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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TWINS/지리산 둘레길

지리산 둘레길 제15구간(가탄마을 ~ 법하마을 ~ 작은재 ~ 기촌마을 ~ 목아재 ~ 송정마을)10.5km

 

 

일두 정여창의 화개현花開縣

 

냇가의 부들은 바람결에 한들한들           風蒲獵獵弄輕柔

사월의 화개땅 보리가 벌써 익는구나       四月花開麥己秋

두류산 천만 겹을 다 보고 나서               看盡頭流山萬疊

한 조각 배를 타고 큰 강으로 내려가네     扁舟又下大江流

 

일두 선생이 탁영 김일손과 두류산을 답사한 후 아약성으로 내려와 태호-동정호?-의 물결을 구경했는데 이때 지은 시라고 합니다. 

 

드디어 마지막 구간으로 듭니다.

적어도 거리상으로는 그렇습니다.

가탄 마을 ~ 송정 마을까지가 10.5km, 송정마을 ~ 오미 마을 까지가 10.5km, 중간에 있는 목아재 ~ 당재까지가 8km.

그러면 29km가 되니 하룻거리로서는 충분한 구간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목아재 ~ 당재 구간은 이어지는 환종주 구간 중의 한 구간이 아니고 목아재에서 당재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 나오거나 겹침이 싫을 경우 다른 수단을 강구하여야 하는 그런 구간이기 때문입니다.

즉 기선岐線이라는 얘깁니다.

오던 길을 되돌아 나올 경우 당연히 8km를 더하여 거리는 37km로 늘어나게 됩니다. 

참고도 #1

 

사실 거리가 늘어나는 게 문제가 아닙니다.

산줄기 하는 사람들의 특성 때문에 그러는 것이죠.

되도록이면 반복 혹은 중복 산행을 피하려는....

부득이한 경우에는 위 원칙을 어기는 경우가 있기도 합니다.

 가령 능선에서 살짝 빠져 있는 삼각점이나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상 이름 있는 봉우리들을 답사할 필요성이 있는 경우가 그런 것이죠.

그럴 경우 구간을 잠시 이탈하여 그곳을 다녀오느라 왕복 산행을 하는 경우가 그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위 목아재 ~ 당재 구간은 이와는 달리 독립된 구간이므로 이와 동시同視할 것은 아닙니다.

 

결론적으로 이 구간은 오늘 제15구간과 제16구간을 하면서 동시에 진행하기는 제 여건상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부득불 다음 보충 진행시 서너 시간을 할애하여 따로 진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도를 보니 목통교에서 당재로 접근하기가 용이할 것 같군요.

당재가 촛대봉 ~ 황장산 ~ 불무장등 ~ 날라리봉(삼도봉)에 있는 능선이니 만큼 그 루트를 이용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약 21km밖에 안 되는 오늘 구간은 당일치기로 진행하고 일찍 귀가할 수 있도록 계획을 잡습니다.

KTX 첫차를 타고 익산역에서 환승하여 구례구에 도착합니다.

08:35 버스를 타고 터미널에서 08:50 시외버스로 환승하여 화개시외버스터미널에 내립니다.

 

지도 #1

09:07

화개터미널에서 쌍계사가는 1023번 도로를 따라 올라갑니다.

이른바 벚꽃십리길이죠?

쌍계사까지 4.1km인데 그 길 양옆으로 벚나무를 심어놨으니 초봄 벚꽃놀이가 장난이 아닐건데 올해는 이상 기온 때문에 완전히 망쳤다고 합니다.

어쨌든 그런 동네니 화개하면 花開라고 하여 "꽃花이 만발하게 핀開 동네'여서 '화개'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하는 화개면사무소의 설명이 조금도 이상하게 들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말을 보면 그 발음이 변천하는 과정에서 본래의 의미와는 전혀 다른 뜻으로 바뀐 예를 수도 없이 보게 됩니다.

