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하나....
가끔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주위에 지나는 개나 돌맹이도 나에게는 좋은 스승이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지만 분에 넘치게도 저 같은 덜렁이에게 이렇게 훌륭한 스승 혹은 사부를 많이 가지 행운아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그것입니다.
공부에 관한 한 그런 분들을 만난 기억은 중학교 시절 이외에는 별로 기억이 나질 않는군요.
그런데 제가 좋아서 하는 산줄기를 하고 난 이후로는 여러분들이 저의 師表로 다가옵니다.
멀리는 준희선생님이나 조석필선생님, 박성태선생님, 신경수선생님, 배창랑선생님, 정병훈 선생님....
그리고 가까이는 킬문형님, 케이선배님, 산으로님, 본듯한님, 배병만님, 덩달이선배님 그리고 노웅희선배님까지.....
그런데 어젯밤 갑자기 놀랄만한 댓글 하나를 받았습니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호남정맥의 추억을 일깨워 준 댓글이었는데 무대는 바로 보성다원이 있는 곳 부근의 대룡산이었습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대룡산은 마루금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점, 어차피 대룡산도 호남정맥에 포함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는 평소의 관념 그리고 정상석까지 있다는 명산이라고 하는데 안 가 볼 이유가 없었습니다.
대열을 이탈하여 혼자서 그 대룡산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大龍山의 詩碑
평평하고 널찍한 곳에는 깨끗한 오석으로 만든 정상석이 있었고 한 문중의 자손의 번성을 바라는 飛龍登天이라는 멋진 漢詩가 역시 오석에 새겨져 있었으며 그 옆에 '大龍山詩碑'가 역시 잘 알지 못하는 서체로 멋지게 음각되어 있었습니다.
더운 여름이라 땀을 닦으며 읽어보았습니다.
"노령의 동남끝에 비등하는 산이여. 조계와 백운까지 힘차게 뻗었어라....."
잠시 멋진 분위기에 심취되어 있던 저는 정신이 번쩍들었습니다.
이하 당시 제 기록에 나와 있는 글입니다.
아!
그런데 이게 뭡니까.
그 비 뒤에는 대룡산이라는 시가 적혀져 있는데 '노령 운운...'하는 글이 씌어져 있습니다.
이 시에 의하면 조계산과 백운산이 노령산맥에 속해 있다고 하는데....
다음(daum) 사이트에 들어가서 노령산맥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노령산맥 (蘆嶺山脈)은 소백산맥(小白山脈)의 지맥입니다.
소백산맥의 중부 추풍령(秋風嶺) 부근에서 남서 방향으로 전주시와 순창군의 중간을 지나, 웅령(熊嶺)·모악산(794 m)·내장산(655 m)·노령 등을 일으키고, 다시 무안반도(務安半島)를 거쳐 쌍자제도(雙子諸島)에 이르는 중국 방향으로 뻗은 고기습곡산맥(古期褶曲山脈)으로, 저산성산지(低山性山地)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산맥과 소백산맥과의 사이에는 폭 10~20 km의 남서방향의 지구상 고원(地溝狀高原)이 전개되어 있으며, 이곳을 금강(錦江)이 북류하고 섬진강(蟾津江)이 남류하는데,
진안고원(鎭安高原)이 양 하천의 분수령을 이루어 가장 높습니다.
그 남연(南緣)의 화강암지대에 남원분지와 순창분지가 발달되어 있습니다.
평균높이가 가장 낮은 노년기 산맥으로 산맥의 서부에는 드넓은 호남평야가 전개되고, 산맥 북쪽에는 덕유산 국립공원의 무주 구천동 계곡이 있으며, 내장산 일대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참 복잡합니다.
그리고 남쪽 지녁의 산과 관련되어서는 그 어떤 살명도 없습니다.
나아가 위 그림의 위치도를 보면 어느 줄기를 이야기 하는 것인지도 불분명 하고 더욱이 지금 이 대룡산의 방향과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그것은 그 우측에 있는 소위 소백산맥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어떤 자료에는 노령의 맨끝에 있는 산은 목포의 유달산이라고도 하는데....
그렇다면 이 대룡산은 어느 산맥에 속한 것이라는 말입니까.
가장 확실한 대답은?
예. 그렇습니다.
이 산줄기 그림만 봐도 확실하지 않습니까?
