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로봉은 마기라산이었다!
대동여지도를 봅니다.
지금의 향로봉 부근을 보면 금강산을 지난 백두대간 능선은 회전령을 지나 삽재령을 거쳐 마기라산을 지난 다음 진부령으로 떨어지는 흐름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시대의 지도를 보면 마기라산은 온데간데없고 대신 향로봉과 원봉,
그리고 칠절산이라는 이름들이 등장함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지도만 본다면 위치 상 마기라산이 향로봉이라는 것을 눈치 챌 수 있겠습니다.
이번에는 산경표를 봅니다.
그런데 산경표를 보면 금강산 - 회전령 - 진부령 - 마기라산 - 흘리령 ~ 미시파령 - 설악산으로 나열되어 있어 마기라산과 진부령의 위치가 바뀌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된 것일까요?
한편 한국지명유래집을 보면 지금의 향로봉(1287.4m)이 신라시대에는 가라리봉이라고도 불렸던 마기라산이라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간성 서쪽 30리’에 있는 산이라고 한다. 이는 산경표의 표기와도 일치한다. 문제는 분명 진부령과 미시령 사이에는 두 개의 고개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아니다. 엄밀히 얘기하면 세 개의 고개다. 북쪽에서부터 내려오자면 흘리령~사이령~ 화암재 등이 그것이다. 사이령은 명백하니 결국 ①흘리령 ②석파령의 위치와 존재 여부다
①먼저 흘리령을 보자. 분명 진부령이나 미시령이 열리기 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 고개가 지도에 나와 있어야 함은 명백하다. 그렇게 볼 때 흘리령은 고성과 인제를 연결하는 데 한 축을 담당했음은 분명하다. 고성의 옛 지명이 달홀(達忽)이었으니, 달(達)은 고(高), 월(月) 등 높은 곳을 말하고 홀(忽)은 마을을 말하니 고성 자체가 높은 곳에 위치한 마을이었다. 그리고 흘(屹)은 홀(忽) 보다 더 높은 지대에 있는 것이니 곧 흘리(屹里)는 고원에 있는 동네이다. 주민들에 의하면 이 흘리령 즉 흘령은 흘리에서 중흘리로 넘어가는 고개 이름이니 불과 40년 전만 해도 이곳 주민들은 이 흘령을 요긴하게 이용하던 고개로 기억하고 있다. 흘리령의 존재와 위치가 명백해진 만큼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대동여지도의 손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산경표의 표기가 잘못된 것으로 ‘마기라산~진부령~흘리령’ 순으로 표기됐어야 했다. 흘리령의 존재는 이따 현장에서 확인해보자.
②한편 해동지도에서 보듯 분명 ‘흘리령≠석파령’이다. 오히려 지도에서 보듯 석파령은 능선으로 이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즉 여느 고개가 그러하듯이 안부에 위치한 그런 고개가 아니라는 말이다. 현장에 가보면 이 새이령 혹은 샛령, 대간령은 돌이나 바위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그런 평범한 고개다. 반면 석파령은 石破嶺 혹은 石波嶺으로 표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돌과 관련이 있다. 돌이 깨어진 혹은 돌이 파도처럼 넘실대는 곳 바로 그곳이 상봉(1242.6m) 부근의 너덜 지대를 얘기하는 거 아닌가? 그렇다면 화암재를 석파령으로 보는 게 타당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렇게 하면 마기라산(향로봉)~진부령~흘리령~새이령(대간령)~석파령(화암재)~미시령으로 정리가 가능할 것 같다. 대동여지도의 견해는 어떨까? 마기라산(향로봉)~진부령~흘리령~연수파령(미시령)으로 되어 있으니 이 결론과도 같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필자 개인의 견해에 불과하다.
-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565쪽
일제 강점기 시절 일제는 우리나라에 들어와 제멋대로 측량사업을 펼치면서 우리말로 된 지명을 어쭙잖은 한자어로 바꾸어 지도에 표기하였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이 부근만 해도 둥글봉이 원봉圓峰으로 바뀌었는데 하물며 마기라산이라는 고유의 우리 지명이 향로봉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더라도 조금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다만 아무리 왜놈들이 어지럽게 창지개명을 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그 지명과 관련지어 그 작업을 수행했을 터, 고성에서 태어나고 자란 예비역 육군 대령 신준수 행정사님의 말을 들어보면 그 의문이 조금은 풀릴 거 같습니다.
