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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백두대간2

백두대간. 그 첫걸음(중산리~천왕봉~장터목~세석~벽소령~연하천~노고단~성삼재)35.2km




산행기를 쓰는 일은 산행을 할 때 보다 훨씬 즐겁고 신명나는 작업입니다.

머릿속에 아직 남아 있는 산행의 여운과 그 당시의 감정을 오롯이 기억해내는 그 작업은 저를 다시 산으로 돌아가게 만들기에 적어도 제게는 빠뜨릴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 생각으로 긴 시간도 마다하지 않고 이런 글을 기꺼이 쓰곤 합니다.


백두대간을 다시 걷는 분들


최근 백두대간이 새롭게 저에게 다가옵니다.

백두대간에 대한 사랑 혹은 종주에 대한 열정으로 따진다면야 '아름다운 강산' 정병훈, 하문자님 같은 경우는 벌써 14회 정도 대간을 진행하고 계시니 열외로 하고, 2번 혹은 그 이상 복수 횟수로 대간 종주를 하신 분들은 어떤 이유로 그렇ㄱ[들 하셨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개 이런 이유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멋 모르고 걸었던 대간길이 이제 조금 뭔가를 알고 걸을 때와 어떻게 다를까?" 

뭐 이정도 아닐까요?

물론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도 다르고 생각하는 바 역시 다를 것이며 대간에 대한 접근 방법이나 해석에도 차이가 있을 것이니 굳이 제 생각을 다른 이들에게 강요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저는 그런 것 같습니다.

그것도 산줄기에 대한 이해도理解度가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른 다음에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제가 산줄기나 산을 이해하는 데 그런 수준에 오르긴 오른 것일까요?

더군다나 척박한 우리나라 산줄기 연구 현실에서 누가 그런 걸 판단이라도 해 줄 수 있을까요?

그래서 이렇게 생각합니다.

일단 발만 한 번 담그고 오자.

그러고 나서 계속 이어갈 지 아니면 어느 정도 여건이 조성된 다음에 이어갈 지 결정을 하자.


지난 번 지리동부능선 종주 혹은 지태(지리태극종주) 제2구간, 웅석지맥 1구간 종주 등 여러 가지 이름을 표방하고 진행한 밤머리재 ~ 천왕봉 구간을 마치고 중산리로 하산하여 식사를 하던 중 펼침막 하나를 봤습니다.

이 버스를 이용하여 금요 무박이나 토요 무박을 하라는 말이군요.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중산리까지의 운행 소요시간이 3시간 반 조금 더 걸리니 중산리에는 03:00 조금 넘어 도착한다는 얘기?

그렇다면 14시간 정도 잡으면 성삼재까지 가능할까?

지금과 비슷한 시기에 진행한 기록을 찾아보니 11시간 19분이 걸렸군요.


중성종주 (중산리 ~ 천왕봉 ~ 성삼재)


그런데 이 루트는 성삼재에서 시작한 것이고 날머리도 중산리 거북식당까지 측정한 거리이기 때문에 이번 경우와는 사뭇 다릅니다.

성삼재 루트 즉 성중종주는 이미 해발 1090.7m는 따 먹고 시작하여 1300m~1500m를 오르내리는 평이한 진행을 하다 영신봉1651.6m부터 고도를 높이기 시작하여 장터목에서 피치를 올린 다음 천왕봉을 정점으로 그 다음부터는 내리막 구간 아닙니까.

물론 천왕봉~중산리 구간의 내리막이야 악명 높은 그것이기는 하지만 일단은 내리막이니 up-down 구간을 진행 할 때의 힘듦은 우선 없잖습니까.


반면 그 루트를 중산리 주차장의 약450고지부터 시작하여 1915고지까지 올린다고 생각하면 조금 얘기가 달라집니다.

이것이 지리 종주를 하는 안내산악회의 산행 코스가 하나같이 성삼재~천왕봉 ~ 중산리를 고집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백두대간 종주를 한다면?

물론 북진北進이냐 남진南進이냐에 따라서 진부령으로 가냐 아니면 천왕봉으로 가냐의 차이일뿐....


어쨌든 저도 백두대간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오늘 산행에 임하는 만큼 그 들머리는 다른 생각의 여지없이 이 중산리이고 그 교통수단은 남부터미널~중산리 버스입니다.

그래야 귀갓길에 성삼재에서 출발하는 군내버스를 이용할 수 있고 그런 다음 구례구역으로 이동을 하여 구례구~광명 열차를 이용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지리산이 가까워졌군요.


산 행 개 요 

1. 산행일시 : 2016. 7. 9. 토요일

2. 동행한 이 : 홀로

3. 산행 구간 : 백두대간 첫걸음 (중산리~천왕봉~장터목 대피소~세석대피소~벽소령 대피소~ 연하천 대피소~노고단 대피소~성삼재)

4. 산행거리 : 35.02km (올해 누적 산행거리 : 815.05km)

  구 간

  거 리

출발시간

소요시간

비 고

중 산 리

 

03:08

 

 

천 왕 봉

7.00km

06:04

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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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목대피소

1.70

 06:45

41

10분 휴식

세석대피소

3.40

09:01

146

15분 조식

벽소령대피소

6.30

10:11

70

10분 휴식

연하천대피소

3.60

11:49

98

23분 휴식

노고단대피소

10.30

15:23

214

10분 휴식

성 삼 재

2.72

15:50

27

35.02km

12:42

11:34

실 소요시간

 

산 행 기 록


지도 #1  중산리 주차장 ~ 망바위

23:30 서울남부터미널을 출발한 버스는 요란스럽게 달려 중산리주차장에 산객들을 풀어놓습니다.

말만 우등버스이지 C급 차량이라 엔진소리도 시끄럽고 쾌적함과는 좀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도 웬 떡입니까?

한방에 중산리까지 데려다 주니....

모르긴 몰라도 항상 만차로 다닐 버스 노선입니다.

신발끈도 묶고 가방 정리도 하고....

대강 정리를 하고 도로를 따라 탐방안내소가 있는 곳으로 오릅니다.

같이 타고 오신 분들은 다 삼삼오오 오르는데 일행들이 많다보니 싸가지고 오신 것들로 짐들이 꽤 많으십니다.

하긴 저도 묵직하기는 다를 바 없지만....

식사는 행동식으로 준비하여 최소한으로 꾸려도 얼음물 두 개에 방울토마토 그리고 막걸리 한 통.

갈아 입을 여벌 옷.

그런데도 상당한 무게입니다.

드디어 지리로 들어갑니다.

주차안내소를 지나자마자 좌측으로 나오는 남명 조식 선생의 지리산을 예찬한 시조 한 수를 보고....

