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변화를 꿈꿉니다.
자꾸 먹어가는 나이지만 그대로 멈추어 있을 수만은 없죠.
살아 있는 나에 대한 신뢰를 거두지 않기 위해 오늘도 저는 산으로 갑니다.
"맹호! 형! 11월 첫 째 주는 어디로 가십니까?"
3주 정도 시간 간격을 갖고 자신의 스케줄을 잡는지 제 산행 일정이 궁금한 산수 대장님.
꼬박꼬박 안부 메시지를 보냅니다.
"응. 그날은 푸우가 설악을 가고 싶다고 해서 이번에는 북설악으로 잡았는데.... 마산으로 해서 죽변산 그리고 운봉산까지 갈까 하는데....."
"들머리는 어디로 하는데요?"
산에 관한 한 도사견이 되어 한 번 물면 절대로 놓는 법이 없는 산수 대장이죠.
"아무래도 화암사로 해야겠지? 상봉으로 오르면서 지난번 걸어놓았던 내 표지띠가 제대로 수거되어 있는지도 봐야겠고 무엇보다 신선봉 신령님께도 안부를 여쭤야 하니까."
"그런데 운봉산이 어디 있는 거죠?"
"찾아보세요! 거 있잖아. 전에 화채봉에서 조망할 때 고성 쪽에 피노키오 모자 같이 툭 튀어 나온 봉우리 하나 있었잖아..."
그렇게 11월 첫 째 주 산행코스는 화암사 - 상봉 - 신선봉 - 대간령 - 석봉 - 마산 - 죽변산 - 운봉산의 도상거리 약 25.4km 구간으로 잡힙니다.
푸우님과 함께 서울을 떠나 고성군 토성면 운봉리 539-2 운봉산 날머리에 도착합니다.
두어 시간 자고 일어나니까 산수님 내외가 도착하여 단잠을 자고 있군요.
깨워서 함께 산수님 차로 화암사로 향합니다.
오늘은 음력 10. 12.
벌써 입동을 이틀밖에 남겨놓지 않았군요.
공기는 시원하나 바람이 조금 부는군요.
늘 산행은 새로운 나를 느끼게끔 해주는데 오늘 산행은 어떨까요?
결과적으로 우리 4명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추억거리를 만든 오늘의 산행.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갑니다.
주차를 해놓고,
04:17
스님들의 새벽 예불소리를 들으며 오늘 산행을 시작합니다.
"형. 오늘 몇 시간 정도 걸릴 거 같아?"
"글쎄.... 25km 조금 넘으니 마산부터는 초행길이라고 해도 시속 2km 잡으면 넉넉잡고 14시간 정도 걸리지 않겠어?"
"뭐 그렇게나 걸리려고.... 난 12시간 정도면 될 거 같은데...."
평소에는 신중한 산수님이 오늘은 왜 그리 앞서 가시나....
"푸우는 어때?"
"저야 형님들 뒤만 쫓아가면 되니까......."
"무슨.... 좋아. 그러면 마산부터는 푸우가 리딩 해봐. 그 정도 구력이면 혼자 할 만도 하잖아."
오늘 구간 중 마산부터 날머리인 운봉산까지의 산행 대장은 푸우님입니다.
연신 하품을 하던 사람들도 산꾼이라면 그저 산에만 오면 들뜨기 마련입니다.
날다람쥐님은 계속 멘트를 날립니다.
"오늘 기분 너무 좋다"
지도 #1
상봉 들머리입니다.
이 새벽에 볼거리가 있을 리 만무합니다.
암벽 구간에 있는 로프가 아슬아슬합니다.
이 구간 세 개의 로프 중 하나입니다.
06:09
주위를 조망하지 못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그래도 마음속으로 그것들을 다 확인합니다.
"저기 화채 라인 보이지? 화채봉과 그 우측의 대청과 중청. 그리고 좌측의 울산바위와 황철 1, 2봉"
"형. 나는 저기 마등령 올라가는 사람도 보이는데!"
한술 더 뜨는군요.
"그래 나는 저 안산에서 야영하는 사람도 보인다!"
두 번째 바위봉을 지나면서 이번에는 해산굴을 통과합니다.
바람이 거칠어집니다.
해밀 대간팀의 남진 산행을 돕기 위하여 제가 달아놓았던 20여 장의 표지띠 중 세 장만 필요한 곳에 달려 있더군요.
힘듦도 마다하지 않고 나머지 표지띠를 수거해 주신 회원님 감사합니다.
06:49
화암사를 출발한 지 2시간 반이나 지나서 백두대간에 접속합니다.
상당히 지체가 됐군요.
우리 팀의 단점.
사진 많이 찍고 말이 너무 많다!
진도가 제대로 나갈 리 만무합니다.
먼지는 없어 다행히 목의 컬컬함은 없고....
일출을 보면서 10분 소비.
상고대를 보면 상고대를 봤다고 또 5분.
조망이 터지면 터진다고 해서 감상하는데 10분.
시간을 너무 소비합니다.
상봉으로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그러던 중 조망터에 도착합니다.
와우!
색깔과 타이밍!
