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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정맥/땅끝기맥

영산동지맥 2구간 (820번 도로 ~ 계천산 ~ 오두재 ~ 차일봉 ~ 국사봉 ~ 가음치)

노모의 건강이 많이 좋아지셨다고는 하지만 무박산행은 언감생심 꿈꾸기도 어렵습니다.

그 아쉬움을 주중 산행으로 보상받습니다.

땅끝으로 내려갑니다.

 

그런데 지금 가고 있는 이 산줄기를 산경 위주로 파악할 때는 해남의 땅끝마을까지 진행하여 그 이름을 땅끝기맥이니 혹은 해남기맥이니 하는 이름으로 붙이는 게 타당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이 산경표를 통하여 우리에게 암시해 주신 소위 '산자분수령'을 엄격히 적용할 때 그 심각한 오류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물론 논의의 대상은 존경하는 박성태 선생님의 '신산경표'입니다.

사실 제가 박선생님의 신산경표를 금과옥조로 삼아 그 전도사 역할을 하였음은 많은 분들이 인정하고 있고 또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그 단적인 예로 2014. 5. ~ 2014. 12.까지 산악전문 월간지인 '월간 산'에 '신산경표'가 제시한 7정맥을 제가 산행기 형식으로 해설까지 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선생님의 신산경표에 대항하여(?)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게 어찌보면 선생님께 불경스러운 마음을 갖게합니다.

더욱이 공식적으로 어떤 게 맞다라는 책임 있는 기관의 입장 표명도 없는 것을 감안하면 이렇게 의견을 표명하는 게 더욱 조심스러워지기만 합니다.

하지만 저의 이런 의견 개진이 선생님이 발표한 신산경표를 더욱 계승 발전시키는 데 주안점을 둔 것이라 이해한다면 용기를 내도 괜찮을 것 같다는 믿음이 생깁니다.

혹여 선생님께서 이글을 보더라도 그런 취지에서 이해해 주실 거라 믿습니다.

 

사설(辭說)이 길었습니다.

얘기를 시작해 볼까요?

산경표는 우리나라의 산줄기를 정맥까지만 제시해 주었습니다.

10대강을 본 것입니다.

그래서 1대간 1정간 13정맥 까지만 우리에게 보여주었고 나머지는 후손인 우리들에게 위임해 주었습니다.

그 산경표에서 산줄기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모습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대동여지도 발문에 있는 '산자분수령'을 거기에 끌어들이기 까지 했던 것이고..... 

  - 이에 대해서는 1구간 산행기에 자세히 얘기한 바 있음

그에 따라 정맥 이하의 산줄기에 처음 손을 댄 것이 바로 '신산경표'입니다.

 

한편 산경표는 모든 정맥은 10대강과  바다가 만나는 합수점으로 가야한다는 것을 그 이름으로 말해 주었습니다.

다만 호남정맥과 해서정맥 같은 경우에는 지방 이름을 따긴 했지만 이는 산줄기는 물줄기와 따로 떼어놓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물줄기는 곧 산줄기다!

이것이 우리 조상이 산줄기를 쉽게 보았던 이유일 것입니다.

GPS는 말할 나위도 없었고 나침반도 변변치 않았던 조선시대에 어떻게 산경을 그릴 수 있었겠습니까?

눈에 보이는 물줄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니 산줄기를 보려면 물줄기를 보아야 하고 그 물줄기의 끝만 따라가면 간단하게 그 산줄기를 찾을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걷고 있는 소위 '땅끝기맥'이라는 산줄기는 산경표의 대원칙이라고 할 '산자분수령' 그중에서도 제2법칙인 '합수점'과는 이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저 산경 즉 산줄기가 길게 가는 방향으로 따라 간 것에 불과합니다.

물줄기를 떠나서 산줄기를 봤다?

심각한 오류입니다.

물론 물줄기와 관계없는 줄기가  바다의 끝으로 가는 줄기는 예외적으로 인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원칙이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땅끝기맥을 고려함이 없이 물줄기만 보기로 합니다.

산경표의 호남정맥에 속한 줄기이므로 그 주 물줄기는 당연히 영산강입니다.

 

여느 물줄기가 그러하듯 영산강과 관련된 산줄기는 좌우측으로 다가옵니다.

