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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TWINS/현오의 백두대간 꿰뚫어 보기

백두대간 지리산 주변 돌아보기 (화엄사 주차장~ 원사봉 ~ 차일봉 ~ 종석대 ~ 노고단 ~ 형제봉 ~ 월령봉 ~ 오미리 주유소)

 

 

남원.

거기에서도 운봉 정도에 친구가 있다는 것은 아주 행복한 일입니다.

더군다나 그 친구가 산을 좋아하고 특히 지리산에 미쳐 있는 사람이면 더 말 할 나위 있겠습니까?

지리에 푹 빠져 사는 그 친구와 거의 묵시적인 약속이 하나되어 있습니다.

매주 수요일은 지리에 드는 날!

지난 주는 지리 서부능선을 타고 태조 이성계를 만나고 왔는데 오늘은 어디로 갈까요?

산방기간 중이라  지리의 문은 대부분은 꼭꼭 잠겨있습니다.

열려 있는 몇 곳 중의 한 곳이 성삼재 ~ 노고단입니다.

그러면 떠오르는 곳이 있습니다.

아직 미답인 차일봉 능선과 형제봉 능선.

그 사이에 교묘하게 성삼재 ~ 노고단 구간이 자리하고 있군요.

 

지도를 봅니다.

참고도 #1

 

예전부터 눈여겨 보고 있던 차일봉 능선으로 올라 우번암 ~ 코재 ~ 노고단 하부 ~ 형제봉 ~ 월령봉 ~ 주유소 앞으로 진행하면 될 것 같습니다.

화엄사 계곡을 가운데 두고 환종주 하는 격입니다.

올라갈 때는 좌측으로 간미봉 능선을 지대로 보고 오를 수 있으려나?

그 너머에는 서시지맥의 흐름과 요천지맥의 흐름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하산 시에는 좌측으로 왕시루봉 능선을 볼 수 있겠죠?

섬진강 건너의 백운산과 호남정맥의 흐름도 아주 가까운 곳에서 보면서 갈 수 있을 겁니다.

그렇죠.

이 형제봉 능선과 왕시루봉 능선 사이로 토지천이 흐르고 있는데 그 계곡을 문수골이라고 하죠?

행정구역 상으로는 구례군 토지면 문수리이고....

그 문수라는 이름이 붙게된 것은 사실 지금은 초라한 토굴로 전락하였지만 예전에는 그래도 연곡사의 말사로 의병활동의 중추적 역할을 했던 문수암에서 비롯됐습니다.

노고단 바로 아래 있는 암자입니다.

기돗발이 잘 받는다는 지리 10대 중 하나인 문수대의 문수암.

문수보살이 그 문수대에서 법을 설할 때 그 법이 왕시루봉에 부딪쳐서 차곡차곡 쌓이는 곳에 있는 문수사.

그러니까 문수암과 이 문수대는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사이라는 것입니다.

그 문수사를 볼 수 있을까요?

그리고 노고단의 선교사 휴양촌에 이어 왕시루봉의 선교사 휴양촌도 몇 채 볼 수 있으려나?

일단 가면서 보기로 하죠.

 

07:"07

정확하게 남원역에 도착합니다.

고남님의 차를 타고 화엄사로 향합니다.

아침을 안 먹었으니 사하촌 식당에서 콩나물국밥 한 그릇 먹고 준비를 합니다.

 

산행개요

 

1. 산행일시 : 2017. 11. 30. 목요일

2. 동행한 이 : 고남 님

3. 산행 구간 : 지리산 주변 (화엄사 주차장~ 원사봉 ~ 차일봉 ~ 종석대 ~ 노고단 ~ 형제봉 ~ 월령봉 ~ 오미리 주유소)

4. 산행거리 : 20.71km

구 간

거 리

출발 시간

소요 시간

비 고

화엄사주차장

 

08:10

 

 

원 사 봉

1.98

08:57

47

차 일 봉

3.19

10:13

76

종 석 대

1.91

11:03

50

노 고 단

2.15

12:00

57

20분 점심

형 제 봉

5.47

14:41

161

10분 간식

월 령 봉

1.24

15:16

35

 

주 유 소

4.77

16:38

82

 

20.71 km

08:28

07:58

실 소요시간


 

산행기록

 

지도 #1

화엄사 주차장 앞의 식당에서 밥을 먹고,

화엄사 로 올라가는 도로를 따라 '예원'이라는 식당 뒤편으로 돌아가면,

08:10

묘지로 올라가는 통로가 보입니다.

