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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정맥/땅끝기맥

영산동지맥(땅끝기맥) 3구간 (가음치 ~ 활성산 ~ 둔덕치 ~ 돌밧재 ~ 불티재)

 

 청화산인 이중환은 그의 불후의 명작 '택리지'에서 이 부근의 산줄기를 이렇게 보았습니다.

'(덕유산 줄기에서 세 가지로 갈라진 것 중) 가장 긴 것은 동쪽으로 뻗어가서  담양의 추월산과 광주의 무등산이 되었다.

추월산과 무등산은 또한 서쪽으로 뻗어가서 영암의 월출산이 되었다.

월출산의 산줄기가 동쪽으로 달려가 광양의 백운산에서 멈추었는데 산줄기의 구부러짐이 갈지(之)자 모양과 같다.

월출산의 한 줄기가 남쪽으로 달려가 해남현의 관두리를 지나서 남해의 여러 섬을 만들었다.

다시 천 리 바다를 건너서 제주의 한라산이 되었다.

훅은 한라산 산줄기가 다시 바다를 건너 유구국(琉球國, 오키나와)을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확인할 수 없는 일이다.'

재미있죠?

이 부분에서 호남정맥의 갈라짐이 지금 우리가 보는 시각이나 산경표가 바라본 줄기의 방향이 약간 다르기는 합니다.

하지만 어쨌든 1751년 서술한 이 청화산인의 명저 택리지를 저는 산경표의 모델이라고 봅니다.

택리지의 산수편 총론에는 백두대간에서 각 정맥들이 가지를 친 모습들을 보여주고 심지어는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이 영산동지맥의 모습도 보여줌은 물론 이 산줄기가 멀리 오키나와까지 뻗어 있음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런 것보다 가장 중요한 게 있습니다.

이 시기에는 아직 백두대간이라는 개념이 설정된 것은 아니지만 택리지는 그 이전 용어가 '조선산맥'임을 확실하게 보여줍니다.

물론 조선산맥이라는 개념의 이해에 대해서는 청화산인 역시 그의 재종조부인 성호 이익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긴 합니다.

하지만 어쨌든 이 산맥이라는 개념이 이 책을 총하여 우리의 원흉(?)이라할 고토 분지로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저는 이 택리지를 주목하는 것입니다.

당시 베스트 셀러였던 이 택리지는 1881년 '조선팔역지'라는 이름으로 일본에서, '조선지리소서'라는 이름으로 중국에서 각 번역되어 출간된 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고토 분지로가 일본에서 이 책을 읽고는 청화산인을 '동양 죄대의 지리학자'라고 불렀던 것도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즉 고토는 이 책을 토대로 우리나라 산줄기의 뿌리를 보았던 것이고 우리 선조들의 지리인식 체계를 엿보았던 것입니다.

또한 청화산인 이중환이 이 책에서 우리나라 지세를 '노인형상'으로 보았던 구절에 착안하여 "중국에 읍(揖)하는 형상이라든가 토끼모양'으로 비하한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 아닙니까?

이는 '오래 전부터 중국과 그만큼 친하게 지냈다는 의미'로 썼음을 청화산인이 분명히 밝혔음에도 말입니다.

결국 그는 이 '조선팔역지'를 읽고 조선인들의 민심을 읽었으며 산줄기 체계를 공부하여 결국은 지질조사에 유용하게 써먹었습니다.

교활한 일본인들의 무서운 야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오늘 우리가 걷는 코스를 봅니다.

가음치 ~ 활성산 ~ 불티재 구간의 약 14.4km인데 사실 산이라고 할만한 것도 없습니다.

활성산이 500m 정도 되니 그나마 면목이 서는 것이지 큰일 날 뻔했습니다.

그러니 고토 분지로나 그의 후예들인 우리나라의 지리학자들 또한 산맥도를 보면 이 줄기가 노령산맥인지 소백산맥의 한 줄기인지 불분명하게 인식했던 것입니다. 

참고도 #1

 

그렇지 않습니까?

