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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길/치악산

치악산 둘레길 제2구간(구룡길)

치악산 제2구간 구룡길 시작점
치악산 둘레길 제2구간 개념도

1구간을 마치고 바로 2구간으로 이어갑니다.

지도 #1

포장은 안 되었지만 승용차도 오갈 수 있는 아주 훌륭한 임도길입니다.

이  동네는 왜 이런 전원주택이 이렇게 많은지.....

제2구간 구룡길은 재표적인 치악산 들머리인 구룡사 입구에 있는 국립공원까지 진행하는 7.0km의 아주 짧은 구간입니다.

1구간을 쉬엄쉬엄 10.2km 걸었으니 2구간까지 약 17.2km를 걷고 일찍 숙소를 찾아가 쉬고 내일 3구간 14.9km를 하고 일찍 귀경할 생각입니다.

다리 하나를 건너니 요란하게 무언가로 장식한 카페인지 아니면 그냥 주택인지.....

하여간 그 옆으로 지납니다.

항아리를 이용하여 작품을 만들었군요.

그냥 주택인데 주인장이 이런 작업을 하시는 분 같습니다.

물 흐르는 소리가 이제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듯한데.....

데크도 잘 만들어 놓았습니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답사자의 편의를 위한 시설물이라는 게 이 치악산 둘레길의 특징입니다.

토종벌 군락지도 지나고....

지도 #1의 'A'의 지점인데 이 뒤로 오르면 752.7봉을 경유해 삼봉 1073.5봉으로 올라 비로봉으로 진행할 수 있는 들머리인데 이렇게 입산금지 팻말을 박아놨습니다.

국립공원 어느 곳이든 출입금지 팻말이 있는 곳이 들머리라는 얘기죠.

부드러운 소로를 따라 올라갑니다.

고도표 #1

 

오늘 구간의 가장 높은 곳이 해발 약663.2m이니 결코 낮은 곳이 아닙니다.

다리도 건너고,

휴게시설도 지나며,

계속 고도를 올립니다.

이제 2km 진행을 했군요.

아까 마신 동동주가 제법 독하군요.

땀이 좀 나니 서서히 깨는 거 같습니다.

잘 정비된 둘레길.

 

곧 푸른 숲으로 바뀌겠죠.

맑은물도 마셔보고....

이대장님도 이제 술이 다 깨신 듯.

이제 정상 고개도 지적입니다.

숯가마터?

비가 그렇게 와도 봄은 그저 건조해 보이기만 합니다.

산불 조심합시다!

지도 #2

..........

깨셨수?

오늘 구간의 최정점.

취한 게 아니고 졸리답니다.

매화산.

천지봉1085.8m인가?

내려가는 길이 너무 부드럽습니다.

낙엽송 사이로 걷는 푹신푹신한 길.....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게 벌써 다 내려왔군요.

국립공원사무소로 가는 다리를 건너자, 

나오는 황장금표

.

황장봉산(黃腸封山)

 

“봉산(封山)이라면 벌채를 금지하는 산을 얘기하는 거 아니야?”

“그렇지. 비슷한 말로 금산(禁山)이 있는데 봉산은 금산과는 조금 다르지. 봉산에는 여러 종류가 있어. 왕이나 왕비의 능묘를 보호하고 포의(胞衣: 태아를 싸고 있는 막과 태반)를 묻기 위하여 정해진 태봉봉산(胎封封山), 황장목만을 생산하기 위한 황장봉산(黃腸封山), 밤나무 재목을 생산하기 위한 율목봉산(栗木封山) 등이 있는데, 이 황장산은 바로 이 황장봉산에 해당되는 곳이지. 황장목이란 소나무는 나이가 수백 년이 되면 그 심재(心材)가 적갈색으로 변하며 황색의 장기(腸器)처럼 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야. 이 나무는 왕실의 건축재료, 배의 건조 등에 사용됐다고 하지.”

 

이 소나무는 조선시대의 금산(禁山) 정책과 봉산(封山) 정책을 아울러 생각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금산제도의 기원은 조선 초기에 비롯되었다. 한양의 궁궐을 중심으로 하여 사방의 산(북 백악산, 남 남산, 서 인왕산, 동 낙산)의 지맥을 보전하기 위해 채석이나 벌목을 못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함부로 집을 짓거나 무덤을 들이는 것을 금했다. 이 금산정책은 세종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됐는데, 그 형태는 주맥(主脈)에 대한 보토(補土), 소나무 심기, 나무 베기나 돌 캐기 금지 등으로 실행됐다고 한다. 결국 요즘의 그린벨트에 해당된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이 금산제도가 조선 후기로 들어서면서 봉산정책으로 바뀌게 된다. 즉 조선시대의 조정에서는 궁실의 건축, 선박의 건조, 관곽(棺槨)과 신주(神主)의 조성을 위해 목재의 쓰임새가 매우 다양했다. 따라서 산림의 관리 및 정책도 매우 중요했던 것이다.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의 큰 혼란으로 말미암아 중앙정부의 지방 산림에 대한 관리 및 통제력이 약화되어 산림제도를 새로이 정비할 필요를 느껴 이를 시행하게 되었다. 한편 민간에서는 건축, 조선, 관곽 제작 및 온돌의 보급과 화전의 개간으로 인해 목재의 수요가 증가된 것도 이 제도를 조속히 시행하게 한 이유가 되었다. 그 본격적인 시기가 17세기 후반 숙종 때로 이때부터 조선 정부는 산림에 대한 관리 정책을 강화하게 되었다.

그래서 소나무를 이용하는 배를 만드는 정책 이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봉산의 종류를 지정하기에 이른다. 즉 율목봉산(栗木封山), 진목봉산(眞木封山), 황장봉산(黃腸封山), 삼산(蔘山), 향탄산(香炭山) 등이 그것이었다.

 

그러니 이 황장산은 황장봉산의 다른 이름이고 이 황장봉산은 고유명사가 아닌 조정에서 나무의 벌채 등을 함부로 하는 것을 금하는 보통명사로 사용되는 이름이었다. 따라서 당연히 이 황장봉산은 이 산 이외에 우리나라 다른 산에도 여러 곳 있었다.

한편 정부에서는 일반인들이 함부로 나무에 해를 끼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금표나 봉산 표시를 하여 마을 어귀나 산 입구에 표시해놓았다. 필자가 직접 본, 원주 치악산 구룡사에서 사다리병창 오르는 코스 공단 초소 좌측에 있는 황장금표와 주천(백덕)지맥에 있는 사자산과 백덕산 아래에 있는 법흥사 부근의 황장금표는 금산의 예이다.

그리고 봉산의 예는 바로 동로면 명전리 옥수동 마을 입구 하천변에 있는 봉산 표시인데. 이것은 이 근처가 황장목 때문에 국가로부터 지정된 봉산임을 알려주는 근거라 할 것이다.

 

 -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292쪽

구룡사 삼거리.

자동차 야영장을 지나.....

이제 다 왔습니다.

오늘 구간 여기서 마무리하고 내일 일찍 다시 옵시다.

다음 구간 태종대 구간이 여기서 시작됩니다.

여기서....

이 방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