서쪽은 이 자리에서 볼 것도 없고 동쪽만 봅니다.

이 영산강의 끝은 어디일까요?

발원지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모든 강의 시원은 작은 물방울입니다.

그 물방울들이 모여 샘을 이루고, 소沼나 연못을 이루면 그제야 그 물줄기를 발원지라 부르게 되는 것이죠.

그럴 경우 이 영산강의 발원지는 호남정맥의 용추봉 부근의 가마골에 있는 용소라고 합니다. 

참고도 #1 영산강의 발원지 용소

 

그 영산강에서 발원지로 가는 산줄기를 타고 올라가다 호남정맥과 만나는 곳 까지만 가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발원지를 찾는 게 아니라 산줄기가 갈라진 곳을 찾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참고도 #2 영산동지맥

 

그렇게 그으면 위 참고도 #2의 빨간선이 됩니다.

마음 같아서는 바람재 지나 갈림봉에서 북진시켜 발원지가 있는 용추봉579.4m까지 끌어올리고 싶지만 산줄기는 그렇게 보는 게 아닙니다.

호남정맥이 버티고 있으니 호남정맥에서 이 줄기가 갈리는 그러니까 우리가 1구간을 시작했던 그 갈림봉으로 보는 게 맞습니다.

그렇게 될 경우 신산경표의 '흑석지맥 + 땅끝기맥 일부 구간(별뫼산465.1m~갈림봉)'이 되어 도상거리 98.4km의 지맥(100km가 되지 않음)이 됩니다.

이름을 붙여야죠.

시종일관 지맥에는 하천이나 강이름을 붙여야 한다는 지론을 따를 때 영산강의 동쪽을 싸고 있는 지맥이므로 '영산동지맥'으로 명명하는 게 타당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 별뫼산 ~ 땅끝마을까지는 어떻게 처리하여야 할까요?

일반 바다로 가는 산줄기와 같이 처리하면 될 것 같습니다.

다만 지난 구간 말씀드렸던 바와 마찬가지로 옆에 있는 친구들인 여수지맥이나 고흥지맥과의 형평성을 고려하여 해남지맥(도상거리64.7km)으로 하자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난 구간 산행기의 이 취지에 어긋나는 내용은 '대한산경표'의 논지에 따라 이 내용으로 정정합니다.

 

그리고 이왕 발원지 얘기가 나왔으니 한 마디 더 할까요?

우리 조상들은 큰 강의 발원지만큼은 신성하게 여겨 이를 보존하였는데 현대인들은 이 취지를 잘못 이해하는 것 같습니다.

분명히 우리가 영산강의 발원지를 찾을 때 이는 산줄기의 갈림과 무관한 것임은 이미 살펴봤습니다.

즉 발원지와 큰 산줄기의 갈림과는 무관하다는 것입니다.

이 영산강만 해도 용소가 있는 골짜기를 가마골이라 불렀지 않습니까?

좀 우습고 억지스러운 얘기지만 백과사전이나 관광안내책자 등을 보면 그런 느낌이 더해지기만 합니다.

가마골은 예부터 그릇을 굽는 가마터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 가마곡이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가마골로 굳어졌다. 1998년 용추사로 가는 임도 공사를 하던 중 가마터가 발견되어 지명의 유래가 더욱 확실해졌다. 가마골에서 왼편으로 난 용추사 방면 임도를 따라 용추사에 거의 다다를 즈음 가마터가 하나 남아 있다. 이 가마터는 조선시대 기와가마로 용추사 전용 가마로 추정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영산강의 시원, 용소가 있는 담양 가마골생태공원 (대한민국구석구석 여행이야기, 한국관광공사)

 

그럴까요?

아무러면 우리 조상들이 이렇게 강이나 산과 관련 없이 마구잡이로 이름을 짓지는 않으셨을 겁니다.

원래 이 '가마'는 'ㄱ.ㅁ(아래 .'가 지원되지 않아 부득이 풀어서 썼음)' 자 계열의 순우리말에서 온 것입니다.

이 'ㄱ.ㅁ'이 18세기가 지나면서 'ㅏ'나 'ㅡ'로 바뀌게 되면서 지방마다 음운이 변하게 됩니다.

