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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정맥/낙동정맥(2011.11.12.~2012.12.8.)

낙동정맥 2회차(피나무재 ~ 642.9봉 ~ 질고개 ~ 785.2봉 ~ 간장현 ~ 통점재)

오랜만에 낙동정맥에 듭니다.

산경표는 우리나라의 산줄기를 1대간 1정간 13정맥으로 분류하였습니다.

간幹은 줄기요 맥脈은 줄기에서 흘러나온 가지라 하였으니 정맥은 모두 대간에서 가지친 가지 줄기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물줄기를 기본으로 하여 우리나라의 산세를 분류한 선조들의 지혜의 산물인 것입니다.

 

그런 산줄기를 요즘은 어떻게 인식하고 있습니까?

백두대간이나 낙동정맥이라는 개념 대신 혹시 태백산맥이라고 쓰고 있지는 않나요?

학교에서는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지질학적 개념에서 나온 용어를 지리학에서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죠.

그들의 스승인 고토분지로가 알려준 대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물론 학자들 사이에서 산맥의 개념을 버리고 지괴 혹은 지체로 가야 한다는 논의가 진행 중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고토 분지로'를 버리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가르쳐준 숯한 잘못된 교육이 우리 산꾼들에게는 많은 방황을 가져줬던 것 만큼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태백산맥에 태백산은 없다?

 

그러니까 태백산 부쇠봉에서 온전하게 강원도로 들어간다는 얘기지? 그런데 예전에 우리가 잠시 백두대간을 몰랐었을 때 그때는 태백산맥이라고 불렀잖아. 그 태백산맥은 이 태백산 때문에 붙여진 이름 아니겠어? 그런데 태백산맥은 여기서 어떻게 낙동정맥 방향으로 이어지는 거야? 분명 낙동강을 건너야 할 텐데.”

중요한 지적이야. 사실 백두대간과 태백산맥의 개념은 전혀 다른 거야. 백두대간은 분수계의 개념인 반면 태백산맥은 지질학적 개념이라 볼 수 있지. 땅속에 있던 지질구조선을 얘기하는 거니까. 그게 지리학에 편입이 된 건 순전히 지형의 형성 과정 파악에 필요했기 때문이었어. 즉 거의 평평했던 지구에 화산 활동을 동반한 단층이나 습곡작용 같은 지각변동이 일어났고 그로 인해 구조선이 발달하게 됐다는 것. 그러니까 지각변동에 의해서 형성되는 단층, 습곡, 산맥 등을 구조선이라고 하잖아. 산맥 얘기할 때 자세히 보기로 하고. 어쨌든 그 지질구조선이 수천만 년을 지나면서 침식 풍화작용을 거쳐 현재의 형상을 갖춘 게 분수계인 산줄기잖아. 그러니까 백두대간을 이렇게 정의하면 될 거야. 지각변동에 의하여 형성된 지질구조선이 수천만 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침식, 풍화작용을 통하여 현재의 산줄기가 만들어졌다. 그 산줄기는 분수계 역할을 하는데, 그 중 민족의 영산 백두산을 축으로 하여 한반도를 동서로 양분하여 지리산에 이르는 가장 긴 산줄기를 백두대간이라 한다. 이 백두대간을 아버지 줄기로 나라의 모든 산과 모든 물이 여기서 흘러나가니 백두산은 그들의 조종(祖宗)이라 불린다.’ 이 정도면 되지 않겠나? 그러니 예전엔 학교에서 구조선도 아니고 그렇다고 산줄기 개념도 아닌 엉성한 산맥 개념만 가르치고 배웠던 게 우리 기성세대에게는 큰 약점이었어. 당시 지리학자들도 그러했을 것이니까.”

지리 교육이 잘못 됐다는 거 아니야?”

고토 분지로로부터 시작된 우리나라 근대 지리교육이 지금껏 별다른 변화 없이 이어졌다는 것에 대하여 지리학계의 노력이 부족했다는 거지. 지금은 사실 학자들이 여기서 벗어나려는 흔적이 많이 보여.”

그럼 예전에는 태백산맥 종주를 어떻게 한 거야?”

말은 태백산맥 종주였는데 산맥을 종주한 게 아니고 실제는 백두대간 일부와 낙동정맥 일부를 이어서 걸은 것이지. 백번 양보하여 그 당시 개념으로 얘기하더라도 태백산맥을 걸은 게 아니고 태백산맥의 분수계만 걸었다는 것이지. 산맥 = 분수계의 개념으로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엄격하게 따지면 산맥은 사람이 걷거나 종주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야.”

