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오님. 백두대간도 좀 오시지 왜 백두대간은 안 오세요?"
벌써 7기 대간 산행을 진행하고 있는 해밀산악회의 백두대간팀 총무직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계신 쇼콜라 총무님의 권유입니다.
"글쎄요. 시간이 맞지가 않네요. 시간만 맞으면 언제라도 참석하겠나이다. 저도 대간길이 늘 눈에 삼삼하기는 마찬가지이나이다......"
그렇게 몇 번 함산 제의를 정중하게 고사한 적이 있었습니다.
지난 1. 14.
신년 눈산행으로 계방산이 공지됐었습니다.
눈에 목마른 저는 '타는 목마름으로' 명산 산행을 택했는데 공교롭게도 폭설로 인해 선자령으로 발길을 돌리게 됐고 그 바람에 눈산행이 아닌 소맥 산행으로 제 주제가 변경됐었습니다.
그날 뒤풀이 자리에서 함산을 한 '초아' 선배님께서 거의 협박 수준으로 멘트를 날리십니다.
"우리 7기 때에는 단 한 번도 같이 산행을 한 적이 없잖아! 3월 안으로 무조건 같이 걷는 걸로 하자!"
그러고는 손을 꽉 잡습니다.
징그럽게.....
그렇게 맺은 순댓국집의 결의는 결국 7기팀의 대간 일정표를 훑어보게 만들었고.....
오라!
황악산 구간이라......
15일 정도에 베트남 출장이 예정되어 있으니 그렇다면 03. 04. 에 진행하는 황악산 구간을 따라가 봐?
남진南進이니 추풍령 ~ 눌의산 구간은 새벽에 진행하게 되겠고, 괘방령 정도에서 아침을 먹고는 황악산 헬기장 정도에서 점심을 먹고는 하산?
그나저나 삼성산은 좀 변했을까?
삼성산은 어디 있나?
오늘 구간을 산경표에서 본다. 산경표는 남진이므로 당연히 웅이산~추풍령~계방산~황악산~삼성산~우두산 순이다.
들머리는 우두령에서 영동군 상촌면 방향으로 10m 정도만 내려가면 이정표가 보인다. 충청북도와 경상북도의 도계인 능선을 따라 한 시간 정도 진행하면 984.9봉에 오르게 된다. 금방 보았듯이 우두령이 우두산이니 예전 삼성산의 현 위치가 궁금하다. 산경표에는 황악산과 우두산 사이에 있다고 했으니 삼각점봉인 984.9봉이 좀 수상하다. 혹시 이 삼각점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우측에 있는 직지사의 말사 삼성암이 신라 중기에 창건된 암자라는 설이 있어 이런 믿음을 뒷받침해 준다. 또한 불자 산꾼 ‘범여 김복환’에게 문의하니 이를 쉽게 확인해 준다. 그럼에도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물론 영진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다. 다만 다행히 ‘김형수 555지도’와 ‘사람과 산’ 지도에는 984.9봉을 삼성산이라고 명기해 놓았다.
-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170쪽
그 삼성산의 변화상을 찾아보는 것도 이번 산행의 주제가 되겠습니다.
하지만 내가 가장 주목을 하고 있는 것은 뒤풀이!
하지만 그것만큼은 초아 선배님이 책임을 진다고 했으니....
오케이!
조심스럽게 말석으로 참가신청을 올리고.....
2023. 03. 04. 02:56
충청도와 경상도를 구분하는 추풍령에 도착합니다.
남상규 님의 노래비.
어릴 적 저에게는 이 노래로 추풍령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었던 기억입니다.
그런데 구름도 자고 가고, 바람도 쉬어갈 정도의 고개가 단 해발 220.3m?
지도 #1
이 정도면 추풍재 혹은 추풍치 정도가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노래 가사에 낚인 느낌입니다.
오늘도 이 부장님 덕분에 푹 잘 자면서 왔습니다.
이 부장님도 벌써 백두대간이 6회 차이시죠?
그렇다면 대간길 들머리 날머리는 물론 그 대간길의 특징 또한 어느 정도 귀동냥으로 다 파악하셨을 겁니다.