즉 원래 '신성하다'는 뜻의 이 'ㄱ.ㅁ'이 지방에 따라 '가마, 금마, 감악, 구마, 감, 금, 검' 등으로 변화했다는 것이죠.

뜻도 신성하다는 의미에서 마을의 뒤나 북쪽의 방위를 나타내는 말로도 널리 쓰이게 되었고.

그 신성하다는 의미의 대표적인 사실이 단군왕검의 어머니 배역에 곰이 선택되었다는 것은 신성하다는 의미와 곰의 발음이 비슷하다는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가마골은 숯이나 그릇을 만드는 '가마'가 있어서 그렇게 이름이 지어진 게 아니고 물을 중시하는 우리 농경사회에서 '신성한 골짜기'여서 그런 이름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그 물의 시원始源인 샘물을 '용소龍沼'라 부르는 것도 쉽게 이해가 갈 것입니다. 

 

한 가지 더 발원지를 생각해보면 한강의 발원지를 보죠.

지금 한강의 발원지로 알려진 검룡소는 1987년 국립지리원에 의하여 공식적인 한강의 발원지로 지정되었습니다.

그전에는 오대산 수정암 옆의 우통수입니다.

이는 세종실록지리지나 이중환의 택리지에도 명백하게 나옵니다.

그런데 이 우통수에서 검룡소로 이사를 가게 된 주요 원인이 실측을 해보니 검룡소가 조금 더 멀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이것을 1980년 이우형 선생이 인사동의 한 고서적 책방에서 산경표를 발견한 시기와 연관지어 생각하고 싶습니다.

이 산경표가 대중에세 알려지기 시작한 시기가 1986년 '스포츠레져' 잡지에서 처음 백두대간이라는 이름을 활자한 것이라고 보는 게 통설입니다.

그러고 난 후 같은 해 7. 24. 이우형 선생이 조선일보에 '국내 산맥이름 일제가 바꿨다'라는 기사가 실리고부터는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일에 민감한 당시 국립지리원(지금의 국토지리정보원)은 이를 떠들어 보게 됐고 백두대간에서 낙동정맥이 갈리는 그 부근을 한강의 발원점으로 보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당시 국립지리원이 한 가지 착각을 한 게 있습니다.

이때만 해도 아직 신산경표가 나오기 전이어서 백두대간에서 갈리는 줄기에 한강기맥이 있음을 놓쳤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지루하고 혼란스러우시죠?

자, 그럼 오늘 들머리로 갑니다.

서울부터 나주까지 참 멀고도 멉니다.

그나마 교통이 좋아졌으니 당일치기 산행을 시도하고 또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것이지 예전에는 어디 꿈이나 꿨겠습니까?

죽전에서 07:15 출발한 버스는 10:35이 되어 821번 도로의 한 고개에 정차를 합니다.

이미 다른 곳에 덕룡재라고 있으니 이곳을 덕룡고개로 부르지도 못하고 그저 '동물이동통로'로 부르시는군요.

오늘 산행을 시작합니다

 

산행개요

 

1. 산행일시 : 2017. 4. 27. 목요일

2. 동행한 이 : 새마포산악회

3. 산행 구간 : 영산동지맥 2구간 (820번 도로 ~ 계천산 ~ 오두재 ~ 차일봉 ~ 국사봉 ~ 가음치)

4. 산행 거리 : 13.74km

구 간

거 리

출발 시간

도착 시간

비 고

820번 도로

 

10:36

 

 

계 천 산

3.04

11:37

61

 

오 두 재

0.85

11:55

18

 

차 일 봉

3.94

13:15

80

 

국 사 봉

3.43

14:45

90

10분 휴식

가 음 치

2.48

15:28

43

10분 휴식

13.74 km

04:52

04:32

실 소요시간

 

  산행기록

 

지도 #1

10:36

저야 앞에 서서 진행해봤자 진행하는 대원들 방해만 될 게 뻔하므로 시작부터 후미대장이신 해공선생님과 보조를 맞춥니다.

터널 좌측 폐목장으로 가는 길로 들어서자마자,

좌측으로 낯익은 표지띠 몇 장이 날리고 있습니다.

