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의 시작은 지리산(智異山) 천왕봉(天王峰)1915m이다. 지리산의 다른 이름은 방장산, 두류산, 삼신산 등이라고도 했다. 이들 중 두류산(頭流山)이 제일 마음에 와 닿는다. 해석해 보면 백두산(頭)에서 흘러(流)내린 산이라는 뜻이다. 즉 백두대간이 백두산에서 이 지리산까지의 이음이라는 인식이 고스란히 이 두류산이라는 이름에 스며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렇게들 이해했다. 사실 지리산을 “이 산을 타다보면 지루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억지 얘기도 가끔은 등장한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들어가 생각해 보면 ‘두류’는 우리말을 한자어로 표기한 것에 불과하다. 즉 두류는 옛 우리말 ‘두르’였다. ‘병풍처럼 크게 둘렀다’라는 의미이다. 곧 ‘큰 산줄기’라는 말로 ‘두름/ 둠’의 형태였던 것이다. 이 ‘두르〉두류’로 변천된 것에 적당하고 그럴싸한 한자 頭流를 갖다 붙인 것이다. 또한 ‘지리’는 ‘두르〉드르〉드리〉디리〉지리’의 과정을 거쳐 변하게 된 것인데 마찬가지로 이 ‘지리’에 적당한 한자인 智異를 갖다 붙여 오늘날의 한자어 지리산(智異山)을 가지게 된 것이다. 즉 구개음화와 전설모음화 과정을 거쳐 결국 오늘의 지리산이라는 이름이 된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는 ‘지루한 산’, ‘지혜로워 지는 산’이라는 말은 삼가자.
-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31쪽
산경표는 이름 자체가 그러하듯 선조들은 백두대간을 백두산과 두류산 즉 지리산을 잇는 큰 산줄기로 봤을 뿐이다. 그런데 그것이 운 좋게도 우리나라를 동서로 양분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그 축의 북쪽 끝에는 백두산이라는 나라의 최고봉이 있었고, 남쪽에는 지리산이라는 남쪽의 최고봉이 교묘하게 자리하고 있다. 또 작명을 하는 방법도 멋지다. 백두대간을 백두산에서 따온 말인지 백두산과 두류산의 머리글자를 따서 명명한 이름인지 그것도 애매하다. 두류산이라는 이름을 짓게 된 것도, 그 이름이 ‘두르’에서 ‘두류’를 거쳐 ‘지리’가 된 것도 교묘하긴 마찬가지다. 어쨌든 백두대간은 그것을 연결하는 선에 불과하지만 신비롭기만 하다. 신이 내린 이 조화를 ‘태백산맥은 없다’의 저자 조석필은 “당연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들”이라고 표현하였다.
-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46쪽 이하
우리나라의 백두대간은 참으로 신기하기만한 존재입니다.
나라를 동서로 양분한 것도 모자라 맨 위에는 백두산이라는 나라의 최고봉인 백두산이 아버지 역할을 하고 있고, 아래로는 지리산이 남쪽의 최고봉으로 어머니 같이 넉넉한 치맛자락의 역할을 하고 있으니...
그러니 남쪽의 지리산이 한 역할은 아주 다채로웠을 것입니다.
성삼재姓三岾는 마한의 땅이었던 이곳이 진한과의 싸움에 밀렸을 때 정령치를 지키던 정장군, 황령치를 지키던 황장군 그리고 남쪽을 지키던 성 불상不詳의 모某장군 등 때문에 비롯된 고개라 하며,
장터목과 화개재는 대간 남쪽의 경상도 사람들과 북쪽의 전라도 사람들의 물물교환이 이루어지는 따뜻한 민심 교류의 장이었고,
고려말에는 황산대첩에서 이성계에게 대패한 왜구들의 탈출로 역할도 하였으며,
조선 중기에는 시인묵객들의 글 소재 역할도 톡톡히 하였고,
점필재 김종직을 위시하여 남명 조식, 유몽인 등에게는 유람의 장소도 제공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다가오는 지리산은 우리 근대사에 잊혀질 수 없는 이념 투쟁의 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병주의 '지리산'에 이어 이태의 '남부군' 그리고 조정래에 이르러서는 '태백산맥'으로 이어집니다.