그나마 국토연구원의 김영표 박사가 제시한 신산맥도에는 줄기의 흐름을 느낄 정도여서 그는 이 줄기를 3차산맥으로 규정하였습니다.

산경표에도 명칭은 부여하지 않았지만 당연히 가음산 ~ 둔덕치 ~ 화치 ~ 월출산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줄기로 보기도 하였고....

참고도 #2

 

한편 신산경표는 이를 산경(山經)을 중심으로 파악하여 땅끝기맥이라 불렀고 저나 대한산경표에서는 산경표와 대동여지도의 기본 정신인 '산자분수령'의 취지에 충실하고자 영산동지맥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니 신상경표에서 보는 땅끝기맥 → 흑석지맥은 영산동지맥 → 장흥지맥이 되는 것입니다.

엎어치나 메치나 그게 그거라고요?

그렇게 보면 안 되죠.

산줄기 체계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배운 산맥이라는 개념은 고토가 지질학적 개념의 지질구조선을 얘기하는 것으로 우리 선조들이 쓰던 그 개념과는 사뭇 다릅니다.

더욱이 우리의 전통적인 산맥 개념과 다른 이 고토의 산맥은 우리의 전통적인 산맥을 도용한 만큼 새로운 산맥 개념의 정립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1주일만에 반가운 얼굴들을 뵙습니다.

새마포에서 진행하는 산줄기는 격주 산행이 아니라 매주 산행이기 때문에 사실 일단 산줄기에 들으면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따라서 비록 당일치기 산행임에도 무박 산행보다 더 빠르게 산줄기 순환이 이루어집니다.

모르긴 몰라도 10년 정도면 지맥까지 완성할 태세이니 말입니다. 

 

 

지도 #1

10:49

가음치입니다.

오늘은 조금 늦었군요.

우부장님이 그렇게 정신없이 밟아 달렸어도 워낙 거리가 멀기 때문이죠.

합정역에서 출발한다고 할 때 360km 정도나 되니 숫자만으로도 그 거리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영진지도에는 이 곳을 가옥치라고 표기하여 놓았는데 아까 산경표에서 본 바와 같이 예전에도 이곳이 가음산이라는 이름을 가졌었으니 만큼 가음치가 맞습니다.

택리지에 의할 때 '산의 낮은 곳이 嶺, 岾, 峙'이고 산이었던 곳이 신작로가 생기면서 고개가 되었으니 가음산이 가음치가 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이런 곳이 우리나라에는 얼마든지 있죠?

우선 떠오르는 곳이 충북 영동과 경북 김천을 잇는 우두령입니다.

산경표에는 우두산이었는데 신작로가 생기면서 우두령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오늘의 들머리죠?

지난 구간 날머리의 바로 반대 방향입니다.

날머리 길 건너 지맥꾼들이 다져 놓은 길입니다.

오늘 구간은 온전하게 영암군 금정면 안입니다.

잠시 사면을 치고 오르면 방향은 동쪽으로 잠시 내려갑니다.

그러고는 다시 유턴하 듯 서쪽으로 방향을 잡습니다.

그러면 양호한 임도가 나타나는가 싶더니,

제방이 보이고 우측으로는 도로가 나옵니다.

송장고개입니다.

그러니까 저 저수지가 연소저수지!

그렇다면 이곳이 금정면 연소리이고 여기서 지맥능선은 우측으로 타고 진행을 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그 길이 너무 험하고 어차피 서광목장 부근에서 합류할 것이므로 그냥 이 포장도로를 따라 편하게 진행하자는 데 뜻을 모읍니다.

날씨도 너무 덥고 선답자들의 산행기에 따르면 그 무서운 가지치기 작업 후 뒷처리를 제대로 해놓지 않아 진행 상의 어려움이 크다는 점 등을 감안하여 대장님의 뜻에 따르기로 합니다.

제방 뒤로 활성산 일대의 풍력발전기가 보입니다.

연소저수지.

저수지 도로 우측으로 지맥 능선이 보입니다.

그 길을 따라 오르면,

11:13

삼거리가 나옵니다.

