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래기재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이름도 아름다운 서벽을 지나면서 운곡천이 되어 흐르다 춘양을 지나 명호면 도천리에 이르러 낙동강에 합수됩니다.
그 중간에 구룡산1345.7m이나 각화산1202m에서 내리는 물인 월오천이나 왕두산1046m, 형제봉834.9m, 화장산861.8m 그리고 월암산608.4m 등에서 내려오는 작은 하천들을 다 합수할 정도이니 36.2km나 되는 이 운곡지맥의 세력을 넉넉히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아울러 이 운곡지맥의 북동쪽 사면을 싸고 흐르는 현동천은 황평천을 합수하며 흐르다 현동리 현동다리 아래서 낙동강에 합수됩니 다만 그 세력이 30km에 못 미처 지맥枝脈이라는 이름을 갖지 못하고 단맥短脈에 그칩니다.
그렇지만 마지막 봉우리가 564.7m에 이를 정도로 고봉이니 현동천으로서는 너무 빨리 만난 낙동강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오늘 구간은 지난 구간에 내성지맥이라는 큰 지맥을 지나 위에서 얘기한 바와 같이 운곡지맥과 현동단맥을 가지치는 봉우리들을 지나게 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구간이 흥미로운 것은 오랜만에 지질학적 용어인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을 거론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얼마전 즉 백두대간이나 낙동정맥 등 우리 고유의 산줄기를 잃어버렸을 때에는 그 이름을 가지고 걸었던 구간이라는 것이죠.
백두대간을 걷는 우리가 소백산맥과 태백산맥을 걷는다?
오늘 구간의 시작이 소백산맥의 어느 지점일 터 우리가 이 소백산맥이 태백산맥 어디에서 분기하는 지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전 우리 선배들이 '태백산맥 대종주'라는 이름으로 진행했던 그 길도 눈여겨봐야 하겠네요.
생각건대 경험에 비추어 볼 때 태백산 부근 어딘가에 이르러 혹시 문수봉1515m 방향에서 걸어오는 누군가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 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 조석필 선생의 명저 '태백산맥은 없다'
개중에 혹시 "없어! 없어! 없단 말이야! 태백산맥은 없단 말이야!!!"라며 제법 한탄조恨歎調의 탄식을 하고 있는 분이라면 조석필 선생이나 자하 신경수 선생이라고 짐작을 해도 무방할 것 같고....
물론 이때 우리는 어느 정도는 조롱 섞인 하지만 의미있는 웃음을 띄고 있는 고토 분지로도 떠올려야 할 것입니다.
혹은 악착같이 맥의 연속성과 연결성을 꿰어맞추고 있는 박수진 교수도, 아니면 아예 산맥을 체적 즉 부피의 개념으로 이해하고자 다른 학자들을 설득하고 있을 권혁제 교수의 모습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남난희(1957년 생) 저 '하얀 능선에 서면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 추운 1984년의 겨울 어린 나이에 '태백산맥 종주'라는 이름으로 홀로 금정산을 출발 진부령으로 향하던 남난희가 이 태백산맥이라는 산줄기를 걷다가 태백산은 밟지도 못한 채, 그 산행을 마쳤던 그 아쉬움과 비교나 할 수 있을까요?
해밀 백두대간 6기 팀
벌써 대간 전 구간 중 3/2 가까이 진행을 한 해밀의 대간팀이 이번 주에는 태백산 구간을 걷는다고 하는군요.
많은 것을 떠올리게 하는 태백산 구간.
어쨌든 외로움을 많이 타시던 사랑하는 선비先妣께서 제가 산에 다니는 것을 탐탐치 않게 여겨셨던 터라 몇 달 거리를 두었던 산줄기 산행을 다시 시작하기에는 이 구간이 더없이 좋은 warming up 코스인 것 같습니다.
2020. 7. 18. 그 들머리인 도래기재에 도착합니다.
현재의 도래기재를 대동여지도에는 사치(沙峙)라고 하였다. 모래 사(沙)자를 쓰긴 했지만 이것도 역시 우리말을 억지로 한자로 표기하다 보니 사(沙)를 동원한 것에 불과한 말이다. 즉 이것도 ‘몰’이 ‘뫼’의 전 단계 형태였고 ‘모래재’는 ‘몰+애+재’의 형태이다. 여기서 ‘애’는 조사 ‘의’일 것이니 결국 모래재는 ‘산에 있는 고개’라는 단순한 뜻을 가진 단어라는 건 지리산을 빠져나오면서 이미 봤다.
그런데 지금은 이곳을 도래기재라고 부르고 있다. 무슨 말일까? 본래 이 곳에 조선시대 역(驛)이 있어서 도역마을이라 불리다가 도래기재로 변음 됐다고 하는 말도 있다. 그래서 이 고개가 도력현(道驛峴)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그럴까? 조선은 한양에 도읍을 정함에 따라 초기부터 전국에 530개의 역을 두고 그것들을 잇는 역도(驛道)를 만드는 등 일찍이 역참제도 완비에 주력하였다. 따라서 부근에 태백산 각화사 사고(史庫)가 있어 영월 ~ 봉화를 있는 역도 역시 일찍이 개통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편 대동여지도가 발간된 시기는 1861년이다. 대동여지도는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든 정교한 지도임은 자명하다. 그런 대동여지도에 역참을 뜻하는 ‘⏀’표시가 이 부근에 없는 걸 보면 위 설은 믿기 어렵다. 더군다나 고산자가 직접 확인한 것도 아니고 당시 봉화현에서 만든 지도를 가지고 만든 대동여지도가 이 중요한 도력현이라는 이름을 무시하고 사치(沙峙)로 표기하였다는 것도 선뜻 이해가 안 간다.