가령 '곶'이 들어간 지명도 한자로 바뀌는 과정에서 엉뚱한 단어로 바뀌게 된 것이죠.

가장 흔한 경우가 花나 華로 바뀌게 되는 경우인데 이는 '꽃'이 '곳- 곶 - 곧'과 발음이 거의 같다보니 생기게 된 일입니다.

이는 '곶串'을 '꽃花'으로 잘못 알고 쓴 경우도 있을 수 있겠지만 좀 더 예쁘고 아름다운 이름으로 쓰려하다 보니 생긴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여하튼 이곳도 화개천이 흘러내려오다 섬진강으로 삐죽 튀어나온 모양을 보고 '곶'이라 부른 것이, 신라 경덕왕 이후 지명을 한자화 하는 과정에서 串과 발음도 같으나 훨씬 예쁜 이름인 花를 쓰게 됐던 것이고, 2음절의 이름을 고수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관습상 한 글자를 더 첨가하다 보니 이왕이면 '활짝 핀 꽃'을 연상시키는 '開'를 넣어 花開가 된 것입니다.

이런 예는 인천의 양화진이나 서울의 양화대교 등이 그 예인데 양화대교도 사실 버드나무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름입니다.

벚나무 길을 따라 걸어,

09:25

법하마을 입구에 도착합니다.

여기서 옷을 갈라입는 등 간단하게 준비를 마치고 마을로 들어섭니다.

가탄마을에서 400m 정도 진행한 곳입니다.

지난 구간 마무리 지점인 가탄마을과 그 뒤로 대비마을이 보입니다.

이 법하마을을 法下라는 한자어를 쓰니 곧 사하촌寺下村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화개천을 따라 절이 많이 있으니 그 절의 뒷바라지를 하며 사는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곳이라는 의미겠죠.

지리산에 절이나 암자가 많은 이유는 문수보살과 관련이 있고 그 문수신앙이 기돗발이 있다는 믿음으로 연결이 됩니다.

교종에서 선종으로 넘어가는 과정에 수행을 위한 기도처로 지리산 만큼 훌륭한 장소는 없었나 봅니다.

오죽하면 예로부터 불도佛都 혹은 승도僧都지리산에서는 산까마귀도 염송을 한다고 하였겠습니까?

09:33

우측으로는 저수조가 그리고 좌측으로는 케른이 있는 삼거리에서 좌틀합니다.

좌측으로 차밭에서 일을 하는 분들이 사람이 지나가도 모를 정도로 열심히 찻잎을 따십니다.

우측 산자락을 잡고 좁은 길로 들어서면,

좌측으로는 취나물 같은 것들이 심어져 있는데.....

취나물 맞나요?

저는 그런 걸 잘 모르다보니.....

둘레길은 좌측으로 틀어 계곡을 건너 편백나무 숲으로 들어섭니다.

이런 숲으로 들어오면 비로소 큰숨을 들이쉬게 됩니다.

계속 치고 올라갑니다.

사면을 한 자락 치고 올라가면,

큰 키의 조릿대 군락지를 지나게 되고,

09:59

그러고는 이정목이 난립하고 있는 작은재입니다.

지도 #1의 '가'의 곳입니다.

둘레길 이정표는 등산로 이정표에 비해 자그만한 게 아주 귀엽습니다.

여기서 우틀하면 황장산 ~ 불무장등 ~ 날라리봉(삼도봉)으로 오르게 됩니다.

이름들이 재미 있죠?

삼도봉을 지나 도계를 따라 내려오면서 처음 만나는 실명을 가진 봉우리가 불무장등인데 이 이름이 어렵다. 어떤 이들은 산의 모양 가지고 이름과 연결시켜 대장간의 화로인 '불무(풀무)'와 같은 형상이라고 단정 짓기도 한다. 그래서 불무장등이라는 거다. 또 다른 이들은 보통은 不無長嶝이라고 써서 '우두머리 봉' 혹은 '높은 산' 정도로 볼 수 있지만 그 의미도 선뜻 와 닿지 않는다. 산 이름은 그렇게 아무렇게나 막 지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명에는 그 지역 주민들의 의지, 염원, 주관 등에 의해 결정되기 마련이다. 그러니 생김새보다는 종교, 풍속, 생활상 등이 녹아들어 있을 것이니 그 지명을 파악하는 것은 그 지역의 역사를 아는 것과 같다 할 것이다.

