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비가 오는 바람에 지리산 산행이 취소되고 덕분에 예기치 않은 삼각산 산행이 있었습니다.
지리산 산신령님을 뵙는 대신 삼각산의 정기를 받은 모양새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중 산행의 욕구가 뇌리를 자극합니다.
예정되어 있는 일들을 마무리하고 백무동 ~ 한신계곡 ~ 장터목 ~ 천왕봉 ~ 중산리 구간을 예정합니다.
앞으로 '백두대간 100부작' 제작을 위한 주요 포인트 사전답사를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당일 변수가 생기는군요.
대간을 3차째 진행하고 있는 맹이님이 친구와 함께 대간 그중 '복성이재 ~ 육십령' 구간을 진행한다며 지원을 부탁합니다.
여자끼리 무박산행을 한다는 것이 좀 안심이 안 되는 듯 보입니다.
어쨌든 요즘 여성 트래커들 대담해졌습니다.
표야 이미 예매해놨으니 맹이님 일행이 제 시간에 맞춥니다.
갑자기 생긴 일정 변경입니다.
2019. 5. 15. 23:50
성능도 좋지 않은 차가 속력은 규정 속도 이상을 내느라 소음과 경고음 때문에 시끄러워 잠 한숨 자지 못합니다.
인월에 승객을 모두 내려놓은 버스는 다시 함양으로 돌아가고....
혼자 백무동까지 갔었으면 불평불만 좀 들었을 법합니다.
즉 이 함양지리산 버스는 백무동이 종점이지만 기사님들은 다시 함양으로 돌아가 숙박을 하고 다음 날 일정을 소화하기 때문입니다.
터미널 옆 편의점에서 이른 아침을 먹고 볼 일을 다 본 다음 예약한 택시를 부릅니다.
아영을 지나 번암면과의 경계인 복성이재입니다.
남원시 아영면이고 장수군 번암면이니 오늘 구간의 시작은 군계를 따라 진행하게 되는군요.
이 도로 우측으로 내려가면 아영면 성리마을이 나온다. 인월 성산마을이 흥부와 놀부 형제의 고향이었다면 이 성리마을은 쫓겨난 흥부가 부자가 되었다는 곳이다. 이쯤 되면 정∙순조 시대의 명창인 권삼득(1771~1841)의 판소리 ‘흥부가’도 한 번쯤은 들어볼 만하다. ‘흥부전’은 판소리 ‘흥부가’에서 비롯된 판소리계 고전소설이다. 흥부가 놀부에게서 쫓겨나 17개 마을을 떠돌다 마지막 찾은 곳이 산안(남원 산내면)인데 지금은 인월면과 이 아영면이 서로 ‘흥부의 고향’이라고 자처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흥부의 성이 예사롭지 않다. 연씨 혹은 박씨라고 알고 있었는데 최근 1833년 필사본 ‘흥보만보록’이 공개되어 흥부가 무과에 급제하여 ‘덕수 장씨’의 시조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성씨의 시조는 고려말 귀화한 위구르인 장순룡인데 그렇다면 흥부의 실제 모델이 위구르인 장순룡이라는 이야기인가?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하나 생겼다. -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102쪽
03:45
기사님이 우리가 복장을 갖추는 걸 도와주시느라 가지 않고 라이트를 비춰주시는군요.
지도 #1
이정표 안으로 듭니다.
도상 거리가 30km가 조금 넘는 오늘 구간은 사실 남진으로 진행하면 훨씬 수월합니다.
마의 구간인 백운산 구간을 내리막으로 진행할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심적인 부담이 덜하니까...
그 말은 곧 북진 구간은 오르막이 많아 상대적으로 힘이 더 든다는 얘기죠.
운봉 쪽 야경이 잡힙니다.
04:02
매봉입니다.
누가 지어놓은 이름인지 몰라도 철쭉 때문에 붙여놓은 이름 같습니다.
사람들은 모여드는데 그럴듯한 이름을 가진 봉우리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겁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봉화산의 철쭉은 이미 다 끝났군요.
이제는 소백산입니까?
지리산 바래봉도 한창이라는 것 같던데.....
04:09
치재에서 전망대는 패스합니다.
이곳 아영면 두락리에서 발견된 가야시대의 고분은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다고 합니다.
임천지맥(신산경표에서는 연비지맥)의 연비산 자락에 있는 40여기의 봉토분은 가야계 수혈식 석곽묘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 가야나 삼국시대를 지나며 이 일대에 약 80여 개소의 봉수대가 산재해 있다는 군요.
그러니 장수나 아영 일대의 봉수대가 많으니 봉수대국이라 부를만 하고 더욱이 그 처음이 가야이니 이런 이름을 붙여놓은 것 같습니다.
앙증맞은 두 기의 대장군과 여장군의 목상도 보고....
그러고 보니 오늘이 음력 4월 19일.
만월은 아니지만 그래도 달이 크군요.
온누리를 훤하게 비추고 있습니다.
지도 #2
04:56
지도 #2의 '가'의 곳을 지납니다.
지도에는 다리재라 표기되어 있는데 이곳은 봉우리인데 왜 고개?
잠시 뒤를 동아 지나온 줄기들을 봅니다.
우측 앞은 대간줄기...
여유로운 풍경을 봅니다.
