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회암과 백복령
“형. 이제 곧 대관령이고 그 다음이 오대산권 그러고는 설악산. 그러면 대간길도 끝이네?”
“벌써 그렇게 되는구나. 많이도 걸었다. 이 자병산이 이런 흉측한 모습을 가지게 된 원인을 제공한 건 순전히 이 지역의 토양 때문이지. 사실 우리나라 전역이 대부분 화강암 지대인데 유독 경북 울진, 강원도 삼척, 충북 제천과 단양 등이 대표적인 석회암 지대잖아. 오늘 구간 중 자병산 ~ 백병산 구간 정도가 이런 석회암의 용식 및 침전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카르스트karst 지형이야. 따라서 진행하다 보면 돌리네doline도 몇 군데 볼 수가 있고 그로 인한 테라로사terra rossa도 확인할 수 있지. 그러니 이 고개의 이름과 주변 지명 등이 이 카르스트 지형과 갖는 연관성도 살펴봐야겠지. 그리고 또 하나 눈여겨 볼 곳이 석병산(石屛山)이야. 바위봉 두 개로 이루어진 석병산에서 보는 조망은 일품이지. 그리고 이 봉 자체가 다른 데서는 볼 수 없었던 탑 카르스트(tower karst) 지형임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니 장감독에게는 아주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거야. 두리봉을 지나 삽당령으로 내려오는 길은 소위 알바를 하지 않도록 주위를 좀 기울여야 하고 삽당령에 내려서서는 이층 표지석도 눈여겨 볼만해. 그리고 산신각과 삽당령이라는 이름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대화실산은 대간외 산이지만 다녀올 필요가 있고 오히려 석두봉은 볼 게 없어. 987.1봉도 삼각점 확인을 위해 다녀올만하고 화란봉도 대간길에서 좀 떨어져 있긴 하지만 빠뜨릴 수 없는 봉우리지. 그리고 닭목령 내려가는 등로는 산자분수령과 관련하여 신경 좀 써야 할 거야.”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401쪽
백두대간 전문 클럽 '좌충우돌 백두대간' 팀에서 작년에 이어 또 '대간릴레이 산행'을 진행합니다.
이번에는 북진을 진행하는데 저는 두 구간을 신청했습니다.
육십령 ~빼재 구간과 백복령 ~ 삽당령 구간 등이 그것들입니다.
이 중 육십령 ~ 빼재 구간은 지난 4. 30. 노명희님의 도움을 받아 진행하였으니 이제 한 구간만 남았습니다.
그 구간이 8. 15로 예정되었으나 10호 태풍의 북상으로 부득이 8. 18.로 연기합니다.
이 때문에 함께 동행하려 했던 이용형 국장님은 함산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심심한 유감의 뜻을 표합니다.
그런데 이번 구간의 들머리인 백복령까지의 접근이 어렵습니다.
청량리에서 23:45발 야간열차를 이용하여 일단 묵호역으로 가서는 버스로 백복령을 가는 것으로 계획을 세웁니다.
그런데 이 구간을 지나던 노선 버스가 작년에 없어졌군요.
일단 대중교통으로 진행하려던 계획은 무산되고 맙니다.
택시요금은 46,000원을 달라고 하는군요.
음...
무시무시합니다.
차를 가지고 임계까지 가서 택시로 백복령을 가자니 25,000원.
택시가 돈덩어리입니다.
이럴 즈음 해밀의 이한검대장님이 자기랑 같이 가자고 하는군요.
그러면서 악착같이 자기 차로 가자는 것입니다.
그럴 거면 제 차로 가자고 하니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자신의 차를 고집합니다.
그러면서 두 분을 더 추가합니다.
뭐 그럴 거면 어쩔 수 없죠.
서비스는 받아야죠.
2019. 8. 18. 01:05 이대장님의 본가가있는 퇴계원을 출발합니다.
차는 서울 ~ 양양 고속도로로 진입하여 양양에서 동해고속도로로 갈아탑니다.
휴게소에서 두 시간 정도 잠을 자고는 임계로 올라와 아침을 먹고 백복령으로 향합니다.
지도 #1
06:40
3년 만인가요?
오랜만에 만나는 백복령 표지석입니다.
“형. 근데 이 백복령은 왜 이렇게 이름이 여러 개야? 한자로 표기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고 말이야.”