노찾사의 안치환은 '지리산, 너 지리산이여!'로 그 아픔을 승화시기까지 하였습니다.
지리산만 보면 눈믈이 날 때가 있습니다.
배가 고픈데 이념이 무슨 소용이 있었겠고 사상이 무슨 필요가 있었겠습니까?
하긴 여기는 그걸 이야기 할 장은 아니고....
여하튼 지리산은 우리에게는 신앙과 같은 곳입니다.
멀리는 칠불사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까지 올라가야 하며,
가까이는 화엄사와 관련하여 1951년 5월 빨치산 토벌대의 차일혁 총경까지 이어집니다.
그이 덕분에 화엄사는 소실될 뻔한 위기는 면했지만 대신 소중한 문화유산이었을 작은 절들이나 암자는 다 소각되는 피해를 보게 됩니다.
영험靈驗하다고 이름이 나 있던 기도처 혹은 암자 등 이른바 지리10대는 대부분 소각되어 지금은 몇몇 곳 이외에는 기록에 그 이름만 남아 있고 그 흔적은 찾기 어려운 형편입니다.
마침 이 지리 10대가 대간길과 그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군요.
그 덕에 얼마 전부터 '지리 10대 탐사 작업'의 일환으로 그 답사에 들어갔습니다.
얼마 전 점필재 김종직을 따라 영신대(영신봉)와 향적대 (제석봉) 그리고 최치원의 문창대를 확인했는데,
다만 우번대와 문수대는 외적인 요인에 의해 저지 당해 후일로 미루게 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쨌든 지리 10대는,
1.노고단 아래 질매재로 가는길에있는 문수대
2.종석대 아래에 위치해있는 우번대
3.반야봉 심마니 능선에있는 중봉 아래의 묘향대
4.피아골산장 위쪽의 서산대
5.불무장둥에서 직전마을 내림길에있는 무착대
6.두류능선에서 허방다리골 내림길에있는 향운대
7.중산리 법계사 위에 문장대
8.영신봉 바로밑에있는 영신대
9.장터목산장 샘터옆의 향적대
10.그외 금강대는 뱀사골 근처에 위치해 이다는 말만 전해질 뿐 아직 밣혀지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봉회장님께서 정성껏 잡아 준 루트는 일견 누구나 진행할 수 있는 평범한 그것으로 보이지만 저에게는 범상치 않게 다가옵니다.
2 - 1 - 4 - 3 - 5을 한꺼번에 진행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시간이 문제군요.
도착 시간이 새벽 4시 정도가 되므로 #2, #1은 이른 새벽이기에 실체의 확인에 어려움이 있고 진행한다고 해도 혹시나 스님의 수행에 방해가 될 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옵니다.
#4은 오르락 내리락 거리는데 왕복 약 1.4km 정도가 되므로 1시간 정도는 족히 걸릴 것 같습니다.
설사 강행한다고 해도 단번에 그 흔적을 찾는다는 보장도 없을 것이고....
오후 1시 반 까지 직전마을에 도착하여야 한다고 하니 그렇다면 반야봉 ~ 날라리봉 ~ 불무장등 ~ 무착대 ~ 직전마을로 진행을 하면 무난할 것같은 생각이 듭니다.
지리에 갈 때면?
예.
마음 가짐을 고치고 가야죠.
어떤 시도 떠오르는군요.
성삼재 ~ 노고단 ~ 반야봉 ~ 날라리봉 ~ 무착대 ~ 피아골로 이어지는 루트이니,
노고단 구름에 빠지기 위해서 원추리 꽃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반야봉에서 비록 노을은 아니지만 여명을 품으려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유자한 바람으로,
그리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기 위해 먼저 온몸이 달아 오른 절정으로 지리에 임하려 합니다.
