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대통령이 군사정권의 감시를 피하고자 매주 목요일 뜻을 같이 하는 동지들을 모아 결행했던 모임.
아무래도 가택 연금에 가까운 상황에서 벗어나 도청도 없는 곳에서 민주화 투쟁에 관한 얙;도 나누고 운동도 할겸 '산'보다 더 좋은 곳은 없었을 것입니다.
감시의 눈초리도 산까지 쫓아와 염탐하기는 그리 쉽지않았을 것이니 말입니다.
그 민주산악회의 연을 끈끈하게 이어오고 있는 산악회가 바로 '새마포 산악회'죠?
그러니까 햇수로만도 36년이 훌쩍 넘은 벌써 중년의 나이로 접어 들어가는 시기이군요.
아주 유서 깊은 산악회입니다.
오늘 산행은 해남지맥 2구간입니다.
신산경표를 따를 경우 땅끝기맥6구간이고요.
그런데 중간에 한 구간을 '점프'했으니 5구간 째가 되는군요.
봄에 시작했으니 이제 초여름으로 들어가는 시기이련만 벌써 한 여름 날씨이니 더위가 오늘 산행 구간의 난이도를 좌우할 것 같습니다.
뜬금없이 왜 '해남지맥'이냐고요?
2구간 때 충분히 말씀드렸죠?
땅끝기맥을 산자분수령에 충실하게 설명하자면 영산동지맥 + 해남지맥으로 구분을 하여야 한다고.
그리고 이는 땅끝기맥을 토막내는 게 아니고 산자분수령에 충실하게 재해석 내지는 재정립하는 거라고.....
나아가 이는 박성태 선생님의 신산경표를 폄훼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신산경표의 취지를 계승, 발전시키는 것이라고도 말입니다.
관련된 대목에서 또 말씀드리기로 하고 ....
오늘이 5월 18일이군요.
군대에서 군복무를 하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제가 광주에서 태어나거나 광주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더라면 지금 제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 지도 궁금해집니다.
죽전으로 나갑니다.
기라성같은 선배님들을 태운 버스가 들어옵니다.
마음 같아서는 이 새마포산악회를 탈퇴하고 이 분들과는 절대 산행을 함께 하지 않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싶은 생각이 또 들기 시작합니다.
아마 이 생각은 이따 산행을 마감할 쯤 되면 더 확실해 질 것 같습니다.
그러다 월요일 정도되면 잊어버리다가도 목요일 아침 죽전에 도착하면 또 떠오르는 ...
새마포와는 히말라야에 살고 있다는 전설 속의 새 '한고조'같은 생활의 반복입니다.
비알을 치고 올라갈 때 새마포 육상 선수들의 추진력은 상상하기가 좀 쉽지가 않습니다.
그것도 시종일관.....
다른 데 가면 제가 듣는 얘기를 또 확인하러 갑니다.
산행개요
1. 산행일시 : 2017. 5. 19. 목요일
2. 동행한 이 : 새마포산악회
3. 산행 구간 : 해남지맥 2구간(제안고개 ~ 장군봉 ~ 당재 ~ 서기산 ~ 만세고개 ~ 만세마을)
4. 산행 거리 : 15.78km
구 간 |
거 리 |
출발 시간 |
도착 시간 |
비 고 |
제안고개 |
|
10:45 |
|
|
장 군 봉 |
2.69 |
11:44 |
59 |
|
당 재 |
2.86 |
12:44 |
60 |
|
388.4봉 |
3.33 |
14:09 |
85 |
10분 휴식 |
서 기 산 |
1.95 |
15:02 |
53 |
|
만세고개 |
3.52 |
16:35 |
93 |
15분 휴식 |
만세마을 |
1.43 |
16:55 |
20 |
|
계 |
15.78 km |
06:10 |
05:45 |
실 소요시간 |
산행기록
지도 #1
10:43
지난 구간은 역으로 진행했었죠?
의문이 드는 지 몇 분이 말씀 하시더군요.
"왜 지난 구간 산행기 안 올렸소? 기다렸는데!"
"아! 예.... 제가 시간이 좀 바빴습니다."
"그래요? 이번 구간은 꼭 올리는 거지요?
"아... 그럼요."
모르셨군요!
대선배님의 말씀에 그저 이렇게 대답은 했지만 오늘도 사실은 모르겠습니다.
어디서 누구에게도 하고 싶지 않은 말씀을 차마 제 입으로는 말씀드리지 못하겠습니다!
어쨌든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애향탑을 보고 오늘 산행을 시작합니다.
오늘 들머리로 이동합니다.
준비운동이요?
새마포엔 준비운동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가면서 몸이 풀리도록 그렇게 체득화 되신 분들에게 준비운동이라니요!
