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알바를 다 하다니...
그것도 지리산에서....
나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절치부심.
복수혈전의 그날을 기다립니다.
주중에 지리산으로 달려가려고 했는데 도무지 시간이 나질 않습니다.
설사 간다고 해도 교통편이 마땅치 않습니다.
물론 그 들머리인 써리봉으로 가는 길은 일응 네 가지 정도로 집약되기는 합니다.
①중산리 ~ 천왕봉 ~ 써리봉 루트, ②백무동 ~ 천왕봉 ~ 써리봉 루트, ③추성동 ~ 두류능선 ~ 하봉 ~ 써리봉 루트, ④윗새재 ~ 치밭목대피소 ~ 써리봉 루트.
②번은 지난 번 진행했던 루트로 평일에도 이용할 수 있는 루트이나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①,④ 은 교통편이 만만치 않아 부득이 전날 진주로 이동 첫 차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데 그럴 경우 써리봉 도착 시간은 결국 ②과 크게 다르지 않고 괜히 시간만 길에서 허비한 꼴입니다.
③이 그나마 무난해 보입니다.
그런데 주중에는 시간이 나질 않으니.....
주말 그것도 일요 산행은 가능해 보입니다.
머릿속이 분주해집니다.
남부터미널에서 23:30 중산리행 버스를 타고 덕산에 내려 김성범 기사님(010-2334-9436)의 차를 타고 윗새재로 이동하는 방법입니다.
윗새재에서 치밭목대피소까지는 2시간 정도 걸리니 거기서 라면을 끓여먹고...
부랴부랴 예매를 서두르고 노모께서 숙면에 드시는 걸 보고 남부터미널로 나갑니다.
지리산은 가는 시간부터 여유롭습니다.
23:00 이후면 집에서 나오는 시간도 충분하니까....
두어 시간 자고 나니 버스는 잠시 쉬었다 가고...
그러고는 원지입니다.
미리 김기사님께 전화를 드리고....
배낭을 진 다른 이들은 다 중산리인데 저만 덕산에서 하차를 하니 의아스러운 눈초리로 저를 봅니다.
"미안합니다. 잘들 다녀오소!"
기다리고 있던 차를 타고 그 길고도 긴 대원사 유평계곡으로 듭니다.
오늘은 초파일.
많은 이들이 지리산으로 몰려들겠군요.
즉 지리산에 불교가 들어오면서 산신이 부처나 보살로 대체되는 과정에서 무불巫佛 대립을 겪게 된다. 아니 대립이라기보다는 서로 조화롭게 융화하는 모습을 지리산은 보여준다.
이 땅에 불교가 들어오기 전 거의 방사형으로 흘러진 이 골짜기의 구석구석은 무속인이 지키고 있었다. 즉 원래 지리산은 우리나라 무속신앙의 근거지였다. 그러다 풍수지리를 장착한 승려들이 들어오면서 산자수려山紫秀麗한 명당을 가려 역사상 수많은 명승名僧들이 배출된 거찰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지리산이 승도僧都로 변화를 하게 되니 지리산은 산까마귀도 염송念誦을 할 정도로 문수보살의 가피력이 충만한 곳이 되었다.
- 졸저 '현오와 걷는 지리산' 102쪽
윗새재에 도착하여 복장을 갖춥니다.
쌀쌀한 기운도 없는 이른 새벽입니다.
그러니 이제 봄은 지났고 벌써 여름입니다.
음력으로는 사월하고도 팔일 즉 초파일이니 송홧가루가 볼만하겠습니다.
초여름의 지리산 안으로 들어갑니다.
지도 #1
03:18
쑥밭재로 올라가는 루트.
쑥밭재는 사거리이다. 쑥밭재가 주목받는 이유는 교통의 편리함 때문이다. 즉 이 루트가 함양과 산청을 이어주는 지름길이었고 고개가 상대적으로 낮으니 추성리~광점동~어름터~쑥밭재~유평리~덕산을 잇는 루트는 곧 벽송사와 대원사를 이어주고, 주능선인 쑥밭재에 청이당이라는 당집마저 자리하고 있었으니 더없이 좋은 산길이었으리라. 좌측으로 내려가면 청이당 터이고 직진하면 국골이나 두류능선을 탈 수 있는 이른바 국골사거리로 갈 수 있고 우회전하면 석상용 장군 묘와 어름터가 있는 허공다리골(=허공달골)로 가는 길이다. 점필재가 쉬던 청이당 터는 덕천강이 발원하는 곳이어서 이곳을 지나는 꾼들에게는 요긴한 휴식처가 되고 있다.