안내 산악회의 하산식을 담당하고 있는 거북식당도 봅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지리의 품안으로 들어갑니다.

오늘 산행은 경남 산청군 시천면 안에서 온전하게 시작합니다.

그 시작은 법계교法界橋를 건너면서부터 입니다.

뜻으로야 부처님 법을 따르는 세상으로 들어간다고 하지만 우리같은 산꾼들이야 어디 그렇습니까?

하지만 오늘만큼은 속계俗界를 버리고 선계仙界를 거닐 것이라는 당찬 생각으로 그 다리를 건넙니다.

좌틀합니다.

입구부터 천왕봉까지는 5.4km.

국공파가 줄자로 잰 이 거리는 GPS보다도 정확한 것이니 조금도 의심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중산리를 같이 출발한 다른 분들은 한참이나 뒤에 쳐져 따라오기 때문에 결국 혼자 걷게 됩니다.

하늘과 통하는 길로 들어섬을 알려줍니다.

그 통천길通天路은,

칼바위를 지나,

현수교를 건너 다음,

갈림길을 만납니다.

직진하는 '장터목대피소 4.0km' 방향을 버리고 우틀하여 '천왕봉 4.1km'를 따릅니다.

지루한 돌계단을 잠시 따릅니다.

이 첫새벽에 볼 게 뭐 있나요?

올라가면서 그저 이런 망바위나 보고....

이 망바위 위에 올라가서 보면 남해바다가 보인다나 뭐라나....

그래도 벌써 1.1km나 올라왔습니다.

천왕봉까지 이제 3km.

지방 산악회에서 오신  몇 팀들을 만납니다.

일출을 보러 오신거 아닌가요?

빨리 올라갈 생각들은 안 하시고 파김치가 되어 숨을 헐떡이고 계시는군요.

산인사를 나누고 그 분들을 추월하여 올라갑니다.


지도 #2  망바위 ~ 천왕봉 ~ 연하봉

문창대 들어가는 길도 슬쩍 눈길만 주고....

그런데 최근에 새로운 주장에 의하면 문창대는 이 부근에 있는 바위봉이 아니고 법계사 우측에 있는 헬기장 옆의 바위라고 하던데....

문창대요?

문창대는 지리산에서 기돗발이 제대로 먹힌다고 하는 지리 10대臺 중 한 곳입니다.

이 고요를 깨트리는 소리.

법고法鼓를 두드리는 소리로군요.

법계사에서 새벽 예불을 드리는 소리입니다.

저는 사실 쓸데없는 데 가끔 신경을 씁니다.

즉 아무도 보는 이들이 없는데 스님들은 하루도 빠짐이 없이 꼬박꼬박 그 새벽 예불을 드리는 것인지.....

저 같으면 심심할 때는 좀 넘기고 뭐 그럴 법도 한데....

성직자와 저같은 사람의 차이일 것입니다.

아!

천왕봉입니다.

정상에는 일출을 보러온 분들의 랜턴 불빛이 보이고....

오늘은 날이 맑아 훌륭한 일출을 감상하시고 계실 것 같습니다.

삼대三代가 복을 받으신 분들.... 

그러고는 로타리 대피소입니다.

1978. 10. 26. 남명 조식 선생의 13대손인 조재영님의 주도로 부산 로타리 클럽 회원들의 도움을 받아 처음 문을 연 그 당시는 로타리 산장이라는 이름들을 썼죠?

이 로타리 산장은 2000. 7. 국립공원관리공단으로 기부채납되어 지금과 같은 새로운 모습을 갖추게 되었고.....

이 로타리 대피소에서 우틀하면 순두류로 내려가게 됩니다.

이 순두류는 지리산(智異山)의 또 다른 이름인 두류산(頭流山)에서 따온 지명입니다.

'천왕봉'과 '중봉' '써리봉'의 아래 지점에 위치한 이 곳은 주위의 험난한 봉우리들 사이에 갑자기 순하고 평탄한 고원(평원)이 펼쳐진다 해서 붙여진 그것입니다.

그래서 純頭流가 아니고 順頭流라고 쓰고.....

편하게 좋은 길로 하산하여 중산리로 가시고 싶은 분들은 이 순두류로 내려가서 버스를 타고 중산리로 내려 가도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높은 고지(약1450m)에 위치한 사찰인 법계사.

태백산 망경사(약1470m) 다음이라고 하지요?

간단하게 오늘 무사 산행을 기원하는 삼배를 올리고 좌틀합니다.

이제 2km 남았군요.

죽자사자 한 시간만 더 올라가면 될 것 같습니다.

잡목이나 덩굴 같은 장애물은 없으니 그저 올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날이 좀 밝아졌습니다.

좌측 삼신봉 방향의 낙남정맥 줄기도 보고....

우측으로 법계사 옆의 봉우리 하나가 보입니다.

문창대가 저 봉우리 옆의 큰바위 있는 곳이라고 하는 설說이 최근에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합니다.

그 논거는 거기서  고운 최치원의 짚신과 지팡이가 발견되었다는 것이라고 하고.....

그냥 올라갑니다.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옵니다.

그저 이 된비알을 오르는 방법 중 가장 좋은 방법.

한대수님의 노래가 머릿속으로 지나갑니다.


"끝 끝없는 바람
저 험한 산위로 나뭇잎사이로 불어가는
아 자유의 바람
저 언덕 위로 물결같이 춤추던 님
무명 무실 무감한 님
나도 님과 같은 인생을
지녀볼래 지녀볼래

구름 건너 편에 황혼에 젖은 산끝 보다도 아름다운
아 나의 님 바람
뭇느낌없이 진행하는 시간따라
무명 무실 무감한 님
나도 님과 같은 인생을 지녀볼래 지녀볼래"

동쪽으로....

동쪽으로 늦은 일출을 봅니다.

그 우측으로는 구름 바다.....

산에 왜 오십니까?

저는 항상 그렇습니다.

하산주 마시러.....

하지만 이쯤되면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는 그냥 염화미소拈笑 정도 족하지 않을까요?

벗겨진 코팅지 안의 이름을 누군가가 개선문으로 덧쓴 거 같은데....

개천문 아닌가요?

開天門 말입니다.

누가 전쟁터에서 이기고 돌아온 것을 기념할 만한 위치도 아니고....

억지로 누군가가 장난질을 한 것 같습니다.

적어도 개선문이 되려면 가로로 뚜껑 정도도 있어야...

바로 위로 천왕봉이 올려다 보입니다.

시천면 쪽은 다 구름에 잠겼고....

이제 600m.

낙남정맥 삼신봉 방향....

석간수인 천왕샘.

그 옆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계시는군요.

안내판에는 '뻔뻔스럽게도' 여기서 남강이 발원한다고 씌어져 있고....

