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G TWINS/지리산

지리산 황금능선 가는 길(백무동 ~ 제석당 터~ 천왕봉 ~ 중봉 ~ 써리봉 ~ 국수봉 ~ 1005.7봉 ~ 안내원)

 

누구나 지리산 천왕봉은 오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천왕봉을 누구든 제 마음껏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천왕봉을 느끼는 방법은 제 각각일 것입니다.

즉 산을 읽고 산줄기를 보는 눈이 다 같을 수는 없다는 얘기죠.

암울한 시절이었던 1980년대 초.

지리산밖에 몰랐고 지리산만을 알며 지리산에 사무쳐 그 지리산에 파묻혀 살던 정원강 님은 세석에 있었습니다.

지리의 구석구석을 살필 수 있었던 그에게 천왕봉에서 아래를 내려다 볼 때 발끝에서 '之'자 모양으로 휘어 나가는 능선이 안 보일 리 없었습니다.

중봉 옆 써리봉에서 가지를 쳐 하나는 남명의 덕천서원 뒤로, 다른 하나는 외공리로 떨어져 시천천을 만나는 곳으로 떨어지는 능선.

그 능선의 중심에는 구곡산이 있어 구곡능선이라 불렸던 능선이었습니다.

지리산 천왕봉을 그리워 해 그 능선의 끝에 산천재를 짓고 지리산을 우러르며 살았던 남명 조식의 고장으로 흘러내리는 능선.

남명 사후 그런 스승의 뜻을 알고 있던 내암 정인홍은 스승의 뜻을 받들어 그 능선의 끝에 덕천서원을 세워 스승을 기렸습니다.

그러나 그 능선은 산죽으로 뒤덮혀 있어 사람들이 지날 수 없던 곳이었고 지리산 매니아라고 하는 이들도 접근이 어려운 곳이었습니다.

빨치산이나 토벌대도 접근이 용이하지 않았던 구곡능선.

 

그 능선이 1980년경에 이르러서야 사람들의 접근을 허용하게 됩니다.

바로 세석대피소 관리인 정원강 님에 의해서였습니다.

 

40여 년 전 세석산장 관리인이었던 정원강은 낫 한 자루를 들고 산죽 밭으로 악명이 높던 써리봉~구곡산 등로 개척에 나섰다. 그 가을 어느 날 오후 해가 저물 무렵 써리봉에서 마지막 작업을 마치고 뒤를 돌아보며 땀을 닦을 때, 써리봉에서 국수봉을 지나 구곡산으로 갈자 모양으로 휘어져 가는 능선이 덕천강가로 이어지면서 누런빛으로 반짝이는 모습을 보고 스스로 황금능선이라 이름했다. 당장이라도 구곡산으로 올라 써리봉으로 뛰어 올라가고 싶은 마음만 그득하다. 황금색으로 물결치는 산죽밭의 지루함이 오히려 멋진 분위기를 연출하는 빛의 조화로 그 이름도 구곡능선에서 황금능선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 졸저 '현오와 걷는 지리산' 201쪽 

 

늘 그리던 그 황금능선.

정원강 님 만큼은 아니더라도 늘 가슴에 맺혀 있던 황금능선.

지금은 기억속에서 사라졌지만 그래도 애잔하게 남아 있는 그 황금능선.

드디어 기회가 잡힙니다.

그리고 대원들도 베테랑들로 구성이 됩니다.

지리산 산신령을 꿈꾸는 존경하는 고남님은 자신의 지인에게도 전파하여 8인으로 구성됩니다.

우여곡절 끝에 매진되었던 버스표도 예매를 할 수 있어 무난하게 진행이 가능해 집니다.

 

2019. 5. 3. 23:50

남부터미널을 출발한 지리산함양고속버스는 제 시간인 03:40에 백무동 터미널에 도착합니다.

동서울에서 출발한 주보님도 만나고....

 

연휴이고 또 산방기간에서 해제된 첫 주 주말이니 동서울에서는 추가로 차량 1대를 더 편성했을 정도로 산꾼들이 지리로, 지리로 모여듭니다.

산은 여성대원이랑 다녀야 먹을 게 떨어지나요?

꽃님님이 누룽지, 계란 등 푸짐하게 먹거리를 내놓고 ...

대원들은 간단하게 아침 요기를 대신합니다.

 

지도 #1

지리산에 산꾼들이 모여들리라는 평소의 경험이 뒷받침 되었는지 터미널 앞의 슈퍼는 안 열던 문까지 열어놓고 손님맞이를 하고 있고...

그나저나 베트남 댁은 잘 지내고는 있나?

04:04

주보님은 먼저 올라가셨나?

복이언니, 홀가분 대장, 고남, 꽃님, 저.

그리고 촬영한 이 맹이님등 7인이 오늘 멤버입니다.

한신계곡 루트와 장터목 루트가 갈리는 곳에서 기념 촬영을 마치고 오늘 산행을 시작합니다. 

04:17

백무동에서 장터목으로 오르는 루트는 사실 이 시간에 오르는 게 제일 효율적입니다.

조망할 것도 변변치 않고 그저 오르고 또 오르기만 하는 단조로움 때문일 것입니다.

