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봉은 성제봉이다
이곳에는 형제봉이 두 개 있다. 2등급삼각점(하동 22)이 있는 형제봉1116.2봉과 2분 거리에 있는 성제봉聖帝峰이라는 정상석이 있는 이 형제봉1103.7m 등이 그것이다. 둘레길 제3구간에서 향로봉과 상내봉 얘기를 할 때 경상도 사투리의 ‘ㅎ〉 ㅅ’ 관계를 얘기했었다. 그러다 거론한 다른 예가 바로 이 형제봉이었다. ‘형제’를 ‘성제’로 발음한 것에 한자를 꿰어 맞추다 보니 성제봉聖帝峰이 되었다는 것이다. 어쨌든 높이로 보나 삼각점의 존재로 보나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 표기된 1116.2봉을 형제봉으로 보는 게 맞을 것이다.
형제봉은 볼거리 많고 이름도 아름다운 악양이 옆에 있어 철쭉이 만개할 때면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좌측으로 등로가 자주 보인다. 헬기장과 철쭉제단을 지나고 ‘샘터20m’ 이정표도 지난다. 바위 구간이 나타나며 형제봉의 명물 현수교가 나온다. 이 부근을 신선대라고도 부른다던가?
반가운 둘레길 제13구간 윗재를 만나고 그러고는 신선봉으로 오른다. 사실 신선봉은 신선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들을 정도로 밋밋한 곳이다. 돌더미가 쌓여 있는 봉화대를 지나면 석문을 지나게 되는데 호사가들은 이곳을 통천문이라고 부른다.
조망처에서 악양의 전모를 볼 수 있다. 평사리의 무림이들과 남명 조식이 힘들게 올랐던 삼화실재, 북한 백두대산줄기의 끝인 구재봉은 물론 분지봉도 그 윤곽을 살필 수 있다. 동정호와 섬진강도 보이니 강 건너 호남정맥의 매봉이 보이고 그 뒤가 백운산이다.
무궁무진한 악양의 얘깃거리에 대해서는 둘레길 제13구간을 다시 보자. 고소산성을 지나 한산사 3거리를 지나친다. 다시 숲으로 들어 산죽을 만나서는 도로확장공사를 하고 있는 19번 도로를 건너 삽압이라 불리는 모한대에서 한녹사를 그리며 지리남부능선 산행을 마친다.
모한대는 취적대이고 취적대는 곧 녹사대이니 녹사대는 곧 모한대이다. 즉 한유한이 낚시를 드리웠던 곳이기에 취적대라 불렀고, 한유한을 한녹사라고도 불렀으니 녹사대였으며 한유한을 그리는 곳이라 하여 모한대가 된 것이다.
- 졸저 '현오와 걷는 지리산' 511쪽
얼마나 사무치게 기다려왔을까?
긴 겨울 동안 재활훈련을 하면서 몸을 만들고 그러고는 스프링 캠프와 연습경기에서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게된 선수가 이제 본고사인 페넌트레이스 개막전을 앞둔 심경이었을 겁니다.
그 설렘에 밤잠을 설쳤을 정도라고 하니...
긴 인고의 세월을 오로지 산만이 재활에 목을 메게끔 동기를 부여해 주었을 것입니다.
사실 본인도 이 물음에 "그렇다."고 확실하게 답변을 합니다.
나무지게 부회장 님 얘기입니다.
생각하기도 싫은 10개월 전의 그날.
마고 할매 덕에 그 정도의 사건으로 마무리되었고 그 후 그 악몽을 딛고 재활에 매진하여 지난번 남부 지리산의 '서산대사길'에서 워밍업으로 몸을 달군 뒤 오늘 드디어 그 시험대에 오르는 날입니다.
그 장場은 지리산 남부능선 악양단맥의 형제봉.
성제봉이라고도 불리죠.
나무지게 님이 회심의 철쭉 산행지로 꼽은 이 성제봉.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신청하는 인원이 너무 적습니다.
이럴수가!
베트남 출장 건을 2주 후로 미룹니다.
