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명산

장군봉 답사에 앞서......

 

창립 14주년 기념 산행 후 뒤풀이

 

사랑하는 해밀산악회가 산행을 시작한지 벌써 14년이나 되었다고 하는군요.

오래 되었습니다.

이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한 시기이니 질풍노도가 아닌 한층 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줄 때이겠군요.

나날이 발전하는 해밀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집행부에서는 이번 14주년 기념행사를 금남정맥이 지나는 장군봉 일원에서 진행한다고 하는군요.

즉 전북 완주의 피암목재 ~ 성봉 ~ 장군봉 ~ 정맥갈림봉 ~ 해골바위 ~ 구수리로 이어지는 약 9km의 구간으로 공지가 됩니다.

저 같은 산줄기꾼이야 산줄기를 얘기하라고 하면 밤을 새워서 할 수 있겠지만 해골바위가 나오고 계곡이 나오면 조금 힘들어집니다.

그래도 해골바위 정도는 삼각산 숨은벽이나 불암산 삼봉탑 뒤에서 자주 보는 것이니 우선은 뻔할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녹색선이 금남정맥

 

산행에 앞서 오늘 지나는 산줄기인 금남정맥을 잠깐 볼까요.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을 보면 자세히 나와 있지만 너무 길고 복잡하니 여기서는 간단하게 살펴보기로 합니다.

우선 정맥이라는 개념은 산경표에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산경표는 저자가 여암 신경준이라고도 하지만 실제는 몇 가지 이유로 저자가 미상인 우리나라 산줄기의 족보이자 그것을 집대성한 책으로 보는 게 일반적입니다.

조선광문회 간 산경표

 

그리고 이 산경표에서는 우리나라의 산줄기를 백두대간과 정맥까지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들에 터 잡아 산줄기의 도상거리가 30km이상인 산줄기 등 몇 가지 조건을 붙여 지맥이라는 하위 개념을 만들어 조상님들께서 알려 주신 산경표를 폭넓게 선용하고 있습니다.

*기맥, 여맥 등 여러가지로 분류하는 분들도 있지만 그 산줄기의 이름이나  길이 그리고 시작점과 끝점 등 여러가지 통일되지 않은 이론이 많아 사안을 너무 복잡하게 하는 고로 저는 정맥 이하의 산줄기는 단순하게 지맥枝脈 하나로 규정합니다.

 

백두대간이라는 이름은?

 

산경표를 보면 우리 조상님은 우리나라의 산줄기가 대륙의 관문인 백두산을 출발하여 물을 만남이 없이 남쪽 끝까지 이어져 남쪽 어디선가 물을 만나는 곳에서 그 산줄기가 맥을 다하는 것으로 상정했습니다.

이론적으로 그렇게 그 산줄기가 내려오다 보니 그 산줄기의 끝은 지리산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끝의 이름을 백두산에서 흘러내려온산줄기가 마지막에서 멈추는 산山이라 하여 頭流山이라 했습니다.

지리산의 옛 이름 頭流山은 이렇게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국어학자들은 그 유래를 다르게 설명하죠.

 

졸저 전게서 32쪽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들어가 생각해 보면 ‘두류’는 우리말을 한자어로 표기한 것에 불과하다. 즉 두류는 옛 우리말 ‘두르’였다. ‘병풍처럼 크게 둘렀다’는 의미다. 곧 ‘큰 산줄기’라는 말로 ‘두름/둠’의 형태였던 것이다. 이 ‘두르〉두류’로 된 것에 적당하고 그럴싸한 한자 頭流를 가져다 붙인 것이다. 또한 ‘지리’는 ‘두르 〉드르 〉드리 〉디리 〉지리’의 과정을 거쳐 변하게 된 것인데 마찬가지로 이 ‘지리’에 적당한 한자인 智異를 가져다 붙여 오늘날의 한자어 지리산(智異山)이 되었다. 즉 구개음화와 전설모음화 과정을 거쳐 결국 오늘의 지리산이라는 이름이 된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는 ‘지루한 산’, ‘지혜로워 지는 산’이라는 말은 삼가자.‘

 

여하튼 산경표에서는 백두대간의 시작을 백두산으로 그리고 그 끝을 지리산으로 못 박았습니다.

의도적이지는 않았겠지만 참 신기합니다.

어떻게 산줄기가 북쪽의 최고봉에서 시작하여 남쪽의 최고봉에서 매조지 할 수 있을까?

