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하다시피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란 대동여지도의 발문에 나오는 개념입니다.
산경표는 곧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다.
“골머리 아프네. 결국 산경표의 저자는 모른다는 얘기구만. 앞으로 할 얘기는 산경표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 있다는 거 그런 거잖아?” 머리에 쥐가 오른다.
“그렇지 아까 얘기했지? 산경표는 그 당시 조선 지리정보의 총아라고! 뭐 다 아는 내용이니까 그냥 지나가도 되지만 중요한 건 이것과 뒤에 나올 박성태 선생의 신산경표와 비교해 보는 일이야. 이런 건 지금 당장 산행을 하면서 써 먹을 수 있는 것들이니 골머리 아플 필요도 없어.”
“형, 그건 그렇고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 산자분수령하는데 그 산자분수령이란 말이 ‘산은 스스로 분수령이 된다. 혹은 스스로 분수령이다.’ 그 말 맞아? 다른 얘기도 있던데.”
장감독의 정곡을 찌르는 질문이고 언젠가 해줘야 할 말이었기 때문에 주저할 필요는 없다.
“그래. 맞아. 이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라는 문구는 대동여지도 발문에 나오는 말이야. 그리고 처음에는 나도 그걸 그렇게 이해했었지.”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산경표는 당연히 조선광문회본 산경표이다. 그리고 우리는 산경표의 대원칙은 ‘산자분수령’이라고 알고 있다. 그 산자분수령이라는 말은 어디서 나왔을까? 짐작컨대 대동여지도다. 대동여지도의 발문에 보면 바로 그 구절이 나온다.
한 번 읽어 보자.
東史曰 朝鮮音潮仙 因仙水爲名 又云鮮明也 地在東表日先明 故曰朝鮮
‘동사’에 이르기를 조선(潮仙)이라 소리나는 ‘朝鮮’은 선수(仙水)로 말미암아 이름을 삼음이요 또한 이르기를 선명(鮮明)한 것이라, 땅이 동쪽에 있어 해가 뜰 때 먼저 밝아오므로 조선이라 한다 하였다.
山經云 崑崙一枝 行大漠之南東 爲醫巫閭山 自此大斷 爲遼東之野
‘산해경’에 이르기를 곤륜의 한 갈래가 대막(넓은 사막)의 남동으로 가 의무려산이 되고 이로부터 크게 끊어져 요동 벌판이 되었다.
漉野起爲白頭山 爲朝鮮山脈之祖 山有三層 高二百里 橫亘千里 其巓有潭 名謂達門 周八百里 南流爲鴨綠 東分爲豆滿
마른 벌이 일어나 백두산이 되니 조선산맥의 시조다. 산은 셋으로 층졌는데 높이는 200리, 가로는 1000리에 걸쳐 있으며, 그 산꼭대기에는 못이 있어 이름은 달문이라 하고 둘레는 800리이며, 남으로 흘러 압록이 되고 동으로 나뉘어 두만이 된다.
山自分水嶺 南北逶迤 爲燕脂峰小白山雪寒等嶺 鐵嶺一枝 東南走起 爲道峰三角 而漢水經其中
산은 분수령으로부터 남북으로 구불구불 이어져 연지봉 소백산 설한 등의 재가 되고, 철령의 한 갈래가 동과 남으로 달려 일어나 도봉과 삼각이 되니 한수가 그 가운데를 지난다.
위에서 보다시피 山自分水嶺은 ‘산은 분수령으로부터’라는 뜻으로 읽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산자분수령 즉 “산은 물을 넘지 못하고 물은 산을 건너지 못한다.”는 대원칙이 무너지게 된다.
어떻게 해야 될까?