쪽수를 채워야지......
어찌어찌 30명 정도로 인원은 맞춰집니다.
성제봉으로 오르는데 이런 주차장도 있었군요.
늘 능선 산행을 하는 저에게 이런 코스는 사실 낯설기는 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나무지게님의 산행 보조 역할을 자임하며 지난번 서산대사길을 걷던 것처럼 유유자적하게 걸을 심산입니다.
주차장에서 건너편 능선을 봅니다.
조금 있으면 어련히 조망을 할 수 있겠냐만은 그래도 위에서 보는 것과 여기서 보는 것은 또 다르지!
목을 빼서 횡천지맥의 982.7봉과 배티재 우측으로 680봉을 봅니다.
횡천지맥이라......
그 뿌리를 살펴볼까요.
족보의 원천은 역시 백두대간입니다.
幹은 줄기요 脈은 가지이니 원래는 白頭幹이라 불러야 합당하지만 우리나라에는 단 하나밖에 없고 여기서 우리나라의 모든 강과 산이 비롯되니 그 위상에 걸맞게 '大'를 첨가하여 白頭大幹이라 부르게 된 것이죠.
여하튼 그 백두대간이 백두산에서 흘러내려 종착지인 지리산 천왕봉으로 가던 중 지리산 영신봉에 이르러 남쪽으로 가지를 하나 치게 되고, 이 줄기가 낙동강과 남해바다가 만나는 합수점에서 그 맥을 다하게 되니 이를 닉동강 남쪽의 울타리가 되는 산줄기라 하여 낙남정맥이라 부릅니다.
물론 신산경표에서는 그 견해를 달리하여 신백두대간의 개념을 설정하기는 합니다만 복잡하니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합니다.
재미없겠지만 더 갚은 것을 알고 싶으신 분들은 https://youtu.be/A2gSK-Z9tvM 참조해 보십시오.
각설하고 낙남정맥이 삼신봉1288.7m에 이르러 남동쪽으로 흐를 때 남서쪽으로 내어놓는 산줄기 하나가 있는데 여기서 횡천강이 발원하게 되고 그 횡천강이 섬진강에 합수되는 그 합수점에서 이 가지줄기가 맥을 다하게 되니 우리는 그 가지줄기를 횡천지맥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이 횡천지맥이 거사봉1133.0m 부근에 이르러 남쪽으로 가지를 내놓게 되는데 그 사이에서 발원하는 물줄기가 바로 악양천이고 이 악양천이 섬진강에 합수되는 합수점에서 맥을 다하는 이 남부능선의 이 줄기를 악양단맥이라 이름하게 되는 것이죠.
산행을 시작합니다.
불안하기만 하지만 그래도 자신 있다고 하니 믿어봅니다.
초행길이지만 역시 명산에 드는 산이라 등로는 아주 양호합니다.
간간이 지리산의 터줏대감인 산죽밭도 지나게 되고.....
지루한 오름을 계속하다 보니 드디어 구름다리가 눈에 들어오는군요.
다 왔다는 얘기!
어때요?
음......
미소가 답을 대신합니다.
땀도 많이 흘리셨고.....
1시간 10분 만에 목표지점인 901.3봉 평전에 도착합니다.
행복한 미소가 모든 걸 이야기해 줍니다.
그런데 욕심을 부리시는군요.
성제봉 전위봉까지 갔다 오겠다고 하시는군요.
갈 때 가더라도 일단 점심을 먹고 가시지요.
벌써 대원들 한 팀은 둘러앉아 배바위표 홍어를 풀어놓으셨습니다.
어디서 이런 귀한 것을 가져오셨는지......
동시에 흑산도와 홍도를 여행 중인 친구들도 홍어 사진을 보내오고.....
그런데 이 자리에서 갑자기 판시판 얘기가 나오더니 2024. 1. 16. 경 4박 5일 일정으로 베트남 사파Sapa에 있는 여러 산을 트레킹 하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오고 다들 찬성을 하여 졸지에 일정이 잡힙니다.