'태백산맥은 없다.'의 저자 조석필 선생은 이 신의 조화를 '백두산이 그 시작점에 그리고 지리산이 끝점에 뽑힌 것은 그것들이 최고봉이라는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산이기 때문이었다."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그 산줄기를 놓고보니 이는 우리나라의 모든 산과 물의 근원이 되는 단 하나의 줄기이고 가장 큰 줄기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이 산줄기幹를 특별히 大幹이라 부르게 된 것이고 백두산의 과 두류산의 를 따와서 백두간 다시 말해서 白頭大幹이라 이름하게 된 것입니다.

북한에서도 이를 '백두대산줄기'라 부르는 게 다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어쨌든 우리는 조상님들이 남겨주신 이 백두대간을 선용하기 위하여 오늘도 그 백두대간을 답사합니다.

물론 통일되는 날 그 백두대간을 이어서 계속해서 진행하기 위해 주로 택하는 코스는 북진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백두대간을 하는 분들은 지리산의 동쪽 끝이자 남한 최고봉인 천왕봉을 그 시작으로 북진을 하게 되는 것이죠.

즉 북진을 할 경우 천왕봉을 그 시작점으로, 남진을 할 경우 그 종착지로 천왕봉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산줄기를 엄밀하게 파악해보면 북진일 경우 시작부터 첫 단추를 잘못 꿰게됩니다.

무슨 말일까요?

어법을 따르자면 어색한 말이긴 하지만 우리가 백두대간을 하게 되면 우리가 금과옥조로 여겨야하는 대명제 하나가 있습니다.

산자분수령이라는 말이죠.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라.....

이는 대동여지도의 발문에 나오는 말인데 물론 어법 상으로는 '산은 분수령으로부터 온다.'라고 해석해야 하지만 산꾼들은 이를 하나의 관용구로 파악하여 '산은 스스로 분수령이 된다."라고 해석합니다.

Ridgeline is genuine in that it never crosses water.라고 영역이 될 이 산자분수령을 풀어쓰면 '산은 물을 만나면 그 맥을 다하게 된다.'라고 읽습니다.

 

생각해 보면 대간이나 정맥은 그 산줄기 즉 맥의 끝이 물줄기를 만나는 곳으로 상정한 게 산경표의 골자이며 이는 상당히 논리적이며 또 타당합니다.

 

그런데 산경표에서는 대간의 끝이 지리산이라고 하였지 천왕봉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백두대간의 끝 아니 산경표에서 말하는 지리산의 끝은 어디인가요?

 

신백두대간

 

우리가 아무런 근거 없이 지리산 천왕봉이 그 시작점 혹은 끝점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리산를 가야 물을 만날 수 있을까요?

그 어디에도 물줄기를 눈 씻고 찾아보려고 해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순발력 있는 분들은 천왕봉을 지나 동부능선을 따라 물줄기를 찾아 나섭니다.

그렇게 해서 간 곳이 임천일 수도 있고 경호강일 수도 있으며 남강이 지나는 진양호이기도 하고 한우산에서 좌틀하여 낙동강을 만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임천은 경호강의 하위 물줄기이고 또 경호강은 남강의 하위 물줄기이며, 진양호는 인공호수이며 그렇다고해서 대간이 한우산을 지나 낙동강을 만나는 곳에서 맥을 다하게 되면 그러면 낙동정맥은!

영신봉 ~ 노량에 이르는 신백두대간

 

여기서 도출된 것이 천왕봉까지 오기 전 영신봉에서 우틀하여 삼신봉을 지나 옥산분기점 ~ 금오산을 거쳐 노량으로 진행하여 바다를 만나는 산줄기입니다.

북한지리학회에서 얘기하는 백두대산줄기의 흐름이기도 합니다.

도상거리 1683.9km의 남과 북을 잇는 최장 줄기인 이 산줄기는 바다를 만나는 곳에서 그 맥을 다하게 되니 우리가 주구장창 얘기하는 산자분수령에 어긋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이 설을 지지하게 되는데 박성태 선생은 기존 백두대간에 맞서 이 산줄기를 신백두대간이라 이름하게 됩니다.

 

어쨌든 이 신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두류산 자세히는 지리산의 영신봉을 거쳐 노량으로 오면서 나라 안의 모든 물줄기를 내어 놓습니다.

압록강, 두만강, 청천강, 대동강, 예성강, 임진강, 한강, 금강, 섬진강, 낙동강 등 10대 강이 여기서 비롯되며 그 강들 사이로 긴 산줄기正脈들이 그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서 그 산줄기들의 맥을 다하게 됨을 봅니다.

