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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TWINS/지리산

지리 4대 태극종주 자투리 이어가기(남명기념관 ~ 이방산 ~ 마근담봉 ~ 웅석산 ~ 청계계곡입구 ~ 청계저수지)

 

나라의 산 지리산을 걷는다는 것!

갖가지 치사致辭는 접어두더라도 상상만 해도 너무 즐겁고 멋진 일입니다.

백두산을 떠난 산줄기가 그 긴 여정을 끝내고 지리로 들어와 고단한 몸을 누인 모습.

어느 방향에서 보건 아주 편안하게 보입니다.

서쪽 반야봉에서 발을 편안하게 펴고 머리는 천왕봉에 둔 모습이니 어련하겠습니까.

그렇게 서쪽 노고단이나 반야봉에서 거의 일직선으로 천왕봉까지 이어짐을 볼 수 있습니다.

 

지리의 북쪽 삼봉산에서 봐도 그 모양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니 북쪽이라면 오히려 멀리 남덕유산에서 보는 게 나을 것도 같습니다.

남쪽은 호남정맥의 끝 도솔봉이나 백운산 정도에서 보면 그 모습이 더욱 확연해집니다.

그러면 동쪽은?

웅석봉 정도에서 볼까요?

그런데 웅석봉 부근에서 바라보면 천왕봉에 가려 제대로 보이는 게 없고 오히려 우측으로 바래봉이니 덕두산이 휘어 나온 걸 알 수 있습니다.

지리 서부의 끝 반야봉에서 바래봉이나 덕두산을 볼 때, 반대로 지리 동쪽의 끝 천왕봉에서 웅석봉 연봉을 바라 볼 때 그 모습들은 신기하게 서부의 끝은 북쪽으로, 동쪽의 한 끝은 남쪽으로 휘어 있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장거리 산행 클럽인 'J3 클럽'의 방장 배병만 님은 여기에 주목했습니다.

그러고는 기존에 있던 틀에 제대로 된 모습을 만들어 지리태극종주 코스를 완성합니다.

이것이 요즘 장거리 산꾼들에게는 필수적인 '고수로의 관문'인 '지리태극종주' 코스 즉 '지태智太'입니다.

구인월 ~ 덕두산 ~ 바래봉에서 성삼재를 잇는 서부(북)능선 + 지리 주릉 + 천왕봉 ~ 웅석봉의 동부 능선에 수양산을 첨가한 모양으로 약 90km의 거리입니다. 

이 지태를 처음에는 구간을 나눠 진행하더니 언제부터인가 일시종주 즉 '한 방'에 전 구간을 마치더니 최근에는 그것도 모자라 왕복으로 종주를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해밀산악회의 회장 '봉순이오빠'님은 그걸 48시간 정도 걸려 완주를 했으니 대단한 기록임에 틀림없습니다.

참고도 #1  지리태극종주

 

그런데 이 태극모양만 가지고는 좀 성에 안 찼나요?

아니면 변형을 원했나요.

최근 이 '지리태극종주' 코스에 아종亞種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산경표의 소위 '산자분수령' 맛을 본 덕인 것 같습니다.

즉 산줄기는 합수점 혹은 강내지 천과 만나는 곳에서 끝나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배방장님 같은 분은 코웃음을 칠 게 뻔할 것 같습니다.

"누가 그걸 몰라서 그렇게 안 했는가요! 태극이란 모양에 충실하다 보니 그 쪽으로 내려간 거 아닙니까!"

 

어쨌든 이 '智太'의 가장 고전적인 아종은 이른바 ①이방태극종주 코스입니다.

웅석봉 삼거리에서 우틀하여 시천천과 덕천천이 합수점 방향으로 가는 루트죠.

가는 마지막 지점에 이방산이 있어 간단하게 '이방태극종주'로 부릅니다.

 

그리고 다음 것이 웅석봉에서 가장 좌측으로 진행하여 석대산 ~ 망해봉으로 가서는 남강을 만나는 그러니까 산경山經을 위주로 그은 소위 ②'남강태극종주' 코스(약110km)입니다.

그렇게 해서 3개가 되었는데 이번에는 오리지널 '산자분수령'에 충실하고자 하는 '태극종주' 코스가 하나 더 등장합니다.

이른바 '진양태극종주(약120km)'로 이는 신산경표나 대한산경표에 적을 두고 있는 덕천(웅석)지맥과 궤軌를 같이 합니다.

다만 '짝퉁'이라는 비난을 염려했는지 그 끝 만큼은 덕천(웅석)지맥의 끝인 진주시 수곡면 귀곡동이 아니라 같은면 금성리의 금성교로 가는 게 다릅니다.

그러니까 이 4대 '태극종주'는 구인월 ~ 천왕봉 ~ 웅석봉'의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으면서 지리 남동쪽의 끝만 달리하는 것입니다.

 

참고도 #2

 

복잡하고 지저분하긴 하지만 대강 이 정도의 코스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쨌든 이 '4대 태극종주' 4개를 모두 완주한 이들은 '그랜드 슬래머Grand Slammer'라는 명칭을 부여해도 괜찮을 것 같군요.

하지만 구분이야 어떻게 하더라도 '지리태극종주'하면 역시 고전 루트인 수양산 코스 임에 틀림없습니다.

저요?

저도 태극종주야 하긴 했습니다.

다만 일시一時 종주가 아닌 '구간종주였으니 체면치레는 한 거 아닌가요?

 

저같은 사람이 새롭게 이들 태극종주를 다 한다는 것은 골병 나는 일이니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웅석봉 이하의 4개 종주 코스를 이어서 진행한다는 것입니다.

가령 1구간은 이방산716.8m~ 감투봉768m ~웅석봉1099.9m ~ 석대산535.9m ~ 망해봉257.9m ~남강으로 잇고,

그 다음 2구간은 시무산402.7m ~ 수양산502.3m ~ 마근담봉926.7m ~ 910.6봉 ~ 백운산 ~ 이하 덕천지맥 길 ~ 금성교.

이렇게 두 번에 진행이 가능할 거 같은데 문제는 지금이 한여름이라는 점입니다.

숨 쉬기도 어려운데 이 걸 두 방에 나눠서 가능하다는 말인가요?

 

일단 계획을 세웠으면 결행합니다.

그 시작은 이방산 루트입니다.

다만 들머리는 그 초입이 덕산인 만큼 남명 조식선생 묘지도 배알할 겸 남명 기념관으로 합니다.

 

23:59에 출발하는 진부행 버스에 오릅니다.

원지에 도착하니 03:15이 조금 넘었습니다.

배낭을 맨 두 분이 합승을 권유합니다.

뭐 나쁘지 않은 얘기입니다.

