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해밀산악회에서 한남금북정맥 4구간인 대안리 고개 ~ 추정맥까지의 약 14km를 진행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땜빵 형식으로 놀면서 거닐었던 기억이 있는 곳입니다.
산행기는 그 날(2013. 2. 28.)의 것으로 갈음하기로 합니다.
그렇다고 놀 수는 없는 법!
오늘은 지맥 얘기나 하겠습니다.
오늘 구간 중 두 개의 지맥을 만나게 되니까 어차피 나중에 진행할 지맥이라면 이참에 맛이라도 보고 가자는 취지입니다.
주지하다시피 지맥에는 두 가지 개념이 있습니다.
지맥의 두 가지 뜻
하나는 우리 조상들이 쓰던 산맥山脈에 대對한 개념인 지맥支脈이고, 다른 하나는 대간이나 정맥의 하위 개념인 지맥枝脈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원래 산줄기 자체를 산맥으로 보았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원래 산줄기 체계 속의 산맥은 1903년 고토 분지로가 '조선산맥론'이라는 자신의 논문에서 도용盜用한 산맥 개념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입니다.
저는 일찍이 이 둘을 분리하여 우리의 산맥을 '산줄기'로, 고토분지로의 산맥은 '교과서 산맥'으로 구분하여 부르고 있습니다.
태백산맥은 이렇게 만들어진 거야!
1902년 8월. 조선 답사를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온 고토는 답사자료를 정리하기 시작한다. 이미 산맥이라는 개념을 도용하기로 작정을 했으니 그의 논문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는 우리나라 산줄기를 일단 36개로 토막 냈다. 그러고는 산맥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백두대간은 아예 조각조각 자르고 분해하듯 오렸다. 백두산에서 흘러내리는 산맥은 아예 ‘백두’라는 이름을 빼버리고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마천령’이라는 고개 이름을 빌렸다. ‘마천령산맥’이 되었다. 낭림산맥과 태백산맥은 아예 고리를 끊어 버렸다.
조선인들은 서양 지질학을 공부한 적이 없으니 구조선(構造線)이라는 말을 알 리 만무했다. 구조선은 단순하게 땅속의 지질구조를 기준으로 분류한 것이다. 서양 지질학을 공부한 지질학자 고토는 이 구조선이 산과 산의 이음인 산맥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산맥이라는 개념을 도용했으니 그 개념을 구조선이라는 말로 번역하는 것도 별로 부담이 가질 않았다. 구조선(構造線)은 조선말로만 쓰면 그대로 구조선(舊朝鮮) 아니던가! 이미 망해가는 나라. 그래 너희들은 곧 대일본제국의 속국이 될 것이다. 구조선(舊朝鮮)은 일본이 되고 산맥(山脈)은 구조선(構造線)이 될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이야기했다시피 고토는 이미 조선 민족에게 산지 체계에 대해서 혼란을 주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즉 고토는 이런 이유로 이 지질구조선을 나타내는 데 조선의 전통 산지체계인 산맥을 도입한 것이다. 서양 학자들이 조선의 지리서를 알 수 있는 방법 즉 견제 세력이 없으니 고토의 이 계획은 자연스럽게 진행됐다.
그는 작심한 대로 백두대간 아니 조선산맥을 마천령산맥, 묘향산맥, 낭림산맥, 태백연맥, 소백연맥으로 동강냈다. 그러고는 태백연맥과 소백연맥은 각 4개의 산맥으로 또 토막 냈다. 그러다보니 바둑판같은 모양도 나왔고 강을 지나는 산맥도 생겼다. 우리 산맥체계라면 모름지기 산맥은 강을 건너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그런 건 고토의 안중에는 없었다.
“너희 무식한 것들은 지형의 생성과정을 몰라서 그래! 너희들이 선행하천(先行河川) 같은 것을 알기나 해!”
묻는 사람도 없었지만 그냥 이렇게 치부해버리면 그뿐이었다. 산맥이라는 개념을 일본이나 중국에서 어떻게 사용했든 상관없었다. 그 산맥이 조선의 고유개념이든 같은 한자어 문화권인 중국에서 사용하던 개념이든 아니든 고토는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그가 관심 있는 것은 오로지 조선의 산맥을 동강 내어 그들의 혼을 끊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여 조선을 식민지화 하는데 자신의 역할만 잘 수행하면 되었다. 그것은 조선의 지질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광물자원을 수탈할 수 있게끔 보고서만 잘 쓰면 되는 것이었다. 학문적인 명예는 자연스럽게 뒤따라오리라 믿었다.
그렇게 하려면 조선 지도에서 백두산, 백두대간의 ‘백두’라는 말을 아예 없애버려야 했다. 그런 작업의 결과물인 고토의 ‘조선산맥론’은 우리나라 산맥 분류의 효시가 되었고 산맥 체계와 명칭 확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바로 식민지 교육의 여파다.
사실 그가 독일에서 공부를 할 때 많은 혼동을 느꼈다. 영어의 mountain ranges 혹은 mountains라고 부른 것을 어떻게 번역하여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1884년 귀국을 하고 조선팔역지를 보면서 그런 고민을 다 털 수 있었다. 그는 mountain ranges 혹은 mountains를 산맥이라고 번역을 한다. 이 단어들을 옮기는데 ‘산맥’이라는 단어보다 더 적절한 단어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고토는 그의 논문의 지질구조선이라는 개념에 산맥을 도입하고 그러고는 여기에 ‘산‘이나 ’고개‘ 이름을 더하여 고유명사화 한다. 그러고는 ‘조선의 지체구조도’(1903년)라는 산맥도를 만들기에 이른다. 그런데 이미 대동여지도까지 본 그는 산맥 본연의 뜻을 다 숨기지는 못했다. 즉 그는 자신의 논문에 그렇게 쓰지 않았던가! 조선의 모든 산맥은 다 하나로 이어졌다고. 그도 처음에는 산맥을 산줄기로 본 것이었다. 그런 산줄기를 그는 마치 자신이 산맥이라는 개념을 만든 것처럼 포장하였던 것이다.
mountain ranges 혹은 mountains가 산맥이 되다.
이렇게 ‘조선의 지체구조도’를 만듦은 곧 조선민족이 강과 더불어 터 잡고 생활하고 있던 산 즉 산줄기인 산맥을 땅속으로 집어넣는 순간이 되었다. 고토는 속으로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중얼거렸을 것이다.
“앞으로 조선인들은 산맥과 지질구조선을 혼동하여 산맥 ≠ 산줄기이고, 지질구조선 = 산맥으로 혼동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 머릿속에는 백두산 그리고 백두대간이라는 이름은 없어지고 대신 태백산맥이니 마천령산맥이니 하는 산맥 이름만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이는 그 후손들의 교육도 그렇게 되리라!”
고토가 노린 것이었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노리고 있었던 것은 조선 사람들의 혼을 뺏는 것 즉 백두산과 백두대간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라고 보았다. 고토의 이 작업에 이어 이번에는 야쓰쇼에이(矢津昌永)가 바통을 이어 받는다. 그는 ‘한국지리’에서 고토의 산맥 체계를 조금 더 단순화하였으나 결국 고토의 조선산맥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이때 고토는 조선 땅을 답사하면서 기록한 도읍, 산, 강, 고개, 등의 지명을 명확하게 하기 위하여 한글 순서에 맞게 로마자와 함께 표기한 사전을 발간한다. 이 작업이 ‘조선산맥론’의 설명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전초 작업임은 당연하다. 고토는 이 일에 동경제국대학 강사이자 문학박사인 가네자와(金澤壓三郞)를 동참시킨다. 그 결과 1903년에 발간한 조선지명사전이 바로 ‘로마자 색인 조선지명자휘(羅馬字索引朝鮮地名字彙)’다.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178쪽
그러나 우리는 학교에서 교과서를 통하여 배운 이른바 '교과서 산맥' 체계로 인해 아직도 우리 전통 산줄기 쳬계가 낯설게 느껴지고 있는 것만큼은 사실일 것입니다.
식민교육의 여파입니다.
한편 IMF 구제금융 사건으로 인해 많은 지식인들이 직장을 떠나 산으로 몰려들게 됩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보편적 산행 방식인 명산 혹은 종주 산행에 일대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합니다.
바로 1980년 이우형 님이 발견한 '조선광문회'본 '산경표'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발견發見'이라는 이 사실행위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고자 합니다.
다시 말해서 1910년 육당이 조선광문회를 설립하여 택리지에 이어 이 산경표를 영인본(자세히는 인쇄본)으로 출간하였다는 그 작업이 기울어가는 암울한 시대의 최대 사업이었습니다.
이어 이 책을 다른 사람도 아닌 이우형이라는 지도쟁이의 손에 들어간 그 자체가 대한민국 수립 후 산줄기 역사 이래 제일의 대사건이었습니다.
역사에 가정이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육당이 없었더라면, 이우형 선생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아직도 산맥이라는 이름을 외우며 '태백산맥 종주'니 '광주산맥' 종주니 하는 어설픈 산행을 하고 있을 것 아니겠습니까?