한자 표기로는 보통 白鳳嶺이라 표기하는데, 산경표에는 百福嶺으로 기재되어 있고 해동지도에는 百復嶺, 대동여지도에는 白福嶺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 나오는 한자로는 白茯嶺으로 되어 있는 등 아주 다양하다. 나아가 택리지에도 白鳳嶺이라 표기되어 있으니 현재 쓰고 있는 白伏嶺은 그 의미를 새겨볼 필요가 있겠다. 이렇게 여러 가지 한자로 표기된 원인은 이 백복령이라는 지명이 순수한 우리말에서 왔기 때문일 것이다. 살펴보면 이 지방에서는 원래 이 고개를 뱃복이재라고 불렀다. 뱃복은 배꼽의 고어(古語)이니 이는 이 지방이 카르스트 지형이어서 석회암이 용식된 돌리네와 무관치 않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결국 우리말 뱃복을 억지로 한자로 차자(借字)하여 쓰다 보니 서로가 그 의미를 달리하여 여러 개의 한자어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결국 어느 한자든 별 의미가 없는 글자라는 얘기다.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402쪽
주위를 둘러봅니다.
북진을 할 경우의 백봉령 날머리.
임계방향.
이 백복령은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과 강릉시 옥계면의 시계市界가 되는 곳입니다.
그러니 오늘 대간길의 들머리는 곧 이 시계와 일치하게 됩니다.
“길이 평탄한 게 아주 좋군. 계속 이런 길이면 오늘 구간은 힘 하나 안 들겠네.”
백복령 표지석 옆으로 난 숲으로 들어가면 대간길은 곧게 일직선으로 뻗어 있다. 평지와 같은 곳이 대간길이라니 의아스럽게 느껴질 만도 할 것이다.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402쪽 이하
멋진 자작나무......
숲안으로 듭니다.
바람은 살랑살랑 불고...
일단은 아주 좋은 산행 환경입니다.
06:48
무박산행을 할 때 늘 그냥 어둠 속에서 그냥 지나쳤던 자병산의 속살을 오늘은 확실히 볼 수 있군요.
100m가 낮아진 자병산
“예전에는 여기가 어떤 모양이었어?”
자병산(紫屛山)은 해발 1000m에도 미치지 못하여 강원도에서는 비교적 낮은 산이긴 하다. 그렇지만 석회암 지대라는 특수한 사정 때문에 학술적으로는 보존가치가 매우 높은 희귀한 지형이었다. 즉 석회암 지형으로 인해 상습적인 안개와 함께 남방식물과 북방식물이 혼존(混存)하고, 숲속에는 삵과 고슴도치, 맑은 계류에는 수달 등 멸종위기에 처한 희귀동물이 많이 서식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백리향, 산개나리, 만병초, 금강애기나리 등 희귀식물 또한 계절마다 다르게 옷을 갈아입었었단다.
“1980년 이우형 선생에 의해 산경표가 발견된 이래 본격적인 대간 순례는 1988년도나 되어야 시작될 수 있었어. 우리 머릿속에 깊숙이 뿌리박힌 ‘태백산맥’이라는 사고나 인식이 ‘백두대간’으로 바뀌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았던 거 같아. 그러던 게 한국대학산악연맹의 학술지 ‘엑셀시오’에 백두대간 특집 기사가 나간 다음 서서히 붐이 일어나기 시작했던 거야. 그전에는 대부분 ‘태백산맥 종주’라는 말도 안 되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어야 했었어. 문제는 대강 산을 다니는 태백산맥 종주 팀과는 달리 연결된 봉우리라면 봉이란 봉은 다 훑고 진행하여야 하는 백두대간 팀에 의해 깊게 그리고 교묘하게 숨어 있었던 자병산의 실체가 드러나게 된 것이었지. 사실 지도를 꼼꼼하게 챙기지 않고 있는 길만 따라가다가는 자병산을 놓치기가 십상이었거든. 난리가 났지. 환경단체와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이를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었어. 1978년부터 10여 년간 석회암 채굴을 위하여 깎아낸 자병산은 오장육부를 완전히 드러낸 처참한 모습이었던 거야. 지속적인 저항운동에도 꿈쩍 않던 ‘라파즈 한라시멘트’의 변(辯)이 참 놀라워. ‘당신들은 시멘트가 아닌 흙으로 집을 짓고 사느냐? 앞으로 10~20년 더 파낼 건데 여기서 사업을 포기하면 또 다른 곳을 개발하여야 한다. 결국 현 광산을 개발하는 게 그나마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이라는 논지였지. 이런 상황은 2003. 12. 31. ‘백두대간 보호에 관한 법률’을 탄생시켰고, 이 법은 2004. 12. 31.부터 시행 되었지. 그리고 자병산은 지상이 아닌 지하채굴을 하는 것으로 타협을 보게 되었고.”