그 안으로 들어갑니다.

우선은 된비알입니다.

국립공원 말뚝이 여러 개 보이는군요.

우측으로 형제봉이 살짝 그 머리를 드러내고 있고....

그 외는 다 막혀 있습니다.

08:37

지도 #1의 '가'의 곳을 지나면서 광의면을 만납니다.

이제부터는 광의면과 마산면의 면계를 따릅니다.

광의면 수월리 정경입니다.

좌측으로 당촌제가 우측으로는 방광저수지가 각 보이는군요.

광의면 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황현입니다.

구한말 민족주의자 중 한 분을 꼽으라면 지리산과 관련된 인물로서는 단연 매천 황현입니다.

그는 원래 광양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구한말 한반도가 제국주의의 각축장이 되자 관직을 버리고 낙향한 후, 1908년 저 광의면 방광리에 호양학교(壺陽學校)를 설립하여 신학문 보급에 앞장을 섰으나 결국 한일합방이 되자 절명시絶命詩를 남기고 자결하고 맙니다.

그 학교는 일제시대에 폐교되었다가 2006년에야 건물이 복원되었다고 합니다.

한편 조금 전 화엄사로 들어오다 '매천사당'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봤습니다.

광의면 월곡리에는 이 사당은 동네 유지들이 뜻을 모아 건립한 것이라고 하는군요.

그의 저서 매천야록梅泉野錄은 고종 1년(1864년)부터 융희4년(1910)까지의 한말 비사를 7책 6권으로 상술하였는데 근세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라고 합니다.

 

저수지가 이곳이 벼농사를 많이 하는 곳이라는 걸 알려주고 있습니다.

서시천 뒤로 순천 ~ 안주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차량의 소리가 시끄럽게 여기까지 들리는군요.

그 뒤가 서시지맥이고.....

중앙에 형제봉

그 우측으로 고개를 돌리니 서시지맥은 견두산을 지나 만복대 방향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08:44

간벌작업을 한 곳 좌측으로 원사봉이 보이고 능선은 우틀하게 되는군요.

485.4봉에 오릅니다.

그러고 내려서는 곳이 원사치院紗峙입니다.

이 원사치(재)는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에 나오는 지명입니다.

그래서 면소재지인 광의를 피해 대산리와 지천리를 함께 치기로 했다. 냉천리와 광평리도 쓸 만했지만 섬진강 다리에 경비병력이 많은데다 구례읍이 또 바로 옆이라서 광의를 치는 것보다 더 위험해 일단 제쳐놓게 되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화엄사 뒤를 멀찍하게 돌아 완사재(원사재이 오기인 듯)를 넘은 그들은 얼마 걷지 않아 수월리의 큰 길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대산리와 지천리로 갈라지는 길목에 돌로 쌓아올린 초소가 있었다. 그것을 제거하지 않고서는 마을로 진입할 수 없었다. 정찰에 의하면 그 초소의 병력은 열이었다. 

 

- 조정래 태백산맥 25.피아골

이해룡 부대는 보급투쟁을 하기 위하여 지리산을 내려와 광의면의 지천리와 대산리를 공격하기로 했는데, 이 원사치를 넘어 수월리를 거쳐 이동을 했다는 것이군요.

바로 앞 당촌제가 있는 곳이 수월리이고 좌측 마산저수지가 있는 곳이 지천리입니다.

수월리 지나 서시천 방향이 대산리이고....

멀리 구례읍과 섬진강이 보이는군요.

섬진강 뒤로 보이는 줄기가 호남정맥이겠고....

08:57

된비알을 치고 올라가느라 힘 좀 씁니다.

앞에는 무덤.

그 뒤에는 4등급 삼각점(남원463)이 있는 원사봉556.2m입니다.

그런데 이 삼각점은 멸실된 것으로 국토지리정보원 지도 및 기준점 조서에는 나오지 않는 점입니다.

정상은 잡목이 가리고 있오 조망이 전혀 없습니다.