한 분은 지리태극종주 다른 한 분은 중산리 ~ 천왕봉 ~ 장터목 ~ 백무동으로 진행한다고 하는군요.

차례대로 내립니다.

사리마을 회관에 내리시는 분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빌어드리고....

평택 사시는 '산그림자'님 이시라고 하셨죠?

잘 마무리 하셨으리라 믿습니다.

 

산행개요

 

1. 산행일시 : 2018. 8. 1. 수요일

2. 동행한 이 : 홀로

3. 산행 구간 : 남명기념관 ~ 이방산 ~ 마근담봉 ~ 990.9~ 웅석산 ~ 청계계곡 입구 ~ 청계저수지

4. 산행거리 : 19.69km

구 간

거 리

출발 시간

소요 시간

비 고

남명기념관

 

03:49

 

 

이 방 산

5.32

06:21

152

 

마근담봉

4.69

10:21

240

990.9

1.47

11:06

45

웅 석 산

3.95

14:15

189

청계계곡입구

1.08

15:28

73

청계저수지

3.18

18:03

155

19.69 km

14:14

실 소요시간

 

산행기록

지도 #1

 

03:41

남명기념관 앞에 내려 산행 준비를 합니다.

반대 방향에 있는 산천재 마당.

남명 조식선생에 대해서는 사실 긴 얘기가 필요없습니다.

간단히 볼까요?

졸고 '현오와 걷는 지리산 들레길' 초고에서 가져옵니다.

 

문수암을 지나고 좌측 감나무 단지를 지나면서 시무산으로 올라가는 능선이 보인다. 마을을 빠져나오면 20번 도로와 만난다 

 

이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가면 덕산교를 지나 지리태극종주의 끝이자 시작인 시무산으로 오르는 등로가 보이고 조금 더 내려가 백운천을 만나게 된다. 덕문교를 건너면 덕천벼리德川遷를 만나게 되는데 옛 선인들은 이곳을 두류산 온갖 골짜기로 드나들 수 있는 입구로 여겼다. 그래서 이 문을 입덕문入德門이라고 불렀다.

 

우측으로 인도로 올라서면서 뒤를 보면 지리산 국립공원관리사무소가 보인다. 이제 덕산 시내로 들어서게 된다. 덕산은 곧 남명 마을이다. 비단 남명기념관, 산천재, 한국선비문화연구원, 덕산 문화의 집 그리고 원리교 건너 덕천서원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실 덕산德山은 지리산 산세와 풍모의 미학적 장중함을 드러내는 표현으로 지리산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남명 조식(1501-1572)의 장중한 사상적 무게와 그가 일상에서 견지한 공경()과 의로움()61세 이후로 덕산 자락에 터를 정해 산천재에 거처하고 스스로를 방장산인으로 여기면서 지리산과 한 몸이 된 결과이기도 했다. 그런 덕산에[ 들어서면 전체가 남명의 향기로 가득 찬 느낌이다. 그 입구에 너른 주차장이 보이면서 남명기념관이라는 큰 현판이 붙어 있다.

 

시천 혹은 덕천이라고도 불리는 이곳 덕산은 남명의 고장이다. 물론 남명의 고향은 합천 삼가이다. 처가인 김해에 '산해정'을 세우고 문인들 양성에 힘을 기울이던 남명은 12차례에 걸친 지리산행을 통하여 지리산을 경외하며 지리에 빠져들게 된다. 그러고는 백운동 등 세 곳 정도를 물색하다 결국은 이곳에 정착을 하면서 진주 일대는 남명학파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에게 있어 덕산은 구도의 극처極處인 지리산 천왕봉이 올려다 보이는 이상적 장소였다. 물론 덕산이라는 명칭은 그 이전에도 사용되고 있었겠지만 조식이 거주하면서 명실상부하게 덕이 있는 인물이 사는 골짜기로 인식되었을 게다.

 

깨끗하게 정돈된 기념관으로 들어가 볼까.

 

남명기념관은 남명선생 탄신 500주년을 기념하여 선생의 학덕을 추모하고 선생이 추구하고자 하였던 경의사상(敬義思想)을 계승, 발전시키고자 사업을 추진하여 20048월에 개관하였다. 기념관 내부에는 남명선생과 관련된 유물 전시실과 영상정보실, 교육관, 세미나실 등이 있으며, 외부 공간에는 신도비, 남명석상, 여재실 등이 있다.

0 1전시실

남명 선생이 실천하는 학문으로의 전환점이 된 서적들과 경의검(敬義劍), 성성자(惺惺子)등 남명의 수행과 실천에 관련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0 2전시실

남명의 가르침을 따랐던 제자들을 주제로 한 전시실로 제자들의 유물과 미니어처 연출, 의병활동과 관련한 조형물을 설치하여 그의 업적을 돌아볼 수 있는 공간이다.

 

0 3전시실

남명정신을 기리고 이어받기 위한 오늘날의 노력과 이에 대한 실천의지를 표현한 공간으로 사숙 및 문인의 유물과 사적의 전경모형을 볼 수 있다. 좌측으로 남명 선생의 동상과 선생의 이력을 담은 글이 비에 새겨져 있다.

 

길을 건너 산천재로 간다. 안으로 들어가 산천재와 남명매를 본다.

 

 

그가 머물면서 후학들을 지도한 곳을 산천재山天齋라 이름했다. 산천이라는 말은 주역에 나오는 말이다. 에 해당되는 간괘艮卦와 하늘을 상징하는 건괘乾卦가 합쳐진 모양이라는 것이다. 괘사卦辭 즉 그 말을 풀어보면 날마다 덕을 새롭게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러니 남명의 이러한 뜻을 함께 할 수 있는 동반자로 지리산 천왕봉을 택한 것이며 산천재는 지리산 천왕봉을 가장 가까이 두고 좌로는 수양산502.3m, 우로는 검음산(현재의 비룡산554.6m으로 추정)을 각 둔 천혜의 길지로 자신의 뜻을 실천할 수 있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산천재山天齋란 이름을 이렇게 복잡하게 보는 것보다 그저 선생이 평소 경외해 마지않던 지리산 천왕봉에서 가져온 이름이라고 하면 너무 단순한가? 물론 현대인의 시각에서 바라본 이름이긴 하다.

 

남명매는 지난 구간 단속사에서 본 정당매를 떠올리게 된다. 남명이 손수 심었다는 수령 440년의 매화나무는 남명매로 불리며 원정 하즙이 심었다는 원정매와 더불어 산청 3라고 한다.