즉 강원도 고성의 최고봉인 이 향로봉1287.4m은 이 지방의 진산으로 정상에는 제단이 있어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내던 곳이었다고 합니다.
이때 소 한 마리가 제물이 되는데 제사를 지내기 위해 소 한 마리를 끌고 마을을 출발하여 부정을 타지 않기 위해 이 정상에 이를 때까지 주민 누구도 한 마디 말을 하지 않고 올라야 했다고 하는군요.
그러고는 소를 잡아 하늘에 바치는 엄숙한 절차 속에 제가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말문을 열었다고 하는군요.
아! 그렇다면......
위 신준수 행정사 님의 고견을 접하고 보니 "멀리서 보았을 때 향로같이 생겨서..."라는 작명은 터무니없는 추론이라는 평소의 제 지론이 맞는 거 같아 속이 시원해짐을 느낍니다.
안 그렇습니까?
제祭를 지내려니 당연히 향을 피우는 향로가 그 제단에 있었을 것이겠고 왜놈들이 동국여지승람이나 대동지지, 산경표 같은 지리서에 나오는 지명에도 불구하고 그 제단의 향로를 보고 香爐峰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것이라는 것은 너무도 쉽게 짐작이 가능합니다.
그나저나 마기라산은 무슨 뜻입니까?
그 이름은 짐작건대 이 봉우리가 있는 고성군에서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존경하는 향토사학자 신정일 선생님의 명저 '신택리지'를 봅니다.
'강원도 간성군이 고성군으로 편입된 것은 그다지 오래된 일이 아니다. 고구려 때 이름은 가라홀(加羅忽)이었는데 .....'
즉 이 '가라'는 이 지역을 나타내는 이름이었으며 忽 = 城이었다고 하니 이제는 그 궁금함이 좀 풀릴 거 같습니다.
고구려 시대의 加羅가 1,000년이 훌쩍 넘어 조선시대에 와서 耆羅가 됐다고 해서 조금도 이상하게 들리지 않고 오히려 그 긴 시간동안 같은 이름을 가졌다는 게 신기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馬는 頭, 高, 達 등과 동의어이니 산이나 봉우리를 지칭함은 의문이 없습니다.
따라서 마기라산은 곧 이 고성에 있는 높은 산이라는 말입니다.
사실 고성군에서 가장 높은산이 이 산이기도 하고요.....
각설하고....
우리가 백두대간을 북진으로 진행하는 이유는 통일을 꿈꾸는 백두대간길이 현재는 여러 정치적인 요인에 의해 휴전선으로 잘린 만큼 더 이상 진행이 불가능하니 하는 수 없이 우리는 우선 남한 백두대간 구간을 먼저 걸은 다음 통일이 되면 그 나머지 구간을 이어서 걷기(end to end 방식) 위함입니다.
그럴 경우 아쉽게도 금강산을 바라볼 수 있는 이 백두대간의 북쪽 끝에 해당하는 구간 즉 진부령 ~ 향로봉은 군사지역 + 산림 유전자 보존지역입니다.
그래서 2018년까지만 해도 우리의 백두대간 발걸음은 진부령에서 그쳐야 했습니다.
향로봉 유감
“형, 여기서 끝난 게 아니잖아? 향로봉은? 진부령~향로봉 구간은 군부대 허가 신청을 내면 된다고 하던데.”
“그래. 예전에는 그랬지. 그 마지막이 2009년 4월 30일 이전까지라고 보면 돼. 물론 그 이후라도 억지로 들어갔다는 얘기는 나도 들었는데 어쨌든 공식적으로는 불가(不可)야. 우선 이곳에 출입하기 위해서는 고성군 문화관광과와 접촉을 해야 돼.”
①우선 고성군에 가려는 목적이 적시된 출입허가 신청서를 내야 하는데, 여기에 학술목적, 공무 등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②이유가 타당하다고 판단될 경우 관할 산림청에 허가 신청을 촉탁하게 되는데, 이곳이 산림유전자 보호구역이기 때문에 어려울 것이라 하고, ③ 설사 통과되었더라도 군부대와 협조가 되어야 하는데 이 또한 예전과 다를 것이라 한다.
한 산악회에서 한 질의에 대해 동부지방산림청의 회신이 이 모든 것에 대한 답이 될 것 같다.