- 졸저 전게서 524쪽
한편 이 쑥밭재의 어원에 관하여 논의가 있다. 즉 혹자들은 이곳이 예전부터 약쑥이 많은 곳이라 그렇게 불러온다고 글자 그대로 뜻풀이를 하기도 하는데 이런 말은 여전히 믿을 바 못된다. 오히려 지리산 전설 중 한 분인 ‘성산’ 선생께서는 이곳이 옛날 마천사람들이 진주장에 갔다가 돌아오며 하루를 묵었던 곳이라 하여 ‘숙박재>쑥박재>쑥밭재’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생각건대 이곳이 마천과 시천면 덕산(지금은 산청군이지만 예전에는 진주 관할이었음)을 잇는 고개였으니 마천 사람이 진주 장에 가서 소금을 지고 올라오면 밤이 되어서야 고개에 도착할 것이고 그렇다면 이곳에서 하루 자고 갈 수 밖에 없었을 거라는 이유에 수긍이 간다. 더군다나 예전에는 암자나 당집이 이런 숙박을 치기도 하였으니 조선시대에서 근대사회로 들어오면서 이들을 상대로 숙박업소가 있었음도 능히 상정할 수 있을 것이니 ‘성산’ 설에 한 표를 던진다.
- 졸저 전게서 525쪽
윗새재 주차장.
남한 내륙에서 하늘이 가장 가까운 천왕봉까지는 8.8km.
여러 대피소 중 가장 환경이 안 좋다는 치밭목 대피소까지는 4.8km
예정대로라면 5시 정도에는 치밭목대피소에 도착하여 일출을 보면서 라면을 먹고 물보충을 한 다음 6시경 출발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 산행의 사작은 새재교를 건너면서 입니다.
아래로는 덕천강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습니다.
이 강은 지리산 99골 중 쑥밭재에서 내려오는 물과 중봉의 조갯골 그리고 지금 오르는 심밭골 등의 물을 받고 덕천지맥 그러니까 지리동부능선의 우측으로 흘러내리는 물들을 모두 받아 덕산의 덕천서원 앞에서 낙남정맥 좌측으로 흘러내리는 물인 시천천과 삼장천 등을 흡수한 뒤 진양호 부근에서 남강에 합류되는 물줄기입니다.
그 시작이 지리산.
그중에서도 바로 이곳입니다.
지맥에 대해서는 다음에 말씀드리기로 하고....
이 어두운 새벽에 뭐 볼 게 있습니까?
아직은 새도 기상하지를 않아 새소리도 들을 수 없고....
그저 야생 고양이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산쥐만이 이따금 나타났다 사라질 뿐입니다.
뻔히 아는 길.
조금 심심해집니다.
리시버를 귀에 꽂습니다.
폰을 만져 쭉 내리다 딱 세우니 Kenny Rogers & Kim Carnes가 나오는군요.
Don't Fall in Love with a Dreamer.
제가 직접 녹음한 곡이니 LP의 잡음이 나는 부분이나 가수의 작음 숨소리까지 다 들을 수 있습니다.
곡은 연이어 Lynard Skynard로 넘어가고...
04:19
딱 한 시간 걸려 대원사 갈림3거리에 도착합니다.
3km를 왔군요.
워낙 길이 좋으니....
직진을 하여 오르다 보면 물도 건너고,
04:32
다리도 건넙니다.
다 덕천강이 되는 물들입니다.
이 시간에 들어가봐야 볼 것도 없으니...
여름에 장마진 다음에나 시간이 되면 보죠.
05:07
이 계단이 보이면 다 온 겁니다.
이어폰을 빼고....
05:09
치밭목 대피소입니다.
예전 민병태 님이 관리했을 때에는 정말이지 초라한 그곳이었는데 이제는 다른 대피소에 비해 손색이 없을 정도로 무척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이 덕산은 지리산 천왕봉의 들머리이다. 천왕봉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는 곳. 그러기 때문에 천왕봉을 오르려면 이곳을 지나야 한다. 덕산초등학교 옆을 지나 구곡산의 황금능선 코스를 이용할 수도 있고 아니면 삼장면으로 들어가 그 길고도 긴 유평계곡을 통하여 ‘한판골’ 혹은 ‘윗새재’로, 대원사 코스는 화대종주 코스와 맞물려 있고 말도 많은 치밭목 대피소를 거쳐야 하며 그것도 아니면 아예 중산리로 들어가 가장 빠르게 천왕봉으로 오를 수도 있는 그야말로 지리산의 관문인 것이다.
