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형 선생이 인사동의 한 고서점에서 헐어빠진 ‘산경표’라는 사료(史料)를 발견한 지도 어느덧 37년이 지났습니다.
그 동안 이우형 선생, 박용수 선생에 의하여 많은 조사가 이루어졌고 이후 조석필 선생의 ‘태백산맥은 없다’가 발간됨으로써 세인들의 우리나라 산줄기에 대한 관심이 조금은 증폭되는 듯 했습니다.
그러고는 존경하는 박성태 선생과 자하紫霞 신경수 선생에 의해 정맥의 하위 개념으로서 기맥岐脈, 지맥枝脈 등의 산줄기 정리 작업이 진행되더니 마침내 2004년 박성태 선생의 '신산경표'라는 책자의 발간으로 우리나라 산줄기 연구는 대간, 정간, 정맥에 이어 기맥, 지맥으로까지 그 범위를 확장하게 됩니다.
비슷한 시기에 국토연구원의 '새산맥도'가 한동안 메스컴을 달구기는 했으나 지리학회의 거센 저항에 부딪쳐 잠시 멈칫거리고 있는 상황이고.....
보현지맥이라....
오늘 산행은 신산경표 상 보현지맥이라는 곳이었으니 이하 보현지맥이라고 불리는 낙동정맥의 지맥支脈을 예제로 부근 산줄기를 정리해보겠습니다.
먼저 이하의 내용이 박성태 선생의 '신산경표'나 자하 선생의 '수체계이론'과 조금 다른 부분이 있다고 하여 그분들의 치적을 폄하하거나 폄훼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밝혀둡니다.
오히려 척박한 '산줄기계의 현실' 하에서 선각자 혹은 선구자인 그분들로부터 '산줄기'를 배운 제가 그분들의 정신과 학문적 업적을 계승 · 발전시키고자 함이라는 취지로 이해하여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하 책자로 발간된 박성태 선생의 '신산경표' 위주로 보현지맥 등을 풀어보겠습니다.
박성태님과 신경수님
이제는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듯 1903년 일본의 지질학자 고토 분지로에 의해 우리 산줄기 이름이 빼았꼈으니 벌써 11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반면 그 산줄기의 기본이 된 '산경표'가 우리 품안에 되돌아 온 시간은 이제 겨우 38년 밖에 되지 않았고.....
돌이켜보면 그 38년이라는 시간은 실로 누천년 동안 내려온 우리의 산줄기에 대한 인식이 115년 정도 밖에 되지 않은 산맥이라는 지질학적 개념과 mingle 즉 혼용 내지 혼재되어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아직도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산맥과 산줄기 간의 간극間隙을 좁히고자 나름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에서 많은 매수의 지면을 할애하여 얘기해 보았지만, 학문적인 내용이 있는 지라 독자들의 인식 변화를 유도하는 데에는 별반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그 동안 위에 거론한 민간학자들의 부단한 노력에 의하여 산경표에서 제시해 준 '대간 - 정간 - 정맥' 체계를 넘어서는 결과물들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위에서 얘기한 기맥이니 지맥, 단맥 심지어는 분맥, 여맥까지 설정되게 되었던 것이지요
대단한 작업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산줄기의 족보책이라 불리는 산경표는 두 가지 의미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하나는 18C초 여암 신경준이나 혹은 다른 어떤 학자에 의해 정리된 책이며 다른 하나는 산줄기의 흐름을 기록한 표表 자체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산경표가 거의 200년 넘는 시간이 흐르면서 최근에 이르러서야 우리 후손들에 의해 그 개념들이 확장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이론으로서만이 아닌 실생활에서도 이용할 수 있는 생물生物로서의 활용서가 되게 된 것입니다.
산줄기를 수계水系로 파악하는 대한산경표
산경표와 백두대간 그리고 산맥을 다듬은 분들이 이우형, 박용수, 현진상, 조석필이었다면 산줄기를 실생활에 응용, 활용할 수 있게 여건을 조성해 준 분들이 바로 박성태 선생이나 자하 신경수 선생으로 보면 맞을 거 같습니다.
그리고 최근 나름 물줄기 즉 수계水系 이론을 동원하여 새로운 체계를 완성한 분들이 있습니다.
대한산경표의 '산으로 빅흥섭'과 'J3 클럽의 배명만' 등이 그들인데 산줄기를 산경山經 즉 '산줄기의 길이'가 아닌 수경水經 혹은 수계水系 즉 '물줄기' 위주로 봐야 한다는 이론입니다.
자세한 것은 아래에서 보기로 하고 어쨌든 이들 이론들의 근본을 흐르는 기본적인 개념이 '산자분수령'임은 물론입니다.
산경표는 곧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다.
“골머리 아프네. 결국 산경표의 저자는 모른다는 얘기구만. 앞으로 할 얘기는 산경표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 있다는 거 그런 거잖아?” 머리에 쥐가 오른다.
“그렇지 아까 얘기했지? 산경표는 그 당시 조선 지리정보의 총아라고! 뭐 다 아는 내용이니까 그냥 지나가도 되지만 중요한 건 이것과 뒤에 나올 박성태 선생의 신산경표와 비교해 보는 일이야. 이런 건 지금 당장 산행을 하면서 써 먹을 수 있는 것들이니 골머리 아플 필요도 없어.”
“형, 그건 그렇고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 산자분수령하는데 그 산자분수령이란 말이 ‘산은 스스로 분수령이 된다. 혹은 스스로 분수령이다.’ 그 말 맞아? 다른 얘기도 있던데.”
장감독의 정곡을 찌르는 질문이고 언젠가 해줘야 할 말이었기 때문에 주저할 필요는 없다.
“그래. 맞아. 이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라는 문구는 대동여지도 발문에 나오는 말이야. 그리고 처음에는 나도 그걸 그렇게 이해했었지.”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산경표는 당연히 조선광문회본 산경표이다. 그리고 우리는 산경표의 대원칙은 ‘산자분수령’이라고 알고 있다. 그 산자분수령이라는 말은 어디서 나왔을까? 짐작컨대 대동여지도다. 대동여지도의 발문에 보면 바로 그 구절이 나온다.
한 번 읽어 보자.
東史曰 朝鮮音潮仙 因仙水爲名 又云鮮明也 地在東表日先明 故曰朝鮮
‘동사’에 이르기를 조선(潮仙)이라 소리나는 ‘朝鮮’은 선수(仙水)로 말미암아 이름을 삼음이요 또한 이르기를 선명(鮮明)한 것이라, 땅이 동쪽에 있어 해가 뜰 때 먼저 밝아오므로 조선이라 한다 하였다.
山經云 崑崙一枝 行大漠之南東 爲醫巫閭山 自此大斷 爲遼東之野
‘산해경’에 이르기를 곤륜의 한 갈래가 대막(넓은 사막)의 남동으로 가 의무려산이 되고 이로부터 크게 끊어져 요동 벌판이 되었다.
漉野起爲白頭山 爲朝鮮山脈之祖 山有三層 高二百里 橫亘千里 其巓有潭 名謂達門 周八百里 南流爲鴨綠 東分爲豆滿
마른 벌이 일어나 백두산이 되니 조선산맥의 시조다. 산은 셋으로 층졌는데 높이는 200리, 가로는 1000리에 걸쳐 있으며, 그 산꼭대기에는 못이 있어 이름은 달문이라 하고 둘레는 800리이며, 남으로 흘러 압록이 되고 동으로 나뉘어 두만이 된다.
