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 베트남 출장을 앞두고 현충원에 계신 부모님께 먼 길을 떠난다는 인사를 드리고 와야겠습니다.
어제 생각같아서는 존경하는 나무지게 님과의 대화 끝에 작정했던 동학사 지구의 천정골로 올라 남매탑 ~ 금잔디고개 ~ 대성암 ~ 갑사 ~연천봉 ~ 관음봉 ~ 동학사 정도로 진행을 하려 했는데 고속도로에 들어서면서 생각이 바뀝니다.
너무 오랫동안 가보지 않은 수통골의 기억 좀 되새겨보자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죠.
지금은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린 수통골인데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까?
2023. 02. 15. 새벽 4시에 일어나 고양이 세수를 하고 동네 김밥집에서 김밥 두 덩이를 사서는 중부고속도로로 들어섭니다.
시간이 널널하니 중간에 30여 분 눈도 붙이는 여유를 부립니다.
그나저나 우리 산수 대장님은 일을 시작하셨나?
신호가 가기 무섭게 구호가 들립니다.
"맹호!"
누가 보면 완전히 맹호부대 출신끼리 통화하는 것으로 오해받기 십상입니다.
실은 산수 대장님이 예전에 태권도 체육관을 운영할 때 그 체육관 이름이 맹호체육관이었다나 뭐라나....
그게 맹호부대와의 인연의 줄이랍니다.
"오늘은 어디로 가셨는가?"
"지금 대전으로 가고 있슈."
어라...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네!
"대전 어디? 나도 지금 대전으로 가고 있는데!"
"세종시유. 거기 뭐 공사장이 하나 있나 본데...거기로 가는 거유."
"난 또.....난 계룡산에 들렀다 부모님도 뵙고 올 것이네."
"알았슈."
새벽 4시면 일을 시작하니 5시 정도에 통화해도 문제가 없죠.
지난주 덕유산 갔다 온 얘기니 뭐니 10여 분 얘기하다 통화를 끝냅니다.
아직도 해가 뜨려면 멀었고....
그렇게 쉬엄쉬엄 해가 뜨기를 기다리며 천천히 운행합니다.
08:05
현충원 바로 앞 사거리에서 좌틀하여 수통골로 들어섭니다.
수통골을 水通谷이라 하여 '사람과 물이 통하는 계곡'이란 이해도 잘 안 가는 설과 군용 수통水桶 모양으로 생긴 골짜기라는 설 등이 있는데 둘 다 얼토당토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어쨌든 그 수통골 공용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산행준비를 합니다.
주차장 좌측을 보니 큰 지도와 이정목이 보이는군요.
빈계산 ~ 금수봉 ~ 자티고개 ~ 도덕봉 ~ 수통골 지원센터로 진행하면 되겠군요.
공원 지도를 보니 총 8.7km 정도 되는군요.
3시간 조금 더 잡으면 될 거 같습니다.
08:10
초소를 지나며 오늘 산행을 시작합니다.
앞서가는 분이나 뒤에 오는 분들은 모두 비무장.
아침 산책을 나온 분들이라 보면 될 거 같습니다.
그만큼 대전시민과 친숙한 곳이라는 얘기입니다.
이정목을 보니 빈계산 1.8km라고 표기되어 있군요.
그런데 이 봉우리 이름이 좀 어렵습니다.
牝鷄山이라는 한자를 쓰는데 이 牝자가 암컷 牝이라고 합니다.
결국 암탉산이 되겠군요.
그런데 鷄는 닭이니 우리나라 고어인 닭》달》達이라 그저 높다라는 의미일 텐데 여기에 ♀의 牝이 붙었으니 그 해석이 어렵습니다.
혼자서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고도를 높입니다.
잠시 숨을 고르며 우측을 보니 조금 이따 들를 현충원과 그 뒤로 반석동 시가지 일대가 보이는군요.
사진 상으로는 좌측 갑하산469m, 565.4봉 그리고 반석동 뒷 라인의 수양산331m과 금병산353m으로 이어지는 라인이 용수(관암)지맥이죠.
좌측은 공주시와 우측은 세종시와 경계를 하고 있죠.
용수지맥이라....
오늘 오랜만에 지맥에 대해서 얘기해 볼까요?
관심 없는 분들은 재미도 없겠지만....
조금 이따 용수지맥을 만나는 곳에서 알아보기로 하죠.
간간이 일찍 산책을 마치고 내려오는 분들과 산인사도 나누고....
그런데 정작 있어야 할 눈은 흔적도 없고....
아....
돌아보니 좌측으로 식장산592m이 보이는군요.
갑천지맥이 흐르는 곳이죠.
당겨봅니다.
그 너머는 옥천군이 되겠군요.
갑천(식장)지맥은 금남정맥의 대둔산 남쪽의 육백고지에서 6.5km 떨어진 지점이자 인대산661.8m 못 미친 곳에서 우측으로 분기하여 갑천과 금강이 합수하는 곳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65.1km의 지맥입니다.
사실 용수지맥보다는 이 갑천지맥이 공부하기에는 더 재미있기는 한데 너무 복잡하죠.
즉 갑천지맥의 지맥이 자신보다 상위 개념인 정맥이나 대간에서 가지를 치는 줄기가 아닌 같은 지맥급 그러니까 상위등급의 지맥과 하위등급의 지맥의 구분을 살펴보면서 ABBA의 노래 The winner takes it all의 의미를 되새길 수도 있기는 하지만 좀 어렵습니다.
