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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정맥/낙동정맥(2011.11.12.~2012.12.8.)

낙동정맥이 지나는 금정산....

우리나라 산줄기 체계는 세계 어느 나라도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우리 조상님들의 탁월한 발명품입니다.

사실 물줄기와 산줄기를 둘이 아닌 하나로 인식한 거 자체도 탁월한 발상력입니다.

하지만 더 나아가 백두대간이라는 큰 산줄기에서 나라의 모든 산줄기와 물줄기가 가지쳐 혹은 발원되었다는 것을 인식하였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탄을 넘어 절로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고 그러고는 그것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인간이 살아갈 수 없다는 즉 인간은 자연에 기대어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을 인식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죠.

 

 

그런데 그 백두대간의 시작이 나라가 대륙에서 넘어오는 관문인 백두산이며 그 끝이 지리산이라는 것 자체도 신기하기만 합니다.

어떻게 나라 북쪽에서 가장 높은 산이 백두산일 수가 있겠으며 그 남쪽의 가장 높은 산이 지리산이어야만 했겠습니까?

신의 조화라기 보다는 있어야 할 자리에 그 산들이 있다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그 백두산과 지리산을 잇는 그 선이 백두대간이니.....

그러니 산경표는 이 조화로움의 발현품일 것입니다.

즉 그 백두대간에서 정맥을 분류 하는 발상의 결과물이라는 것이죠. 

 

돌이켜 보면 대간길을 걸으며 보았던 태백의 삼수령.

한강과 낙동강 그리고 오십천이 갈리는 곳이기 때문에 三水嶺입니다.

백두대간이 지나는 그 삼수령에서 낙동정맥이라는 걸출한 산줄기 하나가 가지를 치게 됩니다.

즉 그 幹에서 脈이 되어서는 도상거리 약397km를 달려 그 낙동강이 자신보다 상위등급의 물인 남해로 흘러들어 가 만나는 곳.

몰운대입니다.

沒雲臺.

원래는 섬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것이 낙동강의 토사물이 쌓여 그 팔봉섬이 육지에 연결이 되었다고 하고.....

참고도 #1

사실 정맥의 끝은 실제 몰운대가 아닌 동헌에서 직진을 하여 위 참고도의 붉은선 안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곳은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어 하는 수없이 그곳에서 가장 가까운 몰운대에서 마무리를 하게 되는 것이죠.

 

끈끈한 맛의 해밀산악회 정맥 종주팀이 1+9 대장정의 마무리를 하게 됩니다.

백두대간으로 시작한 그들의 대장정이 9정맥으로 마무리 하는 날이라는 것이죠.

졸업식 날입니다.

그들의 그 행사를 위하여 그 마지막 구간 중 지경고개~ 산성고개 구간을 졸업식 행사를 위해 비워놨습니다.

그러니 오늘 구간은 자연스럽게 부산의 명산 금정산이 들어와 있으며 정맥팀의 빈자리를 명산팀이 채우게 되는군요.

저도 그 빈자리 하나를 얻습니다.

 

지도 #1

2022. 05. 15. 03:06

지경고개에 도착하여 복장을 갖춥니다.

개인적으로는 2012. 11. 24. 이곳을 지났으니 거의 10년 만에 오는 곳이기도 합니다.

등로를 따라 오릅니다.

오늘 산길은 부산시와 경상남도 양산시의 도계를 따라 진행합니다.

 

개 짖는 소리가 시끄럽군요.

전에는 개농장이 있어 공포감을 느끼며 지났던 것입니다.

지경고개가 地境이라는 뜻이라고요?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낙동정맥이 태백산맥의 남부에 해당된다고요?

아니 정맥과 산맥을 혼용하다니요!

아예 그런 말은 쓰지를 말아야지!

산맥 개념과 산줄기 개념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그저 인터넷에 떠도는 잘못된 정보를 그저 편집한 것!

