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백두대간 2회차 마무리 산행도 1구간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저수령 ~ 죽령 구간이 바로 그곳입니다.
구간 거리가 약 20km 정도 되니까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슬슬 그 동안 가지 못했던 지맥으로 들어야겠습니다.
2월부터 본격적으로 지맥 산행을 시작할까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어디 따라 갈 때 없을까 지맥 전문 산악회를 기웃거려 봅니다.
마침 '새마포'에서 남강기맥 그러니까 신산경표 상의 진양기맥을 진행한다고 하는군요.
이게 웬 떡입니까?
당일치기로 진행하니까 노모에 대한 부담도 그만큼 덜해질 것이고....
또한 그간 진행도 매주 목요일이군요.
그러면 어쨌든 사무실 업무는 목요일을 아예 휴무로 만들어 놓으면 되겠군요.
12회로 진행을 하여 2017. 4. 6.마친다고 하니 역시 '새마포' 답습니다.
그런데 저는 평소에 이 신산경표 상의 진양기맥의 진행 루트에 대하여 상당한 의문을 품고 있었습니다.
산경표 상의 산자분수령이라는 대명제의 취지와는 사뭇 다르다는 이유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게 어쩌면 제가 존경하는 박성태 선생님에 대한 반감 내지는 불만인 것으로 비쳐질 지 몰라 상당히 조심스러웠습니다.
개인적인 사감私感이 전혀 있을 수 없음은 제 주위에 있는 분들이 더 잘알고 있을 조심스럽게 사견을 개진해 보겠습니다.
먼저 이 진양기맥 혹은 남강기맥에 들어가기 전에 참고로 제가 영월지맥을 마무리하면서 적었던 글을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신산경표에서 영월(기)지맥(이하 '영월지맥'이라고 표기함)이라고 부르고 있는 섬강지맥을 땜빵하는 날입니다.
섬강지맥 졸업 구간이기도 하죠.
섬강지맥이라고 하니까 낯설게 들리기도 할 겁니다.
사실 제가 신산경표에서 규정하고 있는 산줄기 체계 가령 지맥의 분류 기준, 방식, 이름, 근거 등에 관하여 의심을 품게된 단초를 제공해 준 산줄기가 바로 이 영월지맥입니다.
영월지맥이라는 이름을 갖기 이전에는 영춘지맥이라고 불렸다고 하죠?
저는 그 자체가 이상했습니다.
언제는 영춘지맥이었다가 새롭게 영월지맥이 되었다?
영춘이라는 이름은 영월과 춘천이라는 지역의 이니셜을 딴 이름이라는 걸 누구나 쉽게 인식할 수 있을 겁니다.
사실 이게 전혀 별개의 이름인 가령 '갑을지맥'이었다가 영월지맥으로 바뀌었으면 좀 내용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즉 "음, 이게 새로운 체제 혹은 분류기준에 의해 변경된 것이로구만."하는 생각을 가지게 하였다면 더 이상의 다른 '합리적인 의심'을 가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영춘지맥이 영월지맥 + 춘천지맥이라는 내용을 보고는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갖게 되더군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는 얘깁니다.
참고도 #1 영춘지맥의 중복구간
영춘지맥이라고 명명한다면 소위 삼계봉1104.6m ~ 청량봉920.3m까지의 한강기맥의 일부 구간이 이 지맥에 들어가야 한다는 이야기가 되니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상당한 모순입니다.
물론 이들 두 지맥이 한강기맥에서 분기되는 지점 그러니까 삼계봉1104.6m ~ 청량봉1054m까지의 거리는 약 11.2km정도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어차피 이 두 지맥을 이어갈 때에는 하뱃재 ~ 청량봉 ~ 삼계봉 ~ 태기산 주차장 정도로 진행을 하면 그 이후 구간부터는 접속 구간 없이 연속하여 진행할 수 있는 편리성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는 진행하는 이들이 판단할 문제이지 세워놓은 원칙을 자의적으로 해석할 아무런 까닭도 없어 보입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신산경표에 이르러 영춘지맥이라는 이름이 영월지맥과 춘천지맥으로 변경된 것은 아주 타당하고 당연한 결과라 할 것입니다.
참고로 삼계봉이나 청량봉 등 이 두 봉우리의 이름도 국가에서 공인한 이름이 아닌 이 두 지맥을 쉽게 설명하기 위하여 편의에 따라 작명된 산이름입니다.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기맥岐脈이니 지맥枝脈이니 하는 용어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들 개념은 우리가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그것들이 아닙니다.
이들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좀 예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1910년 육당 최남선은 일제로부터 우리나라 고전을 지키고자 조선광문회를 만들어 '산경표'를 영인본으로 발간합니다.
이 영인본 '산경표'를 1980년 이우형 선생이 인사동 고서적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하게 됩니다.
이에 앞서 1903년 일본인 고토 분지로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산줄기 개념인 '산맥山脈'을 마치 자신이 새롭게 명명한 이름인양 '조선 산맥론'이라는 자신의 논문에 버젓이 도용盜用하였습니다.
그러고는 일제 통감부, 총독부에 의해 그 산맥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의 산줄기들이 분해되어 지리교과서에 실리게 되었고 그것은 정당한 산줄기 체계가 되어 우리를 가르쳤습니다.
그러던 것을 이우형 선생이 산경표를 발견하면서 일제가 우리 산줄기 체계를 곡해曲解하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즉 산맥 즉 태백산맥이 맞느냐 산줄기 즉 백두대간이 맞냐는 것입니다.
저는 이 논쟁을 '제 1차 산맥논쟁'으로 부릅니다.
- 2005년 국토연구원 김영표 박사에 의해 주도된 제2차 산맥논쟁은 이 내용과 무관하므로 거론하지 않기로 함
이 '제1차 산맥논쟁'에 힘입어 백두대간을 답사하는 열풍이 불기 시작합니다.
허상 즉 눈에 보이지 않는 땅속의 지질구조선을 걸을 수 없으니 눈에 보이는 실상인 백두대간을 걷자는 것이었습니다.
자세한 얘기는 뒤로 미루겠지만 이우형, 박용수 같은 이들에 의해 산경표가 해제가 되고 그리고 조석필 같은 이에 의해 산경표의 1대간 9정맥이 정착되기에 이르릅니다.
물론 여기에는 1988년 한국대학산악연맹의 학술지 엑셀시오와 1990년 월간지 '사람과 산'에 특집으로 실린 관련 내용들이 한 몫을 거들게 됩니다.
이어 조석필 선생의 '산경표를 위하여'와 그 책의 개정증보판 '태백산맥은 없다'가 산맥을 차별화하는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게 됩니다.
즉 조석필 선생은 이 '태백산맥은 없다'에 기맥이니 지맥이니 하는 개념을 제안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선생은 1대간 9정맥에 한정되어 있는 산줄기의 개념을 기맥, 지맥까지 확장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백두대간은 간幹 즉 기본 산줄기이니 더 건드릴 게 없고 맥脈은 가지 줄기이니 얼마든지 개념 확장이 가능하다는 취지였던 것입니다.
우리나라 산줄기들 중에는 정맥급에 해당하는 즉 10대강 혹은 10대강에 버금가는 세력을 가지고는 있는 줄기들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산경표에 이미 13정맥을 한정하였기 때문에 그들에게 정맥이라는 이름을 부여해 줄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이들 줄기에 정맥 대신 기맥岐脈이라는 계급을 하나 도입하여 부여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는 한강기맥, 영산북기맥 그리고 땅끝기맥을 제시합니다.