오히려 근대에 들어 새로운 지도를 만들면서 서벽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고개를 보면서 위 사치(沙峙) 혹은 ‘모래재’를 무시하고 그저 가장 가까운 자연마을 이름이 ‘도래기’ (도력 + 접미사 ‘이’가 붙어 도력이〉도려기〉도래기로 변음)인 점에 착안하여 이 이름을 갖다 붙인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혹은 도력의 현지 사투리가 비슷한 발음이기도 하니 그 이름을 붙인 게 아닌가 조심스럽게 진단해 본다. 같은 결론이기는 하지만 역(驛)과는 무관할 것이라는 얘기다.
일제가 만든 지도에는 이 서벽에 헌병파견소까지 있었던 것을 보면 서벽 부근이 항일운동을 하던 이들 혹은 지하자원이나 산림자원 반출을 위한 요지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지도에는 도래기재를 도력령(道驛嶺)으로 표기하였다.
-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342쪽
도래기재에는 에코브리지가 시설되어 있습니다.
88번 도로를 만드느라 끊었던 대간길을 터널을 만듦으로써 약식이로나마 잇게 된 것이죠.
이 도래기재를 넘어가면 춘양면 우구치리가 나오는데 사실 그 우구치리 주민의 생활 터전은 영춘면이라기 보다는 강원도 영월의 김삿갓면이라고 보는 게 맞습니다.
백두대간을 무시하고 행정구역을 나눈 결과 주민들의 불편만 초래했습니다.
이 얘긴 이따 자세히 더 얘기하기로 하죠.
지도 #1
03:07
고속도로를 내려와 긴 지방도로를 지나 오늘 구간의 들머리인 도래기재에 도착합니다.
구절양장.
험한 경상북도 북부와 강원도의 산길을 지나느라 잠이 들긴 했지만 머리가 어질어질 합니다.
각자 복장을 갖추고는 자연스레 출발 대형을 갖춥니다.
구조목.
보통은 매 500m 마다 설치되어 있는 게 보통인데 이곳은?
제대로 믿음이 안 가니....
봉우리 몇 개를 지나면서 쉬엄쉬엄 호흡을 조절합니다.
04:29
임도를 두 개 지나야 구룡산에 도착하게 되어 있죠?
예전의 낡은 안내판을 바꾸긴 했지만 내용을 그대로입니다.
공부 좀 하시지....
구룡산 유래 안내판에 대한 유감
곧게 뻗은 소나무 숲 옆으로 난 나무 계단으로 오른다. 등로는 잘 정비되어 있고 그 길을 따르면 이내 임도다. 119구조목은 매 500m마다 세워져 있고 폐헬기장을 지날 즈음 나무 벤치도 나오기 시작한다. 도래기재에서 약 4km 진행한 곳에 ‘구룡산 유래’가 적힌 안내판과 정자가 설치되어 있는 임도를 만난다.
이 안내판에서 네 가지만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이 구룡산은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이 갈라져 나오는 곳에 있다고 했는데 소백산맥이 태백산맥에서 갈라져 나오는 곳의 오기 같이 보인다.
둘째, 위의 남난희 기록에서 보듯 산맥은 지질구조선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에 분수계와 달리 특정한 지점을 분기점으로 잡기 어려운 난점이 있다.
셋째, 산맥을 이야기하면서 갑자기 “여기서 발원하는 강은 낙동강과 한강으로 이어진다.”고 하면서 산맥이 마치 분수계 역할 즉 산줄기 역할을 하는 것 같이 설명을 하고 있다. 산맥과 산줄기를 혼동 내지는 혼용하고 있는 대목이다.
넷째, “마루금은 등성이를 이루는 지붕이나 산 따위의 꼭대기를 말한다.”고 써 놨다. 누누이 얘기하거니와 마루금은 '태백산맥은 없다'의 저자 조석필이 처음 제안한 개념이다. 마루금은 그냥 한 마디로 얘기하면 능선(稜線)이다. 다만 산행을 하기 위하여 준비한 지도의 안부와 능선을 따라 지도 위에 그은 선. 그 선이 마루금이다. 선(線)을 우리말로 하면 금이고, 능(稜)이 산마루 아닌가?
영주국유림관리소에서 최대한 성의를 보이려 하였지만 분수계인 산줄기와 지질학적 개념인 산맥을 혼용하고 있어 전체적으로 내용이 흔들린다.
- 졸저 전게서 343쪽
05:15
두 시간 정도 걸려 구룡산으로 오릅니다.
도래기재에서 여기까지는 5km가 좀 넘는 거리입니다.
그 고개가 해발 745.9m이며 이 구룡산이 1345.9m이니 줄곧 오름을 지속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스피드입니다.
물론 해밀 대간팀 6기의 산에 대한 욕심은 출정식 때부터 느낀 것이기도 하니 이곳까지 진행한 구력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음이 있을 것입니다.
대단하신 분들.....
간식도 먹고 정상석도 보면서 쉬는데.....
아!
일출입니다.
태백산 천제단 부근에서 오늘의 태양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저는 무박산행을 할 때 이 일출을 보노라면 은근히 머릿속을 지나는 음악이 있습니다.
Uriah Heep의 Sunrise라는 곡이죠.
상당히 의미심장한 가사를 담고 있는 음악....
예전 같으면 디스크 박스에서 이 앨범을 찾아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그 음악을 감상하여야 했는데 지금은 유튜브 덕에 그 수고를 덜게 됐었습니다.
하지만 LP를 만질 때의 그 두근거림이 없어졌으니....
어쨌든 정오가 지날 무렵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저 태백산 장군봉 부근을 거닐겠죠?
태백산 주봉 중앙 높이 새벽을 밝혀주었던 그믐달이 높게 떠 있군요.
