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모의 건강문제로 산에 들지 못한 지 벌써 한 달이 넘어갑니다.
마시느니 술이니 나오는 건 아랫배밖에 보이질 않습니다.
진행하던 지맥에 새롭게 들으려해도 지맥의 특성상 일단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하겠기에 그도 여의치 않군요.
대간은 그렇고 차선책은 역시 정맥입니다.
구간은 신통찮지만 그래도 오르내림이 주는 맛이 있으니 더 돌아 볼 이유가 없어집니다.
'격(激)하게' 반겨주시니 고마운 마음만 들고...
일요일 무거워진 몸으로 수지구청역 앞으로 갑니다.
반가운 얼굴들을 보니 역시나 정맥이 차선이라는 생각이 옳았습니다.
중간에 대전 팀들이 타고 오늘의 날머리인 양정고개를 지나 연산 ~ 양촌을 경유 물한재터널 앞에 도착합니다.
물한재(勿汗岾)는 예전에는 물한치라고도 불렸는데 그 원조는 아무래도 지금의 '작은물한재'입니다.
즉 예전의 물한리(지금의 반암리 중 일부의 자연마을) 사람들이 영은사 쪽으로 갈 때에는 '작은 물한재'를 이용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던 게 신작로가 생기고 차도가 생기면서 도로를 만들기 용이했던 지금 자리에 4번 지방도가 생기게 되었던 것이죠.
순수하게 이름만 놓고 보면 양촌면 반암리의 물한리 주민들은 주변 다른 마을에 비해 척박한 토양에서 농사를 지었으리라 짐작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남산소류지라는 작은 제(堤)가 지도에 보이는군요.
산행개요
1. 산행일시 : 2017. 4. 16. 일요일
2. 동행한 이 : 해밀산악회
3. 산행 구간 : 금남정맥 (물한재 ~ 깃대봉 ~ 함박봉 ~ 천호산 ~ 천마산 ~ 양정고개 ~ 성사초교)
4. 산행 거리 : 19.19km
구 간 |
거 리 |
출발 시간 |
도착 시간 |
비 고 |
물한이재 |
|
09:20 |
|
|
덕 목 재 |
5.39 |
11:11 |
111 |
|
함 박 봉 |
2.76 |
11:51 |
40 |
|
천 호 산 |
4.02 |
15:17 |
206 |
70분 점심, 휴식 |
천 마 산 |
4.18 |
16:47 |
90 |
10분 휴식 |
양정고개 |
2.03 |
17:41 |
54 |
|
엄사초교 |
0.81 |
17:53 |
12 |
20분 휴식 |
계 |
19.19 |
08:33 |
06:53 |
실 소요시간 |
산행기록
지도 #1
09:09
그 4번 지방도의 북쪽 출구 앞에 도착합니다.
4년만에 오는 곳입니다.
4년 전 그날은 한 여름이라 더위에 고생 좀 했습니다.
예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입니다.
양촌면 방향을 한번 잡아본 다음....
일단 터널 위로 올라가 살펴보죠.
09:20
달라진 게 없군요.
이 터널은 소위 동물이동통로 즉 생태계 잇기 작업의 일환으로 만들어 놓은 터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 나간 야생동물 이외에는 저 절벽을 뛰어내려 이 방향으로 올 애들은 없을 것 같습니다.
오죽했으면 두 손 두 발 다 쓰는 인간도 저 직벽을 내려올 때 저 좌측의 토석 유실 방지용 철망을 잡고 원숭이처럼 내려왔겠습니까?
그나마 지금은 우측으로 등로를 만들어서 별 불편 없이 정맥을 진행할 수는 있게는 되었지만 정작 주인인 야생동물에게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 꼴입니다.
09:31
오늘의 첫 봉인 367.4봉을 오르는 길에서 예전에 이곳을 지나면서 달아놨던 오래된 제 표지띠도 관찰됩니다.
