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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금남정맥/호남금남의 지맥

천황(만행)지맥 3구간(계동마을~노적봉~풍악산~응봉~비홍재)

천황산(봉)은 만행산의 한 봉우리

 

오늘 걷는 천황(만행)지맥이 개동지맥에서 천황지맥으로 바뀌게 된 경위와 천황지맥과 성수지맥과의 겹침 줄기가 성수지맥이 아닌 천황지맥에 편입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지난 번 글에서 이미 언급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구간을 지나면서 이 천황산이 천황산이라는 산이름보다는 만행산의 한 봉우리 즉 만행산의 몇 봉우리 중에서 최고봉인 천황봉에 불과하여 천황지맥이라는 이름을 갖기보다는 만행지맥이라고 명명하는 것이 옳지 않겠느냐 하는 개인적인 의견을 피력한 것도 지난 번 글이었습니다. 

옳고 그름과 타당하냐 아니냐는 문제는 나중에 산줄기가 공론화 될 즈음에 재론하여야 할 것이고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니 산행이나 열심히 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뒤에 언급하겠지만 천황봉은 만행산의 한 봉우리이고 이는 남원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취지의 자료를 보충해 보면.....

 

남원 시내 한 가운데에는 선원사라는 사찰이 있습니다.

짜장면 스님으로도 유명한 사찰인데...'만행산 선원사'라고 이름을 붙였다면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

전통사찰총서9, 선원사편, 100쪽을 들여다보면,

선원사)에 관한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해서 《범우고》·《가람고》·《용성지》 등의 문헌기록과 지금 절에 전하는 여러 현판을 참고할 수 있다. 그 가운데 옛 남원부의 읍지인 《용성지》에 보면 절에 관한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인다.
(선원사는) 남원부 동쪽으로 3리 되는 평야에 있다. 지금으로부터 1048년 전인 당나라 희종(僖宗) 건부 2, 신라 헌강왕 1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 전쟁으로 없어진 뒤 여러 차례 흥폐(興廢)를 거듭했다. 절에는 금불(金佛)이 하나 있다.

영조 31년에 남원부사인 김세평(金世平)이 중창했으며, 이 지방의 승려로 하여금 거주케 했다.
위의 기록을 통해 절은 875(헌강왕 1)에 도선국사가 창건했고, 1755(영조 31)에 김세평에 의해 중창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도선국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도선국사가 남원의 지형을 살피니 주산(主山)인 백공산, 곧 지금의 만행산의 지세가 객산(客山)인 교룡산에 비해 너무 허약하므로 교룡산과 같이 맞추어줄 필요가 있어 지세를 북돋고자 선원사를 비롯해서 대복사(大福寺)·만복사(萬福寺)를 창건했다는 말도 전한다. 선원사가 자리한 만행산은 실은 백공산으로서 만행산의 줄기에 불과한 데도 굳이 만행산이라 한 것은 만행산의 큰 힘을 빌어 지세를 붇독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렇군요.

 

천황산이라는 말 대신에 만행산이라는 산 이름이 나오고 남원 양씨로서 일제강점기에 만주에서 공부를 하였으며 광복 후 여순사건 등 격동기에 남원군청 행정계장과 김제군수 등 지방행정공무원으로 봉직하면서 지역발전에 헌신한 춘파 양창현 선생의 회고록에 의하면,

"남원시내의 주령(主嶺)으로 내려온 지점은 보절면 천황봉에서 시작하여 백공산이란 봉우리에 와서 시가지를 이루게 되었으며 백공산은 지금의 용성고등학교 뒤에 있는 산으로서 대단히 작은 언덕으로 되어 있다.

반면에 천황봉으로부터 율치를 거쳐 교룡산이 솟아 있으니 ....주산인 백공산에서 바라보았을 때 남원고을의 형국은 행주형(行舟形)이라고 한다.