바로 앞에 울산바위가 펼쳐지면서 그 좌측으로 달마봉.
중앙의 화채봉 그 앞의 만물상.....
조금 우측으로 눈길을 돌리니 바로 앞의 울산바위 갈림봉인 1103.2봉.
그 우측으로 황철2봉인 1318.9봉.
그리고 그 뒤로 1275봉과 그 좌측의 범봉 등의 천화대.
그리고 신선대 뒤로 대청 형제들!
이쯤 되면 날다람쥐님이 포즈를 취할 수밖에 없다는 건 너무나 당연한 귀결.
그녀가 보고 있던 것은 서북능선의 안산라인 뿐만 아니라 한계천 건너의 주걱봉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푸우님은 그 우측의 소양지맥 상의 사명산과 오봉산까지 조망하시고.....
저는 눈에 뵈는 게 없더군요.
설악의 모든 걸 볼 수 있던 이 조망터를 푸우님은 '북설악 만경대'로 자신 있게 명명하고.....
동의합니다.
북설악 만경대!
그나저나 산수님은 이걸 언제 찍으셨을고!
겨울이 오는 북설악.
우측으로 촛대바위를 보고....
어라! 이게 무엇인고?
이 안에는 지중직접관수 주머니가 들어 있는데 아마 이곳에 자생하고 있던 나무를 식재하고 그에 맞는 물을 투여하면서 그 식생의 성장을 모니터링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
아마 산림청에서 실시하고 있는 거겠죠.
"저 사람들은 돈을 벌면서 산행을 하는데 우리는 돈을 쓰면서 산행을 하니!"
산수님이 푸념 아닌 푸념을 합니다.
너덜을 지나면서,
뒤를 돌아보면서 우회한 바위봉을 보고,
그러고는 다시 앞을 봅니다.
아!
신선봉!
"저기 우측에 보이는 거 있잖아. 저게 우리가 이따 하산하여 만날 운봉산이야!"
"285m이던데 바닥에서부터 올라가니까 제법 오를만하겠어요."
우측으로 가리봉과 주걱봉도 보면서 안산 일대도 조망합니다.
"오늘 한검이가 좀 귀가 간지럽겠는데...."
이한검 대장님이 오늘은 다른 일정을 잡는 바람에 동행하지 못한 아쉬움을 친구인 산수대장이 달리 표현합니다.
돌강을 건너 상봉에 접근합니다.
우측으로 그렇게도 사모하고 늘 그리움 속에 있는 신선봉이 보이고.....
잠시 우측으로 토성면 성대리의 산군山群과 동해 바다를 봅니다.
상봉이라 쓰여 있던 돌조각이 어디로 사라졌는가요?
어느 몰지각한 인간이 하얀 스프레이로 케른 전체에 상봉이라 써 놨으니 아마 그게 보기 싫어 누군가가 그 부분을 떼어낸 거 같습니다.
좌측 아래 돌 중 하얀색이 그 흔적입니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매서운 바람에 손을 주머니에 넣은 날다람쥐님이 상봉을 접수합니다.
"현오님. 실컷 보세요. 이제는 신선봉 타령 좀 그만하시고요."
제 속을 뻔히 아는 다람쥐님의 질투 아닌 질투.
겸연쩍음에 시선을 바꿉니다.
바로 앞 석봉을 거쳐 좌측의 병풍바위를 지나 우측의 마산으로 오를 거죠?
그리고 그 뒷 줄 가운데가 지난 9월 말 산수님, 다람쥐님과 함께 올랐던 향로봉.
이제는 향로봉 좌측의 원봉(둥글봉)이니, 칠절봉도 눈에 익었습니다.
그리고 그 우측 뒤로 금강산이 펼쳐지는군요.
금강산을 당겨봅니다.
중앙에 가장 높은 봉우리가 비로봉이니 그 우측이 미륵봉.
떨어졌다 올라간 봉이 일출봉 , 월출봉이니 평평한 라인 맨 좌측 봉이 장군봉이 되겠군요.
정말이지 저 금강산은 상상만으로도 너무나 아름답게 보입니다.
죽기 전에 저 금강산을 제대로 산행을 할 수나 있을까?
신선봉 좌측의 마산 라인.
뒤도 돌아보고....
황철봉 우측 뒤로 귀청도 고개를 살짝 내밀고.....
그 우측의 가리봉이나 주걱봉도 관찰이 가능하니....
향로봉 라인.
너무 지체했습니다.
석봉에서 발길을 옮기자마자 위험 구간에 맞닥칩니다.
예전에는 로프가 있었는데 국공에서 그걸 없앴으니 여기서 자주 사고가 나게 되죠.
조심조심 내려옵니다.
앙증맞은 하트.
누구의 작품인가?
신선봉을 오르기 바로 전의 고개.
화암재입니다.
지도 #1 '나'의 곳에 위치합니다.
좌틀하면 마장터로 가고 우틀하면 화암사로 갈 수 있는 곳이죠.
쉼 없이 바로 신선봉을 향합니다.
어떻게 이다지도 우리나라의 산은 아름다울까?
만약 내가 우리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에 들어가 산다면 이 아름다운 산하를 어떻게 잊고 살 수 있을까?