여기까지가 조석필 선생의 역할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바톤을 이어 받은 이가 신산경표의 저자 박성태 선생입니다.
선생은 2004년 발간한 신산경표에서 당연히 기맥 개념을 도입합니다.
나아가 기맥에 이어 지맥으로 산줄기의 영역을 확장합니다.
그리고 2010년 개정판에서는 북한의 산줄기까지 포함시키면서 남한의 경우 1대간 7정맥 6기맥 157지맥-최근 5지맥을 추가하여 162개 지맥이 됨-으로 산줄기를 정리하기에 이르릅니다.
그러니 여기에서 거론이 되고 있는 지맥枝脈은 산맥이나 일반 지리학 혹은 지형학에서 얘기하는 산맥의 가지줄기인 지맥支脈과는 다릅니다.
즉 지맥枝脈은 그 이름과 붙여져 고유명사로 활용되고 있으며 반면 지맥支脈은 그저 보통명사의 역할에 그친다는 것이죠.
어쨌든 박성태 선생의 신산경표의 발간을 저는 그야말로 '우리나라 산줄기 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사건'이라 칭합니다.
한편 선생은 한 걸음 더 들어갑니다.
즉 남한의 한북정맥, 낙동정맥 등 9개의 정맥을 7개의 정맥으로 정리를 한 것입니다.
- 7개의 정맥 해설에 관하여는 월간 산 2014. 5월호 ~ 같은 해 12월호에 게재된 졸고拙稿 '남한의 7정맥 가이드' 참조-
산경표의 대원칙인 산자분수령의 원칙에 충실하자는 취지였습니다.
즉 정맥은 10대강을 가르는 산줄기이므로 당연히 그 10대강과 바다가 만나는 합수점으로 가야하고 거기서 맥을 다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산경표의 호서정맥과 금강정맥이 그 결과물입니다.
여기서는 간단하게 신산경표의 호서정맥과 한남정맥 그리고 산경표 상의 한남금북정맥, 금북정맥, 한남정맥을 그 예로 보기로 합니다.
참고도 #2 신산경표의 호서정맥, 한남정맥 산경도
위 참고도 #2의 빨간선이 한남금북정맥이고 파란선이 한남정맥 그리고 검은선 + 녹색선이 금북정맥입니다.
산경표를 근거로 그은 그림입니다.
살펴보면 겸침줄기인 빨간색의 한남금북정맥은 백두대간 상의 속리산에서 분기하여 금강과 한강의 지류를 발원시킵니다.
그러니 이 조건은 정맥의 조건에 부합합니다.
그러나 이 정맥이 맥을 다하는 곳은 이들 강과 바다가 만나는 합수점이 아니라 경기도 안성에 소재한 칠장산 부근입니다.
모순입니다.
신산경표는 이 점에 주목합니다.
그러고는 과감하게 메스를 들이댑니다.
그 끝을 바다와 강의 만나는 합수점을 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남정맥의 경우 한강과 서해가 만나는 곳으로 진행을 하니 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금북정맥의 경우에는 그 끝이 합수점이 아닌 태안의 안흥진으로 가잖습니까.
금북.
말 그대로 금강 북쪽의 울타리가 되어야 하는 산줄기가 금강과 바다의 합수점이 아닌 안흥진으로 가다니!
선생은 백월산에서 그 줄기를 안흥진이 아닌 장항쪽으로 남진南進시킵니다.
그렇게해서 만든 산줄기가 검은선 + 노란선입니다.
그 줄기가 올바로 진행하는 금강과 관련된 정맥으로 본 것입니다.
그러고 나니 겹침줄기인 한남금북정맥의 처리가 문제됩니다.
어떻게 해서든 이를 한남이나 금북에 소속시켜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그 잣대로 '길이' 즉 '도상 거리'를 내세웁니다.
승자독식제勝者獨食制가 여기에 도입됩니다.
금북에 해당하는 그 줄기의 도상 거리는 219.4km이고 한남정맥은 177.4km.
금북의 줄기가 한남정맥보다 세력이 더 큽니다.
따라서 겹침줄기인 옛 한남금북정맥의 158.8km는 금북줄기의 몫이 됩니다.
선생은 이 점에 관하여 "겹침줄기가 있는 경우에는 그 줄기의 끝이 반도를 향하고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상위등급의 강을 따르는 줄기를 본줄기로 하였고, 동일등급에서는 긴산줄기를 본줄기로 하였음"을 밝히고 있습니다(신산경표 32쪽).
그래서 생성된 줄기가 378.2km의 빨간선 + 검은선 + 노란선입니다.
새로 줄기를 만들었으니 이름을 붙여야죠.
당연히 금강이북을 지키고 있는 울타리이니 금북정맥이라고 명명해야 하나, 이 이름은 원산경표에서 이미 사용하고 있는 이름입니다.
박성태선생은 호남정맥이 호남이라는 지방 이름을 붙인 것에 착안하게 됩니다.
그래서 충청남도 지방 부근이 '호서'라는 지방이름이 있으니 여기서 '호서'를 따 호서정맥이라 이름하였습니다.
그렇게 한남금북정맥은 없어지고 호서정맥과 한남정맥 등 두 개의 정맥으로 정리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겹침줄기인 호남금남정맥도 같은 방법으로 정리되어 호남정맥과 금강정맥으로 정리되고....
이렇게 남한의 1대간 9정맥이 1대간 7정맥으로 바뀌게 됩니다.
적어도 박성태 선생의 신산경표에서는 말입니다.
이럴 경우 한 가지 명제를 바로 인식하여야 합니다.
"정맥은 대간과 또 다른 정맥에서 분기한 산줄기"라는 개념입니다.
원산경표에서도 "정맥은 대간에서 분기한 산줄기"여야 한다는 개념은 겹침 줄기 문제때문에 극복이 될 수 없었는데 이 점은 신산경표에 들어서도 마찬가지 결과입니다.
여기에 정리하고 남은 녹색의 옛 금북정맥 자투리가 문제됩니다.
박성태 선생은 "이 줄기(129.4km)가 그래도 예전에는 정맥이라는 이름을 가졌기 때문에 격을 존중하여 기맥"이라는 계급을 부여하여 금북기맥이라 이름합니다.
기맥을 성골聖骨은 아니지만 그래도 진골眞骨 정도로 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맥岐脈은 ① 정맥급에 속할 정도의 세력을 가졌으나 10대강을 구획하지 못한 줄기 가령 영산기맥, ②과거에 정맥이었으나 산자분수령의 원칙에 의해 구획을 하다보니 그 계급을 잃어버린 줄기 가령 금북기맥 등으로 정리가 가능합니다.
내용이야 어떻든 신산경표가 산줄기의 영역을 확장하여 이를 지도로 만들고 책으로 정리하였다는 데 있어서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이 7정맥이 산꾼들이나 민간지리학자들로부터 칭송을 받는 더 큰 이유는 중요하고 '산자분수령'의 원칙에 충실하였다는 데 있습니다.
즉 선생은 산경표의 산자분수령의 정신에 충실하게 하기 위하여 과감하게 용단을 내렸던 것입니다.