- 졸저 전게서 206쪽
- 졸저 전게서 206쪽
한 분이 일찍 일어나 취사도구를 만지며 식사 준비를 하시는군요.
취수장(지도 #1의 '가'의 곳)으로 가서 물을 받아 라면 끓일 준비를 합니다.
일출입니다.
오늘의 해가 뜨는군요.
저는 지리에서 일출을 볼 때마다 Uriah Heep의 Sunrise가 떠오릅니다.
반주도 괜찮고 음율도 멋지긴 합니다.
그러나 지리에서 보는 저 일출은...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면서 보는 저 햇살은 오늘 하루 제 산행이 무사히 마쳐질 수 있도록 축복해 주는 그런 빛으로 보입니다.
떡라면을 먹고 뒷처리를 한 다음 다시 가방을 꾸립니다.
06:01
거의 한 시간 쉬었다 갑니다.
아까 오를 때보다 더 힘이 듭니다.
밥 먹은 효과.
지도 #2
06:18
그게 아니었군요.
눈이 힘들고 머리가 힘들었던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볼 거리와 생각할 거리를 안 주었던 것이죠.
조금 전 올라왔던 치밭목 대피소의 뒷산 비둘기봉1481.8봉과 그 뒷줄기인 덕천지맥의 (산청)독바위과 그 우측의 새봉1322.3m 능선이 그 우측 새재로 떨어지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 정도면 뇌나 눈도 피로를 풀었겠죠.
06:23
그러고는 써리봉 하단부.
곧 지도 #2의 '나'의 곳인 황금능선 입구입니다.
최화수 님은 지리동남부능선이라 불렀던 이 능선의 원 이름은 구곡능선이었습니다.
주봉인 구곡산의 이름을 딴 것이었습니다.
40여 년 전 세석산장 관리인이었던 정원강은 낫 한 자루를 들고 산죽 밭으로 악명이 높던 써리봉~구곡산 등로 개척에 나섰다. 그 가을 어느 날 오후 해가 저물 무렵 써리봉에서 마지막 작업을 마치고 뒤를 돌아보며 땀을 닦을 때, 써리봉에서 국수봉을 지나 구곡산으로 갈‘之’ 자 모양으로 휘어져 가는 능선이 덕천강가로 이어지면서 누런빛으로 반짝이는 모습을 보고 스스로 황금능선이라 이름했다. 당장이라도 구곡산으로 올라 써리봉으로 뛰어 올라가고 싶은 마음만 그득하다. 황금색으로 물결치는 산죽밭의 지루함이 오히려 멋진 분위기를 연출하는 빛의 조화로 그 이름도 구곡능선에서 황금능선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 졸저 전게서 201족
그런데 지리산에 관한한 원로급에 속하는 베테랑 선배님께서 이 구곡능선의 주를 이루고 있는 식생은 산죽이고 그 산죽의 일년 내내 녹색이므로 황금색과는 관계가 없으므로 그냥 구곡능선이라 불러야 하는 것이 아니겠냐는 의견을 개진하셨니다.
일응 타당한 의견이기도 하여 이번 기회에 다시 관련자료를 찾아봤습니다.
자료라고 해봤자 결국 지리산의 권위자인 도솔산인 이영규님이나 '지리99'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관련자료에도 제 책에 나오는 내용 이상은 없는 것 같으므로 그냥 황금능선으로 밀고 가기로 합니다.
특별법〉일반법의 규정을 여기에 적용하는 것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이 능선이 구곡능선이 아닌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측으로 싸리봉과 천왕봉을 보고는 그 안으로 들어갑니다.
이제부터 황금능선을 걷습니다.
'쪽'팔리게 알바 아닌 알바를 하여 산행을 마무리 못한 치욕(?)을 씻기 위한 복수혈전의 서막입니다.
써리봉 아래에 있는 전망대 바위에서 주위를 살핍니다.
아!
보기만 해도 아름다운 저 황금능선.
적어도 보기에는 그렇습니다.