山自分水嶺 南北逶迤 爲燕脂峰小白山雪寒等嶺 鐵嶺一枝 東南走起 爲道峰三角 而漢水經其中
산은 분수령으로부터 남북으로 구불구불 이어져 연지봉 소백산 설한 등의 재가 되고, 철령의 한 갈래가 동과 남으로 달려 일어나 도봉과 삼각이 되니 한수가 그 가운데를 지난다.
위에서 보다시피 山自分水嶺은 ‘산은 분수령으로부터’라는 뜻으로 읽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산자분수령 즉 “산은 물을 넘지 못하고 물은 산을 건너지 못한다.”는 대원칙이 무너지게 된다.
어떻게 해야 될까?
사실 지리학자들은 산자분수령은 진리가 아니고 언제나 변할 수 있는 자연현상이라고 했다. 즉 그들은 그 예로 선행하천(先行河川)을 든다. 이것은 융기축이 형성되기 이전부터 형성되어 있던 하천을 말하는 것으로 우리는 조금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간단한데 생각하는 관점만 다르다. 조금 더 있으면 자세하게 다룰 것이다. 일단 맛만 보고 넘어가자면 지형학적으로 산맥이란 습곡, 요곡 혹은 경동지괴 운동 등 융기 축이 형성되어 계속 융기함으로서 산맥이 형성된다. 이걸 뭐 1차 산맥이라고도 하나본데 이것도 융기산맥과 단층산맥 두 가지로 나눈다고 한다.
그 다음이 2차 산맥으로 이는 암석의 경연(硬軟) 즉 단단하거나 무른 것들이 대상배열(帶狀配列) 즉 좁고 길게 띠 같이 되어 있을 때 무른 지대는 침식되어 낮아졌으나 단단한 부분은 침식에 강하여 상대적으로 높은 산지로 남아 있어 산맥을 형성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때 융기 축 혹은 대상배열을 가로 질러 흐르는 선행하천이 있으면 이 하천은 산맥을 절단하고 흐른다는 것이다.
우리가 산자분수령을 이야기할 때 입에 침이 튀면서까지 떠들던 얘기가 뭔가? 바로 차령산맥이 한강을 건너고 광주산맥이 한강을 어떻게 지날 수 있냐고 떠들었잖은가? 그런데 ‘산맥파’는 즉 지리학계에서는 팔짱을 낀 채 “니들이 뭘 알아!”했던 부분이 바로 이런 부분이었던 것이다.
필자가 주목하는 게 바로 이 2차산맥이다. 이 2차산맥으로 형성된 게 바로 우리나라의 산줄기라고 이해한다는 것이다. 1차산맥이 그 삭박과정을 거쳐 2차산맥이 형성이 되었고 지금도 삭박작용이 일어나고 있는 게 바로 지금의 우리나라 산줄기 아니냐는 것이다. 그걸 가지고 따지자는 얘기다. 그게 현재의 백두대간이고 정맥이며 기맥이며, 지맥이니까....
일반적으로 습곡이나 경동지괴 운동의 융기량은 1년에 mm 단위로 융기한다고 한다. 태백산맥 축도 년 0.1mm도 채 안 되는 융기량이라 한다. 글쎄 이 얘기도 웃기는 얘기다. 학자들이 얘기하는 태백산맥의 경우 신생대 3기에 동해 해저지각이 확장되면서 융기가 일어나 태백산맥이 형성되었다는 것인데 그 당시 태백산맥의 높이가 자못 궁금하다.
신생대 초기 한반도는 준평원 상태였는데 신생대 중신세부터 일어난 그 융기가 지금도 매해 0.1mm씩 융기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5,000만 년 전 정도가 되니 50,000,000 × 0.1mm = 5,000,000mm 그러니까 5,000m 정도가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물론 여기는 처음 융기된 높이는 제외하고 그렇다. 물론 그 긴 세월동안 삭박에 의한 것도 넣어야 하지만.
사실 필자도 노인봉 산장지기 성량수님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교사직을 버리고 노인봉으로 들어와서는 태백산맥 동계 단독종주, 국토해변일주 등 남다른 행각을 벌이던 그가 차령산맥 종주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단독으로 산맥 종주에 나선 적이 있었다. 노인봉을 출발 두로봉 ~ 비로봉 ~ 호령봉을 지나 계방산 ~ 용문산 그리고 청계산656m을 지나 양평 두물머리에 도착했는데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그래서 다시 되돌아왔어.”라는 일화는 이미 전설이 되어 버렸다.
사실 그때는 산경표를 몰랐었으니까 그런 말이 가능했다. 산맥은 ‘산산산’이었지 분수계니 산자분수령이니 뭐니 하는 말을 몰랐었을 때니까. 산경표의 정당성을 이야기 할 때 단골 메뉴처럼 떠들던 얘기였다.
어쨌든 그 차령산맥이 몇 천만년을 지나면서 원래 준평원이던 한반도에 남한강이 흐르고 있었는데 태백산맥이 융기하면서 차령산맥 북쪽과 남쪽의 대보화강암은 쉽게 침식되어 낮아지고 변성암으로 구성된 부분은 높은 산지를 형성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선행하천인 남한강이 비록 절단하고 있어도 차령산맥은 차별침식에 의해 만들어진 연속된 산맥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럴 때 일수록 우린 화가 난다. “학교 다닐 때 지구과학 공부 좀 많이 해둘 걸.”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게 지구과학 과목이 아니고 한국지리 과목이라는 게 더 화가 난다. 교육이란 게 이렇게 실생활에 도움이 되지 못하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어쨌든 학자들은 산자분수령에 대해서 콧방귀를 뀔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분노하고 싶은가? 그럴 필요는 전혀 없다. 뒤에 자세히 얘기하겠지만 우선 필자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산자분수령.
절대적인 개념이라고. 지금도 눈으로 보고 있지 않은가! 산줄기에서 다른 하나의 산줄기를 가지 칠 때 분명 그 사이에서는 골이 형성되고 그 골에는 물이 생겨 그 물은 내려오면서 천이 되고 그 천들이 모여 강이 되어 바다로 가지 않는가?
그리고 그 천이 합칠 때 반드시 하나의 크던 작던 산줄기 하나가 그 합수점으로 잠기는 것을 보지 못했던가? 즉 그 산줄기는 천이나 강을 건너지 못하고 물을 만나면서 그 맥을 다 한다는 말이다. 그것도 두 물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적어도 5,000만 년 정도는 진리였다. 움직이지 않는 진리.
“태양은 동쪽에서 뜬다.”라는 문장도 진리다. 하지만 앞으로 1억 년 뒤에는 어떻게 변할지 누가 알겠는가?
山自分水嶺은 “분수령으로부터 오는 산은....”이라고 해석하여야 한다며?
맞다! 그러나 그것은 일반 문장 속에 들어 있는 걸 해석할 때 그렇고 우리가 얘기하는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은 관용구(慣用句)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산자분수령을 두 가지로 읽었다고 보면 된다.
관용구가 무엇인가? 사전에서는 “관용적으로 둘 이상의 단어가 결합하여 특정한 뜻을 나타내는 언어 형태. 흔히 비문법적이거나 문법적이더라도 구성 요소의 결합만으로 전체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 등이 이에 해당한다.”
우리는 山自分水嶺을 얘기할 때 ‘분수령(分水嶺)’이라는 것을 고유명사로 인식하지 않고 보통명사로 이해하는 것이다.
필자만 그런가? 다들 그렇게 이해했던 거 아닌가?
