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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정맥/땅끝기맥

해남지맥(땅끝기맥)미황사 ~ 대밭삼거리 ~ 도솔봉 ~ 연포산 ~ 17번 도로 ~ 갈두마을

해남지맥의 마지막 구간입니다.

이번 구간의 시작인 달마산으로 오르는 방법은 세 가지 정도가 되는 것 같습니다.

첫째는 정통적인 접근 방식인 산줄기를 타는 방법으로 그 초입은 ①닭골재 혹은 현산면의 월송리 버스 정류장일 것이고,

둘째 방법이나 셋째 방법은 미황사 부근을 경유하는 것인데 ② 미황사를 통하여 오르다 좌틀하여 달마산 방향으로 오르는 방법 ③ 그리고 다른 하나가 문바위 쪽을 통하여 여류로운 루트를 택하는 방법 등이 그것일 것 같습니다.

 

참고도 #1

 

즉 위 참고도의 1, 2, 3코스가 그것들입니다.

산줄기를 즐기는 우리로서는 전前 구간의 하산 지점을 어디로 택했었느냐에 따라 오늘 들머리를 제2 혹은 제3코스로 잡게 될 것 같군요.

사실 지난 번 닭골재에서 탈출을 했던 저로서는 강남 터미널에서 심야버스를 이용 광주로 이동한 다음, 04:40 해남행 첫 버스를 타고 해남에 도착해셔는 아침을 먹고 07:05 버스를 타고 월송으로 이동한 후에 히치하거나 혹은 걸어서 닭골재에 08:00경 도착하여 산행을 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면 11:15 좀 넘어서 도착하는 대원들과 능선에서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고 그럼으로써 제 땜빵산행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라 봤는데...

그런데 역시 집안 문제로 저에게 무박산행은 아직은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어쩔 수 없이 아침 일찍 죽전간이버스정류장으로 나갑니다.

또 그렇게 장거리를 이동하여 해남 미황사 주차장에 도착합니다.

 

산행개요

 

1. 산행일시 : 2017. 6. 22. 목요일

2. 동행한 이 : 새마포산악회

3. 산행 구간 : 미황사 ~ 대밭삼거리 ~ 도솔봉 ~ 연포산 ~ 17번 도로 ~ 갈두마을

4. 산행 거리 : 16km

구 간

거 리

출발 시간

소요 시간

비 고

미 황 사

 

11:20

 

 

대밭삼거리

1.52

11:52

32

도 솔 봉

1.35

12:37

45

연 포 산

3.13

13:33

56

10 휴식

17번 도로

6.94

15:57

84

갈두마을

3.06

17:05

68

 

16 km

05:45

05:35

실 소요시간

 

산행기록

 

11:20

예상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습니다.

행장을 꾸릴 시간도 없이 선두 대원들은 치고 올라가기 바쁩니다.

한 팀은 제2코스로 그리고 나머지 대원들은 제3코스를 택한 다음,

11:26

제3코스를 택한 팀들 중에서도 일부는 참고도 #1의 481봉 방향으로 진행하고,

저나 발빠른 팀들은 문바위재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저야 나중에 땜빵을 할 때 가벼운 마음으로 조금 더 진행하면 될 것이니 문바위재 혹은 대밭삼거리로향합니다.

그러나 다른 분들은 지난 번 하산 지점이 다른 분들보다 조금 더 길었다는 얘깁니다. 

지도 #1

그 루트는 이렇게 너른 길을 따라가다가,

11:35

부도군이 있는 부도암 우측으로 오르는 등로를 따르는 루트입니다.

뒤로는 달마산의 암봉들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는 곳입니다.

좀 당겨본 사진입니다.

 

그나저나 달마하면  우리는 선종의 시조인 달마대사를 연상하게 되고 이는 우리나라 산이름의 양대 축 중 하나인 불교신앙 유래설을 떠올리게 됩니다.

한국 최고의 예술 영화로 기억되는 '달마가 동쪽으로 가는 까닭은?'이라는 영화가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럴 때 옛 기록 즉.

