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여행을 시작한다. 백두산을 향해 서쪽으로 가볍게 발걸음을 뗀다. 이 대간길은 경남 함양군과 산청군의 군계이다. 천왕봉에서 내려서자마자 우측으로 출입금지 팻말이 있고 그 뒤로 나무로 된 문이 닫혀 있다. 낙동정맥에서 가지를 친 왕피북지맥 부근에 있는 응봉산(999m)의 덕풍계곡과 더불어 우리나라 최장의 계곡이며 제한탐방제가 실시되고 있는 칠선계곡 입구다.
“형,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건가? 오늘 구간 좀 설명해줘. 가장 중요한 봉우리가 영신봉이라며?”
“그래. 지리산에서 가장 중요한 봉우리가 영신봉이야. 낙남정맥과 관련한 얘기도 살펴보고 삼각고지는 지리북부능선이 시작되는 곳이니 거기도 눈여겨봐야 해. 그리고 지리산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봉우리는 뭐니 뭐니 해도 반야봉이야. 그런 다음 노고단에 오르면 오늘 구간이 거의 다 끝난다고 봐야지.”
칠선계곡은 뭇사람들의 추억과 한이 서려있는 곳이다. 그 아름다운 칠선계곡을 찾지 못하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바윗길을 조심스레 내려가면 하늘로 통하는 문인 통천문(通天門)을 지나게 된다. 드문드문 앙상함만 보여주는 제석봉의 고사목을 보고 있으면 예전 화전민들의 녹록지 않았던 생활상을 떠올리게 된다.
지리산 주능선의 장쾌함을 마음껏 감상하면서 내려오다 보면 이내 장터목이다.
예전에는 매년 봄과 가을에 마천 사람들과 시천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장을 열었다고 한다. 그래서 장터목이다. 우측으로 내려가면 백무동, 좌측으로는 지난 구간 산행을 시작했던 중산리로 내려갈 수 있다.
최근 이 대피소에 새 취사장을 깨끗하게 지었다. 항상 시끌벅적한 장터목대피소를 빠져나와 연하봉을 지나면서 갑자기 펼쳐지는 영화 세트장 같은 선경에 잠시 넋을 잃는다. 지리 10경 중 하나인 연하선경이다.
바위로 이루어진 촛대봉을 지나면 세석평전이 펼쳐진다. 지금은 다른 산들에게 그 명성을 내줬지만 한때는 소백산 연화봉과 더불어 철쭉 축제로 명성을 드높이던 그 세석평전이다. 30만 평의 너른 평야 같은 곳에 잔돌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야영장이었던 자리에는 이젠 제법 나무와 풀도 많이 자랐다. 울긋불긋한 텐트의 현란한 색깔보다는 초목의 다채로움이 훨씬 보기 좋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의 결단에 박수를 보낸다. 그런데 돌들을 보면 사실 잔돌이라기보다는 작은 바위가 맞는 말일 것이다. 봄이면 자생하는 진달래와 철쭉으로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예전 대피소는 취사장으로 바뀌었고 현대식 대피소의 모습은 대피소라기보다는 산장 같은 인상을 풍긴다.
대피소 우측으로 영신봉(1651.6m)이 보인다. 지금은 출입금지구역으로 묶여 있는 곳이다. 여기서 눈길을 좌측으로 돌리면 목책 너머로 시원스럽게 뻗어 내려가는 산줄기가 보인다. 이 줄기가 낙동강 하구언으로 향하는 낙남정맥이니 이곳이 곧 그 분기점인 셈이다. 낙남정맥! 낙동강의 남쪽을 받치고 있는 산줄기라는 얘기다. 산경표는 그렇게 표기했다. 산경표의 그 점이 여러 문제를 낳는다. 하나하나 살펴보자.
영신봉 고찰 - 산경표를 알기 전과 알고 난 후
지난 구간 얘기했듯이 영신봉은 여러 가지로 아주 중요한 곳이다. 우선 우리가 산경표를 알기 전과 후로 그 역할이 달라진다. 즉 우리가 산경표를 알기 전에는 영신봉~삼신봉~상불재로 이어지는 지리남부종주를 시작하던 곳이었다. 예전에는 단순하게 지리산 주릉에서 지리남부능선이 시작되는 곳이라 생각하고 걸었다. 그것이 산경표를 알고 난 후에는 낙남정맥이 백두대간에서 갈리는 곳이 되었다.