또 다른 견해를 보자. 대동여지도 숭실대 본을 보면 ‘東分爲豆滿江 自分水嶺’이 되어 강자분수령이 된다. 위의 다른 대동여지도를 보면 분수령에서 물이 나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분수령이라는 지명이 물을 나누는 산줄기(고개)라는 의미로 붙여진 것이므로 이도 크게 다른 것은 아닐 것이다. 어차피 山自分水嶺은 이따 산맥을 이야기할 때 또 이야기해야 하니 여기서는 이쯤에서 그만 두자.
-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455쪽 이하
그러니 우리 선조들이 '산자분수령'이라는 개념을 상정하고 산줄기를 구분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 후대의 누군가가 여러 본本의 대동여지도 중 어느 한 본本의 발문에서 한 문구만 찾아내고는 "아! 이거구나!"하고 무릎을 쳤던 것이 지금은 관용구 처럼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게 되었던 것이죠.
그래서 저는 이 '산자분수령'이라는 개념에 동의를 하지는 않으나 다만 현재까지 이를 대체할 적당한 문구가 보이지 않고 나아가 이 '산자분수령'이 현재까지는 산경표를 지배하는 개념으로 굳어지고 있어 하는 수 없이(?) 동조할 뿐입니다.
산경표(山經表) 1.
고토는 이미 해동도리보 중의 산경표도 필사본(筆寫本)으로 익히 보았다. 과연 백두대간이니 정간이니 정맥이니 하는 산맥과 지맥(支脈)은 일본에서는 구경도 못하던 산지체계였다. 아니 일본은 물론 자신이 신줏단지로 떠받들고 있던 독일을 비롯한 서양지리학에서도 구경조차 못하던 개념이었다. 고토는 조선의 화려한 과거 문화를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실제로 인문지리학이 이 정도일 줄은 상상조차 못했었다.
신기했다. 신비감까지 느껴졌다. 백두대간이라는 산맥에서 산줄기뿐만 아니라 강줄기들도 다 흘러나오고 있었다. 조선의 모든 산줄기와 산의 원천은 백두산이었고 그 백두산의 혼은 백두대간이라는 산맥을 따라 조선의 온누리를 다 적시는 것이었다.
조선인들은 산과 강을 둘로 보지 않고 그것들을 하나로 보고 거기에 기대어 살고 있었다. 하나의 산줄기가 다른 산줄기로 가지를 칠 때 그 사이에서는 물이 흐르고 그 산줄기들은 그 물들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반드시 잠기게 됨도 그 산줄기들은 말해 주고 있었다.
이른바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다. ‘산자분수령’이 무엇인가? 실제 이 뜻은 ‘自’를 “스스로”가 아닌 “~으로 부터”라고 해석을 하여 “산은 분수령으로부터 온다.”로 해석하는 것이 올바른 독해법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 산자분수령이 산경표 안으로 들어오면 해석을 달리한다. 이른바 관용구로 쓴다는 말이다. 즉 하나는 문법에 맞춰 “산은 분수령으로부터 온다.”고 하여 분수령을 고유명사로 파악하는 것 이외에 ‘自’를 “스스로”라는 부사로 해석하여 “산은 스스로 분수령이 된다.”라는 보통 명사로 분수령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조선인들은 산줄기와 관련하여 후자를 산자분수령의 참뜻으로 새기고 있었다. 즉 산은 물을 넘지 못하고 물은 산을 건너지 못한다는 대자연의 진리. 그 말은 곧 두 산줄기 사이에는 반드시 물줄기가 나오게끔 되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은 곧 산줄기는 이 두 물줄기가 만나는 합수점에서 그 맥을 다한다는 말이 되고, 그것은 역으로 산줄기는 물줄기를 감싸는 울타리가 된다는 말과도 같다.
고토는 산경표를 제대로 이해했던 것이다.
지금도 우리는 산줄기 산행을 하다보면 삼면봉(三面峰)을 무던히도 많이 만난다. 세 개의 읍 · 면이 만나는 봉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는 고유명사가 아니다. 우리가 편의상 붙여 부르는 이름이다. 분수령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어디나 분수령은 널려 있다. 보통명사라는 얘기다.
우리가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을 얘기할 때 쓸데없이 지엽적인 문제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산자분수령은 산자분수령이다. 산은 스스로 분수령이 되므로 산은 물을 건너지 못하고 물줄기는 산줄기를 구획한다는 말이다.
산경표에는 백두대간과 정간, 정맥이 나온다. 산경표는 산줄기에 계급을 주었다는 얘기다. 그렇다. 간(幹)은 줄기이고 맥(脈)은 줄기에서 흘러나간 갈래다. 맥이라는 게 무엇인가? 혈관 즉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산맥이란 산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 즉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여러 산줄기들이 가지를 친다. 그 가지 줄기들은 강을 둘러싼 줄기와 그렇지 않은 줄기로 나누었다. 그러니까 강을 둘러싼 줄기를 주맥(主脈)으로 보고 그렇지 않은 줄기를 지맥(支脈)으로 보았다. 주맥은 정간과 정맥이었고 여타 줄기들은 다 지맥이었다. 곧 조선산맥을 중심으로 각 지맥이 작은 산맥으로 나뉘어져 간 것이었다.
고토는 이해했다. 조선인들은 물줄기를 따라 촌락을 형성하며 살았고 산줄기를 사이에 두고 양쪽 지방의 풍습과 언어도 달라짐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곧 조선인들은 이미 산과 강을 다 꿰차고 거기에 순응하며 사는 사람들이었다. 백두산을 숭배하며 백두산신이 천왕이고, 천왕이 국사대천, 천황이라 불리는 단군 아니던가!
두 가지만 없애면 가능할 것이었다. 단군과 백두산이었다. 단군은 역사를 조작하여 신화로 몰아버리면 될 것이다. 더군다나 그건 역사학자들 몫이니 자신과는 우선 무관하다. 그리고 백두산은 철저히 무시하면 될 것이다. 백두산의 의미 있는 봉우리에 일본 이름을 갖다 붙여놓으면 될 것인데 문제는 백두대간이었다. 조선인들의 의식 속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것이 ‘산은 한 줄기로 이어져 맥을 이루고 있다.’는 것인데 이걸 지워야 했다. 즉 산맥을 지워야 했다. 아니 지우는 것보다 그걸 토막 내어 잘라 없애고 그 토막에 조선인들이 쓰는 산맥이라는 이름을 갖다 붙이자. 그냥 갖다 붙이면 다시 이으면 그뿐이니 그걸 구조선의 다른 이름으로 만들어 발표하자. 그래야 조선인들은 당파 싸움 하듯 산맥이 옳으냐 산줄기가 옳으냐 서로 헐뜯고 싸우겠지. 나머지는 일본 정부에서 알아서 하겠고....
- 졸저 전게서 160쪽 이하
각설하고 산줄기 선각자들이 정맥의 하위 개념으로 '기맥 - 지맥' 등을 설정하여 나라 안에 있는 산줄기를 찾아 그것들을 지도에 긋고 이름까지 부여해주는 데 무려 100년이 넘는 세월이 걸린 것입니다.
이런 선구자들의 절실한 노력이 아니었더라면 지금도 산맥 타령이나 하고 있을 끔찍한 현실을 떠올리게 됩니다.
신산경표의 특장特長
산줄기를 하는 우리들에게 '신산경표' 만큼 훌륭한 책은 없을 겁니다.