 

사실 남명하면 대비되는 이가 바로 남명과는 갑장인 퇴계 이황(1501~1570)이다. 학창시절 우리에게 더 익숙한 인물은 물론 남명보다는 퇴계이다. 벼슬을 할 만큼 했고 도산서원까지도 세웠으며 온건하기도 한 인물이기도 했으며 더욱이 우리가 쓰고 있는 1,000원 권 지폐의 인물이기도 하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제도권 안의 재조在朝세력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지리산으로 오면 모든 게 달라진다. 퇴계뿐만 아니라 율곡이 퇴계와 함께 온다고 해도 사정은 그리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지리하면 남명이다. 남명은 처사적 생활로 현실을 비판하며 수기修己의 방법으로 '경의敬義'를 중시하여 '실천'을 강조하였다. 평생 관직에 나가지 않으면서 비판자적인 위치에서 현실모순을 인식하고 그것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실천성'을 강조하였다. 반면 퇴계는 평생 관직 생활을 통하여 수하의 많은 문인들을 정계에 포진시켜 놓았던 만큼 현실 개혁보다는 안정적인 현실생활을 강조하였다. 이게 두 사람의 가장 큰 차이점일 것이다.

 

경상우도를 기반으로 한 남명의 이러한 사상은 '남명학파'로 불리게 됐으며 이러한 자세는 임진왜란 당시 손주 사위인 곽재우, 김면, 정인홍, 박경신 등을 비롯한 많은 유학자들이 의병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이런 그의 개방적인 사고는 불교에 대해서도 그러하여 서산대사 휴정, 사명대사 유정과도 교분을 가져 성리학 이외의 학문에 대해서도 자유로운 입장을 가졌다. 이는 자칫하면 성리학 일변도에서 획일화 될 수 있는 위험성을 탈피하고자 부단히 노력했던 남명의 마음가짐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라 하겠다.

 

남명의 제자 중 이순신과 관련한 인물로 정탁鄭琢(1526~1605)이 있다. 당시 권율의 장계로 이순신이 체포 되었는바, 이순신의 죄목은 군공을 날조애서 임금을 기만했다고 하는 공문서 위조 및 동행사 죄와 가토의 머리를 잘라오라는 출격 명령에 응하지 않은 직무유기 죄 등이었다. 당시 선조는 이순신을 사형시키기로 작심하였었다.

당시 판중추부사로 있던 정탁은 이순신을 구명하기 위하여 상소를 올렸다. 조정 내부에서 이순신은 정치적으로 고립되어 있었다. 이순신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이 조정에는 없었다는 얘기다. 류성룡만이 이순신의 인물됨과 무죄를 믿고 있었으나 그도 정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적극적인 변론은 삼갔으니 결국 정탁의 상소만이 유일한 이순신의 구명을 위한 공론화 된 의견이었던 셈이다. 어쨌든 정탁의 상소로 이순신은 단 한 차례 고문을 당한 다음 결국 같은 해 음력 41일 출옥을 해 '백의종군' 길에 오르게 된다.

 

이 길이 이순신의 백의종군 길이다. 지리산 둘레길과 관련이 있기도 한 이 길은 남원과 구례에 걸쳐 있으니 16구간 이후부터는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쯤 되면 그의 시 한 수를 들어봐도 크게 사치스러울 것 같지는 않다.

 

두류산(頭流山) 양단수(兩端水)를 녜 듣고 이제 보니,

도화(桃花) 뜬 맑은 물에 산영(山影)조차 잠겼에라.

아희야, 무릉(武陵)이 어디메뇨 나난 옌가 하노라.

 

이런 남명의 지리산에 대한 경외심의 일부가 위 시에 담겨 있다. 도화나 무릉 같은 시어詩語는 굳이 노장사상을 들추어내지 않더라도 당시의 유학자들에게는 만연한 풍조였을 것이니 우리는 산꾼의 입장에서만 파악하면 될 것이다. 당시 관인官人 즉 벼슬아치들 또한 도연명(365~427)의 귀거래를 '물러남'의 가장 모범적인 미덕으로 생각하고 있을 정도였다니 이 정도면 그들의 탈속의지脫俗意志를 어느 정도 엿볼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그러니 두류산은 지리산의 다른 말이며 양단수는 좁게는 시천천과 덕천강으로 볼 수도 있으나 지리산이라는 큰 산을 중심에 놓고 거시적으로 봤을 때에는 남강과 섬진강을 이르는 시어로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더 좁게 얘기한다면 시천천 즉 살천과 삼장천으로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자연에 귀의한 은둔자니 세속과의 완전한 단절' 같은 참고서적參考書的 풀이''실천'을 중시한 남명에게는 사치스러운 단어의 나열이며 사실 어울리지도 않다. 다만 그런 시어는 지리에 대한 경외심의 다른 표현이라 이해할 수는 있겠다. 산천재를 나와 원리교로 향한다. 좌측으로 한국선비문화연구원, 덕산 문화의 집을 보면 그 뒤로 구곡산961m이 크게 보이고 그 뒤로는 천왕봉이며 중봉이 연이어 보인다. 구곡산에서 천왕봉으로 향하는 줄기가 바로 황금능선이다.

 

 

03:49

남명기념관에서 1분 정도 거리에있는 남명 선생 묘소 입구입니다.

여기서 오늘 산행을 시작하기로 합니다.

03:57

중간에 소형차들을 주차할 수 있는 주차공간도 보이긴 합니다.

그곳을 지나더라도 소형차는 들어갈 수 있을 저오의 임도는 이어집니다.

그러고는 남명 선생 안내판이 보여 위로 올라갑니다.

지도 #1의 '가'의 곳입니다.

앞에는 부인 묘가, 뒤에는 남명 선생 묘소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묘지 우측으로는 '남명등산로'라는 표지띠가 가끔 보이면서 등로를 안내하고 있습니다.

워낙 넓게 길을 만들어놔서 그냥 따라만 가면 되는군요.

04:13

소위 전망대라는 곳입니다.

여기서 구곡산961m은 물론 천왕봉을 위시하여 촛대봉까지 다 보이겠군요.

중앙에 희미하게 보이는 봉우리가 구곡산입니다.

덕산 시내의 야경도 이 정도면 괜찮군요.

새벽 공기가 너무 뜨겁습니다.

시원한 바람 한 점 없으니....

땀은 벌써 등 뒤로 흘러내려 바지를 적십니다.

04:35

그런데 이곳은 공식적인 안내판보다는 부근에 있는 문수암에서 제작한 코팅지가 '지리산 둘레길 8코스 마근담길'이라는 내용으로 방향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무심코 이 안내지를 따랐다가는 자신이 가고자 하는 곳이 아닌 문수암 즉 지리산 둘레길 8구간인 '원리 ~ 덕산' 구간 내에 있는 문수암으로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실제 지도 #1의 '나'의 곳인 안부삼거리에서 이 안내지를 따랐다가 이상한 방향 즉 문수암으로 진행하여 다시 되돌아 나와,

삼거리에서 좌틀하여 진행하려 했으나 다시 삼거리가 나오고 직진하는 길은 가파른 비알 방향으로 안내를 해 두어 번 길을 점검해 제대로 된 루트를 찾아 올라갔습니다.