강요에 의해 한 컷 남깁니다.
찍혔으니 강요미수가 아니고 기수旣遂입니다.
2등급삼각점(태백26)을 확인하고.....
그런데 이 구룡산이 갖는 의미를 확인할 게 있습니다.
복습하는 의미에서...
지난 구간 선달산1239m을 지나면서 한 가지 확인해야 했었죠?
즉 소백을 지나면서 잠시 잃어버렸던 대간길의 도계 역할을 선달산에서 이르러 다시 회복하게 되었었죠?
사실 경상북도 영주군 부석면의 남대리는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소속이 되어야 하는 게 맞습니다.
생할의 터전이 영주나 부석이 아니고 단양이고 영춘이라는 얘기죠.
마포천이라는 물줄기를 따라 동네가 형성되었고 민심이 그렇게 영춘 사람들과 동질화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이 남대리 사람들과 부석면의 여타지역의 주민들과의 모내기 시기가 다르다는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그러니 그 남대리 주민들이 백두대간을 넘어 부석까지 간다는 것은 정말 고역이죠.
'산으로' 박흥섭님과 함께 175지맥을 완주한기념산행을 마치고 삼도봉에서....
어쨌든 그렇게 금이 그어진다면 선달산이 삼도봉이 되는 것이 맞습니다.
즉 어설프게 어래산 부근의 작은 봉우리가 삼도봉 즉 경상도 영주와 충청도 단양 그리고 강원도 영월의 세 개의 도가 만나는 역할을 하고 있으니 삼도봉으로서의 그 빛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럴 경우 우리나라의 오리지널 삼도봉은 대간길에 있던 경상도와 충청도 그리고 전라도가 만나는 영동의 그 삼도봉과 이 선달산이 나란히 어깨를 같이 하게 되겠죠.
각설하고 박달령을 지나면서 잃어버렸던 도계를 이 구룡산에서 다시 회복하게 됩니다.
그러니 지금이야 도로 사정이 좋아져서 춘양면 우구치리 주민들이 도래기재를 넘어 춘양으로 볼일을 보러 가겠지만 예전 같으면 물길 따라 하동면(현재의 김삿갓면)으로 마실을 갔을 것이라는 얘기죠.
20여 분을 노닐다 대간길을 이어갑니다.
지도 #2
그런데 이 구룡산을 내려오다 보면 자꾸 좌측으로 눈에 거슬리는 게 보입니다.
한 가지 특기할 만한 게 있죠?
이 구룡산을 내려오면서 좌측으로 '들어오지 말라'는 경계 표지띠와 경고 안내판들이 그것입니다.
빨간색과 노란색의 그것들은 일반 산행용 표지띠보다 훨씬 큽니다.
주지하다시피 백두대간은 우리나라 10대강을 구분합니다.
그중에서도 이 구간은 대간길이 한강과 낙동강을 가르게 됩니다.
즉 구간의 남동쪽으로 흘러 내리는 물줄기는 낙동강으로 가는 반면 북서쪽으로 흘러내리는 물줄기들은 모두 한강으로 가게 된다는 말이죠.
짐작하다시피 이 구룡산과 깃대배기봉 그리고 태백산에서 한강 쪽으로 흘러내리는 물은 옥동천이 되어 영월군 상동면의 천평리 천평마을을 가로지르는데 이 부근에 공군폭격기 훈련장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이 지역은 불발탄을 포함한 여러 위험요소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민간인 출입금지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는 곳이라는 얘기입니다.
이따 뒤에서 또 얘기하겠지만 이 옥동천이 백두대간과 같은 산경을 얘기할 때에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물줄기가 됩니다.
정말 깨끗한 아침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숲입니다.
눈이 부실 정도의 아침 햇살이 나뭇잎을 뚫고 촉촉하게 젖은 풀잎 위에 내리고 있습니다.
새벽을 뚫고 걷고 있는 대간꾼들이지만 이미 그 빛에 적응이 되어 이제는 찡그림 같은 것은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같이 걷고 있는 지리산님은 이제 야생화에 전문가가 되어가고 있는 듯....
05:57
고직령을 지납니다.
지도 #2의 '가'의 곳입니다.
길은 여전히 유순하고......
06:32
곰넘이재를 지납니다.
이 고개의 유래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고자 합니다.
뻔한 얘기일 테니까....
그저 우리가 머릿속으로 상상할 수 있는 얘기에 다름 아닐 겁니다.
다만 이 곰넘이재에서 한 가지 특기할 만한 것은 이 곰넘이재가 탈출로로 이용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이곳에서 계곡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실두동이니 월로방이니 하는 지명과 함께 도로가 나오면서 예당리를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곳이 춘양면 예당리이니 여기서 춘양택시를 부른다 해도 비용은 물론 거리도 너무 머니 ...
이 길을 따라 내려갔던 후배는 마침 태풍 매미가 지난 다음 이어서 거의 10km 넘는 길을 걸어 내려갔으니 그 고생을 할 바에냐 그냥 걷는 게 훨씬 나았을 것이라는....
널널한 길입니다.
작은 불도저로 낸 길 같습니다.
뚝심의 사나이 이한검 대장님도 보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좋은 결실을 맺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07:18
나무 계단을 오르고 ....
그러다 보니 1295.3봉으로 오릅니다.
낙동산악회...
정말 오래된 산악회입니다.
경주손공 음택이 있고.....
그리고 신선봉이라는 정상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춘양면이장협의회에서 세운 것이군요.
그런데 우리가 진행을 하다 못 본 게 하나 있는데 아까 고직령을 지나 그 부근에 '경석봉'이라는 정상석이 새워져 있던 걸 기억하고 계신 분들이 있을 겁니다.
원성이 자자했나요?
그 정상석은 이제 없어졌습니다.
