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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TWINS/지리산

자네가 그렇게도 가고 싶어하던 곳이 바로 이곳이었나?

 

 

제가 어떤 정보를 알고자 했을 때 보통은 관련된 책을 사서 보고 그러고는 그 걸 읽으면 그 안에서 모든 게 해결되었을 겁니다.

책 속에 길이 있다?

그만큼 모든 정보는 일반화 되었다는 얘기겠죠.

 

제가 산을 알기 시작했을 때.

그리고 산에 대해서 알고자 했을 때.

글쎄요.

없었습니다.

그래서 본 책이 '월간 산이었고 당시 그 잡지의 기자였던 박인식 선배가 주는 지식은 그야말로 '오아시스'였습니다.

당연히 그의 뒤를 따라가 보았고 비기너인 저는 그 현장을 그와는 다른 느낌으로 접촉했습니다.

그런 곳이 북으로는 미시령에서 황철봉을 거쳐 공룡이라는 곳이었고, 남으로는 수도산으로 올라 단지봉, 두리봉을 거쳐 가야산까지였습니다.

그렇게 산에 입문하게 되었던 것이죠.

나름 체계적인 산山교육을 받았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곳에 가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지도였습니다.

그것도 등산 지도.

그런 게 있을 턱이 없었던 시절.

얼마 지나지 않아 다행히 이우형이라는 지도쟁이가 그런 갈증을 일부분 해소해 주었습니다

이우형.

'산경표'라는 책을 발견하여 우리에게 백두대간이라는 것을 알려준 이.

바로 그 이우형입니다.

바인더 형식으로 삼지사에서 출판된 그 책의 지도로 이 산 저 산 다녔던 시절.

1980년대 초였습니다.

지금은 지도로는 모자른지 개념도로 산행을 하고 있으니 그 폐해란.....

예전에는 지도를 만들 수 없어 일반인들에 의해 개념도가 만들어졌지만.....

어쨌든 앱application은 부차적인 것이고 우선은 종이지도입니다.

그래야 전체적인 것을 알 수 있죠.

 

또 백두대간입니다.

산경표가 알려준 백두대간.

저는 조상들이 물려준 찬란한 문화유산 가운데 그 첫 번째를 한글이라 봅니다.

한국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죠.

더욱이 만든 이도 확실히 알 수 있는 글자이니.....

그 다음은?

글쎄요....

그 다음은 꼽는 이에 따라 다르겠죠.

하지만 저는 그 두 번째를 '산경표'라고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다분히 제가 산꾼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산경표가 있음으로해서 저는 우리가 기대어 살고 있는 물줄기와 산줄기를 알게 되었고 그로 인해 우리나라의 자연을 더 사랑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해두죠.

 

북진 제2구간.

벽소령 ~ 성삼재입니다.

03:10

그 들머리는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에서도 음정마을입니다.

차에서 내려 산행준비를 하고 슬슬 출발합니다.

순수하게 북부능선 산행만 할 때는 보통 음정을 통해 올라간다. 그럴 경우 차단기가 있는 초소까지는 도보나 차량을 이용하여야 한다. 초소부터는 임도를 따라 걸어서 올라야 하는데 이 도로가 지리주릉구간에서 얘기한 벽소령종단도로로서 함양 마천 ~ 하동 신흥간 도로 바로 그것이다. 이정표에는 음정 ~ 벽소령 대피소 구간이 6.7km임을 알려준다.

 

음정에서 벽소령은 널찍한 임도를 따른다.

임도를 따라 오르다 보면 7암자 루트 중 1078.2봉 옆으로 오르는 도솔암 루트를 지나치고 연하천 대피소 3.2km’ 이정목과 돌계단을 지나면 차가 오를 수 있는 끝 지점에 이르러 우측 돌계단을 이용하여 벽소령대피소로 오르게 된다. 임도에서 대피소까지는 채 10분이 걸리지 않는다. 대피소에서 우회전하여 지리 주릉의 부자(형제)봉을 지나면 이내 삼각고지 정상이다. 여기서 우측으로 희미한 길이 보이긴 하지만 등로 상태가 좋지 않다, 그냥 정상이라는 인식만 하고 지나면 바로 초소가 보이면서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지리북부능선 산행을 시작하는 게 좋다.

 

- 졸저 '현오와 걷는 지리산 491쪽

03:51

차단기가 설치되어 있는 정자 옆에 도착합니다.

여기까지 오르는 길은 두 가지가 있죠.

