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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TWINS/지리산 둘레길

지리산 둘레길 제16구간 (송정마을 ~ 석주관갈림길 ~ 파도리 ~ 요양병원 ~ 문수저수지 ~ 오미마을) 10.3km

두류산 승경지를 죄다 기억하는데            頭流勝處備嘗韻

이곳을 찾아오니 물맛이 더욱 좋네           此地來尋水更甘

타향의 산도 고운 줄을 누가 알리오?         誰識異鄕山亦好

강 건너편 초가 주점은 호남 땅이네.         隔江茅店是湖南

 

영남 땅을 지나 호남 땅으로 들어왔습니다.

이제 야구로 치면 정규 이닝 중 마지막 회인 9회입니다.

초 공격이든 말 공격이든 어쨌든 9회입니다.

 

두서없이 둘레길을 진행했지만 우연찮게 그 마지막을 장식하게 된 곳이 올해 지리산 둘레길을 처음 시작한 구간인 오미마을이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좀 말랑말랑하게 본 지리산 둘레길 여정이었지만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난이도에서는 조금 떨어질 지는 몰라도 둘레길이 주는 숙제는 무거웠습니다.

확실히 산줄기 산행도 그렇지만 둘레길 역시 그냥 걷는 것만으로는 아무 맛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지리산이 가지고 있는 역사, 문화, 종교, 풍습 및 그와 관련된 설화 등을 예습하고는 그걸 확인하는 작업을 하다 보니 지리산 자체가 미지의 세계라는 걸 느끼게 되었습니다.

 

과연 지리산은 어머니의 산 그 자체였습니다.

무조건 베풀어 주고, 알려 주고, 품어 주고 그리고 보살펴 주는 ....

그렇게 지리산은 넉넉함과 후덕함 그 자체였지만 다만 공부를 해야 한다는 부담을 주었습니다.

그러고는 걷고 있는 지리산 주변만을 보지 말고 지리산 주릉을 중심으로 능선과 능선을 이어서 살펴보라는 충고도 들어야만 하였습니다.

그 이야기는 곧 지리산을 예워싸고 있는 다른 산줄기들을 보고 지리산을 싸고 흐르는 물들을 보라는 얘기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게 곧 지리산의 역사요, 문화요, 지리였습니다.

둘레길 한 번 돌았다고 지리산을 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지리산 종주를 몇 번 하고, 지리의 가지 능선을 수 없이 탔다고 하여 지리를 안다고 말하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그러기에는 지리산은 너무 방대하고 너무 여사가 깊은 산이었습니다.

 

그런 걸 애써 배우려고 하는 것 자체가 능력 밖이었습니다.

그런 처지의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그저 예습을 하고, 지리에 들어서는 확인 작업을 하고 그러고는 이렇게 부족한 글을 쓰는 것 뿐이니......

그래도 현재로서는 그게 최선이니 마지막 구간을 다한 후 심층 취재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매워야 할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지리의 처음과 끝을 태극종주라는 이름으로 한 번 걸어보면서 산 아래를 살펴봐야겠습니다.

둘레길을 걸을 때 봤던 것들을 떠올리면서 말입니다.

 

지도 #1

연이어 지리산 둘레길 제16구간은 시작합니다.

둘레길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우틀합니다.

날씨가 무척 뜨거워졌습니다.

13:04

잠시 쉬었던 간식 타임을 마치고 일어섭니다.

들머리는 온전한 산길입니다.

이런 날 아스팔트 위나 시멘트 포장도로를 마냥 걷는다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일이 못 됩니다.

돌계단을 따라 오르며 서서히 고도를 높입니다.

13:07

평이한 길을 걷게 되면서,

13:13

무명봉 사면을 가로 질러 걷습니다.

고도 편차는 크지 않지만 오르락내리락을 몇 번 반복해야,

13:26

지도 #1의 '가'의 곳으로 오를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우틀하면 554.3봉을 거쳐 832.4봉 ~ 1213.1봉 ~ 왕시루봉1240.2m으로 진행을 하게 되죠.

좌틀하면 석주관칠의사묘로 가게 되고....

왕시루봉으로 가는 길은 나무가 가로로 놓여져 있습니다.

이리로 가지 말라는 일종의 진입금지 표시입니다.

산꾼들은 자기들이 다 알아서 넘어가든 말든 알아서 진행을 하니 둘레꾼만큼은 넘어가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그런데 석주관이라.....

석주관은 우리나라의 지형 그리고 지리산의 지형과 관련하여 아주 중요한 곳입니다.

그 지형적인 특성이 임진왜란 때 안타까운 사건을 유발하였고 이는 구한말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나라의 행정구역의 경계는 보통 능선이나 물줄기로 구분하는데 이곳의 경우는 예외였었나 봅니다.

