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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명산

늘 부드러운 소백의 주릉을 운해와 함께 거닐다!

1501년 조선땅에는 선비이자 학자인 걸죽한 두 분이 태어났습니다.

한 분은 강우지방에, 다른 한 분은 강좌지방에 태어났죠.

그 중 한 분은 지리를, 다른 한 분은 소백을 흠모했습니다.

그 중 한 분은 의를, 다른 한 분은 인을 숭상했고....

그렇게 지리가 남명의 고향이라면 소백은 갑장인 퇴계의 고향이렸다!

참 대조적인 두 분입니다.

 

그제는 남명의 터였던 지리를 다녀왔으니 오늘은 퇴계가 거닐던 소백으로?

방사 남사고(1509-1571)는 소백산을 보고 갑자기 말에서 내려 절을 하며 말하기를 이 산은 사람을 살리는 산이다(此活人山也).”라고 말하였고 저서에도 병란을 피하는데 태백산과 소백산이 제일이다(著言以太小白 爲避兵第一地).”라고 극찬했었죠.

4년 전 퇴계 선생의 유소백산록을 따라 죽계구곡에서 초암사 ~ 국망봉 ~ 달밭마을 ~ 비로사를 거닌 적이 있었는데 소백의 한 구석에서 선생의 향취나 다시 맡으러?

사실은 가을 소백을 느끼고 싶어하던 지인이 있습니다.

몇 달 전부터 소백을 걷고 싶다는 것이었는데 제가 시간이 나질 않아 차일피일 미뤘었습니다.

그 분의 간곡(?)한 부탁으로 오늘 소백의 주릉 걷기를 결행하게 된 것입니다.

주릉이라면 곧 백두대간을 이야기하는 것이겠고 대간길이라면 한 쪽은 죽령으로 정해지겠지만 다른 한 쪽은?

고치령?

그보다는 대간길을 걷는 게 아니라면 아예 구인사로 가는 게 일반적이지 않을까 생각되는군요. 

2021. 10. 10. 04:00

오면서 쉬엄쉬엄 자다 오니 02:00 정도에 신라 아달라왕 시절인 서기 158년 죽죽이 개척했던 죽령에 도착합니다.

일출 시간을 감안하여 한숨 더 자고 일어납니다.

하늘재 다음으로 대간길이 열렸던 이 죽령.

04:20

인증 사진 한 장 찍고 오늘 산행을 시작합니다.

연화봉까지가 5km.

연화봉에서 비로봉까지 4.3km.

비로봉에서 국망봉까지 3.1km.

국망봉에서 민봉까지 4.8km

민봉에서 구인사주차장까지 8.4km.

어쨌든 26km가 조금 더 나올 겁니다.

강우레이더관측소가 있는,

제2연화봉을 사면치기로 지나치고.....

백두대간이라!

언제나 들어도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이름입니다.

제가 산을 즐기면서, 공부하면서 거닐게끔 그 이유를 제공해 준 존재입니다.

그 삼거리를 지나면서 연화봉의 스카이라인을 잡아봤습니다.

좌측 제1연화봉그리고 그 우측의 바로봉이 뾰족합니다.

아!

그런데 그 우측의 운해!

오늘 오후 3시부터 비가 온다는 예보에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오늘의 기상 조건!

그런데 운해라니.....

연화봉으로 조금 더 다가갑니다.

아!

구름 바다.

천문대를 지나면서 좌측을 보니,

천동계곡의 운해가 볼 만합니다.

봉우등 능선 너머 어의곡 부근의 봉우리들은 섬이 되었습니다.

운해 우측의 죽령 너머 도솔봉에서 솔봉으로 이어지는 대간길이 뚜렷하고....

풍기와 순흥은 아예 잠겨버렸습니다.

드라이 아이스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 같기도 하고.....

온 길을 되짚어봅니다.

소백의 서쪽은 이 연화봉이 책임을 집니다.

희방사라....

소백을 처음 찾던 20대 때.

희방사를 지나면서 고등학교 고문 참고서에서 양주동 박사님의 견해를 읽던 때를 떠올립니다.

그 여러 학설 중에서 훈민정음 판본 중 이 희방사 판본은 희방사가 아닌 '짓방사 본'이라고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시던 글이 생각나는군요.

마침 어제가 한글날이었군요.

대단하신 세종대왕.

가야할 길을 보면서....

우측에 희미하게 월악산이 보이는군요.