'신증동국여지승람(해남)에 의하면 1218년(고려 고종 5) 이곳까지 표류한 남송南宋의 배가 이 산을 보고 "이름만 듣고 멀리 공경하여 마지않았더니 가히 달마대사()가 살고 계실만하다."라는 기록이 있다. (두산백과사전) 

이를 통하여 지명이 고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하여 '달마대사'와 관련되어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고 하거나,

 

신라 경덕왕 8년(749)인도에서 경전과 불상을 실은 돌배가 사자포구(지금의 갈두)에 닿자 의조 스님이 100명 향도와 함께 쇠등에 그것을 싣고 가다가 소가 한번 크게 울면서 누운 자리에 통교사를 짓고, 다시 소가 멈춘 곳에 미황사를 일구었다고 한다.(한국관광공사의 설명문 )

 

등이 그것입니다.

결국 이른바 불교의 해로유입설(說)과 관련 지은 얘기입니다.

 

어쨌든 이 그럴 둣한 얘기는 이 산이름과 계속 맞물려져 논란을 거듭합니다.

가령 『여지도서』(해남)의 봉수조에 마산()으로, 『해동여지도』(해남)에 달마산()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해남), 『청구도』(24층 15면), 『동여도』(12첩 4면), 『대동여지도』(20첩 4면), 『조선지지자료』(해남), 『조선지형도』에는 달마산()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물론 현대지형도에는 달마산()이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볼 때 이 산의 기본 이름은 마산이었습니다.

 

마산이라 표기한 '여지도서'는 조선 후기에 각읍에서 편찬한 읍지()를 모아 책으로 엮은 것으로, 간행된 지 270여 년이나 된 《신증동국여지승람(輿)》을 다시 고치고 그동안 달라진 내용을 싣기 위해서 편찬된 책입니다.

각 읍邑 즉 현장에서 보내온 정보를 토대로 엮은 책이니만큼 사실과도 많이 부합하리라 생각됩니다.

 

그런 책에서 이 산을 마산이라 본 것입니다.

마산은 馬山이건 麻山이건 크게 다를 건 없습니다.

또한 摩山이면 어떻고 磨山이면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한자어가 여러 개 있다는 것이 이 산의 이름의 한자어는 그 발음만 한자를 차자借字했다는 반증 아니겠습니까?

다만 이 한자를 후세 사람들은 '말모양을 한 산'馬山이어서 혹은 '하얀 삼배를 널어놓은 암벽의 모습'을 한 것麻山이어서 각 그런 이름을 갖게 되었다라는 설명이 붙기 마련인데 결국 어떤 토를 다느냐에 따라 설명이 달라질 뿐입니다.

 

하지만 이런 억지 해석보다는 당연히 그 유래를 순우리말에서 찾는 게 당연합니다.

즉 중세국어에서는 말은 '말馬'말고도 '마루' 즉 높은 곳이나 꼭대기를 나타내는 말이었습니다.

- 말이나 마라는 '아래 · '를 써야 하는데 여기서는 옛말 기능이 지원이 되지 않아 그냥 'ㅏ'로 씁니다.

그러니 백두대간을 북진할 때 마지막 만나는 고성의 산인 마산은 말모양을 한 산이 아니라 다만 '큰 산'이라는 의미의 다름 아닙니다.

따라서 말티고개니 말치고개도 다 높은 곳에 있는 큰 고개 정도의 의미로 보면 됩니다.

 

선조들은 부처님의 가피력이 넘쳐흐르는 두륜산을 지나 부처님 나라 도솔봉을 거쳐 큰 산인 마산(지금의 이 달마산)에 이를 때 남송과 바닷길로 교류를 하던 고려가 나오게 되고 그때 신라의 의조스님을 떠올립니다.

그 큰산을 말뫼 혹은 말산으로 부르고 있을 때였을 겁니다.

그러니 한자가 들어오면서 그 이름은 자연스럽게 마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렀을 겁니다.

