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
산은 곧 분수령 즉 물줄기를 가르는 경계가 된다는 말입니다.
물줄기가 끊임이 없이 흐르듯 산줄기도 그렇다는 말일 것입니다.
당연히 그 산줄기는 절대로 물줄기를 건너지 않습니다.
이 말은 곧 산줄기는 물에 잠김으로서 그 맥을 다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이 기본 원리에 충실한 산줄기의 족보가 여암(旅庵) 신경준 님의 산경표이고, 이를 수정·보완한 것이 박성태 선생님의 신산경표입니다.
이미 조선 영조 때인 1769년에 편찬된 여지편람 속의 산경표는 우리 고유의 산줄기의 체계를 우리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을 시조산(始祖山)으로 하여 우리나라의 모든 산이 다 한줄기로 이어졌음을 보여주는 귀중한 역사적 자료라 할 것입니다.
그 근간이 되는 산줄기가 바로 백두대간입니다.
이 백두대간은 우리나라 산의 시조산인 백두산부터 시작하여 지리산에 이르는 동안 무수한 명산을 빚고 또 여러 줄기를 가지 치게 됩니다.
그 무수한 명산 중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금강산, 설악산, 태백산 덕유산 등이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1정간 13정맥이 그 대간에서 갈라진 줄기들 입니다.
그러니까 대간을 아버지에 비유한다면 정맥은 아들쯤 될 것이고 정맥에서 갈라지는 줄기인 지맥은 그 자식뻘쯤 된다고 해야 하나요.
물론 1정간 4정맥 즉 장백정간과 청북정맥, 청남정맥, 임진북예성남정맥 그리고 해서정맥은 북한에 있으므로 현재로서는 밟지 못 할 산줄기이므로 논외로 합니다.
지도를 봅니다.
백두대간이 백두산을 떠나 남진을 하다 청북정맥과 청남지맥을 가지 친 다음 두류산(1323m)에 이르러 임진북예성남정맥(해서정맥)을 다시 서해안으로 보냅니다.
그러고는 계속 남진을 하다 식개산(1157m)에 이르러 다시 한 줄기가 분기합니다.
이 줄기를 따라가 봅니다.
백봉을 지난 이 줄기는 장암산을 지나 두리봉을 지나서는 두 줄기로 갈리는데 한줄기는 1.고성산으로 흘려보내고 다른 한 줄기는 2.왕재봉으로 향합니다.
왕재봉을 지난 줄기는 다시 하나를 가지 치는데 이 줄기가 우리도 잘 알고 있는 2-(1)보개산 지장봉으로 향합니다.
지장봉으로 가던 줄기는 좌회전을 하여 봉우리 하나를 만드는데 이 봉우리가 철원의 진산인 2-(1)-1)-①금학산이 됩니다.
금학산은 계속 직진을 하여 2-(1)-1)-②고남산을 거쳐 2-(1)-1)-③수리봉까지 가서야 그 맥을 물로 떨어뜨립니다.
한편 지장봉으로 가던 줄기는 대소라치를 지나 헬기장이 있는 삼거리에 이르러 주줄기는 남진을 하고 다른 한 줄기를 북쪽으로 내 주는데 북쪽으로 가던 줄기는 2-(1)-2)-①고대산에 닿게 되는군요.
여러분들도 고대산은 여러차례 가보셔서 잘 아시겠지만 고대산 정상에서 한 줄기는 다시 부대를 지나 강으로 향하고(소위 3코스) 다른 한 줄기는 2-(1)-2)-②삼각봉을 지나 2-(1)-2)-③대광봉에 이르러서는 하나는 2코스로, 다른 하나는 1코스로 향하게 되는데 1코스 너머로 긴 줄기 하나가 보입니다.
군용 삭도 옆으로 난 내리막길을 따르면 군비상도로가 나오고 줄기는 2-(1)-2)-④주라이등(석봉)을 거쳐, 2-(1)-2)-⑤수리봉을 지나 한탄강으로 잠기게 됩니다.
다시 삼거리를 지난 보개산 줄기는 지장봉을 지나 북대를 거쳐 성산......
또 지장봉을 오르기 전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가지 친 줄기는 동마내기고개를 지나 관인봉으로, 북대에서 가지 친 줄기는 향로봉을 지나 종자산으로, 성재 못 미쳐에서 가지친 줄기 하나는 두이봉으로.....
이렇게 되면 우선 큰 줄기 하나가 끝나게 되는데 위와 같이 정맥에서 가지를 친 긴 줄기를 지맥(枝脈)이라는 이름을 붙여 분류를 해 놓은 것 같습니다.
이런 식으로 산줄기는 계속 가지를 치게 되며 우리나라의 모든 산은 다 이 안에 들어 있다는 결론이며 여기서 예외는 절대 있을 수 없다는 결론에 자연스럽게 도달하게 됩니다.
그래서 정통성 있는 산행 혹은 짜임새 있는 산행을 하시려는 산님들은 1대간을 종주한 다음 남한 지역에 있는 9정맥을 답사하게 되고 그 다음에 기맥, 지맥, 단맥 순으로 산행을 하는 게 정통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산에 다니는 데 어떠한 규칙이 없듯이 산행을 하는 데에도 어떤 순서가 있을 리 만무합니다.
제가 아는 고수님 한 분은 1대간 9정맥을 섭렵하신 다음 우리나라의 1,000m 이상 급 산을 추려낸 다음 그 산들을 하나하나 정복하시는 분이 계신가 하면 어떤 분들은 명산 100산을 먼저하시고 다른 산을 계획하고 .....
취향이나 산에 다니시면서 느낀 바에 따라 다들 다르실 것이니 그것을 가지고 왈가왈부할 것은 못 될 것입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체계적으로 산을 다녔다기 보다는 명산 위주로 다니다가 우연히 백두대간에 들은 것을 기화로 산줄기를 따라 다니게 되었습니다.
백두대간을 마친 저는 한북정맥을 마치고 그 다음 정맥을 들기 전에 이른바 한북 8지맥(명성, 왕방, 감악, 오두, 화악, 명지, 천마, 수락)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지맥을 하는 도중 그 지맥에서 갈라지는 단맥을 접하게 되었고 그 단맥을 다니면서 산줄기에 대한 맛을 느끼게 되면서 거기에서 빠져 나올 수 없게끔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지도를 만들어 가며 산행을 하다보니 자료가 쌓이게 되고, 그 자료는 어느덧 북한강 이북에 있는 산들을 거의 망라하는 정도의 양이 되었습니다.
개중에는 일반 산님들도 익히 알고 계신 산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산들은 가까이 다가가기가 어려웠던 산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가보기 어려웠던 산들을 이어가며 걷는 재미는 원점회귀 산행을 하는 것보다 더 큰 즐거움으로 다가온다는 것이 저의 경험입니다.
이 글은 큰 줄기인 한북정맥을 걸으면서 북쪽에서 계속 뻗어가는 줄기를 차례 차례 걸어보는 형식으로 엮어 보았습니다.
즉 제가 한 줄기를 걷다가 목표지점에 이르기 전에 다시 갈라지는 한 줄기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하여 다음에는 그 줄기를 또 그 줄기에서 갈라지는 것이 있다면 또 먼저 줄기를 마친 다음에 다시 그 줄기를 찾는 형식으로 풀어갑니다.
모쪼록 선답자들의 발자취를 찾아가고 따라가는 겸허한 마음으로 그리고 후답자가 이 길을 오실 때 불편함이 없도록 표지띠도 붙여가며 진행한 그 흔적을 다시 찾아 떠나는 기분으로 이 글을 진행하겠습니다.
한북정맥
산경표는 우리 따의 산줄기를 1대간 1정간 13정맥으로 나누고 있고 이 중 북한 땅의 산줄기를 제외하면 남한에서 밟을 수 있는 산줄기는 1대간 9정맥입니다.
그러나 이 중에서 백두대간과 한북정맥은 남북한의 정치적인 상황으로 인하여 온전하게 밟을 수 없고 그 일부만을 걸을 수 있는 분단의 한을 간직한 산줄기입니다.
한북정맥은 백두대간이 백두산에서 지리산을 향해 남진을 하다 두류산을 지나 강원도 식개산에 이르러 남서쪽으로 갈라진 산줄기입니다.
정맥은 북한의 천산, 전천산, 수우산, 불정산 등을 빚었으며 남쪽으로는 대성산, 백운산, 운악산을 빚고는 서울의 삼각산을 빚은 뒤 파주의 장명산을 지나 공릉천(恭陵川)이라는 물을 만나 여기서 그 맥을 소멸하게 됩니다.
북한땅과 DMZ 그리고 민통선의 줄기 들을 제외한 우리가 온전히 밟을 수 있는 정맥의 총 길이는 도상으로는 약154km이지만 실제거리는 약 190km가 넘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 좀 이상한 점이 발견됩니다.
분명 산은 그 자체가 분수령이 됨으로서(山自分水嶺) 물을 가른다는 대원칙에서 출발을 합니다.
우리나라의 1대간, 1정간, 9정맥은 10대강 즉 압록강, 두만강, 청천강, 대동강, 예성강, 임진강, 한강, 낙동강, 금강, 섬진강 등을 구획한다고 하는 대원칙에서 출발한다고 하였으므로 이 한북정맥은 한강 이북에 있는 줄기로서 이는 북한강과 임진강의 분수령이 되는 큰줄기입니다.
그렇다면 한북정맥은 북한강이나 임진강 아니면 서해바다를 만나서 소멸이 되어야 이 원칙에 부합하는 모양새가 됩니다.
그러나 기술한 바와 같이 분명 산경표에 의하면 한북정맥은 파주시 교하읍에 있는 장명산을 지나 공릉천에서 그 맥을 다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여암 신경준님은 정맥의 한줄기에 도읍지인 수도 한양의 삼각산을 집어 넣고 싶은 마음에서 억지로 그 줄기를 끼어 넣은 것인지 아니면 착각에 의해서인지 어쨌든 산경표 이론과 다른 정맥이 되었습니다.
이 이론을 다시 제대로 잡고자 한강봉에서 오두산으로 이어지는 즉 산경표 상의 오두지맥을 한북정맥으로 편입하는 이론 구성이 박성태 선생님의 '신산경표'입니다.
이에 따르면 한강봉에서 장명산으로 이어지는 줄기는 자연스럽게 '도봉지맥'이라는 이름으로 8지맥에 분류되는 것이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게 됩니다.
박성태님의 신산경표 이론이 지당함에는 이의가 있을 수 없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여암 신경준님의 산경표는 나름대로 역사적인 의의가 있고 박성태 선생님의 신산경표 역시 그 산경표를 토대로 연구하신 결과물이라 볼 때 아직 우리나라의 산줄기가 지리학에서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 작금의 상황에 비추어 하루 빨리 산맥의 개념 대신 산줄기 개념이 토착화 되어 박성태 선생님이나 조석준 선생님 같으신 분들의 연구 결과가 채용되기를 바라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박성태님의 신산경표에 따라 산행을 합니다.
한북정맥 (漢北正脈)
제1구간 : 수피령 ~ 광덕고개
보통 한북정맥 제1구간은 수피령부터 시작을 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도(道)나 시, 군, 읍, 면 등은 대개 산줄기나 강을 경계로 하여 나뉘게 되는데, 이 수피령은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과 철원군 근남면을 잇는 고개이므로 한북정맥은 곧 면계가 되는군요.
2009. 9. 26. 08:27
백두대간은 6개월 6일만에 미친 듯이 마친 저는 바로 한북정맥에 듭니다. 동서울버스터미널에서 사창리행 버스를 타고 사창리에 내려서 택시를 이용하여 수피령으로 갑니다. 화천군 모범운전자라는 심규태씨(010-6372-1230)는 사창리 토박이로 해군 수송병으로 군복무를 마친 사람인데 내릴 때까지 군대 이야기며 야생 산돼지 고기 등 이야기가 끊일 줄 모르는군요. 군사지역인 이곳 사람들은 어차피 군인들을 떠나서는 생활을 할 수 없는 분들이기 때문에 일상 대화도 군대와 연결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저도 그 분과의 대화 속에서 군 복무 시절의 추억에 잠길 수 있었습니다.
수피령 고개(780m)에는 '대성산 전적비'가 위치해 있습니다. 그 공터에서 산행준비를 합니다. 오늘은 정맥을 처음 드는 날인 만큼 상당히 긴장이 됩니다. 과연 정맥길은 어떨까. 정맥은 대간길과 어떻게 다를까....
고속도로와 같은 대간 길과는 사뭇 다를 것이라는 생각과 대강의 고도 편차가 어느 정도나 될 것이냐는 것에 대해서도 사전 지식이 그다지 많지는 않으나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통하여 간단한 예습을 하였기 때문에 그 가르침만 똑바로 이행하면 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만 합니다. 정맥 등로는 우선 비상군사도로인 너른 길로 들게 됩니다. 등로 초입에는 정맥을 시작하는 이들을 반기는 표지띠들이 바람에 날리고 있습니다. 익히 많이 보았던 표지띠들이기에 적이 안심이 되어 정맥에 대한 불안감을 날려버립니다.
08:32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합니다. 바로 헬기장이 나오고 그 헬기장은 작은 조망터가 되어 대성산을 조망하게 해줍니다. 대성산으로 오르는 군사도로가 푸른 숲과는 달리 누런 실선으로 그려져 정상의 부대를 향해 지그재그로 향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전형적인 가을 날씨로 청명한 하늘을 보여줍니다. 정맥 마루금 자체가 군인들이 다니는 길인 만큼 선명하므로 지도만 있으면 길을 잃을 염려는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도로를 폐쇄하려는 의도에서 인지 간간이 축대도 만들어 놓아 차량 통행이 어렵게 만들어 놓았고 새로 소나무도 식재하여 놓았습니다. 20여 분 오르니 이제는 그 비상도로를 버리고 너울대는 표지띠를 따라 가파른 산길로 들어섭니다. 이 지역은 군사지역이다보니까 피피선이 많이 눈에 띕니다. 분명 통신가설병이 사람이 걸을 수 있는 도로를 따라 그 피피선을 깔았을 것이므로 어쩌면 이 선이 길 안내 역할을 톡톡히 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즉 과거 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면 이 선은 본부의 교환대와 각 초소를 연결하는 전화선일 것이므로 이 선을 가설하기 위하여 통신가설병이 방차통을 매고 선을 풀면서 올라가야 하였을 것인데 그들이 이용하는 길도 역시 이 정맥의 마루금이었을 것이라는 결론입니다.
09:07 - 가지 1. 복계단맥(福桂短脈)
복계산 삼거리에 도달합니다. 즉 수피령을 떠난 정맥길은 여기에서 정맥길을 벗어나 줄기 하나를 만들게 되는데 그 줄기는 복계산이라는 명산을 빚은 뒤 헬기장 뒤로 이어져 747.2고지를 지나 임진강 지류로 빠지게 됩니다. 복계단맥은 뒤에 다시 보기로 하고 정맥길은 이 삼거리에서 좌틀을 하여야 합니다. 길은 평탄하게 이어집니다. 우려했던 것만큼 길이 희미하지도 복잡하지도 않습니다. 여기서 희미하다는 의미는 사람이 다닌 흔적이 눈에 확 들어오지 않아 잠시 머뭇거리게 된다는 의미로 이런 곳에서는 길 같은 곳을 몇 군데 잘 더듬다가 가장 선명한 길을 찾아봐야 하며 길이 복잡하다는 것은 길이 여러 갈래라는 말입니다.
* 좌틀 : 좌로 방향을 튼다는 산꾼들의 용어
표지띠의 중요성
이럴 때 가장 긴요한 것은 나침반과 지도인데 요사이는 GPS를 많이 쓰는 바, 이런 기기들을 잘 이용하게 되면 그만큼 알바를 하거나 조난을 당할 염려는 그만큼 줄어들 게 됩니다. 정맥길은 이런 길에 선답자들이 표지띠들이 많이 달아 놓았으므로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되므로 염려할 게 없습니다. 표지띠는 산객으로 하여금 지도나 기타 조작 기계 등을 확인 할 시간을 덜어주게 하여줌은 물론 내가 정확한 등로로 진행하고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아주 긍정적인 기능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표지띠도 마냥 신봉할 것만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아까 지나온 복계산 삼거리만 해도 좌틀하는 방향에만 표지띠가 있는 것은 아니고 직진 방향 즉 복계산 방향으로도 표지띠 몇 개가 날리고 있기 때문에 악천후나 야간 산행 시에 만연히 진행하다가는 엉뚱한 길로 들어설 수 도 있습니다. 정리하면 본류(本流)에는 표지띠들이 많이 붙어 있고 지류(支流)에는 그만큼은 되지 못하더라도 몇 개의 표지띠들이 있으므로 항상 머리 속으로는 어디쯤에서 산줄기가 갈려 어지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은 예습을 통하여 지도에 표시를 하고 다니는 버릇을 하고 다녀야 할 것입니다. 분면 그 지류로 진행하는 단맥꾼이나 지맥꾼들은 그 단맥 등으로 진행하는 분들을 위하여 수고를 아끼지 않으신 분들이니까 그 분들을 탓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조금 더 진행하다보니 칼바위봉이라는 안내판이 보입니다. 지도에는 없는 봉인데 어쨌든 '모 산악회'에서 930m라는 표기까지 하여 주었는데 좀 의문입니다. 너른 공터를 지납니다. 보통 산객들은 이곳을 폐헬기장으로 부르는 것 같은데 헬기장임에도 이곳에서 주위 조망이 전혀 되지 않을 정도인 곳이니 헬기장으로서의 기능은 이미 상실한 것 같습니다. 등로 양 쪽으로 군인들이 고생한 흔적인 참호가 많이 보입니다.
* 알바 : 보통 일반적으로 아르바이트를 줄여서 알바라고 하는 말을 차용하여 와서 산꾼들이 사용하는 말로 예정된 등로를 벗어나 이탈한 등로를 걸어 헛품을 파는 일을 빗대어 이르는 용어
10:36
너른 길이 나오고 그 길 바로 뒤로는 흡사 런닝셔츠만 입은 병사들이 담배를 꼬나물고는 야전삽으로 참호를 보수하고 있는 전쟁 영화의 한 장면이 연상되는 곳에 '892고지' 팻말이 꽂혀 있습니다. 943고지 가는 방향과 해방촌으로 내려가는 방향을 가르키는 이정표로군요. 거기서 군용 창고를 지나 20여 분 더 진행을 하면 950고지라고 팻말이 붙은 곳이 나오는데 이 950고지는 방카 위에 헬기장으로 조성된 곳으로 이곳에 오르면 훌륭하게 주위를 조망할 수 있습니다. 우선 오던 곳을 뒤돌아보면 우측으로는 대성산이 좌측으로는 복계산이 보이며 진행 방향 왼편으로는 두류지맥이 정면으로는 복주산, 광덕산(탁구공 같이 흰 공 모양)이 그리고 그 광덕산 바로 우측으로는 뾰족한 봉우리(상해봉)에서 흘러내리는 산줄기 하나가 제가 서 있는 곳 우측 도로 즉 56번 지방도 건너로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또 한북정맥에서 갈라지는 두 개의 산줄기를 확인할 수 있군요. 즉 두류지맥(頭流枝脈)과 상해봉에서 갈라지는 상해단맥(上海短脈)이 그것입니다. 감탄을 금치 못합니다. 다시 길을 따라 정맥길을 진행합니다. 유난히 눈에 띄는 폐타이어 계단이 폐자원 활용이라는 긍정적인 면보다는 환경 파괴라는 생각과 보기에도 흉측스럽다는 부정적인 면아 먼저 떠오릅니다. 지금도 군용으로 활용되고 있을지 의심이 가는 군용 창고를 또 지납니다.
11:54 - 가지 2.두류지맥(頭流枝脈)
'군용차량은 서행'하라는 취지의 경고판이 세워져 있는 도로를 만납니다. 이곳이 바로 1070봉입니다. 여기서 왼쪽으로 군비상도로를 따라 진행을 하면 실내고개를 거쳐 북한강으로 진행하는 큰 줄기가 됩니다. 이 줄기가 아까 언급한 두류지맥(頭流枝脈)입니다.
기맥(岐脈), 지맥(枝脈), 단맥(短脈)이란
여기서 잠깐 지맥 등에 대하여 알아봅니다. 지맥이란 공식화된 어떤 용어는 아닙니다. 사전적 의미로도 식물에서 사용하는 의미일 뿐 산줄기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생각건대 신경준 선생님의 산경표가 발견된 이후 재야(在野) 지리학자들이 대간과 정간 그리고 정맥을 이름지은 산경표를 바이블로 삼아 이에 터잡아 기맥, 정맥에서 갈라진 산줄기를 지맥이라 이름 짓고 또 거기서 갈라진 줄기를 분맥, 단맥, 여맥 등으로 명명하였으므로 재조(在朝) 지리학자들이 보면 코웃음을 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산줄기를 찾아 걷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용어를 사용하고 또 사용하는데 있어서 하나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면서 오늘도 그 줄기의 이름을 부르면서 걷고 있습니다. 각설하고 이분들의 분류에 의하면 기맥(岐脈)은 정맥급 정도의 세력을 가진 줄기이지만 정맥으로 분류되지 않은 줄기를 이르는 용어로 산줄기가 100km 이상인 것으로 한강기맥이나 영산기맥, 땅끝기맥 등이 여기에 이름을 올립니다. 이들은 끝까지 강을 따르는 경우(한강기맥)와 특정한 곳을 향하는 경우(땅끝기맥) 그리고 산경표 상 정맥으로 분류되었던 줄기(금북기맥)에 따라 분류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 산줄기가 30km이상급인 그것들에 대하여는 지맥이라는 명칭을 부여하였으며 그 지맥의 이름은 보통 그 산줄기 상의 가장 높은 봉우리 혹은 가장 유명한 봉우리를 우선하여(두류지맥, 명지지맥, 수도지맥) 혹은 고개나 강이름(여수지맥, 장산지맥)을 따라 이름지어졌습니다. 그렇게 되니 30km이하 나머지는 단맥으로 처리하게 된 것입니다.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하여 자신의 생활과 직업에 어떤 도움도 되지 않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우리나라 산줄기에 체계를 세움으로서 학문적 연구의 기틀을 제공하신 분들의 노고에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각설하고 저는 후에 이곳에서 두류지맥을 진행함으로서 위 산줄기 체계를 재차 확인하였음은 물론 그 줄기를 꼭 확인을 하여야 한다는 어떤 당위성을 느끼기 까지 하였던 것입니다. 우선 참고로 두류지맥은 실내고개를 지나 만산으로 진행을 하는 만산단맥을 하나 가지치고 다시 진행하다 백적단맥 하나를 또 장군단맥, 창안단맥 등을 가지 치고 본류는 계속 진행하여 북한강으로 그 맥을 가라 앉히게 됩니다.
복주산이 1.9km 남았다는 표지판을 봅니다. 길 가운데 있는 원형 헬기장도 지나고 삼각형 헬기장도 지납니다. 호젓한 도로를 지나니 좀 더 고도가 높아집니다. 이제 우측으로 잠곡저수지가 보입니다. 철원군 근남면 잠곡리에 위치한 잠곡저수지는 농업용수확보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소형댐인데 근처에서 몰려오는 낚시꾼들로 인해 오염이 될 정도라고 하는 뉴스를 본 기억이 있는 저수지입니다. 이제 대성산은 한참이나 멀어진 반면 철원 평야도 우측 뒤로 보이는데 상해봉이나 광덕산의 탁구공은 한결 눈앞으로 다가 왔습니다.
12:43
복주산(伏主山, 1151.9m)에 도착합니다. 복주산은 옛날 신이 물로 세상을 심판할 때 모든 곳이 물에 잠겼으나 이 산꼭대기는 복주깨(주발 뚜껑이라는 평안도 방언)같은 모습을 드러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군요. 이 복주산에는 헬기장이 설치되어 있고 2등 삼각점(갈말 23, 1983년 재설)이 박혀 있는데 복주산 정상에 관하여는 논란이 있습니다. 진짜 복주산은 이곳에서 400m정도 즉 10분 정도 더 진행을 하면 철원군에서 제작한 정상석을 세워 놓은 봉우리(정상석에는 1152m라고 표기, 등산용 지도에는 1150m라고 표기)라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국립지리원의 국가기준점성과발급시스템에 들어가 확인을 해보면 복주산은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잠곡리 133-1 복주산 정상에 삼각점이 설치되었다는 조서에 "하오터널 터널 관리사무소 아래 300m지점. 군 훈련장으로 들어가는 임도를 타고 고개 정상에서 우측 능선을 따라 이동하면 첫번째 뾰족봉우리 다음 평평한 봉우리.(헬기장 옆 봉우리)"라고 기재되어 있는 것을 보면 삼각점 이 있는 이 봉우리가 복주산이 맞을 것 같습니다. 국토지리원에서 발행한 지도에도 그렇게 표기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40분 정도 쉬면서 점심을 먹고 진행합니다.
이 복주산에서 조금 더 진행을 하면 안전 로프가 있는 암벽지대가 나오고 조심스럽게 위험지대를 벗어나면 잠곡리 일대가 보이는 좁은 봉우리에 닿게 되는데 여기에 복주산 정상석이 있습니다. 이곳이 국립지리원 삼각점 조서에 나와 있는 "뾰족한 봉우리"인 가짜 복주산입니다. 생각건대 분명히 위 조서에도 "뾰족한 봉우리 다음의 평평한 봉우리."라고 기술하고 있음에 비추어 뾰족봉우리는 이 봉우리를 말하는 것으로 이 봉우리가 가짜 복주산입니다.
공터를 지나 로프를 타고 내려오다 보면 헬기장을 하나 다시 만나게 됩니다. 잠곡리저수지가 오른쪽으로 바짝 달라붙어 있고 폐타이어로 만든 흉물스러운 계단을 내려오면 하오현입니다. 이 고개가 광덕면이나 명월리에서 철원군 근남면이나 김화읍으로 오가던 주민들이 이용하던 고개입니다. 고개가 길어 말고개라고도 하는데 지금은 이 아래로 터널이 뚫려 있어 그 463번 도로를 통하여 차량이 지나고 있습니다. 좌측으로 탈출할 수 있는 길을 버리고 다시 산길로 접어들면 벙커가 나오고 그 벙커 위에는 전망이 트인 헬기장이 나옵니다.
그 도로를 버리고 산길을 따라 오르면 바로 벙커가 나온다. 그런 헬기장을 두어 개 지나고 폐타이어 계단을 오르다보면 잡초에 묻혀 있는 삼각점(정상적인 말뚝으로 보이지는 않음) 말뚝만 보이는 헬기장에 도착하게 됩니다. 이곳이 회목봉(1026.6m)입니다. 이곳에는 회목 즉 편백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군요. 부실하게 관리되고 있는 헬기장을 지나는데 트럭소리들이 시끄럽게 주위를 울립니다. 회목현이 바로 앞인 것 같습니다. 회목현 도로에는 '광덕산 천문과학관' 신축공사용 덤프 트럭들이 쉴 새 없이 흙을 퍼나르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왼쪽으로 도로를 따라내려 가면 광덕동으로 내려가는 길이므로 탈출로로 요긴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트럭과 위험스럽게 교행을 하면서 임도를 따라 올라갑니다. 그런데 이 한북정맥 첫 구간을 운행하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화천군이나 철원군 그리고 산림청에서는 한북정맥 등로에 대하여 너무 관심이 없다는 점에 있습니다. 안전시설은 차치하고 하다못해 변변한 이정표라도 몇 개 만들어 설치하였으면 산객들에게는 커다란 도움이 되었을텐데 별 도움 안 되는 군(軍) 이정표를 보고 그것을 믿고 다니라는 것은 너무나 무책임한 것 같습니다.
16:35 - 가지 3.상해단맥 (上海短脈)
어쨌든 광덕산을 향하여 비포장 임도를 오르다 보면 오른쪽으로 너른 헬기장이 나옵니다. 이 지점이 그 동안 따라오던 화천군 사내면과 철원군 근남면에서 근남면을 버리고 철원군 서면을 따라가게 되는 면계가 되는 지점입니다. 곧 이 지점이 삼면봉(三面峰)이라는 말에 다름 아닙니다. 상해단맥으로 이어지는 길은 이 헬기장부터 시작됩니다. 오래된 군(軍) 삼각점이 있는 헬기장에서 10시방향으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가면 뾰족한 봉우리가 두 개 있는 상해봉에 이르게 되고 그 뒤로 멋진 상해단맥이 이어집니다. 저는 정맥을 하고 있으므로 이 상해단맥 등로를 버리고 20여 분 좌측으로 굽은 도로를 따라 진행하면 광덕산기상관측소를 만나게 됩니다. 이 관측소의 둥그런 골프공은 한북정맥의 각 봉우리를 찾을 때 키포인트가 되는 것으로 서쪽으로는 멀리 파주 명학산에서도 동쪽으로는 화천의 해산에서는 물론 이 정맥의 끝인 오두산에서도 이 공이 보이니 이 광덕산을 기준으로 다른 산을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편 아무래도 이 광덕산기상관측소의 마스코트는 강아지 몇 마리입니다. 이 녀석들은 사람이 그리웠는지 낯도 가리지 않고 달려들면서 꼬리를 흔들고 심지어는 자지러지기 까지 합니다. 물 좀 얻어 먹으려 들어가자 직원분은 친절하게도 차까지 마시고 가라고 비록 팩이긴 하지만 녹차와 커피까지 주십니다. 잠시 쉬다가 멋진 광덕산의 그림이 걸려 있는 녹색 철제 팬스를 우측으로 돌아갑니다.
17:10 - 가지 4. 명성지맥(鳴聲枝脈)
물도 마시고 차도 얻어 마시고 널널하게 진행을 하니 바로 나타나는 것이 정상석이 있고 삼각점이 있는 광덕산(1046m)입니다. 이 광덕산 또한 큰 의미가 있는 봉우리입니다. 이 봉우리에서 드디어 경기도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즉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도 만나게 되니 이 지점 또한 철원군 서면과 화펀군 사내면 그리고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이 만나는 곳이므로 이곳도 삼군봉(三郡峰)이라 불러도 조금도 손색이 없는 곳입니다. 더군다나 광덕산은 이곳에서 동쪽으로 흘러가는 줄기가 한북 8정맥 중 가장 북쪽에 있는 명성지맥(鳴聲枝脈))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즉 여기서부터 시작된 명성지맥은 각흘산을 지나 여우봉, 사향산, 관음산, 불무산 그리고 보장산을 지나 영평천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52.2km의 산줄기인 바, 이 지맥 중 최고봉인 명성산의 이름을 붙여 한북명성지맥이라고 일컫습니다. 비록 이 지맥이 명성산을 직접적으로 통과하지는 않지만 명성산 입구를 지나는 지맥 바로 옆에 있고 비록 봉우리는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입구인 삼거리는 명성산의 줄기와 맥을 함께 하므로 명성지맥의 이름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입니다.
좌측 등로를 따라 내리막 길을 걷게 되면 이제부터는 좀 달라진 풍경을 접하게 됩니다. 즉 그동안 그렇게 보고 싶었던 이정목들이 시시각각 나타나 길을 안내해 주므로 이제는 인간 세상에 돌아왔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게 할 정도입니다. 차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광덕고개가 가까워졌음을 알게 됩니다. 중간에 왼쪽으로 표지띠도 날리고 있고 그 방향이 '등산로입구 0.38km라고 표기된 곳도 지나게 되나 정맥 마루금을 타고 있는 저로서는 '광덕고개 0.60km' 방향을 따릅니다. 광덕산을 떠난지 40분 정도만에 광덕고개(644m)에 떨어집니다. 광덕고개에는 강원도를 알리는 '반달곰상'이 서 있고 고갯마루에는 상가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도로가 워낙 굴곡이 심하여 예전에 군 지휘관이 찝차를 타고 갈 때 운전병이 졸 때마다 카라멜 하나 씩을 먹게하여 졸음을 방지하였다고 하여 카라멜고개라고도 불리우던 이곳은 워낙 표고가 높아 비록 광덕산이 1000고지가 넘고 백운산 역시 900고지가 넘는 산이라고 해도 이곳을 들머리로 할 때에는 그다지 힘든 코스도 아니어서 많은 등산객들이 광덕산이나 백운산 방향으로 산에 오를 때에는 이곳을 자주 이용하기도 합니다. 동서울에서 출발하는 사창리행 버스나 사창리에서 나오는 동서울 터미널행 버스도 이곳에서 정차를 하니 참고하시면 될 것입니다.
제 2 구간 : 광덕고개 ~ 도성고개
2009. 9. 27. 06:00
이제 한북정맥에 대하여 맛은 보았으니 정맥에 대한 불안감은 조금 사그러집니다. 조금은 적응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비가 온다는 예보 덕분에 밤새 잠을 설치다가 새벽 5시가 되어 밖에 나가 하늘을 보니 별이 몇 개 보이고 구름이 있기는 하나 먹구름이 아닐 것이라는 짐작이 드는군요. 어제 해 놓은 밥을 챙겨 산정호수 옆에 있는 '할매 참 숯가마(지금은 영업을 하고 있지 않음)'를 나옵니다. 어제 산행은 우려했던 바와는 달리 무난한 산행이어서 정맥에 대한 두려움은 어느 정도 불식시킨 것 같아 오늘 구간은 좀 멀리 노채고개까지 잡았기 때문에 결코 만만한 산행은 아니라 생각하고 서두르게 된 것입니다. 즉 오늘은 '에이원'님의 산행기를 기초로 운행구간을 노채고개까지로 잡고 유사시 도성고개를 탈출로로 잡았습니다.
노채고개. 제가 군복무 시절에는 북면 하판리와 일동면을 잇는 군사용 비상도로로서 일반 차량은 통행이 불가능 했었는데 삼청교육대 친구들이 평탄작업을 많이 하여 놓았고 지금은 지자체에서 관심을 가지고 도로 확포장 공사를 하여 2년전 정도에 그곳을 지날 때 공사가 한창이었으니 지금쯤은 완료가 되어 차량 접근도 용이할 것이라는 판단에서 좀 무리를 할 생각입니다.
06:24
광덕고개의 들머리에는 '백운산 등산로 안내도'가 서 있고 등로는 철계단을 따라 올라가야 하는군요. 등로는 완전히 돌이 바닥을 매우고 있습니다. 표지띠들이 바람에 날리고 이정목은 가끔씩 적당하게 위치해 있어 산객의 마음을 편하게 해 줍니다. 어느 정도 걷노라니 왼쪽으로 큰 줄기가 나타나는군요. 무학봉입니다. 계곡에서는 구름이 피어 오르고 등로 옆으로는 아무래도 이곳이 군사지역인 관계로 참호와 교통호가 많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예전 군인들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반면에 이런 작업으로 인하여 내무생활은 좀 낫지 않았을까요.
