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송사 - 지리 북부능선
- 우리들산 1920 개벽
*
추성 _ 의탄천 칠선계곡
와불산 1213.9봉
용유담 - 가사어
- 유몽인
용유담 : 박여량
동쪽으로 보나 서쪽으로 보나 그 장엄한경관이 빼어났고 수석도 기괴하였다. 내가 둘러앉아 신군이 가져온 술을 마시자고 하였다. 좌증 한 사람이 말하기를 "이곳이 용이 놀던자리라 이런 기괴한 자취가 있다고합니다. 그러나 천지가개벽한 뒤에 물과 돌이 서로 부치고 깎여 돌출되고나 구멍이 뚫리거나 유뚝 솟거나 움푹 패여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내가 대꾸하기를 "다만 세상에서 전하는 대로 보는것이 옳지 굳이 다른 의견을 낼 필요가 있겠습니까"라고 하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박수를 쳤다.
용유담엣 동남쪽으로 조금 치우친 곳에용왕당이 ㅇ;ㅆ었는데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외나무다리를 설치해 왕래를 하는데 박여승과 그의 사위는 그 다리를 건너 가장 높은바위 꼬대기로올라갔다........
화암花巖(여기서 화암은 동겅리 당산터로 추정) ~ 지장사 코스,
1. 화암-지장사 코스
화암에서 쉬고 난 후 말을 타고 당도한 다음 여정이 지장사이다.
화암(花巖)이라고 추정되는 동강리의 당산 터에서 ‘지장사’ 가는 길은 크게 세 곳으로 열려있다.
편의상 1.2.3.으로 분류한다.
제 1 코스
동강리-성지골-한쟁이골-감태밭골-지장사
제 2 코스
동강리-성지골-운암마을-상대날등-지장사
제 3 코스
동강리-성지골-운암마을-노장동-지장사
위에 분류한 세 코스 모두 당시의 주변 산세 및 거리. 등로의 상태 등을 염두에 두고 수 차례의 탐사가 이루어졌으며
그 중에서 탐구팀이 가장 유력시하는 제1코스를 집중적으로 소개하기로 한다.
<유두류록>의 산길 탐구에 있어서 기본개념은 어디까지나 추정이지 확정은 아니기에
1코스와 2코스도 물론 배제할 수는 없다.
자연 생태적으로 200년 마다 산의 숲이 바뀐다고 한다면 그때부터 지금까지 3번이나 바뀌었으니
600년 전의 산길을 지금에 와서 확정적으로 복기해 본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
2. 화암에서 거머리재까지
위에 분류한 세 코스 모두 등로의 기점은 [花巖]이라고 추정되는 당산 터에서 시작되며
동강리에서 출발하여 이곳을 지나 한쟁이골 입구에 해당되는 거머리재까지는 모두 같은 길이다.
당산터에서 개울을 건너서 2시 방향으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길이 꽃봉산 너머 지장사로 가는 길이다.
이 길은 동강리에서 운서리 가는 지름길이기도 하며
오래 전부터 한쟁이골, 감태밭골, 운암마을,노장동 등의 화전민들과
운암골에 있었던 지장사, 선열암, 신열암, 고열암, 묘정암 등 수 많은 절들의 스님들의 행로로 이용했음 직한 오솔길을
3년 전에 확 포장을 해서 지금은 중형 트럭이 다닐 만큼 길이 잘 정비되어 있다.
운암골에 산재했었던 절들이 대개가 엄천사의 말사였을 것이라고 추정해 보면
이 길의 역사는 천년을 거슬러 오르는 옛길 중의 옛길인 셈이다.
한편 이 길은 동강마을 뒤편의 경작지를 가로지르고 있으며
엄천강변 60번 국도에서도 한 눈에 들어온다.
당산터에서 150여m 가면 지형도에도 표기되어 있는 동강 소류지를 만나고
이어서 길 포장을 기념하는 표지석이 서 있는 작은 재를 만난다.
*당산터에서 꽃봉산 우측의 구시락재를 넘어가는 탐구팀
지역민들이 구시락재라고 부르는 이 재는 꽃봉산의 우측 끝자락이며
재를 넘으면 바로 성지골 이라는 골이 형성되어 있고
성지골은 야산 골짝의 개념으로 간간이 경작지가 이루어져 있다.
포장길은 개울 하나를 건너서 이어지면서 바로 삼거리 갈림길을 만나고
우측은 모퉁이만 돌면 운서리이며 지장사는 좌측 길을 택한다.