4동의 텐트.
노고단님이 생각나는군요.
노고단님과의 지리산 야영.
늘 꿈꾸고 있나이다!
좌측으로 고남산이 보이고 그 우측 뾰족한 곳이 요천지맥의 천황산.
그 두 봉우리 사이로 흐르는 물이 바로 요천이죠.
섬진강의 한 줄기인 요천.
오늘은 그 요천(이 요천으로 흘러드는 백운천도 요천이라 보고)을 계속 보면서 걷게 됩니다.
금남호남정맥이 백두대간에서 갈리는 영취산 아래 무령고개까지....
아름다운 이른 아침 풍경입니다.
이 시간 덕유산 서봉과 남덕유의 아침 안개 낀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이 모습 또한 그에 비할 바는 안 되나요?
그래도 저 뒤로 지리의 서부능선이 보이고 좌측으로는 임천지맥이 연비산과 오봉산 그리고 삼봉산을 거쳐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모습이 보이는데 말입니다.
좀 흐리다고요?
예.
좀 꼈습니다.
그러면 좀 어떻습니까?
나머지는 다 마음 속으로 보면 되지요.
임천지맥의 옥잠봉.....
그 위로 붉은 기운이 돕니다.
05:19
봉화산으로 오릅니다.
아영면과 번암면의 모든 산을 지배하고 있는 봉우리인 봉화산.
대간의 적자인만큼 속금산이나 천황산, 연비산 정도는 봉화산에 비할 바가 못 됩니다.
2등급삼각점(함양23)도 거느렸으니....
정면으로 대간길을 봅니다.
바로 앞으로 임천지맥 갈림봉이 보이고 그 뒤로는 백운산과 중봉이 그리고 그 우측으로 이 백운산에서 가지를 친 줄기에 있는 대봉산의 천왕봉이 보이고....
대간길....
요천지맥.....
좌측 속금산.
그 뒤로 좌측이 금남호남정맥의 장안산 그리고 그 우측의 영취산.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저 같은 사람은 저 '금남호남정맥의 장안산'이라고 부르는데 신산경표 매니아를 자처하는 사람도 그렇게 부릅니다.
참 아이러니컬한 얘기죠?
안 그렇습니까?
그래도 한 문파의 좌장 정도의 직함을 갖고 행동하고 말을 하고 다니려면 신산경표를 꿰차고 다닐 정도의 식견은 가지고 있어야 할 텐데 그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말이 얽히고 앞뒤가 맞지 않는 그야말로 모순 그 자체입니다.
무슨 얘기냐고요?
간단하게 말씀드리자면 신산경표의 박성태 선생님은 일찍이 원산경표가 산자분수령의 원리에 충실하지 못한 점에 주목하셨습니다.
즉 금남호남정맥이나 한남금북정맥 나아가 북한에 있는 청북청남정맥이나 임진북예성남정맥과 해서정맥 사이에 있는 겹침줄기를 보신 겁니다.
그러고는 이들 겹침줄기 특히 정맥이라는 이름을 가진 금남호남정맥이나 한남금북정맥 등이 10대강과는 무관하게 그맥을 다한다는 게 불합리하다고 판단하시기에 이릅니다.
그러니 이들 정맥을 호남정맥이나 금남정맥 그리고 한남정맥이나 금북정맥들을 비교하여 그 한 쪽에 편입시켜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시게 됩니다.
박선생님께서 늘 주창하시는 승자승 원칙이 여기에 도입되어 금남호남정맥은 호남정맥에, 한남금북정맥은 금북정맥에 각 편입시키게 되는 것이죠.
신산경표는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 호남정맥의 끝이 백운산인 것을 망덕포구까지 연장시켜 말 그대로 산자분수령의 원칙인 함수점 원칙에도 충실히 하셨습니다.
그러니 나머지 금남정맥은 기존의 부소산으로 가던 것을 금강과 서해바다의 합수점인 군산의 장계산으로 돌리고 그 이름 또한 금강정맥으로 바꾸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셨던 것입니다.
이는 한남금북정맥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이 한남금북정맥은 금북정맥에 편입되게 되고 기존 안흥진으로 가던 줄기를 백월산에서 남진시켜 금강과 서해바다의 합수점으로 가게 하면서 그 이름도 그 지방의 이름을 따 호서정맥이라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니 남한 9정맥이 7정맥으로 정리되어 신산경표를 따를 때에는 당연히 한북정맥, 낙동정맥, 한남정맥, 호서정맥, 금강정맥, 호남정맥 그리고 낙남정맥(이 낙남정맥도 신낙남정맥이라 하여 기존의 낙남정맥과 그 끝을 달리합니다.) 등 7정맥으로 불러야 합니다.
그러니 선생님의 이 7정맥을 '월간 산 2014년 5월호부터 12월호까지 7개월간 해설을 한 제가 그나마 선생님의 이런 '산자분수령'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그런데 이런 간단한 신산경표의 이론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무리들이 맹목적으로 선생님의 신산경표를 추종한다고 하니 참으로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입니다.
각설하고....
등로 바로 옆 임도를 봅니다.
좌측의 이 임도는 하동마을로 연결되어 743번 도로가 됩니다.
05:34
우측으로 아영 구상리로 가는 임도와 연결되기도 하고....