산경도

 

그 줄기들을 면밀히 살펴본 우리 조상들은 압록강과 청천강 사이에 있는 산줄기를 청천강 북쪽에 있다고 하여 청북정맥, 청천강과 대동강 사이에 있는 선줄기를 청천강 남쪽에 있으므로 청남정맥, 대동강과 예성강 사이에 있는 줄기는 대예정맥이라 했어야 했으나 이는 반도의 끝으로 간다고 하여 특별히 그 해서지방의 이름을 붙여 해서정맥, 예성강과 임진강 사이에 있는 산줄기는 임진북예성남정맥, 임진강과 한강 사이에 있는 것은 한강 북쪽에 있다고 하여 한북정맥, 그 다음인 금강과 한강 사이에 있는 것은 한강 남쪽에 있다고 하여 한남정맥, 금강 북쪽에 있는 것은 금북정맥, 금강남쪽에 있는 것은 금남정맥, 금강과 섬진강 서쪽에 있는 것은 특별히 그 호남지방의 이름을 따 호남정맥, 낙동강 남쪽을 따라 흐르는 것은 낙남정맥, 낙동강 동쪽을 따라 흐르는 것은 낙동강 동쪽에 있다고 하여 낙동정맥, 두만강을 따라 진행하는 산줄기는 특별히 정간이라는 개념을 붙여 장백정간이라 하였으니 이렇게 1대간 1정간 11정맥으로 마무리 됩니다.

이렇게 우리 조상님들은 산줄기와 물줄기를 둘이 아닌 하나로 본 것입니다.

즉 1산줄기 : 1 물줄기의 법칙이 여기에서 도출되는 것입니다.

물론 박성태 선생님은 신산경표에서 이 남한 9정맥을 7정맥으로 재편하기는 했습니다만 여기서는 더 복잡해지니 논외로 합니다.

겹침줄기(금남호남정맥, 한남금북정맥)

 

한편 우리나라의 지형을 살펴보면 청천강이나 금강은 바로 백두대간에서 그 물줄기가 발원하는 것이 아니라 금강의 경우는 속리산 이하와 영취산 이북의 물들을 그 유역으로 하고 있고 이는 청천강과 한강, 예성강 부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가지를 치는 산줄기는 속리산의 경우 경기 안성의 칠현산에서 영취산의 경우 전주의 주줄산(아래에서 자세히 봄)에서 다시 가지를 치게 되는데 이른바 이 한남정맥과 금북정맥의 모체가 되는 겹침줄기가 있게 되고 마찬가지로 이 금남정맥과 호남정맥에도 겹침줄기가 있게 됩니다.

그래서 산경표 지은이는 이 겹침줄기를 한남금북정맥과 금남호남정맥이라는 이름을 붙여 1대간 1정간 13정맥으로 산경표는 마무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청남, 청북정맥 상의 겹침줄기('가'줄기)와 해서정맥과 임진북예성남정맥 상의 겹침줄기('나'줄기)

 

그런데 여기서 의혹이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이 산경표의 저자는 무슨 이유에서 청북, 청남정맥의 마대산 ~ 낭림산 구간(엄밀하게는 소마대령~웅어수산)의 겹침줄기 56.1km해서정맥과 임진북예성남정맥의 모체인 양지봉 분기점까지의 87.1km 구간이역시 겹침줄기인 것은 마찬가지임에도 위 한남금북정맥이나 금남호남정맥과는 달리 정맥 혹은 다른 어느 이름도 붙이지 않고 무시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무지한 저로서는 스저 한용운의 시를 인용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그래서 1대간 1정간 15정맥이 아닌 13정맥으로 부르게 된 것입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가 있을 때 하기로 하고 오늘은 이 정도에서 정맥은 마치기로 합니다.

3정맥의 갈림봉인 조약봉

 

오늘 진행하는 금남정맥을 봅니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금남정맥은 금남호남정맥에서 분기합니다.

그런데 그 분기점을 혹자는 주화산이라고도 하고 신산경표의 박성태 선생님은 조약봉이라고도 합니다.

어떤 일이 있는 걸까요?

 

금남정맥 개관

 

금남정맥을 봅니다.

 

조선의 운명이 풍전등화처럼 위태로워지자 조선이 낳은 천재 육당 최남선(1890~1957)은 일본 유학을 접고 귀국을 하게 됩니다.

그러고는 일제침략으로부터 조선의 역사와 지리를 지키기 위해 어린 나이인 1910년에 조선광문회를 설립하게 되죠.

출판사를 겸하고 있던 일종의 법인체였습니다.