사실 지리학자들은 산자분수령은 진리가 아니고 언제나 변할 수 있는 자연현상이라고 했다. 즉 그들은 그 예로 선행하천(先行河川)을 든다. 이것은 융기축이 형성되기 이전부터 형성되어 있던 하천을 말하는 것으로 우리는 조금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간단한데 생각하는 관점만 다르다. 조금 더 있으면 자세하게 다룰 것이다. 일단 맛만 보고 넘어가자면 지형학적으로 산맥이란 습곡, 요곡 혹은 경동지괴 운동 등 융기 축이 형성되어 계속 융기함으로서 산맥이 형성된다. 이걸 뭐 1차 산맥이라고도 하나본데 이것도 융기산맥과 단층산맥 두 가지로 나눈다고 한다.
그 다음이 2차 산맥으로 이는 암석의 경연(硬軟) 즉 단단하거나 무른 것들이 대상배열(帶狀配列) 즉 좁고 길게 띠 같이 되어 있을 때 무른 지대는 침식되어 낮아졌으나 단단한 부분은 침식에 강하여 상대적으로 높은 산지로 남아 있어 산맥을 형성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때 융기 축 혹은 대상배열을 가로 질러 흐르는 선행하천이 있으면 이 하천은 산맥을 절단하고 흐른다는 것이다.
우리가 산자분수령을 이야기할 때 입에 침이 튀면서까지 떠들던 얘기가 뭔가? 바로 차령산맥이 한강을 건너고 광주산맥이 한강을 어떻게 지날 수 있냐고 떠들었잖은가? 그런데 ‘산맥파’는 즉 지리학계에서는 팔짱을 낀 채 “니들이 뭘 알아!”했던 부분이 바로 이런 부분이었던 것이다.
필자가 주목하는 게 바로 이 2차산맥이다. 이 2차산맥으로 형성된 게 바로 우리나라의 산줄기라고 이해한다는 것이다. 1차산맥이 그 삭박과정을 거쳐 2차산맥이 형성이 되었고 지금도 삭박작용이 일어나고 있는 게 바로 지금의 우리나라 산줄기 아니냐는 것이다. 그걸 가지고 따지자는 얘기다. 그게 현재의 백두대간이고 정맥이며 기맥이며, 지맥이니까....
-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455쪽 이하
山自分水嶺은 “분수령으로부터 오는 산은....”이라고 해석하여야 한다며?
맞다! 그러나 그것은 일반 문장 속에 들어 있는 걸 해석할 때 그렇고 우리가 얘기하는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은 관용구(慣用句)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산자분수령을 두 가지로 읽었다고 보면 된다.
관용구가 무엇인가? 사전에서는 “관용적으로 둘 이상의 단어가 결합하여 특정한 뜻을 나타내는 언어 형태. 흔히 비문법적이거나 문법적이더라도 구성 요소의 결합만으로 전체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 등이 이에 해당한다.”
우리는 山自分水嶺을 얘기할 때 ‘분수령(分水嶺)’이라는 것을 고유명사로 인식하지 않고 보통명사로 이해하는 것이다.
필자만 그런가? 다들 그렇게 이해했던 거 아닌가?
또 다른 견해를 보자. 대동여지도 숭실대 본을 보면 ‘東分爲豆滿江 自分水嶺’이 되어 강자분수령이 된다. 위의 다른 대동여지도를 보면 분수령에서 물이 나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분수령이라는 지명이 물을 나누는 산줄기(고개)라는 의미로 붙여진 것이므로 이도 크게 다른 것은 아닐 것이다. 어차피 山自分水嶺은 이따 산맥을 이야기할 때 또 이야기해야 하니 여기서는 이쯤에서 그만 두자.
-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463쪽 이하
이제 산맥이 옳으냐 산줄기가 옳으냐 하는 것은 진부한 얘기입니다.
그래도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 산자분수령을 끄집어냈고 대동여지도의 발문까지 동원했던 것입니다.
어쨌든 산맥이라는 개념은 우리 조상들이 산줄기를 한자로 표현한 개념입니다.
그런데 이를 일본인 지질학자 고토 분지로가 지질구조선을 산맥이라는 이름으로 도용한 것 만큼은 확실하다는게 제 연구결과입니다.