9:38
그러고는 363.9봉에서 4등급삼각점(금산 444)을 확인합니다.
그런데 어느 분이 이 봉에 ‘물안산’이라는 이름을 붙여놓으셨군요.
2014년 이후에 쓴 거 같은데...
그 이전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이 봉우리의 높이가 해발 364.5m였습니다.
개정판에서 표고가 정정 됐습니다.
물론 무명봉에 의미 있는 이름을 하나씩 부여해 주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모든 사람이 용인할 수 있는 그러니까 국가기관이나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인증을 마친 연후에 해도 늦지 않으리라 봅니다.
너도 나도 아무 봉우리에나 자신이 그럴듯하다고 생각하는 이름을 지어서 이렇게 표기까지 해놓는다면 거기서 오는 혼란은 불 보듯 뻔합니다.
09:47
363.9봉 이후는 평탄한 능선입니다.
해밀의 정맥 팀은 아무래도 대간 정도는 끝내신 분들이라 걷는 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오늘 날씨가 너무 무더웠는데도 어느 한 분 불평 없으시고...
막판에는 오히려 제가 못 견디겠더군요.
한 달이라는 시간이 주는 공간이 너무 커 보였습니다.
09:55
346.3봉을 지나,
0:03
반암리 수종정비작업을 한 사면을 봅니다.
멀리 이 금남정맥과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는 금강기맥(신산경표에서는 금강정맥)의 작봉산419m라인이 군산 그러니까 금강과 서해가 만나는 합수점으로 가고 있습니다.
금강기맥과 이 금남정맥의 차이점은?
우리가 처음 금남정맥을 시작할 때 잠깐 봤었습니다.
즉 산줄기라 하면 두 개의 물줄기 엄격히 얘기하면 나보다 한 등급 높은 물줄기와 나를 낳아준 물줄기 등 두 물줄기가 만나는 합수점에서 맥을 다하기 마련입니다(산자분수령의 제2법칙).
그런데 사실 우리가 걷고 있는 금남정맥은 그 종착지가 나를 낳아준 10대강인 금강과 그 금강보다 한 끗발 더 높은 서해와의 합수점이 아니라 금강의 일개의 구간 이름인 백마강의 조룡대에서 끝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산경표가 만들어진 시기가 유교 문화가 지배를 하던 조선시대라 불합리한 점은 확실합니다.
그래서 산자분수령에 충실한선을 그어보니 그 선은 조약봉 ~ 연석산 ~ 작은싸리재 ~ 왕사봉 ~ 장자봉 ~ 작봉산~ 천호산 ~장계산을 지나 금강과 서해가 만나는 합수점으로 가는 선이었습니다.
일찍이 고산자도 이 점을 간파하여 대동여지도를 제작할 때 이 선을 다른 정맥과 같이 굵게 그리기도 하였숩니다.
산경표에서는 지금의 선을 금남정맥이라고 명명하였으니 후세의 우리들은 그와 구별하기 위하여 이 선에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여야만 하였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정맥이라는 계급을 붙이기는 어려우니 '기맥(岐脈)'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자는 데 묵시적인 합의를 봤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대동여지도에서 특정한 줄기라 하여 '대동금남기맥', 어떤 이는 그냥 '금남기맥', '금강기맥', '만경기맥' 등으로 부르는 등 용어의 혼란이 생겼습니다.
여기에 신산경표의 박성태 선생은 과감하게 메스를 들이댑니다.
이 줄기의 원조인 금남호남정맥에서 호남정맥과 금남호남정맥 그리고 이 '금남기맥 등'이 분기하므로 정맥에서 정맥이 분기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입장을 내세웁니다.
그러면서 겹침줄기인 금남호남정맥을 금남정맥과 호남정맥 중 더 긴 줄기인 호남정맥에 편입시켜 금남호남정맥을 없앱니다.