다시 말해서 산경표를 몰랐던 예전 산꾼들은 지리산의 많은 능선을 성삼재~천왕봉을 주릉으로 하여 동서남북으로 능선을 그은 다음 거기에 맞는 이름을 붙여 중거리 종주산행을 즐겼다. 그중 이 영신봉이 지리남부종주의 시작점이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본다. 지난번에 잠시 얘기했지만 영신봉에서 천왕봉 구간은 ‘산자분수령의 원칙’의 예외 구간이다. 아니 예외 구간이라기보다는 산자분수령의 원칙에 위배되는 구간이다. 산자분수령을 한 번 더 보자.
산자분수령을 관용구로 이해할 때 산줄기는 곧 분수령이 되므로 이 줄기 위로 비가 내리면 그 빗물은 좌측 또는 우측으로 흐르게 마련이다. 그러니 백두대간이 우리나라를 동서로 구분하는 줄기이므로 백두대간 위로 내리는 빗물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 말은 백두대간에서 갈라진 물들은 절대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영신봉~천왕봉 구간에 내리는 빗물은 그렇지 않다. 이 구간의 대간길에 내린 빗물은 우측의 마천 쪽으로 가면 임천을 만들고, 좌측의 시천 쪽으로 가면 덕천강을 만든다. 하지만 이들은 이내 남강으로 합쳐져서 낙동강으로 흡수된 다음 남해로 흘러 들어가게 된다. 낙남정맥이 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두대간에서 나뉜 물줄기는 절대 만날 수 없다는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다. 백두대간이라는 줄기가 남강이라는 작은 강 하나를 가르지 못하다니!
장감독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게 무슨 얘기냐고 묻는다.
“생각해 봐. 백두대간이 뭐야? 우리나라를 동서로 양분하는 줄기잖아. 그러니 동쪽으로 가는 물줄기는 낙동강이나 동해로 가게 되고 서쪽으로 가는 물줄기는 서해나 남해로 가게 되잖아. 그런데 이 구간에 내리는 빗방울은 임천과 덕천강으로 각각 흘렀다가 다시 남강에서 만나게 돼. 그러고는 낙동강에서 남해로 가게 되는 거지. 지난 구간 지도에서 확인해 봐.”
“확인해보니 정말 그러네. 심각한 오류네.”
“결국 산경표가 잘못됐다고 여기게끔 됐잖아? 그래서 이것에 대한 반동으로 나온 게 박성태 선생의 신산경표야.”
박성태의 신산경표와 신백두대간
누구든 쉽게 의심을 품고 회의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명색이 백두대간이 남강 하나를 가르지 못하다니!
그래서 산경표의 이런 오류를 해결하고자 박성태 선생은 고민 끝에 신산경표를 발표한다. 신산경표는 천왕봉으로 가는 대간 줄기를 이 영신봉에 이르러 우측으로 돌린다. 그러고는 그 줄기를 남해안 노량까지 진행하게 한다. 그렇게 하고 보니 백두산~노고단~영신봉~노량으로 진행하는 줄기가 만들어진다. 박성태 선생은 그 줄기를 ‘신백두대간’이라 이름을 붙인다.
좌측 지도를 보면, 백두산에서 내려와 노고단~영신봉~천왕봉으로 가던 줄기를 영신봉에서 우회전시켜 삼신봉을 거쳐 금오산~연대봉~노량으로 이어지게끔 마루금(빨간선)을 그렸다. 그렇게 한 신산경표에서는 이를 산경표의 백두대간에 대응하여 ‘신백두대간’으로 부르겠다는 것이다.
신산경표에서 신백두대간을 고안해낸 이유는 무엇일까?
괜히 바꾸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신산경표는 그 취지를 “대간은 우리나라를 동서로 양분하는 줄기이므로 그 정신을 따르고자 했다.”고 설명한다.
필자는 이 말을 이렇게 이해했다.
첫째, 정맥도 10대 강이 바다와 만나는 합수점으로 가는데 하물며 아버지 격인 대간이 바다도 아닌 산에서 맥을 다한다는 게 사리에 맞지 않는다.