이 조선광문회의 첫 작업이 역사 서적으로는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그리고 동국통감 등의 출간이었습니다.

이중환의 택리지

 

그리고 지리 서적으로는 산경표에 앞서 제일 먼저 간행한 것이 1912년 출간 된 이중환의 택리지입니다.

당연히 영인본 작업이었습니다.

 

택리지는 산경표의 원전?

 

저는 개인적으로 산경표의 원전原典 아니 모체母體를 이중환의 택리지로 보고 있습니다.

비단 육당이 이 택리지를 소개하기를 우리나라 지리서 가운데 가장 정요精要한 것이며 또한 인문지리학의 최초 발명이다.”라고 극찬을 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나아가 이 소개문에서 택리지가 이미 일본어로 번역되어 일본에 소개된 책일 정도로 글로벌한 책이었기 때문만도 아닙니다.

 

뭐 사실은 그랬습니다.

최보영의 논문

 

이 책은 1881년 일본 외무성 소속의 외교관 곤도 모토스케近藤眞鋤가 일본어로 번역을 하여 조선팔역지朝鮮八域地라는 이름으로 일본에서 출간되었던 그것이기도 합니다.

조선 침략을 위하여 조선의 문학, 역사, 철학 나아가 인심까지 파악할 수 있는 인문지리학서로서 이만한 게 없다고 본 것이겠죠.

고토 분지로의 조선기행록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청화산인 이중환의 가장 열렬한 팬은 사실 고토 분지로(小藤文次郞, 1856~1935)였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는 그러니까 우리나라에 산맥이라는 이름을 처음 보급했다고 하여 저와 같은 '산경파 교도敎徒'들에게 악명(?)을 떨치고 있는 동경제국대학 지질학과 교수였던 고토 분지로.

바로 그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논문 '조선산맥론'에 이중환의 택리지의 팔도총론 도입부를 아예 통째로 인용합니다.

'곤륜산의 한 줄기가 대사막(고비사막)의 남쪽을 지나 동쪽에 이르러 의무려산이 되었고, 이곳부터 줄기가 크게 끊어져 요동평야가 되었다. 그 들판을 건너서 다시 솟아나 백두산이 되었다. 곧 산해경에서는 이 산을 불함산이라 부른다......중략...한 줄기가 조선산맥의 우두머리가 되었다.'는 대목이 그것입니다.

 

고토는 여기서 이중환으로부터 산맥을 배우게 되었고, 택리지의 산수편으로 들어가서는 우리나라 산줄기의 흐름을 파악하기에 이릅니다.

그러고는 우리나라의 지질구조를 파악하기 위하여 태백산맥을 만들고 소백산맥을 만들었던 것이죠.

- 고토가 얘기하는 태백산맥의 산맥은 이중환이 얘기한 조선산맥의 산맥과는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이중환의 택리지.

 

그 정도로 일본은 물론 청나라 심지어는 프랑스에서도 알아주었던 책이 바로 택리지였던 것이죠.

이 책은 이렇듯 국외에서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호평을 받던 책이었습니다.

당시 대중교양서 내지는 베스트셀러였다(신정일,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서문)는 것이죠.

 

이렇듯 조선 후기의 전통지리학과 역사지리학을 확립한 책으로 평가받는 택리지를 정인보같은 대학자가 가만히 보고 있을 리 만무했습니다.

그는 "김정호의 대동지지는 수학적이요, 이중환의 택리지는 철학적이며, 대동지지는 정지靜止요 구분區分이며 이중환의 그것은 활현活現이요 융관融貫이다......"라고 극찬하기도 했으니 재삼 다른 이들은 일부러 거들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마이산 - 주줄산珠崒山, 주화산珠華山

 

각설하고 우리가 지금 금남정맥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니 관련 항목을 택리지에서 찾아보기로 하죠.

이중환의 택리지 산수편山水篇을 보면 '백두대간이 속리산과 덕유산을 지나면서 갈라짐이 더욱 심해진다.'고 나와 있습니다(俗離德裕二山分擘尤多).

 

그리고 '덕유산의 정기는 서쪽으로 이어져 마이산과 추탁산이 되고, 마이산 서쪽과 북쪽으로 뻗은 두 산줄기가 진잠(대전 유성, 공주 부근)과 만경에서 그쳤다.'고 적고 있습니다.

 

이 내용이 후일 산경표에서 금남호남정맥이 지금의 대동금남정맥 혹은 신산경표의 금강정맥과 금남정맥으로 분화하는 모습입니다.