이는 주생면과 금지면의 평평하고 완만한 지세를 너른 바다로 본 것이다.

주생면의 옛이름 주포방(周浦坊) 역시 지형이 두루 바닷가의 포구와 같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읍이 형성된 시가지가 요천과 축천으로 선명하게 구분되어 시가지를 조각배 형국으로 보고, 요천과 축천이 만나는 지점은 선박 갑판 머리로 생각한 것이었다. 축천은 일명 남원천으로 부르기도 한다.

옛 사람은 행주형국인 남원고을의 지세를 보완하기 위하여 여러 조치를 취했는데 우선 행주형국의 선박 모양의 갑판에 해당하는 장소에 선박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무거운 화물에 해당하는 산을 인공적으로 싣기도 하고 조그만 동산을 조성하여 지명을 조산(造山)으로 부르니 이가 오늘날의 행정구역인 조산동에 해당한다.

또한 선박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바닷가에 있는 높은 봉우리와 배를 연결하여 움직이지 못하도록 고정하였으니 배를 고정시킨 큰 산봉우리는 오늘날 금지면 방촌리 뒷산 고리봉 즉 환봉(環峰)이며, 배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거짓 제방을 쌓았으니 이것이 가방(假坊)이다."

위와 같이 천황산이라 하지 않고 천황봉이라고 하였으며,

지난 번에 만행산을 귀정사 사지를 인용하여,

원래 만행산 만행사라 되었는데 백제 때 한 고승의 설법에 취한 왕을 칭송하고자 산동방면 지명과 산 이름, 절 이름까지 바꿔 왕을 숭상하는 의미에서 천황봉이라 부르게 되었다.

따라서  산줄기 전체를 지칭할 때에는 '만행산'이라 표기하고, 만행산의 주봉인 산봉우리 하나만을 지칭할 때에는 '천황산'이 아닌 '천황봉'으로 표기하는 것이 山 〉峰인 개념에도 합당하다 할 것이니 '만행산 천황봉'으로 부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남원역에서 바라본 교룡산.

마치 고흥지맥을 할 때 본 벌교의 첨산 모양입니다.

 

팔공산은 요천의 발원지

 

어쨌든 이 천황(만행)지맥을 마무리하면서 이 지맥의 본류와 지맥이 마무리되는 두물머리를 살펴보면.... 

주지하다시피 이 천황(만행)지맥의 뿌리는 금남호남정맥입니다.

기억을 되살려 잠시 금남호남정맥으로 돌아가 보기로 하죠.

백두대간의 영취산에서 갈라진 줄기가 장안산으로 갈릴 때 그 틈새에서 나오는 물줄기는 백두대간이 벽이 되니 그 대간 줄기를 넘지 못하고 실개천들을 합류하여 백운천이 됩니다.

그리고 장안산을 지나 구간 쉼터로 활용했던 수분치는 그 자체로 이미 분수령이 되므로 빗물이 남쪽으로 흘러내리면 교동천이 되고 반면 그것이 북쪽으로 흘러가면 수분천이 되어 금강으로 합류하게 됩니다.

정맥 줄기는 북서진 하면서 팔공산을 빚고는 계속 북진을 하게 되는데 이 정맥 줄기가 팔공산에 이르러 서진하는 줄기 하나를 내어놓게 되는 바, 이 줄기가 바로 천황(만행)지맥임은 이미 살펴 보았고 또 그 길을 걸었습니다.

당연히 이 팔공산과 천황(만행)지맥에서 갈라지는 틈에서는 이름도 아름다운 요천(寥川)이 흘러나와 흐르면서 교동천을 받아들이고 다시 더 진행하다 백운천과 합류하게 됩니다.

그러고는 남원시 금지면 하도리 두물머리에서 호남정맥과의 갈림봉인 주화산에서 흘러나온 섬진강을 만나면서 요천이라는 이름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팔공산에서 분기한 천황(만행)지맥이라는 산줄기도 요천이 생명을 다하는 그 곳 두물머리에서 그 맥이 잠기게 되고...

