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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백두대간4

얌체 짓을 하더라도 염치껏 해야지.....

솔직히 너무 부러웠습니다.

거창군 환종주를 2주 뒤로 미룬 후라 더더욱 부러웠던 것이죠.

사실 눈만 온다는 예보였으면 저희도 진행을 했을 것인데 눈에 이어 비까지 온다 하니........

대간 팀 동정이 궁금했습니다.

대관령은 폭설이고 더군다나 능경봉 오르기가 쉽지 않을 텐데....

이한검 대장님은 닭목령으로 가서 역으로 진행을 하자고 꾀고 있고...

이때 세븐님으로부터 메시지가 날아옵니다.

폭설로 대관령 진행이 어려워 하늘재로 방향을 바꿨노라고....

그러고는 하늘재에서 행사를 마치고 제3관문으로 하산을 한다고....

영 회장님의 탁월한 선택!

역시 백두대간 짬밥이 괜히 있는 게 아닙니다.

 

하늘재의 눈 맛은 어땠을까?

사진이 기다려졌습니다.

그러고는 차곡차곡 올라오는 사진들.....

너무 부러웠습니다.

일하다가도 눈이 생각 나 자꾸 해밀 카페로 들어가 이 사진 저 사진 드래그하기 바쁩니다.

그나저나 저 눈은 언제나 녹을까?

그래도 한 일주일 정도는 가지 않을까?

눈이 좀 있더라도 해밀팀이 다 다져놓아서 진행에 문제는 전혀 없을 것이고....

얌체 짓 좀 할까?

 

수요일 잔무를 다 정리하고 모든 일정은 금요일로 잡습니다.

마침 사무실 후배들이 족발을 먹으러 가자고 하네요.

2차까지 마무리 하고 집에 오니 시간은 훌쩍 11시를 넘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니 4시 반.

갈까 말까 또 요령을 피웁니다.

에이 모르겠다.

동서울 터미널에서 출발하는 06:30 문경행 버스에 오릅니다.

피곤했었나?

눈을 뜨니 버스는 연풍을 지나고 있습니다.

예전 백두대간을 홀로 진행할 때 저 동네 여관에서 자고 새벽에 택시를 불러 버리미기재까지 가서 대야산에 올랐었는데...

문경 터미널에 도착하니 08:15.

15분 정도 빨리 도착했습니다.

그렇다면?

운 좋게도 08:20 포암행 버스를 탈 수 있게 됐습니다.

예전에도 이 버스를 이용해 포암산으로 올라 벌재까지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여하튼 택시비 20,000원도 벌고 버스를 타고 천천히 주변도 들러보면서 가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귀경 버스는?

아니 이건 또 뭐야?

14:50 다음 차가 17:50이라니!

그 중간에 버스는 없다는 얘기?

그러면 산행 시간에 차질이 생기겠습니다.

해밀과 똑같은 코스로 걸으려 했던 오늘 산행에 지장이 생겼습니다.

'아무렴 어때? 눈만 보고 오면 되는데..... 중간에 내려와도 되고....'

버스는 30분 정도 달려 포암에 도착합니다.

조금 걸어 올라가야죠.

수준점을 봅니다.

이곳이 455.7m

상당한 고지입니다.

우측으로 포암산이 올려다 보이는데...

이따 더 확실하게 볼 수 있을 겁니다.

하늘재 옛길 조성 중이라는데....

예전에도 산신각이 있었나?

백두대간을 처음 연 고개가 바로 이 하늘재라는 취지의 글이 잔뜩 쓰여 있습니다.

 

백두대간이 처음 열린 고개가 바로 이 하늘재다. 기록에 의하면 삼국이 제대로 정립이 되기 전인 AD156년 신라 아달라 이사금이 북진 즉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기 위해 개척한 고개가 바로 여기라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이 하늘재가 열린 뒤 2년이 지나 비로소 죽령도 열리게 됐다. 후에 이 하늘재 길을 마의태자가 지났음도 기억하자. 새롭게 깨끗이 정비된 이곳에는 계립령 유허비가 있고 우측으로는 하늘재 산장도 있다. 하늘재는 계립령, 대원령, 지릅재 등으로 불렸다. 계립령은 산경표에 등장하는 이름이다. 대동여지도에도 계립령이라 표기되어 있다. 대원령(大院嶺)은 불교국가인 고려와 연관을 시켜야 한다. 즉 고려시대에 들어와 미륵중원사지 옆에 큰 원(院)을 두어 오가는 이들의 숙박 시설로 이용하였다. 그러니 대원(大院)이고 이를 한글로 표기하니 한울이었다. 그 한울이 있는 고개이니 한울령 혹은 한울재가 되었고 그 '한울재'가 음운변화를 일으켜 하늘재가 되었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겠다.

