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 특보.
온 나라 안에 걸쳐 나타난 겨울 가뭄.
산에 가보면 낙엽에 불씨만 하나 날리더라도 바로 커다란 산불로 이어질 것 같습니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그런 빌미를 제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입산을 막는 게 현재로서는 최선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해진 스케쥴은 소화해야 하는 산꾼들의 마음은 혹시나 하는 불안감으로 죄스럽기만 하군요.
첫째도 불조심!
둘째도 불조심!
그게 최선입니다.
당연히 인화물질 소지는 금해야 할 것이고.....
오늘은 금호지맥 2구간에 드는 날.
주위에서 지난 주 금호지맥에 든다고 하였음에도 산행기가 올라오지 않는 걸 보고 "어머님 때문에 빠진 거냐?"는 질문이 날아옵니다.
당연히 참석은 했죠.
금호지맥이나 거기서 분기한 지맥을 혼자서 하기가 어디 쉽겠습니까!
무조건 참석해야죠.
다만 예전에 첫 구간을 '가사령 분기점 ~ 꼭두방재'로 하여 진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후 구간은 이런 저런 이유로 이어가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진행한 첫 구간에 대한 기억은 너무도 또렸해 산행기를 다시 쓸 필요가 없었고 또 그럴 시간도 없었기 때문에 생략했습니다.
그러니 새로운 구간인 꼭두방재 이후의 구간은 또 기록으로 남겨야겠죠.
새마포의 오늘 2구간은 옷재~ 꼭두방재~ 곰내재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저로서는 '옷재 ~ 꼭두방재' 구간은 중복된 구간이 되는군요.
과감하게 생략하고 B팀의 '꼭두방재 ~ 곰내재' 구간을 따라 진행하기로 합니다.
서울에서 이 금호지맥을 하러 가는 길은 멀기만 합니다.
도로에서 시간을 거의 다 보내야 하니.....
지도 #1
10:57
꼭두방재에 도착한 시간입니다.
합정동에서 06:30에, 죽전에서 07:10에 출발을 하였으니 구간 운행하는데 꼬작 4시간 반이 걸렸습니다.
도상 거리로는 약 312km.
대단한 거리입니다.
2015. 9. 6. 이곳에 들르고는 이번이 그 다음이니 벌써 근 2년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군요.
유수流水가 아니고 '쏜살'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그 당시는 초가을이었으니 지금보다는 많이 푸르름을 보여줬을 시기였겠지만 을씨년스런 분위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른 게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주차장을 활보하던 강아지들은 여름을 견디지 못하고 불귀지객不歸之客이 되었는지 보이지 않고.....
참고로 지난 구간때 대장님이나 총무님이 가사령 분기점에 설치한 산패가 보이지 않아 섭섭해 하시더군요.
산에 다니다 보면 쓸데없이 부착해 놓은 자기 과시용 이정표나 표지띠들을 많이볼 수 있습니다.
특히 임의로 작명한 산이름을 코팅지로 마구 붙여놓아 그 진정한 의미를 모르는 이들로 하여금 혼란스럽게 하는 경우도 왕왕 볼 수 있기도 하고....
경계하여야 할 행태입니다.
그러나 '새마포'에서 부착한 이 '고라산'이라는 산 이름은 엄연히 대동여지도에 나오는 이름입니다.
대동여지도에 나온다는 얘기는 군현지도에도 그렇게 나온다는 얘기입니다.
그 이야기는 곧 이 지역이 신라 기성현 시절이나 죽장현 시절에도 그렇게 불렀다는 얘기입니다.
다만 엄밀하게 따져보면야 지금의 지도 그리고 표기된 줄기의 진행에 있어 미묘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다시 한 번 '고라산'이라는 이름으로 주위를 환기시키기에 조금도 부족한 점이 없는 열정이자 노력입니다.
박수를 보냅니다.
다만 유감스러운 것은 이렇게 귀한 자료를 지금은 누군가가 훼손하여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11:00
자, 그럼 오늘 산행을 시작합니다.
휴게소 바로 길 건너에 너른 임도길이 보입니다.
그 임도길로 들어섭니다.
먼지가 폴폴 날리던 지난 주와는 달리 질퍽한 느낌이 옵니다.