그러니 산경표라는 지리서를 오늘날의 현실에 맞게 재해석 즉 산줄기 주행의 오류를 시정, 겹침줄기 문제점 해소 나아가 그 하위개념인 기맥과 지맥을 확립하고는 거기에 걸맞은 이름을 부여하여 세인들로 하여금 어느 정도 통일된 산줄기 이름을 부르게 할 수 있게끔 한 박성태 선생이나 신경수 선생의 작업은 실로 위대한 그것임에 틀림없습니다.
1. 산줄기 주행의 오류 시정
산경표는 원칙적으로 지형적 원리에 따라 선을 그으면서 10대강을 구획하는 산줄기를 큰산줄기로 삼았고 -異論 있음- 신산경표 역시 이 원칙을 따랐음은 물론입니다.
즉 정맥은 10대강을 구획하여야 하므로 원산경표가 당시의 유교적인 사고방식으로 인하여 정맥의 주행이 도읍지 혹은 도성을 지나는 형식으로 그어진 것들을 자연스럽게 그 하구로 주행하게끔 유도하였는 바, 이로써 한북정맥과 한남정맥은 한강 하구로 가게 되었고, 호서정맥과 금강정맥은 금강 하구로, 호남정맥은 섬진강 하구로 그리고 낙동정맥과 낙남정맥 등은 낙동강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이에 맞춰 그 이름에도 변화를 주어 금남정맥은 금강하구로 주행을 하므로 원산경표와 구분하기 위하여 금강정맥으로, 금북정맥의 경우에는 호서정맥 등으로 그 이름도 현실에 맞게 변화를 줬습니다.
2. 겹침줄기 문제의 해소
일단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신산경표의 특징을 보겠습니다. 사실 신산경표의 최대 특장(特長)이라고 한다면 기술한 바와 같이 모든 정맥들의 끝을 10대강의 하구로 진행케 했으며 한남금북정맥이나 무명으로 있던 겹침줄기들의 문제도 해소하면서 그에 따라 명칭도 확정한 것에 있다 할 것입니다.
여기서 '정맥의 끝을 하구로 가게했다.'는 것이 중요한 point입니다.
뒤에 보는 바와 같이 여기서 합수점合水點 개념이 도출되기 때문입니다.
즉 백두대간에서 가지를 친 청북정맥과 청남정맥의 겹침줄기와 해서정맥과 임진북예성남정맥의 겹침줄기 그리고 남쪽의 한남금북정맥과 금남호남정맥 등이 문제의 그것들입니다.
우선 위 지도를 보면 10대강인 청천강이 백두대간에서 바로 발원하는 물줄기가 아니고 백두대간 상의 소마대령 분기점에서 서쪽으로 약 56.7km 진행한 곳에 위치한 웅어수산(2019m)에서 가지를 친 청북청맥과 청남정맥의 분기점에서 발원하는 강이고, 예성강 역시 바로 백두대간에서 발원하는 강이 아닌 백두대간이 남진하여 약643.1km 지점에서 만나는 두류산(1323m)에서 서진하는 줄기가 87.1km지점에 이르러 양지봉 분기점을 만나서 두 갈레로 갈라지게 되는 이 골짜기에서 발원하는 강이 됩니다.
이렇게 될 경우 청천강이나 예성강은 백두대간에서 발원하는 10대강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하여 산경표에서는 이를 한남금북정맥이나 금남호남정맥 같이 독립된 정맥 이름을 부여함이 없이 그냥 무명(無名) 즉 이름이 없는 줄기로 남겨두었다고 선생은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런 불합리한 점을 선생은 청천강 쪽은 더 긴쪽인 청북정맥 쪽으로 붙여 그 끝은 압록강 하구로 가게 하면서 그 이름은 청북정맥과 구분하기 위하여 그 지역의 이름을 따서 관서정맥으로, 짧은 쪽인 청남정맥은 대동강 하구로 향하게 하고 그 이름은 청천정맥으로 변화를 꾀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두류산에서 갈라지는 줄기는 더 긴 쪽인 해서정맥에 그 겹침줄기 두류산~양지봉 분기점을 포함시키고 그 줄기의 끝을 기존의 장산곶에서 대동강 하구로 향하게 하면서 다만 그 이름만은 해서정맥으로 그대로 두었고, 양지봉 분기점에서 남진하는 임진북예성남 정맥은 그 이름만 예성정맥으로 단순화 하는 변화를 주었던 것입니다.
이런 작업은 남쪽의 한남금북정맥이나 금남호남정맥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선생은 같은 절차를 거쳐 한남금북정맥은 금북정맥에 포함시키되 그 정맥의 끝을 금강으로 가게 하고는 그 이름을 호서정맥으로, 금남호남정맥의 경우에는 더 긴쪽인 호남정맥에 편입시키고, 금남정맥은 그 끝을 역시 금강 하구로 주행을 변경시키면서 이름도 금강정맥으로 바꾸어 남한의 1대간 9정맥을 1대간 7정맥으로 변경 시키는 작업이 완성되었고 이것이 실제 신산경표의 핵심이라고 부를만도 합니다.
그리고 더욱 더 중요한 것은 이 원리들이 고스란히 기맥이나 지맥에도 적용이 된다는 것입니다.
3. 기맥, 지맥의 정립
기맥이라는 용어는 실제 조석필 선생이 '태백산맥은 없다'에서 제안한 개념이었고, 박성태 선생은 이를 적극 수용하여 신산경표에서 12기맥을 그 이름과 함께 제시하였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선생은 남한의 산줄기를 1대간 12정맥 12기맥 153지맥(최근에 162지맥으로 수정)으로 산줄기를 그을 수 있었으며 그만큼 산줄기의 범위도 확장할 수 있었음은 물론입니다.
여기서 기맥이나 지맥도 강의 세력에 따라 구분이 되었으며 겹침줄기가 있는 경우에는 그 줄기의 끝이 반도를 향하고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상위등급의 강을 따르는 줄기를 본줄기로 하였고 동일등급에서는 긴산줄기를 본줄기로 하였음을 밝히고 있습니다(신산경표 32쪽).
그러나 무엇보다도 신산경표의 치적은 통일이나 민간 차원 혹은 남북한 정부 차원에서의 교류 및 통일된 산줄기 논의에 대비하기 위하여 북한 쪽의 산줄기도 같은 방식으로 모두 정비하였다는 점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
이는 사실 우리나라 지리학자들이 그 누구도 이해하기 어려운 지질학 용어나 거들먹거리고 있을 때 실제 우리나라 지형을 연구하여 선을 긋고 이름까지 지어 세상에 내놓았다는 것은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다음의 역작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진단해 봅니다.
그런데 이렇게 훌륭한 신산경표에 대하여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의견들을 가지신 분들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혹시 선생께서 우려하신 주줄기 문제, 산줄기의 주행 문제 그리고 이름 문제 등은 다 타당하여 맹목적으로 그대로 수용하여야 하는가?
조석필 선생이 "산경표가 지리 인식의 원리를 충분히 제시해 주었고 우리는 그것만이라도 배워왔으면 족하다."고 한 것과 같이 선생이 신산경표에서 제시한 내용들을 토대로 우리 산줄기의 내용을 조금 더 발전시킬 여지는 없는가 하는.....
제가 여기서 그런 분들의 의견을 소개하는 것도 사실 선생의 큰 업적에 조금이라도 누를 끼치는 일이 되는 것은 아닌가 심히 걱정이 되긴 합니다.