 

한편 요즘은 쓰지 않는 말 중에 '높다'라는 뜻의 '달'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한자가 들어오면서 이 달은 '達' 혹은 훈을 차자하여 쓴 월月과 혼용하여 월출산이나 월악산이라는 이름에 활용되기도 합니다.(지난 산행기 참조)

이 達이 高와 같은 뜻이어서 곧 達 = 高 = 馬이니 말뫼 - 말산 - 마산이 위 설화와 맞물려서 별다른 저항없이 달마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발음으로도 달마는 불가의 달마대사와 관련이 되어 있으니 금상첨화였을 겁니다.

또한 이 아래 '미황사'란 절이 있었고 부도가 보여주듯 고승들이 득실거렸을 것인바, 불가의 냄새가 솔솔 나는 '달마'라는 이름이 제 격이었을 거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누가 뭐라해도 여전히 이 산의 원래 이름은 말산 즉 마산입니다.

부도전 우측으로 등로가 나 있습니다.

돌밭길을 따라 올라,

11:52

드디어 지맥 길에 도착했습니다. 

문바위재입니다.

한자로는 門巖岾라고 쓸 것입니다.

대밭삼거리라고도 부르더군요.

지도 #1의 '가'의 곳에 있는 이 지형물 때문에 문바위재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이겠죠?

이제부터 지맥 산행을 이어가게 됩니다.

11:55

숲을 빠쟈나가자마자 바로 진행방향으로 봉우리가 보이는군요.

예전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귀럐봉이라 불리던 471.1봉인데 '김형수555에는 사자봉이라고 표기되어 있군요.

오늘 산행의 마지막 봉도 사자봉152.1m이라는 이름을 가졌고 그 봉우리에는 땅끝전망대가 있습니다.

11:58

그 귀래봉에 올라 뒤를 돌아봅니다.

달마산의 위용이 예사로와 보이질 않는군요.

11:59

우측으로 눈을 돌리니 우측 하단이 미황사.

그리고 달마산에서 가지를 쳐 내려간 줄기에서 이어진 가공산334.8m이 멋진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그 좌측으로 군곡저수지와 바로 좌측 하단으로 해원저수지가 보이는군요.

이 멋진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계시는 여성대원.

새마포의 여성 대원들은 한 마디로 무섭습니다.

나이를 잊은 대단한 체력들! 

12:15

안전시설도 되어 있는 459.3봉을 지나,

12:17

진행방향을 주시합니다.

지맥이 연포산418.6m을 지나 좌측으로 맥을 하나 가지를 쳐 윤도산284m으로 산 이름이 범상치 않습니다.

해남 윤씨로 이곳에 살았던 풍류가객 고산 윤선도가 연상되기 때문이죠.

그 이름의 확실한 유래는 모르겠으나 이따 땅끝에 가면 보길도가 보이기나 하려나?

12:22

지도 #1의 '나'에 이르러 겨우 흙을 밟게 되는군요.

그러나 이도 잠시.

다시 돌밭을 걷다,

 

지도 #2

12:28

지도 #2의 '다'의 곳인 하숙골재에 이르러서야 다시 흙을 밟게 됩니다.

지맥길은 도솔봉 주차장을 따릅니다.

좌틀하면 평암리로 진행을 하고 우틀하면 불당터를 지나 장춘마을로 진행할 수 있습니다.

12:30

지나온 459.3봉을 돌어봅니다.

우측의 바위들은 지금도 진화가 진행 중인 거 같습니다.

12:32

높이를 달리하여 조금 전 모습들을 다시 살펴보고....

12:38

그러고는 도솔봉421.9m입니다.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도 이름을 올렸건만 정작 이봉우리 정상에는 그 흔한 정상석 하나 있지 없군요.

12:43

바로 앞에 391.5봉이 그리고 안테나가 있는 군부대의 연포산이 일렬로 줄 서 있고 좌측으로는 윤도산입니다.