"그래도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서라도..."
'그건 스스로 자기 몸을 관리하지 못하거나 자기 몸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얘기니 거기 가서 알아보세요!"
"그래도 안전이..."
"아이 참! 그 사람 말 많네!"
오늘 구간은 해남군 계곡면과 강진군 성전군의 군계를 따릅니다.
이 된비알 말고 혹시나 주위에 다른 루트가 있지나 않을까 왔다갔다 해보지만 아무러면 선답자들이 몰랐겠습니까?
그 분들도 다 이 곳 저 곳 쑤셔보시다가 결국 이 루트로 굳어진 것일 겁니다.
저 이외에는 다 고수십니다.
10:50
일단 능선 위로 달라붙습니다.
10:51
그런데 등로에 갑자기 삼각점이 나옵니다.
지도 #1의 '가'의 곳입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이런 곳에 왜....
한북정맥 주위의 단맥을 하다 이런 것들을 두어 번 봤습니다.
삼각점을 폐기하면서 무거우니까 아무 데나 버린 혹은 아무 데나 박아 놓은....
10:52
개활지를 지나 다시 숲속으로 들어갑니다.
#19 철탑을 오른쪽으로 보고...
조금 이따 올라가서는 진행할 봉우리들이 그 모습을 미리 보여줍니다.
좌측 깃대봉이라고도 불리는 316.7봉 그리고 우측이 장군봉335.3m.
길이 갑자기 좋아집니다.
나무 숲이 햇볕을 막아주고...
오늘 최고 기온이 26˚까지 오른다고 하니 체감온도는 30˚ 정도까지 오르지 않을까요?
10:59
정골재를 지납니다.
지도와는 정골재 위치가 조금 차이가 납니다.
재岾라 함은 고개를 이야기 하는 것이고, 고개는 양옆에서 볼 때에는 그나마 낮은 곳이어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이곳이 이 부근에서는 가장 낮은 곳이거 양 옆으로 예전에 사람이 다닌 흔적이 보이기도 합니다.
우측으로는 멋진 곳에 자리잡은 민가가 보이기는 한데 개소리 하나 안 들리니 사람이 사는가 싶습니다.
11:02
이건 또 뭔가요!
지도에 정골재라고 표기된 곳에 박혀 있는 삼각점.
이것도 아까의 것과 같은 용도인가요?
폐기된 것.....
대나무 밭.
충청남도 이북에서는 보기 힘든 대나무.
신기하여 대나무를 한 번 만져봅니다.
진짜 대나무 맞습니다.
초장에 너무 힘을 빼는 아닌가 싶습니다.
너무 덥군요.
11:17
그러고는 지도 #1의 '다'의 곳에 올라섭니다.
이제 오리지널 능선을 타게 될 것이니 그나마 심적으로 위안이 됩니다.
우틀합니다.
11:20
여기가 이른바 깃대봉.
여기서 3등급삼각점(해남306)을확인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 봉 오기 전에 잠깐 깃대 흔적은 봤지만 글쎄요.....
대부분 깃대봉이라 하면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이 우리 땅을 측량하기 위하여 일정한 봉우리에 올라가 붉은 깃발을 꽂아 그 봉을 이를 때 깃대가 꽂힌 봉 그래서 깃대봉이라 부른 것일텐데 아무튼 지금은 그 흔적이 없어진 것 같습니다.
이후 무난한 등로를 걷습니다.
아까 아래서 깃대봉 ~ 장군봉 흐름을 보았듯이 높낮이가 별로 없었던 기억입니다.
11:40
바위가 갑자기 나타나는군요.
11:44
장군봉이라고 해봤자 변변한 정상석은 물론 안내판 하나 없습니다.
제 표지띠 하나 걸어 놓습니다.
12:00
지도 #1의 '라'의 곳에서 임도를 만납니다.
도림리 마을에서 올라오는 임도이지만 우리 지맥길과는 무관한 길!
억울하지만 우측으로 오릅니다.
좌측으로 지나온 장군봉과 깃대봉이 보이긴 하지만 벌써부터 조망하는 것도 지겨워집니다.
더위 때문입니다.
12:07
산불감시초소군요.
안에는 깨끗한 여름 이불도 갖춰져 있고 문도 열려 있어 비올 때나 혼자 야간 산행할 때 휴식처로는 더 없이 좋을 것 같습니다.
지도 #1의 '마'의 곳입니다.
우측으로 조망이 트이긴 하지만 이도 잠시뿐.....
12:14
비알을 올라 320.2봉으로 올라섭니다.
땅끝지맥이라....
저는 해남지맥.
그리고 보통 분들은 땅끝기맥.