봄이라서 얼었던 땅이 녹는 느낌이 아닌 진정한 푹신함입니다.
어제 충분치는 않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비가 온듯한 느낌이군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오르니 능선 상에 #85번 송전탑이 보입니다.
좌틀하고,
항상 여유로움을 가지고 산행을 즐기시는 백계창 선배님 뒤를 따라갑니다.
널널한 지맥길.
낙동정맥에서 가지를 친 지맥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입니다.
호남정맥이나 금남북정맥에서 가지를 친 지맥에서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 할 환경이죠.
가시나무와 덩굴 식물들의 방해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섬지맥으로 들어가면 아예 진행불가입니다.
그래서 사용하는 방법이 이들 지맥은 겨울철에 진행하는 것이죠.
11:10
지도 #1의 '가'의 곳에 있는 헬기장을 지나고,
12:36
부드러운 능선길을 따릅니다.
572.2봉으로 오르는 길은 제대로 길의 흔적이 보이질 않는군요.
좌측으로 사면치기를 했다는 겁니다.
11:37
오늘 꼭두방재가 해발 400m가 조금 넘는 곳이고 오늘 최고봉인 베틀봉이 934고지이니 표고차 530m를 극복하려면 초장부터 서서히 비알을 타야죠.
그 첫 오름이 시작됩니다.
상당히 치고 올라갑니다.
11:41
지도 #1의 '나'의 곳에 있는 541봉에 오릅니다.
무미건조한 오름 내림이 계속 됩니다.
조망도 없고 그렇다고 특이한 것도 없는 그저 그런 능선의 연속입니다.
좌측으로 당골소류지가 있는 봉계리가 보이는군요.
여기서 흘러내리는 저 지류가 봉계천이 되어 베틀봉과 면봉산 사이에서 내려오는 현내천에 흡수되어 흐른 다음 꼭두방재에서 내려오는 자호천에 합류하게 되는군요.
그러고는 영천저수지를 지나 영천에 이르러 금호강이 되어 낙동강을 만날 때 까지 금호강이라는 이름으로 흐르게 됩니다.
그래서 낙동정맥에서 갈라지는 이 지맥이 이 전체적인 지맥의 대장大將 줄기 즉 주지맥主枝脈이 된다는 얘깁니다.
산경표는 이걸 우리에게 보여줬고 우리는 조상들이 산과 강이 둘이 아니고 하나라고 가르쳐준 대로 따라서 걷고 있는 것입니다.
12:24
783.9봉으로 오릅니다.
이 봉으로 오르자면 좌측으로 표지띠가 여러 장 날리는것을 볼수 있습니다.
정상을 찍고 다시 내려오라는 얘기입니다.
포항시 산악구조대에서는 이곳이 785.6m라고 표기하여 놓으셨군요.
안타깝습니다.
저 수치는 어디서 가져온 것일까요?
저런 것도 혼란을 야기시키는 행태 중 하나라고 봅니다.
나라에는 국토지리정보원이라는 국토지리와 측량 그리고 지도제작 등의 업무를 관장하는 기관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발행하는 지도가 중심이 되어야겠지요.
아니면 하다못해 지맥꾼들이 애용하는 '영진지도'에 나오는 수치를 이용해도 이해를 해 줄 수 있으련만.....
공들인 노고가 물거품 아니 오히려 안 붙인 것만 못한 것 같아 아쉽기만 합니다.
유사시 119 등에 저 고도를 불러주었다가 구조라도 못 받는 날이면.....
다시 뒤로 되돌아 나가 안부를 지나,
지도 #2
12:34
지도 #2의 '다'의 곳으로 오릅니다.
이곳은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물론 영진지도에도 고도표시가 되어 있지 않은 봉우리입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저렇게 소수점 한 자리까지 정확하게 표기할 수 있는지.....
제 오룩스 고도 수치를 보니 그저 753.52m로 나와 있군요.
다시 한 번 걱정스러움이....
12:36
지도 #2의 '라'의 곳에 있는 폐헬기장을 지나,
12:42
거의 요철이 없는 평평한 등로를 따라 787.3봉을 지납니다.