“아니 그럼 고토는 분명히 산맥이라는 말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산줄기’로 본 게 맞네! 분수계라는 말까지 동원하고! 그런 산맥을 왜 땅속으로 가지고 간 거야!”
장감독이 이제 산맥에 대해서 조금씩 이해가 가는가 보다. 자못 흥분까지 하는 걸 보니...
“나는 그가 ridgeranges나 mountains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이를 산맥(山脈)으로 번역해 붙인 것은 몰라서 그런 게 아니라 소위 미필적고의(未必的故意)가 있다고 봐. 분명하잖아. 자기 글을 속일 수 있겠어? 자기가 써 놓은 글이니.....”
-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279쪽 이하
실제 지형과 생김새가 다른 지금의 교과서산맥에 대하여 많은 반성이 이어지기 시작하고 이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아진 건 순전히 이우형선생 덕입니다.
즉 1903년 고토분지로가 '조선산맥론'을 발표하고 이내 통감부 체제의 교육이 이어지게 됩니다.
거듭 애기하거니와 이 조선광문회는 육당 최남선이 주축이 되어 만든 단체이다. 즉 1910년 일제의 문화 탄압과 고서적 등의 밀반출에 맞서 우리의 문화를 보존하기 위하여 고전, 역사서 등의 발간을 목적으로 설립한 법인체다.
-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414쪽 이하
선각자 육당은 1910년 조선광문회를 설립하여 택리지와 산경표를 인쇄본으로 발간합니다.
그러나 이내 통감부 체제가 식민지 교육으로 이어지면서 우리 조상들이 인식하던 산줄기 체계는 우리 뇌리에서 사라지고 그것을 대신하여 산맥이 자리잡게 됩니다.
그러고는 그 산맥은 일본인이 가르쳐준 대로 그대로 우리 머리에 각인되어 수십 년 동안 우리 지리교육을 담당하게 됩니다.
그러다 1980년 인사동 고서적 서점에서 이우형 선생이 우연찮게 이 조선광문회본 '산경표'를 발견하면서 우리나라 '산줄기 역사'에 한 획이 그어지게 됩니다.
잠자고 있던 백두대간과 정맥 등 산줄기가 우리에게 다시 돌아오게 된 것이죠.
등산인들을 위주로 불던 산줄기 바람에 기존 지리학계는 뒷짐 지고 가만히 사태만 관망하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던 우리나라 지리학계에서는 지진이 일어났다는 표현이 맞을만한 사건이 하나 터졌다. 그게 바로 국토연구원의 부원장이었던 김영표 박사 외 2명이 주도한 ‘신산맥도’였다. 매스컴이고 뭐고 완전히 난리가 났고 소위 진보를 내세우는 한겨레신문이나 경향신문은 더 시끄러웠다. 이 논문의 폭발력은 조석필 선생이나 박성태 선생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순식간에 퍼진 파급력은 대단했다.
김영표 새 산맥도를 만들다.
2005. 1. 7. 금요일. 조간신문을 달구는 기사 하나가 떴다. ‘한반도 정확한 산맥지도 나왔다.’라는 기사였다. 부제는 ‘100년 만에 엉터리를 바로 잡은 새 산맥’이었다. 새해 벽두를 강타한 이 기사는 말 그대로 메가톤 급 사건이었다. 조석필의 ‘태백산맥은 없다.’ 이후 잠잠했던 산줄기계(山經界)를 또 한 번 뜨겁게 달군 사건이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백두대간 산행이니 정맥 산행이니 하는 말들은 소위 산꾼들 중에서도 고수들만이 다니는 그런 루트로만 알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산맥은 백두대간, 정맥 등과는 별개의 개념으로 파악했던 것이다. 그러니 항상 백두대간은 남들 이야기로만 알고 있었는데 매스컴에서 이런 기사를 쓰다니! 그럼 우리가 초등학교 4학년부터 외우고 시험을 쳤던 그 태백산맥이 일본 사람이 지어준 이름이었다는 거야? 선생님들도 그런 이야기 안 해주었고 교과서에도 그게 안 나왔었는데.
