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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산줄기

남해지맥 1구간(남해대교 ~ 산성산~구두산~금음산~약치곡산~삼봉산~망운산~평현고개)


우리나라 섬 크기를 순위로 보자면 제1위는 단연  제주도이고 거제도, 진도 , 강화도 그리고 남해도가 그 뒤를 잇습니다.

제주도는 한라산을 중심으로 사방팔방으로 오름들이 산재해 있어 산줄기를 찾기란 '잔솔밭에서 바늘 찾기'여서 그 산줄기 개념을 찾는다는 것은 의미가 없고...

즉 그건 사막砂漠에서는 산자분수령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이는 정맥까지의 큰가지만 설정한 산경표는 두말 할 것도 없고 신산경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다음부터 문제는 산줄기 개념의 존재 여부입니다.

물론 섬에서는 산줄기 매니아들과 신산경표가 설정한 바는 약간의 차이가 나긴 합니다만.....


일단 신산경표의 경우, 거제도는 그 크기가 어느 정도 규모가 있으므로 남북 종주와 동서 종주가 가능하게끔 2개의 지맥으로 구분하였으나 규모에서 차이가 있는 이하 진도와 강화도 그리고 남해도와 안면도도 마찬가지로 한 개의 지맥 혹은 산줄기로 정리가 되는 것 같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섬의 경우 바다로 인해 육지와 떨어져 있어 이를 억지로 육지의 산줄기와 연곌하여 지맥枝脈의 개념에 포함시켜 거제지맥, 진도지맥으로 부르는 것에 찬성하는 입장은 아니어서 그냥 진도산줄기, 거제산줄기로 부르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글을 쓸 때나 타인들에게 섬의 산줄기들을 말 할 때에는 설명의 편의상 지맥이라는 계급을 붙여 사용하기는 합니다.

이는 어느 정도 지맥이라는 이름이 어느 정도는 보편화 되어 있어 설명의 용이함, 편리함을 거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하루 빨리 어느 명칭, 호칭이로든 정리되어아 할 대상입니다.


백두사랑산악회의 첫째 주 정기지맥 산행은 남해지맥입니다.

올해 새해 첫 산행을 강화지맥으로 하고 나머지 구간을 남겨두었던 찝찝한 마음을 이번 어린이날 휴무일에 간단하게 마쳤기 때문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산행에 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후배 '아라미스'님도 참가를 하게 되었는데 지난 주 서울 오산종주 이른바 '불수사도북'을 하다가 왼쪽 정강이를 다치는 바람에 오늘 참석이 불투명하였으나 본인이 참석을 약속한 일정이어서 악착같이 산꾼의 정신을 발휘하여 참석을 하는군요.

다른 새 얼굴 두어 명은 참석 의사를 비쳤다가 슬며시 철회를 하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백두사랑 산악회'가 시쳇말로 "빡세기로" 유명하긴 하나 봅니다.

무박 산행을 고집하여 새벽에 시작, 10시간은 기본이고 25km 이상을 해야 하니....

그러나 서너 번만 참석을 하면 아무리 최악의 컨디션이라 하더라도 자동적으로 25km는'필수', 30km 이상은 '선택'이 가능하게끔 체득體得되어지는 것을....

그리고 산악랜드 같은 곳에서 하는 당일치기 지맥 산행도 평균 15km정도의 산행이라 권할 만도 하지만 그 지맥을 하기 위하여 오고가는 8시간 정도의 탑승시간은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거라 함부로 남에게 권하기에는 조금은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또 그런 산행은 거의 '달리기' 수준이어서 주변 조망이나 지맥 외 봉우리 답사 등은 꿈도 꾸지 못하는 '그냥 했다' 정도여서 좀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무박산행이 다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도착하여 일출 전 까지 약 2~4시간은 암흑 속에서 헤매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겨울철 추윗속에서 아침밥을 먹는 것도 여간 고역이 아닙니다.

물론 산불을 조심하면서 버너로 찌개를 끓여 반주를 곁들이는 그 맛은 어디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오늘은 사당역으로 갑니다.

산행을 마친 후 필수적으로 이어지는 하산주에 혹시나 죽전에 하차하여 차를 가지고 귀가를 할 경우 남아 있을 지도 모를 알코올의 혈중농도 때문입니다.

정신이 깬 것과 몸에서 아직 분해되지 않는 알코올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산 행 개 요 

1. 산행일시 : 2016. 5. 8. 일요일

2. 동행한 이 : 백두사랑산악회

3. 산행 구간 : 남해지맥 1구간 (남해대교 ~ 산성산~구두산~금음산~약치곡산~삼봉산~망운산~평현고개)

4. 산행거리 : 25.18km (올해 누적 산행거리 : 525.94km)

  구 간

  거 리

출발시간

소요시간

비 고

남해대교

 

02:30

 

 

구 두 산

 3.29km

 03:44

74

금 음 산

3.55

05:02

78

약치곡산

0.56

05:15

13

대 국 산

1.10

05:45

30

가칭고개

2.82

06:36

51

삼 봉 산

3.97

08:31

115

20분 조반

망 운 산

3.77

10:42

131

10분 휴식

관 대 봉

2.10

12:11

89

30분 휴식

연 죽 산

3.11

13:29

78

 

평현고개

0.91

13:47

18

 

25.18km

11:17

10:17

실 소요시간

 

산 행 기 록



지도 #1

02:28

밤새 달린 버스는 남해대교를 건너 너른 주차장이 있는 휴게소에 도착을 합니다.