그러나 이런 작업은 모두 선생의 신산경표를 토대로 연구하는 작업의 일환이어서 다른 의견을 가진 분들의 다른 생각으로 신산경표의 다른 면을 소개한다고 하는 것이 선생의 업적에 조금이라도 손상이 되는 행위는 아닐 것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오히려 이는 선생의 빛나는 업적을 절차탁마 하는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고도 보여집니다.
다시 말해서 그 어떤 미명 하에 신산경표의 내용들을 발전적으로 바꾸고 혁신시킨다고 하더라도 선생께서 만드신 표의 형태나 줄기, 거리 등은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서 혹시나 후에 신산경표의 내용을 개선시키는 이들도 선생의 이러한 작업의 결과물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금과옥조로 안고 가야만 할 것입니다.
문제의 제기
이하 글들은 글의 편의상 여러 의견들을 종합하여 객관적인 입장에서 서술하는 형식을 취하였습니다.
다른 의견을 가지신 분들은 또 다른 의견을 제시해주면 그 역시 신산경표를 더욱 발전시칼 수 있는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신산경표가 제시하고 있는 정맥의 끝은 10대강의 하구와 바다가 만나는 곳이고, 겹침줄기는 주줄기를 따라 가는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었으니 과학적으로도 합당한 것이고 이는 정맥 이하 기맥이나 지맥에도 공히 적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즉 산은 곧 분수령이라는 대원칙은 나아가 산줄기는 그것을 에워싸고 있는 두 물줄기가 만나는 곳 즉 합수점(두물머리)에서 그 맥을 다 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정리하여야 할 몇 가지 문제점
1. 본류(本流)와 지류(支流) 개념 문제
어느 물줄기가 본류이고 지류냐 하는 것은 상대적인 것으로 하천법에서 이야기 하는 국가하천이나 지방하천과도 구분되는 개념인 것입니다.
그러니 더더욱 유역流域의 문제는 거론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즉 큰 대간이나 정맥과 가령 ‘가’지맥 사이의 골짜기에서 발원하여 나오는 물줄기(10대강-사실 이 10대강도 본류, 지류의 개념으로 본다면 큰 의미가 없는 분류의 한 행태이긴 합니다. 하지만 이것도 어느 정도는 관용적으로 굳어져 있는 문제이므로 그냥 사용키로 합니다.)는 본류로 보고 ‘가’지맥과 다른 ‘나’지맥 사이에서 발원하는 물줄기는 지류로 봅니다,
본류 〉지류 이므로 당연히 '가'지맥 〉'나'지맥 관계가 성립하게 됩니다.
2. 본줄기와 가지줄기의 문제
이는 겹침줄기가 있는 경우 어느 줄기를 본줄기로 보느냐의 문제입니다.
즉 이는 겹침줄기가 그 본줄기의 연장이 되는 것이어서 신산경표에서는 어느 줄기가 기맥이 되느냐 혹은 지맥급에 포함되느냐 여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잣대로 활용됩니다.
이는 위 제1항의 본류, 지류문제와 동일선 상에 있는 같은 가지 줄기에 공통되는 겹침줄기가 있는 경우 이 겹침줄기는 본줄기에 편입되게 됩니다.
한 지맥에서 다른 지맥을 분기시키는 경우 신경수 선생은 그것은 분맥으로 정리하자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한산경표의 경우는 기맥을 예정하지 않으므로 그저 본줄기와 가지줄기 문제로 귀결됩니다.
3. 기맥이나 지맥의 명칭 문제
박성태 선생은 “해당 산줄기에 포함된 유명산이나 가장 높은산의 이름”을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했고 “다만 반도 등 육지의 끝이나 특정한 곳으로 가는 경우에는 그 이름을, 부득이 한 경우에는 고개나 강 이름을 사용”하자고 하였고 필자도 이에 전적으로 동의하였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입장을 바꾸었습니다.
'수계 이론'을 주창한 '산으로 박흥섭'과 배병만의 의 취지에 동조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물줄기 즉 수계를 위주로 산줄기를 파악하고자 합니다.
이것이 기본적으로 대한산경표 입장이기도 합니다.
이하 해당되는 곳에서 다시 거론하기로 합니다.
4. 바다나 호수로 향하는 ‘나홀로 본류’
이는 물줄기가 ‘3’항의 '3면이 바다를 만나는 육지의 끝 이른바 '반도半島'로 가는 경우 혹은 육지에서는 호수나 강으로 바로 흘러들어가는 물줄기를 일컫는 말입니다.
따라서 이 물줄기와 관련된 산줄기는 기술한 하천의 두물머리와는 관계없이 작은 하구 혹은 바다가 만나는 합수점을 찾아야 하는데 서해안의 경우 간척지가 많아 실질적인 산줄기를 찾기가 그다지 쉬워 보이지 않습니다.
신산경표의 경우는 산경 위주로 그었으니 별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대한산경표'에서 보는 지맥
정간이나 정맥 등에 관한 입장은 후에 기회가 될 때 정리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기맥과 지맥에 대한 입장만 봅니다.
기맥(岐脈) 보충
여기서 팁 하나. 기맥이라는 개념은 산경표에는 없는 개념이다. ‘태백산맥은 없다’의 저자인 조석필 선생이 산경표를 더욱 유용하게 쓰기 위하여 ‘일정한 세력은 있으나 산경표에서 이름을 얻지 못한 몇몇 산줄기’를 기맥으로 부르자고 했다. 남한의 산줄기 중에서는 가령 남한강과 북한강을 가르는 한강기맥. 영산강의 서쪽 벽인 영산서기맥 등이 그것이다. 대한산경표에서는 이외에 몇 개의 줄기를 더 제시했는데 이것도 다음 기회로 미루자.
- 졸저 전게서 132쪽
박성태 선생은 대간, 정맥에서 분기한 산줄기로 100km 이상 이면서,
① 유역면적 3,300km 이상의 강(지류 포함)을 구획하는 산줄기(영산기 맥, 한강기맥, 진양기맥 등)
② 산경표의 정맥이 주행이 바뀌면서 가지산줄기가 된 산줄기(금북기맥, 금남기맥)
③ 육지의 최북단과 최남단으로 가는 산줄기(땅끝기맥 등)
등을 기맥의 조건으로 들었습니다.
이에 반해 자하 신경수 선생은 100km 이상의 산줄기를 기맥으로 하면서 한강기맥의 경우는 세력과 위상을 고려하여 '한강정맥'으로 부르자고 까지 하였습니다.
지맥枝脈은 "대간, 정맥, 지맥에서 가지를 치는 줄기 중 도상거리 30km 급 이상의 산줄기
여기에 대해 박흥섭이나 배병만의 경우,
① 기맥을 사용한 역사가 아직은 짧아서 일반화되지 않았다는 점,
② 기맥이라는 개념이 설정하는 이들에 따라 서로 그 기준이 달라 혼란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
등을 들며 기맥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지 않고 지맥으로 일원화하였습니다.
여러모로 수긍할 점이 있습니다.
특히 ①굳이 기맥이라는 개념을 포함시킨다고 해서 산줄기 체계가 특별하게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②사람들이 사용하는데 더 편리해 지는 것도 아닐 것이며,
③오히려 기맥과 지맥을 혼용함으로써 산줄기를 선용하는 데 있어 용어의 혼란이 있을 수 있고,
④나아가 기맥과 지맥의 구분은 공론화를 거치지 않은 즉 이 개념을 만든 이들이 자의적恣意的으로 정했다는 점 때문에 저도 과감하게 기맥 개념을 포기하였던 것입니다.