등로는 널찍하여 네 명 정도가 횡대로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눠도 가능할 정도입니다. 간혹 등로에 나무 뿌리가 드러나 그것이 나무 계단 역할 을 할 정도인 곳들이 눈에 띄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이런 지역에는 나무 데크와 같은 시설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백운산까지의 등로는 비록 나무가 숲을 이뤄 조망은 제공하지 않더라도 더운 여름날 이곳을 거닐 때에는 햇빛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을 정도입니다. 구멍 뚫린 바위 같은 것도 나타나지만 전체적으로는 아직 육산입니다.
07:28 - 가지 5. 453단맥
백운산(903.1m)에 도착합니다. 광덕고개에서 여기까지 3.4km를 약 한 시간 정도에 진행을 한 것이니 이 등로가 얼마나 편한지 미루어 짐작이 가는 대목입니다. 정상에는 헬기장이 설치되어 있고 삼각점과 함께 포천시에서 세운 정상석이 서 있습니다. 정상석 후면에는 이 지역 포천 출신 문인인 봉래 양사언의 증금옹(贈琴翁)이라는 시가 적혀 있군요. 원래 이 시는 종자산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포천시 창수면 오가리 하천가의 바위에 음각되어 있었던 것인데 지금은 거의 마모되어 해독도 불가능 할 정도라고 하는군요. 예전 학창 시절 고문(古文)시간에 배운 백아(伯牙)와 종자기(鍾子期)에 관한 고사성어인 백아절현(伯牙絶絃)과 지음(知音)이라는 말을 떠올립니다.
우정에 관한 상징적인 사람의 전설이 깃들여져 있군요.
유백아는 춘추시기 촉나라의 저명한 음악가이다. 유백아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천부성이 아주 높았으며 음악을 남달리 좋아하였다. 그는 당시의 유명한 연주가 성연(成連)을 스승으로 모시고 음악을 공부하였다.
3년이 지난뒤 유백아는 당지에서 명성 높은 연주가가 되였지만 예술적으로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할 수 없는 것으로 인하여 고민하였다. 그의 속마음을 꿰뚫어 본 스승 성연은 그에게 “나는 이미 나의 전부의 기예를 자네에게 가르쳤고 자네 또한 잘 소화시켰다. 음악의 감수성과 이해에 있어서는 나 자신도 아직 터득하지 못하고 있다. 나의 스승 방자춘(方子春)은 뛰어난 연주가로서 음악에 대해 독특한 감수성을 지닌 분이다. 그 분은 지금 동해의 한 섬에 살고 있는데 자네를 그 분한테 데리고 가서 계속 가르침을 받도록 하고 싶은데 자네 생각은 어떠한가”고 물었다. 그말을 듣고 유백아는 흥분을 금할 수 없었다.
그들은 일용품과 먹을 것을 충분히 챙겨 가지고 배를 타고 동해를 향해 떠났다. 배가 동해의 봉래산에 이르자 스승 성연이 백아에게 “ 내가 가서 스승님을 모시고 곧 돌아 올테니 자네는 봉래산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게나” 라고 말하고는 배를 몰고 떠났다. 며칠이 지나도 스승이 돌아오지 않자 유백아는 몹시 상심하였다.
외로운 섬에서 매일 같이 바다를 동무삼고 삼림 속을 날아다니는 새들과 대화하노라니 서서히 감정의 변화를 가져오고 심령이 정화되였다. 유백아는 예술의 본질을 진정으로 터득해야만 대를 이어갈 수 있는 걸작을 창작할 수 있다는 이치를 깨닫게 되었다. 후에 유백아는 뛰어난 연주가로 되기는 하였지만 그가 연주하는 곡을 흠상할 줄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유백아가 배를 타고 유람할 때였다. 배를 높은 산과 나란히 저어갈 때 갑자기 큰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배를 산기슭에 멈추고 비가 멈추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주루룩 주루룩 내리는 비소리와 수면에 떨어지는 빗줄기가 조화를 이루어 생생한 풍경으로 한눈에 안겨왔다. 유백아는 거문고를 받쳐 들었다. 한창 거문고를 타던 유백아는 금현이 이상하게 떨림을 느꼈다. 그것은 연주가의 심령의 감응으로서 부근에서 누군가가 그의 연주를 듣고 있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백아는 선창으로 나와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강 언덕 수림가에 종자기라는 나무꾼이 앉아 있었던 것이다.
유백아는 그를 배에 청해왔고 서로 통성명 한 후 유백아는 ”내가 당신을 위해 한곡 연주하려 하는데 어떻습니까?”하고 묻자 종자기는 귀를 가시고 듣겠노라고 답하였다. 유백아가 즉흥으로 “고산(高山)”을 연주하자 종자기는 “얼마나 웅위로운 산인가!”하고 찬탄하였고 “유수(流水)”를 연주하자 종자기는 “얼마나 거세찬 강물인가!” 하고 감탄하였다. 유백아는 놀랍고 흥분되어 종자기에게 말하였다.”이 세상에서 당신만이 나의 마음의 소리를 알아 듣는구려. 당신이야말로 나의 지기네”
그리하여 두 사람은 생사지교를 맺게 되었다고 한다.
유백아는 유람이 끝나면 곧 그를 찾아 보겠노라고 종자기와 약속하였다.백아가 약속대로 종자기를 찾아갔을 때 불행하게도 종자기는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이 소식에 접한 유백아의 비통은 이를데 없었다. 그는 종자기의 묘소에 가서 그를 위해 그리움과 비통한 마음을 담아 한곡 연주한 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나서 가장 아끼던 소중한 거문고를 종자기의 묘 앞에서 박살냈다. 그 이후로 유백아는 거문고와 인연을 끊었고 사람들은 다시는 그가 연주하는 것을 본 적 없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아래 계곡에 있는 '봉래굴'의 유래도 양사언의 호가 '봉래(蓬萊)'와 관계가 있습니다.
한편 김형수 님의 '한국555산행기'를 보면 이 곳을 단순히 903.1봉이라 적고 다만 삼각점이 있는 곳으로 표기하고 있으며 여기서 약 2.1km 정도 남쪽에 위치하여 있고 포천시 등에서 부르고 있는 '도마치봉(948.9m)'을 본래의 백운산으로 적고 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단지 그곳이 이곳에 비해 표고가 높다는 것을 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명에 관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국토지리정보원 발행의 도엽명 갈말 1/50,000 지도를 보면 분명히 이곳을 백운산으로 명기하고 있습니다. 삼각점이 있다고 하여 그 이름을 가지게 되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고 단지 그 봉우리가 주변의 봉우리에 비하여 고도가 높다고 하여 예로부터 내려오던 이름을 가로챌 수는 없다 할 것입니다.
저로서는 확실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어 단언을 할 수는 없지만 오히려 백운산 아래에 있는 마을이 백운동으로 구름과 관련지어 이름지어졌고 도마치봉이라 일컬어지는 948.3봉 아래에 있는 골이름이 도마치계곡이라 불리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이곳 지명들은 포천시에서 부르는 대로 부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같은 맥락으로 보면 화악지맥 상의 계관산을 가평군에서는 주위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고 하여 '큰촛대봉'에 계관산 정상석을 세워 놓는 우(愚)를 범하고 오히려 가평문화원에서 적고 있는 것이나 국립지리정보원에서 표기하고 있는 것에 어긋나게 임의로 표기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 할 것입니다.
즉 산이름은 그 아래 살고 있었던 주민들의 마을이름과 따로 떼어내어서 설명할 수는 없는 것이고 그 전해 내려오는 마을 이름은 조그만 씨족(氏族) 마을의 공동체 속에서 생산되어 애칭되기 시작했음을 볼 때, 그것은 향토문화(鄕土文化)의 원천(源泉)으로 선주민의 숨결을 찾을 수 있는 수단이 되며 나아가 향토사(鄕土史)를 탐구하는데 있어 초석이 됨을 알 수 있다 할 것입니다.
인명(人名)을 짓는 데 고심하듯이 마을 이름을 짓는 데도 뜻 깊은 이름을 지어 우리 후손들에게 정신적인 유산이 될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며 그에 따라 산 이름도 다 의미 있는 그것임을 다시 깨닫게 합니다.
어쨌든 이곳에서 우측으로 난 길을 들면 453봉을 지나 흥룡사를 거쳐 백운동으로 떨어지게 되며 그곳에서 서울행 버스나 사창리행 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정류장이 있습니다. 이정표에는 흥룡사까지 4.14km라고 표기되어 있군요.
자, 다시 삼각봉을 향해 걸음을 옮깁니다. 등로 옆으로는 간간이 나무의자도 만들어져 있어 산객들의 휴식이나 간식을 먹기 위한 쉼터로 긴요하게 쓰일 것 같습니다.
07:52
삼각봉(918m)이라는 정상석이 있는 봉우리에 도착합니다. 고도는 백운산보다 높지만 제공하여 주는 조망이 없어 무명봉으로 지내다 최근에 삼각봉이라는 이름으로나마 성의는 없지만 그래도 이름 하나를 얻게 된 것 같군요. 여기서 가파른 등로를 로프를 잡으며 조심스럽게 내려가자 오른쪽으로 바위가 보이면서 그곳에 오르면 조망이 가능할 것도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조금 위험스럽기는 하지만 그 바위 위에 오르니 진행 방향으로 도마치봉과 그 너머로 신로봉과 가리산까지 보입니다. 그러면서 바로 앞으로는 흥룡봉이 그 뒤 이동 시내 뒷편으로는 사향산이 보이고 그 오른쪽으로는 여우봉, 삼각봉, 명성산 그리고 약사봉 까지 명성지맥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정말 장관입니다.
08:18 - 가지 6. 흥룡단맥 (興龍短脈)
도마치봉입니다. 지도에는 948.5m로 나와 있는데 정상석은 925.1m 로 표기 되어 있군요. 이 봉우리가 도마치봉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데에는 도마치(倒馬峙)라는 고개와 연관이 있는데 이 도마치 고개를 공유하고 있는 포천시와 가평군에서는 각기 다른 전설을 가지고 있다는 게 흥미롭습니다. 즉 포천시에서는,
구정동과 도리평 사이의 깊은 골짜기에 있는 마을. 태봉국왕 궁예가 패하여 도망갈 때 이곳을 경유하게 되었는데, 산길이 너무 험난하여 이곳에서 말을 내려 끌며 갔다고 해서 도마치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라고 적고 있는 반면 가평군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계곡은 마을회관으로부터 북쪽으로 약 4.5㎞지점에 있으며, 적목리 용수목 삼팔교에서 강원도 경계인 도마치 고개까지를 말한다. 심산유곡에서 흘러내리는 도마치 계곡의 하천수는 전국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청정 옥수이다.
이 마을은 6.25를 전후하여 70∼80여 가구가 살고 있었으나 화전정리와 함께 전 마을이 이주하였고, 분교도 있었으나 폐교되어 지금은 옛터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이 계곡에는 대골, 무주채폭포, 용소폭포, 국망봉 등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자태를 뽐내고 있으며, 강원도로 넘는 지방도 363호선의 노선 양측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가을의 정취를 더해주는 듯 하다.
대골(竹谷)은 높은 산에 자생하는 신초(神草) 대나무가 있다하여 대골이라 불리워졌고, 도마치 고개는 옛날 차도가 없을 당시 도보로 가평장을 보기보다는 사창리가 가까워 사창리 장으로 많이 다니면서 혼인도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주민들과 적목리 사람들 사이에 많이 성립되었다고 하여 도와 도의 경계를 왕래하는 고개라는 뜻으로 도마치라 하였다.
이 도마치봉은 우측으로 가지를 하나 치게 되는데 그 가지는 향적봉, 흥룡봉을 거쳐 도평교까지 약 7.8km의 오젓한 마루금을 걷게 되는데 이 마루금은 가리산의 암봉을 보면서 걷는 아주 장쾌한 바위 능선(흥룡단맥)입니다.
도마치봉을 지나자 음용에 부적합할 것 같은 약수터를 지납니다. 그러고는 도마봉에 도착합니다.
08:37 - 가지 7. 화악지맥(華岳枝脈)
이 도마봉(883m)이 가지고 있는 의의 또한 상당합니다. 즉 이곳에서 좌측으로 분기하는 산줄기는 화악산을 거쳐 그 유명한 '몽가북계' 즉 몽덕산, 가덕산, 북배산, 계관산을 지나 보납산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46km의 한북화악지맥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헬기장이 조성되어 있는 이곳은 이제부터 방화선에 조심을 하여야 합니다. 즉 여름철에는 방화선에 잡풀들이 만개하여 진행에 몹시 지장을 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늦가을이나 겨울에는 상당한 마루금 조망을 내어주는 곳이기 때문에 이곳을 찾는 이들은 사철을 가리지 않습니다. 구간 진행을 하면서 왼쪽으로는 화악산이 보이고 뒤로는 광덕산이 그리고 우측으로는 명성지맥이 멋드러지게 보이는 것도 이곳입니다. 멀리 저기 보이는 곳이 신로봉 정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길은 잘 다듬어져 있어 상당히 수월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것은 큰 착각이었군요. 마루금 위로는 제초된 풀이 그대로 널려 있어 내리막길에서 자칫 잘못하면 그대로 미끄러지기 일쑤여서 여간 조심해서 걷지 않으면 되지 않아 오르막은 오르막대로 내리막은 내리막대로 발끝에 힘을 주고 걷다보니 이것이 결국 무릎에 무리를 주는 결과가 되어 결국 목적지까지 가지 못하고 중도 하차하는 원인을 제공하게 되었습니다.
09:05
이정표를 보니 도마봉에서 1.1km를 진행했다고 하는데 28분 정도나 걸렸다고 하는군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는 얘기에 다름 아닙니다. 잠시 후 삼각점을 지납니다. 명백한 등로를 걷다 보면 헬기장도 나오고 방카도 나오고... 양쪽으로 보는 조망은 정말로 괜찮습니다.
10:02 - 가지 8. 가리단맥(加里短脈)
산불이나 산악 사고 시 구조 요청을 하라는 119의 안내판(헬리포트 4)을 봅니다. 이 '헬리포트4(949m)'를 지나노라니 왼쪽 숲길로 들어가는 쪽에 표지띠가 있으나 여전히 방화선은 오르막으로 되어 있어 표지띠를 버리고 오르막을 계속 진행합니다. '새길령 1-4' 표지판이 나오고 토치카 뒤로 달려 있는 표지띠를 따라오르면 신로봉(新路峰) 즉 새길봉(980m)입니다. 그 바위봉을 넘으면 멋진 바위 연봉이 나오고 그 바위 연봉은 월출산의 암봉을 연상시킬 정도로 암릉미의 진수를 보여주는 곳입니다.그런데 국립지리정보원의 지도를 보면 이곳을 신로봉이 아닌 신로령(新路嶺)으로 표기되어 있군요. 이 신로봉을 넘어 가리봉으로 드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즉 조금 위험스럽게 보이기는 하지만 이 신로봉으로 넘어가는 방법과 신로봉 바위 아랫쪽으로 우회하는 방법 등이 그것입니다. 이 루트는 원래 가리산을 통과하여 도평교 다리 앞에 있는 가리산 휴게소 방향으로 가는 등로는 주민들이 장뇌삼을 심어 놓고 철망으로 막아 놓았기 때문에 진행하지 못하고 장암리 방향으로 진행을 하게 됩니다.
자, 다시 신로봉 바로 아래에 있는 국망봉 자연휴양림으로 하산 할 수 있는 갈림길을 지납니다. 국망봉 까지는 2.2km 남았다는 이정목을 만나게 되는 것도 이곳입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마루금을 타고 올라가다보면 조금은 초라하게 나무에 '돌풍봉(990m)'이라고 씌어진 정상목 하나를 보게 됩니다. 돌풍봉이라.. 지도에도 이곳을 안내하는 지명 유래집이나 기타 어떠한 자료에도 돌풍봉에 대해서는 나온 게 없군요. 어쨌든 이 방향에서 국망봉을 바라보면 정말 높게 보이며 어떻게 저기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 한숨부터 나옵니다. 그러나 올라가야 하지요. 여유로운 등로를 올라가다 보니 헬기장이 나오고 땅벌봉(1113m)이라는 해괴한 이름의 봉우리에 올라 잠시 쉬면서 주위를 조망합니다. 뒤를 돌아보니 도마치 고개로 올라가는 75번 국도가 뱀처럼 꾸불텅한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지금까지 지나온 한북정맥 마루금이 광덕산 탁구공까지 보이고 가리산으로 가는 신로봉 암릉의 모습은 더없이 멋드러집니다.
남덕유에서 보는 덕유산의 큰 등줄기를 보는 것 같습니다. 헬기장 두 개와 이정목 하나를 지나니 이동시가지가 우측으로 보니고 그 뒤로는 명성지맥이 길게 늘어져 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광덕산, 각흘산, 명성산, 여우봉, 사향산, 관음산, 불무산....다시 그 우측으로는 화악산 응봉과 중봉 그리고 그 넘어로 이칠봉까지...밥먹기도 적당하여 이른 점심을 먹습니다. 30분 가량 머물다 다시 오르막을 힘겹게 올라갑니다. 15분 정도 오르면 또 헬기장을 만나게 되는데 이제 국망봉은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11:34 국망봉
이곳에서도 장암저수지로 내려 갈 수 있는 길(3.2km)이 나오고 가뿐 숨을 고르며 30m를 오르면 국망봉(1167.2m, 정상석에는 1168.1m로 되어 있음)입니다. 국망봉 정상 역시 정상석과 헬기장이 있으며 갈말 26이 새겨진 2등삼각점도 설치 되어 있습니다.
정상석 뒤에는 포천 출신의 백사 이항복의 시가 적혀져 있습니다. 오성 대감 이항복은 권율 장군의 후손이기도 하여 저와도 인연이 있는 분이군요. 정상은 확 트여져 있어 여기서는 화악지맥 연봉이나 명성지맥 그리고 명지산까지도 한 눈에 들어옵니다. 이 정상에서 서쪽 방향으로 급경사를 따르면 북서릉을 지나 장암저수지로 내려가는 길이 있습니다. 또한 정맥 마루금을 타고
200m 정도를 진행하니 적목리로 내려가는 삼거리가 나오는군요. 적목리를 통과하는 75번 국도는 적목리를 거쳐 익근리 그리고 가평으로 이어지고 도마치 고개를 지나면 사창리로 가는 헌병 3거리가 나오게 됩니다.
11:54 - 가지 10. 995단맥
폐헬기장이 나오고 그 바로 아래로 이동 연곡3거리로 빠지는 삼거리와 만나게 되는군요. 이정목에는 '하산길'이라 표기 되어 있고 이 줄기는 995봉을 지나 475봉을 거쳐 연곡 3거리로 빠지게 되는데 이 등로 옆으로는 사격장이 있어 종종 사격하는 총소리를 듣게 됩니다.
12:04 - 가지 11. 개이빨단맥
산죽을 조금 헤치고 진행을 하면 바로 만나게 되는 정상석이 조금은 낯설은 개이빨산(견치봉, 1102m)입니다. 처음에는 "작명할 이름도 꽤나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후에 이 봉우리 주변을 바라보니 실제 개이빨 같은 모습을 한 모습을 확인을 하고는 "이름이 괜히 지어지는 것이 아니구나."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각설하고 이정표에서 가리키는 방향으로 4km(이정목에는 3km로 표기)정도를 지나면 적목리의 용수목 마을이 나옵니다. 여기서 계속 진행을 하면 깊은 안부로 떨어지고 멀리 밋밋한 봉우리 하나가 보입니다. 민둥산입니다. 민둥산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 억새로 유명한 정선의 민둥산입니다. 이 민둥산도 정선 민둥산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그래도 억새가 조금 바람에 휘날리고 있습니다. 견치봉을 떠난지 40분 정도 되었습니다. 그래도 이 부근의 한북정맥은 봉우리마다 제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많아 산을 혼자 걸어도 외롭거나 힘이 들지 않습니다.
12:45 - 수덕바위 단맥
많지 않은 억새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민둥산(1023m)을 오르면 정상에는 이정표 두 개가 서로 다르게 표기 되어있습니다. 파란색은 가평군에서, 나무 이정표는 포천시에서 설치하였습니다. 그런데 두 이정목이 서로 다른 거리를 나타내고 잇는 것을 보면 기이(?)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군요. 민둥산 정상 부근은 이렇게 억새풀이 밭을 이루고 있어 장관을 이루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겠지만 여름에 이런 곳을 지나기란 여간 고역이 아닙니다. 헬기장이 조성되어 잇는 길 왼쪽으로 이정목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 길로 들면 홈봉을 지나 수덕바위산을 거쳐 거릿내라고도 불리는 적목리 삼거리 버스정류장 앞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여기서 도성고개까지는 약2.5km정도의 거리입니다.
민둥산을 지나게 되면 등로는 방화선입니다. 따라서 여름에 방화선의 잡목이나 억새에 대한 제거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경우 진행이 상당히 힘들어집니다. 가끔 나무 숲으로 들어가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키 작은 나무가 계속되어 별 문제 없습니다. 제가 걸을 때에는 가을과 겨울이어서 방화선은 나무 가지치기 내지는 억새풀도 다 제거가 되어 있어서 편하게 걸을 수 있었는데 다만 억새 줄기 때문에 발이 미끄러워 무릎에 많은 지장이 오더군요. 더욱이 내리막일 경우 더 고통스럽습니다. 정말 고된 내리막이고 어려운 오르막이다. 이정목은 헬기장만 나오면 거리가 잘 맞니는 않지만 반드시 설치되어 있기는 합니다. 도성고개를 200m 앞두고 가파른 내리막길입니다. 2-4(7부능선) 119 구조목을 지나니 저 아래에 안부가 나오고 이정목도 보입니다.
13:44
도성고개에 도착합니다. 광덕고개에서 이곳까지 약 18.8km를 점심시간 포함 7시간 34분 걸렸군요. 이 도성고개에서 가평 방향으로는 논남기를 거쳐 적목리로 하산할 수 있고 포천이라고 씌여진 방향을 따르면 구담사를 거쳐 연곡4리로 진행이 됩니다. 오늘 계획은 노채고개까지 진행히려고 하였으나 무릎에 통증이 와서 구담사 방향으로 하산을 합니다.
3구간
10. 4. 추석 다음날 연휴를 이용하여 한북에 듭니다. 지난 번 시간이 충분함에도 무릎때문에 하산하였던 찝찝했던 기분을 떨치고 오늘은 운악산을 넘어 군 시절에 근무하던 헌병 초소가 있는 서파검문소까지 운행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웁니다. 약 29km에 달하는 장거리 구간이기는 하나 운악산 구간이나 군부대 구간은 예전에 많이 다녀본 낯익은 구간이기 때문에 운행에 그다지 부담이 가지 않기 때문에 별문제 없으리라는 생각에서 입니다.
07:19
연곡4리에 내려 불땅계곡이라는 입석을 보고 지난 번 하산하였던 눈에 익은 길을 오릅니다. 요양원 같은 곳을 지나 계곡으로 들어가는 길과 산으로 올라가는 갈림길이 나오는데 여기서 계곡 길을 버리고 오른쪽 산길을 택합니다. 약 1시간 정도 오르니 드디어 도성고개입니다. 600m정도를 진행하면 강씨봉을 알리는 이정표가 나오고 20분 정도 더 오르면 작은 나무 팻말에 '백호봉'이라 씌어진 봉우리에 오릅니다. 지도에는 812m로 표기되어 있는 곳인데 표지목에는 815m로 기재되어 있군요. 이곳이 백호봉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유래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모를 것 같습니다. 강씨봉으로 이어지는 연봉들이 눈 앞에 펼쳐집니다. 이동면 채석장으로 갈리는 삼거리를 지나니 이제 강씨봉도 300m정도 남았습니다. 멀리 운악산의 바윗덩어리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지점도 여기부터입니다.
08:49
이정표를 하나를 지나니 가평군에서 박아놓은 정상석이 있는 강씨봉(830.2m)입니다. 3등 삼각점(일동 304)이 있는 정상의 이정표는 이제 다음 구간이 오뚝이 고개(2.7km)임을 알려줍니다. 강씨봉은 궁예와 관련한 전설이 있는 곳으로 이렇다할 특징은 없고 다만 여기서는 운악산의 전경을 볼 수 있다는 점에 위안을 갖습니다. 헬기장 하나를 더 만나니 이제는 방화선이 끝나고 풀숲을 헤치고 지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보기 좋은 억새도 이렇게 진행을 방해한다면 반가운 마음도 없습니다. 일동면 화대리 한나무골로 하산할 수 있는 삼거리(이정표에는 '한마무'로 표기 되어 있음)를 지납니다. 이곳은 방화선이 설치되어 있지 않아 진행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다만 가끔씩 조망이 터지는 곳에서 바라 볼 수 있는 곳은 일동 방향 뿐인데 필로스 CC도 보이는군요.
09:47
119 구조 안내판과 삼각점이 있는 한나무봉(768.1m)에 도착합니다. 공식적인 이름이 아니어서 그런지 119구조판에 누군가가 유성매직으로 '한나무봉'이라고 표기하여 놓아서 이곳이 한나무봉인지 알지 그냥 지나치기 십상인 곳입니다. 왼쪽 아래로 군비상도로가 보이며 오뚝이고개도 가까워졌음을 알려줍니다. 풀숲을 헤치고 가파른 내리막을 지나는데 등로는 잠시 소나무 숲 안으로 진행을 하게 되고 그 나무 숲에 들어서니 나무 사이로 비포장도로가 보이며 바위 구축물이 보입니다.
09:54 오뚝이령입니다. 1989. 6. 25. 개통된 이 군비상도로는 5군단에서 축조한 것으로 기념비 뒷면에는 그 당시 군단장 등의 관등성명이 새겨져 있습니다. 비포장도로인 이곳으로 4륜 구동 차량이 일동방향에서 올라오기도 하였고 사발이도 올라와 굉음을 내며 돌아다니기도 하여 조용한 산에 이게 웬 난리인가 싶습니다. 도로 입구에 차단기를 설치하여 이들을 올라오지 못하게 하여야 야생동물들이 그나마 안심하고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동쪽으로 도로를 따라 진행을 하면 가평군 북면 적목리로, 서쪽으로 진행을 하면 일동면 무리울 마을로 하산을 하게 됩니다. 참고로 일동방향으로는 사륜 구동차가 진행을 할 수 있으나 적목리 방향으로는 지난 여름에 도로가 유실되어 통행이 불가합니다.
그리 가파르지는 않지만 큰도로를 버리고 왼쪽의 등로로 달라붙습니다. 그렇게 10분을 힘쓰고 오르자 작은 봉우리에 오르고 다시 30분 정도 더 완만한 마루금을 진행하면 오른쪽 참나무에 누군가 나뭇가지를 얽어매어 마치 평상을 만들어 놓아 그 위에서 잠을 잘 수 있게끔 만들어 놓았고 그 바로 옆에는 '생태보전구역'이라는 비석이 나무말뚝에 둘러쌓여 있습니다.
10:36 - 가지 13. 명지지맥(明智枝脈)
이곳에서 동쪽으로 분기한 산줄기는 귀목봉, 명지산, 매봉, 대금산, 주발봉, 호명산을 거쳐 북한강으로 그 맥을 떨어뜨리는 약 40km의 산줄기로 화악지맥이 가평군을 위에 있다면 명지지맥은 가평군을 아래에서 받치고 있는 형상입니다. 따라서 가평군 군계 산행은 명지지맥과 화악지맥을 잇는 산행이 됩니다.
정맥길은 나무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나무 의자도 보이고 작은 너덜지대를 지나면 또 나무 계단이 나올 정도로 험한 지형입니다. 그러니까 이 줄기와 귀목봉으로 가는 명지지맥 초입 줄기의 계곡이 장재울 계곡으로 이곳이 조종천의 원류가 되어 현리시내를 관통하여 청편 검문소 옆에서 북한강을 만나게 됩니다. 그럴 정도로 이곳은 아직 원시적인 맛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이제 이정표는 남쪽 방향으로는 청계산을 가리킵니다.
11:33
나무 계단을 힘겹게 오르자 삼각점이 파손되어 있는 청계산(849.1m)에 도착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청계산이 몇 개 됩니다. 서울 양재동과 과천 경계에 있는 것(615m), 한강기맥 상의 양평에 있는 것(656m), 충주에 있는 것(402m), 상주 화북에 있는 것(873m, 김형수 저 한국 555산행기, 454쪽) 등이 있는 바, 그렇다면 이 청계산 이 우리나라 청계산 중에서 두 번째로 높은 그것이군요. 귀목봉에서 명지산을 지나 연인산으로 향하는 명지지맥 산줄기가 힘차게 흐르고 있는 모습이 보이고 있습니다. 장관입니다. 올라왔으니 또 내려갑니다. 로프까지 매어 있는 이 내리막을 내려오자마자 우측으로 청계저수지로 내려가는 삼거리에 도착합니다. 출입금지 안내판을 도니 작은 돌탑이 있는 평평한 곳이 나오며 시원한 바람이 붑니다.
11:46
이곳에서는 상판리 마을도 보이고 운악산도 바로 앞으로 보이는 등 전망이 아주 잘 되는 곳이어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합니다. 그런데 카메라가 갑자기 말썽을 일으키며 작동이 되지 않습니다. 난감한 마음에 하는 수없이 잡친 기분을 진정시키고 임시방편으로 휴대폰으로 촬영하기로 합니다. 붉게 물들어 가고 있는 단풍나무도 보면서 가파른 등로를 로프를 잡고 조심스럽게 내려갑니다. 다시 청계저수지 갈림길이 나오고 그 다음부터는 암릉지대입니다. 이곳은 아주 위험한 곳이 많으므로 조금 긴장을 하고 진행합니다. 길매봉(730m)을 지나자 119구조 안내판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안내판에 무슨 글씨가 써 있습니다. 2008. 12. 31.~ 2009. 1. 11.까지 당시 한양공고 산악부였던 홍승기군이 백두대간 연속 종주에 이어 한북정맥도 연속종주를 하면서 이곳을 지나던 중, 적어 놓은 글이군요. '사람과 산' 잡지에서 홍승기군과 일부 구간을 동행 취재한 기사를 본 적이 있기에 상당히 반가왔습니다. 그런데 홍승기군이 마침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 다룬 제 산행기를 보고 댓글까지 달아놓아 君과의 인연을 확인하기도 하였습니다. 얼마전 미국 그랜드캐년의 암벽등반을 하기 위하여 출발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君이 장차 故 박영석 대장에 버금가는 산악인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너른 헬기장을 지나니 알만한 선답자들의 표지띠가 바람에 날리고 차 지나가는 소리가 나면서 이제 노채고개입니다.
14:20
이 노채고개가 가평군 북면과 포천시 일동면을 이어주는데 더 진행을 하여야 하나 카메라가 없이 더 진행한다는 게 별로 의미가 없어 어쩔 수없이 다음 들머리만 확인을 하고는 일동택시를 불러 일동면으로 나가 동서울행 버스에 오릅니다.
4구간
2009. 10. 25. 친구집이 있는 의정부에서 함께 저녁을 먹고 인근 사우나에서 잠을 자고 일동시내에 주차를 한 다음 택시(약 6,00원)를 타고 노채고개로 이동합니다. 오늘은 갑작스러운 카메라 문제 때문에 12.15km만 운행한 짧은 산행이었습니다.
06:19
노채고개에 도착하여 장비를 챙기고 산행을 시작합니다. 가파른 사면은 상당히 미끄러워 몇 번이나 뒤로 밀리곤 하여 초입부터 땀 좀 뺍니다. 일단 마루금으로 오르자 이정목(원통산 1.08km) 하나가 반겨 주고 사위는 아직 어두우나 새벽부터 라운딩을 하는 사람이 있는지 오른쪽 일동레이크 골프장에는 등이 환하게 밝혀 있군요. 아직 날이 밝지는 않았으나 어제보다도 더 가을로 들어 갔는지 새벽 바람이 차갑습니다.
06:50
준 · 희님의 표지띠를 지나니 삼각점이 있고 나무 의자가 하나 있는 원통산(567m)이 나옵니다. 원통산의 정상은 좀 복잡합니다. 이 봉우리에 오르느라 그다지 힘든 것은 아니었는데 여기에는 정상석, 표지판 그리고 대구에서 나무 팻말까지 제작하여 가지고 올라와 부착해 놓은 오지산행 전문이신 분의 정상목까지 ....
원통산에서 내려오면서 정면으로 운악산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며 거리를 좁혀옵니다. 등로는 넓고 명백합니다. 원통산에서 20분 정도 진행하니 이정목이 있는
구(舊)노채고개에 도착합니다. 이곳이 포천의 용화사 쪽 길과 반대방향인 가평군 북면 387번 지방도로로 내려가는 갈림길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신작로 격인 387번 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포천 주민들과 가평 북면 주민들은 이 고개를 통하여 왕래를 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한편 이 구간에 있는 이정목은 일정한 간격으로 위치해 있는데 그 이정목에 나오는 거리 숫자는 신뢰하지 않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거리가 들쭉날쭉합니다. 5분에 620m를 진행했다고 하니...안부에 작은 케른(cairn)이 있는 곳을 지나는데 구름이 더 짙어지고 운악산이 1.2km 남았다는 표지목을 지나게 됩니다. 낙엽이 두툼하게 깔려 있고 가끔씩 조망이 터지는 곳이 나오기도 하는데 정면으로는 암봉으로 이루어진 운악산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08:20 - 가지 14. 한북금주단맥 (漢北金珠短脈)
그런데 우측으로 표지띠 몇 장이 날리고 있고 그 등로는 바위 몇 개가 있는 줄기로 내려 가는데 이 줄기는 아주 복잡하고 난해한 단맥으로 강구동을 거쳐 베어크리크골프틀럽을 관통하여 금주산 옆의 곰넘이봉, 관모봉을 지나 영평천으로 맥을 다하는 약 28.3km의 산줄기입니다.