◎안녕하십니까? 산림행정에 관심을 가져 주심에 감사드리며 귀하께서 지방청장과의 대화방에 제기하신 민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답변드립니다.
◎민원인께서 등산하고자 하는 지역은 산림 내 유전자와 종 또는 산림생태계의 보전을 위하여 보호·관리가 필요한 지역인 산림유전자원보호림으로 지정 고시【동부지방산림청 고시 2006-11호(2006. 10. 30)】하여 관리하고 있으며, 또한 산양 서식지 및 미기록종 보존을 위하여 일제조사가 필요한 지역으로 산림훼손을 사전에 예방할 필요성이 있고, 군부대에서도 향로봉 출입통제 지침(12사단 보안행정예규(제108조))에 의거 등산 목적의 산행은 출입을 통제하고 있고, 향로봉 지역 도로는 군사 작전용 도로로서 개설 당시부터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며 미확인 지뢰지대가 분포되어 있어 안전사고의 위험성이 상존하고 있으며, 출입 허용 시 전국 모든 단체 및 개인 등과의 형평성 논란 등 여러 상황으로 보아 등산 목적의 입산은 통제하여야 함을 널리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졸저 전게서 569쪽
그러던 위 구간이 관계 기관들의 협조로 2019년부터 1년에 1회 고성군에 의해 문이 열렸습니다.
바쁜 개인 일정으로 그 구간 진행을 뒤로 미루고만 있었는데 후배 박정진 대장이 이번에는 꼭 얼굴 좀 보자고 하면서 참여를 강권합니다.
산수 대장님과 어부인께서도 필참 하시겠다고 하는군요.....
2022. 09. 01. 09:00 고성군 홈페이지로 신청을 합니다.
참가인원 200명은 신청 시작 10분 만에 마감이 되고.....
들뜬 마음에 09. 30.만 눈 빠지게 기다립니다.
2022. 09. 30.
드디어 남북 화합 교류와 한반도 평화 염원을 위한 평화의 발걸음을 기치로 내세운 2022년 백두대간(향로봉) 평화 트레킹 행사일입니다.
우리는 하루 일찍 속초에 도착하여 대포항 6구역의 친구 누님 횟집으로 가서 회 한 접시와 매운탕을 먹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듭니다.
07:00까지 고성군 공설운동장에 집합을 하여야 하니 좀 일찍,
숙소를 나섭니다.
이른 시간임에도 고성군 행사 관계자(고행관)들이 나와 분주히 움직입니다.
반가운 얼굴들을 여기서 만나게 되는군요.
박정진 대장, 소백산신령 '청&뫼', '막내', '박수정 선배', 박상복 아우', '이강국'........
조 편성에 따라 이름이 새겨진 명찰을 받고는 차에 오릅니다.
여기서 행사장인 진부령까지는 이 버스로 이동을 합니다.
참가자 200명이니 5호차 + 행사 관계자 지원 차량 2대 등 7대의 버스로 움직입니다.
쌀쌀합니다.
참가비 20,000원을 냈는데 고성군에서는 상품권 20,000원을 주고는 거기에 타월과 산행 방석 그리고 마스크 2개 등 기념품은 물론 식수도 주니 이건 완전히 공짜 산행이 되어버렸습니다.
어쨌든 오늘 공식 타이들은 '2022 백두대간(향로봉) 평화 트레킹 대회'로군요.
함영준 고성군수님과,
공동주최자인 김중석 강원도민일보 회장님, 산림청 관계자 그리고 군 관계자도 나와 안내와 격려의 말을 남기시고....
그러나 가장 고무적인 얘기는 정상부는 군부대가 있는 고로 보안 문제로 사진 촬영을 할 수 없으니 정상 1km 남긴 지점에서 휴대폰을 회수하는데 그래도 기념사진은 있어야 하니 정상석 부근에서 기념촬영을 해주고 그 사진을 직접 집으로 보내준다고 하는군요.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군요.
어쩌다 보니 맨 앞줄에서 기념 촬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맨 앞줄 우측에서 세 번째)
그럼 오늘 왕복 36km의 산행을 시작하죠.
오늘 산행은 온전히 군사작전도로를 따라 진행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그 도로에서 벗어나는 것은 절대 용납이 되지 않습니다.