하긴 예전 그러니까 우리가 백두대간을 제대로 인식하기 전인 1980년대 초반에는 태백산맥 종주대라고 하여 금정산부터 진부령 구간을 걷는 팀들이 있었죠.

여성으로서 단독으로 겨울산행을 한 이가 남난희이고 그가 그 기록을 책으로 펴낸 것이 바로 '하얀능선에 서면'라는 책이죠.

 

태백산맥에 태백산은 없다?

“그러니까 태백산 부쇠봉에서 온전하게 강원도로 들어간다는 얘기지? 그런데 예전에 우리가 잠시 백두대간을 몰랐을 때 그때는 태백산맥이라고 불렀잖아. 그 태백산맥은 이 태백산 때문에 붙여진 이름 아니겠어? 그런데 태백산맥은 여기서 어떻게 낙동정맥 방향으로 이어지는 거야? 분명 낙동강을 건너야 할 텐데.”

“중요한 지적이야. 사실 백두대간과 태백산맥의 개념은 전혀 다른 거야. 백두대간은 분수계의 개념인 반면 태백산맥은 지질학적 개념이라 볼 수 있지. 땅속에 있던 지질구조선을 얘기하는 거니까. 그게 지리학에 편입이 된 건 순전히 지형의 형성 과정 파악에 필요했기 때문이었어. 즉 거의 평평했던 지구에 화산 활동을 동반한 단층이나 습곡 작용 같은 지각 변동이 일어났고 그로 인해 구조선이 발달하게 됐다는 것. 그러니까 지각 변동에 의해서 형성되는 단층, 습곡, 산맥 등을 구조선이라고 하잖아. 산맥 얘기할 때 자세히 보기로 하고. 어쨌든 그 지질구조선이 수천만 년을 지나면서 침식․풍화작용을 거쳐 현재의 형상을 갖춘 게 분수계인 산줄기잖아. 그러니까 백두대간을 이렇게 정의하면 될 거야. ‘지각 변동에 의하여 형성된 지질구조선이 수천만 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침식․풍화작용을 통하여 현재의 산줄기가 만들어졌다. 그 산줄기는 분수계 역할을 하는데 그 중 민족의 영산 백두산을 축으로 한반도를 동서로 양분하여 지리산에 이르는 가장 긴 산줄기를 백두대간이라 한다. 이 백두대간을 아버지 줄기로 모든 산과 모든 물이 여기서 흘러나가니 백두산은 그들의 조종(祖宗)이라 불린다.’ 이 정도면 되지 않겠나? 그러니 예전엔 학교에서 구조선도 아니고 그렇다고 산줄기 개념도 아닌 엉성한 산맥 개념만 가르치고 배웠던 게 우리 기성세대에게는 큰 약점이었어. 당시 지리학자들도 그러했을 것이니까.”

“지리교육이 잘못 됐다는 거 아니야?”

“고토 분지로로부터 시작된 우리나라 근대 지리교육이 지금껏 별다른 변화 없이 이어졌다는 것에 대하여 지리학계의 노력이 부족했다는 거지. 지금은 사실 학자들이 여기서 벗어나려는 흔적이 많이 보여.”

“그럼 예전에는 태백산맥 종주를 어떻게 한 거야?”

“말은 태백산맥 종주였는데 산맥을 종주한 게 아니고 실제는 백두대간 일부와 낙동정맥 일부를 이어서 걸은 것이지. 백번 양보하여 그 당시 개념으로 얘기하더라도 태백산맥을 걸은 게 아니고 태백산맥의 분수계만 걸었다는 것이지. ‘산맥=분수계’의 개념으로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엄격하게 따지면 산맥은 사람이 걷거나 종주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야.”

“그래도 명색이 태백산맥인데 태백산은 지나야 했을 거 아니야!”

“결론을 우선 보자면 그들이 걸었던 태백산맥에는 태백산이 없었어. 즉 태백산맥 안에는 태백산이 없었던 거야!”