무조건 포장도로를 따르는 방법과 들머리 표지석에서 도로를 따르다 좌측으로 올라 첫 번째 골목 우측으로 올라 산길을 따르는 방법.

전자를 낮에 이용할 경우 좀 지루하죠.

그런데 지금과 같은 밤에는 그 지루함은 덜 할 겁니다.

이제부터는 비포장 임도입니다.

이 임도는 백두대간의 벽소령을 지나 하동군 화개면 대성리의 삼정마을을 거쳐 황장리로 연결됐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임도 수준의 길은 누가, , 뭐 하러 만들어 놓았을까? 그러고 보니 음정에서 올라오는 임도는 이 벽소령 대피소 코밑까지 아주 넓게 이어져 있음이 기억난다. 그리고 그 길의 도로사정도 아주 좋아 작은 트럭이나 사륜 구동 차들이 오고가는 것도 목격할 수 있었다. 도대체 이 길은 무엇일까?

 

사실은 1960년대 후반. 누군가가 필요성을 제기했을 것이다. 하동에서 함양을 가려하면 너무나 길고도 먼 길을 돌아가야 할 것이니 반야봉과 천왕봉의 중간을 가르는 도로의 필요성은 능히 짐작이 간다. 여기에 한라산 종단 도로를 개통한 토목업자들의 부추김도 한몫 했을 것이다. 물론 핑계거리도 있었다. 멀리는 194810월의 여순사건을 거론했을 것이고 가까이는 한국전쟁이 끝난 후 빨치산 잔당 토벌을 1963년에야 끝낼 수밖에 없었던 작전상의 어려움도 한 요인으로 제기됐을 것이다.

그런데 실상 이 도로의 개설 목적을 알게 되면 좀 아이로니컬해진다. 나아가 이 도로와 천은사~성삼재~달궁을 잇는 지금의 861번 도로가 같은 시기에 같은 목적으로 개설된 것이라고 하니 더더욱 그렇다. 즉 이들 도로가 착공된 때가 지리산 빨치산 토벌작전이 끝나 당국이 '완전 평정'을 공표한 1955년으로부터 무려 13년이 지난 1968년의 일이다. 당시 연동골에 소규모의 무장공비가 출현한 것이 계기가 되었단다. 신흥에서 화개재를 향해 6를 거슬러 오른 연동마을에 약초꾼을 가장한 이들이 나타나 보리 15말 등을 사려고 했는데 이를 수상히 여긴 주민의 신고로 무장공비의 존재가 처음 포착이 됐던 것이다. 그들의 출현이 지리산 척추를 파헤치는 군사작전도로 공사를 하게 만들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아주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결국 그렇게 시작한 공사가 197210월에 마쳤으니 그 구간이 신흥 ~ 마천 즉 하동군 화개면 범왕리의 신흥마을과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를 잇는 도로가 된 것이다. 이른바 벽소령 종단도로이다. 당시로는 실로 엄청난 대역사大役事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개통만 시켜놓고 이용하지를 않아 대성리 방향의 삼정마을 ~ 벽소령 구간은 차는 고사하고 사람도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 비록 지도에는 도로표시가 되어 있지만 그 기능을 상실한 지 이미 오래됐다.

 

그나마 지리 북쪽의 양정, 음정 주민들은 이 도로를 산간지대 경작이나 토봉土蜂 등에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다. 반면 지리 남쪽의 삼정마을 주민들에게는 신흥~삼정 약 7km의 거리 정도만 생활 편익에 이용되고 있을 정도다. 나아가 삼정삼거리에서 벽소령대피소로 오르는 지름길(4.1km)마저 1995. 9. 5.부터 영구 폐쇄되어 벽소령 종단도로는 이제는 서서히 자연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 졸저 전게서 438쪽

 

04:47

북부능선 갈림3거리입니다.

이곳의 고도는1023.1m

여기서 북부능선과 접속하는 곳이 1369.5m이니 340m 곧 서울 용마산 정도를 치고 올라가야 한다는 얘깁니다.

이정목에는 '연하천 대피소 3.2km'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대원들은 백두대간을 잇기 위해 벽소령대피소로 가고 저와 '홀가분' 대장님만 우틀합니다.

05:02

지루하게 돌계단을 오릅니다.

그러다 나타나는 휴게시설.

삼각고지 안전쉼터군요.

미량이나마 샘터도 있고.....

05:23

그러고는 지리북부능선에 접속합니다.

우틀하면 삼정산을 거쳐 실상사로 내려갈 수 있는 북부능선이지만 지금은 이렇게 굳게 닫혀 있습니다.