준비작업을 마치고,
포도밭 옆으로 조성된 도로를 따라 오늘 산행을 진행합니다.
이 길은 원 대간길이 아니죠.
철도와 고속도로를 피하여 우회하느라 궁여지책으로 걷는 길입니다.
예전에는 기찻길을 건너서 대간길을 진행하였다는데 이젠 다 옛날 일이 되었습니다.
03:15
그러고는 여기서 백두대간 길을 접속하게 됩니다.
이제부터 충청북도 영동군과 경상북도 김천시의 도계를 따라 진행합니다.
정확하게는 영동군 추풍령면과 김천시 봉산면이죠.
늘 그리던 구간.
처음 북진으로 대간 산행을 시작했던 14년 전 봄.
이곳을 내려오면서 추풍령 시내를 충분히 조망도 하고 기차가 오고 가는 모습과 소리도 들으면서 내려왔었는데....
04:17
눌의산 정상이 가까워지는지 갑자기 찬 바람이 엄습합니다.
추풍령을 출발해서 고도차 530여m를 약 3.72k로 걸어 눌의산으로 오릅니다.
訥誼라는 한자어를 씁니다.
뭐 이렇게 한자가 어려워?
왜 눌의산으로 부를게 됐을까?
인터넷을 뒤져봅니다.
'한국의 산하'에 그럴듯한 설명이 달려 있습니다.
눌의산(743m)은 추풍령 뒤쪽에 자리 잡은 산으로 등산인들의 발길이 뜸하여 호젓한 산행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이 산의 이름인 `눌의'는 한자어로 정의가 눌하다 혹은 더디다는 뜻이니 추풍령 영마루를 사이하는 충청도와 경상도의 양쪽 인정의 교류가 뜸하다는 것을 뜻한다.
정상에 봉수대가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주변 조망이 뛰어나다. 또한 옛날에는 요긴한 거점구실을 했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나라에 긴급을 다투거나 외적이 침범했을 때 활활 타는 봉화를 피워 올려 제 몫의 역할을 다했을 눌의산의 늠름함이 살아 있다.
참 궁색한 설명입니다.
늘 얘기하지만 이런 이름은 아주 예전부터 순우리말로 쓰이던 이름이 시대와 지방에 따라 그 말이 진화를 거듭하다 신라 경덕왕 이후 이를 다시 한자어로 바꾸는 과정에서 적당한 한자 이름을 갖게 되고 근자에 들어 이를 다시 우리말로 억지로 해석하는 과정에서 처음과는 다른 엉뚱한 의미가 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국어학자들의 분석이죠.
그러니 이 이름도 가만히 분석해 보면 訥誼라는 한자의 훈과는 무관하게 발음을 위주로 분석해야 합니다.
즉 늘》느르》눌이》눌의 정도로 변화가 됨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즉 이는 예전 샤머니즘에 투철한 우리 조상들 특히 김천 지역에서 이 방향의 산세를 보았을 때 이 봉우리에서 추풍령 방향으로 산줄기가 늘어져 내려가는 것을 보았을 터이고 그러니 이 '늘'로 부르다가 이 이름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한자어 눌의가 되었을 것입니다.
'한국지명총람'에도 다른 이름으로 눌이항산· 누리산·느릅산·선개산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 이런 사실들을 뒷받침합니다.
이따 황악산에 가서 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합니다.
참고로 대동여지도에는 백두대간에 있는 지명으로 지금과는 조금 다른 위치 즉 추풍령 남진 방향이 아닌 북진 방향으로 눌이항訥伊項이라는 이름이 보이는 것을 보면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이 눌의산의 전단계 지명이 눌이항으로 사용되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던 것이 20세기에 들어 눌의산으로 정착되게 된 것이죠.
1920년대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지도를 보면 이 점이 명백해집니다.
2등급 삼각점(영동 22)도 확인하고....
벗었던 자켓을 다시 챙겨 입고....
잠깐 예전의 추억에 젖어봅니다.
2009년도의 눌의산 정경.
홀로 백두대간에 들었을 때입니다.