이럴 수가. 산꾼들이 하는 이야기들은 그냥 헛소리로만 알고 있었는데! 파급 효과는 놀라우리만큼 컸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신줏단지 모시듯이 외경심을 가지고 바라봤던 태백산맥이 엉터리였다니! 일단 그 연구를 시행한 국토연구원에서 발표한 보도 자료를 보자. 그대로 옮기는 게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이 연구의 책임자는 국토연구원 연구혁신본부장이었던 김영표였다.
-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528쪽 이하
기존 지리학회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자신들이 금과옥조처럼 여기고 있는 산맥을 민간인이 뒤집겠다고 나섰으니......
그런데 재조의 학자들은 산자분수령에 대해 엇갈린 의견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먼저 대한지리학회에서 국토연구원의 이른바 ‘새 산맥도’에 대한 반박성명서를 보면,
1. 국토연구원의 연구는 산맥과 분수계를 혼동하고 있다. 국토연구원의 연구는 분수계에 관한 연구일 뿐 산맥에 관한 연구가 아니다.
백두대간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는 산경표는 19세기 초 신경준에 의해 우리나라의 산줄기를 분수계의 연결에 따라 족보식으로 서술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지반운동에 의해 만들어진 산맥과는 전혀 다르다. 분수계는 유역분지를 구분하는 산능선을 따라 선으로 표현되지만, 산맥은 여러 개의 산줄기가 같은 방향으로 달리는 폭을 가진 연맥의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산맥이 하천에 의해 끊어져서는 안 된다는 논리는 자연지리학 나아가 지형학적 상식에 위배된다. 하천쟁탈, 두부침식, 선행하천, 하도절단 등에 의한 산맥의 절단은 산자분수령의 개념과는 배치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분수계에 해당되는 백두대간이 전북 남원의 운봉분지에서는 구룡폭포에 의해 끊어져 평지를 달리고 있다. 현재 로키산맥, 안데스산맥, 히말라야산맥, 우랄산맥, 톈산산맥 등의 세계적인 산맥 역시 하천에 의해 끊어져 있다. 그럼에도 전 세계적으로 그것을 ‘산맥’이라 부른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국토연구원의 연구결과와 같이 분수계에 근거하여 산맥을 구분하지 않는다.
산맥은 일정한 방향과 규모 그리고 그에 수반되는 지반운동과 함께 정의될 때만 그 가치를 지닌다. 국토연구원의 발표한 산맥체계는 단지 분수계를 표현하고자 한 것에 불과하다. 또한 우리나라의 독자적인 산맥체계를 정립하려는 시도는 무의미하다. 우리나라의 산맥은 한반도만의 독자적인 것이 아니고, 중국, 연해주, 시베리아에 이르는 동북아시아의 장기간에 걸친 지반구조운동에 따른 광범위한 산맥체계의 일부이다.
국토연구원의 연구는 분수계에 관한 연구일 뿐 산맥에 관한 연구가 아니다. 굳이 의의를 부여하자면, 산경표나 대동여지도보다 ‘더 복잡한 방법으로’ ‘더 정확하게’ 분수계를 표시하고자 하였다는 점일 뿐이다. 나아가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의 산줄기와 흡사하다는 점을 새로 제시한 산맥체계의 정당성과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다.
산경표나 대동여지도의 산줄기 인식방법과 수치고도모형을 중심으로 물이 갈라지는 분수계를 파악하는 방식은 근본적으로는 동일한 개념에 입각한 것이다. 이것이 일치한다는 것은 김정호 또는 신경준이 해박한 지리지식과 답사를 통해 확인한 연구방법이 후대의 학자에 의해 ‘복잡한 계산’ 방식으로 증명되었다는 것이지, 역으로 이분들이 맞으니 국토연구원의 연구방법에 효용성이나 정확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555쪽 이하
대한지리학회의 이런 성명서에 대하여 그들보다 지리 문제를 더 잘 아는 사람들이 없는 고로 지금은 폭풍 전야 같은 침묵만 흐르고 있는 상황입니다.