물론 낮이었으면 별로 어렵지 않은 길도 어두운 밤이면 신중하게 독도를 하여 진행을 하여야 합니다.

임도는 433.5봉 우측 사면으로 나 있습니다.

04:55

지도 #1의 '다''의 곳에서 임도가 철망으로 막힙니다.

여기부터는 사유지라는 취지겠죠.

좌측으로 희미한 길과 표지띠가 보입니다.

보나마나 이 팬스 좌측을 따라 길이 나 있을 겁니다.

05:02

드디어 능선으로 오릅니다.

이 능선은 삼장면과 단성면의 면계가 되는 곳으로 이제부터 제대로 된 '이방태극종주' 루트로 듭니다.

그런데 여름 날 새벽에 산을 오르려면 가장 고역은 더위도 아니고 멧선생도 아니요 뱀도 아닙니다.

바로 어른 얼굴 높이에 줄을 친 이 거미줄입니다.

시도 때도 없이 얼굴에 끈적끈적한 실줄을 묻혀놓치를 않나 심지어는 가미가제 식으로 목에 달라붙기도 하는데 정말 미칠 지경입니다.

그렇다고 나뭇가지로 계속 휘두르면서 가거나 스틱으로 앞을 치우면서 가는 것도 10~20분이지 ....

인내력 테스트에 임하는 격이니....

05:39

좌측에서 삼장교에서 올라오는 길이 보이고...

등로는 우측으로 틉니다.

05:55

688.1봉입니다.

여기서는 이곳을 깃대봉이라 부르나 본데.....

조망은 이곳 한 군데만 트였지만....

오늘 처음보는 정경입니다.

정면으로 보이는 뾰족봉이 예전에는 오대산이라 불리던 주산828.2m이고 그 좌측이 갈치재(=葛峴)입니다.

낙남정맥의 789.8봉 부근에서 가지를 친 줄기에 있는 산으로 주산 ~ 갈치재 ~ 오대주산 ~ 조례산324.1m을 지나 시천천과 덕천가의 합수점 맞은 편으로 맥을 다하는 단맥입니다.

나무에 가린 봉우리가 오대주산642.6m이라고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표기되어 있는데 모르긴 몰라도 옥종면의 진산인 주산이 예전에는 오대산이었고 그 부근을 다 오대산 혹은 주산이라고 부르면서 지도 제적 과정에서 '오대주산'이라도 뭉텅거려 올린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한편 저 주산 아래에는 수정사가 있었는데 그 터에 지금은 백궁선원이라는 국선도 수련장이 자리하고 있는 바, 필자가 방문하였을 때에는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지금은 운영을 하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진양지에 따르면,

“오대산에 있다. 살천에서 고개를 하나 넘으면 다섯 봉우리가 줄지어 서 있는데 그 형상이 돈대처럼 생겼다. 오대사는 수정사라고도 하는데 고니 알 만한 수정 구슬이 있어서 여의주라고도 불렀다. 은실로 묶어 보물로 전해져 내려왔다. 오대사 승려의 말로는 물이 반 정도 담긴 동이에 구슬을 담그면 물이 즉시 넘친다고 한다. 오대사 뒤편에는 국가소유의 대밭이 있다.” 고 적고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수정사 주지 진억으로부터 지리산에 폐사한 오대사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곳은 수많은 봉우리가 둘러싸 있고 온갖 골짜기가 함께 모여들어 성현이 은거하는 곳이 있는 듯했다. 대각국사가 "여기는 큰 법이 머물 곳이다."라고 한 말을 듣고서 용기를 내어 찾아갔다. 그리하여 시주할 사람을 모집하고 순현이 몸소 장인들을 거느리고 도끼를 잡아 서둘러 조성하니 모두 86칸이었다. 수정 구슬 하나를 끈으로 묶어 무량수불상앞에 매달아 신심을 보여주는 표시로 삼았고 그 모임의 이름을 정했다. 11237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112910월에 마쳤다. 낙성법회를 사흘간 열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탁영 김일손(1464~1498)1489414일부터 보름간 지리산 산행을 하면서 4. 20. 이곳을 들렀다.

 

문에 들어서니 오래된 비석이 있는데 그 머리에 '오대산수륙정사기五臺山水陸精社記'라고 씌어 있었다. 읽으면서 좋은 글임을 새삼 깨달았다. 다 읽어보니 고려 때 학사 권적이 송나라 소흥 연간에 지은 것이었다. 절에는 누각이 장대하고 방이 매우 많으며 깃발이 마주 보고 있었다. 오래된 불상이 있었다. 한 승려가 말하기를 "이 불상은 고려인종이 주조한 것입니다. 인종이 쓰던 쇠로 만든 여의도 남아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해는 저물고 비도 내려 절에서 묵었다.”

 

지리산 수정사기는 권적(1626~1679)이 수정결사水精結社와 창건주인 진억이 폐사되었던 오대사를 새롭게 창건하게 된 내력을 쓴 글로 동문선 제64권에 실린 글이다. 여기에는 대각국사 얘기도 나오며 수정사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경위도 나오며 한 가지 특기할 만한 것은 이 수정사 낙성법회 때 지금은 없어진 함양 엄천의 엄천사 주지가 초빙 강사로 왔었다는 얘기도 나온다는 것이다. 엄천사의 존재를 다시금 확인해 주는 글이다.

그러니 주산 앞으로는 천왕봉에서 발원한 시천천 흐르고 있고 그 시천천은 덕산의 덕천서원앞에서 덕천강과 합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주산 능선은 하동군 청암면과 산청군 시천면의 군계가 되기도 합니다.

이 부근의 물줄기가 상당히 중요한데 이는 조금 이따 다시 보기로 하겠습니다.

06:06

673.2봉을 지나,

 

지도 #2

06:10

삼장면 면소재지에 있는 체육공원에서 올라오는 정규 등로를 만납니다.

내려온 방향으로 깃대봉 표시가 되어 있는 것으로 봐서 아까 그 조망처가 깃대봉이 맞는 것 같습니다.

깃대봉이라 부르게 된 데에는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일본인들이 이 땅에 들어와 자원을 수탈하는 과정에서 토지 측량을 위하여 붉은 깃발을 세웠던 데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06:21

그러고는 이방산716.8m입니다.

도토리 산악회는 이 부근에 있는 모임 같은데 아주 좋은 일을 많이 하시는군요.