당시 기억을 돌이켜 보면....
경석봉이라...
그런데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이곳이 고직령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령嶺'이라는 것은 모름지기 고개를 나타내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이런 봉우리는 嶺이라는 이름을 가질 수는 없을 터 아까 산꾼형님이 붙여 놓은 표지판이 취치한 지도 #2의 '마'의 곳이 고직령 맞을 것 같습니다.
국토지리정보원 지도 틀린 곳이 어디 한두 곳입니까.
그렇다고 하여 이 봉우리 이름이 '경석봉'이어야 한다는 것도 선뜻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춘양면 이장협의회에서 세운 정상석이라고 한다면 어느 정도 신뢰가 가기는 합니다.
즉 이 지역에 사시는 분들이기 때문에 적어도 이 봉우리의 유래는 제대로 알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입니다.
하지만 경석이라는 이름이 꼭 누구 이름을 갖다가 붙인 것 같아서....
일단은 똑똑한 개그맨 서경석이 떠오르더군요.
좌측으로도 등로가 선명한데 993.5봉으로 가서는 천평마을로 가는 길입니다.
간식을 먹고 출발합니다.
몇 년 전 태풍 매미의 잔재물.....
1174.1봉을 지나,
08:06
차돌배기를 지납니다.
지도 #3의 '다'입니다.
우리가 동대산 ~ 두로봉 구간을 지날 때 똑같은 이름의 지명을 지난 적 있죠?
거기서 흰색의 커다란 석영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와는 달리 이곳에는 그 석영 암맥 같은 게 보이질 않습니다.
석영암맥이 무엇입니까?
다른 바위나 암봉 등이 그러하듯 이 석영암맥도 지하의 마그마가 지표 바로 아래에서 굳어진 상태로 있던 것 아닙니까?
그것이 1억년이 넘는 시간을 지나면서 풍화작용에 의하여 지표 아래 있던 암맥이 드러난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오대산에서는 볼 수 있었는데 여기는 볼 수가 없군요.
지명이라는 게 하루 아침에 생긴 것은 아닐 터 이 지명이 괜히 생긴 게 아니라면 분명 이 부근 어딘가에 석영 덩어리가 있을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믿음이 안 가는 것은 여전합니다.
지도 #3
08:21
그러고는 지도 #3의 '라'를 지납니다.
대간길은 진행방향으로 좌틀이지만 정면으로 표지띠 하나가 걸려 있고 그 방향으로 희미한 등로가 있다는 것 외에는 특이한 걸 발견할 수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별생각 없이 걷다가는 직진하기 십상인 곳입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무심코 진행하기 십상인 이 길!
그런데 이곳이 산경학山徑學에서 보자면 아주 중요한 곳입니다.
즉 여기서 운곡지맥이 분기하건만 어떤 안내판도 없어 아쉬움을 갖습니다.
행정구역 면에서 보자면야 춘양면과 소천면의 경계인 곳에 불과하지만 산경학에서 보자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모두冒頭에서 내성천과 내성지맥(신산경표에서는 문수지맥)에 대해서 언급을 했었습니다.
그 내성지맥을 지나면 처음으로 만나는 곳이 도래기재이며 여기서 내려가는 물줄기가 바로 운곡천입니다.
운곡천은 옥돌봉 남동쪽 그리고 구룡산이나 신선봉 등에서 흘러내리는 물들을 모두 합수합니다.
그러고는 명호면 도천리에 이르러 낙동강에 합수됩니다.
여기서 산줄기의 요건 중 합수점의 원리가 적용되게 됩니다.
자세히는 이곳의 대간길이 분수령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물줄기 즉 하천이나 강을 중시하는 이유는 산줄기를 파악하기 위함입니다.
물론 누구나 추구하는 바는 다를 것이지만 저의 경우 대간이나 정맥, 지맥 등을 하는 이유는 그냥 체력단련을 하기 위함만이 절대 아닙니다.
그래서 내세운 것!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하나가 산줄기를 하면서 우리나라의 산줄기의 얼개를 그려본다는 것입니다.
그 중심에 백두대간이 있으니까 여기서 가지를 치는 줄기에 관심을 가져본다는 건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이런 논의를 할 때 가장 중심에 서는 책과 명제가 있습니다.
바로 책은 '산경표'요 명제는 '산자분수령'입니다.
물론 '산자분수령'이라는 말은 산경표에 나와 있는 기본 테마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산경표라는 책이 '산자분수령'이 우리나라의 산줄기의 기본을 이야기한다고 나와 있는도 않습니다.
당연히 중세의 혹은 근대의 어느 지리학자도 그걸 얘기해 준 사람도 없습니다.
산경표는 그저 우리나라 산줄기의 체계를 보여준 책입니다.
거기에 백두대간을 위시한 1정간 13정맥이 세로로 차례로 표기되어 있을 뿐이고.....
그러면 산자분수령이란 누가 붙이고 누가 얘기한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대동여지도의 발문에 나오는 얘기인데 사실적인 내용은 산자분수령과 좀 차이가 있습니다.
자세한 건 다음 기회로 미루고 어쨌든 산줄기를 보기 위해서는 물줄기를 먼저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산줄기그 맥을 다하는 건 바로 그 산줄기를 에워싸 있는 두 물줄기가 만나는 합수점입니다.
산자분수령의 대원칙이죠.
산경표는 위와 같이 정맥까지만 기록하였고...
그 다음 신산경표에서 박성태 선생에 의해 산줄기 개념을 지맥까지 확장하였습니다.
즉 산줄기 중 30km급 이상의 산줄기에 지맥枝脈이라는 개념을 부여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신산경표는 불경스럽게도 산경표에 손을 대었다고 하여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즉 남한 9정맥을 7정맥으로 바꾸었으며 기맥이나 지맥이 산자분수령에 입각하지 않은 즉 일관성이 결여되었다는 지적입니다.
