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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길/치악산

치악산 둘레길 3구간 (수레너미길)

 

 

3구간 개념도
치악산 한중막

 

이대장님과 하룻밤을 지내면서 많이도 먹고 잠도 푹 잘 잘 잤습니다.

구룡사 입구에 있는 산수식당에서 두부전골로 밥을 먹고 태종대에 차를 새워둔 다음 제 차로,

오늘의 출발지인 치악산 국립공원 구룡사무소에 주차를 한 다음 이한검 대장님과 함께 오늘 치악산 둘레길 3구간 답사를 시작합니다.

오늘 구간 거리는 14.9km.

일찍 끝내고 고속도로 차가 막히기 전에 올라가야 하겠습니다.

지도 #1

그럼 오늘 구간을 시작합니다.

치악2교까지는 그냥 이런 차도를 따라 걷는데 다행히도 트레커들의 안전을 위해 데크를 설치해 놓았으니 차량과의 접촉 사고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치악 1교를 건너고....

이너 데크를 따라 걷습니다.

그런데 이 동네이름이 수철마을이고 지도에는 무쇠점이라고 지명 표시가 되어 있습니다.

철과 쇠...

뭔가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철리는 그저 하천가의 마을이라는 뜻이다

그러고 보니 지난 둘레길 첫 구간 즉 주천~운봉 구간에서 수철리라는 이름을 본 것 같다. 운봉읍 행정리에서 세걸산 옆의 세동치로 올라가던 길목에 있던 마을이었다. 그 수철리나 여기 수철리나 모두 산자락의 물가 마을이다. 두 수철리 모두 각 공안천이나 금서천을 끼고 있으니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하긴 우리나라 어느 땅이 조그만 개천 하나 끼고 있지 않은 곳이 있을까? 그래서 그런지 이곳 수철리도 예전에 대장간 혹은 쇠를 제련하는 공장이 있어서 생긴 이름이라는 말이 들린다. 제련소와 풍부한 물은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려워서 생긴 말이니 그런 것 같다. 어쨌든 이 부근에 그런 시설이 있었을까?

 

'물'의 고대어는 '믇' 혹은 '묻'이었으며 따라서 물 옆의 골짜기나 마을의 경우 '뭀울' 혹은 '뭇막' 이라 하였다. ‘뭇+울>무싀울>무시울’, ‘뭇+막>무수막>무쇠막’ 등으로 변하여 오늘날에도 무싀울, 무시울, 무쇠막 등의 마을 이름이 많이 남아있는 것이다.

짐작하다시피 우리나라에 한자가 들어오면서 이를 한자로 표기하다 보니 무水+쇠鐵=수철리水鐵里가 된 것에 불과하다. 지리산 자락의 두 군데 이외에도 '수철리'라는 지명은 전국적으로 상당히 많은데 모두 하천가에 있는 마을이다. 비슷한 예로 필자의 고향이기도 한 서울의 한강 가에 있는 금호동金湖洞도 원래 이름이 '무수막'이었고 도봉동의 한 골짜기 마을도 무시울이었다. 물의 마을이란 뜻으로 물막>무수막>무쇠막 이라 불리다가 훗날 사람들이 무쇠솥 운운하며 말을 지어내어 한자화하는 과정에서 쇠 ‘금金’을 따와서 금호동이라 한 것이다.

 

초기 철기시대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도 제철산업은 국가적으로 지원하고 관리해야 가능한 일이다. 현재 제철산업이 항구 도시에서 발달하듯이 그 당시에도 대부분 큰 강가에서 주로 발달하였다. 중국에서는 이 기술을 외국에 반출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철저하게 금지시킬 정도였다. 국가 권력과 지원이 미치지 않는 지리산 골짝 마을에서 제철製鐵을 할 수도 없었으며 할 이유도 없다.

따라서 '수철리'는 무쇠 솥과는 전혀 무관하게 무쇠막이라는 옛 지명대로 '물 옆에 있는 마을'정도의 뜻이다. 영동고속도로가 지나는 섬강 주변 마을 이름인 '문막'도 동일한 어원에 속한다.

 

- 졸저 '현오와 걷는 지리산 154쪽'

 

그러니 이 수철리도 쇠와는 전혀 관계없는 그저 우측의 하수남천 옆에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에 불과합니다.

한참을 걸어내려와,

여기서 우틀하며 본격적으로 수레너미 길로 들어섭니다.

북부 지리산을 싸고도는 임천의 지류의 이성계와 관계있는 황산전투의 운봉 '피바위'와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수레너미길이라......

이따 얘기하죠.

진돗개 잡종이 한 1km 정도를 계속 따라오는군요.

성가시게.....

예전 담배 건조장......

제가 서울 사람이라도 이모님 댁에 갔던 기억이 나서 좀 알겠더군요,

주차장이 나오고...

화장실이 있고 안내판도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이 구간의 최정상에 있는 고개 이름에 대한 유래가 설명되어 있습니다.

곧 태종이 자신의 스승 원방석을 만나러 강림리로 가는데 수레를 타고 이 고개를 넘었다고 하여 수레너미 고개라 불리게 됐다는 겁니다.