그리고 나머지 줄기 즉 조약봉에서 분기하는 저맥의 끝을 연석산 ~ 작은싸리재 ~ 대둔산 ~ 계룡산 ~ 조룡대 라인을 작은싸리재에서 좌틀시켜 작은싸리재 ~ 왕사봉 ~ 장자봉 ~ 작봉산~ 천호산 ~장계산을 지나 금강과 서해가 만나는 합수점으로 가게끔 만듭니다.
기존에 '금남기맥 등'으로 부르던 라인이었습니다.
산자분수령에 충실하자는 취지입니다.
계급도 기맥에서 정맥으로 한 단계 격상시킵니다.
그러고는 그 이름을 기존의 금남정맥과 구별하기 위하여 '금강정맥'이라 명명합니다.
나머지 기존의 작은싸리재 ~ 대둔산 ~ 계룡산 ~ 조룡대 라인은 그래도 이전에는 정맥이라는 이름을 가졌던 줄기의 일부분이었으니 그 격을 위하여 기맥이라는 이름을 붙여 '금남기맥'이라 부르게 됩니다.
정리하자면 신산경표에 의할 때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길은 금남기맥이 되며 산경표에 따를 때에는 당연히 금남정맥입니다.
또 하나의 겹침줄기인 한남금북정맥도 같은 방법으로 정리하여 남한을 1대간 7정맥으로 정리하였습니다.
신산경표는 신성한 산경표에 불경스럽게도 손을 대었다고 하여 산경표 교도들에게 많은 지탄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10:09
지도 #1의 ‘가’의 곳에서 크게 우틀합니다.
지도 #2
10:15 곰치재입니다. 예전에 양촌 사람들과 벌곡 사람들이 넘나들던 고개일 텐데 교통수단이 발달하고 세대가 변하다 보니 그저 이런 고개로 남게 되었습니다. 곰치재라. 곰은 원래 'ᄀᆞᆷ(아래 '·')이었습니다.
신성하다는 이름이죠. 중세 국어의 아래 ‘ㆍ’가 18세기 말이되면서 ‘ㅏ’나 ‘ㅗ’로 통합되었고 따라서 곰이라고도 쓰이게 되었는데 마침 곰이라는 동물도 있으니 곰도 자연스럽게 신성한 동물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우리 민족의 아버지인 단군 왕검의 어머니로 곰이 선택되었다는 것은 별반 이상해보이지도 않습니다.
결국 곰이라는 단어 그 자체가 ‘신성(神聖)’입니다. 100년을 넘게 유럽을 지배하던 로마제국의 시조가 고작 늑대 젖이나 먹던 로물루스 형제인 것에 비하면 범이나 곰은 그 이름 자체가 주는 품격이 훨씬 달라 보입니다. 그런 신성한 이름이 이 부근에는 많이 있습니다. 웅진이 곰나루라는 뜻이라든가 금마, 고마, 가마 등 이 곰에서 변형된 글자를 가진 곳이 여럿 있습니다. 그런 ‘곰’이라는 단어는 신성하다는 뜻 이외에 ‘뒤(북)쪽에 있는 땅’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곰 = 여성 = 북(北)으로 쓰이게 됩니다. 고로 남한산성이나 하남에 있는 검단산이 이런 의미의 산입니다. 즉 단(丹 =곡谷 = 골 = 탄灘 = 홀忽)이 마을이나 계곡의 뜻이니 검단산은 사실 검단선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그저 뒤쪽이나 북쪽에 있는 산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곰의 변형인 고마나루를 얘기하는 'ᄂᆞᄅᆞ'가 합쳐진 '고마ᄂᆞᄅᆞ'가 북진(北津)이 되어야 했을 것을 웅진으로 썼고 곰골을 한자로 쓴 게 공주(公州)이니 ‘진짜 곰’을 이 도시나 마을과 연결시키는 것은 호사가들의 말장난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이 곰치재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그저 마을 '뒤에 있는 고개' 혹은 벌곡에서 볼 때에는 북쪽에 있는 이 고개를 곰치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한편 이 ' ᄀᆞᆷ'은 신성하다는 뜻에서 ‘크다, 넓다’는 뜻으로도 파생되었습니다. 그럴 경우 우리가 호남정맥을 할 때 모래재에서 만덕산을 넘어가면서 웅치재를 지났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옆에는 웅치전적비도 있었고... 그 웅치는 고개의 규모로 볼 때 뒤에 있는 고개나 북쪽에 있는 고개라는 의미보다는 큰고개‘라는 의미가 다가옵니다. 그럴 경우 이 웅치재는 한자로는 熊峙岾(岾은 지명을 나타낼 때에는 ‘점’, 고개를 이를 때에는 ‘재’라고 읽음)로 표기하고 순 우리말은 곰고개 정도로 보면 될 것입니다.
