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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한강기맥

추색이 완연한 한강지맥 길....한강기맥인가? 한강지맥인가?

 

서울목동산악회를 운영하고 있는 후배 만수대장님으로부터 함산 요청이 들어옵니다.

한강기맥을 시작하는데 그 시작을 저와 함께 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냥 팀원들끼리 하시지 뭘 저까지 부르시고....

생각해 보니 만수대장님은 형이라고 늘 불러주는데 제가 시간이 없다 보니 그 제의에 제대로 응답을 해주지 못하였군요.

후배에게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 뿐입니다.

그런데 한강기맥입니까?

아니면 한강지맥입니까?

 

그런데 내가 이 남덕유에 올 때마다 느끼는 게 하나 있어. 처음 덕유 종주를 한 게 1987년인데 그때 분명히 이 남덕유에 철제 현수교가 있었고 아슬아슬한 그 현수교를 건너 작은 비박 터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면서 참샘의 물로 밥을 지었거든. 그 샘이 결국 이 남강의 발원지였던 거지. 근데 요새 오면 철거된 그 현수교의 흔적은 물론 그 참샘의 흔적도 찾을 수가 없어. 시간이 많이 흘러서 그런가?”

 

기맥의 개념

 

여기서 팁 하나. 기맥이라는 개념은 산경표에는 없는 개념이다. 태백산맥은 없다의 저자인 조석필 선생이 산경표를 더욱 유용하게 쓰기 위하여 일정한 세력은 있으나 산경표에서 이름을 얻지 못한 몇몇 산줄기를 기맥으로 부르자고 했다. 남한의 산줄기 중에서는 가령 남한강과 북한강을 가르는 한강기맥. 영산강의 서쪽 벽인 영산서기맥 등이 그것이다. 대한산경표에서는 이외에 몇 개의 줄기를 더 제시했는데 이것도 다음 기회로 미루자.

 

 -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131쪽 이하

 

존경하는 선배 조석필 님은 실로 우리나라 산경사山經史에 큰 획을 그으신 분입니다.

지리 교육의 '산맥'이라는 개념에서 우리를 온전하게 '산줄기' 즉 산경山經으로 빠져나오게 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 분으로부터 비롯된 우리나라 근대 산줄기 역사는 박성태 선생님의 '신산경표'로 꽃을 피웠고'산으로' 박흥섭 님의 '대한산경표'로 그 열매를 맺었다고 보면 될 겁니다.

 

그럼 기맥과 지맥에 대해서 알아 볼까요?

우리나라에서 이에 관한 이론을 제대로 서술해 주는 사람은 아마 제가 유일할 겁니다.

하지만 나름 체계적으로 연구한다고 했지만 오류는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이에 관해 오류를 지적해 주는 분들이 없기 때문에 사견은 설이 되어 시중에 떠돌아다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각설하고....

조석필 님에 의하면 선생께서 기맥이라는 용어를 쓰게된 것은 순전히 '산경표를 좀 더 윤택하게 쓰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 유형을 두 가지로 듭니다.

첫째가 '본류를 구획하는 주맥 산줄기이되 그 본류가 10대강이 아니라는 이유로 명명되지 않은 것으로 '영산북기맥'과 '땅끝기백'을 그 예로 듭니다.

그리고 둘째로 한강기맥과 압록기맥을 그 예로 들면서 이는 지류를 구획하는 지맥산줄기이되 다만 세력이 큰 산줄기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주목하여야 할 것은 10대강이라는 것입니다.

10대강을 나라 전체로 보면 압록강, 두만강, 청천강, 대동강, 예성강, 임진강, 한강, 금강, 섬진강, 낙동강 등을 말하고,

이를 남한으로 그 범위를 좁히면 한강, 금강, 섬진강, 낙동강 이외에 영산강, 삽교천, 만경강, 형산강, 동진강, 안성천이 더 들어오게 됩니다.

한편 하천에 관한 모든 것들을 주관하는 국토교통부가 2018. 12. 출간한 '아름다운 탐방로 100선 우리강'에는 이런 분류가 무색하게도 그저 우리나라 강의 국민들과의 친화감 정도 위주로 광역단체별로 분류한 것이지 여기에 10대강이니 5대강 나아가 4대강이라는 그 어떤 표현도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곧 10대강이 가령 한남정맥의 경우 한강 남쪽을 흐르는 정맥, 금북정맥이 금강 북쪽을 흐르는 정맥 등과 같이 그저 정맥의 울타리가 되는 물줄기 정도로 파악했고 이는 10대강이 민간 산줄기 학자들이 산경표의 정맥 위주로 파악한 물의 개념이라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영산강은 이 산경표의 정맥에서 제외된 물줄기인데 이 물줄기 영산강이 섬진강과 금강 사이에 있으면서도 정맥이라는 산줄기를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기맥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도출하게 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 산줄기가 정맥이라는 이름을 부여 받았다면 오히려 땅끝기맥도 '산줄기형'의 기맥이 아닌 일단 신산경표 상으로 고찰해 본다면 삼계봉 ~ 벌매산에서 지금과 같은 두륜산 방향이 아닌 흑석지맥으로 진행하는 '울타리형' 산줄기로  영산남지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게 맞습니다.

왜냐하면 이 영산강을 10대강에 버금가는 강으로 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는 산경표의 한북정맥과 한남정맥이 그러했으며 신산경표의 모든 정맥이 그러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산경표에서 배워와야 할 것은 '지리인식의 원리'이고 사실 그것으로 필요충분할 것입니다. 

그렇죠?

신산경표가 산경표의 이 원리를 배워 활용한 것인데 그래서 청남정맥의 끝이 평안남도 연대봉 부근으로 갔으며, 해서정맥의 끝이 장산곶이 아닌 송곶산으로 갔으며, 금북정맥(호서정맥)의 끝이 중대산을 지났으며 금남정맥(금강정맥)의 끝이 장개산으로 간 거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볼 때 이 기맥이라는 것은 민간인 학자들이 산경표를 좀 더 윤택하게 사용하기 위한 희망에서 도출해 놓은 개념이지 이것이 국가에서 공인한 그것이라거나 산경표에서 얘기해 준 그런 개념이 아니라는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의 분류기준을 본다면 좀 궁색하게 '세력이 큰 산줄기'여서 그렇다는 겁니다.