그러기도 하거니와 어차피 잠시 후 저는 용수지맥의 일부를 걸을 것이고 이 용수지맥이 신산경표와 대한산경표의 차이점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만큼 이 용수지맥을 공부자료로 활용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이따 자세히 보기로 하죠.
어쨌든 저 갑천지맥의 일부가 대전시 동구와 옥천군의 시계 역할을 한다는 얘기겠죠.
우측으로 조망이 터집니다.
좌측으로 금수봉이 보이고 중앙 멀리 천황봉이 보이는군요,
그 천황봉 우측으로 황적봉660.9m이라고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표기되어 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계룡산국립공원에서는 치개봉이라는 이름을 붙여놨습니다.
왜 그랬을까?
그 황적산 우측으로 삼불봉이 뾰족하게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그런데 이 계룡산에서는 그 최고봉을 천황봉이라 부르는데, 반면 지리산은 천왕봉이라 부르고 나아가 속리산은 천황봉이었다가 천왕봉으로 개명을 했고....
도대체 무슨 일일까요?
천왕봉인가, 천황봉인가?
“형, 근데 천왕봉이야, 천황봉이야? 예전에 신문에 떠들썩했던 한 기사가 생각이 나네.”
벌써 10년이 됐나? 한때 신문 지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기사가 하나 있었다. 산 이름과 관련하여 일제 잔재 청산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관심을 증폭시켰던 일이었다. 바로 천황봉(天皇峰)이냐 아니면 천왕봉(天王峰)이냐에 관한 논쟁이었다.
논쟁의 불씨는 녹색연합이 던졌다. 1991년 환경문제의 대안을 고민하면서 만들어진 배달환경연구소가 있었다. 이 연구소가 확대·개편되면서 출범한 게 녹색연합인데 이들의 활약은 대단했다. 그동안 꾸준하게 백두대간, 연안해양, 탈핵운동(脫核運動) 등을 이끌면서 SOFA 협정에 환경조항이 들어가게끔 하였으며 왕피천 지역을 ‘자연생태계 보전지역’으로 지정케 하였고, 4대강 문제, 백두대간 보호법 그리고 최근에 들어서는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 무효화 등 많은 가시적인 성과를 일궈냈다.
문제의 핵심은 천황(天皇)이 일본의 왕을 가리키는 말이고 이는 일제가 천왕(天王)이었던 것을 임의로 바꾼 것이므로 일종의 창지개명(創地改名)에 해당한다. 고로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찾기 위해서라도 원래의 이름인 천왕봉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보은군도 힘을 보탰다.
반면 이 개명작업에 시종일관 반대를 한 이가 《신산경표》의 저자 박성태 선생이었다. 선생의 지론은 간단했다. “주관적 감정이 아니라 객관적 사실에 바탕을 둔 진실한 기록을 통하여 과거사를 청산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정통성 회복과 정체성 확립, 민족정기 회복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하기에 진실을 알려야 한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천황(天皇)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일련의 산 이름 변경고시를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양쪽의 주장을 들어보자.
천왕봉으로의 개명을 찬성하는 이들은 녹색연합과 보은군의 연합군이다.
우선 녹색연합은 2005년 2월 ‘바로 잡아야 할 우리 이름 보고서’에서 ‘천왕봉’이 맞는다고 주장하는데 이어 산림청도 2007년 8월 20일 충청북도에 ‘지명정비’ 협조 공문을 보냈다. 녹색연합은 이 보고서에서 “일제 때 땅 이름을 바꾼 ‘창지개명’ 작업의 하나로, 속리산 천왕봉이 일본 왕을 뜻하는 천황봉으로 바뀌었다”고 밝혔다. 그 증빙자료로 고지도인 ‘팔도군현지도’, 법주사 소장 고지도뿐만 아니라 1911년 5월 일본육군참모본부가 만든 ‘한국지형도’ 등을 제출하면서 이들 지도에는 천왕봉으로 되어 있지만, 1918년 일본총독부에서 만든 지도부터 천황봉으로 바꿨다고 덧붙였다.
이에 보은군은 향토사학자 등으로 구성된 지명위원회(위원장 이향래 군수)를 열고 녹색연합 등 시민단체가 일제 잔재로 지적한 ‘천황봉’을 ‘천왕봉’으로 개명키로 의결했다. 위원회는 개명 근거로 대동여지도, 팔도군현도 등 고지도와 1930년 법주사 호영 스님이 그린 법주사도(法住寺圖) 등에 ‘천왕봉’으로 표기돼 있고, 동국여지승람, 동국여지지 등 고서에도 속리산 정상에 ‘천왕사’라는 사찰이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점 등을 들었다.
이에 대해 개명작업을 반대하는 이는 민간지리학자 박성태 선생이 홀로 고군분투한다. 선생의 지론은 이렇다.
첫째, 일제가 만든 1:50,000 지형도에는 천황(天皇)이란 이름을 가진 봉이나 산이 아홉 개나 있다. 속리산 같은 유명산에도 있지만 사천시와 통영시의 작은 섬에도 있다. 속리산 같은 큰 산이면 모를까 어디 있는지도 모를 봉이나 산까지 찾아 일일이 천황이란 이름으로 바꿨을까?