진행방향 좌측으로 낙동정맥과 그 뒤로 영덕남(내연)지맥과,
형산북(비학)지맥의 보입니다.
이따 베틀봉에 오르면 잘 보이겠죠?
참고도 신산경표 상 비학지맥과 내연지맥
공부거리가 나왔습니다.
지맥을 하는 분들이라면 이런 산줄기에는 관심을 가져야겠죠.
신산경표의 박성태 선생님의 불후의 명저 신산경표를 들여다봅니다.
참고도 비학, 내연지맥 분기점
대한산경표의 금호지맥에 관해서는 지난 번 아주 자세하게 살펴봤으므로 신산경표의 비학지맥과 내연지맥을 보기로 합니다.
이들 두 지맥은 낙동정맥의 성법령 부근인 709.3봉에서 분기한 지맥들입니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709.3봉 ~ 808봉까지 중복되는 겹침줄기 0.7km가 존재합니다.
이 겸칠줄기의 소속과 그렇게 편제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우선 겹침 줄기를 제하고 각 지맥의 루트를 보면,
①내연지맥은 808봉 ~ 괘괘령 ~ 내연산 ~ 동대산 ~ 영덕오십천 합수점까지 42.8km,
②비학지맥은 808봉 ~ 비학산 ~ 연화재 ~ 천마산을 지나 동해안으로 들어가는 44.6km의 능선으로 각 진행합니다.
그러므로 두 지맥 중 능선의 길이가 긴 비학지맥이 주지맥이 되어 승자승원칙에 따라 0.7km를 흡수하여 총 45.3km로 확정짓게 됩니다.
대한산경표의 입장을 봅니다.
내연지맥의 경우에는 그 지맥의 끝이 영덕오십천과의 합수점으로 가고, 이 영덕오십천의 본줄기가 이 줄기이기 때문에 이름도 강이름을 그대로 가져와 영덕지맥으로 부릅니다.
그런데 비학지맥이 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비학지맥과 형산북지맥의 비교
즉 신산경표의 비학지맥은 산경을 중시하여 물줄기를 건너지 않으면서 줄기의 가장 긴 방향인 포항시 홍해읍 우목리의 우목항으로 진행합니다.
하지만 대한산경표의 경우는 물줄기를 중시하여 형산강과 동해가 만나는 합수점인 포항시 북구 송도동으로 진행을 하여야 합니다.
다만 이 형산강의 본줄기는 형산강 남쪽으로 잠기는 그러니까 신산경표의 호미지맥의 일부가 이에 해당하고 또 이것이 형산강의 본줄기이므로 형산지맥이라는 이름은 위 호미지맥의 일부인 위 줄기에 양보하고 이 줄기는 형산강 북쪽으로 잠기는 줄기이므로 형산북지맥으로 이름합니다.
한편 이 영덕지맥과 형산북지맥은 둘 다 각 영덕오십천과 형산강의 울타리 역할을 수행하므로 제2유형인 '울타리형'으로 유형은 같으나 본줄기와 부줄기라는 계급 차이로 인해 겹침줄기 0.7km는 영덕지맥이 차지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영덕지맥은 겹침 줄기를 포함하여 43.5km, 형산북지맥의 경우에는 겹침줄기를 제외하고 32.4km로 각 확정되게 됩니다.
위와같이 신산경표의 지맥은 물줄기와는 무관하게 산경 위주로 진행을 하였으나 대한산경표의 지맥은 산경의 길이에 관계없이 물줄기를 중시하여 반드시 강과 상위 등급의 강 혹은 강과 바다의 합수점으로 진행함을 알 수 있습니다.
12:56
통정대부 조장섭의 음택을 지나는데 바람이 또 세어지는군요.
중잉 뒷편에 꼭두방재에서 올라오자마자 만난 송전탑이 보이고.....
13:01
862.7봉에서,
3등급삼각점(기계301)을 만납니다.
베틀봉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니 벌써 오늘 산행이 다 마쳐가는 분위기입니다.
고도가 높아지니 어제 내린 눈의 잔설이 조금 남아 있군요.
13:16
베틀봉 전위봉에 오릅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바람 때문에 주위 조망이 불가능합니다.
잘못하다가는 그냥 날아갈 정도.....