산경표 사람들....
우리 실생활에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교과서 산맥'에서 탈피하여 산경표를 우리 생활 안으로 끌어드린 분들이 등장합니다.
이우형 선생에 이어 박용수, 조석필, 현진상, 장성규, 박성태 같은 이들이 그들입니다.
저는 이중환, 신경준, 김정호 등을 산경표 1세대라고 부를 수 있다면 이분들을 산경표 2세대로 분류하자고 합니다.
이른바 '신산경표 세대'라 부르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분들은 민간인이면서 인문지리학자보다 더 열심히 활발한 연구 활동을 하여 우리나라 산줄기史에 큰 획을 그은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조석필 선생은 그의 명저 '태백산맥은 없다'로 산악인은 물론 지리학자들에게까지 커다란 경종을 울렸습니다.
이런 움직임이 2009년 개정교육과정 때에는 부족하나마 '조상들의 국토관'이라는 소제목으로 산경표가 교과서에 소개되는 정도의 변화를 가져오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박성태 선생은 일반인으로서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작업을 통해 2004. 8. 25. '신산경표'라는 책자를 발간합니다.
우리나라 산줄기史에 큰 족적을 남기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고는 2010. 7. 2. 북한의 산줄기까지 포함하여 지맥을 확, 보충하여 위 책 '개정증보판'을 다시 내놓게 됩니다.
그렇게 정리한 것들이 남한의 경우 1대간 7정맥 6기맥 157지맥(후에 5개 보충하여 162지맥으로 확정)입니다.
이때는 '백두대간이라는 개념이 한 맥주회사의 '카피'로 일반인들에게도 어느 정도 알려지기 시작하였고 '백두대간 보전법(약칭)'도 발효가 되어 우리 산줄기에 더욱 관심이 쏠리게 되기 시작하던 시기였습니다.
박성태 선생님의 생각과는 별개로 저는 신산경표를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박성태 신산경표를 만들다.
산경표는 온전하게 우리나라의 산줄기를 정확하게 보여주는가? 그리고 그것을 지금의 눈으로 해석을 해도 전혀 흠이 없는 완벽한 것인가? 혹은 현대적으로 해석할 때 그 당시와는 조금 다른 면이 있지는 않은가?
뒤에 보겠지만 이 산경표가 우리 생활에 끼친 영향은 참으로 컸다. 환경문제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찾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산경표를 제작한 시대와 지금은 많이 변했다. 하긴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하물며 20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는데 말해야 뭐하겠는가.
사실 산경표가 갖는 한계는 시대적인 상황에 비춰볼 때 편찬 당시에 이미 존재했다. 신경준이 쓴 ‘동국문헌비고’의 ‘여지고’ ‘산천총설1’의 우리나라 12종산의 제1산을 보면 백두산에 앞서 삼각산이 나와 있다. 또한 ‘산수고’의 ‘산경’에도 제1산은 ‘삼각산’이다. 이게 무엇을 뜻하는가? 당연히 code 1 즉 임금이 있는 도성 한양의 진산이 먼저 나와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니겠는가. 당시 정치, 문화 등 모든 걸 장악하고 있던 유학의 영향이다.
그러니 한북정맥은 한강이 서해와 만나는 두물머리에서 마쳐야 함에도 삼각산을 지나야 했기에 부득이 장명산에서 끝나는 것으로 매조지 했다. 그렇게 본다면 금북정맥의 끝이 계룡산을 지나 백제의 수도였던 공주를 지나 부여로 가는 것도 이해가 간다.
어쨌든 이는 현대식 지리개념과는 차이가 있다. 더욱이 대동여지도의 정맥 줄기와도 차이가 나는 부분이 있다. 즉 해서정맥의 끝이 장산곶으로 가는 게 아니고 대동강 남쪽으로 가야하는 것이나 금북정맥의 끝이 군산으로 향해야 한다는 것, 호남정맥의 끝이 바다와 섬진강의 합수점으로 가야 하는 것 등이 그 예다.
물론 대동여지도 같은 고지도에 나오는 지명을 지금 지도에 대입하여 하나하나 꿰맞추는 데는 사실 무리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일단 그때의 그 상황과 지금의 상황을 지도 제작 취지에 맞춰 최대한 근접하게 작업을 하여 새로운 산경도를 그린다면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박성태 선생은 이렇게 산경표라는 지리서를 오늘날의 현실에 맞게 재해석한다. 산줄기 주행의 오류를 시정하고 겹침줄기 문제점을 해소한다. 그러고는 나아가 그 하위개념인 기맥과 지맥을 확립하고는 거기에 걸맞은 이름을 부여하기에 이른다. 이는 세인들로 하여금 어느 정도 통일된 산줄기 이름을 부르게 할 수 있게끔 한 것이다. 필자는 선생의 이 작업은 실로 위대한 것이어서 우리나라 산줄기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고 본다.
“그래? 그 정도야? 그런데 신산경표는 나름대로 비판을 받기도 하는 것 같던데?”
“누구나 어느 정도의 비판은 받는 거 아니겠냐. 자기 견해랑 맞지 않는다면 말이야. 하지만 우리나라 산줄기 문화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up-grade 시킨 것만큼은 확실해. 물론 불경스럽게도 신성한 경전(?)인 산경표를 건드렸다는 주장은 경청할 만 하지. 특히 신백두대간을 만들어 백두대간을 건드렸다는 것에 대해서는 더 불만의 목소리가 크지. 그리고 단시간 내에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지 않고 혼자 일일이 작업을 하다 보니 독단으로 흘렀다는 점도 간과할 수는 없어.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과(過)보다 공(功)이 훨씬 더 크다고 생각해”
“하나하나 살펴줘. 무슨 얘긴지 모르겠어.”
신산경표의 특장(特長)
①산줄기 주행의 오류 시정
우선 가정(假定)이 필요하다. 이하 산경표와 신산경표에 나오는 지명들은 현재의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 나오는 그것들과 최대한 일치하게끔 표기된 것이라 인정하기로 한다. 산경표는 원칙적으로 지형적 원리에 따라 선을 그으면서 10대강을 구획하는 산줄기를 ‘큰 산줄기’로 삼았고 신산경표 역시 이 원칙을 따랐음은 물론이다.
즉 정맥은 10대강을 구획하여야 한다. 한편 산경표가 위에서 본 것과 같이 당시의 유교적인 사고방식으로 인하여 정맥의 주행이 도읍지 혹은 도성을 지나는 형식으로 그어졌다. 신산경표는 그것을 자연스럽게 그 하구로 주행하게끔 유도한 것이다. 이로써 가령 한북정맥과 한남정맥은 한강 하구로 가게 되었고, 호서정맥과 금강정맥은 금강 하구로, 호남정맥은 섬진강 하구로 그리고 낙동정맥과 낙남정맥 등은 낙동강으로 가게 되었다.
이는 북한 쪽의 관북정맥이나 해서정맥도 마찬가지이다. 이에 맞춰 그 이름에도 변화를 주어 금남정맥은 금강하구로 주행을 하므로 산경표와 구분하기 위하여 금강정맥으로, 금북정맥의 경우에는 호서정맥 등으로 그 이름도 현실에 맞게 변화를 줬다.
여기서 주의하여야 할 것은 산경표에서 보이지 않던 이름들이 보인다는 것이다. 호서정맥이니 관북정맥, 관서정맥, 금강정맥 등이 그것이다. 이 이름을 바꾸고 정맥의 주행을 이동시키는 것들이 산경표 신도(?)들의 노여움을 사서 비판의 대상이 된 것이다.
②겹침줄기 문제의 해소
사실 신산경표의 최대 특장(特長)이라고 한다면 기술한 바와 같이 모든 정맥들의 끝을 10대강의 하구로 진행케 한 것이다. 이것은 산자분수령의 원칙에 부합한 것임은 틀림없다. 그에 더하여 한남금북정맥이나 무명으로 있던 겹침줄기들의 문제도 해소하면서 그에 따라 명칭도 확정한 것에 있다 할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청천강이나 예성강은 백두대간에서 발원하는 10대강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하여 산경표에서는 이를 한남금북정맥이나 금남호남정맥 같이 독립된 정맥 이름을 부여함이 없이 그냥 무명(無名) 즉 이름이 없는 줄기로 남겨두었다고 신산경표는 추정하고 있다.
이런 불합리한 점을 신산경표는 청천강 쪽은 더 긴 쪽인 청북정맥 쪽으로 붙여 그 끝은 압록강 하구로 가게 하면서 그 이름은 기존의 청북정맥과 구분하기 위하여 그 지역의 이름을 따서 관서정맥으로, 짧은 쪽인 청남정맥은 대동강 하구로 향하게 하고 그 이름은 청천정맥으로 변화를 꾀했다.