04:42

하동바위 정도 지났으려나...

정오에 비로소 곡암(哭巖)에 도착하였다. 한 승려가 말하기를 “옛날 하동(河東) 수령이 상봉에 오르다가, 이곳에 이르러 힘이 다해 통곡을 하고서 돌아갔습니다. 그 때문에 곡암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라고 하였다. 비루하구나. 하동 수령의 나약한 의지여. 자기의 힘을 헤아려보지도 않고 경솔하게 험한 곳을 덤벼들어 무모하게 아름다운 경관을 구경하려 하다니. 겨우 숲 속에만 들어갔을 뿐 백 리 길을 반도 못 가고 말아 한 삼태기의 공이 허사가 되었으니, 어찌 수세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는가?

종에게 물을 길어오게 하여 한 바가지씩 들이켰다. 여기서부터는 앞사람은 뒷사람의 정수리를 밟는 듯하고 뒷사람은 앞사람의 발 밑을 보면서, 넝쿨을 잡거나 나무를 부여잡고 올라가는데, 그 괴로움을 감내할 수 없었다. 지팡이를 짚고서 서 있기도 하고, 바위에 걸터앉아 쉬기도 하였다. 오춘간이 나를 돌아보고 말하기를 “힘내 오르게나, 하동 수령처럼 남에게 웃음거리가 되지 말게”라고 하였다. 서로 격려하면서 올라갔다.

 

 

  -  청계도인 양대박(1543~1592) 두류산 기행록 중에서

 

* 그 곡암이 이러한 연유로 하동바위가 된듯 싶습니다.(필자의 견해)

예전 다리는 위험성이 있어 폐쇄되었고 그 자리를 나무계단이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팀이나 다른 팀이나 힘든 오름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로를 격려하며 오르는 모습이 아름답기만 합니다. 

05:08

그러고는 참샘입니다.

물 한 바가지 들이켜고.....

돌 계단도 올라,

05:28

창암능선에 오릅니다.

지도 #1의 '가'의 곳입니다.

창암능선은 동쪽 하봉에서 흘러내리는 초암능선과 함께 우리나라 제일의 계곡 칠선계곡을 싸고 있습니다.

칠선계곡의 물은 추성동에서 엄천이 되어 남강으로 흘러들어 가고.....

05:32

창암능선에 오르자 이내 좀 너른 공터가 나옵니다.

지도 #1의 '가'의 곳입니다.

아직 체력이 남아도니 그냥 통과.

오늘 산행을 처음 시작하던 시간.

백무동 터미널을 빠져나와 공단 통제소를 향해 올라갈 때 계곡에서 불어오던 그 신선한 냄새.

다른 곳도 아닌 지리의 바람 냄새였습니다.

이 글귀를 보면서 누가 먼저라고 얘기도 할 필요가 없이 "나도 향기로운 지리의 바람이 참 좋다!"

이심전심.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니 from heart to heart.

우리는 한 팀입니다.

알지도 못하는 꽃 이름 하나 배우고....

 

지도 #2

06:08

소지봉.

그리고 바위 위에 작은 소나무 하나.

고남님이 심어놓은 저 소나무가 100년 후에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제대로 뿌리를 내리고 잘 살 수 있으려나?

기대해 봅니다.

이제 장터목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조망이 트이는 바위 하나가 나오는군요.

이따 어련히 자세하게 그 모습을 보여줄까마는 성질 급한 사람들은 그 시간을 못 참습니다.

더욱이 그때의 그곳에서 보는 모습과 지금 이 시간 이곳에서 보는 모습이 같기나 하겠습니까?

좌측 중앙 촛대봉 그리고 그 우측이 영신봉.

그리고 올라가 본 사람에게만 보여주는 좌고대坐高臺와 그 좌측의 추강암.

홀대장님이 여지없이 찾아내는 신공을 보이십니다.

그 좌측 촛대봉의 저 모습은 이곳에서 보면 저렇지만 주릉에서 보면 여러 개의 바위가 뭉친 모습일 것이니.....

아!

그리고 지리 남부의 모습.

창암산을 앞에 놓고 그 뒤로 봉산과 그 좌측의 투구봉이 확실히 보이고 그 뒤로 백두대간의 백운산에서 흘러내린 대봉산이 높게 솟아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우측의 반야봉과 길상봉의 노고단.

그 우측 뒤로는 만복대와 정령치도 보이니.....

이른 아침 지리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 앞으로는 빗기재와 삼정산도 명백하고....

좌측 나무 바로 옆으로 장터목 산장이 보이니 그 우측이 연하봉이고.... 

그렇게 지리 주릉은 펼쳐져 있습니다. 

06:33

제석당 입구입니다.

사실 오늘 산행을 이끈 홀가분 대장님이 평소 저에게 하신 얘기 중 하나.

"제석당 한 번. 꼭 한 번만이라도 가고 싶어요."

오늘 산행의 들머리를 중산리가 아닌 백무동으로 잡은 이유는 바로 이 제석당에 들르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조용히 들어갑니다.

혹시나 노고단님이 우리를 놀라게 할 목적으로 혹시나 비박을 하지나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가지면서....