그 예로 한강기맥이나 압록기맥을 들고 있으며 한강기맥의 경우 도상거리가 약164.3km, 압록기맥(신산경표에서는 중강기맥이라 부름)의 경우는 약244.9km가 되는데 이들 산줄기는 단지 산줄기가 길다는 이유를 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산줄기는 물줄기와의 상대성에서 파악하는 개념이지 그것이 물줄기가 갖고 있는 세력 즉 유역의 개념이나 산줄기의 길이 가지고 논할 것은 아닙니다.

물론 그 길이를 가지고 100km이상은 기맥 30 ~ 100km는 지맥, 10 ~ 30km는 단맥으로 분류할 수도 있으나 기맥 역시 신산경표로 들어오면 그 요건을 달리하게 되고 지맥의 경우도 자하 신경수님과 신산경표는 이름은 물론 주행방향도 다르고 그에 따라 길이도 달라지게 되니 이런 혼란은 고스란히 우리같은 산꾼의 피해로 다가오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산줄기를 이와 같은 취지로 세분할 경우 기맥은 물론 그 이하의 개념인 지맥 - 분맥 - 단맥 - 여맥으로도 분류 가능하고 또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이 작금에의 민간지리학자들에 의해 행해지고 있는 행태입니다.

물론 이는 학문적 입장에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나라에서는 백두대간 이외에 정맥은 물론 기맥, 지맥 그 어떤 것에도 손을 대고 있지 않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개념만 난무한다는 것은 오히려 나라에서 이런 작업을 함에 있어 하품만 나게 한다는 지적도 겸허하게 수용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의미없는 이런 작업을 아예 단순화하는 것이 기획하는 분들이나 사용하는 분들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할 것입니다.

 

대한산경표는 이런 취지로 개념을 단순화함으로써 입안하는 분들의 편의에 공하게 함은 물론 사용하는 일반 공무원들이나 지도제작자 나아가 좀 더 체계적인 산행을 즐기는 이들에게 '쉽게 익혀 편하게 쓰게 하고자 한 것입니다.

이런 취지로 필자는 기맥의 사용은 혼란을 부추긴다고 생각되어 이를 사용하지 않기로 합니다.

즉 '기맥岐脈'이라는 개념을 쓸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강기맥을 한강지맥으로 사용한다고 하여 아무런 불편도 없으며 오히려 지맥이라는 산줄기와의 차별화를 없앴다는 데 있어서 자랑스러울 수도 있음을 느낍니다.

 

한편 존경하는 조석필 선생님은 지맥은 곁가지라는 보통명사로 널리 쓰이고 있기 때문에 의미 전달에 혼선을 피하고자 기맥을 사용하는 게 낫다고 주장하시지만 선생께서 말씀하시는 '지맥支脈'은 이미 '지맥枝脈'이라는 개념을 사용함으로 극복되었고 가령 '한강지맥', 섬강지맥' 등과 같이 하천 이름과 합쳐져 고유명사로 사용됨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으므로 선생의 이 주장도 이제는 이유없게 되었습니다.

 

지맥은 대간과 정맥의 하위개념이다. 즉 대간大幹정맥正脈지맥枝脈이니 지맥은 산줄기 계급 체계의 제일 하위에 있는 개념이다. 물론 기맥, 분맥, 단맥, 여맥도 상정할 수 있지만 너무 세분시키는 것이기도 하며 논란만 부추기는 격이니 여기서는 언급을 피한다.

 

- 졸저 '현오와 걷는 지리산' 405쪽

 

제가 2017년 출간한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에서 사용한 이 기맥'이라는 용어는 2019년 3월 '현오와 걷는 지리산'에서 더 이상 사용하지 않기로 하였기에 제 논점을 수정하였음을 이미 밝혔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지맥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보고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하겠습니다.

지맥이라는 계급이 붙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산줄기 요건으로 백두대간이나 정맥 그리고 자신보다 상위 등급의 지맥에서 가지를 친 줄기여야 한다. 그리고 물줄기 요건으로 그 줄기가 가지 칠 때 그 사이에서 발원하는 물줄기와 자신보다 상위등급의 물줄기가 만나는 합수점에서 맥을 다하는 산줄기(합수점형)여야 하며, 마지막으로 산줄기의 길이 요건으로 그 도상거리가 30km이상이어야 한다는 것이 그것들이다.

다만 요건의 경우 산줄기를 조금 더 유용하게 쓰기 위하여 특별한 경우에는 예외를 두는 바, 가령 관련된 물줄기의 울타리 역할을 하는 것(울타리형)이나 반도의 모양새를 가진 땅에서 호수나 강 혹은 바다 등으로 진행하는 산줄기(산줄기형)의 경우 등이 그것이다.

즉 정리하자면 합수점형, 울타리형, 산줄기형 등 세 가지가 유형에 해당되어야 한다. 좀 어려운 내용이긴 하지만 전체적인 산줄기의 이해를 돕기 위함이니 차근차근 살펴보자.

 

합수점合水點형의 예 

 

 

위 개념도는 백두대간 지리산 입구인 여원재에서 고리봉을 지나 만복대 ~ 반야봉으로 진행하는 대간능선과 대간길의 만복대 바로 앞에서 가지를 쳐 밤재 ~ 견두산 ~ 형제봉을 지나 서시천과 섬진강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33.2km의 가지줄기 개념도이다.

이를 위 지맥의 3요건에 대입시켜본다.

보다시피 이 가지 줄기는 백두대간에서 가지를 친 줄기이니 요건에 합당하다. 그리고 이 줄기가 백두대간 만복대 부근에서 가지를 칠 때 그 사이에서 서시천이라는 물줄기가 발원을 하는데, 이 서시천이 자신보다 상위 등급의 물줄기인 섬진강과 합류되는 합수점인 개념도 ‘A'의 곳에서 이 줄기의 맥이 잠기게 되니 이 역시 요건에 합당! 그리고 이 가지줄기의 도상거리는 33.2km가 되므로 기본 요건인 30km를 넘으므로 이 역시 요건 에 합당하다. 그러므로 이 가지줄기는 枝脈이라는 계급을 얻게 되고 그 이름은 강 이름인 서시천을 따서 서시지맥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는 것이고 이는 고유명사가 된다.