어쨌든 그 결과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 872.5m였던 자병산은 지금 776m로 약 100m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예전에는 이 자병산이 민속학적으로는 비가 오지 않을 때에는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었을 정도로 풍수와 무관치 않은 곳이었다고 해. 그러던 곳이 허옇게 속살을 드러내어 흉측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건 차치하고 실제 인근 주민들의 피해는 막심했어. 우선 자병산 석회암 개발로 인해 나오는 먼지는 고사하고 강릉 남양리 사람들은 비가 오면 흘러내려오는 오염된 물로 인하여 골머리를 앓았다고 해. 결국 이런 민원이 발생하자 사업자인 한라시멘트는 그 물줄기를 건너편으로 옮겼는데 그런 졸속 조치의 결과물 몫은 고스란히 또 옆의 산계리 사람들이 감당을 해야만 하게 되었지. 이에 산계리 주민들이 항의를 하니 한라시멘트에서는 작은 댐을 만들었는데, 그 댐을 만드니 물이 고여 수질 악화의 원인이 되고 결국 악순환의 연속이었지. 그런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이 받게 되었고.”
“그럼 우리는 온전하게 대간길을 걸을 수가 없게 되는 거네.”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403쪽 이하
가슴이 쓰린 현장을 지나 봉우리로 오르니 철답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군요.
한편 지도 #1의 '가'의 곳인 광산 진출입로에서 보면 대간길은 두 군데로 나뉩니다.
하나는 옛길로 한라시멘트에서 복원지역으로 만든 길 바로 옆로 난 길이고 하나는 출입로에서 바로 숲으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오리지널 마루금이 아닌 이 길을 그래도 대간 마루금에 조금이라도 더 근접하려는 욕심으로 옛길을 따릅니다.
07:13
그러나 그 길이나 이 길이나 지도 #1의 '나'의 곳에서 합류합니다.
07:33
아주 널널한 길을 따릅니다.
나무 계단과,
07:42
야자매트로 조성된 대간길은 여유로움을 줍니다.
석병산을 따릅니다.
07:56
뒤로는 자병산이 계속 따라오고.....
길은 여전히 좋습니다.
우측으로는 아주 가파른 낭떠러지가 위험스럽게 보입니다.
이 지세는 이곳이 경동지괴라는 것을 이야기해 줍니다.
08:38
그러고는 생계령입니다.
생계령은 예전에 강릉 옥계 사람이나 정선 임계 사람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고개였을 것이다. 즉 영밑(嶺下)마을은 이 생계령 아랫마을이라는 말이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집 지붕은 억새로 이어서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억새를 하기 위하여 이 생계령을 넘어 직원리(稷院里)까지 가서 억새를 해서 지붕을 이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피원마을이 곧 직원리라는 얘기다. 반면 임계 사람들은 이 생계령을 넘어와 동해안의 소금을 얻어갔는데 동해안 소금은 서해안의 천일염과는 달리 바닷물을 끓여서 만들었기 때문에 약간은 검은 빛을 띤다고 한다.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407쪽
이 생계령에서 남쪽 정선 방향으로는 큰 밭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이는 모두에서 얘기한 바와 같이 이 부근의 지질인 카르스트와 관련이 있습니다.
즉 돌리네를 이용하여 밭을 조성한 것이죠.
10여 분 정도 간식을 먹으며 쉬다가 다시 진행합니다.
09:09
서대굴 안내판을 지나고,
09:17
824.5봉을 지납니다.
안내 이정목이 쓰러져 있군요.
09:40
숲은 따가운 볕을 가려주어 좋긴한데 바람을 막아 버리는군요.
묵묵히 걸음만 옮깁니다.
09:59
지도 #1의 '다'의 곳인 민둥산 갈림길입니다.
고도를 높여 바위로 이루어진 민둥산 갈림봉으로 오른다. 가운데 우뚝하게 솟은 석병산1052.5m이 보이고 그 좌측의 두리봉1033.4m과 우측의 만덕산1035.3m이 명백하다. 석병산의 일월봉과 삼각점봉의 윤곽이 육안으로도 뚜렷하다. 만덕산 뒷 라인이 우측으로 망기봉708.4m, 다시 그 우측의 뾰족하게 피래산754.2m까지도 보이고 우측 바다 쪽은 옥계해변과 한라시멘트 옥계공장도 볼 수 있다.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407쪽
예전에 민둥산을 답사하려 들어섰다가 음산한 기운과 꽉막힌 숲때문에 중도 포기하고 이곳으로 되돌아 왔던 기억이 있는 곳입니다.