한 달에 한 번씩 들어와 이 산하를 거닐다 다시 들어가면 될까?
소중한 바위 하나, 나무 한 그루.....
사명산 방향.....
그 좌측이 화악산인가?
중앙 우측의 향로봉 라인에 있는 매봉산1271.1m.
화암재에서 신선봉으로 오르는 루트는 두 개입니다.
하나는 편하게 신선봉 삼거리로 올라 우틀하여 신선봉을 다녀와서 다시 그 삼거리로 진행하는 루트,
그리고 다른 하나는 바로 거친 길로 들어서 너덜을 지나는 루트 등입니다.
그러면 자주 비박꾼들을 만날 수 있는 헬기장으로 오를 수 있는데 이곳도 산림청에서 시설물 설치를 해놓았습니다.
09:30
드디어 신선봉입니다.
금강산 12,000개의 봉우리 중 가장 남쪽에 있는 그것으로 금강산의 남한 5개 봉우리인 향로봉, 삼봉, 칠절봉, 둥글봉 등과 함께 그 무리에 속하는 것이죠.
오늘 진행할 좌측의 죽변산에서 운봉산으로 진행하는 루트를 살펴봅니다.
운봉산 앞으로 군부대가 있고 몇 개의 시설물들이 보입니다.
마산에서 죽변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흐름도 살펴보고....
제법 된비알임을 감지합니다.
"고생 좀 하겠군...."
"형님. 내리막 길이 고도 편차가 심한데요."
푸우님이 조금 긴장이 되는 거 같습니다.
"그래. 죽변산에서 내려가는 길이 만만치 않겠다."
바로 앞 석봉에서 병풍바위 ~ 마산 ~ 향로봉 ~ 금강산으로 진행하는 백두대간을 관찰합니다.
금강산!!!!
울산바위도 조금 당겨보고....
화채능선과 백두대간길.
상봉.
뒷줄의 귀청 ~ 가리봉 ~ 안산 라인.
중앙 뒷줄의 가리봉이 서북능선의 일원 같이 보입니다.
"이 도원리가 관동지방에서는 곡창지대였다고 하지"
도원리하니까 무릉도원이 연상되기도 한다. 하긴 도원리 같은 경우에 예전부터 7,000평 정도의 벼농사를 지을 수 있는 논이 있었다고 하니 상당한 규모의 동네였다. 일찍이 이중환은 영동지방이 땅은 메말라서 종자 한 말을 심어야 십여 말을 거둘 수 있다고 얘기했는데 오직 예외인 곳이 통천과 고성이라고 했으니 바로 이 지역을 지목한 것이다.
-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553쪽'
"내려가자. 앞 봉우리를 넘으면 대간령이겠지."
무거운 걸음을 옮깁니다.
868.4봉을 지나,
바로 앞 대간령을 지나 오를 석봉(암봉)을 주시합니다.
지도 #2
평범한 등로가 갑자기 된비알로 변하더니.
10:43
대간령으로 떨어집니다.
반가운 산패.
오늘은 작은차갓재에서 하늘재로 거닌다고 하던데......
니은 님은 아직 뵌 적이 없지만 정대원으로 열심히 대간길을 진행하고 계시는 분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고.....
새이령과 석파령
비알을 내려가니 새이령이다. 대간령, 샛령이라고도 부르는 곳이다. 또 조선시대의 지리지에는 소파령(所坡嶺) 혹은 석파령(石破嶺)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도 있다고 한다. 새이령이란 간령 즉 진부령과 미시령의 사이에 있는 고개라는 뜻 같다. 혹은 현대인의 개념으로 볼 때에는 마산봉과 신선봉 사이의 고개라고도 볼 수 있겠다. 어쨌든 그걸 한자어로 표기하니까 간령(間嶺)이 되었고 지나다니던 행인들이 많아 그 간령의 규모가 컸으니 ‘큰 간령’이어서 여기에 ‘대(大)’를 붙여 대간령이 되었다는 설명이다.
해동지도의 고성군 부근을 보면 대간령 대신 석파령이라는 이름으로 표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위 지도는 조금 이따 마산봉을 볼 때 흘리령, 마기라산과 관련하여 한 번 더 볼 것이다. 이 새이령에서 인제군을 버리고 고성군 간성읍을 만나게 된다. 그러니 이 고개가 고성군 토성면, 간성읍 그리고 인제군 북면 등 삼개의 읍, 면이 만나는 삼면령(三面嶺) 역할을 하게 된다.
한편 이 고개는 인제 용대리와 고성의 도원리를 연결해주는 아주 중요한 고개였다. 미시령이 워낙 높고 험해 주민들은 그 고개 대신 저항령이나 이 새이령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도원리하니까 무릉도원이 연상되기도 한다. 하긴 도원리 같은 경우에 예전부터 7,000평 정도의 벼농사를 지을 수 있는 논이 있었다고 하니 상당한 규모의 동네였다. 일찍이 이중환은 영동지방이 땅은 메말라서 종자 한 말을 심어야 십여 말을 거둘 수 있다고 얘기했는데 오직 예외인 곳이 통천과 고성이라고 했으니 바로 이 지역을 지목한 것이다.