 

그랬다. 태백산맥은 태백산을 품어야 태백산맥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었을 것 아닌가. 당연히 구조선은 분수계와 달라 태백산맥이라 하면 산줄기의 분수계를 얘기하는 게 아니고 지괴(地塊)나 산괴(山塊)를 얘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태백산맥은 당연히 태백산을 품고 있다고 얘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인식하고 있었던 사람이 얼마나 있었겠는가?

 

 

남난희가 걸은 태백산맥 

“그래서 예전에 태백산맥을 종주하던 사람들은 항상 여기서 ‘알바’를 하기 마련이었던 거야.”

그것을 입증해 줄 중요한 증거가 하나 있다. 여성 산악인 중에 울진 출신 남난희(1957- )가 바로 그 증거다. 지금도 지리산에 묻혀 살고 있으니 영원한 산악인이다. 아리따운 처녀시절 ‘국토를 제대로 알자.’는 슬로건으로 국토순례회가 결성되었을 때, 그녀는 1984년 동계 태백산맥 단독 종주를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결행하게 된다. 예정 진행 구간을 개념도로 보면 1984년 1월 1일 금정산을 출발하여 주왕산과 백암산을 지나 2월 11일 구봉산~매봉산을 지나 대덕산에 이른 다음, 두타산~황병산을 거쳐 진부령에 3월 10일 도착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진행 중 6차 지원조와 만나는 곳은 정선군 두문동에 있는 지금은 두문동재로 더 많이 불리는 싸리재이다. 그녀의 손에는 1/25,000 지도가 들려 있다.

 

한 가지 특기할 만한 것은 태백산맥을 종주하는 그녀의 계획서에는 태백산이 들어 있지 않았다. 태백산맥을 종주한다고 하면서 정작 태백산은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1984년 2월 12일로 예정된 6차 지원조와 싸리재에서 만날 수 있을까? 산경표를 알아 마루금을 읽을 줄 아는 우리는 벌써부터 걱정스러운 눈길을 그녀에게 보낸다. 싸리재는 백두대간 매봉산~태백산 구간(태백산맥)에 있고 낙동정맥이 대간을 만나는 곳은 삼수령인 피재인데 어쩌나….

남난희를 따라가 본다. 1984년 1월 1일 금정산을 출발한 그녀는 갖은 고생을 다하면서 2월 7일 통리역으로 떨어진다. 대단하다. 통리역 부근에서 1박을 한 후, 예당골~매봉산에서 왼쪽으로 틀어 고랭지 채소밭을 경작하는 마을들을 보고는 1279봉(지금 지도의 1277.4봉)을 거쳐 예정보다 이르게 금대봉 1420m(책에는 1418봉)에 떨어지게 된다. 그러고는 싸리재 헬기장으로 내려가 지원조와 만난다. 지원조와 헤어져 하루 휴식을 취하고 그녀는 대덕산 방향으로 틀어 태백산맥을 이어가다가 물줄기를 만나는 바람에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그러고는 다행히 인근 마을 주민을 만나 그들로부터 피재~건의령 얘기를 들으면서 다시 지도를 확인하여 보았지만 이미 상당 구간을 우회한 뒤였다. 3일이라는 시간을 허비하였던 것이다.

 

뭐가 잘못 되었을까? ①애초에 이 ‘국토순례회’ 팀은 태백산맥 종주 중 태백산은 지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②그렇더라도 태백산맥 종주에 태백산이 포함되지 않은 것에 의심도 하지 않았다. ③이들이 산맥 산행에 충실하였다면 남난희는 이런 식으로 운행을 했어야 했다. 즉 1984년 2월 6일 석개재를 지나 면산 1246.3m(책에서는 금산이라고 하였는데 아마 綿山을 錦山으로 잘못 읽은 듯)에서 야영을 한다. 그러고는 다음 날 토산령으로 진행하여 통리로 가게 되는데 여기서 대형 알바의 서곡은 시작되었던 것이다.