9정맥을 7정맥으로 바꾸고 나아가 그 정맥의 끝을 10대강과 바다가 만나는 합수점으로 돌리는 어쩌면 혁명에 가까운 결단이었습니다.
산자분수령이 무엇입니까?
물론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란 원래의 의미는 "산은 분수령으로부터 온다."라는 뜻일 것이고 이게 어법에도 맞습니다.
즉 自는' ~로 부터'라는 조사의 성격을 가지고 있고, 분수령은 낮은 산이나 고개를 뜻하는 고유명사일 것이니 말입니다.
그리고 이는 대동여지도 발문跋文에 등장하는 말이니 산경표와도 그리 관계가 있어 보이지 않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 산경표에 들어오게 되면 그 의미가 달라집니다.
즉 "산은 스스로 분수령이 된다."는 관용구가 된다는 것입니다.
곧 산줄기는 분수계가 된다는 것이죠.
저는 이를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제1원칙'이라 부르기로 합니다.
다시 신산경표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다시 묻습니다.
선생이 위와 같이 9정맥을 7정맥으로 만든 주된 이유는?
예. 그렇습니다.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원칙에 충실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즉 하나의 산줄기는 그 기본 줄기(가령 백두대간)에서 다른 가지 줄기가 갈라져 나올 때(가령 호서정맥) 그 두 줄기 사이에서는 반드시 물줄기 하나가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 가지 줄기(가령 호서정맥)는 그 사이에서 발원한 물(가령 금강)이 더 큰 물(가령 서해바다)와 만나는 합수점에서 그 맥을 다하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를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제2원칙'으로 부르고자 합니다.
이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제2원칙'은 정맥뿐만 아니라 그 계급 이하의 줄기에도 공히 적용된다고 볼 것입니다.
그래서 이 원칙이 중요하고, 이 원칙은 기맥이나 지맥을 논할 때 그 중요도가 더욱 빛을 발한다고 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를 내륙에서 소멸하는 산줄기에 적용을 해보면 위 내용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하나의 산줄기 가령 한강기맥에서 분기하는 다른 산줄기 가령 영월지맥이라고 해서 예외는 없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조금 이따 자세히 보기로 하겠습니다.
한편 박성태 선생은 여기에 머물지 않고 한 걸음 더 들어갑니다.
즉 정맥과 기맥 이하의 산줄기에 눈을 돌립니다.
그러고는 전국의 산줄기를 지도에 그린 다음 백두대간. 정맥, 기맥에서 가지를 쳐 나간 산줄기들을 추려 낸 다음 그 중에서 30km급 이상의 줄기를 다시 추려냅니다.
'30km'라는기준을 세운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안정적이어서 가장 선호하는 '3'이라는 숫자에 착안한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어쨌든 30km 이상의 산줄기들을 추려 지맥의 범주에 집어 넣고 거기에 이름을 붙입니다.
작명법은 ①일단은 그 지맥에서 가장 높은 산의 이름을 사용하여 이름을 붙입니다.
대부분의 지맥이 이에 해당합니다.
②그리고 산 높이에 불구하고 유명한 산이 있을 경우 그 산 이름을 붙이는데 여기에는 병풍지맥이 해당됩니다.
③또한 특정한 곳으로 가는 경우 그 지방의 이름 등을 고려해 이름을 붙이기로 한 것입니다.
가령 영월지맥이나 춘천지맥이 이에 해당합니다.
그렇게 하여 157지맥을 만들어 신산경표에 일일이 그 이름을 부여하였습니다.
대단한 작업이었습니다.
지리학자들은 이를 어떻게 보는 지는 몰라도 산꾼들의 산행 방법에 대단한 변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의 혁명이었습니다.
사실 기존에 능선 종주산행의 대표적인 것이 태백산맥 대종주, 화대종주, 서북능선 종주 등이 대단한 꾼들 사이에서만 진행되던 것들이었습니다.
어찌보면 독점물 같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백두대간이 알려지고 이어서 정맥, 기맥, 지맥 등이 알려지면서 종주 산행은 일반화 되기에 이른 것입니다.
즉 이제는 백두대간, 1대간 9정맥 종주 등에 이어 5기맥, 157지맥 종주에 도전하는 분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아는 현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인터넷의 보급은 이를 더 거들고 오히려 촉진시키는 계기가 됩니다.
산악회도 우후죽순 늘어나고 대간, 정맥 나아가 지맥만을 전문적으로 진행하는 산악회와 모임들이 늘어나는 것도 어찌보면 자연스런 현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신산경표의 효과였습니다.
이 모든 것이 산자분수령의 토대하에서 진행하는 것으로 산꾼들은 마치 "절대로 물을 건너지 않기로 맹세를 한 사람들의 집단" 같았습니다.
한편에서는 신산경표에 대한 연구를 하는 이들도 자연스럽게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에 의해 신산경표의 모순점을 하나둘 씩 검증을 하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작업의 일환으로 비치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내세우는 캐치프레이즈는 한결같이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제2원칙'을 준수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지루하시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오늘 진행하는 영월지맥은 한강기맥에서 분기하는 산줄기입니다.
영춘지맥이라는 이름은 절대적으로 안 됨은 이미 말씀드렸고...
간단하게 영월지맥을 봅니다.
참고도 #3 신산경표 상 영월지맥
인터넷을 찾아보면 대체로 영월지맥은 이렇게 설명되고 있습니다.
한강기맥 상의 삼계봉(1,065m)에서 남쪽으로 분기한 산줄기가 태기산(1,261m)에서 서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풍취산(699m), 매화산(1,084m), 치악산 비로봉(1,288m), 향로봉(1,043m), 남대봉(1,182m)까지 달리다가 다시 남대봉에서 동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 감악산(954m), 용두산(871m), 삼태산(876m), 영월의 태화산(1,027m)을 지나 남한강에서 그 맥을 다하는 약 146km의 산줄기를 말한다.
문제는 한 사람이 이렇게 쓰면 다른 모든 사람들은 이걸 무슨 신줏단지나 되는양 무조건 퍼 나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좀 이상한 점이 눈에 띕니다.
"그 맥을 다하는..."이라고 만 말할 뿐 합수점이라는 말이 빠졌습니다.
다시 그 영월지맥의 진행상황을 살펴보까요?
영월지맥은 삼계봉을 출발하여 태기산을 넘어 산줄기를 타고 내려오다 처음에는 백덕지맥을 낳고 남대봉에서는 백운지맥을 낳습니다.
그 백운지맥은 천등지맥과 봉화지맥을 낳는군요.
계속 진행하는 영월지맥은 다시 갑산지맥과 금수지맥을 낳고는 태화산이 있는 영월에서 남한강으로 잠깁니다.
구약의 창세기편을 보는 듯하군요.
어쨌든 이 지맥은 지맥의 끝인 영월이라는 지방 이름을 따서 영월지맥이라고 명명되었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합수점이 아닌 그저 남한강으로 들어간 것만 나옵니다.
지도를 보면 오히려 평창강과 남한강의 합수점으로 가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참고도 #4 주왕지맥, 백덕지맥 그리고 영월지맥 지도
하지만 평창강의 역할은 이 영월지맥과는 하등의 관련이 없는 산줄기입니다.
위 참고도 #4에서 보듯 평창강은 오히려 주왕지맥과 관련이 있는 물줄기입니다.