- 이원규의 '행여 지리산에 오려거든' 개작
산행개요
1. 산행일시 : 2017. 10. 28. 토요일
2. 동행한 이 : 해밀산악회
3. 산행 구간 : 성삼재 ~ 노고단 ~ 반야봉 ~ 묘향대 ~ 날라리봉 ~ 불무장등 ~ 무착대 ~ 직전마을
4. 산행거리 : 18.96km
구 간 |
거 리 |
출발 시간 |
소요 시간 |
비 고 |
성 삼 재 |
|
04:09 |
|
|
노고단고개 |
2.41 |
04:52 |
43 |
|
노 루 목 |
4.74 |
06:11 |
79 |
|
반 야 봉 |
0.72 |
06:42 |
31 |
|
묘 향 대 |
1.06 |
07:20 |
38 |
|
날라리봉 |
1.75 |
08:10 |
50 |
|
불무장등 |
1.64 |
09:18 |
58 |
31분 휴식 |
무 착 대 |
1.58 |
10:13 |
55 |
|
직전마을 |
5.06 |
13:25 |
132 |
|
계 |
18.96 km |
09:16 |
08:45 |
실 소요시간 |
산행기록
지도 #1
04:09
뱀사골 ~ 화개재로 진행할 A팀들을 반선에 내려주고 성삼재에 도착합니다.
당시에는 몰랐는데 지금 사진으로 보니 뒤의 매점에 불이 켜져 있군요.
이 시간에 분식집에서 장사를 한다는 것입니다.
몰랐었는데 뒤에 '해올'의 '오리거위' 대장으로부터 여기서 라면을 먹었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04:10
저와 고남님부터 출발을 합니다.
입구 바로 우측의 작은 길이 종석대로 오르는 길입니다.
04:33
지도 #1의 '가' 무넹기입니다.
무넹기?
그런데 갑자기 장감독이 큰소리를 친다.
“형 지금 이 길이 백두대간 능선이잖아! 그런데 왜 이 물은 능선을 따라 흐르다 왜 우측 만수천 쪽으로 안 가고 화엄사 쪽으로 가는 거야! 거긴 섬진강으로 가는 방향이잖아.”
그렇다. 다리를 건너 성삼재로 향하다보면 코재 바로 전에 왼쪽으로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흐르는 물줄기가 있다. 이 물은 분명 노고단에서 내려오는 물이다. 그리고 이 물은 장감독이 지적하듯 만수천으로 가야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산자분수령의 예외란 말인가?
미리 얘기하자면 이 물은 노고단 물이 맞고 이 수로는 인공수로이다. 예전 화엄사 부근 그러니까 구례의 들에 가뭄으로 인해 물이 부족할 때가 있었다. 그때 이 노고단의 풍부한 물을 화엄사 쪽으로 넘겨주기 위해 인공 수로 하나를 만들었다 그게 바로 이 수로이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물을 넘겨주었다.’고 하여 무넹기이다. 그리고 이 물은 낙동강이 아닌 족보에도 없는 섬진강으로 가게 된다. 따라서 이는 인공수로이므로 산자분수령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도 아니다.
-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70쪽
04:43
노고단 대피소입니다.
밥을 해먹고 산행 준비를 하느라 몹시 시끄럽군요.
바로 노고단고개로 오릅니다.
04:52
문은 열려져 있고 초소 안에는 직원이 근무하고 있군요.
산인사를 하고....
05:21
1411.6봉의 헬기장을 지납니다.
이 헬기장이 중요한 이유는 이 루트 안으로 진입을 하여 서산대로 진행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간에는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
예정한 대로 그냥 통과합니다.
지도 #2
05:29
지도와는 달리 현장에는 이곳이 돼지령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사실 嶺이라 함은 고개를 이야기하는 것인데, 영진지도나 김형수555 그리고 공단의 표기는 잘못된 것 같습니다.
05:34
대판을 지나고,
05:38
지도 #2에는 임걸령으로 표기되어 있는 곳으로 이곳이 피아골 삼거리입니다.
오늘 우리 팀들은 다 이곳을 통하여 피아골로 진행을 할 것입니다.
05:45
지리에서 가장 물맛이 좋다는 임걸령 샘입니다.