그러니 북설악의 4개 큰 고개는 늘문령이라고 부르던 저항령, 큰령이라고 부르던 미시령, 대간령이라고 불리던 이 새이령 그리고 진부령 등으로 정리가 된다.
“형, 근데 여기를 석파령이라고 불렀어? 석파령? 어디서 들어본 고개인데. 어디에 또 있는 거지?”
“가 봤어? 춘천과 경기도를 잇는 고개에 하나 또 있지. 거기는 石破嶺이 아니고 席破嶺이라고 썼어. 즉 예전 관찰사들이 인수인계를 할 때 그곳에 자리를 깔고 앉아 절차를 마무리한 다음 관인을 주고받고는 서로의 부임지로 떠났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하지. 가평지맥(신산경표로는 화악지맥)의 계관산에서 삼악산으로 내려가다 보면 만나는 임도 상의 고개지.”
- 졸저 전게서 552쪽 이하
여기서 인제군 북면을 지나 고성군 간성읍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고성읍과 토성면의 면계를 따라 걷게 되겠군요.
"자, 올라가자."
석봉을 오르다 뒤를 돌아봅니다. 신선봉과 상봉 그리고 황철봉이 아쉬운 듯.....
그 뒤로는 서북능선의 흐름이......
서북능선의 끝이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보면 확실하게 이 설악의 산줄기가 '∾'의 형태로 되어 있어 태극종주가 가능함을 암시해 줍니다.
이제 죽변산과 운봉산이 아주 낮아졌습니다.
그러고는 석봉(암봉)889m입니다.
지도를 보니 등고선의 간격이 너른 게 이제부터는 좀 평평한 분지 같은 곳을 걷는다는 얘기겠네요.
이정표에서 우틀하고,
정말이지 아주 너른 평원 같은 곳으로 들어섭니다.
그래서 1054.6봉 옆에 있는 병풍바위로 오르려면 한참이나 스틱질을 해 고도를 높여야 합니다.
병풍바위 이정표가 나오고...
"오늘은 우리가 대간길을 걷는 게 아닐뿐더러 향로봉 라인과 금강산 구경은 실컷 했고 마산에 가서 또 볼 것이니 나는 패스."
"저는 빨리 가서 보고 오겠습니다."
"그래라."
푸우님은 혼자 병풍 바위로 오르고 우리는 바로 우틀합니다.
푸우님이 병풍바위에서 서북능선과 향로봉 라인을 감상할 때,
우리는 병풍바위 날머리에서 직진하여 바람이 없는 옛 샘터 부근에 자리를 잡습니다.
그 시간 푸우님은 마산 방향의 샘터로 향하는 우리를 보고 있었고,
예전 백두대간 졸업 산행을 떠올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마 푸우님은 여기서 향로봉 정상부를 당겨 그 주변의 멋진 모습들을 사진으로 담았는데 산행 마지막에 '탑차 라이트 사건'으로 그걸 다 삭제해 버리게 됩니다.
아까워라!!!!
그러면서 가장 뜻깊은 사진 한 장 얻었다고 하더군요.
바로 이 사진입니다.
귀청을 확실하게 볼 수 있었고 큰감투봉에서 대한민국봉을 거쳐 안산으로 이어지는 서북능선인데 그 중간 라인에서 관찰 할 수 있는 가리봉과 주걱봉 등 한계천 건너에 있는 설악의 이복동생들을 이제는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었다고 하더군요.
" 암! 그렇지..... 이 장면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이한검 대장 말고 또 있지. 조금 억울하겠는데....."
"누구? 홀가분 형?"
파커를 입고 설악산표 마가목의 향긋한 냄새를 맡으며 화려한 오찬을 즐깁니다.
"이 시간에 이렇게 한 잔 하면 잠이 올 법도 한데 오늘은 아니네요. 오히려 긴장이 됩니다."
말수가 워낙 적은 푸우님이 마가목 두 잔에 입을 엽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궁금함 혹은 두려움이냐?"
40분 정도 머무르다 자리를 털고 일어납니다.
마산봉과 병풍바위를 연계해 석봉을 거쳐 대간령에서 용대리로 하산길을 잡는 팀들이 많군요.
당일치기로는 멋진 루트입니다.
"마장터 쪽에서 올라오시나요?"
한 팀에서 몰골이 볼만한 우리에게 묻습니다.
귀찮은 듯 한 마디만 합니다.
"네."
13:21
드디어 마산입니다.
옛 정상석은 없어지고 2016. 11. 19. 세운 새 정상석만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마산의 유래
마산봉을 정면으로 보며 내려간다. 삼거리를 지나 우측으로 샘물 표시가 되어 있다. 마시기에 별로 적합해 보이지 않는 물이다. 안전시설이 되어 있는 돌계단을 따라 오르면 마산 삼거리를 지나 2004년 이설된 2등급삼각점(간성24)이 있고 정상석 두 기가 서 있는 마산(1052.0m)이다.