 

울타리형의 예

합수점형에 비해 설명이 조금 복잡해진다. 산줄기가 여러 개 나오긴 하지만 원리는 같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된다 

 

좌측 개념도의 주줄기는 역시 백두대간이다. 그런데 아까와는 달리 백두대간에서 큰 줄기인 한남금북정맥이 가지를 쳐 나가는 모습이다. 그 가운데에서 보청천이 발원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정맥 이름이 암시하듯 이 산줄기는 금강의 북쪽을 진행한다. 그러므로 이 보청천이 10대 강 중 하나인 금강과 만나는 합수점을 보면 된다.

그런데 이 보청천과 금강이 만나는 합수점으로 두 개의 산줄기가 잠기는 것을 볼 수 있다. 신산경표 상으로는 팔음지맥과 금적지맥이 그것이며 대한산경표 상으로는 보청지맥과 보청북지맥이 그것이다. 신산경표와 대한산경표의 차이점에 관해서는 여기서 논할 필요는 없다. 그러니 필자가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대한산경표의 이름으로 얘기를 이어가겠다.

 

똑같은 물줄기로 들어가는 두 산줄기의 우선권은 그 산줄기가 속한 주산줄기의 계급이나 세력에 따른다. 이 경우 백두대간정맥이므로 이 물줄기는 백두대간 몫이다. 따라서 보청천과 금강의 합수점으로 잠기는 줄기는 대간에서 분기한 줄기이므로 의 요건을 충족하고 합수점으로 갔으니 이 역시 의 요건을 충족한다. 마지막으로 이 가지 줄기의 도상거리가 57.7km가 되니 지맥이라는 계급을 가질 수 있게 되고 이 지맥의 이름은 물줄기 보청천의 이름을 따 보청지맥이라 명명한다.

 

이렇듯 합수점형인 이 보청지맥에 대해서는 아무 문제가 없으나 보청천으로 들어온 다른 줄기가 문제이다. 즉 이 줄기 역시 한남금북정맥이라는 정맥에서 분기 되었으므로 요건은 충족하며 이 산줄기의 도상거리가 약 49.6km가 되므로 이 역시 요건을 충족한다.

다만 합수점은 합수점인데 주산줄기가 아닌 부산줄기이기 때문에 위 보청천에 밀리는 모양새이다. 하지만 시종일관 보청천의 북서쪽 울타리 역할을 하므로 이런 경우는 지맥의 유형 울타리형으로 보아 지맥에 편입시키기로 한다. 엄격한 해석보다는 산줄기를 유용하게 사용하자는 취지이다. 따라서 보청천의 북쪽으로 잠기는 산줄기이므로 이름은 보청북지맥으로 명명한다.

 

산줄기형의 예

위에서 반도의 모양새를 가진 땅에서 호수나 강 혹은 바다 등으로 진행하는 산줄기의 유형을 산줄기형이라고 분류한다고 했다. 이는 혹시나 합수점형이나 울타리형으로 분류될 경우 모두 잔가지 가령 여맥이나 단맥 등으로 처리되어 지맥의 요건을 갖추지 못하게 됨에 따라 선조들이 물려주신 이 소중한 산하를 유용하게 선용하지 못하는 불합리함을 시정하기 위한 조치라 이해하면 된다.

산자분수령의 대원칙인 합수점으로 가지 않는 특수한 경우니 이를 산자분수령의 예외 유형이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따라서 이 경우 강이나 하천을 동원할 수도 없으니 물줄기 이름을 붙이기가 곤란하다. 따라서 그 산줄기가 마무리되는 지역의 행정구역 이름을 따서 명명하기로 한다. 

 

물론 이 경우도 의 합수점 요건에만 예외가 되기 때문에 , 조건은 여전히 유효하다. 따라서 위 참고도의 경우 금북정맥의 구수산에서 3.2km 진행한 곳에서 가지를 쳐 태안군 이원면 내리의 후망산 부근에서 잠기는 산줄기는 이원면의 이름을 따서 이원지맥이라 하고 같은 방법으로 금북정맥의 솔개재에서 1.2km 진행한 곳에서 가지를 쳐 서산시 대산읍 독곶리 황금산 부근에서 잠기는 산줄기는 대산읍의 이름을 따 대산지맥이라 명명하기로 한 것이다.

 

 - 졸저 전게서 405쪽 이하

 

출정일이 9월 28일 토요일로 잡혔으니 거리(오대산 두로봉 ~ 운두령 약 34km)를 감안 금요무박으로 진행하기로 합니다.

오늘 참석 인원은 만수대장님과 주이님 그리고 요즘 한창 물이 오른 백두님과 저 등 4인에 홀가분 대장님이 옵저버(?) 자격으로 참석을 하십니다.

한강지맥의 들머리인 오대산으로 가기 위해 영동제2고속도로를 타는데 길목에 저희 집이 있으니 아주 편하게 승차를 할 수 있군요.

느긋하게 23:00 집을 나섭니다.

아직 초저녁 같습니다.

24:00.

모란에서 홀가분 님을 태우고 진부를 거쳐 상원사 안으로 깊숙히 들어갑니다.

02:20

백두님 차를 주차하고 산행 준비를 마칩니다.

관대교를 건넙니다.

관대교.

관대걸이.

관대걸이는 세조가 이곳에 와서 오대천에서 목욕을 하면 피부병이 낫는다 하여 목욕을 할 때 의관을 걸어놓은 곳이라 하여 관대걸이라 했는데 이때 문수동자와의 설화도 유명하죠.

거기서 따와 이 주차장에서 오대천을 건너는 다리 이름을 冠帶橋라 하였군요.

그리고 오대천이라.....

우리가 백두대간을 할 때 북진일 경우 대관령을 출발하여 아름다운 대관령 목장을 지난 후 책을 넘어 비탐구간으로 들어서게 되죠?

 

매봉에서 천천히 걸어 40분이 지나니 출입금지 팻말이 나온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오대산국립공원 안으로 들어간다. 길은 외길이다. 1137.1고지를 지나 평범한 길을 따른다. 목책이 나오고 우측으로 들어가지 말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소금강 직벽 구간으로 떨어지는 구간이니 절대 들어가지 말라는 것이다. 우측으로 물이 흐른다. 풍부한 수량의 계류다. 이 물은 대간길 우측으로 흐르는 물이니, 작은 계류들을 더 모아 경포천이 되어 동해로 흘러들어가게 될 것이다. 대간은 우리나라를 동과 서로 구분하는 줄기이기 때문에 지금 걷고 있는 대간길 우측으로 흐르는 물은 동해로 간다는 얘기다. 반면 좌측으로 흐르는 물은 송천이 되어 도암호로 흘러들어 간 다음 한강으로 합류돼 서해로 흘러가게 될 것이다. 이게 바로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원리다.