바람이 거세집니다. 

지도 #2

09:15

672.6봉을 지나,

767.8봉은 사면치기로 진행을 한 다음 법성봉재를 지납니다.

우측으로는 형제봉 능선이 따라오지만 그 능선을 보려는 욕심은 아직 이릅니다.

조망에 답답해 할 즈음,

10:13

차일봉1004.7m으로 오릅니다.

여기에 올라서야 겨우 그 답답함을 면하게 되는군요.

좌측 '작은 종석대', 중앙이 종석대 그리고 우측이 노고단.

육안으로는 노고단 조망대 아래 그러니가 KBS 중계소 우측으로 작은 바위가 보입니다.

우리는 그 바위 옆으로 진행을 하여 형제봉으로 내려올 겁니다.

언제나 봐도 멋진 이 지리산!

고남님이 우번암을 물으시는군요.

작은 종석대 아래를 좀 당겨봅니다.

좌측 중앙에 푸른색 지붕의 우번암이 보이죠?

가까이 가서 보면 이 모습입니다.

하지만 우번암은 여기서 조금 더 들어가야 됩니다.

그래야 이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곳에서는 보이지 않는군요.

잡목이 가렸기 때문입니다. 

지도 #3

10:34

1051.4봉을 지나,

10:38

잡목지대를 지나고는,

10:43

어른 키보다 더 큰 산죽밭을 지납니다.

기어서 지나는 게 더 편하군요.

이 두 군데가 조금 어려운 구간이군요.

그 산죽밭을 빠져나와 뒤를 돌아보면 중잉 뒷줄의 왕시루봉과 그 뒤 호남정맥의 백운산과 도솔봉이 보입니다.

10:50

동물 이동 감시 장치를 지나,

조망터가 될 법한 바위가 나옵니다.

거기서 지나온 줄기를 봅니다.

가운데 끝 봉이 차일봉.

섬진강과 구례읍.

앞 라인이 조금 이따 진행할 형제봉 능선.

우측 끝에서 형제봉이 보이고 그 봉우리에서 좌측으로 월령봉으로 갈리는 능선이 선명하군요.

형제봉에서 우측으로 갈리는 능선은 화엄사 사하촌인 황전리로....

가운데 멀리 우뚝 솟은 조계산.

그 우측으로 나무에 가린 무등산.

종석대를 올려다 봅니다.

그 우측으로는 노고단.

11:03

우번암 삼거리에 도착했습니다.

우번암에 들러 종석대까지 올라가려 했는데 바람이 거세집니다.

그냥 우틀합니다.

오늘 하루 종일 이 종석대를 보며 진행을 하게 되겠군요.

언제 보아도 멋지고 늠름한 종석대입니다.

노고단으로 오르는 길에 산객은커녕 관광객조차도 보이질 않는군요.

갑자기 기온이 떨어져서인가요?

바람이 너무 셉니다.

형제봉 능선 뒤로 왕시루봉과 백운산.

앞 줄 뒤.

형제봉.

조계산.

좌측 지리서부능선.

공사중.

무엇을 만드는라 그러는지....

화엄사 계곡입니다.

화엄사는 승려 연기(烟氣, 혹은 緣起)가 544년(진흥왕 5)에 창건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연대를 확인하기는 어려우나 신라 경덕왕 때 창건된 것으로 본다고 합니다.

이 화엄사가 화엄신앙의 한 중심지였다고 .....

화엄사의 창건과 거의 같은 시기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연곡사(鷰谷寺)도 연기조사가 창건한 것이라고 하지요?

무넹기입니다.

이 무넹기를 읽는 해석도 다양합니다.

화엄사는 노고단의 물을 받고 싶어했다고 합니다.

종석대에서 흘러내려오는 기氣만으로는 부족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노고단을 주재하고 있는 문수보살의 기氣를 받고자 물을 텄다는 것입니다.

그게 무넹기입니다.

불가에서는 그렇게 해석합니다.

그러니 구례에 가뭄 운운 하는 얘기는 요사이 만들어 낸 말이고 그 이전부터 이 수로는 있었다는 얘기죠


불가에서는 문수보살의 기氣를 화엄사로 보내려는 측면에서 해석을 하고,

일반인들 특히 불확실한 근거에 의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내기 좋아하는 이들은 가뭄의 해결책으로 읽고,

우리 같은 산꾼들은 이 무넹기로 인해 대간길이 끊기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을 해주고....