조금 이따 큰 개울을 만나면서 석주관에 대해서 얘기를 더 하기로 하죠.

직진하여 내려가면 이내 편백나무 숲을 지나게 되는데 주변에 바위들이 많이 있군요.

이 돌들도 석주관성과 관련이 있었겠죠?

어쨌든 주변에 돌이 많아야 석성을 쌓기 쉬웠을 테니까 말입니다.

13:38

시끄러운 물소리를 내려 큰 개울 하나가 나옵니다.

이 물이 석주곡수가 되는 물이군요.

지도 #1의 '나'의 곳입니다.

 

출발 후 1.8km지점이며 이 물은 석주곡수와 합류한 뒤 섬진강으로 흘러든다. 석주곡수길은 바윗돌로 자연스럽게 연결한 산중 징검다리로 정겨울 뿐더러 최근 내린 비로 수량까지 많아 시원한 느낌이 든다. 계곡을 내려서면 남도 이순신 길 백의종군로 갈림길이 나온다. 산 아래 골짝을 따르면 900m지점에 석주관 칠의사 묘가 있다주변에 바윗돌이 쌓여 있지만 석주관 성터는 아니다. 이 일대가 칠의사 및 의병들이 왜군에 맞서 옥쇄 전투를 펼친 피의 전장이다

 

동쪽으로 25리에 있으며 좌우로 산세가 기구하고 강변에 길이 있는데 사람과 말이 가까스로 지난다. 북쪽에는 커다란 협곡이 있고, 그 안에 수십 리의 큰 강이 있다. 고려 말기에 왜를 막기 위하여 강의 남북쪽에 성을 쌓았는데 지금은 없어지고 터만 남았다. 여기에서 호남과 영남으로 나누어진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있는 석주관에 대한 설명이다. 이에 의할 때 지금의 도계가 아닌 이 석주관을 경계로 양도가 나뉘었음을 알 수 있다.

 

앞서 얘기한 바 있다. · 호남을 잇는 4대 관문은 안음의 황석산성, 진안의 웅치, 운봉의 팔랑치 그리고 이 구례의 석주관이었다. 이들 관문은 동서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담당했다. 황석산성은 가야를 멸망시킨 신라가 백제에 대항하기 위하여 쌓은 석성이고, 팔랑치는 임진왜란 때 김경남이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넘어오는 왜구를 지키던 곳이며, 고려 말에는 운봉을 넘어온 왜구의 잔당들이 황산전투에서 이성계에게 대패를 한 곳이다. 이 석주관도 왜군이 호남을 침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나야 할 곳이었다.

 

그러니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라도 방어사 곽영이 왜구를 막기 위하여 쌓은 성이 바로 석주관성이었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구례현감이자 석주관만호였던 이원춘( ? ~ 1597)이 결사적으로 항전하였으나 패퇴하여 결국 남원성에서 명나라 장수와 함께 싸우다 결국 전사하였다. 이때 구례의 선비였던 호남의 부호 왕득인이 왜적들의 만행을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어 사재를 털어 백수십 명의 의병을 모아 이곳을 지키다 결국 목숨을 잃었고, 같은 해 11월에는 그의 아들 왕의성이 이정익, 한호성, 양응록, 고정철, 오종 등과 의기 투합하여 화엄사의 승병과 함께 전투를 벌이다 순절한 곳이 또한 이곳이다. 구례현감 이원춘과 이때 순절한 의병장들을 석주관칠의사라고 하여 묘소와 추념비를 세웠다. 이원춘은 남원 충렬사에도 배향되었다.

 

이렇듯 이 길은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길이었으니 1597년 파직 당하여 백의종군하던 이순신 장군이 삼군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되어 군사, 무기, 군량, 병선 등을 모아 명량대첩지로 이동하던 구국의 길로 구례군에서는 이 역사적인 길을 조선 수군 재건로라 이름하였다. 1597. 9. 22. 난중일기에는 그 내용을 이렇게 기록했다.

"자모장 왕득인이 군사 50명을 데리고 숙성치를 넘어와 조경남 진陳에 이르러 비책을 논의한 다음 석주관으로 간다.구례사람들의 따뜻한 대접을 받다."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로는 이미 남원에서 살펴본 바 있다.

 

한편 구한말에는 동학농민군이 경상도로 진출하기 위하여 민보군과 격전을 치렀는데 지리북부에서는 운봉에서 여러 차례 전투가 있었다. 반면 지리 남부에서는 광양과 순천의 농민이 하동과 진주로 나아가 영·호남연합농민군을 구성하기도 하였는데 이때 그들이 지나던 길이기 바로 이 석주관이다.

 

13:46

좁은 길을 따라 진행합니다.

여러 명이 걷기에는 좀 위험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게 어딥니까?