 

물을 건너는 대간길

 

문제는 그 목책을 넘은 후다. 등로를 제대로 따라 걷는데 지도 상 의 곳에 이르러 이상스럽게 물을 건넌다. 분명 지금 건너는 물줄기는 조금 전 보았던 우측으로 흐르는 물의 상류다. 어떻게 된 일일까? 대간길은 분명 분수계인데 이렇게 물을 건너도 될까? 건너더라도 알고 건너자. 모르고 그냥 걷는 것과의 차이점이 바로 그것이다.

 

산자분수령에 예외가 있을 리 없다. 여기서는 출입금지 표시가 되어 있는 목책을 건너지 말고 좌측 길로 들어서야 한다. 그게 대간길이다. 물론 그 방향으로 등로는 없고 잡목 숲이 가로막고 있다. 어쨌든 이 잡목 숲을 뚫고 1191.2봉으로 올라야 소황병산으로 진행하는 오리지널 대간길이다. 하지만 지금 이 물길을 건너는 등로는 백두대간이 아닌 태백산맥을 종주하던 적어도 1985년 이전부터 이미 잘 닦여진 등로였을 것이다. 즉 대간길과는 상관없이 '태백산맥 종주대'가 이 부근을 지날 때 그냥 부드러운 길로 치고 올라갔던 길이었을 거라는 얘기다. 그 길을 뒤에 오는 사람들도 그렇게 따라 오르다 보니 지금과 같은 등로가 되었다. 그러니 정작 1191.2봉으로 가는 대간길은 사람들이 다니지 않게 되었고 지금은 잡목 등으로 인해 진행이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태백산맥을 다니는 사람들은 산자분수령을 몰랐었으니까 ....

 

-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438쪽

 

그렇게 하여 만나는 소황병산. 

 

거기서 분기한 산줄기는 용산 ~ 백석봉을 지나 오대천과 한강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49.7km의 오대지맥이 되는데 지금 이 물줄기가 그 최상단부가 되겠군요.

물소리가 아주 셉니다.

하늘엔 별 하나 보이지 않습니다.

구름으로 가득 찬 느낌입니다.

오늘 산행의 들머리는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상원사 옆입니다.

도로는 이곳과 홍천군 내면 명개리를 잇는 446번 도로입니다.

도로는 업무를 위한 차량 이외에는 출입을 금하고 있습니다.

03:28

상왕봉으로 오르는 등로를 지나니,

북대사가 나옵니다.

그동안 많은 불사가 이루어졌군요.

예전에 법당과 요사채 등 두어 채만 있던 북대사가 현대식 건물로 바뀌었습니다.

엄청난 변화입니다.

'개신교도 대형교회가 즐비한데 우리라고 못할소냐!'

부처님이 웃겟습니다.

하라는 수행은 안 하고....

염불에는 마음이 없고 잿밥에만 마음이 있는 거 아닙니까?

예전에 좁던 임도는 이미 넓게 확장이 되어 승용차가 여남은 대 주차되어 있을 정도니....

주지하다시피 오대산은 동대산 ~ 두로봉 ~ 상왕봉 ~ 비로봉 ~ 호령봉 등 5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이다. 그리고 그 봉우리 사이로는 중대(中臺 : 지공대) · 동대(東臺 : 만월대) · 서대(西臺 : 장령대) · 남대(南臺 : 기린대) · 북대(北臺 : 상삼대) 5개의 평평한 대()로 둘러싸여 있어 오대산이라고 했다. 또한 중대 · 동대 · 서대 · 남대 · 북대는 각각 문수보살 · 관음보살 ·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 · 지장보살 · 아라한(阿羅漢) 등이 상주하면서 설법하던 곳이라 하여 그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그리고 그 각 대() 즉 동대 · 서대 · 남대 · 북대 · 중대에 각각 관음암 · 수정암 · 지장암 · 미륵암 · 사자암 등 암자가 있는데, 이 암자들은 모두 월정사(月精寺)의 부속암자들이다.

 

- 졸저 전게서 448쪽

아라한 부처님을 잘 모시고 있는 겁니까?

03:55

그러고는 두로령입니다.

한강지맥이 지나는 산줄기입니다.

그 지맥의 시작인 두로봉으로 가기 위하여 우틀합니다.

04:24

약 29분이 걸려 백두대간에 접속합니다.

갑자기 마음이 경건해 지는군요.

백두대간은 늘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우리나라의 기본이 되는 산줄기라서 그런가요?

좌틀하여 두로봉을 따르는 길은 민족의 영산 백두산으로 가는 길이기도 합니다.

04:26

두로봉입니다.

한자로는 頭老峰이라고 쓰지만 이 산이름의 어원은 사실 순수한 우리말입니다.

즉 땅을 에워싸고 있는 형상의 뜻을 가진 '둠 / 두름'에서 온 말이기 때문이지요.

 

이 두로봉은 우리나라 산경표 체계에 있어서 지리산의 영신봉 만큼이나 아주 중요하다. 우선 이중환은 자신의 저서 택리지의 '산수(山水)'편에서 "강원도는 모두 영서에서 뻗어 나온 것으로 서쪽으로 용진(龍津, 두물머리인 양수리)에서 그쳤으므로 온 나라에서 가장 짧은 산맥이 되었다."고 이 부근을 그리고 있다.

 

이번에는 산경표를 보자. '五臺山 一名 淸凉 分二歧'라고 하여 "청량산이라고도 부르는 오대산에서 가지가 둘 쳐 나간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 줄기는 은두산 ~ 연방산 ~ 태치()~ 공작산 ~ 오음산 ...으로 진행하는 줄기라고 표기 되어 있다.