09:03
이 갈림길을 지나자 이제는 바윗덩어리들이 진행을 막습니다. 바로 우측의 바위로 달라붙으면 암봉 구간을 지나게 되는데 로프가 있지 않으면 아주 위험하므로 직진을 하여 아래 낭떠러지 같은 안부길로 들어서면 다시 가파른 사면으로 올라 이 암봉 지대를 좀 우회하여 진행하게 됩니다. 표지띠가 어지럽게 날리고 있으니 길을 잃을 염려도 없으며 30여분 진행하여 다시 암봉길로 넘어온 길과 만나게 됩니다. 그 갈림길에는 위험구간이므로 출입을 금지한다는 취지의 팻말('폐쇄 등산로 없음')이 줄에 걸려 있군요. 뒤이어 나타나는 애기봉을 지나니 아마 1967. 12. 15. 이 구간을 산행 중 사망한 것 같은 산악인 고 김영규의 추모패가 지나는 산객의 마음을 짠하게 만드는군요. 오른쪽으로 가파른 내리막 길이 하나 나오는군요. 이 길이 운악사로 내려가는 길인데 운악사 뒤로는 멋진 폭포가 있고 그 사찰에는 매주 일요일 산객들에게 국수로 점심 공양을 제공하여 주는데 지금도 게속되고 있ㄴ느지는 모르겠습니다. 궁예성터를 지납니다. 철원 부근 그러니까 명성산이나 고대산 그리고 이곳 운악산까지는 궁예와 관련한 이름들이 거론되고 대간의 상주지방을 지날 때면 견훤에 관한 이름이 많이 거론되는데 정작 승자인 왕건과 관련하여 거론되는 이름을 아직은 보지 못한 것 같군요.
09:53
그 성터를 지나자 바로 운악산 서봉(935.5m)에 도달하게 됩니다. 망경대 방향에서 올라오는 산객들과 만나게 되기 시작합니다. 잠시 망경대 방향 그러니까 서쪽으로 이동을 하여 조망을 즐깁니다. 한북정맥의 수원산 방향이나 수원산에서 갈라지는 천주단맥 그리고 왼쪽으로는 애기봉을 너머 수락지맥에서 분기한 축령산이니 서리산 등이 한 눈에 다 들어옵니다. 과연 망경대로군요. 여기서 5분 거리의 동봉으로 이동을 합니다.
10:00 - 가지 18. 토봉단맥
운악산 동봉에서 동쪽으로 좌틀을 하면 병풍바위를 보면서 정면으로는 명지지맥의 힘찬 줄기를 만나게 됩니다. 제가 군생활을 할 때 유격훈련을 받기도 한 이곳은 대단한 암릉미를 감상할 수 있는 구간이기도 합니다. 암벽을 몇 차례 오르내리면 이곳의 별미인 순두부촌에 닿게 되는데 마루금은 바로 조종천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예전에는 없던 나무계단을 내려가니 현등사 사하촌과 명지지맥을 조망할 수 있는 데크에서 촬영에 여념이 없는 산객들을 보게 됩니다. 그 분들의 촬영하는 대산을 대강 같은 방향으로 바라보니 버섯모양의 바위 입니다. 옆의 안내판을 보니 이곳이 남근석 촬영장소라고 하는군요. 우리나라 바위에는 남근바위와 촛대바위가 유달리 많은 것 같습니다. 우측 마루금으로 오르면 다시 천주단맥이 모이고 그 뒤로는 또 명성지맥도 보입니다. 정면으로 아기봉 마루금을 조망하면서 너른 헬기장을 지납니다.
10:19
현등사 갈림길에 도착합니다. 이른바 절고개라는 곳입니다. 보통은 왼쪽으로 진행을 하여 현등사를 거쳐 사하촌 두부집에서 모두부에 막걸리 몇 잔 먹고 귀경을 하게 됩니다. 상판리로 하산할 수 있는 이곳을 지나 우측 사면을 끼고 오릅니다. 그런데 왼쪽으로 등로가 하나 더 만들어지고 있군요.
즉 운악산에서 절골 고개를 지나 한북정맥 루트로 오르다 보면 첫봉우리(835m)에 오르게 되는데 그 봉우리에서 마루금을 타고 진행하는 길이 만들어 진 것입니다.
샛길은 통행을 금지하는 게 맞을 것 같으나 이렇게 좋은 마루금을 등로로 개척해 놓은 가평군은 상당히 적극적인 행정을 펼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옆의 마루금이 새로 만들어지는 등로입니다. 사실은 원래 있던 등로에 안전시설을 추가한다는 것으로 이해를 합니다.
정면과 우측으로 조망을 확실하게 하면서 진행을 합니다. 가끔 좌우로 경사도가 심한 바위 지역이 나오고 그 바위 지역을 우회하는 등로의 흙이 부스러지기 쉬운 알갱이로 되어 있어 자칫하면 미끄러져 큰 부상을 입을 가능성도 있는 곳이니 안전사고에 유의를 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위험지역을 통과하니 왼쪽 뒤로 흉물스러운 모습의 채석장이 보입니다. 모(某)산업에서 시행하는 화강암 채석장인데 군생활을 이곳에서 마치고 운악산을 그렇게 자주 와보았음에도 이런 채석장이 있고 그 채석장이 운악산의 수려함을 갉아먹고 있었다는 것을 예습을 하면서 알게 되었고 오늘 실제 그 광경을 목격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라에서 여러 사업을 하려면 돌도 필요하고 나무도 배어야 하겠지만 그 모든 것을 뒷수습까지 종합적으로 계획된 사업이기를 기대합니다. 참고로 우측으로 보이는 천주 단맥의 천주산 뒤에는 아트벨리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은 원래 채석장이었는데 그 채석장이 용도를 다 한 다음 흉측한 모습을 보기 좋게 관광자원으로 꾸몄다고 하는데 사진으로 볼 때는 잘 만들어진 것도 같았습니다. 우측으로 대원사로 하산할 수 있는 철암재를 지납니다. 그곳도 아주 경사도가 심합니다. 전망 좋은 헬기장(11:05)에 올라 주위를 조망합니다. 뒤로 보이는 저 채석장 뒤로 안전한 등로가 생기고 있으니 운악을 찾으시는 분들에게는 새로운 길을 걷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는군요.
11:18 - 가지 19. 아기단맥
한북정맥은 여기서 우측 가파른 내리막으로 내려서야 하는데 직진을 하는 루트도 있습니다. 바위를 내려서면 조금은 희미한 등로를 따라가게 되고 희미한 표지띠 두어 개만 보일 뿐 별다른 표지판도 없는 이 루트는 아기봉(769.1m)을 거쳐 호봉을 지나 현리 시내 뒤를 거쳐 연하천으로 그 맥을 떨어뜨리는 줄기가 됩니다.
급경사길을 따라 정맥 마루금을 내려갑니다. 원형 헬기장을 바로 만나게 되고 이정목을 만나게 되는데 뜻하지 않게 한북정맥 안내판까지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봉수리에서 올라오는 정혜사 방향으로 진행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고 이정목도 많으나 군부대가 나오면 정맥길은 부대 철조망을 우측에서 진행을 하여야 합니다. 철조망을 따릅니다. 그렇게 진행을 하면 부대 담 옆을 지나 너른 도로가 나오고 그러고는 47번 국도가 나옵니다. 여기서 바로 도로를 횡단하여야 마루금이나 그렇게 교통을 방해하면 안 되므로 부득이 지하통로를 이용하기 위하여 좌틀하여 47번 국도(구도로)를 만나 부대를 따라 진행을 하면 부대 앞에서 지하도로를 거쳐 건너편 길로 들어가 다시 마루금을 확인하게 됩니다. 큰넉고개까지 진행을 하려 하였는데 갑작스런 변수가 발생을 하여 여기서 산행을 접고 봉수리 버스 정류장에서 13:15 일동행 버스를 타고 차량을 회수하기 위하여 일동으로 갑니다.
제5구간
2009. 11. 14. 토요일인데도 오전에 상담을 원하는 의뢰인들과 만나느라 12시가 넘어서 사무실에서 나옵니다. 평소 같으면 다음날로 미룰 산행이지만 오늘은 구간이 짧은 고로 늦은 오후라도 충분히 가능한 거리 임을 감안하여 산행에 나서게 된 것입니다. 차는 포천시 내촌면 시내의 적당한 곳에 주차하고 내촌에서 버스를 타고 봉수리로 이동하여 봉수리~큰넓고개 구간을 마친 다음 큰넓고개에서 버스나 택시로 내촌으로 가서 차를 회수하면 될 것 같습니다. 내촌에 내리니 13:50. 마침 14:00에 봉수리를 경우 일동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고 하는군요. 아마 지난 번 봉수리에서 14:15에 탔던 그 차 같고, 이번에는 내촌에서 그 버스를 타고 봉수리까지 이동을 하게 되니 시간상으로 묘한 일치감을 느껴봅니다. 역시 버스는 14:15 봉수리에 도착한다.
14:35
간단한 산행 준비를 하고 지하 통로 부대 앞에 도착하여 산행을 시작합니다. 요란하게 개(진돗개 백구인 것 같은데 상당히 종자가 좋은 것 같았다.) 짖는 소리를 뒤로하고 47번 신국도를 만드는 바람에 끊긴 마루금 흔적을 보며 표지띠를 따라 산으로 들어갑니다. 숲길은 이내 부대 철조망 옆으로 안내를 하고 부대 철조망을 따라 앞의 작은 봉우리를 보며 힘을 낸다. 이정목은 명덕3거리를 가리킵니다. 왼쪽으로는 운악산이 이따금씩 보이는데 아직 낙엽이 완전히 지지 않아서인지 조망이 그리 좋지만은 않습니다. 역시 이곳 이정목도 믿을 게 못 됩니다. 920m를 6분만에 왔다고 하니... 어차피 산에서의 이정표의 역할은 방향만이라도 정확하게 가르쳐 주는 것으로 족하지 거리까지 요구하는 것은 좀 무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등로 상에 있는 조그만 비둘기집 같은 것을 만나게 됩니다. 비상구급약 통인데 오래전에 이곳을 지나던 분이 음료수를 하나 넣어두었다고 하셨는데 제가 지날 ㄸ때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를 않습니다. 부대 철조망도 끝나고 멀리 봉수리 마을이 보이는군요. 예전에 군대생활을 하던 사람들의 기억을 더듬으면 항상 부대 옆에는 조그만 가게가 있어서 그 가게를 운영하는 할머니나 아주머니와 고참 병사와는 절친한 관계를 유지하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일석점호가 끝난 다음에 졸병을 시켜서 담 너머로 소리를 지르면 술과 안주를 보내주었고 그 술값 등은 외상 장부에 기록이 되어 휴가를 갔다 오면 그 외상 값 갚는 것이 상례였었지요. 또한 예하부대에서 사단이나 다른 부대에 볼 일을 보러 갈 경우 자신의 몫인 1종(쌀)을 가지고 가서 그 부대에 주고 얻어먹거나 장기 출장인 경우에는 ‘일보변경(?)’을 하는 행정적인 절차를 밟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군 생활을 맹호부대에서 행정병으로 근무하였던 저는, 졸병 시절 봉수리에 있는 부대로 볼 일을 보러갈 때 저의 사수는 항상 1종 계원으로부터 상당한 양 이상의 쌀을 가지고 부대를 나선 다음 봉수리에 있는 부대에서 일찌감치 볼 일을 본 다음 익히 알고 지내던 부대 옆의 가게로 가서 쌀을 주고 점심을 부탁하면 기름진 사제 쌀밥과 돼지고기 김치 찌개에 소주까지 마시고 어느 정도 취기가 돌면 따뜻한 방에서 낮잠 한숨을 자고 저녁 시간에 맞춰 귀대를 하였던 몇 번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군요. 그 동네를 멀리 길 건너 산에서 바라보니 옛 감흥에 잠시 젖는 것 같습니다. 방카봉에 오릅니다. 군사지역이어서 군 시설물이 상당히 많습니다. 북한군 복장을 한 마네킹이 산객을 응시하기도 하고, 초소도 보이고...또 잘못된 이정표는 명덕삼거리까지 0.06km 즉 60m 남았다고 하니... 0.6km의 오기라고 보고 웃으며 넘깁니다. 여기서 마루금은 부대 철조망 안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지금부터는 온전한 마루금이 나닌 약간은 변형된 정맥 마루금을 타야 합니다. 당연히 그동나 걷던 가평군과 포천시의 시계(市界)는 여기서 끝나고 마루금은 포천시 내촌면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한북정맥에서 갈라지는 한북천마지맥의 시발점도 여기여야 하지만 우리나라가 처해 있는 현실 때문에 펀마지맥 산줄기가 갈리지는 시점도 바뀌어야 하는군요.
15:43 - 가지 20. 천마지맥(天摩枝脈)
명덕삼거리에 도착합니다. 실은 사거리인 이곳에서 정맥 마루금은 대각선 반향으로 바로 산으로 달라붙어야 하는데 왼쪽으로 등로에도 표지띠가 몇 개 날리고 있습니다. 기술한 바와 같이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이곳이 한북정맥에서 갈라지는 한북천마지맥이 되며 이 산줄기는 주금산, 철마산 천마산을 지나 운길산 삼거리에서 예봉산을 거쳐 두물머리로 진행이 됩니다.
축대를 차고 바로 산길로 붙습니다. 왼쪽 민가에서 개 짖는 소리가 무척이나 요란하게 그리고 오래도록 들립니다. 개농장인데 개가 상당히 많군요. 여름에는 이곳을 지날 때 악취 때문에 고생 좀 한다고 하는데 저는 예외군요. 편안한 등로를 따라 오르면서 땀 좀 냅니다. 30분 정도 그렇게 오르니 이정목을 만나고 부대 철조망 옆에 도착하게 됩니다.
16:14 - 가지 21. 한북천주단맥(漢北天柱短脈)
부대 우측으로는 헬기장이 있고 그 헬기장에는 삼각점도 설치되어 있으며 이곳이 수원산 정상으로 여기서부터 천주단맥이 시작되는데 이 줄기는 솔재, 천주산을 지나 명덕천으로 잠기게 됩니다.
다시 왔던 데크를 되돌아가 남진을 합니다. 이 수원산(水源山)은 구리를 통과하여 왕숙천이 되는 물의 수원(水源)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왕숙천은 이성계가 상왕 시절 며칠 머물었던 동네 옆을 흐르던 강이어서 왕숙(王宿)이라는 말이 생겼다고 하는군요. 이 수원산에서 화현면을 버리고 군내면으로 잠시 접어 들다가 내촌면과 가산면의 경계를 걷게 됩니다. 온전한 포천시로 접어들게 된 것입니다. 갈림길에 도착하는데 제가 마루금 상에 있음에도 벌써 어두워지기 시작합니다. 밋밋한 봉우리를 지나 바로 옆에 있는 헬기장을 지나는데 저는 산행을 하면서 이런 폐헬기장을 숱하게 보아왔는데 시행자는 그 필요성을 주창하며 많은 장비와 돈을 투여했을 공사였을진대 이제는 효용가치를 잃어서인지 아니면 관리 소홀에서인지 이렇게 잡목만 가득 차 있는 것을 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16:42
약수터 정상입니다. 약수터가 어딘가에 가 있어서 약수터인지 그 이름의 출처를 모르겠군요. 여기서 또 이정표 하나를 지나는데 여기서 삼각점(585.5m)을 확인합니다. 포천 방향으로 석양이 지면서 구름에 숨은 햇빛이 이채롭습니다. 낙엽송과 잣나무 등 침엽수가 군락을 이룬 숲을 지납니다. 갑자기 등로가 편해진 모습입니다. 이제는 기(旗)가 훼손된 두 번째 깃대가 꽂혀 잇는 봉우리를 지나고 다시 침엽수림을 편하게 자나는데 이제는 랜턴을 켜야 할 정도로 어두워집니다. 국사봉도 이제는 많이 가까워졌습니다. 드디어 송전철탑(#58)을 지나게 됩니다. 육안으로는 내촌 시내의 불빛이 보이는데 사진으로는 제대로 잡히지 않습니다. 송전철탑 옆에는 누군가가 불을 피운 흔적이 있는데 제 가슴이 섬뜩해집니다. 누군가 친절하게 만들어 놓은 간이 나무의자 하나를 지나니 이제는 시들은 억새가 몇 개 보이는 봉우리를 만납니다.
18:06
작은 정상석이 있는 국사봉(547m)인데 여기도 대구에서 오신 분이 나무로 정상팻말을 만들어 부착해주는 수고를 하여 주셨군요. 국사봉에서는 우틀합니다. 급경사를 따라 진행하게 됩니다. 국사봉에서 오른쪽 길로 들어오니 급한 내리막이 나오고 이정표가 산행이 거의 마무리 되어 가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왼쪽으로 시끄럽게 기계음이 들리고 갑자기 등로 왼쪽으로 원형 철조망이 설치 되어 있습니다. 대낮 같이 밝은 조명 하래에서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는 곳은 또 채석장입니다. 포천에는 참 채석장이 많습니다. 그 덕분(?)에 왕방산에서 갈라진 덕&단맥의 금화봉은 이제 자취가 사라졌을 정도로 찾는 이로 하여금 아쉬움을 주고 있는 형편입니다.
포천시가 155억 원을 들여 신북면 기지리 14만 743㎡에 조성한 '포천아트밸리'는 2009년 10월 개장했다. 병풍처럼 둘러싸인 절벽과 채석과정에서 만들어진 7400㎡ 의 인공호수가 어우러져 비경을 이룬다. 야외공연장 2곳과 이벤트 광장, 호수의 비경을 감상할 수 있는 산책로와 전망데크도 설치돼 있다. 특히 매표소에서 전시관까지 420m 주 보행로에는 50명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는 친환경 모노레일이 운행되고 있다. 아트센터에서는 각종 거리·무대공연은 물론 전시행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연중무휴로 펼쳐지고 있다. - 경향신문, 이상호 기자
산객들의 추락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이 원형 철조망 아래로는 수십 길이 넘을 정도의 절벽입니다. 채석장을 지나면 바로 그 유명한 육사생도 참전 기념비가 나옵니다(18:52). 이제 포장도로를 건너 큰넉고개로 진행을 하여야 하는데 오늘 저녁 약속으로 오늘은 사거리로 나가 산행을 마감하고 내촌택시를 불러 주차하여 놓은 곳으로 이동을 하여 친구들이 기다리는 의정부로 갑니다.
제6구간
2009. 10. 24.
오랜만에 이어가는 정맥산행입니다. 원래 지난 구간인 노채고개부터 마루금을 이어가야 하였으나 오늘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유감이지만 한 구간을 뛰어 큰넉고개(큰넙고개, 큰넓고개 등 여러가지 이름이 혼용됩니다.) 구간부터 시작하기로 합니다.
그런데 이곳의 한자 표기가 大廣峴으로 되어 있고 그 뜻이 이 고개에서 바라봤을 때 내촌면 진목리의 지형이 '크고 넓은 동네'에서 유래하였다는 설도 있으므로 '큰넓고개' 혹은 큰넙고개가 맞지 않을까 싶군요. 실제 진목리에는 지금도 '큰넓고개말'이라는 동네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고갯마루에 있는 현대오일뱅크 뒤로 마루금을 따릅니다.
07:57
표지띠 여러 개가 바람에 날리고 있습니다. 제 것도 하나 정성스레 매어둡니다. 길 건너 GS주유소 뒤로 한북정맥 마루금이 보이며 그 뒤로 해가 떠오르고 있습니다. 서리보다는 아직은 이슬인, 만추라기보다는 아직은 중추인 가을 아침 풀숲을 헤치며 오릅니다. 바지가 금방 촉촉해집니다. 차광막을 해놓은 방카를 지나 무덤 뒤로 나 있는 마루금을 따라 다시 풀숲으로 들어갑니다. 등로는 솔잎이 두덮게 깔아주어 푹신하고 넉넉합니다. 첫 이정목을 지나는데 이 구간도 이정표 산의 거리는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오늘 이 구간은 많은 무덤들을 만나야 하는 구간입니다. 산행을 시작한지 20분 정도(08:16)가 되자 민가가 나오며 이정목(죽엽산 3.38km)을 만납니다. 여기가 작은넉고개입니다. 그러니까 아까 큰넉고개는 신작로가 생기면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사실은 이곳이 내촌면 지목리 주민들과 가사면 우금리 주민들이 왕래를 하던 통로로 사용되던 '넉고개'라는 것을 알 수 있군요. 고추 비닐하우스에서 나오시던 할머니가 이른 아침에 산에서 내려오는 저를 보고 놀라시는군요. 예전 같았으면 산객들은 간첩신고 많이 당했을 것 같습니다. 인사를 드리고 전붓대 옆 등로를 따라 진행합니다. 어려움 없는 등로입니다. 오르막이나 내리막이나...아는 분들의 표지띠를 만나는 게 그나마 심심함을 덜어주는 것 같습니다. 봉우리를 오르다 보면 여지없이 방카를 보게 됩니다. 방카의 환기용 굴뚝도 자주 보이고 가끔 만나는 바위 옆으로 단풍나무들이 자기의 색깔을 되찾은 듯 너무 곱습니다. 송전철탑이 나오는 것을 보니 이제부터는 소홀읍으로 접어드는 것 같습니다.
09:15
입산통제 경고판이 나옵니다. 자세히 읽어보니 여기서부터는 광릉 임업시험림 지역인가 봅니다. 사실 이런 안내판만 보면 식상해지는 기분을 어쩔 수 없긴 하지만 다른 짓은 하지 않고 조용히 답사만 하는 것이니 너무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말아달라는 말을 속으로 하면서 조심스럽게 줄을 넘어섭니다. 사실 이곳이라고 해서 나무가 별다를 것은 없지만 그래도 관리가 잘 되어서인지 나무가 곧고 가지런하며 길 또한 잘 나 있습니다. 그렇게 10여 분을 걷자 삼각점 같은 것이 나오는군요. 이것은 '국토지리정보원'에서 제작한 것이 아니라 '국립건설연구소'에서 제작한 것이군요. 자료를 찾아보니 대한제국 시대의 양지아문(量地衙門)에서 비롯된 우리나라 근대 측량 및 지도 제작 업무의 고리가 국립건설연구소를 거쳐 국립지리원, 국토지리정보원으로 연결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현대 측량 기술이 월등하다 하더라도 변변한 도구 없이 우리나라를 그린 고산자의 신기한 초능력은 마루금을 밟으면 밟을수록 감탄을 더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말이지 아름다운 풍광에 취하여 마냥 걷습니다. 누렇고 또 푸르고 또 언떤 것은 붉고....하여간 총천연색입니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폐헬기장을 지나자 완만한 오름길이 나옵니다.
09:40
이곳이 죽엽산(610m) 혹은 주엽산이군요. 정상석은 물론 변변한 안내판 하나 없이 표지띠 몇 장만이 날리고 있군요. 굵직굵직한 송림지대가 임도가 나올 때까지 계속됩니다. 숲속에서도 간간이 마명리 방향이 조망이 되기는 하는군요. 송전철탑(#115)을 지나자 사유지 출입금지경고 안내지를 코팅한 것이 보입니다. #34, #117 철탑을 지나자 홍익농장 안내판이 나옵니다. 갑자기 길이 가파라지고 10:27 장승이 서 있고 포장도로에 있는 비득재에 도착합니다. 고모리로 통하는 이 고개는 긴고개가 비둘기(鳩)가 나르는 형상이라 하여 구현(鳩峴)이라 부르던 것을 우리말로 바꾼 것이 음운변화를 일으켜 비득재가 된 것이라 하는군요.
10:42
찜질방이 있고 식당이 있는 비득재에서 들머리로 들어서자마자 또 '홍익농장' 안내판이 나옵니다. 갑자기 너덜이 나오고 이정표 하나를 지나자 무인레이더기지가 있는 노고산(386m)이 나옵니다. 고모리산성에 대한 안내문을 읽고 덩굴이 터널을 만들어 놓은 멋들어진 곳을 지나자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내리막길로 내려섭니다. 곧 만나는 이정목은 이곳이 고모리와 이곡리의 갈림길임을 알려주고 아주 편안하게 진행되는 등로에 별반 운동시설은 없이 역기와 훌라후프가 있는 쉼터를 지나게 됩니다. 천도교 종법사의 제법 호화로운 묘지를 지나게 되고 이 묘를 시작으로 공원묘지가 시작됩니다.
11:21
등로는 왼쪽으로 멀리 보면 봉우리에 외롭게 높이 솟아 있는 소나무가 있는 군초소가 보이는데 그곳을 바라보고 걸으면 됩니다. 흐름도 그렇습니다. 초소 왼쪽으로 마루금이 이어지는데 지루하리만큼 긴 철조망과의 동행입니다. 부대 후문이 나오자 철조망이 올라가니 저도 따라서 올라가야 하는데 이곳이 무봉리로 이곳에서 시작되는 물줄기가 중랑천을 이루게 된다고 합니다. 묘지 몇 기를 지나니 바로 아래 차소리가 나며 98번 도로인 다름고개(11:55)입니다. 이곳은 택시기사들에게 삐노콜레 앞이라고 하여야 알아듣는다고 합니다. 여기서 40분 정도 쉬면서 점심을 먹습니다.
12:48
그런데 여기서 들머리가 불분명한데 어차피 마루금을 이어가는 것으로 쉽게 생각하여 고갯마루를 찾아보면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무조건 축석령 방향을 바라보면 고갯마루의 왼쪽으로 표지띠가 몇 개 날리는 것이 보이는군요. 오른쪽으로는 나무 농장이 있고 철조망이 쳐져 있습니다. 길은 여전히 양호합니다. 왼쪽으로 밭이 보이고 민가도 몇 채 보입니다.
12:55 - 가지 21. 한북수락지맥 (漢北水落枝脈)
너른 길을 따라 직진을 하면 정면으로는 골짜기 같은 것이 보이고 왼쪽으로는 너른 등로가 보입니다. 이 왼쪽 길로도 표지띠가 여러 장 날리고 있는데 여기서부터 의정부시가 시작되며 이 길이 용암산, 수락산, 불암산을 거쳐 용마산을 지나 아차산을 마지막으로 한강으로 들어가는 약38km의 산줄기입니다.
저는 우측으로 약간은 희미하기도 한 줄기로 들어섭니다. 마루금은 의정부시와 포천시를 구분하는 시계(市界)가 됩니다. 방카 위로 굴뚝이 잇는 토치카를 지나니 평평한 도로가 나오고 차소리가 싞럽게 나오며 오른쪽으로 모텔 간판이 보입니다. 그린벨트 안내판을 보면서 귀락터널 위로 진행(13:12)을 하면 지나가던 차량 운전자들이 한 번 더 쳐다보면서 갑니다. 길이 희미한 정맥길을 표지띠를 따라 감각적으로 이동을 하면 축석령으로 내려서게 됩니다.
13:25
축석령은 교통량이 많으므로 조심스럽게 길을 지나 횡단보도를 이용하여 길을 건넌야 합니다.
포천시 어룡리에 오백주라는 벼슬살이를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벼슬살이 중에 부친이 병환으로 위급하다는 급보를 받고 이곳 고개를 넘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 마침 맹호(猛虎)가 앞을 가로막으며 덤비려 하자 이 선비는 부친의 급환(急患)으로 가는 효(孝)의 길을 가로막는 까닭이 무어냐고 일갈(一喝)하자 호랑이는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집에는 무사히 도착하였으나 산삼(山蔘)과 석청(石淸)이 있어야만 한다기에 이 선비는 산 속을 헤메고 있던 중이었는데 전일의 호랑이가 나타나서 등에 타라는 시늉을 하더라는 것이다.선비는 호랑이 등에 탔더니 이곳에 선비를 내려 놓았다. 그래서 선비는 이 근처에서 산삼을 구할 수가 있었으며 이제 다시 석청을 구하고자 할 때 마침 벌 한 마리가 안내 하거늘 그 벌을 따라가 바위틈에서 또 석청을 구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그래서 이 고개를 석청을 얻었다고 해서 축석령(祝石嶺)이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슈퍼가 있어 캔맥주를 하나 사서 갈증을 해소합니다. 역시 정맥길은 대간과는 달리 편안한 면도 있음을 확인합니다. 축석교회 마당을 통과합니다. 교회마당에 까지 정맥 표지띠가 날리고 있는 것을 보고 혼자 픽하고 웃음을 지어봅니다. 여기서는 직진을 하지 말고 우측으로 표지띠를 따라 숲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13:48 - 가지 22. 한국왕방지맥(漢北王方枝脈)
이정표가 나오며 갈림길이 나옵니다. 우측으로 가면 어하고개 왼쪽으로 가면 탑고개라고 합니다. 즉 왕방지맥은 우측으로 가야 하고 정맥길은 좌을을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왕방지맥은 우측으로 진행을 하여 칠봉산, 해룡산, 왕방산을 거쳐 개미산을 넘어 영평천으로 맥을 가라앉히는 약38km의 줄기입니다. 좌틀하면 바로 삼각점이 있는 천보산 3보루 헬기장이 나오고 우측으로는 고읍신도시가 보이며 그 뒤로 불국산과 임꺽정봉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바위 구간을 지나니 바로 백석이고개가 나옵니다. 백석이고개가 갖는 의의 또한 큽니다. 지금부터는 등로 오른편으로는 포천시 소흘읍을 떠나 양주시 삼송동으로 진입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백석이고개는 포펀시, 양주시 그리고 의정부시가 갈리는 삼시봉(三市峰)이 되는 곳입니다.
14:31 - 가지23. 한북천보단맥 (漢北天寶短脈)
아주 매끄러운 길이 나오더니 우측으로 철조망이 나타나고 표지띠 몇 개가 달려 있음을 보게 됩니다. 지금은 천보산 방향으로 더 진행을 하면 그곳에 크게 한북정맥 길이라고 표시되어 있으나 에나 지금이나 거의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어쨌든 계속직진을 하면 천보산을 지나 의정부천으로 맥을 다하게 됩니다.
저는 조심스럽게 철조망을 넘습니다. 골프장 측에서 그랬는지 뽑혀진 이정표 흔적을 발견합니다. 이곳이 마루금이 옳다는 반증에 다름 아니군요. 호젓하게 진행되던 마루금이 갑자기 고도를 낮추면서 바로 골프장 필드로 떨어집니다. 골프에 열중하던 사람들이 갑작스런 이방인의 출현에 의아한 모습이군요. 캐디에게 5번 홀 방향을 묻고 계속 직진합니다. 이어 8번 홀이 나오는데 8번 타석 뒤로 그냥 나가면 될 것을 나는 기어코 정문까지 걸어나가는 우를 범하고 맙니다. 알바입니다. 그렇다고 다시 클럽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고 ...레이크우드컨트리클럽 8번 홀 타석 뒤로 나오면 연수농원이 나오는데 극소까지 아스팔트 도로를 따릅니다.
거기서 팔레스모텔을 바라보고 가다보면 오리마을과 전주오모가리집 가운데 길로 들어서면 가든같은 고가(古家)를 지나게 됩니다. 마루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그 마루금에 가장 가까운 곳을 찾아 가는 것입니다. 간혹 전봇대 발거치대에 매달린 표지띠만이 이곳이 옳바른 정맥길이라는 것을 말해 줄 뿐 그 어디도 정맥길 이정목은 없고 또 그런 것을 기대할 수도 없는 시가지에 들어선 것입니다. 멀리 아파트촌을 바라보면서 길을 따라 걷다보면 왼쪽으로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는 곳이 나오는데 그곳이 '토지공사 경기동북부사업본부'로군요. 토지공사 바로 맞은 편으로 난 길로 들어섭니다. 토리공원 방향이군요. 정면으로 보이는 신도브래뉴아파트에서 우회전을 합니다. 아직까지도 잘 가고 있습니다. 진행방향에서 2시방향으로 멀리 보이는 주공아파트를 보면서 진행하고, 휴먼시아 주공아파트 뒤로 횡단보도가 있고 고갯마루(덕고개)가 보이고 그곳이 덕현초등학교로 덕고개가 마루금이므로 제대로 진행하고 있는 겁니다. 덕현초등학교를 끼고 왼쪽으로 돌면 문방구가 보이고 덕현중학교가 나오는데 그 사이 가운데 도로로 방향을 잡습니다. 산내들 마을 아파트를 지납니다. '산내들마을'을 지나 사거리에서 동두천 덕계동 방향을 직진하면 '우남퍼스트빌'이 나오고 정문을 지나면 왼쪽에 대형 교회일 법 싶은 예향교회 신축공사장을 지나니 바로 육교가 나옵니다. 사실은 이 육교에 있던 마루금이 정맥길인데 신도시를 만들면서 도로를 뚫는 과정에서 마루금이 없어졌는 바, 어쨌든 이 육교가 마루금을 잇는 역할을 하므로 이 방향으로 바로 건너면 될 것인데 제기 이 지점을 통과할 때에는 공사 중이어서 우회를 하여야만 하였습니다. 그래서 도로 우측을 따라 내려가면(15:59) '꽃을 든 남자' 농원이 있는 360번 도로에서 좌틀하여 도로를 따라 100여m 진행을 하면 신호등 옆으로 '주내순복음교회' 간판이 나오고 그 입구 오른쪽으로 마루금으로 들어서는 표지띠를 보고 들어섭니다. 그러면 이내 마루금과 접속을 하게 되고 그 마루금 옆으로 소방서도 보면서 도로와 함께 진행하게 됩니다. 아주 낮은 야산입니다. 남양홍씨 묘지터를 지나면 쉼터라는 좋은 글들을 볼 수 있으며 이내 부대 철조망을 만나게 되고 그곳부터는 계속 철망 오른쪽으로 진행을 합니다. 동네 주민들이 이용하는 간이 운동시설터를 보게 되는데 여기가 큰테미(210m)입니다. 우틀을 하니 분묘를 개장하고 이장하느라 아주 어지럽습니다. 이곳을 지나니 바로 한승아파트가 나옵니다. 그런데 오른쪽에 있는 비닐하우스 옆으로는 통행을 방해하여 하는 수없이 상가 앞을 통과하여 101동 앞을 지나면 오른쪽 화단 옆으로 후문이 있는데 그곳으로 빠져나가 경원선 철조망을 왼쪽으로 두고 공장 너머 육교를 바라보고 진행을 합니다.
17:18
지하보도를 통하여 철도를 건넙니다. 지하도를 나서 왼쪽 10시 방향 나염공장지대로 들어서게 되고 공장 몇 개를 지나자 왼쪽으로 가구전시장이 나오고 오른쪽으로 GS주유소가 있는 3번 국도와 만나게 됩니다. 길 건너 들머리를 확인하고 오늘 산행을 접는다. 오늘은 제법 긴 거리를 걸었습니다. 31.29km를 걷고 시간은 점심시간, 휴식 시간 포함하여 9시간 21분을 걸었으니 아주 만족할 만합니다.
제7구간
2009. 11. 7. 산행을 위하여 03:00 정도에 일어나 도시락을 챙기고 집을 나섭니다. 차는 샘내고개 가구단지 옆에 지난 번 보아 두었던 장소에 주차를 하고 들머리로 향합니다.