20분 정도 계속 올라 도착했군요.

좌틀합니다.

산죽 밭과 잡목 숲을 드나들다,

05:44

드디어 백두대간에 접속합니다.

그리고 이곳이 지리북부능선의 들머리이기도 합니다.

지리북부능선의 들머리는 삼각고지이다. 그 능선은 온전하게 경상남도와 전라북도를 구분하고 있는 산줄기이다. 즉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과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의 도계라는 얘기이다. 서쪽으로는 뱀사골과 와운골의 물을 달궁계곡의 만수천으로 합쳐 람천으로 흘려보내고 동쪽으로는 광대골과 무동계곡의 물을 덕전천이라는 이름으로 역시 람천으로 흘려보낸다. 그 람천 건너편에는 임천(연비)지맥을 마주하여 지맥의 삼봉산1186.7m에서 내려오는 금대암 줄기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으며 지리산 유람을 마친 점필재 김종직(1431~1492)이 등구재를 넘어 함양의 관아로 복귀하는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 전게서 490쪽

우틀하여 연하천대피소를 향합니다.

가는 도중 좌측으로 붉은기운을 느낍니다.

또 새로운 하루가 시작됩니다.

05:57

이제 좀 일어나셨나?

취사장에는 분주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산꾼들의 움직임으로 부산합니다.

연하천烟霞泉이라....

간간이 우측으로 빠질 수 있는 길이 보인다. 다 대성리의 빗점골로 내려갈 수 있는 길이다.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이 최후를 맞이한 그 빗점골이다. 다시는 민족의 비극이 재발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진행을 하다보면 긴 나무데크를 걷게 되고 그러고는 연하천대피소이다.

 

이 연하천 대피소의 연하천煙霞泉이라는 이름은 사실 지형이나 풍광과는 전혀 관계없는 그것이다. 단지 지리산지구 공비토벌 작전이 끝난 이듬해인 조금 전 얘기한 구례의 연하반 산악회의 작품에 불과하다. 즉 자연을 그리워하여 병을 얻었다는 뜻의 천석고황泉石膏肓과 같은 뜻의 연하고질煙霞痼疾에서 가지고 온 말인 연하반 산악회는 지리 주릉 종주 중 자신들이 발견한 샘물의 이름을 연하천이라고 했으며, 나아가 장터목을 가던 중 제석봉과 천왕봉을 한눈에 볼 수 있으며 오묘한 풍광을 보여주는 봉우리를 연하봉이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또 장터목에서 야영을 할 때 발굴한 샘물을 마침 같은 날 득녀를 한 대원의 딸에게 산희山姬라는 이름을 지어주면서 이 샘물도 산희샘이라 명명한 데서 연유한 것이다. 어쨌든 연하천 대피소의 물은 임걸령 샘물과 더불어 지리산에서는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는 곳으로 유명하다.

 

- 졸저 전게서 434쪽

 

백두산에서 시작된 백두대간의 큰 산줄기가 남쪽 바다의 푸른 물줄기가 그리워 남으로 남으로 힘차게 뻗다가 굽이쳐 흐르는 푸른 섬진강에 가로막혀 그 정기가 멈춰 우뚝 솟은 곳.

구례요 지리산입니다.

그리니 섬진강은 '왕의 강'입니다.

예로부터 연하烟霞는 산수 즉 자연을 이르는 말이고 보니 속진을 떠나서 한운야학閑雲野鶴을 벗삼아 아유양기雅遊養氣하는 이들을 연하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 분들의 모임이니 '연하반烟霞伴'이라 불러 그들이 자연과 짝을 하겠다 하는 취지가 읽혀집니다.

서두에 나온 개념도.

 그 연하반 산악회에서 1963년 제작한 그것입니다.

 

물맛 좋은 연하천의 물로 수통을 바꿉니다.

그러고는 올라서는 명선봉.

촛대봉에서 내려오는 시루봉이 보이고....

그 앞의 낙남정맥 위로 붉은 기운이 더 짙어졌습니다.

너무 서둘렀나요.

조급한 마음에 연신 셔터만 눌러댑니다.

06:25

1477봉 뒤로 화개단맥과 좌측의 왕시루봉 그리고 우측의 토끼봉이 살짝 모습을 드러내는군요.

06:35

그러고는 반야봉을 볼 수 있게 되고.....

묘향암도 보입니다.

"행님. 묘향암 호림스님 계실까요?"

"계시겠지. 왜?"

"스님이라 뵈러 갈까요?"

반야봉과 중봉 사이릐 깊은 골이 유난히 두드러집니다.