 

살펴보자. 사실 지리산 자체가 승도僧都 혹은 불도佛都라고 하였으니 불교 용어와 관련지어 본다. '불무'라는 발음에 주의를 기울여 본다. 지리의 서쪽을 책임지는 제1봉이 반야봉이다. 이 반야봉이 지리산에서 갖는 지위를 느껴보기 위해 반야봉으로 올라보면 더 확실해진다. 반야는 지혜요 문수를 일컬음이다. 화엄사를 개창하였다는 연기조사鷰起祖師는 문수보살을 원불로 삼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 화엄사가 있는 산 이름도 대지문수사리보살大智文殊師利菩薩의 이름을 따서 智利山이라 부르게 되었고 문수보살은 보살 중에서 상수에 있는 보살이어서 특히 그 보살이 계시는 산을 청량산淸凉山이라 부르니 이 지리산의 또 다른 이름은 청량산이기도 하다.

 

어쨌든 이 반야가 불가에서 말하는 깨달음과 참모습을 아는 최고의 지혜을 뜻하니 이 반야봉이 불모佛母 혹은 절집을 뜻하는 불묘佛廟였다는 애기다. 그러니 이 반야봉의 기를 받아서 내려가는 줄기 즉 이 긴 능선의 이름은 '반야장' 그리고 그 능선 중의 첫 봉우리이니만큼 '반야장등'이라고 써야 맞을 것 같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반야봉''반야장등''반야'가 중복이 되는데 지명에서는 가급적 이런 중복 현상을 피해야 한다. 그래서 반야의 다른 이름인 '불모'를 썼고 '불모장등'이라 이름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불모장등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음운변화를 일으켜 '불무장등'이 되었다는 것이다. 즉 그 '불모'란 발음이 '불무'가 된 것이다. 이럴 경우 반야봉에서 내려오는 기날라리봉 즉 삼도봉에서 능선을 타고 내려와 불무장등 ~ 황장산을 지나 섬진강과 화개천이 만나는 합수점으로 뻗치는 길고 큰 줄기(長嶝)가 된다는 것이다.

 

날라리봉 얘기도 할까요?

 

여기서 좀 더 진행을 하자. 그러면 이름도 재미있는 날라리봉’1501m이다. 어감이 좀 좋지 않았나? 공원관리공단에서는 경상남도, 전라남도, 전라북도 등 삼 개 도가 만나는 곳이라 하여 1990년대 초 삼도봉으로 개명을 했다. 실은 이 봉우리가 낫의 날같이 뾰족하다고 하여 낫날봉이었다. 그게 시간이 흐르면서 음운이 변하여 날라리봉으로 되었던 것인데 애꿎게 이름만 나무란 꼴이다.

여기서 팁 하나 더! 우리나라 백두대간에는 세 개의 삼도봉이 있다. 그 셋 중 하나가 이 삼도봉이며 다른 하나는 경상남도 거창군과 전라북도 무주군 그리고 경상북도 김천시 등 세 개의 도가 만나는 초점산1249.1m이라는 이명을 가진 봉우리이고, 마지막 하나가 전라북도 무주군과 경상북도 김천시 그리고 충청북도 영동군 등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가 만나는 민주지산 바로 옆의 삼도봉1177.7m이다.

 

  -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64쪽

 

이제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을 버리고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으로 들어갑니다.