여기서 몇 개의 문제점이 발견된다. 우선 관서정맥의 경우 이 이름은 타당한 것이어서 만약 청북정맥을 고수하려 했다면 그 줄기의 끝은 청천강 북쪽으로 향해야 했을 것이다. 문제는 청천정맥에 있다. 청천정맥은 청천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음에도 대동강으로 향했다. 이 줄기는 청천강을 싸고 있는 줄기이므로 당연히 청천강 남쪽으로 가야했고 그 이름은 당연히 지금같이 청천정맥으로 했으면 아무런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가설이지만 신산경표의 이 청천정맥은 대동강으로 갔으므로 아예 대동정맥으로 했어야 하지 않을까?
필자의 이 주장은 해서정맥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즉 해서정맥은 대동강 남쪽으로 가면서 이름을 아예 대동정맥으로 고쳐야 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한다면 예성정맥은 예성강 하구로, 한북정맥은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곳으로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신산경표는 위 청천강 줄기와 마찬가지로 정리했다. 즉 두류산에서 갈라지는 줄기는 더 긴 쪽인 해서정맥에 그 겹침줄기 두류산~양지봉 분기점을 포함시켰다. 그러고는 그 줄기의 끝을 기존의 장산곶에서 대동강 하구로 향하게 하면서 다만 그 이름만은 해서정맥으로 그대로 두었다. 그러고 양지봉 분기점에서 남진하는 임진북예성남 정맥은 그 이름만 예성정맥으로 단순화하는 변화를 주었던 것이다.
이런 작업은 남쪽의 한남금북정맥이나 금남호남정맥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즉 위와 같은 절차를 거쳐 한남금북정맥은 금북정맥에 포함시키되 그 정맥의 끝을 금강으로 가게하고는 그 이름을 호서정맥으로 명명했다. 같은 방법으로 금남호남정맥의 경우에는 더 긴 쪽인 호남정맥에 편입시키고, 금남정맥은 그 끝을 역시 금강 하구로 주행을 변경시키면서 이름도 금강정맥으로 바꾸어 남한의 1대간 9정맥을 1대간 7정맥으로 변경 시키는 작업이 완성되었고 이것이 실제 신산경표의 핵심이라고 부를 만하다.
그리고 더욱 더 중요한 것은 이 원리들이 고스란히 그 하위 개념인 기맥이나 지맥에도 적용이 된다는 것이다.
③기맥(岐脈), 지맥(枝脈)의 정립
기맥이라는 용어는 실제 조석필 선생이 '태백산맥은 없다'에서 제안한 개념이었다. 그것을 선생이 적극 수용하여 신산경표에서 12기맥을 그 이름과 함께 제시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신산경표는 남한의 산줄기를 1대간 7정맥 6기맥 157지맥(최근에 162지맥으로 수정)으로 산줄기를 그었다. 이는 그만큼 우리나라의 산줄기 범위를 확장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기맥이나 지맥도 강의 세력에 따라 구분이 되었다. 겹침줄기가 있는 경우에는 그 줄기의 끝이 반도를 향하고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상위등급의 강을 따르는 줄기를 본줄기로 하였다. 그리고 동일등급에서는 긴산줄기를 본줄기로 하였음을 밝히고 있다(신산경표 32쪽).
④신백두대간의 설정
모두(冒頭)의 지리산 구간에서 밝힌 바 있다. 하물며 지맥이나 정맥도 합수점인 물을 만나 그 맥이 다하게 되는데 백두대간의 끝이 바다가 아닌 지리산 천왕봉이라는 데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그리고 백두대간의 끝을 돌려 노량으로 진행하게 한다. 즉 영신봉 ~ 천왕봉 구간을 영신봉 ~ 노량 구간으로 돌린 것이다. 산경표 교도들의 신산경표에 대한 저항이 극심하게 이는 부분이 바로 여기다. 이미 자세하게 보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신산경표의 치적은 통일이나 민간 차원 혹은 남북한 정부 차원에서의 교류 및 통일된 산줄기 논의에 대비하기 위하여 북한 쪽의 산줄기도 같은 방식으로 모두 정비하였다는 점에 있다 할 것이다.
이는 사실 우리나라 지리학자들이 그 누구도 이해하기 어려운 지질학 용어나 거들먹거리고 있을 때 실제 우리나라 지형을 연구하여 선을 긋고 이름까지 지어 세상에 내놓았다는 것은 사실 대단한 역작이다. 그런데 이렇게 훌륭한 신산경표가 모든 면에서 완벽하여 책 그대로 타당한 것인가? 즉 혹시 박성태 선생이 우려한 주줄기 문제, 산줄기의 주행 문제 그리고 이름 문제 등은 다 타당하여 맹목적으로 그대로 수용해도 괜찮은 것인가?
이에 대하여 산경표가 강을 중심으로 산줄기를 파악하였기 때문에 이는 정맥 이하의 산줄기도 고스란히 타당하여 산자분수령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유력한 주장이 있다. 이는 산줄기의 이름도 신산경표와는 달리 산경표의 취지에 맞춰 ‘강’이나 ‘천’ 이름을 따야한다는 이론이다. 대한산경표의 입장으로 ‘산으로’ 박흥섭이 정리한 개념이다. 타당한 주장으로 산자분수령의 취지에 부합한 새로운 책으로 세상에 태어나길 기대한다.
어쨌든 조석필 선생은 이전에 "산경표가 지리 인식의 원리를 충분히 제시해 주었고 우리는 그것만이라도 배워왔으면 족하다."고 하였다. 우리가 산경표를 더욱 깊게 연구하여 그 근본 취지를 제대로 배워야 하는 이유다.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503쪽 이하
그런데 이 산경표에서 제시한 산줄기를 따라 걷다보면 이상한 점들이 눈에 띄게 됩니다.
우선 가장 큰 게 백두대간에 대한 인식입니다.
영신봉 고찰 - 산경표를 알기 전과 알고 난 후.
지난 구간 얘기했듯이 영신봉은 여러 가지로 아주 중요한 곳이다. 우선 우리가 산경표를 알기 전, 후로 그 역할이 달라진다. 즉 우리가 산경표를 알기 전에는 영신봉 ~ 삼신봉 ~ 상불재로 이어지는 지리남부종주를 시작하던 곳이었다. 즉 예전에는 단순하게 지리 주릉에서 지리남부능선이 시작되는 곳이라 생각하고 걸었었다는 얘기다. 그것이 산경표를 알고 난 후에는 낙남정맥이 백두대간에서 갈리는 곳이 되었다.
다시 말해서 산경표를 몰랐던 예전 산꾼들은 지리산의 많은 능선을 성삼재 ~ 천왕봉을 주릉으로 하여 동서남북으로 능선을 그은 다음 거기에 맞는 이름을 붙여 중거리 종주 산행을 즐겼었다. 그중 이 영신봉이 지리남부종주의 시작점이라는 얘기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본다. 지난 번 잠시 이야기하였지만 영신봉 ~ 천왕봉 구간은 ‘산자분수령의 원칙’의 예외 구간이다. 아니 예외 구간이라기보다는 산자분수령의 원칙에 위배되는 구간이다. 산자분수령을 한 번 더 보자. 산자분수령을 관용구로 이해할 때 산줄기는 곧 분수령이 되므로 이 줄기 위로 비가 내리면 그 빗물의 어떤 것은 좌측 또 어떤 것은 우측으로 흐르기 마련임은 이미 얘기했다. 그러니 백두대간이 우리나라를 동서로 구분하는 줄기이므로 백두대간 위로 내리는 빗물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 말은 백두대간에서 갈라진 물들은 절대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말과 같다.
그런데 백두대간 중 영신봉 ~ 천왕봉 구간에 내리는 빗물은 그렇지가 못하다. 즉 이 구간의 대간길에 내린 빗물은 우측 즉 마천쪽으로 가면 임천을 만들고, 좌측 즉 시천쪽으로 가면 덕천강을 만들기는 한다. 하지만 이들은 이내 남강으로 합쳐져 낙동강으로 흡수된 다음 남해로 흘러들어가게 된다. 낙남정맥이 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백두대간에서 나뉜 물줄기는 절대 만날 수 없다는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다. 백두대간이라는 줄기가 남강이라는 작은 강 하나를 가르지 못하다니!
“무슨 얘기냐고? 생각해 봐. 백두대간이 뭐야? 우리나라를 동서로 양분하는 줄기잖아. 그러니 동쪽으로 가는 물줄기들은 낙동강이나 동해로 가게 되고 서쪽으로 가는 물줄기들은 서해나 남해로 가게 되잖아. 그런데 이 구간에 내리는 빗방울은 임천과 덕천강으로 각각 흘렀다가 다시 남강에서 만나게 되잖아. 그러고는 낙동강 ~ 남해로 가게 되는 거 아니야? 지난 구간 지도에서 확인해 봐.”
“그러네. 심각한 오류네.”
“산경표가 잘못 됐다고 여기게끔 됐잖아? 그래서 이것에 대한 반동으로 나온 게 박성태 선생의 신산경표야.”