그래도 명색이 태백산맥인데 태백산은 지나야 했을 거 아니야!”

결론을 우선 보자면 그들이 걸었던 태백산맥에는 태백산이 없었어. 즉 태백산맥 안에는 태백산이 없었던 거야!”

 

그랬다. 태백산맥은 태백산을 품어야 태백산맥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었을 것 아닌가. 당연히 구조선은 분수계와 달라 태백산맥이라 하면 산줄기의 분수계를 얘기하는 게 아니고 지괴(地塊)나 산괴(山塊)를 얘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태백산맥은 당연히 태백산을 품고 있다고 얘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인식하고 있었던 사람이 얼마나 있었겠는가?

 

남난희가 걸은 태백산맥

 

그래서 예전에 태백산맥을 종주하던 사람들은 항상 여기서 알바를 하기 마련이었던 거야.”

그것을 입증해 줄 중요한 증거가 하나 있다. 여성 산악인 중에 울진 출신 남난희(1957 ~ )가 바로 그 증거다. 지금도 지리산에 묻혀 살고 있으니 영원한 산악인이다. 아리따운 처녀시절 국토를 제대로 알자.’는 슬로건으로 국토순례회가 결성되었을 때, 그녀는 1984년 동계 태백산맥 단독 종주를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결행하게 된다. 예정 진행 구간을 개념도로 보면 1984. 1. 1. 금정산을 출발하여 주왕산과 백암산을 지나 1984. 2. 11. 구봉산 ~ 매봉산을 지나 대덕산에 이른 다음, 두타산 ~ 황병산을 거쳐 1984. 3. 10. 진부령에 도착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진행 중 6차 지원조와 만나는 곳은 정선군 두문동에 있는 지금은 두문동재로 더 많이 불리는 싸리재이다. 그녀의 손에는 1/25,000 지도가 들려 있다.

한 가지 특기할 만한 것은 태백산맥을 종주하는 그녀의 계획서에는 태백산이 들어 있지 않았다. 태백산맥을 종주한다고 하면서 정작 태백산은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1984. 2. 12.로 예정된 6차 지원조와 싸리재에서 만날 수 있을까? 산경표를 알아 마루금을 읽을 줄 아는 우리는 벌써부터 걱정스러운 눈길을 그녀에게 보낸다. 싸리재는 백두대간 매봉산 ~ 태백산 구간(태백산맥)에 있고 낙동정맥이 대간을 만나는 곳은 삼수령인 피재인데 어쩌나....

 

남난희를 따라가 본다. 1984. 1. 1. 금정산을 출발한 그녀는 갖은 고생을 다하면서 1984. 2. 7. 통리역으로 떨어진다. 대단하다. 통리역 부근에서 1박을 한 후, 예당골 ~ 매봉산에서 왼쪽으로 틀어 고랭지 채소밭을 경작하는 마을들을 보고는 1279(지금 지도의 1277.4)을 거쳐 예정보다 이르게 금대봉1420m(책에는 1418)에 떨어지게 된다. 그러고는 싸리재 헬기장으로 내려가 지원조와 만난다. 지원조와 헤어져 하루 휴식을 취하고 그녀는 대덕산 방향으로 틀어 태백산맥을 이어가다가 물줄기를 만나는 바람에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그러고는 다행히 인근 마을 주민을 만나 그들로부터 피재 ~ 건의령 얘기를 들으면서 다시 지도를 확인하여 보았지만 이미 상당 구간을 우회한 뒤였다. 3일이라는 시간을 허비하였던 것이다.

 

뭐가 잘못 되었을까? 애초에 이 국토순례회팀은 태백산맥 종주 중 태백산은 지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더라도 태백산맥 종주에 태백산이 포함되지 않은 것에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이들이 산맥 산행에 충실하였다면 남난희는 이런 식으로 운행을 하였어야 했다. 1984. 2. 6. 석개재를 지나 면산1246.3m(책에서는 금산이라고 하였는데 아마 綿山錦山으로 잘못 읽은 듯)에서 야영을 한다. 그러고는 다음 날 토산령으로 진행하여 통리로 가게 되는데 여기서 대형알바의 서곡은 시작되었던 것이다.

