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길을 걸음에 있어 어디를 들머리로 하고 어디를 날머리로 하여야 한다는 규칙은 없습니다.
그런 것에까지 루울rule을 만들어 놓는다면 자유롭고 싶어 택한 둘레꾼의 발걸음을 억압하는 것입니다.
다른 스포츠나 레져 활동보다 등산을 즐기는 이들이 많은 이유가 자유로움에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형식이나 틀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걸 자기 체력에 맞게 스스로 설정할 수 있기 때문이죠.
걷고 싶으면 걷고 주위에 볼 게 있으면 충분히 즐기고....
힘들면 쉬고 그러다가 체력이 다 하면 내려가고, 배고프면 먹고, 목 마르면 마시고.....
거기에는 경쟁이 없고 묵묵히 자신과의 약속만 지키려 하는 자신과의 싸움만 있을 뿐입니다.
그 싸움은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극기하는 긍정적인 모습입니다.
산길을 가는 둘레길이라고 하여 여기서 크게 다를 건 없습니다.
자기 체력에 맞게 적당히 가면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 참여하는 분들이 많아지다 보니 서로들 간에 '구간區間'을 얘기할 필요성이 대두됩니다.
지명이 생기게 된 이유와 같습니다.
"난 오늘 어디부터 어디까지 갔다왔네." 보다는 "난 오늘 2구간인 어디부터 어디까지 갔다 왔네"하는 편이 더 알아 듣기 편합니다.
이게 일반화 되면 "난 이번 주말을 이용해 2구간부터 4구간까지 진행할 예정이네."가 더 편해집니다.
그리고 이 구간은 보통 일반인이 하루의 낮시간 그러니까 일출 후 아침을 먹고 난 다음부터 저녁을 먹기 전인 약 6시간 정도 걸을 수 있는 거리를 예정하는 게 보통일 것입니다.
여기서 일반인이란 등산을 할 수 있는 사람들보다 조금 낮은 수준으로 보는 게 맞을 겁니다.
가족 단위나 혹은 특정한 친목의 동호인들도 걸을 수 있는 '둘레길'이기 때문이죠
(사) 숲길에서는 이런 걸 다 감안하여 구간을 만들었을 겁니다.
여기에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할 요소가 또 하나 있는데 바로 '교통수단과의 접속성'입니다.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기 편한 곳 그러니까 마을 단위 위주로 끊어야만 하는 것이었죠,
그래서 적당한 거리에 적당한 장소가 들머리, 날머리로 지정되었습니다.
저의 경험으로 얘기하자면 둘레길을 진행하다 보니 불편한 게 딱 하나가 있습니다.
위 에서 얘기한 것과 같이 숫자 즉 제 몇 구간이라는 숫자를 부르지 못하고 굳이 동강 구간부터 수철리 구간이라는 마을 이름을 불러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자주 지명을 부르게 되니 둘레길에 친숙하게 되는 맛도 있기는 하지만 쉽게 구간이 고유명사화 되는 데 장애 요인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있을 수 있을 겁니다.
지리산 둘레길을 설계하고 공사를 하고는 전체 코스를 일거에 개통하지 못한 이유도 있을 것이고, 시계 방향으로 가든 아니면 반대 방향으로 가든 이는 둘레꾼의 의사에 맡긴다는 뜻도 있을 수 있었을 겁니다.
더군다나 둘레꾼이 그 시작을 산청에서 시작하건 하동에서 시작하건 아니면 남원에서 시작하건 즉 둘레길의 시작이 어디냐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취지일 수도 있습니다.
환종주가 갖은 유연성 혹은 탄력성입니다.
하지만 이를 어찌보면 너무 체계가 없어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중구난방이라는 얘기죠.
백두대간을 하는 이들의 진행 방법은 확실합니다.
백두산부터 지리산까지니까 말입니다.
남한의 경우 진부령에서 지리산까지만 오면 됩니다.
다만 남진이냐 북진이냐의 차이인데 이는 대간꾼의 선택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둘레길은 적당한 거리에 적당한 장소가 구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둘레길을 설명할 때 맨 위에는 '주천 ~ 운봉' 구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암묵적으로 제1구간이라고 못 박은 겁니다.
그 다음 칸은 "운봉 ~ 인월'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2구간이라는 어구만 빠진 거죠.
(사) 숲길에서 얘기하고 싶었던 것을 제가 얘기하겠습니다.
