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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TWINS/지리산

지리산 북부의 한자락을 노닐며.....

 

12. 04.은 지리산둘레길을 하는 날.

아무리 생각해도 그 먼길을 달랑 13km 정도만 진행하고 오기에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어디를 갈까?

토요일 미리 가서 지리산 주변을 한 바퀴 돌고 일요일은 둘레길을 거닐다 오는 게 나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리에 푹 파묻혀 살고 있는 고남 형님은 언제나 대기상태로 계시니 별 신경 쓸 일 없고....

이런 저의 저간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산수님은 금요일에 미리 내려간다 하는군요.

 

어디로 갈까?

지도를 뒤적이다 보니 임천(연비)지맥에서 가지를 친 자투리 능선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렇죠.

고남 형님이 지리산으로 내려오자마자 함께 지안재에서 오도봉 ~ 삼봉산 ~ 투구봉 ~ 팔량재 ~ 오봉산 ~ 연비산으로 진행할 때 투구봉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인데 아직 거기를 가보지 않았다니!

그때뿐만 아니라 지리 주릉이나 북부능선이나 서북능선 혹은 그 외의 능선을 걸을 때에도 늘 바라보기만 했던 곳입니다.

그쪽으로 갈까?

국토지리정보원 지도를 보면 임천지맥에서 갈리는 이 여맥餘脈은 주봉인 투구봉 1032.5m 이외에는 자기 이름을 가진 봉우리가 없는데 누가 붙여놓고 어떤 뜻을 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수청봉769.9m이니 백장봉, 서룡산1079.2m이라는 이름도 눈에 띄는 걸 보니  이 지역 사람들은 자주 들르는 봉우리인 거 같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삼봉산에서 오도재를 넘어 법화산으로 갈 수도 있고 등구재를 넘어 백운산 ~ 금대봉으로 갈 수도 있으며 아니면 등구재에서 둘레길을 따라 걷거나 등구재 ~ 서진암 ~ 금강암 ~ 백장암을 잇는 3암자 코스도 생각할 수 있겠고. 아니면 바로 투구봉에서 팔량재를 넘어 오봉산878.5m과 옥녀봉801.5m을 잇고는 천령봉558.5m을 거쳐 함양읍내로 이동하는 코스도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그 오봉산 코스는 여름에 혼자 와서 긴 해를 이용하여 진행하면 될 거 같고....

인월농공단지에서 769.9봉 ~ 투구봉 ~ 삼봉산 ~ 등구재 ~ 서진암 ~ 금강암 ~ 백장암을 지나 인월농공단지로 원점 회귀하는 트랙을 그려 산수님께 보내주고 금요일 23:59 버스로 인월로 내려갑니다.

마침 오늘은 카타르 월드컵 포루투칼과 H조 마지막 경기가 벌어지는 날입니다.

차에 오르자마자 차내 TV가 켜지고 경기가 바로 시작됩니다.

자다 깨다를 반복 하다 보니 '대한민국 16강 진출'이라는 자막이 뜹니다.

열심히 훈련을 한 대가입니다.

 

고남 형님 집으로 가서 잠깐 눈을 붙이고 아침을 먹은 후 인월농공단지로 갑니다.

개념도를 보니 수청봉과 서룡산이 눈에 들어옵니다.

지도 #1

지도 #1의 769.9봉을 수청봉, 1079.2봉을 서룡산으로 표기하여 놓았군요.

그렇게 불러주기로 합니다.

공단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오던 길을 되돌아 나가면 이정목이 '서룡산 3.3km'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우측 보이는 게 주차장.

등로 좌측으로는 여름철이면 가득 우거졌을 덩굴숲이 지금은 이렇습니다.

지금은 영업을 하지 않는 구룡관광호텔 좌측으로 등로가 나 있습니다.

백장암 삼거리에서 좌틀하여 서룡산을 따릅니다.

남원시에서 등로를 잘 다져놓았습니다.

멀리 반야봉을 봅니다.

정상부가 하얀 게 아마 눈이 조금 온 거 같습니다.