뭐 통일 된 뭔가가 있어야지 다른 것도 아니고 땅이름이 이렇게 중구난방 식으로 다채로와도 되는 건가요?
산림청장님께서 뭔가를 해주셔야 할 듯!
한번 볼까요.
지난 번 말씀드렸다시피 대간이니 정맥이니 하는 용어들 아니 개념들은 산경표에 나오는 그것들입니다.
백두대간 이하 1정간 13정맥이 나오고 그것들은 강이름을, 호남정맥이나 해서정맥 등은 지방 이름을 각 따서 산줄기 이름을 붙였습니디.
그게 1정간 13정맥입니다.
그것들이 남한으로 내려오면 9정맥으로 범위가 좁혀집니다.
이 대간이나 정맥들은 후손들이 이 산줄기를 타고 산행을 하면서 심신을 잘 닦아야 한다며 우리 선조들이 만들어 주신 게 아님은 물론입니다.
다만 산악숭배사상을 종교의 한 갈래 같이 인식한 우리 민족의 산을 바라보는 정서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을 일본의 지질학자 고토 분지로는 자신이 독일에서 배운 서양지리학 혹은 지질학을 여기에 대입하여 실험적 성격의 논문 하나를 발표하게 됩니다.
이게 '지리에 관한 한' 우리를 근 70여년 간 눈뜬 장님으로 만든 '조선산맥론'입니다.
여기서 고토는 우리나라 산경표에 나오는 1대간 1정간 13정맥을 36개의 산맥으로 참절斬絶합니다.
1903년의 일입니다.
참고도 #1 고토 분지로의 조선산맥론에 나오는 조선산맥도(지체구조도)
어떤 것은 바둑판 모양으로, 어떤 것은 강을 건너고....
지금 것과 비교하면 정신이 좀 사납습니다.
주인도 없는 땅 같이 임의로 지질조사를 합네하면서 들어와 서양지리학에 대해서는 알 리 없었던 조선의 땅을 그는 실험용 시체 해부하는 의대생 같이 마구 자르고 베고 그리고 그어버렸던 것이죠.
좀 안다고 하는 그의 제자 야쓰 쇼에이는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던지 그것을 좀 가지런히 정리를 했죠?
참고도 #2 야쓰 쇼에이의 조선산맥도
위 지도들은 제가 광주산맥의 실체를 해부하는 글을 썼었는데 거기서 가져온 지도입니다.
고토의 지도를 야쓰는 좀 단순화 시키긴했지만 무슨 산맥 즉 지질구조선이 저렇게 엉키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실험적 성격의 논문이라는 게 그래서 나오는 겁니다.
논문이라는 게 그런 것 아닙니까?
자신의 연구 성과를 글로 엮어내는 것.
다른 이들의 동의나 검증을 거치지 않은 .....
하지만 일제 식민교육은 이를 조금 더 변형한 산맥도를 실업실찬지리에 17개의 산맥으로 줄여 게재하다 지금의 산맥도로 굳어지게 됩니다.
공인된 산줄기가 되어 버린 겁니다.
참고도 #3 산맥도
우리는 이 산맥도를 보고 공부를 했었죠.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산맥에 관한 얘기는 복잡하고 할 얘기도 많아 지금 여기에 게재하기에는 그 양이 너무 많기도 하고 지루하며 약간 부적절 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이런 이유로 1905년 통감부 체제로 들어가면서 지리교과서에는 이런 산맥이 등장하고 당연히 제자리에 있어야 할 산경도는 보이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일제강점기가 진행되고 한국전쟁도 거치게 됩니다.
그러고는 1980년.
대동여지도를 복원하는데 성공한 지도쟁이 이우형님이 홀연히 나타납니다.
그 이우형 선생은 인사동 고서점에서 우연히 산경표라는 책을 발견합니다.
'산'자가 들어간 것이니 무조건 집어들고 그 가격을 산정할 수 없었던 서점 주인은 단골 이우형선생께 거의 거저인 가격으로 줍니다.
이 순간이 산경표가 빛을 보게된 순간이며 이는 나폴레옹이 로제타석을 발견한 것 그 이상이었습니다.
아니 우리같은 산꾼들에게는 1,100년간 숨겨졌던 역사가 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도선(827~898)의 옥룡기가 처음 백두대간의 흔적을 이야기한 지 거의 1100년만에 백두산과 지리산을 잇는 산줄기가 우리나라 '산줄기 역사'에 재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일제에 의해 산맥이 들어오면서 잊혀졌던 우리 산줄기 역사가 다시 시작되는 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1980년을 우리나라 산줄기 상의 원년으로 보고 싶은 것입니다.
참고도 #4 산경도
산꾼들은 산경표의 취지를 연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우형님이 시작했고 박기성님이 거들었고 박용수님이 해설을 붙였습니다.