마산(馬山)은 ᄆᆞᆯ산에서 왔다. 말(馬)은 중세 국어에서는 ‘ᄆᆞᆯ’이었다. 그런데 고대국어 체계에서는 뒤에 모음이 있는 경우 두 음절로 말하는 ‘개음절어’ 체계여서 고려시대 이전에는 ‘말’의 경우 ‘ᄆᆞᄅᆞ’로 발음되었을 거라고 한다. 따라서 이 ‘ᄆᆞᄅᆞ’는 말(馬) 말고도 ‘마루’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 지금의 ‘산마루’와 같이 ‘꼭대기’ 혹은 ‘높은 곳’의 의미로 사용했다고 한다. 이 의미의 잔재가 馬峴, 馬山, 馬嶺 등이다. 그러니 보통 지명의 유래나 전설 등이 얘기하는 것과 같이 ‘말의 형태를 닮았다.’는 등의 동물 말(馬)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니 이 마산도 생김새와는 관계없는 단지 ‘높은 산’이라는 의미를 가진 산에 불과하다.
- 졸저 전게서 564쪽
제발이지 이런 식의 '지명 유래' 설명을 하지 말라는 얘기죠.
백두대간의 흐름을 봅니다.
"내가 처음 백두대간을 졸업할 때 친구 8명이 우정 산행을 해줬지. 그때 이 마산을 내려와 알프스스키장을 지나 흘리 부대를 보고 흘리 마을로 막 진입을 할 때 바로 좌측으로 비닐하우스 단지가 나오더군. 그런데 그 비닐하우스 안에는 파프리카를 수확하느라 주민들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분들이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귀에 익은 선율이 막 흘러나오기 시작하더군.
I see the lonely road that leads so far away
I see the distant lights that left behind the day
But what I see is so much more than I can say
And I see you in midnight blue
I see you crying Now you've found a lot of pain
And what you're searching for can never be the same
But what's the difference
Cos they say "What's in a name?"
And I see you in midnight blue
.............................
바로 ELO의 Midnight Blue였지.
홀로 6개월 12일을 걸어 대간을 졸업하는 날에 들었던 음악인 Midnight Blue.
그날부터 그 음악은 내게는 백두대간송이 되었던 거지."
자리를 뜨려는데 비박팀 8명 정도가 올라오는군요.
덕분에 단체 사진 한 장 건졌습니다.
이때까지는 이렇게 환하게 웃는 얼굴입니다.
이게 오늘 산에서의 마지막 웃음이 될 줄은 정말이지 꿈에도 몰랐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경험이 많고 산전수전 다 겪은 우리 팀이지만 역시 산에서는 "산! 그거 아무도 몰라요!"라는 금언을 되새겨야만 했을 산행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저 우리는 이렇게 금강산도 보고,
매봉산을 보며,
알프스 리조트 얘기나 하고 졸업식 뒤풀이 얘기며 향로봉 후일담이나 주절거리며 걸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던 것이죠.
적어도 산신령님의 든든한 뒷배가 있는 우리는 충분히 그럴 것이라 추호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기대감은 산산조각이 났고 이 마산 ~ 857.6봉 ~ 죽변산 ~ 운봉산으로 이어지는 라인이 죽음의 시간이 될 줄은 이 시간까지 짐작조차 못했으니......
13:26
이제 그 미지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결과적으로는 게오르규의 25시로 .....
예전 부대 내무반이 있던 자리를 지나 좌측으로 안흘리로 빠지는 임도를 버리고,
잡목 안으로 듭니다.
잡목이라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바닥의 길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등로는 급격하게 된비알로 바뀌면서,
짐승도 안 다니는 길로 바뀝니다.
그 흔한 산양의 똥이나 멧선생의 그것도 보기 힘들 정도입니다.
전지작업을 한 잡목에 차이고 바위에 걸리고 나무 밑동에 걸리고....
"아야!"
"아이 닝기럴...."
"어이쿠"
총체적 난국입니다.
14:59
지도 #2의 '가' 지점으로 올라와서 숨을 돌립니다.
불안감이 급습합니다.
"지금 얼마나 왔냐?"
"14km 조금 더 왔는데요."
어의상실.
"그렇다면 아직 11km 정도가 남았는데 등로사정이 이렇다면 6시간 정도 잡아야겠네. 그리고 앞으로 3시간 후면 해가 질 텐데 ..... 야간 산행을 각오해야겠다. 등로 사정도 이 모양이니 마음 단단히 먹고 걷자."
하지만 말은 이렇게 해도 야간산행에 길들여진 팀이라 사실 아직도 사태 파악이 안 됩니다.
지도 #2의 '나' 지점을 지나면서 카프리님을 만납니다.
땅통종주란 우리나라 땅끝마을인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의 땅끝기맥이라고도 불리는 해남지맥의 끝 사자봉에서 시작해 북진을 하여 달마산을 거쳐 삼계봉에서 호남정맥으로 갈아탄 다음 영취산에서 백두대간에 진입하여 마산까지 백두대간을 이용하고는 여기서 우틀하여 지금 이 루트를 거쳐 죽변산 ~ 명우산 ~ 거진항 ~ 통일전망대(편의상 죽변단맥'으로 부릅니다.)로 진행하는 도상거리 1,350km의 장거리 루트입니다.