반야봉으로 오르기 위해서는 여기서 좌회전하여 한다. 주릉 종주를 할 경우 반야봉은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이다. “시간이 없다, 너무 된비알이다.”라는 핑계로 지리산 산행 목적을 망각해 버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수신앙의 중심지로서 반야봉이 가지고 있는 역할, 서부 지리산의 맹주로써 천왕봉과 대비하여 지리산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중량감, 천왕봉의 천왕이 우리 민족 신앙의 하느님이라고 한다면 반야봉의 반야는 어떠한 번뇌라도 깨뜨릴 수 있는 최고의 지혜를 뜻함 등을 고려해본다면 그냥 지나치기에는 정말 아쉬움이 큰 곳이다.

 

<사진 5> 반야봉에서의 일출.

 

이 반야봉에서 내려오는 기운이 두 갈레로 갈라져 하나는 노고단을 거쳐 차일능선을 타고 화엄사로 흐르고 다른 하나는 불무장등을 타고 내려가 연곡사와 칠불사로 흐른다고 하니 그 기운을 받기 위해서라도 반야봉은 꼭 들러야 할 곳이다.

그뿐인가! 저 반야는 불교적 의미 말고도 귀녀鬼女라는 뜻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반야봉은 흡사 여자의 봉긋하게 솟은 두 개의 젖무덤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다. 그 전설대로 하자면 지리산은 여신령이 폭넓은 치마를 펼치고 앉은 형상이 되었고, 그 수없이 많은 골짜기들은 그 치마의 주름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옛날부터 세상을 바로 잡으려던 사람들은 형편이 여의치 못하면 그때마다 이 산으로 밀려들어 그 최후를 마쳤던 것일까. 남도 땅에서는 제일 큰 산이고 더는 갈 데가 없는 마지막 산이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지리산 골짜기들은 피신처였으며 또한 무덤이었다. 무덤의 둥근 모양은 자궁을 상징하는 것이고 죽음은 태어났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는데.... 지리산의 여신령은 자궁을 많이 지니고 있어 의로운 사람들에게 죽음자리를 마련해 준 것인가.

 

화엄사와 연곡사 그리고 법계사를 창건한 연기조사가 마지막으로 용맹정진한 곳이 반야봉 북동쪽의 묘향암이라고 하니 설화가 아니라 역사의 한 장이라는 느낌이다. 야간 산행이나 야영이 금지된 요즈음 지리10경 중 하나인 반야낙조를 관찰하기란 그리 쉬워 보이지 않는다.

 

 - 전게서 429쪽

드디어 해가 떴습니다.

중앙 좌측이 천왕봉.

07:01

산꾼....

그리고 멋.

07:27

토끼봉을 오르면서 뒤를 돌아봅니다.

좌측 명선봉.

그 우측으로 삼각고지와 형제봉.

그리고 덕평봉.

"영신봉은 촛대봉에 가려 보이질 않네."

"그러면 저녁 때 와서 보세요."

"와! 천왕봉에 중봉..... 그리고 소년대와 영랑대. 행님. 또 가보고 싶네예"

"저 형제봉의 양쪽 바위가 사람 머리의 귀 같지 않아?  함양 방향에서 보면 더 그런 거 같던데....

벽소령에서 잠을 잔 산꾼들이 천왕봉 방향으로 진행할 때 저 오른쪽 귀에서 일출을 보곤하지.

누구의 사진 속에서도 그걸 확인했고...."

삼각고지를 지나면 암봉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조금 조심을 하면서 걷게 된다. 천왕봉 하부의 개천문 같은 곳을 지나면 예전의 비박굴 앞의 이정표는 이 봉우리의 큰 바위 두 개를 지칭해 형제바위라고 부르면서 전체를 묶어 형제봉이라고 한다. 이 바위는 옛날 지리산에서 수행을 하던 형제가 성불成佛한 후, 지리산녀의 유혹을 뿌리치려고 오랫동안 등을 맞대고 서 있다가 그대로 돌이 되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런데 국토지리정보원 지도를 보면 이 바위를 분명히 부자바위父子巖라고 표기해 놓았다. 그러면서도 봉우리 이름은 형제봉이라고 표기하였는데 어찌된 일인가? 부자바위가 있으면 부자봉父子峰이라고 불러야 하는 거 아닌가? 또한 성불을 하기 전이라면 몰라도 성불까지 한 다음에 무슨 지리산녀의 유혹에 형제의 의까지 끊으면서 돌까지 되었는지 스토리가 너무 작위적이다.