둘째, 대간이 바다로 가야 백두대간이 온전하게 동서를 양분한다는 기본정신에 합당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신산경표에서는 대간의 끝을 ‘영신봉~천왕봉’에서 남해 방향으로 틀어 ‘영신봉~노량’으로 향하게 했고 그 이름을 ‘신백두대간’이라 이름한 것이다. 그럼 끝난 것일까?
“그게 신백두대간이야? 그 방향으로 걸어보려는 사람들도 많겠네. 신선하군.”
“그런데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지.
첫째, 산경표 교도(?)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어. 신성불가침으로 여기고 있던 산경표에 감히 손을 댔다는 거지. 산경표는 산경표 대로 그대로 놔두고 정 필요하면 다른 이름을 붙이든지 해야지 왜 대간이라는 이름을 함부로 만들고 또 산경표의 정맥들을 멋대로 늘렸다 줄였다 하냐는 거야.
둘째, 그러면 영신봉~천왕봉 구간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이지. 신산경표에서는 천왕봉~웅석봉~백운산으로 진행하는 줄기를 ‘웅석지맥’으로 만들어놓고 그 분기점을 영신봉이 아닌 천왕봉으로 그대로 놔둔 것을 보고 하는 얘기인 거야. 이 점이 오히려 신산경표의 약점이 된 거지. 이 문제는 신산경표가 북한의 청북정맥이나 청남정맥 그리고 해서정맥이나 임진북예성남정맥에서 중간의 겹침줄기를 없애면서 이를 정맥에 포함시켰던 과감한 시도를 무색케 하는 결과가 되었어. 곧 천왕봉에 와서는 꼬리를 내렸고 이는 일관성의 결여로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어버린 것이지.”
장감독은 처음 듣는 용어에 정맥까지 동원되니 이해가 갈 리 만무할 것이다. 그래도 나름대로 지도를 펴가며 열심히 찾아본다.
“어려운 대목이야. 나중에 다시 살펴볼 기회가 있을 거야.”
“조금은 이해가 갈 것도 같은데… 하지만 형. 이른바 신산경표의 태도는 고육지책으로 볼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대간이 동서를 구분한다는 얘기는 맞고 산자분수령에 충실하자면 다른 방법이 없잖아? 그런데 사실 문제는 있네. 영신봉~천왕봉~웅석봉으로 이어지는 줄기를 지맥(枝脈)의 한 구간으로 봐야 한다면 결국 ‘천왕봉’이 지맥으로 편입되어야 한다는 얘긴데 그걸 동의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더욱이 백두대간에서 천왕봉을 빼놓고 얘기한다는 것도 용서하지 못할 거 같은데. 신산경표는 영신봉~천왕봉 구간을 어떻게 했어?”
“그렇지. 어려운 얘기야. 어쨌든 신산경표는 그 구간을 ‘무명줄기’로 남겨뒀어. 사실 산경표에서도 그런 애매한 구간이 있을 때 그 구간을 ‘무명줄기’로 남겨두었거든. 청북정맥과 청남정맥 그리고 해서정맥과 임진북예성남정맥이 그랬던 거지. 그런데 그런 걸 해소하겠다고 한 신산경표가 다시 이런 애매한 구간을 ‘무명줄기’로 놔두겠다고 했으니 자승자박(自繩自縛)이 된 거야. 물론 그렇게 하지 않고 일반적인 신산경표의 편제에 따른다면 이 웅석지맥은 천왕지맥으로 그 이름도 바뀌어야 해. 그렇게 되면 ‘지리산=천왕봉’이라는 인식도 변해야 할 것이고. 그것은 사람들의 동의를 받기가 쉽지 않겠지? 그런 점 때문에 신산경표가 싫었던 거야. 나아가 백두대간이라는 이름이 뭐야? 백두산과 지리산을 잇는 큰 줄기라는 것이잖아. 신백두대간이 굳이 우리나라를 동서로 구분하는 점을 강조하여 영신봉~삼신봉~노량 코스로 맥을 돌리겠다면 그 이름에서 ‘백두’라는 말을 빼라는 거지. ‘신(新)’자도 넣을 필요 없이 그냥 ‘백노(白露)대간’ 혹은 ‘백지(白智)대간’으로 부르라는 것이지. 그리고 그러지도 못하면서 왜 영신봉에서 천왕봉 구간은 빈 공간으로 놔뒀냐고 비난을 퍼붓는 거야.”
