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고 사랑하는 후배 푸우님과 내대로님과의 백두대간 이어걷기는 이번 주도 계속 됩니다.
end-to-end 방식이죠?
복잡한 설명은 나중에 방송으로 대체하고 여기서는 간단하게 사진 설명으로 갈음하기로 합니다.
여원재에서 고남 님과 권수복님을 만나 권포리 가동마을로 들어갑니다.
차에서 내려 눈앞에 펼쳐지는 서부 지리와 북부지리를 봅니다.
좌측이 임천지맥의 삼봉산이고 중앙이 지리서부능선의 덕두산과 바래봉입니다.
어제(2020. 2. 28.) 비가 왔으니 오늘은 미세먼지가 좀 가신 거 같습니다.
자, 올라갑니다.
참.
저는 동영상 촬영을 하느라 사진을 찍지 못해 사진 전부는 푸우님과 내대로님이 수고해 주신 걸 옮겨 해설합니다.
지리산은 봄입니다.
도룡뇽이 막 부화를 하고 있군요.
섬세한 푸우님....
일단 대간 주릉에 올라섰습니다.
지난 주 지나온 방아산성을 감상하고....
안타까운 동학군들의 모습을 상상합니다.
박경리의 소설 토지와도 연관시켜 보고...
만복대에서 우측으로 이어지는 서시지맥 줄기를 봅니다.
서시지맥이 아니고 서불지맥이었어야 했죠?
앞치마 같은 것을 얘기하는 슬갑불市을 시장할 때의 市로 잘못 독음한 결과입니다.
그 서시지맥의 두 번째 봉우리인 1109.3봉에서 알으로 나오는 능선이 바로 원백두대간이죠?
구룡폭포와 하천쟁탈, 두부침식 그리고 곡중분수계 등과 연관지어 생각하여야 합니다.
이럴 때 써먹는 말,
대간은 생물生物이다!
오늘은 5명이 걷는 대식구입니다.
남원땅을 봅니다.
풍수지리상 남원은 배로 봅니다.
우측 교룡산이 돛대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하고 요천 너머 요천지맥의 좌측 봉우리인 고리봉이 선수를 매어놓는 형상으로 파악한다는 것이죠.
오늘 서시지맥과 저 요천지맥 그리고 임천지맥 등 세 개의 지맥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저 고리봉은 말 그대로 한자로 쓰면 環峰이라하여 오리지널 고리라는 의미이지만 만복대 부근에서 보았던 고리봉은 高里峰이라 쓰니 그 의미는 상당히 다릅니다.
즉 이 고리봉은 그저 높은 산이라는 의미라는 얘깁니다.
동학군이 이 가파른 곳을 올라왔으니 민보군과 수성군의 연합군에 이길 방법은 거의 없었다는 것이죠.
고남삼으로 올라섭니다.
고리봉 좌측으로 보이는 무등산.
바로 아래로는 88고속도로가 지나고....
19번 도로와 요천도 보이지만 좌측의 부동마을은 여기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부동마을은?
동학군이 집결해 있던 곳이죠.
운봉땅이 고원임을 보여주는 그림.
아니 이 정도면 그저 분지라고 보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운해가 깔렸습니다.
두류전지에는 이렇게 써 있죠?
"그래서 운봉雲峰이다!"
지리 주릉의 묘봉妙峰과 세걸산이 겹쳐보이고 그 우측으로는 반야가 뭉툭합니다.
큰고리봉 즉 두리봉頭里峰과 만복대의 설경도 멋집니다.
아래는 비, 위에는 눈이 왔다는 말씀이렸다!
이번에는 좌측으로 요천의 발원지인 장안산과 무령고개가 보이고 ..
그 앞의 속금산과 우측 뾰족한 백운산과 그 옆의 서래봉 그리고 그 우측으로 대봉산과 천왕봉이 보입니다.
이 천왕봉은 대봉산의 천왕봉입니다.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서 얘기하는 천왕봉과는 위치가 좀 다르죠?
