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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TWINS/지리산 둘레길

지리산 둘레길 제10구간 (하동호 ~양이터재 ~ 오대사 ~ 상촌제 ~ 위태마을) 11.5km

 

밋밋한 구간을 지나 하동호로 올라왔습니다.

이제부터 진행할 10구간은 지리산 둘레길에서도 어느 정도 위상을 갖고 있는 구간임을 상기합니다.

다른 구간에서는 볼 수 없었던 진귀한 산줄기를 만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지리산 둘레길 어느 한 곳도 귀하고 소중하지 않은 곳이 없겠지만 이곳 만큼은 '지둘'에서도 오직 이곳 한 곳 밖에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희귀성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 산줄기가 갖고 있는 산줄기 세계에서 그가 가지고 있는 위상 때문입니다.

눈치 채셨겠지만 그 산줄기는 바로 낙남정맥입니다.

 

주지하다시피 남한에 9개 밖에 없는 정맥중 지리산과 관련된 정맥은 낙남정맥 단 하나에 불과합니다.

물론 지리산을 마주보고 달려가며 지리의 남쪽을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는 호남정맥도 가벼이 넘길 것은 사실 아닙니다.

하지만 지리산이 호남정맥을 품기 위해서는 문화나 예술, 정치적인 사회 현상과 관련지을 때의 문제이지 우리같이 지리 특히 인문지리를 놓고 볼 때에는 섬진강이 눈에 거슬립니다.

그래서 낙남정맥의 위상이 더욱 높아집니다.

 

그렇다면 낙남정맥이 지나는 곳의 중요성은 차치하고  백두대간이 지나는 곳도 있지 않느냐?

그리고 그곳도 지리산 둘레길 구간 중 단 하나 밖에 없을 정도로 진귀한 곳이 아니겠느냐는 반문도 가능할 것입니다.

예.

그렇죠. 

지리산 둘레길이 백두대간을 만나는 곳도 오직 단 한 곳.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주촌리 가재마을 부근입니다.

지리산 둘레길이 타원형으로 생겨 하나의 선으로 이어진 幹이나 脈과 만나는 곳은 어디든 단 한 군데일 수 밖에 없긴 합니다. 

그러나 백두대간과 만나는 위 지역은 아무래도 대간길이라 보기에는 좀 무리가 있는 곳입니다.

머릿속으로 그려지지가 않는다는 얘기죠.

고원지대이기 때문입니다.

운봉읍 자체가 해발 450m ~ 550m가 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보니 생긴 현상입니다.

 

하지만 낙남정맥이 지나는 양이터재는 해발 약527m 정도에 불과해 사실 대간길의 그곳과 그리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양이터재에 오르는 그 과정은 둘레꾼에게는 등산 이상의 고단함을 요구합니다.

 

여기에 덕천지맥이나 횡천지맥 그리고 서시지맥과 둘레길의 접속 구간을 경험하신 분들은 또 이렇게 말씀하실 겁니다.

그러면 지맥과의 접속점은?

예.

맞습니다.

지맥도 장난이 아니었죠!

그렇기 때문에 이곳이 갖는 정맥으로서의 계급 그리고 희소성 등을 거론한 겁니다.

 

정리하자면 대간보다 하위 계급이긴 하지만 정맥이라는 위상을 가진 낙남정맥이 지리산 둘레길을 만나는 유일한 단 한 곳.

그곳이 바로 이번 제10구간 안에 들어 있다는 얘깁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양이터재입니다.

그러니 양이터재 하나를 지나는 것만으로도 오늘 구간의 만족도는 100%입니다.

 

그곳을 지나면서 머릿속으로는 분명히 인식을 해야겠죠?

즉 그 양이터재를 넘기 전 마을인 청암면 까지의 물들은 모두 횡천강으로 모아진 다음 섬진강에 합류되어 남해로 흘러들어 가게 된다는 것을....

그리고 양이터재를 넘자마자 만나는 옥종면의 모든 물들은 직천천이 됐든 아니면 곤양천이 됐든 모두 덕천강이나 남강으로 모아져 낙동강이 되어 남해로 흘러들어 간다는 것입니다.

혹시 가화천 얘기를 꺼내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즉 가화천의 일부는 바로 남해로 흘러 들어가던데!

네.

그것은 가화천의 일부가 진양호의 물을 낙남정맥 이남으로 보내어 농업용수 등으로 쓰기 위해 만든 인공수로이기 때문에 문제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진주 사람과 사천 사람의 풍습이 온전히 같다고 볼 수 없습니다.

바로 낙남정맥 때문이죠.

산줄기와 물줄기.

이것이 언어와 관습 그리고 민심까지도 나누는 그런 역할을 했다는 것을 우리 조상들은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산경표를 만들었던 것이죠.