그때 배낭에 카메라를 올려놓고 인증을 하는데 바람 때문에 배낭이 자꾸 넘어져 그저 이 한 장으로 만족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큐가 왜 저렇게 길지.....
지도 #2
헬기장은 이제 흔적만 남아 있는 곳을 지나면서 이제 추풍령면을 벗어나 매곡면을 만나니 이제부터 매곡면과 봉산면의 도계를 따라 걷게 됩니다.
조금 힘을 써서 장군봉에 오르니 전애는 없었던 산패가 눈에 들어옵니다.
예전에는 이렇게 부산낙동산악회에서 산패를 걸어놨었는데 표지띠가 흡사 성황당을 방불케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곳 이름이 한자로는 將軍峰이 아닌 長君峰으로 표기되어 있어 국토지리정보원의 무성의에 놀랄 따름입니다.
한자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지도 제작에 참여를 했었던 거 같습니다.
더군다나 일제강점기를 거쳐 1960년대에만 해도 없던 이 봉우리 이름이 1970년대에 들어서자 지도에 표기된 것을 보면 분명 누군가의 장난질 때문인 거 같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 발길을 옮기니,
Mt. Gasung입니다.
이제 정상석도 세계화에 보조를 같이 하는 셈입니다.
사실은 이 산아래에 있는 가성마을에서 가져온 이름입니다.
어쨌든 어둠 속에서는 가성비를 확인할 수 없으니 그냥 통과!
그나저나 이 정상석은 어디로 갔나?
05:39
시야가 좀 터집니다.
김천시내의 야경을 즐깁니다.
공교롭게도 예전과 같은 위치에서 사진을 찍었군요.
지도 #3
날이 밝았습니다.
이제 좀 살 것 같습니다.
여기서 김천시 대항면을 만나게 되는군요.
그러니 이제부터는 대항면과 매곡면의 도계를 따라 진행하게 됩니다.
부드럽게 우측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07:14
날머리 이정목이 있는,
괘방령으로 떨어집니다.
올라온 만큼 또 내려왔습니다.
간단하게 빵 하나로 아침을 때우고....
07:38
30여 분 정도 머무르다 자리를 텁니다.
괘방령 이야기
장원급제길이라는 현판이 볼 만한 이 고개에는 괘방령산장이 들어서 있다. 예전에는 길손들을 위해 주막이 있었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때의 선비들은 추풍령을 이용하지 않고 이 길을 통하여 한양으로 올라갔다고 한다. 즉 과거(科擧) 수험생들이 한양으로 시험을 보러 갈 때 추풍령을 이용했다가는 추풍낙엽과 같이 한 방에 날라 간다고 했으니 누가 그 고개로 넘었겠는가? 주체를 달리하여 수험생이 아닌 관리들인 경우에는 파직(罷職)을 당할 악운이 생긴다고도 하였으니 그들에게는 그냥 웃어넘길 만한 일도 아니다.
더욱이 이 괘방(掛榜)이라는 말은 ‘방을 써서 붙인다.’라는 의미다. 그러니 과거를 치르는 수험생에게는 과거에 급제한다는 말도 되고 승진을 목전에 두고 있는 관리에게는 승진을 한다는 말도 된다. 그러니 이런저런 이유로 추풍령이 아닌 이 괘방령을 택해 한양으로 갔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 괘방령이 산경표에는 괘방산(掛榜山), 계방산(桂榜山)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는데 이것도 우두산과 같이 ‘산→령’이 된 같은 이유일 것이다.
금실 좋은 부부가 운영하는 괘방령산장에서 막걸리 한 잔을 마시고 가기로 하자. 시원한 나무 그늘이 땀을 식히고 가기에는 더없이 좋다.
- 전게서 176쪽
정상석을 보고
황악산으로 향합니다.
묵묵히......
내려온 만큼 또 올라갑니다.
지도 #4
618.8봉으로 오릅니다.
그런데 이 봉우리는 논의가 많습니다.
여시굴은 여우굴?