보시다시피 주왕지맥은 한강기맥에서 분기하는 줄기이고 평창강은 이때 한강기맥과 주왕지맥 사이에서 발원하는 물줄기입니다.
즉 평창강은 이 주왕지맥만 책임지면 되고 또 그게 맞습니다.
이른바 '산자분수령의 제2원칙'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왕지맥은 계방산 조금 못 미친 지점에서 분기하여 평창강과 자신보다 상위 개념의 물줄기인 남한강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그 맥을 다하는 줄기라는 얘기입니다.
위 참고도 #4의 주왕지맥지도를 보면 그렇게 나와 있지 않습니까?
그 다음 줄기가 영월지맥입니다.
이 영월지맥도 위 주왕지맥과 같은 경로로 같은 방식이 공히 적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줄기는 가장 유명한 산인 치악산의 이름을 제치고 영월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신산경표에서는 '특정한 곳으로 가는 줄기'라고 해설을 달았습니다.
특정한 곳이라...
추측해보면 그저 산경을 위주로 파악했다는 게 제1감第1感입니다.
오히려 치악지맥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참고도 #5 섬강
영월지맥을 분기 부분을 좀 더 확대하여 자세히 들여다 봅니다.
그리고 산경표의 정신에 입각하여 백지도 위에 그림을 그려봅니다.
이 줄기가 삼계봉에서 가지를 칠 때 이 갈라진 줄기에서 발원하는 물줄기가 있습니다.
바로 섬강입니다.
정철의 관동별곡에도 나오는 바로 그 섬강입니다.
平丘驛(평구역) 말을 가라 黑水(흑슈)로 도라드니,
蟾江(셤강)은 어듸메오, 雉岳(티악)이 여긔로다.
그렇다면 이 영월지맥이 가야 할 곳은?
이 영월지맥이 맥을 다하는 곳이이 어디냐는 것입니다.
이미 눈치채셨을 겁니다.
바로 섬강과 이 섬강보다 상위 계급의 강인 남한강이 만나는 곳.
그 합수점에서 이 영월지맥의 맥이 끝나야 합니다.
아까 주왕지맥도 그랬죠?
평창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곳에서 맥을 다했으니까....
산자분수령의 제2원칙에 따라 이 줄기는 이 섬강과 섬강보다 한 끗발 높은 강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그 맥을 다하여야 한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일 터!
그 합수점만 찾으면 됩니다.
참고도 #6 섬강과 남한강의 합수점
자주색 - 겹침 줄기, 하늘색 - 백운지맥, 연고동색 - 신산경표 상 영월지맥
위 지도의 연두색으로 싸인 부분.
거기가 섬강과 남한강의 합수점입니다.
따라서 이 줄기가 맥을 다하는 곳은 바로 그 줄기여야 한다는 것이죠.
이게 산경표의 기본 원리에 충실한 이론입니다.
후에 이야기할 대한산경표의 기본 원리이기도 하고요.
줄기를 찾아가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합수점부터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방법입니다.
이른바 수체계이론樹體系理論이죠.
신경수 선생이 주창한 이론이기도 하죠.
우리나라 산줄기의 체계를 나무와 같다고 보는 겁니다.
즉 뿌리는 백두산이고 줄기는 백두대간 그리고 큰 가지들은 정맥 작은 가지들은 지맥이라고 보는.....
그러면 아이러니컬하게도 신산경표의 백운지맥을 그대로 따라 올라가면 치악산의 남대봉에서는 본 궤도로 접어들게 됩니다.
즉 남대봉 ~ 1104.6봉(이른바 삼계봉)에서는 신산경표의 영월지맥이 그대로 유효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지맥은 남대봉(79.8km)에서 좌틀하여 감악산 ~ 가창산 ~ 태화산으로 진행을 하여 그냥 남한강(54.5km)으로 들어가는 그 맥은 '산자분수령의 제2원칙'에 충실하지 못한 진행입니다.
주왕지맥에서는 분명 합수점으로 갔는데 영월지맥에서는 엉뚱한 방향으로 진행을 한다?
일관성의 결여입니다.
생각건대 신산경표는 산경 즉 산줄기가 긴 쪽으로 무조건 진행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오히려 치악산 남대봉에서 우틀하여 신산경표 상의 백운지맥(46.9km)을 따라 진행을 하여 섬강과 남한강의 함수점에서 그 맥을 다하는게 산경표의 기본 정신에 맞다고 할 것입니다.
신산경표에서 그렇게 산자분수령을 외쳐 9정맥을 7정맥으로 바꾸는 작업을 하였음에도 정작 지맥에 와서는 산자분수령이 아니라 긴 산줄기 위주로 편제를 하였다는 것은 아무래도 산경표파들로부터 비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산자분수령에 충실하다고 할 '대한산경표'에서는 이 올바른 줄기를 이름하여 섬강지맥이라고 부릅니다.
어차피 수계水系를 따라야 올바른 산줄기가 나오는 만큼 그 강江 혹은 천川의 이름을 그대로 붙이자는 것입니다.
그게 오히려 그 강이나 천에게도 책임감을 실어줄 수도 있을 것이니 일견 타당하다고 보여집니다.
대한산경표의 취지를 지지합니다.
이럴 경우 주행거리는 영월지맥이 134.3km, 섬강지맥이 126.7km로 섬강지맥이 조금 짧습니다.
역시 신산경표는 산경위주로, 대한산경표는 수계 위주로 지맥이 그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영월지맥의 나머지 줄기의 처리도 문제가 됩니다.
참고도 #7 제천지맥
지도를 보면 이 '섬강지맥'과 기존의 영월지맥 사이에서 발원하는 제천천이 남한강과 만나는 곳으로 진행하면 별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남대봉 ~감악산 ~석기암 ~ 가창산(38.4km + 0.9km) ~ 갑산~대덕산 ~부산(64.2km)에서 남한강과의 합수점에서 맥을 다하는 85.5km의 줄기로 확정되게 됩니다.
곧 영월지맥의 자투리 구간과 기존의 갑산지맥이 여기에 들어가게 됩니다.
한 걸음 더 들어가 볼까요?
섬강지맥이 섬강과 남한강의 합수점을 향하여 진행하다 태기산을 조금 더 내려간 지점에서 좌측으로 줄기를 하나 내고 그 줄기와의 사이에서 주천강을 발원시킵니다.
주천강도 책임을 느끼는 만큼 임무를 부여하여 주기로 합니다.
그 주천강은 이 섬강지맥에서 가지를 친 줄기를 싸고 진행합니다.
그러다가 자신보다 상위 등급의 강 즉 평창강을 만나는 합수점에서 이 산줄기를 소멸시킵니다.
참고도 #8 주천지맥
즉 이 산줄기는 태기산에서 1.3km 진행한 분기점에서 좌측으로 분기하여 청태산1194.2m, 백덕산1350.1m등을 거쳐 주천강과 평창강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그 맥을 다하게 되고 도상거리 약 56.1km의 산줄기가 됩니다.
신산경표는 이 산줄기를 가장 높은 봉우리인 백덕산의 이름을 따서 백덕지맥이라 이름하였습니다.
이 백덕지맥은 '산자분수령의 제2원칙'에 충실합니다.
영월지맥과는 사뭇 다른 모양새입니다.