저 뱀이 움직이는 듯 꿈툴거리며 굴곡을 이루고 있는 곡선.
잠깐 뚱딴지 같은 생각을 해봅니다.
역시 우리나라 산지 체계는 산줄기가 맞아!
산맥은 무슨 얼어죽을 산맥!
산맥은 일직선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산줄기는 분수계分水界의 다른 말이므로 침식과 풍화를 거쳐 저런 모습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낙서를 해봐도 될까요?
구곡산을 끝으로 이곳까지 능선을 이으면 황금능선이 됩니다.
천왕봉 능선은 내려와 법계사에서는 잠시 평평해지다가 다시 세존봉을 일구고는 좌측으로 떨어집니다.
저 법계사는 최소 3번 소실되게 됩니다.
첫 번째가 고려 우왕때 황산대첩에서 패한 왜구의 잔당들에 의해서 두 번째가 임진왜란 때 그리고 한 번이 한국전쟁 때이죠?
그리고 그 세존봉이 문창대죠?
이 중산리의 직등코스로 오르다보면 우선 만나는 곳이 법계사이다. 연곡사, 화엄사, 대원사 등과 함께 연기조사가 창건한 절집이다. 법계사가 1380년 고려 우왕 때 이성계의 황산대첩의 왜구 잔당에 의해 불태워졌을 때 일시 무속인들이 들어와 ‘법계당’이라는 이름으로 가건물을 운용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에는 제석당과 같은 당집의 형태였다.
한편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이 바로 문창대이다. 고운 최치원이 법계사에 머물 때 책을 읽고 시를 지으며 명상에 잠겼던 고대高臺로 장터목을 향해 활시위를 당겼던 곳이라고도 하며 기도발이 받는다는 지리 10대 중 하나이다. 문창이란 고려 헌종이 고운 최치원을 ‘문창후’라 시호한데서 유래하며 신라 말기 혼란스러운 정국을 보고는 ‘신라는 누른 잎이요 곡령鵠嶺(松岳 즉 개성을 얘기함)은 푸른 소나무다.’라고 하여 왕씨의 고려 창업을 예언했다는 데서 이런 예우를 받은 것이다.
문창대 논란
그런데 이 문창대는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1373.9봉이 아닌 망바위 바로 위로 표기되어 관심 있는 이들로 하여금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그런데 1978년 10월 26일 로타리 산장(지금의 로타리 대피소) 기공식에 앞서 이 산장을 건립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남명의 13대손 조재영은 진주산악회와 함께 기존 문창대에 대해 다른 곳을 문창대(기존 문창대에 대하여 ‘신문창대’라 함)라고 제시한다. 즉 ‘진양지 2권’의 내용 즉 ‘門西數十步許 有文昌臺 崔孤雲所遊地 해석해 보면 (법계사)절 서쪽 수십 보 거리에 최고운이 놀던 큰 바위가 있는데 이것이 문창대이다.’를 첫째 근거로 든다. 이는 법계사에서 천왕봉으로 오르는 방향으로 나무계단을 오르자마자 나오는 좌측의 너럭바위를 얘기한다. 그러고는 두 번째의 근거로 그 바위 아래 ‘고운최선생장구지소孤雲崔先生杖屨之所’라는 각자를 제시한다.
그런데 이 문창대를 처음 알린 이는 바로 진양지를 발간한 부사 성여신이다. 그의 칠언고시 형태로 쓴 ‘유두류산시’를 보면, ‘황혼 무렵 겨우 법계사에 이르렀네. (중략...) 동쪽에 걸터앉은 세존봉에는 우뚝한 바위가 사람이 서 있는 듯, 서쪽에 문창대 솟아 있으니 고운이 옛 자취 남긴 곳이네. 바위에 고운의 필적 새겨 있다 하는데 험하고 가파른 절벽이라 가볼 길이 없네.’라고 문창대를 그렸다.
<사진 4〉 신 문창대에서 본 원 문창대.