이 샘물은 덕천강에 합류되는 작은 지류 하나의 원천일 뿐...

남강의 발원지는 남덕유산 바로 아래고 덕천강의 발원지도 동부능선의 두류봉 부근 정도인데...

어쨌든 지리산 영신봉을 기준으로 하여 백두대간 동쪽에서 발원하는 물들은 다 남강으로 모아져 낙동강으로 합쳐진 다음 남해로 흘러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영신봉에서 분기하는 낙남정맥의 북쪽에 있기 때문이죠.

그 낙남정맥 때문에 진주사람들과 사천 사람들의 생활 양식이 많이 다르다고 하더군요.

간단한 예로 예전에 진주분들은 바다 생선을 잘 모르고 사셨다고 하는....

마지막으로 계단을 오르면,

이정표가 나오고,

그러고는 드디어 천왕봉입니다.

여기서 함양군 마천면을 만나게 되는군요.

지나온 곳을 좀 바라보고....

우선 정상석을 봅니다.

그런데 이 정상석은 1982년에 세워진 것이라고 하는데 뒷면의 '韓國人의 氣像 여기서 發源되다'의 '韓國人'은 원래 '慶南人'이었었다고 하죠.

그게 여차여차한 이유로 '嶺南人'으로 바뀌었다가 언젠가 지금의 '韓國人'으로 빠뀌게 되었고....

저도 1981년도에 군에서 제대를 하고 그 이듬해인지 아니면 그 다음 해인지 하여간 여름에 이 천왕봉에 올랐었을 때 '한국인'이 아닌 다른 글로 표기된 것을 보고 개탄을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긴 나는 것 같습니다.

더욱이 그날 비가 좀 내렸는데  그때 우연히 이 천왕봉에서 군대 후배인 강00도 우연히 만났었고....

잘 살고 있는지...

주위를 좀 둘러봅니다.

바로 앞으로 중봉 그리고 하봉 그 좌측으로 두류봉.

그 뒷라인의 낮은 줄기가 벽송사에서 올라오는 속칭 빨치산 루트.

그 뒤로 법화산992.9m 줄기가 이어지고 그 뒷라인이 진양(남덕유)기맥.

그 뒤가 수도지맥이니 어딘가가 가야산이겠군요.

그 좌측으로 지리 서부능선의 바래봉1186.2m에서 덕두산1151.5m을 거쳐 우측 투구봉1032.5m과 삼봉산1186.7m으로 이어지고....

그 좌측이 지리 서부능선.

맨 뒷줄 좌측 뾰족한 게 고남산.

그러니까 그 우측으로 백두대간이 흘러가고...

봉화산 우측으로 이어지는 줄기가 연비지맥.

그 뒤로 남덕유도 불뚝 솟아 있고.....

진행방향으로 바로 앞의 제석봉1808m.

그리고 구름에 덮힌 명선봉1583.4m.

그 뒤 엉덩이같이 폭 파인 두 봉우리의 좌측이 반야봉1732.1m이고 그 우측이 중봉1731.8m.

그 바로 왼쪽 뾰족한 봉우리가 노고단1502.9m.

오늘 중으로 저기까지 가야하는군요.

중간 좌측 머리가 벗겨진 봉우리가 세석 바로 옆의 촛대봉1703.1m.

그 뒤 맨 좌측이 왕시루봉1263.2m.

촛대봉에서 우측으로 마루금을 따라가다 보면 뭉툭한 영신봉1651.6m.


천왕봉은 백두대간의 끝이자 시작


대륙의 관문 백두산에서 시작한 백두대간은 실질적으로 여기서 끝나게 됩니다.

그러나 산꾼들은 통일이 되는 그 날.

그 날 이 대간길을 계속 이어가기 위하여 보통은 북진을 하게 되죠.

북진을 하는 그 시작은 여기 이 천왕봉입니다.

남쪽의 최고봉에서 북쪽의 최고봉을 향하여.....

참 신기합니다.

어떻게 조물주는 우리나라 이 땅에 북쪽에 큰 산 하나를 심어놓고 남쪽에는 또 남쪽대로 그에 버급가는 큰 산을 하나 더 만들어 놓으셨는지....

필경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산들이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 있게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어쨌든 조물주께서는 그렇게 두 산을 만드신 다음에 이름을 붙이십니다.

"너는 백두白頭, 너는 백두頭가 흘러流 내려가서  만들어진 것이니 頭流."라 해 놓고 그 두 산을 잇는 선을 딱 긋습니다.

그러니까 백두산의 白과 두류산의 頭를 따서 그 白頭를 잇는 선 말입니다.

선線이라는 게 간단없이 이어지는 점의 집합 아닙니까?

그러니까 끊임이 없다는 것이고 그 끊임없는 산줄기에 한자어 幹을 사용하게 됩니다.

幹은 줄기이니 가장 큰 줄기라는 뜻으로 대大자를 붙이는 건 정해진 일.

그렇게 대간大幹이라는 말을 예전 우리 조상들은 그렇게 사용한 것입니다.

물론 신라시대 도선의 옥룡기에 이런 내용이 처음 등장하다가 이익의 성호사설에 백두정간, 백두대간이라는 용어가 나오며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백두대맥, 백두남맥 혹은 조선산맥이라는 표현으로 나오다가 산경표에 이르러 백두대간으로 군더지게 되는 것이죠.

물론 택리지의 '조선산맥'의 山脈은 일본인이 지어준 산맥이 아니고 우리가 이야기 하는 산줄기 개념의 산경山經입니다.


결국 이름하여 백두대간.

거기서 마지막 봉우리인 천왕봉의 천왕天王은 곧 반신반인인 환웅桓雄이고...

그러니 우리 민족의 모든 게 백두산과 두류산 그러니까 지금의 백두산과 지리산에 다 녹아 있다는 얘기입니다.


산경표山經表라는 책


백두대간이라는 산줄기 개념과 함께 정맥이라는 이름이 체계적으로 정리된 책이 바로 산경표입니다.

신경준이 편찬했다고 전해지는 이 책은 당연히 필사본이었던 것인데 이 책을 영인본으로 제작한 곳이 육당 최남선이 주축이 되어 설립한 조선광문회였습니다.

이때가 1913년이었는데 이 조선광문회의 설립취지는 사라져가는 조선 고전들을 보전, 발간하기 위함이었는데 이 산경표가 이 조선광문회 창립 이래 3번째로 발간된 책임에 비추어 보면 이 '산경표'의 중요도를 느낄 수 있습니다.