 

결국 이 둘은 같은 의미이며 같은 줄기이다. 필자는 이 택리지의 산수편이 산경표의 모체가 되었다고 본다. 그럴 경우 정맥을 설명하면서 이 줄기를 거론하였으니 이중환은 이 줄기를 '정맥급'으로 본 거 같다. 추측건대 14정맥으로 정리해야 했을 이 줄기를 산경표에서는 명백하게바다로 향하는 줄기가 아니라는 점 때문에 정맥에서 탈락시켰던 것 같다. 그런 아쉬움 때문일까? 우리나라에서 산줄기 마일리지로 따지면 최고의 점수를 얻었을 산줄기파의 원조 자하 신경수 같은 이는 꾸준하게 이 줄기를 한강정맥으로 부르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산경표에 충실하고자 하는 대부분의 산꾼들은 이 줄기를 한강기맥이라 부르고 있다. 반복하여 살펴보면 이 줄기에 '한강기맥'이라는 이름을 부여해 준 이는 바로 '태백산맥은 없다'의 저자 조석필 선생이다. 박기성 같은 이는 최고봉인 계방산의 이름을 따 '계방지맥'으로 부르자고 했다. 어쨌든 한강기맥은 이 두로봉을 출발하여 양평 양수리의 두물머리에서 잠기는 도상 거리 약164.3km의 산줄기가 된다. 한강기맥이 중요한 이유는 이 줄기에서 여러 개의 지맥이 갈리고 그 지맥들 자체가 상당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자세한 것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

이렇듯 두로봉은 너무나 중요한 봉우임에 틀림없다. 한 걸음 더 들어가 볼까?오대산의 오대 중 비로봉(毘盧峰)과 상왕봉(象王峰)은 불교신앙에 따른 산이름의 결과물이다. 그러면 두로봉은 어떨까? 두로봉은 한자로 頭老峰이라 쓴다. 노인 중에서 가장 존경받는 어른 정도의 의미일 것이다. 그렇게 한자 의미에 충실하게 해석하면 그만일까?

 

우리가 처음 백두대간 여행을 시작할 때 지리산에 들면서 그 이름의 유래를 봤다. 즉 지리산의 지리라는 이름은 우리말 두름/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말은 시간이 흐르면서 지역에 따라 도로, 두로, 두르, 도마, 두밀, 대미등 다양하게 변화했다. 오대산의 월정사와 상원사를 둘러싸고있는 이 봉우리의 예전 이름도 두름/이었다. 둠뫼였을 것이다. 그 이름이 이 지역에서는 두로로 변형이 되었고 이 두로에 그럴 듯한 한자를 음차(音借)하여 쓴 것이 頭老였던 것이다. 그러니 똑 같은 산 모습을 그린 두름/이라는 말이 시간이 흐르고 지방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단어로 진화됨을 알 수 있다.

 

- 졸저 전게서 451 쪽 이하

 

이 한강지맥이 지금 우리나라 지도에는 어떻게 실려 있을까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봅니다.

 

오대산으로부터 강원도와 충청북도가 경계를 이루는 지점까지에는 계방산(1,577m)ㆍ 회령봉(1,309mㆍ 흥정산(1,277m)ㆍ 태기산(1,261m)ㆍ 치악산(1,288m) 등의 높은 봉우리들이 이어진다.

이 산들 사이의 운두령(1,080m)은 평창군 진부면과 홍천군 내면을 연결하는 주요 통로이며, 둔내터널은 영동고속도로에서 가장 높은 곳(920m)에 위치한다.
치악산 부근에는 중앙선의 루프식 터널과 십리굴(3.75㎞)이 있다.
이 밖에도 횡성과 안흥 사이의 전재(513m), 원주시 제천 사이의 치악재(450m), 원주시와 충주시 사이의 양아치고개(390m) 및 제천시와 충주시 사이의 박달재 등이 주요 고개이다.

이 산맥은 충주 부근에서 남한강의 횡단으로 분리되는데, 서남부는 점차 고도가 낮아져 구릉성 산지를 이룬다.
경기도와 충청북도의 경계 부분에는 오갑산(609m)ㆍ국망산(770m)ㆍ덕성산(521m)ㆍ서운산(547m) 등이 있고, 경기도 안성과 충청북도 진천 사이에는 엽둔재(360m)가 있다.

충청남도를 남동부와 북서부로 자연 경계 짓는 이 산맥은 광덕산(699m)ㆍ칠갑산(561m)ㆍ무성산(614m)ㆍ성주산(680m)ㆍ금계산(575m) 등으로 이어진다. 또한, 지맥인 가야산맥은 남북으로 뻗어 예당평야와 태안반도를 구분하고 있다.

남한강 가까이까지 이 산맥은 큰 분수계 중의 하나로 한쪽은 북한강 유역과 다른 한 쪽은 충주 상류의 남한강 유역에 속하게 된다.
남한강을 건너기 전 영서지방에서는 주변의 산지와 잘 구분이 되지 않으며, 남한강을 건어 장호원의 오갑산(609m)이 있으나 여기서부터 상당한 구간에 걸쳐 구릉지가 형성되어서 차령산맥의 줄기를 추적하기가 어렵다.
특히 청미천과 미호천의 두 유역분지가 만나는 중부고속도로 동쪽 지역에서는 해발 200m 이하의 구릉지가 넓게 펼쳐지는데, 이 지역은 화강암대에 속한다.
산지 북서쪽의 안성ㆍ천안ㆍ아산, 남서쪽의 진천ㆍ청주ㆍ조치원 등은 화강암의 저지대에 발달한 도시들이다.
차령산맥은 산맥이라기보다는 안성천ㆍ삽교천 유역과 금강유역 사이에서 침식을 덜 받아 남아 있는 잔구성 산지로 보는 해석이 힘을 얻는 것은 차령산맥을 넘는 사람들이 산맥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를 개념도로 볼까요? 

보시다시피 차령산맥은 태백산맥의 오대산 부근에서 분기되어 충청남도의 중앙부를 거쳐 서해안의 금강하구에 이르는 중국방향의 산맥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같은 산꾼들은 벌써 의심부터 듭니다.

삐딱해서가 아닙니다.

산맥 = 산줄기로 알았는데 어떻게 된 산맥이 한강을 건너고 금강을 지나냐는 것입니다.

또 태기산을 지난다고 했으니 여기까지는 이 한강지맥의 주행과 일치하는데 산맥은 여기서 남진하여 치악산으로 급격하게 주행방향을 꺾고 그런 후에 한강을 건너 안성의 서운산으로 간다고 하니 우리같은 산꾼들은 그 산맥을 더 이상 추적 하기가 힘들어 집니다.

그래서 그런가요?

