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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TWINS/칼럼

천리장성

 

우리나라의 부족국가시대이든 철기 문명이 들어온 이후의 삼국시대이든 나라와 나라의 경계는 지금과 같이 대부분 강 혹은 산줄기가 그 역할을 수행했을 겁니다. 우리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보기 시작한 지리부도와 사회책에 나온 우리나라의 산맥과 강 이름을 외우고자 얼마나 노력을 했던가 지금 생각하면 헛웃음만 나옵니다.

솔직히 얘기해서 강이름은 그런대로 외우기 쉬웠던 거 같은데 산맥 이름은 태백산맥과 소백산맥 그리고 서울 인근의 광주산맥까지는 좋았는데 그 다음부터가 문제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그때 외우기 방법인 산맥의 첫 글자를 따서 외우는 방법.

즉 마천령과 마식령 산맥이 좀 헷갈리긴 하지만 마천령과 함경산맥은 열외로 하고 낭림은 본 즉시 외웠으니까 됐고, 강적묘언 멸마광 차노소.

이렇게 해서 14개를 외웠는데 어찐된 일인지 다른 건 어릴 때 외운 건 다 안 잊어먹는데 이상하게 산맥 이름은 다 잊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지금 기억 나는 건 역시 함경도가 있으니까 함경산맥 그리고 위치가 불분명 하지만 마천령, 마식령 산맥 그리고 태백, 낭림, 광주, 차, 노, 소 정도.

그것도 산에나 다닌다고 하니 그 정도를 기억하고 있는 것 같고....

그 중에서 정말이지 강남산맥은 있는 지도 모르게 새까맣게 잊어먹은 거  였고, 사실 그게 있다고 하더라도 광주산맥을 몰랐었다면 서울 강남을 지나는 그런 줄기로 이해하기 십상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 산맥 이름에 비해 강이름은 외우기가 쉬웠지요.

북쪽부터 압록강, 강감찬 장군의 살수대첩인 청천강, 평양이 있는 대동강, 그리고 황해도의 예성강 판문점의 임진강, 한강, 금강, 목포 영산강, 화개장터 섬진강 그리고 낙동강과 김정구의 두만강.

알고 보니 이들 강이 우리나라의 10대강이라고 한다는군요.

우리 민족에게 산이라는 이름은 여러 의미로 다가옵니다.

백두대간이라는 이름이 이 분에게 조금 더 일찍 알려졌어야 하는데 뒤늦게 알려지는 바람에 엉뚱한 제하의 대하소설이 되어 버린 조정래 선생님의 희대의 역작 '태백산맥'.

그 태백산맥에서 조정래 선생님은 민초의 삶과 일체인 산을 안타까운 산, 한스러운 산, 서러운 산, 고통스러운 산, 그리운 산 등으로 표현하고 잇습니다.

땅속의 산이 아닌 사람이 만지고 바라보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인 산으로부터 베풂을 입고 은혜를 입으면서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런 생활을 하면서 인간들은 자연스럽게 산을 신성시하게 되었고 그 이음인 산줄기와 그것을 구분하는 강을 둘이 아닌 하나로 보면서 우리 생활과 접목하여 인식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나라 국토의 70%가 산지인 우리나라로서는 이는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서 여기에 얼토당토 않은 중국 방향이니 랴오뚱 방향이니 한국 방향이니 하는 방향을 설정하여 산맥을 구분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사실 산맥을 진행하는 방향으로 나누어 구분을 한 것도 고토 분지로의 대선배격인 독일의 리히트호펜이 1881년 한국에도 들어오지 않고 중국에 가만히 앉아 우리나라의 지도를 보고 서북부 산지가 자신이 연구한 랴오뚱방향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고대산~지장봉~관인봉을 종주하면서 느낀 점을 좀 적어 보기로 합니다.

 

고토 분지로의 논문을 중심으로 엮은 '조선기행록'이라는 책에서 고토는 우리가 배웠고 지금도 배우고 있는 산맥 이름을 설시를 하였고

리히트호펜 [Ferdinand Paul Wilhelm Richthofen, Freiherr von] 

1833. 5. 5 프로이센(지금의 폴란드) 슐레지엔 북부 카를스루에~ 1905. 10. 6 독일 베를린.

독일의 지리학자·지질학자.

중국에 관한 주요저서를 집필했으며 지리학 방법론을 발달시키고 지형학의 학문적 체계를 세우는 데 기여했다. 지형학이란 육지와 해저 기복의 형상을 다루는 지질학의 한 분야이다.

리히트호펜은 돌로미티 알프스와 트란실바니아 등지의 지질학 조사를 통해 명성을 얻은 뒤 1860년 극동으로 파견된 독일 경제사절단에 지질학자로 참여했다. 스리랑카, 일본, 타이완, 셀레베스 군도, 자바, 필리핀 군도 등지를 방문했으며 방콕을 출발해 모울메인, 미얀마 등지로 여행했다. 여기서 그는 다시 캘리포니아로 가 1863~68년 사이 그곳에 머무르면서 지질조사를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금광을 발견하기도 했다. 다시 동방으로 돌아온 뒤에는 중국 전역을 답사하면서 자료를 수집해 〈중국, 그 여행의 결과와 이를 기초로 한 연구 China, Ergebnisse eigener Reisen und darauf gegründeter Studien(1877~1912) 5권과 지도서를 펴냈다. 다른 저서로는 〈현대 지리학의 과제와 방법 Aufgaben und Methoden der heutigen Geographie(1833)·〈19세기 지리학의 원동력과 방향 Treibkräfte und Richtungen der Erdkunde im neunzehnten Jahrhundert(1903) 등이 있다.

 

고토가 그의 저서 '조선기행록'에서 밝히고 있다시피 그는 리히트 호펜과 고체의 영향을 받아 위에 언급한 세 가지 방향의 산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