 

남난희는 이 면산에서 좌회전하여 강원도와 경상북도 도계 능선을 탄 다음, 삼방산1176.7m을 지나 878.4봉에서 910번 도로를 만난 다음 느긋하게 낙동강을 석포대교로 건너 연화산1053.5m ~ 화성재 ~ 싸리재 ~ 문수봉1514.9m ~ 부쇠봉1549.4m을 지나 태백산 장군봉으로 진행(아쉬움에 지도 상에는 남난희 루트라 표기)했어야 했다. 그래야 함백산을 지나 싸리재(두문동재)에서 일행도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태백산도 지날 수 있었고 그렇게 함으로써 태백산맥 종주 산행에 충실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남난희는 토산령을 넘어 통리에서 구봉산으로 진행하는 능선에 충실하려 했던 것이 매봉산 ~ 금대봉 루트를 타게 된 결과가 됐다. 즉 산줄기 개념을 제대로 이해 못했던 당시의 사고방식으로는 구봉산 ~ 매봉산 ~ 금대봉 ~ 대덕산 ~ 35번 도로 ~ 큰재로 진행하려던 것이 대형알바를 하게 된 원인이었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남난희는 얘기한다. “이상하게도 엉뚱한 물줄기가 가로놓여 있고 길이 끊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여기서 최소한 두 가지를 지적해야 한다. 첫째 남난희는 태백산맥을 종주하면서 산맥이라는 개념을 학교에서 배운 대로 그대로 믿는 우()를 범했다. 즉 산맥은 분수계가 아니라 물줄기도 건너는 그런 지질구조선이라는 것을 알았어야 했는데 그녀는 산맥을 분수계 즉 산줄기로 오해했던 것이다. 만약 산맥 산줄기, 분수계라는 사실만 제대로 알았더라면 과감하게 황지천과 철암천이 모여서 오는 낙동강을 건넜을 것이다. 그러고는 태백산맥이라는 이름에 충실하게 태백산도 지났을 것이다.

둘째 아니면 애초 태백산맥 종주에는 태백산으로 진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 매봉산이나 대덕산을 아예 산행 예정지에 넣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니 지원조와의 만남도 싸리재가 아닌 피재 즉 삼수령이었어야 했다.

 

즉 태백산맥은 땅속에서 올라온 지질구조선 혹은 지괴 등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분수계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미리 알았어야 했다. 하지만 그때는 제대로 몰랐었다. 산맥 = 산줄기로만 알았던 것이다. 학교에서 그렇게 가르쳐줬으니까.

 

다시 말해서 낙동정맥을 타고 온 산줄기는 피재 즉 삼수령에서 바로 직진을 하여 건의령 ~ 푯대봉 방향으로 진행을 하여야 하기 때문에 매봉산이나 대덕산을 산행계획표에 넣지 말았어야 했다. “처음 계획을 세울 때, 먼저 태백산맥을 했던 우정산악회와 성량수 씨의 계획서대로 했다가 나중에 보니 수맥이 가로놓인 곳이 몇 군데 있어 급히 계획을 바꾼 것인데 그게 잘못된 듯했다.”고 술회한다.

 

이 내용은 아주 중요한 점을 시사해준다. 즉 고토 분지로도 이 지점에서 소백산맥이 태백산맥에서 갈라지는 지점을 찾지 못했다고 술회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고토도 산맥을 이어지는 선 즉 분수계로 인식했음을 어느 정도 확인해 주는 대목이라 하겠다.

 

안타깝네. 산경표를 몰랐었으니. 그리고 대간으로 간 것도 아니고 지금의 어천지맥으로 가버렸으니.”

 

 -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328쪽 이하

 

 

제가 낙동정맥에 들은 해가 2012년이니 벌써 7년 전의 일입니다.

따뜻한 봄날 무박으로 진행한 피나무재 ~ 성법령 분기점 구간은 약26km였습니다.

조망은 빵점이라 별 특이한 곳도 없었고 그러니 기억에 남는 곳 또한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이 구만은 산경학山經學에서 보면 상당히 중요하고 논의가 있는 구간인 만큼 확실한 정리도 필요한 구간입니다.

물론 대부분 다음 구간에 해당하는 곳이긴 하지만 미리 짚어볼 필요도 있는 곳이긴 합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는 관심 없는 이들에게는 정말 진부하고 따분한 얘기들이죠.

필요한 곳에서 다시 살펴보기로 하고.....

 

그런데 오늘 산행은 정말 파격적입니다.

갑작스러운 행보에 저도 놀랄 따름입니다.