이렇듯 문창대는 법계사 동쪽에 있는 봉우리 즉 세존봉에 사람이 서 있는 듯 서쪽에 우뚝 솟아 있다고 하였으니 법계사에서 바라본 문창대의 모습과 같다. 반면 신문창대는 사실 ①위와 같이 성여신의 표현대로 험하고 가파른 절벽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점, ②대臺의 외형을 갖추지 못한 점 가령 내려다보았을 때 수려한 경관을 볼 수 있는 곳이거나 사방을 관망할 수 있는 바위 꼭대기의 넓고 평평한 반석盤石도 아니며. ③孤雲崔先生杖屨之所라는 각자 주변에는 日出峰. 혹은 陸象山 등 조잡한 각자들이 많이 새겨 있어 이 각자 역시 이들 중 하나로 여겨지며, ④이 각자의 제작 연대 또한 그리 오래 된 것 같지 않은 점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신문창대는 그저 각자가 되어 있는 바위 정도로만 인식되어도 무난할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선인들의 산행기에 원 문창대가 지금의 장소와 너무 똑같이 묘사되어 있다는 점이 ‘구 문창대’를 ‘원 문창대’로 보게 하는 이유이다.
- 졸저 전게서 208쪽 이하
법계사는 병란과 화재로 수난을 많이 당한 절이었다. 이병주의 대하소설 ‘지리산’을 보면 7권에 토벌군을 피해 이동하던 춥고 배고픈 남부군이 법계사에 들른 장면이 나온다. “도중에 천왕봉 중턱에 있는 법계사 마당을 지났다. 가람은 불 타 없어지고 절터만 남았다. 천왕봉을 등지고 남해를 굽어보는 기막힌 조망이다. 어느 대원의 말이다. “이 절은 부유한 절이었다. 가을이면 시량柴糧이 그득하게 광에 쌓였다. 눈이 내리는 날이면 모든 길이 막힌다. 이듬해 해동될 때까지 외계와의 왕래가 일체 단절된다. 중들은 뜨뜻한 절방에 앉아 떡이요, 엿이요, 단술 등을 해먹으며 겨울을 보냈다. 얼마나 팔자 좋은 중들이었던가.”
- 졸저 전게서 207쪽
그 세존봉 뒤로 낙남정맥의 삼신봉이 우뚝하고.....
앞줄 대원사 능선 뒤로 덕천지맥의 웅석봉과 그 우측의 밋밋한 달뜨기 능선.
존경하는 글쟁이 산악인 박인식은 웅석봉을 이렇게 얘기한다. “지리산은 어디서 보아도 그 산세가 확실하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워낙 넓은 산자락 탓이다. 그래서 ‘한국의 산’으로 추앙받으면서도 지리산은 애매모호한 추상화로 인식되기 쉽다.(중략) 웅석봉에서 바라보아야 지리산은 추상화의 이미지를 벗고 ‘한국의 산’으로 구체화 되는 것이다.”
웅석봉은 이런 봉우리이다. 어디서 보아도 지리산 전체를 다 볼 수는 없지만 웅석봉에서 만큼은 다르다는 얘기다. 박인식 선배의 얘기를 들으니 어느 정도 웅석봉이 정리됨을 느낀다.
- 졸저 전게서 517쪽
이날 오후, 시퍼런 강줄기가 내려다보이는 어느 산모퉁이를 돌아섰을 때였다. 앞서 가던 문춘 참모가 걸음을 멈추고 한참 정면을 바라보고 있더니 뒤를 돌아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동무들! 저기가 달뜨기요. 이제 우리는 지리산에 당도한 것이요!” 눈이 시원하도록 검푸른 녹음에 뒤 덮인 거산이 바로 강 건너 저편에 있었다. 달뜨기는 그 옛날 여순사건의 패잔병들이 처음으로 들어섰던 지리산의 초입이었다. 남부군은 기나 긴 여로를 마치고 종착지인 지리산에 들어선 것이다. 제2병단 이래 3년여의 그 멀고 험난했던 길을 이제 다시 그 출발점으로 돌아온 것이다. 1천 4백의 눈동자가 일시에 그 시퍼런 연봉을 응시하며 “아아!” 하는 탄성이 조용히 일었다. 여순 이래의 구 대원들이 마치 고향을 그리워하듯 입버릇처럼 되뇌던 달뜨기…… 이현상이 ‘지리산에 가면 살 길이 열린다.’고 했던 빨치산의 메카, 대 지리산에 우리는 마침내 당도한 것이다. 나는 형언하기 어려운 감회에 젖으며 말없이 서 있는 녹음의 산덩이를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지리산아, 이제 너는 내게 어떤 운명을 가져다주려느냐? 이병주 선생의 ‘지리산’ 7권에도 빨치산이 황석산을 넘어 둔철봉에서 지리산으로 입산하는 과정에서 달뜨기능선을 보면서 환호하는 장면이 거의 같은 내용으로 나온다. - 졸저 전게서 518쪽
좌측 가운데 대원사 능선 그 뒤의 달뜨기에서 이어지는 지리태극 능선 그리고 이 앞의 황금능선이 모이는 곳.