백두대간 길은 인제군 북면과 고성군 간성읍의 군계를 따라 진행하다 칠절봉에 이르러 북면이 서화면으로 바뀌게 되는 것을 제외하고는 줄곧 그 군계를 따라 진행합니다.
그러면 꿈에도 그리던 남한 구간 백두대간의 마지막 퍼즐을 맞추기 위해 발걸음을 뗍니다.
비포장 도로인 군사작전도로 양옆으로는 가을을 알리는 야생화들이 널려있군요.
DMZ 트레일이 완공되면 이 길도 무시로 다닐 수 있게 되려나?
오늘 백두대간 구간은 행사장인 공원 우측으로 능선을 두고 걸은 다음 여기서 한 차례 대간길을 만나고는 정상까지는 줄곧 좌측으로 대간 길을 두고 걷게 됩니다.
오르고 싶다!
칠절봉으로!
그렇게 해서 가고 싶다!
백두산으로!
김정은과 문재인 대통령이 만나서 화해 무드로 흐를 때 정말이지 저는 백두산에서 북한으로 국경을 넘어서고 싶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완전히 물 건너가 버렸지만....
여기서 좌측으로 들면 칠절봉으로 오를 수 있고 그 구간 거리는 2.8km입니다.
우리는 주최 측의 권고에 따라 대간길을 버리고 우측 작전도로를 계속 따릅니다.
제법 물이 오른 칠절봉 오르는 길.
우측 뒤로는 흘리마을에서 마산봉으로 오르는 길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하는군요.
마산의 유래
마산봉을 정면으로 보며 내려간다. 삼거리를 지나 우측으로 샘물 표시가 되어 있다. 마시기에 별로 적합해 보이지 않는 물이다. 안전시설이 되어 있는 돌계단을 따라 오르면 마산 삼거리를 지나 2004년 이설 된 2등급삼각점(간성24)이 있고 정상석 두 기가 서 있는 마산(1052.0m)이다.
마산(馬山)은 ᄆᆞᆯ산에서 왔다. 말(馬)은 중세 국어에서는 ‘ᄆᆞᆯ’이었다. 그런데 고대국어 체계에서는 뒤에 모음이 있는 경우 두 음절로 말하는 ‘개음절어’ 체계여서 고려시대 이전에는 ‘말’의 경우 ‘ᄆᆞᄅᆞ’로 발음되었을 거라고 한다. 따라서 이 ‘ᄆᆞᄅᆞ’는 말(馬) 말고도 ‘마루’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 지금의 ‘산마루’와 같이 ‘꼭대기’ 혹은 ‘높은 곳’의 의미로 사용했다고 한다. 이 의미의 잔재가 馬峴, 馬山, 馬嶺 등이다. 그러니 보통 지명의 유래나 전설 등이 얘기하는 것과 같이 ‘말의 형태를 닮았다.’는 등의 동물 말(馬)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니 이 마산도 생김새와는 관계없는 단지 ‘높은 산’이라는 의미를 가진 산에 불과하다.
- 졸저 전게서 564쪽
이제 3km 정도 올라왔다는군요.
중앙 우측이 둥글봉.
오늘 너무나 행복하다고 하시는 날다람쥐님.
가을이 오는 소리.
뒤를 돌아봅니다.
좌측 하단으로 마산봉 라인이 병풍바위에서 1054.8봉을 지나 710.7봉으로 흐르는 능선이고 그 뒤가 새이령 지나 너덜로 오르는 신선봉1212.2m과 그 우측의 1242.6봉과 상봉.....
각자 자신의 체력에 맞게 편하게 걷습니다.
1096봉을 지나 좌측으로 서화리로 내려가는 삼거리를 지납니다.
여기서 잠깐 백두대간 길을 만나고.....
이곳에 화장실 등 편의 시설이 갖춰져 있습니다.
고성군에서는 이번 행사에 참 대단한 노력 봉사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7.9km 걸어왔군요.
기념 촬영 한 번 하고.....
길 바로 좌측이 백두대간 길.
감개무량합니다.
대간길 우측에 있는 산림청 육묘장.
여기서 자생종 씨앗을 채취하여 향로봉 주변의 훼손지 복원 시 이것을 사용한다고 하는군요.
마산과 병풍바위를 보고....
그 마산과 병풍바위 그리고 신선봉을 당겨봤습니다.
저 신선봉까지가 금강산 관할 구역이죠.