천동계곡과 어의곡.

누에섬.

어제 비가 많이 온 듯싶습니다.

바닥이 촉촉하게 젖었습니다.

아!

그때 우측 운해 위로 오늘의 태양이 솟는군요.

신기하기만 합니다.

.........

덕유의 무룡봉 오름 같지는 않아도 그런대로.....

너무 조화를 잘 이루고 있는 거 같아서....

3등급삼각점이 있는 제1연화봉.

남사고와 관련한 곳인 금계저수지 방향.....

아주 난리가 나 듯 계속 피어오르고...

그러다가는 퍼지고....

장쾌한 능선.

소백 만이 가지고 있는 자랑입니다.

황소의 등을 거닌다는 착각이 안 생길 리 없죠.

또 다른 맛.

'나무지개' 님이 생각나더군요.

연신 셔터를 누르기 바쁘실 텐데....

연화봉과 도솔봉.

당골계곡과 비로계곡.

비로봉이 이제 가까와졌고.....

정말 바다에 떠 있는 섬입니다.

음악을 흥얼거려 봅니다.

학창시절 너무 즐겨듣던 '4월과 5월'의 음악입니다.

 

넓은 바다에 작은 섬아야 작은 배가 찾는다.

희망 돛을 단 작은 배야가 작고 외로운 섬 찾아

얼마나 외로웠는지 까맣게 변했구나

넓은 바다에 작은 섬아야 작은 배가 찾는다

작은 배 오면은 서러워 울겠구나

넓은 바다에 작은 섬아야 작은 배가 찾는다 작은 배가 찾는다 작은 배가 찾는다

https://t1.daumcdn.net/cfile/tistory/9965CC385FE587C71B?original

 

그런데 이 노래를 듣노라면 목소리가 백순진도 아니고 그렇다고 김태풍도 아닙니다.

우리;같은 사람이라면 다 알죠.

바로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수만이죠.

지금 SM엔터테인먼트의 회장인.....

그 이수만과 백순진이 4월과 5월을 결성하고는 이 노래를 녹음을 했는데 그만 이런저런 이유로 이수만이 하차하는 바람에 뒤에 김태풍이 위 팀에 합류하게 되었죠.

그래서 시간 상 앨범을 발매를 해야했기에 앨범의 쟈켓에는 김태풍으로, 음악은 둘이 녹음한 곡으로 실렸다는 역사적 사실이 숨어 있게 된 것이죠.  

주목감시초소가 보이는군요.

그 좌측 위로 어의곡 삼거리봉.

자주 보이던 이 나무의 정체는?

천동삼거리 데크에서,

운해를 감상하며 간식을 먹습니다.

음.....

그런대로....

그런데 백두대간의 백두를 백두산에서 따온 것이라고요?

그게 아니죠!

말씀드리자면,

나라의 북쪽 끝 백두산白頭山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려(流) 빚어진 산.

사람들은 산을 의미하는 여러 글자 중 가장 높음을 나타내는 頭에서 흘러내린流 것이니 頭流山이라 부르게 된 것이죠.

지리산의 옛 이름입니다.

나라의 북쪽에서 가장 높은 산인 백두산과 나라의 남쪽에서 가장 높은 산인 두류산을 잇는 줄기(幹)를 사람들은 백두간白頭幹이라 이름했던 것이죠.

그런데 그 이름만으로는 조금 부족했던 것이죠.

나라의 모든 산줄기와 물줄기의 근원이 되는 우리나라 유일의 산줄기!

거기에 근본이 되는 '大' 자를 넣지 않는다면?

그래서 백두대간이 된 것입니다.

비로봉으로 오르는 계단.

불교지명설이죠.

모든 만물에게 올바른 빛은 전해 준다는 최고의 부처인 비로자나불.

금강산, 소백산, 속리산의 주봉이 비로봉이죠.

똥배는 가리고....

그나저나 작은 정상석은 어디 갔는고!

남쪽.

가야할 곳.

우측 국망봉.

그 좌측 중앙에 신선봉과 그 좌측이 민봉.

중앙 뒤로 형제봉이 보이는군요.

멋지죠?

가 봅시다.

죽계구곡 쪽에서 피어오르는 구름.

여기도 공사가 한창.

숲으로 들어 잠시 시원함을 느끼다,

다시 초원지대를 걷다가는 바로 숲으로 들어,

소백산성을 보면서 퇴계를 느낍니다.