10:21 곰치재를 지나 지도 #2의 ‘나에서 우틀하며 내려서려는데 누군가 환하게 웃으며 말을 건네옵니다. 사랑하는 동생 ‘세균’입니다. 만사 제쳐놓고 홀로 진행하여 대간을 100일 만에 끝낸 친구죠. 제가 186일 만에 끝냈는데 이 친구는 시작은 미미했는데 진행하면서 발동이 걸려 그 끝이 창대하게 된 것이죠. 그러고는 바로 정맥에 들어 9정맥을 180일만에 마쳤습니다. “밥은 안 먹고 사나?” 직업이 그래도 괜찮은 직업입니다. 하여간 이 코털의 미소를 사진 한 장 찍어 카톡으로 날려 보냅니다. 이네 답장이 오는군요. “형님. 보고 싶습니다!” 말을 똑바로 하셔야지! 술 한 잔 하자는 얘기로....
10:26
임도를 지나,
10:47
꽃길을 걷습니다.
11:02
입에서는 노래 소리가 흥얼거려 집니다.
이런 봄에 가장 잘 나오는 노래가 '꽃밭에서'죠?
"이렇게 좋은 날에 그 님을 만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때 흥을 깨는 소리가 자꾸 커집니다.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차량의 바퀴 소리입니다.
과수원 옆을 지나는 이 루트가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전에는 오리지널 정맥길을 쫓느라 풀을 헤치고 지나느라 고생이 많았는데 지금은 농장주가 아예 옆으로 길을 내어 주었습니다.
win-win 전략입니다.
이따 저 마을 길 사이로 들어가 바로 좌측 능선을 타면 될 것입니다.
그런데 호남고속도로가 등로를 갈라버리는 바람에 부득이 우틀하여,
암거를 통하여 정맥길을 이어가야 합니다.
11:11
무량사 간판 뒤의 절개지 우측으로 돌려 하는데 선두에서는 그냥 직진을 합니다.
이 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진행하면 민가가 있다는 이유에서 입니다.
조금이라도 주민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겠다는 사려깊은 배려를 엿보게 합니다.
대장님의 그 뜻을 따라 직진합니다.
11:21
그러고는 지도 #2의 '나'의 곳에서 우틀합니다.
11:25
덕목재입니다.
골격만 남아 있던 예전 건물에 조금 더 공사가 진척된 흔적은 보이는데 결국은 또 부도가 난 거 같습니다.
11:32
뒤를 돌아 조금 전 지나온 능선을 봅니다.
11:39
깃대봉 가는 길의 초입은 순탄합니다.
11:51
그러나 너덜지대까지 지나면서 고도는 확실히 올라갑니다.
더위에 녹초가 되는 느낌입니다.
그 깃대봉에서 2등급삼각점(논산23)을 확인합니다.
우틀합니다.
그 흔한 정상석 하나 없고.....
지도 #3
12:04
어느 정도 고도를 올려놔서 그런가요?
능선은 좀 평탄해 집니다.
송전철탑도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하고...
#27 철탑을 지납니다.