대부분 직진하는데,

좌측 뱅뱅이고랑 방향으로 진행하시는 분들이 계시는군요.

일응 보기에는 활성산으로 가는 지름길 같지만, 

참고도 #3

 

위 참고도 #3에서 보는 바와 같이 포장도로는 고개를 넘자마자 끊기고 뱅뱅이골부터는 물 건너 산을 오르고 지도 상의 목장 같은 곳에 다다라서야 겨우 임도를 만나 빙빙 돌아 활성산 부근으로 진행하게 됩니다.

고생 많으셨겠고 힘도 많이 들었을 겁니다.

아예 그럴려면 오리지널 지맥 능선을 탈 걸....

11:16

저희는 운치 있는 대나무 숲 삼거리에서 서광목장 방향으로 틉니다.

금오경로당이 있는 곳이죠.

음.....

참 멋진 곳입니다.

해공선생님과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면서 분위기를 즐깁니다.

'청주한씨 세장산'이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군요.

종산이라는 얘기?

좌측으로 염소목장입니다.

요새 한 마리에 50만 원 정도 한다고 하던데....

오리지널 지맥 능선입니다.

감자밭을 보니 그런대로 진행할 만한 느낌인데....

여기서 잠시 지맥 능선을 만나기는 하지만 다시 헤어져 지맥 능선은 우측 너멍골재로 가고,

우리가 가는 임도 방향은 흉물스럽게 폐가가 된 서광목장으로 들어섭니다.

한때는 이 부근이 대관령목장 다음으로 규모가 컸다고 하던데....

지도 #2

......................

친환경적인 발전소라고 하였는데 알고 보니 환경을 파괴하고 야생동물들을 다 쫓아내는 원흉?

11:49

416.4봉 부근에 오니 드디어 우측으로 월출산이 보이기 시작하는군요.

11:52

지도 #2의 '가' 지점에 이르러 숲으로 들어갑니다.

그냥 직진하는 길은 군성산 방향으로 가는 길이죠.

이곳에서 영암읍을 만납니다.

여기서 잠시 영압읍과 금정면의 면계를 따릅니다.

보기는 좋습니다.

이 일대가 다 목장이었고 그 목장 용지가 이제는 그저 잡종지나 임야로 변한 꼴이군요.

길은 그런대로 좋고...

철탑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12:01

좌측 아래로 발전소 관리 사무소 같은 건물이 들어서 있군요.

우측으로 지난 번 내려온 국사봉615.0m이 우뚝 서 있고...

12:05

그러고는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활성산498.0m입니다.

여기서 우틀하면서 금정면을 버리고 온전하게 영암읍 안에서 지맥길을 진행하게 됩니다.

철쭉이 만개하였습니다.

바람개비 사이로 국사봉은 여전하고,

그 좌측 끝으로 궁성산487.5m과 아크로 CC도 여전합니다.

아!

월출산.

지질학적으로 보면 노년기 지형인 이 부근이 그저 200m에서 500m 정도를 오르내리다 월출산 부근부터 암봉이 솟기 시작합니다.

이는 남원분지에 관입한 화강암에 의하여 구분된 산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할 것입니다.

산맥이라고 보는 건 무리가 따른다는 것이죠.

우리가 인식하는 산맥은 분수계 곧 산줄기이고 지질학에서 얘기하는 산맥은 곧 산체 혹은 지괴이기 때문입니다.

그럴 경우 저 월출산은 중생대 쥐라기 시절 이른바 '불의 시대'를 맞았을 때 지하 깊은 곳에서 공급된 마그마가 지각의 약한 틈을 뚫고 올라오다 냉각된 것이 오랜 세월 비, 바람과 침식 등으로 삭박을 당한 뒤의 모습입니다.