그것을 다시 2000년에 현진상이 살을 붙였습니다.
그러고는 산경표를 따라 산경도를 그렸습니다.
이른바 우리나라의 산줄기였습니다.
이런 와중에 산악인 출신 광주의 의사인 조석필은 어마어마한 책을 하나 내게됩니다.
'태백산맥은 없다'라는 책이죠.
1997년에 초판을 찍은 이 책은 그야말로 산줄기와 산맥의 차이를 보여주는 우리나라 유일의 책으로 그야말로 우리에겐 bible과 같은 그것이었습니다.
어쨌든 여기에서 보여주는 것은 정맥까지였습니다.
산경표는 1대간 1정간 13정맥을 나타내주는 표이자 책이었으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위 조석필 선생의 태백산맥은 없다'가 묘한 위앙스를 풍기며 그 책을 마무리하였습니다.
그 꼭지의 제목은 '산경표를 좀 더 윤택하게 쓰기 위한 제안'이었습니다.
그 안을 들여다봤습니다.
웬걸 갑자기 듣도 보도 못했던 기맥이라는 개념 하나가 등장합니다.
그러면서 영산북기맥이니 땅끝기맥이니 한강기맥 같은 기맥岐脈 개념이 등장합니다.
그러고는 그 제안 이유를,
①본류를 구획하는 주맥산줄기인데 그 본류가 10대강이 아니라는 이유로 명명되지 않은 것들로 위에서 설시한 영산북기맥(신산경표 상의 영산기맥)과 땅끝기맥을 들었고,
②지류를 구획하는 지맥산줄기이되 세력이 큰 산줄기로 이에는 한강기맥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지맥이라는 용어는 언급을 하였으되 다만 위와 같은 줄기를 지맥枝脈으로 할 것이냐 아니면 기맥으로 할 것이냐의 고민이었습니다.
즉 용어 선택의 고민이었지 산줄기의 계급에 대한 그것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럴 때 박성태 선생의 신산경표가 등장합니다.
여기서 잠깐 제가 출간 준비 중인 '백두대간을 걷다(가칭)' 중에서 관련 대목을 가져옵니다.
박성태 신산경표를 만들다.
산경표는 온전하게 우리나라의 산줄기를 정확하게 보여주는가? 그리고 그것을 지금의 눈으로 해석을 해도 전혀 흠이 없는 완벽한 것인가? 혹은 현대적으로 해석할 때 그 당시와는 조금 다른 면이 있지는 않은가?
뒤에 보겠지만 이 산경표가 우리 생활에 끼친 영향은 참으로 컸다. 환경문제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찾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산경표를 제작한 시대와 지금은 많이 변했다. 하긴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하물며 20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는데 말해야 뭐하겠는가.
사실 산경표가 갖는 한계는 시대적인 상황에 비춰볼 때 편찬 당시에 이미 존재했다. 신경준이 쓴 ‘동국문헌비고’의 ‘여지고’ ‘산천총설1’의 우리나라 12종산의 제1산을 보면 백두산에 앞서 삼각산이 나와 있다. 또한 ‘산수고’의 ‘산경’에도 제1산은 ‘삼각산’이다. 이게 무엇을 뜻하는가? 당연히 임금이 있는 도성 한양의 진산이 먼저 나와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니겠는가. 당시 정치, 문화 등 모든 걸 장악하고 있던 유학의 영향이다.
그러니 한북정맥은 한강이 서해와 만나는 두물머리에서 마쳐야 함에도 삼각산을 지나야 했기에 부득이 장명산에서 끝나는 것으로 매조지 했다. 그렇게 본다면 금북정맥의 끝이 계룡산을 지나 백제의 수도였던 공주를 지나 부여로 가는 것도 이해가 간다.
어쨌든 이는 현대식 지리개념과는 차이가 있다. 더욱이 대동여지도의 정맥 줄기와도 차이가 나는 부분이 있다. 즉 해서정맥의 끝이 장산곶으로 가는 게 아니고 대동강 남쪽으로 가야하는 것이나 금북정맥의 끝이 군산으로 향해야 한다는 것, 호남정맥의 끝이 바다와 섬진강의 합수점으로 가야 하는 것 등이 그 예다.