영월지맥은 백덕지맥이나 주왕지맥과 다른 '특별산줄기'입니까?
그렇지 않잖습니까.
그럼 다른 줄기를 더 보겠습니다.
그 윗줄기인 주왕지맥은 이미 살펴봤고 섬강 다음의 흑천을 봅니다.
참고도 #9 흑천지맥
같은 원리로 한강기맥 상의 금물산을 떠난 줄기인 신산경표 상의 성지지맥은 한강기맥에서 가지를 칠 때 흑천을 발원시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흑천과 남한강이 만나는 합수점으로 가면 간단해집니다.
즉 성지봉 ~ 덕갈고개 ~ 삼각산을 지나 우틀하여 수리봉 ~ 한치고개 ~ 매봉산 ~ 주읍산 ~개군산을 지나 흑천과 남한강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그 맥이 잠기게 되고 이게 올바른 주행입니다.
그럴 경우 이 지맥의 거리는 성지지맥(녹색선)의 55.9km보다 다소 짧은 49.3km의 줄기(참고도 #7의 진분홍색)가 됩니다.
역시 산산경표는 긴 산줄기 즉 산경을 따랐습니다.
산자분수령을 왜곡했다기 보다는 충실하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이렇듯 대한산경표에서는 수계水系를 근본으로 산줄기를 그었기 때문에 그 산줄기의 이름을 강 혹은 천의 이름을 따 작명할 것을 제안합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섬강지맥이니 흑천지맥 그리고 평창지맥이니 주천지맥 등입니다.
다소 낯설기는 하지만 처음에는 다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혼란스러우시지요.
뭐 그렇다고 해서 산줄기가 어디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 박성태 선생의 큰 업적이 반감되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들은 다 박성태선생의 신산경표를 근간으로 해서 나온 결과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사 대한산경표의 견해가 맞다고 하더라도 이 모든 것들은 선생께서 하신 작업의 모조품 혹은 이른바 짝퉁입니다.
따라서 이런 박성태 선생의 업적이나 명예에 조금이라도 누累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위와 같은 내용들을 박성태 선생으로부터 배웠기 때문에 선생의 폄훼貶毁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음을 누구라도 제 글로서 충분히 느끼시리라 믿습니다.
- 2017. 1. 8. 일요일 진행 -
이상은 영월지맥에 한정해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면 이번에는 진양기맥에 대해서 살펴볼까요?
마침 새마포 산악회 홈페이지에 진양기맥에 대한 개요를 적어놓은 게 있군요.
인용해 보겠습니다.
진양기맥은 서부 경남지역인 함양, 산청과 거창, 합천, 의령, 진주 등 6개 시,군을 지나며 서쪽과 남쪽의 남강과 동쪽의 거창 위천, 황강, 낙동강을 차례로 가르며 지나는 분수령이다.
진양기맥은 원래 남강과 황강을 가르는 맥길로만 따져 보자면 함양, 산청과 거창, 합천을 가르며 동남향 또는 남향으로 이어져 내려 와 의령 한우산(寒雨山: 766m)에서 동쪽으로 분기하여 매봉산(597m), 우봉산(372m), 옥녀봉(341m)을 거쳐 남강과 낙동강이 합수하는 곳에서 맥을 다하는 것이 정석이라 하겠지만, 한우산에서 남향 또는 남서향으로 이어져 진향호에서 맥을 다하는 산줄기가 길이도 약 20km 더 길 뿐만 아니라 산세도 수려하여 대부분의 기맥 탐방객들이 이 길을 따름으로써 진양기맥으로 굳어졌고, 대신 한우산에서 동향하는 맥길 31km는 우봉산에서 그 이름을 따와 우봉지맥으로 구분짓고 있다.
이 글을 '새마포 산악회'의 운영자가 직접 쓰신 글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인터넷에 올라온 글 중에서 제법 그럴싸하게 씌어진 글을 퍼 오신 걸로 생각됩니다.
어쨌든 다른 곳도 아닌 새마포에서 게재한 글이니 상당히 신뢰감이 가고 내용도 괜찮을 것이라 보입니다.
살펴보죠.
그런데 1행을 보면 "남강과 위천...등을 가르며 지나가는 분수령"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안 듭니다.
하긴 뭐 그런 얘기는 지엽적인 문제이니 통과하고....
한편 3행을 보면 "한우산(寒雨山: 766m)에서 동쪽으로 분기하여 매봉산(597m), 우봉산(372m), 옥녀봉(341m)을 거쳐 남강과 낙동강이 합수하는 곳에서 맥을 다하는 것이 정석"을 봅니다.
이 내용은 글쓴이가 올바른 맥의 진행은 남강과 낙동강의 합수점이고 이게 올바른 산자분수령식 해석이라는 걸 인지했다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산줄기가 길이도 약 20km 더 길 뿐만 아니라 산세도 수려하여 대부분의 기맥 탐방객들이 이 길을 따름으로써 진양기맥으로 굳어졌고'라는 부분에서 아쉬움과 약한 필체를 느끼게끔 됩니다.
"예외 없는 규칙은 없다."라는 말을 상기시키고 싶어서였을까요.
그런 정도 때문만은 아니겠지요.
분명히 신산경표 아니 박성태 선생님 같은 거인巨人이 진양기맥의 진행을 그렇게 그으셨다면 필경 자신으로서는 잘 알 수 가 없는 어떤 분명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어서였을 겁니다.
두려움이죠.
그리고 어쩌면 자신의 이론에 대한 불신일 수도 일수도 있을 것이겠고.....
저는 그렇습니다.
위 영월지맥 등 한강기맥에서 분기한 줄기들에서 보았듯이 이 진양기맥에 이르러서도 신산경표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강한 의심'으로 변화하는 것을 감지하게 됩니다.
위에서 극찬했듯이 신산경표는 산꾼들에게는 로망이나 혁명 정도의 수준을 넘어선 책입니다.
저는 아예 신화神話로 얘기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그러한 이유때문에 제가 '월간 산'에 신산경표에서 변화를 추구하는 '남한 7정맥'에 대한 안내글을 7개월간 연재했던 것이고.....
정리하겠습니다.
산줄기는 긴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닙니다.
즉 산경山經의 세력을 따라 가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기자면 백두대간이라는 기본적인 실체를 부정하게 됩니다.
차라리 장백정간의 끝 서수라에서 낙남정맥의 끝 분산까지 긋는게 더 깁니다.
그렇게 우기자면 이렇게 얘기하는 게 더 설득력이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산경표에서도 그걸 의식하여 편제를 백두대간부터 시작한 거 아니냐고 우기겠다는 겁니다.
즉 산경표의 편제가 '장백정간 → 백두대간 → 낙남정맥' 순으로 되어 있는 이유가 그걸 대변해 주고 있는 거 아니냐는 겁니다.
사실 그렇기는 합니다.
산경표의 편찬자도 다분히 이러한 취지를 의식한 걸로 보입니다.
그래서 낙남정맥을 낙남정간으로까지 불렀던 것입니다.
산경표의 원전이라고 추측되는 여지편람에도 이런 글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즉 '여지편람』' 산경표 16쪽 뒷면에는 "白頭大幹止於智異自鷲嶺以下卽爲傍支故今作洛南正幹"(백두대간이 끝나는 지리산에서부터 시작되는 취령(鷲嶺)이하 산줄기는 예로부터 낙남정간이라고 한다는 내용이 그것입니다.