더위를 피할 만한 곳에서 식사를 하고 가기로 합니다.
막걸리에 맥주도 섞어 먹고...
40분 정도 식사를 끝내고 다시 일어섭니다.
12:50
임도를 가로질러 치고 올라갑니다.
지도 #3의 ‘라’의 곳입니다.
13:02 지도 #3의 ‘라’의 곳에 오르니 우측으로... 잡목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지만 대둔산 줄기가 ‘ㅡ’자 형으로 뻗어 있군요. 직진합니다.
13:06 함박봉으로 향하여 치고 올라가고 있는 대원들의 모습입니다.
13:09
함박봉에는 산불감시초소와,
준희선생님의 산패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활공장이던 이곳이 지금은 용도 폐기된 모습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까지 누간 그 무거운 걸 지고 올라오겠습니까?
우리 입장에서는 도로를 내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그 활공장에서 양촌면 일대를 봅니다.
우선 눈에 들어오는 게 탑정저수지로군요.
상당한 규모입니다.
우측 낮은 능선 우측이 부적면이고....
좌측 라인은 조금 전 본 팔각정 같은 게 있던 국사봉에서 흘러내려오는 능선이겠고.....
그리고 우측으로 고개를 돌려봅니다.
아! 나무에 가리긴 했어도 우측으로 계룡산 정상이 보이고 그 좌측에 뾰족하게 보이는 게 향적산574m입니다. 아직은 잡목에 가려 계룡산 천황봉 라인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데 조금 더 올라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쪽에서 대둔산이 더 잘 보이는군요.
한편 이곳에서의 진행이 조금 헷갈릴 거 같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직진을 하고 싶지만 그 길은 꾹 참고 좌측 나무 계단을 따라 내려가야 합니다.
참고도 #1
직진할 경우 참고도 #1의 빨간선을 따라 대형 알바로 이르게 됩니다.
13:28
우측 ‘하늘문 교회 삼천리 교육원’ 삼거리에서 좌틀하고,
13:40
황룡재로 내려오니 우리 차가 중간 보급을 위해 기다리고 있군요.
이부장님께서 냉커피를 가지고 오신 듯 흔들어 대는군요.
그런데 내용물은 인삼막걸리였습니다.
걸쩍지근한 막걸리를 한 잔하고 좀 쉬었다가 진행합니다.
자, 또 일어나봐야죠.
#20 도로 우측으로 진행을 하여,
13:47
좌측으로 이정표가 보이면 천호산을 따릅니다.
지도 #4
14:09
직진하고,
14:14
창원정씨 음택을 넘어서면,
바로 팔각정이 나옵니다.
1331.3봉입니다.
우틀합니다.
14:25
사격장 사거리에서 천호산을 따르고...
하염없이 고도를 높입니다.
14:35
이재부터 천호산까지는 그런대로 완만한 능선입니다.
14:43
지도 #4의 '마'의 곳에 이르니 드디어 중앙 진행방향으로 조망이 터지는군요.
가운데 계룡산 천황봉을 중심으로 좌측에 향적산이 위치하고 있고 우측으로는 쌀개봉에서 분기한 용수지맥이 흘러가는 모습이 보이는군요.
우측의 허연 바위가 있는 천왕봉608.6m과 그 우측의 황적봉660.9m이 명백합니다.
산봉우리 위에 글씨를 넣으니 좀 지저분하지 않은가요?
많은 분들이 그런 얘기를 하셔서....
이 부근에는 천호산이 두 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금남정맥 상에 있는 이 천호산(天護山)371.6m이고 다른 하나는 금남기맥(신산경표에 의할 때에는 금강정맥) 상에 있는 천호산(天壺山)501.3m 등이 그것입니다.
금남기맥 상의 천호산은 여산부사관학교 교장(敎場)이 있는 호산리 부근에 있는 곳인데 정상에는 천호산성이 있고 주변에 동굴도 있는 등 관광코스도 만들어놨습니다.