 

남난희는 이 면산에서 좌회전하여 강원도와 경상북도 도계 능선을 탄 다음, 삼방산(1176.7m)을 지나 878.4봉에서 910번 도로를 만난 다음 느긋하게 낙동강을 석포대교로 건너 연화산(1053.5m)~화성재~싸리재~문수봉(1514.9m)~부쇠봉(1549.4m)을 지나 태백산 장군봉으로 진행(지도상 ‘남난희가 진행했어야 했을 루트’)했어야 했다. 그래야 함백산을 지나 싸리재(두문동재)에서 일행도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태백산도 지날 수 있었고 그렇게 함으로써 태백산맥 종주 산행에 충실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남난희는 토산령을 넘어 통리에서 구봉산으로 진행하는 능선에 충실하려는 것이 매봉산~금대봉 루트를 타게 된 것이었다. 즉 산줄기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당시의 사고방식으로는 구봉산~매봉산~금대봉~대덕산~35번 도로~큰재로 진행하려던 것이 대형 알바를 하게 된 원인이었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남난희는 얘기한다. “이상하게도 엉뚱한 물줄기가 가로놓여 있고 길이 끊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여기서 최소한 두 가지를 지적해야 한다.

첫째, 남난희는 태백산맥을 종주하면서 산맥이라는 개념을 학교에서 배운 대로 그대로 믿는 우(愚)를 범했다. 즉 산맥은 분수계가 아니라 물줄기도 건너는 그런 지질구조선이라는 것을 알았어야 했는데 그녀는 산맥을 분수계 즉 산줄기로 오해했던 것이다. 만약 ‘산맥≠산줄기, 분수계’라는 사실만 제대로 알았더라면 과감하게 황지천과 철암천이 모여서 오는 낙동강을 건넜을 것이다. 그러고는 태백산맥이라는 이름에 충실하게 태백산도 지났을 것이다.

 

둘째, 아니면 애초 태백산맥 종주에는 태백산으로 진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 매봉산이나 대덕산을 아예 산행 예정지에 넣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니 지원조와의 만남도 싸리재가 아닌 피재 즉 삼수령이었어야 했다.

즉 태백산맥은 땅속에서 올라온 지질구조선 혹은 지괴 등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분수계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미리 알았어야 했다. 하지만 그때는 제대로 몰랐었다. ‘산맥=산줄기’로만 알았던 것이다. 학교에서 그렇게 가르쳐줬으니까.

다시 말해서 낙동정맥을 타고 온 산줄기는 피재 즉 삼수령에서 바로 직진을 하여 건의령~ 푯대봉 방향으로 진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매봉산이나 대덕산을 산행계획표에 넣지 말았어야 했다. 남난희는 “처음 계획을 세울 때, 먼저 태백산맥을 했던 우정산악회와 성량수 씨의 계획서대로 했다가 나중에 보니 수맥이 가로놓인 곳이 몇 군데 있어 급히 계획을 바꾼 것인데 그게 잘못된 듯했다.”라고.” 술회한다.

이 내용은 아주 중요한 점을 시사해준다. 즉 고토 분지로도 이 지점에서 소백산맥이 태백산맥에서 갈라지는 지점을 찾지 못했다고 술회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고토도 산맥을 이어지는 선 즉 분수계로 봤음을 재삼 확인해주는 대목이라 하겠다.

 

“안타깝네. 산경표를 몰랐었으니. 그리고 대간으로 간 것도 아니고 지금의 어천지맥으로 가버렸으니.”

 

-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328쪽 이하

남난희가 침술 치료를 받고 지났던 계명봉으로 오릅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

2007. 2. 24. '산새들의 합창'에서 세운 정상석이 없어졌네요.

시에서 없앤건가.....

어쨌든 금정산金井山은 범어사梵魚寺와 함께 합니다.

魚가 금정산의 유래가 된 井과 관련이 있으니까 말입니다.

이따 금정산 정상에 가서 다시 보죠.

우틀합니다.

날이 밝아졌습니다.

좌측 금정산 부근은 송전탑과 전선으로 뷰가 엉망진창입니다.