04:46
랜턴을 밝히고 오늘 산행을 시작합니다. 새벽 안개가 너무나 짙게 깔려 있어 산행에 지장이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는군요. 이윽고 나오는 철조망을 왼쪽으로 끼고 진행을 하면 음식점 현수막이 보이고 나무 의자도 있습니다. 회천2동 주민센터에서 주민들을 위하여 좋은 글들을 모아 팻말화 하여 놓았습니다. 로프도 지나고 나무 계단도 오르게 되는데 가파라서라기 보다는 동네 주민들 중 연로하신 분들의 산책에 도움을 주기 위함이라고 생각됩니다. 간간이 벤취도 설치 되어 있으며 명구(名句)는 계속 됩니다. 운동시설이 갖추어진 너른 공터도 지나고 이정표가 설치 되어 있는 군사시설 같은 곳에는 '만남의 광장'이라는 페인트 글이 써 있는데 안개가 너무 자욱하다.
05:31 - 가지 23. 한북도락단맥
도락산 갈림길이 나온다. 이곳에서 분기하는 줄기는 도락산, 꽃산을 거쳐 신내개울로 떨어지는 7.01km의 짧은 단맥을 이루게 됩니다.
정맥길은 직진을 합니다. 트레일러 박스를 지나자 바로 군부대 철조망이 나오며 이곳이 청엽굴고개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새벽이라 앞을 제대로 식별할 수 없는데 바로 앞에 군 유격장이 나오고 철조망으로 출입을 봉쇄하였습니다. 우회하여 돌아가니 다시 철조망이 나오고 민간인의 출입을 금한다는 경고판이 나옵니다.
06:44
유격장 영역에서 빠져나오니 바로 암벽이 나타나고 그 암봉을 로프를 잡고 오릅니다. 이정표에는 불곡산이라고 씌어져 있지만 이곳은 엄연히 임꺽정봉입니다. 불곡산은 예전에 회양목이 많아 겨울이 되면 붉게 물든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지도 상에는 이곳이 그저 불곡산(469m)의 연봉 중 하나로만 나와 있어 나도 그렇게 인식하였는데 이곳을 특정하여 불곡산이라는 팻말을 붙여 놓은 것을 보면 이것은 아마도 양주시의 잘못인 것 같습니다. 아무 것도 보지 못했지만 어쨌든 전망대라는 곳을 지나 새로 설치된 나무계단을 밟고 내려옵니다. 얼마 전만 해도 이곳에 나무계단이 없어 어렵게 로프를 타고 오르내렸는데 산객들을 위해 안전시설을 하여 주셨습니다. 로프를 매 놓았던 흔적도 보고 바윗길을 내려오니 제단 같은 곳을 지나게 됩니다. 그런데 나무 몇 개가 놓여진 것을 조게 되는데 아마도 이 나무의 용도는 가만히 생각해보니 동네 주민들이 산을 오를 때 스틱 대용으로 쓰고는 내려갈 때는 다시 제 자리에 놓아두어 뒤에 다시 올라 갈 때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 같군요. 케른 두 기와 묘지를 지납니다. 용치라고 쓴 군 시설물을 지나고,
용치(龍齒)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정사각형 혹은 피라미드 형으로 만들어 전차의 진행 방어를 위해 만들어진 방어시설물이라 한다.
07:26
포장마차를 몇 개를 지나 360번 지방도와 만나 횡단보도를 건너 왼쪽으로 갑니다. 그러고는 오산삼거리를 건너 노스랜드 뒷 도로에서 우회전을 하여 삼거리건재에서 왼쪽으로 난 길로 접어듭니다. 요란하게 짖는 개소리를 들으면서 오른쪽 골짜기에 있는 '세심정'이라는 사각정에서 아침을 먹고 가기로 합니다. 이 정자는 여름철에 동네사람들 휴식공간으로 쓰이는 양 냉장고도 있고 책도 있군요.
08:11
아침 밥을 간단하게 먹고 가파른 사면을 치고 올라갑니다. 석축 같은 곳이 있는 곳을 넘고 올라가니 전나무 숲같은 것이 나오더니 바로 뒤도 역시 석축이 나오는군요. 예전에 작은 성이 있었던 곳인가요? 잔잔한 돌도 아주 많이 쌓여 있습니다.
산성 흔적을 오르면 나무가 빽빽하게 자리하고 있고 그 너머에도 산성의 흔적인 듯 돌이 많다. #33 철탑을 지나니 비닐하우스 몇 동이 있는 2차선 포장도로를 만납니다. 작고개입니다. 표지띠는 작고개 앞의 농가 대문 앞에도 붙어 있지만 우측으로 조금 이동하면 산으로 올라갈 수 있는 등로가 보입니다. 죽어라 하고 짖어대는 개들을 뒤로 하고 송전 철탑을 보고 진행을 하면 눈에 익은 표지띠들이 많이 보입니다. 이곳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군 시설물들이 많이 산재하여 있지만 등로는 넓고 좋아 오르는 데 전혀 무리가 없습니다. #13 철탑에 도착합니다. 동네 주민들이 산책 코스로 이용하는 이곳은 '가야아파트 방향' 등을 가리키는 이정목도 보이고 나무 벤취도 보이는 호젓한 등로를 지납니다.
09:29
그렇게 진행하다 보니 호명산(423m)이 나옵니다. 안내도도 설치되어 있군요. 여유롭게 진행을 합니다. 그런데 엉터리 이정목에 식상하던 저에게 마침 '한강봉 산악회'에서 이정표를 설치하는 수고를 해 주셨습니다. 공교롭게도 호명산과 한강봉의 중간 지점이군요. 양 방향으로 각 1.5km의 거리를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헬기장을 지나 낙엽이 푹신한 곳을 지나는데 여긴 완전히 그림과 같은 분위기가 연출이 되는 곳입니다. 정말 멋잇는 곳입니다. 무조건 머리에 떠오르는 장면이 고 이만희 감독의 '만추'에서 여주인공이 호숫가 벤취로 가는 도중에 있는 나무 숲길. 그런 곳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온통 갈색이 이곳 분위기입니다. 완전히 그림과 같은 장면입니다. 이 멋진 분위기에서 빠져나가기 싫지만 10여 분 정도 걸어 아쉽기만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이곳을 나와 1차로 포장도로를 만납니다. '상수원보호구역'이나 '경고' 팻말 등 여러 개의 안내판이 난립한 흥복저수지와 복지리를 있는 도로 를 지나 숲으로 들어갑니다. 여러 선답자들의 산행기 중에 나오는 한 뿌리에서 여러 가지를 뻗힌 참으로 멋들어지게 생긴 나무를 보며 완만한 오르막을 오릅니다.
10:18 - 가지 24. 한북감악지맥 (漢北紺嶽枝脈)
이색적으로 노란색을 칠한 표지목이 있고 삼각점이 있는 한강봉(474m)에 도착하게 됩니다. 여기서 줄기 하나가 북쪽으로 뻗어나가게 되는데 이 줄기는 정말 복잡하게 여러 줄기를 분기하기도 합니다. 은봉산을 거쳐 노고산, 감악산, 마차산을 지나 한탄강에서 그 맥을 다하는 약42km의 산줄기로 중간에 팔일봉으로 갈리는 줄기, 노고산에서 금병산과 자웅산으로 갈리는 줄기, 명학, 비학, 파평, 광평, 만월, 중성, 사리 각 단맥들을 보면 참 대단한 줄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고는 바로 만나는 곳이 한북정맥과 신한북정맥이 갈리는 곳입니다. 기술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 산줄기의 대원칙은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으로서 산줄기는 물을 가른다는 대원칙에서 출발을 합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1대간, 1정간, 9정맥은 10대강 즉 압록강, 두만강, 청천강, 대동강, 예성강, 임진강, 한강, 낙동강, 금강, 섬진강 등을 구획한다고 하는 대원칙에서 출발한다고 하였으므로 이 한북정맥은 한강 이북에 있는 줄기로서 이는 북한강과 임진강을 가르는 즉 분수령이 되는 큰줄기입니다. 그렇다면 한북정맥은 북한강이나 임진강 아니면 서해바다를 만나서 소멸이 되어야 이 원칙에 부합하는 모양새가 됩니다. 그러나 기술한 바와 같이 분명 산경표에 의하면 한북정맥은 파주시 교하읍에 있는 장명산을 지나 공릉천에서 그 맥을 다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대원칙에 부합하지 않은 '산굥표'를 제대로 잡은 것이 '신산경표'이고 그에 따르면 오두지맥이라는 말은 없어지고 그 줄기는 온전한 신한북정맥이 되며 한강봉에서 장명산으로 이어지는 줄기는 자연스럽게 '도봉지맥'이라는 이름으로 8지맥에 분류되는 것이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게 됩니다. 사실 백두대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즉 백두대간도 천왕봉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리산 영신봉에서 옥산분기점을 지나 금오산, 노량에서 그 맥을 다 하여야 한다는 원리입니다. 실제 심해로 그 맥이 지나긴 하지만 노량의 그 맥은 남해지맥을 따라 진행을 하여 금산을 지나 망운산까지 이어지게 되는데 놀랍게도 이 망운산이 위치한 동경 128˚에서 게속 북쪽으로 올라가면 그곳은 바로 백두산입니다. 각설하고 한북정맥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의의는 분명히 존중되어야 하고 가치가 무궁한 것입니다. 하지만 산경표가 내세운 대원칙에서 스스로가 벗어낫기 때문에 저는 신한북정맥으로 글을 정리하여야겠습니다.
10:25 - 가지 . 25 도봉지맥 (道峰枝脈)
원 한북정맥 줄기인 도봉지맥은 이곳에서 분기하여 첼봉, 도봉산, 상장산, 노고산 등을 거쳐 장명산을 지나 공릉천에서 그 맥을 다하는 약 54km의 줄기입니다.
08:04
신한북정맥의 이 구간은 해를 넘겨 2010. 7. 25. 한 여름에 진행을 하게 됩니다. 도봉지맥 갈림길을 지난 등로는 14분 정도면 말머리고개에 닿습니다. 말머리고개는 감악지맥을 할 때에도 이용하여야 하는 곳입니다. 이 말머리고개는 송추 고비골에서 백석읍 기산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이 도로는 39번 도로입니다. 원래 이 말머리고개의 이름은 '말굴이고개'로 중국 사신이 타고 오던 말이 굴렀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군요. 도로가 포장되기 전에는 이 고갯길이 무척 험하여 지나던 차들이 애를 먹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얼마전에 분명히 이 고개 마루에서 포장마차 영업을 하는 것이 분명히 있었는데 오늘은 보이질 않는군요. 철거된 것 같습니다. 청솔 기숙학원 옆으로 이정목이 있는데 그것을 따라 진행합니다.
08:18
고령산 1.1km라는 이정표입니다. 10분 정도 열심히 산을 오르면 삼각점이 있는 441.2봉에 도착합니다. 오늘은 날씨가 별로 좋지 않아 시야 확보가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장군봉으로 길이 갈리는 삼거리 이정목을 지나게 됩니다.
08:54
봉수대에 도착합니다. 조금 전 지나온 이정표에 의할 때에는 고령산, 안내판에 의할 때에는 봉수대입니다. 이곳에서 왼쪽 석현리 방향으로 보면 이국적인 모습의 법화사가 보입니다. 맞은 편 산줄기 즉 첼봉을 지나 울대고개로 진행할 때 이 건물의 용도에 대하여 상당히 궁금했었습니다. 20여분 더 진행을 하면 521고지에 있는 소위 '돌고개 갈림길'이 나옵니다. 여기서는 표지띠를 따라 우틀을 하여야지 만연히 직진을 하면 바로 알바입니다. 우틀을 하게 되면 앵무봉 방향에서 오는 사람 같으면 '돌고개' 즉 석현리(石峴)로 가는 길로 들어 설 수 있도록 이정표가 되어 있으나 아까 삼거리에서는 이런 이정표가 없음을 주의하여야 합니다. 529고지에 있는 이정표를 지납니다. 이 이정표를 보면 고령산 즉 봉수대와 수리봉이 엄격하게 구분 되어 있고 봉수대와 수리봉의 거리는 200m나 되는 거리에 위치해 있음을 보여주는군요. 지도를 보면 전망대라는 곳이 나옵니다. 이곳에서 석현리 방향으로 조망이 좀 되는 곳인 것을 보니 여기 같습니다. 장흥유원지인 석현리 방면은 이제 완전히 위락 장소가 되어 있습니다. 사실 여름에는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습니다. 또 석현리로 내려가는 이정목을 봅니다. 군사시설보호구역이라는 경고문도 나오는 것을 보니 이제 군 레이더기지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10:04
그 경고판을 지나자마자 바로 개명산 갈림길이기도 한 헬기장(542m)입니다. 사실 지맥길은 여기서 우측으로 가지 않고 직진을 하여 개명산을 지난 다음 됫박고개로 향하여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특수한 정치적인 형편상 앵무봉을 거쳐 보광사에 들른 다음 됫박고개로 가서 마루금을 이어야만 합니다. 제가 아는 몇 분은 온전한 마루금을 잇기 위하여 악착같이 개명산까지 가서 마루금을 타보려 하였으나 지형상 불가능하여 다시 되돌아왔다는 산행기를 익히 읽은 터라 저는 미련없이 그냥 앵무봉으로 향합니다. 더욱이 그 길을 가다보면 '지뢰매설지역'이라는 경고판까지 나오는 터라 굳이 무리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10:21
깃대가 보이고 안내판이 보입니다. 앵무봉(622m)입니다. 이 앵무봉도 크게 보았을 때에는 고령산의 범주안에 듭니다. 누워 있는 정상석 뒤로 산행안내판이 크게 자리하고 있고 오른쪽으로 조금 더 가면 세워져 있는 정상석을 만납니다. 정상석이 둘인 만큼 봉우리도 두 개군요. 북봉에는 헬기장과 삼각점이 있으니 이 봉이 오리지날 앵무봉이 되겠군요. 기술한 바와 같이 이 전체가 다 고령산이므로 이 봉우리만 앵무봉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고령산은 1634년에 주조한 보광사 범종에는 高嶺山이라 표기 되어 있는데 반해 조선 후기에 편찬된 양주목읍지에는 高靈山이라 기재되어 있고 '높고 신령스러운 산'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다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시 되돌아와서 도솔암으로 방향을 잡습니다. 아주 급경사이므로 로프를 잡고 조심스럽게 진행을 합니다. 그러면 보광사 내려가는 표지판과 벤취가 있고 길은 넓어지고 곧 도솔암입니다. 아주 오래된 암자같은데 이 도솔암은 이름만 멋있는 게 아니라 잘은 모르지만 저 같은 문외한이 보더라도 최적의 지형조건에 자리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사진 촬영에 관심 있으신 분들이 셧터를 누를 경우 멋진 작품이 될 것 같군요. 이 도솔암을 지나면 바로 임도입니다. 4륜 구동 차는 충분히 올라 올 수 있는 길입니다. 드디어 목탁소리와 독경 소리가 들리게 되고 오른 쪽으로 규모가 큰 석가모니 부처님을 됩게 됩니다. 적재적소에 위치한 듯한 보광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신라진성여왕 때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하는 보광사는 참으로 잘 생긴 절집입니다. 만세루에 있는 용의 형상을 하고 있는 목어를 꼭 보려 했는데 착각을 하여 찾지 못했습니다. 사하촌에는 그럴 듯한 식당들이 많이 있습니다. 분수대가 시원해 보이는 식당에서 비빔밥과 막걸리 한 통을 마시면서 40여분 머물더 일어납니다.
비벼 놓고 보니까 먹음직스럽습니다.
한 잔하고 수다 떨다보니 시간이 한찬이나 지나갑니다.
11:53
보광사 일주문을 나와 됫박고개 방향으로 진행을 합니다. 그런데 됫박고개까지 갈 때 이곳에서 자주 있는 시내버스를 타고 가는 게 나을 것도 같습니다. 고개 오름이 차량 통행량이 많아 위험스럽기도 하고 지맥길도 아닌지라 별 의미도 없을 것 같고.... 20분을 오르니 됫박고개가 나옵니다. 이 됫박고개가 파주시 광탄면과 양주시 장흥면의 시계가 되는 곳입니다. 됫박처럼 아주 가팔라서 그렇게 붙여졌다고 합니다. 그 됫박고개에는 휴게소가 하나 있습니다. 거기서 6,000원 짜리 팥빙수를 시켜 먹었는데 맛은?
쓸데없이 빙수를 먹느라 20분이라는 아까운 시간만 잡아 먹습니다. 고개 마루에 있는 나무 계단을 오르면서 다시 정맥길을 따릅니다. 꽃밭이 나오고 왼쪽으로는 일군의 묘지가 보입니다. 임도와 마루금이 번갈아 가며 나오는데 이 길은 그냥 이 임도를 따라가는 편이 훨씬 좋습니다. 왜냐하면 정맥길은 철탑을 바라보면서 우틀을 해야 하는데 임도가 아니고 임도를 가로지르는 산길을 갔다가는 정맥길을 놓치고 그냥 진행을 하여 우암산을 가는 활공장 같은 전망 좋은 곳을 만나게 됩니다. 중간중간 표지띠도 있는데 이는 일반 산행을 하는 산악회의 그것이므로 주의를 요하는 구간입니다. 18분 정도 알바를 하고 다시 되돌아 나와 왼쪽으로 표지띠가 날리는 삼거리를 만납니다. 아주 주의를 요하는 곳입니다. 됫박고개 뒤에서 만나는 임도에서는 그냥 묵묵히 임도를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 갈림길 바로 옆에 있는 철탑도 만나게 되고 바리케이트가 있는 헬기장도 만나게 됩니다.
14:03
그렇게 진행을 하면 선답자들의 산행기에 나오는 유명한 헬기레펠 훈련장을 지나고 이제부터는 바로 부대 철조망을 따라 진행합니다. 가로수가 멋진 부대앞 포장도로가 나오고 그 길을 올라서면 아주 너른 헬기장이 나옵니다. 부대 철조망을 따라 걸으면서 뒤를 돌아보면 레펠훈련교장이나 펄탑 등 아까 진행한 곳을 눈으로 그릴 수 있습니다. '가선대부 이조참판'을 지내신 분의 묘를 지나고.
14:38
박달봉으로 가는 삼거리를 만납니다. 박달봉으로 진행하는 길에는 나뭇가지를 가로질러 이른바 '진입금지' 표시를 해 놓았습니다. 좌틀합니다. 표지띠를 보고 안심을 하며 진행합니다. 사실 이곳은 마을이 가까와 길도 많고 고도도 낮기 때문에 표지띠가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표지띠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는 구간입니다. 군 훈련지역이니 출입을 금하라는 군 경고판이 여러 개 세워져 있습니다. 오른쪽으로 골푸장이 희미하게 보이고 조금 더 진행하니 드디어 용미리 농공단지가 보입니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 축사도 지나고 집 뒷길도 지나니 마루금이 막혀 하는 수없이 가구공장을 가로질러 '대우건철' 옆으로 내려옵니다.
15:39
이곳에서 들머리를 찾습니다. 분명 이곳에서 제일 높은 곳은 '달구니고개'이고 그 고개 옆으로 표지띠도 하나 달려 있으며 비록 덩굴이 발목을 잡기는 하지만 공장 뒷편으로 뚫고 나가면 될 것도 같아 무조건 진행을 하여 보지만 도저히 나갈 수 없고 길도 막힌 것 같습니다. 하는 수없이 왼쪽으로 나와 길옆으로 이동을 하여 민가 옆으로 이동을 하여 돌아가려 하였으나 큰 개를 풀어놓아 보통 위험한 상항이 아닙니다.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는 말처럼 짖기라도 하면 그 방향으로 오르기라도 할 텐데 짖지도 않는 것으로 보아 어떤 사단이 날 게 분명합니다. 제가 아시는 분은 사모님이 개를 잘 다루시기 때문에 무난하게 진행하였다고 하는데 개띠와 개는 좀 상극이라...다시 고개 옆에 있는 공장 안으로 들어가 기숙사 뒤로 진행을 하려 하였으나 그 뒤로 길이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맥이 빠져 오늘 산행은 어중간하게 이곳에서 마무리합니다.
제 111구간
제 직업이 마냥 앉아서 자판이나 두들기고 사람 만나서 상담하고 저녁에는 술 마시고....뭐 이러는 직업니다 보니 허리에 무리가 많이 가나 봅니다. 7월 말에 며칠 열심히 두들기다 보니 또 허리에 무리가 간 것 같습니다. 주말에는 꼭 산에 가야하기 때문에 물리치료도 열심히 받았는데 토요일까지 별 차도가 없는 것 같습니다. 거기에 에어컨으로 인한 냉방병까지 걸려 쿨럭쿨럭 되고....
영 컨디션이 말이 아닙니다. 컨디션 조절도 할 겸 오두지맥을 간단히 이어가기로 합니다. 교대역에서 3호선 첫차를 타고 삼송역으로 가서는 다시 703번 버스를 갈아타고 용미4리 삼거리에 내려 첫 버스인 7시발 마을버스를 타고 달구니 고개로 향합니다.
07:13
달구니 고개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이 달구니 고개의 이름에 대하여 자료를 아무리 탖아봐도 그 뜻을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오히려 자료에 나오는 지도에는 이 고개를 '닭운이 고개'로 표기하여 놓았으니 그 의문이 더 해 가기만 합니다. 그래서 '닭운이'의 뜻에 대하여 찾아보았더니 연천군 연천읍 상리의 황해촌-한국전쟁 이후에 황해도 사람들이 정착하여 살았던 동네- 위에 닭운이 즉 鷄鳴洞이라는 골짜기가 있었는데 예전에 임씨 성을 가진 사람이 묘를 쓰려고 땅을 파니 닭이 울며 나왔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 고 합니다. 그래서 계명산이란 이름이 있었음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본래의 뜻은 ‘산 안에 있는 마을' 이라는 뜻으로 산은 고어 '닫'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데, ‘닫'이 지금에 와서는 그 음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드물고 연철 음절과의 관계나 다른 낱말과 유사성으로 인하여 ‘닷',‘닥', ‘닭'등으로 옮겨간 것이 대부분인데, 닭운이의 예에는 닭(山) + 안(內)> 다간 >다그니> 달그니> 닭운이로 변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이 고개 이름은 별 의미도 모르고 '달구니 고개'로 부르기 보다는 '닭운이 고개'로 부르는 게 밎는 것 같습니다. 각설하고 지난 번 이 고개에서 이어지는 산줄기를 찾으려 했었으나 묘지 부근을 뚫고 나가는 길은 절대로 없고 그 옆의 조그만 공장을 통과하려 하였으나, 무시무시한 개로 인하여 그 코스는 아예 포기하기로 합니다. 참고로 지도상에 나오는 '동서전자'는 실제로는 아무리 찾아봐도 없어 다른 선답자가 진행한 길인 '대우건철' 옆에서 묘지를 보고 진행하는 길을 택하기로 합니다.
07:17
모든 준비를 마치고 산행을 시작합니다. 오늘은 허리 근육통 문제 때문에 절대로 무리를 하지 않을 것이므로 가볍게 산행을 마치자고 즉 산의 유혹에 말려 무리를 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고 다시금 마음을 다집니다. 묘지에 다다르기 전에 왼쪽으로 빛 바랜 표지띠가 마루금으로 이어지는 길을 안내해 줍니다. 15분 정도 오르니 삼각점(168m)이 보이고 그 삼각점 봉에서 진행방향으로 시야기 트이는 곳이 있고 워낙 굴착기로 돌을 부수는 소리가 워낙 크게 들려 그 곳을 바라봅니다. 그곳이 지도에 나오는 소위 '채석장'이라는 곳입니다. 채석장 왼쪽으로 마루금이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합니다. 표지띠를 따르니 오른쪽으로는 완전히 깎여나가 진행을 하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난개발로 지맥꾼들이 진행해 나간 길은 거의 없어졌으므로 하는 수없이 저는 깎여나간 사면 왼쪽으로 최대한 붙어서 진행을 하다보니 풀숲을 헤쳐나가는 꼴입니다. 상당히 큰 규모의 채석장입니다. 그곳을 벗어나자마자 바로 군부대 훈련장임을 알려주는 입간판들이 보입니다.
08:02
교장이 있는 정상에 삼각점(163m)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 아래로 완만한 능선을 내려가는 데 갑자기 주위 환경과는 다르게 웬 바윗덩어리가 보이고 철책이 쳐져 있습니다. 그 유명한 용미리 석불입상입니다. 한북정맥의 곁가지를 타고 뻗어온 용들이 한양을 만들고 그 꼬리가 머물러 있는 마을을 용미리(龍尾里)라 불렀고 예전에는 그 마을 이름을 미륵멩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용미리 쌍미륵이라고도 불리기도 하는 이 불상은 고려 선종과 원신궁주{궁주(宮主)는 고려시대의 후궁의 칭호)}의 왕자인 한산후의 탄생과 관련된 설화가 있다고 합니다. 즉 선종이 후사가 없어 고민하던 어느날 원신궁주의 꿈에 두 고승이 나타나 말하기를 "우리는 파주 장지산에 있다. 먹을 것이 떨어져 곤란을 겪고 있으니 이곳 바위에 두 불상을 새겨라. 그리하면 소원을 들어주겠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궁주가 사람을 보내 꿈속의 그곳을 찾으니 지금의 거대한 바위가 있었고 궁주는 불상을 조성케 했는데 다시 또 그 고승이 꿈속에 나타나 "왼쪽 바위는 미륵불로 오른쪽 바위는 미륵보살로 조성하라."고 이르고는 "누구든지 여기 와서 공양하고 기도하면 소원성취하리라. 아이를 바라면 득남을 하고 병을 가진 사람은 곧 쾌차하리라."고 말한 뒤 유유히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 뒤 원신궁주는 당연히 태기가 있었고 그렇게 해서 낳은 아기가 한산후라는 것입니다.
석불을 보고 다시 오던 길로 올라가 마루금을 향합니다. 바로 78번 도로로 내려섭니다. 이 도로로 내려설 때에도 덩굴들이 발목을 심하게 잡습니다. 마루금은 용미1리 간판 왼쪽으로 들어섭니다. 그러면 양지마을 표지석 뒤로 표지띠가 날리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 길로 올라서면 부대 철조망과 맞닿게 되는데 바로 왼쪽으로 진행을 합니다. 길도 안 보이고....아주 지겹습니다.
산딸기 덩굴이 발목을 잡고 가시 닻은 것들이 팔이며 다리며...그냥 막 뚫고 들어옵니다. 아주 고역입니다. 그곳을 가까스로 빠져나오면 밭이 나오고 밭고랑 사이를 조심스레 빠져나오면 주황색 양철지붕집이 나오고 동네 개들의 오케스트라 반주가 시작됩니다.
08:27
여기서 많은 정맥꾼들이 양철지붕 주인장과 심하게 다툼을 벌이곤 하는 것 같습니다. 그 어른은 조심스럽게 "이 뒤로는 길이 없으니 저 아래로 내려가서 오른쪽 골목으로 돌아가면 저 너머 언덕으로 가는 길이 있다."고 친절하게 알려줍니다. 그 분의 안내대로 길을 진행하기로 합니다. 내려가는 골목 왼쪽 첫 집이 양옥집인데 그 집에 있는 4마리의 조그마한 개들이 제 주인을 믿고 엄청난 톤으로 합창을 합니다. 곧 담을 넘어 쫓아 올 기세입니다. 그 집을 지나면 바로 삼거리가 나오고 바로 우틀을 합니다. 마당에 잔디가 깔리고 바비큐 시설까지 갖춰진 집을 지나면 바로 산길이 나옵니다. 다시 표지띠가 보이고 마루금으로 복귀합니다. 나무 의자도 보이고 '매봉 0.95km'라는 이정목도 보입니다. 계속 매봉을 따릅니다.
09:07
여기가 매봉(123m)이군요. 헬기장으로 쓰였던 것 같은 잔해물이 몇 개 보이긴 하는데.....매봉을 벗어나자마자 바로 오른쪽으로 꺾입니다. 직진을 하게 되면 간매봉으로 가게되고 그 간매봉은 공릉저수지와 연결되는 알바길입니다. 뒷편으로 표지띠가 보입니다. 그 길로 내려오면 바로 1차로 차도 만나게 되고 정면으로는 '미희농원'이라는 곳이 나옵니다. 그곳은 미희농원이라는 간판과 함께 군부대의 출입금지 안내판까지 붙어 있습니다. 여기서는 다른 유혹에 말릴 필요도 없이 바로 우측을 보면 언덕이 보이고 그 언덕에서 왼쪽으로 치고 오르는 마루금을 타야 합니다. 그러니까 매봉에서 바로 우측으로 치고 나가 이 마루금 방향으로 와야 오리지널 마루금인데 길이 희미하여 등로를 따르다보니 조금 벗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표지띠를 따라 숲을 헤치고 지나가니 군부대 후문이 나옵니다. 바리케이트도 보이고... 이런 곳을 지날 때에는 거미줄과 하루살이 그리고 덩굴과 싸우느라 힘이 쪽 빠지게 됩니다. 임도가 나오지만 만연히 임도를 따르면 안 됩니다. 임도 삼거리에서 싸리나무가 있는 숲으로 무작정 들어가면 작은 언덕으로 표지띠가 보입니다.길도 바닥으로 희미하게 보이므로 염려없습니다. 그러면 새로 조성된 공장 부지가 보이고 조금 여유로운 기분도 생깁니다. 30분 정도 간식에 막걸리를 먹다 일어납니다.
10:11
이숲과 절개지 사이의 좁은 길을 타고 진행합니다. 바로 파주오산지방단지가 나옵니다. 페이퍼 플라자며 매일경제가 있는 것을 보니 인쇄단지 같습니다. 아무래도 허리가 좋지 않아 좀 쉬어야 하겠습니다. 날씨도 그렇고 오늘 산행은 좀 일찍 마칩니다.
2011. 9. 9.
또 1년이 흐릅니다. 그동안 신한북정맥의 모든 산줄기는 거의 끝냈으니 이제 신한북정맥도 마무리 하여야 할 시점입니다. 작년에 운행을 마쳤던 오산리 고개입니다. 오른쪽 출판단지 쪽으로 길가에 주차해 둔 차량들이 줄 지어 서 있군요. 최자실 기념관이 있는 가도원 안으로 발을 옮깁니다. 기도원 안으로 향하다가 주차장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주차장에서 기도원 입구를 보았습니다.
주차장을 빠져나오자마자 공원묘지로 들어섭니다. 등로는 묘지 옆으로 진행이 됩니다. 우측으로 정자가 보이는데 거기서 한 사람이 염실히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습니다. 완만한 오름은 이내 마루금으로 올라서는데 좌틀을 하여 나무 수풀 속으로 들어갑니다. 정면이 바로 조그만 봉우리(103m)라는 것을 인식하자마자 희미한 군삼각점이 나옵니다. 뒤로 약 20m를 다시 나와 좌측으로 내려갑니다. 간간이 표지띠도 보이는데 왼쪽으로 조그마한 공장이 보이는데 그 직원들의 쉼터인 양 파라솔도 있고 탁자도 있습니다. 빗줄기가 굵어집니다.
등로를 따라 진행하면 우측으로 묘지가 몇 기 보입니다. 묘지를 통과하면 이제 길다운 길이 나오는데 부대 후문을 지나자마자 다시 길은 희미해지고 이제부터는 부대 철조망을 따라갑니다. 원래 마루금은 아까 그 묘지에서 직진을 하여 부대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 마루금에는 부대가 위치해 있으므로 정맥길은 이렇게 우회를 하여야 합니다. 부대 초소를 빠져나오자 이제는 잡목밭입니다. 사람 어른 키는 될 법한 나무들을 헤치며 나가느라 온 몸이 다 젖습니다. 또 공원묘지가 나옵니다. 고갯마루에 있는 화장실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그 공원묘지 한가운데를 지납니다. 여기부터 길이 좀 난해해집니다. 간단히 얘기하면 이 구간도 지금 진행 중인 묘지를 중심으로 U字 형태로 도는 모습입니다. 간간이 표지띠들이 있으므로 주의를 기울여 봉우리를 찾아 오릅니다.
이곳이 지도의 원형 부분인데 결국 봉우리까지 올랐다가 굴뚝 두 개가 있는 방카만 확인하고 다시 내려와 진행방향으로 왼쪽으로 붙어 있는 표지띠를 따라 낙엽송 밭 사이로 진행을 합니다. 이제 왼쪽으로 차소리도 나므로 78번 도로로 다 왔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약간 경사진 내리막을 조심해서 내려오니 대전차방호벽이 있는 78번도로로 북쪽으로 떨어집니다.
09:45
이 방호벽을 통과하여 남쪽으로 나오는데 도로가 워낙 좁아 조심을 하여야 합니다. 이 고개에 대한 특별한 이름은 보이지 않고 선답자들은 동광비철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동광비철 옆으로 난 길로 우틀합니다. 군비상도로여서 길은 좋으나 마루금을 타야 하므로 우측 전봇대 옆으로 붙어 잇는 표지띠를 따라 마루금으로 달라 붙습니다. 그러면 고압선 철탑이 나오는데 그것을 지나 좀 너른 길을 만나면 좌틀합니다. 군용 창고를 지나고 아까 보았던 군 비상도로와 합류하는데 넓은 광장 같은 곳이 바로 나오고 트럭이 회차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너른 헬기장을 만납니다. 그런데 여기부터 진행방향이 좀 난감합니다. 지도를 보면 직진을 하게 되어 있는데 바로 앞을 보면 나무 숲이고 오른쪽 군시설물 있는 곳으로 가도 진행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도 명색이 정맥인데 분명 길은 있을 것인데 표지띠마저 사라져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들은 것 같은 불길한 생각이 듭니다. 하는 수없이 선답자인 선배님께 전화로 길을 물어봅니다. 그렇군요. 그 선배님도 여기서 알바를 하셨다며 무조건 서진을 하라고 합니다. 즉 그 너른 헬기장에서 진행방향을 보며 길도 없는 곳으로 아래 동네를 바라보며 무조건 내려서라는 것입니다. 미친 척하고 풀숲을 헤치고 아래로 떨어집니다. 아! 그러니 나무 숲이 나오고 그 나무들에 표지띠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까. 팝뮤직 Tie s yellow ribbon...에 나오는 가사같이 아주 반가운 리본이 달려 있는 것입니다. 즉 아까 그곳은 선답자들이 표지띠를 매어 놓을만한 나무가 없어 표지띠를 확인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길은 비록 진행하기가 쉽지 않은 곳이지만 그래도 걷기에는 전혀 불편함이 없습니다.