그런데 정상석 아래에는 삼각점 같은 게 박혀 있는데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나오지 않는 것 보면 폐쇄된 그것 같습니다.

바로 옆에 있는 헬기장을 지납니다.

오늘은 폭염에 대비하여 체력 비축을 위해 느긋하게 진행하기로 합니다.

아주 천천히....

쉬어 갈 거 다 쉬어가면서 볼 것도 다 보고.....

06:36

이방산에서 내려오자마자 만나는 첫 안부 우측으로 '손장굴'이라는 곳이 있다는데 별로 관심이 없으니 통과.

06:39

645.6봉을 지나고.....

06:50

조망이 없는 숲길을 걷다보니 625.5봉은 언제 지났는지 모르고 지납니다.

07:00

608.1봉을 지나는데 갑자기 한숨이 나옵니다.

"언제나 조망이 트일고!"

07:02

마근담에서 올라오는 임도를 만납니다.

아침을 여기서 먹기로 했습니다.

지나는 사람도 없을 테니 신발, 양말은 물론 땀에 전 상의도 벗고 최대한 편한 자세로 쉬기로 합니다,

가지고 온 '겨우살이' 담금주로 반주를 하면서.... 

음악을 틀고는 혼자만의 여유를 즐깁니다.

오늘은 Lynyrd Skynyrd의 Simple Man 과 Free Bird가 감미롭게 들리는군요.

제가 직접 녹음한 곡들이라 LP가 카트리지의 바늘에 닿아 돌아가는 소리까지 섬세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Leonard Cohen을 들으면서 해밀산악회의 '노고단' 대장님을 떠올립니다.

언젠가 더운 여름 날 가능하면 지리의 형제봉에서 야영을 하면서 영화애기와 팝뮤직에 대해서 밤새도록 떠들 날을 기대합니다.

07:51

그렇게 50분을 혼자 놀다 일어납니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빵이나 한 조각 먹고 올라갔으련만 오늘은 체력 비축과 여유로운 마음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좌측으로 지리가 보입니다.

지리의 첫 모습을 보여주는 이는 바로 천왕봉입니다.

흥분이 됩니다.

이제 곧 자기 모습을 보여주겠죠.

오매불망 그리던 지리동부에서의 지리 조망!

어떨까요!

08:18

예전에는 헬기장 용도였을 감투봉768m 정상에는 그 흔한 정상석 하나 없고 누군가 돌에 오일펜으로 '감투봉'이라는 약식 정상석이 나무에 기대어 있습니다.

천왕봉과 중봉.

08:36

이 줄기의 꼭지점인 772.2봉 전위봉을 지나 773.2봉을 찍으면서 나뭇가지 사이로,

08:49

대동여지도에는 율현栗峴이라 표기된 밤머리재가 보이는군요.

59번 도로도 힘차게 올라가고 있고...

그 뒤로 필봉산858.2m이 슬쩍 보이고 .....

그러니 그 뒤로 희미하게 보이는 능선이 바로 남강지맥(진양기맥)의 황석산 부근입니다.

여기서 동부 지리산의 불줄기를 간단하게 보겠습니다. 

참고도 #3

 

산줄기와 산줄기 사이에는 물이 흐르고 있으니 그 경계가 명확해야 제대로 산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산줄기의 중심은 백두대간과 낙남정맥 그리고 지리동부능선이 두를 이루고 있는 덕천지맥이 그 기본이지만 지도로만 명확할 뿐 실제 조망을 하면 그리 간단치가 않습니다.

08:53

772.2봉을 지나 지도 #2의 '라'의 간벌지에 오니 조망이 트이는군요.

다행입니다.

바로 아래 보이는 마을이 안마근담 마을인데 이곳이 시천면 사리에서는 가장 오지에 위치한 마을이었을 것 같은데 여기까지 차가 들어오는 이상 더 이상 오지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우측이 조금 전 지나온 이방산.

그 뒤가 아까 본 주산828.2m.

주산 바로 우측 뒤로는 낙동정맥 삼신산에서 가지를 쳐서 횡천강과 섬진강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맥을 다하는 횡천(삼신)지맥 상의 칠성봉905.8m이 우뚝 서 있습니다.

그러니 그 앞에는 삼신산에서 내려오는 물은 가둔 하동호가 있을 겁니다.

그 좌측으로 보니 지리태극라인이 보이고 그 뒤로는 저 멀리 금오산875.1m이 보이고 그 우측으로는 남해의 망운산784.9m까지 보이는군요.

거의 돌아가실 지경.

조금 당겨 볼까요.

그 좌측으로 눈을 돌리면서 조금 당겨 보았습니다.

대단합니다.

우측 가운데 안부가 오늘 아침을 먹은 임도.

황금능선의 끝 구곡산961m은 나무가 가렸고.....

감투봉.

그런데 여기서 좌측으로 내려가는 길에 무수히도 많은 표지띠가 걸려 있네요.

법계리 동촌마을로 내려가는 길인데....

간벌지를 계속 진행하는데 안부를 지나 조금 올라오니....

09:35

아!

드디어 천왕봉입니다.

그러니까 천왕봉과 촛대봉 사이로는 시천천이 흐르게 되고 황금능선 앞, 치밭목능선 뒤로는 삼장천과 내원천이 흐르니 두 물은 모여 바로 이 이방태극능선 뒤로 흐르는 덕천강에 흡수되어 덕산으로 흘러내려 가게 되겠죠.

황금능선 뒤로 영신봉에서 흘러내려 가는 낙남정맥이 보입니다.

좌측 끝이 삼신봉1290.7m이니 중간 봉우리가 1402.7봉 정도 되려나.....

바로 앞 봉우리는 아까 지나온 감투봉입니다.

구곡산 우측 골짜기가 내원천과 삼장천이 모이는 내원사 계곡.

그러니 좌측 아랫마을이 시천면 대하마을이 되겠군요.

이방산~ 덕천강 ~ 시천천 ~  주산 ~ 횡천강 ~ 칠성봉

이런 식이 되겠죠.

우측 중간이 갈치재.

葛峙岾인데 여기서 葛은 칡이니 뭐니 이런 뜻이 아니고 우리 고유어 갈라진다는 뜻이죠.

 

칡이 많이 나는 고개여서 갈령인가?

 

헬기장을 지나자마자 만나는 곳. 갈령삼거리(지도의 의 곳)이다. 여기서 화북면을 만나게 되고 형제봉까지는 화북면과 화남면의 면계를 따라 잠시 진행을 하게 된다. 휴게시설이 되어 있는 이곳에는 여러 가지 이정표와 안내판이 어지럽게 부착되어 있다. 그만큼 중요한 곳이라는 얘기이다. 우측으로는 큰이정표가 갈령을 가리키고 있다. 바로 조금 전 보았던 이안지맥이 가지를 치틑 곳이다. 이안지맥은 여기서 갈령을 지나 작약산을 거쳐 이안천과 낙동강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47.9km의 지맥이다.