이 대룡산은 소백산맥도 노령산맥도 아닌 그 어느 산맥에도 속하지 않은 고아(孤兒) 산이라는 결론입니다.
그냥 간단하게 백두산에서 내려온 대간줄기가 전라북도 영취산에 이르러 가지를 하나 치니 그 줄기가 곧 호남정맥인데 그 정맥 줄기에서 운운....하며 이 대룡산을 설명하면 될 것을 뭐 노령의 동남끝이라는 이상한 학자들이나 르뽀 작가들이 아무 생각 없이 써 놓은 구절을 그냥 인용하셨으니 이런 우(愚)를 범하게 된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렇게 배웠으니 그렇게 알아 들을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저 문중에 우리 같이 이렇게 산줄기 산행을 하는 자손들이 있었다면 분명히 노령산맥이 아닌 호남정맥으로 바로 잡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일제때 고토 분지로에 의하여 잘 못 만들어진 산줄기 이름을 바로 잡아야 할 이유 중의 하나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몰랐었습니다.
당연히 이글을 적으신 분도 모르셨고....
조정래선생님도 '태백산맥'이라는 제하의 대하소설을 쓰셨으니 더 말을 해 무엇하겠습니까.....
각설하고 댓글의 내용을 보겠습니다.
2015년 구정을 맞이하여 '호남정맥'을 검색하던 중 귀하의 산행기록과 산행사진을 보고 감격하였습니다. 뒤늦게나마 답글을 올립니다. 소인은 1936년생. 시인 겸 향토사학자입니다. 소인이 공부할 때는 '호남정맥'이란 것이 없었습니다. 노령산맥의 한 줄기가 동남으로 벋어 대룡산을 이루었다고 배웠습니다. 대룡산시비의 앞뒤는 소인의 작품입니다.문학작품으로 보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시 대룡산에 등반하시면 '하동정씨 4선생시비'도 보실 수 있습니다. 2014년 9월에 대룡산 정상에 세워놓았습니다. 앉아서 시도 감상하시고 산 아래 풍광도 조망하셨으면 합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초당 정영기 배사.
정말 송구스러웠습니다.
그러고는,
존경스럽습니다. 권태화 선생님! 소인이 알고 있는 지식이 일제강점기 때의 잔재인 듯 하여 부끄럽습니다. 권선생님의 글을 통하여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소인도 일찍이 <강동 역사와 문화>를 저술할 때 서울 강동의 지리적 위치를 '백두대간이 남서로 행도하여 속리산에서 분맥한 한남금북정맥을 따라 한남정맥에 이른다'고 기술하였습니다. 옛날에는 차령산맥의 한 줄기로 표현하였지요. 소인도 젊었을 때는 학생들을 이끌고 전국의 명산을 두루 올랐는데 죽을 고비도 많았습니다. 소인의 문집에 사진이 없는 산행일지가 있습니다. 인터넷 검색어 '초당 정영기'를 크릭하시면 소인을 대강 아실 수 있습니다. 소인의 처도 안동권문입니다. 언제 대룡산에서 만나뵐 수 있었으면 영광이겠습니다. 010-0000-0000 초당 정영기 배사.
이라는 글이 올려졌고 오늘 새벽에는,
존경하는 권태화 선생님! 誤記를 바로잡아 놓겠습니다. 현재 인쇄중인 著書에 ‘노령’을 삭제하고 ‘호남정맥’으로 정정하겠습니다. 그리고 ‘大龍山詩碑’에도 ‘호남정맥’으로 정정하여 刻字해 놓을 생각입니다. 騷人墨客들은 명산에 올라가 시와 그림을 남겨놓습니다. 등산가이신 귀하의 생각은 어떠하시는지요? 艸堂 정영기 拜謝
이라는 글이 올려져 있었습니다.
존경한다는 말씀과 선생님이라는 말씀은 분에 넘치고 가당찮으나 선생님의 우리 향토에 대한 사랑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올해가 잃었던나라를 되찾은지 70년이 되는 해입니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역사를 부정하면서까지 과거의 침략행위를 재연하기 위하여 혈안이 되어 있음을 신문과 방송을 통하여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빼앗기고 없어진 우리의 산줄기 백두대간.
심훈의 시와 노찾사의 동명 음악 '그날이 오면'이 불현듯 떠오릅니다.
4월 중순에는 제가 잘 아는 그랜드 산악회에서 대룡산 구간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때 그 대룡산에서 초당 선생님을 뵐 수 있을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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