그런 길을 지나자 이제 좀 너른 길이 나오면서 선답자의 글에서 그림으로 보았던 관개용 수로가 보입니다. 그 수로 옆에 친절하신 분이 등산로 표시까지 해 두었습니다. 왼쪽으로 공장지대가 보이나 저는 오른쪽 시멘트 도로를 따라 갑니다. 그러고는 적당한 곳에서 다시 왼쪽의 숲으로 들어 갑니다. 숲을 헤치고 들어가니 표지띠가 보이고 이내 이중 철조망으로 된 부대와 만나게 됩니다. 철조망을 따라 좀 편안한 등로로 진행을 합니다. 그 부대를 끼고 돌아가니 교장인 듯 여러가지 시설물들이 보입니다. 포장도로가 나옵니다. 부대 위병소 앞을 지나니 위전3리 동네 표지석이 있는 삼거리에 도착합니다. 직진하여 레미콘 공장 안으로 들어가면 바로 작은 숲이 나오고 철길 위로 오르는 계단이 보입니다. 이 도로를 타고 전철 철로 위로 진행을 합니다. 9사단 백마부대 표지석을 봅니다. 다음 진행은 저 뒤로 진행을 하여 월롱산으로 가야 할 것입니다. 비가 오는데 우의도 없어 도저히 진행할 맛이 안 납니다. 월롱역 건너편에 있는 수타짜장면 집에서 짬봉으로 배를 채우고 귀경을 합니다.
2011. 9. 25.
신한북정맥의 마지막 구간 즉 구(舊)오두지맥은 정말로 징그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분들 같은 경우에는 간단하게 두 번에 끝내버리는 데 저같은 경우에는 벌써 네 번째이니....문제는 길이 난해한 점도 있지만 저 혼자 진행을 하였으면 어떻게든 끝낼 수 있었을 것인데 주위에 동행하는 일행이 있다보니 이런 저런 이유로 산행이 늦춰지기도 하고 못가겠다고 버티면 어떨 방도가 없어집니다. 월롱역에서 진행하는 오늘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오두지맥을 끝내겠노라고 다짐을 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일행이 더 불어 6명이나 되어 어느 정도는 걱정이 되기도 하나 예습을 철저히 하였기 때문에 제가 앞에서 무조건 잡아 빼면 뒤에서는 따라오지 않겠나 하는 단순한 생각을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두지맥 마지막 구간은 길찾기가 문제이지 고도가 낮아 진행하는 데에는 별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입니다.
09:15
오늘 구간을 시작합니다. 예습한 대로 백마부대 로고가 적힌 비석 뒤로 진행을 합니다. 무슨 전적비인지 알았는데 1984년 대전차방호벽을 구축한 기념으로 세운 기념비이군요. 최OO, 고OO 등 군부정권에서 한 자리 하신 분들의 이름이 뒤에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삼각점 같은 것이 이런 곳에 설치되어 있으니......
그 기념비 뒤로 오르면 바로 포장도로를 따르다 다시 산으로 들어갑니다. 길은 어느 정도 명백합니다. 그렇게 산길을 빠져나오면 바로 다락고개입니다. 예전에는 분명 산이 있고 이 고개는 두 산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였을 것인데 지금은 평평한 땅에 그저 삼거리로만 되어 있어 이 곳이 과연 다락고개라는 명칭에 어울리는 것인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듭니다. 도시화의 여파입니다.
더군다나 다락고개는 한자어로 표기를 하면 누현(樓峴)이 되는데 이 곳이 부근에서는 가장 높아 다른 곳 사람들은 여기에 오려면 올라와야 했다는 말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전혀 그 의미를 확인할 수 없군요. 여기서 서쪽 방향으로 좌틀합니다.
아스팔트를 따라 진행을 하다보면 오른쪽으로 청주사씨사적비가 나오는데 사씨는 청주(淸州)가 아니고 청주(靑州)이군요. 저 멀리 예비군 훈련장 안내판이 보이는군요. 그 삼거리에서 우틀하면 될 것입니다. 월계단이라는 것도 확인하고 익히 본대로 대전자방호벽도 통과하고 이정표가 '월롱초교길'이라고 쓴 것인데 요새는 저 도로명 이정표 때문에 길찾기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역사와 전통을 부정하자는 것인지....
멀리 정면으로 송전탑이 보입니다. 어쨌든 저 부근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월롱산은 예비군 훈련장 뒤에 있는 송전탑을 따라 진행을 한다고 하니 말입니다. 그런데 그 송전탑으로 오를 수 있는 방법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예비군 교육대 좌측으로는 웬 공장 같은 것이 생겨 그 민가 앞으로 진행이 불가능합니다. 하는 수없이 정맥 길 옆으로 난 숲으로 뚫고 들어갑니다. 아웃도어 상품을 판매하시는 분들에게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정맥, 지맥, 단맥을 산행하는 사람들에게는 유명 메이커 옷들이 그렇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나뭇가지에 긁히고 덩굴에 흠집이 나며 철조망에 찢기고 하다보면 그 비싼 옷이 금방 헤지고 맙니다. 그리고 비박을 하거나 잠시 쉴때면 아무데나 앉고 눕고 하여야 하는데 아무래도 그 아까운 옷들을 입고 다닌다는 것이 좀 그렇습니다. 다만 신발 만큼은 자신에게 편한 것을 신는다는 데에는 이론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하루에 걷는 거리가 보통 20km가 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또 이틀 연속 산행을 하는 경우도 많으므로 므로 발이 편해야 그 정도를 소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각설하고 예비군 부대 철조망 방향으로 진행을 하자 교육용 이동 통로가 나오며 안내표지판도 여러 개 눈에 띕니다.
10:02
드디어 철탑입니다. 철탑번호 #21, #80을 확인합니다. 바로 뒤에는 월롱산으로 오르는 등산객이 혹시나 부대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출입금지 안내판(본 시설은 군사시설이므로 민간인의 출입을 엄중히 통제합니다.)도 설치되어 있습니다. 문구가 많이 순화되었군요. 전에는 '접근하면 발포함'이었는데 ... 그런 향수에 젖은 군인들이 지금도 국민의 목숨을 담보로 투쟁을 하고 있는 것도 같고... 그런데 여기 깃대가 하나 서 있는데 그 깃대를 받히고 있는 게 국가시설물인 파손된 삼각점입니다. 이것 때문에 이곳이 118.8봉인 곳을 인식합니다. 여기서부터는 파주시 야동동이나 덕은리 주민들의 산책 코스이므로 주민들을 자주 만나고 덕분에 길도 넓고 아주 좋습니다. 곳곳에 이정표도 설치되어 있고 잘 정비된 가족묘도 지납니다. 이제부터는 '정상'이라는 방향을 보고 진행을 하여야 합니다. 돌아보면 지나온 철탑도 보이고 왼쪽으로는 이정표에 나와 있는 '용상사'도 보입니다. 막걸리 한 잔으로 목을 축이고 다시 일어섭니다. 바로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헬기장이 나오고 바로 월롱산성에 대한 안내판이 있는 삼거리가 나옵니다. 어차피 정맥길은 다시 이곳으로 나와야 하지만 월롱산(218.54m)을 확인하여야겠지요. 너른 임도를 따라가다 보니 공터가 나오고 바로 뒤에 붉은 깃발이 날리고 있으며 삼각점(경기321)이 보입니다.
11:31
삼각점이 있는 월롱산입니다. 월롱산의 북서쪽 방향은 절벽이어서 전망이 너무 좋습니다. 한 눈에 기간산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절벽으로 인해 바로 건너 편에 있는 기간산으로 진행을 할 수 없으므로 월롱상성 삼거리로 되돌아 나가 잠시 이어지는 콘크리트 도로를 따라 진행하게 됩니다. 비포장도로의 헬기장을 만나게 되고 좌측으로 떨어지는 콘크리트 포장의 삼거리도 만나지만 무조건 직진합니다. 이정표를 만나게 되면 산으로 오르지 않고 팔각정 방향읋 도로를 따라 진행합니다. 그래야 너른 콘크리트 헬기장 하나를 지나 좌측으로 표지띠가 날리는 숲길을 만나게 되면서 팔각정 길을 버리고 정맥길로 들게 됩니다. 감리교라는 붉은 글씨의 돌말뚝을 여러 개 지나고 글씨가 지워진 듯한 오래 된 군 시설물도 보게 됩니다. 길은 아주 양호하므로 길 잃을 염려가 전혀 없습니다. 차소리가 들리기 시작할 시간이 이즈음입니다.
12:14
5번 지방도로로 떨어집니다. 도로 우측으로 하이마트 북부 물류창고와 yes24시 창고가를 만나는데 제가 이곳을 지날 때 대전차방호벽을 철거하는 작업이 거의 완료되어 가더군요. 이 부근 방호벽을 지날 때 '충돌 위험' 경고판을 보지 않게 되어서 다행입니다. 등로는 바로 우측으로 오르면 됩니다. 길은 널널하게 이어지고 묘지 터를 만들어 놓은 너른 곳으로 이어지며 이곳에서 지나온 월롱산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아까 월롱산에서 이 부근을 바라 볼 때 사각형의 푸른 모양을 한 곳이 바로 이곳이군요. 지긋지긋한 개 짖는 소리를 듣습니다.
12:36
부대 철책을 만나게 되는데 기간산 노루막이는 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관계로 오르지 못하고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철책을 따라 진행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구간을 지나던 선답자들의 산행기에 나오는 짖는데 일가견이 있다고 한 그렇게 유명한 진돗개 비슷한 녀석이 부대 팬스 안에서 죽자살자하고 짖어대고 있는 것입니다. 군사도로를 따라 조금 진행하다가 잡초로 덮힌 왼쪽으로 표지띠를 따라 팬스를 따릅니다. 부대 자체가 마루금이 지나므로 당연한 방향 설정입니다. 교통호를 따르다 철거된 철조망도 지나고 희미한 길을 지나다 보면 포장도로가 나옵니다. 그런데 방호벽이 있는 이 도로를 그냥 내려서는 방법은 없습니다. 여기서 부득이 하게 왼쪽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내려가면 죄송스럽게도 민가 마당을 통해 나가게 됩니다. 개 두 마리가 죽어라고 짖어대지만 가끔 이곳을 지나는 손님으로 인식을 하고 있는 듯 거의 건성으로 짖어댑니다. 주인이 듣고 있으니 최소한의 자신의 의무를 해야한다는 책무를 지고 있는 듯합니다. 그 집을 나오면 바로 21번 도로가 있는 삼거리입니다. 방호벽을 바라보고 방호벽 왼쪽으로 오릅니다. 그러면 고성이씨묘지 군(群)이 나오고 잠시 뒤로 펼쳐지는 기간산 마루금을 감상하며 물 한 모금을 마십니다. 또 철조망을 만나게 되는데 흐름을 따라 왼쪽으로 진행을 합니다. 키 작은 소나무 숲을 헤치고 진행을 하게 됩니다. 낡은 철조망을 밟고 진행하면 편안한 솔잎을 밟으면서 진행을 할 수 있는 기분 좋은 길이 나옵니다. 우측으로 브럭으로 만든 용도 폐기된 창고같은 곳을 지나게 되고 가볍게 오름을 타면 작은 수렛길을 만날 수 있습니다. 북쪽으로는 마을 하나가 보이고 저는 그저 직진을 하여 내려온 길 반대로 올라섭니다. 산불 흔적이 잇는 철조망 지대를 또 지나게 되고 전봇대가 있는 작은 도로를 건너서게 됩니다. 이곳도 수렛길이라고 불러도 됩니다. 거기를 넘어서면 등로는 희미해지고 흐름을 따라 진행하다보면 좌측으로 건물이 보이는 길을 따라 나가면 조망이 탁 트이면서 공장지대가 나옵니다. 이곳에서의 정맥길은 이 등로를 안고 도는 '⊂'자 형국입니다. 양 옆으로 공장을 두고 팬스가 쳐져 있어 가운데로 진행하게 되어 있는 곳도 이곳입니다. 그러면 왼쪽으로 평산신씨 묘지가 나오고 숲에 반이 묻혀 있는 '신형교회'라는 표석(標石)이 있는 310번 도로가 있는 바구니고개로 떨어지게 됩니다. 이곳에서의 들머리도 찾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대전차방호벽을 나가면 법흥리 버스정류장을 만나게 되는데 그곳보다는 여기서 즉 표석
맞은편에 있는 숲을 치고 올라가는 편이 낫습니다. 그러고보니 이제부터 법흥리에 들어서게 되는군요.
각설하고 정맥에 다시 올라서면 왼쪽으로 공장지대의 지붕들이 보이고 다시 뽀송뽀송한 감촉을 발에 느끼면서 조금 오르면 아스팔트가 나오면서 공원묘지(재단법인 기독교상조회)로 이어집니다. 좌우로 시원하게 조성된 공원묘지인 이곳에서의 진행은 정면으로 보이는 산불감시초소를 보고 진행을 하면 됩니다. 여기서 고인들에 대한 자손들의 진정한 효가 무엇인지를 배우게 됩니다. "조상에 대한 효심은 관리비 납부부터 시작됩니다." 대단한 진리이며 지나는 산객으로 하여금 고개를 끄떡이게 합니다. 저는 정말이지 이보다 현명하고 자신들의 의사를 소비자에게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는 문구는 더 이상 없다고 봅니다. 정말 간결하고도 의미심장함이 함축된 메시지입니다. 그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마루금 정상(131m)에 올라서면 이제 지나 온 기간산이나 월롱산 그리고 LG LCD 단지 까지 조망이 되는 아주 조망이 탁월한 곳입니다.
15:46 그런데 이곳에 131봉 삼각점이 있다는 말을 들은 것 같아 삼각점을 찾아보지만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찾기를
15:47
2011. 10. 9.
10:27
오늘은 별 무리없는 산행이라 집에서 느긋하게 나와 진행을 하게 됩니다. 합정역까지 전철을, 합정역에서는 2200광역버스로 이동하니 교통 또한 편리합니다. 지난 번 걸음을 멈추었던 경화공원묘지 옆 각시고개에서 시작을 합니다. 익히 보았던 '대광물류센터'가 보입니다. 그 옆으로 축대를 치고 올라가 숲속으로 들어갑니다. 바로 보현산(108m)입니다. 아무 것도 볼 수 없고 다만 깃대 받침만이 흔적만 남았을 따름입니다. 여기서 크게 좌틀하면 낡은 철조망이 나오고 이옷이 예전에는 훈련 교장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군부대 경고판도 보이는데 이 철조망을 따라 등로는 편하게 이어집니다. 가끔 왼쪽으로 조망이 트이는 곳에서는 공원묘지는 물로 멀리 산불감시초소까지 보일 정도입니다.
10:51
이제 그 군부대 훈련장을 빠져나갑니다. 그러면 예습을 할 때 보았던 일송정 간판이 눈에 들어옵니다. 다음 진행이 좀 난감합니다. 그런데 지형을 살펴보면 마루금은 이 일송정을 지나 그 옆의 주택을 따라 진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주거침입은 할 수 없으므로 일송정 앞의 길을 따라 아스팔트 골목 도로를 진행을 하다가 산과 마주치는 골목의 끝에서 우틀을 하면 고갯마루가 보이는데 그 곳이 아까 주택 위로 지나는 마루금과 이어지는 것을 그려 볼 수 있습니다. 가짜인지 모형인지 모를 야포 3기를 확인할 수 있는데 그 옆의 병사는 쓰러져 사망하였습니다. 직진을 하다보면 절개지가 나오고 그 절개지 안으로는 공장이 있으므로 이곳을 통과할 수 없습니다. 하는 수없이 왼쪽 묘지 옆을 지나 도로로 나가야 합니다. 그러고는 탄현산업단지 입간판을 따라 우틀하여 아까 그 마루금을 따릅니다. 아뿔사 진행방향도 가파른 절개지가 가로막고 있는데 그 절개지에는 잡목과 덩굴이 발목을 잡고 팔뚝은 가시가 찔러대고 그리고 뺨은 나뭇잎이 튕겨옵니다. 정글도로 잡목을 헤치고 진행은 하지만 역부족입니다. 그렇게 봉우리 옆을 진행하는데 이제는 아카시아 군락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좁은 길을 미끄러지듯이 어렵게 내려오니 도저히 진행이 불가할 정도로 아카시아가 길을 막고 있어 이를 제거하면서 진행하느라 땀 좀 뺍니다. 오른쪽으로는 공장지대가 왼쪽으로는 비어 있어 잡목이 가득한 공장부지 사이의 좁은 마루금을 악전고투하며 진행을 합니다.
11:35
사투(?)를 벌인 끝에 조금은 안전한 곳으로 올라섰습니다. 이제 조금 부드러워진 곳을 걷게 되는군요. 사실 지나온 마루금도 우너래는 이런 길이었는데 공장부지를 만드느라 산을 깎아야 하고 깎은 자리인 절개지에는 나무나 풀같은 것으로 덧칠을 하다보니 가장 푸르게 보일 수 있는 덩굴나무와 아카시아 등을 마구잡이로 식재한 것 같습니다. 방카를 지나니 삼각점이 있는 99봉이 나옵니다. 임진강이 다시 조망되기 시작하는 곳이 이곳입니다. 뒤로 임진강이 보이고 북녘의 산하가 보이는군요. 언제나 가 볼 수 있으려나... 진행방향으로는 드디어 오늘의 종착역인 오두산이 보입니다. 여기까지 참 오래 걸려서 도착을 하게 되는군요.
11:59
19번 도로로 내려섭니다. 이곳 역시 절개지로 인하여 도로를 따라 내려와야 합니다. 상가 앞 주차장을 지나 성동 사거리 360번 도로 횡단보도를 건넙니다. 이 도로로 인해 마루금이 끊겼으므로 이 구간 들머리는 교통안내판 옆에 조그만 공터 뒤로 표지띠를 따라 진행합니다. 땅이 푸석거려 오르기가 쉽지 않지만 일단 오르면 호가 파여 있습니다. 등로를 따라 숲을 빠져나와 조망이 트인 곳으로 가니 앞에는 공사장으로 마루금을 파해치느라 난리도 보통 난리가 아니군요. 그 뒤로는 모텔이 하나 보입니다. 그 공사장을 치고 올라갑니다. 아마 제 뒤로 다음 번에 이 정맥길을 지나시는 분들은 또 다른 건물과 다른 형태의 정맥을 보게 될 것 같습니다. 등로가 좀 휘어 돌게 되었군요소로로 떨어집니다 차 한 대 정도는 지날 수 있는 곳입니다. '뜰 茶)라는 나무 기둥에서 좌틀하여 숲으로 다시 들어섭니다. 임도가 나오기는 하지만 마루금을 고집하다보면 폐타이어 벙커를 하나 지나게 되고 너른 개활지 같은 곳이 나오는데 양 옆으로 양옆으로 임도가 있으나 가운데 숲으로 치고 올라갑니다. 그러면 철조망을 마나고 개구멍을 통하여 옛 초소로 들어가 왼쪽으로 트인 조망을 바라보면서 타이어 계단을 따라 오릅니다.
12:43
지금은 운영하지 않는 폐초소가 나오는군요. 이곳이 117봉입니다. 여기서는 좀 더 확실하게 임진강과 북녘땅을 볼 수 있군요. 자유로도 보면서 주위 경관에 빠져있다가 다시 발길을 돌리면 바로 만나는 게 110봉입니다. 이제는 내려가는 길만 남았습니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 내려오면 바로 임도를 만나게 되고 그 임도를 따라 내려가면 철조망을 지나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듯한 포장도로를 만납니다. 이 고가도로 아래로는 자유로가 지나고 이 고가 끝에는 백마부대 용사들이 근무를 서고 있는 초소가 있습니다.
그 고가도로 위에서 보는 자유로로 많은 차들이 저와는 상관없이 자신들의 목적지로 향하고 있습니다. 고개를 돌려 117봉과 110봉을 보면서 아들같은 초병들과 인사를 나누고 인도를 따라 최종 목적진인 오두산을 오릅니다.
13:10
오두산에 올라 저를 기다리시던 무원마을 선배님들과 조우를 하면서 축하주를 받습니다. 이로써 2009. 9. 26.부터 시작한 한북정맥과 한북정맥에서 분기한 지맥, 단맥에 대한 답사를 2년에 걸쳐 거의 마치게 되었습니다.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여러분들께서 찾지 않았던 짧은 줄기를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나름대로의 자료를 만든 것이 보람이라면 보람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다시 큰줄기로 발걸을을 옮겨 또 줄기 찾기에 나서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북정맥은 북한강과 임진강을 가르는 산줄기이기 때문에 신경준님이 말씀하신 한북정맥은 장명산을 끝으로 한강이나 임진강 혹은 바다가 아닌 일개의 지천인 공릉천에서 마무리하는 줄기임을 감안하여 볼 때 한강봉~장명산 구간은 도봉지맥이 맞고 한강봉~오두산 구간은 한북정맥에 편입되어야 한다는 박성태 선생님의 신한북정맥 이론이 타당하고 여겨집니다.
가지 1. 한북복계단맥(漢北福桂短脈)
한북정맥에서 30분 정도를 올라오면 삼거리를 만나는데 온전한 한북정맥은 좌틀하여야 하고 여기서 우측으로 들면 한북정맥에서 갈리는 줄기를 따라가게 됩니다. 이 줄기는 복계산으로 진행을 하는 소위 한북복계단맥입니다. 매월당 김시습의 전설이 전해오는 이 산은 한북정맥에서 남한 지역에서 가지를 친 산줄기 중 제일 처음에 시작되는 줄기가 이 복계단맥입니다. 비록 길이는 길지 않더라도 충분히 자기 위치를 찾을 수 있는 의의가 있는 단맥입니다. 복계산으로 가는 줄기는 일단 깊은 안부로 두 번이나 떨어졌다가 줄을 타고 오르는 등 등로가 조금 험합니다. 조심스럽게 낭떠러지가 있는 곳을 지나면 복계산을 볼 수 있는 헬기장에 들어서게 됩니다. 복계산은 완전한 육산(肉山)의 형태를 갖추고 있습니다. 2시 방향으로 보이는 비상도로를 따라 눈을 옮기면 대성산이 바로 보이는 등 줄기가 하나는 수피령으로 이어지고 다른 하나는 봉오천으로 떨어지는 줄기입니다. 여기서 복계산까지는 10여 분 힘 좀 들여야 합니다. 정확하게 복계산 삼거리에서 정상까지는 30분이 걸리는군요. 여기서 실제 마루금은 747고지와 748.2봉을 지나 남대천으로 흘러들어가는 지류로 잠기게 되는데 민간인출입금지지역이라 매월대 방향으로 진행을 하게 됩니다.
삼각점이 있는 복계산(1054m) 헬기장을 오르는 데에는 고도는 높아 보이는데 그다지 힘이 들지 않는군요. 이곳에서의 조망은 너무나 좋습니다. 우선 정남 방향으로 수피령에서 올라와 바로 만나는 촛대봉 봉우리가 뾰족하게 서 있고 그 뒤로 한북정맥의 줄기가 힘차게 흐르고 있습니다. 그 뒤로 줄기는 1070봉을 빚고 복주산을 넘어 멀리 화악산 그리고 오른쪽으로는 광덕산을 세웁니다 그 옆으로 상해봉이 보이며 그 상해봉의 산줄기인 상해단맥은 우측으로 뻗어 오고 있습니다. 그 상해단맥 뒤로는 금학산이며 보개지맥 줄기가 보이고 왼쪽으로는 적근산과 대성산 그리고 두류지맥의 연봉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습니다. 북쪽으로는 철원평야와 비무장지대도 보이며 그 우측으로 오성산도 보이며 이름 모를 연봉들이 줄 서 있습니다.
매월대니 촛대봉, 수피령 등 이정표가 있는 것을 보니 이제는 온전한 제도권 산으로 들어온 느낌입니다. 이정표가 있다면 등로는 고속도로라는 말에 다름 아닙니다. 그렇다고 하여 싱겁다는 표현은 절대로 아닙니다. 하산을 시작하다보면 철조망을 만나게 됩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민간인 출입금지 지역이었다는 반증입니다. 이정표를 따라 내려오다 보면 헬기장을 하나 만납니다. 삼각봉이라는 곳을 지나니 매월대 방향으로는 등산로가 폐쇄되었다는 '출입금지' 안내판을 만납니다. 등산로가 험하여 안전사고가 자주 일어난다는 얘기를 듣긴하였는데 바로 그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안전시설을 하여야 할 것 아니냐는 생각을 갖긴는 한데 어차피 매월대라는 멋진 곳을 감상하려면 맞은편 줄기인 이 방향으로 내려가는 게 오히려 나을 것이라는 생각에 긍정적으로 마음먹습니다. 멋들어진 노송을 지나니 노송 쉼터가 나오고 거기서 매월대를 감상합니다. 시나 한 수 읊을까 하는 생각도 갖지만 워낙 글재가 없어서... 복계산의 유래가 적혀져 있는 안내판 뒤로는 얼어붙은 매월대 폭포가 있습니다. 하산길에 간이 화장실 옆으로 매월대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나게 되는데 여기도 출입금지 팻말이 붙어 있습니다. 갈림길 좌측 뒤로는 드라마 '임꺽정' 촬영 세트가 보이고 주차장 앞으로 매점이 있어 산객들로 하여금 라면이나 물 등 기본적인 소모품을 파는군요. 매점 사장님의 도움으로 봉고차를 타고 와수리로 나와 서울로 올라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습니다.
가지 2-1. 한북두류지맥 (漢北頭流枝脈)
수피령에서 약 3시간 정도 걸으면 '1070봉'에 오릅니다. 아래에는 벙커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갈라지는 지맥이 두류지맥으로서 이 두류지맥은 실내고개를 지나 만산삼거리에서, 하나는 ①만산을 지나 노적봉을 지나는 약13.9km의 만산단맥, ②또 다른 줄기는 그 삼거리에서 우틀하여 재치봉에서 갈라져 백적산을 거쳐 홍고개를 지나 화천읍의 성산으로 떨어지는 약 24km의 백적단맥, 그리고 ③그 건너에 있는 장군봉은 아쉽게도 자료를 확인하기 어려워 생략을 하고 ④그 아래에 있는 줄기로 두류산 옆을 지나 독산을 지나 새고개, 북고개로 진행하는 약22.7km의 두류지맥이 그것들입니다. 물론 어느 분은 810고지에서 갈라져 제법 이름이 있는 토보산으로 진행을 하는 20.06km 구간을 두류지맥이라고도 보지만 '산줄기는 물을 만나 그 명을 다하는 구간'을 맥이라고 하는 통설에 따른다면 당연히 두류지맥을 북고개까지 연장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정도의 거리라면 '단맥'으로 불려야 할 것인데 아무래도 두류에서 갈리는 줄기들이 많기 때문에 '지맥'이라는 이름을 부여한 것 같습니다.
07:12
이 1090봉부터 실내고개까지의 거리는 3.7km로 정리가 되고 겨울에 눈이 얼어붙었을 경우 이곳까지 오르는데 1시간35분 정도가 걸리니 내려가는 데에는 한 시간이면 족할 것입니다. 내려가는 길의 우측에는 벌목해 놓은 나무들이 산판차에 실려가기를 기다리는 듯 한곳에 가지런히 쌓여져 있습니다. 그 길을 임도를 따라 내려오면 '입산통제'니 '산림유전자보호구역'이니 하는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고 '실내고개'라는 표석이 서 있는 실내고개에 도착합니다. 실내고개는 명월리와 다목리를 구분하는 고개로서 박달 동북쪽 긴계곡에 있는 마을. 내가 있어 '시래마을'에서 음운이 변하여 실내(實內, 實乃)로 바뀌었다고 하는군요.
08:12
실내고개에 도착합니다. 실내고개에서 마루금을 이어가는 방법은 고갯마루에서 시멘트 포장을 따라 오르려면 군 부대를 정문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불가하고 실내고개를 넘어 다목리 방향에 있는 실내고개 표석 뒤를 보면 나 있는 폐타이어 계단을 따라 이동을 하여야 합니다. 그 계단을 오르노라면 나무로도 계단을 만들어 놓았을 정도로 등로 사정은 양호한 편입니다. 그러면 부대 철조망이 보이고, 그 철조망 왼쪽을 따라가면서 뒤로 희미하게나마 보이는 1090봉으로 향하는 군 비상도로가 보입니다. 부대 후문으로 돌아가는 길도 아주 좋습니다. 이 곳을 지난 오래된 산행기를 읽어보면 부대를 뚫고 가는 길이 없고 부대에 아무리 통사정을 하여도 산객을 위하여 부대 연병장을 통과시켜줄 리도 만무하여 하는 수없이 실내고개 못미쳐 명월리 방향에서 무조건 치고 마루금으로 올라가느라 죽을 고생을 하였다고 하는데 아마도 이런 일이 빈번해지자 고육지책으로 부대에서 산객들을 위하여 어느 정도 배려를 해 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등로는 군 비상도로를 따라가면 되니 너무 순탄한 시작입니다.
08:44
'백마촌'으로 진행한다는 군 이정표를 따르니 너른 헬기장이 나오지만 사위가 온통 뿌옇게 안개가 끼어 있어 제대로 조망이되지 않습니다. 할 일 다하면서 15분 정도 걸으면 우측으로 크게 길이 나 있는 삼거리가 나오고 그 삼거리에 표지띠 몇 장이 날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직진을 하면 만산 방향으로 진행을 하게 되니 여기가 만산단맥 분기점입니다. 온전한 두류지맥은 아래로 방향을 틀어야 합니다. 그러면 다시 삼거리가 나오고 진행 방향을 따라 감각적으로 우틀을 하면 표지띠가 반겨줍니다. 신뢰할만한 표지띠이므로 무조건 따르면 됩니다. 다만 이 표지띠의 최종 목적지가 어디인지 확실치 않으므로 "내가 오늘 만산단맥으로 운행할 것인가 아니면 백적, 장군, 두류..." 등에 따라 가고자 하는 코스를 정확하게 설정한 다음 따라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령 백적을 운행하려다 두류를 운행하게 되는 우(愚)를 범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 분들은 각 단맥들까지 운행을 마쳐 갈림길마다 다 표지띠를 달아 놓는 수고를 아끼지 않으신 분들이기 때문에 잘못하면 헷갈리기 십상이어서 나름대로 좋은 일 하신 분들 때문에 알바를 했다고 오해하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지맥만 길이 있는 게 아니고 단맥도 길이기 때문입니다. 계속 군비상도로를 따르다 보면 그 길에 빠져 마루금을 놓칠 수도 있습니다. 아까 헬기장에서 대강 마루금의 진행방향을 보아 두었으니 이 정도에서 숲으로 들어가 마루금을 타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 오른쪽으로 표지띠가 보입니다. 혼자 산행을 하다보면 잡무(雜務)에 시간이 많이 소요됩니다. 사진을 찍으랴 기록을 하랴 그리고 표지띠 다는 작업까지.....이렇게 추운 날은 장갑을 낀 채로 표지띠를 빼서 달아야 하니 시간이 더 소요되는 것 같습니다.
09:26
드디어 만산령에 도착합니다. 1983년 완공한 군 비상도로인데 아까 마루금을 타기 위하여 숲으로 들어오지 않고 비상도로를 따라 왔더라도 똑같이 여기서 만나게 됩니다. 억울해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래도 정상적인 마루금을 따라 진행해야 속이 풀리니까 말입니다. 만산령 기념비를 뒤로 하고 본격적인 마루금에 진입을 합니다. 바로 앞 산등성이로 오르면 됩니다. 잠시 너저분한 잡목을 헤치고 오르면 온전한 등로에 접어들게 됩니다. 이제 마루금을 걷는 느낌을 가지게 되는군요. 하늘이 조금 게이고 있는데 바람은 더 강해진 것 같습니다. 모자의 귀마개 부분을 내리고 멀티프를 코까지 덮고 그 모자 위로 자켓의 후드도 덮습니다. 장갑은 면장갑을 하나 더 끼어 손가락 끝의 보온에도 신경을 씁니다. 꼼지락거리느라 시간이 조금 지체되긴 합니다. 40분 정도를 지나면 움푹 파여진 곳에 도착을 하고 우측으로 등로가 선명합니다. 여기가 재치고개이군요. 오른쪽 가파른 경사로 내려가면 게곡을 따라 대명사 절터에 이르게 됩니다. 탈출로로도 손색이 없는 곳입니다. 치고 올라가는 길이 된비알이군요. 무척이나 미끄럽기도 하고... 그 재치봉을 넘으면 안부를 지납니다.
10:36
잡목숲에 별 특징이 없는 백적단맥 갈림봉입니다. 잡목들로 인하여 조망은 되지 않는 곳이지만 이 봉에서 좌측으로 진행을 하면 백적단맥으로 진행이 되는 곳이니 상당히 중요한 포인트가 되는 곳입니다. '산친구 산악회'에서 백적단맥 방향과 두류지맥 방향으로 이정표를 설치해 놓아 산님들의 운행에 편의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직진을 합니다. 상당히 분위기 있는 곳을 지나게 됩니다. 가느다란 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이 높게 서 있고 그 나무들 사이로 하얖게 눈이 살짝 덮힌 곳을 지나면 그 눈을 뚫고 고개를 내민 누렇게 변색된 풀들이 흰색과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입니다. 흰색, 고동색 그리고 누런 색 등 세 가지 색 밖에 없는 곳 같습니다.
11:03
삼각점이 있는 860봉을 만납니다. 이 봉우리는 평평한 사거리로서 여기서 좌틀을 하면 또 하나의 단맥인 장군단맥으로 진행을 하는 갈림길인데 실상 지도에는 표기 되어 있지 않지만 진행방향 우측 뒤로 분명히 길이 나 있고 그 길은 절터로 내려가는 길임을 마치 그곳에서 약초를 캐러오신 동네분들을 만나 확인을 하였습니다. 5분 후 다시 우회도로이자 백마계곡으로 빠지는 길을 만나게 됩니다. 길의 윤곽이 뚜렷하여 호젓함을 느끼며 '오지 산행'의 여유로룸을 느낄 수 있는 구간입니다. 고지임에도 평평한 이곳을 지나노라면 한결 머릿속의 복잡했던 생각들이 하나씩 정리되어 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제 두류산의 모습도 서서히 드러날 시간입니다.
11:39
헬기장을 지납니다. 정말로 이 구간은 멋드러진 구간이군요. 두류지맥의 등로는 생각보다 훨씬 명확하고 원시림이 가지고 있는 어지러움보다는 누군가에 의하여 잘 관리된 듯한 느낌을 주는 곳입니다. 등로도 직선이 아닌 S字 형태로 굴곡이 있어 혼자 산행하는 이로 하여금 무료함도 덜게 해주는 배려까지 하여 주고 있는 곳입니다. 또 용도폐기된 넓은 헬기장 같은 공터를 지납니다.