오늘 산행의 사작은 나주시 봉황면과 연암군 금정면의 시계를 따라 진행합니다.

심한 된비알입니다.

굵지굵직한 대나무가 정겹습니다.

하긴 담양보다 더 남쪽이니 대나무 북방한계선을 넘어도 한참이나 넘었습니다.

10:54

다리가 플리지 않은 상태에서 오늘의 첫 봉우리인 445.7봉에 오릅니다.

능선은 북서진하는 모양새입니다.

정면으로 궁성산487.5m이 보이는군요.

지맥길은 저 궁성산을 싸고 우측으로 우회하는 형상입니다.

11:07

아무런 조망도 없고 특이점도 없는 372.3봉을 지납니다.

11:12

고도를 떨어뜨리니 좌측으로 임도가 보이고 그 위로 작은 저수지(기동제)가 보입니다.

다시 고도를 올리다보니,

우측으로 바윗덩어리 하나가 보입니다.

정면으로 볼 때에는 제법 면이 살아 있는 것 같이 보이는데 정작 옆에서 보면 완전히 칼바위입니다.

11:21

353.4봉을 지나 조릿대 군락지로 접어듭니다.

남도 지방의 특유의 조릿대입니다.

사실 지난 구간에도 이런 곳을 수도 없이 지나야했을 것인데 '남도 오백리' 덕분에 일부구간을 편하게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11:31

지도 #1의 '가'에서 석성의 흔적을 봅니다.

그러고는 좌틀하면서 나주시를 버리고 온전하게 영암군 금정면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러면서 아크로CC를 감싸고 돌게 됩니다.

그러고보니 이 골프장이 상당히 명당자리 같습니다.

지맥을 품고 있으니 말입니다.

11:33

어랍쇼!

선두가 엉뚜한 곳으로 들었군요.

다시 우측으로 회군을 하고 있습니다.

선두와 후미가 바뀌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걷고 있는 것이 산줄기이며 능선이니까 바로 앞의 계천산을 우측으로 돌아서 진행해야죠.

좌측 골짜기로 들거나 정면으로 오를 경우 가시나무와 잡목의 저항이 무척이나 심합니다.

11:37

계천산406.1m입니다.

보시다시피 자기 이름을 가진 봉우리라고 보기에는 좀 남부끄러울 정도입니다.

11:39

계천산을 빠져나오자 잡목구간이 시작되고, 좁은 대나무 숲을 빠져나와야 합니다.

그러면 임도를 만나게 되고 좌틀합니다.

11:42

탐진강 발원지라고요?

어디 한번 구경이나 합시다.

직진하여 저 가운데 나무 옆이라고 합니다.

이정표의 방향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런데 물이라고는 단 한 방울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더라도 이곳이 발원지이면 이 탐진강과 관련이 있는 산줄기는 분명히 있을 터 한번 살펴보기로 합니다.

참고도 #2  장흥(사자)지맥

 

저는 2016. 1. 17. 사자지맥이라는 이름으로 이 산줄기를 진행했습니다.

그때 이 줄기가 탐진강을 끼고 있는 것이어서 사자산 ~ 광춘산 ~ 괴바위산 ~ 금사봉 라인을 주목했습니다.

즉 위 참고도 #2의 '가'줄기입니다.

탐진강 하구로 가는 산줄기이므로 이 줄기가 기맥이나 지맥에 합당한 조건 즉 100km나 혹은 30km이상의 세력을 가진 것이면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이 줄기는 도상거리가 약25.1km에 불과하여 '탐진지맥'이라는 이름을 가질 자격이 없어집니다.

그럴 경우 '대한산경표'에서는 차선책으로 땅끝 즉 반도의 끝으로 가는 최장 줄기를 선택합니다.

'산으로 ' 박흥섭님도 같은 의견입니다.

그러면 이 도상거리 46.6km의 이 지맥 이름도 사자지맥이라는 이름보다는 친구들과 어깨를 견주기 위해 지방 이름인 장흥을 가져와 장흥지맥으로 부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그러니 탐진지맥이니 영산남기맥 등의 다른 이름도 그 세력이 지맥에 이르지 못하는 이름이니 가치가 없는 이름들에 불과하다 할 것입니다.