지도 #1의 '가'의 하우마을 삼거리를 지나,

769.9봉에서 폐삼각점을 봅니다.

이곳을 이곳에서는 수청봉이라 부르는가 봅니다.

조망은 꽝.

이곳에서도 하우마을로 내려갈 수 있고....

그 길은 곧 인월로 빠지는 길입니다.

그러니까 예전 이정표의 인월이 새 이정목의 하우마을입니다.

멧선생으로부터 하도 시달리다 보니.....

정비가 잘 되어 있는 등로.

간간이 로프길도 나오고

966.5봉으로 오릅니다.

이게 선바위?

범바위를 오릅니다.

사방으로 조망이 터지는군요.

중앙 앞 인월마을 지나 바로 뒤가 태조 이성계의 황산698.7m.

그 뒤가 고남산846.8m.

그 우측 뒤로 뾰족한 게 천황산909.6m.

저 천황산은 그 우측의 팔공산1149.4m에서 비롯된 요천(천황)지맥의 맹주이죠.

앞으로 백두대간이 펼쳐지는데 중앙 우측 뒤로 봉화산919.7m에서 옥잠봉703.5m으로 이어져 비조재로 떨어지는 임천지맥도 가늠이 되고 그 뒤로 대간의 백운산1276.9m이 우측 빼빼재(대방령)로 떨어진 다음,

우측 대봉산1251.7m으로 힘차게 이어지는 모습이 보입니다.

바로 앞 우측으로는 조금 이따 만나게 될 투구봉에서 떨어지는 팔량재에서 올라 오봉산878.5m 에서,

옥녀봉801.5m으로 이어지는 모습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

함양군 군계 종주나 한 번 할까?

중앙 백운산 뒤로 장수덕유(서봉)1492m와 봉황산(남덕유산)1507m도 명백하게 보이는군요.

산수님이 포즈를 취하시고....

저도 한 장.

덕두산 아래로 지리산 둘레길 2구간을 걸을 때 지나쳤던 백련암과 그 우측의 황매암이 조망됩니다.

바래봉 좌측으로는 만복대와 고리봉 그리고 성삼재 건너 그 좌측의 종석대까지......

그러니 반야와 우측의 노고단은 그저 서비스!

산내면 좌측으로는 삼정산1156.2m 등 지리북부능선이 즐비하고  그 능선 좌측의 삼각고지로 이어지고 그 좌측의 형제봉의 귀 모양이 뚜렷하니 덕평봉 ~ 영신봉 ~ 촛대봉이 명백합니다.

연하봉 ~제석봉은 뚜렷한데 안타깝게도 천왕봉은 정상부가 구름에 가렸습니다.

다시 한번 두 눈으로 바래봉에서 964.0봉으로 흘러 좌틀하여 내려오는 능선이 늘어진 모습 즉 늘르- 느루-노루에서 노루목獐項이 되어 저 동네 이름이 장항동이 된 이유를 다시금 이해합니다.

팔량재 부근을 다시 봅니다.

임진왜란 때 의병 조경남 장군이 왜군을 물리쳤던 곳이죠.

둘레길을 할 때 자세히 보았던 내용.

오봉산 좌측 뒤로 연비산이 보이고......

최고의 조망처 범바위를 내려옵니다.

지도 #1의 'D' 서진암 삼거리에서 좌틀하면,

늑대형님 표지띠가 걸려 있습니다.

형님이 돌아가신 지 벌써 11개월이 되었군요.

그립습니다.

서룡산1079.2 정상을 인증합니다.

조망은 거의 없어 바로 진행합니다.

그러면 산불감시 카메라가 있는,

투구봉입니다.

여기서 임천지맥을 만납니다.

투구봉에서는 아까 범바위에서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앞의 등구재 지나 백운산904.1m과 그 능선 좌측의 뾰족한 금대산851.5m을 조망할 수 있습니다.

그 너머의 창암산도 가늠할 수 있고....

그 중앙 뒤로 천왕봉과 중, 하봉을 볼 수 있고 두류봉과 벽송사 능선이 가늠이 되니 와불산과 그 좌측 뒤의 왕산과 필봉산도 조망이 됩니다.