일단 차에서 내려 기상 상태를 확인합니다.

바닷바람이 붑니다.

그것도 약간은 비릿한 냄새가 섞여 있으나 남도 특유의 늦봄에 맛볼 수 있는 따뜻한 바람입니다.

그렇다면 자켓은 필요 없으니 바람막이도 차에 두고 낮에 갈아입을 반팔 티셔츠와 토씨만 챙기면 되겠군요.

중간 급유지가 충분하니까 물도 얼음물만 세 개를 준비하고 차에서 내립니다.


해물탕집과,

모텔이 있는 이 곳 휴게소를 예전에 보리암에 다녀오다 들른 기억이 있습니다.

이들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셔터를 누르는 순간 "메모리가 부족하다." 라는 메시지가 뜨는군요.

강화지맥을 갖다온 다음 정리를 하고는 메모리 카드를 카메라에 원위치하지 않은 것입니다.

하는 수 없이 스마트폰이 대타 역할을 합니다.

폰 촬영은 다른 건 다 좋은데 야간 촬영일 경우 조도를 맞추려 함인지 발광醱光하는 속도가 좀 느려 몇 초를 대기하여야 하는 기다림이 필요하고 지금과 같이 산행기를 작성할 때 일일이 시간표시를 하여야 하는 불편함이 뒤따릅니다.


기념촬영을 마치고,

02:30

자, 그럼 오늘 남해지맥 산행을 시작해야죠.

그 시작은 19번 도로 좌측에 불이 켜져 있는 경찰 초소를 지나 남해대교 좌측의 울타리를 넘어,

계단이 되어 있는 길을 따라 오르면서 입니다.

계단을 오르면 바로 우측으로 제주 고씨 무덤이 나옵니다.

오늘 산행은 온전하게 남해군 설천면 안에서 진행을 하게 되는군요.

잠시 바다 건너 광양만경제자유구역 지역의 불빛을 봅니다.

묘지를 임의로 사용하지 말라는 경고문구를 보고...

좌측으로 19번 도로로 떨어지는 마루금이 보이지만 잠시 직진하여,

02:51

산성산을 확인하고 되돌아 옵니다.

어제 선생님으로부터 카톡 메시지를 받긴 했는데 제가 답글을 부실하게 보내드려서....

여전히 고질병이 된 무릎때문에 고생은 하시지만 간단한 평지 산책을 하시니 빨리 쾌차하시길....

가파르고 얼마 전 비때문에 조금은 미끄러운 비알을 내려와 오늘 산행을 시작했던 19번 도로로 떨어집니다.

03:00

남해의 캐치프레이즈catchphrase '남해는 보물섬'입니다.

남해군 초입에 조성된 노량공원.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노량해전을 기념하기 위하여 조성된 공원으로 이해합니다.

공원 좌측으로 들어가니,

자연석인지 인공석을 조형화한 것인지 하여간 이 석물 앞을 지나,

우측 포장도로로 들어섭니다.

음...

아카시 나무 향기가 코를 자극합니다.

일본 사람들이 우리에게 엉터리로 가르쳐 준 또 하나의 작품 '아카시' 나무.

학명으로는 Robina pseudoacacia로 영어 이름은 false acacia로 '가짜 아카시아'인데 원 품종인 아카시아와는 전혀 다른 이 아카시 나무가 일본인들이 홍수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우리나라 전역에 심으면서 '아카시아'로 가르쳐 주어서 지금까지도 우리는 이 나무를 아카시아로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껌 이름도 그렇고 꿀도...

더군다나 서수남 아저씨는 아이들에게 까지도 '아카시아 꽃이 활짝폈네..."라고 가르쳐 줬으니 더 말 할 것도 없습니다.

도대체 우리나라 학자들은 뭐하는 사람들인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일본인들이 가르쳐 준 것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겨 제대로 연구함이 없이 그대로 제자들에게 물려주니....

1944년 제10대 조선총독으로 부임하여 결국 조선의 마지막 총독이 된 아베 노부유키의 예언을 저는 잊지 않으려 합니다.

"일본 식민정책은 조선인에게는 이득이 되는 정책이었다. 조선인은 아직도 자신을 다스릴 능력이 없기 때문에 독립된 정부 형태가 되면 당파 싸움으로 다시 붕괴할 것."이라고 하면서 "우리는 퍠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우리 일본은 조선민에게 총과 대포보다더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 놓았다. 결국 조선인들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인 삶을 살 것이다. 보라! 실로 조선은 위대했고 빛나는 역사를 가졌지만 현재의 조선은 결국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다. 그리고 나 아베 노무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지금도 그 후예들이 창궐猖獗하고 있으니....

식민지 교육의  무서움입니다.

참고로 이 아카시아 나무는 여러 종이 있지만 주종은 중동지방에서 자란다고 하고 이런 나무도 있다고 하는군요.

하긴 범도 호랑이로 만든 게 일본 사람들이니까....

03:07

각설하고 산행을 진행하겠습니다.

좌틀하여,

수렛길로 접어든 다음,

03:18

본격적으로 숲으로 들어갑니다.

03:23

지도 #1의 '가'에서 임도를 만나 임도 건너로 바로 치고 올라갑니다.

03:39

구들뫼.

구들장을 만드는 재료가 많이 나는 곳이라 구들뫼라고 불렀다는 우습지도 않은 내력이 있는 봉우리입니다.