후손들이 산행을 잘 하라고 만든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니 이런 곳으로 가는 발걸음은 가볍기만 합니다.

지도 #1

11:14

하동호를 둘러싸고 있는 횡천지맥.

저 횡천지맥과 둘레길과는 제12구간에서 만나게 될 겁니다.

 

중앙 비바체 리조트 뒤로 봉긋 솟아 있는 게 칠성봉905.8m.

저 칠성봉을 따라 올라가면 거사봉1133m을 지나 삼신봉1290.7m으로 오르게 되고 거기서 낙남정맥을 만나게 되는 것이죠.

그 라인을 타고 계속 더 올라가면 바로 영신봉1651.6m을 만나게 되고 거기가 바로 백두대간입니다.

그러니까 백두대간 〉낙동정맥 〉횡천지맥이 되는 것이죠.

여기서 더 세분하면 지난 번 보았던 남산단맥이니 명호단맥이니 하는 단맥이 가지를 치게 되는 것이고....

아주 재미있습니다.

그러니 저 칠성봉은 바로 뒤로 넘어가 거사봉으로 진행을 하는 것이고 우측의 라인들은 횡천지맥의 배티재 너머에 위치한 982.7봉에서 가지를 친 줄기들이죠.

그 982.7봉 라인들 중 긴 줄기는 이 하동호로 오고 있으며 거기서 또 갈린 줄기가 상이리 하동호 끝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하동호의 원천인 횡천강은 낙동정맥에서 가지를 친 이 횡천지맥 그러니까 삼신봉 골짜기에서 니오는 물인 것이죠. 

참고도 #1

 

그러니 위 참고도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우리 눈에는 한 줄기의 산줄기가 횡으로 연결된 것 같지만 이들은 사실 이렇게 서로 족보를 달리한 줄기들 입니다.

물론 위에서 보듯 잔가지-이를 단맥短脈이라 부르기로 했음-들의 형이 되는 줄기는 횡천지맥입니다.

그 삼촌이 되는 줄기는 낙남정맥.

그리고 아버지 줄기가 바로 백두대간인 것입니다.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면서 이런 것들을 짚어보면서 가는 게 둘레길의 묘미를 더하게 되는 것이죠.

산에서는 산이 안 보입니다.

내려오면 산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게 되죠.

중앙의 밋밋한 연봉들이 우리 눈으로 직접 확인을 할 수는 없지만 사실 횡천지맥상 982.7봉에서 가지쳐 내려온 줄기들이 598봉에서 좌틀하여 이리로 내려오고 있는 것이고 나머지 줄기들은 우측으로 가서 상리리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11:34

지도 #1의 '가'의 곳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우틀합니다.

삼거리 좌측에는 민박집이 있는데 주인 아저씨가 망중한을 즐기고 계시는군요.

우측으로 민가에 설치해 놓은 작은 암자를 지나고....

11:47

시멘트 포장 임도를 따라 오르다 사진 #1의 '나'의 곳에서 임도를 버리고 산길로 들어섭니다.

물론 이 임도를 따라 올라가도 양이터재로 오르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너무 돌아가는 길입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좌측으로는 곅고물 소리를 듣고 가끔은 바로 옆에서 '푸드덕' 소리를 내며 날아가는 새들과 노닐면서 오르다 대나무숲에서 힐링을 즐기라는 배려로 이해합니다.

물론 지름길이기도 하고....

slow를 체험하기 위해 오신 둘레꾼들이라면 비록 이길이 우회하는 길일지언정 이런 길을 택해야죠.

대나무 뿐만 아니라 이 편백나무가 뿜어내주는 피톤치드는 또 어딥니까.

그럴 때 우측에서 내려오는 육각수 청정수는 둘레길이 주는 또 다른 보너스입니다.

12:32

그렇게 혼자서 중얼거리고 오릅니다.

그러다 심심한  듯하면 이제는 가사도 다 잊혀져가고 있는 70년 대 팝뮤직을 흥얼거립니다.

그러면 어느새 아까 헤어진 임도를 만나게 됩니다.

손에 잡힐 듯한 곳에 있는 돌멩이 몇 개와 화장실.

몇 년 만입니까?

추억을 끄집어 냅니다.

그러고 보니 5년하고도 3개월 정도가 지났군요.

2013. 10 27. 06:45이었습니다.

그때는 정맥꾼이라는 이름으로, 오늘은 둘레꾼이라는 자격으로 같은 자리에 서게 되는군요.

참 향복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야간 산행을 밥먹듯이 하면서도 힘든 줄 모르고.....

그런데 이 돌맹이들은 다 뭡니까?

아!

그렇군요.

둘레길 이사진들이 한 말씀들 하신 거군요.