그러니 요천의 발원지가 장안산이라는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의 기록이나 백운산이라는 두산백과사전의 기록 등은 다 믿을 것이 못 됩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것을 쓴 분들의 지식은 '산자분수령'이라는 개념보다는 산맥 개념에 꼭꼭 박혀 있으니 다른 것들을 생각할 여지가 그리 많지 않아서였을 것입니다.

 

성수지맥과의 겹침줄기 문제

 

이렇듯 팔공산에서 분기한 지맥의 주(主)줄기는 요천과 섬진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에서 맥을 다 하는 줄기이어야 하고 곧 이 주줄기는 당연히 겹침 줄기를 가지게(소유) 되므로, 이 천황(만행)지맥이 길이의 장단에 관계없이 성수지맥을 제치고 그 겹침줄기를 자신의 몫으로 가지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의 팁.

천황지맥에서 성수지맥이 분기하는 마령재와의 틈에서 나오는 물줄기도 당연히 있는 바, 그 물줄기는 오수천이 되고 그 오수천이 섬진강과 만나는 지점에서 성수지맥이 그 맥을 다하여야 함은 지극히 당연스런 결과가 되기도 합니다.

 

땜빵 산행

 

최근 들어 많이 좋아지시긴 했어도 그래도 여전한 노모의 건강 문제로 '백두사랑산악회'에서 진행하는 지맥 산행에 본의 아니게 많이 빠지게 되었습니다.

하는 수없이 또 혼자서 땜방을 하긴 하여야 하겠는데 교통 편의 등 여러가지가 걸립니다.

그러던 차에 '산악랜드'에서 천황지맥을 진행하고 있음을 기억해 냅니다.

이미 회원 가입은 해놓은 곳이어서 자료를 뒤적거려 보니 산악랜드에서는 5구간으로 이 지맥을 진행을 하는데 제가 아직 진행하지 못한 754번 도로(개동고개)~두물머리 구간을 두 구간으로 나누어서 진행하고 있군요.

그런데 754번 도로~비홍치 구간은 이미 진행을 하였고 마지막 구간으로 비홍치~상귀마을(두물머리) 구간만 남겨 놓았습니다.

산악랜드에서 진행하는 마지막 구간만을 떼어내어 한다는 것은 나중에 또 땜빵을 하여야 한다는 것에 다름 아니니 별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먼저 내려가서 한 구간을 하고 내려오는 팀들과 합류하는 방법은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봄, 가을이라면 괜찮을 법도 하건만 지금은 산행하기 최악의 계절인 여름에서도 한여름입니다.

거리야 27km 정도이니 가능은 할 것 같은데....

일단 첫 구간의 산행 시간을 5시간 반 정도로 잡고 구간 들머리 산행을 4시 반 정도에 시작하면 대원들을 태운 버스가 10시 정도에 비홍치에 도착한다고 보고 그 시간 경에 그 분들과 합류하는 방안을 생각해 봅니다.

그 때 물 4통 정도를 다시 보충하고 대원 후미만 따라가면 되지 않겠느냐 하는 .....

산악랜드 총무님께 전화를 드리고 아울러 얼음물 등의 부탁의 말씀도 드립니다.

그러고는 남원행 기차표도 예매를 하고....

2015. 7. 31. 남원역에 도착하여 녹주찜질방으로 갑니다.

시설은 오래되어 노후화 된 것 같은데 하룻밤 신세를 지기에는 그다지 불편해 보이지 않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김밥천국이 있다는 시외터미널을 향하여 걸어가다 만행산 선원사를 지나게 되고 식당에서 밥을 먹고 김밥 두 줄을 챙겨 택시를 타고 교동마을로 향합니다.

남원 시내에서 바라본 달입니다.

어제가 유두절이니 오늘이 음력으로는 6. 17,이군요.

blue moon.