그래서 이에 대한 반동으로 주창되고 있는 것이 '대한산경표'입니다.
'산으로' 박흥섭에 의하여 주도되고 있는 이 대한산경표를 들여다보면 산경보다는 수경 즉 수계를 위주로 산줄기를 파악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주 타당한 발상이고 또 그게 맞습니다.
가령 이 1209.5봉을 예로 들자면,
이 봉에서 갈리는 산줄기와 대간 사이에서는 운곡천이 발원합니다.
그 운곡천이 본류인 낙동강과 만나는 합수점.
거기에서 이 산줄기는 그 맥을 다하게 됩니다.
박성태 선생님의 개념도를 보자면,
참고도 #1 운곡지맥(신산경표의 각화지맥)
이 산줄기는 도상거리 36.2km가 되므로 지맥의 자격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산줄기의 이름을 그 主지류인 운곡천의 이름을 따서 운곡지맥으로 부르자는 것입니다.
신산경표를 보면 이 산줄기를 이 산줄기의 최고봉인 각화산의 이름을 따서 각화지맥으로 부르고 있고 그 코스도 운곡지맥과 같은 길로 진행을 하고 있어 신산경표나 대한산경표가 별로 다를 게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점들은 다음 구간 금대봉을 지나면서 보게 될 어천지맥이나 지장지맥 혹은 옥동지맥이나 석항지맥에서 보면 많은 차이점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점은 특히 우리가 알고 있던 진양기맥이나 팔공지맥, 문수지맥에 들어가서 보면 더욱 두드러지게 됩니다.
너무 복잡하니 다음 기회로 미룹니다.
다만 해밀 정맥팀이 2020. 12. 27. 질고개 ~ 가사령 구간을 진행하니 그때 그 구간을 하면서 이 논의에 대한 설명을 해드릴까요?
일단 그때를 기약합니다.
한편 여기서 즉 운곡지맥 분기점을 지나면서 그동안 함께 진행했던 춘양면과 작별하고 봉화군 소천면을 만나게 됩니다.
따라서 지금부터는 봉화군과 영월군의 도계를 따라 걷게됩니다.
09:33
그러고는 깃대배기봉입니다.
정상석을 보고....
여기서 우틀하면,
두리봉 방향으로 진행을 하여 청옥산1278.7m ~ 늘재 방향으로 진행을 하여 현동다리에서 낙동강에서 합수되는 현동단맥이 됩니다.
아까 얘기하였다시피 30km가 안 되는 고로 지맥이라는 계급을 갖지 못하고 단맥에 머물렀습니다.
30분 정도 이른 점심을 먹고 일어납니다.
좌측으로는 여전히 사격장 때문에 출입을 금한다는 표지판이 서 있고.....
산림청에서 세운 정상석.
실은 이곳이 정상 봉우리가 맞죠?
예전에 홀로 산행으로 이곳에 도착하여 정상석이 두 개라 깜짝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지도 #4
이 깃대배기숲은 정말 운치 있는 곳입니다.
우측으로는 봉화군 석포면과의 경계를 걷게 되는데 이 석포면은 낙동정맥을 하는 분들에게는 자주 이 행정구역을 되뇌이면서 걸어야 되는 곳이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부쇠봉1549.4m을 향해 오릅니다.
부쇠봉은 대간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봉우리입니다.
11:01
지도 #4의 '마'의 곳입니다.
혹자들은 부쇠봉을 사면치기로 진행을 하여 이곳에서 바로 좌틀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커다란 의미가 있는 부쇠봉을 빼놓고 진행하는 셈이어서 대간꾼으로서는 자격 미달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일부 산악회를 보면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진행들 합니다.
직진합니다.
그러면 다시 작은 샛길을 지나,
조망터에서 아름다은 낙동정맥의 흐름을 감상할 수 있게 됩니다.
이제서 우리는 앞서 얘기한 태백산맥을 보게 됩니다.
태백산맥이 어딘지 보이십니까?
식별하자면 우선 좌측으로 문수봉1514.9m이 보이며 그 뒤로 면산1246m이 그 앞 우측으로는 연화봉과 초록바위봉이...
우측으로는 현동단맥의 청옥산과 달바위봉이 조망됩니다.
중앙에 통고산과 우측으로 안테나가 세 개 보이는 동천지맥의 일월산도 명백합니다.
태백산맥이 뭔지 소백산맥이 뭔지 모르겠습니다.
아래 흐르는 물줄기....
낙동강洛東江입니다.
낙동강이란 이름이 처음 쓰인 것은 동국여지승람이죠.
이 낙동강의 어원은 상주의 옛 이름인 낙양의 동쪽에 흐르는 강이란 의미였습니다.
산청의 옛이름이 지품천현이었던 것을 중국의 지명을 따 산음이라 불렀고 그러니 남강을 경호강이라 불렀으며 산 이름도 회계산이라고 ....
신라 경덕왕이나 그 시절의 신라사람들의 사대주의는 극에 달한 듯 합니다.
그런데 이 낙동강의 발원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그곳이 태백 황지 정도로먄 알고 있지만 옛날 우리 조상들은 태백 황지와 문경 초재草岾, 영주 소백산 등 이렇게 세 곳을 발원지로 기록하고 있죠.
즉 1454년(단종 2년)에 간행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를 보면, '大川三, 一曰洛東江. 基源有三. 一出奉化縣北太伯山黃池 一出聞慶縣北草岾 一出順興小白山 合流至尙州. 爲洛東江'라고 기재되어 있으니 대천(大川)이 셋인데 하나가 낙동강이다. 그 발원지가 세 곳이 있는데 봉화현 북쪽 태백산 황지와 문경현 북쪽 초재와 순흥 소백산에서 나온 물이 상주에서 합류하여 낙동강이 된다.'는 것이죠.