편백나무 숲과 조릿대 군락지를 번갈아 지나면 전라남도와 경상남도의 도계인 작은재다. 여기서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을 만난다. 악양을 지난 지 얼마 안 돼서인가? 박경리의 소설 토지가 생각나는 곳이지만 엄연히 한자 표기는 土旨이다. 화엄사에 도자기를 만들어 납품하던 토지처土旨處가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동으로는 경상남도 하동과 접해있고 서로는 노고단 ~ 형제봉 ~ 월령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그리고 북으로는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과 이웃하고 있다.

직진합니다.

이틀동안 비가 온 다음이라 그런가요?

물이 많습니다.

질퍽질퍽한 곳도 많고 습지도 여러 곳 나타나고.....

좌측으로 호남정맥 줄기가 살짝 보이는군요.

좌측 아래의 하천산692.3m, 우측으로 도솔봉1153.2m이 우뚝하고 육안으로는 좌측 중앙에 백운산1228m이 뾰족한데 사진으로는......

계속 산자락을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는 구간이군요.

중간에 쉼터도 한 군데 있고....

여름에도 시원하게 지날 수 있을 정도로 햇볕이 완전히 차단된 숲속입니다.

10:17

지도 #1의 '나'의 곳으로 나가니 드디어 조망이 터집니다.

바로 우측으로 왕시루봉이 보이는군요.

왕시루봉이라.....

문수보살이 반야봉에 앉아 설법을 할 때 그 법문이 저 왕시루봉에 부딛쳐 떨어진다고 하죠.

그 법문을 받아 듣는 곳이 바로 문수사이고......

지리산에는 외국인 선교사 휴양촌이 두 군데 있다. 하나가 노고단 대피소 바로 옆에 있는 것이고 두 번째가 왕시루봉1240.2m에 있는 것이다. 1961년 순천, 전주 등에서 활동을 하던 선교사들이 황폐화된 노고단의 휴양촌 대신에 이 왕시루봉에 휴양촌을 건설하게 된 것이다. 풀장과 주거 시설 등 12동의 건물이 남아 있는데 '지리산기독교선교유적지보존연합'에서 관리하고 있다. 왕시루봉은 이렇게 이 루트로 진행하거나 노고단 하부로 진행하는 방법 혹은 왕시루봉 옛길(KBS 송신소 옆)을 통과하여 10대 중 하나인 문수대를 지나 진행하는 방법 등이 있다.

 

노고단을 한 번 볼까? 노고단의 랜드마크는 아무래도 KBS 송신소 철탑이다. 예전에는 그 옆으로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어서 그 훼손이 극심했다. 노고단 부근이 훼손되기 시작한 건 1922년 경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한일합방이 되면서 총독부는 천연 보고인 지리산을 학술 목적이라는 그럴듯한 핑계를 대며 지리산과 백운산 일대를 임의로 동경제국대학의 '지리산 연습림'이라는 이름으로 관리권을 넘긴다. 1905'가스라 - 태프트 밀약' 등을 거치면서 한층 가까워진 미국과의 외교관계를 유지했던 일본은 선교 활동차 한국에 들어온 미국인 선교사(미국 남장로 교회)들로부터 한국의 풍토병을 피하기 위한 휴양촌 조성을 부탁받는다.

 

그들이 길지吉地로 선정한 곳이 지리산의 노고단 부근이었고 그들은 그때부터 중일전쟁의 시작으로 일본과의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한 1940년경까지 약 15년 동안 호텔과 주택, 수영장 그리고 9홀 규모의 골프장 등 56동의 건축물이 지어졌으며 여기에는 한국인 직원 50여 명이 상주하며 관리하였다.

 

물론 이 건축 자재들은 지리산 일대에서 채취하고 벌채한 돌과 나무였음은 물론이다. 선교사들이 본국으로 철수하고 해방이 되었으나 주민들이 내부시설물들을 떼어가기도 했고 1948년 여순사건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시설물에 대한 소각 등으로 인근 삼림까지 피해를 주게 되었다. 전투기의 폭격과 군시설물의 설치, 불법 도벌 등으로 훼손은 더 심해졌으나 19671229일에 이르러서야 국립공원으로 지정됨으로써 본격적으로 복원과 보존이 이루어지게 되어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왕시루봉에서 봉애산 ~ 542.8봉 ~ 483.3봉 ~ 추동마을로 떨어지는 능선을 따라 기촌마을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멀리 오산541.7m이 보이는군요.