둘째, 일제는 같은 한자어인 천황(天皇)이라도 일본 것과 우리나라 것을 구분해서 표기했다는 것이다. 즉 일제가 만든 지형도를 보면 우리가 천황(天皇)이라고 부르는 산이나 봉 이름은 그대로 天皇山 또는 天皇峰으로 기재하고, 자기네 문자로는 그들이 천황을 의미하는 てんのう(덴노)를 쓰지 않고 외래어표기인 가타카나로 チョンハン 또는 チョンフヮン으로 써서 천황에 가까운 음으로 기재했다. 그래서 속리산 천왕봉은 물론 별로 알려지지 않은 산, 심지어는 조그만 섬에도 천황산이나 천왕봉을 그대로 표기했다는 것이다.
셋째, 천황(天皇)이란 이름을 가진 산이나 봉은 우리 고전에서도 찾아볼 수 있고, 고지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즉 천황봉(天皇峰)이나 천황산(天皇山)은 우리 선조가 만들어 쓴 이름이지 일제가 만든 이름이 아니라는 것이다.
선생은 고전의 예로 윤휴(尹鑴, 1617-1680)의 백호전서(白湖全書) 제24권 기(記) 세심당기(洗心堂記)에 ‘…起步於庭 相與指點 文壯天皇 雲煙面目…’라 하여 속리산의 문장대와 천황봉이 나옴을 든다. 그리고 계속하여, 조선 후기 실학파 오주(五洲)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천지편(天地篇) 지리류(地理類) 동부(洞府) 세전우복동도기변증설(世傳牛腹洞圖記辨證說)을 거론하여 ‘…一去槐山 一去尙州 俗離山天皇峯南幹也… 俗離山天皇峯 在洞北爲祖 洞右白虎外 天皇峯兩間少下…’라 하여 속리산 천황봉이 나옴 등을 거론한다.
그리고 고지도의 예로는, ①1872년 전라도 영암군 지방지도에 월출산 천황봉이 있고, ②전라도 장수현 지도에 장수읍 동북쪽 지금의 노곡리 뒷산에 천황봉이 있으며, ③전라도 용담현 지도에 지금의 천황사가 있는 곳에 천황산이 있다. ④광여도의 전라도 구례현 지도에는 지금의 천황봉이 천황산으로 기재되어 있음 등을 든다.
어쨌든 한 민간지리학자의 노력도 헛되이 속리산 천황봉은 2007년 12월 26일 천왕봉으로 변경고시 되었다.
“형은 어떻게 생각해?”
뻔히 어떤 대답이 나오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묻는 장감독은 자기의 생각을 굳히려는 의도가 있는 듯하다.
“박성태 선생이 내 사부 같은 존재라서 장감독이 오해할 수도 있겠네. 하지만 천왕이라 하면 나는 육당 최남선의 글을 떠올리게 돼. 그의 불함문화론을 거들먹거릴 필요 없이 《백두산근참기》를 읽던 생각이 난다 그거지. 즉 1927년 그가 백두산을 오르던 중 허항령 부근에서 만난 사당을 보면서 감격을 하던 장면이 떠올라. 그는 이 사당에서 목주(木主)에 ‘천왕지위(天王之位)’라고 쓰인 글을 발견하게 되지. 거기서 그는 백두산신이 천왕이고 국사대천왕임을 다시 한번 확신하게 돼. 그러면서 환웅이 천왕인데 그 용례(用例)가 산으로 와서는 지리산의 천왕봉, 속리산의 천왕봉이 되고 민간으로 가서는 태백산의 천왕사(天王祠), 대구 달성의 천왕당(天王堂) 등이 된다고 했어. 그러니 천왕은 곧 삼국시대의 천군(天君)이라는 것이지. 육당의 글은 어찌 보면 일제와 상관없이 속리산은 천왕봉으로 불렀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지.
그런데 천황의 사전적 의미로는 ①옥황상제를 가리키기도 하고 ②일본의 임금을 일컫는 말이라고 해. 즉 도교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에서는 신앙과 관련하여 옥황상제를, 일본에서는 현실적인 자기네 왕을 지칭하는 것이라는 것이지. 그리고 박성태 선생이 지적하듯이 우리나라의 많은 산들에도 이미 천황산 혹은 천황봉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이 이미 많이 존재하고 있었잖아. 이런 점들을 종합해서 생각해 보면 천황봉이라는 이름은 옥황상제와 관련한 민간신앙과 함께 일제 이전부터 구전으로 전해지는 순수한 우리의 고유 이름으로 보는 게 맞을 것 같아. 그리고 정부가 수립된 후 각 산의 이름을 고시할 때 천황봉으로 불렀던 것은 그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을 것 아니겠어?”
“그렇다면 형은 ‘천황봉파’라는 것이네. 좋아. 그렇다 치고 계룡산도 명산 아냐? 민간신앙에서는 속리산보다 더 신령스러운 곳이라고도 보는데 거기도 천황봉이 있잖아?”
좋은 지적이다. 천황봉이 천왕봉이어야 한다면 속리산보다는 오히려 계룡산이어야 하지 않을까?