'남한강 가까이까지 이 산맥은 큰 분수계 중의 하나로 한쪽은 북한강 유역과 다른 한 쪽은 충주 상류의 남한강 유역에 속하게 된다.
남한강을 건너기 전 영서지방에서는 주변의 산지와 잘 구분이 되지 않으며, 남한강을 건어 장호원의 오갑산(609m)이 있으나 여기서부터 상당한 구간에 걸쳐 구릉지가 형성되어서 차령산맥의 줄기를 추적하기가 어렵다.'는 얘기를 하기도 하고,

'차령산맥은 산맥이라기보다는 안성천ㆍ삽교천 유역과 금강유역 사이에서 침식을 덜 받아 남아 있는 잔구성 산지로 보는 해석이 힘을 얻는 것은 차령산맥을 넘는 사람들이 산맥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이라고 까지 얘기하게 됩니다.

 

이는 산맥이 우리 눈으로 인식할 수 없는 관념상의 지질구조선을 지표 위로 올려놨기 때문입니다.

하긴 이럼에도 이 차령산맥을 걷겠다고 나선 이가 있었습니다.

1980년대 초 노인봉 산장지기였던 성량수 님은 태백산맥 단독종주에 이어 1981년에는 나라의 해안선을 107일간 결행합니다.

그는 1985년 이번에는 차령산맥에 도전합니다.

지도를 보고 오대산 두로봉부터 걷기 시작한 것이죠.

그는 42일 만에 청화산인 이중환이 이야기한 용진 즉 현재의 양수리 두물머리에 도착합니다.

그러고는 더 걸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성량수님이 노인봉을 내려오기 전 저에게 직접 들려주신 말씀.

"이번에는 차령산맥을 종주하기 위해서 삼계봉에서 아래로도 가보고 그냥 쭉 가보기도 했는데 그냥 다 한강에 가로막혀서 더 이상 갈 수가 없더군. 그 아래 산들을 어떻게 이어가야 하는 거지?"

그렇습니다.

이 한강지맥의 삼게봉은 이 한강지맥에서 섬강지맥(신산경표에서는 영월지맥)이 분기하는 곳으로 이 산맥이론으로 보면 차령산맥이 이어가는 곳이라는 겁니다.

즉 이렇듯 산맥은 물과는 관계없고 선線과도 관계없는 일정한 면적을 가지고 직선으로 주행을 하는 부피 즉 체적體積의 개념으로 파악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량수 님은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산맥 = 산줄기라고 인식한 당시의 지리 개념으로 인해 지금의 한강지맥을 따라 진행을 하였던 것이고 결국 양수리에 이르러 "여기도 아닌개벼!"하며 탄식을 했던 것입니다.

백두대간 신배령 방향.

스피커에서는 "어서 나가라"는 멘트가  연신 나옵니다.

기념 촬영을 하고....

저도 꼽사리 끼고.....

별을 보며....

오늘 날씨에 대한 기대를 아끼지 않습니다.

근데 여기 묻혀 있는 3등급삼각점(연곡317)은 도저히 찾을 수 없어 포기합니다.

 

04:29

자! 그럼 지금부터 한강지맥 제1구간을 시작합니다.

다만 2011. 10. 23. 한강기맥으로 걸었던 이 길을 이번에는 한강지맥이라는 이름으로 걷습니다.

그 길은 오던 길을 다시 돌아 나가는 것이죠.

당시는 휴식시간 포함 13시간 걸렸는데 이번에는 어떨까요?

오늘 지맥길은 공히 평찬군 진부면과 홍천군 내면의 군계를 따라 진행합니다.

05:03

두로령 우측으로 이정목이 세워져 있습니다.

05:21

4등급삼각점(연곡447)과 이정목이 있는 헬기장을 지나,

05:25

북대사 삼거리를 지납니다.

이곳의 날머리는 아까 북대사 바로 못 미친 지점에서 확인했었죠.

05:48

상왕봉에 도착을 할 즈음 가는 안개비가 느껴집니다.

그러니 상왕봉에서 볼 수 있는 건 별로 없군요.

날이 밝고 안개나 구름이 없었다면 약수산과 응복산 그리고 구룡령과 갈전곡봉 등을 확인할 수 있으련만.....

05:53

이정목을 지나고.....

06:04

보호수도 봅니다.

06:12

랜턴을 벗습니다.

가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군요.

06:20

헬기장을 또 하나 지나고.....

06:24

붉음과 푸름의 공존.

그러고는 비로봉1565.3m입니다.

 

천왕봉과 비로봉

 

그런데 형. 보통 산에는 비로봉이든 천왕봉이든 둘 중의 하나만 있는데 어떻게 이 속리산에는 비로봉과 천왕봉 등 두 개의 이름이 병존하는 것이지?”

보통은 천왕봉이나 비로봉 중 천왕봉이 있으면 비로봉이 없고, 비로봉이 있으면 천왕봉이 없을 법한데 이 속리만큼은 두 이름의 봉우리를 다 가지고 있다. 어찌 보면 좀 욕심이 많은 산인 것 같다. 비로봉과 천왕봉 혹은 천황봉이 양립할 수 없는 이유? 뭐 꼭 양립할 수 없다는 것보다는 두 개의 최고가 한 곳에 있기에는 좀 벅차다는 것이다. 삼국지의 제갈량(諸葛亮)과 사마의(司馬懿)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이유를 좀 살펴보자.

 

우리 민족 최고(最古)의 신앙은 아무래도 산악숭배신앙이다. 그러니 환웅부터 시작하여 삼국시대의 천군(天君)을 거치는 동안 하늘에 계신 하느님을 천왕으로 불렀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산이든 명산에는 천왕()봉에 제단 즉 제천단을 두고 제사를 드렸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이 천황봉이나 천왕봉은 어느 산에서도 최고봉이라는 뜻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산악신앙설이다.

 

반면 비로봉은 불교 신앙의 한 단면이다. 불교신앙설로 불교에서 부처님 중 가장 으뜸인 부처님은 비로자나불이다. 그러니 불가의 기운이 가득 찬 산에서는 그 최고봉을 비로봉이라 불렀음은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라 하겠다. 금강산, 묘향산, 오대산, 치악산, 소백산 등 이른바 ‘5이라고 하는 산에 비로봉이 최고봉으로 자리 잡은 이유는 이와 무관치 않다.