이정표를 따릅니다.
키 큰 억새밭을 지나다 보니....
우측으로 오늘의 태양이 떠오릅니다.
임천(신산경표에서는 연비지맥)지맥.
옥잠봉에서 비조재를 넘어 연비산을 지나 오봉산과 삼봉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명백합니다.
그 삼봉산 우측 뒤로 천왕봉도 보이건만 사진으로는 영....
신산경표에서는 제일 높거나 잘 알려진 봉우리의 이름을 따서 연비지맥이라 부르지만 대한산경표에서는 '1물줄기 1산줄기' 그리고 합수점의 원칙에 따라 물줄기 이름을 따서 임천지맥이라 부르는 것이죠.
“어떠냐? 대단하지?”
“와! 일망무제(一望無際)! 형, 대단하다. 저게 지리산 줄기, 뒤가 우리가 걸어 온 대간길. 저 저수지 건너 요천지맥. 저게 팔공산이란 말이지?”
이 자연이 아니 산이 주는 아름다움에 취하다보면 잠깐 빠뜨릴 수도 있는 게 있다.
“저기 정자 뒤의 산줄기를 봐. 저 우측으로 내려가는 산줄기가 전라북도 남원시와 경상남도 함양군의 경계야. 곧 도계(道界)라는 말이지. 저 아래 88고속도로 지나는 그 낮은 고개가 ‘매치’인데 그 매치가 도계 역할을 하는 거야. 중요한 것은 지금 이 봉화산 우측으로 흘러가는 물은 다 임천으로 모아져 남강으로 흘러가게 되고 저 도계 역할을 하는 산줄기 너머의 물들은 위천으로 모여져 남강으로 가게 되는 거야. 남강 알지? 남강기맥을 싸고 흘러가는 물.”
“그럼 저 줄기는 이 임천이 남강과 만나는 합수점에서 맥을 다하겠네. 저 산줄기는 도상거리가 얼마나 돼?”
산줄기의 흐름. 그리고 그것을 에워싸고 있는 물줄기. 그리고 그 물줄기보다 하나 더 상위개념의 물줄기와 만나는 합수점. 그러고는 마지막으로 그 산줄기의 도상거리. 장감독은 산줄기의 개념을 거의 다 꿰찬 느낌이다.
“도상거리가 약 38.2km 정도 돼.”
“그래. 그럼 임천지맥이네. 지도로 볼 때 그 합수점에서 거꾸로 선을 그어 올라오면 그 지맥을 확인 할 수 있겠군. 간단하네!”
- 졸저 전게서 108쪽
봉화산!
임천지맥 분기점을 지나면서 이제는 함양군 백전면으로 들면서 이제부터는 전라북도와 경상남도의 도계를 따라 진행하게 됩니다.
속금산 좌측으로는 요천.
그 뒤 우측이 신산경표로 볼 때에는 호남정맥의 장안산 좌측이 팔공산.
원산경표로는 그저 금남호남정맥의....
맨 뒤...
좌측이 백운산1278.9m 우측이 중봉12430m.
생김새로는 백운산이 더 뾰족합니다.
저 속금산도 가보고는 싶으나 저 속금산을 가기 위하여 이렇게 먼 길을 온다는 것은 사실 조금 억울합니다.
06:11
935.9봉을 지납니다.
여기서 좌틀하면 속금산으로 진행하게 되고....
조망이 터집니다.
바로 앞에 우측으로 빠지는 줄기 중 봉긋 솟은 게 월경산.
보름날 저 봉우리에서 보면 달月이 거울鏡 처럼 밝고 환하게 보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죠.
그리고 그 바로 뒷 봉우리가 백운산과 중봉.
좌측 백운천 계곡과 장안산.
06:18
지도 #2의 '나'의 곳을 지납니다.
등로가 예전과 다르게 정비가 된 것 같습니다.
06:38
927.1봉을 지납니다.
지도 #3
06:54
지도 #3의 '라'의 곳인 광대치를 지납니다.
지도에는 그 위에 광대치라고 표기되어 있지만 '峙'는 고개인만큼 이곳이 맞습니다.
산림청에서 제작한 옛이정표와,
새이정표.
그런데 새 이정표가 좀 엉터리인 부분이 많더군요.
07:16
그 한 예가 바로 이 이정목인데....
아직 월경산을 지나지도 않있는데 400m전에 지났다고 하니....
아마 위 지도의 '마' 에 설치할 이정목이었는데 엉뚱한 곳에 세워둔 것입니다.
빨리 자리를 잡으십시오.
07:24
예전 이정목도 잘못되기는 마찬가지.
여기가 월경산은 아니잖습니까?
그러니 다들 여기서 좌틀하여 진행을 하게 되는 것이죠.
월경산 정상은 여기서 그대로 직진을 하여 200m 정도 오르면,
선생님의 산패山牌와,
3등급 삼각점(함양315)이 있는 월경산 정상입니다.
비록 조망은 없더라도 이런 곳은 꼭 다녀와야죠.
멀리서 이 부근을 조망할 때 제대로 보이는 봉우리는 이 월경산이 유일하기 때문입니다.
오던 길을 되돌아 나가다 우틀하면,
이 안내판이 연이어 나옵니다.