“왜 아니겠어. 녹색연합은 그때 계룡산 천황봉도 문제 삼았었지. 그런데 1914년 제작해 1928년 수정된 1:50,000 지형도를 보면 계룡산에는 ‘연천봉(742.9m)’만 기록돼 있고 천왕봉은 보이지 않았거든. 그래서 ‘만약 지도가 생긴 1928년 이후부터 1945년 사이에 지명이 붙여졌다면 근거 자료가 있어야 하는데 어디에서도 근거 자료를 찾을 수 없다. 그리고 천황봉 이전에는 상봉 및 상제봉으로 불렸기 때문에 일제의 잔재라고 판단하기도 어렵다.’는 공주시와 공주향토문화연구원의 반대의견에 따라 거부되었지. 더욱이 천황봉은 대한민국 정부가 1998년 8월 17일 자로 새로 고시한 지명이기도 해. 사실 지금도 계룡산 주봉은 주민들 사이에서도 천황봉으로 더 많이 불리고 있는 상황이야.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면 천황봉 바로 옆 쌀개봉에서 가지를 치는 용수지맥의 첫 봉우리가 천왕봉(608.6m)인 점도 크게 한몫을 거들었을 거야.”
“형, 그런데 예전부터 이 봉을 천왕봉이라고 불렀으니까 천왕사라는 절이 있었던 거 아니야?”
“그건 천황사의 입장에서 보면 마찬가지지. 조금 이따 이정목을 볼 거야. 지금도 천왕봉 아래 대목리에 가면 천황사라는 절이 있어. 물론 창건연대는 잘 모르겠지만. 이제 그만 가자.”
-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218쪽 이하
좀 당겨볼까요?
천황봉 우측으로 쌀개봉 ~ 관음봉 라인이 명백하고 황적봉660.9m과 우측의 삼불봉777.1m도 명백합니다.
그리고 우측으로는 도덕봉535.2m은 그 전위봉에 가려 정상은 보이지 않는군요.
조금 더 발걸음을 위로 옮기니 빈계산 정상입니다.
사실 빈계산에서의 조망은 없습니다.
그저 평상 두어 개와 의자가 편의 시설로 설치되어 있습니다.
바로 우틀하여 계단을 내려갑니다.
아주 긴 계단입니다.
그러면 성북동 삼거리가 나오고...
그런데 정작 성북동은 좌측이고 우측은 계산동이니 그러면 사거리인데......
금수봉530m으로 오르는 계단 또한 내려온 계단에 못지않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조망이 터지는 곳이 자주 나오고....
조금 전 본 식장산과 그 우측의 서대산903.8m을 봅니다.
대동여지도에 西坮山으로 표기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西臺山으로 표기되어 있죠.
그런데 서대산 정상은 구름에 가려 그 기지의 안테나조차도 보이지 않는군요.
그 우측으로 천태산714m이나 보는 걸로 만족합니다.
이제 현충원이나 구절봉455m 그리고 그 우측으로 흐르는 용수지맥도 한눈에 들어오는군요.
아까보다 날씨가 갠 느낌입니다.
아...
그런데 남쪽으로 금남정맥의 대둔산879.1m이 보이는군요.
그 좌측으로 오대산643.6m 라인도 보이고....
좀 당겨봅니다.
날씨만 좋다면 정상의 마천대 기념탑도 볼 수 있었을 텐데....
금남정맥은 저 대둔산과 이 계룡산으로 인해 '정맥의 꽃'이라 불리게 된 것이죠.
중요한 것은 저 오대산이 금남정맥에서 가지를 칠 때 그 사이에서 발원하는 물줄기가 유동천이며 그 유동천은 자신보다 상위등급의 물줄기인 갑천에 흡수되게 되는데 그 합수점인 대전시 만년동에서 그 맥을 다하는 31.3km 지맥이 되는 것이죠.
그 유등지맥의 흐름을 봅니다.
안평산471m, 조중봉라인이 그 뒤의 갑천지맥 라인보다는 조금은 왜소하고 낮게 보이기는 합니다.
그러니 오히려 그 좌측 뒷줄의 식장지맥의 금성산에서 가지를 친 서화지맥이 이쪽보다는 더 높게 보이죠.
긴 계단을 올라 금수봉으로 오릅니다.
이 금수봉도 조망은 꽝입니다.
그래도 대동여지도에 어엿하게 자기 이름을 올린 족보 있는 봉우리입니다....
정상에는 정자 하나만 쓸쓸하게 있고.....
10m 정도 돌아나가서 자티고개를 향합니다.
수통폭포 갈림길을 지나고.....
부드러운 산길을 따르면,
3거리인 자티고개로 들어서면서 여기서 용수지맥을 만납니다.
이 용수지맥을 신산경표에서는 관암지맥이라고 부르죠.
아까 애기한 대로 여기서 우리나라 산줄기 얘기 좀 할까요?
돌이켜보면 2004년은 우리나라 산경사山經史에 있어서 길이 기억될 해년입니다.
박성태 선생님의 신산경표라는 거작이 발표된 해였기 때문이죠.
선생님의 신산경표의 발표는 주먹구구식으로 산줄기 산행을 하였던 우리나라 산꾼들에게는 말 그대로 하나의 혁명이었습니다.
막연하게 걷고 있던 지맥이 자기의 이름을 가지게 되었고 신체검사를 거쳐 자기의 키에 몸무게까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아가 자기 족보까지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산경사 山經史에 큰 전환점이 되었던 시기였다는 것이죠.
이런 박성태 선생님께서 신산경표를 발표하신 지도 벌써 19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군요.
그 신산경표에도 그동안 달라진 것이 좀 있었죠?
처음에는 남한 1대간 7정맥 6기맥 157정맥이었던 것이 지맥이 5개 더 늘어나서 162지맥이 되었습니다.
거기에 이 산줄기를 완주하신 분들도 한 분 두 분 그 숫자가 더해지는 것을 보니 이 162라는 숫자는 어느덧 우리나라 산꾼들의 버켓리스트 BUCKET LIST 중 하나가 된 느낌도 듭니다.