그렇다면 현지 날씨를 체크하여 ①판시판, ② 깟깟 마을 ~ 라오짜이 ~ 타반 등 3개 마을 돌기, ③ 함종산과 현오봉 연계 트레킹 ④ 사파 주변 폭포, 유리 다리 등 관광 정도로 일정을 잡으면 되지 않을까요?
한바탕 베트남 얘기와 홍어 얘기로 맛있게 한 끼 식사를 때우고 나니,
나무지게님이 성제봉 전위봉까지 갔다 오시겠다고 합니다.
나는 주변 산줄기 감상이나 하고 있을 테니 조심스럽게 다녀오시라 말씀드리고......
주변을 조망합니다.
악양벌 등촌리 너머로 횡천지맥 능선이 볼만합니다.
칠성봉을 지나 우측의 구재봉 773.7m까지.....
분지봉627.8m .
맨 우측 수어지맥의 억불봉은 구름에 가렸고....
더 자세히 보게 구름다리로 갑니다.
예전에는 이런 모양의 구름다리였는데,
지금은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악양벌.
그리고 섬진강.
저 심진강을 남원에서는 순자강鶉子, 곡성에서는 압록강鴨綠, 구례에서는 잔수강潺水 그리고 광양에서는 섬진강蟾津으로 부르죠.
예전에 지리산둘레길을 하면서 이곳을 묘사한 제 글을 가져옵니다.
풍수적으로 풀어 본다면 주산인 거사봉1133m(최근 업그레이드된 국토지리정보 발행 1:50,000 지도에 이름을 올렸음)을 중심으로 좌 ・ 우의 동남능선과 서남능선이 각 청룡 ・ 백호가 되고, 섬진강 건너편의 백운산이 안산이 되어 골의 안쪽은 광활하지도 협소하지도 않은 잘 짜인 지세를 이룹니다.
즉 동남의 구재봉에서 중앙의 거사봉을 거쳐 서남의 신선봉까지의 병풍처럼 둘러싸인 능선 안에 포근하게 들어앉은 분지가 악양골인 것입니다.
남쪽 입구의 미점리 개치에서 골 안쪽을 향하여 축지, 신대, 신성, 신흥, 정동, 중대, 동매를 거쳐 악양의 제일 안쪽 등촌에 이르고, 다시 골의 바깥을 향하여 매계, 정서, 입석, 봉대, 평사에 이르면 섬진강 강가를 제외한 악양의 5분의 4바퀴를 돌게 됩니다.
즉 악양의 나머지인 무딤이들을 사이에 두고 평사와 미점이 마주하면서 악양의 출구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악양은 이웃 청암골이나 화개골처럼 좁고 길게 일자로 뻗어있는 골이 아니라 타원의 여유로운 모습으로 퍼져있습니다.
한편 이 악양면의 악양은 중국에서 가져온 이름이죠.
악양은 중국에서 온 이름이다. 중국 호북성의 한 현으로 악양루, 동정호, 군산 등의 명소가 있는 곳이다. 호북성은 동정호의 북쪽에 있는 성省, 호남성은 그 남쪽에 있는 성省이라고 이름 지을 만큼 동정호는 그 아름답고 장엄함으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의 악양은 당나라 소정방이 다녀간 후 "중국의 악양과 같다."고 하여 ‘악양’이라고 불렀다는 일화가 전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진양지’에 의하면 “고소성과 한산사 그리고 동정호 · 소상 · 평사 · 군산 등의 지명이 있는데 악양이 신라 ‘소다사현’일 때부터 이런 명칭이 있었다. 소상팔경이라 한 것은 대략 중국의 악주와 같기 때문이라고 한다.”라고 적었다. 그러니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모화사상에 젖은 말발이 어느 정도 서는 선인이 당나라를 다녀온 후, 이 동네가 중국의 악양과 같은 모습을 닮았다 하여 그 이름을 붙였다는 말일 것 같다. 삼국사기 지리지에 의하면 “악양현嶽陽縣은 경덕왕16년(757년)에 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 되어 있다.”고 기재되어 있는 바, 지금은 岳陽으로 표기되므로 한자어만 바뀌었을 따름이다. 진주땅이었던 악양은 숙종때 하동으로 편입되었다.