좀 우회하는 듯한 기분이 들더라도 신생을 위해서 우회를 하여 푹신한 등로를 따릅니다.
08:06
중치를 지납니다.
이정표 상 12.1km를 온 것이군요.
4시간 20분 정도 왔으니 볼 일 보는 시간, 봉화산 조망 시간 등을 빼면 시속 3km 정도가 되는군요.
잠을 제대로 못 잤으니 후반부가 문제입니다.
백전 운산리 가는 길.
또 가야죠.
제발 도둑질 좀 하지 맙시다.
산에 다니는 분들이 이런 생각이 드나요?
대간꾼의 소행은 아닌 것 같고....
08:53
755.3봉입니다.
지도 #3의 '바'의 곳인데 지금은 폐쇄된 삼각점이죠.
08:55
그러고는 중고개재입니다.
반가운 산패가 눈길을 잡습니다.
분당, 수지를 본거지로 한 명품산악회입니다.
여기서 아침 간식으로 떡을 좀 먹고 가기로 합니다.
15분 정도 머뭅니다.
지도 #4
09:33
873.8봉을 지나 지도 #4의 '사'의 곳을 지납니다.
많이 먹었나?
아무래도 뭘 먹고 올라가면 좀 힘에 부칩니다.
천천히 그리고 쉬지 않고 오릅니다.
앞으로도 800m.
오늘 구간 중 가장 힘든 구간입니다.
09:56
조망이 트이는 곳입니다.
좌측으로는 장안산이 가까워졌고.....
그 우측으로 무령고개로 눈을 따르다 보면 그 우측의 봉긋 솟은 봉우리가 영취산 전위봉이죠.
그 우측 뒤가 이곳에서는 깃대봉으로 불리는 구시봉.
백운산.
아직도 멀었습니다.
그래도 올라가야죠.
10:12
드디어 중봉 삼거리입니다.
하산길 방향이 저 중봉을 거쳐 상련대로 향하는 길이겠고....
우리는 직진을 합니다.
10:13
드디어 백운산입니다.
백운산에는 정상석 두 기와 삼각점 그리고 이정목 등이 있는 헬기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큰 정상석 뒤를 보면,
흰구름산이니 뭐니 하면서 한자 풀이식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보면 안 되죠.
백(白)자 이름을 가진 산 이름
정상석 뒷면을 본다. ‘흰구름이 봉우리에 걸리고....’
“형. 이거 아주 웃기는데. 마치 백두산 얘기 같네. 산이 높아 사시사철 정상부가 눈에 덮여 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게 됐다는.”
일반인들도 사실 백운산하면 흰 ‘백(白)’자에 구름 ‘운(雲)’자를 쓰니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기는 하다.
“일반적으로 그렇게들 이해를 하지. 근데 무슨 말이 하고 싶어서?”
“형도 알잖아. 형같이 열렬한 육당 팬인 사람이.”
“ᄇᆞᆰ‘사상 얘기하려는 거야? 좀 들어보자. 사실 불함문화론에 대해서 아직 정리가 잘 안 되서 말이야.”
독립운동가로 활동을 하던 육당은 그 유명한 ‘독립선언문’ 작성으로 일제에 의해 투옥되었다가 1921. 10. 18. 가출옥을 한다. 가출옥이란 곧 ‘회유’의 다른 말이었다. 그는 1925년 ‘불함문화론’을 내놓는다. ‘불함’이란 ‘ᄇᆞᆰ’ 즉 광명, 하늘, 신(神), 태양을 뜻하는 말이다. 육당은 단군사상으로 상징되는 우리의 천신숭배사상 즉 ‘ᄇᆞᆰ사상’이 고대 중국과 일본뿐 아니라 유라시아 전역에 걸쳐 퍼져나갔다고 주장했다. 이 ᄇᆞᆰ사상의 ‘ᄇᆞᆰ’의 한자어가 바로 ‘백(白)’이라는 논지다.
그러면서 이 ‘백(白)’자 계열의 땅 이름 중 가장 먼저 지목한 곳이 바로 민족의 영산 백두산인 것이다. 즉 애당초 하느님의 아들 환웅이 홍익인간의 뜻을 품고 3,000명의 무리를 데리고 내려온 곳이 바로 태백산(太白山)이고 이 태백산이 바로 백두산(白頭山)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 백두산의 원래 이름은 ‘ᄇᆞᆰ뫼’나 혹은 그 비슷한 이름이 한자어가 들어오면서 ‘ᄇᆞᆰ’에 존경 혹은 우두머리의 의미를 내포한 두(頭)를 붙여 백두산이 되었을 것이라는 거다.
“그래. 우리 민족의 산악숭배사상은 좀 알아줘야해. 그리고 예로부터 각 부족은 이렇게 자신들 고유의 신격화 된 산 즉 ᄇᆞᆰ산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지. 그 부족들이 통폐합 되는 과정에서 이 ‘ᄇᆞᆰ산’ 서열의 높낮이도 결정이 됐고. 그러니 우리나라의 최고 대장인 산은 백두산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거야. 물론 ‘백’자가 들어간다고 해서 모두 이 ‘ᄇᆞᆰ’에 해당한다고는 볼 수가 없지만 유별나게 ‘백’자 계열의 산이름이 많다는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는 거지.”