그렇게 세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입니다.

무넹기를 지나 도로를 따라 천천히 올라갑니다.

노고단 선교사 휴양 시설의 잔재입니다.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질병 치료와 휴양이 목적으로 1922년 시설한 것인데 약 50여 동이 있었다고 합니다.

미국과 일본의 관계가 악화되자 1940년 철수하면서 빈 공간이 되었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황폐화 되었습니다.

1961년 경 지금의 왕시루봉에 이와 비슷한 목적으로 선교사 휴양촌이 세워졌고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하죠.

나중에 한 번 더 왕시루봉을 가봐야겠습니다.

11:34

노고단 대피소를 지나는데 공단직원이 물으시는군요.

"어기로 가십니까?"

"노고단 구경갑니다."

"종주 못하시는 거 아시죠?"

"알다마다요."

 

이왕 온 거 취사장에 들어가 점심을 먹고가기로 합니다.

고남님이 가지고 온 죽으로 해결합니다.

그런데 노고단 대피소의 취사장은 장난이 아니군요.

난방까지 되고....

하여간 편하게 쉬다 갑니다.

11:54

20분 정도 쉬다가 나옵니다.

종석대를 한 번 더 보고....

멋지죠?

서시지맥과 무등산.

형제봉 능선, 화엄사골, 차일봉 능선.

그리고 섬진강.

저 섬진강을 남원에서는 순자강子江, 곡성에서는 압록강鴨綠江, 구례에서는 잔수강潺水江, 광양에서는 섬진강蟾津江으로 불리는 등 그 이름도 다양합니다.

이 섬진강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전설이 하나 있죠?

원래는 두치강豆恥江이었다고 합니다.

'임진왜란때 왜적들이 쳐들어와 이 강의 나루터에 도착하자 나루터 일대에 수많은 두꺼비들이 새까맣게 몰려와 울부짖었다. 이 때문에 왜적들이 육지에 상륙하지 못하고 후퇴했다. 이에 두치강을 섬진강으로 바꿔부르게 되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럴싸하지만 이를 국어학적으로 보면 좀 달라집니다.

이 '蟾'은 두꺼비라는 뜻 이외에 달을 가리키는 月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이 月은 곧 우리 말 '達' 즉 高와 山이라는 의미도 있으니 섬진은 곧 달나루 즉 높인 곳에 위치한 나루라는 의미입니다.

즉 지리산 계곡을 감싸며 흐르는 물이라는 의미에서 우라말 '달'이 들어간 것 뿐입니다.

한편 두치강의 豆恥는 다른 한자어로 쓰여진 것이라고 봅니다.

豆는 頭이고 恥는 治의 오자라는 것입니다.

즉 머리 頭가 '크다 , 높다'라는 뜻에서 온 것이니 이 강이 지리산이라는 높은 산을 끼고 흘러내려오는 강이라는 의미라는 것이죠.

모든 걸 알면서 걸으면 재미가 더 해집니다.

KBS 기지국으로 오르는 길에 조망대에서 멀리 순천만을 조망합니다.

11:58

 저 바위에서 우틀하면 됩니다.

종석대와 작은 종석대.

12;00

이쯤에서 우측으로 줄을 넘습니다.

바람이 너무 드세서 몸을 가누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진 촬영을 하려는데 폰이 흔들리고....

바위에서 바로 넘어갈 수는 없고,

바위 우측으로 틀어 진행을 합니다.

이제 방향을 제대로 잡았습니다.

뒤로 돌아 틀어 진행한 바위를 봅니다.

우측 노고단 전망대.

왕시루봉 능선.

맨 뒤로 왕시루봉을 봅니다.

12:23

진행 중 좌, 우측으로 각 1개씩 자동 안내방송용 장치를 봅니다.

폭우시 자동으로 강우량을 측정하여 계곡에 있는 사람들을 대피하게 하기 위한 설비인데 현실감이 없어 보입니다.

12:26

1232.4봉에 올라,

나뭇가지 사이로 종석대를 봅니다.

길은 희미하지만 그런대로 진행하는데 무리는 없습니다.