봉우리라는 인식이 별로 들지 않는 이곳의 곧게 뻗은 소나무과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 길을 상큼하게 걸어,

03:44

구두산에 도착합니다.

龜頭山이라고 한자 표기가 되어 있길 망정이지 자칫잘못 했으면 이 산의 유래도 '구두방을 운영하던 김아무개씨'가 혹은 '신기료장수 이모씨....'라고 각색되었을 지도 모를 상황이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니까 구드뫼라는 이름은 이 구두산 즉 거북머리산과 연관이 있는 순 우리말로 이해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 4등급삼각점(남해 411)을 확인합니다.


지도 #2

03:48

우틀하여 용강마을을 따릅니다.

03:53

소로를 버리고 도로로 내려서기 위하여 좌틀하고,

널널한 길을 지나,

귀리밭을 지납니다.

254.8봉은 지나치는지도 모르게 지나고,

도로를 따라 걷다가,

밀밭을 지납니다.

04:12

지도 #2의 '나'에서 약간 좌측으로 이동을 하여,

04:13

한려해상국립공원 안으로 들어갑니다.

이정표에는 금음산, 대국산성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불야성을 이룬 곳이 아까 본 광양만권 경제자유구역 중 대송산업단지.

04:35

423.1봉에서 좌틀합니다.

마루금은 여기서 고현면을 만나 이제부터는 설천면과 고현면의 면계를 따라 진행하게 됩니다.

04:50

남재라는 고개를 지나는 것과 404.5봉을 지나는 것도 별로 의식을 하지 못할 정도로 고도 편차가 없는 평평한 곳입니다.

좌측으로 멀리 노량 앞바다를 건너 금오산金鰲山875.1m 정상부의 기지가 확연하게 눈에 들어옵니다.


저 금오산을 보면 신백두대간이라는 용어가 생각 나야겠죠?


산경표에 대한 공부입니다.

우리나라 산줄기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라 할 신라시대 도선국사의 옥룡기를 보면,

"우리나라가 백두에서 시작하여 지리에서 마쳤으니 그 형세가 물을 뿌리로 하고 나무를 줄기로 한 땅이라....."고 백두대간이 이 땅의 근간임을 밝혔고,

이익의 성호사설에도,

“백두산은 우리나라 산맥의 조종이다....(중략)....대체로 일직선의 큰 산맥이 백두산에서 시작되어 중간에 태백산이 되었고 지리산에서 끝났으니...

라고 기재되어 있음을 볼 때 백두대간에 대한 우리 조상들의 인식은 상당히 오래 전부터 입니다.

그러던 것이 나라가 식민지 치하에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일본인이 장악한 교육 정책을 따라 따라하기의 대가 일본이 서양지리학을 교과과정에 들어오면서 고토 분지로의 조선산악론에 근간을 둔 산맥론이 자리를 잡으면서 우리의 산경표 즉 백두대간은 잠시 우리나라 역사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그것을 우리에게 다시 가져다 준 이는 지리학자도 아니요 국가기관도 아닌 민간 지도쟁이 이우형선생님(1934~2001)이셨습니다.

백두대간의 역사가 다시 우리 품에 돌아오게 된 것이 한국일보에서 잠시 기자생활을 하다가 성우 생활을 거쳐 인생의 많은 시간을 대동여지도 복간 사업에 받쳤던 이우형 선생님이 1980년경 인사동 고서적 책방에서 우연히 산경표를 발견하면서부터였습니다.

지금은 모두들 담담하게 산경표를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그때만해도 "그게 뭔가?"라는 의문 부호 다음에 "그게 맞나?"라는 회의감이 들었을 정도로 일제의 식민교육 잔재는 그만큼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산악인-필자는 산악인이라는 표현보다는 산꾼이라는 단어를 더 선호합니다만....-을 위주로 백두대간 탐사 작업은 이어졌고....


이렇게 발견된 산경표가 주는 메시지는 실로 충격적이었습니다.

이우형 선생님은 산경표를 분석하여 이를 지도에 옮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산경표山經表의 시작은 백두대간白頭大幹부터 입니다.

산경표 백두대간 제1쪽 제일 윗칸에는 그 이름도 거룩하며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 백두산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 첫 줄에는,

白頭山 茂山西北三百里 甲山北三百三十里 즉 무산 서북쪽 삼백리, 갑산 북쪽 330리에 있는 백두산으로 표기하여 놓고 그 다음 줄은 연지봉臙脂峰으로 표기되어 백두산 -연지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흐름을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그 흐름은 보다회산寶多會山을 지나 산경표 제32쪽에 이르러 여원치女院峙를 지나 智異山 晉州西二百里 咸陽南四十里 山淸西南五十里 丹城西五十里 河東北百十里 雲峰東六十里 求禮北二十里 南原南六十里 一名頭流 白頭大幹止於智異 즉 진주..함양..산청..단성..하동..설봉..  구례.. 일명 두류라고도 불리는 지리에서 백두대간은 끝난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우형선생님이 백두대간을 우리에게 찾아준 이래 수많은 산꾼들이 이 백두대간을 답사하였으나 남북이 분단된 까닭에 백두대간은 진부령~지리산의 도상거리 약 675.2km만이라고 인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백두대간도 진부령에서 시작하여 지리산 천왕봉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지리산에서 시작하여 진부령에서 마치는 것 즉 북진이 일반화 되어 있습니다.