곰이 살았을 법한 ‘여시굴’을 지나면 여시골산으로 오르게 된다. 땅 이름이나 산 이름이 혼란스럽기는 여기도 마찬가지다. ‘여시’란 말에 착안하여 여지없이 ‘여우’를 동원했다. 하지만 지명의 경우 ‘여시’는 우리말의 ‘엿다, 옅다’에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이 ‘여시골산’의 경우는 ‘물이 깊지 않은 골짜기를 끼고 있는 산’이라는 뜻으로 쓰인 것이다. 그러니 ‘여시굴’이 다만 그러한 산에 있는 굴에 불과한데 여우까지 동원한 것은 좀 심했다는 생각이다. 한편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정상석이 있는 이곳을 그저 618.8봉으로만 표기해 놓았다. 반면 영진지도는 대간 외 387.7봉인 삼각점봉을 여시골산으로 표기해 놓았고, ‘사람과 산’ 지도도 그 삼각점봉을 385.4m로 같은 이름으로 표기해 놓았다. 하지만 ‘김형수 555’ 등산지도만큼은 이 봉우리가 여시골산(625m)이라고 하고 있고 김천시도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 최근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천덕산을 지난 다음 만나는 621.1봉을 여시골산으로 표기했다. 산 이름이 아주 복잡한 지역이다.
- 졸저 전게서 175쪽
위치야 그렇다 치고....
여시골이 여시굴이 되다니!
애들 장난 노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논의가 분분하다는 것은 그 어떤 것도 맞는 게 없다는 것입니다.
깊은 낙엽이 먼지만을 풀풀 날리고.....
도대체 비는 안 오는 건가?
시국이 하도 시끄러우니 하늘도 노여워하여 비도 내리지 않습니다.
그러고는 안내판에 운수봉이라 표기되어 있는 봉우리로 오릅니다.
지도 #3에서 보듯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천덕산 668.2m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천시에서는 운수암이라는 암자와 운수리라는 지명 때문에 운수봉으로 부르겠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당장이라도 지명위원회를 열어 그렇게 결정을 한 다음 도 지명심의위원회와 중앙지명심의위원회의 결정을 거쳐서 운수봉으로 지명 고시하셔야지!
나라가 미쳐 돌아가고 있는 건가?
행정기관에서 스스로 법령을 어기시다니!
지명은 막 생기는 게 절대 아닙니다.
누누이 얘기하듯 지명은 조상들의 생각과 정서가 잘 반영되어 있는 가장 오래된 언어이면서 긴 세월 변화를 거부해온 귀중한 우리 문화유산의 한 부분입니다.
옛 언어가 화석처럼 굳어져 있는 지명은 해당 지역의 역사이자 얼굴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죠.
여하튼 이 정상석도 없앴습니다.
지고 내려가기 힘들어 부근 골짜기 어디에 내팽개치고 가지는 않았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시죠.
618.8봉을 보며 걷습니다.
많이 올라왔네요.
부드러워집니다.
거의 다 올라왔군요.
봄이 온 거는 같은데.....
황악산 헬기장.
여기서 우측으로 진행하면 곤천산1030.5m으로 갈 수 있죠.
즉 영동군 상촌면과 매곡면의 면계능선을 따르게 된다는 것이죠.
직진을 합니다.
케른이 보이는군요.
황악산 정상으로 오릅니다.
김천시에서는 이 정상을 비로봉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뭇 명산에 가장 높은 봉우리 이름이 비로봉이라고 하니 무조건 따라서 붙인 것인가?
천왕봉과 비로봉
“그런데 형, 보통 산에는 비로봉이든 천왕봉이든 둘 중의 하나만 있는데 어떻게 이 속리산에는 천왕봉과 비로봉 두 개의 이름이 병존하는 것이지?”
보통은 천왕봉이나 비로봉 중 천왕봉이 있으면 비로봉이 없고, 비로봉이 있으면 천왕봉이 없을 법한데 이 속리만큼은 두 이름의 봉우리를 다 가지고 있다. 어찌 보면 좀 욕심이 많은 산인 것 같다. 비로봉과 천왕봉 혹은 천황봉이 양립할 수 없는 이유? 뭐 꼭 양립할 수 없다는 것보다는 두 개의 최고가 한 곳에 있기에는 좀 벅차다는 것이다. 삼국지의 제갈량(諸葛亮)과 사마의(司馬懿)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이유를 좀 살펴보자.