도중에 산비탈에 많은 벌통이 놓여있는 곳에서 포장길은 끝이 나고
무덤을 지나면 개울의 우측으로 길이 이어진다.
10분가량 골짝을 올라 키 큰 황철나무 몇 그루가 있는 곳에서 20m 우측으로 쳐 오르면
한쟁이골과 운암골의 분기점인 거머리재이다.
*성지골에서 운암골로 넘어가는 거머리재
어원이 짐작되지 않는 거머리재는 현재 임도로 되어 있으며
임도의 우측으로 모퉁이를 돌아 20여m 내려가면 운서리에서 운암마을 가는 기존 길과 만난다.
임도는 운암가는 기존길에서 시작되어 이 곳 거머리재를 지나 한쟁이골 계곡까지 약1.5km 구간까지 이어진다.
한쟁이골 옛길은 좌측의 좁은 소나무 능선 사이로 입구가 열려있다
3. 한쟁이골
위에 분류해 놓은 제 1 등로, 즉 한쟁이골-감태밭골-지장사를 가려면
거머리재에서 임도를 버리고 좌측 소나무 밭 사이로 열려있는 산길을 잡아 들어선다.
산의 8부 능선에 걸려있는 이 길은 지리산에서도 드물게 만나는 전형적인 옛길로서
송림속에 쌓인 꿈길같은 오솔길, 길이 품고 있는 정취와 적요는 감동을 자아낸다.
제1코스로 추정한 이 길이 정녕 <김종직>선생이 지난길이라면 말을 타고 가기에 더없이 좋은 산길이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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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머리재에서 임도가 아닌 한쟁이골 옛길을 따르면 초반의 좁은 길과는 전혀 딴판으로
송림 속에 완만하고도 정취있는 길이 이어진다. (<계룡산>님 사진)
거머리재에서 30분 걸어온 지점에 육 이오 때 소개되어버린 동네였다는 진지밭골 마을 터에 닿는다.
지장사를 가기 위해서는 이 마을 터에서 길 아래로 내려서서 계곡을 건너 맞은편 산 비알에 들어야 하는데
지형이 야산 계곡이다 보니 잡목과 넝쿨이 우거져 현재 길은 거의 없다.
이 계곡이 바로 한쟁이골인데
운서리에서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대형 수조가 있는 삼거리에서 좌측 운암마을 가는 길을 따르다 보면
좌측으로 시멘트 포장이 짧게 이어졌다 마는 임도가 거머리재를 지나 한쟁이골로 가는 산길의 들머리이며
포장길을 따라 운암으로 조금 더 진행해서 만나는 다리 밑 계곡이 바로 한쟁이골의 하류계곡이다.
한쟁이골은
예전에는 길길이 자란 노송들로 채워진 골 이었다 하는데
일제말기 전쟁물자 공출용으로 송유(관솔기름) 채집장이 들어서면서 노송들은 거의가 사라졌다고 한다.
아름드리 소나무에 V자로 칼금을 그어서 관솔기름을 채취하는 채집장이 있을 당시에는
주막이 있었을 정도로 골짜기가 흥청대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산꾼들 조차 발걸음을 주지 않는 적막만 맴돌고 있다.
운암골에서 좌측으로 상대날등을 넘어 있는 골짝이며
좌측으로는 상내봉 부근에서 방곡리로 떨어지는 군계능선이 둘러있다.
이 글에 등장하는 진지밭골, 감태밭골 들이 크게 보면
한쟁이골에 들어앉아 있던 마을들이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4. 거머리재 에서 감태밭골 까지
계속 이어져 있는 한쟁이골 산길을 버리고 우측의 진지밭골 마을 터로 내려서서 거의 일직선으로 계곡을 건너고,
역시 진행을 일직선으로 하면 맞은쪽 너덜지대 옆으로 지장사 가는 길이 숨어있다.
{FILE:4}
*진지밭골 (<계룡산>님 사진)
우측 아래 진지밭골이 보이면 한쟁이골의 정취 넘치는 길을 버리고
진지밭골로 내려서서 계곡 건너편 소나무지대를 보고 길을 찾아야한다.