이는 언젠가 통일이 되면 진부령에서 향로봉으로 올라 금강산을 거쳐 백두산을 꼭 내 발로 밟으리라는 산꾼 아니 대간꾼들의 깊은 의지 내지는 다짐이 서려 있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이 산경표의 기본 사상이 무엇입니까.

예.

그렇숩니다.

산경표는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을 이야기하지 않고는 절대로 설명을 할 수 없는 핵심 내용입니다.


즉 “산은 물을 넘지 못하고 물은 산을 건너지 않는다”라는 뜻이며,


더 쉽게 표현하면

“두 능선 사이에는 계곡이 하나 있고 두 계곡 사이에는 능선이 하나 있다” 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나라 안에 산 없이 시작되는 강이 없고 강을 품지 않은 산이 없으니 산과 강은 하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파생 원칙 하나를 봅니다.

이 계곡 사이에서 발원한 물은 자기보다 더 큰 물줄기를 만날 때 즉 그 합수점에서 자기를 낳아준 그 산줄기와 반드시 다시 만난다는 것입니다.

佛家의 회자정리會者定離 아닌 이자정회離者定會라고나 할까요?


다시 백두대간으로 돌아가서...


백두대간의 역할을 다시 봅니다.

대간은 우리나라를 동서로 양분兩分하고 있는 바, 이게 가장 중요한 역할입니다.

따라서 동쪽에 있는 강과 서쪽에 있는 강은 절대로 만나는 법이 없습니다.

거기서 분기하는정맥은 우리나라 10대강의 울타리가 됩니다.

그러면 그 울타리인 정맥의 끝도 산자분수령의 원칙에 의하여 10대강의 끝으로 가서 그가 바다와 만나는 합수점 즉 하구에서 그 맥을 다하여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 우리가 산경표에 나와 있는 백두대간이나 정맥을 진행하다 보면 이 산자분수령의 원칙에 위배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즉 백두대간을 남진南進으로 진행을 하여 천왕봉에 다다르고는 좌측으로 보이는 상봉이니 중봉이니 하는 이른바 동부능선을 바라보면서 즉 더 진행할 줄기가 있음에도 "여기가 산줄기의 끝이다."라는 조금은 찝찝한 마음을 가지고 중산리로 하산을 하여서는 대간 졸업 축하식을 가지고는 그걸로 끝입니다.

정맥을 할 때에도 금남지맥을 하고 부여 부소산에서 내려와 구드래나루터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는 그걸로 끝!

뭔가 찝찝한 구석의 끝.

그 끝에는 산자분수령이 있었습니다.

분명 산경표의 기본 정신에는 산자분수령 즉 두 계곡 사이에서 발원한 물 다시말해서 정맥이 대간에서 갈라질 때 그 정맥은 자기보다 더 큰 물 즉 바다를 만나는 곳에서 그 맥을 다하여야 하는데 이상스럽게 금강과 서해의 합수점이 아닌 금강의 다른 이름인 백마강으로 들어가서 맥을 다 한다니!

이런 생각으로 나온 것이 박성태 선생님의 신산경표입니다.

신산경표는 산줄기의 끝을 두물머리로 돌렸음은 물론 겹침줄기인 한남금북정맥과 호남금남정맥을 더 큰 줄기인 금북정맥과 호남정맥에 편입시키면서 그 두 정맥을 없앴고 나아가 그 이름도 호서정맥이나 금강정맥이니 하는 이름으로 개명까지 시키기에 이르렀습니다.

어찌보면 아주 타당한 작업으로 보입니다.


이는 '신산경표'라는 박성태 선생님의 역작이 나오게 된 과정을 저 나름대로 파악하여 본 것이며 신산경표가 산경표의 정신을 100% 실현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특히 지맥과 기맥 부분에 들어가서는 많은 분들과 이론異論이 있는 부분이 많으며 나아가 정맥 이름을 고치거나 정맥의 끝을 하구河口 방향으로 돌린 것에 대한 많은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박성태선생님의 신산경표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으면서 즉 그 의의를 제대로 살펴봄도 없이 "산경표를 왜곡했다."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해 보입니다.


또 옆으로 샜습니다.

다시 백두대간으로 돌아가서,

천왕봉에서 끝난 찝찝함에 대한 반동으로 그 지리산이 대간인만큼 그 끝이 바다로 가야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참고도 #1

영신봉에서 남동진한 신백두대간과 천왕봉에서 분기한 웅석지맥.

빈 공간으로 남은 영신봉 ~ 천왕봉 구간


천왕봉에서 계속 줄기를 따라가보면 중봉 ~ 하봉 ~밤머리재 ~ 웅석봉을 지나 덕천강이 자기보다 상위 물줄기인 남강에 합류되는 합수점에서 맥을 다하게 됩니다.

대간이 강으로 간다?

이건 아닙니다.

백두대간은 당연히 바다로 가야지요.

참고로 신산경표에서는 천왕봉에서 분기한 이 줄기를 웅석지맥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지리산에서 바다로 가는 산줄기를 봅니다.

그러자면 자연스레 산경표의 낙남정맥 줄기를 일부 이용합니다.


참고도 #2

영신봉에서 남진하는 빨간선이 신백두대간으로 연장한 줄기.

빨간선에 노란형광펜을 덧쒸운 만큼 낙남정맥의 산줄기를 이용한 부분.