여기서 하나 주의할 것은 草岾의 독음을 초점으로 하면 안 되고 고개 '재'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죠.
우리가 고개를 한자로 표기할 때 '嶺, 岾, 峙'로 표기할 때 만항재, 팔량재, 성삼재 등으로 읽지 않습니까?
아울러 덕유산을 떠나 대덕산으로 갈 때 황강지맥이 가지를 치는 곳에 있던 봉우리.
보통 우리는 이 봉우리를 초점산草岾山으로 불렀었죠?
이것도 초점산으로 읽으면 안 되고 초재봉 정도로 읽어야 할 것이고 또 그렇게 표기하여야 할 것입니다.
각설하고 여기서 황지와 소백산은 명백한데 초재는 어딥니까?
조령(鳥嶺)이 새가 쉬어서 가는 고개라고?
석성 흔적을 내려오면 산신각이 있고 그러고는 조령3관문이다. 조령약수에서 물 한 모금 마시고 내려간다.
“형. 근데 이 조령을 새재라고 하잖아. 문경새재. 너무 높아서 날아가는 새도 쉬어서 가야한다는...”
“사실 영남(嶺南)지방이라고 할 때의 영(嶺)은 이 조령을 뜻하지. 그런데 이곳이 640m 정도 되니 그다지 높은 봉우리도 아니야. 그러니 새재를 조령(鳥嶺)이라고 하여 새 조(鳥)자를 쓴 건 다소 작위적인 면이 있어. 우리말에서 ‘땅 이름’을 얘기할 때 ‘새’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 가령 사이(間), 새로운(新), 풀(草), 동쪽(太陽), 쇠(釜), 새(鳥) 등이 그 예야. 그런데 세종실록지리지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문경현 초재(草岾)라고 지명 표시를 해 놓았어. 이는 억새의 아종인 ‘새’가 많아 그렇게 불렸으리란 점을 암시하지. 따라서 이 고개는 누군가 새재를 한자로 옮기면서 鳥嶺으로 오역한 거라고 볼 수 있어. 따라서 이곳의 새재는 그냥 새고개이지 鳥嶺이라는 한자어로 표기하는 건 좀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고 보여 지네. 한편 문경새재는 문경과 괴산의 사이에 있다하여 간(間)의 의미로 보는 설도 있어.”
어쨌든 이 조령에서 얻은 영감 때문이었을까? 남설악에 위치한 조침령도 언제부터인가 曹枕嶺에서 鳥寢嶺으로 한자 표기가 바뀌었다.
- 졸저 전게서 268쪽
2등급삼각점(태백24)을 보고,
정상석을 봅니다.
우리의 산줄기 이름을 지질학적 용어인 지질구조선에 이중환의 택리지에 나오는 '山脈'에 착안해 우리나라 산줄기에 산맥이라는 이름을 붙인 고토 분지로도 몰랐던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의 분기점.고토박사!이 부쇠봉이 당신이 찾던 소백산맥이 태백산맥에서 가지 치는 분기점이올시다!그런데 정말 태백산맥이 태백산을 지나는 거 맞습니까?
헬기장이 조성되어 있는 이 부쇠봉 정상에서는 문수봉도 볼 수 있고,
함백산과,
천제단과 태백산의 최고봉인 장군봉1566.7m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조망 이외에 이 부쇠봉이 갖고 있는 의의를 하나 더 살펴보아야 합니다.
부쇠봉에는 정상석과 삼각점(태백24)이 있다. ‘산맥파’는 이 부쇠봉을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의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정작 고토는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의 분기점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산맥에도 분기점이 있을까? 설사 있다고 해도 그걸 육안으로 볼 수 있을까?
그런데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태백산 장군봉에서 이 부쇠봉을 지나 낙동강을 건너 면산으로 진행하는 줄기 곧 도계를 따라 ‘태백산맥(남난희 루트)’으로 표기해 놨다. 국토지리정보원에서도 산맥을 물을 건너는 분수계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나 지도 제작자나 학교 즉 교과서에서 산맥 = 분수계라고 은연 중에 배웠기 때문이다. 산맥 = 산괴 혹은 지질구조선이라는 얘기는 예전의 지리학자들도 그렇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대목이었을 것이다. 지도를 보면 산맥은 산줄기 즉 능선을 따라 표기해 놨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지리학자들은 얘기한다. “산맥도는 지역의 지체구조(地體構造)와 기복구조(起伏構造)를 파악해 전체적인 윤곽을 보여주려는 교육적 모형인 동시에 주제도(主題圖)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누누이 강조하거니와 물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는 지를 파악하는 분수계는 산맥 내의 봉우리들을 연결하는 선으로 표시할 수 있다. 지극히 당연한 얘기다. 즉 산맥 ⊃ 산줄기(분수계)이다.
하지만 이건 히말라야 산맥이나 안데스, 로키에서나 통용이 될 법한 얘기지 우리 한반도라는 조그마한 땅덩어리에 들어오면 얘기가 좀 달라지지 않을까? 하지만 학문적으로는 그 생성원인 즉 성인(成因)을 밝혀야 한다고 한다. 가령 이 태백산맥이라는 것은 유라시아 대륙 지각판과 태평양 지각판이 수렴, 충돌하는 과정에서 횡압력에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 신생대 제3기 때라고 하니 무려 6,500만 년 전 이야기이다. 이때 수평으로 가해진 횡압력이 대륙의 서쪽 연변부를 들어 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동고서저의 경동지형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태백산맥을 분수계의 개념으로 봐서는 곤란하다고 한다. 그러는 그들에게 산경표를 들이대는 우리를 지리학자들이 답답해하는 점도 이해는 할만하다.