'노고단님 그만 일어나소서!'

코끼리 바위를 지나 제석봉 삼거리를 지납니다.

06:44

그러고는 제석당 터입니다.

다만 16세기로 들어오면서 당시 중봉이라고도 불리는 제석봉에 제석당이 생기게 되는데 이때 제석당에서 모시는 신은 천신으로 이 천신은 남자 신이었다. 이는 어쩌면 조선사회가 철저한 가부장적 유교 사회임을 시사한다 하겠다.

 

 - - 졸저 '현오와 걷는 지리산' 

 

장터목 대피소로 내려선다. 지금은 장터목 대피소가 산꾼들의 쉼터 역할을 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그 역할을, 종주하는 이들에게는 향적사, 백무동 ~ 제석봉 ~ 천왕봉으로 오고가는 이들에게는 제석당이 각기 나눠서 했다.

- 졸저 전게서 455쪽

도솔산인 이영규님이 정비해 놓으신 석간수인 감로수는 최근에 내린 비때문에 풍부한 물을 흘려내주고....

좌측에 희미하기는 하지만 甘露泉이라는 각자가 선명합니다.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제석천이라 표기되어 있으나 현장에 각자된 글을 보면 분명하게 감로천甘露泉이라 새겨져 있다.

 

- 졸저 전게서 456쪽

저물녘에 제석신당(帝釋新堂)에 올랐다. 이 또한 신을 모시는 사당이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층층이 늘어선 봉우리와 깎아지른 듯한 골짜기가 모두 내 앉은자리에서 한눈에 들어왔다. 앉아 있자니 몸은 풀어지고 마음은 오롯하여, 희이(希夷)의 경지에 들어가 다시는 세상사에 미련이 없었다.

봉우리 중 가장 높은 것은 영신봉∙좌고대∙영랑봉(永郞峯)∙신녀봉(神女峯)∙반야봉∙무주봉(無住峯)∙백두봉(白頭峯)∙지장봉(地藏峯)∙미타봉이다. 우뚝 솟아 있는 것도 있고, 불쑥 홀로 하늘에 매달린 것도 있고, 구부정하게 몸을 굽힌 듯한 것도 있고, 다소곳이 엎드린 듯한 것도 있어서 뾰족하고 우뚝하고 쭈뼛하고 겹쳐진 모양을 다 기록할 수 없었다.

깊숙한 구역은 제석동(帝釋洞)∙나한동(羅漢洞)∙월락동(月落洞)∙대암동(臺巖洞)∙실상동(實相洞)∙엄천동(嚴川洞)∙백복동(百福洞)이다. 구불구불 뻗은 산줄기도 있고 빙 두른 산줄기도 있으며, 확 트여 넓은 골짜기도 있고 뻗어나가다 굽이쳐 되돌아오는 듯한 골짜기도 있었다. 오목하고 휑하고 우묵하고 움푹한 계곡이 푸른빛과 흰빛으로 어우러져 숨김없이 드러나 보였다.

기이하도다. 궁벽한 곳인데도 불구하고 조물주가 빼어난 경관을 다 모아 놓은 것이 어찌 아니겠는가? 마침 밤에 된서리가 내려 나뭇잎들이 한껏 붉게 물들고 구름이 뭉게뭉게 떠 있어, 원근의 지역이 진하게 보이기도 하고 엷게 보이기도 하였다. 마치 천만 겹의 수묵화를 그려놓은 병충 같기도 하고, 3백 리나 펼쳐진 비단 휘장 같기도 하였으니, 부유하도다. 승려 일원이 감탄하며 말하기를 “빈도가 이 산에 머문 지 10년이 다 되었습니다. 매년 가을에 자주 사람들을 안내하여 이 당에 올라 이런 관경을 본 것이 여러 번이었지만 이번 가을처럼 눈부시게 찬란한 모습을 본 적이 아직 없었습니다”라고 하였다.

 

  - 양대박의 위 글

 

도솔산인 이영규의 도움을 받아 조금 더 깊게 들어가 보자. 도솔산인 이영규는 개벽 제34호에 실린 지리산보(195241)를 보여준다.

 

현재 咸陽郡守 閔麟鎬씨는 空殼名勝古蹟이나마 보존하랴고 保勝會를 조직하고 智異山을 세계에 소개하기 위하야 智異山誌를 즙집葺輯 중이오, 同郡有志 姜渭秀씨는 遊山하는 의 편리를 키 위하야 山上望海亭을 건축하고 朴魯翊 及 靈源寺僧 一同帝釋堂을 건축하얏스며 李璡雨 及 碧松寺僧 一同馬岩堂을 건축하야(兩處皆 中峯) 本年 陽春佳節開山式하랴 한다. 本山이라 할지.

 

함양군수 민인호(1884 ~ ? , 1919. 10. ~ 1923. 3. 함양군수 재직)보승회를 조직하고 지리산을 세계에 알리고자 지리산지 편찬을 위한 자료를 수집 중인데, 강위수는 산행하는 이들의 편의를 위하여 산 위에 망해정을 건축하고 박노익과 영원사 승려들은 제석당을 건축하였으며 이진우와 벽송사 승려들은 마암당.....