 

이 하늘재를 중심으로 충주 쪽은 미륵리, 문경 쪽은 관음리라는 지명이 불교 냄새가 솔솔 나게 한다. 곧 관음리가 현세의 관세음보살의 세계라고 한다면 미륵리는 미래의 미륵불의 정토를 떠올리게 한다. 즉 하늘재는 현세와 미래의 경계인 셈이다. 참 교묘하고도 절묘한 지명이다. 마찬가지로 분수령인 이 하늘재의 좌측으로 흐르는 빗방울은 달천이 되어 남한강으로 흘러 서해로 가게 되고 반면 우측으로 떨어진 빗방울은 신북천이 되어 낙동강으로 가서는 남해로 가게 되니 실로 종이 한 장 차이로 그 물의 운명이 뒤바뀌게 되는 것이다.

 

신라에 의하여 개척된 이 하늘재는 남진정책을 쓴 고구려 광개토대왕 당시 고구려와 신라의 국경선이 됐다. 자연스럽게 백두대간 라인이 삼국의 국경이 된 것이다. 고구려 사람으로는 온달장군과 연개소문이 이 하늘재 이야기에 동원이 되며 고려 사람으로는 동화원을 얘기할 때 잠시 언급했듯이 단연 공민왕이다. 1362년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봉화 청량산으로 갈 때 이 길을 이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공민왕의 흔적은 황장산의 작성(鵲城)에도 나오며 낙동정맥으로 가서는 울진에도 나온다.

 

  -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271쪽 이하

 

하늘재 산장이 있던 자리는 깨끗하게 정비됐습니다.

아쉽게도 이제는 하늘재 산장을 볼 수가 없게 됐습니다.

저와 같은 이름을 쓰는 산장지기는 어디 가셨을까?

표지석도 이제는 제자리를 찾았고......

계단 위 광장에 있던 것이 이 아래로 이사를 오셨네요.

당연히 그러셔야죠.

이제 이 자리에서 오래오래 계십시오.

우측은 하늘샘을 거쳐 포암산으로 오르는 길.

저는 좌측으로 갑니다.

그런데 눈이라고는 눈을 아무리 씻고 봐도 보이질 않습니다.

겨우 이 정도!

산에도 보이질 않으니...

완전히 속은 기분이 듭니다.

모래산?

누가 지은 이름인가요?

이런 식으로 이름을 막 지으면 안 되겠죠!!!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다른 곳도 아닌 이 백두대간에 설마 하니 함부로 산 이름을 막 지어서 이런 곳에 붙여놨을라고요!

생각건대 이런 이름들은 보통 예전부터 있던 이름인데 그 이름이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하다 보니 지금은 원래의 뜻과는 다르게 느껴지게 되는 것이겠죠.

 

원래 '몰'이라는 말은 '산山'이었습니다.

이 '몰'에서 '뫼'로 변형이 되어 지금 쓰이고 있는 말이 된 것이죠.

즉 몰>모리>모이>뫼의 과정을 거쳤다는 것이죠.

그러니 여기서 '몰+안'이 되어 산의 안쪽 즉 모란이 되어 모란시장이라는 말도 자리 잡게 된 것이죠.

이곳의 모래산도 결국'몰+안'의 언어학적 방식으로 이해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결국 '몰'이 '모래'가 되어 원래의 형태를 알 수가 없으니 뒤에 산이라는 단어를 붙여  '산+산'의 형태가 되었으나 이는 수리봉과 같은 의미라는 것을 알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흙이 좀 있다고 해서 그렇게 지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오해 없으시길....

예전 그대로 있는 망실된 삼각점.

눈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북쪽 사면으로는 조금 남아 있는데 나무에는 전혀....

멀리 포암산을 봅니다.

우측으로 뾰족한 1034.3봉은 보이지만 대미산은.....

이 1034.3봉이 중요하죠.

대간을 할 때 보면 바위봉으로 상당히 미끄러운 곳입니다.