그 앞의 봉화산에서 우측으로 가지를 치는 임천지맥을 읽을 수 있는지....
우측으로 고개를 돌리니 그 임천지맥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좌측 안테나 바로 뒤로 뾰족한 봉우리가 연비산.
그리고 그 우측이 오봉산이니 우측으로 24번 도로의 팔량재를 지나 삼봉산으로 올라가는 흐름이 힘찹니다.
그러니 그 앞에 좌측으로 구름을 앉고 있는 봉우리가 조금 이따 진행할 바로 그 황산입니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있게 한 바로 그 황산입니다.
임천지맥의 삼봉산.
그 우측으로 지리산 천왕봉에서 흘러내린 와불산 줄기도 볼 수있고...
그리고 그 우측으로 눈을 돌리면 바래봉 바로 뒤에 천왕봉이 보입니다.
고남산.
지리서부와 주릉을 한꺼번에 볼 수있는 곳입니다.
고남형이 자신의 닉을 이 산에서 가져온 이유이기도 합니다.
파노라마로 잡았습니다.
좌측 멀리 보이는 게 전주의 모악산 같습니다.
이번에는 지리로....
반야봉에서 이리로 오는 대간길이 명백합니다.
그렇죠?
아름다운 강산이라는 노래가 절로 나옵니다.
아무래도 신중현이 꾸린 그룹 '더 맨'으로 듣는 게 나을 성 싶습니다.
신중현 선생이 혹 이 그림을 보고 지은 곡은 아닐까요?
방아산성 ~ 여원재 ~ 주지암봉 ~ 수정봉 ~ 두리봉 ~ 만복대......
그런 곳을 볼 수 있는 고남산입니다.
기념 촬영.
통안재에서 해밀의 흔적을 봅니다.
비온 뒤의 맑개 갠 하늘.
해밀입니다.
자년 이맘 때 출정식을 갖고는 븉여놓은 안내판.
요즘 답답하시죠?
건강한 몸으로 '코로나19'를 이겨냅시다.
698.8봉의 폐삼각점.
매요마을 입구의 농장.
아주 중요한 고개입니다.
이 부분부터의 설명은 따로 보기로 합니다.
그저 여기서는 건성으로 지납니다.
즉 매요마을을 통과하는 게 아니라 그 마을을 우측으로 두고 오리지널 대간길로 간다는 것이죠.
지나온 고남산.
508.1봉에서 우틀하여,
매요교회 앞으로 나옵니다.
교회 우측이 오리지널 대간길.
일반적으로 걷는 매요마을의 매요휴게소.
할머니는 여전하시고....
저와 고남님은 사면치기로 유치3거리를 향하고....
저 유치3거리에서 좌측으로 대간길로 듭니다.
625.3봉.
서래야님은 산이름 짓는 분으로 유명한 소위 '뽕따먹기 선수'이신데 오늘 코팅지는 엉뚱한 곳에 붙여 놓으셨군요.
여기가 시리봉이라니....
조금 더 가셨어야...
사치재 넘어 새맥이재 다음이 시리봉777.7m 아닙니까?
김해허씨 음택을 지납니다.
주지하다시피 김해 허씨는 김수로왕과 하황후의 자손이니 이 일대가 예전 가야국이 존재했다는 확실한 사실史實을 반증해 주는 건가요?
간단한 농을 던지고 지납니다.
이제 대간길을 벗어나 방현을 향합니다.
정면으로 보이는 황산을 답사하기 위함입니다.
복성이재까지 갔으면 좋으련만 우리 주행 속도로는 ....
운봉배수지를 지나,
88고속도로가지나는 지리산 휴게소 뒤로 대간길을 조망합니다.
좌측 692.5봉에서 우측 새맥이재 그리고 그 우측의 시리봉을 봅니다.
시리봉은 댜간길에서 살짝 벗어난 봉우리입니다.
여름에는 잡목때문에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니 다음 구간에는 꼭 들러야 하겠습니다.
삼각점도 있으니....
명석재를 지납니다.