두껍게 횡천지맥을 덮은 구름 아래로 횡천지맥이 흐르고 있습니다.
우측이 구재봉773.7m,
그 좌측 고개가 삼화실재.
1558년 4월 24일 악양을 출발하여 횡천으로 가던 남명 선생의 거친 숨소리 좀 들어볼까요?
‘새벽에 흰 죽을 먹고 동쪽 고개를 올랐다. 이 고개는 ‘삼가식현’이라 부르는데, 고개가 높이 솟아 하늘에 가로놓여 있어서, 올라가는 사람이 몇 걸음 못 가서 세 번이나 숨을 내쉰다 하여 그렇게 이름을 붙인 것이다. 두류산의 원기가 여기까지 백 리나 뻗어왔건만, 여전히 높이 솟아 작아지거나 낮아지려 하지 않는다.
이우옹은 이강이의 말을 타고 채찍질하여 혼자 먼저 올라갔다. 고갯마루에 올라 말을 세우고 말에서 내려 바위에 걸터앉아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 졸저 전게서 235쪽
그런데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鳩在峰이라 표기한 저 구재봉은 북한의 백두대산줄기와도 관련이 있는 봉우리입니다.
북한의 백두대산줄기
산맥과 산줄기에 대해서는 지난 구간 어느 정도 자세히 살펴봤다. 그런데 구재봉이 나왔으니 하나만 더 살펴볼까? 우리보다 일찍 일제의 잔재를 극복했다고 하는 북한에서는 이 지질학적 개념의 산맥이나 백두대간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북한은 1996년 ‘국가과학원 지리연구소’에서 학자들을 내세워 우리나라 산줄기를 전면적으로 조사, ‘백두대산줄기’를 기본 축으로 하여 산줄기 체계를 새롭게 정립했다.
즉 우리의 백두대간에 해당하는 ‘백두대산줄기’를 ‘백두산의 장군봉2,750m에서 시작하여 경상남도 하동군 구재봉에 이르는 총길이 1,470Km인 산줄기’라고 하면서 이를 모두 8개의 산줄기로 나누었다. 그들은 "오랜 옛날부터 우리 선조들은 백두산을 '조종(뿌리가 되는 거룩한 존재)의 산'으로 숭상하여 왔으며 백두산에서부터 지리산까지 하나의 산줄기로 보고 백두대간이라고 일러왔다"며 일제가 우리 민족을 말살하기 위해 백두대간이라는 말 자체를 없애 버리고 산줄기 체계를 왜곡했다고 지적하고 북한 학자들이 이를 연구, 바로 잡았다고 했다. 이에 의하면 ‘지리산줄기는 장수와 함양의 경계에 있는 백운산1278.9m으로부터 경상남도 하동군 구재봉773.7m에 이르는 산줄기를 말한다.’고 하였다. 그러니 이 구재봉이 북한에서 얘기하는 백두산에서 시작한 백두대산줄기의 종착역인 셈이다.
그런데 이 구재봉을 악양면과 적량면에서는 서로 다른 뜻으로 부른다. 이 산의 이름은 구자산龜玆山이었다고 ‘조선지지자료’는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그 산의 산등에는 거북모양의 바위가 있어 구자산龜子山이었던 것이 지금은 구재봉龜在峰이라 불린다고 하니 이 龜在峰은 적량면 사람들이 거북 바위 모양의 바위를 보고 부르는 이름인 셈이다. 한편 악양에서 볼 때 이 봉우리는 비둘기 형상으로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비둘기 鳩’를 써서 ‘鳩在峰’이라 부른다. 그러니 구재봉 정상에 오르면 악양면과 적량면에서 세운 정상석이 서로 다른 한자어로 표기되어 새워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국토지리정보원에서는 악양면의 손을 들어주어 鳩在峰으로 표기하였다. 그런데 이 두 개의 정상석으로 인해 말들이 많았었나 보다. 최근 두 개의 정상석을 없애고 아예 한글로 표기된 ‘구재봉’ 정상석이 새로 새워졌다. 그러나 적량면에서는 그래도 미련이 남았던지 그 정상석 이수螭首 부분에 거북이 형상의 돌을 얹었다.