이런 길 걷기가 어디 쉽습니까?

남서쪽으로 조망이 트이는군요.

아!

계족산.

호남정맥의 월출봉766.2m에서 가지를 쳐 흘러내려온 산이죠.

그 사이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저 간문천이고.....

우리나라 대부분의 물줄기들은 보통 남으로 흐르게 되어 있는데 몇 안 되는 물줄기들이 북으로 흐르다 큰 물줄기로 합류가 되죠.

호남정맥과 낙남정맥 때문에 그렇습니다.

호남정맥의 북류하는 물줄기들은 섬진강으로, 낙남정맥의 그것들은 남강이나 낙동강으로....

계족산鷄足山에 관해서는 조금 이따 얘기하죠.

다시 숲으로 들어 진행하다,

13:57

쉽터를 만나 여기서 크게 우틀합니다.

13:58

길 건너 진행할 길이 보이는데 둘레길은 윗길이 아니고 아랫길입니다.

14:00

원송마을 임도에내려서서는 31-1 이정목의 지시를 받습니다.

우측의 민가 한 채가 있는 곳의 길이 좋으나 이는 둘레길이 아닙니다.

아까부터 계속 따라오던 이정목이죠?

석주관 삼거리부터는 지리산 둘레길과 백의종군로가 겹친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 구간은 둘레길을 만드느라 좀 확장 작업을 한 곳 같습니다.

새롭게 묘목을 심어놨는데 일부는 잎이 누렇게 말라가고 있습니다.

반이나 살게 될 지 모르겠습니다.

20년 후 이곳을 다시 찾았을 때 이 녀석들이 온전하게 자라서 저를 반겨주면 좋으련만.....

하긴 기억의 저 편에 있는 얘기가 될 것이지만.....

14:10

지도 #1의 '다'의 곳을 지나,

한층 넓어진 숲속을 걸으면 좀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군요.

14:20

153.1봉을 우측으로 틀어 파도리로 들어섭니다.

전원주택 택지 조성 공사 같습니다.

아주 요지에 택지를 개발하고 있으니 분양은 잘 되겠군요.

 

지도 #2

오산541.7m과 서시지맥.

그리고 구례의 진산 봉성산165.6m.

택지 개발 현장을 지나면서 다시 시멘트 길로 바뀝니다.

파도 저수지에서 내려오는 수량이 풍부한 개울을 지나,

좌측의 왕시루봉을 봅니다.

곧 저 봉우리에서 내려오는 길과도 만날 것입니다.

좌측으로는 계족산 올라가는 능선 그리고 우측 뒤로 오산.

그 앞이 오미리의 운조루와 관련 있는 오봉산174.8m입니다.

지난 번 첫 구간으로 오미마을 ~ 난동마을 구간을 할 때 자세히 봤었습니다.

그러고는 계족산.

한자로 鷄足山이라고 쓰니 말들이 많습니다.

닭발같이 세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이라거나 혹은 지네가 많아서 지네와 천적인 닭을 빌어 지네를 없애기 위해 닭을 풀어놨다 하여 계족산이라 불렸다고도 합니다.

 

송정마을 출발 후 2.9km에 닿았을 때 기둥하나로 세워진 오두막과 통나무벤치시설을 만난다. 섬진강 건너 유명사찰 사성암을 품고 있는 오산과 주변 산을 조망할 수 있다.

 

저 섬진강을 남원에서는 순자강鶉子江, 곡성에서는 압록강鴨綠江, 구례에서는 잔수강潺水江, 광양에서는 섬진강蟾津江으로 불리는 등 그 이름도 다양하다.

 

가까이 섬진강을 건너는 간전교가 보이고 강 건너 간문천이 섬진강으로 합류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좌측이 광양시 간전면이고 우측이 문척면이며 그 면계에 종긋 튀어나온 산. 계족산702.8m이다. 살펴보면 구례의 옛 이름은 봉성이었다. 지금의 구례군지에 해당하는 봉섭읍지를 보면 계족산은 문척면과 간천면의 경계에 있는 산.”이라고 하면서 석벽의 모습이 닭의 벼슬을 닮았다. 좌우로 나뉜 줄기가 닭의 발과 같은 고로 이름이 생겨났다.”고 적고 있다.

살펴보건대 우리나라에 계족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이 몇 있다. 아무래도 계족산이라고 하면 우리가 갑천(식장)지맥을 하면서 지나는 대전의 계족산424m이 대표적이다. 이 계족산의 유래를 보면 대전광역시 동쪽에 있으며, 산줄기가 닭발처럼 퍼져 나갔다.” 하여 계족산이라는 말도 있고, “지네가 많아 이를 퇴치하고자 닭을 풀어놨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말도 들린다. 뭔가 꺼림칙하다. 말도 안 되는 허무맹랑한 얘기로 들리니까 말이다.