대한산경표의 취지에 동의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지맥을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지맥의 '거리 기준'은 박성태 선생이나 신경수 선생, 고래 김영환 선생 등 모든 민간학자들이 궤軌를 같이 하므로 이를 따릅니다.
그럴 경우 지맥枝脈은 "대간, 정맥, 지맥에서 가지를 치는 줄기 중 도상거리 30km 급 이상의 산줄기"라고 정의가 가능합니다.
문제는 "이 지맥의 끝이 30km급의 산줄기들 중 어디로 가는 그것들을 추출하느냐?"에 있습니다.
위에서 잠깐 언급하였듯이 박성태 선생이나 신경수 선생은 산경山經 즉 '산줄기의 길이'로 기준을 삼은 지맥이나 기맥이 많기 때문에 의외로 그 판단기준이 단순합니다.
하지만 이는 '산자분수령' 즉 두 물줄기의 합수점으로 가는 것과는 원칙에서 벗어난 게 많아 논리적이지 못하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에서 인용한 바와 같이 산줄기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물줄기를 알아야 할 것이고 이것이 곧 산경표의 정신이므로 이에 의할 경우 지맥의 분류 기준은 다음과 같은 3가지 유형으로 대별됩니다.
대한산경표로 본 지맥枝脈의 3가지 유형
30km이상의 산줄기를 지맥이라고 하였는데 무턱대고 아무 줄기나 지맥이라고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 분류기준은 무엇일까요?
즉 "지맥은 대간, 정맥, 지맥에서 가지를 치는 줄기 중 도상거리 30km 급 이상의 산줄기" 중,
첫째, 두 물줄기가 만나는 합수점에서 잠기는 산줄기이어야 하는 바, 이 합수점은 본류와 지류가 만나는 합수점이어야 합니다.
이를 '합수점형'이라고 부릅니다.
산자분수령을 기본 개념으로 한다고 하였으니 이 유형이 가장 기본적인 유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참고도 #1
가령 이를 신산경표의 개념도에서 본다면 위 참고도 #1의 화악지맥과 명지지맥이 이에 해당합니다.
즉 한북정맥을 싸고 있는 한강이라는 본류本流 물줄기와 가평천이라는 지류支流 물줄기가 만나는 합수점에서 잠기는 산줄기로서 그 산줄기의 길이가 30km가 넘을 경우 지맥枝脈으로 분류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조종천이 한강과 만나는 합수점에서 소멸하는 산줄기가 있고, 그 산줄기의 도상거리가 30km가 넘을경우 이 역시 지맥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이들 지맥의 길이가 각 42.1km, 41.6km이니 지맥의 요건에 해당되니 지맥으로 보기로 합니다.
그리고 이름의 경우 아까 말씀드린 대로 물줄기의 이름을 차용하여 각 가평지맥과 조종지맥으로 부릅니다.
둘째, 다음 유형으로 산줄기를 싸고 있는 물줄기이긴 하지만 주主 지류가 합수점형이 아닌 산줄기ㄹ를 듭니다.
가령 한남금북정맥의 산줄기인 보청북지맥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조금 복잡한 내용이니 아예 제 블로그에서 관련 대목을 하나 가져오겠습니다.
어쨌든 이 산자분수령을 가지고 오늘 진행하는 지맥에 대입을 해보겠습니다.
이는 사실 신산경표와 대한산경표와의 차이점에 대한 설명일 수 있습니다.
그 차이점을 보기 위해서는 기존 개념인 신산경표를 보는 편이 빠른 이해에 도움이 됩니다.
아직까지도 지맥은 한자로 쓰면 支脈입니다.
가지 줄기라는 얘깁니다.
개념도는 신산경표에서 얻어왔습니다.
참고도 #1
위 개념도를 보면 백두대간에서 한남금북정맥이 흘러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백두대간에서 팔음지맥과 각호지맥도 가지를 쳐 흘러나가고....
한편 한남금북정맥에서는 금적지맥과 팔봉지맥이.....
중요한 물줄기는 금강의 지류인 미호천, 보청천 그리고 초강입니다.
그 지류들이 본류인 금강과 합수되는 모습을 각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산경표를 얘기할 때 그 근본은 산자분수령이라고 했습니다.
한 줄기에서 다른 줄기가 가지쳐 나갈 때 그 줄기들 사이에서는 반드시 물줄기 하나가 발원되는데, 그 가지 줄기는 반드시 그 발원된 물줄기와 그보다 상위 등급의 물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그 맥을 다하게 된다.
바로 산자분수령의 제2법칙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여기에 대입을 해보면 백두대간의 봉황산에서 한 줄기가 가지를 쳐 나갈 때 그 사이에서 나오는 물줄기가 있을 겁니다.
바로 보청천이죠.
그러면 당연히 이 봉황산에서 가지를 친 줄기는 보청천과 그보다 상위등급의 강 즉 금강과의 합수점으로 가면 됩니다.
줄기의 마지막 합수점 부근을 봅니다.
참고도 #2
보시다시피 위 참고도 #2를 보면 신산경표와 대한산경표와의 차이점은 명백해 집니다.
즉 신산경표는 산경山經에 충실하여 산줄기가 긴 쪽(보라색)으로 가는 반면 대한산경표는 산줄기의 길이와는 상관없이 산자분수령의 제2법칙에 충실하여 합수점으로 가는 것(붉은색)입니다.
그러니 지맥을 그으려면 모母줄기(이 경우 백두대간)에서 가지를 쳐 나오는 지맥을 그리는 것보다 합수점에서 잠기는 지맥의 끝에서 모母줄기 분기점을 쫓아 올라가는 편이 더 쉽습니다.
바로 수체계樹體系 이론입니다.
그러니 작명법도 이런 논리에 맞춰야 할 것입니다.
신산경표가 산경을 중시하여 그 줄기의 이름을 가장 높은 봉우리 즉 팔음산771.3m의 이름을 차용하여 팔음지맥이라고 지은 반면 대한산경표는 물줄기를 중시하여 그 물줄기의 이름인 보청천을 따서 보청지맥이라고 명명한 것입니다.
한자어 표기도 報靑枝脈이라고 하여 비로소 이때 이 용어는 고유명사가 됩니다.
그리고 1물줄기 1지맥의 원칙에 의하여 보청천의 역할은 여기서 끝났습니다.
제1유형의 '합수점형'이므로 여기까지는 간단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이웃집 친구들 문제입니다.
여기서는 신산경표의 금적지맥과 팔봉지맥의 문제입니다.
참고도 #3
아까도 얘기했지만 이 부근의 큰 물줄기는 10대강에 해당되는 금강과 그러고는 그 지류인 보청천과 미호천입니다.
보청천은 조금 점 자세히 살펴봤으므로 더 볼 것이 없고 다음 물줄기는 미호천입니다.
미호천과 금강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맥을 다하는 산줄기는?
그렇죠.
신산경표에서 팔봉지맥이라고 얘기하는 지맥枝脈이죠.
물줄기를 중시하는 대한산경표에서는?
그렇습니다.
미호지맥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는 다행히 신산경표의 팔봉지맥과 대한산경표의 미호지맥이 이름만 다르지 주행방향은 일치합니다.
이유는 팔봉지맥이 합수점으로 갔기 때문입니다.
대한산경표에서는 산자분수령의 기본원리인 이 합수점으로 가는 형태를 제1유형 '합수점'형으로 이름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서 미호천과 미호지맥의 역할은 이걸로 끝납니다.