물을 한 모금 마시고 가야지 그냥 지나치긴 좀 그렇습니다.
이 임걸령, 선비샘 그리고 연하천 물은 그야말로 꿀맛입니다.
조금 고도를 높입니다.
06:11
그러면 노루목입니다.
걸음을 빨리하여 내려온다. 반야봉에서 내려오는 산줄기를 만나는 곳에 ‘노루목’이라는 이정목이 붙어있다. 이는 노루가 머리를 치켜들고 피아골을 내려다보는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하여 노루목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럴까? 우리나라에는 노루목이라는 이름을 가진 곳이 여럿 있다. 설악동에서 비선대 올라가는 곳. 포천, 안성, 진주 등 우리나라 곳곳에 퍼져 있다. 어떤 국어사전에는 ‘노루가 자주 다니는 길목’이라고까지 친절하게 설명도 해 놓았다. 그런데 어떤 곳 지명을 보면 한자로 노루 장(獐)자에 목 항(項)를 써서 장항(獐項)이라고까지 표기한 곳이 눈에 띈다. 그런 곳의 지형은 어떻게 생겼을까? 노루가 다닐만한 곳도 아닌 곳 같은데... 사실 여기서 노루의 뜻은 ‘늘어진 땅’ 곧 산에서 들로 길게 뾰족하게 나온 땅의 모양인 ‘늘’에서 발음이 비슷한 훈(訓)을 가진 ‘누를 황(黃)’이 나왔고, 역시 발음이 비슷한 ‘노루 장(獐)’이 나왔다고 한다. 거기에 실제 노루는 목이 긴 짐승이니 너른 들이나 산에서 내려오는 좁은 지역을 일컫기에 노루목만큼 좋은 단어는 없었으리라. 그걸 다시 한자어로 표기하니까 장항(獐項)이 된 것이란다. 이참에 고양시의 장항동이나 고구려부터 내려온 안산의 옛 이름이 ‘장항구(獐項口)였음을 떠올릴 수 있다면 그 이름들이 다 그 생김새와 관련이 있음을 이해할 수 있겠다.
- 졸저 전게서 64쪽 이하
06:18
반야삼거리죠?
우틀하면 날라리봉으로 가게 되고....
직진하여 계속올라갑니다.
우측으로 바위가 보입니다.
조망이 좀 될 것 같군요.
운해 위로 여명이 비췹니다.
저런 모습도 취미翠微라고 하는 지 모르겠습니다.
바로 앞으로 불무장등 능선이 보이고 그 좌측으로는 삼신봉 연봉이 그리고 중앙 뒤로 호남정맥의 백운산과 그 좌측 뒤로 억불산이 보입니다.
그러니 삼신산 우측의 구름은 섬진강을 덮고 있는 것이겠죠?
우측으로는 노고단.
그러니 그 앞으로 흐르는 능선은 왕실봉 ~ 질매재 ~ 왕시루봉을 거쳐 섬진강으로 흘러 들어가게 되죠?
백두대간과 호남정맥 사이에 섬진강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섬진강蟾津江에 대해서 좀 알아볼까요?
섬진강의 옛 이름은 두치강豆恥江이었다고 하죠?
섬진강의 이전 이름은 두치강豆恥江이었다. 그런데 임진왜란 당시 왜적이 들어와 이 강의 나루터에 도착하자 나루터 일대에 수많은 두꺼비가 몰려들어와 울부짖었다. 이 때문에 왜군들이 육지에 상륙하지 못하고 후퇴했다. 이에 두치강이라 부르던 강이름을 이때부터 섬진강으로 바꾸었다.
섬진강이라는 이름이 생기게 된 전설입니다.
그럴 듯하죠?
그러나 蟾에는 두꺼비란 뜻 말고 달月이라는 뜻이 하나 더 있습니다.
하늘에 있는 달을 섬궁蟾宮이라고도 부르는데 예로부터 달에는 두꺼비가 살았다고 하는 설화에서 유래하는 말입니다.
섬토蟾兎라는 말도 달을 이르는 말인데이 역시 달나라에 금두꺼비와 옥토끼가 살고 있다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기도 합니다.