 

여기서 평소 필자가 존경하는 '도솔산인' 이영규 님으로부터 계족산 얘기를 들어보자.

 

계족산은 인도 동북부 비하르Bihar주에 있는 꿋꾸따빠다산屈屈晫播陁山Kukkutapada-giri을 당나라 현장법사가 대당서역기에서 계족산으로 번역을 하여 생겨난 이름이다. 계족산은 마하존자가 석가모니 부처님께 받은 가사를 미래에 오실 미륵불에 전하기 위해 이 산의 바위틈에 들어가 선을 행하면서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는 산이다. 3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이다.

 

그러니 계족산의 닭발 모양을 닮은 것이라는 뜻은 원래의 말과 무관하지는 않으나 적어도 위와 같은 뜻을 알고는 사용하여야 할 것 같다. 즉 우리나라의 계족산은 이런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지 반드시 산의 생김새와는 상관이 없을 거라는 얘기다.

 

참고로 범어梵語로 우리말의 ''giri '지리'란 발음이라는 것이 좀 심상치 않다. 가야국 시절 칠불사의 허황후의 설화나 범왕리라는 지명이 불교남방전래설과 맞물려 남의 얘기로 들려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쌍계사와 칠불사 그리고 불일암을 얘기할 때 다시 거론될 것입니다.

왕시루봉을 향해 오르고 있는 능선. 

계족산은 뒤로 호남정맥 방향으로 가고, 우측으로 흘러 오사과 연결이 되고....

아래로는 오봉산이 오미마을의 진산을 이루고...

그 우측끝이 오산.

계족산.

오산을 향하여.....

계족산과 간문천 그리고 그 뒤로 월출봉에서 이어지는 호남정맥.

14:43

반곡마을로 들어서서는 좌측으로 구례요양병원을 지납니다,

구례요양병원을 지나 시멘트 길 삼거리에서 좌틀합니다.

요양병원에는 입원 환자들이 가족들과 산책을 하는 모습도 보이는데 마음이 아프군요.

생로병사야 정해져 있는 일이긴 하지만.....

시멘트 길을 따라 진행하면서,

좌측으로 드디어 오미마을을 봅니다.

섬진강과 오봉산 그리고 오산과 서시지맥 등을 살펴 봅니다.

산길을 잠시 걷다가,

15:03

쉼터를 지나고는,

15:11

지도 #2의 '라'의 곳을 지납니다.

지금은 전원주택지가 조성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이 길로 올라 왕시루봉으로 접근하였습니다.

물론 좌측으로 보이는 능선을 이용했을 수도 있을 겁니다.

산이야 어디로 오르든 산꾼의 자유이니까 말입니다.

15:13

다음 동네 뒤를 지나면,

15:16

지금은 철문으로 닫힌 이곳으로 내려올 수도 있고....

드디어 문수저수지가 보이는군요.

이틀간 비가 좀 내렸죠?

좌측 수문으로 물이 넘쳐 흐르는 모습입니다.

찻잎을 따시는 어르신.

지금 따서 내놓으면 돈이 된다고 하는군요.

수고 하십시오.

문수저수지 삼거리입니다.

우틀하면 문수사로 진행하여 왕시루봉으로 오를 수도 있고, 형제봉 능선을 타고 월령봉 ~ 형제봉 ~ 노고단으로 진행도 가능합니다.

문수저수지를 보고,

도솔봉과 계족산.

오산.

내죽마을를 보며,

묘판 다듬기에 한창입니다.

내축 마을을 통과하여,

토지천을 건넌 다음,

마을 회관을 지나 슈퍼에서 캔맥주 한 통을 사서 마십니다.

속이 다 시원해지는군요.

여기도 도로 포장공사 중.

이물은 인공수로죠?

토지천의 물을 끌어들여 오미마을의 너른 들을 적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노고단 옆의 무넹기와 같은 원리입니다.

이제 다 왔군요.

..........

오산.

 

 

수령 200년 된 당산나무를 보고,

15:52

운조루를 보면서 오늘 구간을 마무리합니다.

오늘 구간을 마무리한다 함은 지리산 둘레길 환종주를 끝냈다는 것이죠.

이 운조루에서 시작한 올해 둘레길을 8회로 마무리 지었으니 다음 번에는 바로 당재로 올라가서 둘레길 제15-A 구간을 진행하고 연곡사와 문수사를 들러야겠습니다.

그런 다음 용유담으로 가서 화산12곡을 보면서 벽송사와 실상사 그리고 화엄사를 취재하면 다 마무리가 될 것 같습니다.

정겨운 둘레길 이정목.

정말 고맙게 이용했습니다.

운조루.

왕시루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