기발한 착상입니다.

그리고 "진리가 삶을 자유롭게 한다."고요?

예.

제가 그 진리를 깨우치기 위해 걷고 있는 건가요?

스님.

저도 그 스승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면서 걷겠습니다.

그런데 그 스승님이 누구신가요?

혹시 이 부근에서 신선이 되신 고운 최치원 선생 아니신지요?

양이터재에서 북쪽으로 낙남정맥 능선을 타고 올라가면 지리산의 대표적 선인 고운 최치원 선생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고운동이 나옵니다.

그리고 지금 걷고 있는 이 루트는 고운 뿐만 아니라 옛 선현들이 덕산에서 악양이나 하동을 오갈 때 지나치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잠시 후 보게 될 수정사였던 오대사가 그만한 대접을 받을 수 있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만약 지리산 줄레길이 이 루트가 아닌 다른 루트를 이용하였다면 그만큼 '지리산 둘레길'이라는 이름이 퇴색되었을 겁니다.

이곳이 그런 곳입니다.

정맥 방화고지 방향을 보고 가방을 다시 맵니다.

이제부터 청암면을 떠나 옥종면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섬진강 수계에서 남강 수계 나아가 낙동강 수계로 권역이 바뀐다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이 옥종면 주민들은 낙남정맥을 넘어 하동으로 장을 보러가는 것보다 같은 수계에 있는 진주로 가는 게 덜 힘이 드셨을 겁니다.

생활권의 구분은 자연의 위치 혹은 배치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인문지리입니다.

이게 산줄기와 물줄기의 기본 원리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그랬나?

이 옥종면은 원래 진주땅이었습니다.

1906년 하동군으로 편입되었으니 산경표를 애써 무시하려는 일본인들의 작태가 보여지는군요.

최근 들어 그나마 산경표에 충실하려 했다는 노력은 청암면 소속이었던 궁항리, 위태리, 회신리가 옥종면으로 편입됐다는 것 정도입니다.

둘레길은 이제 다시 시멘트 임도로 바뀌고.... 

지도 #2

그런데 이게 붭니까?

아!

그렇군요.

ET가 불시착한 곳입니다.

아이들을 데려온 가족팀이었다면 많은 얘기들을 나누면서 내려왔을 겁니다.

식빵같이 생긴 이티의 머리.....

13:03

양이터재가 그 이름을 제공해 준 양이터 마을.

우틀하여, 

궁항마을을 보면서 내려갑니다.

弓項이니까 활목마을이라고도 부르는군요.

궁항마을 앞을 지나면서 1014번 도로를 만납니다.

그렇군요..

하동군 옥종면 궁항리에서 직통으로 하동을 가는 버스보다 옥종 경유 한 방에 진주로 가는 버스 운행 횟수가 더 많습니다.

관습입니다.

진주와 한 생활권이라는 겁니다.

낙남정맥 때문이죠.

13:17

마을을 빠져 나갑니다.

멋진 전원주택을 지나,

13:21

지도 #2의 '다'의 곳에서 우틀합니다.

시멘트 임도를 따르다 우측 이정목이 있는 지도 #2의 '라'의 곳에서 우틀하여,

산속으로 들어 갑니다.

편안해지는 느낌입니다.

(사) 숲길에서는 이렇게 봄이 되어 물러진 땅에 주의하라는 신호도 보내주시고.....

13:48

그러다 보면 우측으로 시양골을 보게 되고,

13:50

그러고는 이내 지도 #2의 '마'의 곳인 삼거리에서 시멘트 길을 만납니다.

여기서 좌틀합니다.

13:58

그러고 만나는 반가운 안내 이정목.

그런데 어디로 가라는 것이고 또 60m는 뭡니까?

그리고 오대주산이 어디 있는 산인데?

해도 해도 너무하는 안내판.

이정표가 가리키는 곳은 길이 아닌 그냥 숲입니다.

그곳으로 들어가라고요?

그리고 60m라는 숫자는 그곳을 60m 쑤시고 들어가면 오대주산 가는 길이 나온다는 얘기는 분명 아닐 테고....

그렇다고 60m를 가면 오대주산이 나온다는 얘기는 더 아닐 터!

14:02

조금 더 올라가니 오매불망 기대하던 곳의 팻말이 나옵니다.

백궁선원은 옛 오대사가 있었던 자리에 들어선 국선도 수련원의 이름입니다.

그리고 지금의 주산828.2m.

그 주산이 아까 본 안내판에는 오대주산이라고 되어 있었죠.

이 주산의 예전 이름이 바로 오대산이었습니다.