우리 민족 최고(最古)의 신앙은 아무래도 산악신앙이다. 그러니 환웅부터 시작하여 삼국시대의 천군(天君)을 거치는 동안 하늘에 계신 하느님을 천왕으로 불렀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산이든 명산에는 천왕(황)봉에 제단 즉 천제단을 두고 제사를 드렸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이 천황봉이나 천왕봉은 어느 산에서도 최고봉이라는 뜻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산악신앙설’이다.
반면 비로봉은 불교 신앙의 한 단면이다. 즉 ‘불교신앙설’로 불교에서 부처님 중 가장 으뜸인 부처님은 비로자나불이다. 그러니 불가의 기운이 가득 찬 산에서는 그 최고봉을 비로봉이라 불렀음은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라 하겠다. 금강산, 묘향산, 오대산, 치악산, 소백산 등 이른바 ‘5봉’이라고 하는 산에 비로봉이 최고봉으로 자리 잡은 이유는 이와 무관치 않다.
이 속리산의 경우를 법주사의 창건과 관련하여 생각해보자. 짐작건대 불교국가인 고려시대는 물론 특히 신라시대 말기부터 비로봉이라는 이름의 봉우리가 많이 등장했을 것이다. 그런데 속리산의 최고봉은 553년(진흥왕 14년) 의신이 창건하기 전에 이미 천왕봉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그러니 명찰인 법주사를 창건한 다음 비로봉이라는 이름을 붙여야 하는데 천왕봉이 버티고 있으니 다른 방법을 강구할 수밖에. 적당히 타협하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추측건대 결국 남의 봉우리 이름을 빼앗을 수는 없어 부득불 다음 고봉(1031.9m)에 비로봉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한편 보통 비로봉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원인은 위와 같이 불교와 무관치 않으나 종교적인 원인 이외에 국어학적인 측면에서 ‘비로’를 밝히려는 유력한 시도가 있다. 즉 이 ‘비로’는 단순히 한자를 차자(借字)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아까 얘기한 산악신앙과 결부하여 소원을 ‘빌다’의 ‘빌’에서 접미사 ‘오’가 붙어 비로가 되었고 이것을 한자로 毘盧, 毗盧 혹은 飛蘆로 표기는 하였으니, 다 우리말 어간 ‘빌~’에서 온 것이라는 것이다.
- 졸저 전게서 227쪽
10:23
그러면 정상석도 비로봉으로 하셨어야지!
2등급 삼각점(영동 21)을 확인하고.....
정상석 바로 아래서 오찬이 벌어지고 있군요.
초아 선배님이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계셨다면서 어서 오라고 손짓에 손짓을 하시는군요.
성대한 자리입니다.
졸지에 오찬 파티 이름이 '현오 환갑 축하연'으로 명명됩니다.
그 바람에 홀가분 대장님은 저로부터 형님 대접을 받게 되고.....
자연스럽게 점심 식사용으로 가져온 제 먹거리는 배낭 안에서 그냥 잠자게 되고.....
홍어 + 김치 + 돼지 + 막걸리 = 사합
담금주 + 계란말이 + 쇠고기 볶음.......
선배님도 맛있게 드셨죠?
젊은 친구들은 100대 명산 완등 기념식에 여념이 없고....
그런데 정상석 뒤를 보면 김천시는 황악산의 유래에 대하여 또 거짓말을 하기 시작됩니다.
황악산의 뜻은?
“전에는 왜 황학산이었을까?”