11:57
드디어 970봉입니다. 지맥의 본류는 왼쪽으로 진행이 되지만 두류산은 직진을 해야 합니다. 물론 이정표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산줄기의 이름이 명색이 '두류'이고 그 이름을 차용하였을 정도로 의미 있는 봉우리인데 그곳을 가지 않으면 명분이 설 것 같지 않습니다. 두류산을 다녀오기 위하여 비탈길을 조심스레 내려갑니다. 그러면 전혀 기대하지 않은 이정표를 만나게 됩니다. '등산로 입구'와 '창안산 정상'이라고 씌어진 이정표입니다. 사실 화천군은 등로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한북정맥이나 화악지맥을 하면서도 화천군 지역에서는 변변한 이정표 하나 구경한 적이 없었는데 이런 것을 보다니...포천시나 남양주시의 그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 같습니다.
12:11
두류산(993m)을 오르지 않았으면 크게 후회할 뻔 하였습니다. 두류산 정상 바로 전 암봉이 오늘 구간 중 거의 마지막으로 조망이 되는 곳이기도 한데 아침과는 달리 이제 날씨도 좋아져 조망도 끝내줍니다. 동쪽으로는 한북 정맥을 배경으로 실내고개로 향하는 도로가 보이고 그 우측으로 대성산이 보이고 제가 지나온 봉우리들이 이어집니다. 조금 더 우측 즉 북쪽으로 가면 만산단맥 줄기와 백적단맥 등이 눈에 들어오고 조금 전에 지나온 두류지맥의 주 능선은 이리로 꿈틀대며 힘차게 달려옵니다. 조망이 전혀 되지 않은 두류산 정상에 오릅니다. 그런데 제가 분명 사진상으로 보았던 정상석은 보이지 않고 노란 표지판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군요. 삼각점을 확인하고 바로 되돌아 내려 갑니다. 아까 본 '등산로 입구' 이정표를 지나고 조금 된비알을 오르면 두류삼거리입니다. 왕복 20분이면 충분합니다. 빵으로 점심 대용을 합니다.
13:35
조망이 되지 않는 마루금을 걷다보니 갑자기 앞이 확 트이는 곳으로 떨어집니다. 저 멀리 어떤 표지석 같은 것이 나타나고 마루금 뒤로는 돌계단도 보이는 곳이며 아주 멃게 군비상도로가 이어지는 곳입니다. 명지령입니다. 참으로 군인들 고생 많이 하였습니다. 그 기념비 바로 뒤로 난 길로 따라 올라갑니다. 등로는 굉장히 가파릅니다.
14:03
그러면 놀미뒷산(928.9m)이라고도 불리우는 삼각점이 있는 독산에 닿습니다. 놀미뒷산이란 이름은 토보산 좌측아래 계곡이 마을 이름이 놀미라고 하여 그 뒷산이니까 붙여진 이름 같은데 이명(異名)은 독산이라고도 합니다.
놀미란 떡우지 북서쪽에 있는 마을. 화천놀미로 가는 길가가 된다. 놀미골, 판미동(板尾洞)이라고도 부른다. 동네 뒷산이라서 놀미뒷산이라고 부릅니다.
이 봉우리는 화천군 하남면과 사내면 그리고 춘천시 사북면의 경계가 되는 곳입니다. 직진을 하면 용담천을 건너 화악산 줄기하고도 연결이 되는 곳입니다. 지맥은 여기서 크게 좌틀합니다. 가야 할 마루금이 힘차게 뻗어 있습니다. 가운데 799.7봉이 보이고 그 뒤로 보이는 봉이 756봉으로 식수통이 있는 봉우리입니다. 뒤를 돌아보아도 조망은 그다지 나쁘지 않습니다. 진행방향으로 좌측에 장군단맥과 백적단맥도 보이고... 겨울임에도 따뜻한 햇볕이 오히려 오수를 즐기기에도 괜찮은 날씨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15:15
왼쪽으로 바위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좀 위험하므로 주의를 해야 하는 구간이군요. 좌측 뒤로 이동하여 내려오는데 만만치 않습니다. 오늘 구간 중 가장 위험스러워 보이는 구간입니다. 큰 바위 사이를 우측으로 붙어 내려오는 구간인데 아무 것도 안전 장치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초봄이나 이른 겨울에 살짝 얼음이 얼었을 경우 미끄러지기라도 하는 날이면 절벽 아래로 떨어지게끔 되어 있는 곳입니다. 가운데 희미한 등로를 조심스럽게 진행하여야 합니다. 벽에 붙으면 절대로 안 됩니다. 발을 의지할 곳이 쉽지 않으므로 나무와 바위의 홈을 이용하여 간신히 내려옵니다.
15:19
그 지점을 어렵사리 빠져나오자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는 799.7봉에 도착합니다. 이 봉우리를 지나면 평탄한 등로가 이어지다가 작은 봉우리에 오릅니다. 아까 본 군 비상 식수통이 설치 되어 있는 봉우리입니다. 식수통봉이라고 불러야 하나요? 여기서 크게 우틀합니다. 직진방향으로는 군 참호 시설이 되어 있는데 제대로 길이 나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등로는 초겨울 답게 누런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16:16
삼각점이 나타납니다. 813.4봉입니다. 여기서 온전한 두류지맥은 계속 직진을 하여 달거리고개, 새고개, 북고개를 거쳐 북한강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시간상의 문제도 있으나 또 다른 이유는 그 쪽 길이 너무 희미해 오늘은 여기서 우틀하여 토보산 방향으로 진행하기로 합니다. 태양은 화악산 뒤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작은 둔덕봉 하나를 넘자 이제는 완전히 석양을 느끼게 되고 그러니까 더 서두르게 됩니다.
16:50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인 토보산에 이릅니다. 군 참호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군요. 바로 아래에 오탄리 마을이 보이고 멀리 도솔지맥에서 갈라진 산줄기들이 힘차게 춘천을 향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사내천의 굽은 물줄기가 제가 진행해 온 구불구불한 산줄기와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등로는 오탄2리 대추나무 마을 한가운데로 떨어지는군요. 정확한 등로를 따라 내려와 무사히 마을 앞 버스정류장으로 내려옵니다. 오른쪽에 보이는 가게에서 맥주 한 캔을 사서 시원하게 갈증을 해소합니다. 사창리로 가는 버스는 오후에는 매시 40분 경이면 이곳을 지난다고 하는군요. 17:40경 춘천발 사창리 착 버스를 타고 사창리로 이동을 하여 내일 백적단맥 산행에 대비하기 위하여 사창리에 있는 찜질방에 도착하여 푹 쉽니다.
가지 2-2. 한북두류백적단맥(漢北頭流白積短脈)
2010. 12. 11.
두류지맥에 이어 두류백적단맥을 진행합니다. 어제는 비도 오고 눈도 오는 등 날씨에 변수가 많았으나 요즘 일기예보가 제대로 맞아 떨어져 기상대의 예보에 따라 별일은 없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산행을 시작합니다. 다만 구간진행은 실내고개~백적산 갈림봉까지는 이미 진행을 하였기 때문에 오늘은 진입구간을 절터에서 시작하기로 합니다. 사창리에서 단골이 된 찜질방에서 나와 같은 사장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아침을 먹은 후 택시(8,000원)를 타고 현장에 도착합니다.
도면상 '대명사'가 지금의 '절터'입니다. 지도에는 '대명사'라는 절이 있는 것으로 나와 있지만 실제로는 예전에 있던 '대명사'라는 조그만 개인 소유의 사찰을 일반인이 구입하여 그 터에 팬션을 지어 지금은 삼신각 정도만 그 흔적이 남아 이곳이 절이 있었던 곳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 절터 앞의 큰 공터에서 내려 이곳에서 오늘 산행을 시작합니다.
07:56
주차장같은 공터 뒤로 난 길로 들어섭니다.
그러면 이렇게 너른 길의 갈림길이 나타납니다. 왼쪽으로는 계곡이 시작되고 오른쪽으로는 이른바 백마계곡으로 오르는 구간이 시작됩니다. 예전에 베트남으로 파병을 할 즈음에는 백마부대가 이곳에 주둔하고 있어서 이 계곡을 백마계곡이라 부른다고 하는군요.
저는 왼쪽의 계곡으로 달라붙어 산행을 시작합니다. 낡은 표지띠 하나가 그 계곡 진입로를 알려 주고 있습니다. 중간에 비닐 움막을 만나게 됩니다. 아마 무속신앙을 믿는 이의 기도터인가 봅니다.
한 시간 정도 멀리 재치고개가 보이는군요.
09:08
드디어 재치고개(867m)입니다. 절터에서 한 시간 조금 더 걸리는군요. 익히 지나온 곳인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가파르게 올라갑니다. 눈이 덮인 재치봉을 넘어 조금 더 진행을 합니다.
09:29
백적단맥 갈림길(995m)에 도착합니다. 직진을 하게 되면 두류산으로 진행을 하게 되므로 백적산을 진행하여야 하는 저는 왼쪽으로 방향을 잡습니다. 만산 방향을 조망해 보지만 잡목 때문에 여의치 않습니다. 두류산 방향도 역시 마찬가지이고...
백적산을 향해 가는 마루금은 우선 내리막부터 시작합니다. 내림길을 보니 눈이 많이 쌓여 있습니다. 아예 이곳에서 아이젠을 차고 스패츠까지 착용합니다. 여기서 10여분 정도를 지체하게 되는군요. 이름 없는 무명봉 하나를 지나노라니 멀리 백적산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군요.
10:31
아무런 특징없는 861봉을 지납니다. 왼쪽으로 지난 번 지난 만산이 보이는군요. 그 만산에서 진행을 하면 만나는 '화천 8경' 중의 하나인 비래암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직접 지날 때 그 면면을 제대로 알 수 없었는데 이렇게 맞은 편에서 보니 그 비래암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나무에 가려 그 모습을 확실하게 볼 수는 없지만 정면에서 보는 그 모습은 마치 닭벼슬 같군요.
11:19
오늘 최고의 조망바위를 만납니다. 비록 남쪽으로만 조망이 되지만 마음껏 즐겨봅니다. 멀리 오른쪽의 화악산과 가운데 실운현 그리고 응봉이 보이는군요. 그 앞으로는 갈라진 명지령을 중심으로 왼쪽으로는 놀미뒷산 오른쪽으로는 두류산 줄기가 그리고 그 앞으로 보이는 높은 봉우리가 장군봉이군요. 장군단맥은 진행하지 않으려 했는데 여기서 그 모습을 보니 또 마음이 달라지는군요. 그런데 그 장군봉 부근에는 군 부대 사격장의 표적지가 있기 때문에 위험하긴 하다고 하는군요. 이제 비래암의 모습을 좀 더 확실하게 관찰할 수 있군요. 앞면은 세로 자른 듯이 바위가 드러나 있고 그 뒷면은 신기하게도 숲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생각했던 것 같이 바위 덩어리가 불룩 솟아오른 게 아니라 풍화작용이든 아니면 어떤 지질 작용에 의해서였든 앞면만 깎여진 것 같습니다. 폐헬기장을 지나니 그 바로 뒤가 삼각점이 있는 백적산(883.5m)입니다. 뭐 이 단맥의 주봉이라고 해 보았자 별 게 없습니다. 다만 잡목을 좀 자르고 나무를 치워서 그 예우는 조금 갖추어주려고 노력은 한 것 같습니다. 화천군은 산천어축제에만 목을 매었지 등로 정비에는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고 있습니다. 정상석은 없지만 '친구산악회'에서 이곳이 백적산이라는 표지를 만들어 붙여 놓는 수고를 해 주셨습니다. 백적산이 그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은 이 단맥을 지나면서는 제대로 파악할 수 없지만 만산단맥에사 바라보면 확연하게 알 수가 있다고 합니다. 즉 이런 하얀돌이 이 정상 부분에 많은데 이를 반대방향에서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진행을 하다보면 또 하나의 봉우리를 지납니다 왼쪽 참나무 산이로는 멀리 구운리 마을이 보이는데 홍고개까지는 이 구운리 마을을 바로 옆으로 두고 진행하여야 할 것입니다. 다른 곳과는 달리 이곳 마루금의 표고차는 그리 크지 않아 봉우리를 연신 오르내라는 데에도 그다지 힘들다는 것을 느낄 수 없습니다. 하긴 한강기맥의 넘드래재~화방재 같은 곳이 어디 있을라구요.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은 참나무들이 등로 위의 하늘을 가릴 정도이니 여름에는 볼 만 하겠습니다. 이제는 구운리 마을 지나 멀리 탄약부대까지도 눈에 들어옵니다.
12:28
앞에 또 봉우리가 보일즈음에는 이제 조금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즉 지도상에 나오는 713 꺾임봉을 주의하여야 합니다. 일반 등산용 지도상에는 마치 그 꺾임봉에서 바로 급하게 좌틀하여 마루금을 이어가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국립지리정보원에서 발행한 지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등로는 713봉 바로 못미처에서 좌틀을 하는 것으로 나와 있고 250여m 진행을 하여 임도와 만나는 것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현장에 임하여 등로 사정을 살펴보면 이곳이 오지이다 보니 별다른 표지띠나 이정목은 발견할 수 없고 다만 참나무 한그루에 #92이라는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번호표와 그저 나뭇가지에 붙어 있는 '산친구산악회'의 표지띠가 있는데 이를 무시하고 그냥 지나치기 십상입니다. 저는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이 숲속을 두어 번 뒤졌으나 잡목이 심하고 계곡으로 떨어지는 것 같이 지금과는 너무 다른 등로의 모습이어서 다시 마루금으로 올라오곤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앞에 보이는 713봉에서 좌틀하는 산줄기가 분명히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 산줄기라는 것도 꺾임봉 좌측 사면으로 진행을 하니 속기가 더 쉽고 그 길은 이내 잣나무 숲으로 안내를 합니다. 길도 푹신하고 넓으며 선답자의 표지띠(경춘선산악회)도 보여 마음을 적이 안심시킵니다. 그 여유로움에 불필요한 아이젠을 벗고 점심으로 준비해 온 떡까지 먹으며 여유를 부리게 됩니다. 그렇게 30여 분 진행을 하다 보면 왼쪽으로 군비상도로까지 나오는군요. 여기서 더 진행을 하게 되면 대형알바로 이어집니다. 여기서 불현듯 아까 '#92'가 떠오릅니다. 사실 저는 그 번호 숫자가 마음에 걸려 그 아래로도 몇 번씩이나 오르내림을 거듭했었고 그러느라 10여 분 시간도 잡아먹었었는데.... 결국 40여 분을 알바 한 셈입니다.
13:37
맞습니다. 아까 그 번호가 있는 숲도 하나의 산줄기였던 것입니다. 그 줄기와 알바한 줄기 사이로 계곡이 형성되어 있고 그 계곡물의 시초가 작은 물줄기로부터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심오한 명제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순간입니다. 그 물을 건너면서 다시 한 번 독도를 머릿속으로 해봅니다. 5분 정도 진행을 하니 왼쪽 산줄기로 '산친구산악회'의 표지띠가 달려 있군요. 생각건대 이분들도 제대로 독도를 하지 못해 저와 같은 방향으로 갔다가 길을 잘못 든 것임을 알고 이곳까지 진행한 다음 역으로 다시 치고 올라가 등로를 다시 확인하였던 것 같습니다. 결국 지도의 등산로도 713봉에서 바로 좌틀이 아니고 그전 약 100여m 전의 #92에서 좌틀하여 산줄기 같지도 않지만 그 숲을 뒤져 내려와야 한다는 결론입니다. 이제 조금 여유로운 마음이 생기고 따뜻한 햇볕을 받아가며 하만산동에서 구운리로 내려가는 길도 바라보고 철탑도 바라봅니다. 멀리 적근지맥에서 이어지는 화천 해산과 용화산도 보이는 등 조망이 탁 트이는 곳입니다. 이제 군비상도로(임도)를 따라 진행하므로 별 어려움은 없습니다. 특별히 포인트 될만한 곳도 보이지 않고... 다만 송전 철탑이 눈에 들어오므로 이것을 눈여겨 보고 진행을 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이 도로를 따라 15분 정도 진행하다 보면 임도가 유틀하며 내리막으로 내려갈 때 마루금은 다시 산속으로 들어갑니다. 희미한 길을 따릅니다. 그러면 소나무봉을 지나고 #49번 철탑이 나옵니다. 여기서 길이 갑자기 애매해집니다. 철탑 부지 아래에서 주위를 가만히 둘러보면 왼쪽으로 희미한 족적이 나오니 그 급경사를 따라 진행을 하니 공터가 나옵니다. 그 공터에서 바로 앞에 봉우리가 보이고 묘지를 지나니 우측으로는 창고 같은 건물이 보이고 그 소로를 따라 내려오니 차량 통행이 거의 없는 도로가 나옵니다. 홍고개입니다. 변전소 건물이 있고 휴게시설도 갖추어져 있군요.
14:24
물도 마시고 장비 점검도 하면서 조금 쉬다가 교통표지판 뒤로 보이는 길로 진입을 합니다. 여기도 또 군사 비상도로가 시작되는군요. 표지띠도 있을 리 없으니 그저 감각적으로 마루금을 따라 진행하게 됩니다. 즉 이곳은 산길과 임도를 전갈아 왔다 갔다 하는 뭐 그런식의 도로입니다. 그리고 이 지역이 아무래도 군사지역이다 보니 봉우리마다 벙커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호젓한 길도 걷게 되는 등 나름대로 심심하지는 않습니다. 가장 어려운 길은 소나무 숲을 통과할 때 이더군요. 길이 여러 곳으로 갈리는 것 같아 흐름을 찾느라 여러 곳을 두리번 거리게 됩니다. 임도로 진행하면 편할 것도 같지만 아차하는 순간 그 임도는 마루금에서 멀어지게 되고 급기야는 다른 곳으로 가버릴 수도 있으니 이런 지역의 경우 가급적 불편하더라도 마루금을 고집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가끔 군표지목 가령 '//3R 4-1'이라고 쓴 것들도 이곳이 마루금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훌륭한 이정표가 됩니다. 왼쪽으로 구운리의 마을이 하나 보입니다. 오른쪽 사면을 타고가다 보니 방카 굴뚝이 보이는 사거리에 도착합니다.
16:01
이 사거리에서 좌틀하면 화천의 구둔지가 나오고 우틀하면 논미리로 진행하는 길이군요. 이곳의 길이라는 것은 그저 좁은 소로이니 커다란 길을 연상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래된 군 안내판이 이곳이 예전에는 교장이었던 것을 말해 주고 있고 직진을 하여 바로 봉우리에 달라 붙을 즈음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듯한 군통신장비가 나옵니다. 10분 정도 더 진행을 하니 교통호가 보이는 정상(281.1m)입니다. 오랜만에 보는 삼각점입니다. 옆으로 비상도로가 넓게 따라오고 있지만 계속 마루금을 고집합니다. 군 비상도로를 버리고 마루금을 타고 가느라 힘이 좀 드는군요. 넓은 헬기장 같은 곳(311m)에 도착합니다. 헬기장이라고 보기보다는 차량 집결소가 더 맞는 표현 같습니다. 왼쪽 소나무 숲으로 진행을 합니다. 그 길이 초입은 희미하기는 해도 일단 진입을 하면 길이 명백하게 나타납니다. 이곳에서는 진행방향을 성산에 있는 이동통신중계탑을 보면서 이동을 해야 합니다. 큰 헬기장을 하나 더 만나는데 이제는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으니 조금은 서둘러야 할 것 같습니다. 오른쪽으로는 안평리 마을도 보일 정도로 이제는 벌목작업을 한 곳을 지나게 됩니다. 이제 성산도 코앞이군요. 무선중계탑을 보고 진행합니다.
17:09
드디어 북한강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조금만 더 늦었어도 어둠 속의 북한강은 보기 어려웠을 텐데 정말 다행입니다. 성산에 오르니 미니 헬기장이 보이고 삼각점(349.1m)까지 확인을 합니다. 무인산불감시 카메라와 무선중개탑을 보고 서둘러 하산을 시작합니다. 그곳에서 화천시내를 바라보노라니 점점 날은 어두워져 저는 무인감시카메라를 지나 군 교통호를 따라 하산을 합니다. 그 내리막길은 너무 급하지만 등로가 명백합니다. 개 짖는 소리를 들으면서 한전변전소를 지나 화천향교 옆길로 하산을 합니다. 오늘은 마침 화천 산천어축제 점등식을 하는 날이라 시내가 온통 축제 분위기로 주민들이 들떠 있습니다.
가지 2-3. 한북두류만산단맥(漢北頭流白積短脈)
2010. 11. 27.
두류지맥을 할 때 실내고개에서 폐타이어 계단을 올라 만나는 부대 옆을 지나 '백마촌'이라는 군 이정표를 지나자마자 바로 만산 삼거리가 나오고 두류지맥은 여기서 크게 우틀하여 진행을 하였습니다. 그 만산 삼거리에서 직진을 하면 나오는 만산을 오늘 진행하고자 합니다. 사창리에 도착하여 터미널 바로 옆에 있는 찜질방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눈을 뜨고 주변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출발하기 위하여 나오니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올해 첫눈입니다. 물론 얼마전 눈이 잠깐 뿌린 적도 있었다고 하나 이렇게 쌓일만큼 온 것은 아니기 때문에 오늘 이 눈이 온전한 첫눈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예약을 했던 택시는 눈때문에 운행을 하지 않는다고 하는군요. 다행히 다른 택시를 이용(10,000원)하여 실내고개에 도착합니다. 실내고개 고갯마루에서 다목리 반향으로 조금 내려 오면 '실내고개' 표지석을 만나게 됩니다. 이 길로 만산삼거리까지 올라갑니다.
09:17
만산현 갈림길을 지나면 바로 삼각점((914.5m)과 수준점이 있는 헬기장이 나오고 낯익은 표지띠가 맞아줍니다. 상당히 가파른 절개지를 힘들여 내려옵니다. 겨울장비를 챙기지 못해 오늘은 고생을 좀 하게 생겼습니다. 약 50분 정도 걸으니 소위 '고개삼거리'를 만납니다. 오른쪽으로 표지띠가 어지럽게 날리고 있습니다. 이 길로 진행을 하면 상만산동으로 하산을 하게 되는군요. 방카도 자주 보이고 조금 더 진행하자 만산 전위봉에 오릅니다. 오른쪽으로도 희미한 길이 나와 있으나 흐름대로 직진을 합니다. 그런데 그냥 보도 블록 같은 것인지 아니면 오래된 군용 삼각점 같은 것인지 뭔가가 있기는 한데 국립지리정보원의 국가기준점 설치 내역을 찾아보니 없는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10:37
만산에 도착합니다. 해발 976m이니 상당한 높이 입니다. 우측에 삼각점 같은 말뚝이 보이기는 한데 이 역시 삼각점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 '만산'이라는 이름도 공식적인 명칭은 아니며 다만 화천군 상서면 구운리의 만산동 마을 위에 있는 산이므로 편의상 '만산(萬山)이라 명명한 것 같습니다. 약간 가파른 길을 내려와 다시 등에 땀을 내며 오릅니다.
여기서부터 비래암까지는 사실 별로 특이한 뭐도 없습니다. 더욱이 오늘같은 날은 눈이 오고 시계가 완전히 막혔으므로 왼쪽으로 대성산이나 적근지맥 줄기 그리고 오른쪽으로 백적단맥이나 장군단맥 그리고 화악산 등을 못보는 게 아쉽기는 하지만 사실 날씨가 좋다손 치더라도 등로의 사정상 잡목들로 인하여 조망은 별로라는 게 사실일 것 같습니다.
11:36
그렇게 한 시간 정도 걸으니 비래암(688.9.m) 정상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별로 그 정경을 확인할 수 없으나 반대방향인 백적산이나 저 아래에서 본다면 멋진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비래바위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전설이 있군요. 뭐 금강산에 있는 바위가 날아가다가 이곳에 떨어졌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한자어와 더불어 유력해 보이기는 합니다. 즉 飛來라는 말이니 그럴 듯해 보입니다. 그런데 화천군에 따르면 남매간에 얽힌 애틋한 전설이 있는 바위라고 소개를 한 것에 따르면 아마 충주의 어느 고개에 서린 전설과 같은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조망도 안 되고 눈으로 인하여 노면이 상당히 미끄러운 상태이기 때문에 바위가 많은 이곳을 운행한다는 것은 큰 위험에 직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간단하게 추위 속에서 준비해 온 주먹밥을 먹습니다. 마루금을 버리고 하만산동으로 하산을 합니다. 길은 굵은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 로프 덕분에 미끄럽고 가파른 길을 별 어려움 없이 내려올 수 있었으나 손이 너무 시려워 많이 고생을 하였습니다. 일단 하만산동으로 내려와서 비래암 일대를 바라보니 정말로 멋진 암봉이 보입니다. 내려오니 등로 표지판도 있고 제법 등산로로서의 모습은 갖추었으나 이 만산으로만은 등산로로서의 역할은 물리일 것 같고 다른 봉우리와 연계하여 산행을 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원래는 비래암을 넘어 노적봉 방향으로 진행하려 하였으나 군작전지역이라 철조망을 따라 걸어야 하는 등 애로사항이 많다고 하여 날씨도 좋지 않아 도로를 따라 신대리 방향으로 가서 택시를 불러 화천으로 나갑니다.주 조심스럽게 내려옵니다.
가지 2-3. 한북두류창안, 장군단맥(漢北頭流將軍短脈)
2011. 7. 23.
이제 두류지맥에서 갈라진 단맥을 운행하려 했던 계획에서 두 줄기가 남았습니다. 즉 두류산은 토보산까지 걸을 때 답사를 하였는데 그 아래 있는 창안산은 아직 찾지 못했던 곳이 그 하나고 다른 하나는 두류지맥에서 갈라진 4개의 줄기 중에 가운데 위치한 장군봉 역시 빠진 곳이어서 그 두 곳을 잇는 산행을 계획합니다. 날이 날인지라 새벽부터 올라가야 하고 여름철의 필수품인 얼음물 때문에 부득이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못하고 차량을 이용하기로 합니다. 두류산에서 떨어지는 줄기는 창안산을 지나 덕고개로 떨어지므로 제 산행은 덕고개부터 시작하기로 합니다. 원래는 두류지맥 상의 두류산 갈림길에서 두류산 방향으로 진행을 하여 창안산을 지나 덕고개로 빠지는 루트를 택하여야 하나 두 개의 단맥을 한 번에 잇기 위하여 창안단맥 만큼은 거꾸로 진행하게 됩니다.
오늘 산행 코스를 보면, 우선 창안산을 지나 두류산을 지나게 됩니다. 두류산부터는 1차 답산한 곳이기 때문에 눈에 익어 진행에는 별 문제가 없을 것이며 그렇게 두류산 삼거리를 지나 장군산 삼거리까지 진행하게 됩니다. 사실 장군산 삼거리부터가 문제입니다. 희귀한 선답자의 산행기를 찾아보면 길찾기에도 상당히 문제가 있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요즈음에는 무엇보다도 풀과 잡목이 장애가 될 것 같습니다. 어쨌든 장군산까지는 억지로라도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다음 코스 선택 문제가 대두됩니다. 제1안의 한우재 코스는 군부대 사격장과 연결되어 있다는 말은 들었는데 길 자체를 찾을 수 있을 지 의문이며 제2안은 줄기가 계곡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시원한 물은 즐길 수 있을 것이나 길이 짧아질 것이라는 단점이 있군요. 현장에서 판단하기로 합니다. 곡운구곡(谷雲九曲)을 품고 있는 '물의 나라' 화천의 사창리(史倉里)는 좀 듣기가 거북스러운 것은 사실이어서 반드시 한자음을 병기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군부대를 연상케하는 사내면 ‘사창리’지역 본래 사탄향(史呑鄕)의 창고가 있다하여 ‘사창(史倉)’이라하였고, ‘창말’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또한 이 사창리는 세군데 집터와 여덟 개의 고개로 둘러싸여 있다하여 3대 8관이라 하였는데, 3대는 솔대(현 사창 6리 지역), 면대(현삼일리 지역, 27사단 사령부 지역) 맹대(현 광덕리 지역)을 말한다.
‘창말’의 유래는 조선시대 임금이 피신할 경우 이곳으로 피신하려고 국창(國倉)을 지어 놓고 토지에서 나오는 도지를 받아서 창고에 저장했다가 농민들에게 농사를 짓도록 나누어 주고 햇곡식이 나오면 매년 도지를 받는 일을 되풀이해왔다고 전해지고 있다.
05:30
덕고개에 도착하여 등로를 확인하여 보았으나 무성한 숲과 절개지로 인하여 도저히 오를 수 없는 곳이라 판단되어 이곳을 포기하고 산님들이 창안산 정규 등로로 이용하고 있는 루트를 이용하기로 합니다. 우선 차를 사내면 면사무소에 주차를 하고 산행 준비를 합니다. 창안산 줄기가 눈에 들어옵니다. 참고로 사창리에는 아침밥을 먹을만한 곳이 전혀 없습니다. 터미널 바로 옆의 기사식당 하나가 불은 켜져 있는데 영업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리를 건너 곡운구곡 비석을 확인합니다.
곡운구곡은 조선 중기 은둔 선비의 삶을 보여 주는 곳이라 합니다. 조선후기의 문신이자 성리학자인 김수증의 자취가 서린 이곳은 주자의 무이구곡을 모방하여 곡운구곡을 조성한 다음 1682년에 화가 조세걸에게 부탁하여 곡운구곡도를 그리게 했다는군요. 강원도 기념물 제63호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 신정일 '신택리지' 352쪽 이하
05:50
그 비석 옆으로 난 길에 들어서면 경노당이 나오는데 선답자들은 그 옆의 콘크리트 도로로 올랐었고 저도 그 길을 택합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길보다는 큰 도로로 올라 대원사를 통하여 오르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저는 그만 선답자들의 사진만 떠올려 이 소로를 통해 오르다 된비알을 이용하게 되어 땀을 많이 흘리게 됩니다. 덕고개에서 올라 오는 길을 만나 올라오다 대원사 길과 합칩니다. 그 길에는 잘 조성된 묘지 한 기가 있군요. 이제부터는 저도 깨끗한 등로를 이용하게 됩니다. 가끔은 로프도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보니 동네 주민들이 많이 다니는 길 같습니다.
06:41
삼각점이 있고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봉우리(558m)에 도착합니다. 이곳에서는 사창리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는데 오늘 조망은 영 아닙니다. 화악산 방향을 보아도 신통치 않고....그러니 서둘러 자리를 뜰 수 밖에 없군요. 철모 같이 생긴 바위를 지납니다. 그렇게 10분 정도를 더 걸으니 정자도 있고 주민들을 위한 운동시설이 갖추어진 창안산(542m)입니다. 그런데 이 곳 이정표를 보면 산행 거리를 굳이단수(單數)까지 표시를 해 놓았습니다. 태어나시긴 경남에서 태어나셨으나 강원도에서 학교를 나와 현재는 화천에서 사신다는 이외수님의 글을 이정표와 함께 가끔씩 만날 수 있는 이 곳이 정겹군요.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는 지극히 당연한 명제의 의미를 곱씹어 봅니다. 급경사가 많아 심심찮게 로프도 만날 수 있습니다. 땀을 좀 흘리면서 더위를 즐기고 싶으나 아직은 시간이 이르다보니 여름 산행이라는 기분이 들지 않는군요. 여름 산행은 아무래도 일찍 시작해서 일찍 끝내야 한다는 지극히 단순한 진리에 동조를 합니다. 로프와 말발굽으로 안전 시설이 되어 있는 구간도 몇 차례 눈에 띕니다. 교통통제소 방향에서 올라오는 삼거리를 지나니 다시 헬기장이 나오는데 오늘은 좀 억을하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바로 앞의 두류산이 보이긴 하지만 한북정맥과 화악지맥이 한 눈에 들어오는 이곳에서 아무 것도 볼 수 없다니 ....
08:58
조금 더 피치를 올리면 삼각점이 있고 백두산악회에서 수고해 주신 노란색 바탕의 정상표지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는 두류산에 도착합니다. 원래 이 정상에서는 한북정맥과 장군산, 백적산 등을 모두 조망할 수 있었는데 불행히도 오늘은 아무 것도 볼 수가 없군요. 간식을 먹으며 30분 정도 머물다 다시 진행을 하면 백마촌으로 진행하는 삼거리 안부를 만나고 거기서 직진을 하면 펑퍼짐한 곳이 나오는데 이곳이 실은 '두류산 갈림 삼거리'(970m)입니다. 우측으로 진행을 하게 되면 명지령을 지나 토보산으로 진행을 하게 되고 직진을 하면 장군산, 백적산, 만산 등으로 가게 되는 루트로서 이 두류지맥의 등줄기에 해당하는 곳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원래 두류창안단맥은 이곳부터 시작되어 덕고개를 건너 용담천으로 그 맥을 다하게 되는 것인데 오늘은 거꾸로 올라왔으니 어쨌든 이것으로 단맥을 마치고 다시 두류지맥을 걸어 장군다맥 갈림길까지 진행합니다. 장마 뒤라 나무와 풀이 많이 자랐지만 이곳은 길이 선명합니다.
09:42
941봉이군요. 둘산악회에서 수고해주셨습니다. 이곳이 공터삼거리로 백마촌으로 갈 수 있는 삼거리입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이곳에서 세 명의 남자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 분들은 이 동네 분들임에도 불구하고 장군산에 대한 정보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군요. 그냥 삼이나 캐러 올라오셨다고 합니다. 오늘 '심봤다'라는 메아리 소리를 듣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등로는 선명하니 룰루랄라 걸어도 무방합니다. 이름 모를 꽃을 만나기도 하고....하지만 우측으로 방향 전환을 해야하기 때문에 표지띠를 유심히 살피며 걷습니다.
10:11
그 삼거리를 지나자마자 멧선생들이 아주 헤집어 놓은 곳(860m)을 만납니다. 흐름상으로는 이곳에서 우회전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아무런 표지띠를 발견할 수 없군요. 직진을 하며 표지띠도 달여 있어 조금 더 고의로 직진을 하면서 알바를 해 보았으나 더 진행을 해보아도 이 정도로 규모 있는 줄기가 오른쪽으로는 없습니다. 안개 속인만큼 좀 더 긴장을 합니다. 300m정도 전진을 하다 다시 원점 회귀합니다. 다시 제 자리로 졸아와 표지띠 하나를 입구에 달고 우틀합니다. 이 정도 길이라면 정말로 편할 것 같아 마음의 여유를 가져 봅니다. 장군봉 들머리만 주의를 하면 아무 것도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면서 이제는 장군봉 정상에 도착하여 다음 루트만 주의하면 오늘 산행을 가뿐하게 마무리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방정맞은 생각만 갖습니다. 장군봉으로 가는 도중 알만한 분의 표지띠를 만납니다. 입구에 제 것도 하나 달아 놓았고 중간에 몇 개를 더 달고 이렇게 믿을만한 분의 표지띠도 만나니 후답자들의 산행에 더없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표지띠(hiking ribbon)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새삼스럽게 강조할 필요도 없지만 이런 오지에서 산객들이 의지할 곳이라고는 GPS, 나침반, 지도 그리고 사실 이런 것보다도 현장에서 시간 절약을 할 수 있고 제일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적어도 저에게는 이 표지띠입니다. 우선은 호젓한 길을 거니는 기분입니다. 고산임에도 키가 큰 나무가 하늘을 찌르듯이 서 있어 비록 한여름의 뙤약볕 아래에서라도 이곳은 전혀 지장을 받지 않을 정도로 원시림 그 자체입니다. 참나무 숲을 지납니다.