 

그렇다면 최근까지도 이곳에 제석당이 있었다는 얘기가 되겠다. 민인호가 함양군수 재직 중인 1922년 임술년 7월에 제석당을 다시 건립하였다는 얘기다. 여기에 덧붙일 것은 이 중봉 그러니까 제석봉에 제석당 말고 또 하나의 사당 즉 이진우 등 벽송사 승려들이 마암당을 세웠다는 얘기다. 건립된 지 100년도 채 되지 않았을 제석당과 마암당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어쨌든 이 마암당에 대해 지리동부능선의 마암과 관련하여 아직 논의가 많다.

 

 

- 졸저 전게서 457쪽

 

제석당에서 바라보는 영신봉 일대.

그런데 저 파이프의 용도는?

홀대장님이 터 뒤에 박혀 있는 이 구조물을 찾아냅니다.

생각건대 이는 후에 이곳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하기 위하여 미리 박아놓은 거치대 밑받침 같습니다.

야영 하는 것을 눈뜨고 못 보겠다는 공단의 생각이겠죠.

30분 정도 머무르다 떠납니다.

07:19

코끼리 바위에서 우틀하고....

좌측 일출봉과 중앙의 연하봉 그리고 그 뒤의 촛대봉.

그 연장......

반야봉까지....

무등산은 마음 속으로만 그려봅니다.

꽃님.

'님'이라는 존칭을 나타내는 접미사가 이미 붙어 있으니 그냥 '꽃님'이라 불러도 될 듯.

주릉의 봉우리를 헤아리고 있습니다.

예전 등로가 많이 손상되었습니다.

나무들도.....

고사목과 복이언니.

제석봉의 현주소.

구상나무.

............... 

홀가분 대장님.

좌측의 촛대봉.

아까와는 또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좌측 뒤로 왕시루봉.

일출봉 능선은 한 가닥이 중산리로 떨어지고....

중앙 오대주산.

일출봉 능선 우측으로 낙남정맥의 삼신봉.

그 뒤로 멀리 호남정맥의 백운산.

통신골.

예전에는 중봉이라고도 불렸던 제석봉.

제석봉이라는 이 봉우리의 이름이나 제석천이라는 샘물은 다 이곳에 있던 제석당帝釋堂에서 유래하였다. 중봉이라고 불렀던 곳이다. 함양이나 산청에서 올라오는 이들이 볼 때에는 천왕봉이 상봉이 되어 지금의 천왕봉~중봉~하봉이겠지만 하동이나 백무동에서 올라오는 이들에게는 이 제석봉이 중봉이고 천왕봉이 상봉이라는 것이다. 다만 백무동에서 한신계곡으로 올라오는 이들은 촛대봉을 중봉이라고 불렀음은 촛대봉에서 얘기했다.

여기도 ''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으니 신당 혹은 제당과 관련이 있겠다. 제석帝釋은 삼신제석, 천주제석, 제석천이라고도 하는 하늘신이며, 도리천에 살면서 불법을 수호하는 불교의 호법선신이라고 한다. 그러니 이 제석봉 역시 제석당이 있었으니 토속신앙인 천신과 불교가 결합한 것임을 이름만으로도 알 수 있겠다.

 

- 졸저 전게서 456쪽

07:56

지리산이나 설악산 그리고 덕유산과 속리산에 오면 전 꼭 아는 분을 한 분이라도 만나곤 합니다.

백두대간 16회 종주에 빛나는 대기록을 보유하고 계신 분.

부부산꾼 아름다운강산 '정병훈 하문자' 부부이십니다.

근 1년 만에 뵙나요.

오늘은 대간 17회차 첫 구간에 들으셨다고 합니다.

사모님으로부터 계란 두 개를 얻어 먼저 자리를 뜹니다.

늘 건강하소서!

중앙 오도재.

그 좌측이 삼봉산이고 우측이 법화산입니다.

통신골에서 넘어오는 길.

향적사도 지금은 터만 남아있다. 김종직이나 김일손의 기록에 의하면 상당히 자세하게 기술되어있다. 석문石門으로 불리던 통천문을 오르다 보면 우측으로 가파른 골이 하나 보인다. 통신골이다. 천왕봉의 신에게 오르는 길이니 통신골通神谷이다.

 

천왕봉으로 오르는 길은 승려들의 경우 부처님의 지혜를 얻기 위하여, 유학자들의 경우는 배움과 유식遊息 그리고 공자부터 남명에 이르기까지의 선인들을 닮기 위하여 그리고 토속 신앙의 무속인들의 경우는 천왕봉의 영험한 기를 얻기 위한 여정이었을 것이니 通神谷이 맞을 것이다. 최근 공단에서는 이름이 분분한 통신골을 천주골로 통일하자는 의견을 피력한다. 천왕봉이 하늘을 받치고 있는 기둥이니 천주골天柱谷로 하자는 얘기다.

 

이 천왕봉으로 오르는 문은 두 군데 설치되어 있다. 서쪽에 있으니 서문이라고도 불리는 통천문通天門이고 다른 하나는 동쪽에 있으니 동문이라고도 불리는 개천문開天門이다.