바로 앞이 934.2봉.
그리고 그 뒤 우측이 석병산1052.5m이고 그 뒤 우측이 두리봉에서 가지를 쳐 진행한 만덕봉1035.3m입니다.
석병산 좌측은 두리봉1033.4m입니다.
특히 두리봉에서 삽당령에 이르는 구간은 강릉이 자랑하는 '울트라 바우길' 2구간 중 '덕우리 ~ 삽당령' 구간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 우측으로 망기봉이 보이고 더 동쪽을 주시하면 피래산754m이 눈에 들어옵니다.
두리봉 좌측으로 풍력발전소의 바람개비와 고루포기산 그리고 능경봉이 명백합니다.
그좌측으로 발왕산1459m 정상의 시설물도 보이는군요.
멀리 동해....
10:19
좌측으로 민둥산을 보며 진행합니다.
934.2봉은 잡목으로 뒤덮여 있고....
10:23
아!
자병산......
지도 #2
11:11
897.8봉에서 4등급삼각점(구정459)을 확인합니다.
11:29
산계리 동굴 갈림길에서 안내판도 보고....
11:44
911.6봉은 헬기장이죠.
고병이재입니까?
아니면 고뱅이재입니까?
무슨 꽃이라 하던데.....
12:29
지도 #2의 '라'의 곳인 수목원 갈림길.
우린 우틀합니다.
12:40
그러면 석병산 하부의 헬기장에 오르게 되고,
12:43
그러고는 바로 석병산으로 오릅니다.
석병산(石屛山) 일대는 타워 카르스트
석병산은 두 개의 암봉으로 이루어졌다. 1봉은 삼각점(구정309)이 있고, 정상석이 있는 2봉은 일월문이라는 석문(石門)이 있어 특히 일월봉이라고도 한다. 이는 이 지형이 카르스트지형이라는 것과 무관치 않다. 즉 이 두 봉이나 주변의 촛대봉 같은 것들을 지질학적으로는 탑 카르스트(tower karst)라고 한다. 이는 주로 열대 및 아열대의 습윤지역 층에서 많이 발달하는 것으로 석회암이 오랜 세월 물에 녹아 형성된 바위산을 일컫는다. 그러니 아주 오래 전에는 이 지역이 적도부근에 있었다는 반증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것으로 바다 카르스트는 베트남의 하롱베이, 강물 속에 있는 카르스트는 중국의 계림. 그리고 산에 있는 카르스트는 피재 ~ 댓재 구간을 걸으면서 보았던 덕항산 부근과 바로 이 부근이다. 그러니 멀리서 이 부근을 봤을 때 여러 개의 볼록한 탑 카르스트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던 모습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래서 석병산이다. 그러니 이런 모습이 곧 동양 산수화의 좋은 소재가 되었을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석병산은 이 부근에서는 최고봉이니 조망 또한 일망무제다. 두리봉 좌측으로 펑퍼짐한 대간외 대화실산1010m이 보이고 그 좌측 뒤로 발왕산1459.1m 정상의 마운틴 탑인 흰 건물이 랜드마크 역할을 한다. 두리봉 뒤로는 대관령 앞의 능경봉1121.9m이 보이고 그 우측으로는 제왕산839.5m까지 얼굴을 보여준다.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407쪽
정상석이 있는 2봉 등이 그것입니다.
지나온 능선을 보고....
우측으로 어천자맥의 고양산과 문래산이 관측되고....
2봉에 올라 환호를 하고 있는 일행들.....
저도 2봉으로 올라갑니다.
그 2봉 바로 아래에 있는 석봉,
그리고 일월문도 감상합니다.
만덕봉.
13:23
한참이나 조망을 즐기다가 다시 대간길로 들어섭니다.
삼거리로 돌아 나와 두리봉으로 가는 길은 중부백두대간의 전형적인 동고서저(東高西低)의 지형형태를 보여준다. 신생대 제3기 요곡융기를 받아서 된 경동지괴(傾動地塊)라는 말이다. 폐헬기장인 988.9봉에서 우회전하면 백두대간 수목원을 안내해주는 이정표가 보인다.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408쪽
13:46
평상들이 여러 개 놓여 있는 두리봉은 강릉시 왕산면과 옥계면의 면계가 되면서 정선군 임계면과도 경계인 이른바 삼면봉이다. 우측으로도 선명한 길이 보이지만 여기서 1분만 더 걸어가면 만덕봉으로 진행하는 선명한 등로가 보인다.