13:00

지도 #2의 '라'의 곳을 지나 좌틀하고,

13:01

좌측으로 완도를 봅니다.

바로 아래 누에같이 누워 있는 듯한 중마산141.2m에서 완도방향으로 172.2봉이 제법 높은 봉우리같이 보이고....

작은 봉우리를 내려오자마자,

같은 높이의 숲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13:08

윤도산.............

13:14

391.5봉에 오릅니다.

지나온 도솔봉...

좌측의 가공산.

바로 좌측의 저수지가 마봉2제이고 그 옆 봉우리가 134.2봉

흰 비닐 같은 곳이 화정축산.

13:18

바로 앞의 지붕이 보이고 그 뒤로 연포산입니다.

저 지붕이 뭘까요?

13:20

도솔암 사거리입니다.

우측의 지붕이 보이던 집에서 사람이 드나들어 그 집앞을 지나면 안 될 것 같아,

우회하여 도솔암으로 갑니다.

하지만 저 도솔암은 빗장을 걸어잠그 듯이 쇠락되어 가고 있는 상태.

그러니 저 암자는 법당이고 아까 그 집은 요사채 역할을 하는 곳이군요.

물은 있으려나....

이런 안내문만 요란하게 세워놓았을 뿐.

'''''''''

13:28

지도 #2의 '마'에서 좌틀하여 404.1봉을 지나 연포산으로 진행하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여름도 한여름 날씨를 보이고 있는지라.....

약한 마음에 우틀하여 편안한 길을 택합니다.

바위 하나 보고....

 

지도 #3

13:33

우측으로 표지띠도 보이지만 직진.

13:34

그러면 지도 #3의 '마'의 곳인 도솔암 주차장입니다.

이곳에서 도솔암 불사가 한창 진행 중이군요.

결국 우회를 하면서 404.1봉과 연포산은 패스하게 되었습니다. 

어차피 연포산을 간다고 했어도 군부대 때문에 쉽지는 않았을 겁니다.

진행 방향으로도 406.6봉에 도솔봉(영진지도에는 그렇게 표기)이라는 정상석이 있어 그 봉우리를 통과하여 시멘트 포장도로로 내려갈 생각도 하지만 일행분들이 그냥 길을 따라 가자고 하는군요.

이 여름에 잡목숲을 빠져나올 엄두도 사실 안 나기도 하고....

406.6봉도 패스!

좌측으로 윤도산길로 빠지는 루트도 통과하면서 이제는 북평면을 버리고 온전하게 송지면 안으로 들어갑니다.

13:47

그러고는 여기서 좌틀하여 시멘트 도로도 버립니다.

13:54

못내 406.6봉이 아쉽습니다. 

14:04

이제 고도는 완전히 떨어져 263.1봉을 지나도 이곳이 봉이라는 인식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정표도 잘 만들어져 있고...

그런데 아직도 8.11km?

하지만 이제부터는 거리에 대한 두려움은 없어질 때가 됐습니다.

거의 평지 수준일 테니....

14:19

숲이 햇볕을 막아주고....

238.4봉을 지나,

12:35

248.6봉도 그저 이렀습니다. 

지도 #4

14:49

잘 다듬어진 묘지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선생님 옆에 기대어 보고.....

14:50

헬기장이 나오고 임도를 건넙니다.

지도 #4의 '바'의 곳입니다.

14:59

좌측 백일도와 흑일도.

저기는 완도군이군요.

이따 보길도 보기도 틀린 것 같습니다.

14:59

음.........

호화판이든 뭐든 보기는 깔끔하고 좋군요.

242.6봉을 내려오자마자 만나는 음택입니다.

15:08

멀리 연포산.

15:08

230.7봉을 나오자마자 좌틀합니다.

15:19

지도 #4의 '사'에서 우틀하고,

15:21

이정표의 땅끝전망대를 따르고,

15:25

우측으로 팔각정이 보이고 좌측 끝이 전망대가 보이니 사자산이군요.