물론 신산경표가 이런 걸 의식하고 수경보다는 산경 위주로 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 지금의 산경표의 정맥에 대한 다수설도 정간이 아닌 정맥으로 거고 있고.....
위에서 얘기한 바와 같이 신산경표의 주된 정신은 '산자분수령'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 제2원칙 '합수점에서 산줄기가 끝나는 것으로 정리한 것을 기본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창主唱하신 것이 '남한 9정맥의 남한 7정맥화化'였던 것 아니겠습니까?
그 믿음이 기맥이나 지맥에 와서는 무너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즉 왜 7정맥에서 주창하신 산자분수령이 정맥의 하위 등급 산줄기인 기맥, 지맥에 와서는 달라져야 하는지....
참고도 #1 진양기맥 주지하다시피 진양기맥은 백두대간의 남덕유산에서 분기한 산줄기입니다. 이 진양기맥은 백두대간에서 분기하면서 그 골짜기로 물을 하나 내놓습니다. 바로 남강입니다. 이때 제가 늘 우려먹는 한 가지 얘기. 짐작하셨다시피 '산자분수령의 제2법칙'입니다. 이 산줄기의 끝은 무조건 합수점으로 갑니다. 이는 그냥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산줄기가 아니고 '산경표'라는 족보에 있는 산줄기이기 때문입니다. 족보에도 없는 놈이라면 애시당포 눈길도 안 주었을 겁니다. 남강이 나왔으면 그보다 상위 등급의 물줄기만 찾고 그 물줄기에 이 산줄기가 흡수되는 합수점만 찾으면 됩니다. 그럴 경우 '가'의 곳이 아닌 '나'의 곳으로 가는 게 맞습니다. 당연히 인공호수인 진양호와는 상관이 없는 산줄기이므로 개명은 필수적인 절차! '산으로' 박흥섭 같은 이는 산경이 아니라 수경 위주로 산경표가 편제되었으므로 정맥 이름에 착안하여 '남강기(지)맥'으로 부를 것을 제안합니다. 모든 지맥 이나 기맥도 예외는 아닐 것이므로 차라리 강江이나 천川 이름으로 가자는 것이죠. 생소하고 낯설다는 느낌은 들지만 처음엔 다 그런 거 아닙니까? 나아가 고유번호를 붙여주면 더욱 더 식별이 쉬울 것이라는 의견에도 동조합니다. 우선 오늘은 여기까지만 합니다. 따라서 저는 이 산줄기를 남강기맥이라는 이름으로 걷고자 합니다. '새마포산악회' 강호江湖의 고수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버스도 45인승으로 운행하는데 늘 만차. 버스를 운행하시는 부장님은 타이어 공기압에 신경을 쓰셔야 할 정도라니... 죽전에서 버스에 승차합니다. 안내 말씀을 듣고 한숨 잡니다. 덕유산이 가까워 오면서 차창 밖으로 눈길을 돌려보는데 날씨는 영 '꽝'입니다. 저를 실망시키지 않는 넉넉한(裕) 덕성을 가진 남덕유가 아무래도 오늘은 저를 실망시킬 것 같습니다. 산 행 개 요 1. 산행일시 : 2017. 1. 19. 목요일 2. 동행한 이 : 새마포 산악회 기맥 팀 3. 산행 구간 : [남강(진양)기맥 1회차] 교육원 ~ 남덕유산 ~ 남령 ~ 칼날봉 ~ 월봉산 ~ 큰목재 ~ 수망령 4. 산행거리 : 12.52km (올해 누적 산행거리 : 60.22km) 구 간 거 리 출발시간 소요시간 비 고 교 육 원 10:13 갈 림 길 2.28km 11:16 63 남덕유산 0.47 11:48 32 1013.3봉 3.10 13:15 87 10분 휴식 남 령 0.42 13:25 10 칼 날 봉 1.00 14:19 54 월 봉 산 2.35 15:48 89 10분 휴식 거망산갈림봉 1.67 16:29 41 수 망 령 1.23 16:54 25 계 12.52km 06:43 06:23 실 소요시간 산 행 기 록
지도 #1
10:10
추억의 남덕유교육원에 도착합니다.
남덕유산의 기점은 월성치, 교육원 ~ 서봉 루트 등 여러 곳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기맥을 진행하는 분들이 제일 선호하는 루트는 아무래도 교육원 ~ 기맥 갈림길 ~ 남덕유산 루트일 것입니다.
갈림길 ~ 남덕유산이 중복이 된다는 거북한 감은 어느 정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도 편차에 따른 힘듦은 차치하고 가장 빠른 시간 내에 접근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일겁니다.
당연히 선수(?)들의 집합소인 새마포에서 다른 루트는 생각할 여지도 없어 보입니다.
내리자마자 단체 사진을 찍고 벌써들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아직 준비도 제대로 못 했는데...."
10:16
한 3분 정도 올라가니 이정표가 나오고 정규 등로가 나타납니다.
길은 고속도로고 기온이 올라가다보니 등로는 질퍽거리는 데가 많습니다.
하나 둘 옷을 벗다보니 시간만 지체됩니다.
우천시 요긴하게 이용될 다리도 보이고...
10:38
땀이 비오듯 흐릅니다.
이제 1.5km 올라왔고 남덕유까지는 1.9km가 남았군요.
그런데 다리 상태가 이상을 넘어 '심각' 정도입니다.
좌측 발 가락 세 개가 아려오고 발바닥은 족저근막염을 의심케 할 정도로 쑤셔옵니다.
무릎도 시큰 거리고..
이번에는 오른쪽.
오른쪽 발바닥은 완전히 족저근막염 증세.....
아!
이걸 어쩌나.
발바닥 그리고 무릎이나 발가락에 오는 통증이 제일 약한 감각을 찾고 그걸 유지하려 노력합니다.
속칭 '짬밥의 경험'으로 역경을 극복하자는 생각에서입니다.
11:16
가까스로 기맥 능선에 올라섭니다.
그냥 우틀하여 기맥을 이어가는 대원들이 눈에 띄는군요.
남덕유산 ~ 교육원 코스는 이미 진행했다는 말씀.
저도 기왕에 하기는 했지만 이어가기 코스는 안 해 봤으니 병든 몸(病軀)을 이끌고 남덕유로 좌틀합니다.
여기 오니까 다른 팀들과도 섞이게 되는군요.
청주에서 오신 분들?
아직도 아이젠을 안 벗으시고....
현재 이곳이 해발 1291m.
그러니까 앞으로도 210m 정도의 고도를 더 높여야 한다는 거로군요.
사실 남덕유교육원은 해발 720m 정도에 위치해 있습니다.
상당한 고지죠.
그러니 여기서 1507.4m까지 고도를 올린다는 것은 평지에서 약 780m 산을 오른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걸 3.4km의 거리로 올린다고 생각하면 좀 겁나는 거리 아니겠습니까?
거기에 컨디션 난조가 한몫을 거들고 있으니....
할 수 없습니다.
적당한 곳에 가방을 놓고 폰과 스틱만을 가지고 올라갑니다.
거의 수직에 가까운 철계단이 나옵니다.
아주 오래된 철 사다리입니다.
제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32년 전에도 이용했던 그것일 겁니다.
코발트색.