이제부터 '강릉 바우길'이라는 둘레길 안내판도 나오는 걸 보면 왕산면과 옥계면의 면계인 만덕단맥은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등로임을 알 수 있다. 이 줄기의 주봉 만덕봉1035.3m은 다시 세 줄기로 나뉘는데 동쪽으로는 칠성산 ~ 강릉남대천으로 향하는 줄기 그리고 직진하면 망기봉으로 그리고 우측으로는 삿갓봉으로 진행하는 줄기를 각 내주는 등 아주 중요한 포인트가 되는 봉우리이다.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409쪽
덕우리재 방향이 강릉바우길이죠.
일행들과 이야기를 하며 걷다보니 시간은 자꾸 지체가 됩니다.
산죽밭을 지나 이정표를 따른다. 863.7봉에서 삼각점(구정455)을 확인하면 이내 대간길은 온전하게 강릉시 왕산면으로 들어가게 된다. 묵은 헬기장을 지나 큰 바위가 좌측을 가리는 곳(지도의 ‘가’의 곳)에서는 표지띠에 주의를 한다.
졸저 전게서 409쪽
두리봉을 지나면서 느낀 것은 이 부근이 강릉바우길을 찾는 이들이 알바를 하지 않도록 정비를 많이 해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전의 모습들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15:10
임도를 만나고.....
숲길을 따라 내려가면,
15:12
오늘의 종착역인 삽당령입니다.
삽당령 이야기
삽당령 왼쪽으로는 동물 이동통로와 산신각이 하나 있고 ‘정상주막’이라는 상호의 할머니 매점은 여전하다. 땀 흘리고 마시는 대포 한 잔과 허기를 채워주는 전병이 그만이다. 큰 표지석 두 개는 강릉시와 정선군에서 각각 설치한 것이다.
표지석의 삽당령 한자어 표기는 揷唐嶺으로 되어 있다. 산경표에는 삽당령(揷當嶺)이라 표기되어 있는데 대동여지도가 어렵다. 대동여지도의 차례대로 보자면 대관령 ~ 삽현 ~ 삽운령 ~ 백복령이다. 그러므로 현재 지명으로 보자면 북진하는 우리에게는 백복령 ~ 삽답령 ~ 닭목령 ~ 대관령 순이 된다. 따라서 삽운령 = 삽답령. 삽현 = 닭목령이 되므로 지명에 대한 의심을 떨칠 수 있다. 이에 힘을 실어다 주듯 삽운령에서 강릉으로 향하는 길목에 목계가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임계와 여량의 위치가 바뀌었다는 점에 있다. 이 점만 제외한다면 삽운령에서 삽현으로 가는 중간에 대화실산 ~ 매봉산 ~ 비오치를 거쳐 왕재산으로 진행하는 산줄기도 제대로 그려져 있으니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착오로 임계와 여량의 위치가 바뀐 것으로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졸저 전게서 410쪽
삽당령이 해발 682m의 고지에 있다는 걸 알려주는 수준점.
이렇게 정리하자. ‘만연히 진행하다 보면 직진하기 십상인데 여기서는 주의를 기울여 왼쪽으로 진행을 해야 나무 계단을 내려와 임도를 가로 질러 숲으로 든 다음 대동여지도에 삽운령(揷雲嶺)으로 표기되어 있는 삽당령으로 떨어진다.’ 정도로... 이미 얘기했지만 이 삽당령682m은 백복령745m과 함께 대관령825m보다 먼저 열린 고개다. 우선은 대관령에 비해 고도가 낮은 이유도 있겠다. 하지만 필자는 그 이유를 이 삽당령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임계천과 연결되는 골지천에서 찾고 싶다. 즉 이 골지천이 바로 동강과 연결되어 남한강으로 흘러들어가게 되니 이 삽당령이 강릉과 수도권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였지 아니었겠는가. 이는 조선 시대 훨씬 이전인 신라 경덕왕 때부터 영월군이나 정선군 일부가 명주(지금의 강릉)에 속했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해준다. 강릉의 해산물이나 소금이 이 삽당령을 통해 정선으로 옮겨졌을 것이며 물길을 이용하여 서울과 개성을 오갔을 것이다. 이는 황장산을 얘기할 때 황장목이나 춘양목과는 달리 울진 부근의 금강송이 지금껏 잘 보존되고 있는 이유와 무관치 않다.