그 바람의 영향으로 손가락 마디마디가 에이는 듯하고 그래서인지 촬영을 하는데 흔들리기까지 합니다.
중앙으로 현동면 소재지가 보입니다.
좌측으로는 다음 구간의 첫봉우리인 안봉산1074.2m에서 흘러내려 가는 줄기가 보이고....
그 줄기는 우리가 올라온 우측 능선 사이로 골을 하나 만들고 그 골에서는 늘안천이 발원합니다.
그 늘안천은 저 현동면 창양리를 지나 안덕면에서 보현천과 합류하여 길안천이 되어 낙동강으로 흡수되게 됩니다.
그러니 낙동강과 만나는 길안천이 하나의 가지줄기를 형성하게 됩니다.
13::16
그 우측으로 시선을 돌리면 중앙 좌측으로 현동면 소재지가 보이고 중앙에 이 금호지맥 옷재를 지난 604.9봉 부근에서 갈라져 진행한 자초산764.7m이 우뚝합니다.
그러니 저 이름도 아름다운 紫草峰 뒤로 흐르는 줄기가 바로 조금 전 얘기한 길안천이 낙동강에 합류되는 합수점에서 맥을 다하는 길안지맥이 됩니다.
신산경표에서는 지맥의 이름을 최고봉인 구암산808m의 이름을 따서 구암지맥으로 한다는 얘기는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2015. 12. 13. 진행하였던 길안지맥의 구암산 정상 정경입니다.
그 우측으로....
바람이 하도 드세어 폰이 흔들리고.....
중앙 뒤쪽으로 길안지맥이 그리고 그 뒤가 낙동정맥으로 멀리 주왕산의 왕거암이 있는 907.9봉은 명백한데 폰으로는 영.....
우측으로 783.9봉....
지맥은 그 우측으로 진행하겠고....
그러고는 뒤쪽 진행방향으로 우측 면봉산1120.6m 그리고 중앙 뒤쪽이 보현산1126.5m입니다.
시설물들이 봉우리의 모습을 훼손시키고는 있으나 랜드마크 역할은 충분히 해주고 있군요.
그리고 저 면봉산과 보현산 사이에서 발원하는 횡계천은 고현천이 되어 영천시내에서 금호강에 합류가 되고 바로 앞 곰내재에서 발원하는 물줄기는 현내천이 되어 자호천이 된 다음 그 자호천 자체가 금호강이 되어 저 고현천을 흡수하게 되는 구도입니다.
그러니 가사령에서 발원하는 가사천이 결국 금호강의 원류가 된다는 얘깁니다.
중앙 면봉산 그리고 바로 우측이 안봉산1074.2m.
면봉산과 안봉산.
뭔가 냄새가 납니다.
한자로 표기하면 眠峰山과 眼峰山이기 때문입니다.
즉 편안할 '면'과 눈'안'입니다.
생각건대 이 산은 그저 면봉산이었을 겁니다.
한자 표기로는 그저 眠峰山과이었을 거고.....
지도제작자가 그 둘을 구분하지 못하고 眠을 안으로 독음하면서 산봉우리가 두 개 생기게 됐다는 결론입니다.
그렇다면 굳이 저 안봉산을 왜 표기하다 그런 실수를 범했을까요?
지도 #3
원래 면봉산과 안봉산 중 중요한 역할을 하는 봉우리는 1074.2봉이었을 겁니다.
즉 1074.2봉이 포항시 죽장면과 청송군 현동면과 현서면 등 3면봉역할을 하는 중요한 봉우리였다는 것입니다.
이 1074.2봉에서 가지를 친 줄기가 1057.7봉 ~ 787.3봉 등 현동면과 현서면의 면계 역할을 하는 여맥餘脈이 되는데 이 여맥이 늘인천과 보현천을 가르는 역할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 봉우리에 대한 이름을 붙여야 할 필요성을 느낄 터, 그 옆의 고봉을 그냥 가져다 한글 '면봉산'으로 쓴다는 것이 독음을 잘못하여 '안봉산'이 됐고 훗날 이것을 다시 한자화하는 작업에서 안봉산이니 눈眼자를 사용하여 안봉산眼峰山이 되었을 겁니다.