"지리산 둘레길은 19개의 본선이 있고 두 개의 간선 그리고 4개의 지선이 있다. 이는 편의상 설정해 놓은 것이니 둘레꾼이 1구간을 시작으로 환종주를 하든 아니면 역으로 하든 상관없다. 나아가 6구간 중 산청에서 시작하여 7구간 - 8구간 식으로 이어가건 아니면 역으로 6구간 - 5구간 식으로 이어가도 이 역시 상관 없다. 이것도 얽매이거나 형식에 구애받고 싶지 않으면 오늘은 6구간 내일은 남원으로 가서 19구간을 가는 것도 무방할 것이다."
지난 3. 30. 금, 토요일 이틀에 둘레길 일곱 개 구간 정도 걸을 걸 예정하고 진행하던 중, 집안 사정으로 중포하고 산청의 내리교에서 탈출하여 귀가하였습니다.
덕분에 예전했던 구간의 마지막을 마무리를 못했으니 내리교 ~ 성심원 구간이 미답입니다.
그러면서 주중에 18, 19구간인 방광마을 ~ 주천 구간은 다 했으니 이가 빠진 모양새입니다.
산청으로 갑니다.
남부터미널에서 23:00에 출발하는 심야 버스를 이용합니다.
지난 번 산청에서 미리 알아둔 정보에 의하면 산청에는 찜질방이 없는 고로 아침밥이나 날이 새는 시간 까지 있을 곳이 마땅치 않습니다.
궁여지책으로 터미널 앞 PC방을 알아두기는 헀으니 그나마 위안이 됩니다.
4. 13. 02:10 산청터미널에 도착하여 예정한 PC방에서 시간을 보내다 04:40 나옵니다.
그러고는 인터넷에서 알아본 '해장국'집에 갔으나 06;30 정도 되어야 문을 열거라는 주변 편의점 직원의 전언이군요.
그러면서 알려준 경찰서 앞 '김밥천국'으로 갑니다.
순두부 맛이 별로군요.
세수하고 양치하고 시간을 질질 끌다 김밥 한 줄 싸서 나옵니다.
지도 #1
05:41
산청 체육공원 뒤로 기산615.1m이 어둠 속에서 자신의 위용을 드러내고 있고,
우측 뒤로 필봉산858.2m과 그 우측의 684.8봉이 자신의 위치를 알려줍니다.
웅석봉 연봉도 서서히 모습을 보여주는군요.
조금 이따 저 웅석봉 바로 옆까지는 가겠죠.
그 얘기는 산청읍을 벗어나 단성면으로 들어간다는 얘기가 됩니다.
단속사지가 있는 탑동마을의 단속사 말입니다.
05:47
우틀하여 내리교를 건너갑니다.
직진하면 꽃봉산과 하수 처리장으로 가는 길입니다.
웅석봉1099.9m이 보이고 그 바로 좌측 하단의 움푹 파인 곳이 이따 올라갈 '웅석봉 하부 헬기장'이라는 곳입니다.
그 헬기장을 넘어 웅석봉 뒤편으로 떨어지는 덕천지맥, 지리태극종주 루트를 확인하면서 진행하게 될 겁니다.
상상만 해도 가슴이 뛰기 시작합니다.
경호강.
남강이죠.
남강이 산청으로 들어오면 그 이름이 잠시 바뀝니다.
즉 단성까지를 특히 경호강이라 부른다는 것이죠.
이 산청은 산음이라 하여 중국 절강성 소흥현의 산음과 비견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였죠.
그래서 이 강도 그 지방에 있던 강이름인 경호강을 따서 그렇게 부르는 겁니다.
사대주의를 넘어서 모화주의의 결과입니다.
남강이라고 불러야죠.
05:51
남강을 건너오면 길이 두 갈레로 갈립니다.
직진하는 선녀탕 길과 좌틀하여 강변을 따라 가는 루트.
회계산을 확인하여야 하니 좌틀하여 쉬운 길로 갑니다.
어차피 두 루트는 바람재에서 연결이 됩니다.
천변을 따라 걷습니다.
산책 나온 아주머니와 그 옆에 목줄을 한 개와 인사를 나누고....
웅석봉이 대단한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천변을 따라 걸으면,
좌측으로 산청군 하수처리장이 보이고 바로그 우측에 밋밋한 봉우리 하나가 보입니다.
지도를 보면 이 봉우리가 231.7봉으로 나와 있습니다.
지난 번 얘기한 것을 다시 가져옵니다.
환아정 얘기입니다.
남강 구간 중 산청 지역을 특히 경호강이라고 부른다. 그 경호강 1교를 건너면서 금서면을 떠나 산청읍으로 들어서게 된다. 경호강과 회계산이 어울러져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이곳을 옛 선인들이 가만히 놔두지 않았을 것 같다.