그 뒤의 산줄기가 지리산 만복대에서 가지를 친 서시지맥이고.....

시멘트 길을 따라 무조건 고도를 낮춥니다.

감나무 과수원 사이로 난 길이 꾸불텅꾸불텅 이어져 내려갑니다.

귀여운 강아지 4마리가 꼬랑지를 흔들며 쫓아오니 어미가 난리가 났습니다.

한 마리 가져오고 싶을 정도로 이쁜 녀석들입니다.

가라고 난리를 치니 다시 돌아가더니만 빼꼼히 쳐다봅니다.

10:33

우틀하여,

865번 도로를 따릅니다.

이 도로가 연곡사와 피아골로 올라가는 길이죠.

그 길은 이 지리산 둘레길 제15-A 구간인 목아재 ~ 당재구간과도 당치마을 전에 만나게 되죠?

기촌마을이 내려다보이고 좌측으로 섬진강이 흐른다.

우측으로 내서천이 흐른다. 이 골 위로 연곡사가 있다. 그래서 골안 전체를 연곡鷰谷이라 부른다. 그러니 이곳은 연곡골의 바깥이라 하여 외곡리라 불렀다. 280여 년 전 행주 기씨가 터를 잡아 정착했다고 해서 기촌마을이라 불리다 기씨들이 다른 곳으로 이주하고 다른 성씨들이 들어오자 기촌(基村)이라 하였다.

 

연곡사가 있어 연곡천이라 부르는 지천을 합류한 내서천 옆 865번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그 이름도 유명한 피아골이다. 피아골이라는 이름은 처음 듣는 이들에게는 조금은 섬뜩한 감을 준다. 빨치산이나 한국전쟁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전에 이 일대에는 피밭 즉 稷田이 많아 피밭골이라고 부른데서 유래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적이 안심들을 하게 된다. 그 피아골로 올라가는 길에 고찰 연곡사가 있다.

연곡사나 연기조사 그리고 불교남방전래설 등은 둘레길 제15-A 구간을 진행할 때 연곡사에 들러서 자세히 보도록 하죠.

추동교를 건너면서,

날라리봉이 백두대간에서 불무장등 능선을 내줄 때 그 사이에서 발원하는 내서천을 보면서 건넙니다.

날라리봉 즉 삼도봉과 불무장등이라는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황홀합니다.

이름만 불러도 지리 주릉이 손을 내미는 듯 싶습니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바로 시멘트도로를 따라 진행하면,

여기도 녹차밭이 즐비합니다.

아주머니가 열심히 찻잎을 따고 계십니다.

좌틀하여 올라가는 이곳도.....

숭모재를 지나 좌틀합니다.

좌측 추동마을과 우측이 내서천 옆 기촌마을.

11:01

드디어 섬진강도 확실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비의 여파인가요?

강물이 좀 흐립니다.

다시 산자락을 타고 돌다가,

11:10

지도 #1의 '다'의 곳입니다.

이 고개도 불무장등에서 내려오는 고개이니 둘레길이 곧 산줄기가 되어 목아재로 진행하게 됩니다. 

지도 #2

고도를 높입니다.

학생들 체력단련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듯 싶습니다.

11:33

지도 #2의 '마'의 곳인 483.3봉 갈림 고개를 지나, 

지난 구간에서 봤던 이름 모를 풀들이 누운 곳을 지나니,

11:45

바로 목아재입니다.

목아재에는 안내판과 이정표가 있으며 이곳에서 지리산 둘레길 제15-A 구간이 분기하게 됩니다.

모두冒頭에서 이 구간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씀드렸고.....