가본 적도 없는 '좋은사람들'이라는 산악회에 발을 들여놓다니...

그것도 낙동정맥에...

어쨌든 개인적인 필요에 의해 단발적이긴 하지만 우리나라 최대의 회원 수를 가진 산악회와 낙동정맥을 하게 되었습니다.

 

06:40

사당에서 출발하는 버스에 몸을 담습니다.

36인승으로 개조한 버스는 자리가 넓어 다리를 쭉 뻗어도 될 만큼 널널합니다.

주왕산면을 거쳐 들머리인 피나무재에 도착합니다.

주변에 피나무가 많은가요?

 

지도 #1

10:30

준비된 선수부터 개구멍을 통하여 능선에 붙습니다.

순전한 낙석방지용 철책입니다.

이 피나무재는 주왕산면 이전리와 내룡리를 잇는 고개입니다.

참 우리가 걷는 3,. 27. 다음 날인 3. 28.부터 이 면이 기존의 부동면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주왕산면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주 적절한 처사입니다.

그러고 보니 함양군 마천면이 지리산면이라는 이름으로 고치려다가 다른 면들의 반대로 백지화 된 적이 있었죠?

10:40

부드러운 등로입니다.

지금이 산에 다니기 가장 좋을 때입니다.

춥지도 덥지도 않고 아직 덩굴도 자라지 않기도 하거니와 나뭇잎도 없어 조망도 좋으니....

하지만 이곳은 예외입니다.

잡목으로 조망은커녕 근처 지형지물을 보기도 쉽지 않습니다.

우측으로 임도가 따라옵니다.

이 임도는 622.7봉을 지날 때까지 같이 하게 될 겁니다.

10:50

지도 #1의 '가'의 곳에서 평해황씨 음택을 지나고....

10:52

그러고는 아까 보았던 임도를 만납니다.

잠시 임도로 진행합니다.

10:59

다시 능선으로 올라 좌측으로 황정소류지를 봅니다.

11:03

지도 #1의 '나'의 곳의 무명봉은 직진하여 그 봉으로 오르는 길보다 좌우측으로 사면치기하는 길이 더 발달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무 생각없이 진행하면 정면으로 보이는 우측 길을 따르기 십상입니다.

물론 의도적으로 667.1봉을 지나 무포산717.5에서 2등급삼각점(청송25)을 확인하고 올 수도 있지만 이 팀이 그리 만만한 팀이 아니므로 생략합니다.

좌측으로 사면치기를 하면서 주왕산면과 부남면의 면계를 따라 진행하게 됩니다.

11:13

펑퍼짐한 592.5봉을 지나,

11:16

이번 구간은 오름과 내림이 심하지 않은 게 특징입니다.

예전에 이 구간을 지날 때 그렇게 준족이 아닌 ㅔ 걸음걸이가 평균 3.4km였으니 오늘도 5시간 반 정도면 18km구간을 충분히 극복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분들 보통 준족들이 아니시군요.

여성 대원들이나 남성 대원들 모두들 날아 다니는 것 같으니....

황정소류지는 이제 옆으로 바짝 붙었고....

그 뒤로 내연산에서 동대산으로 달려오는 영덕남지맥을 볼 수 있는데 잡목으로 인해 영.....

우측으로 임도가 따라옵니다.

그런데 오늘은 '블야인증장소'가 두 곳이라고 하는군요.

하나는 622.7봉이고 다른 하나는 간장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곳은 준희선생님의 산패가 걸려 있는 곳이라고도 하고...

11:23

그런데 정맥길에서 약 20m 정도 떨어진 이곳이 622.7봉인데 산패가 걸려 있지 않습니다. 

참고도 #1

집햅부에서 나눠준 진혁진 개념도에도 622.7봉이라 분명히 나와 있는데 현장 산패하고는 좀 다르게 표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좀 이상합니다.

분명 저의 사부님이시기도 한 준희선생님께서 이런 실수를 하실 뿐이 아닐 뿐더러 제가 7년 전 지날 때도 이곳에서 삼각점을 확인하지 못했는데.....

이런 불가사의한 일이....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삼각점이 이곳이 아닌 624.9ㅗㅇ에 찍혀 있고....

이게 도대체 무슨 변고람!

11:24

그 622.7봉을 빠져나오자마자 자작나무 숲이 펼쳐집니다.

그러니 위 개념도의 자작나무 숲이라는 표기도 실제 현장과는 좀 다르게 나왔습니다.