반면 박수진, 손일 교수는 ‘DEM을 이용한 산맥의 확인과 현행 산맥도의 문제점 및 대안의 모색’이라는 논문{대한지리학회지 제40권 제1호 2005.(126~152)}을 통하여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 자체가 오역을 한 것이고 이는 지형학적 산맥과 분수계적 산맥의 혼동에서 오는 것이라 주장합니다.
그 내용에 대해서는 이미 살펴본 바가 있으니 제가 그동안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 위 박스 내용의 구룡폭포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즉 내용이야 어쨌든 대한지리학회에서 말하는 백두대간 운봉고원 구간은 구룡폭포에 의해 끊겼다는 구간을 직접 걸어봄으로써 분수계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학회의 주장을 반박하고자 합니다.
우선 관련 지도를 보면서 얘기할까요?
참고도 #1
위 참고도용 지도는 영진지도 1:120,000을 이용하였습니다.
1:75,000이 적당할 거 같은데 두 장을 이어야 하는데 제 실력이...
그렇다고 1:50,000으로 하려니 화면을 너무 많이 차지하고....
1:120,000 지도를 확대하는 선에서 적당히 타협을 합니다.
백두대간은 나라를 동서로 양분하는 아버지 산줄기입니다.
따라서 대간 서쪽으로 물이 흐르면 서해나 남해로, 동쪽으로 흐르면 남해나 동해로 흐르게끔 되어있습니다.
그러니 위 참고도 #1에서 보듯 대간 좌측으로 흐르는 물은 원천천이 되어 섬진강에 합류한 다음 남해로 흘러들어 가게 됩니다.
반면 동쪽으로 흐르는 물은 람천이 되어 만수천에 합류한 다음 남강- 낙동강이 되어 남해로 흘러가게 됩니다.
그런데 대한지리학회에서는 '분수계에 해당되는 백두대간이 전북 남원의 운봉분지에서는 구룡폭포에 의해 끊어져 평지를 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참고도의 붉은 선으로 진행을 하여야 하는 산줄기 즉 백두대간이 구룡폭포에 의해 끊어졌으니 대간길은 궁여지책으로 평지를 통하여 진행을 한다는 말로 들립니다.
모름지기 우리같은 산줄기파들은 '모든 게 산이 아니면 물'이라는 이분법적인 명제를 따릅니다.
아무리 평지라도 물이 흐르는 곳이 아니면 다 산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산이 높고 낮음의 차이만 있을 뿐 땅은 다 산이라는 겁니다.
그 땅이 해발 1m이건 1,000m이건 같은 산으로 본다는 것이죠.
그러니 학자들이 얘기하 듯 '평지를 달리고 있다.'라는 말은 그 평지가 산줄기라는 말과 다름이 없습니다.
사실 위 참고도 #1의 내용만 봐도 우리같은 산줄기파들은 현장 답사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습니다.
하지만 두부침식, 선행하천 등의 어려운 지리용어가 등장하는 것은 별론 현장을 확인하는 작업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도가 지표에 있는 유, 무형의 사물들을 표현하는 도구라 이해한다면 최근 항공사진이나 위성사진으로 지도가 표현하는 대상은 넓어졌고 정확해졌습니다.
그렇다고 지도로만 모든 것을 파악할 수는 없는 법!
현장에서 옳고 그름을 확인하는 과학적인 절차가 필요합니다.
실증주의자가 되야 할 것입니다.
해밀 덕분에 좋은 친구 한 명 사귀게 되었습니다.
최근 단독으로 귀향(?)을 한 친구입니다.
백두대간이 지나는 곳에 고향을 둔 친구인데 고향 바로 뒤로 고남산846.8m이 지난다고 하여 닉을 '고남'이라고 지은 친구입니다.
지난 번 제가 대간을 또 시작했다는 얘기를 듣고 연재(여원재)에 대기하고 있다가 기여코 저에게 하산주를 먹여 귀가케 했던 하산주에 관한 한 철두철미한 친구죠.