저는 선생님께서 이 지맥이나 기맥을 그은 원리를 연구해 봤습니다.
산줄기에 관한 한 섬세하게 꿰뚫어 보는 혜안을 가진 '산으로' 박흥섭의 주도로 산줄기와 물줄기의 상관관계를 찾아보는 게 그 시작이었습니다.
분명 조상님이나 선생님께서 이 줄기들을 분류했을 때에는 분명 그 기준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고는 선생님께서는 산줄기의 유형을 주로 '합수점'형 (가령 각화지맥이나 문수지맥)과 '산줄기'형(가령 고산지맥이나 후망지맥) 등의 두 타입으로 구분하셨음을 찾아냈습니다.
각화지맥 개념도
고산지맥 개념도
여기서 신산경표에 대한 대한산경표의 입장을 봅니다.
3. 지리산의 지맥枝脈
지맥은 대간과 정맥의 하위개념이다. 즉 대간大幹〉정맥正脈〉지맥枝脈이니 지맥은 산줄기 계급 체계의 제일 하위에 있는 개념이다. 물론 기맥, 분맥, 단맥, 여맥도 상정할 수 있지만 너무 세분시키는 것이기도 하며 논란만 부추기는 격이니 여기서는 언급을 피한다.
지맥이라는 계급이 붙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즉 ①‘산줄기 요건’으로 백두대간이나 정맥 그리고 자신보다 상위 등급의 지맥에서 가지를 친 줄기여야 한다. 그리고 ②‘물줄기 요건’으로 그 줄기가 가지 칠 때 그 사이에서 발원하는 물줄기와 자신보다 상위등급의 물줄기가 만나는 합수점에서 맥을 다하는 산줄기(㉮합수점형)여야 하며, ③마지막으로 ‘산줄기의 길이 요건’으로 그 도상거리가 30km이상이어야 한다는 것이 그것들이다.
다만 ②요건의 경우 산줄기를 조금 더 유용하게 쓰기 위하여 특별한 경우에는 예외를 두는 바, 가령 관련된 물줄기의 울타리 역할을 하는 것(㉯울타리형)이나 반도의 모양새를 가진 땅에서 호수나 강 혹은 바다 등으로 진행하는 산줄기(㉰산줄기형)의 경우 등이 그것이다.
즉 정리하자면 ㉮합수점형, ㉯울타리형, ㉰산줄기형 등 세 가지가 유형에 해당되어야 한다. 좀 어려운 내용이긴 하지만 전체적인 산줄기의 이해를 돕기 위함이니 차근차근 살펴보자.
㉮ ‘합수점合水點’형의 예
위 개념도는 백두대간 지리산 입구인 여원재에서 고리봉을 지나 만복대 ~ 반야봉으로 진행하는 대간능선과 대간길의 만복대 바로 앞에서 가지를 쳐 밤재 ~ 견두산 ~ 형제봉을 지나 서시천과 섬진강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33.2km의 가지줄기 개념도이다.
이를 위 지맥의 3요건에 대입시켜본다.
보다시피 이 가지 줄기는 백두대간에서 가지를 친 줄기이니 ①요건에 합당하다. 그리고 이 줄기가 백두대간 만복대 부근에서 가지를 칠 때 그 사이에서 서시천이라는 물줄기가 발원을 하는데, 이 서시천이 자신보다 상위 등급의 물줄기인 섬진강과 합류되는 합수점인 개념도 ‘A'의 곳에서 이 줄기의 맥이 잠기게 되니 이 역시 ②요건에 합당! 그리고 이 가지줄기의 도상거리는 33.2km가 되므로 기본 요건인 30km를 넘으므로 이 역시 요건 ③에 합당하다. 그러므로 이 가지줄기는 枝脈이라는 계급을 얻게 되고 그 이름은 강 이름인 서시천을 따서 ’서시지맥‘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는 것이고 이는 고유명사가 된다.
㉯울타리형의 예
합수점형에 비해 설명이 조금 복잡해진다. 산줄기가 여러 개 나오긴 하지만 원리는 같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된다.
좌측 개념도의 주主줄기는 역시 백두대간이다. 그런데 아까와는 달리 백두대간에서 큰 줄기인 한남금북정맥이 가지를 쳐 나가는 모습이다. 그 가운데에서 보청천이 발원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정맥 이름이 암시하듯 이 산줄기는 금강의 북쪽을 진행한다. 그러므로 이 보청천이 10대 강 중 하나인 금강과 만나는 합수점을 보면 된다.
그런데 이 보청천과 금강이 만나는 합수점으로 두 개의 산줄기가 잠기는 것을 볼 수 있다. 신산경표 상으로는 팔음지맥과 금적지맥이 그것이며 대한산경표 상으로는 보청지맥과 보청북지맥이 그것이다. 신산경표와 대한산경표의 차이점에 관해서는 여기서 논할 필요는 없다. 그러니 필자가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대한산경표의 이름으로 얘기를 이어가겠다.
똑같은 물줄기로 들어가는 두 산줄기의 우선권은 그 산줄기가 속한 주산줄기의 계급이나 세력에 따른다. 이 경우 백두대간〉정맥이므로 이 물줄기는 백두대간 몫이다. 따라서 보청천과 금강의 합수점으로 잠기는 줄기는 대간에서 분기한 줄기이므로 ①의 요건을 충족하고 합수점으로 갔으니 이 역시 ②의 요건을 충족한다. 마지막으로 이 가지 줄기의 도상거리가 57.7km가 되니 지맥이라는 계급을 가질 수 있게 되고 이 지맥의 이름은 물줄기 보청천의 이름을 따 보청지맥이라 명명한다.