위 사진 가운데 허옇게 보이는 곳.
바로 남명의 고장 덕산입니다.
06:39
이제는 낯익은 곳.
로프를 잡고 바위를 좌측으로 우회합니다.
06:43
드디어 산죽밭이 시작됩니다.
지도 #2의 '다'의 곳입니다.
옛 선인들의 산행기를 읽어보면 지리의 이 조릿대라고도 불리는 산죽을 한자로 면죽綿竹이라 써서 솜대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지만 여기서 국사봉까지는 익히 지난 길이기 때문에 별다른 두려움은 없습니다.
06:52
지도 #2의 '라'의 곳인 물이 있는 곳.
써리봉골로 빠지는 길이자 천왕샘과 더불어 시천천의 원류가 되는 곳입니다.
여기서는 좌측으로 1328.2봉을 우회하는 것이 정답입니다.
그러면 1328.2봉의 사면을 돌아,
07:07
좀 너른 쉼터를 지나게 됩니다.
07:12
이내 산죽은 어른 키를 넘을 정도의 위용을 과시하고...
이제부터는 별 생각 없습니다.
좀 키가 낮은 곳에서는 위로 주변을 보며 걷고,
키를 넘어서면 머리를 조금 숙여 걷는 게 아예 낫습니다.
07:18
지도 #2의 느진목재도 안장당골이나 순두류로 가는 사거리로 훌륭한 루트의 중심지이기는 하지만 이런 곳이기 때문에 그냥 스쳐지나가기 십상인 곳입니다.
07:22
느진목재를 빠져나오자마자 바로 지도 #2의 '마;의 곳에 있는 폐헬기장입니다.
07:31
조망을하고 싶은데 영....
07:40
1183.4봉은 사면으로 치고 돕니다.
그러고는 조망이 좀 트이는 곳으로 나옵니다.
천왕봉 ~ 중봉 ~ 써리봉 능선.
그리고 용소골.
저 끝 능선이 낙남정맥이고 그 갈라진 곳이 묵계재.
지도 #3
07:47
다시 산죽 터널.
08:03
그러고는 지도 #3의 '바'의 곳에서 바위봉을 만납니다.
바위에 올라가 온통 꽃가루와 잡목으로 뒤집어쓴 배낭과 몸을 텁니다.
완전히 노란 색깔입니다.
지난 주만 해도 이렇지는 않았는데.....
좌측 아래부터 세존봉 ~ 천왕봉 ~ 중봉 ~ 써리봉.
그리고 그 써리봉에서 이리로 내려오는 능선.
가운데 세존봉과 천왕봉 사이의 뒷줄이 제석봉 그 좌측으로 이어지는 일출봉 능선 그리고 그좌측의 연하봉과 촛대봉과 시루봉.....
맨 뒷줄.
낙남정맥.
그리고 그 중심의 삼신봉.
좌측 뒤가 오늘의 종점인 구곡산.
그 우측 주산 뒤로 희미하게나마 금오산이 보입니다.
그 좌측으로...
지리의 모든 줄기들이 덕산으로 모여드는 모습입니다.
좌측 뒤가 지리태극능선의 수양산과 시무산이, 우측은 낙남정맥에서 갈라진 줄기가 주산을 지나 두방산 ~ 비룡산으로 이어지고....
남명 조식선생은 이 모습을 보았을 겁니다.
그러고는 무릎을 치고는 삼가를 떠나 저 덕산의 산천재에서 말년을 보낼 뜻을 세웠을 것입니다.
저 시무산과 비룡산이 덕천강에서 만나는 협곡에 천연의 석문이 있었으니 입덕문이라 불렀고....
괜히 남명이 아닙니다.
좌측 달뜨기에서 이어지는 지리태극능선.
감상적이거나 낭만적인 기분은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고 다시 현실로 돌아옵니다.
그 현실은 산죽밭입니다.
정말이지 징글징글합니다.
08:20
4등급삼각점(산청442)국수봉입니다.
國帥峰이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國帥峰이라는 봉우리가있습니까?