어쨌든 이 최남선의 조선광문회에서 산경표 영인본을 만들지 않았었더라면 지금도 우리는 이 백두대간을 모르고 일본인들이 가르쳐 준 '산맥' 타령이나 하면서 살아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다행히 그 '영인본 산경표' 중 한 권이 1980년 인사동의 한 고서적 서점에서 이우형이라는 지도쟁이에 의해 발견됨으로서 뒤늦게나마 백두대간은 우리 품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

이 산경표의 기본 원리는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으로 즉 강은 산을 넘지 못하고 산은 강을 건널 수 없다는 간단한 진리에서 출발합니다.

이는 곧 모든 산줄기는 두 물줄기가 만나는 합수점에서 그 맥을 다 하게 된다는 것이고....

이 산줄기는 근자에 이르러 민간학자들에 의하여 연구가 시작되어 대간, 정맥, 기맥岐脈, 지맥枝脈 등으로 분류가 되기도 하며 논하는 이에 따라 분맥分脈, 단맥短脈으로 범위를 확장하기도 합니다.

여기에 지대한 공헌을 하신 분들이 조석필, 박성태, 신경수 같은 분들입니다.

준희 최남준 선생같은 분은 그것을 알리기 위해 지대한 노력을 발로 하신 분이고....

분류기준은 앞으로 해당되는 항목에서 그때그때 말씀드리기로 하겠습니다.


한편 이 산자분수령이란 모든 산줄기는 두 물이 만나는 합수점 즉 두물머리에서 그 맥을 다하게 된다는 명제인데 이는 아주 중요한 내용이며 진리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산경표를 보면 모든 산줄기의 기본이 된다고 하는 이 백두대간이 천왕봉에서 즉 물을 만나지 않았음에도 이 봉우리에서 끝을 맺게끔 되어 있습니다.

사리에 맞지 않을 뿐더러 조금은 황당하기 까지 합니다.

여기서 박성태 선생의 신산경표가 만들어지게 되었고 신백두대간이라는 용어가 생기게 됩니다.

자세한 것은 이따 영신봉을 지날 때 보기로 하고 우선 대간 줄기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면 이어지는 줄기를 보기로 합니다.

천왕봉에서 동쪽을 보면 중봉과 하봉이 명백하게 보입니다.


지맥枝脈이라는 줄기....

즉 이 천왕봉을 떠난 이 산줄기는 저 중봉을 거쳐 하봉~ 웅석봉 ~ 백운산을 지나 덕천강과 남강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그 맥을 다하게 됩니다.

그 산줄기의 도상거리는 54.5km에 이르고....

따라서 이 줄기가 30km가 넘으니 지맥에 해당하는 줄기이고, 이 봉우리 중 가장 알려져 있는 봉우리가 웅석봉이니 그 줄기의 이름을 웅석지맥이라 칭합니다.

참고도 웅석지맥


앞으로 대간을 이어가면서 계속 이런 용어니 이름들이 나오게 되겠죠.


천왕봉에서 10분 정도 놀다가 마루금을 이어가기로 합니다.

그 마루금은 경남 함양군과 산청군의 군계를 따라 진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길은 백두대간 북진 루트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진부령까지의 도상거리 약 675.2km를 걷기 위한 그 첫 발을 뗍니다.

천왕봉의 그림자가 제석봉으로 가는 길 위에 드리웠습니다.

통천문通天門을 지납니다.

아까 천왕봉 오르기 전의 개천문을 봤죠?

이 통천문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그 이름은 개선문이 아니고 개천문이 맞을 것입니다.

제석봉을 향합니다.

제석봉은 저 바위 아래 좌측으로 틀어서 진행을 합니다.

이 제석봉은 고사목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화전을 했던 이 자리에 소나무니 구상나무니 하는 나무들도 많이 자랐으나,

불행한 과거 민초들의 삶이 녹아들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제석봉의 명물은 뭐니뭐니해도 고사목입니다.

생태계 복원을 위하여 50년이 넘게 노력을 하고 있지만 고지대라서 그런지 식물들이 쉽게 뿌리를 내리기 어려운 모양입니다.

촛대봉과 칠선봉이 가까워졌고...

그 뒤로는 노고단 줄기가 남쪽으로 뻗어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러고는 고도를 팍 낮추어 장터목대피소입니다.

여기서 좌틀하면 중산리로 빠지고 우틀하면 백무동으로 진행됩니다.

좌측 취사장이 최근에 준공된 곳이고....

대피소 뒤 좌측으로 연하봉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우측 뒷편의 연비지맥 줄기....

마루금은 잠시 숲속으로 이어지고,

이 봉우리가 떠오르는 천왕봉 일출을 보기에 제일 적당한 곳이라서 붙여진 이름이겠죠?

....................

연하봉의 바위들....

이런 바위도 지나가고,

이런 바위도 지납니다.

지리 10경 중 하나인 연하선경烟霞仙境에 빠지려면 구름이 좀 흘러가야 하는데...

멋진 평원입니다.

멀리 촛대봉이 고개를 들이밀고 있고...

지도 #3  연하봉 ~ 칠선봉

가운데 라인이 삼각고지에서 삼정산1156.2m을 거쳐 실상사로 내려가는 이른바 지리북부능선.

그 뒷 라인이 서부능선으로 바래봉1186.2m, 덕두산1151.5m.

북부능선과 서부능선 사이에는 만수천이 흐르고 그 만수천은 임천이 되어 흐르다 남강으로 합류되어 낙동강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 길을 따라 861번 도로는 성삼재로 오를 것이고.....

이 지리산에는 서부능선, 동부능선, 남부능선, 오공능선, 창암능선, 초암능선, 두류능선 등 줄기마다 이름이 참 많이도 있고 그 능선을 따라 등산로도 많이 발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국공파들의 통제가 심해지고 대도시와의 교통들이 좋아지는 바람에 오히려 이런 능선들은 예전에 비해 찾는 이들이 줄어든 것 같습니다.

또 이런 능선을 찾던 이들이 정맥이니 기맥, 지맥으로 발길을 많이 옮기기도 하였고....

그 능선 이름들도 차츰 우리 뇌리에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좌측 촛대봉을 지난 마루금은 세석에서 잠시 고도를 낮췄다가 우측의 영신봉을 지나는군요.

우측 뒤로 반야봉은 여전히 위용을 드러내고 있고...

영신봉을 지난 줄기는 우측으로 곧은채 능선 한 줄기를 내어놓고....

영신봉은 구름에 살짝 가려져 있고....

가운데 뒤로 반야봉과 우측의 중봉이 보이고 그 좌측 뾰족하게 노고단도 보입니다.

반야봉 앞 우측으로는 지리북부능선이 우측으로 뻗어 있고 그 뒤로는 서부능선이...

역시 대단한 지리의 모습입니다.

북쪽으로 백무동 부근을 봅니다.

중산리 다음으로 천왕봉에 접근을 하기 가장 빠른 곳이라 산꾼들이 자주 이용하는 곳이죠.