“맞아. 형. 그리고 그 ‘ᄇᆞᆰ’이 시간이 지나고 또 지역에 따라 조금씩 변하게 되었는데 ‘박’, ‘발’, ‘밭’ 등이 그 예잖아. 제천 부근에 있는 박달재의 박달재도 ‘ᄇᆞᆰ(明) + 달(高, 山) + 재(岾)의 조합이라는 것이고.”
“그래. 우리가 이 대간길을 진행하다 보면 박달령이라는 고개 이름도 많이 나와. 박달령의 다른 이름인 단목령도 보게 되고. 그러니 앞으로는 ‘박달나무가 많아서 박달령이다.’라는 말은 삼가자!”
“그럼 이 백운산의 경우는 어떤 뜻인 거야?”
“그러니까 백운(白雲)은 ‘ᄇᆞᆰᄋᆞᆫ’ 혹은 ‘ᄇᆞᆰᄋᆞᆫ애’에서 왔다고 하는 견해가 있어. 곧 천계(天界)를 뜻한다는 거지. 그게 신의 세계, 신의 산이라는 뜻에서 제사를 주관하는 사제(司祭) 즉 남자무당을 뜻하는 ‘박수’로 되기도 하였고 여러 전형(轉形)으로 백운(白雲), 백암(白巖)이 생기게 된 것이지. 그냥 간단하게 ‘신의 산’ 정도로 보면 될 것 같아. 신령스런 산이라는 거지.”
- 졸저 전게서 110쪽
볕이 따갑습니다.
작은 정상석과,
3등급삼각점(함양308),
그리고 이정목을 봅니다.
얼마전 다녀온 빼빼재.
빼빼재는 후해령이라고도 불립니다.
좌로 영취산.
그 우측 뒤로 구시봉이 보이고 그 우측으로 대간길을 따라가 보니 높게 서봉과 남덕유가 보입니다.
희미하긴 하지만 그 남덕유를 중심으로 새가 날개를 활짝 편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고 보니 장수 사람들이나 함양 사람들이 저 남덕유를 봉황산이라 부르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산세가 봉황이 날개를 폈으니 봉황산이라고 부른다는 것이죠.
알겠습니다.
조금 이따 그 바로 아래에 있는 할미봉을 볼 수 있으려나?
기대해 봅니다.
그 우측으로 남령 넘어 남강지맥의 금원산과 기백산이 그리고 그 앞줄에 거망산과 기백산이 보이거늘 오늘은 그저......
앞 줄의 덕운봉에서 우측으로 가지를 쳐,
중간에 볼똑 솟은 재산봉 정도만 확실하게 볼 수있을 뿐.....
중앙 계곡 맞은 편이 우락산764.8m.
그뒤 좌측이 거망산 우측이 황석산.
백운산을 내려오면서 백전에서 서상면으로 들어섭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전라북도 장수군 번암면과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의 도계를 따라 걷게 됩니다.
11:01
지도 #4의 '자'의 곳을 지나고....
11:09
곧 1066.6봉을 지납니다.
11:17
쉼터가 있는 1085.3봉을 지나면 이제 영취산도 700m만 남았습니다.
근데 어느 정신 나간 사람이 불을 피운 흔적이 있군요.
참 나쁜 사람....
지도 #5
11:23
좌틀하면 무령고개로 내려가는 길이죠.
삼거리를 지납니다.
11:31
그러고는 영취산입니다.
백두대간에서 금남호남정맥이 가지를 치는 곳.
3등급삼각점(함양309)이 있고...
1085.3봉을 지나 안부로 내려서면 좌측으로 선명한 길이 보인다. 무령고개로 내려서는 길이다. 산죽 밭을 5분만 더 올라서면 ‘피사의 사탑’처럼 좀 기운 듯한 느낌이 드는 정상석과 삼각점(함양309) 그리고 백두대간 안내판이 있는 영취산이다.
“여기가 그 영취산이구나. 영취산, 취서산, 영축산 다 똑같은 이름이지? 석가모니 부처님이 법화경을 설파했던 인도의 그 영축산에 따온 이름. 그리고 여기가 산자분수령의 원리에 의하여 대간과 금남호남정맥 사이에서는 금강이 발원하게 되고?”
역시 하나를 이해하면 둘을 깨우치는 그야말로 타고난 산경표 박사인 장감독이다.
“그래 대간 북서쪽으로는 금강! 그럼 남서쪽으로는?”
허를 찔렀나? 잠깐 당황스러워하는 장감독이다. 그러고는 지도를 펴든다.
“음...10대강 중의 하나인 섬진강이 여기서 발원하는 거란 말이야?”
“정맥이잖아. 정맥에서는 10대강이 갈리게 된다고 하잖아. 그런데 이 섬진강의 발원지는 데미샘이라고 봐. 이 금남호남정맥의 팔공산 부근의 샘인 데미샘.”
“그럼 섬진강 발원지는 여기 아니야?”
“발원지는 아무래도 그 강의 가장 긴 거리를 만들어 주는 곳이어야 하겠고 그렇다면 이곳이 맞아야 하잖아? 그런데 물이 나오는 양도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고 보는 거 같아. 그러니 금강도 산자분수령에 의하여 여기서 갈라진 게 맞지만 발원지는 수분재 옆의 뜬봉샘으로 보고 있어.”