 

진양지의 기록에 의하면,

살천에서 고개를 하나 넘으면 다섯 봉우리가 줄지어 서 있는데 그 형상이 돈대처럼 생겼다. 오대사는 수정사라고도 하는데 고니 알 만한 수정 구슬이 있어서 여의주라고도 불렀다. 은실로 묶어 보물로 전해져 내려왔다. 오대사 승려의 말로는 물이 반 정도 담긴 동이에 구슬을 담그면 물이 즉시 넘친다고 한다. 오대사 뒤편에는 국가소유의 대밭이 있다.

 

한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수정사 주지 진억으로부터 지리산에 폐사한 오대사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곳은 수많은 봉우리가 둘러싸 있고 온갖 골짜기가 함께 모여들어 성현이 은거하는 곳이 있는 듯했다. 대각국사가 "여기는 큰 법이 머물 곳이다."라고 한 말을 듣고서 용기를 내어 찾아갔다. 그리하여 시주할 사람을 모집하고 순현이 몸소 장인들을 거느리고 도끼를 잡아 서둘러 조성하니 모두 86칸이었다. 수정 구슬 하나를 끈으로 묶어 무량수불상앞에 매달아 신심을 보여주는 표시로 삼았고 그 모임의 이름을 정했다. 1123년 7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1129년 10월에 마쳤다. 낙성법회를 사흘간 열었다. 

 

탁영 김일손(1464~1498)은 1489년 보름간 지리산 산행을 하면서 4. 20. 이곳을 답사합니다.

문에 들어서니 오래된 비석이 있는데 그 머리에 '오대산수륙정사기'라고 씌어 있었다. 읽으면서 좋은 글임을 새삼 깨달았다. 다 읽어보니 고려 때 학사 권적이 송나라 소흥 연간에 지은 것이었다. 절에는 누각이 장대하고 방이 매우 많으며 깃발이 마주 보고 있었다. 오래된 불상이있었다. 한 승려가 말하기를 "이 불상은 고려인종이 주조한 것입니다. 인종이 쓰던 쇠로 만든 여의도 남아있습니다."라고 하였다. 해는 저물고 비도 내려 절에서 묵었다.

 

지리산 수정사기는 권적(1626~1679)이 수정결사와 창건주인 진억이 폐사되었던 오대사를 새롭게 창건하게 된 내력을 쓴 글로 동문선에 실린 글입니다.

여기에는 대각국사 얘기도 나오며 수정사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경위도 나오며 낙성법회 때 지금은 없어진 함양 엄천의 엄천사 주지가 초빙 강사로 왔었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지금은 운영을 하지않는 국선도장인 백궁선원.

CC-TV로 감시를 한다며 엄격하게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굳이 안을 살피다 불미스러운 일을 벌일 필요는 없고....

백궁선원 입구에서 20여m 들어가면 우측으로 주산 오르는 등로가 있습니다.

여기서 30m만 가면 된다고 하는군요.

무슨 장난 놉니까!

진양지에 나오는 것 같이 이 부근은 온통 대나무 밭입니다.

14:12

거기서 10분 정도 더 걸어 진행을 하자 이번에는 주산 등산로라는 이정표가 나옵니다.

지도 #2의 '바'의 곳입니다.

이곳을 지네재라고 부르나 봅니다.

하동군 지명지에는 상촌에서 오율 넘어가는 고개를 지네 모양 같이 생겨 지네고개라고 부른다고 하였는데 이곳을 말하는 건가요?

오대산인 주산까지 1.5km라!

이정표는 이렇게 만들어야죠. 

참고도 #3

 

위 참고도에서 보듯 이 주산 역시 그 원천은 낙남정맥입니다.

이 참고도에서 천왕봉에서 내려온 시천천은 이 주산 엄밀하게는 중태단맥에 막혀 뻗지 못하고 휘어져 덕산 쪽으로 흐르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걷고 있는 둘레길은 산으로 올라가는 능선 산행이 아니니 중태천을 따라 만들어진 길을 따라 걷게끔 만들어진 것입니다. 

다시 둘레길 이정표를 따라 걷습니다.

14:30

칠성암 안내판에서 좌틀하고,

14:36

상촌제 옆 도로를 따릅니다.

너무 뒤로 조금 이따 진행할 갈치재가 보이는군요.

갈치재는 중태단맥과 두양단맥을 가르는 고개죠.

마을 끝에서 우틀하면,

위태리 버스 정류장이 나옵니다.

이 59번 도로는 낙남정맥의 도고지재를 지나 횡천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둘레길은 바로 아래에서,

14:40

좌틀하여 갈치재로 진행을 하여야 하죠.

둘레길 제10구간은 여기서 마치고 바로 제9구간으로 이어갑니다.

 * 우측으로 가면 고성산 - 동학농민전쟁 당시 일본군에 의해서 대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