“그럼 형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정말 어려운 질문이야. 신산경표의 의도는 참신하고 고려할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봐. 하지만 우리의 잣대로 산경표를 보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해. 분명 우리 선조는 산줄기를 등산을 하기 위한 능선 산행의 편의성을 위해서 그어 놓은 것이 아니거든. 10대 강을 위주로 생활권을 크게 구분하고 있는 것, 그것을 파악했던 것이지. 산줄기의 끝이 강의 크기나 길이 등에 관계없이 부, 목, 군, 현의 치소(治所)로 향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걸 알 수 있어. 그러니 산경표는 그냥 산경표야. 산경표는 산경표 대로 그대로 놔두고 거기에 우리 현대인의 생각을 가미하고 변형시키는 게 어떨까 싶어. 이럴 때 분명히 용어의 정립이 필요할 거야. 신산경표에서 정맥을 합치고 없애고, 대간의 무명줄기도 정맥에 편입시키는 등 변형을 줬거든. 난 이런 점이 불만이야. 가령 예전에 대동금남정맥, 금남기맥, 금강기맥, 만경지맥 등으로 불리던 줄기는 금남정맥에 상대되는 개념이었어. 산자분수령의 개념에 조금이라도 근접시키려는 시도였지. 그걸 굳이 금강정맥으로 바꾸고 산경표의 정맥을 기맥으로 격하시킬 필요까지 있었겠냐는 거지. 그냥 금남정맥에 대한 개념으로 금남기맥이라 하면서 ‘이 금남기맥이 산자분수령의 원칙에 충실한 줄기’라는 부연 설명만 해주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야. 다른 줄기도 그렇게 보자는 것이지. 가령 이 신백두대간만 해도 그래. 굳이 ‘백두대간’이라는 개념을 포함시킨 다음 ‘백두산~노량’이라고 구간을 설정해놓으면 천왕봉이 애매해지잖아. 물론 영신봉이나 천왕봉이 다 지리산이니 ‘백두산~지리산~노량’으로 봐야 하고 지리산 안에 천왕봉이 있으니 무슨 문제가 있겠느냐 할 수도 있겠고 우리도 그렇게 인식하고 대간길을 걸을 수도 있어. 하지만 그렇게 하면 웅석지맥이 문제가 된다니까. 대간 거리의 확정도 문제가 되고. 우리나라 산줄기의 큰 특징이자 자랑이 뭐야? 나라의 산줄기의 길이를 확실히 파악할 수 있다는 거 아니야?”
한편 산줄기에 관한 한 우리보다 일찍 일제의 잔재를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는 북한은 백두대간을 ‘백두대산줄기’라 이름하였다. 그러고는 그 줄기의 끝을 여기서 우측으로 돌려 삼신봉(1289m)에 이른 다음 거기서 다시 우측으로 돌려 구재봉(773.7m)에서 마치게 그렸다.
낙남정맥 때문에 나온 고육지책이다. 이 점에서 이중환의 택리지는 낙남정맥을 몰랐었다. 아니 이런 문제 때문에 낙남정맥을 억지로 무시했는지도 모르겠다. 이중환이 보통 사람인가!
어쨌든 여기서는 그저 간단하게 이곳이 낙남정맥이 갈리는 영신봉이라는 것을 알아두자. 또한 낙남정맥은 우리나라 산줄기의 족보인 산경표에 나오는 우리나라 1대간 1정간 13정맥 중 하나의 정맥으로, 글자 그대로 낙동강 남쪽을 받쳐주는 정맥이라는 것만 알아두자.
한편 영신봉을 넘어 긴 나무계단(175계단)을 조심스레 내려가면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는 선비샘을 지나게 된다. 군사 도로의 옛 흔적이 사라지고 점차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되고 있는 등로를 따르다 보면 이내 벽소령대피소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달은 파랗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벽소령(碧宵嶺)에서 하룻밤 쉬어가는 건 어떨까? 물론 인터넷으로 사전 예약을 하고서야 묵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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