포암산 좌측으로는 만수봉 984.6m이 보이고 이런 날씨 속에서도 좌측 끝으로 월악산까지 조망이 됩니다.

집채만 한 바위를 우측으로 우회합니다.

좌측으로 평천리를 사이에 두고 주흘산 라인이 보입니다.

'아름다운강산' 정병훈 선생님.

안주인이신 하문자 여사님과 77살의 연세인 지금까지 백두대간 19회의 그 누구도 못 깰 기록을 당신께서 스스로 계속 경신 중이십니다.

원래 주흘산하면 좌측의 1079봉을 얘기하지만 가운데 봉우리가 1108.4m로 조금 저 높은 관계로 이 봉우리를 영봉이라 하여 주흘산 대접을 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높이보다는 생김새와 문경의 주산 역할을 저 1079봉이 하고 있음을 볼 때 글쎄요.....

우측 끝의 밋밋하게 올라와서 멎은 곳이 이 대간의 961.1봉으로 대간길에서 주흘산 라인을 가지 치게 하는 봉우리입니다.

날씨는 흐리지만 대간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곳입니다.

탄항산이라....

한자로는 炭項山이라 씁니다.

무슨 뜻일까요?

우리 옛말에 신神이나 그 정도에 버금가는 존귀하고 높은 존재를 아래 아자를 써서 'ㄱ·ㅁ'이라는 말을 썼었죠.

곧 '신성神聖' 자체를 뜻하는 의미죠.

그런데 이 단어가 세월이 흐르면서 지역에 따라 다른 발음을 가진 단어들로 변형이 되었습니다.

감, 검, 곰, 굼, 고마, 구마, 가마, 개마, 거북, 감악 등이 그 예인데, 일본어에서 신을 '가미'나 곰熊을 뜻하는 '구마'도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말이라고 합니다.

현재 우리가 쓰는 '감사하다'나 '고맙다' 등도 이 잔재라 하고.....

단국 왕검의 검도 여기서 나온 말이겠고.....

 

그런데 이 단어 역시 시간이 흐르다 보니 지역적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즉 신성하다는 의미 외에 '크다', 많다', '뒤쪽', '구멍' 등의 다양한 형태로 변형이 되었고 이러다 보니 지금은 국어학자들 이 아니라면 이 뜻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조차 어려워지게 되었습니다.

조금 전 보았듯이 땅 이름을 나타내는 변형된 다양한 단어가 儉, 劍, 金, 金馬, 紺岳 등이 되어 일례로 감악산이 여기서 온 것임을 알 수 있겠습니다.

 

또한 소리 대신 뜻을 빌려다 쓴 경우를 보면 '곰'이라는 소리 대신 '熊'이라는 단어를 쓰는 경우인데 이런 방식으로 '거북龜'가 나왔으며 黑이나 漆, 玄, 釜 등이 생기게 됩니다.

사실 조금 이따 볼 부봉釜峰도 결국 여기서 설명이 되는 부분이고.....

 

한편 이 'ㄱ·ㅁ' 계열의 땅이름이 '뒤쪽'을 의미하는 것도 있다고 하였는데 바로 성남의 남한산성 안에 있는 검단산이 바로 여기서 온 말이죠.

즉 劍丹 혹은 儉丹은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검단선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즉 '뒤쪽'의 의미에 마을이나 골짜기 등을 나타내는 '丹'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말로 대구광역시 북구의 검단동이나 성남과 하남의 검단산이 다 이런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죠.

참고로 이 丹은 谷, 忽, 呑, 旦 등의 한자로도 쓰이고 있습니다.

 

같은 취지로 한남정맥이 안성의 칠장산에서 분기하여 북서진하다 용인의 석성산을 지나 88CC를 에 막혀 우회를 하여 어정가구단지 방향으로 진행을 하게 되는데 이때 이 88CC 옆 법화산과 이 한남정맥 사이에서 발원하는 물줄기가 있죠?

바로 탄천炭川입니다.

이 탄천의 옛 이름이 '곰내' 혹은 '검내'였었는데 이것이 '검은 내'로 잘못 전해지면서 숯이 되어 炭이 되었다는 것이죠.