진행방향으로 삼봉산1186.7m도 이제는 지척이고.....

투구봉을 내려오자마자 바로 좌측으로 팔량재 갈림길이 나옵니다.

이정목에는 '유아숲 체험원'이라 표기되어 있습니다.

좌측으로 삼봉산이 보이기 시작하고.....

앞으로는 오봉산과 옥녀봉.

1109.1봉을 오릅니다.

삼봉산 정상을 향해 피치를 올립니다.

임천지맥의 최고봉 삼봉산1186.7m입니다.

3등급삼각점이 박혀 있고.....

정상석을 인증합니다.

오도봉과 오도재 그리고 법화산.

그 뒤로 왕산과 필봉산을 보고 그 좌측 뒤로 황매산을 봅니다.

좌측 멀리 가야산이 보이는데 희미해서.....

왕산과 필봉산 우측 뒤로 내일 지날 웅석봉 라인이 보이니 그 좌측이 정수산입니다.

여기서 따끈하게 국수를 먹으면서 이백막걸리를 먹는데.....

고남형님이 가져온 그 맛있는 김치를 먹는데 그 맛이 보통이 아닙니다.

이따 몇 포기를 얻어가기로 합니다.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내려가야죠.

이정표를 지나,

우틀하면 중황리로 바로 떨어지는 길이지만 등구재로 가기 위해 직진합니다.

그러고는 등구재입니다.

 

등구재는 이 부근에 있다가 지금은 폐사된 등구사로 인해 생겨난 이름이다.

 

등구사 소고

영남학파의 종조인 점필재 김종직(1431~1492)은 함양군수로 있던 1472년 8월 14일 유호인, 조위 등과 함께 지리산 산행에 나선다. 예전 말로는 유람이었지만 그 유람이 지금의 산으로 오면 현대어로는 등산 아니겠는가? 그들은 천왕봉~영신봉 등을 들르고는 백무동으로 하산하였다. 점필재가 훌륭하게 4박 5일 일정의 산행을 마치고 귀가를 할 때 지났던 루트가 바로 이 길이다.

점필재는 일행들과 헤어져 등구재를 넘어 오도재를 거쳐 함양으로 돌아갔다. 점필재는 고려 말 정몽주와 길재의 학통을 이어받은 부 김숙자에게 수학하여 영남학파의 종조가 되었을 뿐 아니라 절의節義를 중시하는 조선시대 도학의 정맥을 이어가는 중추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사상은 김굉필, 정여창, 유호인, 김일손, 남효온 등으로 면면히 이어지기도 한다. 특히 김굉필의 제자 조광조에게 학통이 계승되면서 점필재는 사림파의 정신적 지주가 된다. 그러나 1470년 12월 함양군수로 재직할 때 함양 학사루에 있던 유자광의 현판을 불태우게 되는데 이게 후에 무오사화의 원인이 되어 부관참시 당하는 수모를 겪게 된다. 여러 가지로 유명한 인사이지만 이쯤 되면 조의제문弔義帝文 사건으로 35세의 짧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 탁영 김일손(1464~1498)이 생각날 법도 하다. 탁영 김일손은 1489년 4월 14일 정여창, 김형종 등과 함께 산행을 나섰다. 천령天嶺 그러니까 지금의 함양을 출발한 세 사람은 등구사에 도착하여 하루를 묵는다.

 

그러고는 “등구사 터 아래로 양진재養眞齋가 있고 이는 옛날에 개암介菴 강익 선생이 살던 곳이다. 나는 말이 가는 대로 몸을 맡기고 등구사에 도착했다, 불룩하게 솟은 산의 형상이 거북 같은데 절이 그 등에 올라앉아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오래된 축대가 우뚝한데 그 틈새에 깊숙한 구멍이 있었다. 석간수가 북쪽에서 그 속으로 졸졸 소리를 내며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 위에 두 개의 사찰이 있었는데 우리는 동쪽 사찰에 묵었다."고 등구사를 회고했다.

 

- 졸저 '현오와 걷는 지리산' 104쪽

버섯 찾으시나.....