물론 대동여지도 같은 고지도에 나오는 지명을 지금 지도에 대입하여 하나하나 꿰맞추는 데는 사실 무리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일단 그때의 그 상황과 지금의 상황을 지도 제작 취지에 맞춰 최대한 근접하게 작업을 하여 새로운 산경도를 그린다면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박성태 선생은 이렇게 산경표라는 지리서를 오늘날의 현실에 맞게 재해석한다. 산줄기 주행의 오류를 시정하고 겹침줄기 문제점을 해소한다. 그러고는 나아가 그 하위개념인 기맥과 지맥을 확립하고는 거기에 걸맞은 이름을 부여하기에 이른다. 이는 세인들로 하여금 어느 정도 통일된 산줄기 이름을 부르게 할 수 있게끔 한 것이다. 필자는 선생의 이 작업은 실로 위대한 것이어서 우리나라 산줄기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고 본다.
“그래? 그 정도야? 그런데 신산경표는 나름대로 비판을 받기도 하는 것 같던데?”
“누구나 어느 정도의 비판은 받는 거 아니겠냐. 자기 견해랑 맞지 않는다면 말이야. 하지만 우리나라 산줄기 문화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up-grade 시킨 것만큼은 확실해. 물론 불경스럽게도 신성한 경전(?)인 산경표를 건드렸다는 주장은 경청할 만 하지. 특히 신백두대간을 만들어 백두대간을 건드렸다는 것에 대해서는 더 불만의 목소리가 크지. 그리고 단시간 내에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지 않고 혼자 일일이 작업을 하다 보니 독단으로 흘렀다는 점도 간과할 수는 없어.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과(過)보다 공(功)이 훨씬 더 크다고 생각해”
“하나하나 살펴줘. 무슨 얘긴지 모르겠어.”
신산경표의 특장(特長)
①산줄기 주행의 오류 시정
우선 가정(假定)이 필요하다. 이하 산경표와 신산경표에 나오는 지명들은 현재의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 나오는 그것들과 최대한 일치하게끔 표기된 것이라 인정하기로 한다. 산경표는 원칙적으로 지형적 원리에 따라 선을 그으면서 10대강을 구획하는 산줄기를 ‘큰 산줄기’로 삼았고 신산경표 역시 이 원칙을 따랐음은 물론이다.
즉 정맥은 10대강을 구획하여야 한다. 한편 산경표가 위에서 본 것과 같이 당시의 유교적인 사고방식으로 인하여 정맥의 주행이 도읍지 혹은 도성을 지나는 형식으로 그어졌다. 신산경표는 그것을 자연스럽게 그 하구로 주행하게끔 유도한 것이다. 이로써 가령 한북정맥과 한남정맥은 한강 하구로 가게 되었고, 호서정맥과 금강정맥은 금강 하구로, 호남정맥은 섬진강 하구로 그리고 낙동정맥과 낙남정맥 등은 낙동강으로 가게 되었다.
이는 북한 쪽의 관북정맥이나 해서정맥도 마찬가지이다. 이에 맞춰 그 이름에도 변화를 주어 금남정맥은 금강하구로 주행을 하므로 산경표와 구분하기 위하여 금강정맥으로, 금북정맥의 경우에는 호서정맥 등으로 그 이름도 현실에 맞게 변화를 줬다.
여기서 주의하여야 할 것은 산경표에서 보이지 않던 이름들이 보인다는 것이다. 호서정맥이니 관북정맥, 관서정맥, 금강정맥 등이 그것이다. 이 이름을 바꾸고 정맥의 주행을 이동시키는 것들이 산경표 신도(?)들의 노여움을 사서 비판의 대상이 된 것이다.
②겹침줄기 문제의 해소
사실 신산경표의 최대 특장(特長)이라고 한다면 기술한 바와 같이 모든 정맥들의 끝을 10대강의 하구로 진행케 한 것이다. 이것은 산자분수령의 원칙에 부합한 것임은 틀림없다. 그에 더하여 한남금북정맥이나 무명으로 있던 겹침줄기들의 문제도 해소하면서 그에 따라 명칭도 확정한 것에 있다 할 것이다.
참고도 #5 북한 쪽 정맥의 겹칩줄기
이렇게 될 경우 청천강이나 예성강은 백두대간에서 발원하는 10대강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하여 산경표에서는 이를 한남금북정맥이나 금남호남정맥 같이 독립된 정맥 이름을 부여함이 없이 그냥 무명(無名) 즉 이름이 없는 줄기로 남겨두었다고 신산경표는 추정하고 있다.
이런 불합리한 점을 신산경표는 청천강 쪽은 더 긴 쪽인 청북정맥 쪽으로 붙여 그 끝은 압록강 하구로 가게 하면서 그 이름은 기존의 청북정맥과 구분하기 위하여 그 지역의 이름을 따서 관서정맥으로, 짧은 쪽인 청남정맥은 대동강 하구로 향하게 하고 그 이름은 청천정맥으로 변화를 꾀했다.