우측으로 금정면 안노리 일대가 보이는군요.

좌측으로 궁성산이 보이고,

11:53

지도 #1의 '나'의 곳인 삼거리에 도착합니다.

진행방향으로 직진을 하면 궁성산으로 가는 곳인데 거기를 갔다올 경우 후미 그룹에 있으면서 할 거 다 한다는 말을 들을 거 같아 그냥 우틀하여 오리지널 등로를 선택합니다.

그러면 폐기물 처리장을 보고,

11:55

이내 골프장 정문이 있는 오두재입니다.

진행은 정문 우측의 능선입니다.

일단은 거의 임도 수준입니다.

12:10

391.8봉을 지나,

12:15

묘지를 지나니,

12:19

질마재입니다.

여기서는 골프장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고 바로 옆에 있는 능선을 탔어야 했는데 다들 별생각 없이 진행하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골퍼들과 가벼운 인사까지 나누게 되었습니다.

캐디들도 빨리 빠져나가게끔 친절하게 유도도 해주고....

12:30

다시 지맥 길로 듭니다.

흔적도 없는 비사리고개를 지나,

12:35

승장재도 지납니다.

골프장 때문에 지금은 겨우 이름만 가지고 있는 고개에 불과합니다.

12:42

317.2갈림구간을 지나자마자 커다란 바위가 진행을 막습니다.

조망터입니다.

 

지도 #2

좌측 멀리 국사봉615.0m이 안테나와 함께 보이고,

그 우측으로 풍력발전소의 바람개비가 보이며 그 뒤로는 ....

그렇군요.

월출산 천황봉입니다.

다다음 구간에는 저 월출산을 지나겠죠?

송전철탑을 지나고,

12:48

지도 #2의 '다'의 도로입니다.

좌측으로 보이는 이상한 가옥이 개사육장입니다.

다행히 녀석들이 복날이 가까워져서 그런지 상당히 조신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끄럽지도 않고....

가옥 우측으로 길이 선명하게 나 있습니다.

12:53

희미한 길을 따라 힘겹게 오릅니다.

지도 #2의 '라'의 곳입니다.

좌틀하고....

12:58

360.3봉을 지나면서 뒤를 돌아봅니다.

멀리 궁성산으로 보고...

개활지로 나왔는데,

선생님의 산패가 반겨주시는군요.

바로 앞으로 차일봉384.5m이 보이고 그 앞으로 버섯농사를 하는 농가가 보입니다.

13:04

2차선 도로로 떨어져 좌측으로 들어갑니다.

임도를 타고 오르다 우측 버섯작목지가 지나는 곳에서 사면을 치고 올라가 지맥길에 붙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새마포는 갈길도 바빠 버섯 볼 시간도 없습니다.

13:15

돌더미가 보이고,

그 나무에 선생님의 산패가 있는 차일봉384.5m입니다.

한현우님의 안타까운 님의 모습도 보고...

술 마실 때 꼭 안주를 먹읍시다.

음택을 지나,

13:41

부드러운 능선을 가는 도중 대원들과 앉아 간식과 막걸리 한 통을 비웁니다.

우측으로 입석저수지가 멀리 보이고,

 

지도 #3

13:52

임도가 나옵니다.

다른 거 볼 필요도없죠.

괜히 마루금파를 자임하고 절게지를 치고 올라갔다가는 개고생합니다.

조용히 임도를 따르면서 427봉 라인을 우회합니다.

그래야 바로 앞에 있는 국사봉도 조망하고 우측 멀리 활성산도 볼 수 있고,

그 뒤로 머리끝만 보이는 월출산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고는 편안하게 주당고개로 떨어질 수도 있고....

酒黨과 관련이 있는 고갠가요?

잘 알겠습니다.

남의 것은 채취 안 하죠.

14:09

380.3봉 갈림길을 지나니,

길이 갑자기 좋아집니다..

지도 #4

14:21

이 부근에서 '남도 오백리'길에 다시 접속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 길이 지난 구간의 덕룡재 ~ 동산마을 그리고 이곳으로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덕룡재에서 우회하는 지맥길을 버리고 농로와 임도를 통한 직선 루트를 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어쨌든 경험 상 지금부터 등로 상태는 걱정 끝입니다.