지도 #1의 'A'의 곳에 오릅니다.

장산님.

산만 오면 happy하신 분.

그런데 오늘 이정목의 이정표는 하나같이 왜 이다지도 엉터리인지....

아까 보았던 조금은 엉터리인 낙동정맥 안내판에 의하면 '해동여지도'에는 사배현, '해동지도'에는 사배치라 하여 지경고개의 옛 이름이 사배고개였는데 1961년 부산시 고시로 지경고개로 바뀌었다고 표기하였었죠.

그런데 이 이정목에는 사베고개로 그리고 거리도 3km가 조금 넘거늘 이정목에는 1.0km라고 하였으니 여기서 얘기하는 사베고개는 도대체 어디를 얘기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른 아침이라 좀 춥습니다.

장군봉으로 향합니다.

그러면서 낙동강 건너 김해시를 흐르는 낙남정맥 산줄기를 봅니다.

우선 신어산630.8m이 보이면서 낙남정맥의 흐름이 우측으로 흐름을 볼 수 있는데 낙남정맥은 그 끝에 대해서 좀 논의가 있죠?

조금 이따 보기로 합니다.

제가 10년 전 이곳을 지날 때는 억새가 볼만 했었는데.....

오늘은 그 흔적만으로 만족합니다.

송전탑과 전선이 흉물스럽습니다.

아까 장산님이 서 있던 이정목 자리 즉 지도 #1의 'A'의 곳이 갑오봉이라고 하는군요.

지도에도 없는 명칭을 버젓이 이렇게 표기하여 놓다니....

좌측 금정산과 우측 낙동강 건너 김해시 평야지대와 멀리 서낙동강.

바로 우측에 톡 튀어나온 게 낙남정맥에서 분기한 백두산354.3m. 

우측 중앙 앞으로 양산천이 흐르면서 그 양산천이 낙동강에 합수되는 것을 읽을 수 있군요.

그러니 저 아파트 단지가 있는 곳이 바로 양산시 물금읍.

그러니 그 아파트 단지 뒤로 흐르는 지맥이 바로 영남알프스의 영축산에서 가지를 쳐서 시살등981m ~ 염수봉816m ~ 명전고개 ~ 오봉산A 450.9m ~ 오봉산B 533m ~ 증산133.1m을 지나 저 합수점에 이르는 도상거리 약 36.6km의 양산지맥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 앞 아파트 단지 앞 봉우리가 증산이며 그 뒤 좌측이 오봉산A, 우측이 오봉산B가 되겠군요.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저 오봉산에서 내려오는 산줄기가 증산으로 오기 위해 평지로 뚝 떨어진 곳 그러니까 낙동강 건너 맞은편이 곧 김해의 고암 나루터로 매리2교 다리가 있는 곳입니다.

정맥하신 분들은 기억이 날 겁니다.

매리2교에서 낙남정맥을 졸업했으니까....

곧 낙남정맥이 끝나는 곳이죠.

그런데 낙남정맥이 끝나려면 이 역시 낙동강과 남해가 만나는 곳이어야 하는데......

이따 자세히 보죠.

장군봉으로 오릅니다.

기념촬영도 하고....

장군봉에서 이어지는 726.6봉.

외송마을로 가는 능선.

내려가죠.

이 아름다운 선의 끝이 갑오봉이라고?

봉우리 같지도 않은데.....

그 우측으로 바다가 보이고....

저기가 해운대 시가지로군요.

저 아파트가 그 말도 많은 그 아파트 같군요.

기장 시가지 위로 오르는 일출.

오늘 일출은 이 정도로 끝!

금정산 고당봉으로 방향을 잡고는,

가는 길에 샘터를 만나 여기서 오늘 아침을 해결합니다.

예전 그 샘물은 수량이 풍부하고....

금정산 고당봉으로 가는 길은 호젓하기만 합니다.

잘 정리된 숲에 가끔은 쓰러진 그것들도 보이고....