박성태의 신산경표
누구든 쉽게 의심을 품고 회의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명색이 백두대간인데 남강 하나를 가르지 못하다니! 그래서 산경표의 이런 오류를 해결하고자 박성태 선생은 고민 끝에 신산경표를 발표한다. 신산경표는 천왕봉으로 가는 대간 줄기를 이 영신봉에 이르러 우측으로 돌린다. 그러고는 그 줄기를 남해안 노량까지 진행하게 한다. 그렇게 하고 보니 백두산 ~ 노고단 ~ 영신봉 ~ 노량으로 진행하는 줄기가 만들어진다. 박성태 선생은 그 줄기를 ‘신백두대간’이라 이름을 붙인다.
즉 좌측 지도의 백두산에서 내려와 노고단 ~ 영신봉 ~ 천왕봉으로 가던 줄기를 영신봉에서 우회전시켜 삼신봉을 거쳐 금오산 ~ 연대봉 ~ 노량으로 이어지게끔 마루금(빨간선)을 그렸다. 그렇게 한 신산경표에서는 이를 산경표의 백두대간에 대응하여 ‘신백두대간’으로 부르겠다는 것이다. 신산경표에서 신백두대간을 고안해 낸 이유는 무엇일까? 괜히 바꾸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신산경표는 그 취지를 “대간은 우리나라를 동서로 양분하는 줄기이므로 그 정신을 따르고자 했다.”고 설명한다.
필자는 이 말을,
⓵정맥도 10대강이 바다와 만나는 합수점으로 가는데 하물며 아버지 격인 대간이 바다도 아닌 산에서 맥을 다한다는 게 사리에 맞지 않다는 점.
⓶대간이 바다로 가야 백두대간이 온전하게 동서를 양분한다는 기본정신에 합당하게 될 것이라는 점.
등 때문이라고 이해한다.
그래서 신산경표에서는 대간의 끝을 ‘영신봉 ~ 천왕봉’에서 남해 방향으로 틀어 ‘영신봉 ~ 노량’으로 향하게 했고, 그 이름을 ‘신백두대간’이라 이름한 것이다. 그럼 끝난 것일까?
“그게 신백두대간이야? 그 방향으로 걸어보려는 사람들도 많겠네. 신선하군.”
“그런데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지.
첫째, 산경표 교도(?)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어. 신성불가침으로 여기고 있던 산경표에 감히 손을 댔다는 거지. 산경표는 산경표 대로 그대로 놔두고 정 필요하면 다른 이름을 붙이든지 해야지 왜 대간이라는 이름을 함부로 만들고 또 산경표의 정맥들을 멋대로 늘렸다 줄였다 하냐는 거야.
둘째, 그러면 영신봉 ~ 천왕봉 구간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이지. 신산경표에서는 천왕봉 ~ 웅석봉 ~ 백운산으로 진행하는 줄기를 ‘웅석지맥’으로 만들어 놓고는 그 분기점을 영신봉이 아닌 천왕봉으로 그대로 놔둔 것을 보고 하는 얘기인 거야. 이 점이 오히려 신산경표의 약점이 된 거지. 즉 이는 신산경표가 북한의 청북정맥이나 청남정맥 그리고 해서정맥이나 임진북예성남정맥에서 중간의 겹침줄기를 없애면서 이를 정맥에 포함시켰던 과감한 시도를 무색케 하는 결과가 돼 버렸어. 곧 천왕봉에 와서는 꼬리를 내렸고 이는 일관성의 결여로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게 돼 버린 것이지.”
처음 듣는 용어에 정맥까지 동원되니 이해가 갈 리 만무할 것이다. 그래도 나름대로 지도를 펴가며 열심히 찾아본다.
“어려운 대목이야. 나중에 다시 살펴 볼 기회가 있을 거야.”
“조금은 이해가 갈 것도 같은데... 하지만 형. 이른바 신산경표의 태도는 고육지책으로 볼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대간이 동서를 구분한다는 얘기는 맞고 산자분수령에 충실하자면 다른 방법이 없잖아? 그런데 사실 문제는 있네. 영신봉 ~ 천왕봉 ~ 웅석봉으로 이어지는 줄기를 지맥(枝脈)의 한 구간으로 봐야 한다면 결국 ‘천왕봉’이 지맥으로 편입되어야 한다는 얘긴데 그걸 동의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더욱이 백두대간에서 천왕봉을 빼놓고 얘기한다는 것도 용서하지 못할 거 같은데. 신산경표는 영신봉 ~ 천왕봉 구간을 어떻게 했어?”
“그렇지. 어려운 얘기야. 어쨌든 신산경표는 그 구간을 ‘무명줄기’로 남겨뒀어. 사실 산경표에서도 그런 애매한 구간이 있을 때 그 구간을 ‘무명줄기’로 남겨뒀었거든. 청북정맥과 청남정맥 그리고 해서정맥과 임진북예성남정맥이 그랬던 거지. 그런데 그런 걸 해소하겠다고 한 신산경표가 다시 이런 애매한 구간을 ‘무명줄기’로 놔두겠다고 했으니 자승자박(自繩自縛) 모양새가 된 거야. 물론 그렇게 하지 않고 일반적인 신산경표의 편제에 따른다면 이 웅석지맥은 천왕지맥으로 그 이름도 바뀌어야 해. 그렇게 되면 지리산 = 천왕봉이라는 인식도 변해야 할 것이고. 그게 사람들의 동의를 받기가 어려울 거 아니겠어? 그 점이 신산경표는 싫었던 거야.
나아가 백두대간이라는 이름이 뭐야? 백두산과 지리산을 잇는 큰 줄기라는 것 아니야? 신백두대간이 굳이 우리나라를 동서로 구분하는 점을 강조하여 영신봉 ~ 삼신봉 ~ 노량 코스로 맥을 돌리겠다면 그 이름에서 ‘백두’라는 말을 빼라는 거지. ‘신(新)’자도 넣을 필요 없이 그냥 백노(白露)대간 혹은 백지(白智)대간‘으로 부르라는 것이지. 그리고 그러지도 못하면서 왜 영신봉 ~ 천왕봉 구간은 빈 공간으로 놔뒀냐고 비난을 퍼붓는 거야.”
“그럼 형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정말 어려운 질문이야. 신산경표의 생각도 참신하고 고려할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봐. 하지만 우리가 산경표를 생각할 때에는 우리의 잣대로 산경표를 보는 건 위험한 발상이라고 봐. 분명 우리 선조는 산줄기를 생각할 때 등산을 하기 위한 능선 산행의 편의성을 위해서 그어 놓은 것이 아니었거든. 10대강을 위주로 생활권을 크게 구분하고 있는 것. 그걸 파악했던 것이지. 그래서 산줄기의 끝이 강의 크기나 길이 등에 관계없이 부, 목, 군, 현의 치소(治所)로 향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 걸 알 수 있어. 그러니 산경표는 그냥 산경표야. 산경표는 산경표 대로 그대로 놔두자고. 그대로 둔 다음에 거기에 우리 현대인의 생각을 가미하고 변형시키자고. 이럴 때 분명히 용어의 정립의 필요할 거야. 신산경표에서 정맥을 합치고, 없애고 대간의 무명줄기도 정맥에 편입시키는 등 변형을 줬거든. 난 이런 점이 불만이야.
가령 이 신백두대간만 해도 그래. 굳이 ‘백두대간’이라는 개념을 포함시킨 다음 ‘백두산 ~ 노량’이라고 구간을 설정해 놓으면 천왕봉이 애매해지잖아. 물론 영신봉이나 천왕봉이 다 지리산이니 ‘백두산 ~ 지리산 ~ 노량’으로 봐야 하고 지리산 안에 천왕봉이 있으니 무슨 문제가 있겠느냐 할 수도 있겠고 우리도 그렇게 인식하고 대간길을 걸을 수도 있어. 하지만 웅석지맥이 문제가 된다니까. 대간 거리의 확정도 문제가 되고. 우리나라 산줄기의 큰 특징이자 자랑이 뭐야? 나라의 산줄기 길이를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거 아니겠어?”
한편 산줄기에 관한 한 우리보다 일찍 일제의 잔재를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는 북한은 백두대간을 ‘백두대산줄기’라 이름하였다. 그러고는 그 줄기의 끝을 여기서 우측으로 돌려 삼신봉1289m에 이른 다음 거기서 다시 우측으로 돌려 구재봉773.7m에서 마치게 그렸다.
낙남정맥 때문에 나온 고육지책이다. 이 점에서 이중환의 택리지는 낙남정맥을 몰랐었다. 아니 이런 문제 때문에 낙남정맥을 억지로 무시했는지도 모르겠다. 이중환이 보통 사람인가!
어쨌든 여기서는 그저 간단하게 이곳이 낙남정맥이 갈리는 영신봉이라는 점과 낙남정맥은 우리나라 산줄기의 족보인 산경표에 나오는 우리나라 1대간 1정간 13정맥 중 하나의 정맥으로 글자 그대로 낙동강 남쪽을 받쳐주는 정맥이라는 것만 알아두자.