자작나무 숲이 약 4분 정도 계속된다는 얘기죠.

정정을 요하는 대목입니다.

11:39

그러고는  4등급삼각점(청송464)가 있는 624.9봉입니다.

아!

그런데 이곳에 622.7봉이라는 산패가 부착되어 있군요.

선생님이 이런 실수를 하실 분이 아닌데 고도 표시가 잘못 되어 있군요.

이곳은 '▲ 624.9'로 표기되어 있어야 맞습니다.

그리고 블야인증점도 622.7봉이 아닌 624.9봉으로 되어야 하고.....

아무래도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선생님의 산패에는 분명 이곳이 삼각점이 있는 622.7봉이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혹시 국토지리정보원에서 장난을 친 것은 아닐까?

지난 일요일 진행했던 문산지맥의 광평산과 파평산도 그랬으니...

그렇다면 옛 지도를 찾아서 확인을 해야겠습니다.  

참고도 #2 국토지리정보원 간 2012년 지도

 

그렇군요.

2012년까지는 이 624.9봉이 622.7봉으로 표기되어 있었고 지도 #1의 622.7봉은 위 참고도 #2의 'A'의 곳인 무명봉이었던 곳입니다.

국토지리정보원의 업무 착오로 여러분들이 골탕을 먹은 것입니다.

그러니 선생님은 2012년 이전의 국토지리정보원 지도를 근거로 산패를 제작하셨으니 지금의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이 봉은 624.9봉이 맞되 산패의 표시는 그대로 '▲622.7'로 갈 수 밖에 없겠습니다.

이것도 하나의 역사자료이니까 말입니다.

11:40

묵은 헬기장을 나와 깨끗하게 벌목을 한 곳으로 나옵니다.

동진을 합니다.

11:41

인증 샷을 마치고 내려오는 대원들.... 

지도 #2

12:05

530.3봉은 좌측으로 사면치기하여 진행하고....

12:10

따뜻한 봄날입니다.

바람은 살살 불어와서 땀도 식혀주고....

12:12

지도 #2의 '다'의 곳인 이곳도 우측 능선을 타서 575.3봉을 찍어야 하는데 등로는 이렇게 사면으로 나 있습니다.

하긴 사면斜面 좋아하다 알바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자신 없을 경우에는 능선 위로 올라가는 게 상책입니다.

12:16

관리되지 않은 무덤을 지나,

12:29

질고개로 떨어집니다.

이 고개 역시 부남면과 주왕산면의 경계로 정맥길은 이들 면계를 따라 계속 이어오고 있습니다.

도로를 건너 밋밋한 등로를 따라 오르면,

12:39

지도 #2의 '라'의 곳에 있는 산불감시초소입니다.

갑자기 산꾼들이 몰려 지나가니 아저씨가 깜짝 놀라시는군요.

인사를 하고 지납니다.

13:07

좌측으로 라리마을이 보입니다.

조금 전 지나온 질고개에서 발원하는 가천은 대서천에 합류되고 이 대서천은 포도산에서 내려오는 영덕오십천에 흡수되어 동해로 흘러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 물줄기인 영덕오십천이 동해와 만나는 합수점에서 이 낙동정맥에서 가지를 친 가지 줄기가 그맥을 다하게 됩니다.

내연산을 지난다고 하여 신산경표에서 내연지맥이라 일컫는 산줄기인데 이를 대한산경표에서는 물줄기의 이름을 따서 영덕남지맥이라 부릅니다.

조금 전 말씀드린대로 이 부근이 지맥의 분기와 관련하여 아주 복잡한 곳이라 상당한 설명이 필요한데 그러기에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으니 뒤로 미룹니다. 

참고도 #3  영덕남지맥 개념도

 

이곳의 지형을 보자면 낙동정맥 동쪽으로 흐르는 물들은 모두 동해로 흘러들어가게 되고 서쪽으로 흐르는 물들은 모두 낙동강으로 흘러들어 남해로 흐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맥이 하는 역할입니다.

이 낙동정맥은 다음 구간인 741.5봉인 가사령 분기점에서 변화무쌍하게 움직이게 되고 여기가 낙동정맥에서는 가장 중요한 곳이며 신산경표와 대한산경표간에 논의의 중심에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제가 다음 구간에 동참하게 되면 자세하게 그 지맥의 변화에 대해서 설명을 해드릴 수 있을 텐데 제 일정이 어떻게 될 지 모르겠군요.