문제는 한남금북정맥의 461.1봉에서 분기하여 구룡산548.7m, 금적산651.6m를 거쳐 금강과 보청천이 만나는 합수점 북단으로 잠기는 이른바 신산경표의 '금적지맥' 처리 문제입니다.
신산경표는 굳이 산자분수령과는 무관하게 산경만 따라가니 이 줄기를 처리하는데 별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이 줄기에 산경표의 대원칙인 산자분수령의 원리를 엄격하게 적용한다면 이 금적지맥은 조각조각 분해되어 즉 무수히 많은 여맥 정도만 생길 뿐 그 산줄기의 실체를 찾을 수 없게 됩니다.
이때 우리 선조들의 유지를 떠올립니다.
즉 우리가 이 지맥을 만든 이유는 선조들이 이 산줄기를 우리 생활에 선용善用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하라는 당부 말씀 때문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대한산경표에서는 이를 '울타리'문제로 처리하기로 합니다.
참고도 #4
어쨌든 이 유형을 좀 더 넓게 보면 이 줄기도 합수점으로 가는 줄기가 맞기는 맞습니다.
비록 물줄기가 이 줄기를 에워싸는 형태가 아니어서 '1물줄기 1지맥'의 원칙에 위배되기는 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조들의 당부 말씀을 받들어 이 줄기의 유형도 지맥에 편입하기로 합니다.
그래서 ② '하천(지류 포함)의 수계 산줄기'로 1유형이 아닌 산줄기'를 한 유형으로 넣습니다.
이를 물줄기의 한 쪽을 에워싸고 있는 줄기이므로 이를 '울타리' 형이라고 부르기로 합니다.
그리고 보청천의 북쪽으로 잠기는 물줄기이므로 '보청북지맥'이라고 이름합니다.
그럼 여기서 한 가지를 더 상정해 봅니다.
아까 보청지맥이 보청천으로 가는 줄기가 아닌 그 아래 물줄기인 초강으로 가는 줄기는 초강과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하여야 할까요?
즉 '초강 북줄기' 문제입니다.
참고도 #5
하지만 대한산경표, 신산경표 어느 이론에 의하더라도 이는 도상 거리 30km가 되지 않는 자투리 줄기에 불과해 고려할 가치가 없어집니다.
즉 이미 지맥에서 가지를 친 줄기이므로 이 줄기가 30km가 넘는다면 이 줄기를 독립된 지맥으로 보아 '초강북지맥'으로 이름을 붙여줄 수 있건만 육안으로 보더라도 2km가 넘지 않으므로 일반 여맥에 불과하다는 얘깁니다.
어떻게 정리가 좀 되는가요?
그런데 또 하나 문제거리가 있습니다.
바다로 향하는 산줄기나 내륙에서도 호수 등으로 돌출된 산줄기의 처리 문제입니다.
이들도 위 조건에 엄격하게 적용시키면 이런 유형의 줄기들은 토막토막 동강이 나 결국 산줄기로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상이 생기게 됩니다.
이걸 구제하고자 대한산경표에서는 지맥의 조건에 이 제3유형의 산줄기를 하나 더 구분합니다.
이른바 '산줄기형'입니다.
참고도 #6
이런 유형의 지맥이 바로 백두대간에서 분기한 신선지맥입니다.
물론 대표적인 산줄기로는 백두대간이겠죠.
그저 산경山經 즉 산줄기의 길이 때문에 지맥에 편입된 경우이므로 즉 물줄기와는 무관하므로 이 경우 산줄기 상의 유명산이나 강장 높은 산의 산이름을 그대로 붙이기로 합니다.
그러니 이 줄기의 경우 신선지맥이라는 이름이 그대로 타당합니다.
정리해 보겠습니다.
대저 지맥이라고 하려면 산자분수령의 취지에 맞는 합수점으로 가는 산줄기 중 대간, 정맥, 지맥에서 가지를 친 도상거리 30km 이상의 산줄기를 말합니다.
이것이 제1유형으로 '합수점'형이라고 합니다.
이게 원칙이고 기본입니다.
위에서 살펴 본 보청지맥과 미호지맥이 그 예입니다.
그리고 제2유형이 바로 보청북지맥으로 이를 '울타리'형이라고 합니다.
주 산줄기도 아니면서 주물줄기의 울타리 역할을 하고 있는 산줄기라는 취지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제3유형이 '산줄기'형으로 바다나 호수로 가는 산줄기 중 산줄기의 길이 때문에 지맥에 편입된 경우 등입니다.
이렇게 해서 대한산경표는 175지맥으로 정리를 합니다.
보현지맥과 팔공지맥의 문제
이제부터 본론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기맥이냐 지맥이냐?
이는 물론 신산경표나 자하 신경수 선생의 이론에 대한 질문입니다.
대한산경표의 경우 이미 기맥은 극복하였으니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다만 본줄기와 가지줄기 문제로 다루어 볼 이유가 있으므로 신산경표의 이론과 관련하여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보현지맥과 팔공지맥의 경우 이들의 주행거리가 100km가 넘으니 기맥으로 불러야 하지 않겠느냐며 팔공기맥이니 보현기맥이니 하며 부르는 이들도 있습니다.
또 신산경표라는 책자가 이런 논의에 통일을 기하기 위하여 그 방향을 명백하게 제시한 만큼 그 기준에 의하여 불러야 하고 혹자가 다른 의견을 제시할 때에는 분명한 근거를 제시하여 그 변경을 요구하는 책임감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도 보입니다.
따라서 선생이 제시하신 기맥의 개념은 무조건 100km가 넘는다고 하여 기맥은 아니니 우선은 지맥으로 가기로 합니다.
어느 줄기가 주줄기인가?
보현지맥이 주줄기냐 팔공지맥이 주줄기냐 하는 문제는 겹침줄기인 가사령 분기점~석심산(위 지도의 A줄기, 진보라색) 구간의 38.9km가 어느 줄기에 포함되느냐, 그 주행의 끝은 어디어야 하느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것입니다.
신산경표를 보면 낙동정맥의 가사령 분기점에서 분기하는 줄기가 38.9km(가사령 분기점~석심산, A줄기, 진보라색)에 위치한 석심산에서 다시 두 갈래로 갈라지며 ①한 줄기는 어봉산~화목재를 거쳐 비봉산을 지나 위천으로 잠기는 125.9km의 줄기(B줄기, 녹색)와 ②석심산에서 팔공산을 거쳐 응봉산~적라산~위천으로 잠기는 119.3km의 줄기(C줄기, 핑크색)에 대하여, 위 B줄기가 C줄기에 비해 산줄기의 길이가 길다는 이유로 B줄기를 본줄기로 잡아 겹침줄기(A줄기) 38.9km를 A줄기에 편입시켜 그 줄기의 도상거리를 164.8km로 확정시킨 다음 그 줄기의 이름은 공통된 줄기의 유명한 산이며 고도 또한 상당한 곳에 위치한 보현산의 이름을 빌려 보현지맥(A+B)이라 명명하였습니다.
이는 선생이 산줄기의 세력 즉 산경(山經)을 중시한 결과라고 봅니다.
그리고 다른 한 줄기인 C줄기는 산줄기의 길이가 짧다는 이유로 겹침줄기인 A줄기는 B줄기에 내주기는 하였으나 자신은 30km가 넘는 줄기이어서 자신의 줄기 상에 있는 유명산이며 고도 또한 최고봉인 팔공산의 이름을 따 팔공지맥(119.3km)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다른 의견은 어떨까요?