졸저 전게서 55쪽 이하
그러고는 호서정맥과 한남금북정맥을 호남정맥에 편입시킨 정맥의 통폐합인데 이는 다음에 기회 있을 때 보기로 하고 일반적인 것은 제 산행기(http://blog.daum.net/1kthlg2/1195)를 참조하시면 되겠습니다.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
한편 이 산줄기를 구분하는 기준은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라고 합니다.
'산은 물을 건너지 못하고 물줄기는 산줄기를 에워싸는 울타리'라는 이 개념은 정말이지 저에게는 금과옥조가 되어버렸습니다.
산경표는 곧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다.
“골머리 아프네. 결국 산경표의 저자는 모른다는 얘기구만. 앞으로 할 얘기는 산경표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 있다는 거 그런 거잖아?” 머리에 쥐가 오른다.
“그렇지 아까 얘기했지? 산경표는 그 당시 조선 지리정보의 총아라고! 뭐 다 아는 내용이니까 그냥 지나가도 되지만 중요한 건 이것과 뒤에 나올 박성태 선생의 신산경표와 비교해 보는 일이야. 이런 건 지금 당장 산행을 하면서 써 먹을 수 있는 것들이니 골머리 아플 필요도 없어.”
“형, 그건 그렇고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 산자분수령하는데 그 산자분수령이란 말이 ‘산은 스스로 분수령이 된다. 혹은 스스로 분수령이다.’ 그 말 맞아? 다른 얘기도 있던데.”
장감독의 정곡을 찌르는 질문이고 언젠가 해줘야 할 말이었기 때문에 주저할 필요는 없다.
“그래. 맞아. 이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라는 문구는 대동여지도 발문에 나오는 말이야. 그리고 처음에는 나도 그걸 그렇게 이해했었지.”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산경표는 당연히 조선광문회본 산경표이다. 그리고 우리는 산경표의 대원칙은 ‘산자분수령’이라고 알고 있다. 그 산자분수령이라는 말은 어디서 나왔을까? 짐작컨대 대동여지도다. 대동여지도의 발문에 보면 바로 그 구절이 나온다.
한 번 읽어 보자.
東史曰 朝鮮音潮仙 因仙水爲名 又云鮮明也 地在東表日先明 故曰朝鮮
‘동사’에 이르기를 조선(潮仙)이라 소리나는 ‘朝鮮’은 선수(仙水)로 말미암아 이름을 삼음이요 또한 이르기를 선명(鮮明)한 것이라, 땅이 동쪽에 있어 해가 뜰 때 먼저 밝아오므로 조선이라 한다 하였다.
山經云 崑崙一枝 行大漠之南東 爲醫巫閭山 自此大斷 爲遼東之野
‘산해경’에 이르기를 곤륜의 한 갈래가 대막(넓은 사막)의 남동으로 가 의무려산이 되고 이로부터 크게 끊어져 요동 벌판이 되었다.
漉野起爲白頭山 爲朝鮮山脈之祖 山有三層 高二百里 橫亘千里 其巓有潭 名謂達門 周八百里 南流爲鴨綠 東分爲豆滿
마른 벌이 일어나 백두산이 되니 조선산맥의 시조다. 산은 셋으로 층졌는데 높이는 200리, 가로는 1000리에 걸쳐 있으며, 그 산꼭대기에는 못이 있어 이름은 달문이라 하고 둘레는 800리이며, 남으로 흘러 압록이 되고 동으로 나뉘어 두만이 된다.
山自分水嶺 南北逶迤 爲燕脂峰小白山雪寒等嶺 鐵嶺一枝 東南走起 爲道峰三角 而漢水經其中
산은 분수령으로부터 남북으로 구불구불 이어져 연지봉 소백산 설한 등의 재가 되고, 철령의 한 갈래가 동과 남으로 달려 일어나 도봉과 삼각이 되니 한수가 그 가운데를 지난다.
위에서 보다시피 山自分水嶺은 ‘산은 분수령으로부터’라는 뜻으로 읽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산자분수령 즉 “산은 물을 넘지 못하고 물은 산을 건너지 못한다.”는 대원칙이 무너지게 된다.
어떻게 해야 될까?
사실 지리학자들은 산자분수령은 진리가 아니고 언제나 변할 수 있는 자연현상이라고 했다. 즉 그들은 그 예로 선행하천(先行河川)을 든다. 이것은 융기축이 형성되기 이전부터 형성되어 있던 하천을 말하는 것으로 우리는 조금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간단한데 생각하는 관점만 다르다. 조금 더 있으면 자세하게 다룰 것이다. 일단 맛만 보고 넘어가자면 지형학적으로 산맥이란 습곡, 요곡 혹은 경동지괴 운동 등 융기 축이 형성되어 계속 융기함으로서 산맥이 형성된다. 이걸 뭐 1차 산맥이라고도 하나본데 이것도 융기산맥과 단층산맥 두 가지로 나눈다고 한다.
그 다음이 2차 산맥으로 이는 암석의 경연(硬軟) 즉 단단하거나 무른 것들이 대상배열(帶狀配列) 즉 좁고 길게 띠 같이 되어 있을 때 무른 지대는 침식되어 낮아졌으나 단단한 부분은 침식에 강하여 상대적으로 높은 산지로 남아 있어 산맥을 형성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때 융기 축 혹은 대상배열을 가로 질러 흐르는 선행하천이 있으면 이 하천은 산맥을 절단하고 흐른다는 것이다.
우리가 산자분수령을 이야기할 때 입에 침이 튀면서까지 떠들던 얘기가 뭔가? 바로 차령산맥이 한강을 건너고 광주산맥이 한강을 어떻게 지날 수 있냐고 떠들었잖은가? 그런데 ‘산맥파’는 즉 지리학계에서는 팔짱을 낀 채 “니들이 뭘 알아!”했던 부분이 바로 이런 부분이었던 것이다.
필자가 주목하는 게 바로 이 2차산맥이다. 이 2차산맥으로 형성된 게 바로 우리나라의 산줄기라고 이해한다는 것이다. 1차산맥이 그 삭박과정을 거쳐 2차산맥이 형성이 되었고 지금도 삭박작용이 일어나고 있는 게 바로 지금의 우리나라 산줄기 아니냐는 것이다. 그걸 가지고 따지자는 얘기다. 그게 현재의 백두대간이고 정맥이며 기맥이며, 지맥이니까....
일반적으로 습곡이나 경동지괴 운동의 융기량은 1년에 mm 단위로 융기한다고 한다. 태백산맥 축도 년 0.1mm도 채 안 되는 융기량이라 한다. 글쎄 이 얘기도 웃기는 얘기다. 학자들이 얘기하는 태백산맥의 경우 신생대 3기에 동해 해저지각이 확장되면서 융기가 일어나 태백산맥이 형성되었다는 것인데 그 당시 태백산맥의 높이가 자못 궁금하다.
신생대 초기 한반도는 준평원 상태였는데 신생대 중신세부터 일어난 그 융기가 지금도 매해 0.1mm씩 융기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5,000만 년 전 정도가 되니 50,000,000 × 0.1mm = 5,000,000mm 그러니까 5,000m 정도가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물론 여기는 처음 융기된 높이는 제외하고 그렇다. 물론 그 긴 세월동안 삭박에 의한 것도 넣어야 하지만.
사실 필자도 노인봉 산장지기 성량수님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교사직을 버리고 노인봉으로 들어와서는 태백산맥 동계 단독종주, 국토해변일주 등 남다른 행각을 벌이던 그가 차령산맥 종주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단독으로 산맥 종주에 나선 적이 있었다. 노인봉을 출발 두로봉 ~ 비로봉 ~ 호령봉을 지나 계방산 ~ 용문산 그리고 청계산656m을 지나 양평 두물머리에 도착했는데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그래서 다시 되돌아왔어.”라는 일화는 이미 전설이 되어 버렸다.
사실 그때는 산경표를 몰랐었으니까 그런 말이 가능했다. 산맥은 ‘산산산’이었지 분수계니 산자분수령이니 뭐니 하는 말을 몰랐었을 때니까. 산경표의 정당성을 이야기 할 때 단골 메뉴처럼 떠들던 얘기였다.
어쨌든 그 차령산맥이 몇 천만년을 지나면서 원래 준평원이던 한반도에 남한강이 흐르고 있었는데 태백산맥이 융기하면서 차령산맥 북쪽과 남쪽의 대보화강암은 쉽게 침식되어 낮아지고 변성암으로 구성된 부분은 높은 산지를 형성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선행하천인 남한강이 비록 절단하고 있어도 차령산맥은 차별침식에 의해 만들어진 연속된 산맥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럴 때 일수록 우린 화가 난다. “학교 다닐 때 지구과학 공부 좀 많이 해둘 걸.”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게 지구과학 과목이 아니고 한국지리 과목이라는 게 더 화가 난다. 교육이란 게 이렇게 실생활에 도움이 되지 못하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어쨌든 학자들은 산자분수령에 대해서 콧방귀를 뀔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분노하고 싶은가? 그럴 필요는 전혀 없다. 뒤에 자세히 얘기하겠지만 우선 필자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산자분수령.