나머지 빨간선이 늘어난 산줄기 거리 30km.


그 줄기는 지리산 영신봉을 출발한 기존 낙남정맥의 옥산 부근에서 금오산875.1m ~ 연대봉446.8m ~ 노량으로 잠기는 줄기가 됩니다.

-금오산에서 용산151.1m ~ 두우산 193.2m ~ 섬진강 하구로 가는 줄기(11.6km)도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대간이 정맥 노릇을 하야 하기 때문에 타당치 않고....-


신산경표의 신백두대간이 탄생하게 된 배경입니다.

그래서 신산경표에서는 산경표가 백두대간을 1630.1km로 보는 데 반해 1683.9km가 된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신낙남정맥은 산경표의 지리산 영신봉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 이 옥산분기점에서 시작하게 되는 것이고.....

이게 백두대간을 보는 산경표와 신산경표의 차이입니다.

여기에도 신백두대간에 대한 질타가 쏟아집니다.

불경스럽게 산경표를 멋대로 건드렸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꾼들에게 신백두대간 이야기가 회자되면서 그 답사는 이어집니다.

옥산분기점 ~ 노량까지의 도상 거리 약 30km의 신백두대간 구간 중 가장 유별나게 대표선수 역할 하고 있는 산이 있습니다.

금오지맥의 금오산이나 경주의 금오산과는 한자어가 다른 금오산金鰲山이 그것입니다.

지금 그 금자라 모양의 금오산을 멀리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tip하나!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나 하자면,

노량을 건넌 신백두대간 줄기는 남해지맥을 따라 진행을 하여 따라가면 그 끝은 미조면 미조가 되는데 거기가 대간 동경 128˚ 03' 정도가 되는 데 그 끝을 북쪽으로 계속 올려가면 공교롭게도 그 끝이 백두산 천지에 이르게 됩니다.

줄기가 물 속으로 들어갔다 나왔기 때문에 말도 안 되는 가정이긴 하지만 조금은 신기합니다.


이 정도면 신백두대간이 조금 정리가 되었나요?

혹자는 이 신백두대간을 백두대간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하기도 하는데 이는 영월지맥과 춘천지맥을 영춘지맥 혹은 영춘기맥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05:02

그러고는 금음산480.9m입니다.

2등급삼각점(남해24)도 확인하고....

저도 표지띠를 가지고 다니긴 하지만 이건 뭐 너무 어수선해서.....

표지띠의 순기능 역할을 이해하셔야....


지도 #3

우틀하여 대국산성을 따릅니다.

05:09

459.8봉을 지나고,

05:15

약치곡산455.3m을 지납니다.

선생님께서 산패를 '남해산줄기'라는 이름으로 달아주셨습니다.

남해지맥이 아니고 남해산줄기로 말입니다.

안전시설도 잘 되어 있고....

정면으로 대국산371.3m과 주위를 도는 산성이 보이고 그 뒤 우측으로 삼봉산422.1m이 보이는군요.

삼봉산은 지맥 외 산이지만 삼각점이 있고 봉우리 두 개 중 우측에 있는 봉우리가 주봉 역할을 하긴 하지만 정작 삼각점은 좌측 봉우리에 있으므로 그 좌측 봉우리만 찍고 오기로 합니다.

05:32

등산안내도를 보고,

운동시설을 지나 임도를 따릅니다.

좌측 바다 건너 남해군 창선면 일대의 대방산 너머에서 일출을 봅니다.

일출 사진 한 장 건졌습니다.

05:39

이젠 가청고개를 따릅니다.

성곽 위에는 아라미스님이 기다리고 계시는군요.

잠시 뒤를 돌아 지나온 약치곡산을 봅니다.

마루금은 좌로 흐르고...

약치곡산 우측 뒤로는 조금 전 본 대방산의 일출.

그 우측으로 바다가 보이고...

...............

대국산성을 따라 우측으로 오릅니다.

그 꼭대기에 나무 한 그루.

어니언스의 '외길'을 흥얼거려 봅니다.

"돌아가는 저 길에 외로운 저 소나무...."

05:45

대곡산 정상에 올라오면 좌측으로 도마, 이어 갯벌이 펼쳐지고...

저 아랫쪽은 금산 방향이고....

이 성이 예전에 왜구들의 침입을 방비하기 위하여 만들어 진 성이라고 하는데...

하여간 예전이나 지금이나 일본인들 때문에 잠시라도 편안할 날이 없는 우리나라 입니다.

음...

삼봉산이 훨씬 더 가까워졌습니다.

그 뒤 좌측으로 보이는 게 망운산784.9m.

남해의 최고봉입니다.

여기서의 진행은 사다리를 타고 성곽을 내려가야 합니다.

조금 흔들거리는 맛은 있지만 사다리가 넘어가거나 추락의 위험은 없습니다.

조심스럽게 내려옵니다.

05:53

여전히 가청고개를 따르고....

06:01

지도 #3의 '다'에서 콘크리트 임도를 버리고 좌측 수렛길로 들어섭니다.

우측에 시설물이 보이나 무시하고 직진.

좌측 상수도 저수조를 보고도 마찬가지...


지도 #4

정태마을이 아름답게 펼쳐집니다.

그런데 이 동네 이름이 비난리非鸞里인데 이 '난鸞'자가 난새 '난'자로 봉황에 버금가는 새를 일컫는데 그렇다면 비난은 난새가 아니라는 말인가요?