졸저 전게서 410쪽
그렇다면 삽당령의 ‘삽당’이 무슨 뜻일까? ‘삽’은 옛글 ‘삿’과 혼용하여 썼으니 곧 현대어의 ‘사이’로 보면 될 것 같다. 그러면 강릉과 정선 사이에 있는 당집이 있는 고개일 테니 굳이 이를 한자로 표기한다면 揷堂嶺이 될 것이다. 그런데 한국지명유래집은 삽운령과 삽현을 혼동하여 잘못 기록을 한 우(愚)를 범하고 있다. 즉 ‘증보문헌비고에는 삽당령(揷堂嶺)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여지도, 대동여지도. 관동읍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는 삽현(鈒峴)이라고 표기되어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인가? 디지털강릉문화대전은 “산 정상의 생김새가 삼지창처럼 세 가닥으로 생겨 이름이 붙여졌다.”고 그 유래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말을 한자로 표현하다 보니 ‘삽(鈒)’을 억지로 갖다 붙이게 되었고, 이에 얽매어 억지로 해석하다 보니 그런 유래를 만들어 낸 것 같다. 무책임한 설명이다. 그러니 닭목령의 삽현(鈒峴)도 사실은 강릉과 정선 사이에 있는 고개 정도로 보면 될 것이다. 이는 역시 고산자가 대동여지도를 만들 때 이 삽당령을 오지 않았고 다만 ‘군현지도’ 정도만 참고하여 그린 지도라는 사실도 이로써 여실히 파악할 수 있겠다. 그러면 삽운령(揷雲嶺)은 무슨 말인가? 당연히 군현지도를 보고 대동여지도를 만드는 과정에서 빚어진 실수일 것이다. 당(堂, 當)을 운(雲)으로 잘못 읽었다는 것이다. 복사기가 없었던 그때 필사본에서 많은 오탈자가 나오는 이유다.
이 정도 되는 당집이니 아무래도 당집의 역사가 상당할 것 같다. 한편 삽당령에 있는 이런 제당은 보통 산신을 모셔야 하나 명칭은 산신각이면서도 성황신을 모신 산신각이 몇 개 있다. 박달령과 고치령에서 이를 확인한 적이 있는데 이곳도 그러하다.
이쯤 되면 우리 민속 신앙이 가만히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래서 등장하는 것이 전설 혹은 설화이다. 호사가들은 얘기를 하나 만들어낸다. 대상은 꽃 같은 여자다. “새신부가 물을 길러갔다가 범에게 화를 당하여 머리만 남긴 채 사라진다. 그 위치가 공교롭게도 이 신각 자리이고 주민들은 그 색시의 한을 풀어주기 위하여 신각을 세운다. 그러고 난 후 날짜를 정하여 제를 지낸다.”는 줄거리 정도다. 어쨌든 송현리에서는 음력 8월 첫 정일(丁日)에 소를 잡아 제를 지낸다고 한다. 이번엔 행정구역을 볼까? 신라 때부터 이곳이 명주였다고 했다. 그러니 지금도 강릉시 왕산면이다. 왕산이라.... 고려 우왕이 이성계에 의하여 왕위에서 쫓겨나 이곳 강릉까지 유배되었다고 하여 얻게 된 이름이라고 한다. 결국 아들 창왕과 함께 이성계에 의하여 죽음을 당했다. 이곳 강원도 영동지방은 유독 고려말 왕들과 인연이 깊은 것 같다. 공민왕, 공양왕, 그리고 우왕과 창왕까지... 졸저 전게서 411쪽
삽당령에 도착하여 차를 부릅니다.
마침 강릉산악회 회원들이 닭목령 ~ 삽당령 구간을 마치고 정상 주막으로 몰려듭니다.
이 얘기 저 얘기하면서 동동주 한 잔을 먹다 보니 탹시가 도착하는군요.
백복령으로 돌아가 차를 회수하고 임계로 나가 점심 겸 저녁을 먹고 귀경길에 오릅니다.
오랜만에 진행한 대간길.
역시 대간길은 볼거리에 먹거리까지 풍요한 산행을 약속해 주는 곳입니다.
이런 기회를 만들어 준 좌돌 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이제 바톤을 다음 구간 주자인 김석진 고문님에게 넘겨드립니다.
닭목령 구간은 어떤 분위기일지 너무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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