절대적인 개념이라고. 지금도 눈으로 보고 있지 않은가! 산줄기에서 다른 하나의 산줄기를 가지 칠 때 분명 그 사이에서는 골이 형성되고 그 골에는 물이 생겨 그 물은 내려오면서 천이 되고 그 천들이 모여 강이 되어 바다로 가지 않는가?
그리고 그 천이 합칠 때 반드시 하나의 크던 작던 산줄기 하나가 그 합수점으로 잠기는 것을 보지 못했던가? 즉 그 산줄기는 천이나 강을 건너지 못하고 물을 만나면서 그 맥을 다 한다는 말이다. 그것도 두 물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적어도 5,000만 년 정도는 진리였다. 움직이지 않는 진리.
“태양은 동쪽에서 뜬다.”라는 문장도 진리다. 하지만 앞으로 1억 년 뒤에는 어떻게 변할지 누가 알겠는가?
山自分水嶺은 “분수령으로부터 오는 산은....”이라고 해석하여야 한다며?
맞다! 그러나 그것은 일반 문장 속에 들어 있는 걸 해석할 때 그렇고 우리가 얘기하는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은 관용구(慣用句)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산자분수령을 두 가지로 읽었다고 보면 된다.
관용구가 무엇인가? 사전에서는 “관용적으로 둘 이상의 단어가 결합하여 특정한 뜻을 나타내는 언어 형태. 흔히 비문법적이거나 문법적이더라도 구성 요소의 결합만으로 전체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 등이 이에 해당한다.”
우리는 山自分水嶺을 얘기할 때 ‘분수령(分水嶺)’이라는 것을 고유명사로 인식하지 않고 보통명사로 이해하는 것이다.
필자만 그런가? 다들 그렇게 이해했던 거 아닌가?
또 다른 견해를 보자. 대동여지도 숭실대 본을 보면 ‘東分爲豆滿江 自分水嶺’이 되어 강자분수령이 된다. 위의 다른 대동여지도를 보면 분수령에서 물이 나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분수령이라는 지명이 물을 나누는 산줄기(고개)라는 의미로 붙여진 것이므로 이도 크게 다른 것은 아닐 것이다. 어차피 山自分水嶺은 이따 산맥을 이야기할 때 또 이야기해야 하니 여기서는 이쯤에서 그만 두자.
졸저 전게서 455쪽 이하
어쨌든 산자분수령이란 개념을 관용구로 이해할 때 우리가 걷고 있는 산줄기라면 신산경표든 뭐든 하나로 해석이 되어야 할텐데 보는 이에 따라 미묘한 차이를 보입니다.
산줄기를 중요시하냐 물줄기를 중요시하느냐의 차이입니다.
신백두대간과 정맥 얘기는 위에서 하였으니 가장 큰 문제점이있는 지맥을 하나 예를 들겠습니다.
얼마 전 진행한 주왕지맥에 관한 글입니다.
주왕지맥이라......
주지하다시피 주왕지맥은 한강기맥에서 분기한 산줄기입니다.
백두대간 직할 산줄기인 한강기맥에서 분기한 산줄기라는 것입니다.
이중환의 택리지의 산수 총론 편에 다른 정맥과 같이 나열이 된 걸 보면 청화산인은 아무래도 이 한강기맥을 정맥과 같은 급으로 본 것 같습니다.
이중환이 누굽니까?
조선 최고의 인문지리학자 아닙니까?
그럼에도 산경표에서 정맥이라는 이름을 얻지 못한 것을 보면 아무래도 그 끝이 바다로 가지 못하고 그저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용진(양수리)에서 그 맥을 다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박용수같은 이는 이 한강기맥을 최고봉인 계방산의 이름을 따서 계방지(기)맥이라고도 불렀죠.
기맥이라는 용어를 처음 제안한 분이 '태백산맥은 없다'의 저자 조석필 선생이고 보면 한강기맥이라는 이름 역시 조석필 선생의 작품일 것입니다.
산줄기에 관한 한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마일리지를 보유하고 있는 자하 신경수 같은 이는 이중환과 같은 취지로 굳이 한강정맥이라고 부르자고 합니다.
어쨌든 이런 용어들을 어느 정도 정리하여 '신산경표'라는 책으로 정리한 박성태 선생은 저같은 산줄기파들에게는 거의 '신'적인 존재나 마찬가지입니다.
하긴 제가 그분의 신상경표의 골자라 할 '남한 1대간 7정맥'을 '월간 산'에 7개월 동안 연재한 것만 보아도 선생님과 저와의 인연은 각별납니다.
물론 그 분의 1대간 7정맥 작업에 대해서는 비판하는 논조들이 많으니 여기서 얘기할 필요는 없지만, 기맥과 지맥을 제대로 정립한 것은 당신의 커다란 치적입니다.
다만 공인을 받지 못했다는 것과 이 작업을 거의 혼자서 다 하셨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검증을 받지 못했다는 점이 '옥의 티'여서 이것들이 약점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늘 얘기로 들어가 봅니다.
우선 오늘 우리가 진행하는 주왕지맥의 모(母)산줄기는 한강기맥이므로 한강의 세력분포도를 봐야 하겠죠?
한강 특히 북한강은 북으로는 한북정맥이 백두대간에서 가지를 치고 분기할 때 나오는 물줄기이므로 한강 이북의 산줄기는 모두 한북정맥의 세력권 하에 있게 됩니다.
크게 보면 그렇습니다.
참고도 # 1 한강의 세력권 범위
이를 달리 말하면 북한강 이남 그리고 남한강 이북의 산줄기는 다 이 한강기맥의 관할이라는 말인 거죠.
그러니 아래로는 한남정맥과 한남금북 그리고 금북정맥의 관할 하에 있으니 한강기맥은 정맥급으로 보아도 손색이 없을 것 같습니다.
신경수 선생이 이 점에 주목했다는 것은 위에서 말씀드린 바 있고.....
한편 그림에서 보듯 소양(도솔)지맥은 이 한강기맥의 직할대이기는 하지만 독립된 부대니까 여기서는 일단 열외로 둡니다.
소양지맥과 관련하여 소양강의 이름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지만 오늘은 남한강이 문제이므로 일단은 접어두기로 합니다.
남한강 일대를 볼까요?
참고도 #2 남한강 세력권
내륙권으로 들어왔으면 산자분수령의 '제2법칙' 적용이 확실해집니다.
산줄기 찾기가 그만큼 쉽다는 것이죠.
오늘 우리가 볼 것은 남한강 이북입니다.
강줄기를 보자면 사견으로는 오대천이 남한강의 본류로 봅니다.
그리고 그 발원지는 오대산 서대 수정암 옆에 있는 우통수가 맞다고 봅니다.
대동여지도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그렇게 나와 있을 정도로 우리 선조도 이 오대천을 남한강의 본류로 봤습니다.
골지천의 검룡소 자체를 몰랐었다는 얘기죠.
그러니 여기서는 달천이나 골지천에서 나오는 물줄기들은 볼 필요가 없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모든 산줄기를 얘기할 때 산자분수령을 떠올려야겠죠?
그 중 산자분수령의 제2법칙이 뭡니까?
하나의 산줄기(a)는 두 개의 물줄기가 만나는 합수점에서 맥을 다 한다는 것이죠?
그 두 개의 물줄기라는 것도 그냥 아무 물줄기를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원래의 본류(B)를 얘기하고 다른 하나는 그 산줄기(a)가 母산줄기(A)에서 가지를 쳐 나올때 거기서 나오는 물줄기(b)를 얘기하는 겁니다.
이 이론을 위 참고도 #2에 대입해 본다면.....
우선 세력권하에 있는 물줄기는 평창강과 주천강, 제천천, 섬강 그리고 흑천 정도가 됩니다.
그러니 이들 강과 남한강의 합수점에서 이들 산줄기들이 맥을 다 하게 된다는 것만 이해하면 간단하게 모든 문제들이 해결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산자분수령이 그거 아닙니까?
산경표는 그걸 말해주고 있고.....
하나씩 그 합수점으로 들어가봅니다.
먼저 신산경표 얘기를 들어보기로 합니다.
첫 번째 신산경표상 주왕지맥이 한강기맥에서 갈라질 때 그 사이에서는 평창강이 발원됩니다.
따라서 우리로서는 평창강과 남한강의 합수점만 찾으면 다른 건 볼 필요도 없습니다.
참고도 #3 신산경표의 주왕지맥
일단 주왕지맥의 소개글을 봅니다.
주왕지맥이란 한강기맥의 운두령에서 계방산(1,577m)을 지나 6.5km 지점에서 남쪽으로 갈라진 산줄기로 백석산(1,141m), 잠두산(1,243m), 백석산(1,365m), 중왕산(1,376m), 청옥산(1,249m), 접산(836m)를 지나 영월 동강에서 그 맥을 다한다. 지맥에서 가장 높은 중왕산은 가리왕산의 줄기로서 주왕산이라고도 하며 주왕산의 이름을 따서 주왕지맥이라 부르고 지맥의 총 거리는 약 86km에 달한다.