광주의 카프리님이 설정하여 2020. 10. 30. 진행 완료한 이 루트는 본인이 땅끝마을의 '땅'과 통일전망대의 '통'을 따서 땅통종주라 이름하고 1년 6개월을 홀로산행으로 완주하신 것이죠.
행운이라는 닉은 졸업하는 날 동행하지는 않았지만 땅통종주에 많은 도움을 준 분이라고만 짐작합니다.
15:50
857.6봉을 지납니다.
16:02
지도 #2의 '다'에서 고성읍을 버리고 죽왕면을 만나게 되니 이제부터는 토성면과 죽왕면의 면계를 따라 걷게 됩니다.
자하 신경수님을 뵙니다.
우리나라에서 산줄기 최대의 마일리지를 보유하신 최고의 선수.
형님은 이 길을 죽변단맥이라는 이름으로 걸으셨죠.
"형님. 요즘 제가 쓸데없이 바쁩니다.
전화 한 번 드리겠습니다."
계절을 잊은 녀석.
16:20
지도 #2의 '라'의 753.2봉을 지나고....
적어도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상에 고도 표시가 되어 있음에도 길은 이 정도이고....
벌써 달이 떴습니다.
17:41
중앙 뒤로 향로봉 라인입니다.
향로봉 뒤로 이미 해는 저물었고.....
17:53
갑자기 현재명의 '고향생각'이 저절로 입에서 흘러나오고 두보의 시가 떠오르니 마음이 처량해지기 시작합니다.
親朋無一字
老去有孤舟
戎馬關山北
憑軒涕泗流
지도 #3
18:16
우여곡절 끝에 헬기장이 설치되어 있는 죽변산에 도착했습니다.
감으로만 이제 다 온 느낌입니다.
정신이 없어 삼각점 촬영도 하지 못하고.....
이미 다 썩은 얼굴임에도 푸우님만은 연출된 웃음을 짓습니다.
그런데 사실 지금까지는 연습 게임에 불과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지금부터가 지옥의 시간 본 게임입니다.
설상가상이라고 제 랜턴의 배터리는 이미 아웃이 되어었고.....
저는 날다람쥐님이 뒤에서 불빛을 비춰주어 간신히 걸어갈 수만 있어 제가 앞장서기는 어려운 상황.
"자, 이제 여기부터는 푸우 대감이 앞장서서 길을 안내해야겠네. 트랙은 받아왔지?"
"네. 알았어요."
"그리고 지금 우리가 20km 걸었으니 앞으로 도상거리로는 약 5km 정도 남았어. 아직 우리는 앞으로의 등로사정을 확실히 모르니 적어도 3시간은 잡아야 할 거야. 만약 여의치 않으면 임도(지도 #3의 '나')를 만나서 119에 전화를 하여 우리가 실종 직전이니 너희가 출동하여 우리를 구조하든지 아니면 우리 위치를 택시 기사들에게 알려주어 택시를 보내주든지 알아서 하라고 얘기하는 게 나을 거 같아. 지금부터는 비상상황이고 실제 상황이야."
"그래도 이왕 온 거 운봉산은 올라야죠."
푸우님이 끝까지 강행하자고 하는데 평소와는 다르게 산수대장님이 갑자기 나약한 모습을 보이며.
"아니야 오늘 잡목을 헤치고 걷느라 좀 힘들어. 시간도 너무 늦었고...... 운봉산은 어려워..."
"그럼 일단 임도(지도 #3의 '나')까지 가서 상황을 보고 다시 얘기하도록 하자."
죽변산에서 우측의 길같지도 않은 길을 선택하여 학야리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여기서 소통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이 됩니다.
제가 푸우님이 가지고 온 트랙을 확인했어야 했는데.......
푸우님은 인터넷 카페를 뒤져 마침 죽변산 ~ 운봉산까지 진행한 사람의 트랙을 다운로드하여 가지고 왔던 것이고 저는 늘 하던 대로 능선을 잇는 트랙을 제가 직접 맵소스에 그것을 그어 폰에 깔았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모르고 그저 푸우님도 당연히 저와 같이 트랙을 그려서 가지고 온 것으로 생각했고 또 그 트랙을 토대로 앞장서서 걷는 줄 알고 그대로 따라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단은 지도 #2의 '가'에서 발생했습니다.
폰을 들여다보지 않은 저는 푸우님이 앞에서 걷는 대로 문암천 지류의 우측 능선을 타고 진행을 합니다.
당연히 맞겠거니 하고 생각만 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길은 없습니다.
당연히 그런 루트로만 생각합니다.
바닥은 벌목 내지는 전지 작업을 하여 온통 베어진 나뭇가지와 그 작업의 여파로 나무 밑동에 발이 걸리기 일쑤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에 제 폰을 꺼내 트랙을 확인하자 우리는 이미 원 트랙에서 우측으로 한참이나 벗어나 있었습니다.
벌써 한 시간 이상을 내려왔는데 다시 올라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진행방식.
"이 트랙 대감이 그린 거 아니야?"