. 이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면 만나는 갈령(葛嶺)이란 고개는 칡이 많이 나와서 붙여진 이름이 아니고 우리말 에서 온 거라고 봐야지? 그러니까 대간이라는 큰 줄기에서 갈라진 줄기에 있는 고개라는 의미의 갈령()’이었는데 이걸 억지로 한자를 갖다 쓰다(借字) 보니 葛嶺이 되었다?”

세종대왕 이전까지 우리말을 쓸 수 있는 글자가 없다보니 하는 수없이 중국의 한자를 빌려다 글을 썼잖아. 한자로 우리말을 쓰는 방법으로는 해당 한자의 뜻과는 관계없이 우리말과 음()이 같거나 비슷한 글자를 가져다 쓰는 방법 가령 한강의 옛 이름이 아리ᄀᆞᄅᆞ여서 ᄀᆞᄅᆞ가 강이니 아리수(阿利水)라고 쓴 경우, 한자의 뜻만 가져다 쓰는 방법 가령 새벌이라는 우리말을 신라(新羅)로 쓴 경우, 음과 뜻을 섞어서 쓰는 방법 등 다양해.”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216쪽 이하

 그러니 주산이 있는 저 줄기는 낙남정맥이라는 큰 산줄기에서 갈라지는 고개라는 의미의 갈현葛峴이었는데  이것이 갈재, 갈치가 된 것이니 갈치재의 치峙와 재岾는 어의 중복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거워집니다.

09:41

음.....

삼장면 평촌리 마을과 도토리봉 좌측 왕등재 너머로는 강유하의 화산12곡의 배경이 되는 법화산992.9m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우측 밤머리재 뒤 필봉산 우측으로는 남강(진양)지맥의 기백산 연봉이 보이는군요.

사실 왕등재하면 어디가 왕등재인지 분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왕등재 습지가 있는 곳을 얘기하는 것인지 아니면 분명 고개인데 1048.6봉도 왕등재라고 표기를 해놓고....

제가 왕등재라고 표기한 곳은 729.1봉과 936.5봉 사이의 안부를 왕등재라고 표기하였습니다.

그런데 대동여지도를 보면 楡山이라고 표기되어 있어 느릅나무와 관련된 것 같이 나오는데 이게 왜 도토리봉이 됐는지....

그렇게 이름을 바꾸는데 드루킹이 여론을 조작했나?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를 않는군요. 

웅석봉에 가면 뭐가 보일려나.....

10:08

조금 더 고도를 높인 곳에서 다시 복습.

머리만 보이는 게 감투봉.

덕천강 ~ 치밭목 능선 ~ 삼장천 ~ 황금능선 ~ 시천천 ~ 낙남정맥

30분 넘게 놀았습니다.

올라가죠.

10:21

마근담봉?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 의하면 926.7봉입니다.

이곳이 중요한 포인트가 되는 곳이죠.

지금까지 올라온 줄기가 이방태극종주 루트였다면 여기서 우틀하는 루트가 오리지널 태극종주루트입니다.

오늘 새벽에 만났던 '산그림자'님도 이곳을 지나 웅석봉으로 향했을 겁니다.

그러니 이곳에서 우틀하면 803.5봉을 지나 참고도 #2의 지리태극종주 수양산 코스로 진행하게 되는 것이죠.

그 루트도 744.1봉에이르러 우틀하면 수양산으로 좌틀하면 화장산615m로 진행하기도 합니다.

이 루트의 특기할 만한 사항은 화장산 ~ 230.5봉은  백운천과 덕천강의 합수점으로 이 맥이 흘러들어가는 곳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합수점에는 덕문교라는 다리가 있으며 그 옆이 덕천벼리德川遷로서 그 옆에는 입덕문入德門이라는 각자가 새겨져 있는 이곳이 옛 표지석이 '남명의 동네'로 든다는 것을 암시하여 주었다는 것은 모두에서 이야기했었습니다. 

태극종주의 맨 마지막 방향을 잡으면서 상당히 고심을 했을 배병만 님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오리지널 태극종주루트를 걷게 됩니다.

 

지도 #3

10:51

지도 #3의 '마'의 곳입니다.

이곳은 사거리이군요.

좌틀하면 삼장면 홍계로 내려가는 길인데 그곳 떡바실 계곡이 아주 유명한 곳 같습니다.

우틀하면 삼각점이 있는 910.6봉을 진행하는 길로 이 루트가 덕천(웅석)지맥으로 이어지는 루트가 됩니다.

그러니 산줄기를 하는 이들은 이 길로 들어서거나 아니면 조금 더 올라가 960.6봉을 이용하여 덕천지맥으로 니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악차같이 태극이라는 이름으로 걷고 싶어하는 이들에게는 '진양태극종주'루트가 되겠지요.

사거리에서 직진하는데 이한검 대장님이 지난 2018. 5. 9. 단독 무지원 지리태극종주를 하면서 붙여놓은 표지띠를 만납니다.

무지 반갑군요.

 그 옆에 제 표지띠 한 장을 기댑니다.

11:03

요란한 이정표를 만납니다.

지도 #3의 '바'의 곳입니다.

이곳에서 우틀하면 덕천(웅석)지맥으로 진행이 가능한 곳이니 웅석봉 방향에서 내려오는 지맥꾼들은 여기서 좌틀하여 운리 방향 이정표를 보고 진행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소위 '남강태극종주'루트만 남기고 모든 산줄기를 다 모았습니다.

웅석봉까지는 오로지 한 길입니다.

11:06

990.9봉은 좌측으로 사면치기하여 진행합니다.

12:02

대전금강산악회 분들이 지나갑니다.

지나가면서 대원들의 속도를 체크해 보니 앞의 두 분은 사람같지가 않군요.

그 분들이 웅석봉을 10시 경애 출발했다고 하는데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 속도로군요.

조망터에 앉아 푹 쉬어 갑니다.

좌측으로 마근담봉 ~ 감투봉.....

주산... 칠성봉..... 

문제는 삼신봉 우측으로 무등산이 보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진으로 보니까 헷갈리는군요.

삼신봉 좌측으로는 낙남정맥.

.............

천왕봉과 중봉.

그 아래 써리봉.

우측으로 독바위 ~ 도토리봉.

맨 뒤로 임천지맥과 남강지맥.

밤버리재와 왕산, 필봉산.

웅석봉으로 오르는 길.

오늘 날씨가 아무리 덥더라도 100% 만족하는 산행입니다.

언제 지리를 이렇게 봤었는지 기억이 없습니다.