무슨 다른 뜻이 있을 법도 한데....

삼봉산 우측이 지맥외 사학산339.4m.

아카시 나무를 보며 예전에 군대생활을 할 때 동초를 서던 기억을 떠올립니다.

06:17

지도 #4의 '라'의 곳을 지납니다.

우측으로 밀이 익어 가고 있습니다.

보리가 아니냐고 물어보니 대원들이 악착같이 밀이라고 합니다.

어차피 밀이건 보리건 저는 자신이 없으니까....

통통하게 여문 대나무 숲으로 듭니다.

말라 비틀어진 죽순도 몇 개 보고....

06:22

드디어 가청고개가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06:28

좌측 저수조 바로 우측 밭이 마루금입니다.

마침 밭일을 하던 주민들이 밭 아래가 마루금이라며 교통 정리를 하십니다.

지맥을 걸으면서 항상 느끼는 것.

밭을 지나거나 과수원을 스칠 때에도 항상 작물을 다치지 않게 혹은 밭고랑이라도 발자국이 남지 않게 조심을 하여야 한다는 것.

내가 무심코 걸은 걸음 한 발자국이 농민들에게 누累가 되지나 않을까 항상 생각하며 걷습니다.

어느 지맥꾼들이든 다 같은 마음 아니겠습니까?

어쨌든 여기서 설천면을 떠나 온전하게 고현면 안으로 들어갑니다.

좌측 비란리, 도마리...

그리고 바다.

좌측으로 멀리  호구산으로도 불리는 남산(621.7m) 그리고 그 우측의 송등산616.8m.

우측 삼봉산.

가창고개로 내려서기 전 작약꽃 밭을 봅니다.

06:36

그러고는 지도 #4 '라'의 곳의 가청고개로 내려섭니다.

도산마을 안내판이 세 곳이나 되는군요.

그런데 지도에는 이곳을 가칭곡이라 표기해 놓았군요.

엉터리 이정표였던 것입니다.

이 가칭이라는 말은 이곳 '가칭이' 마을에서 유래한 것으로 가청이라는 단어를 쓸 하등의 이유도 없어 보입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쓴 '가청고개'를 모두 '가칭고개'로 정정해야 하겠군요.

공사가 한창인 가칭고개를 건넙니다.

배가 고프고 햇볕도 따뜻하니 여기서 아침을 먹고 가기로 합니다.

마침 옆에 있는 식당이 문을 열고 청소를 하고 있어 주인 아주머니로 부터 소주를 사서(개당 2,500원) 반주로 듭니다.

마침 백두사랑의 주류파가 두 분을 제외하고는 함께 걷고 있군요.

잘 됐습니다.

20분 정도 아침을 먹고 다시 갈 길을 재촉합니다.

들머리는 식당 바로 뒤로 치고 올라갑니다.

이내 마루금이 나오고,

07:25

그 마루금은 이내 포장 임도와 만나고,

지도 #5

07:28

87.6봉에 있는 안동장씨 가족묘 등을 지나,

키 큰 소나무 옆 움막을 지납니다.

07:32

광명이마을에서 현촌마을을 따르고....

그러고는 임도를 따라 편안하게 진행을 하다,

07:57

여기서 임도를 버리고 좌틀합니다.

07:58

도마공동묘지가 펼쳐지는데 정상에는 안동장씨 묘소가 있고...

08:00

지나온 길을 돌아봅니다.

우측에 있는 저 건물은 뭐였지?

286.9봉을 지나 08:25

삼봉산 갈림길에서 직진을 하여 삼봉산 삼각점을 확인하러 갑니다.

08:31

삼봉산 삼각점봉에서 3등급삼각점(남해303)을 확인합니다.

여기서 100여m거리에 삼봉산 주봉이 있고 거기에는 선생님 산패도 걸려 있다고 하지만 별 의미가 없을 것 같아 주봉 답사는 생략합니다. 

다시 삼거리로 걸어나와 우틀하여 지맥을 이어갑니다.

이 삼봉산 삼거리에서 서면을 만나 이제부터는 서면과 고현면의 면계를 따라 진행합니다.

우리나라 산줄기 답사의 1인자 자하 신경수님.

별로 표지띠를 남발하시는 분이 아닌데 오늘은 여러 장을 부착해 놓으셨습니다.

한 번 보자는 말씀을 들은 지가 언젠데 항상 마음만 앞서 나갑니다.

지도 #6

삼봉산을 넘어서니,

08:55

현촌마을로 떨어지고, 버스 정류장에는 곧 오는 버스를 기다리는지 학생들 두 명이 정류장 안에 서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이런 동네에 슈퍼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얼른 들어가서 맥주를 물어보니 마침 냉동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냉기가 있는 캔맥주 두 통을 건네 주십니다.

아주 오래된 맥주.

할머니는 그동안 맥주를 팔아본 기억이 없으신지 값을 제대로 기억해내지 못하시다가 어렵게 개 당 1,500원을 달라고 하시는군요.

두 통을 사 아라미스님과 한 통씩 땁니다.

이런 곳에서 맥주를 살 수 있다니....

남해지맥 좋은 곳입니다.'

마루금도 편하고 물 보충도 용이하고 더군다나 이런 슈퍼까지 있다니....

긴장감을 늦추게 됩니다.

등산 안내도 우측으로 들머리가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망운산으로 중심으로 움직입니다.

10분을 머물다 다시 올라갑니다.