서양에서는 달을 부정적인 의미로 보니까 blue 즉 우울한 달이라고 표현하고 양력으로 30일이나 31일에 뜨는 달을 이렇게 부르고 이는 3년만에 한 번씩 온다고 하는군요.

 

택시는 꼬불꼬불 길을 잘도 찾아 교동마을로 들어섭니다.

사실은 교동(수동)고개로 올라 남원시와 사매면의 시계를 따라 259.1봉을 지나 노적봉으로 올라야 하는데 교동마을을 이용하여 좀 더 쉽게 노적봉에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부산의 조은산 선배님 덕(?)이었습니다.

조은산 선배님은 2013. 11. 3. 이 구간을 진행하면서 교동마을을 통해 노적봉으로 오르는 쉬운 길을 개척(?)하셨는데 어차피 택시로 접근을 할 수 있는 지점이므로 저도 조은산선배님 뒤를 따라 가보기로 하였습니다. 

 

산 행 개 요 

1. 산행일시 : 2015. 08. 01. 토요일

2. 동행한 이 : 홀로

3. 산행 구간 : 계동마을~노적봉~풍악산~비홍재

4. 산행거리 : 12.65km (올해 누적 산행거리 : 563.61km)

 

  구 간

  거 리

출발시간

소요시간

비 고

계동마을

 

04:26

 

 

노 적 봉

 2.09km

 05:32

66

풍 악 산

 2.96

06:47

75

응 봉

1.93

07:44

57

15분 휴식

사 라 재

3.76

09:13

89

10분 휴식

비 홍 재

1.91

09:55

425

12.65km

05:29

05:04

실 소요시간

 

 

 

산 행 기 록

 

지도 #1

마을 끝자락에 있는 보안등(사매-066) 앞에 하차하여 복장을 정비합니다.

개소리도 들리지 않는 조용한 마을.

저수조 옆의 수렛길로 들어섭니다.

한동안 이 수렛길을 따라 가다가 지도 #1의 '가'지점에 이르러 묘지가 두 방향으로 나뉘는 데 여기서 길이 없어집니다.

분명 낮이면 쉽게 찾을 수 있었을텐데...

왔다갔다를 몇 번이나 하다가 하는 수 없이 대강 숲을 뚫고 진행하기로 합니다.

5분 여를 방황(?)한 보람도 없이 숲 안으로 들어서자 그 길은 나뭇가지로 위장(?)이 된 길이어서 여름이 아닌 계절이나 적어도 낮에만 왔었어도 쉽게 찾을 수 있을 정도의 길이어서 조금은 허탈해집니다.

조금 더 치고 올라가니 지도 #1의 '나'의 콘크리트 포장길이 나오고 여기서 좌틀하면 이내 다시 흙길로 진행이 되는데 이 시간에 찻소리가 시끄럽게 들립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 아래로 사매1터널이 지나고 있는데 그 차들이 터널 안으로 진입하면서 나는 소리로군요.

지도 #1의 '다'에 이르러 마루금과 합류하게 됩니다.

이제부터 남원시를 만나 사매면과 대산면의 면계를 걷게 되는데 길이 없습니다.

우측으로 적당한 길을 치고 올라갑니다.

입구에 표지띠 하나 없으니...

흔적을 따라 조금 올라가다 보니 홀대모의 모임을 처음 주창하신 '구름나그네'님을 만나게 됩니다.

땅에서는 습한 기운이 올라오고...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땀투성이 입니다.

그러고는 지도 #1의 '라'의 곳에 이르러 한숨을 돌립니다.

450고지 정도는 올라왔으니 이제 조금은 쉬엄쉬엄 진행해도 될 것 같습니다.

이윽고 삼각점(남원21)이 나타나고,

정상석이 있는 노적봉입니다.

여기서 순창군 동계면을 만나게 되니 이제부터는 순창군과 남원시의 시계를 따라 진행하게 됩니다.