여기서 몇 개의 문제점이 발견된다. 우선 관서정맥의 경우 이 이름은 타당한 것이어서 만약 청북정맥을 고수하려 했다면 그 줄기의 끝은 청천강 북쪽으로 향해야 했을 것이다. 문제는 청천정맥에 있다. 청천정맥은 청천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음에도 대동강으로 향했다. 이 줄기는 청천강을 싸고 있는 줄기이므로 당연히 청천강 남쪽으로 가야했고 그 이름은 당연히 지금같이 청천정맥으로 했으면 아무런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가설이지만 신산경표의 이 청천정맥은 대동강으로 갔으므로 아예 대동정맥으로 했어야 하지 않을까?
필자의 이 주장은 해서정맥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즉 해서정맥은 대동강 남쪽으로 가면서 이름을 아예 대동정맥으로 고쳐야 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한다면 예성정맥은 예성강 하구로, 한북정맥은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곳으로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신산경표는 위 청천강 줄기와 마찬가지로 정리했다. 즉 두류산에서 갈라지는 줄기는 더 긴 쪽인 해서정맥에 그 겹침줄기 두류산~양지봉 분기점을 포함시켰다. 그러고는 그 줄기의 끝을 기존의 장산곶에서 대동강 하구로 향하게 하면서 다만 그 이름만은 해서정맥으로 그대로 두었다. 그러고 양지봉 분기점에서 남진하는 임진북예성남 정맥은 그 이름만 예성정맥으로 단순화하는 변화를 주었던 것이다.
이런 작업은 남쪽의 한남금북정맥이나 금남호남정맥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즉 위와 같은 절차를 거쳐 한남금북정맥은 금북정맥에 포함시키되 그 정맥의 끝을 금강으로 가게하고는 그 이름을 호서정맥으로 명명했다. 같은 방법으로 금남호남정맥의 경우에는 더 긴 쪽인 호남정맥에 편입시키고, 금남정맥은 그 끝을 역시 금강 하구로 주행을 변경시키면서 이름도 금강정맥으로 바꾸어 남한의 1대간 9정맥을 1대간 7정맥으로 변경 시키는 작업이 완성되었고 이것이 실제 신산경표의 핵심이라고 부를 만하다.
그리고 더욱 더 중요한 것은 이 원리들이 고스란히 그 하위 개념인 기맥이나 지맥에도 적용이 된다는 것이다.
③기맥(岐脈), 지맥(枝脈)의 정립
기맥이라는 용어는 실제 조석필 선생이 '태백산맥은 없다'에서 제안한 개념이었다. 그것을 선생이 적극 수용하여 신산경표에서 12기맥을 그 이름과 함께 제시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신산경표는 남한의 산줄기를 1대간 7정맥 6기맥 157지맥(최근에 162지맥으로 수정)으로 산줄기를 그었다. 이는 그만큼 우리나라의 산줄기 범위를 확장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기맥이나 지맥도 강의 세력에 따라 구분이 되었다. 겹침줄기가 있는 경우에는 그 줄기의 끝이 반도를 향하고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상위등급의 강을 따르는 줄기를 본줄기로 하였다. 그리고 동일등급에서는 긴산줄기를 본줄기로 하였음을 밝히고 있다(신산경표 32쪽).
④신백두대간의 설정
모두(冒頭)의 지리산 구간에서 밝힌 바 있다. 하물며 지맥이나 정맥도 합수점인 물을 만나 그 맥이 다하게 되는데 백두대간의 끝이 바다가 아닌 지리산 천왕봉이라는 데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그리고 백두대간의 끝을 돌려 노량으로 진행하게 한다. 즉 영신봉 ~ 천왕봉 구간을 영신봉 ~ 노량 구간으로 돌린 것이다. 산경표 교도들의 신산경표에 대한 저항이 극심하게 이는 부분이 바로 여기다. 이미 자세하게 보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신산경표의 치적은 통일이나 민간 차원 혹은 남북한 정부 차원에서의 교류 및 통일된 산줄기 논의에 대비하기 위하여 북한 쪽의 산줄기도 같은 방식으로 모두 정비하였다는 점에 있다고 할 것이다.
이는 사실 우리나라 지리학자들이 그 누구도 이해하기 어려운 지질학 용어나 거들먹거리고 있을 때 실제 우리나라 지형을 연구하여 선을 긋고 이름까지 지어 세상에 내놓았다는 것은 사실 대단한 역작이다. 그런데 이렇게 훌륭한 신산경표가 모든 면에서 완벽하여 책 그대로 타당한 것인가? 즉 혹시 박성태 선생이 우려한 주줄기 문제, 산줄기의 주행 문제 그리고 이름 문제 등은 다 타당하여 맹목적으로 그대로 수용해도 괜찮은 것인가?