황산에서 바로 내려오는 줄기를 볼 수 있으나 소로는 좌측 능선으로 따라 오르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길은 물길을 건너야 하죠.
황산의 가파른 경사를 피해 우회하게끔 만들어 놓은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 산줄기를 인삼포를 만들기 위해 다 갈아 엎었습니다.
임삼포를 우회하여,
물줄기의 시원을 확인한 다음,
그나마 나은 길을 따릅니다.
여름에는 지나기 힘듭니다.
황산과 정봉을 잇는 능선에 오르니 지리산둘레길제2구간이 지나는 옥계저수지가 보이고....
그 뒤가 덕두산이고 그 우측이 바래봉입니다.
아!
드디어 임진왜란 당시 왜구가 운봉땅을 넘어오지 못하게 지키던 조경남의 팔량재가 임천지맥의 좌측 오봉산과 우측 삼봉산을 나누고 있습니다.
바로 아래가 정봉이죠.
정상석 촬영을 하고....
이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이성계는 역성혁명의 전기를 마련하게 되었던 것이죠.
물론 이때 고려군은 기마병 위주의 여진족, 몽골족으로 이루어진 부대였는데 그 기반은 우리 민족에게 흐르는 신궁의 DNA였습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활을 잘 쏘는 사람을 일컬어 부여말로 朱蒙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주몽은 곧 다른 말로 弓裔가 되었으니 이성계와 이지란의 합작품인 아지발도 사살 얘기는 그야말로 작품입니다.
이성계의 신기에 가까운 활솜씨는 작은 새를 잡는데 쓰는 화살인 고도리古刀里로 처마를 지나는 생쥐를 맞혀 떨어뜨리긴 하지만 상하게 하지 않았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이니...
이 황산에 진을 티고는 전주를 무찌르고 개경으로 향하겠다고 공언을 하던 어린 아지발도의 기개를 볼 수 있을 것 같굽요.
사방을 관측할 수 있는 아주 훌륭한 곳입니다.
여기서 패한 왜군 7~8명은 뱀사골로 들어가 화개재~ 영신사~ 천왕봉 ~ 법계서를 거쳐 일본으로 도망갔나요?
그들은 영신사와 천왕봉의 성모사 그리고 법계사에 들러 온갖 만행을 저지르고 갔으니.....
4등급삼각점(운봉407)을 확인합니다.
조금 지나온 단맥길.....
운봉고원....
하산길에 국악의 전당을 들릅니다.
명창들을 모신 곳....
득음굴得音窟.
가왕 송흥록 생가.
파비각破碑閣.
선조8년인 1575년 전라도 관찰사 박계현은 운봉 동쪽 16리 되는 곳에 이성계의 이 황산대첩을 기념하는 비를 세우는데 글은 대제학 김귀영이 썼습니다.
이 전투로 이성계는 온나라 안에 그의 무명武名 날리게 되죠.
다산 정약용은 이 비를 읽고 讀荒山大捷碑라는 시를 남겼습니다.
" 이 거사로 한밤중 골짝에 있던 배 이미 자리 옮겨 위화도 회군할 때를 기다릴 필요도 없었도다!"
다산은 대첩비 발문에서 "이 승리는 신무神武로써 이긴 것이지 인력으로 이긴 것이 아니다."라고 까지 얘기했죠.
그런데 일본놈들은 일제강점기 때 반시국적인 고적을 파괴한다는 명목으로 이 비를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했던 것이죠.
1945. 1. 17.의 일이었습니다.
그 대첩비를 모조품으로 복원한 것.
1902년 겨울 고토분지로도 이곳을 지나면서 이 대첩비를 보았습니다.
어휘각.
운봉대첩이라고도 불리는 황산대첩은 나 이성계 혼자만의 힘이 아니었고 찹전한 모두의 공이었다는 8장수 4종사의 이름을 적은 것인데 이 역시 같은 날 정으로 쪼아 버렸으니....
속좁은 일본놈들....
황산을 보면서 오늘 일정을 마무리합니다.
오늘 뒷풀이를 책임져 주신 권수복 선배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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