 

이 속리산의 경우를 법주사의 창건과 관련하여 생각해 보자. 짐작건대 불교국가인 고려시대는 물론 특히 신라시대 말기부터 비로봉이라는 이름의 봉우리가 많이 등장했을 것이다. 그런데 속리산의 최고봉은 553(진흥왕 14) 의신이 창건하기 전에 이미 천왕봉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그러니 명찰인 법주사를 창건한 다음 비로봉이라는 이름을 붙여야 하는데 천왕봉이 버티고 있으니 다른 방법을 강구할 수밖에. 적당히 타협하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추측건대 결국 남의 봉우리 이름을 빼앗을 수는 없어 부득불 다음 고봉1031.9m에 비로봉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한편 보통 비로봉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원인은 위와 같이 불교와 무관치 않으나 종교적인 원인 이외에 국어학적인 측면에서 비로를 밝히려는 유력한 시도가 있다. 즉 이 비로는 단순히 한자를 차자(借字)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아까 얘기한 산악신앙과 결부하여 소원을 빌다에서 접미사 가 붙어 비로가 되었고 이것을 한자로 毘盧, 毗盧 혹은 飛蘆로 표기는 하였으니, 다 우리말 어간 ~’에서 온 것이라는 것이다.

 

- 졸저 전게서 227쪽

거기서 저도 사진 한 장 남깁니다.

여기서 오늘 아침을 먹고 가기로 합니다.

빵과 떡으로 요기를 대신하고..... 

계방산 조망도 포기하고....

07:00

한강지맥을 하기 위해서는 부득이 이 금줄을 넘어야 합니다.

하루 빨리 이런 무의미한 행태가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금줄을 넘습니다.

07:04

2등급 삼각점(연곡24)이 있는 이곳.

실제로는 이곳이 비로봉이죠?

그런데 보시다시피 이곳은 뾰족한 봉우리여사 산객들이 쉴 곳이나 조망을 즐길 만한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부득이 조금 전 그곳에 정상석을 세우고는 산객들을 출입을 통제한 것이죠.

행정편의주의적이라 할 만 합니다. 

07:16

헬기장을 지나,

퇴색되어 가는 나뭇잎......

이걸 보면 늘 조동진의 '나뭇잎 사이로'가 떠오릅니다.

계절은 이렇게 쉽게 오고가는데

우린 또 얼마나 먼길을 돌아가야 하는지....

우통수로 내려가는 서대사 갈림길을 지나고....

지금부터 잡목 구간이 시작됩니다.

여름에 왔으면 고생 좀 하였을 그런 구간입니다.

이한검 대장님에 의하면  J3클럽 여성 대원 중에서 제일 빠르다는 분.

늘 안산하십시오.

고도가 높아서 그런가?

완연한 추색秋色입니다.

07:49

그러고는 호령봉입니다.

오대산의 마지막 봉우리.

그리고 사실상의 오대산 최고봉이죠.

그러니 불교신앙설에 의할 때 지어진 이름인 비로봉은 사실사 이리로 가져와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비로봉 바로 아래 적멸보궁이 있고 상원사가 있으니 예전 스님들이 풍수지리상의 명당 자리를 택할 때 그곳을 택했으며 20cm 밖에 차이가 나지도 않으니 이 호령봉보다는 비로봉이 더 높게 보였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뿌연 날씨 속에서도 악착같이 오던 길을 되짚어 봅니다.

이곳에서는 비로봉이며 상왕봉 그리고 두로봉과 동대산 등 오대의 4대가 다 조망되나 오늘은 그저 멀리 두로봉만이....

백야.....

영화 White Nights를 백야라고 번역하여 상영되어었죠.

냉전시대의 미국과 소련의 체제를 엿볼 수 잇었던 영화.

소련의 발레리노 니콜라이와 미국의 원남전에 항의를 하며 소련으로 망명한 흑인병사인 탭댄서 레이몬드의 재회 장면이 기억납니다.

그때 분위기에 걸맞게 흘러나오던 Lionel Richie의 Say you Say me.....

08:09

원래 이 표지판은 C-1부터 C-10까지 부착되어 있었는데 오늘 세 개 정도 밖에 보지 못했습니다.

누가 훼손했나요?

08:12

안부를 지나,

08:27

호령봉에서 볼 때 쌍봉으로 보이던 바위봉1534.3m입니다.

좌측으로 돌아 진행합니다.

지나온 호령봉.

금방 구름 속으로 숨고.....

비로봉이 잠깐 나타나듯 싶고....

안개 구름은 그 붉음을 감추려 하고....

진행 방향....

그것들을 담고....

09:09

1371.1봉으로 가는 안부는 이런 잡목을 뚫고 진행하여야 하고....

09:12

그런 고초를 겪고나서야 4등급 삼각점(연곡444)이 있는 1371.1봉에 오를 수 있습니다.

09:26

아주 편한 지맥길....

09:30

고도를 많이 낮춰서 그런가요?

1265.6봉을 오르는 길은 이렇게 편안합니다.

그런데 앞서가던 홀대장님이 조금은 긴장한 표정으로 서 있군요.

이유인즉슨 조금 전 여기서 멧선생 가족을 만났다고 하는군요.

jr멧을 포함하여 7마리 정도를 보았다고 하는데 다행히 인기척을 듣고 반대방향으로 도망갔다고 하는군요.

모르긴 몰라도 그 중에 아주 말 안 듣는 녀석이 있었나 봅니다.

별로 걷지도 않았는데 백두님이 배고픔을 하소연합니다.

좋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는데 하물며 한강지맥임에야.... 

40분 정도 아점을 먹고 일어납니다.

10:34

1308.8봉을 향합니다.

10:53

정글 같은 분위기의 1284.5봉.

어렵사리 낙엽 속에 숨어 있던 삼각점(도암403)을 파인더 안으로 넣습니다.

한강지맥을 걷는 길은 참 여유롭습니다.

적어도 1357.3봉까지는 그렇죠?

11:26

1357.3봉은 우측으로 오릅니다.

이곳이 이른바 활산목 삼거리입니다.

올라오는 길에서 바로 직진을 하면 탑동리 활산목이 마을로 내려가게 되므로 그렇게 이름지어진 것 같습니다.

우틀합니다.

11:35

1360.7봉 전위봉은 헬기장이고....

11:38

길라자비님....

잘 나가시다가...

뽀지기봉은 또 뭡니까?

아무런 근거 없이 산이름을 만드는 행위는 삼가해 주심이....