"아니에요. 카페를 검색해 보니 딱 하나 트랙이 올라온 게 있어서 그걸 다운로드하여서 가지고 온 건데.....어떡하죠?"
푸우님의 얘기를 듣고 보니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도원저수지에서 임도를 따라 대간령으로 오르다 갑자기 변심하여 죽변산 소로로 치고 올라 이 죽변산에 오른 다음 능선길로 진행을 하려다 잘못 길을 들어 문암천 지류를 건너 다시 임도에 붙는 루트를 따랐던 것입니다.
그러고는 아무 설명 없이 그 트랙을 올려놓았으니......
"뭘 어떡해. 하는 수 없지. 그냥 무조건 개울로 접근하여 '다'봉을 우측으로 우회하여 무조건 치고 올라가면 임도에 도달할 수 있을 거야. 지도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아. 신경 끊고 지금같이 앞에서 길을 잘 뚫으면서 가면 돼."
제 앞에서는 푸우님이 잡목을 뚫고 가고 있고 저는 그 불빛을 놓칠새라 바로 뒤를 쫓고 제 뒤에서는 날다람쥐님이 제 걸음에 맞춰 랜턴 불빛으로 저를 비추고 그 뒤에서는 산수님이.......
"아야."
수시로 여기저기서(특히 뒤에서) 비명 소리와 "윽"하는 신음 소리가 들립니다.
"어"
나무 밑동과 전지한 두꺼운 가지에 제 발이 끼어 빠지지 않습니다.
도저히 꼼작거릴 수 없는 공간.
"Help me!"
다람쥐님이 바로 따라와 그한 쪽 가지를 밟아주어 간신히 '자연 올무'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고....
길도 없는 사면을 따라 미끄러지면서 개울 방향으로 진행을 하는데 그것도 길이라고 푸우님 앞에서 갑자기 푸드덕거리면서 상당한 크기의 무언가가 날아가면서 푸우님은 물론 우리 모두 화들짝 놀라서 바라보니 큰 꿩 한 마리가 아마 잠을 자다가 놀라서 날아가는 것이었습니다.
"멧돼지의 흔적도 없는데 저 꿩은 뭐야? 저 놈 맛이 간 놈이 아니야?"
괜한 푸념을 꿩한테 해댑니다.
"운도 없는 놈 같으니....."
시간은 가고...
진도는 제대로 나가지 않고....
된비알을 내려오다 구르기도 하지만 낙엽 때문에 몸은 멀쩡합니다.
다만 정강이는 이미 여러 군데 상처가 났고 신발 안으로는 각목과 돌덩어리가 발가락과 발바닥을 자극하지만 그걸 꺼낼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끊이지 않고 뒤에서 나는 비명은 오로지 산수 대장님 곡소리.
아비규환이 따로 없습니다.
"빨리 내려가고 싶다!"
"지옥이 이런 곳인가?"
배고프다는 생각도 나지 않습니다.
겨우 지도 #3의 '라'의 곳에 다다릅니다.
물을 한 통 받고 이제는 개울물을 따라 오르내리면서 걷습니다.
"다' 부근에 도달해서는 "이제 북동쪽으로 80m만 치고 올라가면 소로가 나오니까 가시나무만 아니면 무조건 뚫고 올라가."
선두의 푸우님은 길도 없는 숲속을 잔가지를 헤치며 뚫고 올라가느라 고군분투합니다.
"조금만 더 ... 금방 임도와 연결된 소로가 나올 거야."
5분여 더 잔가지를 뚫고 올라갑니다.
"형님. 철조망이 나오는데요. 무덤도 있고요."
"그래? 그렇지. Where there is a tomb, there is a way!"
무덤이라는 말에 정신이 되돌아왔는지 농담이 나옵니다.
날 다람쥐님이 받습니다.
"맞아요. 지맥 할 때 길 못 찾으면 늘 무덤만 찾았으니까요."
그 소로를 따라 걸으니 드디어 임도가 나옵니다
그런데 도로 공사 중.
장비를 보니 대형 군용 굴삭기로군요.
"이 임도에 군사도로를 만드나 본데.... 어쨌든 우측으로 나가 포장도로 나오면 택시를 부르든지 하자."
길을 따라 1분 정도 내려가다 보니 커다란 철문이 나오고 서치라이트가 우리 방향을 비춥니다.
아! 그 철문 밖은 마을로 이르는 꽃길이 아니라 군부대 안입니다.
"형. 저 붉은 게 적외선 카메라 같은데 더 가까이 가면 자동 감지가 되어 상황실에 비상벨 울릴 거 같은데..."
"그럼 부대 안으로 끌려들어가 조사받고 걔들은 상급부대에 보고를 해야 하고 어쩌면 보안대까지 끌려가서 이것저것 질문에 답해야 하고 골치 아플 텐데..."
"그런데 형님. 이 사람은 그래서 그런지 여기서 그냥 좌측으로 치고 올라갔는데 어떻게 하죠?"
"그 사람은 믿을 사람이 못 돼. 그리고 지금은 주간도 아니고 야간이야. 이걸 뚫고 올라가느니 아예 다시 백 해서 '다'의 곳으로 가서 능선을 따라 내가 그려온 루트대로 움직이자. 능선이 가장 빠른 길이야."