“글쎄, 황학산이라고 한 그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그러려면 ‘학(鶴)’과 이 주위 지명이 좀 어울려야 하는 게 아니겠니? 가령 ‘예로부터 누런 학이 많이 날아와 노닐던 곳이라 하여 황학산(黃鶴山)이라고 불렀다.’고 한다면 이 주변의 신선봉, 망월봉, 백운봉 그리고 운수봉과 연결시켜 부르면 뭐 할 말도 없어. 그런데 황악산으로 확실하게 못 박았는데 그 뜻은 무엇일까? 혹자는 오방색(五方色)까지 동원하여 나라의 중앙을 나타내는 색깔이 노란색이므로 이 황악산이 5산 중 중앙에 위치하는 산임을 나타낸다고 하지. 그러나 이건 그렇게 볼 게 아니야. 우선 황(黃)은 우리말을 한자로 차자(借字) 한 것에 불과해. ‘누를’ 황이니까 이 누를의 어간 ‘늘’ 혹은 ‘느르’에 맞는 한자어가 없다 보니 비슷한 발음의 ‘누를 황(黃)’을 가져다 쓴 거라고 보는 거지. 그러면 ‘늘’이나 ‘느르’의 뜻은 무엇일까? 나는 그 예를 논산 옆에 있는 황산에서 찾고 싶어. 그 자체도 ‘늘어진 산’이라는 뜻이니까 말이야. 그 옆의 지명인 연산(連山)이나 논산(論山)과도 같은 말이기도 하고. 그러니 ‘늘뫼’ 혹은 ‘늘산’의 한자어인 황산(黃山)이었으면 ‘그저 그런 산이 평야까지 길게 늘어진 산’ 정도였을 것인데 김천의 진산인 이 산은 일반 산보다는 더 큰 산이라 ‘큰 산이 평야까지 길게 늘어진 것’이어서 산(山)이 아닌 악(嶽)을 쓰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어. 그래서 황산이 아닌 황악(黃嶽)이 되었고 이것의 뜻은 누런 산이 아니라 ‘길게 늘어진 큰 산’이라는 의미였다는 거지. 그러니 황학산이라는 말은 호사가들이 지어낸 말인 거야. 그러니 예전부터 이 산을 황학산으로 부른 게 아니라 황악산으로 부른 게 맞는 거지. 택리지나 대동여지도, 심지어 직지사 일주문까지도 황악산으로 썼음이 이를 뒷받침해 주는 거고. 아마 한자가 들어오기 전인 신라시대 때에는 분명 ‘늘뫼’로 불렀을 거야.”
“그런 깊은 뜻이. 형 대단하네. 그러면 황학산이라는 말은 호사가들이 지어낸 말이겠네. 예전부터 이 산을 황학산으로 부른 게 아니라 황악산으로 부른 게 맞는 거고. 택리지나 대동여지도, 심지어 직지사 일주문까지도 황악산으로 썼음이 이를 뒷받침해 주니 말이야.”
“일반적으로는 그래. 그런데 악(岳, 嶽)과 학(鶴)의 관계에 주목해 해석하는 유력한 견해가 있어. 즉 이 학(鶴)을 두루미와 혼동해서 붙인 거라는 것이지. 그러니까 지리산 즉 두류산을 볼 때 ‘두름/둠’을 봤잖아. 이 뜻이 ‘두르다, 에워싸다’의 명사형이 ‘두름’이니 이때 발음이 ‘두루미’와 비슷하잖아? 그래서 그걸 한자어로 표기하다 보니까 ‘학(鶴)’을 갖다 붙이게 됐고, 그러다 보니 ‘학(鶴)’자 계열의 산이 생기게 된 거지. 간단한 예로 인천에 있는 문학산이 그런 경우야. 이 황악산을 황학산이라고 부르게 된 이유가 있다면 바로 ‘김천을 에워싸고 있는 큰 산이 평야지대로 길게 늘어지는 모습’에 주목을 했다는 것이지.”
그렇다면 황악산도 황학산도 가능하다는 얘기 같다. 대동여지도에는 황악산(黃岳山)으로 표기했다.
- 졸저 전게서 172쪽
11:24
정확하게 1시간 만에 일어납니다.
그러면서 이제부터는 영동군 상촌면과 김천시 대항면의 도계를 따라 걷습니다.
우측으로 이 김천시에서는 신선봉이라 부르는 927.9봉을 흐름도 보고.....
그러고는 1044.5봉을 오릅니다.
형제봉, 삼형제봉, 칠형제봉.....