이렇듯 ‘합수점’형인 이 보청지맥에 대해서는 아무 문제가 없으나 보청천으로 들어온 다른 줄기가 문제이다. 즉 이 줄기 역시 한남금북정맥이라는 정맥에서 분기되었으므로 ①요건은 충족하며 이 산줄기의 도상거리가 약 49.6km가 되므로 이 역시 ③요건을 충족한다.
다만 합수점은 합수점인데 주主산줄기가 아닌 부副산줄기이기 때문에 위 보청천에 밀리는 모양새이다. 하지만 시종일관 보청천의 북서쪽 울타리 역할을 하므로 이런 경우는 지맥의 유형 ‘②울타리형’으로 보아 지맥에 편입시키기로 한다. 엄격한 해석보다는 산줄기를 유용하게 사용하자는 취지이다. 따라서 보청천의 북쪽으로 잠기는 산줄기이므로 이름은 ‘보청북지맥’으로 명명한다.
㉰산줄기형의 예
위에서 반도의 모양새를 가진 땅에서 호수나 강 혹은 바다 등으로 진행하는 산줄기의 유형을 ‘산줄기’형이라고 분류한다고 했다. 이는 혹시나 합수점형이나 울타리형으로 분류될 경우 모두 잔가지 가령 여맥이나 단맥 등으로 처리되어 지맥의 요건을 갖추지 못하게 됨에 따라 선조들이 물려주신 이 소중한 산하를 유용하게 선용하지 못하는 불합리함을 시정하기 위한 조치라 이해하면 된다.
산자분수령의 대원칙인 합수점으로 가지 않는 특수한 경우니 이를 산자분수령의 예외 유형이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따라서 이 경우 강이나 하천을 동원할 수도 없으니 물줄기 이름을 붙이기가 곤란하다. 따라서 그 산줄기가 마무리되는 지역의 행정구역 이름을 따서 명명하기로 한다.
물론 이 경우도 ②의 합수점 요건에만 예외가 되기 때문에 ①, ③조건은 여전히 유효하다. 따라서 위 참고도의 경우 금북정맥의 구수산에서 3.2km 진행한 곳에서 가지를 쳐 태안군 이원면 내리의 후망산 부근에서 잠기는 산줄기는 ‘이원’면의 이름을 따서 이원지맥이라 하고 같은 방법으로 금북정맥의 솔개재에서 1.2km 진행한 곳에서 가지를 쳐 서산시 대산읍 독곶리 황금산 부근에서 잠기는 산줄기는 대산읍의 이름을 따 대산지맥이라 명명하기로 한 것이다.
이하 지리 2지맥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횡천지맥도 지리산의 영역인 낙남정맥의 삼신산에서 가지를 쳤으며 상당 구간을 지리남부능선과 함께 하므로 이것까지 살펴본다.
- 졸저 '현오와 걷는 지리산' 405쪽 이하
위의 분류는 대한산경표에서 설명하는 우리나라 산줄기 분류의 기준으로 그 기본 정신은 산자분수령입니다.
이들 지맥의 요건은 위와 같이 합수점형 〉 울타리형 〉 산줄기형 등 세 가지로 구분되며 이들은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우선은 합수점형이 지맥으로서의 우선권을 갖게 되고 이 합수점형이 거리나 등급, 물줄기의 우위 조건 등을 충족하지 못할 때 울타리형이 그다음 지맥의 요건을 구비하였을 경우 지맥이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게 되며 그마저도 부합하지 않을 때에는 산줄기에서 지맥의 요건을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예를 든 바와 같이 각화지맥의 경우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각화지맥이란
백두대간의 태백산 깃대배기봉에서 구룡산으로 달려가던 능선에서 1.173m 봉과 1.154m봉 사이의 약 1.200m의 봉우리에서 남쪽으로 큰 능선을 분기시키면서 각화산.왕두산.형제봉, 화장산을 지나면서 서진하면서 월암산을 일으키고 경상북도 봉화군 명호면 명호나루에서 운곡천이 낙동강으로 합수하는 곳에서 38km 그 맥을 다한다.
무슨 내용인지 조금 부족한 거 같습니다.
초등학교 전과에 나오 듯 위 내용을 구절풀이를 해보면,
①이 각화지맥은 자신보다 상위등급의 산줄기인 백두대간에서 자기를 친 줄기임을 알 수 있고,
②이 각화지맥은 자신이 백두대간에서 가지를 쳐 나올 때 발원하는 물줄기인 운곡천이 상위 물줄기인 낙동강과 합수되는 그 합수점에서 맥을 다 하는 줄기로서,
③ 그 도상거리가 38km인 산줄기.
이렇게 분석을 하면 되겠고,
고산지맥을 보면,
고산지맥(高山枝脈)은 ?
금북정맥의 은봉산(x282m) 서쪽 0.4km 떨어진 x258m봉 에서 북쪽으로 분기해서 봉화산(x305m), 봉화산(x205.9m), 독골고개, 돌데미고개, 승황산(x137m),
큰산(x112m), 고산봉(高山峰 x153.8m), 막고개, 국수봉(△57m), 삼봉산(X66m), 장승백이재, 석문산(x80m)을 지나 당진시 석문면 교로리 대호방조제 석문각 에서 서해바다에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38.6km에 달하는 산줄기이다.