그러나 정작 찾는 이들이 없어 잡풀만 흐드러진 곳입니다.
개인적으로 2014. 6. 7. ‘월간 산’ 8월호에 ‘7정맥 가이드’라는 제목의 연재물 중 ‘금강정맥’ 구간의 글을 쓰느라 이곳을 지나다 잡목과 더위에 고생 좀 하던 기억이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천호산은 태조 왕건과 관계가 있는 산이기도 합니다.
눈을 돌려 아래 1, 4번 지방도로 부근을 봅니다.
도로 옆으로 아웃도어 매장이 보이고 그 바로 위가 개태사역입니다.
도로에서 산쪽으로 붙은 동네가 천호리이고 아웃도어 매장 쪽이 송정리이니 이 일대가 황산벌입니다.
황산벌이라고 하여 우리가 영화에서나 봤던 그 너른 평야지대라고 생각하면 좀 오산입니다.
어쨌든 천호산 산줄기 아래에는 태조가 후삼국을 통일하고 개국사찰로 세운 개태사도 보이는군요.
‘고려사 지리지’ 연산군(連山郡)편을 보면,
‘연산군은 원래 황등야산군이었고 신라 경덕왕(? ~ 765) 때 황산군으로 고쳤다. 태조가 백제를 평정하고 난 뒤 큰 절을 황산의 골짜기에 짓고 산 이름을 ‘천호(天護)라 고치고 절 이름을 개태(開泰)라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태조가 후백제군과 일전을 벌일 때 "하늘(天)이 우리를 돌봐주시니(護) 걱정하지 말고 싸워라!"고 독려했다는 데서 비롯됐다고도 합니다.
그러니 이 천호산의 옛 이름은 황산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황등야산 → 황산 → 천호산입니다.
그리고 고려사 지리지에는 황산군이 지금의 연산현이라는 기록이 나오므로 결국 황등야산군 → 황산군 → 연산현이 되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 한자어가 우리말을 한자로 차용 즉 차자(借字)하는 과정에서 여러 오해들을 불러일으킬만한 일들이 생긴다는 데 있습니다.
처음부터 보겠습니다.
황등야산이라는 한자어입니다.
여기서 등야(等也)는 우리말 ‘ᄃᆞᄅᆞ(다라, 아래 '·'가 지원되지 않음) > ᄃᆞᆯ > 달’을 표기하기 위한 한자어입니다.
‘달’은 높은 곳이나 山, 뫼 등을 일컫는 말이니 이제 누를 황(黃)을 파악해 봅니다.
국어학자들은 우리말 ‘늘어지다’의 어근인 ‘늘’의 소리에 맞는 한자가 없어 부득이 발음이 비슷한 ‘누를 황(黃)’을 찾았다고 봅니다.
훈(訓)의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입니다.
따라서 황등야(黃等也)는 결국 ‘늘달 → 늘어진 산’이라는 뜻이라는 것이죠.
이는 실제 계룡산부터 이 줄기를 보았던 선조들의 사고방식이었습니다.
계룡산에서 쭉 늘어져 내려온 산이라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천호산은 황산이었고 이황산은 '누런 산'이 아니고 계룡산부터 쭉 늘어진 산'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연산이나 논산(늘뫼> 늘미>논미>논산)도 다 황산이라는 같은 뜻의 지명이라는 게 이해가 갑니다.
그러니 서울이나 인천의 ‘논현동’은 논 즉 답(沓)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그저 늘어진 고개라고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실제로 구한말까지 논고개 마을로 불렸던 곳이기도 합니다.
제가 태어난 금호동의 논골도 그 옆의 매봉산에서 늘어진 능선 옆에 있는 동네였습니다.
그리고 이 황산벌 또한 황산에서 비롯된 들 이름이어서 황산벌이었지 가을철 누렇게 익은 논을 연상하여 ‘누런 들’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진행 방향으로는 거의 직선 주로입니다.