정맥을 마치고 지맥에 드실 분들 같으면 궁금하시겠지만 아마도 정맥에서 산줄기 산행을 마치실 분이 대부분인지라...

사실 지맥 산행은 수행자 혹은 구도자의 자세로 산행을 하시는 분들이나 이어갈 것이라 보여지니 오늘은 생략하기로 합니다.

13:08

581.2봉을 지나,

13:17

570.2봉을 지나 안부로 떨어집니다.

지도 #3

부드러운 능선의 연속입니다.

13:34

675.6봉도 그저 밋밋하기만 하고....

13:45

666봉도 역시 사면치기.... 

13:51

지도 #3의 '마'에 이르러 좌측으로 표지띠 몇 장이 날리고 나무가 빨간 완장을 찼습니다.

포항 산꾼들이 포항시계를 종주하면서 시계市界 표시를 한 것입니다.

국토지리정보원 지도를 보면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온 곳에 시계가 표시되어 있으나 보통 시계나 면계는 물과 능선을 중심으로 구분하고 있음을 볼 때 포항 산꾼들의 표시가 맞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주왕산면을 버리고 청송군 부남면과 포항시 죽장면의 시계를 따라 진행하게 됩니다.

13:59

흰구름님.

참 잘 걸으십니다.

쉬지 않고 걸으시는데 제가 혀를 내두를 정도이니....

14:03

지도 #3의 '바;의 곳인 안부를 지납니다.

14:07

지도 #3의 '사'의 곳에서는 직진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14:11

683.4봉을 지납니다.

이렇듯 683.4봉은 너른 평원 같습니다.

14:23

지도 #3에서 폐헬기장을 지납니다. 

지도 #4

14:33

그러면 785.2봉을 지나게 되는데,

여기 박혀 있어야 할 3등급삼각점(청송314)을 도저히 찾을 수 없군요.

3분 정도 뒤지다 포기합니다.

803봉을 향해 오릅니다.

거의 평지 수준입니다.

아직까지도 시속 3.5km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14:45

뒤를 돌아 별바위를 보고....

주왕산 줄기를 보기는 하지만 그저 이 정도입니다.

오랜만에 조망이 트이는군요.

14:49

그러고는 803봉입니다.

누가 또 이곳을 유리산이라고 붙여놓았는지...

아무런 고증도 없이 이렇게 자기 멋대로 산이름을 작명하여 산패까지 붙여 놓는 이런 몰상식한 행동은 언제나 없어질지....

양식이 아쉽습니다.

이 803봉은 묵은 헬기장이고....

14:51

납작한 묘를 지나,

비알을 내려오면서 우측을 보니 간장저수지가 보입니다.

이 간장을 한자로 어떻게 쓰는지 궁금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한자로는 나오지 않는군요.

오히려 행정명은 이리현泥峴里로 되어 있으니....

15:06

지도 #4의 '차'의 곳에서는 우측 길을 선택히고,

아!

드디어 영덕남지맥의 굵은 선이 그 위용을 드러냅니다.

저 영덕남지맥은 성법령 부근에서 분기하여 향로봉 ~ 내연산 ~ 동대산을 지나 영덕오십천과 동해가만나는 합수점까지 진행하는 42.8km의 지맥입니다.

아까도 얘기하였다시피 신산경표에서는 내연지맥이라고 부르는 산줄기입니다.

15:28

고개로 떨어집니다.

이 고개가 바로 간장현으로 이곳도 블야인증샷을 하는 장소라고 하죠.

15:41

이제 제법 멋들어진 이정목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좌측으로 상옥히 마을이 보이고 그 뒤로 영덕남지맥이 흐릅니다.

매봉과 향로봉을 잇는 고개가 보이고....

16:05

이제다 왔습니다.

부남면 방향.

버스는 이곳에서 죽장쪽으로 약 1.49km 떨어진 곳에 주차하고 있다고 하니 먹방리로 내려갑니다.

16:26

지금은 영업을 하지 않는 주유소 앞으로 가서 간단하게 씼고  후미대원들을 기다립니다.

다음 구간은 지맥의 고향 가사령 삼거리로 행하고 되고 또 형산북지맥(비학지맥)과 영덕남지맥(내연지맥)이 분기하는 성법령을 지나게 되니 상당히 의미 있는 구간입니다.

그런 구간이 예습은 필수겠죠.

수고들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