즉 신선봉이 12,000봉에 속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화암사 일주문에 '금강산 화암사'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 것이죠.
추모비도 간간이 만나고....
귀청과 우측 끝의 안산을 봅니다.
조금 당겨봤습니다.
조금 더 진행을 하니 우측 끝의 안산 좌측으로 한계천 건너 가리봉과 주걱봉까지 관찰이 가능하군요.
오늘 대단한 조망입니다.
신선봉부터 울산바위 ~ 대청 지나 귀청, 큰감투봉까지....
마냥 행복하신 분.
저도 한 장!
대청이나 화채 혹은 안산에서 바라만 보던 이 향로봉에 드디어 발을 딛게 되다니!
그러고는 거꾸로 이곳에서 그곳을 바라보게 될 줄이야....
그런데 이곳에서 귀한 분을 뵙게 됩니다.
모두에서 잠깐 소개한 분인데 현재 간성지역 트레킹 코스 특히 건봉령 개방에 많은 힘을 쏟고 계시는 분입니다.
1945. 08. 15. 이후 한국전쟁이 끝난 다음 그동안 땅을 잃어버린 분들을 위해 땅 찾아주기 사업도 벌이고 있는 등 지역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계시기도 하고......
둥글봉1276m을 봅니다.
두리봉, 원봉이라고도 불립니다.
그런데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도 저 봉우리가 둥글봉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일설에 의하면 도로에서 우측으로 약 8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저 중앙의 1147봉이 진짜 둥글봉이라고 하는데....
글쎄요.
그런 사료가 어디 있나요?
동네분들은 그렇게 알고 있는 거 같습니다.
1920년대 지도에도 지금과 같은 곳이 원봉으로 표기된 걸 보면 일제가 실수를 한 거 같습니다.
금강산 12,000개의 봉우리 중 남한에 다섯 개의 봉우리가 있다고 하죠.
바로 저 둥글봉과 조금 전 지나쳐 온 칠절봉 그리고 향로봉과 삼봉 그리고 신선봉 등이 그것들입니다.
칠절봉은 이따 하산길에 잘 조망을 해 볼 것이고,
호젓하게 걷습니다.
바로 뒤가 백두대간길.
위로 올라가서 그 대간길을 잠시 걸어보고....
동해.
삼봉
산수대장님이 오랜만에 앵글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좌측 백두대간길.
향로봉 1km를 남겨두고 주최 측에서 폰을 다 회수합니다.
참가자 별로 다 비닐봉지를 만들어 보관하는군요.
제 번호는 1-32.
정말이지 고성군의 철저한 준비와 환대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어쨌든 지금부터는 눈으로 본 것을 글로 풀어야겠군요.
1305봉 삼거리는 한창 공사 중입니다.
좌측으로 흐르는 능선은 1233봉을 거쳐 산머리곡산1062m으로 진행을 하여 서화리 쪽으로 가게 되겠군요.
좌측으로 헬기장이 나오고 행사 관계자들이 좌측에서 식사를 하고 갈 것을 권고합니다.
어묵 국물과 음료수, 커피 등이 준비되어 있군요.
헬기장 끝으로 갑니다.
바로 이곳이 백두대간이 금강산으로 갈라지는 지점입니다.
대간길은 향로봉 정상으로 오르지 않고 여기서 좌틀하게 되죠.
웅장한 대간길은 고성재를 지나 1052.8봉의 GP로 오릅니다.
날씨가 좋아 한눈에 모든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성재는 해발 750m에 위치한 고개로 고성군 수동면과 인제군 서화면의 군계에 위치한 고개로 바로 여기서 856고지로 치고 올라간 다음 우틀하여 진행을 하게 됩니다.
완만한 경사를 따라 올라 봉우리 하나를 지나 GP가 있는 1052.8봉으로 오르게 되는군요
1052.8봉 뒤로 긴 능선이 펼쳐지는데 대간길은 우측 뒤로 넘어가는 게 선명하게 보입니다.
960고지에서 좌틀한 대간길은 다시 고도를 낮춰 삼재령으로 떨어지는 게 보이는데 그 좌측으로 흐르는 소양강과 우측으로 흐르는 남강을 머릿속으로 그려봅니다.
저 삼재령은 三岾嶺일 것이나 부르는 이에 따라서는 三峙嶺이라고도 하는 거 같습니다.