잠시 쉬면서 주위를 둘러봅니다.

드디어 지리 주릉이 눈에 들어오는군요.

우측 당재에서 거슬러 올라가면 통꼭지봉과 삼도봉이 보이고 그 바로 좌측으로 반야봉이 머리 끝만 살짝 보이는군요.

주릉 우측으로 토끼봉과 삼각고지가 이어지고....

좌측을 아무리 보려해도 노고단은 보이지 않고 우측으로는 황장산이 안 보입니다.

잠시 쉬다가 일어납니다.

둘레길의 이음은 능선쪽입니다.

산자락을 타고 조금씩 고도를 낮춥니다.

우측으로 왕시루봉을 보려고 애를 쓰고....

평범한 길을 따라 계속 낮춥니다.

섬진강 건너가 아까보다는 조금 더 시야가 트이는군요.

저 동네가 구례의 끝 간천면 운천리인데 주거지가 무지 높은 곳까지 올라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을의 맨 위에 있는 건물이 삼능건설 연수원 건물이고 그 좌측이 하천산692.3m임은 아까 본 바 있습니다.

그러니 그 우측의 밥봉934.6m이 호남정맥의 도솔봉1153.2m에서 분기된 봉우리 중에서는 가장 중심이 되는 봉우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럴 때 그 뒤로 백운산이나 도솔봉의 머리끝을 살짝이라도 볼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보너스입니다.

어제 비가 온 덕입니다.

12:05

그러고 만나는 지도 #2의 '바'의 곳.

지도에서 보다시피 봉애산611.7m에서 내려오는 줄기입니다.

그러니 이 뒤의 희미한 등로를 따라 오르면 봉애산 ~ 1020.8봉 ~ 1213.1m을 거쳐 왕시루봉으로 오르게 됩니다.

아주 중요한 포스트가 되는 곳입니다.

좌측으로 섬진강 건너 백운산이 조금 더 확실하게 보이는군요.

그리고 동쪽으로는 형제봉과 신선봉이 보이고....

부족하나마 이렇게 보면서 걸을 수 있다는 기쁨이 있는 곳입니다.

12:09

지도 #2의 '사'의 곳인데 바위가 좀 많이 보입니다.

둘레길은 여기서 좌로 틀어 산자락을 타고 진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산꾼이라면 여기서 그냥 직진하여 442.5봉을 넘어 진행하는 게 훨씬 간결하고 깔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둘레길은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입니다.

442.5봉을 우회하여 진행합니다.

부드러운 길을 따라 걸으며 고도를 낮춥니다.

12:27

드디어 제15구간을 마무리하는 시간이 다가오는군요.

다음 진행은 사진의 우측 계곡 방향으로 오르는 산길이 아니고 좌측으로 진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뒤로는 왕시루봉으로 올라가는 능선이 너무 부드럽게 보입니다.

그렇죠?

왕시루봉 전위봉입니다.

좌측으로는 섬진강 건너 계족산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계족산에 대해서는 다음 구간에 자세히 보기로 합니다.

12:32

삼거리에서 과수원 시멘트 길을 버리고 좌틀하면 시멘트 포장을 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틀이 보입니다.

요새 둘레길을 하면서 마을을 지나다 보면 여기저기 길에 포장공사를 하느라 난리들이더군요.

우틀하여 '황토민박' 앞으로 지나면 한천을 건넙니다.

한천이 찰 '寒'자를 쓰는 걸 보니 한수라는 게 찬물이라는 말이군요.

안한수는 그 한수골 안에 있다는 얘기고...

후배 '한수'가 생각나서 한 얘깁니다.

12:44

그러고는 삼거리로 나와 제15구간을 마무리합니다.

그런데 개념도가 잘못 되었군요.

둘레길 '15-A' 구간에 설치하여야 할 것을 엉뚱한 곳에 세웠습니다.

그늘에 앉아서 간식을 먹고는 둘레길 제16구간을 준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