마이산이라는 이름은 공정대왕(정종)이 명명한 이름이라고 밝힌 이중환은 마이산에서 이어진 산줄기가 북쪽으로 이어지며 주줄산珠崒山이 되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 일설에 의하면 마이산은 태종이 붙여준 이름이라고 하지만 택리지에는 정종이라고 못 박았죠

 

주줄산珠崒山을 찾아서.....

 

그리고 이 주줄산이 전라도 산줄기의 주축이 됨을 아울러 밝히고 있습니다.

주줄산珠崒山 ?

현대 지도를 찾아보면 그 어디에도 주줄산이라는 산이름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도 찾아봐야죠.

먼저 이제부터 오늘 우리가 진행하는 금남정맥의 뿌리를 살펴보겠습니다.

 

주지하다시피 이 줄기의 계보는 백두대간이 영취산에서 갈라져 금남호남정맥이 되고 다시 삼정맥 분기봉에서 가지를 쳐 금남정맥이 됩니다.

 

즉 백두대간 - 금남호남정맥 - 금남정맥 순입니다.

 

산경표를 보면 백두대간의 육십치 - 장안치 - 본월치 - 백운산으로 이어지게끔 표기되어 있어 자칫하면 지금의 영취산도 없고 장안산도 없는 관계로 그들의 존재유무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그것을 다행히 금남호남정맥 편에서 장안산 ~ 노치로 이어가면서 금남호남정맥의 시작은 장안산 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동여지도의 주줄산

 

혹시나 하여 대동여지도를 찾아보면 그 부근에 주줄산珠崒山이라고만 표기되어 있습니다.

나아가 대동여지도에는 영취산의 위치가 지금의 위치와 동일하여 찾는 이의 마음을 적이 안심시켜 주기도 합니다.

대동여지도 한글판

 

다만 대동여지도의 장안산의 위치가 좀 애매하기는 합니다.

즉 한남금북정맥 자리가 아닌 백두대간 상에 위치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는 경남 안의현(지금의 안의면)의 군현 지도와 전북 장수현(장수군) 군현 지도가 서로 상이한 점이 있음을 감안해야 합니다.

 

즉 이 대동여지도는 고산자 김정호가 직접 발품을 팔아 만든 지도가 아니고 각 군현지도를 취합聚合하여 제작한 지도이기 때문에 각 지방 지도 간의 오차를 인정해야 한다면 이것도 그냥 무시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고산자는 측량기사가 아니고 세계 최고의 지도제작자였다는 얘기죠.

 

조약봉이란 이름을 들어보셨나요?

 

이제 금남호남정맥은 장안산을 지나 그 유명한 마이산을 거쳐 금남정맥과 호남정맥의 분기점으로 옵니다.

현대 지도의 개념도를 보면 조약봉585m이라는 봉우리가 나오는군요.

박성태 제작의 신산경도

 

이 지도는 신산경표의 박성태 선생이 만든 지도로 사실 조약봉이라는 이름 역시 선생이 임의로 만들어 붙인 이름입니다.

나라에서 공인한 산이름이 아니라는 얘기죠.

진혁진이 제작한 개념도

 

이뿐만 아니라 등산지도 가령 진혁진 개념도 같은 부류를 제외한 여타 지도 가령 영진지도나 동아지도 같은 곳에도 역시 조약봉이라는 이름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 걸 볼 때 진혁진 지도는 그저 산행하는 이들의 편의를 위해서 만든 개념도이므로 신산경표의 산경도를 기초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여집니다.

김형수님 제작의 마이산 등산지도

 

다만 단산單山 산행의 지침서 역할을 하는 김형수님의 '한국 555 산행기' 지도에는 조약봉이 아닌 주화산이라는 이름이 보입니다.

우리같이 산줄기 산행을 하는 분들도 김형수님의 지도만큼은 후한 점수를 줍니다.

단산 산행 위주의 등산지도이면서도 그 산줄기의 이음을 꼼꼼하게 표기하였기 때문이죠.

김형수 제작의 운장산편 등산지도

 

그래서 살펴본 김형수님의 이 부근 지도 즉 마이산이나 운장산 편을 보면 '주화산'이라는 글자가 이 삼정맥 분기봉 쪽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재삼 강조하거니와 이 조약봉은 나라에서 공인한 즉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 나오는 그런 산이름은 아닙니다.

나아가 예전 우리 조상들 그 누구도 조약봉이라는 이름을 몰랐습니다.

심지어는 이중환이나 김정호조차도 몰랐던 산이름이라는 것입니다.