그 합수점을 봅니다.
참고도 4 주왕지맥의 합수점
위 참고도 #4 주왕지맥 마지막 구간 지도에서 보다시피 이 지맥은 평창강과 그 상위 등급의 물줄기인 남한강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그 맥이 다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주왕지맥은 산자분수령의 원칙에 충실하다는 얘깁니다.
정확하므로 통과!
그럼 다음 줄기인 백덕지맥으로 넘어갑니다.
참고도 #3에서 보듯 주천강은 한강기맥에서 나오는 물줄기가 아니고 다른 줄기와의 사이에서 나와 남한강도 아닌 평창강과 만나 합쳐지는 모양새입니다.
대저大抵 산경표는 주종主從을 확실하게 구분합니다.
즉 어느 게 主줄기이고 어느 게 從 즉 副줄기냐는 것이죠.
자 그럼 이 물의 원천源泉으로 올라가 봅니다.
지도에서 명백하듯 주천강은 신산경표상 영월지맥과 백덕지맥 사이에서 발원하는 물줄기인 반면 평창강은 큰형 줄기인 한강기맥과 주왕지맥 줄기 사이에서 발원하는 물줄기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형과 동생 사이 관계가 되어 주천강〈 평창강입니다.
그러니 주천강은 평창강에 흡수된다는 얘깁니다.
개념도에도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천강과 평창강의 합수점을 보면 되겠군요.
참고도 #5 주천강과 평창강의 합수점
신산경표의 마무리는 이 색깔로 진행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엄밀히 보자면 합수점은 노란색 라인으로 진행을 해야 맞습니다.
왜냐하면 주천강과 평창강의 합수점으로 가야 하기 때문이죠.
즉 '가'가 아니라 '나'가 그 합수점이라는 얘깁니다.
길이로 따지면 별 거 아닌것 같지만 신산경표에서 보는 산줄기와 강줄기 위주로 보는 산줄기 개념과의 차이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그럼 그 차이를 확인해 보겠습니다.
다시 참고도 #3으로 돌아갑니다.
평창강 다음 강은 섬강입니다.
그 다음 줄기는 섬강이 책임지고 있다는 겁니다.
눈치채셨죠?
섬강의 끝은 어디로 가야합니까?
예!
그렇습니다.
당연히 섬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합수점으로 가야겠죠.
그 끝을 봅니다.
참고도 #6 섬강과 남한강의 합수점
여기 맞죠?
이곳이 섬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합수점입니다.
이 합수점에서 맥을 다하는 이 'A'줄기가 이 섬강의 주인이 되겠습니다.
이 합수점에서 한강기맥과 만나는 곳으로 거꾸로 따라 올라갑니다.
그러면 이 'A'줄기가 어떻게 형성이 되는 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자, 올라 갑니다.
한강기맥까지....
참고도 #7 'A' 줄기
아까 A줄기의 끝을 따라 올라가니 치악산을 지나 삼계봉까지 올라가는군요.
그러고 보니 어디서 많이 보던 줄기입니다.
줄기 이름들을 보니 이 'A'줄기는 신산경표상 백운지맥 + 영월지맥 일부의 이음으로 되어 있습니다.
원래 영월지맥은 삼계봉 ~ 치악산 ~ 남대봉 ~ 감악산 ~태화산 ~ 동강.
이렇게 진행하는 거 아니었습니까?
인터넷에 떠도는 소개글을 봅니다.
영월지맥이란 한강기맥 상의 삼계봉(1,065m)에서 남쪽으로 분기한 산줄기가 태기산(1,261m)에서 서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풍취산(699m), 매화산(1,084m), 치악산 비로봉(1,288m), 향로봉(1,043m), 남대봉(1,182m)까지 달리다가 다시 남대봉에서 동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 감악산(954m), 용두산(871m), 삼태산(876m), 영월의 태화산(1,027m)을 지나 남한강에서 그 맥을 다하는 약 146km의 산줄기를 말한다. 뭔가 속은 느낌입니다. 일단 그렇다치고 그 옆 물줄기를 보기로 하죠. 흑천입니다. 참고도 #8 흑천 부근 한강기맥의 금물산 부근에서 갈리는 'A'줄기와의 사이에서 발원하는 강은 흑천이 됩니다. 그러므로 이 줄기는 남한강과 이 흑천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맥을 다하여야 하겠죠? 그 합수점이 바로 '가'의 곳입니다. 그런데 신산경표에서는 성지지맥이라는 이름으로 'B줄기'의 끝 섬강이 만나는 곳으로 갔죠. 저 역시 그렇게 성지지맥을 진행했습니다. 분명 주왕지맥은 두 물줄기가 만나는 합수점으로 갔건만 다른 지맥들은 합수점이 아닌 엉뚱한 곳으로 그 끝이 진행했습니다. 모든 이론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관성一貫性의 결여缺如'입니다. 정리해보죠. 주왕지맥은 제대로 합수점으로 갔으니 아무런 문제가 있을 리 없습니다. 그 다음 백덕지맥은 방향은 분명 다르고 주행거리에서도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신산경표에서 그은 거리가 조금 더 긴 것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죠? 그 다음이 소위 신산경표에서 이야기하여 어느 정도 굳어진 영월지맥입니다. 영월지맥은 왜 그리로 갔을까요? 멀쩡한 합수점을 놔두고 말입니다. 지도를 곰곰히 들여다봐도 이 영월지맥이 강원도와 충청도를 구분하는 선도 아니고 좀 이해가 안 갑닏. 인터넷을 뒤지다보니 존경하는 선배 '범여' 김복환님이 찾아놓은 글이 눈에 띕니다. 바로 남한강의 상류와 중류를 구분하는 경계이자 남한강이 처음으로 충청북도 도계를 만나는 지점이어서 그렇게 그었다는 것입니다. 좀 궁색하지 않습니까? 소위 '산경표'라는 단어를 썼으면 그 취지에 합당한 이론을 구성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합수점은 차치하고서라도 이 영월지맥은 충청북도와 강원도를 구분하는 도계는커녕 시계의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행정구역과 나라의 산줄기를 동일시 바라보는 것은 위험한 시각입니다. 백두대간조차도 경상북도 상주지방에 들어서면 도계는커녕 리계里界 역할도 수행하지 못하고 있음을 많이 봤지않습니까? 우리는 산줄기를 볼 때 산줄기를 보는 게 아니라 그 산줄기와 물줄기에 기대고 살아온 우리 선조들의 생활상을 봐야합니다. 그리고 상류와 중류가 도대체 산줄기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이 또한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상류, 중류, 하류가 사람사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저는 박선생님께서 산줄기를 그러니까 일단 선생님께서 등급을 매긴 산줄기를 조금 더 많이 만들기 위한 욕심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합니다. 즉 지맥 30km, 기맥 특수한 경우와 100km 이상 등 이렇게 분류를 하고 난 후 30km짜리 지맥을 더 많이 만들어 산꾼들로 하여금 즐길 수 있는 놀이터를 더 많이 만들어 주기 위한 세심한 배려에서 비롯됐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다면 "신산경표는 산경표의 정신을 그대로 따르려고 노력했다."는 선생님의 주장은 공념불이 되어 버리고 말기때문입니다. 볼까요? 신산경표상 영월지맥은 도상거리 약134.3km이지만 합수점으로 가는 참고도 #7의 'A줄기'는 도상거리 약 111.0km가 됩니다. 그 다음 줄기인 흑천으로 가는 산줄기를 보면, 성지지맥의 경우는 55.9km인데 반해 이 줄기는 다소 짧은 약49.3km가 됩니다. 차이가 무엇일까요? 그리고 아까 백덕지맥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낙동정맥에서 갈린 소위 팔공지맥이나 문수지맥, 대간 직할대인 금대지맥이나 노목지맥 등 부지기수입니다. 지난 번 땅끝기맥이라는 곳에서도 봤지 않습니까? 이쯤되면 '검사스럽다'는 말이 나올 법도 합니다. 비아냥 거리거나 콧방귀를 뀌는 것이죠. "니가 뭐 알아? 그리고 아무 데나 가면 어때? 그게 뭐가 중요한디!" 그러면 '알바'라는 말 자체도 쓰면 안 되고 영월지맥은 뭐하러 하셨습니까? 나중에 나라의 지맥이 산림청이나 국토지리정보원에서 공인을 하게 될 경우 이런 것을 학문적으로 검토하지 않고 그냥 되는 대로 쓱쓱 긋겠습니까? 제가 이런 말을 하면서 항상 존경하는 박성태 선생님이라고 깍듯이 존대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박성태 선생님이 없었다면 저도 제 능력으로 이런 걸 만지작 걸렸을 이유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에서 여러 쪽을 할애해 박성태 선생님의 '신산경표'를 설명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선구자이시고 저같은 사람에게는 '신神'같은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산으로 박흥섭 님이나 J3의 배병만 님 등이 한 목소리를 내는 이유입니다. 각설하고....... 신산경표는 산자분수령의 합수점과는 무관하게 긴 쪽 즉 산경山經 위주로 그은 산줄기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반면 제가 말씀드린 산줄기는 산줄기의 길이나 세력위주가 아닌 온전하게 산자분수령의 취지 즉 산줄기는 두 물줄기의 합수점에서 그 맥을 다한다는 산자분수령의 취지에 부합하게 그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간단하게 합수점에서 만난 산줄기를 따라 거꾸로 올라가면 그 줄기가 나오기 때문에 강줄기를 중시하여야 하고 당연히 산줄기의 이름은 산경표와 마찬가지로 강이름을 위주로 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산줄기의 이름을 그 산줄기 중에서 가장 높은 산이나 이름 있는 산을 따서 명명할 경우 생기는 부작용도 덜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산경표의 작명 취지에도 부합합니다. 이런 이유로 오늘 거론한 산줄기의 경우 주왕지맥은 평창지맥, 백덕지맥은 주천지맥, 영월지맥은 섬강지맥, 성지지맥은 흑천지맥으로 부르자는 것입니다. 중왕산이 주왕산으로 고시가 변경되어 그 산줄기 이름도 바뀔 수가 있겠지만 강 이름이 바뀌는 경우는 없잖습니까? 산은 일본인들이 자의적으로 바꾸곤 했고 시대가 변함에 따라 변하기도 하지만 강은 그런 게 아닙니다. 이게 신산경표의 약점을 보완하고자 하는 대한산경표의 이론입니다. 참! 한 가지 떠오르는 게 있습니다. 존경하는 박성태 선생님께서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후일을 대비해 놓으셨습니다. 즉 신산경표의 해설을 하시면서 "산줄기의 주행이나 주요 산줄기 선택 그리고 그 원칙에 의하여 작명된 이름 등이 잘못된 것이라면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고 문을 열어놓으셨던 것입니다. 선생님이 높아 보이는 이유입니다.