이해는 합니다.

그냥 현재 불리는 단어의 뜻을 가지고 마침 이곳에 태종과 원방석에 대한 얘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니 거기에 적당히 대입을 한 것입니다.

 

수리봉 소고(小考)

“형, 이 수리봉이 지난번 백수리봉의 수리봉과 같은 뜻인가?”

수리봉하면 그 뜻이 무엇인가? 백수리봉을 지나면서 수리봉이란 그 주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라는 뜻이라 했고 그 말의 어원은 고구려 말에서 왔다고 했다.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자.

이 ‘수리’란 말은 우리나라 곳곳의 땅 이름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 산 이름을 보면 산림청에 등록된 이름 중 랭킹 1위가 국사봉이고 2위가 바로 이 수리봉이다. ‘높은 곳’, ‘맨 꼭대기’를 뜻하는 순우리말인 것이다. 그런데 국토지리정보원 지도를 보면 이 수리봉이 한자로 ‘守理峰’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지나친 억지임을 알 수 있다. 이 예로 단옷날(端午)의 순우리말이 수릿날인 것만 봐도 알 수가 있다. 즉 추석이 달의 축제였다면 단오는 태양의 축제인 바, 태양이 높은 하늘의 한가운데 떠 있는 날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 수리가 우리 몸에 들어오면 정수리가 된다. 맨 위에 있기 때문이다. 독수리의 어원도 마찬가지다. 예로부터 이 녀석이 높은 곳을 날아다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산봉우리’라는 말을 많이들 쓴다. 이것도 산봉수리에서 ‘ㅅ’이 탈락하여 산봉우리가 된 것이다. 이 말의 파생어가 ‘사라’ ‘서리’ ‘수레’ ‘수락’ ‘싸리’ 등으로 변하게 되었는데 서울에 있는 수락산도 결국 이와 같은 의미의 높은 산이라는 의미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지맥을 할 때 많이 나오는 지명이 있다. 바로 ‘수레너미고개'라는 곳이다. ‘싸리재’도 마찬가지다. 수레가 지나갈 만한 크기의 고개라거나 싸리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 아니다. 이런 고개들은 우리 옛 선조들이 보기에는 그저 ‘높은 고개’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걸 지역마다 달리 부른 것이고 그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음운변화가 일어나서 변형이 된 거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298쪽

물을 건너,

펜션을 지나면서,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산으로 들어섭니다.

여기까지 산책을 오시는 분들도 계시는구나....

여기도 정말 시설만큼은.....

다리....

그리고 물.....

아이들 놀이터까지.....

선사사대의 거주지?

이런  멋진 곳도 지나고....

돌 하나 올려놓고.....

휴게소.....

여기는 아직도 겨울......

어딘가?

지도 #2

어디 있나?

아.... 여기....

공사 중....

그나저나 계속 오르막인데.....

고도표

그렇군요.

수레너미재가 709.4m이니까 고도를 한참이나 올려야 하는군요.

수레너미재가 가까워질수록 눈이 많아지고.....

이 여자분은 정말 고생 많았겠습니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고.....

이제 수리넘이재 정상입니다.

좌측은 매화산 방향.

우측은 비로봉 방향.

예전 섬강지맥을 할 때 생각이 나는군요.

우체통까지 있고.....

하산길인 남쪽 사면도 눈이 있기는 마찬가지....

아이젠이 없어서 고생 좀 하게 될까?

이제부터 원주시 소초면을 나와 횡성군 강림면 강림리로 들어섭니다.

앞으로 태종대까지는 7.9km.

아직 반도 안 왔구먼......

수레너미재에서 20m 정도 내려오자 말끔하게 눈은 없어지고....

오늘 날씨가 너무 좋습니다.

누가 만든 소형 케른.....

지도 #3

이제부터 민가가 나타나겠군요.

차단기를 나와,

노거수도 보면서 

마을 안으로 진행합니다.

여기도 전원주택이 즐비합니다.

갈대......

소나무.......

여기도 공사 중......

여기를 뭐 하러 도로확장공사를 하나?

여기서 우틀.

물을 건너면서,

절터를 지나노라니 다시 눈이 보이고......

595.1봉 고개를 넘습니다.

임도를 따라 걷는데 여기는 폐가 한 채가 그대로 있고....

눈에 꺾인 소나무.

표지판 쉼터에서 잠깐 쉬었다 갑니다.

나무계단도 걸어......

인삼포를 지나,

공사용 돌을 넘어서.......

아시내 마을 안으로 들어갑니다.

폐비닐 수거장.

횡성 한우.

숭실 목장을 지나고.....

좌측으로 411번 도로를 봅니다.

도대체 횡지암이 어떤 것인지 알고 이 비를 세운 겁니까?

도대체 알 수가 없겠거늘.....

태종대로 올라갑니다.

예전에는 주필대라 불렸다고 하는데.....

진짜 이방원이 여기서 운곡을 기다린 거 맞아?

맞겠지......

다음 구간 진행방향을 보고는,

오늘 3구간은 여기서 마칩니다.

치악산 둘레길.

정말 괜찮은 곳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