12:33

매막등1197.3m으로 오릅니다.

낙엽이 너무 깊게 쌓여 신발 안으로 나뭇잎이니 잔가지가 자꾸 들어옵니다.

손가락으로 파내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신발을 벗어 터느라 시간을 낭비합니다. 

지도 #4

하여간 대구의 이 산악회는 안 다니는 데가 없는 거 같습니다.

회장님이 워낙 산을 잘 아시는 분이니....

12:36

내려온 바위와 노고단 중계소.

왕시루봉 능선과 그 뒤로 낙남정맥의 삼신봉.

왕시루봉 능선 뒤로 불무장등이 살짝 고개를 드러내는군요.

그 우측 뒤로는 여전히 낙남정맥.

12:57

좌측 불무장등1441.1m 뒤로 살짝 촛대봉1703.1m 아래에 있는 시루봉1578m이 머리를 내밀기 시작하고....

문바우등1196m과 왕시루봉1240.2m.

너무 깨끗하게 보입니다.

문수골도 이제는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멀리 백운산, 도솔봉의 호남정맥.

그 뒤로 남해 바다도 보입니다.

조금 당겨보니 이제는 촛대봉도 보이고....

13:04

불무장등 좌측으로 반야봉도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13:08

종석대는 여전하고....

바로 우측에는 차일봉.

저 아래 볼록한 원사봉.

좌측으로는 왕시루봉과 문수골.

13:23

지도 #4의 '라'의 곳에 올라서니 드디어 형제봉907.6m과 월령봉819.5m이 보이는군요.

형제봉에서 우틀하여 진행하면 바로 화엄사지구로 떨어질 수 있고....

멀리 남해 바다도 보입니다.

13:35

963.9봉을 통과합니다.

14:13

816.5봉을 오르면서 좌측으로 문수사를 보려하는데 아직은 좀 성급합니다.

14:14

816.5봉을 지나,

14:17

밤재로 떨어집니다.

등로는 완전히 낙엽 밭이고....

여기서 좌틀하면 신율마을로 진행을 할 수 있겠군요.

밤과 관련이 있는 마을입니다.

여기서 배선생님을 알현합니다.

아마 신율마을 ~ 주유소가 있는 배틀재까지 진행을 하신 거 같습니다.

14:26

밤재를 지나 고도를 높이던 중 훌륭한 조망처가 나옵니다.

신율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

좌측으로 문바우등 그리고 느진목재로 떨어졌다가 다시 왕시루봉으로 고도를 높이는군요.

문바우등에서 능선을 따라 내려오면 복호등을 지나 문수사로 떨어지겠군요.

아직은 희미하여 제대로 관측이 안 되고 문수사 아래에 있는 주택만이 보일뿐 입니다.

아직도 종석대와 가운데 노고단은 여전합니다.

우측으로는 반야봉도 손짓을 하고...

 

밤기온은 차가웠다. 바람이 불고 있어서 그 차가움에는 매운 기마저 섞여 있었다. 나뭇잎들은 거의 다 떨어져 바람에 쓸리느라고 매마른 소리들을 내고있었다. 계곡을 울리는 물소리도 추위를 품고 있었다. 어느덧 지리산의 골짜기에는 겨울이 와 있었다.

그들은 명령에 따라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저녁을 해먹었고 짐들을 다 챙겼다. 날은 점점 어두워져 골짜기에는 짙은 어둠이 가득 차 있었다. 몸을 웅크리고 앉은 손승호는 망연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드디어 지리산을 떠나가는구나..... 지리산. 한량없이 크고 우람하고 골이 많은 산. 명산의 산신령들은 다 남자 형상인데 어찌 하필 지리산만 여자일까. 천왕봉 다음으로 높으면서 100리가 넘는 거리를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는 반야봉이 바로 그 여신령을 상징하고 있다. '반야'라는 말에는 불교적 의미말고도 귀녀鬼女라는 뜻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반야봉은 흡사 여자의 봉긋하게 솟은 두 개의 젖무덤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그 전설대로 하자면 지리산은 여신령의 폭넓은 치마를 펼치고 앉은 형상이 되었고, 수없이 많은 골짜기들은 그 치마의 주름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옛날부터 세상을 바로 잡으려던 사람들은  형편이 여의치 못하면 그때마다 이 산으로 밀려들어 그 최후를 마쳤던 것인가. 남도땅에서는 제일 큰 산인 까닭이고 더는 갈 데가 없는 마지막 산인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면 이 지리산 골짜기들은 피신처였으며 또한 무덤이었다. 무덤의 둥근 모양은 자궁을 상징하는 것이고 죽음은 태어난 곳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의미라는데.... 지리산의 여신령은 자궁을 많이 지니고 의로운 사람들에게 죽음자리를 마련해 준 것인가..... 글쎄 빨치산으로서는 어울리지 않는 너무 추상적이고 비과학적인 생각이다. 어쨌든 지리산은 역사 위에서 투쟁하던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산이었고 죽음을 맡긴 산이었다. 결국 지리산은 역사의 무덤이었다. 그 지리산을 이제 떠나려 하고 있었다.