무조건 올라갑니다.

뭐 딴 생각할 것도 없으니 올라가기만 합니다.

09:52

예전에는 바위가 있어 우회하던 곳을 이제는 나무 계단이 놓이고....

10:06

그러고는 지도 #6 '바'의 주차장입니다.

여기서 남해읍을 만나게 됩니다.

좌측은 망운사 가는 길.

우측은 망운산 KBS 중계소 올라가는 포장도로.

여기서 또 10분 정도 놀다 올라갑니다.


지도 #7

나무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서 고현면을 버리고 이제부터는 서면과 남해읍의 면계를 따라 걷습니다.

음..

우측으로 대국산성이 보이고 그 뒤가 약치곡산.

좌측 봉우리가 지맥 외 녹두산이로군요.

10:25

우측으로 철쭉밭이 잠시 나타나고....

우측 아래 뾰족봉이 증봉543.4m.

.....

10:38

785.5봉 정상에 사람들로 북적이는 모습이 보이는군요.

아마 저 봉에 있는 정상석에서 추억을 남기려는 기념 촬영을 하기 위해서 일 것입니다.

그 우측에 오리지널 망운산이 보이고...

큰 중계용 철탑이 랜드마크로서 역할을 하겠습니다.

그 망운산.

그 우측으로 여수시 사포선착장의 모습도 보이고....

10:42

785.5봉에 오릅니다.

조금 전 제가 이 봉을 바라보던 자리에서 아라미스님이 내려오시는군요.

우측으로 남해읍과 고현면의 면계가 되는 줄기가 이어리 선착장으로 내려가고....

그 우측 치산리 부근...

명산은 맞는데 개쓰가 껴서 나무것도 볼 수가 없군요.

정상석 뒷면.

그리고 앞면.

좌측 저 봉우리에서 좌틀하는 능선이 마루금.

그 우측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오리지널 망운산으로 가는 길.

오동소류지와 그 우측 남해읍.

저기 어딘가에 사랑하는 동생 장감독이 어머님 병간호를 하고 있을 것이고...

마루금은 관대봉595.1m으로 흘러내려가고 그 우측으로 대곡제.

오랜만에 저를 공개합니다.

저도 다른 사람들 따라 폼 한 번 잡아봤습니다.

반팔 옷은 오늘 날씨가 더워서 긴팔을 벗고 갈아입은 옷인데 그런대로 색깔이 잘 어울리는군요.

아라미스님 작품입니다.

근데 이 785.5봉 정상에는 모처에서 온 산악회 사람들이 술을 마시느라 시끄럽게 떠드시는군요.

술을 마시다가도 어른이 왔으면 술을 권하거나 조용히 하는게 예의일텐데...

거기에 더하여 여성대원들에게 잘 보이려 함인지 남성대원들의 목청은 더 커집니다.

집에서 자기 마누라에게 저렇게 했으면 반찬이 하나 더 추가가 될 것이거늘....

수컷의 본능입니다.

친절하게도....

앞이 관대봉595.1m,  그 뒤 뾰족한 게 남산(호구산)621.7m.

그 우측이 납작한 게 괴음산604.9m, 그 뒤 우측에 있는 게 송등산616.8m.

줄기를 달리하여 우측 뒷편을 봅니다.

송등산에서 갈라져 남면 당항리를 지나 다시 솟아오른 응봉산471.5m과 그 좌측의 설흘산481.7m.

마루금이 한눈에 잡히는군요.

놀만큼 놀고 먹을만큼 먹었으니 조여사님을 뒤에 두고 우리 먼저 출발합니다.

30분이나 놀았으니...

흐름이 깨집니다.

11:12

바로 이 봉우리에서 좌틀하면 마루금, 우틀하면 망운산으로 가는 지맥외 길.

뭐가 씌웠나?

봉우리 오르기 바로 좌측에 길이 보이고 표지띠 몇 장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습니다.

아라미스님과 저는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얘기를 열심히 나누고 있던 차라 별 생각없이 그리로 들어가고 저는 뒤에오시는 두 분을 위하여 친절하게(?) 표지띠까지 한 장 붙여두고 진행합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마루금이 고도를 떨어뜨리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도 좀 이상하다는 느낌이 옵니다만 그래도.....

자꾸 좀 이상한 느낌이 드는데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누다 보니 등로가 급격한 하강세를 보이는 것도 심각하게 감지 하지 못합니다.

아뿔싸 지금 알바 중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에는 갑자기 너덜지대가 나오고 우측 한참이나 높은 곳에 뾰족한 봉우리가 나올 때였습니다.

바로 관대봉입니다.

혹성탈출 제1편 찰톤 헤스톤이 바닷가 옆에서 '자유의 여신상'을 발견하는 느낌입니다.

저 혼자였으면 그런가보다 하였건만 그래도 한끗 한다는 아라미스님도 아무런 생각없이 그냥 계곡길로 내려온 것입니다.

너털웃음을 지어보입니다.

"우리 알바한거냐?"

아라미스님의 대꾸.

"형도 알바해요?"

그나저나 우측 마루금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이미 가지 능선 세 개가 우리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최대한 아래로 떨어져 그 능선들이 만나는 곳에서 물줄기들을 건너 관대봉에 가장 접근한 줄기를 따라 올라갑니다.

길도 없는 가지 능선이지만 이런 건 지맥꾼한테는 별거 아닙니다.