대간 마루금에서 백무동으로 내려서는 루트는 세석에서 한신계곡을 통해 상백무로 가는 방법, 소지봉을 거쳐 참샘 방향으로 내려가는 방법 등이 있습니다.

기억에는 예전에 대피소 앞쪽을 이용하여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도 있었던 것 같은데 요사이는 통제하고 있어서 저도 그냥 의식하지 못하고 지나가곤 하는 거 같습니다.

아쉬움에 뒤를 돌아 봅니다.

우측 가운데 우뚝 선 천왕봉 그 앞 우측으로 제석봉.

연하봉은 보이는데 일출봉은 숲에 눌려 있는 모습입니다.

다시 고도를 높입니다.

좌측으로 촛대봉까지 오른 산꾼들의 모습을 보고,

이정표 뒤의 천왕봉을 봅니다.

우측 영신봉이 드디어 제대로된 모습을 보이고..

역시 서부 지리의 중심은 반야봉이로군요.

세석대피소가 드디어 보이기 시작합니다.

요즘도 철쭉제를 하나요?

예전에는 참 요란스러웠었는데....

우틀하면 한신계곡을 통하여 백무동으로 내려가는 길.

세석대피소에 들를 이유가 없으므로 그냥 직진하여 통과.

영신봉에서 남쪽으로 줄기를 내 논 낙남정맥.

그 낙남정맥이 이 백두대간에서 갈라지는 길목에 있는 영신봉으로 오릅니다.

아까 미뤄놓은 숙제가 있었죠?

산경표에 흐르고 있는 기본 정신은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어서 그 기본 산줄기인 백두대간은 두 물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그 맥이 끝나야 하는데 어째서 물을 만나지 않는 천왕봉에서 그 맥이 다하느냐는 의문이 그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실컷 산자분수령을 이야기해 놓고 정작 우리나라 모든 산줄기의 기본인 간幹 그것도 大幹인 백두대간이 정작 자기 자신은 거기서 예외라?

물론 백두대간의 구색 맞추기라는 면도 없지 않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산자분수령의 원칙이 훼손 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박성태 선생은 불경(?)스럽게도 여기에 과감하게 메스를 댑니다.

그리고 그 끝을 바다로 돌립니다.

즉 이 영신봉에서 촛대봉 ~ 연하봉 ~ 제석봉 ~ 천왕봉으로 향하던 백두대간의 끝을 영신봉의 위 사진 아래 방향인 삼신봉 ~ 옥산분기점 ~ 금오산을 지나 남해대교 북단인 노량에서 남해를 만나 그 맥을 다하게끔 돌린 것입니다.


신백두대간 新白頭大幹

백두산을 출발하여 지리산으로 들어와 성삼재를 지나 노고단 ~ 날라리봉 ~ 형제봉 ~ 영신봉 ~ 촛대봉 ~ 제석봉 ~ 천왕봉으로 이어지던 산경표 상 도상거리 1630.1km의 백두대간이 1683.9km의 신백두대간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고도     신백두대간 구간 =  핑크색 구간 (낙남정맥 구간)+ 연두색 구간  (기존 신금오지맥 구간)


산경표 敎徒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불경스럽게도 성전聖典인 산경표에 손을 대었다는 겁니다.

반목질시反目嫉視하는 파波들이 생겨났고 이를 폄하貶下하는 파波들도 생겨났습니다.

워낙 산경표 파들의 기반이 두터워서인지 아니면 그들의 전도력이 탁월해서인지 신백두대간의 교세 확장은 크게 두드러지지 못하고 미풍微風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다만 신백두대간이 들어 있는 신산경표의 여타 교리敎理 즉 기맥이나 지맥 등의 이론은 탄력을 받아 산경표 파에 의해서도 일부 수용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산경표 상의 백두대간의 끝은 바다가 아니라 천왕봉이라는 일개 봉우리에서 그 맥을 다한다는 점이 산자분수령의 대원칙에 벗어난다고 하여 이에 대한 반동으로 나온 것이 신산경표이며 그 논리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 신백두대간입니다.

-대간이라 산자분수령이 적용될 여지는 없음

논리적으로는 그게 맞는 것도 같습니다.


그러나 기존 산경표의 백두산 ~ 지리산 (천왕봉)이라는 개념과 인식이 백두산 ~지리산 ~금오산으로 쉽게 옮겨지지는 않았습니다.

백두대간 ≠신백두대간이라는 것입니다.

신산경표라는 책이 세간에 알려질 때만해도 그 반향은 미미했었으나 너도나도 그 책에 나와 있는 신기한 세계 즉 산맥에서는 알지 못했던 기맥이니 지맥이니 하는 산줄기들을 보고 발걸음들을 움직이게 된 것입니다.

-지리의 여러 능선들이 잊혀지는 이유들 중 하나


신산경표는 1대간 7정맥 6기맥 157지맥(최근에 5개를 추가하여 162지맥)으로 남한 지역의 산줄기를 확정하고 이에 더하여 통일을 대비하여 북한의 산줄기도 이에 덧붙인 서지학書誌學적으로도 아주 귀중한 자료가 되었습니다.

어쨌든 이 신백두대간이 바다를 향해 진행하여 그 맥을 물에 잠기도록 한 것은 고육지책으로 보여집니다.


이는 신산경표가 한남금북정맥과 금남호남 정맥 등 두 개의 정맥을 없애면서 이를 호남정맥과 금남정맥(호서정맥으로 이름까지 바꿈)으로 편입하여 남한 9정맥을 7정맥으로 만들었고 북한 쪽의 정맥들은 물론 남한 쪽의 한북정맥, 금북정맥, 금남정맥 등의 줄기 끝을 10대강 즉 한강, 금강, 섬진강 등의 하구와 바닷물이 만나는 합수점으로 바꾸었던 것에 비추어 보면 이해도 갑니다.

참고도 신산경표에서 변경한 정맥

빨간선 : 기존 산경표 상의 금북정맥과 금남정맥,    파란선 : 신산경표 상의 호서정맥(금북정맥)과 금강정맥(금남정맥)


그리고 백두대간은 우리나라를 동서로 가르고 모든 산줄기의 근본인 기둥 역할을 한다고 하는 것에 족하고 정맥은 대간에서 분기하여 우리나라 10대강을 구획하는 역할을 하는 것에 각 역할을 분담하면 되므로 대간은이 굳이 합수점으로 갈 필요도 없으므로 이 논리는 충분히 가능합니다.

즉 그래서 대간의 끝을 남해안의 중앙에 해당하는 하동의 금오산까지 연장한 거 아니겠느냐 하는 것이 신산경표의 입장입니다.