결국 섬진이라는 이름은 달月 + 나루津의 조합임을 눈치 챌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높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우리말 '달'을 月이나 鷄를 쓰는 대신 蟾을 쓴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럴경우 예전 이름 두치강의 두치도 한자의 뜻과는 무관하게 우리말 '머리재' 즉 '높은 고개'에서왔다는 추론이 가능해집니다.
즉 豆恥는 頭峙였다는 것이죠.
지리산의 웅장함에서 이렇게 일반적인 이름이 조금 색다르게 변화한 것이라 이해합니다.
그러니 섬진강을 머리재강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 운해 우측으로 조금 당겨봤습니다.
천왕봉과 중봉이 명확하죠?
오래된 철사다리를 오르면,
좌측으로 노고단과 그 우측의 운해가 아름답습니다.
지리 10경 중 하나인 노고운해는 이렇게 태어난 말입니다.
즉 서쪽으로는 산동면이 서시지맥에 의해 막혀 있고 북쪽으로는 산내면이 백두대간과 지리서부능선에 의해 막혀 있으니 이런 운해가 생길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이따 태양의 빛을 쬐고 기온이좀 올라가면 없어지겠죠?
노고단 좌측을 봅니다.
붉은 기운이 도는 작은 키의 나무 뒤로 좌측은 불무장등 능선 그리고 그 우측은 노고단에서 왕시루봉까지 능선의 흐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왕시루봉 우측으로 형제봉도보이고....
이런 능선들을 산맥이라고 하는 거죠?
그 우측으로 구례 앞을 흐르는 섬진강 위로도 운해가 덮었고.....
다시 천왕봉.....
함양은 얘기할 것도 없습니다.
천왕봉 부근만 당겨봤습니다.
06:42
우와.....
반야봉입니다.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盤若峰이라고 표기되어 있군요.
般若峰이죠!
그리고 위치 또한 이곳이 아닌 바로 옆에 있는 중봉을 반야봉이라고 표기해놨고.....
문제가 좀 있습니다.
저는 항시 이 반야봉이 지리의 중심에 있다고 봅니다.
아니 나라의 남쪽 중심에 있다고 보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즉 동東을 지키는 봉우리는 천왕봉이면 서西는 바로 이 반야봉 아닙니까?
나라 남쪽의 서쪽을 다 내려다 볼 수 있는 곳.
바로 이 반야봉입니다.
그러니 여기서 보는 일몰을 지리 10경 중 하나라 칭하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었을 겁니다.
반야봉이 그런 곳입니다.
그런데 반야봉을 패스하다니!
대간을 하면서도, 주릉 종주를 하면서도 이 반야봉을 그냥 지나치게 되는 그 중심에 안내산악회와 성삼재가 있다고 봅니다.
예전에 지리 주릉 중심에는 코재나 노고단이 교통의 중심이었는데 지금은 성삼재가 되다보니...
안내산악회에서는 귀경 문제로 거의 이 반야봉을 못 올라가게 하기도 하고.....
노고단 운해를 다시 보고,
그 노고단 운해는 옆으로 계속 이어집니다.
멀리 장수 덕유산과 남덕유산....
만복대와 좌측 서시지맥.
고남님이 포즈를 잡아보십니다.
삼각고지와 그 좌측으로 삼정봉.
그 뒷 라인이 천왕봉.
삼신봉으로 흐르는 낙동정맥.
일반적인 산행이었다면 다시 되돌아나가 날라리봉으로 혹은 피아골삼거리로 진행하면 됩니다.
하지만 오늘 목적지 중 하나인 묘향암 즉 묘향대를 가기 위해서는 루트를 좀 달리 합니다.
좌측 목책을 넘어,
06:51
헬기장을 지나,
06:55
중봉으로 오릅니다.
..........
중봉에서 보는 천왕봉.
06:55
오늘의 태양이 떠오르는군요.
중봉에서 맞이합니다.
그 뒤로 들어가면 또 헬기장이.....
연안김씨 묘를 지나,
직진을 하면 길이 확실하게 나옵니다.