산경표에서 본 정맥
“근데 여기 안내판에는 삼파수라고 적혀 있네. 하나는 어디야? 동쪽이니까 낙동강?”
“이 우측의 작은 골에서 나오는 물들은 다 남강으로 합류되지. 그러고는 낙동강에서 합류되고. 지난 번 지리산 걸을 때 얘기해줬잖아.”
유심히 지도를 뜯어보다시피 하던 장감독이 다시 말문을 연다,
“형! 근데. 형이 지난 번 정맥은 대간에서 갈라지는 산줄기라고 했잖아. 그런데 호남정맥과 금남정맥은 대간에서 갈라지는 줄기가 아니고 이 금남호남정맥에서 갈라지는 정맥이네. 이거 틀린 거 아니야?”
약간은 곤란한 질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기다렸던 그것이기도 했다.
“좀 어려울 거 같아서 얘기를 안 했는데.... 누구도 설명해 주지 않았지만 난 이렇게 봐. 그 누구도 정맥이 대간에서 갈라져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어. 해동도리보나 여지편람의 산경표 혹은 신경준의 여지고에도 그런 내용은 없어. 그저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배우고 본 수준에 입각하여 산경표를 보고 있는 거야. 우리 잣대로 본다는 것이지. 그리고 정맥은 10대강을 발원하는 줄기를 정맥으로 본 것이지 반드시 대간에서 갈라지는 줄기라고 본 건 아니야. 그리고 10대강의 흐름을 따라 가다보니 부득이 호남정맥과 금남정맥이 갈리게 되고 그러니 그 정맥의 이름을 따로 호남정맥과 금남정맥으로 나눠 부를 수밖에 없게 됐겠지. 그러니 금남호남정맥이라는 겹침줄기가 생기게 된 것은 필연이었고 고육책이었겠지. 우리 선조들은 그렇게 본 거야.”
“그래?”
“그래. 대간 → 정맥 → 기맥 → 지맥. 이런 거 지금 우리가 만들어낸 거야. 산경표를 보니까 대간에서 정맥이 갈라진 거지 반드시 대간에서 정맥이 갈라지는 게 아니야. 정맥은 정맥에서도 갈라질 수 있는 거지. 그리고 그 정맥의 끝이 반드시 바다와 10대 강이 만나는 합수점으로 가야만 한다는 법칙도 없어. 즉 이 산경표가 편찬된 시기가 조선시대의 유교적 질서가 팽배하던 때이니 더욱 그러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어. 그걸 증명해 주는 것이 한북정맥이 서울을 지나게 만들었고 금남정맥의 끝이 공주를 지나 부여로 갔으며 낙남정맥의 끝이 김해로 갔다는 것 등이야. 그 정맥의 끝이 거기로 갔다고 해서 정맥은 대간에서 갈라져야만 한다고 하는 사실의 반증은 되지 않잖아? 이 정도만 하고 더 자세한 것은 여기서 얘기할 사항이 아니니 다음 기회로 미루자.”
장감독의 궁금증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형. 잠깐만. 산경표에는 이 영취산이라는 이름은 안 나오고 오히려 장안치만 나오는데. 영취산이 장안치란 말인가?”
분명 대동여지도에도 나오는 영취산이건만 정작 산경표에는 고개 이름일 장안치만 표기되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대동여지도의 장안산의 위치가 지금과 다르기까지 하다.
“좋은 지적이야. 먼저 장안치부터 볼까? 장감독 말대로 산경표를 보면 백두대간 편에는 장안치라고 나와 있는 게 맞아. 그런데 금남호남정맥 편에는 장안산이라고 표기되어 있어. 그러니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아.
한 걸음 더 들어가 볼까. 이 영취산은 예전 고지도를 보면 전라도 장수에서 보는 것과 경상도 안의에서 보는 것이 사뭇 달라. 그러니까 고지도의 ‘장수편’에서 보면 영취산, 장안산, 본월치 등이 구분돼 표시되어 있는 반면 고지도의 ‘안의편’에는 영취산에 대한 표기가 없어. 오히려 신동국여지승람과 장수현 읍지(邑誌)에는 영취산은 일명 장안산이며 읍치로부터 이십 리 지점에 있다(山水靈鷲山一云長安山東二十里)고 되어 있어. 장안산과 영취산을 같은 산으로 본 거지. 그래서 어떤 이는 영취산을 장안산의 이명(異名)일 것이라고 하기도 해. 곧 영취산이라는 게 금남호남정맥과 장안산을 이어주는 이음새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장안산과 영취산이 같다고 했음에도 굳이 분리할 필요가 있냐는 거지.”
“형은 어떻게 생각해?”
“글쎄. 사실 일제가 조선정부의 무능함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고산자 김정호를 이용했잖아? 그 이야깃거리 중 하나가 ‘김정호가 백두산을 여덟 번 오르고 전국을 세 번씩 누볐다.’는 거잖아. 그게 말이나 되는 얘기야? 김정호는 훌륭한 지도 제작자이지 측량기술자가 아니거든. 신증동국여지승람이나 대동여지도 역시 기존의 자료나 구술에 의해 목판한 것이고 그걸 정교하게 과학적으로 제작한 거잖아. 그렇게 볼 때 지도 제작자나 책을 만드는 이들은 현지 주민 혹은 관리들보다 더 확실한 지명을 알 수는 없었을 것 같아. 그런 점에서 읍지(邑誌)에서 같은 산이라고 봤으면 그게 맞다고 봐야겠지.”