우측으로 점마마을을 봅니다.
우측 뒤로 궁천저수지가 보이는군요.
한편 좌측으로 궁촌저수지가 보인다면 그 위로 보이는 점마 마을의 민가 몇 채를 주시하자. 그중 하나가 유승호 주연의 영화 〈집으로〉의 촬영 현장이다. 거기서 호두농사를 짓고 있는 김을분 할머니가 그 영화의 외할머니 역할을 한 분이다. 청설모 때문에 골머리를 앓은 끝에 쥐덫으로 그들을 퇴치했다는 할머니의 기지도 놀랍다.
- 졸저 전게서 171쪽
지도 #5
진행방향으로 바람재를 지난 1032.1봉을 봅니다.
"형님. 도대체 저걸 어떻게 올라가지? 엄두가 안 나네요?"
마침 이 얘기 저 얘기하며 같이 걷던 영영님에게 말을 겁니다.
저와는 거의 띠갑장 이신데도 굳건하게 걸으시니.....
"현오님이 그런 얘기를 하시면 안 되지!"
저라고 별 수 있나요?
형님. 오래오래 건산하십시오!
신선봉927.9m 갈림길에서 우틀하고,
잡목 사이로 그 신선봉을 봅니다.
바람재로 접어듭니다.
12:02
상촌면과 대항면을 이어주던 옛길에서 대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간이 매점은 이제 완전히 철수를 하였군요.
바람재는 나름 추억을 많이 갖고 있는 곳인데....
그런데 왜 이 그림을 못 봤을까?
없어졌나?
저는 그냥 바로 진행하다 잠시 지도를 보느라 홀로 휴식을 취합니다.
그 사이 대원들을 먼저 보내고....
그런데 예전에는 바로 치고 올라갔는데,
지금은 우횟길을 만들어 놨습니다.
이 길을 따르다 좌틀하여,
잠시 조망이 트이는 곳에서 뒤를 돌아봅니다.
맨뒤 좌에서 올라오는 능선 중 가장 높은 봉우리가 황악산.
그 앞이 형제봉.
조금 당겨봅니다.
황악산이 조금 더 크게 다가옵니다.
그 좌측으로 곤천산130.5m과 1012.5봉.
이 복원작업을 위하여 우측으로 우회 등로를 만들어 놨으나 앞의 몇 분이 직진을 하시는군요.
사실은 10여 년 전에는 절개지로 대간길이 훼손되어 있기도 하였고 그 길은 위험하기도 했었는데 이렇게 복원 사업을 통하여 오히려 지금은 오를 만한 곳으로 변했습니다.
경험 상 먼저 올라가신 두 분이 저 위 봉우리961.9m에서 복원된 대간길로 인하여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잘 모르실 거 같은데....
사실 그렇게 진행하는 게 오리지널 대간길을 걷는 것도 되니 그분들 뒤를 따라 올라갑니다.
961.9봉으로 오릅니다.
여기서 점마마을과 곤천산 능선과 황악산을 보면서 우측 즉 대간길 방향도 감상합니다.
모처럼 조망을 즐깁니다.
여기서 우틀합니다.
대간길 복원 중이라 잡목의 저항을 약간 받습니다.
그러고는,
1032.1봉으로 오릅니다.
그런데 내용을 읽어보니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 여정봉旅程峰(1030m)라고 표기되어 있다고 하면서 "황악산을 가는 도중의 봉우리" 혹은 "여행을 하는 노정 봉우리" 등으로 지명 유래를 설명하고 있는데.....
늘 이런 식이죠.
그냥 한자의 훈을 이용하여 그럴 듯(아니 실제로는 어주 어색)하게 풀이한다는 것이죠.
김천시가 상당히 over를 하고 있는 느낌을 버릴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지도 #5에서 보듯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여정봉이라는 지명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봉우리는 해발 1032.1m라고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표기되어 있습니다.
2016년 제가 이곳을 마지막으로 지날 때에도 그저 이 이정목만 있었는데 김천시에는 심기일전(?)하여 있지도 않은 내용을 부풀려 저 안내판을 제작하였는데 오히려 없으니만 못한 결과가 되어 버렸습니다.