이 설명을 보면 고산지맥은 합수점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예. 그렇죠.
여기에 합수점을 적용했다가는 이 줄기는 그저 1km도 채 못 가 산줄기라고 말할 수 없는 그런 줄기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이렇듯 바다나 호수로 가는 산줄기들 중 ①합수점형, ②산줄기형 등에 해당되지 않는 것들 중 그 길이만으로 30km가 넘는 것은 ③산줄기형으로 하여 이 지맥에 포함시키자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신산경표나 대한산경표 대부분 일치합니다.
그런데 신산경표에서 일방적으로 합수점형 비슷하게 어쩌면 두리뭉실하게 처리한 게 있습니다.
자세한 설명은 위 전게서의 설명을 참조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 정도 되면 대한산경표와 신산경표의 차이가 느껴지시나요?
이렇듯 유형이 다르니 그 진행하는 방향이 달라지게 되고 그러다 보니 그 산줄기의 길이나 이름 또한 달라지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형상입니다.
오늘 그런 신산경표와 대한산경표의 다름을 인정하여야만 하는 그런 줄기를 찾아서 공부를 해보기로 합니다.
신산경표에서는 '관암지맥'이라는 이름을 붙인 줄기입니다.
이 관암지맥은 걷는 이들에 따라 그 설명이 제각각입니다.
가령 뉴마포 산악회에서 하는 설명을 보면,
1. 관암지맥(冠岩枝脈) 이란
관암지맥(冠岩枝脈)은 금남정맥의 계룡산 천왕봉(846m) 북쪽에 위치한 쌀개봉(827.8m)에서 동쪽으로 분기해서 동북진하면서 대전시와 공주시, 세종시를 각각 경계를 지으며 세종시 금남면 부용리에서 금강에 그 맥을 다하는 총도상거리 42.2km인 산줄기이다. 관암지맥은 계룡시 신도안에서 발원한 갑천의 북쪽 수계를 이룬다는 측면에서 보면 오봉산에서 불무산을 지나 금강/갑천 합수점에서 그 맥을 다하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대부분은 수태극의 모형을 제대로 그리면서 그 보다 더 긴 산줄기인 오봉산에서 꾀꼬리봉 -부용봉으로 이어져 금강에서 그 맥을 다하는 개념으로 알고 있다.
주요 봉우리로는 쌀개봉(827.8m) - 천왕봉(天王峰 603m) - 황적봉(660m)- 밀목재 - 관암산(冠岩山 526.5m) - 백운봉(白雲峰 535m) - 자티고개 까지 동쪽으로 이어지고 대전둘레산길 구간에서 동북진 하면서 도덕봉(道德峰 535.2m) - 삽재 - 갑하산(甲下山 469m)-~ 우산봉(雨傘峰 574m)-~ 거칠메기고개 - 금병산(金屛山 383m) - 용바위고개 - 보덕봉(265m) - 오봉산(五峰山 241m) 으로 이어진 후 나분질고개 - 꾀꼬리봉(271.9m) - 부용봉(芙蓉峰 221m)에서 금강에 그 맥을 다한다.
또 어떤 이는
2. 관암지맥은 계룡산 천황봉 북쪽 쌀개봉에서 갈라져 천왕봉, 황적봉, 관암산, 백운봉, 도덕봉, 갑하산, 우산봉, 금병산, 보덕봉, 오봉산, 꾀꼬리봉, 부용봉을 지나 세종시 금남면 부용리에서 금강에 잠기는 42.2km 산줄기로 남동쪽 갑천과 북서쪽 금강의 분수령이 된다.
고 하고,
또 어떤 이는,
3. 관암지맥은 쌀개봉에서 동쪽으로 분기해 대전과 공주, 연기군을 지나 금남면 부용리 금강에서 맥을 다하는 약 42km의 산줄기로 주요산은 천왕봉, 황적봉, 관암산, 백운봉, 도덕봉, 갑하산, 우산봉, 금병산, 수양산, 보덕봉, 오봉산, 꾀꼬리봉, 부용봉이 있으며 짧은 지맥에 명산이 많아 기대가 되는 지맥이다.
기본적인 내용은 비슷하며 주요 골자는 그 맥이 부용봉을 지나 금강으로 들어간다는 것인데 '왜? 무엇때문에' 아무 의미 없는 그곳에서 맥을 다해야 하느냐는 데에는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다만 1.뉴마포 산악회의 설명을 들어보면 그럴듯하게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① '수태극'이 나오며, ②더 긴 산줄기라는 얘기가 나옵니다.
결국 1. 수태극이라는 말은 말장난 같은 기교를 부린 것에 다름 아니며, 2. 더 긴산줄기라는 표현은 산자분수령의 기본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 개념의 혼동에서 오는 말입니다.
2.은 갑천과 금강의 분수령이 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대표적으로 '갑천을 싸고 있는 식장산 같은 산은 여기서 왜 제외되느냐?'는 질문에는 답을 못할 것이며,
3.은 마치 지맥이나 정맥 등 산줄기라는 것이 아무런 기본 원리 없이 그저 부근 명산을 잇는 그런 개념으로 오해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결국 산줄기의 기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그러느니 아예 처음으로 돌아가 백두대간의 기본부터 차근차근 다시 배워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살펴보겠습니다.