 

ㅡ 소설 태백산맥 중 28. 지리산 동계대공세

 

반야봉 우측으로 삼도봉도 보이는군요.

여기서 좀 더 진행을 하자. 그러면 이름도 재미있는 날라리봉’1501m이다. 어감이 좀 좋지 않았나? 공원관리공단에서는 경상남도, 전라남도, 전라북도 등 삼 개 도가 만나는 곳이라 하여 1990년대 초 삼도봉으로 개명을 했다. 실은 이 봉우리가 낫의 날같이 뾰족하다고 하여 낫날봉이었다. 그게 시간이 흐르면서 음운이 변하여 날라리봉으로 되었던 것인데 애꿎게 이름만 나무란 꼴이다.

여기서 팁 하나 더! 우리나라 백두대간에는 세 개의 삼도봉이 있다. 그 셋 중 하나가 이 삼도봉이며 다른 하나는 경상남도 거창군과 전라북도 무주군 그리고 경상북도 김천시 등 세 개의 도가 만나는 초점산1249.1m이라는 이명을 가진 봉우리이고, 마지막 하나가 전라북도 무주군과 경상북도 김천시 그리고 충청북도 영동군 등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가 만나는 민주지산 바로 옆의 삼도봉1177.7m이다.

 

-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63쪽

 

그 날라리봉을 좀 당겨보겠습니다.

자.

어떻습니까!

'낫날'같이 보입니까?

고남님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아마 조선시대 때 어느 사대부들이 이 봉우리에 올라 술잔을 나누면서 마침 저 날라리봉을 보고는 "낫날같이 생겼으니 앞으로는 낫날봉으로 부르세."라는 말을 나눴을 것 같습니다.

릉에서는 어느 방향에서 봐도' 낫날'같은 모습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측 두 번째 봉우리가 불무장등1441.1m.

아까 밤재부터 시작한 이 분의 땅은 아직도 계속됩니다.

그런데 20만 평이 그렇게 쓸모 있는 땅 같아 보이지는 않는군요.

14:41

드디어 형제봉907.6m입니다.

고도 표시가 잘못 되었군요.

우측 차일봉 아래 연기암이 보이고 그 아래로는 화엄사가 보이는군요.

767.8봉 바로 위가 법성봉재.

그 767.8봉 아래로 흐르는 능선이 바로 화엄사로 떨어지는군요.

그 우측으로 작운 종석대와 종석대.

그리고 가운데 코재. 우측의 노고단까지 한 눈에 들어오는군요.

노고단 우측으로 반야봉 그리고 삼도봉.

그 앞 라인으로 불무장등.

중앙 우측 문바우등.

문바우 - 느진목재 - 왕시루봉

좌틀합니다.

우측으로 조금 더 가면 문수사가 잡히겠군요.

14:50

872.7봉을 지나고,

종석대와 노고단은 여전하고....

14:54

형제봉재로 떨어집니다.

밤재마을과 마산리를 이어주는고개입니다.

862.9봉을 지나면서 지나온 능선을 보고....

이제 잡히는군요.

좌측 위가 문수사입니다.

지난 번 노고단 바로 아래에 있는 문수암에서 스님의 말씀에 의하면,

스님 曰,

"여기서 왕시루봉이 정면으로 보입니다."