이제 이 길만 따라가면 되겠죠?
광주산꾼 유목민님을 봅니다.
표지띠만 봐도 무척 반갑습니다.
키가 낮게 깔린 전나무를 지나 길 흐름을 따릅니다.
길은 명백하여 묘향암까지 알바할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07:07
바로 앞의 투구봉1451.5m을 보고 우틀하여 경사진 곳을 내려갑니다.
황홀하군요.
저 끝이 망바위봉1378.8m.
모르긴 몰라도 망을 보기에 충분한 바위라는 이름일 테니 전쟁과 관련된 바위 같습니다.
관측병이 저 망바위에 올라 적군의 동태를 감시하다 깃발 등 수신호를 이용하여 아래에 있는 아군에게 전송했을 메시지가 궁금해집니다.
아니면 황산전투에 대패한 왜구의 패잔병들이 뱀사골 입구에 진을 치고 탈출로를 모색하고 있을 때 고려의 척후병들이 저 망바위에 올라 아래 뱀사골 부근의 왜구 진영의 동태를 감시하고 있었던 모습도 상상해 봅니다
그것도 아니면 예전 마한의 궁궐이 있던 달궁의 동쪽을 지키던 초소가 있던 곳?
혹시나 빨치산의 남부군 사령부 기동부대가 있던 저 달궁과 관련 있던 곳?
07:15
고도를 완전히 떨어뜨립니다.
평평한 곳을 지나면서,
우측으로 날라리봉을 보니,
07:20
정면으로 노란 지붕의 묘향암이 보입니다.
그렇게도 보고 싶었던 곳.
이 암자가 묘향암이고 이 좌측 터가 묘향대입니다.
이 암자 뒤에서는 장작 패는 소리가 나는군요.
조용히 합장을 올리고,
정면을 응시하는 고남님을 봅니다.
가만히 있어도 바로 천왕봉이 눈에 들어오는군요.
옛 선조들은 이 산속 깊은 곳에 있는 이곳을 어떻게 찾아들어와서 이 명당에 암자를 지었을까요.
대단한 분들입니다.
07:26
이 묘향대에서 해우소 좌측으로 듭니다.
우측으로는 맛좋은 물이 펑펑 나오고......
계곡을 건너...
길이 명백합니다.
날라리봉을 봅니다.
어디 낫같이 생겼나요?
명선봉을 보고....
묘향암에서 날라리봉 부근으로 가는 루트의 특징.
줄곧 사면치기로 진행을 하는데 가끔은 이런 멋진 정경도 보여줍니다.
가끔은 이런 바위 구간도 나오긴 하지만 그건 아주 일부에 불과합니다.
08:01
다 왔습니다.
지도 #2의 '다'의 곳으로 나와 대간길로 접어듭니다.
여기부터는 반선에서 올라오는 A팀과 만날 수도 있을 겁니다
묘향암 날머리를 보고,
08:07
보시다시피 노고단에서 날라리봉으로 오는 대간길은 이렇게 평범합니다.
다만 이 반야봉만큼은.....
역시 날머리에서 날라리봉으로 오는 도중 대원들을 계속 만납니다.
송암님께서 불무장등 루트에 관심을 표명하시지만 괜한 고생을 사서 하실까봐 그냥 오리지널 루트로 가시라 하고...
연이어 강산 대장님 등 대원들을 만나고......
08:10
그러고는 날라리봉입니다.
삼도봉이라고 개명을 했죠?
여기서 좀 더 진행을 하자. 그러면 이름도 재미있는 ‘날라리봉’1501m이다. 어감이 좀 좋지 않았나? 공원관리공단에서는 경상남도, 전라남도, 전라북도 등 삼 개 도가 만나는 곳이라 하여 1990년대 초 삼도봉으로 ‘개명’을 했다. 실은 이 봉우리가 낫의 날같이 뾰족하다고 하여 ‘낫날봉’이었다. 그게 시간이 흐르면서 음운이 변하여 날라리봉으로 되었던 것인데 애꿎게 이름만 나무란 꼴이다.