- 졸저 전게서 347쪽
관련하여 그렇다면 '태백산맥 종주'라는 캐치플레이를 들었던 남난희는 어디로 걸었을까요?
1984. 1. 1. 금정산을 출발하여 주왕산과 백암산을 지나 1984. 2. 11. 구봉산 ~ 매봉산을 지나 대덕산에 이른 다음, 두타산 ~ 황병산을 거쳐 1984. 3. 10. 진부령에 도착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진행 중 6차 지원조와 만나는 곳은 정선군 두문동에 있는 지금은 두문동재로 더 많이 불리는 싸리재이다. 그녀의 손에는 1/25,000 지도가 들려 있다.
한 가지 특기할 만한 것은 태백산맥을 종주하는 그녀의 계획서에는 태백산이 들어 있지 않았다. 태백산맥을 종주한다고 하면서 정작 태백산은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1984. 2. 12.로 예정된 6차 지원조와 싸리재에서 만날 수 있을까? 산경표를 알아 마루금을 읽을 줄 아는 우리는 벌써부터 걱정스러운 눈길을 그녀에게 보낸다. 싸리재는 백두대간 매봉산 ~ 태백산 구간(태백산맥)에 있고 낙동정맥이 대간을 만나는 곳은 삼수령인 피재인데 어쩌나....
남난희를 따라가 본다. 1984. 1. 1. 금정산을 출발한 그녀는 갖은 고생을 다하면서 1984. 2. 7. 통리역으로 떨어진다. 대단하다. 통리역 부근에서 1박을 한 후, 예당골 ~ 매봉산에서 왼쪽으로 틀어 고랭지 채소밭을 경작하는 마을들을 보고는 1279봉(지금 지도의 1277.4봉)을 거쳐 예정보다 이르게 금대봉1420m(책에는 1418봉)에 떨어지게 된다. 그러고는 싸리재 헬기장으로 내려가 지원조와 만난다. 지원조와 헤어져 하루 휴식을 취하고 그녀는 대덕산 방향으로 틀어 태백산맥을 이어가다가 물줄기를 만나는 바람에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그러고는 다행히 인근 마을 주민을 만나 그들로부터 피재 ~ 건의령 얘기를 들으면서 다시 지도를 확인하여 보았지만 이미 상당 구간을 우회한 뒤였다. 3일이라는 시간을 허비하였던 것이다.
뭐가 잘못 되었을까? ⓵애초에 이 ‘국토순례회’ 팀은 태백산맥 종주 중 태백산은 지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⓶그렇더라도 태백산맥 종주에 태백산이 포함되지 않은 것에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⓷이들이 산맥 산행에 충실하였다면 남난희는 이런 식으로 운행을 하였어야 했다. 즉 1984. 2. 6. 석개재를 지나 면산1246.3m(책에서는 금산이라고 하였는데 아마 綿山을 錦山으로 잘못 읽은 듯)에서 야영을 한다. 그러고는 다음 날 토산령으로 진행하여 통리로 가게 되는데 여기서 대형알바의 서곡은 시작되었던 것이다.
남난희는 이 면산에서 좌회전하여 강원도와 경상북도 도계 능선을 탄 다음, 삼방산1176.7m을 지나 878.4봉에서 910번 도로를 만난 다음 느긋하게 낙동강을 석포대교로 건너 연화산1053.5m ~ 화성재 ~ 싸리재 ~ 문수봉1514.9m ~ 부쇠봉1549.4m을 지나 태백산 장군봉으로 진행(아쉬움에 지도 상에는 ‘남난희 루트’라 표기)했어야 했다. 그래야 함백산을 지나 싸리재(두문동재)에서 일행도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태백산도 지날 수 있었고 그렇게 함으로써 태백산맥 종주 산행에 충실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남난희는 토산령을 넘어 통리에서 구봉산으로 진행하는 능선에 충실하려 했던 것이 매봉산 ~ 금대봉 루트를 타게 된 결과가 됐다. 즉 산줄기 개념을 제대로 이해 못했던 당시의 사고방식으로는 구봉산 ~ 매봉산 ~ 금대봉 ~ 대덕산 ~ 35번 도로 ~ 큰재로 진행하려던 것이 대형알바를 하게 된 원인이었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남난희는 얘기한다. “이상하게도 엉뚱한 물줄기가 가로놓여 있고 길이 끊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여기서 최소한 두 가지를 지적해야 한다. 첫째 남난희는 태백산맥을 종주하면서 산맥이라는 개념을 학교에서 배운 대로 그대로 믿는 우(愚)를 범했다. 즉 산맥은 분수계가 아니라 물줄기도 건너는 그런 지질구조선이라는 것을 알았어야 했는데 그녀는 산맥을 분수계 즉 산줄기로 오해했던 것이다. 만약 ‘산맥 ≠ 산줄기, 분수계’라는 사실만 제대로 알았더라면 과감하게 황지천과 철암천이 모여서 오는 낙동강을 건넜을 것이다. 그러고는 태백산맥이라는 이름에 충실하게 태백산도 지났을 것이다.
둘째 아니면 애초 태백산맥 종주에는 태백산으로 진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 매봉산이나 대덕산을 아예 산행 예정지에 넣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니 지원조와의 만남도 싸리재가 아닌 피재 즉 삼수령이었어야 했다.
즉 태백산맥은 땅속에서 올라온 지질구조선 혹은 지괴 등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분수계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미리 알았어야 했다. 하지만 그때는 제대로 몰랐었다. 산맥 = 산줄기로만 알았던 것이다. 학교에서 그렇게 가르쳐줬으니까.