자신이 운봉에 Base Camp를 치고 있으니 언제고 빈 몸이라도 오기만 하면 된다고 지리산 주변 산행을 부추기기도 했던 친구죠.
구룡폭포 진행 계획을 알려줍니다.
바로 답글이 오는군요.
有朋이 自遠訪來면 不亦樂乎라!
구룡폭포 구간은 정령치 ~ 만복대 ~ 서시지맥 일부 그러고는 길도 없을 곳을 뚫고가야 한다는 산행 계획을 알려주고 남원행 기차에 몸을 싣습니다.
정시에 남원역에 마중을 나오는군요.
대기하고 있던 택시로 정령치를 향합니다.
주천면 소재지를 지나 60번 도로를 타다가 눈에 익은 고기3거리에서 737번 도로로 갈아탑니다.
기아를 변속해가며 꼬불탕꼬불탕한 길을 잘도 올라갑니다.
그러고는 정령치입니다.
산행개요
1. 산행일시 : 2017. 10. 25. 수요일
2. 동행한 이 : 고남님
3. 산행 구간 : 정령치 ~ 만복대 ~ 서시지맥 갈림길 ~ 1109.3봉 ~ 구룡폭포 ~ 갈림길 ~ 759.2봉 ~ 덕치리
4. 산행거리 : 15.82km
구 간 |
거 리 |
출발 시간 |
소요 시간 |
비 고 |
정 령 치 |
|
10:22 |
|
|
만 복 대 |
2.26 |
11:18 |
56 |
8분 휴식 |
서시지맥 갈림 |
0.41 |
11:32 |
14 |
|
1109.3봉 |
2.17 |
12:30 |
58 |
|
구룡폭포 |
6.15 |
15:36 |
186 |
45분 휴식 |
갈 림 길 |
1.27 |
16:19 |
43 |
10분 휴식 |
759.2봉 |
2.39 |
17:07 |
48 |
|
덕 치 리 |
1.17 |
17:34 |
27 |
|
계 |
15.82 km |
07:12 |
06:09 |
실 소요시간 |
산행기록
지도 #1
며칠 전 이곳에서 아무 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잔뜩 두껍게 낀 운무 때문이었습니다.
오늘은 너무 깨끗하게 보이는군요.
그리고 반야봉.
옛 표지석을 보고,
10:22
바로 산행을 시작합니다.
조금 늦은 시간이죠?
등로는 남원시 주천면과 산내면의 면계입니다.
수평선 혹은 지평선 같이 개스가 일렬로 섰습니다.
그 아래로 요천지맥이 흐르고 있고 좌측은 남원시 시가지입니다.
정령치 매점과 주차장을 보고,
만복대를 향하여 오르면서 고리봉1305.4m을 봅니다.
10:35
만복대까지는 무조건 오르막이죠?
지도 #1의 '가'에서 우틀합니다.
고도를 높입니다.
지리의 색깔이 변합니다.
완전히 갈색 톤입니다.
우측 고리봉.
좌측 수정봉.
고리봉 뒤로 이른바 지리서부(북)능선.
그리고 그 뒤로 덕유가 보입니다.
좌측으로는 반야가 조금 더 다가오고.....
와우!
11:07
서시지맥 갈림길입니다.
우측으로 들면 다름재 ~ 견두산 ~ 천마산을 지나 서시천과 섬진강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맥을 다하게 되죠.
오늘 진행하는 구간은 여기서 서시지맥루트를 잠깐 이용하여 진행을 하게 됩니다.
여기까지 왔으니 만복대는 들러야겠죠.
좌틀하여 진행합니다.
11:18
200여 m 더 올라가니 만복대입니다.
정상석을 보고 주변을 감상합니다.
천왕봉과 영신봉 일대를 다시 보고,
앞으로는 서부 지리의 맹주 반야봉과 우측의 노고단이 보입니다.
중앙에 날라리봉(삼도봉)은 머리만 살짝 보여주는군요.
음...