우선 위 기준의 1.본류와 지류 문제가 떠오릅니다.
기술한 바와 같이 이 큰 두 줄기 사이에는 겹침줄기(A줄기)가 존재하고 이들 지맥의 주맥은 명백하게 낙동정맥입니다.
금호강의 발원지
그리고 그 주맥인 낙동정맥에서 분기하는 골짜기에서는 금호강의 지천인 자호천이 발원을 하며 그 자호천은 금호강에 합류가 되고, 금호강은 10대강인 낙동강에서 합류하여 그 맥을 다하게 됨이 지도상으로 봐도 명백합니다.
그렇다면 위에서 정맥이 아닌 줄기는 반드시 10대강으로 합류하는 지류(支流)를 품고 있다고 하였으므로 여기서는 최대 지류인 금호강이 여기에 해당될 것이며 그 금호강이 10대강-본류本流-인 낙동강과 만나는 합수점 즉 그 두물머리가 이 낙동정맥이라는 주맥에서 갈라지는 지맥이 그 세력을 다하여 물에 잠기는 곳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북쪽으로 향하는 용전천에 대하여 의심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나 이는 10대강인 낙동강의 원천 격에 해당되므로 이는 논의의 실질적인 가치가 없습니다.
나아가 위천이라는 지류가 있기는 하지만 이는 정맥이 아닌 가지줄기 사이에서 발원하는 물줄기이고 나아가 급(級)이나 세력면에서도 금호강에 비할 바가 못 됩니다.
주맥은 팔공지맥 + 황학지맥 = 금호지맥(대한산경표)
다시 지도를 봅니다.
낙동정맥이라는 주맥의 가사봉 분기점에서 가지를 친 줄기 즉 지맥과의 사이에서 발원하는 물은 자호천이 되어 낙동강의 제1지류인 금호강과 합류하여 죽곡산196m 부근에서 낙동강과 만나게 됩니다.
금호강이 낙동당과 만나는 합수점.
그 합수점에서 맥을 다 하는 산줄기는 곧 이 두 큰물줄기가 에워싸고 있는 산줄기가 되며 이 산줄기가 곧 이 지맥의 본줄기가 되어야 합니다(산자분수령의 원칙).
산줄기의 흐름을 보면 이 줄기가 가사령 분기점~보현산~석심산(A줄기)~팔공산~가산(C줄기 중 일부분)~황학산~죽곡산(신산경표 상의 황학지맥, D줄기)에 이르는 줄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다시 말해서 낙동정맥의 가사봉 분기점에서 분기하는 지맥의 본줄기는 보현지맥이 아니라 위의 A+C (일부)+D가 되는 것이 맞습니다.
이럴 경우 그 줄기의 이름은 물줄기 지류인 금호강의 이름을 따서 금호지맥으로 명명하면 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의견은 산경山經보다는 수경水經, 수계수水系을 중시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이론이 대한산경표의 입장입니다.
금호지맥 개념도(대한산경표)
그리고 나머지 지맥은 이 원칙에 따르면 될 것인 바, 본줄기인 위 금호지맥에서 분기하는 지맥을 살펴보면,
금호지맥에서 가지를 친 지맥들
먼저 금호지맥의 북쪽으로 흐르는 물줄기를 따라 진행하는 산줄기를 살펴보면,
①구암산에서 북쪽으로 갈라지는 이 본줄기와 가지줄기 사이에서 길안천이라는 지류가 하나 생기게 되고,
②석심산에서 가지를 친 줄기에서는 낙동강의 제1지류인 위천을 내보냅니다.
③그러고는 가산 분기점에서 주행하는 줄기는 위천의 남쪽울타리가 되어 진행하게 됩니다.
위 물줄기들은 공히 자신보다 상위등급의 물줄기인 낙동강을 만나 흡수되고 그 합수점에서 자신의 울타리가 되던 산줄기들을 잠기게끔 합니다.
따라서 ⓵은 길안천이 낙동강에 흡수되므로 길안지맥, ⓶는 신산경표의 보현지맥이었던 줄기인데 그동안 이를 위천북지맥으로 부르자는 논의가 있었으나, 그냥 자신의 권리인 '위천'을 쓰면되므로 굳이 '북'을 넣을 필요가 없으므로 '주행거리 125.9km로 확정'을 하여 지맥 이름은 그냥 '위천지맥'으로 부르면 될 것입니다.
한편 위천지맥의 규모가 크다보니 여기서 가지를 치는 지맥 또한 여러 개가 생기게 되면서 물줄기 또한 다양해집니다.
먼저 예재를 지난 지점에서 쌍계천을 흘려 보내면서 ②-1 쌍계지맥을 하나 만들고, ②-2 이어서 구무산 부근에서 의성천을 그리고 ②-3 삼학재 부근에서는 미천을 내보내면서 각 의성지맥과 미천지맥을 분기하게 됩니다.
한편 옛 팔공지맥의 마디 줄기를 봅니다.
한천지맥과 신령지맥 등
금호지맥에서 가지를 친 옛 팔공지맥의 자투리는 가산 부근에서 북진을 하면서 그 사이에서 한천을 발원시킵니다.
③ -1 그러니 한천과 낙동강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맥을 다하는 산줄기는 한천지맥이 되겠고,
③ -2 한천지맥의 매봉 부근에서 가지를 쳐 나가는 줄기는 자잘한 물줄기와의 합수점으로 간다면 원칙적으로는 다 분해되어 여맥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줄기는 위천과 낙동강의 합수점으로 가게 되고 이럴 경우 이는 위천을 싸고 있는 울타리가 됩니다.
이것이 제2유형인 '울타리형' 요건에 충족을 하므로 이를 위천의 남쪽으로 흐르는 줄기라고 하여 '위천남지맥'으로 부르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금호지맥 남쪽을 봅니다.
가사령 분기점에서 28.1km를 진행한 지점에서는 남쪽으로 가지를 하나 더 치고 그 사이에서 신령천으로 흘러 들어가는 지류가있습니다.
⓸이 지류는 신령천이 되어 낙동강에 흡수가 되므로 낙동강과 만나는 합수점에서 잠기는 맥이 바로 신령지맥이 됩니다.
한편 팔공산의 가지 줄기는 동쪽으로는 신령천, 서쪽으로는 율하천을 내놓으나 모두 바로 금호강에 합류되는 물줄기들인 고로 지맥을 논할 것까지 없게 됩니다.
⓸-1 다만 신령천 방향으로 가는 줄기는 신령천 서쪽의 울타리 역할을 하고 그 길이가 도상거리 약33.7km 정도되는 줄기이므로 이 또한 제2유형인 '훌타리형'의 요건을 충족하게 됩니다.
고로 이 줄기를 신령서지맥(신산경표에서는 염불지맥)으로 부르기로 합니다.
이렇게 하여 신산경표에서부르던 보현지맥과 팔공지맥 그리고 그의 지맥들을 대한산경표의 입장에서 풀어봤습니다.
그러니 기존 신산경표에서 주지맥으로 봤던 팔공지맥은 흔적도 없이 토막이 나고 주지맥은 금호지맥이 그리고 부지맥은 위천지맥이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신산경표와 대한산경표의 차이는 어느 것을 중시하느냐에 따른 관점의 차이에 불과합니다.
모두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대한산경표의 내용이 절대적으로 타당하다고 하여 박성태 선생의 신산경표나 신경수 선생의 수체계 이론의 정신이나 그 위대함이 조금이라도 손상되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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