이 정도에 이르면 산줄기 분류기준이 무엇이냐에 대한 답은 나오는 것 같습니다.
크게 대간과 정맥 그리고 지맥으로 보자는 것입니다.
저는 최근까지 정맥과 같은 급의 세력을 가지고 있으나 10대강을 싸고 있지 않아 정맥이라는 이름을 갖지 못한 줄기들 중 100km급 이상의 산줄기를 기맥岐脈이라고 부르자는데 동의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대간, 정맥, 기맥, 지맥으로 구분하자고 하는 4분설은 분류의 실익이 없고 괜한 논쟁의 소지만 불러일으킴은 물론 산줄기 체계를 더 복잡하게 하는 역기능적인 면도 있음을 감안하여 그동안 유지하던 '기맥'을 포함하는 이 4분설을 포기하고 대간 - 정맥 - 지맥(3分說)으로 가기로 합니다.
이 설은 '산으로' 박흥섭이나 J3의 배병만도 유지하고 있는 견해입니다.
대한산경표의 3분설(대간, 정맥, 지맥)
이 3분설에 따라 산줄기를 구분하기로 하겠습니다.
1. 이럴 경우 기본은 역시 산자분수령의 제2법칙입니다.
즉 합수점으로 간다는 겁니다.
위에서 본 섬강지맥이나 주왕지맥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를 '대한산경표'에서는 '제1유형'으로 부르자고 합니다.
따라서 제1유형에 의하여 합수점으로 가는 줄기 중 도상거리 30km급 이상의 산줄기 중 정맥이 아닌 산줄기를 지맥으로 부르자는 것입니다.
2, 그리고 잠깐 위 신산경표를 들여다보죠.
신산경표의 특장特長 중,
①산줄기 주행의 오류를 시정한것을 제일로 보고 있습니다.
즉 산경표는 당시의 유교적인 사고방식으로 인하여 정맥의 주행이 도읍지 혹은 도성을 지나는 형식으로 그어졌습니다. 신산경표는 이것을 자연스럽게 그 하구로 주행하게끔 유도한 것이다. 이로써 가령 한북정맥과 한남정맥은 한강 하구로 가게 되었고, 호서정맥과 금강정맥은 금강 하구로, 호남정맥은 섬진강 하구로 그리고 낙동정맥과 낙남정맥 등은 낙동강으로 가게 되었다.
따라서 대한산경표도 이 점을 존중하여 호서정맥이나 관서정맥 등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기 보다는 그 주행만 변경시키는 것으로 단순화하였고 이는 하위 개념인 지맥에도 그대로 통용됩니다.
이는 하천의 수계 산줄기가 울타리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제2유형'으로 부르겠습니다.
예를 들면 섬강지맥(신산경표상 백운지맥)의 오두산에서 1.8km 지난 지점에서 십자봉 방향으로 갈라진 산줄기의 좌측 물줄기는 원서천을 거쳐 제천천이 되어 남한강(충주호)으로 흐르므로 제천천의 좌측(하류기준)을 감싸는 산줄기는 합수점이 아니나 이 산줄기의 울타리 역할을 수행하므로 지맥으로 보게 되어 제천서지맥(신산경표 상 천등지맥)이 됩니다.
다만 우측으로 진행하는 물줄기는 구룡천이 되어 남한강에 합류하나 이를 구분하는 산줄기는 30km 미만으로 지맥에 해당하지 않게 됩니다.
3. 이도저도 아닌 산줄기로 산세를 고려하여 탄력적으로 산줄기 이름을 부여한 케이스로 이에는 백두대간과 변산지맥 등이 해당합니다.
이를 '제3유형"으로 부릅니다.
앞으로 지맥을 다룰 때 자세하게 보기로 합니다.
지루하시죠?
자, 그럼 오늘 산행을 시작합니다.
지도 #1
09:17
대안리 고개를 출발하여 약 1시간 걸려 461.1봉 부근 갈림길에 도착합니다.
지도 #1의 '가'의 곳입니다.
살펴볼까요?
참고도 #1 보청북지맥
참고도 #2 한남금북정맥에서 갈라지는 지맥
위 개념도에서 보시다시피 우리는 한남금북정맥에서 흘러나오는 물줄기 중 한강 쪽이 아닌 금강 쪽을 보고 있습니다.
그럴 경우 큰 물줄기 두 개가 보청천과 미호천입니다.
그렇다면 금강과 이들 지천支川과의 합수점에서 마루리 되는 산줄기들을 먼저 보면 될 것입니다.
① 우선 미호천과 금강의 합수점에서 마무리되는 줄기가 보이는군요.
산줄기의 도상거리도 46.6km가 되니 지맥이라는 이름을 부여하는데 무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감싸고 흐르는 강이름인 미호천의 이름을 따서 미호지맥이라 이름 붙이면 되겠습니다.
산줄기 분류기준 '제1유형'에 해당되죠?
신산경표에서는 팔봉지맥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② 문제는 지금 우리 눈앞에 있는 이 줄기입니다.
이 줄기가 한남금북정맥에서 가지를 치고 나올때 그 사이에서는 회인천이라는 작은 지류가 발원합니다.
물줄기의 세력이 약하다 보니까 이 지류와 금강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만나는 줄기는 20여km에 불과해 지맥이라는 계급을 받지 못합니다.
그런데 국사봉 ~ 덕대산 ~ 국사봉을 거쳐 보청천 좌측으로 잠기는 산줄기가 있습니다.
이 줄기가 보청천의 북서쪽의 울타리가 되는 줄기입니다. 그 줄기의 길이는 49.6km가 됩니다.
산줄기 분류기준 '제2유형'에 해당됩니다.
보청천 북쪽의 울타리가 되는 줄기이므로 이름은 보청북지맥으로 하면 되겠습니다.
신산경표에서는 이 줄기를 가장 높은 산인 금적산651.6m의 이름을 따서 '금적지맥'이라고 부르지만 아까 얘기한 바와 같이 물줄기를 기준으로 파악하는것이 더 확실하고 간단하므로 물줄기의 이름을 따서 보청북지맥으로 한 것입니다.
정맥길은 여기서 급우틀합니다.
10:42
쌍암재를 지나 마을 어귀를 통과한 후 급경사를 오릅니다.
12:33
밥을 먹고 출발하느라 이 531.4봉을 우횟길로 들었다가 뒤늦게 빠트린 사정을 깨닫고 700여 m를 되돌아가야만 하였습니다.
여기서 미호지맥이 가지를 친다는 것은 위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신산경표에서는 팔봉지맥이라 부르죠.
단군지맥이라는 비석을 세워 놓은 것은 부근에 단군사당이 있는 곳을 지나기 때문입니다.
이후 추정재까지 무사히 진행하여 삼겹살 파티로 뒷풀이를 그럴싸하게 하고 귀경을 합니다.
'한남금북정맥 > 한남금북정맥(2012.1.20.~2013.3.17.'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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