지리도 만추로 치닫고 있군요.
모레 지리가 예약된 상태이기 때문에 피아골의 단풍에 잔뜩 기대를 하게 됩니다.
종석대 우측으로 간미봉으로 흐르는 능선.
아래로는 지리산온천랜드가 있는 산동면.
서시천이 여러 지류와 합류되는 모습도 보이는군요.
그러니 그 우측이 서시지맥이고 그 서시지맥이 서시천이 울타리가 됨을 보여줍니다.
견두산도 보이고 좌측 멀리 무등산은 머리만 보입니다.
지리서부능선 우측으로 백운산이 보이고....
정령치로 떨어지는 대간 라인과 고리봉 그리고 서부능선.
수정봉 우측 아래로는 주촌저수지가 보이고,
대간길인 60번 도로와 도인학교 뒤의 소나무 단지도 보입니다.
눈길을 조금 앞으로 주면 좌측으로 서시지맥이 보이고 조금 이따 우리가 진행할 1109.3봉의 모습도 보입니다.
서시지맥도 힘차게 뻗는 느낌을 갖습니다.
순천 아줌마들도 씩씩하게 오르시는군요.
뒤의 서시지맥.
단풍놀이나 갈걸.....
야자매트.
11:32
다시 서시지맥 입구입니다.
여기서 좌틀하면서 전라남도 구례군 산동면과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의 도계를 따라 걷게 됩니다.
우선 가야할 방향을 가늠해 보고,
좌측이 용수천이 내려가는 골짜기인데 상당히 깊군요.
12:02
요강바위를 찾아야 하는데 도대체 어떤 것인지 찾을 방법이 없고.....
12:07
제가 제일 싫어하는 산죽밭은 여지없이 시작되고.....
지도 #1의 '나'의 곳 부근입니다.
이게 요강바윈가?
지도 #1의 '다'의 안부를 지나고.....
거기서 준희 선생님을 뵙습니다.
선생님은 이곳을 '견두지맥'이라는 이름으로 지나셨군요.
멧선생 침대가 아주 포근하게 만들어진 걸 보니 산모용 침대 같습니다.
잠시 조망이 트이는 곳에서 만복대를 보고..........
12:30
그러고는 지도 #1의 '라'의 곳인 1109.3봉 전위봉입니다.
표지띠가 하나 달려있군요.
그 옆에 제 표지띠도 하나 걸어 놓습니다.
1109.3봉은 여기서 좌틀하여 50m 정도 더 가야하는데 삼각점도 없는 봉우리이므로 무시합니다.
여기서 점심으로 가지고 온 김밥을 먹고 가기로 합니다.
고남님이 준비해 온 막걸리 두 통을 나눠 마시고.....
13:15
배불리 마시면서 담소도 나눴으니 일어나야죠.
45분 만에 일어나게 되는군요.
이제는 온전하게 남원시 주천면 안으로 들어가서 진행하게 됩니다.
독오당이라.....
지리산學이라고 까지 썼으면 지리산 산신령이라는 뜻일텐데....
獨悟堂인 거 같고.....
생소한 닉이긴 합니다만 여길 지날 정도면 상당한 프로인데.....
사실 서시지맥에서 빠져나오는 지금 구간부터는 당연히 아무런 표지띠도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13:41
그 표지띠를 하나 더 발견하게 되는데 그걸로 끝입니다.
지도 #2
알바 한 번 하고 .....
잡목 숲을 지나느라 고생 좀 합니다.
13:56
산죽도 여전하고...
그런데 아무래도 이곳은 멧선생 천국 같습니다.
멧선생 집을 여기저기서 발견하게 됩니다
13:59
지도 #2의 '마'는 도저히 뚫고 오를 수 없는 곳인데 이런 곳이 수두룩합니다.
14:02
우회하여 옛 묘지 흔적을 봅니다.
여기서 좌틀합니다.
음...
고리봉.
10여 분 진행하는데 우측으로는 흔적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러고는 우측 능선으로 붙어 진행을 하여야 하는데...