참고도 1915년 일제가 제작한 조선지도
위 참고도를 보면 지금의 면봉산은 제대로 표기되어 있는 반면 1074.2봉은 무명봉으로 남아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그러던 것이 1970년대에는,
똑같이 면봉산眠峰山으로 표기되었다가,
1990년대에는 똑같이 안봉산眼峰山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지금에 와서는 면봉산과 안봉산으로 구분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사실 안봉산은 실체가 없는 산입니다.
지도 제작자의 실수가 하나의 봉우리를 더 만들어내게 된 것이죠.
그것도 실수로.....
영진지도는 이것을 간과하고는 아예,
면봉산을 누락하고 안봉산만 올리는 실수를 하셨습니다.
군계와 면계를 중시한 결과입니다.
영진 이사장님께 이것을 지적해 드려야겠습니다.
지도를 잘 만드시는 분이 어떻게 이런 실수를 하셨는지 .........
문제의 봉우리입니다.
베틀봉으로 오르는 길은 아주 미끄럽습니다.
얼음을 피하고 바위와 나뭇가지에 의지해 조심스럽게 오릅니다.
강풍때문에 균형을 잃을 경우 대형사건이 벌어질 환경입니다.
13:25
베틀봉입니다.
일제가 지도를 만들 때에는 이 봉우리를 機山이라 표기하고는 그 옆에 'ペテル베테루'라고 가타가나로 병기하여 놓았습니다.
자신들의 발음인 히라가나 'き'로 표기하지 않고 외래어 표기인 가타가나를 썼다는 것입니다.
이는 속리산 천왕봉과 관련하여 중요한 점을 시사해 줍니다.
천왕봉인가? 천황봉인가? “형. 근데 천왕봉이야? 천황봉이야? 예전에 신문에 떠들썩했던 한 기사가 생각이 나네.” 벌써 10년이 됐나? 한때 신문 지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기사가 하나 있었다. 산 이름과 관련하여 일제 잔재 청산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관심을 증폭시켰던 일이었다. 바로 천황봉(天皇峰)이냐 아니면 천왕봉(天王峰)이냐에 관한 논쟁이었다. 논쟁의 불씨는 녹색연합이 던졌다. 1991년 환경문제의 대안을 고민하면서 만들어진 배달환경연구소가 있었다. 이 연구소가 확대 · 개편되면서 출범한 게 녹색연합인데 이들의 활약은 대단했다. 그동안 꾸준하게 백두대간, 연안해양, 탈핵운동(脫核運動) 등을 이끌면서 SOFA 협정에 환경조항이 들어가게끔 하였으며 왕피천 지역을 ‘자연생태계 보전지역’으로 지정케 하였고, 4대강 문제, 백두대간 보호법 그리고 최근에 들어서는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 무효화 등 많은 가시적인 문제의 핵심은 천황(天皇)이 일본의 왕을 가리키는 말이고 이는 일제가 천왕(天王)이었던 것을 임의로 바꾼 것이므로 일종의 창지개명(創地改名)에 해당한다. 고로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찾기 위해서라도 원래의 이름인 천왕봉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보은군도 힘을 보탰다. 반면 이 개명작업에 시종일관하여 반대를 한 이가 신산경표의 저자 박성태 선생이었다. 선생의 지론은 간단했다. “주관적 감정이 아니라 객관적 사실에 바탕을 둔 진실한 기록을 통하여 과거사를 청산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정통성 회복과 정체성 확립, 민족정기 회복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하기에 진실을 알려야 한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천황(天皇)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일련의 산 이름 변경고시를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양쪽의 주장을 들어보자. 