삼필사설三必死說.

대나무는 열매를 맺으면 반드시 죽고, 소라는 새끼를 가지면 반드시 죽고, 사람은 병이 있으면 반드시 죽는다는 얘기죠?

조망이 좀 트이기는 하지만....

고당봉을 오르면서 낙동강과 양산지맥을 봅니다.

낙남정맥......

정말 볼썽사납군요.

금정산의 고당봉 정상부.

지나온 장군봉.

좌측에서 세 번째 봉우리죠.

이 산이 금정산이라는 이름을 갖게 만든 금샘을 보러 갑니다.

고당봉에서 0.5km 거리에 있습니다.

산사랑 고문님의 말씀이 훨씬 신뢰가 가지만 그래도 한 번 읽어보죠.

금정 산맥?

첫 문장부터가 마음에 안 듭니다.

우리나라에 금정 산맥이라는 게 있습니까?

매사가 이렇습니다.

둘레가 3m가 되며 깊이가 21cm 정도라고 하는데....

아무리 봐도 둘레가 3m가 안 되는데.....

금빛나는 물고기가 헤엄치며 놀았다......

그래서 바로 아래에 있는 그 절이 梵魚寺가 되었다는 얘기까지 넣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렇죠?

나무지게님이 좀 떨면서도 억지로(?) 웃음을 지어주십니다.

바람 부는 날에는 절대 올라서는 안 될 곳.

금샘과 원효봉.

그리고 고당봉과 고양이 바위.

일행들이 기다리는 고당봉으로 오릅니다.

양산지맥이 마무리 되는 곳.

양산지맥이 낙동정맥의 영축산에서 가지를 쳐 이리로 오는 모습.

중앙에 영축산과 그 뒤로 고헌산.

좌측으로 가지산과 재약산까지 보이던데....

사진으로는 영....

해운대.....

낙동정맥....

"아이...씨.... 오늘따라 이 녀석이....."

정상석이 바뀌었습니다.

북문으로 내려갑니다.

조용한 까마귀.

고모령姑母靈 신당.

이곳도 다른 모든 산이 그러하듯 예전에는 여자 산신령姑母神이 지배했었다는 얘기.

 

지리산도 그렇잖습니까.

성모신앙이 바로 그것이죠.

해운대구와 북구....

낙동강이 두 개로 갈리죠?

좌측이 낙동동강 우측이 낙동서강.

삼각주가 시간이 흐르면서 형성된 곳,

강서구.

비옥한 김해평야가 됐습니다.

이쯤 되면 아까 얘기하려다 뒤로 미뤘던 낙남정맥에 대해서 얘기를 해야죠.

낙남정맥은 지리산 취령에서 분기하는 것으로 산경표에는 나와 있는데....

지금은 영신봉이라 부르는 곳이기도 한데 상당히 어렵기도 하고 저 같은 사람들에게나 흥미로운 것이니 제 동영상으로 갈음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2gSK-Z9tvM&t=1219s

소나무......

북문의 샘터.

진행방향.

옛 금정 산장 옆의 벼락 맞은 정상석.

북문과 고당봉.

아름다운 산세로고!

데크도 설치되어 있고.....

원효봉으로 오릅니다.

2등급삼각점(양산25)이 설치되어 있고....

원료봉에서 바라본 고당봉과 장군봉 그리고 갑오봉.....

의상봉.

옛길.....

다시 복기....

우측 멀리 영축산.

초소와 동문.....

의상봉에서 한검 대장이 가지고 온 막걸리 한 통을 나눠마시고 ....

동문을 향합니다.

너른 광장을 지나,

동문을 지나서는,

남문으로 향합니다.

여기서 오늘 산행을 마칩니다.

우틀하여 주차장으로 내려가서는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올라,

오늘 완산제 행사가 있는 몰운대로 갑니다.

완산제를 치를 곳.

섬.....

등대......

제단.....

9정맥 졸업을 축하드립니다.

10년을 넘게 함께 걸으셨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