10:51
없던 바위 몇 개가 나옵니다. 이제부터는 도저히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 길이 문제가 아니라 헤치고 나갈 숲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수고(樹高) 약 1m~1.3m 정도의 진달래 나무나 철쪽 같은 것을 지나느라 아예 포복을 하며 지나느라 허리가 아플 지경입니다. 잔 가지가 손등을 할퀴며 얼굴을 때리고, 덩굴은 발을 잡아 당기고 아주 난리도 보통 난리가 아닙니다. 또한 이 길이 정상적인 루트인지는 그냥 감각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나무가 하도 울창하게 우거져 소리만 요란하지 정작 몸에 떨어져 제가 느끼는 비의 양은 미미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20여 분을 힘들게 기어가자 돌로 만든 호(壕)가 나옵니다. 도대체 27사단 장병들은 행군 훈련도 하지 않고 참호 보수 작업도 하지 않는지 정말 엉망이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습니다. 나뭇가지를 뚫고 나오느라 긁히기도 하지만 빗물이 튀기며 드디어 발에서 맹꽁이가 울기 시작합니다.
11:42
다시 아까와 같은 커다란 호(壕)가 있는 장군산(847m)에 도착합니다. 사실 이곳이 정상인가에는 많은 의문이 있었습니다. 적어도 '장군'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면 그에 걸맞는 어떤 이유가 있었을 것인데 여기는 그런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었습니다. 더욱이 이곳에는 '화천312'라는 삼각점이 분명히 있다고 '기준점 조서'에도 나와 있는데 소나무 두 그루 정도와 잡목 등만 확인할 수 있었지 삼각점은 도저히 찾을 수 없습니다.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더 머물 이유를 찾지 못하고 산행을 계속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우틀을 하여 제1안에 따라 진행을 하고자 하였으나 길도 보이지 않고 나무가 우거져 있어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반면 제2안인 안평리 방면 코스는 지나온 길보다는 훨씬 선명한 길이 보입니다. 당연히 제2안을 따릅니다. 가는 도중 아까 보았던 '청계산'님의 표지띠 하나 이외에는 아무 것도 산행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군요. 잠시 시야가 트이는 곳을 지나면서 제1안으로 생각했던 곳이 시야로 들어옵니다. 마치 만산을 지나면서 보았던 비래암봉이 생각납니다. 닭볏 같이 생긴 모습이고 상당히 뾰족하게 생긴 줄기인데 조망만 제대로 되었다면 정말 멋있는 작품을 보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생깁니다.
12:40
또 비가 옵니다. 정상적으로 가던 봉우리가 뚝 떨어지는 봉우리(697m)가 나옵니다. 그런데 길이라고 해보았자 희미한 흔적만 있는 곳이지만 갈래가 두 개로 나뉩니다. 그런데 우측으로 진행을 하면 급경사에 봉우리들이 다 몰려 있는 형국이어서 아무래도 이리로 내려가서 만나게 되는 계곡은 필시 큰 협곡을 만들 것 같고 그렇게 된다면 폭포같은 것을 만나게 되어 진행이 쉽지 않으리
라는 판단이 섭니다. 다시 올라서서 왼쪽으로 내려갑니다. 완만한 경사를 따라 내려 가게 됩니다. 그렇게 20분 정도 내려오자 물소리가 시끄럽게 나면서 천혜의 비경을 만나게 됩니다. 이렇게 맑은 계류를 지나면서 물도 마시고 세수도 하면서 걷습니다.
이미 발로 물이 들어왔기 때문에 신경 쓸 필요 없이 물속을 걷습니다. 계곡 산행에 유의할 점은 절대로 신발을 벗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발을 신고 바위의 미끄럽지 않은 부분을 조심스럽게 딛고 가면서 비경을 즐깁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알탕에 대한 욕심이 생깁니다. 배도 고프므로 여기서 알탕을 하고 밥도 먹으며 옷도 물에 묻혀 잠깐 반짝하는 햇볕에 말립니다. 1시간 30분을 놀다 자리를 뜨기로 합니다. 태양열 장치가 되어 있는 시설물을 지나게 되고 사방댐도 두 개를 지나게 되는데 제 키보다 더 큰 갈대 숲을 지납니다. 초봄이나 늦가을, 겨울에는 편히 지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농사를 짓기 위한 수로도 있고 밭도 나오는 걸 보니 마을이 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군요. 이곳은 상수도보호구역이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초소를 만들고 일반인들의 출입을 막고 있었습니다. 어른들에게 인사를 드리니 화천이나 사창리로 가는 방법까지 친절하게 알려주십니다. 안평리 마을회관 앞에는 정자가 있는데 아주머니들이 모여서 담소들을 나누고 계십니다. 차를 잡아주신다는 호의로 거부하기 어려워 대신 구판장에서 맥주 몇 병을 사서 인사치레를 하고 이 동네 사람이 운행하는 택시를 타고 어리고개(10,000원)로 이동을 하여 17:30경에 도착하는 버스를 타고 사창리로 가서 차를 회수합니다.
가지 3. 한북상해단맥 (漢北上海短脈)
한북정맥은 위와 같이 1070봉에 이르러 동쪽으로 길게 가지 하나를 만들어 비공식지명인 두류지맥을 만든 다음 계속 남하를 하여 하오현, 실운현을 지나 명성지맥이 갈라지는 광덕산 조금 못미친 지점에서 북쪽으로 가지 하나를 더 칩니다. 그러니까 한북정맥을 진행 중 오른쪽으로 계속 따라오던 그 줄기입니다. 그 줄기의 주봉인 상해봉의 이름을 따 산객들은 상해단맥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 줄기에 들기 위해서는 동서울버스터미널에서 사창리나 다목리행 버스를 탄 다음 광덕고개에서 하차를 하여 등로에 접근하는 방법이 일반적인 루트같습니다.
10:09
드디어 상해단맥으로 진입을 합니다. 한북정맥을 버리고 헬기장으로 들어서면 이제부터 한북상해단맥에 들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조망이 영 좋지 않습니다. 해독 불가한 삼각점을 지나쳐 11시 방향으로 나 있는 등로로 접어듭니다. 8분 정도 괜찮은 길을 걷다보면 커다란 두 개의 바위덩어리로 형성되어 있는 상해봉(1024m) 앞에 서게 됩니다. 그 봉우리를 오르기 전에 작은 안내석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바위 길로 된 등로로 달라붙습니다. 로프에 의지하기도 하면서 5분 정도 오르면 정상석이 있는 상해봉에 오르게 됩니다. 한편 정상석에는 1010m라고 표기되어 있ㄴ느데 국립지리정보원 지도에 명백하게 1024m로 나타나 있음에 비추어 바로 잡아야 할 대목입니다. 그리고 원래 상해봉이 그 이름을 가지게 된 유래는 한북정맥과 그 주변의 줄기들이 운해에 잠겨 있을 때에도 이 봉우리만이 뾰족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고 하여 상해(上海)봉이라고 한다는군요. 멀리서 이 방향을 바라 볼 때 동그란 골프공이 보이는 곳은 광덕산이고 그 옆으로 봉긋하게 솟아 있는 것이 상해봉이라 보면 됩니다. 이 주봉 바로 앞에 있는 제2봉도 상당한 조망을 제공하여 줍니다. 두세 명이 서 있기에도 좁은 곳이라 서둘러 자리를 뜹니다. 보통 산객들은 지맥꾼이 나이면 여기서 다시 돌아가게 됩니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길을 만들면서 가야 하는군요. 진행은 바로 뒤로 치고 내려가야 합니다. 바위를 타고 올라오느라 힘이 들었다면 이 내리막 길은 더 조심해야 합니다. 아주 가파른 길이 돌로만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건너편 920봉을 바라보고 진행을 합니다. 그러나 이게 웬일입니까. 눈에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오른발 무릎 안쪽에 약간의 통증이 옵니다. 근육이 약간 이완된 느낌은 있지만 걷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혹시'라는 불길한 느낌은 듭니다.
11:11
933봉에 도착합니다. 아까 상해봉에서 내려오는 구간만 제외하면 별로 어려운 구간은 없습니다. 다음 봉우리인 928봉은 여러 개의 바위가 봉우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 봉우리를 지나니 호젓한 분위기의 무명봉을 오릅니다. 무릎의 통증이 점점 심해지는 것 같기는 한데 오늘 산행에는 그렇게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철조망이 나오고 군인들이 철수한 뒤 버리고 간 흔적이 있습니다. 당연히 여기도 예전에는 민간인 출입금지 지역이었던 것 같습니다. 20분 정도 더 진행을 하자 883봉이 나오고 여기서 오른쪽으로 틀어내려오자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발굴현장을 보게 됩니다. 안내판에는 이 일에 대한 여러가지 정보가 나열되어 있습니다. 그러고보니 이리로 오면서 호를 판 것 같은 많은 흔적을 볼 수 있었는데 그게 이것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큰 바위가 봉우리를 가리고 있습니다. 삼각점이 있는 834.2봉입니다. 여기도 마찬가지로 이런 안내판이 있습니다. 참으로 많은 구덩이가 파헤쳐져 있는 것을 보면 대대적인 작업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데올로기 전쟁의 산물이 무고한 민간인 희생자까지 이어졌음이 안타깝군요.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11:58
오늘 구간 중 처음으로 주의를 요하는 지점에 도착하게 됩니다. 직진을 하게되면 잠곡저수지로 떨어지게 되므로 살짝 좌틍하여 내려갑니다. 마땅한 표지띠도 없어 제 것을 하나 달아두었습니다. 여기서 일행들과 이른 점심을 먹느아 상당한 시간을 소비합니다. 1시간 30분 가량 정도 놀다가 일어났으니 시간이 어느 정도 지체되었는지 짐작이 갈 정도입니다.
13:40
이제부터 왼쪽으로 작은 소로가 따라오다가는 사라지고를 계속 반복합니다. 원래는 군 비상도로였는데 이제는 이를 임도라고들 부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꾸준하게 마루금을 고집합니다. 603봉에 올라서도 약간 좌측으로 방향을 틉니다. 드디어 56번 도로가 보이고 건너편 676.3봉도 보입니다. 그 비상도로와 만나니 곧 출입을 막는 개폐기가 있는 실운현에 도착합니다. 이 아래에는 신술터널이 있고 구도로도 아스팔트 포장이 되어 있을 겁니다. 군용 창고도 위치해 있군요. 여기서 일행들이 더 이상 못가겠다고 버팁니다. 저의 무릎 통증도 조금 더 심해져 못 이기는 체하며 여기서 오늘 산행을 접습니다. 철원군 서면 면소재지인 자등리로 이동을 하여 산행 마무리 및 송년회를 갖고 서울행 직행버스에 몸을 싣습니다.
2011. 1. 22.
근 4주 동안 산행다운 산행을 하지 않아 온몸이 엉망진창입니다. 용을 쓰느라 병원도 정형외과에서 통증크리닉으로 옮겨 재활 치료에 전념합니다. 인대가 조금 늘어나는 듯한 느낌을 가진 것이 전부인데 완치가 어렵군요. 물론 제가 물리치료는 열심히 받지만 그 반면 염증에 도움이 되지 않는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 것도 같고...하여간 지난 주에는 특수치료까지 받아 통증은 사라졌는데 아직도 완치는 아니랍니다. 의사선생님은 산행을 막으시지만 다음 주에 있을 지리산 동부능선 무박 산행에 최소한 몸이라도 풀어주어야 할 것 같은 생각에 다시 짧은 산행 하나를 기획합니다. 제 몸을 이렇게 만든 상해단맥에서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심정으로 산행을 결행(決行)하기로 합니다.
동서울터미널에서 07:10 버스를 타고 신술리에 하차합니다. 오늘은 수도권을 통과하는데 눈이 와서 그런지 시간이 많이 소요됩니다. 신술리에서 대기 중인 택시를 타고 3사단 사령부 앞 구도로를 통과하여 개농장 앞에서 하차(4,500원)합니다. 신술현에 내려서 산행 준비를 합니다. 마루금을 오르자 벙커 하나가 보입니다. 멀리 676.4봉이 보이는군요. 676.4봉은 헬기장으로 알고 있는데 키 큰 나무로 둘러쌓인 듯 하군요. 그 곳을 향해 가던 도중에 화생방 타종 시설물이었던 것을 봅니다. 호젓한 산길인데 잡목 등으로 조망은 좋지 않습니다. 일단은 620봉에 오릅니다. 여기서 좌틀을 합니다. 나뭇가지 사이로 진행 방향을 조망해 봅니다. 단맥은 왼쪽에 있는 봉우리를 거쳐 우측으로 진행을 하는 마루금을 거쳐 앞에 보이는 줄기를 타고 왼쪽 끝에 보이는 694봉으로 이어가게 되는군요.
10:01
676.4봉에 이릅니다. 그 봉우리는 작은 헬기장의 모습을 하고 있고 정면으로 694봉이 보입니다. 좌측으로는 자등현에서 각흘봉을 거쳐 힘차게 흐르고 있는 산줄기가 목련공원묘지로 이어지며 싸리골 고개가 보입니다. 즉 대득단맥의 초반 구간이 흐린 날씨 속에서도 희미하나마 윤곽이 드러나는군요. 작년에 그 구간을 지나면서 상해단맥과 한북정맥을 바라보면서 촬영한 사진입니다. 구런데 여기에는 삼각점이 있는데 불행히도 눈에 덮여 있어 확인을 하지 못하고 진행하게 됩니다. 진행하여야 할 694고지 아래로는 축사가 있고 그곳에 소들이 노니는 걸 볼 수 있는데 이 지역을 민가와 떨어진 곳이라 구제역으로부터 좀 벗어난 것 같군요. 다행입니다. 지나온 상해봉은 구름에 완전히 가려 있습니다.
20분 정도 진행을 하다보니 좀 주의를 기울여야 할 곳이 나옵니다. 즉 제가 이곳을 지날 때 선행자들의 발자국이 나 있는 곳으로 만연히 진행을 하다 잠깐 알바하는 우(愚)를 범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아까 676.4봉에서 187m 정도 내려오면 삼거리를 만나게 되는데 거기서 완쪽 길을 따라 진행을 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575봉에 오르게 되고 여기서도 온전하게 다시 왼쪽으로 틀게 됩니다.
오른쪽 나뭇가지 사이로 잠곡리 마을이 보이는군요.
10:51
다시 바로 옆에 작은 헬기장이 만들어진 585봉입니다. 왼쪽으로 방향을 잡습니다. 전체적으로 마루금이 뚜렷하기 때문에 방향을 잡는 데에는 그다지 문제가 없습니다. 내려가기 전 지나온 길을 돌아봅니다. 왼쪽 가운데 제일 높은 봉우리에서 내려왔음이 분명하게 보일 정도로 마루금이 뚜렸합니다. 오른쪽 한북정맥의 복계산 정상이 하늘에 가려 있고 그 뒤로 대성산도 희미해 육안으로 식별이 어렵습니다. 날씨가 좋을 경우 볼만한 정경이 펼쳐질 것입니다. 반면 진행 방향의 694봉만 뚜렸하고 뒤를 돌아 봐도 상해봉 역시 구름에 가려 있습니다. 20여분 지나 별 다른 특징이 없는 538봉을 지납니다. .
11:28
드디어 군 비상도로를 만납니다. 이 비상도로는 거의 마루금이 되거나 마루금 바로 옆에 달라 붙어 진행이 됩니다. 군인들이 이렇게 제설작업까지 완벽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아이젠을 풀고 복장을 다시 하느라 좀 지체합니다. 30분 정도 편하게 진행을 하니 비상도로는 마루금에서 조금 벗어나 있고 절개지 때문에 694봉을 조금 진행하다 적당한 곳을 찾아 약간 back하여 694봉을 찾아 올라갑니다. 694봉 정상은 철수한 군 부대 초소가 형해만이 남아 있군요. 초소에 아궁이 시설까지 되어 있는 것을 보면 파견대가 주둔했던 곳 같습니다. 진행할 방향을 보니 거의 일직선이고 멀리 철탑까지 보이는군요. 비상도로로 내려오는 길에 위치한 방카 안에는 제가 군대 복무 시절에 식사전 항상 외쳤던 '때려잡자 김일성. 쳐부수자 공산당....'이란 구호가 적혀져 있습니다. 그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헬기장이 넓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차량 위장용 방카가 하나 나오는데 여기서 길은 두 갈레로 가라지게 됩니다. 왼쪽으로 진행하면 하산하는 등로이나 저는 우측으로 진행을 합니다. 이 길이 아주 주의를 요하는 곳입니다. 대부분의 산님들은 이 왼쪽 등로를 따라 능선을 타고 편하게 진행을 하게 됩니다. 저는 끝까지 마루금이 진행하는 형태를 답사하여야 하므로 우측으로 가는 것입니다. 오늘 처음 만나는 동네 주민 몇 분이 불을 피워 놓고 무엇인가를 구워 먹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산행을 온 것 같지는 않고 아래 주민들이 야생 동물을 잡아 먹으려고 올라온 것은 아닌지 저희를 보고도 먹으라는 말조차 건네지를 않는군요. 계속 이렇게 지루한 비상도로를 걷는 것 보다는 이 왼쪽으로 난 길로 하산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 것 같습니다. 저는 진행 방향 앞으로 우똑 서 있는 철탑을 보며 진행을 계속합니다. 그런데 아주 재미있는 광경이 펼쳐집니다. 마치 동네 뒷산이 연상될 정도로 정자도 있고 간단한 운동시설도 되어 있습니다. 주민들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군인들 휴식시설인지.... 어떻게 주민들이 이곳까지 산책을 하러 오라는 이야기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12:50
그러자 정면으로 부대가 하나 나오는군요. 여기서 갈등이 생깁니다. 부대를 통과하여 갈 수도 없는 상황이고 그렇다고 우회하는 길도 잘 보이지를 않습니다. 저는 부대 정문 바로 앞에서 떨어지는 길로 내려서 옆 줄기로 타고 가느라 고생을 좀 합니다. 그런데 내려오면서 관찰을 해보니까 이 부대를 왼쪽으로 돌아가면 이 길과 그대로 이어지는 비상도로가 있으므로 별 문제가 없는 것을 괜히 벗어났던 것이고 그것을 뒤 늦게 후회 하였습니다. 하산하는 길에 지금은 제 용도를 잃은 군 철조망도 만나게 되고 그곳에서 오던 길을 돌아 보니 왼쪽으로 아까 보았던 부대 건물이 보이고 그 왼쪽으로는 아까 제가 걸었던 비상도로도 보이는군요. 그러고는 흔히 볼 수 있는 사유지 경고판을 지나자 부대 후문이 나타납니다. 난감해집니다. 부대를 우회할 수 있는 길도 없어 부득이 일행 중 부상자가 생겨서 더 진행하지 못하였음을 초병에게 이야기하고 부대의 선처를 부탁합니다. 주번사관이 누구인지 흔쾌히 협조를 해주어 초병의 안내를 받아 정문을 통하여 무사히 산행을 마칩니다. 물론 제 신분증과 전화번호 등을 남기고 말입니다.
14:35
부대를 나와 신원아파트를 바라보면서 와수리로 들어서게 되고 여기서 오늘 산행을 마감합니다. 내려와서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다시 복습하여 보니 대부분 헬기장에서 왼쪽으로 떨어지는 길로 운행을 하였고 저같이 부대 앞에서 왼쪽으로 떨어지는 길로 들어섰다가 개고생(?)을 하신 분들은 별로 없더군요.
가지 4. 한북명성지맥(漢北鳴聲枝脈)
상해단맥 3거리를 지나면 바로 기상관측소가 나오고 그 관측소에는 귀여운 토종 강아지 몇 마리들이 꼬리를 치며 지나는 산객들을 맞아줍니다. 그러고는 광덕산이 나옵니다. 한북정맥에서 분기하는 지맥 중 남한에서는 가장 북쪽에 있는 산줄기입니다. 한북정맥을 할 때이 갈림길을 지나면서 명성을 언제나 하게 될까 고대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곳에 다시 서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삼각점도 확인하고 이동시내 방향을 조망도 해보고 그리고 나뭇가지 사이로 한북정맥도 조망하고 우틀합니다. 한북정맥을 할 때 매어 두었던 제 표지띠도 확인합니다. 아주 반갑습니다. 그 때 연이어 진행하려던 9정맥을 이런 저런 사정으로 잇지 못하고 지금은 이렇게 지맥이나 분맥에 빠져 있습니다. 아무려면 어떻겠습니까. 이것도 마루금 운행 기법 중에 하나 아니겠습니까. 알만한 선답자들의 표지띠들이 보이는군요.
10:40
진행하는 명성지맥을 희미하게나마 조망해 봅니다. 곧 첫 이정표가 나오는데 큰골로 내려가는 갈림길입니다. 계속되는 내리막 길이지만 이곳도 해발 973m나 되는 고지입니다. 40분 정도 진행을 하면 박달봉(760m)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 갈림길인 825.6고지는 마치 전쟁터를 연상 시킬 정도로 좀 을씨년스럽습니다. 나무들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무자비하게 꺾어져 있습니다. 삼각점이 있는 이곳에서 우연찮게 옛 직장동료 일행들을 만납니다. 그 일행은 자등현까지 산행을 할 예정이고 그곳에서 점심을 먹는다는군요. 일단 할 일 다하면서 가는 그들과 같이 운행을 하느라 시간이 좀 지연이 됩니다. 명성지맥 방향은 각흘산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거리는 표시되지 않았는데 대충 4.53km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각흘산과 그 뒤로 명성산 등이 보이는군요. 봄으로 완전히 진입한 이곳의 진달래의 색깔이 참 곱습니다. 선답자들의 산행기에 보면 반드시 나오는 나무 사다리를 만나 저도 그것을 이용해 오릅니다. 누가 저렇게 정성스럽게 만들어 놓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분들이 고마울 따름이지요. 그곳을 오르니 바로 헬기장입니다. 중요한 포스트가 되는 곳입니다. 사면을 따라 부드러운 진달래 길을 걸으니 47번 도로 뒤로 가운데 각흘산이 보이고 그 왼쪽으로 약사봉이 보이는군요. 47번 도로는 일동, 서파 내촌을 거쳐 퇴계원까지 가는 도로로 서울에서 군부대가 많은 김화까지 이어주는 중요한 도로였었는데 서파에서 도평리까지 새로운 시멘트 왕복 4차로 도로가 생겨서 서울에서 이 지역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편의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반면 역기능적인 요소로 47번 구도로 부근의 상업지역 특히 일동과 이동지역의 지방경제는 치명타를 맞았다고 하더군요. 이런 도로 사정은 추풍령도 마찬가지라고 들었습니다. 막대한 돈을 들여 자연을 파괴해가며 길을 만들 때에는 여러가지 사정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명성산과 삼각봉이 보이고 왼쪽으로는 전차훈련장도 보이는군요. 너른 임도가 나오자 '산나물 채취 고발 조치'라는 작은 경고판을 지나자 자등현에 도착합니다. 자등현은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과 강원도 철원군 서면 자등리를 이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고개입니다. 광덕산에서 이곳까지는 1시간 30분이면 족한 산행길입니다. 오늘 산행은 옛동료들을 만나 자등현 주차장 공터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반주를 하다보니 더 이상 산행을 한다는 게 불가능해집니다. 오늘 산행은 무의미 할 것 같습니다. - 2010. 5. 5.
지난 번 어이없게 술 때문에 포기하였던 명성지맥을 15일만에 다시 잇기 위하여 자등현에 도착합니다. 이동면사무소에 주차를 하고 대중교통이 없는 관계로 거기서 택시(11,000원)로 이동합니다. 자등현에는 강원도와 경기도에서 설치한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곧 광덕산부터 이어온 마루금은 이곳과 명성산을 지나 삼각봉(899m) 이르기까지 강원도와 경기도를 가르는 도계(道界)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07:31
산불감시초소 옆으로 나 있는 등로를 오릅니다. 오늘 날씨가 30도까지 예보가 되어 있으니 더위 때문에 고생좀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우선은 이렇게 평평한 등로가 저를 맞이하는군요. 아무래도 이곳에 군사격장이 있는 관계로 '군 경고 표지판'이 자주 나타납니다. 오늘 지나는 명성지맥은 군사시설보호구역을 많이 지나는 관계로 통제구역이 많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오늘이 휴일이라 별 통제는 없을 것이라 믿습니다. 교통호와 등로가 번갈아 나타나고 어느 곳은 아예 교통호가 등로이기도 합니다. 벙커도 자주 나오는데 저보다 먼저 군개를 갔다오신 선배님들 정말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예전에 선배님들이 자신들이 군 생활을 한 곳을 보고는 소변도 보지 않는다는 말을 실감하게 됩니다. 처음 대하는 벙커를 지나고 나면 이제부터 오르막이 시작입니다. 등로는 돌이 많아 약간은 불편하지만 오름이 거칠기 때문에 땀이 많이 나는 저는 이런 분위기를 즐기므로 아무런 불만이 없습니다. 햇볕이 따갑습니다. 하늘이 보이는 것을 보니 작은 봉우리 하나에 닿을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672고지입니다. 별 특이한 점이 없는 이곳을 지나니 바로 헬기장에 도착합니다. 헬기장 뒤로 장명동으로의 하산길이 보이는군요.
08:22
경고 표지판이 시작됩니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포 사격장의 탄착점이 되는 지역이라는 말이군요. 그 경고판은 100m 간격으로 설치 되어 있습니다. 바위 틈으로 뿌리를 내린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주는 소나무를 지납니다. 약간은 불필요할 지역에 설치된 로프를 지나는데 아마도 예전에 방카 작업을 할 때 병사들이 시멘트나 모래 등을 지고 올라가려면 저런 것들의 도음이 필요했을 것 같기도 합니다. 나물을 캐러 오신 분들을 많이 만납니다. 전혀 예기치 못했던 것인데 그 분들 때문에 산에 나물이 남아나는 게 없을 것도 같습니다. 코발트 색 하늘이 보이는 것을 보니 이제 각흘봉 가까이에 도달할 것 같습니다.
08:32
각흘봉 바로 아래에 있는 헬기장(817m)에 도착합니다. 명성지맥 진행방향으로 우측에 있는 연봉이 보입니다. 포탄 때문인가요. 아주 산이 작살이 났습니다. 이 마루금을 따라가다보면 463도로를 만나게 되고 대득봉(628m)을 거쳐 문혜리 방향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여기서는 사방이 다 조망되므로 아주 감탄에 감탄을 금치 못하는 곳입니다. 이곳을 날씨가 좋지 않은 시점에 지나셨던 분들이라면 반드시 화창한 날에 다시 답사를 하여야 평생토록 후회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선 뒤를 돌아보면 상해봉과 광덕산을 중심으로 한북정맥이 길게 그 위용을 자랑합니다. 그 한북정맥이라하면 곧 백운산을 지나서 청계산을 지나 남쪽으로는 운악산 정도까지는 쉽게 보입니다. 그 뒤로 축령산이며 천마산까지는 쉽게 찾을 수 있으며 더 우측 즉 진행방향으로는 명성산 금학산 그리고 그 왼쪽으로 이어지는 보개지맥까지.... 정신이 없습니다. 그 왼쪽으로는 지장봉, 종자산이 보이고 그 앞으로는 여우봉이니 관음산 ...그런데 북쪽 사진 방향으로 보면 용화저수지가 보이며 대득봉 줄기와 오성산 등 북녘의 산하까지 말 그대로 일망무제라는 형용사를 쓰지 않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갈라지는 저 줄기 즉 한북명성대득단맥을 타고 싶어집니다. 잠시 저 대득봉을 다녀 오기로 합니다.
가지 4-1 한북명성대득단맥
이곳 산행은 2010. 10. 10. 실시하였습니다. 이 구간 산행을 하신 분들의 자료를 찾아보려 인터넷을 다 살펴보았지만 역으로 진행하신 분도 있고 다른 한 분은 사진만 올리는 정도라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어쨌든 저는 산줄기라는 것이 '분기'하는 지점부터 따라 가야 한다는 지론 하에 단순하게 우틀하여 진행합니다.
09:32
마루금에는 구절초 등 이름모를 야생화들이 우선 저를 맞아 줍니다. 초입부터 조금 가파르게 내려갑니다. 가는 로프가 그 어려움을 조금은 도와주고 있습니다. 바윗덩어리를 힘겹게 내려오는데 핑크색의 신경수님 표지띠가 달려 있군요. 그렇다면 분명히 산행기가 있었을텐데 확인을 하지 못했습니다. 지나신 지 얼마 되지 않은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신경수님께 좀 아쉬운 생각이 든 것은 표지띠를 너무 적게 달아주셔서 제 산행에 크게 도움이 되지 못했었던 것입니다. 신선생님은 여느 분들과는 달리 중요한 포인트 몇 군데 이외에는 표지띠를 흔하게 달고 다니시지 않는 스타일 같습니다. 그래도 이런 구간에서 제가 일전에도 보았던 낯익은 표지띠를 보았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힘이 되겠습니까. 언젠가 산행을 할 때 뵙게 되겠지요. 항상 안산하시기 바랍니다. 멀리서 보기보다는 참으로 편안하고 아름다운 줄기입니다. 책을 쌓아 놓은 듯한 바위도 있고....
선돌 같은 바위도 보이는 많은 바위들이 갖갖이 형태로 뛰엄뛰엄 떨어져 있어 바위들을 감상하느라 주위 경관에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 정도입니다. 길은 명백하지 않지만 가야할 봉우리가 명백하게 보여 가는 데에는 별로 힘이 들지 않습니다. 뒤를 돌아 보니 오른쪽으로는 삼각봉과 명성산이 보이고 그 오른쪽으로 철원평야 너머로 금학산이 깨끗한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그 줄기는 왼쪽으로 고남산이 이어지는군요.
10:09
쇠막대 기둥 하나가 나타나고 용도를 알 수 없는 표지석이 817봉에 묻혀 있습니다. 오늘은 아래 운해가 멋드러지게 깔려 있어 마치 구름 위를 걷는다는 느낌이 맞을 정도입니다. 초원같은 이곳은 소백산의 국망봉도 연상케 해주는 아주 기분이 좋은 초가을의 산행입니다. 이제 용화저수지를 바로 왼쪽에 놓고 걷게 되는군요. 진행방향에서 살짝 좌측으로 소나무 세 그루가 서 있는 봉우리를 바라보면서 걷습니다. 그 봉우리에 도달하면 또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봉우리가 보입니다. 그 봉우리까지 갔다가 우측으로 떨어지게 될 것 같습니다. 그 뒤로 보이는 795봉 연봉이 아주 높게 솟아 있습니다. 군삼각점을 지나고 우측 숲으로 떨어지기 직전의 마지막 봉우리로 오릅니다. 말이 오른다는 것이지 그냥 평탄한 길을 걷는 것이나 같습니다.
10:45
763.7고지에 위치한 삼각점입니다. 이 삼각점 봉을 지나자마자 바로 숲으로 들어갑니다. 잔난무 가지가 길을 막아 그 숲을 들어서기가 어렵지 일단 들어가니까 길은 상당히 좋아집니다. 그리고 이 길이 마루금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해주듯 길 양 쪽으로는 급격한 사면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마냥 기분 좋은 산행이 계속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런 낭만적인 생각을 가지고 걷자 곧 바로 직벽 앞에 서게 됩니다. 물론 직벽이라고 하여 암벽이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니고 그 정도의 험난한 된비알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사진을 찍을 여유가 없을 정도로 좁고 지반이 약한 급경사를 힘들게 오릅니다. 그 직벽같은 된비알을 오르다 보면 희미하게나마 길을 두 갈레로 갈립니다. 왼쪽은 바로 마루금으로 올라가게 되는 것 같고 오른쪽으로 가면 어느 정도는 사면으로 가게 되는 것 같아 조금 무난한 길을 가고자 우측 길을 택하였는데 사실 이것이 오히려 후회가 될 정도입니다. 가장 힘든 점은 이 지역의 흙이 힘이 없고 제 몸을 지탱해 줄 지형지물을 전혀 찾을 수 없을 정도의 척박한 지역이 거의 직벽 수준이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저 아래로 굴러 떨어지기 십상이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확신은 하지 못하지만 이곳은 우측 사면을 따를 게 아니라 직진을 하여 정상으로 오르는 길을 택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힘들 게 오르니 참나무가 군락을 이룬 좁은 등로와 합류하게 되는군요.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없는 이곳에서 표지띠라도 없다면 등로에 대한 확신도 없게 될 것 같아 후답자를 위하여 가급적 표지띠를 많이 달아 놓습니다. 특히 저와 같이 여름이나 여름을 지난 초가을에 진행을 하게 되면 조망이 쉽지 않아 산행에 어려움이 더 많습니다.
12:07
795봉 정도 되는 것 같은데 정상석은 기대도 하지 않지만 삼각점을 찾을 수 없군요. 버섯을 채취하러 오신 두 분의 동네 주민들을 만납니다. 이런 곳에서 사람을 만나기란 정말로 쉽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등산인구가 1,800여만명이나 된다고 하는데 그 분들은 다 어디서 산행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배가 고파 여기서 점심으로 준비한 떡과 오이를 먹습니다. 조망은 어느 정도 되어 서면 소재지가 있는 자등리를 보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큰 착각을 하게 됩니다. 여기서 왼쪽으로 몇 m만 더 갔으면 판독이 불가능한 삼각점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좀 아쉽군요. 40분 정도 점심 겸 휴식을 취하고 일어납니다. 푸석거리는 흙을 밟으며 조금 더 진행하니 바로 오른쪽으로 희미한 길이 있고 그 뒤로 안전로프가 설치 되어 있는 하산길이 보입니다. 이 길로 내려가면 목련공원묘지로 내려가는 길입니다. 저는 선답자의 산행기에서 어렴풋이 보았던 기억이 떠올라 이 길을 따라내려 가는 우(愚)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조금 전 만났던 버섯채취를 하던 분들의 조언을 들었던 것도 잘못이었습니다. 여기서 100여m만 더 진행하였으면 730 바위봉을 지나 바로 지도에 나와 있지 않은 정상석이 있는 악희봉을 만날 수 있었을 텐데 그러면 제대로 된 마루금을 따라 싸리골 구도로로 떨어졌을 텐데 그만 저는 이 길로 진행을 하는 바람에 그것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표지띠도 달고 내려온 것을 저보다 며칠 뒤에 이 길을 지나신 고산마루의 지기이신 '다올'님이 알바를 하시다가 다시 올라와 저의 표지띠를 올바른 곳에 달아주셨다는 후일담이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만일 표지띠가 그냥 그곳에 계속 있었다가는 많은 후답자들이 저로 인해 피해를 입었을 것임은 명약관화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12:57
그 길로 내려오다보니 철조망으로 가로막혀 있는 지뢰지대를 만나게 되고 저는 바로 옆으로 나 있는 공원묘지의 콘크리트 도로를 따라 내려옵니다. 그 공원묘지의 정문을 나서서 왼쪽으로 틀어 마루금을 찾아 올라갑니다. 언제나 알바는 괴롭습니다. 비포장도로를 찾아 올라갑니다. 이 길이 싸리골의 구(舊)도로로 철원군 서면과 갈말읍을 잇는 463번 지방도로입니다. 마루금으로 복귀하여 제대로 된 등로로 들어서려는데 훼손된 군 삼각점이 길 바로 옆에 있군요. 도대체 이게 왜 이런 도로에 있게 된 것인지....