이에 대하여 산경표가 강을 중심으로 산줄기를 파악하였기 때문에 이는 정맥 이하의 산줄기도 고스란히 타당하여 산자분수령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다. 그러고는 산줄기의 이름도 신산경표와는 달리 산경표의 취지에 맞춰 ‘강’이나 ‘천’ 이름을 따야한다고 주장한다.
대한산경표의 입장으로 ‘산으로’ 박흥섭이 정리한 개념이다.
어쨌든 조석필 선생은 이전에 "산경표가 지리 인식의 원리를 충분히 제시해 주었고 우리는 그것만이라도 배워왔으면 족하다."고 하였다. 우리가 산경표를 더욱 깊게 연구하여 그 근본 취지를 제대로 배워야 하는 이유다.
사실 여기서 '산으로' 박흥섭님이 주장하는 바를 더 자세히 이야기해 줘야 할 것이나 이는 곧 발간될 '대한산경표'에서 자세히 설명되어질 것이니 그 이야기는 뒤로 미룹니다.
다만 박흥섭님은 조석필 선생이 처음에 고민했던 것처럼 용어 및 산줄기 계급의 단순화를 주장합니다.
"기맥이니 지맥은 우리 선조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의 편리내지는 편의성에 방점을 두고 만든 개념이다. 그러니 최대한 간편하고 단순화 할 것"을 주문합니다.
백번 동의하고 타당하며 그 이론에 박수를 보냅니다.
다만 벌써 기맥이란 개념 특히 한강기맥이 갖는 상징성으로 기맥이라는 개념을 산꾼들의 뇌리에서 지우기가 어려운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이미 어느 정도 굳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럴 경우 대한산경표에도 최소한 그리고 단순화된 개념 가령 유역이니 10대강이니 하는 분류 기준 없이 특별한 조건의 테두리 안에서 '기맥'이라는 개념은 존치하여야 하는 게 아닌가 조심스럽게 진단합니다.
그리고 이 해남지맥이라는 이름이 생기게 된 것도 지난 2구간 때 설명한 부분이기 때문에 그 내용으로 갈음합니다.
사설이 길었습니다.
여기서 강진읍을 만나 이제부터는 강진군 강진읍과 해남군 계곡면의 군계를 따라 걷습니다.
지도 #2
12:24
320.2봉에서 내려와 각시봉214.8m 갈림길을 지납니다.
12:33
그러고는 275.7봉을 지나고,
여기서 좌틀하여 가벼운 비알을 내려갑니다.
12:44
그러면 선생님의 산패가 걸려 있는 당재입니다.
예전에는 강진의 서산리와 해남의 월신리 주민들이 오가던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쇠락된 그런 고개가 되어버렸군요.
12:47
오석을 왜 갖다놨는지....
이곳에서 나는 돌인가요?
12:58
329.1봉의 전위봉을 지나,
277.4봉이라면 뛰어서도 갈텐데 왜 그리 험난한 봉우리 같은 지....
모르긴 몰라도 이 지역만큼은 폭염주위보가 내렸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13:18
그 277.4봉을 지나,
13:25
#27 철탑을 지나고,
13:37
356.4봉을 힘겹게 오릅니다.
지도 #3
14:09
388.4봉과 갈리지는 루트는 사면치기로 지납니다.
14:16
이제 오로지 임도만 고대하며 오르락 내리락 거립니다.
빨래판!
정말 장난이 아닙니다.
겨울에야 별 군소리 없이 지나련만 한여름 같은 오늘 날씨에는 그저 시원한 등목만이 생각나는군요.
14:20
358.1봉을 지나면서,
우측으로 조망이 잠시 터지는 곳을 봅니다.
황죽리 황죽저수지.
14:43
이제 임도가 나올 법도 한데 고도는 계속 올라가기만 합니다.
14:44
군시설물 표시가나오고,
14:47
그러고는 임도입니다.
또 올라가야죠.
임도는 빛좋은 개살구.
15:02
그나마 오늘 산행은 우리 새마포의 막내 윤지열님이 많은 도움을 주십니다.
삼거리에서 막걸리를 털려고 하는데 정상 조망이 탁 트였다는군요.
그럼 안 볼 수가 없죠.
15:02
서기산 정상입니다.
406.7봉에서 흘러내리는 줄기를 봅니다.
움푹 파인 곳이 꼽지래재.
그 고개를 넘어서 매봉307.9m
그 바로 좌측 봉이 262.5봉.
좌측에보이는 동네가 강진읍.
매봉 우측 저수지가 임천저수지.
그리고 작은 물줄기같은 게 바로 남해 바다이고 그 뒤 줄기가 장흥지맥(사자지맥) 줄기입니다.
저 장흥지맥을 할 때 가시나무와 덩굴때문에 고생 좀 했습니다.