 

형제봉 이야기

더군다나 마천의 삼정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두 개의 바위가 마주보고 있는 이 봉우리를 형제봉이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은 부자암봉父子巖峰이라고 부르는데 지리산 '지도'와 산꾼들이 그 곳을 형제봉兄弟峰이라고 부르고 있어 이를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단다.

그들이 형제봉을 부자암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증거와 그 증거를 합리화 할 수 있는 자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산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그 산에 의지하여 사는 그 주변 마을의 주민 아니겠는가? 산 이름이라는 게 그런 거 아닌가? 그 산 주위의 주민들이 불러주던 이름이 그 산 이름으로 굳어지는 것.

 

삼정마을(양정, 음정, 하정)을 끼고 흐르는 광대골의 전래설화 나무꾼과 선녀에서 유래한 이야기인데 금강산의 얘기와 거의 같다. 다만 삼부자三父子는 날마다 지리산에 올라가서 하늘을 향해 돌아오지 않는 아내와 어미를 기다리다 화석이 되어버렸다는 얘기고 사람들은 화석이 되어버린 바위덩어리들을 부자바위라고 불렀단다. 특히 하정마을 사람들은 이 부자암을 기리기 위해 1976년에 석문암계라는 친목계를 조직을 해서 선녀와 나무꾼이 살았다는 부락의 계곡에 선유정이라는 정자를 세우고 매년 초복이면 전설속의 나무꾼인 인걸의 삼부자를 위해 제사를 올리고 있다고 한다.

 

- 졸저 전게서 434쪽

07:33

그러고느 토끼봉입니다.

저 안내판 뒤로 흐르는 능선이 토끼봉능선으로 칠불사와 연결이 됩니다.

화개재에서 나무 계단을 따라 이동하여 봉우리 두 개를 넘으면 토끼봉이다. 헬기장이 설치되어 있고 우측으로 출입금지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반야봉에서 볼 때 가장 정동쪽 즉 묘방(卯方)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칠불사로 바로 내려갈 수 있는 능선이다.

 

- 졸저 전게서 433쪽

섬진강 건너 호남정맥의 백운산과 도솔산은 그저 저런 모습으로만 보이고.....

좌측의 왕시루봉도...

아직까지 우측의 불무장등은 깨끗하게 보이기는 합니다.

우측 숲 안의 경상남도와 전라남도의 도계를 따르는 능선은 불무장등을 지나 당재에서 왼쪽으로 들면 칠불사로, 오른쪽으로 들면 연곡사로 각 진행을 하게 된다. 반야봉의 기운도 그렇게 흐른다고 한다. 그런데 그 길목에 있는 불무장등이라는 봉우리의 이름의 유래가 궁금하다.

 

 

불무장등이라는 지명은...

어떤 이들은 산의 모양 가지고 이름과 연결시켜 대장간의 화로인 '불무(풀무)와 같은 형상이라고 단정 짓기도 한다. 그래서 불무장등이라는 거다. 또 다른 이들은 보통은 不無長嶝이라고 써서 '우두머리 봉' 혹은 '높은 산' 정도로 보기도 하는데 그 의미도 선뜻 와 닿지 않는다.

산 이름은 그렇게 아무렇게나 막 지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는 이름이 있듯이 땅에도 이름 즉 지명이 있다. 사람은 이름이 있어 이를 통해 그 사람의 행적을 알 수 있듯이 지명은 그 땅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온 이들의 문화가 고스란히 배어 있다. 따라서 지명은 지역의 역사, 형상, 풍속, 의식, 도덕, 종교 등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 지명을 파악하는 것은 그 지역의 역사를 아는 것과 같다 할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오래 흐르면 처음 부를 때와는 전혀 다른 뜻을 가진 이름으로 변해 있어 엉뚱한 의미로 불리는 경우도 왕왕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우리 고유 글이 없다가 한자가 들어오면서 한자식으로 발음을 하다가 다시 한글 이름으로 바뀌었고 그걸 일제강점기 때 그들의 편의대로 일본식 한자로 바꾼 경우도 많아 정확한 뜻을 알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살펴보자. 사실 지리산 자체가 승도僧都 혹은 불도佛都라고 하였으니 불교 용어와 관련지어 본다. '불무'라는 발음에 주의한다. 지리의 서쪽을 책임지는 제1봉이 반야봉이다. 이 반야봉이 지리산에서 갖는 지위를 느껴보기 위해 반야봉으로 올라보면 더 확실해진다. 대저 반야는 지혜요 문수를 일컫는다 했다. 화엄사와 연곡사 등을 개창하였다는 연기조사鷰起祖師는 문수보살을 원불로 삼았다. 그래서 이 화엄사가 있는 산 이름도 대지문수사리보살大智文殊師利菩薩의 이름을 따서 智利山이라 부르게 되었고 문수보살은 보살 중에서 상수에 있는 보살이어서 특히 그 보살이 계시는 산을 청량산淸凉山이라 부르니 이 지리산의 또 다른 이름은 청량산이라는 것도 둘레길 제14구간에서 이미 살펴봤다.