삼장면 법계리....

남강이 흘러가는 곳.....

진양호.

12:29

지도 #3의 '사'의 곳입니다.

참 이름들도 잘 짓습니다.

큰들날봉.

이곳에서 782.5봉으로 진행하여 법계리로 내려간다는 것 이이에는 별 의미가 없는 봉우리입니다.

어쨌든 지금 걷고 있는 이 능선을 '달뜨기능선'이라고 부릅니다.

천왕봉이나 써리봉의 비트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소년 빨치산이 이 능선위로 떠오르는 덜의 처연한 달빛을 보고는 이미 죽은 가족들 생각과 집에 가고 싶은 생각에 눈물을 글썽였다는 데서 온 이름이라고 합니다.

13:02

너무 느긋하게 놀면서 가는 거 같습니다.

997.5봉을 지납니다.

어차피 이런 날이라면 석대산 가는건 이미 포기입니다.

물을 그렇게 무겁게 지고 올라왔건만 이제 두 통 밖에 남지 않았고.....

13:43

드디어 웅석봉 사거리입니다.

좌틀하면 밤머리재나 기산으로 갈 수 있고....

여기서 또 10분 정도 쉬다가 갑니다.

산행을 하는 건지 아니면 더위를 빌미 삼아 놀러 온 건지....

14:06

23분이나 놀다가 웅석봉으로 향합니다. 

헬기장에서 우틀하면 둘레길을 가느곳이고 샘도 있지만 요즘 날씨에 물이 있을까요?

들어가는 입구가 잡목과 풀로 꽉 막혀 있어 그냥 올라갑니다.

멀리 진양호를 봅니다.

14:13

웅석봉 정상 바로 전에 이정표가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우틀하여 운리 방향으로 가야합니다.

그 길이 곧 '남강태극종주'루트이기도 하고요.

14:15

이게 몇 년 만입니까?

정말 오랜만에 웅석봉에 오릅니다.

웅석봉은 지리의 동쪽을 책임지고 있다. 예전에는 지리동부능선이라고 많이 불렸으나 1980년 산경표가 알려지고 박성태 선생의 신산경표가 발표된 이후 웅석지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다가 최근에는 대한산경표의 덕천지맥이라는 이름도 회자되고 있다. 또한 능선의 방향을 달리하여 'J3 클럽의 배병만이 지리태극종주라는 장거리 산행 코스를 개척한 후에는 그 이름으로 지나기도 한다.

 

웅석봉에 대하여 조금 더 자세히 볼까 이 웅석봉 정상에 곰바위 같이 생긴 바위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곰이 굴러 떨어져 죽은 산이라고도 하는데 선뜻 동의하기가 쉽지 않다. 필자는 이를 차라리 우리 옛말에서 그 유래를 찾고 싶다. 즉 옛 사람들에게 모든 산이 그렇겠지만 특히 지리산은 신성’, ‘신령그 자체였다. 그러니 신이나 그 정도로 신성하고 높은 존재를 뜻하는 우리말에 ᄀᆞᆷ이라는 단어가 있다. ‘’, ‘’, ‘’, ‘고마’, ‘구마등이 거기서 나온 변형어이다. 지금의 고맙다.’라는 말이다 감사하다.’라는 말이 다 그런 말이다.

 

그러니 그런 신성한 바위가 있는 골이면 가마골’, 그런 신성한 곳 즉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신성한 땅이면 검산’, ‘검암등이었을 것이니 그들의 한자어는 劍巖’, ‘劍山정도였을 것이다. 같은 취지로 그런 발음을 가진 동물들 중에 우리 신화와 관련된 동물이 바로 이다. 그 한자어가 이니 다른 곳도 아닌 이 신성한 지리산의 한 봉우리가 신성한 산 즉 ᄀᆞᆷ바위 곰바위웅석이 됨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웅석봉은 그저 신성스러운 산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우선 천왕봉을 봅니다.

천왕봉을 지나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는 덕천지맥의 흐름이 힘찹니다.

그 좌측으로 낙동정맥이, 그 앞으로는 황금능선이 그리고 그 앞으로는 치밭목능선이 명백합니다.

로 앞 능선은 밤머리재에서 올라온 능선이죠.

좌측으로 감투봉과 이방산.

2등급 삼각점(산청26)을 확인하고 뒤에 있는 전망대로 갑니다.

둔철산823.4m.

굉장히 낮게 보이는군요.

우측 외송마을에서 올라갔었죠.

맨 좌측이 한우산 부근에서 내려오는 의령지맥(신산경표에서는 진양기맥).

그 사이에 흐르는 강이 양천.

그러니 그 앞의 지맥이 양천(정수)지맥으로 아까 둔철산 바로 뒤에서 좌틀하여 양천과 남강이 만나는 합수점으로 진행합니다.

바로 좌측이 산청읍내.

바로 앞으로 경호강이 흐릅니다.

이 경호강의 원 이름은 남강이죠?

 

그 경호1교를 건너면서 금서면을 떠나 산청읍으로 들어서게 된다. 산청의 예전 이름은 산음이었다. 중국을 사대事大하다 못해 모화慕華까지 한 옛 선비들은 지품천현이었던 이 산청을 산음으로 바꿨다. 신라 경덕왕 때의 일이었다. 중국 절강성 소흥현 산음(상해 바로 아래의 소흥시紹興市)의 빼어난 산수와 비견된다고 하여 거기서 따온 이름이란다. 그래서 중국 산음의 경호강 같이 이 남강도 산청으로 들어서면 특히 경호강이라 부르는 것이다. 단성이 끝나는 곳까지는 그렇게 부른다.

 

그러니 경호강의 본 이름은 남강이다. 이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볼까? 이 물줄기의 시작은 남덕유산1507.8m이다. 백두대간이 백두산을 떠나 남덕유산에 이르러 남동쪽으로 가지줄기 하나를 칠 때 그 사이에서 발원하는 물줄기가 바로 남강인 것이다. 이 물줄기는 함양군을 관통하면서 함양의 모든 물줄기를 품고는 산청군 생초면에서 지리산 물인 엄천을 받으면서 잠시 이름을 경호강으로 바꾼다. 그러고는 단성까지는 경호강이라는 이름으로 흐르지만 어디까지나 본명은 남강인 것이다.

 

이 남강이 하는 역할 중 하나는 지리산의 영역을 한정한다는 것이다. 즉 지리산은 남강을 만나면서 모든 맥들은 다 끝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덕천지맥이나 지리태극종주, 남강태극종주, 지리동부능선까지도 모두 그 맥의 끝은 이 남강까지 인 것이다. 남강과 지리산과의 관계는 이것만 이해해도 된다.