묘봉암 소속의 승려 종수를 지로승으로 소백산 산행에 나섰던 퇴계.

지금은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석륜암의 석륜사터를 지나 이 부근을 지났을 터.

이게 석름봉石凜峰이었고,

이게 봉두암이었을려나?

비로봉까지 나오는 지명이 석름 - 자개 - 국망이어서 하는 얘기입니다.

잠시 그 봉두암에 올라 퇴계가 되어 보면.....

아!

그러고 보니 이 앞의 대가 광풍대光風臺인가?

주세붕이 붙인 이름입니다.

저같은 속인은 그냥 능선이나 보렵니다.

국망봉 삼거리입니다.

우틀하면 초암사로 해서 죽계구곡으로 내려가고 그러면 배점마을이겠죠.

대장장이 배순으로 인해 생긴 마을 이름 裵店里.

하필이면 선조가 죽었을 때 매월 삭망에 상복을 입고 이 국망에 올라 곡제사를 지냈다니.....

다른 왕도 아닌 선조에게!

지나온 비로봉 그리고 연화봉...

산은 늘 이렇게 아름다운데...

하긴 모르느까 재미가 없는 거겠지!

위치를 달리하여 도솔봉까지!

국망봉입니다.

일찍이 백운동서원의 주세붕은 국망봉에 올라 서울을 보니 장안은 보이지 않고 용문산만 보이네.”라고 하였죠.

주선생님의 눈은 무척이나 좋았나 봅니다.

국망봉이다. 바위 뒤로 올라가면 1등급대삼각점(영주11)이 있다. 국망봉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이다. 망국의 한을 안고 금강산(정확하게는 개골산)으로 가는 도중 이 국망봉에 올라 경주를 바라보며 망국의 한을 달랬다고 하여 국망봉이라는 것이다. 국망봉이 궁금해진다.

사실 사료(삼국사기)에는 마의태자가 금강산에 은거했다는 사실만 나오지 다른 어떤 기록도 존재하지 않는다. 마의태자라는 이름 역시 이광수의 신문소설 ‘마의태자’를 통해서 일반화된 것이다. 그러니 태자는 종묘(宗廟)에 곡(哭)을 하고 처자를 죽이고 개골산(皆骨山)에 들어가 입고 있던 비단옷이 부끄러워 찢어버리고 대신 삼베옷을 입고, “고려가 주는 양식을 소·돼지처럼 먹고 사느니, 차라리 신라 사람으로 칡뿌리를 캐먹고 살겠다.”며 끝까지 신라 사람으로 여생을 마쳤다고 하는 얘기도 사뭇 극적인 요소가 가미된 말이다.

그러면 마의태자가 금강산을 가게 된 루트를 한번 따라가 볼까? 우리가 지나온 하늘재 옆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의 미륵대원과 덕주사를 마의태자와 그 동생 덕주공주가 조성했다는 유래가 있다. 그리고 양평 용문사에는 마의태자가 금강산을 가는 도중 들러서 지팡이를 땅에 꽂아서 생겼다는 은행나무가 있으니 그렇다면 홍천 경유, 인제를 통해 금강산으로 갔다는 설정이 가능하다. 여전히 동해안 루트를 타고 금강산으로 갈 수 있는 빠른 길이 있었을 것이라는 부정설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당시 충주가 직할시 성격의 도시였으며 여기서 한강이라는 수로를 이용하여 양평으로 이동한 다음 홍천~인제~금강산 루트를 이용했을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이 설은 아직도 마의태자 전설이 남아 있는 인제의 지왕동이나 왕터라는 지명이 ‘신라부흥 운동설’과 관련하여 설득력 있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318쪽

북간터골의 운해도 여전하고.....

어라!

상원봉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이 제법 눈에 띕니다.

대간꾼?

상월봉은 생략하고 사면치기로 진행을 하니,

일군의 자작나무를 보고는,

늦은맥이재입니다.

좌틀하면 어의곡으로 진행이 가능한데...

얼마 전에 비탐이었던 곳 같은데 새로 개방을 했나?

관심 없고.....

대간길로 50m정도 올라와 금줄을 넘습니다.

여기서 단산면과 헤어지고 이제부터는 충청북도 안으로 들어와 단양군 영춘면과 가곡면의 면계를 걷습니다.

바로 이 이정목 앞이죠.

희미한 길이 보이니 제대로 된 길감각이 있으면 갈 수 있는 곳입니다.

콩코드 바위?