국토지리정보원 지도

 

보시다시피 국토지리정보원 지도는 물론 영진지도에도 이 분기봉은 다만 565.3m로 고도만 표기되어 있을 뿐 산이름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만 바로 옆에 조약치라는 고개가 있어 이 고개 이름에 착안하여 조약봉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오긴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조약봉은 박성태 선생께서 정맥을 설명하기 위하여 편의상 붙여놓은 이름입니다.

가령 섬강지맥(신산경표 상 영월지맥 일부)을 걸을 때 우리가 인식했던 '삼계봉'이라는 산이름이나 영산남지맥(땅끝기맥)을 할 때 만났던 삼계봉과 다 마찬가지 이유입니다.

삼계봉 역시 평창군, 홍천군, 횡성군 등 세 개의 군이 만나는 경계에 있는 무명봉인 1104.6봉에 박성태 선생께서 편의상 붙여 놓은 이름 아닙니까?

 

한강지맥과 섬강지맥(선생은 영월지맥)의 설명의 편의성 때문이었습니다.

 

이 삼계봉 역시 박성태 선생의 작품이지 국가에서 공인한 이름은 아니라는 얘기죠.

하지만 이런 '봉따먹기'와 무관하고 오히려 산줄기를 설명하기 위하여 꼭 필요한 산이름은 조금 더 사용하다보면 필경 그 이름으로 굳어지게 될 것이니 그럴 거라면 하루빨리 누군가의 발의에 의하여 지명위원회에 회부되어 공식적인 이름으로 부여받아야 할 그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 유래는 꼭 알아야 할 필요는 있을 겁니다.

 

그러면 이번에는 대동여지도를 볼까요?

보시다시피 대동여지도에도 이 분기봉은 그저 무명봉에 불과합니다.

대동여지도의 주줄산

 

다만 그 위에 주줄산(珠崒山, 한글로 누군가가 주화산으로 표기한 곳)만이 큰 산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택리지에서 얘기하던 그 주줄산珠崒山입니다.

 

인터넷을 검색해 봅니다.

 

운장산은 『신증동국여지승람』·『산경표』·『택리지』 등에는 주줄산(株崒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1911년 일제에 의해 1:50,000 지도를 만들어지면서 운장산과 주줄산이 병행되어 표기되다가, 1918년 지도부터는 운장산으로만 표시되고 있다. 이것은 ‘주줄산(株崒山)’의 한자가 어렵기 때문에 지도 제작 과정에서 한자가 쉬운 ‘운장산(雲長山)’으로 바뀐 것일 가능성이 높다.

 

운장산이라는 이름이 등장하게 된 것은 조선 시대 정여립 사건과 관련이 있는 송익필의 자가 운장(雲長)이었던 데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다. 송익필에 관련된 전설은 독제봉[운장산 서봉]과 오성대 등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송익필은 정여립을 체포할 당시 진안 현감 민인백과 같은 서인 계열이었다.

 

주화산珠華山은 가공된 이름인가?

 

그렇다면 산세가 빛나고 화려하다는 의미라고 읽힐 수도 있는 주화산은 과연 실재하는 산이름이냐 하는 말입니다.

사실 주화산이라는 이름을 근자에 쓰신 분은 바로 우리에게 산경표를 발굴하여 전해준 우리나라 대동여지도에 관한 한 최고의 권위자인 이우형(1934~2001) 선생이십니다.

 

1980년 인사동 고서적 책방에서 산경표를 발견한 선생은 그에 따라 산경도를 그립니다.

그러고는 산경표의 내용에 따라 주화산이라는 산이름을 부여합니다.

 

그것을 '태백산맥은 없다'의 저자 조석필 선생이 발끈하며 반박을 하였습니다.

- 다만 조석필 선생도 산줄기 설명의 편의를 위하여 무명봉인 이 삼정맥 갈림봉을 이우형 선생의 제안에 따라 주화산이라는 이름을 빌어 설명을 하긴 하였음.

 

주화산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주줄산이라는 것입니다.

한번 살펴보기로 합니다.

 

여기서 잠깐 지금의 금남호남정맥의 끝을 보죠.

이곳이 주화산이자 일명 조약봉이라고도 하는 곳입니다.

조약봉을 괄호 처리한 것을 보면 주 이름은 주화산이고 그 이명이 조약봉이라는 뜻입니다.

 

박성태 선생이 이우형 선생에게 밀린 모양새입니다.

주줄산 이정목

 

어쨌든 이 이정표는 진안군청 작품입니다.