 

중국 산음의 대표적인 인물로 문학가이자 서예가인 왕희지(307~365)가 있으니 그와 관련된 일화가 한 편 들린다. ‘백아환자白鵝換字란 고사와 관련된 얘기다. 경호1교를 건너면서 좌측을 보면 경호교 앞 우측으로 산청초등학교가 보이는데 그 초교 본관 자리에 예전에 환아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다 한다. 밀양의 영남루, 진주 촉석루와 더불어 영남 3대 누각으로 알려진 정자였다.

 

백아환자白鵝換字유난히 거위를 좋아했던 왕희지가 흰 거위白鵝를 얻기 위해 도덕경을 자신의 필체로 써서 그 둘을 바꿨다.'는 유명한 고사에서 따와 정자를 지으면서 창건 당시 저명한 선비였던 권반權攀(14191472)환아정換鵝亭이라 이름 지었고 그 현판의 글씨는 당대 최고의 명필 한석봉(1543~1605)이 썼다. 그러나 정유재란 때 소실됐고 다시 복원된 것이 한국전쟁 때 또 소실되었으나 지금까지 복원되지 못하고 있다가 최근 들어 복원 작업이 진행 중이다.

 

김선신의 두류전지는 산청지에는 객관 서쪽에 있으며 강가(경호강)에 임해 굽어보고 있다. 현감 심린이 건립했으며 화산花山(안동의 다른 이름) 권반이 우군 왕희지의 고사를 취해 이름을 지었다. 우암 송시열과 백헌 이경석의 기문이 있다.”고 적었다.

 

14894월 봄이 무르익은 계절에 탁영 김일손도 지리산 유람을 떠나면서 이곳을 지났다. 그는 환아정換鵝亭에 올라 기문記文을 보고는 북쪽으로 맑은 강을 대하니, 유유하게 흘러가는 물에 대한 소회가 있었다. 그래서 잠시 비스듬히 누워 눈을 붙였다가 일어났다. ! 어진 마을을 택하여 거처하는 것이 지혜요. 나무 위에 깃들여 험악한 물을 피하는 것이 총명함이로구나. 고을 이름이 산음이고 정자 이름이 환아換鵝, 아마도 이 고을에 회계산會稽山의 산수를 연모하는 사람이 있었나 보다. 우리들이 어찌 이곳에서 동진東晉의 풍류를 영원히 이을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그 규모에 대해서 정유재란 뒤 복원한 환아정을 본 김회석(1856~1934)매우 웅장하고 아름다웠다.”고 그렸는데 이런 환아정을 지나면서 시를 지은 사람들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남주헌(1769~1821)은 함양군수 재직 중이던 1803. 3. 산청현감 정유순鄭有淳, 진주 목사 이낙수 등과 함께 지리산을 올랐다. 산행 도중 산음에 들러서는 이 환아정換鵝亭에 올라 주변을 이렇게 그렸다. “정자 아래로 강물이 흘렀고, 강가에 절벽이 임해 있었으며, 예쁜 꽃과 길쭉한 대나무가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이곳의 옛 지명은 산음山陰이다. 그래서 산은 회계산會稽山이라 일컫고 물은 경호강鏡湖江이라 이름하며, 왕일소王逸少(필자 주 왕희지)의 고사를 본떠 환아정을 지은 것이다. 여기는 내가 여러 차례 본 곳이다.”

 

그렇게 둘러보고는 산음을 떠나면서 시 한 수를 읊는다.

 

稽産鏡水繞空臺 회계산과 경호강이 빈 누대를 감싼 자리

癸丑春年上巳會 계축년(353)의 봄날이 상기일과 겸해 돌아왔네

그러면서,

籠鵝已去沙鷗至 거위 안고 떠나가니 갈매기만 날아오고

道士難逢洞客來 도사 상봉 어려우니 동객만 찾아오네.

 

 

그런데 그 경호강과 어우러진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회계산이 어디인가? 대동여지도와 조선지도에도 나와 있는 이 회계산이 현대 지도에는 위치가 불분명하다. 대동여지도에 의하면 회계산은 동산의 북동쪽 정곡 마을 좌측에 있다고 하고, ‘비변사인방안지도와 광여도에 의하면 관문으로부터 5리 거리라고 되어있다. 그걸 경우 동산이 현재 산청의 진산인 꽃봉산237.5m이라고 하니 회계산은 지금의 산청군 하수 종말 처리장 옆에 있는 231.7봉이라는 견해가 있으나 이 정도의 조망의 봉우리에 그 수려한 이름을 갖다 붙였을까?

 

 

꽃봉산에서 뒤로 오르면 와룡산416.7n ~ 상여봉508.9m ~ 정수산829.8m으로 오릅니다.

저 상여봉이 대동여지도 등 옛 지도에는 쌍교봉雙轎峰이라 표기되어 있습니다.

근데 왜 이상한 이름으로 바꾼 건지....

중앙 제일 뒤로 황매산843.2m이 보이는군요.

정수산과 둔철산.

중앙 도토리봉과 우측의 필봉산과 왕산.

도토리봉 뒤로 법화산.

맨 좌측이 새봉1322.3과 와불산1213.9m인가?

아까와는 날씨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남쪽으로 진양호.

좌측 아래로 백마봉과 집현산.

아쉬움에 천왕봉을 다시 보고....

황매산.

육안으로는 황매산 우측으로 팔공산도 보였는데....

좌측으로는 가야산과 수도산까지 보였는데.....

또 너무 놀았습니다.

14:59

45분이나 놀았으니....

오늘 산행의 반은 노는 시간.

음.....

좌측이 이른바 남강태극길.

우측 청계저수지.

가운데로 파인 청계계곡을 따라 내려갈 겁니다.

15:25

가파른 비알을 따라 내려와 임도에 닿습니다.

여기가 지리산 둘레길이라 눈에 익은 곳입니다.

시멘트 도로를 따라도 되지만 숲으로 들갑니다. 

15:28

청계계곡 입구입니다.

다시 임도를 만나고는 남강길은 포기하고 청계계곡으로 내려가기로 했으니 빵 한 쪼가리와 물을 다 마십니다.

우측 숲으로 들어갑니다.

그러고 내려가는 계곡길.

중간에 알탕 두 번 하고....

마지막 물에서 옷을 갈아 입고 택시를 부릅니다.

18:03

청계저수지로 차가 들어오는군요.

더운 날 느림보 산행이었지만 오늘 볼 건 다 봤으니 지리동부에서 너무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평택의 산그림자님은 무사히 완주를 하였을라나?

너무 더워서리....

다음 주는 시무산 ~ 수양산을 잇는 오리지널 태극종주와 990.4봉 ~ 백운산을 잇는 덕천지맥 코스로 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