아!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한 줄의 능선!
금강산 라인입니다.
매일 꿈만 꾸는 금강산.
그 금강산 라인의 백두대간 초입은 아무래도 차일봉遮日峰1529.2m입니다.
필시 지리산 화엄사의 뒷산 차일봉은 이 이름에서 따왔을 것입니다.
저 차일봉에서 발원한 남강은 남진하여 흐르다 결국 삼재령을 넘지 못하고 다시 커브를 틀어 북진하여 고성을 지나 해금강으로 흘러들어 가겠군요.
저 우측으로 바다에 인접해 보이는 낮은 봉우리가 해금강인가?
그렇다면 저 남강은 거기서 동해 바다로 들어가겠군요.
다시 금강산 라인을 봅니다.
육안으로 보는 그 능선의 우측 끝 봉은 채하봉1588m이고 그 우측의 집선봉도 명확하지만 대간의 흐름은 우측의 세 번째 월출봉임이 명확합니다.
바로 좌측의 일출봉을 지나 잠시 고도를 낮췄다가 다시 미래불인 미륵봉을 지나 제일 높은 비로봉을 세운 다음 그 뒤로 넘어 만물상 등을 빚고는 오봉산을 넘어 선창산1224m으로 진행하겠죠.
저 비로봉은 바위에 무늬가 있다고 합니다.
오랫동안 산 기운과 안개로 아롱지게 섞이고 어려 눈빛과도 같다고 하죠.
그래서 겨울의 금강산을 개골산이라 부르기도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향로봉 정상으로 이동합니다.,
고성군에서 스마트폰과 DSLR 카메라로 시비詩碑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해주시는군요.
그 멋진 사진이 언제 집에 도착할까.....
향로가 있는 정상은 아무리 봐도 향로 모양이 아님은 아까 얘기한 바와 같고...
다시 부대 옆 헬기장으로 가서 점심을 먹습니다.
잠시 멍 때리다가 하산을 서둘러 달라는 고행관의 권고에 따라 하산을 시작합니다.
통제초소에서 휴대폰을 회수하고....
중앙의 둥글봉도 봅니다.
실제로는 좌측이 진짜 둥글봉이라는 견해도 있고....
향로봉에서 가지를 친 저 삼봉996m은 언제나 걸어갈 수 있을까?
저 삼봉 라인은 소뚱령과도 연결이 되니 46번 도로를 건너 흘리까지도 오를 수 있는데 가능할까?
그러다 지뢰라도 밟게 되는 건 아닐지....
내려오면서 좌측으로 향로봉에서 내려오는 산줄기에 있는 삼봉을 봅니다.
당겨보고.....
지도의 둥글봉.
아쉬움에 뒤를 돌아봅니다.
내년에 다시 보자.
내년에는 좀 더 준비를 많이 해 와야지.....
내려오면서 보는 느낌은 또 다르군요.
몸이 고도를 낮추자 설악 서부능선이 점점 더 높아져가고....
5시까지는 내려갈 수 있겠군요.
아까보다 조망이 더 깨끗합니다.
이제는 화채봉까지도 보이고....
칠절봉까지만 가면 조망도 다 없어질 텐데.....
칠절봉 들어가는 입구.
고행관이 테이프로 닫았던 문을 원상태로 돌립니다.
칠절봉은 어떻게 오르지.....?
백두대간길.....
내년에 보자....
마산도 저렇게 높아지고....
쓰레기를 수거하는 착한 이강국님.
귀청의 마지막 조망 그리고 안산도....
고도가 낮아지니 주걱봉과 가리봉은 간 곳이 없고.....
김칠섭 중령의 숭고한 뜻을 기려....
오늘 걸은 구간 거리는 총 36.km.
오늘 산행을 마무리합니다.
고행관 분들께 수고하셨다는 말씀도 전해드리고....
기다리고 있던 차에 올라 진부령을 떠납니다.
텅 빈 고성군 공설운동장.
아쉬움에 소회를 하나 더 밝히면....
진부령 ~ 삼재령 구간은 도상거리 26.5km.
실거리는 35km 남짓 될 거 같습니다.
거기까지만이라도 갈 수는 없을까?
남한이나 북한에게 백두대간이 있는 이상 우리 민족에게 통일이라는 불씨는 꺼지지 않고 계속 살아 있는데.....
제발 좀 가게 해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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