백두사랑에서 멋진 산패를 만들어 걸어 놓았습니다.

대원들이 십시일반(一飯)으로 미의(微意)를 모아 지맥 산행을 함에 있어 뜻 있는 일을 하자는 데 의견이 모아져 벌이는 행사입니다.

자료는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 나오는 산, 봉우리 이름과 표고를 기준으로 하였으니 준희선생님의 그것과 더불어 후답자들에게 귀중한 정보를 제공하여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는군요.

좌틀하여 헬기장을 가로질러 숲으로 들어가는데,

보시다시피 농무(濃霧)로 진행이 방해를 받을 정도입니다.

사실 그게 아니더라도 지도 #1의 '마'의 곳은 만연히 진행하다가는 순창의 수정제 방향으로 떨어지기 십상입니다.

다시 되돌아 나와 우측을 주시하는데 표지띠도 제대로 걸려 있지 않아 찾기 어려운 곳입니다.

마루금 남진 방향에서 보면 좌틀하는 길입니다.

푸석거리는 된비알을 조심스럽게 내려오면 잡목 숲을 지나게 되고 이제부터는 사실 거미줄과의 전쟁입니다.

오늘 산행 내내 이 거미줄때문에 진행에 지장을 받을 정도이니 너무도 성가시다는 생각 밖에....

선답자의 산행기에서도 보긴 했지만 이런 지맥길에 이런 나무데크가....

호사스러움을 느끼게 될 정도입니다.

 

지도 #2

지도로 볼 때에는 여기 부근이 신치인데 고개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곳입니다.

오히려 2분 정도 더 진행하면 나오는 고개.

바로 이곳이 신치이겠죠.

남원 행곡제와 순창의 내촌제를 연결해 주는 고개.

숲으로 해가 들면서 박무와 교묘하게 조화를 이루는군요.

음...

멋진 숲속의 아침입니다.

그러나 산행은 거미줄 때문에 여간 고역이 아닙니다.

이 방향에서 보면 순천~완주간 고속도로니 교룡산(518.6m) 너머 남원시내가 눈에 들어올 법도 하건만 지금 사정은 이렇습니다. 

...................

4군데 정도에 이 나무데크가 설치된 것 같습니다.

아침부터 찌기 시작하니 물을 먹는 횟수가 많아지고 거기에 더하여 거미줄 때문에 수건으로 안면을 가리니 더 숨이 가빠집니다.

풍악산 0.3km....

금강산의 가을 이름이 풍악산이니 여기서 보는 가을의 정취는 그 정도에 이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 같은데....

백두사랑에서 걸어 놓은 산패에 재 표지띠 하나를 기대봅니다.

그런데 아깝게도 풍악산에서 보는 무이지맥 방향은 고작 이렇습니다.

조망만 허락된다면 무이지맥을 넘어 호남정맥의 내장산까지도 보이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를 했었는데....

좌측의 응봉 정도와 문덕봉 일대를 맛만 봅니다.

바위에 앉아 간식을 먹으면서 잠시 바람을 쐽니다.

10분 정도 쉬었다 다시 일어납니다.

삼거리를 지나,

간벌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진 곳을 지나지만 여기도 안심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 놈의 거미XX...

아무리 지들도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지만 여기는 좀 심합니다.

577.2봉을 지나면서 좌틀함에 주의합니다.

부드럽게 직진하는 길이 마루금보다 훨씬 선명하기 때문입니다.

천지사방에 널려 있는 거미줄....

521.9봉을 지나고는,

 

지도 #3

그만 지도 상의 응봉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저 밋밋하게 봉우리라고 인식하지 못할 정도의 그것이었나 봅니다.

오히려 지도 #3의 '바'의 이 헬기장이 있는 곳이 응봉처럼 느껴질 정도이니...

이정표에 나와 있는 응봉 표시는 믿을 바가 못 되고....