 

어쨌든 이 반야般若라는 말은 불가에서 말하는 깨달음과 참모습을 아는 최고의 지혜을 뜻하니 이 반야봉이 불모佛母 혹은 절집을 뜻하는 불묘佛廟였다는 얘기다. 그러니 이 반야봉의 기를 받아서 내려가는 줄기 즉 이 긴 능선의 이름은 '반야장' 그리고 그 능선 중의 첫 봉우리이니만큼 '반야장등'이라고 써야 맞을 것 같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반야봉''반야장등''반야'가 중복이 되는데 지명에서는 가급적 이런 중복 현상을 피해야 한다. 그래서 반야의 다른 이름인 '불모'를 썼고 '불모장등'이라 이름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불모장등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음운변화를 일으켜 '불무장등'이 되었다는 것이다. 즉 그 '불모'란 발음이 '불무'가 된 것이다. 이럴 경우 반야봉에서 내려오는 기가 날라리봉에서 능선을 타고 내려와 불무장등 ~ 황장산을 지나 섬진강과 화개천이 만나는 합수점으로 뻗치는 길고 큰 줄기(長嶝)가 된다는 지리 99의 주장이 상당히 설득력 있게 들린다. 역시 지리산하면 지리 99’팀의 연구가 돋보인다.

 

- 졸저 전게서 431쪽

좌측 노고단.....

반야봉에서의 노고단 님의 어젯밤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바람도 없었고 별이 그렇게도 많았으니....

더군다나 나두야남과 통통천사님이 동행을 하셨으니....

뒤풀이 때 들은 얘기인데....

통통천사님은 동생이 저를 아는 것에 대해서 깜짝 놀랐다고 하시는군요

지리산 한 자락에서 '하늘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당신의 동생분이 저를 아신다고 하니....

지리산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07:56

화개재로 떨어집니다.

멋진 사나이....

오늘 홀대장님이 저와 동행하느라 다른 대원들은 묵언수행(?)을 하여야 했다니....

죄송합니다.

홀대장님을 빼앗아서.....

07:57

연동골 가는 길.

아까 벽소령 종단도로를 얘기할 때 나오던 연동골.

그 연동골입니다.

08:14

연동골은 범왕골과 합쳐져 화개천이 되어 섬진강으로 합류하게 되겠죠. 

08:19

그러고는 날라리봉입니다.

지금은 삼도봉이라고 부르죠.

여기서 좀 더 진행을 하자. 그러면 이름도 재미있는 날라리봉’1501m이다. 어감이 좀 좋지 않았나? 공원관리공단에서는 경상남도, 전라남도, 전라북도 등 삼 개 도가 만나는 곳이라 하여 1990년대 초 삼도봉으로 개명을 했다. 실은 이 봉우리가 낫의 날같이 뾰족하다고 하여 낫날봉이었다. 그게 시간이 흐르면서 음운이 변하여 날라리봉으로 되었던 것인데 애꿎게 이름만 나무란 꼴이다.

여기서 팁 하나 더! 우리나라 백두대간에는 세 개의 삼도봉이 있다. 그 셋 중 하나가 이 삼도봉이며 다른 하나는 경상남도 거창군과 전라북도 무주군 그리고 경상북도 김천시 등 세 개의 도가 만나는 초점산1249.1m이라는 이명을 가진 봉우리이고, 마지막 하나가 전라북도 무주군과 경상북도 김천시 그리고 충청북도 영동군 등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가 만나는 민주지산 바로 옆의 삼도봉1177.7m이다.

 

이 삼도봉에서 남동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시원스럽게 뻗은 줄기에 불무장등 능선이 보인다. 우측으로는 반야봉이 지척이므로 수고스럽지만 잠시 반야봉1732.1m으로 오른다. 왕복 2km 정도의 거리이므로 그다지 부담스럽지도 않다. 반야낙조는 또 지리10경 중 하나다. 여기서 지리의 낙조를 바라 본 경험이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자랑거리다.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64쪽

불무장등....