드디어 조망이 터지기 시작합니다.

좌측 멀리 무등산1186.8m이 보이고 앞의 동산마을 뒤로 지맥길이 분명합니다.

중앙 가운데 호남정맥의 곰치재 구간인 거 같은데 하도 올망졸망하게 산이 이어져 가늠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하다 못해 지난 번 보았던 안테나봉을 찾으려 해도 육안으로는 제대로 보이질 않습니다.

그러니 랜드마크로 할 대상이 없습니다.

시간만 허비합니다.

요기를 올라서서,

우선 뒤를 다시 돌아봅니다.

바로 앞이 쌍효제.

그 뒤가 석동마을이고 그 왼쪽 멀리 무등산을 다시 보면서,

그 무등산을 좀 당겨봅니다.

좌측으로 나주호가 큰 규모로 보이는군요.

................

................

국사봉 정상을 향합니다.

14:44

국사봉 정상에는 안테나와,

묘지 몇 기,

 그리고 무인산불감시카메라와,

1등급대삼각점(청풍12),

그리고 정상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국사봉이라....

우리나라에서 산림청에 등록된 산 이름 중 랭킹 1위죠.

그 다음이 수리봉이고....

우리나라에 국사봉이란 이름이 많은 이유는 산악숭배문화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國師는 곧 天王을 뜻했기 때문이죠.

육당 최남선의 백두산근참기를 읽어보면 육당이 백두산 천지를 오르던 중 허항령을 지나다 사당을 하나 만나게 됩니다.

그 사당의 목주에 쓰인 '國師大王天之位'를 보고는 우리 선조들은 백두산신 = 천왕인데, 그 중에서도 환웅을  國師大天王으로 본 것을 이해합니다.

그러니 우리나라 주요 봉우리에 산신인 국사가 자리하게 된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 자체가 종교였으니 말입니다.

단군이 아사달로 돌아와 산신이 되었고 신라의 탈해왕도 토함산으로 갔다는 얘기나 사람이 죽어서 가는 곳이 산소라는 것도 다 그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조금 전 본 이 국사봉에 있는 무덤이 괜한 것만은 아닙니다.

육당은 한 마디 더 거들었죠?

'개성 송악의 국사당에는 도선을 억지로 끌어가고, 한양 목멱산(남산)의 국사당에는 무학을 끌어다 붙이는 것처럼 國師를 승계僧階인 것처럼 혼동 운운...'

그러니 우리가 지도에서 국사봉을 볼 때 어떤 곳은 國事峰이라고 하여 "이 산에 와서 나랏일을 도모했다."든가, 國士峰이라고 써놓고 "아무개는 이 산의 정기를 받아 나라의 기둥이 되는 선비가 되었다."라는 용어는 다 호사가가 만들어낸 말에 불과합니다.

좌측으로 23번 도로가 지나가고 정면으로 활성산이 내려다 보이고 그 뒤가 바로 월출산이군요.

2주 후면 오랜만에 월출산으로 오를 수 있겠군요.

그런데 우측의 저 연소저수지는 상당한 고지에 위치해 있군요.

도로가 오히려 그 아래를 지나고 있고.....

너무 오래 놀았습니다.

내려가야죠.

멋진 소나무에 수목장을 했군요.

15:07

묘지에서 좌틀하고,

15:10

임도로 떨어집니다.

우틀하고,

정자를 지나,

축사를 지나는데 하이에나 같이 생긴 개 두 마리가 사람을 성가시게 만드는군요.

혼자 지났다가는 겁 좀 먹을만 합니다.

15:27

다 왔습니다.

찻 소리와 사람들 소리가 들립니다.

15:28

가음치입니다.

오늘 산행은 여기서 마무리 합니다.

내려오니 제일 마지막이군요.

이런 선악회도 있습니다.

제 기량으로는 아무리 뒤에서 놀다가도 중간에는 들어가야 정상인데 이 새마포는 아차 했다가는 꼴찌로 내려오게 됩니다.

5시간 가까이 걸었군요.

기사님 덕분에 빨리도 도착합니다.

수고들 많으셨습니다.

다음 구간에 뵙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