13:35
다시 마루금으로 복귀하였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 같이 그 갈림길에서 조금 더 진행하여 마루금을 찾아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습니다. 어쨌든 길을 다시 찾았으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쇠파이프 4개가 있는 것을 보니 어떤 종류의 텐트를 쳤던 장소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갖습니다. 마루금은 왼쪽으로 부대를 보면서 진행을 합니다. 선답자들 아니면 주민들이나 군인들이 지난 흔적인지 그 흔적을 따라 마루금을 이어가게 되는데 길이 희미하여 조심을 하지 않으면 바로 등로 이탈입니다. 벌목 작업이 된 곳에서 잠시 뒤를 돌아보니 공원묘원과 그 뒤로 제가 진행한 산줄기가 보입니다. 그러니까 오른쪽에서 제일 높은 봉이 악희봉으로서 그 방향으로 내려왔으면 아까 그 구도로로 정확히 떨어졌을 것입니다. 삼거리가 나오고 길이 흐려집니다. 우틀을 하니 찻소리가 나오고 그 소리를 따라 직진을 하니 절개지가 나타나고 하산길은 조금 우측으로 진행하여 절개지의 사다리를 타고 내려와야 합니다. 이 고개에는 정확한 이름이 없고 택시기사들은 그저 "싸리골 고개"리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내일 들머리를 보고는 자등현으로 가서(택시비 8,000원 정도) 차를 가지고 철원으로 들어가 고석정 관광을 하고 일찍 잠을 청합니다.
07:35
이틀째 산행을 시작합니다. 하산은 문혜리 방향일 것이므로 제 차를 문혜리 택시 차부 차고에 정차를 하여두고 택시(10,000원)로 싸리골고개로 이동합니다. 그러고는 산행 채비를 마치고 어제 본 들머리로 들어갑니다. 오늘 산행은 이렇게 안개가 끼어 있어 촉촉하게 젖은 땅을 밟으며 시작하게 되는군요. 돔형(型) 시설물 같은 것을 제작하는 곳을 지납니다. 평택임씨 가족묘지를 왼쪽 끝으로 지나다 보니 뒤로는 어제 내려온 공원묘지 가 보이고 해가 뜨고는 있으나 촉촉하게 젖어 있는 풀로 인하여 벌써부터 신발이 젖기 시작합니다. 길도 명백하지 않은 곳이 많아 잔뜩 긴장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사거리라도 나오게 되면 정말 막막합니다. 감각적으로 흐름을 따라 그냥 직진을 합니다.
08:23
그러니 삼각점이 있고 헬기장이 설치 되어 있는 542.9봉을 만납니다. 돌로 헬기장 표시를 해 놓은 이곳은 아주 깨끗하게 잘 정도되어 있군요. 삼각점을 확인하고는 여기서 왼쪽으로 크게 틀게 됩니다. 그러자 갑자기 길이 좋아집니다. 훈련 시 썼을 법한 군용 천막이 연이어 세 동이 나오고 등로가 너무 좋으니 이제는 좀 여유만만하게 걸어도 좋습니다. 우측으로는 석현동 마을이 나뭇가지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고 용도를 모를 큰 공터도 나옵니다. 간간이 '신경수'님의 표지띠가 보이고 방카 위에 위험스럽게 서 있는 커다란 나무도 봅니다.
09:20
첫 번째 철탑을 지나자 삼각점이 있는 565.4봉을 만납니다. 여기서는 왼쪽으로 크게 돌아갑니다. 이 지역은 교통호에 설치되어 있던 폐타이어를 제거하여 등로가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환경 보호를 위하여 군에서 큰 결단을 하였습니다. 로프지역을 지나고 조망이 트이는 논골방향으로는 군부대와 마을이 번갈아 가며 눈에 들어옵니다. 두 번째, 세 번째 철탑을 지납니다. 그러면 용도 폐기된 군 통신장비를 지나게 되고 우측으로는 군 비상도로가 나옵니다. 요사이가 능이버섯이 제 철이어서 그런지 많은 분들이 여기까지 4X4 차량을 타고 올라와 버섯 채취에 열을 올리고 있는 모습입니다. 말씀을 나눠 보니 프로도 있는 반면 초보로 보이는 분들도 가족 단위로 몇 팀 계시는 것 같고.... 군 비상도로를 건너 다시 산길로 접어듭니다. 그 길로 접어드니 바로 515고지에 있는 도로를 만나게 됩니다. 참 편안하게 오지의 산을 걷습니다. 조망은 주로 북쪽으로 나 있어 멀리 북녘의 산하도 보면서 걸을 수 있어 좋습니다. 군 위장시설도 지나고 갈림길이 나와 우틀을 하니 역시 군 시설물들이 연이어 나타납니다. 또 비상도로가 나오니 결국 군 비상도로와 산길을 번갈아 가며 걷게 되는 것인데 간혹 볼 수 있는 표지띠가 있어 그나마 무료해 질 것 같은 산행에 감초 역할이 되는 것 같습니다. 길을 잃어 알바할 염려는 전혀 없습니다. 다시 비상도로가 나오고 나무를 실은 반트럭이 지나갑니다. 그런데 산길 가운데 삼각점이 생뚱맞게 설치 되어 있군요. 513고지입니다. 의아한 생각을 가지고 이 길을 지
나게 됩니다. 좀 너른 공터 하나를 지나니 11:40에 대득봉(628m)에 도착합니다. 원래 헬기장이었을 대득봉 정상에는 표지띠 몇 개만 바람에 날리고 있을 뿐 조망도 전혀없고 삼각점이 잡초속에서 모습만 겨우 드러내고 있을 뿐입니다. 하다 못해 그 흔한 정상석이나 정상 표지판 하나 없으니 비오는 날에 여기에 올랐다면 오히려 을씨년한 분위기를 느꼈을 것 같은 아쉬움이 있습니다. 대득봉을 벗어나니 조망이 트이는 곳에서 보개지맥의 금학산이 한층 가까워졌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멋들어진 산줄기는 고남산으로 쭉 길게 뻗어 있고.... 그러면 이내 군비상도로와 다시 만납니다. 이제부터는 땀 좀 내야겠습니다. 내려 온만큼 또 올라가야 하니까 말입니다. 가파른 등로는 로프가 설치되어 있을 정도로 경사가 급합니다. 우측으로는 초전동 마을이 보이는 전망대 바위도 나타나 산객은 잠시 땀을 식힐 수도 있군요.
12:36
헬기장입니다. 원래 대득분맥은 이곳에서 좌틀하여 511고지를 거쳐 갈현육교를 지나게 됩니다. 그러고는 민통선으로 들어가 김화 남대천까지 진행을 하게 되는데 저는 애초에 43번 도로에서 끝을 내는 것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저는 직진을 하여 지경리 방향으로 진행을 합니다. 바로 옆에 폐가가 된 초소를 지나는데 여기부터는 갑자기 길이 없어져 잠시 알바를 합니다. 즉 직진을 하는데 풀이 크게 자라 길이 없고 희미해지기 까지 하여 달리 방법을 찾지 못합니다. 하는 수없이 비상도로로 찾아 내려가 원 마루금을 찾습니다. 그 비상도로를 찾아 역으로 추적을 하여보니 '528고지'를 향하는 군용 이정표가 길 옆에 쓰러져 누워 있습니다. 그 팻말을 바위에 걸쳐 놓고 그 고지를 오릅니다. 방카를 지나니 바로 폐헬기장이 나타나고 이곳이 528고지 같은데 아무리 들러봐도 보여야 할 삼각점을 찾지 못합니다. 민간인 출입 통제용으로 사용하였을 법한 철조망을 두어 개 지나고 군용 야전 통신안테나를 지나니 역시 '대득로 가는 길'이라고 쓰인 군용 이정표를 만나게 됩니다. 돌로 축조된 '야전축성'도 보이고 바윗덩어리 위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도 봅니다.
13:47
멋진 헬기장의 조망은 더더욱 멋지군요. 지경리 일대가 전부 조망이 됩니다. 남대천 상류도 보이기 시작하니 이제 오늘 산행도 대득분맥을 전부 걸을 수는 없어 아쉽기는 해도 그런대로 산객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을 걸었다는 생각에 마음은 적이 편해집니다. 대성산 방향은 이제 바로 오른쪽에 가까이 있습니다. 방카봉을 지나니 제설작업을 하는 동계용 장비들이 잘 완비된 곳이 나오는군요. '훈'이라고 씌어진 노란 군용 시멘트 말뚝도 몇 개 보이기 시작하고 드디어 교통호가 나오기 시작하는데 하산길 자체가 바로 이 교통호인 곳도 많군요. 시끄러운 찻소리가 나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43번 신작로(新作路)가 나옵니다. 바로 옆에 있는 지하통로를 이용하여 지경리로 이동을 합니다. 봄이나 늦가을에 진행을 하면 결코 이틀이나 걸릴 산행은 아닐 것 같지만 여름에 진행을 하고 더욱이 일행 특히 여성 산님과 동행을 하시는 분들이라면 여유 있게 산행계획을 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이번 산행의 소득이라고 한다면 나름대로 많은 표지띠를 요소요소에 부착하여 뒤에 오실 산님들을 위해서 보람있는 행동을 하였다는 자부심을 느끼게 해준 것이라 하겠습니다.
다시 명성지맥....
그 뒤로 희미하게나마 금학산 지장봉으로 이어지는 보개지맥이 그 윤곽만 보이고 있습니다. 그 앞으로는 관인봉 그리고 바로 뒤로는 종자산이 그 윤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방으로 조망이 트이는 이곳은 정말로 우리나라의 산하가 아름더움을 보여주고 산불기는 다 하나로 이어져 있음을 확인하여 주고 있습니다. 각흘봉 뒤로 여우봉 그리고 그 앞에 전차사격장이 보입니다. 진행하여야 할 줄기입니다. 다만 이곳은 나무가 없는 마루금이라 머리가 뜨거울 정도로 강렬한 태양을 느껴야만 합니다. 헬기장에서 각흘봉으로 오르면 스텐인레스로 된 정상안내판이 서 있고, 그 옆에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제 명성산도 바로 앞에 와 있는 듯합니다. 정상에 한 그루 외롭게 서 있는 나무 위로 태양이 강렬합니다. 마루금 위로 가운데로 방화선이 확실하게 나 있는 것은 포탄 사격으로부터 혹시나 있을 지도 모를 산불을 방지하기 위하여 제거 작업을 확실히 해 놓은 것 같습니다. 조망이 확실해서 좋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마루금의 모습은 아니어서 아쉬운 점이 좀 있습니다. 약수계곡으로 갈라지는 삼거리(741m)입니다. 표지띠가 미풍에 날리고 있습니다. 765봉에는 나무 한 그루 을 향해 오릅니다.
나무 한 그루가 포스트가 되는군요.
마을 주민 한 분이 없는 길을 따라 나물을 채취하고 계십니다.
걸음이 상당히 빠르시더군요.
각흘봉을 되돌아 봅니다.
08:57
약사봉입니다.
한 그루 외롭게 서 있던 그 나무를 가까이 서 봅니다.
이 아래에 있는 어느 바위에서 장준하 선생이 알지 못 할 어느 이유로 사망한 곳이 있습니다.
그 약사봉에 대해서 항상 궁금해 하였는데 오늘 그 자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제가 잠시 머무릅니다.
아직도 당신의 뜻이 어디 있는지 잘 모르면서 말입니다.
갈 길을 재촉합니다.
왼쪽으로 크게 돕니다.
아까 보았던 '포탄 경고판'을 이제는 거꾸로 보게 됩니다.
내리막이라는 얘기에 다름 아닙니다.
길 옆에 숨어 있는 헬기장을 지납니다.
경고판은 다시 거꾸로 보게 되구요.
가끔 갈림길이 나오곤 하지만 흐름을 따라 운행을 하면 별 어려움이 없습니다.
가고 있는 방향을 따라 걷기만 하면 됩니다.
이렇게 너른 길이 확실한 지맥 길임을 암시해 줍니다.
09:17
깃대봉(701m)입니다.
비록 대나무로 깃대를 만들고 천이 비바람에 찢겨져 흔적을 찾기 어렵지만 그래도 깃대봉으로 포스트 역할만 해주면 될 것입니다.
군 시설물을 지납니다.
포탄 탄피로 간단하게 타종을 할 수 있는 도구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09:21
716고지에 위치한 헬기장입니다.
또 내리막입니다.
09:30
이런 시설물도 포스트가 되려나....
폐(廢) 초소 같습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약사령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온통 철근이 솟아 있습니다.
토사의 유실을 방지하기 위하여 나무계단을 설치하고 그 지지를 위하여 철근을 받쳐 놓았던 것인데 그 나무 계단은 흙으로 덮였거나 유실되어 철근만 흉측하게 튀어 나온 것입니다.
혹시라도 야간 산행이나 운무에 시야 확보가 어려울 경우 안전사고가 우려되는 곳입니다.
보십시오.
조심하셔야 합니다.
09:34
약사령입니다.
537고지에 위치한 이곳은 아까 언급했던 바와 같이 요화정수지가 있는 용화동과 47번 국도를 연결하여 주는 비포장도로입니다.
당연히 4륜구동차들과 트럭들이 많이 주차되어 있더군요.
오르는 길로 표지띠가 많이 휘날리고 있습니다.
길 양 옆으로 바위들이 많이 놓여져 있는 게 갑자기 삼국지의 '호로곡전투'가 생각나더군요.
묘한 소리를 내며 바람이 부는 게 너무 시원해 그늘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합니다.
무원마늘님과 조고문님이 보이십니다.
09:43
약 10분 간을 머물다 다시 올라야겠지요.
머루금을 닿는데는 이렇게 골을 이용하여야 합니다.
09:47
그러면 곧 이렇게 너른 곳을 만나게 됩니다.
방카도 관리 소홀로 폐허화 되어 가고 있고....
이제 명성이 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는군요.
전 무슨 내용인가 했습니다.
게재자에는 관계 없이 정말 은근하게 좋은 내용입니다.
09:50
또 헬기장에 도착합니다.
조망은 안 되지만 이런 숲이 뜨거운 태양을 막아줍니다.
여우봉이 보이는군요.
약사령 계곡도 보이고...
지나온 각흘봉도 보이고 그 연봉을 따라 조금 전 내려온 마루금도 보입니다.
한북정맥의 장쾌한 스카이라인이 멋있습니다.
10:10
713고지에 있는 헬기장입니다.
이제서야 조망이 탁 트이는군요.
넓은 초원 같은 것이 덕유를 연상시키는군요.
이제 명성과 삼각봉이 지척입니다.
그 삼걱봉에서 이어지는 명성의 마루금이 여우봉까지 이어집니다.
참 좋습니다.
나물 채취하시는 분들입니다.
10:14
처음 보는 이정표입니다.
용화저수지 갈림길입니다.
조망은 좋은데 더위로 머리가 후끈대는군요.
이 나무 하나가 만드는 그늘도 아주 시원하군요.
간식을 먹고 물도 마십니다.
이젠 앞으로 물을 얼려와야 할 것 같습니다.
올해는 봄도 없이 그냥 지나버리는 바람에 물 얼리는 것을 깜빡했습니다.
자, 다시 가야지요.
10:26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는 701고지입니다.
그런데 이정표는 이렇게 떨어져 있군요.
불량품을 사용한 것 같습니다.
땀을 흘리며 열심히 진행을 합니다.
항상 지나온 길을 되돌아 보는 일은 즐겁습니다.
온통 흙길이기는 하지만 ....
너무 뚜렷한 마루금이기는 하지만 조망이 너무 좋으므로 더위도 참을만 합니다.
헬기장 위로 명성산 갈림길이 눈에 들어옵니다.
10:53
명성산 갈림길(876m)입니다.
몇 년전 그러니까 제가 백두대간을 하기 전에 이곳을 지나 신안고개까지 몇 번 운행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용화저수지 방향을 보고는 "과연 저 쪽으로 길이나 있는 것일까. 저 쪽으로 가면 어떤 산과 연결이 될까. 그 산으로 가는 길은 과연 있기나 한 것일까."라는 자문을 많이 하였었습니다.
정말이지 그때는 우리나라의 산들이 다 하나로 그러니까 백두산을 중심으로 다 이어져 있는 것을 몰랐습니다.
산에 대해서 전혀 모를 때의 이야기입니다.
바로 앞에 헬기장이 있고 그 뒤로 제가 지나온 길이지요.
이렇게 산들은 다 이어져 있는데 말입니다.
명선산 뒤로 궁에봉도 보입니다.
길 양 옆으로 낭떠러지입니다.
산자분수령을 다시금 확인합니다.
비록 지맥에서는 300m 멋어나 있을지라도 명성산의 여러봉을 거느리고 있는 이곳은 확실하게 명성지맥의 주봉(923m)입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신안고개까지 3km라고 하였는데 그렇게 먼가요?
글쎄요....
어쨌든 인증 촬영을 해야겠지요.
비슬님도 포즈를 취해봅니다.
명성산의 유래입니다.
이제부터 가야할 명성산의 주릉입니다.
뒤로 사향산까지 보이는군요.
11:14
다시 삼거리로 돌아옵니다.
명성산을 갔다오는데 20분 정도 걸렸군요.
표지판 뒤로 삼각봉이 보입니다.
삼각봉으로 오르는 길은 이렇게 돌길입니다.
11:18
웬 해태입니까.
이곳의 조망이 사실은 명성산 정상보다 더 좋군요.
명성과 궁예봉입니다.
명선지맥의 마루금 즉 산줄기이고요.
멀리 갈말읍 시내입니다.
정상석 측면을 촬영해 봅니다.
가야할 곳을 향해 또 발걸음을 옮겨봅니다.
사실 삼각봉은 빠뜨리고 지나칠 수도 있는 곳입니다.
지금 저는 삼각봉에서 내려 왔고 그냥 지나치면 사면으로 난 길을 따라오면 바로 오른쪽에 보이는 길로 오게 됩니다.
몇 분 차이가 나지 않으니 기왕이면 올라가야 하겠습니다.
11:24
이정표를 지납니다.
지나온 삼각봉, 명성산, 궁예봉입니다.
그늘에서 잠시 쉬었다 가기로 하지요.
계속 돌길만 지나오다 이런 길도 만나게 되는군요.
이곳은 하상 길이 두 대입니다.
하나는 사면 옆으로 지나는 평로이고 다른 하나는 마루금을 고집하는 바윗길입니다.
이런 바윗길이 무시로 나타나는군요.
11:55
신안고개 삼거리입니다.
이곳을 내려가게 되면 명성산을 지나 신안고개로 가는 길과 폭포에서 합류가 됩니다.
이 하산길은 명성산 하산길에 비해 난이도가 낮습니다.
왼쪽으로는 전차사격장입니다.
12:02
여기서 점심을 먹기로 합니다.
아주 너른 바위 위에서 밥상을 펼칩니다.
12:38
점심을 먹고 이제 마루금으로 빠지는 길을 찾아야 하겠기에 왼쪽을 주의깊게 바라봅니다.
흐름상으로는 팔각정까지 가면 안 되므로 오른쪽에 보이는 그 끝봉우리에서 왼쪽으로 흐르는 사면이 가운데 보이는 여우봉을 지나 그 뒷쪽의 사향산까지 이어지는 게 올바른 방향일 것 같습니다.
지도를 보니 거기까지 가보면 무슨 답이 나올 것 같습니다.
조고문님께서도 이 지역을 유의하라고 하셨는데...
12:42
그 마지막 이정표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150m안에 뭔가가 나와야 합니다.
오른쪽으로는 산정호수가 보입니다.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산정호수 (山井湖水)인데 사실 이 호수는 1925년 관개를 위해서 만든 인공호수입니다.
갈림길에 거의 다 온 것 같습니다.
팔각정이 거의 다 왔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가야 할 곳을 보면 사격장 오른쪽으로 뻗어 있는 산줄기가 여우봉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입니다.
그런데 사격장 때문에 그 길을 따라가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그 길은 사격장을 가운데 두고 크게 돌아 사격장을 가로질러 올라가야 하는 형국인데 그렇게 가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구역이 군사시설보호구역이라 사진 촬영은 자제하기로 합니다.
낭떠러지에 걸려 있는 소나무가 너무 멋있습니다.
왼쪽으로 무슨 표지판이 보이고 바람에 푸른 띠가 하나 날리고 있습니다.
바로 저기 입니다.
헌병이 출입하지 말라고 합니다.
철조망까지 쳐져 있습니다.
12:48
철조망을 지나 아까 마루금을 보니 119 구조표시목도 멀리 보입니다.
억새풀이 짓밟힌 흔적이 이곳이 등로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가 문제입니다.
길이 없기 때문에 그저 내려온 봉우리를 바라보며 현재의 제 위치를 가늠해 볼 따름입니다.
오른쪽 벗겨진 사면이 명성산 억새풀이 자랄 흔적이지요.
봄에는 저기에 비료를 뿌려 억새가 모양새 있게 키운다고 하는데...
글쎄요 그렇다면 그 밑에 흐르는 물도 농약을 먹은 물일텐데 등룡폭포를 지나 그 억새밭 있는 곳까지 오다보면 약수터가 있는데 음용하기엔 괜찮은 건가요.
12:58
이제부터 길을 찾을 수 없습니다.
뒤와 앞에 있는 산의 흐름을 보고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완전히 정글을 지나는 지역으로 잡목 때문에 지나기가 영 쉽지 않습니다.
이 정도면 어느 정도 헤쳐나온 것 같습니다.
여우봉 마루금입니다.
저 위까지 오르면 뭔가가 나올 것 같습니다.
이 지역으로 지나면서 처음으로 낡은 표지띠를 발견합니다.
그런데 저는 제가 걸은 이 길이 명성지맥의 마루금이라는 것에는 의심이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올바른 마루금은 사격장을 안고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답자들 역시 사격장을 싸고 돌아갈 수는 없을 것 같아 아래 산줄기를 타고 우회하는 마루금이 아닌 직접 이어갈 수 있는 마루금을 택하게 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걸은 곳은 분명히 물을 건너기 때문이고 그 물은 산정호수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중간에 많은 사진을 생략하였기 때문에 사격장 사열대를 지나 보이는 이 통신중계탑을 포스트로 삼아 올라옵니다.
사실은 이 사격장 아래에 있는 도로를 따라 올라오는 게 올바른 마루금이 맞습니다.
즉 바깥덕재는 제가 올라온 전차 이동 콘크리트가 있는 곳이 아니라 병력 집합소인 사격장 입구 쪽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멀리서 볼 때 오른쪽 명성 마루금이 끝나가는 부분에서 왼쪽으로 크게 돌아 사격장을 가운데 두고 왼쪽 마루금을 돌아 사격장 가운데로 떨어지는 지점이 바깥덕재로 그 곳을 지나 사열대 혹은 참관대 오른쪽으로 오르면 바로 이 중계탑으로 오르게 됩니다.
엄밀히 말하면 사열대 뒤로 올라 헬기장으로 올라야 하겠지요.
14:15
사실 이 표지띠는 간정호수 입구에서 일반적인 등로를 따라 오르다보면 등룡폭포를 지나 오른쪽으로 철조망을 넘는 길이 있습니다.
억새밭을 왼쪽으로 크게 틀기 전에 보이는 길입니다.
그 길로 올라오면 바로 이길로 올라오게 됩니다.
이 사면을 오르면 다시 정상 루트로 복귀하게 됩니다.
중계탑입니다.
14:22
풍력계를 만납니다.
너른 헬기장이 있는 곳(650m).
이곳에서 올바른 마루금으로 복귀합니다.
이런 숲길을 지나 여우봉을 향합니다.
14:36
710고지입니다.
이런 말뚝은 끊임없이 계속됩니다.
멀리 여우봉이 보이는 것도 같습니다.
진행 방향 오른쪽으로 산정호수 유원지가 보입니다.
바이킹 운전하는 뚱보아저씨의 바람잡이 맨트도 연실 계곡을 흔드는 것 같습니다.
14:46
드디어 여우봉(726m)입니다.
낡은 표지띠들이 많이 붙어 있습니다.
인증 촬영을 해야겠지요.
앞으로 난 선명한 길을 따라 내려갑니다.
바로 앞에 표지띠도 있어 별 의심 없이 진행을 합니다.
14:55
조망을 해 봅니다.
여우재 일대가 보여야 하겠지요.
아니 그런데 저기가 어디입니까.
왼쪽으로 들어오는 차도는 낭유고개와 여우재에서 내려오는 길이 합류하는 곳이고 앞의 건물은 경기예절교육원이며....
그렇다면 여기가 흔들바위가 있는 곳?
15:03
다시 여우봉으로 올라옵니다.
16분을 알바했군요.
저 쪽으로 노란 표지띠도 있었군요.
그렇지요.
이제 정면으로 사향산이 보이는군요.
가파른 내리막입니다.
산님들이 많이 다니지 않아서인지 낙엽이 너무 깊군요.
여우재 마을입니다.
왼쪽으로는 한북 정맥이 힘차게 뻗어 있고...
앞으로는 사향산에서 이어지는 명성지맥도 힘찹니다.
새도 날아다니고...
묘지가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습니다.
우선 시원한 맥주부터 한 잔 해야겠습니다.
이동방향이고....
이곳으로 가면 산정호수에 이르게 되겠지요.
15:33
이른 시간이지만 비슬님이 더 이상 진행이 곤란하다고 하는군요.
이따 친구 벌떡님이 합류하겠다고 하니 내일 오전에 간단하게 낭유고개까지만 진행을 하고 귀경을 하면 되겠기에 오늘 산행은 여기서 접습니다.
산행 개요
1. 일시 : 2010. 5. 22.
2. 산행 코스 : 여우재 ~ 사향산 ~ 낭유고개
3. 산행 거리 : 4.25km
4. 동행한 사람 : 벌떡님
5. 시간 기록
지 명 |
출발 시간 |
거 리(km) |
소요 시간 |
비 고 |
여우고개 |
05 : 42 |
|
|
|
부대정문 |
06 : 14 |
|
|
|
사향산 |
06 : 38 |
2.34 |
|
|
벙커봉 |
06 : 56 |
0.91 |
|
|
낭유고개 |
07 : 43 |
1 |
|
|
계 |
|
4.25 |
2시간 1분 |
|
산행 기록
5. 22.
이른 새벽에 일어나 밥을 하고 산행을 준비합니다.
오늘은 가볍게 낭유고개까지만 하고 귀경을 하여야 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간단하게 준비합니다.
05:42
여우재(438m)에 다시 도착합니다.
사향산 마루금은 아래에서 볼 때 부드러운 모습으로 보입니다.
상점들도 아직은 개점 전이군요.
콘크리크 길은 따라 직진을 합니다.
산 위에 있는 부대 때문에 이렇게 길이 좋군요.
왼쪽으로 길이 있군요.
저 차단기를 넘어가도 되겠지만 우리는 말을 잘 듣기 때문에 표지띠를 따라 산길로 들어섭니다.
이렇게 길이 좋은 것 같지만 더 오르다보면 길이 희미하고 쓰레기들이 많아 그 쓰레기의 주인이 누군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쓰레기들은 모두 피자 포장지와 치킨 포장지 그리고 맥주 패트통들인 것을 보면 대강 미루어 짐작이 갑니다.
군 기강이라는 게....
06:14
다시 아까 그 도로와 합류하게 되는군요.
바로 군부대 정문이 나오기 때문에 사진 촬영은 하지 않기로 합니다.
우리는 부대 정문 오른쪽으로 희미하게 있는 등로를 따라갑니다.
부대 철조망을 따라 가는 길이라 별 어려움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 길을 버리고 왼쪽 길로 따라간다면 아주 낭패일 것 같습니다.
06:32
안부에 오르니 이동시내가 눈에 들어옵니다.
안부 너머로 590봉을 지나 사향골로 이어지는 하산길이 보입니다.
이동시내를 지나며 볼 때 암봉으로 이루어진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오른쪽으로 틉니다.
아까와는 또 다른 모습입니다.
앞쪽으로는 한북의 강씨봉 줄기와 그 연봉들이 보입니다.
그 한북 뒤로 여명이 붉게 빛을 발하는군요.
06:38
사향산(736m)입니다.
군 삼각점과,
국립지리정보원 삼각점 등 두 개가 있습니다.
사향산(麝香山).
사향노루에서 붙여진 이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일반 지도 책을 보면 사향산이 736m 혹은 750m로 표기 되어있습니다.
반면 국토지리정보원 지도를 보면 정상부분을 비켜난 부분에 664.5m로 표기 되어 있습니다.
지금 산행기를 적으면서 복습을 하다보니 제가 올라온 길에 문제가 있습니다.
즉 콘크리트 도로를 따라 만연히 진행을 하여서는 안 되고 파인힐 팬션에서 왼쪽 마루금을 타고 올라와야 했었던 것입니다.
그래야 정상적인 마루금이었는데 마루금을 따르는 길을 따르지 않고 바로 부대 정문으로 가는 도로를 따르다 보니 그 길을 놓치게 된 것입니다.
물론 다른 많은 분들이 그냥 그 도로를 따라 오르다 보니 거리가 상당히 단축되는 효과는 있지만 제대로된 산줄기를 걷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게 됩니다.
아까 파인힐 팬션 주차장에서 왼쪽으로 마루금을 탔어야 부대 후문을 지나 다시 정문으로 도착이 되는데 그 길을 놓쳣던 것입니다.
아쉬움이 남는군요.
닷 돌아갈 수도 없고 정상석도 없는 정상에서 인증촬영을 합니다.
벌떡님이 오늘은 컨디션이 좋군요.
자 다시 길을 떠납니다.
군 시설이 있고,
이제 막 싹이 돋는 풀을 밟기가 안스러워 조심해서 걷습니다.
방화선 자리가 이렇게 풀도 많이 돋고 나무도 자기 모습을 되찾은 것 같습니다.
휴양림에 온 것 같군요
내리막 길인데 바로 또 큰 오르막입니다.
녹음 속으로 바위가 듬성듬성 있는 등로입니다.
바위 위에 뿌리를 내렸군요.
굴뚝이 보이는 것을 보니 벙커봉 같습니다.
06:56
672고지에 위치한 방카봉입니다.
산정호수가 보이지요.
그렇지요.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난 등로를 따라 내려가면 경기예절교육원이 있는 삼거리로 내려가게 됩니다.
진행방향으로 내려가야 하는 길이 아주 가파릅니다.
가파른 경사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이렇게 너른 곳으로 진행을 합니다.
낭유고개 건너에있는 관음산 능선입니다.
다은 구간은 관음산부터 시작되겠지요.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아주 가파른 구간입니다.
이쪽으로 올라오시는 분들은 각오를 단단이 다져야 할 것입니다.
지장산 연봉이 멀리 보입니다.
이제 낭유고개가 있는 387번 도로가 바로 아래입니다.
군 시설물들이 있는 곳을 지납니다.
07:43
드디어 낭유고개입니다.
해발 340고지가 넘는 이 고개는 사실 차로 오르기도 한참 시간이 걸리던 곳인데...
정확하게 2시간 1분이 걸렸군요.
서둘러 서울로 올라가야 하겠습니다.
그곳에서 증명사진을 촬영한다.
한북정맥과 오두(개명)지맥 갈림길이다.
한강봉산사랑산우회에서는 한북정맥이 오두지맥이 되어야 하며 아픙로 진행되는 구간은 도봉지맥으로 분류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이 쓰여져 있다.
글쎄 그럴 수도 있겠지만 지금껏 한북정맥은 장명산으로 가는 마루금이라고 하였으니 더욱 상세한 사료를 제시하여야 할 듯....
10:55
벙커가 있는 꾀꼬리봉을 통과한다.
10:57
산불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 챌봉(526m)에 도착한다.
헬기장이 있고 나무 의자가 가식되어 있는 챌봉은 주변에서는 이 봉우리가 제일 높아 '제일봉'이라 불리우던 것을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제일봉'의 발음을 '챌봉'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발음을 못하면 똑바로 가르쳐주든지 해야지 그걸 오히려 따라서 부르는 이유가 무엇인지.....
사패산 방향도 이렇게 조망이 안 된다.
11:33
장미란 상이 있는 곳을 지나 호젓한 산행은 계속된다.
이 지역은 크라운제과 소유의 땅으로 크라운제과 연수원의 교육장소로 활용되고 있는 것 같았다.
11:54
시원한 공터가 나와 기념촬영을 해본다.
11:58
대간 운행 중 대관령에서 보았던 무선중계소와 같은 류 인 것 같았다.
도봉산 방향은 여전히 시계가 불량하다.
정문에서 도로를 따라 걷다보면 내리막이 시작되는 곳 왼쪽으로 표지띠가 날린다.
정맥 마루금이다.
12:19
그 길을 따라 오르면 삼각점이 나온다.
12:28
천주교 길음교회공원묘지가 시작된다.
공원묘원의 왼쪽 가장자리를 따라 가다보면 왼쪽으로 표지띠가 휘날리는 곳이 있다.
그곳으로 내려서면 된다.
12:41
연못이 있는 식당을 나오면서 오봉을 조망한다.
그 식당 정문에는 망 같은 것으로 차량을 통제하는지....
12:48
울대고개에 도착하여 오늘 산행을 마감한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독도법 (0) | 2014.02.06 |
---|---|
1대간 9정맥을 마치면서... (0) | 2013.12.03 |
홀대모 선배님들과의 반가운 시간 (0) | 2013.11.24 |
통방산 (0) | 2012.06.03 |
나의 산행 일기 (0) | 2009.03.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