한편 이 보드는 예전에 '무장공비가 나타나는 지역이니 수상한 자를 발견했을 때에는 신고를 하라는 1670부대 대대장의 안내문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 부근에 헬기장이 많은 이유가 다 이 대공작전과 관련이 있었던 것이죠.

조금 이따 만나게 될 이승복 기념관도 그의 생가가 있던 용평면 노동리와 더불어 다 이런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봉우리 끝에서 삼각점(도암301)을 확인합니다.

이 봉우리는 좀 주의를 요하는 곳입니다.

즉 진행방향은 올라서자마자 바로 우틀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죠.

알바하기 십상인 곳입니다.

직진하는 길은 방아다리 약수터로 내려가는 길입니다.

11:53

1270.7봉을 내려갑니다.

온통 멧선생 놀이터로군요.

12:06

1221.7봉을 지나,

12:22

1220.5봉을 지납니다.

조망도 없고....

슬슬 긴장이 되기시작합니다.

13:00

기온은 올라가고....

땀은 비오듯 쏟아지는데 고도는 슬슬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1235.7봉을 지납니다.

이 흐름은 1464.2봉까지는 계속될 것입니다.

13:11

1439.5봉입니다.

일단 여기서 한숨을 돌립니다.

여기서 평창군 용평면을 만납니다.

좌로 흐르는 용평면과 진부면의 면계.

이 면계를 따라 평창지맥이 가지를 치게 됩니다.

아주 중요한 봉우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평창지맥은 여기서 가지를 쳐 가리재~ 백적산 ~ 잠두산 ~ 백석산 ~ 주왕산 ~ 청옥산 ~ 삿갓봉 ~ 시루산  등을 거쳐 평창강과 한강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그 맥을 다하는 으로 도상거리 약80.8km의 지맥이 됩니다.

여기서 후미를 20분을 넘게 기다리다 출발합니다.

13:29

갈림길을 지나자마자,

13:36

1464.2봉에서 삼각점(봉평424)을 확인합니다.

등로가 삼각점봉과는 비켜나게 되어 있어 신경을 쓰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인 곳입니다. 

13:49

좌측 중앙으로 멀리 대청봉이 보이는군요.

우측 줄기들은 너무 희미해 식별이 어렵고.....

13:56

1491.5봉을 지나,

다시 가을을 만납니다.

이번 가을은 좀 부티나게 지내려 합니다.

10. 5.은 설악산 독주골에서, 10. 12.은 지리산 와불산과 안당장골에서....

10.19.은 설악 산선봉 그리고 10. 26.은 왕시루봉에서 지내려 하는데 이 정도면 호화스러운 황제의 단풍산행 아니겠습니까?

14:18

1549.3봉 전위봉을 오르면서 우측 골짜기 건너 소계방산1492.4m을 봅니다.

14:21

1549.3봉을 지나면서,

소게방산 갈림길을 확인합니다.

14:23

컬러가 이상합니다.

단풍 색깔 때문인가요?

앞 전위봉, 뒷봉우리가 계방산이죠.

정상의 케른까지도 보입니다.

14:41

긴 비탐구간을 지나 이제 정상적으로 제도권 안으로 들어옵니다.

여기서 좌틀하면  계방산 자동차 야영장이 있는 이승복생가터로 내려가게 됩니다.

우리는 400m 떨어져 있는 계방산으로 가기 위해 직진합니다.

지나온 길이 흘린 땀으로 인해 더욱 더 아름답게 보입니다.

언제 보아도 능선은 참 아름다운 선입니다.

중앙 좌측의 비로봉 그리고 그 우측의 호령봉과 쌍봉.

그 우측으로는 동대산까지.....

소계방산.

아!

계방산.

계방산과우측의 전망대가 있는 1492.8봉.

14:56

우리나라 남쪽 5위의 산 계방산으로 오릅니다.

예전에 관리가 제대로 안 돼 굴러다니던 1등급대삼각점(봉평11)이 이제는 제자리를 찾았군요.

지나온 아름다운 능선.

우측 맨 뒤가 동대산이 있는 백두대간.

그 앞이 활산목이 삼거리 앞에 있는 1360.7봉에서 방아다리약수 방향으로 흐르는 능선.

그 앞이 1433.5봉인 평창지맥 갈림길에서 흘러내리는 평창지맥.

바로 앞 낮게 깔리며 진행하는 1227.3봉 능선.

맨 뒤 백두대간 능선 앞으로 황병산이 보이고 그 뒤로 산자령이며 능경산, 고루포기산 등도 확실하게 보입니다.

그 앞의 오대지맥이 흐르고.....

힘드시죠?

좌측에서 안산 ~ 귀청 ~ 꿑청 ~ 대청이 보이건만 오늘은 그저 희미하게....

여기서 운두령까지는 4.1km.

1시간 10분 정도 걸리려나....

진행방향으로 지맥길에서 조금 벗어나 있눈 회령봉1381.2m이 보이고 그 우측으로 지맥기은 진행이 되겠죠.

9년 전 저 길을 아름다운 마음으로 걸었는데....

20분 정도 머무르다 하산을 시작합니다.

15:26

돌아본 계방산,

거기서 가지를 쳐 나간 고산준령들.....

아까보다는 선명하게 설악이 보이고....

말없이 서 있는 이정목과 안내판......

16:01

하산길은 무조건 고도를 낮춥니다.

서너 번 오름과 내림을 거듭하지만.....

약 570m의 고도를 낮추는 만큼,

발끝과 스틱을 요령 있게 사용하여야 합니다.

안내 표지판이 나오고....

1009m에 위치한 운두령입니다.

예전 정상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하던 아주머니는 이제 어엿한 점포의 사장님으로 변신해 있었고....

16:25

그렇게 추억이 배어 있는 운두령에서,

또 하나의 추억을 남기고....

시원한 캔맥주로 목을 넘기고 한강지맥 제1구간 산행은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산행시간은 14시간 걸려 예전 혼자 진행하던 시간보다 1시간이 더 걸렸지만 그만큼 산을 더 즐긴 모양새이니 아쉬울 것도 없습니다.

10년 넘게 다닌 단골집인 속사리 무지개 송어집으로 자리를 옮겨 오늘 산행담을 이어갑니다.

오늘 산행을 함께 하신 네 분 모두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백두님은 안전한 귀가를 위하여 술도 못 드시고.....

복 받으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