지도를 보고 등고선을 파악만 하면 끝.

잡목과 가시나무들의 저항이야 예견한 거니까 신경쓸 것 없고....

12:04

갖은 고생을 다하고 다시 마루금에 붙습니다.

12:11

그러고는 관대봉에 오릅니다.

맨 우측이 785.5봉.

그리고 그 좌측 즉 가운데가 망운봉에서 지맥이 갈리는 갈림봉인데 확실하게  이 관대봉으로 내려오는 길이 보임에도 불구하고 우측 계곡으로 내려오는 길을 따랐었던 것입니다.

정말 미칠 정도가 아니라 정신이 돕니다.

남해읍 전경.

여기서는 저 남산이 납산이라 불려지고 또 이명은 호구산이라느니 그 옆의 봉우리가 괴음산이니 송등산이니 주변 경관을 살필 때가 아닙니다.

근데 이 아라미스님은 뭐하는지 올라오지도 않고...

혹시나 예쁜 아줌마들이나 보였으면 좀 지체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련만 뚜렷한 이유도 없을 것 같은데.....

여긴 또 어딥니까.

뿌연 박무 아니 미세 먼지 속에 망운암 쪽도 살펴봅니다.

쓸데 없이 남 사진 찍어주고 인생 상담해주다 다시 자리를 뜹니다.

또 10분 잡아 먹습니다.

12:31

우틀하여 평현고개로 방향을 잡고,


지도 #8

12:37

남산을 따른 다음,

12:38

이제는 평현고개를 따릅니다.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것을 진정하며 우선 등로가 유순한데 적이 마음을 놓기는 합니다만 이런 길 다음은 계속 오름길이기 때문에 흐트러진 마음을 잡습니다.

조금 전의 일을 교훈삼아....

354.9봉을 지나,

12:58

지도 #5의 '마'에서 포장도로를 만납니다.

도로를 따르다 저 길 끝에서 좌틀하여 잠시 숲으로 들었다가,

13:06

이정표를 만나고,

263.4봉에서 우틀하려는데...

수치산이라....

아웅산 수치여사가 이곳을 방문한 것은 아닐 것이고....

혹시 이곳이 평현리平峴里이니 이를 풀어 쓴다면 평이라는 말이 물과 같은 수평에서 온 단어고, 현峴이야 고개 치峙와 동일하게 쓸 수 있으니 水峙山으로 쓴 건가요?

박건석선생님 덕분에 저도 똑똑해지는 느낌입니다.

박선생님 그만하시지요.

13:19

곰실 공원묘지를 지나,

13:29

연죽산에서 4등급 삼각점(남해411)을 확인합니다.



13:47

그러고는 평현고개로 떨어집니다.

절개지 우측으로 진행하여 마루금을 진행해도 되는데 시간을 너무 허비한 느낌입니다.

아직 체력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고 이는 아라미스님도 마찬가지이지만 후미를 따라잡는 건 별론 우리 둘 때문에 오늘 귀경시간에 차질이 빚어질까 우려가 앞섭니다.

이때 한회장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옵니다.

회장님은 지난 번 당한 동상의 여파로 아직 체력적으로 회복이 안 된 상태.

마치 "나 체력이 달려서 이제 탈출을 하고 먼저 식당에 가서 한 잔을 하려고 하는데 파트너가 필요하다. 대충 끝내고 한 잔 하는게 어때?"하는 말과 거의 같은 취지의 말씀입니다.

"여차저차해서 이렇습니다. 그래도.... 하긴 다음 주에 남해에 있는 동생 만나기 위해서....형님이 말씀 하시면 따라야지..... 저는 힘이 없는 민초...형님 어디십니까?."

걱정하시는 한회장님의 말투야 누가 모르겠습니까?

"나는 지금 버스타고... 뒷풀이 집으로 가서 기다려야지..."

"그럼 그 때까지 혼자서 어떻게.... 야! 아라야, 회장형님께서 이러쿵저러쿵...."

"저야 형님이 하자면야 무조건 따르지요."

"그런 다음 주에 남해에 다시 와서 7km 정도 땜빵하고 장감독 만나 회나 먹고 올라 올래?"

"예 그러죠."

한회장님께 전화를 드립니다.

"회장님 하명에 따르겠습니다. 저희 택시타고 해물탕집으로 이동하겠습니다."

마침 오는 택시를 타고 오늘 뒷풀이 장소인 이동면 소재 해물탕집으로 이동합니다.

오랜만에 마무리를 안 하고 사랑하는 동생 장감독과 만나는 시간을 일부러 내기 위하여 건수 하나를 만든 격입니다.

오늘도 맛난 음식으로 뒷풀이를 하고 귀경을 하지만 오랜만에 잊었던 교훈 하나를 꺼내 듭니다.

너무 좋은 지맥길을 룰루랄랄 걸었다가 한 방 먹은 ...

물론 백두와의 동행이 아닌 홀로 걷는 지맥길이었다면 별로 문제가 될 수도 없었으나 다른 대원들에게 민폐를 끼칠 수 없는 산행이고 보니 이래저래 아쉬움만 남습니다.

그래도 주중에 멀리 남해로 내려가 보고 싶은 동생과 만나고 그 전에 산행까지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니 더 없이 그날이 기다려지기만 합니다.

녀석이 "有兄自遠方來하니 不亦樂乎라"하는 건배사를 듣고 싶군요.


남해지맥1구간.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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