그것도 지리산에!
국사봉國師峰이겠죠.
곧 하느님이고 단군이고 왕검이기 때문입니다.
중산리에 당집이 많은 것과 무관치 않습니다.
천왕봉만 보이는군요.
좌측 아래로는 순두류마을도 보이고....
다시 진행합니다.
08:59
1032.5봉을 지나 문제의 봉우리에 접근을 합니다.
1005.7봉을 올라....
09:03
이 팻말이 있는 곳으로 올라 옆을 쳐다볼 필요도 없이 직진하여 내려갑니다.
09:08
거리 상으로 60m, 시간 상으로 3분만 내려가면 좌측으로 크게 틀면서 사면으로 등로가 나 있습니다.
이곳이 지도에서 보면 1005.7봉에서 좌로 크게 트는 지역입니다.
표지띠도 몇 개 붙어 있습니다.
이제부터 새로운 길.
그 길은 초입부터 고난의 연속입니다.
지금까지 온 길은 아스팔트라고 하면 이곳은 자갈길.
그 길로 들어갑니다.
참고도 #1
이 길은 지난 번 살펴본 바와 같이 국사봉 팻말이 있는 곳을 넘어 '타'의 곳으로 진행해야 하였습니다.
물론 기본적인 진행은 '카'의 붉은 색 선이 맞습니다만 이곳은 산죽때문에 그런 곳이 못 됩니다.
그런데 사면에 길을 내다보니 여의치 않은 듯.....
09:22
뚫고가기가 여의치 않습니다.
조금 전 지나온 산죽길의 너비가 30~40cm였다면 이곳은 20cm에 불과합니다.
그것도 좌우로 심하게 왔다갔다하는 그런 구조이고....
09:30
지도 #3의 '사'에서 시작한 키만한 산죽밭은 22분 동안 그 안으로 진행하여 '아'에 이르러서야 안부를 만나 숨통을 트이게 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키가 작기는 하지만 계속되는 산죽.
지난 번 거기서 그냥 내려가기를 잘 했지 여기까지 진행했으면 욕을 바가지로 먹었을 것 같습니다.
계속 이 지경이니 이제는 체념을 합니다.
갑자기 제 몰골이 보고 싶군요.
온몸이 꽃가루로 뒤덮였음은 물론 목이나 배낭으로는 잡목 부스러기들이 들어와 찝찝하기 그지 없습니다.
폰도 분실을 우려하여 바지 주머니에 넣고는 필요할 때마다 꺼내 촬영을 합니다.
장갑도 이미 걸레가 된 느낌.
상의는 다행히 헌 옷 중에서도 지맥이나 단맥을 할 때 입었던 옷이라 별다른 아쉬움은 없으나 꽃가루인지 먼지인지 멀티프 안으로 스며들어와 코와 목을 텁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09:52
922.6봉을 올라,
10:05
국립공원 말뚝이 박혀 있는 지도 #3의 '자'의 곳.
여기서 우로 틉니다.
다시 산죽.
조망도 없는 지루한 길입니다.
한 번 쯤은 올 길이지만 누구에게도 권하고 싶지 않은 루트입니다.
지도 #4
10:46
868.2봉입니다.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원덩이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무슨 뜻인가요?
10:58
살짝 조망이 트이는군요.
와!
아까와 다른 모습
지리 동부와 주릉이 함께 보입니다.
좌측으로는 시루봉 ~ 촛대봉에서 천왕봉까지, 우측으로는 천왕봉에서 써리봉.
그 써리봉에서 울퉁불퉁 거리며 이곳으로 흔들며 달려오는 모습.
대단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싶다는 분들께만은 권유하고 싶습니다.
그래도 오시라!
11:14
833.3봉은 바로 우측 사면으로 진행합니다.
그러다 다시 능선을 회복하는데...
11:22
815.5봉은 완전히 우회합니다.
그러고는 직진하는 곳이 선명하지만 여기서는 독도를 잘 하여야 합니다.
아주 주의를 요하는 곳
즉 지도 #3의 '차'의 곳에서는 무조건 좌측을 고집하여야 합니다.
희미하긴 하지만 바닥을 잘 보면 길의 흔적이 보이고 또 표지띠도 한두 장 붙어 있습니다.
그래야 능선을 회복하고 그곳에서 제 표지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조금 편해집니다.