산경표 교도들은 그들의 성전에 대한 불경不敬스러움을 이야기는 하지만 이에 대한 대답은 알아볼 길이 없는 게 안타깝기는 합니다.


개인적인 질문을 한다면 신백두대간이 영신봉에서 우측으로 줄기를 틀어 낙남정맥 구간의 옥산분기점을 지나 금오산까지를 신백두대간으로 하여 진행을 하였다면 산경표 상의 영신봉 ~ 천왕봉 구간은 어떻게 하겠냐는 것입니다.

천왕봉이 없는 지리산을 이야기 할 수 없듯이 지리산 즉 두류산이 없는 백두대간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신산경표에서는 영신봉 ~천왕봉 구간을 다른 어떤 줄기에도 속하게 함이 없이 그냥 그대로 놔둔 것으로 예禮를 다 한 것 같이 보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 천왕봉에서 웅석지맥이라는 하나의 지맥이 분기한 것으로 정리를 한 것이 신산경표의 입장이고 그 신산경표는 지맥을 대간, 정맥, 기맥, 지맥에서 분기한 줄기라고 하였는데 도대체 영신봉 ~ 천왕봉(도상 거리 5.2km) 구간은 무엇이냐는 이야기입니다.

그냥 아무것도 아니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반복하지만 지맥은 대간, 정맥, 기맥 혹은 지맥에서 분기한 30km 이상의 산줄기로 정의를 하자고 약속을 했었으니까 말입니다.

그냥 웅석지맥만 예외로 하거나 아니면 공중에 뜬 채로 놔둬야 하는 겁니까.


사견으로는 백두대간만큼은 굳이 바다를 만나게 하여야 한다며 영신봉 ~ 금오산으로 연장을 하지 않더라도 그 위상을 존중하여 백두산 ~ 지리산 천왕봉으로 보고 정맥은 그 끝을 바다와 10대강이 만나는 합수점으로 가게 하는 것이 산경표의 산자분수령을 더 효율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게 대간과 정맥의 역할 분담이라고도 보여집니다.

그렇다고 하여 백두대간이 우리나라 국토를 동서로 양분하는 자신의 역할을 다 수행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낙남정맥落南正脈


이 백두대간을 이야기하다가 나온 낙남정맥.

이제는 이름만 들어도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능합니다.

즉 낙남에서 낙동강 남쪽이 유추가 되며 정맥이라는 말에서 대간에서 갈라지는 줄기이며 10대강 중 낙동강을 구획하는 산줄기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대간에서 갈라진 줄기로서 낙동강 남쪽을 받치고 있으며 그 줄기의 끝은 낙동강과 남해가 만나는 합수점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간 어느 봉峰?

아까 이야기하였듯이 산경표에 의한다면 대간 상의 영신봉입니다.

영신봉에서 분기한 낙남정맥은 시종일관 남강의 울타리가 되어 진행을 하다 광려산을 지나면서부터는 낙동강의 울타리로 역할을 바꿉니다.

그러고는 신어산을 지나 고암나루터에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232km의 산줄기가 됩니다.


물론 신산경표에서 이야기할 때의 낙남정맥 더 자세히는 신낙남정맥의 분기점은 영신봉이 아니고 여기서 21.1km 더 남서진한 옥산분기점이 됩니다.

그리하여 그 줄기의 끝도 신어산으로 가는 게 아니라 용지봉에서 우회전하여 불모산 ~화산 ~ 봉화산을 지나 녹산교에서 낙동강과 남해가 만나는 합수점에서 맥을 다하는 약 192.8km의 줄기로 보게 됩니다.

참고도 낙남정맥


또 하나의 차이점은 지맥의 소속이 달라지게 된다는 점에 있습니다.

즉 산경표에 의할 경우 삼신지맥이나 화개지맥은 낙남정맥 소속이 되며 여기에 신금오지맥(수도기맥에서 분기한 구미의 금오산인 금오지맥과 구분하기 위하여, 도상거리 30.9km)이 하나 더 추가가 되는 반면 무척지맥은 거리가 30km가 co 안 되는 고로 지맥이라는 이름을 가질 수가 없게 됩니다.

반면 신산경표에 의할 경우 삼신지맥은 신백두대간 소속, 신금오지맥은 당연히 없어지며 화개지맥과 무척지맥은 신낙남정맥 소속이 되게 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산경표에서 산자분수령을 논한 것에 터잡아 신산경표에서 기맥과 지맥을 '급級'에 따라 정리하여 명명한 것인데 일반적으로 보면 산경표 파들이라 하더라도 대간과 정맥은 1대간 9정맥으로 진행을 하고 지맥의 경우에는 그저 신산경표에서 그려준 대로 다니고 있는 상황 같습니다.


사설辭說이 길었습니다.


영신봉을 지나자마자 암봉 구간을 지납니다.

오래된 철제 사다리 구간들을 지나,

긴 나무계단을 내려갑니다.

예전에 이 구간을 지날 때 고생 좀 했었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175계단이 설치가 되어 편하게 오를 수 있었지만 예전에 해빙기 때 여길 지나려면 장갑이 흙투성이가 되던 기억이...

오늘은 내려가는 구간이라 더 수월합니다.

우측 아래 제석봉에서 흘러내린 창암산924.9m이 보이고 그 뒤의 법화산992.9m 라인도 여전합니다.

그 좌측으로 삼봉산1186.7m은 투구봉1032.5m으로 이어지고 ....

우측 최고봉이 천왕봉.

그 좌측의 중봉 그리고 두류봉으로 이어지고...

지도 #3의 '가'의 곳인데...

여기가 칠선봉인가요?

지도 #4  칠선봉 ~ 벽소령

지도에는 그 이정표로부터 10분 정도 더 걸어서 오르는 봉우리인 이곳이라고 하는데...

좌측으로 천왕봉과 제석봉 그리고 장터목 대피소까지 육안으로는 확실한데 카메라가 영....

이 아래 골짜기가 대성골이며 의신마을도 그 부근입니다.

빗점골 어디라고 하던데...

이현상이 떠오르며 불행하고 암울했던 우리나라 근대사를 떠올립니다.

이 대성골의 물은 화개천이 되어 화개에서 섬진강에 합류가 됩니다.

맨 뒷 라인이 호남정맥이니 좌측 최고봉이 백운산1228.0m이겠군요.

그 앞에 섬진강이 흐르겠고....

우측의 왕시루봉1240.2m도 여전하고...

그러고는 선비샘입니다.

지리산이 설악산에 비해 여름에도 종주가 그리 어렵지 않은 이유는 바로 마루금 상에서 어디든지 쉽게 물을 구할 수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사시사철 시원한 물을 풍부하게 구할 수 있으니...

여성 대원 두 분이 쉬면서 물을 보충하고 계시는군요.