그 좌측은 황장산 우측은 왕시루봉.

좌측 뒤는 지리남부능선.

그 너머의 호남정맥은 이제 완전히 자취를 감췄고....

반야봉.

그리고 반야봉에서 흘러내리는 노고단.

좌측으로는 형제보와 월령봉으로 이어지고...

대간길은 그 너머로 진행합니다.

08:28

호림스님을 뵙고 싶다고 하시고 마침 스님도 계신다고 하니.....

문수신앙의 성지인 반야봉의 묘향암으로 가는 길은 온전하게 반야봉을 사면치기로 진행합니다.

우측 토끼봉.

멀리 천왕봉이 보이는군요.

이끼와 주목.....

그리고 노란색깔 지붕의 묘향암.

그 묘향암이 가장 잘 보이는 방위에서 보면 천왕봉도 볼 수있습니다.

추억의 골목.

지리 물맛 제1호.

석간수.

09:06

묘향암에서는,

천왕봉을 볼 수 있습니다.

강아지 두 마리가 생겼군요.

얘들 밥을 어이할고!

채털리 부인을 모셔와야 하나....

불공을 마친 스님을 뵙고 ...

부처님께 절을 드리고...

밥을 먹고 가라는 스님 말씀에 시간상.....

20분 정도 머무르다 바로 반야봉으로 오릅니다.

10:19

앞이 중봉 뒤가 반야봉.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반대로 되어 있죠?

10:33

연안김씨 묘.

이상합니다.

좀 돌긴 했지만 묘향암에서 중봉까지 1시간이나 걸리다니....

심마니능선 가는 길....

앞 중앙이 명선봉.

그리고 천왕봉.

구름이 천왕봉을 넘으려 안간힘을 쓰지만....

10:45

그러고는 반야봉입니다.

중봉에서 보던 구름.

결국 천왕봉을 넘지 못하고 퇴각하고 마는군요.

불무장등과 황장산은 이렇게....

노고단과 성삼재 그리고 고리봉도 이렇게....

노고단 우측, 성삼재 위의 툭 튀어나온 게 종석대.

아!

만복대.....

우측으로 자리를 옮겨...

임걸령1347.4m, 1411.6봉 그리고 노고단.....

10분 정도 머무르다 내려갑니다.

그런데 계단에서 벽소령으로 떠났던 대원들을 다시 만납니다.

지리산이 좋아 '지리산'이라는 닉을 쓰시는 분. 

11:08

반양삼거리를 지나,

11:12

노루목에서 다시 대간길에 접속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반야봉이 대간에서 제외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옛 문헌을 보면 반야봉이 대간의 끝이라고 본 것도 있으니 말입니다.

곧 지리산 = 반야봉이었던 시절이 있었다는 얘기죠.

걸음을 빨리하여 내려온다. 반야봉에서 내려오는 산줄기를 만나는 곳에 노루목이라는 이정목이 붙어있다. 이는 노루가 머리를 치켜들고 피아골을 내려다보는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하여 노루목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럴까? 우리나라에는 노루목이라는 이름을 가진 곳이 여럿 있다. 설악동에서 비선대 올라가는 곳. 포천, 안성, 진주 등 우리나라 곳곳에 퍼져 있다. 어떤 국어사전에는 노루가 자주 다니는 길목이라고까지 친절하게 설명도 해 놓았다. 그런데 어떤 곳 지명을 보면 한자로 노루 장()자에 목 항()를 써서 장항(獐項)이라고까지 표기한 곳이 눈에 띈다. 그런 곳의 지형은 어떻게 생겼을까? 노루가 다닐만한 곳도 아닌 곳 같은데... 사실 여기서 노루의 뜻은 늘어진 땅곧 산에서 들로 길게 뾰족하게 나온 땅의 모양인 에서 발음이 비슷한 훈()을 가진 누를 황()’이 나왔고, 역시 발음이 비슷한 노루 장()’이 나왔다고 한다. 거기에 실제 노루는 목이 긴 짐승이니 너른 들이나 산에서 내려오는 좁은 지역을 일컫기에 노루목만큼 좋은 단어는 없었으리라. 그걸 다시 한자어로 표기하니까 장항(獐項)이 된 것이란다. 이참에 고양시의 장항동이나 고구려부터 내려온 안산의 옛 이름이 장항구(獐項口)였음을 떠올릴 수 있다면 그 이름들이 다 그 생김새와 관련이 있음을 이해할 수 있겠다.

 

- 졸저 전게서 64쪽

이해할 수 없는 표기.