오랜만입니다.

소백아의 공대장님도 만나고....

이 이정표는 100% 신뢰 가능합니다.

비로봉 정상에 구름이 몰려듭니다.

오늘 15시부터 비가 온다고 했는데.....

조망도 별로 없는 이곳.

신선봉을 인증하고....

오늘 계속 눈도장을 찍는 저 나무의 정체는?

민봉에 올라,

지나온 봉우리 하나하나를 부릅니다.

좌측부터 상월봉 국망봉 그리고 비로봉.....

제2연화봉 연화봉.....

백두대간길.....

좌측 뒤가 신선봉 앞이 민봉.

아주 중요한 곳이죠.

이곳이 위 지도의 '가'의 곳입니다.

여기서 직진을 하면 면계를 따라 1245.9봉을 거쳐 뒤시랭이문봉을 지나 구인사로 직행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길은 소위 '9봉팔문' 중 뒤시랭이문봉을 지나는 길로 악랄하기 그지 없는 곳입니다.

그나저나 '9봉8문이 무엇입니까?

상원조사와 9봉팔문

 

잠깐 개념도를 보자. 대간에서 갈라진 운달단맥 줄기는 1315.3봉(참고도의 1313봉)에 이르러 좌․우측으로 산줄기를 가지 친다. 또 그 가지들은 다시 가지를 치는데 그 가지 줄기들의 끝에는 봉우리가 하나씩 생기고 산자분수령의 원칙에 의하여 그 가운데에서는 골이 하나씩 파여져 있는 게 보인다. 모양이 딱 부채 같으며 봉이 9개이고 그 사이에 골이 8개여서 9봉8문이라 부르는데 이 그림은 순전히 구인사 상월조사와 관련이 있다. 즉 1945년 상월 스님이 삼간초암을 짓고 ‘억조창생 구제중생 구인사’로 명명하고 이 9봉8문에서 수행을 통해 대도를 이뤄 천태종을 중창시켰다는 것이다.

어쨌든 그것은 종교적인 문제이고 우리 산꾼들이 이 9봉8문을 산행하는 방법은 상당히 어렵다. 보통 어의곡리 한드미 마을 정다운 민박집 옆으로 올라가서 새발문봉을 들렀다가 위 참고도의 1066.2봉으로 나와서 귀기문봉으로 진행하고는 다시 1066.2봉으로 나가 배골문봉 삼거리로 나갔다가 배골문봉으로 들어가서는 배골문봉 봉우리를 찍고 다시 삼거리로 나와 본절문봉 삼거리로 가서 같은 방법으로 진행을 하여 아곡문봉까지 진행함으로써 9봉을 마무리하게 되는 방식이다. 매 봉우리마다 왕복을 해야 하니 참 힘들고 잡목과 가시덤불로 고생하는 산행 방법이고 산행 코스다. 길 역시 제대로 나 있지 않아 상당한 인내심이 요구된다. 다행히 단양산꾼 ‘청&뫼’ 공병덕이 나름대로 표지띠도 많이 달아놓아 어느 정도 낯설지는 않게 해 놓았다. 참고로 덕평문안골로 진행을 하면 바로 구인사로 진행하게 된다. 사실 속리산의 8대8문에 비할 바는 아니긴 하다.

 

졸저 전게서 321쪽

저는 계곡길을 따릅니다.

비탐구간이다 보니 점점 더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 같이 온통 거미줄에 이끼입니다.

바위는 미끌미끌하고 온통 도사목입니다.

그래도 세 번 지난 적이 있어 눈에 익고 누군가는 지난 흔적이 명백하여 길찾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습니다.

약1.5km 정도를 걸어 임도로 빠져나옵니다.

널널한 길을 걸으면서.

9봉 중 나무에 가린 덕평문봉과 우측의 곰절문봉 그리고 배골문봉을 봅니다.

여기서 능선길을 만나고,

692.2봉과,

상월조사 적명궁이 있는 까칠봉에 오릅니다.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는 적멸궁.

천태종 구인사는 좀 이상합니다.

부처님이 주가 아닌 상월조사가 주인으로 돌아가고 있는 거 같습니다.

그거야 뭐 내가 알 바가 아니고.....

일주문을 나와 주차장으로 가서 차를 회수하고는 귀경을 합니다.

오늘은 26km 정도 걸었는데 워낙 능선이 부드럽다 보니 너무 편하게 걸은 느낌입니다.

소백은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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