천왕봉으로의 개명을 찬성하는 이들의 입장으로 녹색연합과 보은군의 연합군이다. 우선 녹색연합은 2005년 2월 ‘바로 잡아야 할 우리 이름 보고서’에서 ‘천왕봉’이 맞는다고 주장하는데 이어 산림청도 2007년 8월20일 충청북도에 ‘지명정비’ 협조 공문을 보냈다. 녹색연합은 이 보고서에서 “일제 때 땅 이름을 바꾼 ‘창지개명’ 작업의 하나로, 속리산 천왕봉을 일본 왕을 뜻하는 천황봉으로 바뀌었다”고 밝혔다. 그 증빙자료로 고지도인 ‘팔도군현지도’, 법주사 소장 고지도뿐만 아니라 1911년 5월 일본육군참모본부가 만든 ‘한국지형도’ 등을 제출하면서 이들 지도에는 천왕봉으로 돼 있지만, 1918년 일본총독부에서 만든 지도부터 천황봉으로 바꿨다고 덧붙였다. 이에 보은군은 향토사학자 등으로 구성된 지명위원회(위원장 이향래 군수)를 열고 녹색연합 등 시민단체가 일제 잔재로 지적한 '천황봉'을 '천왕봉'으로 개명키로 의결했다. 위원회는 개명 근거로 대동여지도, 팔도군현도 등 고지도와 1930년 법주사 호영스님이 그린 법주사도(法住寺圖) 등에 '천왕봉'으로 표기돼 있고, 동국여지승람, 동국여지지 등 고서에도 속리산 정상에 '천왕사'라는 사찰이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점 등을 들었다. 이에 대해 개명작업을 반대하는 이는 민간지리학자 박성태 선생이 홀로 고군분투한다. 선생의 지론은 이렇다. 첫째, 일제가 만든 1 : 50,000 지형도에는 천황(天皇)이란 이름을 가진 봉이나 산이 9개나 있다. 속리산 같은 유명산에도 있지만 사천시와 통영시의 작은 섬에도 있다. 속리산 같은 큰 산이면 모를까 어디 있는 지도 모를 봉이나 산까지 찾아 일일이 천황이란 이름으로 바꿨을까? 둘째, 일제는 같은 한자어인 천황(天皇)이라도 일본 것과 우리나라 것을 구분해서 표기했다는 것이다. 즉 일제가 만든 지형도를 보면 우리가 천황(天皇)이라고 부르는 산이나 봉 이름은 그대로 天皇山 또는 天皇峰으로 기재하고, 자기네 문자로는 그들이 천황을 의미하는 てんのう(덴노)를 쓰지 않고 외래어표기인 가타카나로 チョンハン 또는 チョンフヮン으로 써서 천황에 가까운 음으로 기재했다. 그래서 속리산 천왕봉은 물론 별로 알려지지 않은 산 심지어는 조그만 섬에도 천황산이나 천왕봉을 그대로 표기했다는 것이다. 셋째, 천황(天皇)이란 이름을 가진 산이나 봉은 우리 고전에서도 찾아볼 수 있고, 고지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즉 천황봉(天皇峰)이나 천황산(天皇山)은 우리 선조가 만들어 쓴 이름이지 일제가 만든 이름이 아니라는 것이다. 선생은 고전의 예로 윤휴(尹鑴,1617-1680)의 백호전서(白湖全書) 제24권 기(記) 세심당기(洗心堂記)에 ‘…起步於庭 相與指點 文壯天皇 雲煙面目…’라 하여 속리산의 문장대와 천황봉이 나옴을 든다. 그리고 계속하여, 조선 후기 실학파 오주(五洲)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천지편(天地篇) 지리류(地理類) 동부(洞府) 세전우복동도기변증설(世傳牛腹洞圖記辨證說)을 거론하여 ‘…一去槐山 一去尙州 俗離山天皇峯南幹也…俗離山天皇峯 在洞北爲祖 洞右白虎外 天皇峯兩間少下…’.라 하여 속리산 천황봉이 나옴 등을 거론한다. 그리고 고지도의 예로는, ⓵1872년 전라도 영암군 지방지도에 월출산 천황봉이 있고, ⓶전라도 장수현 지도에 장수읍 동북쪽 지금의 노곡리 뒷산에 천황봉이 있으며, ⓷전라도 용담현 지도에 지금의 천황사가 있는 곳에 천황산이 있다. ⓸그리고 광여도의 전라도 구례현 지도에는 지금의 천황봉이 천황산으로 기재되어 있음 등을 든다. 어쨌든 한 민간지리학자의 노력도 헛되이 속리산 천왕봉은 2007년 12월26일 천왕봉으로 변경고시 되었다. “형은 어떻게 생각해?” 뻔히 어떤 대답이 나오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묻는 장감독은 자기의 생각을 굳히려는 의도가 있는 듯하다. “박성태 선생이 내 사부 같은 존재라서 장감독이 오해할 수도 있겠네. 