조금 더 고도를 올린 자리에서..
아!
우측으로....
바로 앞 뾰족봉이 삿갓봉1418.6m.
그리고 삿갓재로 떨어진 대간길은 무룡산1492.1m을 일으키고 좌측 뒤로 향적봉1614.2m을 가지 치는군요.
무룡산 우측으로 뒤로 대덕산1290.7m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고....
남덕유에 대한 기대감이 다시 부풀어 오릅니다.
버스 안에서 잠시나마 이 남덕유 혹은 덕유에 대한 믿음에 회의감을 토로했던 것을 후회하거나 반성합니다.
우측으로 월성리 마을을 보면서 고도를 높입니다.
뒤를 돌아 보는 게 빠졌군요.
아무렴요.
바로 앞.
아까 지나 온 갈림길 다음 봉우리인 1360.7봉입니다.
그 우측 봉이 남령 너머 월봉산1281.7m.
그 우측 뒤로 거망산1184m이 뚜렷하고 좌측으로는 다음 구간으로 진행할 금원산1352.5m이 명백합니다.
과연 이른바 '황거금기' 루트가 각광을 받는 이유가 확실해집니다.
즉 안의면 유동마을을 기점으로 하여 황석산1192.5m ~ 거망산 ~ 금원산 ~ 기백산1330.8m에서 장수사로 하산하는 약 26km의 루트가 바로 그것입니다.
볼록한 바위봉들이 지질구조선이 산줄기로 진화하는 과정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운데 봉우리의 전망대로 오르는 계단이 힘들어 보입니다.
전망대 좌측으로 드디어 남덕유가 모습을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오르면서 살짝 우측으로 곁눈질해 봅니다.
대간의 골격이 뚜렷해집니다.
삿갓봉 ~ 무룡산 ~향적봉 라인이 확실합니다.
좌측 적상산1030.6m이 구름 위에 떠 있는 모습이고....
11:48
땀을 빗물흐르듯 흘리면서 오늘의 최고봉이자 남강기맥이 분기하는 남덕유에 올라섭니다.
정말이지 죽을둥살둥 간신히 올라왔습니다.
최악입니다.
헐떡거리면서도 볼 건 봐야죠.
우측으로 서봉1496.5m이 크게 나타납니다.
그 좌측 뒤로 금남호남정맥의 마이산687.4m이 조그만 점으로 보이는데 좌측의 성수산1059.2m이나 팔공산1149.34m에 가려 초라해 보이기만 합니다.
오늘은 존경하는 '아름다운 강산' 정병훈 선생님과 사모님이신 '하문자 여사님'과 영광스럽게도 함께 걸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백두대간 15회 진행이라는 빛나는 기록을 갖고 계신 선생님은 162지맥 완주도 눈앞에 두고 계십니다.
대간을 버리고 지맥에 집착하셨다면 이미 깼을 기록이기도 합니다.
오늘도 선생님 내외분과 함께 걸으면서 많은 것을 배우는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존경하는 선생님!
앞으로도 많은 지도 부탁드리겠습니다.
뭐라고 이야기해야 되나요?
정신이 혼미해 짐을 느낌니다.
이런 맛에 산에 오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저 맨 앞줄이 서봉에서 할미봉으로 고도를 낮추고 있는 대간길이라 하고 넘기겠습니다.
그러면 그 뒷줄이 덕태 그러니까 덕유태극종주 루트에서 살짯 좌측으로 비켜 서 있는 깃대봉930.1m이 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맨 뒷줄이 금남호남정맥이고 그 라인이 끝나는 지점의 마이산은 아예 점입니다.
도대체 할미봉1026.3m이 이렇게 낮게 보여도 되는 겁니까?
딴에는 그래도 1000고지가 넘는 봉 아닙니까?
어쨌든 맨 앞의 할미봉을 넘은 대간은 육십령을 넘어 구시봉1014.3m으로 진행을 하여 영취산1075m ~ 백운산1278.9m으로 넘는 라인의 윤곽을 확실하게 보여줍니다.
그러니 금남호남정맥의 시작인 영취산 우측의 장안산1237.4m의 위용도 여기서 보니 그다지 육중한 맛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좌측 서상저수지 뒤로 눈을 돌려봅니다.
세상에!
임천(연비)지맥의 삼봉산1186.7m으로 착각할 뻔 했습니다.
아무리 날씨가 허락을 해줘도 그렇지 이건 정말 아니라는 생각밖에....
지리 그것도 천왕봉에서 덕유는 봤지만 이 남덕유에서 지리를 보는 건 아마 처음 아닌가 싶습니다.
너무나 큰 영광이라는 말 이외에....
백두대간의 끝 지리 천왕봉에서 오른쪽으로 선을 그어봅니다.
좌左가 천왕봉이면 그 우측은 반야봉1731.8m 아니겠습니까?
천왕봉을 가운데 둬 보고.....
그러고 난 후에야 정상석을 촬영합니다.
이건 양념이고....
삿갓봉 ~ 향적봉 그리고 적상산을 다시 복습하고,
이번에는 우측 대덕산까지.....
월성리....
못내 아쉬워 서봉을 한번 더 보고,
서봉 우측 저 뒤로 적상산....
이제 그만 마음을 진정하고 지리산 산신령께 경배를 올리고 하산 모드로 전환합니다.
11:58
남강의 발원지.
바로 이 계곡입니다.
이 물이 흘러서 임천과 덕천강 등을 흡수하여 의령군 지정면 성산리 부근에서 낙동강으로 합류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산자분수령의 제2법칙'에 의하여 이 산줄기 즉 남강기맥은 그 남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맥을 다하게 되는 것이겠고...
눈으로 확인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 남강의 우측 울타리는 이 백두대간입니다.
그러면서 저 앞을 가로막는 삼봉산 등이 임천지맥이 되어 이 남강의 남쪽 울타리가 되고.....
그러고보니 우리가 중산리에서 천왕봉으로 올라갈 때 엉터리 안내판을 하나 본 기억이 있습니다.
참고도 #1
바로 이 안내판입니다.
천왕봉 바로 아래에 위치하여 우리의 갈증을 풀어주던 그 석간수입니다.
'솟구치다'는 표현도 억지지만 '똥인지 된장'인지 모르고 아무렇게나 이렇게 적어도 되는겁니까?
아이들이 보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이걸 보면 곧이곧대로 배우고 믿을 거 아니겠습니까?
분명 남강의 발원지는 지리산이 아니고 이곳 남덕유입니다.
우리가 산맥(=지질구조선)과 산줄기를 구별하지 못하고 우왕좌왕대는 첫번째 이유가 교과서에서 그렇게 배웠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각설하고 하산을 서두릅니다.
이제부터 남강기맥을 시작합니다.
이곳이 전라북도 장수군과 경상남도 거창군 그리고 함양군의 삼군봉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전라북도를 버리고 함양군과 거창군의 군계를 따라 걷게 됩니다.
12:03
컨디션 핑계로 제일 마지막 그룹에 섞여 있으면서 너무 지체했습니다.
대단한 선線입니다.
가운데 뒤가 월봉산인데 그리 멀어보이지 않아 다행이긴 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좌측 금원산, 우측 거망산도 보면서 내려갑니다.
12:15
기맥 갈림길로 원위치합니다.
1시간 만입니다.
12:24
1360.7봉입니다.