우측으로 399.7봉 등 두 개의 봉우리가 유혹을 하기는 합니다.
산바라기님이 독도에 열중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군요.
14:53
천호산을 계속 따르고.....
지도 #5
15:09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상의 천호산371.6m입니다
그런데 정상석은 고사하고 그저 밋밋한 무명봉에 불과하게 방치되어 있습니다.
이럴 경우 다음 봉우리는 좀 넓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15:17
그렇군요.
지도 #5의 '바'의 곳이 천호산이라고 인식되고 있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 표기된 천호산은 분명 이곳이 아닙니다.
영진지도에는 여기서 더 진행한 지도 #5의 '사'의 곳을 310.6봉을 천호봉이라고 표기해 놓았습니다.
어쨌든 여기서 논산시 벌곡면을 버리고 계룡시 두마면으로 들어섭니다.
그러면서 계룡사 두마면과 논산시 연산면의 시계를 따릅니다.
15:44
지도 #5의 ‘아’의 곳에서 부드럽게 좌틀합니다.
15:53
304.8봉에서 3등급삼각점(논산425)를 확인합니다.
삼각점이 나무 속에 숨어 있어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16:06
#86 송전탑을 지나고,
..........
지도 #6
16:12
지도 #6의 '자'의 곳을 주의하여야 합니다.
진입금지 표시가 되어 있습니다.
과수원이라는 말입니다.
좌측으로 우회하는 길을 만들어 놨습니다.
임도로 우틀하여 진행해야,
농장주나 저희 모두 얼굴을 붉히지 않습니다.
16:29
211.6봉을 넘어 견공 가족이 영접을 받으며 진행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들 중 애미는 얼마 남지 않았을 거라는 느낌이 들더군요.
식용문화를 바꾸든지 해야지 원....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진행합니다.
음택도 지납니다.
지도 #6의 '차'의 곳으로 영진지도에는 이곳을 '두리봉'이라 표기해 놓았습니다.
16:43
삼거리 안부를 지나,
16:47
천마산287.2m입니다.
너무 더워서 잠시 벤취에서 퍼집니다.
정면으로 다음 구간때 진행할 나즈막한 능선이 보입니다.
이제부터는 동네 사람들 산책코스라 안전시설이나 등로 상태 모두 양호합니다.
17:03
충청남도 삼각점을 보고,
계룡시 전경과 계룡산을 봅니다.
한층 가까워졌습니다.
좌측 향적산.
계룡산 천황봉과 바로 옆이 쌀개봉 그리고 그 우측으로 용수지맥의 천왕봉과 황적산.
우측 파인 곳이 민목재 그 우측으로 세 번째 봉우리가 관암산526.5m.
그리고 그 우측의 끝이 금수산530.4m.
좌측으로 약사봉294.9m이 볼록 솟아있고 그 우측 대둔산에서 갈라진 유등지맥(신산경표로는 안평지맥) 뒤로 보문산457.4m이 그리고 그 우측 고원지대 같이 보이는 식장산592m의 안테나가 보입니다.
대단한 조망터입니다.
아니!
갑자기!
이게 누구십니까?
여신이 강림하시다?
아니!
이 분은 또 누구시고!
오늘 하루 즐거웠습니다.
17:33
마지막 서비스로 삼각점(공ㅈ457)을 하나 보고,
짜배기로 그 옆의 마모된 삼각점도 하나 더 보면,
17:41
오늘 구간의 날머리인 양정고개의 계룡지구대입니다.
먼지도 털고 지구대 좌측의 수도꼭지에서 머리도 감고....
다음 구간의 편의를 위해서 조금만 더 걷죠.
17:53
슈퍼에서 맥주도 한 통 사서 마시면서 엄사초등학교로 이동합니다.
오늘 산행은 여기서 마치고 다음 구간은 계룡산 구간이 기다리고 있군요.
삼겹살 파티를 하신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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