이 부근이나 다른 곳은 지질이 약한 성질의 것들이라 이렇게 구릉을 형성하고 있지만 월출산에서 이어지는 덕룡 ~ 주작 ~ 두륜 ~ 달마봉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암봉들이라 지금의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런 화강암들은 보통 주홍색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는 지라 멀리서 볼 때 실제 그런 기운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부근의 고개 이름은 '불'자가 들어가거나, 이 '불'의 한자어인 '火'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속리산 입구의 화령이 부근의 지명이 상주시 화동, 화서의 化가 아니고 火嶺이라는 한자를 쓴다거나 오늘의 날머리인 불티재가 불이라는 이름에 고개峙를 부텨 불치 - 불티가 되었고 음운반복에 의해 岾재(岾은 지명을 나타낼 경우에는 '점'으로 읽지만 고개를 나타낼 경우에는 '재'로 읽음)가 하나 더 붙어 불티재가 되었음이 그 예입니다.

 

그럴 듯합니까?

한번 보십시오!

여기만해도 이 부근 마을이나 동네 어디에도 '불티'에 가까운 그 어떤 지명도 찾아볼 수 없지 않습니까?

 

말이 나왔으니까 말이지 월출산도 달(月)이 떠오르는(出) 산으로 해석하고 싶으시죠?

그리고 월출산 오르는 길의 노루재도 노루가 많이 다니는 고개라고 읽고 싶으시죠?

다음 구간 때 그 궁금함을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바람에 억새가 뉘어지고 그 옆으로 붉은 철쭉이 손짓을 합니다.

우측으로 영암읍내.

내려온 길을 다시 둘러봅니다.

봉황산 방향. 

진행 방향.

좁은 능선길을 걸어.....

우측으로 떨어져 숲으로 듭니다.

사실 여기는 아까 그 능선에서 계속 직진하는 길이 맞을 것 같은데 선답자들이 숲으로 들어오게끔 길을 만들어 놔서 그저 그렇게 가는 것에 불과합니다. 

참고도 #3

진행방향은 노란선입니다.

사실 저는 트랙을 그려올 때 빨간선으로 그어 아까 그 능선을 따라 직진하여 달뜬봉으로 진행을 하거나 현장 사정에 따라 파란선으로 가는 길을 차선책으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지도 #2의 '나'에서 우측으로 떨어지니 적지 않게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 길은 같은 지도 '다'에서는 직진하는 좋은 길을 놔두고 다시 급좌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만연히 생각을 놓고 진행했다가는 바로 직진하여 원하지 않는 '알바'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건대 이 직진하는 좋은 길은 농덕리 둔덕마을로 진행하는 길로 이 지역 분들이 이용하는 길입니다.

고로 지맥길과는 전혀 관련없는 길인데 지맥꾼들이 길을 내며 진행을 하다 동내 분들의 길을 이용하다 보니 능선과는 상관없이 우틀, 좌틀하며 걷게된 것으로 보입니다.

12:16

또 좌틀.

12:19

그래야 달뜬봉 바로 전의 묵은 헬기장(진혁진 지도에는 이곳을 '둔덕치'라 표기)을 지나,

달뜬봉384m 너머 바로 아래에 있는 평상신씨 음택으로 떨어집니다.

그런데사실 달뜬봉은 전혀 인식할 수 없을 정도로 잡목 속의 봉우리입니다.

그걸 어떻게 봉우리로 인식을 하였는지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달뜬봉이라!

월출산의 우리말 표현이죠?

호사가들이 지어낸 말에 불과합니다.

12:29

임도 삼거리를 만납니다.

이정표도 있으면서 지맥꾼들에게는 중요한 포스트가 되는 곳이니 이곳을 '둔덕치'라 보면 되겠군요.

여기서는 잠시 잡목 구간을 따라야 합니다.

가지치기 작업을 하고는 뒷정리를 하지 않아 아주 어지러운 곳입니다.

그래도 묵묵히....

지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좌측으로 임도가 따라오고 샛길도 있습니다.

성가신 가지치기 흔적의 길을 버리고 우측에 있는 지도 #2의 '마'의 길로 내려갑니다.

바로 삼거리가 나오고 좌측은 돈밧재로 내려가는 임도 우측은 355.1봉 우측으로 진행하는 샛길입니다.

오리지널 마루금과 별 차이도 없으니 좀 편하게 가기 위함입니다. 

사실 이러면 안되죠.

적어도 마루금파가.....