- 졸저 전게서 112쪽 이하
준희선생님의 산패입니다.
선생님은 이곳을 원산경표의 금남호남정맥 분기점으로 봤지만 신산경표는 호남정맥의 분기점으로 봅니다.
신산경표 매니아님들께서는 확실하게 알아 두십시오.
여기서 15분 정도 간식 겸 점심을 먹고 갑니다.
영취산을 내려오면서 이제 번암면에서 장계면으로 들어섭니다.
12:10
지도 #5 '카'의 곳에서 논개 생가 삼거리를 지나고.....
좌측 서래봉과 우측의 백운산.
그리고 우측의 영취산.
그리고 진행방향으로 남덕유산이 아까보다 선명하게 보입니다.
봉황산....
12:27
지도 #5의 '타'의 곳이 덕운봉이라는 명찰을 달았습니다.
산림청은 산이름을 지을 권한이 없는데....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이곳이 아닌 대간길에서 우측으로 조금 빠져나간,
저 봉우리가 덕운봉인데....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12:48
삼거리를 지나,
12:53
924.5봉을 봅니다.
저 봉우리는 우측으로 사면치기로 지날 것입니다.
멀리 금남정맥의 대둔산이 보입니다.
그 우측으로는 운장산 줄기가 보이고...
바로 앞으로는 금남호남정맥의 무령고개 바로 위 우측에서 가지를 친 줄기가 계남천과 장계천의 합수점으로 달리고 있는 장계단맥의 백화산849.5m.
그 줄기는 우측으로 남덕유산과 이어지는 것 같이 보입니다.
구시봉과 남덕유산.
또 가야죠.
12:59
지도 #5의 '파' 곳을 지나,
13:03
927.5봉의 산죽지대를 지납니다.
10여년 전에 이곳을 지날 때에는 산죽 때문에 고생 좀 하였다고 하죠?
지금은 이렇게 말짱합니다.
그래서 10년 전 제가 이곳을 지날 때 바짝 긴장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13:24
지도 #5의 '하'의 곳을 지납니다.
이곳이 육십령과 영취산의 중간 지점이라고요?
6.5km 남았으니 거의 다 왔군요.
지나온 길을 봅니다.
우측 장안산.
그 좌측으로 무령고개를 넘어 영취산 그리고 중앙의 백운산, 서래봉.
그 앞 줄 중앙의 덕운봉과 그 우측의 갈림봉.
서상 옥산리와 금당리.
우락산 뒤로 황석산과 거망산 줄기가 좌측 남강지맥(신산경표에서는 일부 진양기맥)으로 달려오고....
13:47
961.5봉으로 오릅니다.
상당히 덥습니다.
다행히 이곳은 나무가 햇볕을 가려주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설악의 서북능선이나 지리의 주릉을 걷는 이들은 얼마나 더울까....
시원한 맥주가 그립습니다.
지도 #6
13:49
961.5봉으로 오릅니다.
구시봉 뒤로 남덕유가 더욱 선명해지고....
중앙 깃대봉에서 우측으로 수비재를 지나 덕유 서봉으로 능선은 이어지고...
이제 대곡저수지도 바로 옆입니다.
14:21
그 대곡저수지로 빠져 나가는 삼거리입니다.
지도 #6의 '거'의 곳입니다.
14:22
그러고는 민령인데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의 민령은 민재와 실제의 곳은 틀립니다.
예전에 이곳에서 점심을 먹었던 기억이 있는 곳입니다.
잠시 억새 숲으로 들어,
우측으로 시원하게 뻗은 통영-대전 고속도로를 봅니다.
좌측 대봉산과 우측 서래봉 ~ 백운산 줄기.
거망산 ~ 황석산.
그리고 좌측으로 금원산과 이어지고 ...
14:49
숲으로 듭니다.
이제 저 뒷봉우리가 구시봉이니 천천히 올라가도록 합니다.
14:54
민령을 지나면 오늘 구간의 마지막 봉우리인 구시봉1014.3m(일부 등산지도 상 ‘깃대봉’)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깃대봉으로 더 알려진 곳이다. 구시라... 구시가 뭔가?
“구시가 소나 돼지 등 가축의 먹이를 담는 그릇 아니야? 예전에 시골에 가면 그런 게 있었지. 그러면 이 봉의 생김새가 그 구시를 닮았다고 하여 붙인 이름?”
“여물통을 얘기하는 거냐?”
이제 장감독은 산 이름 작명가로 활동을 해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런데 그 어원을 살펴보면 전혀 다른 이름이지. 우리가 아무렇게나 산 이름을 짓는 그런 민족이 아니잖아? 산악숭배사상이 괜히 있는 건 아니라는 얘기지."
선조들의 삶의 터전인 산은 곧 신앙의 대상이었다. 백두산이 그러했고 지리산이 그러했다. 산에는 숲이 있다. 숲은 곧 소도요 신성한 공간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산은 신앙의 시작이 되었다. 큰 나무는 당산나무가 되었고 큰 바위는 대臺가 되었다.