[길 포인트는 큰 바위들로 이루어진 너덜지대 옆 산죽 숲이며,
계곡을 건너오기 전 진지밭골 마을 터에서 맞은편 산을 주시하면 너덜지대가 두 곳으로 나누어져 형성되어 있으며
우측 너덜지대 옆 소나무 숲을 눈에 담으면 감으로라도 길 찾기가 수월하다]
길 초입만 잘 찾아 들면 신기할 정도로 산죽 속에 혹은 잡목 속으로 이어진 오솔길이
한국동란 까지 독립가옥이 있었다는 산 등성이의 감태밭골 마을 터까지 이어진다.
진지밭골에서 감태밭골 까지의 오솔길은 있다가 말다를 반복하면서 몇 백 년을 숨겨져 왔었는지 가늠을 할 수가 없고
조선의 냄새와 민초의 한이 뭉실거리는 목이 메이는 길이다.
감태밭골에 터 잡고 살은 민초들, 그들도 사람이었을진대 무얼 먹고 여기서 살았을까?
화전을 일군 흔적도 남아있건만 채마밭 수준의 땅 뙤기 정도밖에 안된다.
5. 감태밭골에서 지장사까지
감태밭골에서 마을 터 위쪽으로 방향을 잡아서 20분가량 오르면
함양 독바위 부근에서 생성이 되어 운암골과 한쟁이골을 나누어 놓는 상대날등 능선을 만난다.
[상대날등의 어원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독바위 부근에 있는 상대굴에서 나온 듯 하다.]
감태밭골에서 올라온 길과 상대날등이 만나는 분기점은
작은 규모의 암자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절터 자리이다.
기와파편이 널 부러져있고 절터 아래에는 샘터와 경작지 흔적이 역력하다.
이곳에 절터의 흔적이 있었다는 사실은
탐구팀이 가장 무게를 두고 추정하는 제1 등로 (화암-한쟁이골-감태밭골-지장사)에 신빙성을 가해준다.
선인들의 두류록에서 나타나는 지리산 산행방식의 일반적인 경향은
산행 가이드는 주로 지리산속의 스님들 이었고, 산행코스는 절(寺)에서 절(寺)로 이어졌으며
그들의 숙박지는 반드시 절집이었다.
<유두류록>에서도 길 안내를 맡은 사람은 해공과 법종 두 승려 이다.
특히 법종은 독바위 아래에 있었다고 추정되는 묘정암의 스님이었기에
이 암자 터를 거쳐서 가는 지장사 길을 잘 알 수 있었을 터이다.
암자 터에서 지장사 까지는 상대날등을 따라 이어진다
날등에는 국립공원 경계를 나타내는 [山]자가 새겨진 시멘트 표지석이 계속 일정한 간격으로 박혀있다.
중간에 큰 암봉을 지나는데 암봉은 우회를 하며 山자 표지석은 암봉 정수리에도 박혀있다.
암봉에서 20여분 더 진행한 지점에서 우측으로 길을 횡단하는 느낌으로 무명골짝 하나를 가로질러 산죽이 있는 능선에 올라선다.
[이 능선은 ‘상대날등’ 850m정도 지점에서 생성된 가지 능선으로 노장동 하류계곡에서 소멸된다]
능선에 올라서면 더 반질거리는 길이 능선을 따라 가로놓여있는데
상대날등은 좌측으로 계속 이어지며 우측 아래로 5-6미터 내려서면 폐 헬기장의 두릅밭이 있다.
여기에서 좌측으로 유심히 보면 희미한 길 흔적이 있어 이 길을 내려서면 큰 고목이 한그루 있고
고목 주변에는 제단의 흔적이 있다.
*깊은 산 속에 있는 고목 주변의 제단터
정성스럽게 쌓은 제단이지만 용도를 알 길이 없다.
제단 터에서 작은 능선하나를 넘어면 지장사 하류이다.
여기서부터 기와파편들이 무더기로 보여 지고
길을 버리고 위쪽으로 30여m 오르면 지장사 본당으로 추정하는 절터이다.
이렇게 해서
드디어 말을 타고 해발 760미터 지점의 깊은 산골짜기에 있는 지장사에 당도한 것이었다.
[지장사에 대한 설명은 본 기획물 “지장사를 찾아서” 3편에 상세히 기록 하였기에 여기서는 생략한다]
[본문에 등장하는 ‘진지밭골‘ ’감태밭골‘ ’한쟁이골‘ ’거머리재‘ ’구시락재‘등의
토착지명 들은 지역민들에게서도 어원을 유추할 길이 없었음을 밝힌다]
용유담 --- *****
한남동, 남호리 절터 : 엄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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