벽소령에서 1박을 했는데 오늘은 로타리에서 2박을 하신다고요?

일출을 보기 위하여 2박 3일 일정으로 지리종주에 임했는데 장터목에 예약을 못해서 부득불 로터리까지 갔다가 내일 새벽에 천왕봉을 다시 올라와야 한다고 투덜대시는군요.

뭐 어떻습니까.

덕분에 천왕봉을 두 번씩이나 밟게되는 영광까지 안게 되었는데....

이튿날 일출은 잘 보셨겠죠?

덕평봉은 선비샘 때문에 우회를하게 되어 있고....


드디어 벽소령으로 가는 도로로 들어섭니다.

1382.5봉으로 우측으로 진행을 하면 1023번 도로와 만나 음정으로 떨어지겠고,

좌측으로는 벽소령으로 이어지는 옛 비상도로였는데 1950년대 빨치산 토벌을 위해서 만들었다는 얘기도 있고 박정희 정권이 5. 16. 쿠테타를 일으킨 뒤 깡패들을 잡아 교화차원에서 이곳으로 데려와 군 비상도로를 만드는 강제노역을 시키면서 만들어졌다는 얘기도 있더군요.

어쨌든 이런 돌이 많은 곳에 길을 내느라 고생들 하셨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관리가 안 되고 오히려 숲으로 복원을 하느라 그런지 이제는 도로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입니다.

벽소령 대피소입니다.

밤에 이곳에서 잠을 자 본 적이 없어 과연 이곳에서 밤(宵)에 뜨는 달이 그렇게 파란(碧) 빛을 띄는지 모르겠는데 언젠가 그 달빛을 확인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벽소령 대피소도 그냥 통과.

지도 #5  벽소령 ~ 명선봉

형제봉이 가까워져 오는군요.

바위들이 보이고 돌계단을 지나 좌틀하면서,

고개를 돌려 영신봉을 바라보고,

구름에 덮힌 호남정맥 줄기도 봅니다.

왕시루봉.....

이제 형제봉도 코앞입니다.

오랜만에 형제봉 밑 이정표 뒤의 비박터도 보고....

골바람이 시원한 형제봉 작은 바위에 앉아 간식을 먹으면서 반주로 막걸리를 먹습니다.

먹는 김에 아예 방울토마토도 좀 먹으면서 확실하게 쉽니다.

지나가는 분들 방울 토마토 두어 개씩 드리고....

얼음물과 같이 있던 거라 아주 시원하군요.

막걸리 한 통을 다 비우고 나니 23분이나 시간이 흘렀습니다.

갈길이 바쁘니 어서 일어서야죠.

시간을 재어보니 부지런히 가면 4시 40분 버스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시속 2.6km 정도는 유지를 하여야 할 것 같고....

우선 그 이름도 찬란한 삼각고지에 오릅니다.

삼각고지 뒤로 들어가면 삼정산을 지나는 지리북부능선으로 진행을 하는 길이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2주 후에 지리남북종주를 하기 위하여 이곳에 다시 와야 하는데 여기서 영신봉까지의 거리를 또 걸어야한다니 그게 좀 억을 할 것 같습니다.

3분 더 가니 여기서 전라북도 남원시를 만나게 됩니다.

그러니 이곳이 남원시와 하동군 그리고 함양군 등 3개시군이 만나는 삼군봉이 되겠군요. 

이 길로 들어서면 별바위등을 거쳐 삼정산을 지나 실상사로 내려가게 됩니다.

삼정리 음정마을 갈림길을 지나,

연하천 대피소로 떨어집니다.

연하천 대피소도 철철 넘치는 수량을 자랑하는 곳이죠.

주변 환경이 많이 깨끗해졌습니다.

여기도 그냥 통과.

나무 계단을 지겹게 올라 만나는 봉이 명선봉입니다.

지도 #6   명선봉 ~ 삼도봉(날라리봉)

예전에는 비박도 가능했을 법한 너른 곳에서 좌틀.

반야봉 부근이 구름에 덮혀 있고....

토끼봉을 지납니다.

이 토끼봉은 토끼가 여러 마리가 어울려 잘 놀다가 사냥꾼에 잡히게 되었는데 효심이 지극한 가난한 청년이 잡혀 가는 토끼들을 보고 그 눈망을이 하도 슬프게 보여 그 사냥꾼에세 통사정 하여 없는 돈을 내어 비싼 값을 주고 사서는 풀어주자 나중에 그 어머니의 병환이 위중할 때 산삼을 가져와 은혜를 갚았다는 등의 이상한 설화가 숨어 있는 그런 토끼봉이 아니라 이 봉우리가 지리의 정중앙인 반야봉에서 볼 때 24방위 중 가장 정동쪽에 있어 묘방(卯方) 즉 토끼 방향에 있는 봉우리여서 토끼봉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 이정표를 지납니다.

숲속만 다니다가 좀 너른 광장 같은 곳으로 나갑니다.

화개재입니다.

예전에는 여기서 우틀하면 뱀사골 대피소가 있었고 그리고 그 지루한 뱀사골 계곡을 내려가 반선으로 나가게 되었었죠.

그때 뱀사골대피소라는 방향 표시가 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대피소가 없어졌으니 반선이라는 이름으로 대체가 되었군요.

뱀사골..

뱀의 한자어 蛇를 연상하여 뱀같이 긴 물줄기가 계곡을 한참이나 이뤄 달궁까지 가는...

뭐 그런게 연상이 되기도 하지만 실은 실상사의 말사나 아니면 암자에서 수행을 하시던 스님들이 동안거를 하기 위하여 이 뱀사골(예전에는 다른 이름이었겠지만) 위의 암자로만 가면 내려와야 할 해제 날짜가 되어도 오지를 않았고 이런 일이 수년 계속 반복이 되자 어느 고승 한분이 동안거를 떠나는 스님 옷에 그 스님 모르게 독약을 바르게 되었고 이런 사실을 모르는 뱀이라는 녀석이 한찬 수행 중이던 스님을 잡아 먹고는 그 독에 의해 죽었다는 전설에서 이 골짜기가 뱀사골 즉 뱀사(死)골이라 불리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예전에 이 길로 내려가다 보면 바로 뱀사골 산장을 만나 휴식(숙박도 가능했었음)을 취할 수 있었고 그러고도 한나절을 힘들게 내려가야 마을을 만날 수 있을 정도로 사람 힘빠지게 하는 그런 계곡이었음을 기억합니다.

어쨌든 이번에 큰일을 당한 조영남의 노래 화개장터와도 관련이 있는 이곳에서 20분 정도 쉬면서 간식을 먹고 갑니다.

삼도봉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고....

현재의 지명으로는 삼도봉입니다.