느껴지시겠지만 아래 지도에서 명백하듯 이 줄기는 낙남정맥이 천황봉을 지나 삼불봉 방향으로 진행을 할 때 우측으로 가지를 친 산줄기이며 그 가지를 칠 때 그 사이에서는 용수천이 발원을 하게 되므로 이는 용수천과 맥을 같이 하는 산줄기이지 갑천과는 거리가 있는 산줄기입니다.
다만 이 용수천은 자신보다 상위등급의 물줄기인 갑천에 합수하게 되면서 용수천이라는 물줄기는 소멸하게 되는데 이때 이 산줄기도 함께 용구천과 함께 그 맥을 다하여야 하는 운명공동체입니다.
따라서 이 산줄기도 용수천과 운명을 같이 하였으므로 그 이름도 물줄기의 이름을 따 용수지맥으로 불러줘야 한다는 것이죠.
이는 곧 1산줄기 : 1물줄기의 원칙에도 합당하고!
그런데 이렇게 함께 시작한 용수지맥과 관암지맥은,
관암지맥의 그 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런 식으로 그냥 금강으로 골인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한다는 것입니다.
반면 용수지맥을 봅니다.
아까 보았듯 물줄기를 중시하는 대한산경표의 용수지맥이나 신산경표의 관암지맥이나 시작은 같습니다.
즉 금남정맥에서 하나의 산줄기가 가지를 치니(제1원칙) 그 사이에서 용수천이 발원합니다.
즉 이 관암지맥이나 용수지맥은 이렇게 아무런 의미 없는 부용산 부근에서 맥을 다하는 산줄기가 되어서는 안 되고 산경학의 대전제인 산자분수령의 취지에 맞게 진행을 하여 지맥의 제1유형인 '합수점형'의 자격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고로 똑같이 진행한 이 산줄기는 금병산에서 직진하여 용수천이 금강이 아닌 자신보다 바로 위 상위 등급인 갑천과 만나기 위해(제2원칙) ,
위 지도 '가'의 곳에서 347.1봉 방향 즉 용바위 고개 방향(금강으로 가는 길)을 버리고 좌틀하여 바람재 쉼터 방향을 따라 진행하여 세종시의 일출봉이라는 곳을 지나 비학산, 중광산, 발림봉, 푯말도 보고는,
용수천이 갑천에 합수되는 지점에서 마무리를 해야 하고, 그럴 경우 이 용수지맥은 도상거리 약35.6km로 지맥의 기본요건 30km를 넘었으니(제3원칙) 비록 신산경표의 관암지맥보다 도상거리는 짧지만 산자분수령의 원칙에 충실한 합수점의 유형에 따른 지맥이 되는 것이죠.
이해가 되시나요?
재미없죠?
그러나 산줄기를 하시는 분들은 그 기본 원리를 알고 진행하자는 것이죠.
대전 둘레산 잇기.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는 도덕봉까지 용수지맥길을 따라 걷습니다.
잡목 사이로 관암산을 보고....
469.9봉을 지납니다.
호젓한 길.
여자 혼자도 충분히 다니는 길입니다.
좌측 빈계산과 우측의 금수봉.
좌측으로 간신히 조망을 볼 수 있는 곳이 나오는군요.
앞이 황적산 그 뒤로 천황봉이 보이는군요.
황적산 바로 우측 뒤로 삼불봉이 보이고 우측으로는 신선봉이....
그 우측으로는 장군봉....
522봉을 오릅니다.
선생님의 산패가 걸려 있군요.
이제는 용수지맥으로 바꿔서 불러야 하는데 홍보가 안 되어 있으니....
가리올 삼거리를 지납니다.
이제 오늘 산행도 거의 끝나가는군요.
장군봉......
갑하산 좌측으로 멀리 세종시가 보입니다.
병사골 오름에서 진행할 수 있는 루트.
장군봉에서 갓바위를 거쳐 좌측 신선봉까지....
신선봉에서 떨어진 능선은 큰배재로 내려섰다가 다시 좌측 중앙의 삼불봉에서 힘을 내고,
그러고는 자연능선을 거쳐 관음봉으로 올랐다가 다시 좌측의 천황봉에서 힘을 냅니다.
저 줄기는 정맥길을 타고 대둔산으로 가거나 아니면 계룡시 안으로 들어가 향적산으로 진행하겠죠.
그 방향을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조망터였습니다.
도덕봉 전위봉에서 좌틀하고는,
4등급삼각점(대전444)를 확인하고,
2015. 10. 05. 용수지맥을 할 때 보았던 도덕봉 정상석을 다시 확인합니다.
수통골 주차장.
이제 서대산도 정상 부분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갑하산 우측으로 현충원도 제대로 보이기 시작하고.....
상당히 가파른 도덕봉 오르는 길.
빈계산과 금수봉.
좌측 식장산과 우측 서대산.....
봄이 오고 있습니다.
땅이 질퍽해지고 있습니다.
다 내려왔군요.
문화재 관람료가 없어서인가요?
대전시민의 휴식처입니다.
도덕봉 하산길.
땀에 젖은 옷을 갈아입고 현충원으로 갑니다.
'명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거창 환종주 제1구간 (0) | 2023.03.05 |
---|---|
관악산 11국기봉 돌아보기 (0) | 2023.02.26 |
설렘 그리고..... (0) | 2023.02.14 |
공룡은 여전한가? (6) | 2023.02.11 |
으뜸이 처럼 광교산 오르기 (2) | 2023.0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