그 주차장에 매점이 있다고 하니 거기서 시원한 캔맥주 한 통 먹을 수 있겠군요.

15:30

간벌지를 지나,

15:32

145.3봉을 지납니다.

 

15:43

156.7봉을 지나 좌틀하니,

15:57

번 도로 위의 다리를 지나 땅끝호텔로 접어들게 되고,

16:00

호텔 좌측으로 툴어 더 없이 편안한 길로 접어듭니다.

나무 계단을 따라 오르니,

16:09

호텔 뒤 팔각정으로 오르게 되고,

그 팔각정에서 지나온 길을 돌아봅니다.

16:20

편안한 등로는 전망대 주차장으로 안내하지만 매점은 문을 닫았고.....

그냉 우측 통로를 이용하여 전망대로 진행합니다.

16:26

여성 대원들 기념 촬영도 해드리고....

16:26

땅끝전망대.

우측 나무 계단을 따라 바닷가로 내려갑니다.

1641

최남단 비를 봅니다.

육당 최남선은 조선문답상식에서 이 땅끝부터 서울까지 1,000리 그리고 서울부터 함경북도 온성까지가 2,000리 그래서 우리나라가 3,000리라고 하였습니다.

한라산이 보인다더니 오늘은 보길도도 안 보입니다.

16:53

다시 오던 길을 되돌아나가 우측 길을 택합니다.

17:03

갈두마을의 땅끝비.

갈두마을.

갈두마을은 이 부근에 있는 은근산에 칡이 많아 칡머리로 불리던 게 葛頭라고 ...

뭔가 석연치 않은 냄새가 납니다.

'갈'은 중세국어의 '가르다'에서 나온 말입니다.

'갈다'라는 말이죠.

여기서 '칼'이나 '가르치다'라는 말이 나왔고 물줄기들이 '갈리는' 것도 이 말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니 이 말을 지형이나 산 이름 혹은 지명에 대립을 시켜보면 '가지를 치다' 혹은 '갈라지다'라는 의미를 가진 곳을 의미함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백두대간을 할 때 속리산 오르기 전 이안지맥(신산경표 상으로는 작약지맥)이 시작되는 곳 부근에 갈령이 있음을 확인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갈령이 칡이 많이 나는 곳이라 갈령인가요?

아니죠.

백두대간이라는 커다란 산줄기에서 작은 산줄기 하나가 가지 쳐 나가고 있는 모습을 우리 선조들은 보았던 것입니다.

그 가지를 친 곳의 고개이니 갈라진 고개라 하여 '갈령'이 된 것이지 괜히 '칡葛'을 연상하여 칡이 많이 아는 곳이라고 해석하면 좀 곤란한 곳이죠.

이 '갈'자가 자병산 부근 백복령에 가서는 '갈색'으로 비뀌게 되죠.

석회암 토양의 terra rossa 때문이었습니다.

또 가을을 뜻하기도 했고 그 가을이 秋로 된 곳도 있으니 그 지역에 따라 다르게 변천되고 있음도 간파해야 할 것입니다.

그럴 경우 이 '갈두'는 어디서왔을까요?

사견으로는 위에서 열거한 사례와는 좀 거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두륜산을 지나 달마산부터 이곳까지 거의 일직선으로 곧게 뻗은 지형이 그 끝에 이르러 조금 휘어진 모양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혹시 칼로 보아 칼머리 '칼〈 갈葛'이니 갈두로 부르게 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장흥지맥을 하다보면 갈치葛峙를 만나게 되는데 이 역시 마찬가지로 칡과는 관계없는 칼모양에서 온 이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장흥이나 해남이나 같은 지방이니 말입니다.

17:05

그 표지석 뒤에서 분재같은 소나무와 바위를 봅니다.

저는 땜빵 국나이 남았지만 대원 여러분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소양지맥(도솔)은 이미 진행했으니 저는 빠지고 그다음 진행 구간인 평창(주왕)지맥 때 뵙겠습니다.