그러니 이 탄천도 이런 뜻과는 무관하게 그저 마을 뒤를 흐르는 물이었다는 의미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산줄기 즉 산경학으로 본다면 이 탄천과 모천인 한강이 만나는 즉 합수되는 곳에서 이 지맥이 끝나야 함을 볼 때 이 탄천 지맥의 흐름은 법화산 ~ 검단산 ~ 수어장대가 있는 청량산에서 하남의 은고개 방향(신산경표)으로 가는 게 아니라 직진하여 금암산321.2m ~ 성삼봉103.6m를 지나 도심 구간을 거쳐 잠실야구장 부근에서 마무리되는 루트를 타야 한다는 것이죠.

이게 산자분수령에 의한 합수점의 원리이고 대한산경표의 이론이기도 합니다.

 

옆으로 빠졌습니다.

 

두 번째 의미로 이 'ㄱ·ㅁ'이 '뒤쪽'이라는 의미보다는 곰 즉 熊이라는 의미로 사용이 된 것인데 이는 공주가 웅진, 곰나루, 가마 나루로 불리며 많이 사용된 것임은 누구나 잘 알고 있기에 여기서는 생략합니다.

 

그러나 다른 어떤 의미보다 본래의 의미인 '신성'에 주목합니다.

우리나라 곳곳에 산재한 가마골이나 감내, 검산, 검암 등이 다 이 의미의 잔재이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개마고원 역시 여기서 나온 단어라고 합니다.

이런 취지에서 우리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도 원래는 '개마대산蓋馬大山'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고 하죠.

신성하고도 큰 산이라는 의미입니다.

인천 서구의 검단동 부근에서는 지석묘가 많이 발견됨에 비추어 이곳에서의 검단의 의미는 대구와는 달리 산신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이 의미로 조는 게 맞을 거 같습니다.

그러니 대구나 홍성에 있는 고모령이니 포천의 고모천도 다 이런 의미를 내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취지에서 이 탄항산 역시 이 주변의 지명과 관련하여 생각을 해보면 이 지역이 삼국시대부터 전략의 요충지로 삼국의 관심이 되는 지역이었으니 전쟁에서의 승리를 염원하는 제사도 많이 지내 졌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주위에는 바위산들이 많은 험준한 곳이어서 이런 얘기는 설득력을 더 얻습니다.

이런 바람은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시대로 들어오면서 확고하게 자리 잡아 관음과 미륵이라는 지명으로까지 발전하였음을 볼 때 검목 혹은 감목 같은 순우리말이 한자화하면서 儉項이 되었다가 위와 같은 시대적 변천을 거쳐 검목>숯>탄炭 즉 지금의 탄항炭項이 되었을 것입니다.

물론 대동여지도에는 이 탄항산의 위치를 이곳이 아닌 조금 전 본 포암산의 우측 봉우리 즉 이 하늘재(대동여지도에는 계립령)와 대미산 중간 정도에 있다고 보고 있으니 대동여지도 당시 이 부근 군현지도에는 1034.6봉을 탄항산으로 보지 않았을까 하는 강한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신성스러워 보이는가요?

고도를 낮춥니다.

평천치.

좌측으로 내려가면 평천리 마을로 떨어지고 이곳에서 신북천이 발원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 지금 이 좌측으로 녹아 흐르는 물은 낙동강에 합류되어 남해로 흘러가겠고 우측으로 내려간 물은 이내 동달천 ~달천 ~ 한강에 합류되어 서해로 흘러가게 되니 한 끗 차이로 물의 운명이 바뀌게 되는군요.

이런 역할을 하는 우리나라 최대의 분수계.

바로 백두대간입니다.

발자국을 봅니다.

해밀의 한 팀(아마도 선두에서 러셀을 하여 진행했을 영 회장님이 아닐까 싶군요.)은 눈이 와서 제대로 보이지 않는 이 길을 직진하여 오리지널 능선을 탔고 다른 한 팀(뒤따라 오던 눈이 밝은 어느 분)은 좌측에 희미하게 보이는 표지띠를 따라 좀 편하게 좌틀하여  로프를 잡으면서 올라갔을 것 같습니다.

당시 상황이 그려집니다.

재미가 하나도 없습니다.

탄항산을 보고....

대원들은 눈을 맞으며 씩씩대면서도 만족한 미소를 지며 이 계단을 올랐을 텐데....

그러고는 주흘산 삼거리인 961.1봉입니다.

아까 보았던 주흘산 라인의 맨 우측 봉우리죠?