하지만 천왕이라 하면 나는 육당 최남선의 글을 떠올리게 돼. 그의 불함문화론을 거들먹거릴 필요 없이 ‘백두산근참기’를 읽던 생각이 난다 그거지. 즉 1927년 그가 백두산을 오르던 중 허항령 부근에서 만난 사당을 보면서 감격을 하던 장면이 떠올라. 그는 이 사당에서 목주(木主)에 ‘천왕지위(天王之位)’라고 쓰인 글을 발견하게 되지. 거기서 그는 백두산신이 천왕이고 국사대천왕임을 다시 한 번 확신하게 돼. 그러면서 환웅이 천왕인데 그 용례(用例)가 산으로 와서는 지리산의 천왕봉, 속리산의 천왕봉이 되고 민간으로 가서는 태백산의 천왕사(天王祠), 대구 달성의 천왕당(天王堂) 등이 된다고 했어. 그러니 천왕은 곧 삼국시대의 천군(天君)이라는 것이지. 육당의 글을 어찌 보면 일제와 상관없이 속리산은 천왕봉으로 불렀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지. 그런데 천황의 사전적 의미로는 ⓵ 옥황상제를 가리키기도 하고 ⓶ 일본의 임금을 일컫는 말이라고 해. 즉 도교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에서는 신앙과 관련하여 옥황상제를, 일본에서는 현실적인 자기네 왕을 지칭하는 것이라는 것이지. 그리고 박성태 선생이 지적하듯이 우리나라의 많은 산들에도 이미 천황산 혹은 천황봉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이 이미 많이 존재하고 있었잖아. 이런 점들을 종합해서 생각해 보면 천황봉이라는 이름은 옥황상제와 관련한 민간신앙과 함께 일제 이전부터 구전으로 전해지는 순수한 우리의 고유 이름으로 보는 게 맞을 것 같아. 그리고 정부가 수립된 후 각 산 이름을 고시할 때 천황봉으로 불렀던 것은 그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을 것 아니겠어?” “그렇다면 형은 ‘천황봉파’라는 것이네. 좋아. 그렇다 치고 계룡산도 명산 아니야? 민간신앙에서는 속리산보다 더 신령스러운 곳이라고도 보는데 거기도 천황봉이 있잖아?” 좋은 지적이다. 천황봉이 천왕봉이어야 한다면 속리산보다는 오히려 계룡산이어야 하지 않을까? “형. 그런데 예전부터 이 봉을 천왕봉이라고 불렀으니까 천왕사라는 절이 있었던 거 아니야?” “그건 천황사의 입장에서 보면 마찬가지지. 조금 이따 이정목을 볼 거야. 지금도 천왕봉 아래 대목리에 가면 천황사라는 절이 있어. 물론 창건연대는 잘 모르겠지만. 이제 그만 가자.” -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218쪽 이하
사부님을 알현합니다.
우리나라 산줄기의 대부이신 어른입니다.
정맥과 지맥을 하다보면 준희, 희준 혹은 산지킴이라고도 쓴 산패를 볼 수 있습니다.
다 선생님께서 제작하여 걸어놓으신 것들입니다.
"건강하시죠? 무릎은 좀 나아지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센 바람에 바위봉을 내려와 몸을 숨깁니다.
간단하게 간식을 먹고는 다시 일어납니다.
묘목밭을 지나,
내려온 베틀봉을 바라보고 능선을 내려오면,
이내 곰내재입니다.
이 반대편인 현동면 월매리로 넘어가면 골谷을 따라 웅천熊川 즉 곰내라는 물줄기가 흘렀다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우리는 반대편 죽장면 두마리로 내려옵니다.
배가 고픈가요?
호식이 두 마리 치킨이 생각나는군요.
사장님은 갑질 안 하고 잘 계시나.....
우여곡절 끝에 걷는 연습 충분히 하고 늦은 점심을 먹고는 귀가를 합니다.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생하여 우부장님은 물론 대원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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