도저히 뚫고 갈 수가 없어 그냥 좌측 능선으로 변경합니다.
14:08
멧선생 침대.
14:16
또 산죽밭.
14:26
이런 숲을 지나,
된비알을 내려오면서 옛 국립공원 표석을 확인합니다.
14:43
지도 #2의 '바'의 곳에서 임도를 만납니다.
이 임도를 따라 가 봅니다.
그런데 이 임도는 다시 옆 능선으로 치고 올라가는 길!
하는 수없이 다시 되돌아 나와 직진하여 숲으로 듭니다.
14:45
또 작은 임도를 만나기는 하지만 이것도 옆 능선으로 올라 가는 길.
10여 분 정도 비알을 치고 내려와,
14:57
대성교로 떨어집니다.
사실은 지도 #2의 핑크색 선을 따라 진행하려 했는데 조금 아래로 떨어진 모양새가 되어 버렸습니다.
도로를 따라 올라갑니다.
15:03
호랑골가든을 지나,
15:08
내기 마을 입구에서 좌틀합니다.
지도 #3
15:20
지도 #3의 '사'의 곳에서 예정했던 등로를 회복합니다.
15:27
도로를 따르다 보니 정면으로 주차장이 나옵니다.
구룡폭포 관광객을 위한 주차장입니다.
고남님이 초등학교 시절 소풍을 오던 곳이라고요?
사실은 기억에도 없다고는 합니다.
여기서 드디어 물을 건너는군요.
물을 건너게 되니 구룡폭포 루트는 절대 분수계分水界가 아닙니다.
15:36
구룡폭포입니다.
낙차가 커서 그런가요?
물소리가 온 계곡을 다 흔드는 거 같습니다.
이 물이 원천천이니 남원대교 아래에서 요천을 만나 거기에 흡수되겠죠.
구룡폭포는 하천 상류 쪽을 침식하여 그 길이가 길어지는 두부침식頭部侵蝕 현상으로 폭포가 점차 상류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하는군요.
이 루트가 대간길이 아니라는 아주 당연한 사실을 확인하러 여기까지 왔다는 게 사실 할 일도 되게 없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구룡정 삼거리로 올라가야죠.
계단을 올라,
15:56
삼거리에서 10여 분 간식을 먹은 후, 구룡사를 보고 다시 되돌아 나옵니다.
16:32
지리산 둘레길을 100여m 따르다 우측으로 들어서면 진주 소씨 음택을 지나,
16:08
다시 둘레길을 만납니다.
인내심을 갖고 둘레길을 따라 걸으면,
16:19
우측 숲길로 드는 곳에 표지띠가 날리고 있습니다.
우틀하여 숲으로 듭니다.
지도 #3의 '아'의 곳입니다.
16:32
작은 구릉 하나를 지나,
지도 #4
16:45
728.8봉을 지납니다.
17:07
부드러운 능선 길을 걸으면 이내 덕운봉이라는 이름이 붙은 759.2봉 전위봉입니다.
여기서 우틀합니다.
이제부터는 대간길을 걷게 됩니다.
지리학자들은 지금까지 걸은 길을 대간길로 본 것입니다.
그러니 구룡폭포에 의해서 대간길이 끊긴다고 본 것이죠.
결국 분수계 역할을 못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물이 아니면 다 산인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한 것 같습니다.
17:15
대간꾼들은 지금까지 걸은 루트가 아닌 구룡폭포 갈림길이라고 되어 있는 이정표를 따라 좌틀하여 일단 노치마을로 떨어졌다가 도로를 따라 진행하죠.
그 60번 도로 자체가 백두대간길이라는 것입니다.
좌틀하여 도인학교 뒤에 있는 수행 장소를 지나,
우측으로 내려가,
물 한 모금 먹고,
기념 촬영을 한 후,
시간 맞춰 도착한 택시를 타고,
17:34
황산 흑돼지집으로 가서 저녁을 맛있게 먹고 귀가합니다.
고남님 환대에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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