즉 여기서 좌틀하면 영봉1108.4m ~주흘산1079.0m을 거쳐 성불사 혹은 혜국사 방향으로 진행이 가능한데....

그렇게 갈까?

차 시간도 그렇고...

 

그런데 이 길은 바위가 많아 지금 같은 조건에서는 하산 시 위험요소가 산재해 있습니다.

아예 눈이 팍팍 빠질 정도면 모르겠지만....

100여 m 진행해보니 역시 그렇습니다.

다시 회귀하여 대간길을 갑니다.

주흘산에서 갈라진 889.3봉 ~ 734.1봉 라인.

역시 험해 보이는 부봉 라인...

그러고는 부봉 삼거리입니다.

부봉 역시 1 ~ 6봉까지 있어 이곳으로 진행하여 조령2관문으로 내려갈 수도 있으나 바위봉이니 만큼 이런 계절에는 피하는 게 상책! 

사실 1봉은 대간길에 있는 봉우리이니만큼 들르는 게 맞습니다.

그런데 이 부봉은 다른 봉우리와 달리 올라서 내려 오는 다른 루트가 없습니다.

전체가 다 하나의 바위 덩어리이기 때문이죠.

올라갔다가 똑같은 길을 다시 내려와!

저는 이미 서너 차례 들른 경험이 있으니 시간 상 패스!

 

참 이 釜峰의 의미도 아까 말씀드린 것과 같이 신성한 봉우리라는 의미이고 이는 부산의 釜山과 동일한 의미임을 알 수 있는 것이죠.

다만 가마솥 모양이어서 가마釜를 써서 부산이 되었다고 하는 설과 좌천동의 甑山 즉 시루봉에서 왔다는 설이 대립하고는 있으나 가마골이 증산과 동일 시 할 수 없다는 점, 釜山 이전에는 富山으로도 쓰였다는 점 등을 감안해 보면 이 역시 '신성'이라는  의미에 무게가 실리는 거 같습니다.

가마솥을 뒤집어 놓으면 그 모습은 다 비슷한 거 아닌가요?

시루봉의 시루도 그렇고....

다 의미가 있는 것이죠.

인권이 형도 그러던 데요?

'다 그런 의미가 있다'고......

직진합니다.

마패봉.....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마역봉이죠.

갑자기 박문수를 불러들여가지고...

그러고는 동암문입니다.

암문...

여기서 좌틀하면 동화원을 지나 조령 2관문 ~ 1관문으로 진행을 하여 택시를 불러 문경터미널로 갈 수가 있죠.

동화원은 그저 院으로 중국의 주점과 같은 역할을 한 곳이었는데 이름이 좀 예쁩니다.

초곡천의 발원지......

이 물 역시 낙동강으로 가는 물...

눈이 녹고 있습니다.

탈출로로는 좋은데 조령1관문을 지나 관리사무소 앞까지는 거의 7km 정도가 되려나?

늪....

부봉 제6봉.

이곳이 오리지널 부봉 날머리....

동화원 터를 지나 좌틀하여,

동화원 휴게소를 지납니다.

운치가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의 흔적.

너른 길....

봄이 오는 소리....

2관문 조금 못 미친 지점에 있는 조령산 들머리....

맞은편에는 부봉 오름길.

그러고는 2관문.

조곡관이라고도 하는가 봅니다.

산불조심 표지석.

예나 지금이나.....

케른에 돌 하나 얹어놓고.....

물이 떨어지는 곳이니 이것도 폭포.

정자 하나를 지나고....

또 다른 조령산 들머리....

좌측이 조령원 터.

복원한 조령원....

기름 짜는 틀이라나 뭐라나...

왕건 촬영장.

돈을 받는 모양입니다.

제1관문.

여기서도 0.9km를 내려가야 차를 탈 수 있으니.....

정확하게 동화원 산장에서 1시간 6분.

동암문에서 1시간 51분 걸렸습니다.

대기하고 있던 택시(8,500원)를 타고 문경터미널로 돌아와 순댓국 한 그릇 먹고 귀경합니다.

달랑 저 혼자 타고 출발을 했는데 건국대 앞에 가니 30명 가까이 타는군요.

지난 주 토요일의 설명을 보고 얌체짓 좀 하려했는데 이미 다 녹아 님들의 발자국만 확인하는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덕분에 조령 길도 걸을 수 있었군요.

대간 팀 대원들 늘 안산, 건산하시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