사실은 예전에 이곳에는 ‘환아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다. 지금의 산청초교 본관 자리가 바로 그곳이다. 밀양의 영남루, 진주 촉석루와 더불어 영남 3대 누각으로 알려진 정자였다. 산청의 옛이름 산음은 중국 절강성 소흥현 산음(상해 바로 아래의 紹興市)의 빼어난 산수와 비견된다고 하여 거기서 따온 이름이다. 그 중국 산음의 대표적인 인물로 문학가이자 서예가인 왕희지(307~365)가 있으니 그와 관련된 일화가 없을 리 없다. ‘백아환자白鵝換字’ 즉 ‘유난히 거위를 좋아했던 왕희지가 흰 거위白鵝를 얻기 위해 ’도덕경‘을 자신의 필체字로 써서 그 둘을 바꿨다換.'는 유명한 고사에서 따와 정자를 지으면서 창건 당시 저명한 선비였던 권반權攀이 ‘환아정換鵝亭’이라 이름 지었고 그 현판의 글씨는 당대 최고의 명필 한석봉이 썼다.
그러나 정유재란 때 소실됐고 다시 복원된 것이 한국전쟁 때 또 소실되었으나 지금까지 복원되지 못하고 있다가 최근 들어 복원 작업이 진행 중이다.
이곳을 지나면서 시를 지은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남주헌(1769~1821)은 함양군수 재직 중이던 1803. 3. 산청현감 정유순鄭有淳, 진주 목사 이낙수 등과 함께 지리산을 산행하였다. 지리산에 가는 도중 산음에 들르면서 이 환아정換鵝亭에 올라 주변을 이렇게 그렸다. “정자 아래로 강물이 흘렀고, 강가에 절벽이 임해 있었으며, 예쁜 꽃과 길쭉한 대나무가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이곳의 옛 지명은 산음山陰이다. 그래서 산은 회계산會稽山이라 일컫고 물은 경호강鏡湖江이라 이름하며, 왕일소王逸少(필자 주 왕희지)의 고사를 본떠 환아정을 지은 것이다. 여기는 내가 여러 차례 본 곳이다.” 그렇게 둘러보고는 산음을 떠나면서 시 한 수를 읊는다. 稽産鏡水繞空臺 회계산과 경호강이 빈 누대를 감싼 자리 癸丑春年上巳會 계축년(353년)의 봄날이 상기일과 겸해 돌아왔네 그러면서, 籠鵝已去沙鷗至 거위 안고 떠나가니 갈매기만 날아오고 道士難逢洞客來 도사 상봉 어려우니 동객만 찾아오네. 경호강은 위에서 봤다. 그렇다면 위 시에서 얘기하는 회계산은 어딜까? 대동여지도와 조선지도에도 나와 있는 바, 현재 지도에는 회계산의 위치가 불분명하다. 위 옛날 지도에 의하면 회계산은 ‘동산’의 북동쪽 정곡 마을 좌측에 있다. ‘비변사인방안지도’와 광여도에 의하면 ‘관문으로부터 5리 거리’라고 되어있다. 그걸 경우 ‘동산’이 현재 산청의 진산인 꽃봉산237.5m이라고 하니 회계산은 지금의 와룡산416.7m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전 그러니까 1489년 4월 봄이 무르익은 계절에 탁영 김일손도 지리산 유람을 떠나면서 이곳을 지났다. 그는 “환아정換鵝亭에 올라 기문記文을 보니, 북쪽으로 맑은 강을 대하니, 유유하게 흘러가는 물에 대한 소회가 있었다. 그래서 잠시 비스듬히 누워 눈을 붙였다가 일어났다. 아! 어진 마을을 택하여 거처하는 것이 지혜요. 나무 위에 깃들여 험악한 물을 피하는 것이 총명함이로구나. 고을 이름이 산음이고 정자 이름이 환아換鵝니, 아마도 이 고을에 회계산會稽山의 산수를 연모하는 사람이 있었나 보다. 우리들이 어찌 이곳에서 동진東晉의 풍류를 영원히 이을 수 있겠는가.”라고 소회를 밝혔다.
문제의 회계산은 지금의 어디일까요?
현대의 지도에는 회계산이나 동산 등이 나오지 않으니 문헌을 보고 찾는 수밖에 없습니다.
회계산을 찾는 이들은 동산이 지금의 산청의 진산인 꽃봉산이라고 하여 231.7봉이 회계산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실제 현장에 가면 종이 안내판으로 회계산이라고 표기된 것도 있다는 전언입니다.
고지도를 봅니다.
광여도,
비변사인방안지도,
그리고 대동여지도입니다.
광여도와 비변사인방안지도는 같은 것이니 하나만 봐도 되겠습니다.
향교와 환아정 사이에 있으니 바로 환아정을 안고 있는 작은 산이 회계산이라고 보면 될 것이고....