눈이 많아집니다,
물론 하산 구간이 양지 쪽이기 때문에 다 녹아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바위 구간을 우회할 때에는 여지없이 눈이 쌓여 있고 얼어 있어 부득불 아이젠을 착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전히 조망은 끝내주고....
12:57
1208.1봉에 뒤를 돌아봅니다.
좌측 앞봉이 1360.7봉.
그 우측의 삼형제봉 같은 곳 중 가장 좌측봉이 남덕유산.
그 남덕유산 우측으로 눈을 돌립니다.
좌측이 삿갓봉1418.6m.
움푹 파인 곳이 삿갓재.
육안으로 삿갓재 대피소까지 보입니다.
우측이 무룡산舞龍山1492.1m.
용이 춤추는 산이라는 뜻인데....
저는 사실 龍이 우리말이 '미르'라는 걸 이번에 보도를 통해 알았는데 이는 비단 저만의 경우가 아니더군요.
국정 농단을 했다는 말을 들으려면 이 정도의 해박한 지식이 있어야 할 겁니다.
13:02
푸른 색을 잃은 산죽 군락지를 지나고,
13:15
헬기장으로 조성된 1013.3봉에서,
4듭급삼각점(함양421)을 봅니다.
다행히 여기서 한 분을 따라 잡습니다.
사실은 따라 잡은 게 아니고 이 분과 후미에서 보조를 맞추게 됩니다.
월봉산의 전위봉 격인 칼날봉이 설악의 1275봉 흉내를 내 듯 서있는 모습입니다.
제 상태를 볼 때 도저히 저 바위봉을 올라가긴 힘들 것 같은데...
13:25
남령입니다.
영각사와 월성치를 잇는 37번 도로를 만납니다.
누가 여기서 "탈출하자!"고 꾀어주기를 고대하지만 불행히도 저 혼자 진행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둘러보아도 아무도 없는 상황.
울며 겨자 먹기로 월봉산을 따릅니다.
3.6km라...
"평소 같으면 1시간 반!"하고 오를 텐데....
오늘은 시간 약속을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기맥은 여기서 좌측으로 올라야 합니다.
하지만 37번 도로를 개설하느라 절개지의 경사가 너무 심하고 나아가 낙석 방지용 시설을 해놨기 때문에 기맥 마루금을 이어갈 수 없습니다.
우측으로 개울을 건넙니다.
13:30
그러고는 여기서 개울을 건넘으로써 다시 기맥에 복귀합니다.
13:53
예전의 남령을 지나면서 우틀하여 계단을 만납니다.
13:57
곧 이어 좌틀하고....
600m 올라오는데 소요된 시간은 32분.
시속 약 1km?
어이가 없군요.
시간 상으로는 월봉산까지 3시간 걸린다는 얘기.
앞으로도 2시간 반을 가야한다는 계산이니 그렇다면 4시 반이나 되어야 월봉산.
5시까지는 하산을 하여야 하는데 이거 잘못하다가는 개망신 당할 것 같습니다.
쪽팔리지 않으려면 힘을 좀 내야만 하는 상황.
컨디션 난조고 뭐고 없습니다.
그래도 볼 건 봐야죠.
우측으로 대간 라인을 봅니다,
할미봉이 이제는 좀 고도를 높였군요.
바로 앞으로는 37번 도로가 뚜렷하고....
대간이 힘을 줍니다.
음.....
이제 남덕유는 1360.7봉에 가려서 보이지 않고..
하지만 우측 삿갓봉 만큼은 여전합니다.
14:03
드디어 칼날봉1168.3m이 목전입니다.
다행히(?) 하여사님께서 보조를 맞춰주시고 오늘 처음 기맥길에 드셨다는 분도 함께 해주십니다.
지도 #2
14:19
창피를 무릅쓰고 칼날봉은 통과.
14:34
1시간 9분 만에 1.5km라....
좀 이상하긴 합니다.
갑자기 스피드 업 된 것도 아닐 텐데...
좌측으로 금원산과 그 아래로 임도가 보입니다,
저 임도가 내려와 만나는 곳이 수망령일테니 힘은 좀 나는군요.
문제는 월봉산1281.7m입니다.
15:02
1100.7봉을 지납니다.
15:08
그러고는 그 1100.7봉과 우측의 바위봉인 칼날봉을 보고 좌측 중앙의 남덕유도 봅니다,
곧 남강기맥 라인입니다.
칼날봉 뒤는 여전히 삿갓봉과 그 우특의 무룡산.
백두대간 라인입니다.
그렇죠?
무룡산이 확실하게 보입니다.
그 무룡산 우측 앞으로 흘러내리는 봉우리가 좀 흔한 이름이긴 하지만 어쨌든 시루봉898.1m이고...
13:18
지도 #2의 '나'의 곳을 지납니다.
드디어 월봉산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바로 앞 바위봉이 그 전위봉이 되겠고 그 우측의 둥그스름한 봉우리가 바로 월봉산이군요.
달의 윤곽같이 둥그스름하게 생겨서 월봉산인가?
15:34
지도 #2의 '다'의 곳의 이정표를 지납니다.
시간 상으로는 남령을 출발한 지 2시간 10분 정도 경과했습니다.
15:48
죽자사자 겨우 올라왔습니다.
3등급삼각점(함양305)과,
정상석이 있는 월봉산입니다.
세 분이 휴식을 취하고 계시는군요.
지나온 줄기도 살펴보고....
진행할 줄기도 봅니다.
저 끝봉우리에서 좌틀하여 내려가면 끝이겠군요.
갈림봉 뒤로 기백산1330.8m이 묵직하게 다가오고...
금원산과 1282.3봉으로 이어지는 기맥 라인.
15:56
지도 #2의 '라'의 곳에서 '대로마을'을 버리고 좌틀합니다.
16:15
그러고는 큰목재로 떨어집니다.
우측으로도 표지띠가 많이 걸려 있는 것으로 보아 노상마을을 통해 서상면 대남리로 진행이 가능한 곳 같습니다.
직진하여 또 오릅니다.
산죽 군락지를 지나,
16:29
거망산 삼거리로 오릅니다.
이곳에서 안의면을 만나게 되는군요.
그러니 이 봉이 서상면과 안의면 그리고 거창군 북상면이 만나는 삼면봉 역할을 하는 봉우리이군요.
좌틀하여 함양군 안의면과 거창군 북상면의 군계를 따라 진행합니다.
16:30
이제는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진행하게 됩니다.
16:50
마지막 봉우리인 922.6봉은 봉우리임을 전혀 인식하지 못 할 정도이고....
16:54
그러고는 오늘의 날머리인 수망령입니다.
우리가 내려가서버스를 탈 곳은 월성마을이고 반대방향은 일주문5.9km라고 표기되어 있군요.
일주문은 장수사 일주문을 이야기하는 건가요?
여기서 트럭을 타고 월성마을까지 가기로 하였는데 조금 시간이 지체되는군요.
6시간 44분이나 걸렸으니 오늘 최악의 컨디션이었음에도 선방은 한 모양새입니다.
내려가서 주최측에서 준비하여 준 밥을 먹고 귀경을 합니다.
오늘 첫 구간을 어렵사리 진행하였으니 이후 구간은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러려면 수요일 음주를 피하여야 하건만 금주 수요일도 또 행사가 예정되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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