산이름의 표기의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이 정도면 우리나라 지자체도 장족의 발전을 했다는 느낌입니다.

정맥이라는 산줄기를 인식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면 조금 전 이야기 했듯이 주화산은 어디서 온 이름일까요?

우선 인터넷의 검색창에 주화산을 치면 바로 관련 내용이 뜹니다.

 

옮겨볼까요?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세동리와 완주군 소양면 신원리에 걸쳐 있는 산.

[개설]

주화산은 진안군 부귀면 세동리와 완주군 소양면 신원리의 경계에 있는 565m의 산이다. 경위도상으로는 북위 35° 50′, 동경 127° 19′에 있다. 모래재 터널에서 북쪽으로 700여m 떨어진 지점에 있는 봉우리이다.

[명칭 유래]

예전에는 이름이 없었으나, 2000년대 이후 산악인들이 주화산이라 이름 지었다.

[자연환경]

산악인들은 이 주화산을 백두대간의 영취산에서 시작한 금남호남정맥의 마지막 지점으로 상정하고, 이를 기점으로 북쪽으로 금남정맥, 남쪽으로 호남정맥의 기점으로 삼고 있다. 이 부근을 기점으로 금강[정자천], 섬진강[부귀천], 만경강[완주군 소양면 소양천] 등 3개 강의 수계가 나누어진다.

 

주화산이 산악인이 만든 이름이라고요?

그것도 2000년 대 이후에!

천만의 말씀!

말도 안 되는 얘기!

인터넷의 폐해!

누가 하나 긁적거려 놓으면 마치 그것을 자기가 만든 것인양 임의로 퍼나르고는 출처를 밝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근거 문헌의 기본은 택리지와 산경표입니다.

이중환은 마이산 - 주줄산이라고 했으니 산경표의 금남호남정맥 편에서 마이산에서 이어지는 산이 주줄산이 아닌 珠華山으로 표기되어 있군요.

 

이우형님이 산경도를 그린 건 1980년대입니다.

그 실체를 찾기위하여 산경표를 보겠습니다.

먼저 차례대로 금남호남정맥 편을 봅니다.

산경표

위 산경표의 금남호남정맥 편을 보면 마이산 - 주화산珠華山 - 금산정맥錦山正脈이라고 기재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금산정맥은 금남정맥의 명백한 오기입니다.

 

이번에는 금남정맥 편을 봅니다.

산경표

 

위 금남정맥 편을 보면 마이산 - 주줄산珠崒山으로 되어 있고 이명으로 주줄산酒崒山 혹은 酒耳山으로도 불린다고 써있습니다.

 

이는 필사본에도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을 그대로 배껴서 주줄산을 주화산으로 한 것인지 아니면 이 영인본을 제작할 때 인쇄공의 실수로 활자를 뽑으면서 珠崒珠華로 오독誤讀하여 활자를 잘못 뽑아 인쇄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심을 가지게 합니다.

 

이는 바로 밑의 금남정맥을 금산정맥으로 잘못 인쇄된 부분에 비춰보면 더욱 그러합니다.

 

왜냐하면 위 산경표에는 물론 다른 고서에도 주이산까지는 불렀던 이명이 있기는 하지만 주화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적은 없기 때문입니다.

'증보문헌비고''여지고'에는 주줄산으로 표기되어 있고, 용담조에도 같은 이름으로 되어 있으나 고산조, 금산조에는 주췌산珠萃山으로 되어 있는 것을 정오표에서 주줄산珠崒山으로 수정한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 옛 산경표의 필사본을 보고 제작한 책이니 그런 오류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었음

 

이해가 가시죠?

한자가 비슷하니 필사를 할 때 술에 취해서 썼는지 아니면 프로포필 같은 주사를 맞고 썼는지 그건 알 수가 없지만 유사한 글자로 써진 것으로 봐서 그렇게 추측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예전의 주줄산은 현재의 운장산으로 보는 게 맞으며 주화산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찬성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주줄산이 현재의 운장산이면서 삼정맥 분기봉도 아니면서 어떻게 그 역할을 하듯이 마이산 - 주줄산으로 되었는가 하는 질문은 우문愚問에 불과합니다.

 

간단하게 설악산과 지리산을 보면 됩니다.

 

즉 반야봉도 지리산이요 천왕봉도 지리산이잖습니까?

굳이 우리 선조들은 이 갈림봉 같은 작은 봉우리는 크게 주줄산에 포함된다고 보았을 겁니다.