 

  - 졸저 전게서 459쪽

 

그 통천문입니다.

통천문이라는 각자刻字 안으로 들어설라치면 부정한 자는 출입을 못한다는 말 때문에 옷깃을 여미는 사람도 있으리라. 시인 고은은 신선들이 하늘에 오르는 것이 다른 산에서는 자유롭지만 지리산에서 만큼은 반드시 통천문을 통하지 않고서는 신선도 하늘에 오르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런가? 음산한 기운 속에 성모사에서 잠을 자던 점필재는 밤에 달이 환하게 떠오르는 것을 보고 혼돈한 가운데라 할지라도 옳지 않은 일에는 휘말리지 말아야 할 것이로다.”라며 자신을 돌아보았다.

 

  - 졸저 전게서 460쪽

...............

통천문을 지나면 좌측으로 칠선계곡과 연결되는 문이 나온다. 칠선계곡 루트는 길기도 하지만 험악하기도 하여 등로로 개척된 때는 1964. 11. 28. 부산의 김경렬, 성산 등으로 이루어진 지리산 동부 개척단에 의해서였다. 당시 칠선계곡에서 곰을 목격하기도 했다고 하니 험준한 곳인 것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고 하겠다.

 

이 칠선계곡의 초입은 추성동이다. 추성동은 지리의 지붕 같은 곳이라 했다. 그런 만큼 계곡도 깊고 많아 그 수만큼 능선을 거느리고 있으니 얼마나 복잡한가는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잠깐 이 부근을 정리해 볼까? 추성동으로 들어가면 물줄기는 크게 칠선계곡과 국골 그리고 허공달골 등 세 개로 나누어지고 이들을 크게 에워싸고 있는 능선은 창암능선과 벽송()능선 등이다. 그리고 국골과 칠선계곡 사이에 초암능선이 있으며 국골과 허공달골 사이에는 두류능선 등 두 개의 능선이 있으니 추성동과 관련된 등로는 모두 7개로 정리가 된다.

 

이중 칠선계곡 코스를 제외한 전 구간은 비탐방구간이다. 다만 이 칠선계곡도 인터넷 방문 예약을 통해서만 천왕봉 혹은 실질적으로 계곡이 끝나는 곳인 삼층폭포까지만 진행할 수 있다. 항상 산꾼들의 안전산행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지리산국립공원 홈페이지의 안내글을 참조하면 될 것이다.

 

- 졸저 전게서 460쪽

 

하늘天을 받드는 기둥柱에 섰습니다.

그러고는 일월대.

그러고는 천왕봉으로 오른다. 천주라는 각자와 천왕봉 중에서도 가장 높은 곳이어서 지리10경 중 하나인 천왕일출을 보기 가장 좋다는 일월대日月臺각자가 눈길을 끈다.

봉우리 남쪽은 일월대인데 오르면 일출의 출입을 볼 수 있어 그렇게 이름 지은 것이며, 새로 새긴 대의 이름자는 크기가 팔뚝 만한데 정죽헌이 쓴 글씨이다. 대의 전후좌우에 이름을 새긴 것이 무려 수백 수천이지만 오래된 것은 깎이고 갈라져 판별하기 힘들다. 그 바라는 바는 모두 이름을 남겨 사라지지 않게 하는 것이지만 그 이름자가 뚜렷한 것을 손꼽아 헤아려보면 가장 오래된 것도 2백년 내외에 불과하니 처음 2백 년 전에 석면에 새길 때에는 어찌 그것을 몰랐을까? 앞의 것이 닳아 없어지고 뒷사람이 그 자리에 다시 새긴 것일까? - 강계형 두류산록(1924)

 

- 졸저 전게서 461쪽 

날씨만 뒷받침이 되어 준다면 천왕봉에서 즐기는 조망은 정말이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동으로는 바로 아래 써리봉에서 갈라진 황금능선이 모양으로 휘어지면서 덕산의 구곡산으로 달려가는 모습이 보이며, 그 뒤로 웅석봉에서 달뜨기 능선으로 이어져 그 우측의 시천천을 건너 주산으로 이어진 다음 삼신봉에서 휘어진 낙남정맥을 만나 그 우측에서 횡천지맥의 칠성봉으로 이어지고, 그 우측으로 호남정맥의 백운산과 도솔봉의 흐름이 다시 지리로 돌아와 왕시루봉~길상봉(노고단)~반야봉~만복대~고리봉~고남산~바래봉~장안산~삼봉산~덕유산~황석산~수도산~가야산~황매산~정수산~웅석봉.......

- 졸저 전게서 468쪽

 

천왕봉에서의 조망은 거칠 게 없다. 노고운해가 제일이라지만 천왕봉에서의 운해를 따라올 수는 없다. 다만 천왕봉 일출 때문에 천왕봉 운해가 밀린 셈이다. 마을과 길이 모두 구름에 잠기고 봉우리들이 들쑥날쑥 운해를 비집고 올라온 것은 보기만 해도 즐겁고 탄성이 나온다.