한편 정교하기로는 세계 제1인 대동여지도를 보면 동산과 이어지는 줄기로 나옵니다.
이를 지금의 지도에 대입을 해보면,
정확하게 와룡산 정도와 일치하게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백두대간에서 가지를 친 남강지맥이 소룡산 부근에서 양천지맥을 다시 분기시키고 이게 비득재 부근에서 다시 우측으로 가지를 친 줄기가 상여봉506.9m ~ 와룡산416.7m으로 내려오다 마지막에 빚은 산이 바로 꽃봉산237.5m이잖습니까?
또 꽃봉산에서 5리 정도 되는 곳에 있는 산이라고 하였으니 실제 거리를 측정해 보면 2.44km가 나옵니다.
당시에는 지금과 같이 10리가 4km가 아니고 약 5.7km 정도 되었으니 5리면 2.85km.
그러니 거의 와룡산으로 보는 게 맞을 겁니다.
그러나 시詩에서 보듯 회계산은 경호강이 맞닿은 듯한 분위기를 보여주며 광여도 등에서 보듯 향교와 환아정 사이에 있는 작은 산이니 바로 지금의 산청초교 바로 그 자리의 작은 동산을 회계산으로 봤을 겁니다.
다만 '관문으로부터 5리 떨어진 곳에 있다.'는 점과 대동여지도를 보면 얘기가 좀 달라집니다.
즉 대동여지도는 고산자가 직접 다니면서 확인하고 그린 지도가 아니고 군현 지도를 참고하여 그린 지도입니다.
그러니 그 지도에 축척을 확실히 하여 그린 지도가 대동여지도이니 만큼 지금의 와룡산 = 회계산 임을 무시하기는 힘듭니다.
그렇다면 산청읍을 내려다 보고 있고 한편으로는 산청을 둘러싸고 있는 지금의 와룡산이 옛이름이 회계산이었지만 이는 남강을 경호강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모화사상에 물들은 유학자 정도가 부르는 이름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일반적인 산청 사람들은 이를 와룡산이라고 불렀지않나 하는 강한 의심이 듭니다.
저 정도의 산 같지도 않은 밋밋한 줄기를 보고 시를 읊었다고요?
어불성설語不成說입니다.
적어도 당시 선비 정도였다면 몇 명이 앉을만한 자리가 있었어야 했을 것이고, 그 자리가 너른 반석盤石이나 정자 혹은 누각 정도나 있어야 제격 아니었겠습니까?
그분들 술하고 음악 없었으면 시도 안 지었습니다.
06:01
산청 한방리조트를 지나고,
천변을 따라 걷습니다.
아침 바람이 아주 시원합니다.
저 통영 ~ 대전 고속도로 교각 아래를 지나 작은 봉우리 뒤로 거슬러 올라가겠죠.
중앙으로 천왕봉에서 출발한 덕천지맥이 밤머리재를 넘어 좌측으로 진행하고, 우측으로는 기산 줄기 하나를 내어놓는 모습이 확연하게 들어옵니다.
화살표 부분이 밤머리재에서 올라온 봉우리가 우틀한 안부입니다.
우측으로는 기산.
그리고 필봉산.
이제는 필봉산 좌측으로 왕산도 보이는군요.
지곡1교를 건너면서,
둔철산823.4m 뒤로 떠오르는 태양을 봅니다.
제법 멋지네요.
06:32
그러고는 바람재입니다.
지도 #1의 '가'의 곳입니다.
선녀탕 쪽으로 진행했다면 여기서 만났겠죠.
지도 #2
직진합니다.
우측 중앙에 울석봉 전위봉이 보이고.....
죽어라고 짖어대는 민가 두어 곳을 지나,
맑은 계류를 건너자마자 좌틀하여,
과수원을 따라 걸으면,
산청 축산물 폐기처리장이 나옵니다.
좌측으로 정곡리에서 정곡천이 흘러나와 남강에 합류되는 모습을 봅니다.
중앙 우측 뾰족한 봉이 정수산829.8m에서 내려온 240.8봉.
07:00
지도 #1의 '나'의 곳입니다.
제6구간의 종점인 섬심원에는 다 온 모양입니다.
길이 두 갈레로 나뉩니다.
좌측과 우측 길입니다.
성모상이 있는 우측으로 들면,
주차장이 있고 좌우측으로 성심원 관련 시설들이 들어와 있습니다.
성당 건물이 보이고....
07:05
상당한 시설입니다.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복지시설물인데 여기서 둘레길 6구간이 끝납니다.
아직 이른 시간입니까?
사람은 물론 개미 새끼 하나 보이질 않는군요
고양이만 오고갈 뿐.....
내리교에서 이곳까지 쉬엄쉬엄 1시간이면 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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