- 졸저 전게서 240쪽 이하
그 좌측으로 칠성봉905.8m
여기서는 겨우 회남재까지 볼 수 있군요.
회남재는 삼화실재와 같이 남명 조식 선생과 관련한 고개이고.....
저 위에는 철쭉이 좀 있으려나?
성제봉을 다녀온 대원들이 속속 도착을 하는군요.
우리 지게님은 언제나 오시려나.....
구재봉 좌측 뒤로 구름에 덮인 금오산.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시는군요.
무사히 내려오고 있음에 감사할 뿐.....
천천히 오십시오.
그래요.
지게님 오늘 만만세입니다.
지게님과 함께 횡천지맥 능선을 살펴보고....
평사리 군산의 부부송도 함께 봅니다.
예전 글을 가져옵니다.
무림이들이라 부르는 평사리의 너른 들판을 지난다. 이 평사리는 변한시대부터 조성된 마을이다. 이 들판이 한국 문학사상 가장 방대하다고 하는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가 된 곳이다. 고향이 통영인 박경리는 정작 평사리를 한 번도 가보지 않고 소설을 썼다고 한다.
“내가 경상도 안에서 작품의 무대를 찾으려 했던 이유는 언어 때문이다. 통영에서 자라 진주에서 성장한 나는 ‘토지’의 주인공들이 쓰게 될 토속적인 언어로 경상도 이외의 다른 지방 말을 구사할 능력이 없었다. 그러나 만석꾼의 토지란 전라도에나 있었고, 경상도에서는 그만큼 광활한 토지를 발견하기 어려웠다. 평사리는 경상도의 어느 곳보다 너른 들을 가지고 있었으며 섬진강의 이미지와 지리산의 역사적 무게도 든든한 배경이 돼 줄 수 있는 곳이었다. 나는 그래서 평사리를 ‘토지’의 무대로 설정했다.”
한껏 여유로워진 지게님.
저 끝까지 가봅시다.
구름다리의 끝 903.1봉 좌측으로 수어지맥의 억불봉이 보이는군요.
성제봉 활공장에서는 오늘 나무지게님의 부활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행그라이더를 두 분 띄었습니다.
좌측으로 왕시루봉과 그 우측으로 종석대를 거쳐 노고단까지는 보이는데 아쉽게도 반야봉은 보이지 않는군요.
"어이!"하고 손을 흔들자.
"축하합니다!"라며 지게님께 답례를 합니다.
내려오는 길.
이정표도 보고....
더 조심조심.
산가인님도 쿨하니 총무님과 함께 둘레길 땜빵을 무사히 마치셨고.....
이 부장님은 마중까지 나오셨네요.
오늘 정말 수고 많으셨고 고맙습니다.
어서 재활 훈련을 열심히 해서 다음에는 저 횡천지맥이나 함께 합시다.
만족하셨죠?
오랜만에 이렇게 맛있는 소머리국밥 처음 먹어봅니다.
맥주를 너무 많이 마셨나?
버스 안에서 고생 좀 했습니다.
'LG TWINS > 지리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리산 백쌍종주 (0) | 2023.08.19 |
---|---|
지리산 서북능선(성삼재 ~ 만복대 ~ 정령치 ~ 큰고리봉 ~ 세걸산 ~ 바래봉 ~ 용산주차장) (0) | 2023.07.31 |
임인년의 마지막과 계묘년의 시작은 지리산에서..... (0) | 2023.01.02 |
지리산 북부의 한자락을 노닐며..... (1) | 2022.12.05 |
반야봉과 묘향암 그리고 뱀사골. (0) | 2022.1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