경상남도, 전라북도, 전라남도 등 3개 도가 만난다는 뜻인데

원래 이 봉우리의 이름은 국립지리정보원의 지도에서 보시다시피 날라리봉으로 어엿한 자기 본연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던 곳입니다.

국공파 사람들은 '날라리봉' 하니까 곧 양아치 뭐 좀 그런 이름을 연상하였나 본데 사실은 원래 그 봉우리가 ‘낫’의 ‘날’같이 뾰족한 모양이었다고 하여 낫날봉으로 불리다가 음운이 변하여 날라리봉으로 불리던 것을 어쨌든 어감이 좋지 않다고 하여 국공파들이 개명작업을 추진하여 현재의 삼도봉으로 바꿔 부르게 된 것입니다.

뒤로 진행을 하면 불무장등(1446m)과 통꼭봉이 나오고 그 마루금은 당재를 지나 황장산을 넘어 화개장터와도 연결이 된다고 하는데 저도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고 그 길은 지금은 입산금지구간입니다.

지날 때 국공파에 단속되지 않도록 조심하셔야 합니다.

한편 우리나라에 산(山)이나 봉(峰)이라는 이름 대신 등(嶝)이라는 이름을 단 것이 있는데 제 기억에는 경기도 연천에 있는 주라이등 영알의 시살등, 함박등 등이 생각 나는군요,

우리나라에는 이렇게 삼도봉이라 이름 붙여진 곳이 두 군데가 더 있습니다.

즉 백두대간 상의 소사고개와 대덕산 사이에 있는 삼도봉(1250m)은 전라북도 무주군과 경상북도 김천시 그리고 경상남도 거창군이 만나는 곳으로 초점산이라고도 불리는 곳(수도지맥의 분기점)인데 그곳과, 또 다른 하나의 삼도봉은 민주지산 바로 옆에 위치한 그것(1176m)으로 이곳은 충청북도 영동군과 경상북도 김천시 그리고 전라북도 무주군이 만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삼도(三道)를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라 이해한다면 실질적인 삼도봉은 민주지산 옆에 있는 곳일 것입니다.

어쨌든 이곳이 전라북도 남원시와 전라남도 구례군 그리고 경상남도 하동군 등 삼개도의 경계가 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하동군을 버리고 남원시 산내면과 구례군 산동면의 경계 즉 도계를 따라 진행하게 됩니다.

바로 앞의 반야봉으로 구름이 올라가고 있군요.

지도 #7  삼도봉(날라리봉) ~ 돼지령

반야봉 3거리입니다.

시간 상 반야봉도 패스.

반야봉을 오른다면 이리로 올라가서,

반야봉을 찍은 다음 이리로 내려오게 되겠죠.

왕복 2km정도 되는 거리입니다.

임걸령 샘터로 들어가 목을 축이고 물도 한 통 받아갑니다.

 

제 앞을 열심히 가던 젊은 친구는 여기서 누나와 아버지를 기다리기 위하여 주저앉고...

피아골 삼거리에서 직진하고,

지도 상의 대판이라는 곳을 지납니다.

무슨 말이죠?

오오사카라는 말은 아닐테고....

뒤를 돌아 구름에 완전히 덮힌 반야봉을 보고....

헬기장이 있는,

돼지령을 지납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부르는 지명은 국토지리정보원 상의 지도와는 사뭇 다르군요.

지도 #8   돼지령 ~ 성삼재

휴....

노고단이 저렇게 높게 서 있다니...

언제 저기까지 가게 될 지 한숨부터 나는군요.

그런데 사실 이런 대낮에 이 부근을 지나게 된 게 거의 20년이 넘은 것 같으니 모든 게 낯선 게 사실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에서 지리에 오려면 보통 무박을 하게 되고 일단 왔으면 화대종주나 성삼종주를 하게 되지 다른 루트를 일부러 하는 안내 산악회도 없다보니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성삼재에 새벽 3시 정도에 내려 산행을 시작하면 여름에는 삼도봉 지나, 겨울에는 연하천 정도나 가야 주위를 살필 수 있을 정도니 이 부근을 기억 못하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성삼재 버스 시간에 맞추기 위하여 걸음을 빨리 합니다.

앞서 가는 분들께 양해를 구하고 추월도 합니다.

버스 타기 전에 화장실에서 대강 씻기도 하여야 하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별로 없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길은 여전히 좋고....

잠깐 반야봉을 돌아보는 여유도 갖습니다.

좌측으로 노고단 케른이 보이는군요.

이제 곧 입산통제도 시행할 시간도 다가오고.....

여기서 천왕봉이 25.5km.

중산리 주차장까지가 7km.

여기서 성삼재 주차장까지가 2.7km

그러면 총 거리가 35.2km가 된다는 얘긴가요?

35km라고 하던데...

우측의 노고단 모형탑.

예전에 노고단을 올라가지 못하게 막고서는 저걸 만들어 놓고 "이거나 보고 가슈"했었죠?

노고단에는 가족들이나 친구와 함깨 온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올라오고 또 내려가고 있습니다.

노고단 대피소를 따릅니다.

이른 저녁 준비들을 하시나.

상당히 붐비는 토요일 오후의 노고단대피소 풍경입니다.

좌틀하여 길 사정은 안 좋지만 지름길을 택하고,

이제 완전히 고속도로로 들어섰습니다.

우측 나무계단으로 내려가 지름길로 갈 수도 있지만,

입산이 통제된 대간 마루금 상에 있는 종석대1360.9m를 보기 위하여 우횟길을 택합니다.

오랜만에 보는 저 종석대.

종석대 들머리는 굳게 닫힌 채 잡풀만 무성하게 그 입구를 지키고있군요.

코재입니다.

화대종주를 할 때 화엄사에서올라오는 곳.

성삼재에 도로가 개통되면서 예전의 영화는 다 잃어버린 듯합니다.

무넹기란 말은 물줄기를 바꿨다는 얘기고....

성삼재주차장에 도착합니다.

오늘 03 :08경부터 산행을 시작했으니 12시간 40분 정도 걸렸군요.

예상 시간보다 두 시간 정도 빨랐고....

나이는 먹어가는데 체력은 더 좋아지는 느낌을 갖습니다.

산줄기 덕분입니다.

버스 시간이 16:40이니 19:21에 구례구에서 광명으로 오는 기차를 예약하였는데 이를 취소하고 17:29 기차로 다시 예약을 합니다.

화장실에서 간단하게 씻고는 옷을 갈아 입습니다.

휴게소에서 맥주 두 통을 사서 하산주에 갈음하며 여유있게 노모께 하산 전화를 드립니다.

9시 안 되서 도착할 것 같군요.

이제부터 대간을 계속 이어가야 하나요?

조금 더 고민해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