다랭이논. 

 

다랭이논은 하늘네미 또는 공중네미라고도 불렀다.

그런데 이 다랭이 논은 산내 중황리쪽보다는 마천 구양리쪽이 더 볼 만하다. 필리핀 이푸가오Ifugao 지방의 계단식 논이나 중국 운남성의 원양제전元陽梯田보다야 못하겠지만 상당한 규모임에는 틀림없다. 전쟁이나 전염병 그리고 과중한 세금과 부역에 시달리던 농민들은 생존을 위해 지리산으로 몰려든다. 대부분 경상도와 전라도 출신의 가난한 농민들로 그들은 벼농사에 대해 충분한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조선 중기 이후에 들어 벼농사가 직파법에서 이앙법으로 전환이 되면서 도맥稻麥 이모작이 가능해졌다. 이러면서 기존의 밭을 개량하여 논으로 바꾸는 번답(反沓, 飜沓) 현상이 두드러지게 되었다.

하지만 경사면을 파 내리고 하부를 높여서 수평을 유지하여야 했고 하부의 경계에 두둑을 조성해야 하는 등 빈약한 농기구에 의존해야 했던 것만으로도 당시 민초들의 고된 삶을 엿볼 수 있겠다. 여기에 또 다른 어려움은 바로 관개용수의 공급 문제였다. 저수지 같은 수리 시설의 혜택을 볼 수 없는 곳인 만큼 물의 공급을 위해 개발된 방식이 바로 착정관개鑿井灌漑 즉 샘물이 나올만한 곳을 찾아 작은 연못을 만들어 이 물을 농사에 이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수온이 너무 낮을 경우 냉해를 입을 우려가 있으므로 이를 피할 수 있도록 작은 수로를 만들어야 하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니 지리산 사람들은 물이 있는 10˚ 내외의 경사 지역을 우선적으로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돌로 논둑을 쌓았고 논바닥은 점토를 져다 날라 와서 다져 넣었다. 이렇게 만든 논들을 특히 '구들논'으로 부른다고 하던가?

어쨌든 그러다 보니 논모양이 등고선을 따라 구불구불하게 생기게 되는데 결국 농로와 수로 역시 그에 따라 같은 모양으로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는 산에서 내려오는 찬물이 농사에 부적합하므로 수로를 따라 고이거나 흐르는데 시간이 걸리게 함으로써 어느 정도 수온을 높여 냉해를 방지하려는 목적도 있었다고 한다. 지혜의 산물인 것이다.

 

- 졸저 전게서 106쪽

주인아주머니와의 약속.

2022. 10. 16. 해밀과 함께 이곳을 지날 때 이곳에서 점심을 먹었었죠.

그때 주인 아주머니께서 올해 안으로 또 들르면 막걸리 한 통을 서비스로 주신다고 하셨는데....

안에서 기타 소리가 나며 조용하게 부르는 노랫소리도 들립니다.

가만히 들어보니 영화 '바보들의 행진'의 주제곡이었던 '고래사냥'이로군요.

안으로 들어가 보니 부부가 막걸리를 놓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대로 그렇게'도 한 번 뽑아보고....

박수를 쳐주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그분들은 구미에서 오신 분들이라고 하는군요.

합석하여 한잔씩 돌립니다.

공방 정도의 모든 시설은 그 여주인의 작품이라 하고.....

파전 하나에 막걸리 5통을 비루고 일어납니다.

백운산을 돌아보며 발걸음을 가볍게 합니다.

부근의 전원주택이 이제는 별로 욕심도 나지 않고.....

천왕봉만 안 보이고 촛대봉까지는 볼 수 있는 곳.

서진암 ~ 금강암 ~ 백장암을 가보려 했었는데 오늘도 또 시간이 안 되어서 가지 못하겠군요.

바로 둘레길을 따라 산내 우체국으로 내려와 남원으로 이동한 뒤 능이백숙 집으로 가서 뒤풀이를 하고 내일을 위하여 잠을 푹잡니다.

오늘도 지리의 마고할매 품에서 가볍게 노닌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