응봉 헬기장을 지나면서 이제는 밀림지대를 지나게 됩니다.

길도 희미하고 잡목을 헤치고 나가야 하는 곳도 많아지고...

486.8봉에 이르러 크게 우틀합니다.

고도를 한껏 낮추고....

오랜만에 조망이 트이는 곳으로 나오는데 아까부터 들리던 전기톱 소리의 실체가 밝혀집니다.

두 분이서 벌초를 하는 것 같지는 않고 우측 외령제로 내려가는 소로의 잡풀을 제거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듯하군요.

지도 #3의 '사'의 곳에 이르러 한 번 크게 좌틀하고,

다시 한 번 더 좌틀합니다.

이정표의 상의령은 상외령의 오기이고....

지도 #3의 '아'의 곳에 이르러 지금까지 함께한 순창군 동계면을 버리고 남원시 대산면을 만남에 따라 대산면과 대강면의 면계를 따라 걷게 됩니다.

비홍재에서 만날 대원들과의 시간때문에 10분 정도 푹 쉬다 일어 납니다.

좌틀합니다.

388봉에서 우틀하고,

안부를 지나 자작나무가 작은 군락지를 이룬 곳을 오릅니다.

여전히 거미줄은 사람을 성가시게 만들고...

지도에는 이 부근이 사라재라도 나와 있기는 한데 고개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곳입니다.

조금 더 진행하면 나오는 곳.

오히려 이곳이 사라재라는 느낌입니다.

고개로 떨어졌으니 다시 비홍재 방향으로 치고 올라갑니다.

 

지도 #4

지도 #4의 '차'의 곳에서 좌틀합니다.

비홍재는 거의 다 와가는데 10시까지는 시간이 좀 많이 남아 있습니다.

우측으로 희미한 수렛길을 만나고.....

그러고는 잡목이 정상부를 차지하고 있는 322.6봉은 좌측의 수렛길을 따라 진행합니다.

아주 여유 있는 길입니다.

다시 안부로 떨어져...

저 큰 구덩이는 누구의 집인가?

작업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녀석의 작업에 방해를 준 것은 아닌지....

마지막 이정표 같습니다.

03.km 남았다고 하는.....

묘지가 있는 큰 길로 나오니,

바로 24번 도로가 눈에 들어옵니다.

비홍재라는 큰 교통표지판도 보이고.....

이 비홍재(飛鴻峙)는 다음에 진행한 그럭재와 연결이 되는 이름입니다.

그럭재는 기러기에서 유래한 이름이고 이 비홍의 鴻은 큰기러기라는 뜻이니....

10시에 맞춰 정확하게 내려왔습니다.

배낭을 내려놓고 '산악랜드' 총무님께 전화를 하니 서울에서 휴가차량들로 인해 차가 막혀 이제 논산휴게소라고 하는군요.

휴게소에서 쉬고 여기까지 오려면 11시 정도에나 도착할 것 같습니다.

그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냥 산으로 올라갈 경우 보급 받으려 했던 얼음물과 먹고 올라가려 했던 떡이 문제입니다.

아무래도 산악랜드와는 다음 주 안일지맥을 할 때 같이 하기로 하고 오늘은 더위와 제 체력 문제때문에 그냥 올라가겠다고 말씀드립니다.

하는 수 없이 남원콜택시로 전화를 걸으니 10분 만에 도착을 하는군요.

남원 시내로 들어가 목욕탕에서 땀을 씻고 KTX 때문에 철로를 새로 놓아서 옮긴 남원역 신역사로 가서 기차를 타고 귀경을 합니다.

참 교통 좋아졌습니다.

광명역에 내려서 마을 버스를 타고 집에 오니 2시가 채 안 됐습니다.

조금 전에 땀을 삘삘 흘리면서 산행을 했고 11시 25분까지 남원에 있었는데 벌써 집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