노산 이은상 같은 이는 이 비경을 이렇게 노래했다. “보라! 나는 지금 천왕봉 머리에 올랐노라. 구름과 안개를 모두 다 헤치고 세상에서 가장 높은 자 되어 하늘 위에 올랐노라.”

 

- 졸저 전게서 471쪽

 

오늘 진행할 황금능선의 아름다운 흐름이 '之'자로 보입니다.

그 좌측으로 덕산마을이 보이고....

08:30

천왕봉으로 오릅니다.

중앙에 삼신봉이 우뚝하고 그 좌측으로 묵계재가 보이고....

그러니 왕시루봉과 그 우측의 불무장등도 명백합니다.

반야 좌측의 노고단.

그 앞으로 토끼봉과 삼각고지, 칠선봉, 영신봉, 좌측의 촛대봉 그리고 연하봉과 제석봉......

우측 뒤로는 만복대와 고리봉.

지리북부능선과 그 뒤의 서부능선.

그 서부능선 우측 아래가 인월.

인월 우측으로 팔량재에서 넘어온 지맥이 투구봉에서 만나면서 삼봉산은 우측으로 오도재를 넘어 법화산으로 이어지고 그 뒤로는 백운산에서 내려온 대봉산.

앞으로는 백운산과 금대봉을 빚고 임천을 넘어온 줄기는 창암산에서 이 좌측으로 곧게 올라섭니다.

그러니 이 앞의 계곡이 칠선계곡.

우측이 중봉능선.

우측 중앙 푹 파인 곳이 마천.

우측 중앙 영랑대와 소년대.

그 뒤가 독녀암.

앞이 중봉.

중봉~하봉의 영랑대 ~ 새봉에서 가지를 친 독녀암.

수도산과 황매산.

그 앞줄의 왕산과 필봉산.

웅석봉과 달뜨기 능선.

우측으로 금오산까지 조망이 되지만 화면으로는..... 

전체 기념사진 한 장 찍고....

중봉으로 향합니다.

겨울에는 항상 미끄럼을 타고 내려가서는 힘들게 올랐던 저 중봉.

08:58

중봉으로 오릅니다.

동쪽으로 그 능선을 가면서 화대루트 중 써리봉 구간을 봅니다.

좌측 아래로 치밭목대피소와 그 좌측의 비둘기봉이 보이고.....

그 뒤로 길게 누운 능선이 웅석봉과 달뜨기능선.

이날 오후, 시퍼런 강줄기가 내려다보이는 어느 산모퉁이를 돌아섰을 때였다. 앞서 가던 문춘 참모가 걸음을 멈추고 한참 정면을 바라보고 있더니 뒤를 돌아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동무들! 저기가 달뜨기요. 이제 우리는 지리산에 당도한 것이요!” 눈이 시원하도록 검푸른 녹음에 뒤 덮인 거산이 바로 강 건너 저편에 있었다. 달뜨기는 그 옛날 여순사건의 패잔병들이 처음으로 들어섰던 지리산의 초입이었다. 남부군은 기나 긴 여로를 마치고 종착지인 지리산에 들어선 것이다. 2병단 이래 3년여의 그 멀고 험난했던 길을 이제 다시 그 출발점으로 돌아온 것이다. 14백의 눈동자가 일시에 그 시퍼런 연봉을 응시하며 아아!” 하는 탄성이 조용히 일었다. 여순 이래의 구 대원들이 마치 고향을 그리워하듯 입버릇처럼 되뇌던 달뜨기…… 이현상이 지리산에 가면 살 길이 열린다.’고 했던 빨치산의 메카, 대 지리산에 우리는 마침내 당도한 것이다. 나는 형언하기 어려운 감회에 젖으며 말없이 서 있는 녹음의 산덩이를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지리산아, 이제 너는 내게 어떤 운명을 가져다주려느냐?

 

이병주 선생의 지리산’ 7권에도 빨치산이 황석산을 넘어 둔철봉에서 지리산으로 입산하는 과정에서 달뜨기능선을 보면서 환호하는 장면이 거의 같은 내용으로 나온다.

 

- 졸저 전게서 516쪽

 

황금능선.

천왕봉과 촛대봉과 그리고 우측의 제석봉.

된비알을 치고 올라가 치밭목대피소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난다. 바로 왼쪽 아래가 써리봉이라는 얘기다. 중봉에 오른다. 여기서 보는 천왕봉은 정말 아름답다. 좌측으로 암봉을 가지고 있어 암벽이 적당히 깎아지른 듯하고 서쪽으로는 부드러운 선이 제석봉을 향하고 있어 자못 너그러운 성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좌측으로는 마야계곡이라고도 불리는 중봉골의 깊은 골 옆으로 갈자 모양으로 흐르고 있는 황금능선을, 그 뒤로 삼장천이 치밭목능선을, 덕천강이 흐르는 대원사 계곡이 달뜨기능선을 각 구분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데 그들의 끝은 남명의 고장 덕산으로 모인다. 그러고는 그 덕산 우측으로 주산828.2m이 낙남정맥으로 이어지는 모습이 확연하다. 그 뒤로 남강이 진양호로 흘러들어가고 있고 그 우측으로 금오산이 보이니 그 뒤가 남해고 그 좌측이 사량도다.