다시 말해서 낙동정맥을 타고 온 산줄기는 피재 즉 삼수령에서 바로 직진을 하여 건의령 ~ 푯대봉 방향으로 진행을 하여야 하기 때문에 매봉산이나 대덕산을 산행계획표에 넣지 말았어야 했다. “처음 계획을 세울 때, 먼저 태백산맥을 했던 우정산악회와 성량수 씨의 계획서대로 했다가 나중에 보니 수맥이 가로놓인 곳이 몇 군데 있어 급히 계획을 바꾼 것인데 그게 잘못된 듯했다.”고 술회한다.
이 내용은 아주 중요한 점을 시사해준다. 즉 고토 분지로도 이 지점에서 “소백산맥이 태백산맥에서 갈라지는 지점을 찾지 못했다”고 술회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고토도 산맥을 이어지는 선 즉 분수계로 인식했음을 어느 정도 확인해 주는 대목이라 하겠다.
- 졸저 전게서 331쪽
11:29
또 얼마나 놀았습니까?
천제단으로 향합니다.
이곳이 악착같이 얘기하자면 태백산맥에서 소백사맥이 갈리는 지점이라는 것이죠?
물론 부피의 개념이 아닌 선의 개념으로 볼 때....
고사목과 주목의 나라 태백산.
코발트색 하늘과의 어울림.
11:37
지도 #4 '바'의 잘못된 이정표.
참고도 #2
지금 있는 곳이 참고도 #2의 B의 곳인데 위 참고도에서 명백하듯이 이 부근의 최고봉은 부쇠봉으로 이는 우리가 걸은 것 같이 A - 부쇠봉 - B로 위 마루금을 따라 걷는 것이 올바른 대간길입니다.
공단에서는 마치 A - B 구간에 백두대간 표기를 해놓아 모르는 이들로 하여금 잘못된 구간 즉 사면치기로 유도하고 있는 것 같아 영 마음이 씁슬하더군요.
예전 도립공원으로 있을 때에는 아예 백두대간이라는 표기가 없어 덜 헷갈렸을 텐데....
정통으로 걸어야죠.
태백산의 천제단은 삼단으로 되어있다. 하단의 제단은 땅에 제사를 지내는 곳이고 여기서 나무 계단을 따라 오르면 천왕단과 정상석이 있는 태백산이다. 이곳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곳이라서 그런가? 이곳을 지나노라면 간간이 시산제와 개업식 고사 그리고 회사의 ‘대박수주’를 위한 제(祭)를 올리는 팀들을 볼 수 있다. 그런 팀들의 명소이다. 그러고는 장군봉이다. 실제 태백의 최고지인 이 장군단은 사람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인본주의의 표상인가? 홍익인간의 실천인가?
- 졸저 전게서 349쪽
좌측 문수봉....
부쇠봉....
깃대배기봉과 제일 뒤의 운곡지맥.....
멀리 구룡산도 선명하고....
태백산 인증샷을 날리는 일반 산객들....
우리는 사길령 방향으로.....
태백산 정상에서 3등급삼각점을 확인하고....
천평의 포격장도 봅니다.
멀리 옥동지맥의 백운산을 봅니다.
옥동지맥이라고 부르니 아까 이야기했던 옥동천을 떠올리면 됩니다.
저 옥동지맥을 신산경표에서는 두위지맥이라고 하는데.....
두위지맥과 옥동지맥...
왜 신산경표와 대한산경표는 지맥의 이름을 다르게 부르는 것일까요?
도대체 어떤 차이가 있길래....
너무 길고 복잡하기 때문에 별로 관심이 있을 것 같지 않아서 여기서는 생략하겠습니다.
혹시 관심있으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눌러보시면 참고가 되실 겁니다.
주지하다시피 천제단은 예로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유서 깊은 곳입니다.
더욱이 한배검은 국조 단군할아버님을 일컫는 말이니....
저도 제사상 앞에서 제가 시작한 일에 축원을 올립니다.
또 한참이나 놀았습니다.
장군단을 향합니다.
어쭈...
제법!
이것도.....
도로가 함백산의 운치를 떨어뜨리는군요.
이것도 괜찮은 사진.....
유일사 사거리 쉼터에서 잠깐 후미를 기다립니다.
여기서 또 10분 정도 놀고.....
걷는 시간보다 노는 시간이 더 많아지는 느낌입니다.
동자 뭐라고 하던데.....
야생화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무식하니까.....
여름에 걷는 유일사 ~ 화방재 구간은 다른 계절의 그것과 무척 다르죠.
새로운 길을 걷는 느낌.
그리고 그 길이 구간의 마지막이기 때문에 더 그렇습니다.
심정적으로 이해합니다.
산령각을 지나고...
지난 번 여기 놓고간 소주를 마신 분이 있다고 하던데....
아직까지 온전하게 살아 계시려나?
새길령을 지나고....
이건 개망초라고 하던가?
애델님한테 배운 건데....
13:43
그리고 늘 추억속의 그 집.
11년 전 밤차를 타고 태백에 내려 택시를 타고 이곳에 도착해서는 올라가는 길을 못찾아 5분 정도 헤매던 기억이....
그 거미줄 때문에 힘든 것도 모르고 올라갔었습니다.
대원들 다음 구간 때 천천히 올라가시기를....
좌측은 상동내려가는 길과 우측은 함백산 올라가는 길.
우린 좌측으로 내려가 아까 대간길을 걸으며 머릿속으로 그리기만 했던 옥동천으로 내려가서는 알탕으로 마무리를 합니다.
그런데 화방재花芳岾가 어평재로 바뀌었나요?
깨끗하게 새단장을 한 상가....
예전의 여관은 민박집으로 바뀌었고.....
오늘 구간은 여기서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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