여기서 팁 하나 더! 우리나라 백두대간에는 세 개의 삼도봉이 있다. 그 셋 중 하나가 이 삼도봉이며 다른 하나는 경상남도 거창군과 전라북도 무주군 그리고 경상북도 김천시 등 세 개의 도가 만나는 초점산1249.1m이라는 이명을 가진 봉우리이고, 마지막 하나가 전라북도 무주군과 경상북도 김천시 그리고 충청북도 영동군 등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가 만나는 민주지산 바로 옆의 삼도봉1177.7m이다.
- 졸저 전게서 64쪽
남쪽을 봅니다.
잡목에 좀 가려서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바로 앞이 불무장등1441.1m.
오늘 목표 지점이죠?
저 불무장등에서 우틀하여 부착대를 찾은 다음 피아골 방향으로 하산 길을 잡을 겁니다.
그리고 저 불무장등의 우측 뒤가 왕시루봉1240.2m인데 이 불무장등과 저 왕시루봉은 같은 능선에 있는 줄기가 아닙니다.
그 가운데는 우리가 이따 내려갈 피아골이 가르고 있습니다.
그 피아골을 따라 흐르는 물줄기가 바로 내서천이고....
그 내서천은 연곡나루터에서 섬진강으로 합류가 되죠.
여기서 아침겸 가지고 온 막걸리를 한 잔 마시고 가기로 합니다.
햇볕도 아주 따뜻하고......
김밥과 고남님이 가지고 온 감을 먹는데 옆에 혼자서 온 듯한 친구 한 분이 있군요.
우리가 마시고 있는 마지막 한 잔을 주니 마다하지 않고 드시는군요.
해밀스러운 우리는 옆에 혼자 있는 사람을 두고 우리끼리 막걸리를 마시지 못하죠.
별로 가지고 온 것도 없지만 김밥 몇 덩이와 감 몇 조각을 주다보니 이런저런 얘기를 하게 되고.....
해올 대장님이시군요.
족보를 까니 바로 말도 편하게 하게 되고.....
다음에 기회가 될 때 보기로 하고 자리를 뜹니다.
묘봉1535.3m 뒤로 천왕봉을 보면서 진행합니다.
반야봉의 정동쪽 즉 묘방卯方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 묘봉.
그러니 토끼봉이 아니라 묘봉으로 불러야 하는거 아닌가요?
색깔이 너무 곱습니다.
추색이 완연한 만추입니다.
이 정도는 되야죠.
불무장등, 1350.2봉, 왕시루봉 그리고 섬진강 건너 계족산703m이 거의 일직선으로 서 있습니다.
목통골 단풍을 봅니다.
목통골.
희미한 가운데 봉우리가 호남정맥의 백운산1228m.
08:55
흰듬등1437.7m입니다.
등로는 양호합니다.
그만큼 사람들이 많이 다녔다는 반증입니다.
지금도?
글쎄요.....
09:01
또 산죽밭이 시작되는군요.
우측 사면으로 진행합니다.
지도 #3
09:08
그러다가 바위가 나오면 우회하고.....
09:13
좌측 나뭇가지 사이로 형제봉1452.8m을 봅니다.
귀 모양을 한 바위 두 개가 봉우리를 축으로 대칭을 이루고 있군요.
저도 오늘 처음 보았습니다.
고남님의 지적이 없었더라면 그냥 통과했을 겁니다.
09:18
그런데 불무장등은 산죽 때문에 도저히 뚫고 올라갈 수가 없군요.
사실 가봤자 볼 것도 없을 거 같아 우측으로 지나칩니다.
09:23
덕분에 1350.2봉으로 가는 길을 사면치기 하느라 능선 잡기가 좀 어려워집니다.
바위 사이 석문을 지나,
09:28
너른 안부를 만납니다.
09:31
1350.2봉도 도저히 오를 수 없어 우측으로 통과합니다.
그런데 좋은 길은 자꾸 우측으로 빠져 피아골로 직접 빠지는 능선으로 진행을 합니다.
우리는 확실치는 않지만 어쨌든 무착대를 찾아야하고 그러려면 조금 더 우측 능선을 타야 하는데.....