  - 졸저 전게서 529쪽

대원사 방향을 따릅니다.

하봉 방향은 출입금지 지역.

일본인들에 의해 하봉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면 이도 아예 하봉 대신 영랑대라는 이름을 갖는 게 나을 듯....

써리봉 능선과 좌측의 달뜨기...

황금능선

새봉과 그 뒤로 와불산.

좌측 천왕봉과 우측의 중봉.

09:39

써리봉으로 오릅니다.

 

지도 #3

써리봉에서 가지를 치는 황금능선을 발밑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것도 이 코스가 갖는 자랑입니다.

10:20

드디어 황금능선 입구입니다.

지도 #3의 '가'의 곳입니다.

산죽으로 악명 높은 황금능선.

그 속살은 어떨까요?

그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희미한 능선의 흔적을 밟으면 이내 암벽이 나오고 두 갈레의 갈림길이 나오는데 분홍색 표지띠 하나가 우측 내리막길로 안내합니다.

그리고 그 길이 더 선명합니다.

하지만 그 길로 들어서면 이내 알바입니다.

저 혼자면야 알바를 백 번 하든 천 번 하든 상관이 없는데 뒤에 따라오는 분들이 있으니....

50여 m 내려가다 보니 계속 계곡으로 떨어지는 길.

그렇다고 다시 올라가자니....

저는 바위 암벽을 사면으로 치고돌고 대원들은 다시 돌아가서 좌측 길을 찾으라고 합니다.

그러고는 희미한 족적을 찾아 다시 대원들과 합류하고....

10:51

그러고는 암벽을 만나는데 다행히 로프가 매어져 있습니다.

조심스럽게 2단 로프를 내려옵니다.

좌측 천왕봉과 우측 써리봉. 

잡먹이 성가시긴 하지만 불평할 만할 정도는 아직 아닙니다.

10:58

남부 지리산은 유달리 산죽이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악명 높은 이곳 황금능선.

드디어 산죽이 발에 밟히기 시작합니다.

기대 반 걱정 반입니다.

과연 어떨까?

초반...

이 정도 쯤이야....

11:08

지도 #3의 '다'의 곳인 1328.2봉에 오르기 전 물이 보입니다.

지도 #3의 '다'의 곳으로 라면도 끓여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양이 흐르고 있는 곳입니다.

이곳도 주의를 기울여야 할 곳입니다.

이 물줄기 방향으로 표지띠가 날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나 그 길이 좌측 바위봉인 1328.2봉을 우회하는 길로도 보입니다.

그런데 그 길은 공교롭게도 바로 써리봉골로 빠지는 길입니다.

아까 물이 보이는 안부에서 바로 좌측 바위로 붙어야 했습니다.

다른 능선과는 달리 이곳은 골짜기로 치고다니는 이들이 많아 표지띠가 혼란스럽습니다.

길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이 황금능선에서 만큼은 무조건 능선을 견지하여야 하는군요.

능선으로 오릅니다.

11:25

1287.3봉을 지나고,

다시 산죽밭으로 듭니다.

이제 키가 많이 커졌습니다.

그러나 이 정도는 아주 양호합니다.

이미 온몸은 멀티프와 고글 그리고 장갑과 헌옷으로 무장을 했으니 거칠 것이 없습니다.

아주 양호한 산죽밭입니다!

느진목재를 빠져나오니,

11:49

조망이 트이는 바위가 나옵니다.

좌측 뒤로 대원사능선이 흐르고....

다음 목표는 저 능선이라 못박습니다.

천왕봉과 중봉 능선 그리고 써리봉.....

중앙 우측 봉우리가 문창대가 있는 세존봉이라고도 불리는 1373.9봉.

그 우측의 법계사가 살짝 보이는데 그 중앙이 일출봉입니다.

멀리 낙남정맥의 묵계재가 보이니 그 우측의 톡 튀어나온 봉우리가 외삼신봉이고 삼신봉입니다.

12:03

지도 #3의 '라'일대도 산죽 밭입니다.

키가 너무 크긴 하지만 별문제 없습니다.

12:11

1100.9봉은 사면치기로 진행하고,

12:16

조망터가 나옵니다.

황금능선에서 보는 천왕봉과 중봉 그리고 써리봉 능선.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습니까.

좌측이 마야계곡.

시천천의 본류입니다.

우측 써리봉에서 이리로 내려오는 줄기가 확연합니다.

능선 줄기는 좌로 진행하다 여기서 우측으로 크게 틉니다.

그러고는 다시 좌측으로 흐르다 우틀하여 그 끝의 구곡산으로 진행하는 능선의 흐름이 뚜렷합니다.

그 뒤로 오대주산이 확실하게 보이고....

12:28

이런 길은 행복하고....

12:33

그러고는 4등급삼각점(산청 442)이 있는 국수봉國帥峰입니다.

국수봉은 국사봉國師峰의 다른 말로 이해합니다.

아마 국사봉이었는데 한자를 독음하는 과정에서 師를 帥로 읽고 그렇게 썼을 것이라는 겁니다.