안산이나 황철봉도 설악산으로 보고 있듯이 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굳이 삼정맥 분기봉을 표기하여면 박성태 선생님의 표기처럼 조약봉으로 표기한 게 맞다는데 한 표를 던집니다.

즉 조약봉 ⊂ 주줄산(운장산)이기 때문이죠.

 

이는 택리지의 "(주줄산의) 북쪽에 있는 용담은 시내와 산이 기이한 곳이다. 주줄천과 반일암이 있어 병란을 피할 만한 곳이다."라고 적고 있어 지금의 주자천이 예전에는 주줄천이었다는 것만 봐도 그러합니다.

그러니 주자천을 검색하면 나오는 설명도 마찬가지로 아주 잘못된 그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동여지도에는 지금도 같은 이름을 쓰고 있는 程子川이 제대로 표기되어 있는 것만 봐도 그러합니다.

 

주자천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정확하지 않다. 예전에는 ‘추줄천(酋崒川)’ 혹은 ‘수성천(壽成川)’이라고도 불리었다. 『여지도서』에 “[주자천은] 추줄산[현 운장산]에서 발원하고 달계천(達溪川)[현 금강]으로 들어간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수성천을 “추줄산에서 발원을 하여 달계천으로 들어간다.”라고 수록되어 있다. 『호남 읍지』에는 “주자천은 수성천의 상류이며 별칭으로 추줄산에서 발원하여 ‘추줄천’이라고 부른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렇죠?

인터넷에 떠 있는 내용이라고 함부로 신뢰하면 큰일납니다.

추줄천 酋崒川이라는 단어도 주줄酒崒의 주에서 삼수 변을 빼먹고 비슷하게 쓴 글씨酋 아니겠습니까?

주자천이라는 이름은 대동여지도에도 나오는 이름이라 동의를 할 수는 있으나 주출천이 아닌 추줄천이라는 이름은 역시 명백한 오기라 보여집니다.

문제의 원인은 줄자가 잘 사용하지 않는 어려운 한자였다는 것에 있었습니다.

 

따라서 주줄산을 주이산 혹은 운장산으로 부르는 것은 위와 같은 문헌에 의하더라도 타당하다고 보여집니다.

그리고 주화산은 주줄산의 오기임이 명백한만큼 삼정맥 분기점의 산이름을 주화산이라고 하거나, 주화봉이라고 불러서는 절대 안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삼정맥 분기봉을 조약봉으로 부르는 것은 가능할까요?

기술하였다시피 한마디로 "그렇습니다".

 

이 중요한 곳에 위치한 봉우리에 이름을 부여하지 않고서는 이 산줄기들을 설명할 때 매번 '금남호남, 호남, 금남 등 삼정맥분기봉'이라는 긴 이름을 써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작명을 하는 게 부르기 쉽고 기억 내지는 기록의 편의성 때문 아닙니까?

 

갑자기 캐빈 코스트너 주연의 '늑대와 함께 춤을Dances with Wolves'이라는 영화가 생각나는군요.

이름이란 게 그럴 겁니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조상이라고도 믿어지는 몽골 사람들의 이름을 분석해 보면 다 자연이나 생활 습관과 관련된 뜻들입니다.

 

아까도 잠시 봤지만 조석필 선생도 부득이 하게 설명의 편의를 위하여 주화산을 사용하였잖습니까?

이번에 나선 분이 바로 박성태 선생이셔던 것입니다.

선생께서는 이러한 불편을 극복하고자 한 가지를 제안하신 게 그거 아닙니까?

즉 무명봉으로 그냥 놔둘 것이 아니라 바로 옆에 조약치라는 고개가 있고 이 봉우리가 세 개의 정맥과 관련 있는 봉우리이니 아예 '조약봉'이라는 이름을 부여하자는 것입니다.

 

그러고는 신산경표에 터잡아 그린 산경도에 '조약봉'을 넣습니다.

 

물론 박성태 선생님께서 이런 복잡한 내용을 살피신 다음에 조약봉이라는 이름을 부여한 것은 물론 아닙니다.

하지만 조약봉이라는 이름을 붙인 그 취지에는 공감합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산꾼들에게도 회자膾炙될 정도로 보급도 많이 되었습니다.

다만 이 봉우리가 완주군과 진안군에 걸쳐 있는 봉우리이고 특히 진안군에서는 이 산줄기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인식을 하고 있는만큼 하루빨리 지명위원회를 열어 이 산이름을 공식화하는 절차를 밟아야 할 것입니다.

 

이 정도만 살펴보고 이제 피암목재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