백두산의 수림 즉 소도에서 잠자고 있던 광명의 신은 점차 여러 곳으로 흩어졌으니 백두산에서 시작한 토속 신앙은 사람을 따라 나라의 숲 전체로 퍼지기 시작했다.
광명의 신 단군은 천군이니 백두산신이 천왕이고 국사대천왕이며 국토신이자 산신이라고 한 육당 최남선의 말이 낯설지 않다. 여기서 말하는 국사란 불교의 僧階를 말하는 국사가 아니다. 우리 고어의 龜旨, 仇時 등의 형태로 쓰이던 말이 불교가 수용되면서 그 말을 가져다 쓴 것에 불과하다. 그러니 이는 본래 신령이라 뜻으로 천왕과 함께 쓰여야 할 것이었다. 그런 연유로 우리나라 산 이름에 국사봉이나 천왕봉이 많다. 그 토속신앙은 곧 산악숭배사상이다.
“그렇군. 그럼 구시봉은 결국 국사봉과 같은 말이겠네. 근데 깃대봉은 왜 붙여진 이름이야?”
"여기가 바로 신라와 백제의 국경 바로 거기잖아. 대간이 국경 역할을 했으니까. 그러니 이 산 아래 주둔하고 있던 양측 군사들이 치열한 영토전쟁을 벌였을 거 아니야? 그때 어느 측이든 이길 때마다 정상에 자기 깃대(깃발)를 꽂았다는 데서 유래한 거라고 하지.”
“음, 그래? 국경을 두고 매일 싸우기만 한 건 아니잖아.”
“그래. 나도 사실 그건 의심쩍지. 그 이유 때문에 깃대봉이었다면 사실 구시봉이라는 이름이 개입될 여지가 없잖겠어? 나는 여느 깃대봉이 다 그렇듯 일본인들과 관련된 것이라고 봐. 즉 일제강점기 때 우리 땅을 강탈하려는 일본인들이 우리나라 전역을 측량했잖아. 그때 산봉우리란 봉우리에는 죄다 빨간 깃발을 꽂았고. 그러고는 그 봉우리에 깃대가 꽂혀 있다고 하여 그냥 깃대봉으로 불렸다는 거지.”
그러니 구시봉은 2006년 1월에 되찾은 산 이름이다.
.
- 졸저 전게서 117쪽
이 구시봉에는 정상석과,
2등급 삼각점(함양21) 등이 있습니다.
이 구시봉이 갖는 자랑이 있습니다.
봉황의 모습을 한 남덕유산과 우리가 야간 산행을 하느라 잘 보지 못했던 바로 할미봉의 진면목입니다.
좀 당겨볼까요.
저 할미봉에 오르면 정상석과 우측의 바위봉이 보이죠?
우측에 보이는 바위가 그 바위봉입니다.
서상에서 보면 저바위봉이 할미봉을 가리다시피하죠.
다시 한 번 봅니다.
정말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15:04
지도 #6의 '너'에 내려오면,
육십령으로 내려오는 길에 우측으로 참샘이 하나 있다.
“형. 이 샘은 수량도 아주 풍부하네. 누군가 깨끗하게 시멘트로 잘 만들어 놓으셨구먼.”
대간 능선에서는 이런 샘을 발견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대간길은 거의 능선에 있고 물은 계곡을 따라 흐르기 마련 아니겠는가? 어찌 보면 당연한 원리이다. 다만 봉우리와 안부를 잇는 언덕에서 가끔 샘을 볼 수는 있다.
“이 샘이 내가 아까 얘기한 ‘준희’ 선생의 작품이지. 선생의 희망이 우리나라 능선이란 능선에 이런 샘을 찾아 샘터를 만드는 것이었어. 그런데 함께 작업을 하던 분이 일찍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지금은 중단된 상태지.”
- 졸저 전게서 119쪽
찬 물이 수량도 풍부합니다.
시원하게 한 바가지 마시고 갑니다.
이후 대간길은 너무도 편합니다.
오늘 30.76km를 12시간도 채 되지 않은 시간으로 걸을 수 있었던 것은 원만한 등로와 이렇게 빛을 가려주는 녹음.
그리고 때맞춰 불어주는 시원한 바람 덕이었습니다.
16:31
정말이지 이 등로는 끝내줍니다.
힘도 들지 않고.....
이 이정표는 그냥 패스하는 게 낫습니다.
물론 서상쪽 휴게소를 이용하려면 이 이정목을 따라야 하고.....
15:43
그러면 육십령으로 떨어져,
터널을 지나,
장수 쪽 육십령에서 오늘 산행을 마무리 할 수 있게 됩니다.
오늘 30.7km 구간을 11시간 58분에 걸었으니 예상대로 입니다.
휴게소에서 캔 맥주 두 통씩을 털어넣고 사람도 없는 화장실에서 깨끗하게 씻고 장계택시(13,000원)를 불러 내려갑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
16:50에 서울로 가는 버스가 기다리고 있군요.
전주 ~ 서울로 이동하려던 계획을 바꿔 이 버스를 이용 남부터미널로 갑니다.
20:00에 남부터미널에 내려 간단하게 뒤풀이를 하고 귀가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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