오늘 덕분에 재미있게 잘 진행했습니다.
진행 방향을 봅니다.
바로 앞이 제 GPS로는 386.2봉으로 나오는데 진혁진 개념도에는 400고지로 되어 있군요,
그 다음 봉이 406.7봉.
조금 고도를 낮췄다가 368.8봉에서 직진을 한 다음 그 다음 고개에서 좌측으로 떨어지겠군요.
북서쪽으로는 아까부터 보아오던 흑석산652.8m.
저 봉우리 때문에 신산경표에서는 저 줄기를 흑석지맥이라고 부릅니다.
15:17
15분 정도 머무르다 일어납니다.
그나저나 우리 육상부 선수들은 벌써 도착하여 총무님이 준비해 주신 수육을 맛있게 반주를 하면 드실 것 같은데.....
우린 제한 시간 오우버하여 내려가자마자 바로 출발하여야 할 것에 마음의 준비를 합니다.
그나저나 뒤에 한 분이 더 오시는데....
문제는 뭐냐하면 우리가 결코 그다지 늦은 시간에 진행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앞에 가시는 선수들이 워낙 빠르다는 거지요.
서기산을 내려오면서 일단 해남군을 버리고 강진군 도암면으로 들어옵니다.
그러면서 도암면과 강진읍의 면계를 따라 진행합니다.
지도 #4
15:30
타니재를 지납니다.
다행히 그렇게 심하게 떨어지지는 않는군요.
15:40
군삼각점 같은 것을 보고,
15:42
진혁진지도의 400봉은 우측 사면치기로 진행합니다.
15:47
406.7봉으로 진입합니다.
바위로 이루어진 이 봉에서 주위를 조망합니다.
바로 앞이 매봉307.9m.
뒤로 강진읍내가 보이는군요.
조금 전 봉 임천저수지와 우측으로 204.8봉에서 만덕산으로 올라가는 줄기가 명백하며 정면으로는 바다 건너 장흥지맥 라인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중앙 뒤로 만덕산.
바로 앞이 영파리 장동마을.
우리가 하산 할 지점은 우측 중앙 산줄기 우측이 되겠군요.
이 줄기가 덕서리와 영파리의 경계가 되는군요.
지나온 서기산을 돌아봅니다.
우측으로는 해남군 계곡면 신평리 정경.
그 뒤로 이어지는 줄기가 잡목으로 악명이 자자한 화원지맥.
다시 진행해야죠.
16:02
다행히 아까 능선을 눈팅한 대로 길은 아주 부드럽습니다.
16:08
368.8봉에서 강집읍을 버리고 온전하게 강진군 도암면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16:24
무명봉을 지나,
16:35
만세고개로 떨어집니다.
일단 오늘 지맥 산행은 여기까지입니다.
여기부터는 소위 말하는 접속구간입니다.
좌틀합니다.
16:41
여름에 보통 이런 길은 지나기가 쉽지 않은데 그런대로 지날만 하군요.
부드러운 임도를 만납니다.
16:46
만세제2저수지를 지나,
만세마을로 접어듭니다.
16:53
죄송해라....
대장님께서 막걸리를 가지고 여기까지 마중 나오셨습니다.
두 잔을 연거푸 때립니다.
마음씨 좋은 주민들로부터 정자도 이용하고 음식도 할 수 있게끔 많은 배려를 받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총무님과 우부장님이 사전작업을 다 하신 덕이겠지요.
비록 제일 뒤에 내려온 3명이지만 수육과 맛있는 김치 그리고 막걸리로 배터지게 먹습니다.
저희때문에 좀 늦게 출발하게 됐나요.
육상선수 여러분 죄송합니다.
6시간 조금 더 걸린 거 같은데 사실 15.74km를 5시간 반에 오라고 하니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이 더운 여름에....
하지만 다른 분들이 너무오래 기다리셔서 죄송한 마음 금할 길 없습니다.
더 열심히 걷겠습니다.
'호남정맥 > 호남정맥 지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산북지맥 걷기 2일차 (0) | 2021.03.03 |
---|---|
영산북지맥 걷기 (0) | 2021.03.01 |
해남(땅끝)기맥 1구간 (갈림봉 ~각수바위봉 ~ 바람재 ~ 소반바위산 ~ 큰재 ~ 굴래봉 ~ 덕룡재 ~ 820번 도로 (0) | 2017.04.20 |
선운산 환종주(구황봉~비학산~희여재~국기봉~청룡산~낙조대~선운산~경수산~고막재) (0) | 2016.05.02 |
사자지맥 3구간 졸업(가잿재~부곡산~공성산~오성산~땅끝~옹암마을) (0) | 2016.03.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