻하는 말이다.
'치(峙)'는 또 다른 말로 '티'라고도 하는데 그리 높지는 않지만 완만하다기보다는 가파른 고갯길을 말한다.
당연히 규모도 크지 않은 편이다.
'재'는 고개의 일반적인 접미사라고 보시면 되겠다.
특별히 규모나 성격상의 기준은 없는 말이다.
조'령'같은 큰 고개도 한 편으로는 문경 새'재' 라고 부르고,
비행기'재'같은 험준한 고개도 '재'이고,
박달'재'같은 평범한 고개도 '재'이고...
웬만한 데는 다 '재'라고 해도 통한다.
또 이를 억지로 한자로 표기하면 땅이름 점(岾)을 특별히 고개 재라고 쓰기도 하여 지리산 성삼재를 성삼재(姓三岾)라고 표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현(峴)'은 작은 고개로, 동네 수준이라고 보시면 되겠다.
서울에 보면 아현동이니, 논현동이니 그런 동네들이 그 예이고 위에서 말한 남태령도 다른 말로는 남현이라고 하여 동 이름이 남현동인 것이다.
결국 이 곳이 경상북도 영주시와 충청북도 단양을 잇는 죽령과는 다른 '치(峙)' 정도의 규모이기 때문에 한자어로는 죽치(竹峙)라고 불리던 것을 우리말로 댓재로 부르는 것일 것이다.
예약해 놓은 댓재민박집에 도착하여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 입은 다음 뒤늦게 도착한 삼척 사람과 함께 음료수를 나눠 마시고 그 일행들을 출발시킨 뒤 나는 빨래를 간단히 하고 휴식을 취한다.
내일 오를 들머리를 확인해 보았으나 표지판과는 달리 사당 뒤로 오르는 길이 올바른 마루금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저녁을 먹은 다음 일찍 잠에 든다.
오늘 운행 거리 : 26.1 km
오늘 운행 시간 : 10시간 20분(휴식, 잡담, 간식 시간 포함. 중간에 잡담 시간 약 1시간 20분 정도를 고려하면 순수 산행시간은 9시간 정도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