도대체 임걸령 쉼터는 무슨 말인지....

 

11:35

임걸령 샘터를 지나고,

11:44

피아골 삼거리도 지납니다.

길상봉이라고도 불렸던 노고단.

돼지평전을 지나면서,

부족하나마 가을의 정취를 느낍니다.

12:00

돼지령

저연으로 내려가는 곳.

12:11

아까와 또 다른 노고단.

12:19

노고단으로 바로 오를 수 있는 오리지널 대간길.

그 입구에 비목이 세워져 있습니다.

오르다 좌틀하면 왕시루봉으로도 갈 수 있고....

지루한 돌길을 걸어,

12:39

노고단 고개로 오릅니다.

동절기에는 통제시간이 11:00이라고 하니 당일치기 산행은 어렵겠습니다.

일행을 놓친 아줌마는 어이할고!

12:49

노고단 대피소 돌계단 방향을 버리고 순한 길을 따라 내려가다....

우측 종석대에서 갈라진 차일봉과 화엄사골.

그 끝의 종석대.

오리지널 대간길입니다.

노고단 ~ 성삼재는 일반등로를 버리고 대간길로 진행합니다.

필수적으로 건너야 하는 물길인 무넹기.

연하반 산악회의 개념도에는 다른 곳으로 표기되어 있죠.

그런데 갑자기 장감독이 큰소리를 친다.

형 지금 이 길이 백두대간 능선이잖아! 그런데 왜 이 물은 능선을 따라 흐르다 왜 우측 만수천 쪽으로 안 가고 화엄사 쪽으로 가는 거야! 거긴 섬진강으로 가는 방향이잖아.”

그렇다. 다리를 건너 성삼재로 향하다보면 코재 바로 전에 왼쪽으로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흐르는 물줄기가 있다. 이 물은 분명 노고단에서 내려오는 물이다. 그리고 이 물은 장감독이 지적하듯 만수천으로 가야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산자분수령의 예외란 말인가?

 

미리 얘기하자면 이 물은 노고단 물이 맞고 이 수로는 인공수로이다. 예전 화엄사 부근 그러니까 구례의 들에 가뭄으로 인해 물이 부족할 때가 있었다. 그때 이 노고단의 풍부한 물을 화엄사 쪽으로 넘겨주기 위해 인공 수로 하나를 만들었다 그게 바로 이 수로이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물을 넘겨주었다.’고 하여 무넹기이다. 그리고 이 물은 낙동강이 아닌 족보에도 없는 섬진강으로 가게 된다. 따라서 이는 인공수로이므로 산자분수령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도 아니다.

 

- 졸저 전게서 70쪽

밤에 화엄사 ~ 코재를 오르면 아주 시끄럽게 흐르던 물줄기죠.

13:03

화엄사로 내려가는 길.

그러니까 이곳이 코재입니다.

화엄사골.

좌측이 형제봉능선.

우측이 차일봉능선.

지리10대 중 하나인 우번대로 가는 길.

우번암으로 스님을 만나러 갑니다.

그 길은 곧 오리지널 대간길이기도 합니다.

꽃길만 가렵니다.

아!

종석대鐘石臺.

관세음보사롸 우번스님의 전설이 서려있죠.

뒤를 돌아 노고단을 아쉬움에 보내고....

13:23

종석대 정상에 본 차일봉능선.

작은 종석대.

그 좌측으로 간미봉과 지초봉 능선.

작은 종석대 우측으로는 백두대간길의 고리봉.

간식을 먹고 다시 출발합니다.

좌측 반야와 우측 노고단. 

파란색 지붕의 우번암.

그리고 연동골과 관련된 861번 도로.

작은 종석대에서 가지를 친 간미봉능선의 지초봉이 더 높게 보이는군요.

성삼재 지나 고리봉과 만복대의 대간길.

조금 서두릅니다.

이제 작은 종석대도 코앞입니다.

이제 겨우 가을의 정취를 느낍니다.

케른을 지나,

작은 종석대 정상에 섭니다.

13:49

1222봉에서 우측 능선을 탑니다.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기 위함입니다.

14:05

정확하게 후미대원들과 만나게 되는군요.

동행한 홀대장님.

오늘 하루 즐거우셨습니까?

이제 오리지널 대간길을 거의 마무리 지어가시니 뿌듯하시겠습니다.

다음엔 설악의 신선대 1봉 ~ 3봉으로 가시죠.

자일을 준비해서.....

구례로 이동해서 맛있는뒤풀이를 즐기고 귀가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