그러면서 바로 문수암 좌측이 문수대인데 문수보살이 설법을 하는 곳이라고 하는군요.

이 문수대에서 설법을 하면 그 말씀이 차곡차곡 쌓이는 곳이 바로 저 왕시루봉이라고 합니다.

시루떡을 한 켜 한 켜 쌓듯이 법문이 저 왕시루봉에 쌓인다는 것이죠.

왕시루봉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까닭입니다.

그래서 그 왕시루봉 아래 문수보살님의 말씀을 듣는 문수사가 생긴 이유가 되는 것이고....

실제 그 문수사는 왕시루봉 아래인 마산면 문수리에 실재해 있고......  

아! 그러니 산 이름 하나하나가 괜히 생긴 게 아니로군요.

 

한 말씀 더 하십니다.

반야봉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반야般若가 불교의 근본 교리 중 하나로 곧 지혜를 말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문수보살이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이니 반야와는 떨어질 수 없는 존재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반야봉이 흘러내리는 능선을 보면 반야봉에서 불무장등을 지나 연곡사로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연기조사가 연곡사를 그곳에 불사하게 된 것도 이 반야봉과 무관치 않고 불무장등不無長嶝이 그런 이름을 가지게 된 것도 다 반야봉의 기운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신묘한 말씀이....

15:08

801봉을 지나,

월령봉을 오르면서 형제봉을 돌아봅니다.

뒤로는 여전히 노고단.

형제봉에서 뢍전리로 떨어지는 능선.

15:16

그러고는 월령봉月嶺峰입니다.

月이 高, 達이니 '높은 산'이라는 말이겠군요.

아쉬움에 왕시루봉 능선을 다시 보고....

호남정맥의 백운산, 도솔봉.

15:30

토지면 구산리에 소재한 문수저수지.

15:31

그러고는 750.4봉에 올라 3등급삼각점(하동 301)을 확인합니다.

고도를 떨어뜨리기 시작합니다.

15:43

마산리 골프장으로 빠지는 삼거리인 삼배재입니다.

이이정표에 의할 때 우리 목표 지점은 바람재를 지나 주유소입니다.

앞으로 3.55km남았으니 4시 반 정도에는 떨어지겠군요.

길이 좋아집니다.

 

15:50

길이 푹신푹신하고....

솔잎 덕분입니다.

전기가 흐르는 펜스를지나,

문수저수지.

15:59

천황재를 지나,

섬진강과 그 좌측의 오산鰲山541.7m을 봅니다.

그 오상 쥣편에는 사성암이 있죠?

사성四聖은 원효, 의상, 도선, 진각 등 4인을 일컫는 말입니다.

16:13

천행치를 지나 이제부터는 임도를 따릅니다.

우측 산길은 사유지라고 또 막아놨군요.

이 분도 전국 방방곡곡 다니시는 분.

16:23

범등재를 지나,

평상이 있는 곳을 지납니다.

16:27

배틀재를 통과하면서,

우측의 하사저수지를 봅니다.

16:33

105.9봉의 4등급삼각점(하동401)은 나뭇잎 속에 덮혀 있는 것을 간신히 찾아내어 확인합니다.

이제부터는 무조건 하산모드.

16:35

이곳도 둘레길이군요.

어쨌든 둘레길을 만납니다.

나중에 이곳을 오게 되겠군요.

이 토지면 오미리와 광의면 방광리를 잇는 구간이군요.

이 토지면은 화엄사에 딸려 도자기를 구워 납품하던 곳인 토지처土旨處 에서 유래한 지명이군요.

16:38

다 내려왔습니다.

아까 이정표에서 이야기한 주유소입니다.

여기서 오늘 산행을 마치고 학수를 나눕니다.

기차시간까지는 시간이 좀 남는군요.

구례터미널로 가는 도중 아까 화엄사 주차장에서 올라가던 곳을 눈으로 따라가 봅니다.

좌측의 원사봉 그리고 중앙의 차일봉 그리고 종석대.

코재와 우측의 노고단까지....

오늘 완주를 축하해 주는 듯 일단의 철새가 날아가는군요.

고남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주는 임천지맥 한 구간을 하자구요?

좋죠.

어차피 산방기간 중이라 갈만한 곳도 없고....

봉화산에서 팔랑재까지 하면 되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