여유 부릴 틈도 시간도 없습니다.
택시를 부른다느니 119에 전화를 건다는 건 휘발유를 지고 불구덩이로 뛰어들어가는 격!
임도를 만났다는 환희의 기쁨도 잠깐.
다시 불안한 마음이 엄습합니다.
용천북(성주)지맥을 하다가 관련 사건을 접한 경험이 있던 산수대장 내외는 진저리를 치며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자고 하십니다.
다시 오던 길로 되돌아 가 고개로 올라갑니다.
'다'의 곳 고개마루로 올라가서 우틀하여 능선으로 올라 부대를 우측에 두고 능선을 걷습니다.
"랜턴을 끄자. 저 부대에서 보면 우리 랜턴이 움직이는 불빛으로 보이니까 혹여 우리를 무장공비가 침투한 것으로 오인하여 발사를 할 수도 있고 전 부대가 비상 걸려 출동하게 되면 우리는 두 손을 들고 투항하듯 잡혀가야 하니까 그건 안 되지!"
다행히 오늘 달은 밝습니다.
이제 부대의 사정권에서 벗어나 다시 랜턴을 켭니다.
지도 #3의 '마'에 다다릅니다.
"푸우 대감. 여기서는 무조건 능선을 버리고 왼쪽 개울 쪽으로 붙어. 50m 정도만 가면 소로가 나오고 개울 건너면 바로 임도와 연결될 거야."
"이 사람은 그냥 능선으로 가서 임도로 내려갔는데요."
"그 사기꾼 같은 X은 믿지도 마. 그 X은 사람이 아니라 알바의 神이야!"
이제는 다 왔으니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숲을 뚫고 진행합니다.
22:00
"무덤이다!"
함 선생님이 부인을 두 분 거느렸든 세 분을 거느렸든 우리는 관심 없습니다.
다만 무조건 누가 먼저라 할 거 없이 탄성이 터지면서 함 선생님 자손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던집니다.
"이런 훌륭한 터에 이렇게 조상을 모셨으니 복 받을 겁니다!"
소로를 빠져나오자 드디어 임도가 나오고 임도 옆으로 막사 같은 게 보입니다.
"어머! 현오님 저거 부대 아니에요?"
'아직도 상황이 끝나지 않았나?'
긴장하여 접근하여 보니 폐가입니다.
"이런 닝기럴..... 그나저나 미륵암이 나올 때가 됐는데...."
100여m 앞에 미륵암으로 보이는 건물이 보이는데 그때 갑자기 탑차가 라이트를 켜며 우리 쪽으로 빠른 속도로 다가옵니다.
"어머! 출동했나 봐요."
"형 어떻게 하죠?"
"아! 이거 골치 아프게 됐는데...... 숲으로 들아 숨을 수도 없고.... 어떻게 하긴. 부딪쳐야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마. 우리가 뭐 알고 영내로 들어온 거 아니잖아."
그런데 그 차는 우리 쪽으로 오다 20여 m 전방에서 좌틀하여 그 건물로 들어갑니다.
"이게 미륵암이고 저건 그냥 민간인 차야."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더니..... 우리는 지난번에도 당했잖아요."
날다람쥐님이 가슴을 쓸어내리십니다.
"저는 괜히 아까운 사진 몇 장 지웠네요."
푸우님은 그 사이 혹시나 하는 생각에 향로봉 정상부를 찍은 사진 몇 장의 사진을 삭제했던 것입니다.
'빠르기는 더럽게 빠르네....'
22:42
"이제 다 왔다. 저기 싸이로 보이잖아. 그 바로 앞이야. 고생들 많았다."
이제야 배도 고파오고 몸도 피곤해짐을 느끼게 됩니다.
온몸을 털고 차에 올라 다시 화암사로 가서 산수님 차를 회수합니다.
그러고는 속초 시내로 들어가는데 '청진동 해장국'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미 시간은 23: 30.
두 분은 선지해장국.
산수님과 저는 도가니탕.
밤늦게까지 고생하는 이모님들 조금 쉬시라고,
"이모님. 술은 저희가 갖다 먹어도 됩니까?"
"아니에요. 일하시느라 힘드셨을 텐데 제가 갖다 드릴게요."
서로의 몰골을 보니 머리와 옷 여기저기에 흙과 나뭇잎 부스러기, 머리는 떡이 져 있으니 지금까지 어디 공사장이나 목장에서 일하다가 온 사람 맞습니다.
얼마나 불쌍해 보였을까?
숙소로 가는 길에 치킨 한 마리와 안주거리를 삽니다.
소맥을 한 잔씩 말아서 마시면서 로테이션으로 샤워를 마치고는 꿈속으로 들어갑니다.
오늘 산행 거리 28km를 18시간 25분이라는 초유의 기록을 세웠군요.
날다람쥐님의 마지막 멘트.
"오늘 산행은 지리태극종주보다 더 힘이 들었어요. 하여간 내 생애 최고로 힘든 산행이었지만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산행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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