09:52
다시 우측으로 치고 올라갑니다.
길도 없는 곳을 잡목을 뚫고 무조건 치고 올라가다 보니,
09:53
바위 위에 녹슨 무쇠솥이 보이는군요.
순간 이게 절이 있던 흔적 중 하나라 여기고 둘레를 살펴 봅니다.
분명 기와의 흔적이 있어야 하는데....
일단 용바위 비스므리 한 것을 뒤에 두고 기념 촬영을 합니다.
이곳이 혹시나 무착대無着臺가 아닌가 하는 판단을 하면서...
그런데 문제는 물이 없다는 것입니다.
물이 있었어야 확신을 갖는데....
어쨌든 사진 몇 장 찍고 그려온 지도를 가지고 무착대의 흔적을 찾으러 내려갑니다.
10:02
이상한 바위 하나를 보고....
10:13
가파른 비알을 내려오는데 우측으로 무슨 기운이 도는 듯한 느낌을 갖습니다.
우측으로 한 20m 정도 들어가 보자 비닐 천막이 보이면서 작은 밭이 보이고,
그리고 臺에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샘물이 보입니다.
무착대입니다.
용바위 같지도 않은데 용바위라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합니다
온돌의 흔적도 보이고.....
얼마전까지만 해도 우거졌던 잡목은 약초꾼들이 다 치워서 정리해 놓았고...
만족한 기분으로 기념 촬영을 합니다.
신령님이 도와주셨습니다.
희미하게 선답자의 흔적을 따라 그려온 지도가 그대로 들어 맞았습니다.
역시 오룩스가 최고군요.
다시 무착대의 흔적을 보고 하산을 서두릅니다.
내려가는 길이 제대로 있지도 않을 건 뻔하고....
그런데 내려가는 길이 역시 장난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던 길도 이내 끊어지고 가끔씩이렇게 반가운 표지띠가 보이긴 하지만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며칠 전 봤던 분을 또 만납니다.
표지띠 글귀 그대로 지리산학을 연구하시는 분?
10:33
내려가는 길은 등로가 아닌 너덜과 잡목.
무릎이 시큰댈 정도입니다.
능선은 바위가 많아 우회를 하여야 하는 통에 맨 이런 곳을 길 삼아 가야 합니다.
아까 만났던 대어ㅜㄴ들을 동행했더라면 큰일 날 뻔 했습니다.
계곡으로 드디어 물이 보이기 시작하고.....
물의 흐름이 아주 예쁜 곳도 많습니다.
사람들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11:29
지도 #3의 '마'의 곳에 있는 구계포 출렁다리로 정확하게 떨어집니다.
이제 속세로 돌아왔습니다.
날머리.
지도 #4
내려가는 길에 대원들을 만나고....
봉회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오는군요.
아무래도 다른 루트로 따로 진행을 했으니 현위치가 궁금하셨을 겁니다
삼홍소를 지나고....
나리 두어 개를 지나,
하산을 서두릅니다.
12:01
표고막터를 지나,
12:23
직전마을로 들어섭니다.
이부장님께서 올라올 수 있는 한 제일 위까지 올라와 주차를 해놓으셨군요.
깔끔하게 오늘 산행을 마무리합니다.
섬진강변을 따라 구례로 이동을 하여 산채정식을 뒷풀이를 한 후 귀경을 합니다.
차량 안에서 고문님께서 오늘 산행 중 기억할 만한 내용 몇 가지를 추려서 말씀하시는데 참 대단하시다는 말밖에 할 얘기가 없더군요.
논리적으로 말씀을 잘 하시는 것은 별론 해박한 지식에서 나오는 개념 정리는 혀를 차게 만드십니다.
오늘 단 한 분의 낙오자나 사고자 없이 무사하게 산행을 마쳤습니다.
역시 해밀은 저만 잘 하면 모두 문제가 없는 분들이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던 깔끔한 산행이었습니다.
오늘 모두 수고 많으셨숩니다.
그리고 저와 함께 행동을 하며 고생을 함께 한 고남님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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