이 부근에 우리 토속신앙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어 예전에 단군 왕검을 국사라 하여 그런 신령스런 봉우리를 국사봉이라 불렀다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천왕 = 하느님이고 곧 단군이 되기도 합니다.

불교에서 얘기하는 승계의 계급과는 다른 명칭입니다.

여기서 점심을 먹느라 35분을 보냅니다.

홀대장님의 시원한 파인애플 잘 먹었습니다.

13:07

자리를 털자마자 바로 산죽이 시작됩니다.

1021.0봉을 지나고,

길이 좀 혼란스러운 곳이 나옵니다.

좌측 계곡으로 흐르는 길이 유혹을 하기도 하고....

어쨌든 이곳은 우직하게 무조건 능선만 고집하여야 하는 곳입니다.

13:17

이 정도의 산죽이라면 즐기면서 갑니다. 

13:21

1032.5봉에서는 크게 좌틀합니다.

아까 보았을 때 여기서 좌틀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직진을 하지 못하도록 뒤에 오는 대원들을 위하여 진입금지 표시를 해두고....

13:35

1005.7봉의 정상에 있는 이건 누구의 집?

이 봉우리를 지나 5분 정도를 걸으니.

13:40

문제의 봉우리인 국사봉이 나옵니다.

직진하는 방향으로는 아주 좋은 길이 길게 뻗어서 내려가는데 상당히 비알입니다.

참고도 #1

 

여기서 직진하는 길은 참고도 #1의 붉은선을 따라 873.8봉을 지나 동당리의 관음사 혹은 동당마을로 진행하게 됨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보통 있어야 할 위 참고도의 'A'에서 좌틀하여 진행하여야 하는 녹색길이 보이질 않습니다.

혹시나 이 봉우리를 우회하는 길을 놓치지 않았을까?

200여 m를 다시 돌아나가 보아도 그런 흔적은 전혀 보이질 않습니다.

그렇다면 아무리 지도를 들여다 봐도 그 길은 코발트색 길 정도가 될 것 같은데.....

진행 방향으로 조금 내려가 보면서 좌측으로 우리가 진행할 능선을 바라보니 이건 너무 멉니다.

괜히 내려갔다 만약에 다시 올라온다면 대원들 고생은 제가 다 시키는 격!

혼자 진행하는 산행이었으면 내 마음대로 분명히 내려갔을 텐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시 빽하여 흘리지나 했을 그 길을 찾아봅니다.

좌측으로 사면치기할만한 길을 찾다보니 보지만 그런 길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계곡으로 떨어지고....

하는 수없이 다음을 기약하고 오늘은 철수하는 수밖에....

오늘 산행은 9시간 반 정도에 15km 정도를 했군요.

얼마 남지 않았는데 조금 억울하기는 하겠지만 바로 복수혈전을 치러야겠죠?

지도를 보니 내원리에서도 가장 안에 있는 안내원이 가깝습니다.

내려오면서 깨끗하게 씻고 덕산의 김성범 기사님(010-2334-9436)께 전화를 넣습니다.

13,000원이라고 하는군요.

두 대를 부르고....

다시 전화 오기를 5. 1.부터 15,000원으로 올랐다고....

자신이 차액 4,000원을 보전해 주겠다고 하는군요.

뭘 그러기 까지....

15:17

인심도 더럽고 성질도 저보다 더 더러운 안내원 초입 민가를 지나치고....

덕산으로 내려와 한식뷔페에서 뒤풀이를 합니다.

지태를 하던 산수대장으로부터 전화가 오는군요.

청이당에서 공단직원들에게 적발되어 하산을 한다고 하는군요.

아까 써리봉에서 만났던 그 선한 인상의 직원 두 분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그 분들이라면 스티커를끊는 대신 계도를 하였을 것 같고.....

우선 택시를 부르니 5시 정도 오겠다고 하는군요.

그 도착 시간에 맞춰 원지터미널로 전화를 하여 버스를 예약하려고 하는데...

아뿔사 이미 매진이 되어 8시 차 바에 없다고 하는군요.

마침 부천산악회 버스가 있어 함께 갈 수 없냐는 청을 넣으니 보기 좋게 거절을 당하고....

마침 김기사님이 도착을 하여,

"택시고 자시고 버스 표가 없어서 우린 지금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고 이러고있는 중."이라고 하자,

"그러실 줄 알고 제가 5시 50분으로 5장 예매해 두었습니다."라고 하는군요.

무슨 이런 귀신 같은 분이 있는지..

"아니 어떻게 알고 그렇게 예약까지 하셨냐?"고 묻자,

"원지까지 갈 것이면 지난 번 같이 버스를 타고 가실려고 하는 것인데 지금은 표기 없는 시기이다, 그래서 아까 4시에 전화를 받자마자 미리 표를 예매해 두었다." 하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대화를 들은 대원들은 모두 환희의 박수를 치며....

뭐 이런 센스쟁이 기사님이 다 있으신지...

저와는 4번 거래한 기사님이신데...

조금 전 부탁드린 남명 조식 님의 13대 손 조재영님을 찾아봐 달라고 하니 그것도 이미 다 찾아놓으셨고....

덕산에 오면 무조건 이분을 찾아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김기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