지도 #3

핑크색 선 - 오리지널 마루금

노랑 선 - 샛길을 따라 진행한 길

활성산을 돌아보고.....

12:45

지맥길에 접속합니다.

그런데 앞에 가는 분들이 보이질 않습니다.

분명 선두는 제 앞에 한참이나 앞서 가야 하는데.....

이름도 이상한 '자지골재'로 오르면서 뒤를 돌아보니 저 아래에서 먼지를 날리면서 달려오고 있는 일군의 보병들이 보입니다.

그렇다면 그 샛길로 오느라 제가 선두?

12:54

영암읍이 바로 앞으로 다가왔군요.

쌍점제.

12:55

자지골재는 고개가 아니고 봉우리?

13:03

지도 #3의 '사'에서 다시 편안한 소로가 나오고 ....

13:07

무시무시한 주력의 소유자들에게 선두 자리를 내어 드립니다.

그러고는 다시 숲으로 듭니다.

편백나무 숲입니다.

심호흡을 크게 쉬면서 걷습니다.

13:11

255.0봉입니다.

참소리님을 만나게 되는군요.

여전히 산줄기 산행 잘 하시고?

여기서 급좌틀하고...

이제 조금 잡목가지가 진행을 방해하기는 하지만 지맥길에 이 정도가 어디입니까?

그럼에도 시시콜콜 진행이 어려워 우회했다는 선답자들은 도대체 왜 이리 뻥이 심한 이들이었는지 좀 이해가 가질 않는군요.

13:25

광주김씨 묘소를 지나니, 

지도 #4

13:26

835번 도로가 지나는 돈밧재입니다.

먼저 가셨던 정병훈 선생님과 해공 선생님을 다시 만나게 되는군요.

아무럼요 후미 대장님이신데....

대원들이 쉬면서 간식거리들을 드시고 계시는군요.

얼려온 막걸리를 꺼내 한 순배씩 돌리고 떡도 얻어 먹습니다.

20분 정도 쉬었으니 한참이나 쉬었습니다.

후미가 거의 지나가신 것 같습니다.

13:55

치고 올라갑니다.

그러고는 지도 #4의 자의 곳입니다.

희미한 삼거리에서 우틀하면서 강진군 옴천면을 만나 이제부터는 강진군과 영암군의 군계를 따라 진행합니다.

12:01

좌틀하고,

14:04

아무 흔적도 없는 343.3m봉.

산죽밭이 나오지만 지맥길이 다 이런 거 아닙니까?

예상 외로 '돈밧재 ~ 불티재 구간도 양호합니다.

이런 곳 쯤이야.....

14:31

375.3봉은 사면치기로 진행합니다.

14:40

좌틀하고,

14:42

327.9봉에서 강진군 작천면을 만납니다.

이제부터는 영암읍과 작천면의 군계를 따릅니다.

14:49

그러고는 지도 #4의 '카'의 곳입니다.

행정구역의 변경이 심해지는 구간입니다.

여기서 작천면을 버리고 성전면을 만나지만 계속 군계는 유지됩니다.

14:55

송전철탑을 지나,

소로를 만나니,

한규석님의 음택을 지나고,

그러고는 김해김씨 가족묘입니다.

여기서는 묘지 바로 좌측 길을 따라 불티재로 내려와도 되지만,

오리지널 마루금을 따릅니다.

15:01

내려온 불티재 날머리 빙향.

불티재입니다.

그런데 공단 직원이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만드는군요.

관광버스게 새워져 있는 걸 보고 신고가 들어갔다는 겁니다.

자신들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는 산악회가 아님에도 그렇게 신고를 한 것을 보면 분명 산악회에 대해 어떤 앙금이 있는 게 분명합니다.

산만 다니는 우리같은 산꾼들이 뭐 잘못한 것이라도 있나요?

다음 들머리....

문제는 다음 주 산행이겠군요.

분명 우리 카페에 들어와서 시간표며 뭣이며 다 볼 텐데....

공단 직원들의 노고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우리같이 산행만 하는 팀들에겐 관용을 베풀어줘야 하는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