지긋지긋하던 산죽이 보이지 않아 조금 그리워지는 마음이 들 무렵.
11:36
지도 #4의 '타'로 들어섭니다.
이쯤되면 일반표지띠도 볼 수가 있고 이제 산죽으로부터 해방이 되는 곳입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목과 등이 슬슬 가려워 집니다.
빨리 구곡산에 올라 옷을 벗고 나뭇가지를 떼어내고 싶은 생각 뿐입니다.
11:45
이제 힘들다는 생각도 들고 덥다는 느낌도 옵니다.
11:59
그러고는 삼각점(산청26)과 이정표가 있는 구곡산입니다.
삼각점.
진짜 정상은 우측으로 50m 더 가라고 합니다.
가방을 놓고 갑니다.
정상석을 보고,
거기서 천왕봉 등 지리의 주봉들을 봅니다.
좌측부터 써리봉~ 중봉 ~ 천왕봉 ~ 제석봉 ~ 장터목 ~ 일출봉 ~ 연하봉 ~ 촛대봉 ~ 시루봉
시루봉 이하 낙남정맥 줄기가 좌측 뒤가 영신봉에서 내려오는 너럭바위이니 그 정맥줄기는 좌측의 삼신봉으로 흐르고....
가운데 깊이 들어선 마을이 거림일테니 그 좌측이 묵계재에서 내려오는 법성사 등의 사하촌.
묵계재 뒤로 뾰족하게 보이는 봉우리.
호남정맥의 끝자락에 있는 백운산1228m이군요.
백운산이 보이면 그 좌즉의 억불봉은 그저 보너스.
지리산 대부분의 봉우리는 ‘峰’이라는 계급장이 붙어 있다, 그런데 몇 안 되는 ‘산’이름을 가진 봉우리 중 동부지리에서는 유독 구곡산 만큼은 ‘山’이라 불러준다. 남명 선생 덕분인 것 같다.
- 졸저 전게서 209쪽
이 정도 되는 봉우리이니 '山'이라는 계급을 단 게 아닐까요?
다시 삼각점봉으로 돌아가 옷을 벗고 꽃가루를 털고 몸에서 잡목가지들을 떼여냅니다.
가방도 털고....
옷을 다시 입기도 찝찝하여 남은 물로 깨끗이 닦은 다음 바람막이만 입고 내려가기로 합니다.
12:16
도솔암으로 내려오는 길.
조망처를 만납니다.
정말 아름다운 능선입니다.써리봉에서 이곳까지 그대로 선을 그어봅니다.
바로 이 맛이죠.
써리봉 우측으로 대원사능선.
그 뒤로 도토리봉에서 밤머리재로 능선을 떨어지고.....
밤머리재에서 우측 기산과 연결되어 웅석봉으로 이어진 다음,
그리고 앞으로는 대원사능선이 그 뒤로는 이방태극능선이 그뒤로는 수양태극능선이 모두 덕산으로 모이고 덕천강 우측으로 비룡산 줄기 역시.....
내려오는 길에 풍부한수량의 계곡물이 알탕을 유혹하지만 이 물은 시천면 주민들의 식수로 이용되고 있는 물입니다.
그리고 덕산마을에는 3,000원 하는 깨끗한 목욕탕이 있으니 굳이 계곡물에 몸담지 않아도 무방합니다.
12:59
도솔암에서 부처님오신날 법회를 마친 많은 신도들이 빠져나오느라 바쁩니다.
상의만 더러워진 게 아니라 바지도 마찬가지여서 하나로 마트 옆에서 집에서 막 입을 바지를 하나사서 목욕탕으로 갑니다.
개운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으니 멀리 보이는 천왕봉이 다시 손짓을 합니다.
신령님.
오늘만 날입니까?
또 오갰숩니다.
원지로 나가 단골집인 '동해갈비탕'에 들렀더니 정기휴일.
그러고보니 제가 일요일에 원지에서 서울로 올라간 적이 없었나 봅니다.
근처 중국집에 들어가 짬뽕을 시켜놓고 하산주를 한잔하고 부산교통 편으로 귀가를 합니다.
밀린 숙제를 하고나니 정신도 깨끗하고 무엇보다 몸이 편합니다.
덕산까지 20.54km를 걸었고 소요시간은 10시간이군요.
중간에 50분 정도 쉬는 시간이 있으니 예전한 시간에 맞춰 잘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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