대항면 주례리....
바로 아래 직지사의 말사인 삼성암이 있을 것입니다.
뒤로 곧 진행할 삼성산 즉 964.9봉이 보입니다.
과연 어떻게 변했을까.....
신선봉.....
안부를 지나,
아! 반갑습니다.
삼성산은 어디 있나?
오늘 구간을 산경표에서 본다. 산경표는 남진이므로 당연히 웅이산~추풍령~계방산~황악산~삼성산~우두산 순이다.
들머리는 우두령에서 영동군 상촌면 방향으로 10m 정도만 내려가면 이정표가 보인다. 충청북도와 경상북도의 도계인 능선을 따라 한 시간 정도 진행하면 984.9봉에 오르게 된다. 금방 보았듯이 우두령이 우두산이니 예전 삼성산의 현 위치가 궁금하다. 산경표에는 황악산과 우두산 사이에 있다고 했으니 삼각점봉인 984.9봉이 좀 수상하다. 혹시 이 삼각점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우측에 있는 직지사의 말사 삼성암이 신라 중기에 창건된 암자라는 설이 있어 이런 믿음을 뒷받침해 준다. 또한 불자 산꾼 ‘범여 김복환’에게 문의하니 이를 쉽게 확인해 준다. 그럼에도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물론 영진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다. 다만 다행히 ‘김형수 555지도’와 ‘사람과 산’ 지도에는 984.9봉을 삼성산이라고 명기해 놓았다.
- 졸저 전게서 170쪽
그러던 이 984.9봉에 김천시에서 정상석 표시를 하여 대간꾼들로 하여금 산경표에도 나오는 이 삼성산에 대한 인식을 확실히 하게끔 수고를 해주셨습니다.
제 책을 보고 시정을 해주었다기보다는 시청 공원 담당자나 산림과 담당자가 발품을 팔아 이런 큰 성과를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3등급삼각점(영동 314)도 확인을 합니다.
초아 선배님께 이런 취지를 말씀드리자 "그럼 기념 촬영 한 번 해야겠네." 하시며 포즈를 취하십니다.
이번엔 가로로.....
지도 #7
이제 오늘 산행도 마무리 단계입니다.
마지막 봉우리에서 우틀하고.....
그러고는 서로들 수고를 했다고 하이파이브를 합니다.
오늘 해밀의 7기 대간꾼들을, 처음 뵌 분들은 처음 뵌 대로 오랜만에 만난 분들은 또 그런대로 즐거운 시간 함께 해서 행복했습니다.
지리산까지 건산, 행산, 안산하시기 바랍니다.
우두령이라고 하여 牛頭嶺이라 하지만 예전에는 우두산 혹은 우두봉으로 불렸었죠.
강희자전은 물론 우리의 한자사전에도 嶺 = 산 혹은 峰으로 풀이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한편 우리나라의 지명 중 우두령이라는 이름을 가진 곳이 떠 한 곳 있죠.
바로 김천시 대덕면과 거창군 웅양면의 군계에 있는 옛 이름이 우척현牛脊峴인 곳입니다.
그곳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도 대장 송암 김면 장군으로 유명한 곳이죠.
돌이켜 보건대 해밀 대원 6명이 작년 4월 거창환종주 산행을 하면서 봉우산을 내려와 우두령에서 시코봉으로 오를 때 갑작스러운 저의 컨디션 난조로 죽을 고비를 넘겼던 때가 엊그제 같습니다.
그 당시 한 사건으로 인해 마무리를 하지 못했는데 김영순님의 강권으로 조만간 마무리 산행을 하여야겠습니다.
14:07
좀 이른 시간에 오늘 산행을 마감합니다.
오늘 뒤풀이는 차돌박이 + 주꾸미.....
대단한 음식이었습니다.
다음 산행은 유감이지만 출장 관계로 참석하기 어렵고 그 다음 산행은 조령이라고 하는데 ......
조령 ~ 이화령은 들머리까지 가는 시간이 좀 걸리긴 하지만 지나치게 짧은 구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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